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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잘 가) 는 이렇게 썼다 - 프롤로그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1:06 1,178회 0건


이 글은 야설이 아니 예요.
독자님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자 한 것은 아니니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되요.

"소설토론방"에 올렸던 글을
저의 이름 밑에 한곳으로 모아두기 위해 소설게시판에 다시 올리는 거예요.
소설게시판을 클릭한 초기화면에서 이 글의 제목이 보이지 않게 되면
이 글 원래의 제목으로 수정하도록 할 깨요.

게 시 방 : 소설토론방
게시번호 : 140
제 목 : "빨간수건-오빠 잘 가"는 이렇게 해서 써 진 것이다.
작성자명 : 설앵초
조 회 : 1,581 (2004.07.13.16:00현재)
작 성 일 : 2004-04-11 20:25:35



● "빨간수건-오빠 잘 가"는 이렇게 해서 써 진 것이다.


작년 이맘 때 쯤,

"승용차 강으로 추락 남녀 사망"이란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뭔가 번쩍하고 스치는 영감.
이게 뭘까 ?

뭔가는 모르지만, 뭔가 이야기 같은 것이
혼탁한 시냇물에 프랑크톤이 부유하듯.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

그래, 우선 그 교통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그 원인부터 찾기로 하자.
그러자면 어디로 가야 하나 ?

경찰서 ?
누가 있나 ?
아참 명함이 있지 ?
가만 ?
아빠는 오빠에게 늘 말씀하시길 되도록 경찰에게는 신세를 지지 마라고 하셨다.

동네에서 마주치면 언제나 끈끈한 눈빛으로
아래위를 쳐다보던 그 경찰에게 ?

"전화만 주신다면 1분 이내 곁에 있겠습니다" 라고 했던 말이
너무 부담스럽고
만약 꼭 신세를 저야 한다면
다른 자료 조사, 조언, 참고나
좀더 어려운 다른 일로 신세를 지기로 하고.

그럼 어디로 ?
그래, 내가 다니는 단골 카센타로 가자.

내 승용차 고장 부위가 자동차 내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슴에도
내가 가면 언제나 나를 내리게 하여
떡 하니 운전석에 앉아
연신 코를 벌름거리고 킁킁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리고는 혼자 좋아서 히히덕 거리는 40대 초반의 코가 큰 정비사.

언젠가 아침에 출근 준비로 바빠서
낮에 회사에서 갈아 입을 구멍이 없는 팬티를
핸드백에 넣지 않고 조수석에 그냥 던져 놓고 회사로 가다가
차가 말썽을 부려 가는 길에
그 카센타에 들려 손을 봐 달라고 한 후
급하게 카센타 화장실에 다녀오니
그 팬티가 없어진 사실이 있어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했지만

기술도 좋고
가격도 싸고
필요 없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하는 바람에
그래도 ? 하고 그 카센타에 들렸다.

내가 위의 교통사고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하는 동안
그 정비사는 입이 귀에 걸려 연신 싱글벙글 하더니
나를 사무실로 데려가 커피를 내놓자마자
물고기가 물를 만 난 듯 그 작은 입으로 거침없는 설명이 시작되었다.

입에 침을 튀겨 가면서 설명을 하는 중간 중간에도
의자에 앉느라 무릎 위로 더욱 당겨진 내 짧은 스커트 밑의 허벅지를
곁눈질하며 슬금슬금 훔쳐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의문에 대한 질문과 자문은 계속된다.

그것이 사고라면 ?

왜 ? 추락했을까 ?
음주운전일까 ?
과속을 했을까 ?
핸들 조작 미숙 일까 ?
전방 주시 태만일까 ?
길이 미끄러웠을까 ?
대형차 뒤를 따라가다 시야가 좁아져 갑자기 나타난 커브 길을 보지 못했을까 ?
안개가 너무 끼여 앞이 보이지 않았을까 ?
갑자기 헤드라이트가 나가서 앞이 보이질 않았을까 ?
급제동으로 핸들이 한쪽으로 쏠렸을까 ?
조수석 바퀴의 브레이크가 듣질 안았을까 ?
앞바퀴에 문제가 있었을까 ?
뒤 바퀴에 문제가 있었을까 ?

조향장치 ? 그게 뭔 데요 ?
그럼 그것이 문제였을까요 ?
다른 정비 불량 이였을까 ?
펑크가 났을까 ?
커브 길에 무엇을 피하려다 강으로 떨어진 것일까 ?
담배를 피우다 불이 붙은 담배꽁초가 자지 위에 떨어져 그것을 털어 내려다 ?

