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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1:02 1,225회 0건
박 차장 2-6


월요일 아침. 장우는 회사에 일찍 나와 웹서핑을 통해 3개 회사의 컨택 포인트를 알아낸 후, 대리점 계약 의향서를 작성했다.

8시30분이 되자 직원들이 하나 둘씩 사무실로 들어왔다. 장우는 9시 정각에 직원 미팅을 갖었다. 이 분야에는 모두 초면들이라 무엇보다도 현재의 시장 규모 그리고 잠재 시장 및 타겟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장우는 직원 개인별로 업무를 할당했다.

“고 대리는 언더웨어의 년도별 수입량을 조사해 주세요. 수입물품 코드에 섹시언더웨어가 분류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없다면 관련되는 사람에게 물어봐서라도 어림짐작을 해야겠어요. 음… 내가 조사국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소개시켜줄께요.”
“정 대리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언더웨어 스타일, 패턴,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를 분석해 주시고.”
“육 대리는 MT 에서 얘기했던 것 처럼 우리나라 약국영업하는 여약사…아니, 섹시언더웨어는 남자약사도 입을 수 있거나 선물할 수 있으니까, 전체 약국영업하는 약사 리스트를 뽑아보지. 아무래도 면식있는 사람들 찾아가는게 나을 테니까.”
“안보영씨는 타이거스 클럽이나 부유층이 많이 속해 있는 여성클럽하고 주요 인물들을 알아보고.”
“아직 제품 확보가 안된 상태라 시간이 충분하니까, 결과는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 서로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으로 합니다.”

장우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한 후, 팀을 셋업하는 일을 시작했다. 뭐든지 체계를 확실히 잡아야만 나중에라도 탄력을 받는 법이었다.

장우는 총무부로 가서 직원 이메일 어드레스와 회사의 전산자원 접속 아이디와 패쓰워드를 수령했다. 마침 총무부에는 소라제약부터 잘 알고 지내던 양 과장이 있었다.

“저…차장님”

“응. 양과장”

“근데, 영업3팀에서 발생할 비용 말 입니다. 위에서 지시 사항이 영업3팀의 비용 처리는 회사에서 해주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뭐? 아니…영업을 하는데 비용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어째서 비용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지?”

“그게…영업3팀은 완전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는 방침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150만원의 정규 봉급이 나오는 것도 2개월간으로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규정은? 물품 구매 비용이라든가, 매출 이익 배분율 같은건?”

“이익 배분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물품 구매도 원칙적으로 선금 수령 후 입니다. 저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음…알았네.”

장우는 양 과장과의 자리를 벗어나 창 밖을 바라보면서 화를 삭였다. 장우는 사장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차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뵙고 싶습니다만.”

“잠시만요…..네, 들어가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박 차장,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이제 시작입니다. 오늘부터 직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해야 할 거에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저희에겐 시간도 없지만, 돈도 없더군요. 방금 총무과에서 저희 비용 처리 문제, 그리고, 물품 대금 처리에 대한 회사 방침을 들었습니다.”

박장우가 도전적인 음성으로 영업3팀에 대한 회사 방침을 얘기하자 조인숙의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만큼이나 신경질적인 그녀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총무과에서 들었다니, 내가 다시 얘기할 필요 없네요. 회사는 돈 되는 곳에만 돈을 투자한다는 건 알고 있겠죠? 난 아주 기본적인 경제 공식을 따르는 거에요.”

“저도 구차하게 이미 정해진 회사 방침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있더군요. 직원 돈으로 장사를 한다면 이익 배분에 대해서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얼마를 요청하나?”

“매출 이익의 70% 를 저희 팀으로 주십시오. 30% 는 회사의 자원 사용료, 그리고, 일부 이익금 환원으로 들어갑니다. 회사에선 대리점 계약부터 물품 구매 비용에 대해서 아무런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밑지는 장사는 아닙니다. 2개월간의 직원 봉급과 전기, 물, 그리고 공간 사용료가 투자의 전체 입니다.”

“박 차장이 자신있는가 보군. 하지만 7:3은 좀 기분이 나쁘지. 6:4 로 하지. 영업 3팀이 매출 이익의 60%를 가져가는 걸로.”

“다른 조건이 또 있습니까?”

“이것처럼 깨끗한 거래에 다른 조건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after sales 비용도 비용에 처리되는 것 잊지 말아요.”

“좋습니다. 저도 더 이상 요구 사항 없습니다. 그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2개월간 봉급과 회사 자원 지원은 회사의 투자분입니다. 매출 이익에 대해서는 40%가 회사 몫입니다. 그리고 15억 매출 당성 시에는 직원별로 1억 5천만원이 돌아갑니다.”

“그…그건…”

“사장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직원 인센티브 입니다. 사장님께서도 저희가 15억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시는군요.”

“뭐…뭐라구? 좋아. 그렇게 하지. 할 얘기 없으면 이제 나가봐요.”

“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사장실 문을 나서는 장우의 등에 차가운 조인숙의 눈길이 느껴졌다. 사장 비서도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장우에게 걱정어린 시선을 준 채 가벼운 목례를 했다.

총무과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던 장우였다. 사장과의 면담을 끝내자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장우에게는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팀원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이것 저것 일을 하다보니, 퇴근 시간이 되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현지에서 퇴근하겠다는 전화 통보를 받았다. 회사에서 받은 메일 어드레스로 프랑스와 미국에 대리점 계약 의향서를 보내는 일도 끝낸 후라 장우는 서류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회사 로비에는 퇴근하는 직원들로 북적거렸다.

