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곳의 이야기들 속에 재미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억 속의 일을 적어나가기 때문에
가공 보다는 훗날 나를 위해 가급적 진실되게 적어나가는 글이다.
더 할 수 있었을 수도 있고,
더 과감해질 수도 있었지만,
사실이기에 아무일이 없었고,
사실이기에 우연찮게 생겨난 일이기도 했다.
난 매우 성이 나있었다.
이러고도 나랑 안하겠다고 했어?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남녀간.
그저 편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쪽은 우리 사귀는 것 이었자나 하면
서로 육체적 위안을 삼고 싶었다 생각했는데 깊은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걸 허락할 리 없자나 하고 나오면
왠지 그녀는 좀 더 깊은 사이를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제대로 뿅가게 한 후에 쿨하게 헤어져서
매번 생각나게 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그러기엔 우린 매일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데…
“띠리링 띠리링”
보통 밤에는 전화가 잘 오지 않는다.
불길한 느낌.
오늘 저녁 내내 사실 불길한 느낌이 든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이고
나는 여자문제로 사고가 날까봐 조심했던 것인데
어쩌면 다른 것으로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네. XX학관입니다.”
“여기 병원입니다. XXX씨가 방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나에게 있어 고모는 통장과도 같은 분이었다.
고모는 연락하고 싶을 때 나에게 돈을 송금해줬고,
나는 수시로 통장정리하며 고모에게 연락하곤 했다.
늘 필요한 것이 없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 지 챙겨주신 고모
“고모는 가족이 없어서, 너가 나중에 고모 묻어주고 제사도 해주라.”
고모에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작은 가방을 들고 병원에 와달라고 했던…
달리는 택시 안에서 살짝 열어보니 영정사진이었다.
그리고 깨알같이 적힌 주소록.
포스트잇으로 적힌 메모.
“경자에게 먼저 연락하면 대부분 전달이 될 거야. 고모”
고모는 당뇨가 있었다. 난 몰랐다.
고모는 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건 알았다.
폐암이었다. 몰랐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몰랐다.
하지만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왔다고 한다. 몰랐다.
또 항암치료를 받으며 체력이 급격히 약해지셨다고. 몰랐다
가끔 전화통화에서 느낀 봐로는 한두달 정도 후에 퇴원하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난… 갑상선암인줄 알았었다.
#
전화를 한 분은 간호사인줄 알았지만
고모는 딱히 가족이 없다 보니
고시원 출신인 한 변호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딱히 상주도 없고,
얼마나 자기를 찾아올지 알 수도 없는 고모의 장례식
하지만 고모는 장례식장에서 제일 큰 곳에서 3일장을 치루길 바라셨다.
제대로된 생일파티 한번 못해보고,
결혼도 못해보고
쓸쓸한 삶을 살다보니
마지막 가는 길 호화롭게 보내시고 싶은 맘이었던 것 같았다.
변호사에게 가방을 드렸다.
다 알아서 신문에 공고까지 냈고
엄마 아빠는 소식을 듣고 내일 아침 올라오신다고 했다.
첫날은 조용했다.
고모의 사진이 애초롭게 보였다.
경자라는 분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아 너가 경태구나!”
“네.”
“잘생겼구나. 그래 수첩은 어딧니? 고시원 키는?”
“아 연락은 변호사님이 다 하시고 있을꺼에요.”
경자 고모의 친구는 수첩과 고시원 키를 들고 고시원으로 갔다.
아마도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어야 하기에 고시원에서 고시원 지키면서
친구들에게 한명 한명 전화하려는 것 같았다.
#
엄마 아빠 고모 삼촌….형식적으로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죽었나 확인하러 온 듯 했다.
다들 좋은 분들이고 고모도 좋은 분인데
엄마는 구지 내가 여기서 지킬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친척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고
엄마아빠도 변호사에게 맏기고 어디 가서 쉬라고 했다
아마도 여의도 오피스텔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엄마는 엄마가 준 돈으로 내가 오피스텔 전세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돈으로 들어가기 힘든데…
하지만 그렇게 아시는 것이 효도일 수도.
‘너가 여기서 구지 있을 이유가 없단다.’
과연 그런가?