왜 ? 왜 ? 왜 ?

의문은 계속되고 능글맞은 정비사 아저씨의 답변도 계속된다

정비사 아저씨가 징그럽게 웃으며
운전 중 딴 짓을 하는 경우도 있죠 ?
어떤 짓요 ?
아......그게......여자가 남자의......

차가 달리는 가운데 여자가 남자의 자지를 잡고 딸딸이를 친다 ?
아니면 여자가 입으로 남자의 자지를 빨다가 ?
남자가 한 손으로 여자의 보지를 만지다가 ?
그러다 갑작스런 커브 길을 만난다 ?

설마 ? 설마 ? 하고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아니고 고의적인 사고라면 ?
고의적인 사고라면 죽기로 하고 일으킨 교통사고가 아닌가 ?

그럼, 이건 자살이란 말인데 ?
그럼, 왜 ? 자살을 했을까 ?

왜 ? 왜 ?왜 ?

남자가 그랬을까 ?
여자가 그랬을까 ?
아니면 둘이서 합의 한 것일까 ?

남자가 배신을 했을까 ?
여자가 배신을 했을까 ?
누가 배신을 했을까 ?
왜 ? 배신을 했을까 ?

아니면 무슨 이유일까 ?
카드대금 때문일까 ?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일까 ?
왜 결혼을 반대했을까 ?
누구 집에서 결혼을 반대했을까 ?

아니면 만약에, 만약에, 정말 만약에,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이라면 ?

누가 ?
왜 ?
어떻게 ?

정비사 아저씨가 봉고차 문을 열어 주면서
내 엉덩이를 유심히 쳐다보는데......보거나 말거나.
봉고 차 의자를 뒤로 넘겨 침대(?)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 침대 위에 큰 대자로 누워 보기도 하고
봉고 차에 물이 새어 들어 온다면 어디로 ?

또 다른 구멍은 ?
사이드는 ?
챈지 레바는 ?
과연 봉고차 안에서 응응이 가능할까 ?

"내리막에 차를 세울 때는
반드시 기어를 넣어 두어야 합니다"

이제 계속되는 나의 질문과 자문에 정비 아저씨의 짜증이 묻어 난다.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그러세요 ?"

인터넷으로 같은 종류의 교통사고를 두 어 건 더 찾아보긴 했지만
영영 오리무중.....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정해 놓고 이를 조합하고 미분하고 적분하다 보면

오줌을 누고 난 뒤
보지를 물로 씻기조차 귀찮아
(씻어도 놀러 올 자지가 없는데 뭘......)
휴지를 돌돌 말아 보지 털에 묻은 오줌 방울을 토닥토닥 훔쳐내면서도
의문은 의문에 꼬리를 물고 다시 다른 의문을 또 만들어 가면서
의문은 계속된다.

강으로 추락하여 물 속으로 가라앉을 때 얼마나 겁이 났을까 ?
자살 이였다 해도 살려고 발부등을 치지는 않았을까 ?
그러나 살수가 없슴을 알고 죽어 가는 그 고통은 어떠했을까 ?

이 글 처음에 나오는 단 한 줄의 화두를 잡고
3개월간 혼자 씨름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아-
내 머리가 이렇게 우둔했던가 ?

그래.
좋아.
이 소재를 이용함에 있어.

일단 살인(?)으로 설정하고.

남자가 여자를 배신하고
여자는 이를 복수한다 ?

그러나 여자는 같이 죽을 생각이 없고
남자만 죽이는데
그 증거를 남기지 않아야 하고
완전범죄가 되야 한다.

2차 함수를 이용한 방정식은 세워졌다.

그렇다면
우선 여자가 남자를 살해하는 동기가 확실해야 하고
범행 도구도 여자 입장에서 가능한 것을 설정하고
완전범죄로 매듭을 짓자.

그러나 이러한 줄거리는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그러면 어떤 대목에서
줄거리를 어떻게 비틀어 ?
두 바퀴만 비틀까 ?

다시 발상의 전환.

아냐.
"형부 미안해요"에서
서투르게 두 바퀴 반을 비튼 결과
논쟁만 일어나고

이메일 홍수에
얼마나 힘들었나 ?

그래, 이번에는 한 바퀴만 경쾌하게 비틀자.

그러나 독자가 모르게
어떻게
덫을 놓고
함정을 파고

전혀 눈치도 못 챌 암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 저기 툭하고
던져 놓고
그걸 주워 모아
기막힌 반전을 만들 것인가 ?