“장우! 장우 맞나?”

장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의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많이 변했지만 대학 동창인 한기석이 있었다. 말끔한 군청색 수트 차림과 금테 안경이 차가운 기석의 얼굴을 더욱 차갑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 기석아…정말 오랜만이다. 보기 좋은데. 그 동안 잘 있었니? 다른 친구들한테서 너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하, 내 소식을 듣긴 들었구나. 그래. 한국에 들어온 지 일년 됐다. 너도 좀 변했구나.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젠 소년 같은 분위기는 없는걸.”

“40이 넘었는데…무슨 소년.”

“그래, 벌써 그렇게 됐지. 가만…저녁 시간인데 선약 없으면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할까?”

“어…그러지 뭐.”

기석과 장우가 로비를 나서자 검정색 밴츠가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수와 비서인 듯한 사람 둘이 기석과 장우에게 뒷문을 열어 주었다.

사실 대학 동창이라고 하지만 기석과 대학을 같이 다닌 건 2학년 때 까지 였다. 2학년이 끝나고 기석은 미국 유학을 갔고 장우는 군대를 갔다. 기석은 대학 생활 동안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과의 어울림도 없었고, 다른 친구들 역시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항상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가 그의 등하교길을 도왔다. 그리고 그 시대는 혼자 외톨박이로 행동하는 부자의 아들이 학교 내에서 인기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장우가 기석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같이 있을 때 따듯한 눈길과 말을 건낸 것 밖에는 없었다.

기석의 자동차는 청담동에 있는 고급 일식집 앞에 섰다.

“그래, 난 오랜만에 친구랑 저녁 먹고 들어갈 거니까 들어가보도록 해”

기석은 운전수와 비서를 먼저 보내고는 일식집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일식집은 기석이 단골로 찾아오는 듯 기석이 들어가자 종업원들이 모두 깍듯히 인사를 해왔다.

“어서 오세요. 상무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기모노풍의 식당 제복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자가 방을 안내했다. 여자는 기석과 장우의 양복 상의를 공손히 받아 옷장 안에 조심스럽게 넣더니 무릎을 끓고 손님의 주문을 기다렸다. 그녀가 무릎을 끓자 기모노가 갈라지면서 하얀 그녀의 허벅지가 옷 사이로 보였다. 하얀 맨살…장우의 눈길이 그녀의 허벅지에 잠시 머물렀다.

“내가 주문하던 걸로 줘.”

“네, 상무님, 오늘 들어온 도미가 마침 물이 아주 좋습니다. 그럼 곧 요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급스런 요리들이 순서대로 나왔다. 모든 요리는 방을 처음 안내했던 여자가 직접 가지고 나왔다. 장우는 그녀가 식사 시중을 들 때 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속살을 힐끗힐끗 처다 보았다. 그녀도 장우의 눈길을 느꼈는지 장우와 시선이 마주치자 장우에게 조용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저 여자 맘에 드냐? 연결해줄까?”

“응? 아니야. 아니야.”

“하하하, 그래. 저 여자 이 집 사장이야. 나이도 별로 안됐는데 대단하지? 얼굴하고 몸매도 좋고 사업 수완도 괜챦아. 무엇보다 편안하게 대해주니까 자꾸 오게되고.”

기석과 장우는 그 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눴다. 기석은 미국의 하볼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서는 바로 월스트리트에 있는 주식회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 오기 전까지는 젤피모르간의 재무담당관리자로 있었고 지금은 아버지가 만든 투자회사의 재무담당상무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동안 결혼도 해서 아들만 넷을 두어서 이제 자손 걱정은 털어버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 소라 언더웨어에도 투자를 했거든. 오늘 회사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는데 거기서 너 이름을 봤어. 혹시나 했지. 그런데, 좀 어려운 부분을 맡았더군. 물론 거긴 너가 알지 못하는 속사정도 있는 것 같지만. 하옇튼 잘 해라. 우리 아버지 돈이 박혀 있으니까.”

두 사람은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일어섯다. 사장이 조용히 그들을 따랐고, 문 앞에서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또 들러주세요.”

“사장도 잘 있어요. 이 친구 장사가 잘되면 다음엔 이 친구가 날 데려올거야.”

“네. 상무님 친구분도 사업 잘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업상의 식사 장소가 필요할 때는 알려주세요.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우와 기석은 일식집에서 미리 불러놓은 모범택시에 올라탔다.

“장우야. 그거 아냐? 내가 대학 다닐 때 제일 좋아하던 사람이 너였어. 우리 술 한잔 더 하자. 기사 양반, 하얏트 호텔 밑에 있는 야누스로 갑시다.”

“야누스요? 죄송하지만 잘 모르는 곳인데…”

“일단 하얏트 쪽으로 갑시다.”

차는 한남대교를 넘어서 남산 길로 들어가 하얏트에 다달았다. 택시기사는 기석의 지시에 따라 차를 호텔을 따라 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이윽고 차가 멈췄다. 차가 멈춘 곳은 높은 담으로 둘러쌓인 곳이었다. 장우가 대문에 있는 간판을 보니, 조그만 나무원목간판에는 야누스 라는 상호가 적혀 있었다. 미리 연락이 갔는지 종업원이 기석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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