고모는 내가 묻어주고, 매년 제사까지 부탁하셨는데…
#
다시 조용해졌고...중간 중간 찾아오신 분들이 있었지만 인사만 드리고 금방 가셨다.
육계장이고 음료수고 술이고… 그대로 있었다.
찾아온 손님들은 뭐라 이야기를 건냈지만 무슨 말하는지
그냥 멍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들었다.
#
마지막 날은 ...고모의 친구들로 가득찼다.
나에게 말을 건내는 분들도 있었지만
난 멍했다.
이런 건 처음이고...생각해보니 검은 양복이라도 어디서 구해서 입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시원에서 나온 그대로 멍하니 지키고 있었던 거다.
상주는 아니니
아니 검은양복을 입었다면 친척들이 난리를 피웠을지 모른다.
#
어느 덧 긴 3일이 지나가 이 큰 방을 비워줘야 할 시간에
변호사가 날 불렀다.
“ XXX님 장례 부조금이 XXX원이 들어왔고,
병원비용과 장례식장 비용 등을 빼면 XXX원이 남았습니다.”
“아 꽤 많이 남았네요.”
“그래도 많이 배푸시고 사셨는지 부조금중 액수가 큰 분들도 많았습니다. 절차가 다 끝나면 저희가 답례편지를 보내드릴 것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
“고인의 요청대로 화장해서 관악산에 뿌려달라고 요청을 해주셨는데… 이것이 불법입니다. 저희가 작은 항아리에 담아드리겠습니다.”
화장이 흔하지 않던 시절
납골당이란 것도 아마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공공장소에 이것을 뿌리는 것은 불법이다보니
쉽게 가방에 넣을 수 있는 항아리에 담아 줄테니 나보고 대신 뿌려달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한번 저의 사무실로 나오세요.”
“네?’
“남은 정산과 함께 상속절차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상속이요?”
“네.”
#
고모는 돌아가시며
고시원, 예금, 보험, 정산하고 남은 돈 등으로 억대의 재산을 물려주셨다.
고모가 남겨준 고시원 어떻게 해야 할까?
당분간은 내가 관리해야 할 듯 하다.
이제는 주인으로써
----------------
1부 끝
그도 그럴 것이 추억 속의 일을 적어나가기 때문에
가공 보다는 훗날 나를 위해 가급적 진실되게 적어나가는 글이다.
더 할 수 있었을 수도 있고,
더 과감해질 수도 있었지만,
사실이기에 아무일이 없었고,
사실이기에 우연찮게 생겨난 일이기도 했다.
난 매우 성이 나있었다.
이러고도 나랑 안하겠다고 했어?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남녀간.
그저 편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쪽은 우리 사귀는 것 이었자나 하면
서로 육체적 위안을 삼고 싶었다 생각했는데 깊은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걸 허락할 리 없자나 하고 나오면
왠지 그녀는 좀 더 깊은 사이를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제대로 뿅가게 한 후에 쿨하게 헤어져서
매번 생각나게 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그러기엔 우린 매일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데…
“띠리링 띠리링”
보통 밤에는 전화가 잘 오지 않는다.
불길한 느낌.
오늘 저녁 내내 사실 불길한 느낌이 든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이고
나는 여자문제로 사고가 날까봐 조심했던 것인데
어쩌면 다른 것으로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네. XX학관입니다.”
“여기 병원입니다. XXX씨가 방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나에게 있어 고모는 통장과도 같은 분이었다.
고모는 연락하고 싶을 때 나에게 돈을 송금해줬고,
나는 수시로 통장정리하며 고모에게 연락하곤 했다.
늘 필요한 것이 없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 지 챙겨주신 고모
“고모는 가족이 없어서, 너가 나중에 고모 묻어주고 제사도 해주라.”
고모에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작은 가방을 들고 병원에 와달라고 했던…
달리는 택시 안에서 살짝 열어보니 영정사진이었다.
그리고 깨알같이 적힌 주소록.
포스트잇으로 적힌 메모.
“경자에게 먼저 연락하면 대부분 전달이 될 거야. 고모”
고모는 당뇨가 있었다. 난 몰랐다.
고모는 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건 알았다.
폐암이었다. 몰랐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몰랐다.
하지만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왔다고 한다. 몰랐다.
또 항암치료를 받으며 체력이 급격히 약해지셨다고. 몰랐다
가끔 전화통화에서 느낀 봐로는 한두달 정도 후에 퇴원하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난… 갑상선암인줄 알았었다.
#
전화를 한 분은 간호사인줄 알았지만
고모는 딱히 가족이 없다 보니
고시원 출신인 한 변호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딱히 상주도 없고,
얼마나 자기를 찾아올지 알 수도 없는 고모의 장례식
하지만 고모는 장례식장에서 제일 큰 곳에서 3일장을 치루길 바라셨다.
제대로된 생일파티 한번 못해보고,
결혼도 못해보고
쓸쓸한 삶을 살다보니
마지막 가는 길 호화롭게 보내시고 싶은 맘이었던 것 같았다.
변호사에게 가방을 드렸다.
다 알아서 신문에 공고까지 냈고
엄마 아빠는 소식을 듣고 내일 아침 올라오신다고 했다.
첫날은 조용했다.
고모의 사진이 애초롭게 보였다.
경자라는 분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아 너가 경태구나!”
“네.”
“잘생겼구나. 그래 수첩은 어딧니? 고시원 키는?”
“아 연락은 변호사님이 다 하시고 있을꺼에요.”
경자 고모의 친구는 수첩과 고시원 키를 들고 고시원으로 갔다.
아마도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어야 하기에 고시원에서 고시원 지키면서
친구들에게 한명 한명 전화하려는 것 같았다.
#
엄마 아빠 고모 삼촌….형식적으로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죽었나 확인하러 온 듯 했다.
다들 좋은 분들이고 고모도 좋은 분인데
엄마는 구지 내가 여기서 지킬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친척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고
엄마아빠도 변호사에게 맏기고 어디 가서 쉬라고 했다
아마도 여의도 오피스텔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엄마는 엄마가 준 돈으로 내가 오피스텔 전세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돈으로 들어가기 힘든데…
하지만 그렇게 아시는 것이 효도일 수도.
‘너가 여기서 구지 있을 이유가 없단다.’
과연 그런가?
고모는 내가 묻어주고, 매년 제사까지 부탁하셨는데…
#
다시 조용해졌고...중간 중간 찾아오신 분들이 있었지만 인사만 드리고 금방 가셨다.
육계장이고 음료수고 술이고… 그대로 있었다.
찾아온 손님들은 뭐라 이야기를 건냈지만 무슨 말하는지
그냥 멍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들었다.
#
마지막 날은 ...고모의 친구들로 가득찼다.
나에게 말을 건내는 분들도 있었지만
난 멍했다.
이런 건 처음이고...생각해보니 검은 양복이라도 어디서 구해서 입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시원에서 나온 그대로 멍하니 지키고 있었던 거다.
상주는 아니니
아니 검은양복을 입었다면 친척들이 난리를 피웠을지 모른다.
#
어느 덧 긴 3일이 지나가 이 큰 방을 비워줘야 할 시간에
변호사가 날 불렀다.
“ XXX님 장례 부조금이 XXX원이 들어왔고,
병원비용과 장례식장 비용 등을 빼면 XXX원이 남았습니다.”
“아 꽤 많이 남았네요.”
“그래도 많이 배푸시고 사셨는지 부조금중 액수가 큰 분들도 많았습니다. 절차가 다 끝나면 저희가 답례편지를 보내드릴 것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
“고인의 요청대로 화장해서 관악산에 뿌려달라고 요청을 해주셨는데… 이것이 불법입니다. 저희가 작은 항아리에 담아드리겠습니다.”
화장이 흔하지 않던 시절
납골당이란 것도 아마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공공장소에 이것을 뿌리는 것은 불법이다보니
쉽게 가방에 넣을 수 있는 항아리에 담아 줄테니 나보고 대신 뿌려달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한번 저의 사무실로 나오세요.”
“네?’
“남은 정산과 함께 상속절차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상속이요?”
“네.”
#
고모는 돌아가시며
고시원, 예금, 보험, 정산하고 남은 돈 등으로 억대의 재산을 물려주셨다.
고모가 남겨준 고시원 어떻게 해야 할까?
당분간은 내가 관리해야 할 듯 하다.
이제는 주인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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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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