이제 대강의 뼈대는 섰다.
완전한 뼈대를 만들기 전에는 붓을 잡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냥 써내려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는 옆길로 새고
결국은 주객이 전도되는 멍청한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수없이 지우고
또 지우고 하여 2개월만에
겨우 스토리의 구성이 끝났다.

그렇다면
소라 마당이 마당인 만큼
단순한 심리소설로는 안 되고
독자가 원하는
자지 보지의 응응의 이야기도 있어야 하는데

이 이야기를
어디에
어떤 동기로
넣어야 할까 ?

내가 글을 쓰면서
앞에 구멍이 없는
내 팬티 10장을 적신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만

앞에 구멍이 없는 남의 팬티를
겨우 1장정도 적실 수 있고
쌍방울 흔드는 소리도
메아리처럼 들 릴 것이다.

심형래가 코메디를 하면서 자기가 먼저 웃어 버리면
그건 이미 코미디가 아닌 것처럼.

자신이 먼저 달려가서
찍 하고 싸 버리고
자신이 너무 바빠
그냥 가다 보면
독자는 이미 도망가고 없는 것이다.

제목은 빨간수건, 부제는 뭐로 할까 ?

"오빠 다음 세상에서"
"이 다음 세상에서"
"마지막 정사 "
"그렇게 끝난 정사"
"이제는 이게 마지막"
"최후의 만찬"
"배신의 그늘?
"배신의 계절"
"나 혼자 ?"
"그래 잘 살아"
"이대로 가는 건가 ?"
"같이 죽자"
"나만 죽어 ?"
"너만 죽어야 돼"

"오빠 잘 가" ?

그래, 미리 제목에서부터 글의 내용을 암시할 필요는 없고
또한 반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오빠 잘 가" ?

야한 제목으로 화장을 해야 조회 수가 올라간다던데......
그런데
제목만 보고 "클릭"을 하였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는 게 아닌가 ?

빨간수건의 이미지가 있으니까
처음 작정대로 제목은
일단 평범하게 가자.

이렇게 어렵게 완성되는 글인데

한 두 페이지로 토막내어 상,중,하 아니 1-5부로 나누어 울려 먹을까 ?
2-3줄의 간격을 멋 인양 엔트하여 분량을 늘려 ?
아니면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지금 바빠서","누가 와서 그만 쓸 깨요"하고 짐짓 도망가며
몇 날 며칠을 울려 먹을까 ?

아니야. 그건 아니야.
소라의 독자들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클릭을 하였더니
한 두 페이지로 ?
"클릭"한 품삯은커녕 화만 돋구게 되고.

이러한 행위는 소설 게시판 목록만 늘려
정작 정말 좋은 글들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해서
독자의 빠르게 찾고 읽을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하는 일로써
이건 글을 쓴다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야.

왜냐 하면 여기는 결코 쓰레기장이 아니고 낙서장이나 연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의 내용이나 작품성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소라의 독자를 업신여겨 함부로 대하는
뻔뻔한 무성의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 이야기가 너무 길어 읽기도 짜증이냐 나겠지만
애시당초 작정대로 단편으로 가자.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단편으로 가자.
길면 긴 대로 하나의 이야기는 하나로 매듭짓자.

그러자면 단편의 완성도에 문제가 없을까 ?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과연 내가 이렇게 스토리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 ?
응응이면 응응으로 족하지.
꼴에 무슨 스토리까지 챙기냐 ,챙기기는.
남들은 만나기도 쉽고, 만나서 응응도 쉽던데

그래. 나중에 한번쯤은
그냥 응응으로 시작해서 응응으로 끌고 가다가 응응으로 끝나는 글을 써보고 싶다.
이렇게 애가 타도록 스토리 걱정을 하지 않고 말이야.

그리하여, 내 글이 실패했다고 해서
조회수에
댓글에 연연해서는 안 되고,
추천에 목매면 그건 끝이야. 끝.
오직 침묵하는 다수의 독자를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상황 설정은 ?
반전은 ?

그래.
소재 5%에 창작 95%로 구성하고
도입부부터 찾아가고 만나고 하는 동기들을 과감히 생략하여
독자가 곧바로 흡입할 수 있게
곧장 스토리로 돌입하되.

장르는 ?
그냥 가장 편한 서술적 ?
지문으로 설명이 가능한 영화 시나리오로 ?

아니면,
등장 인물의 행위와 감정을
설명과
지문 없이 오직 대사로만 처리해야 하는

그래서 너무나 어려워
누구나 잘 선택하지 않는
라디오 전용 대본으로 ?

그래.
이 어려운 라디오 대본으로의 작업이 숙달되기만 하면
내겐 겁나는 것이 전혀 없다.

그래
결정하자.
또 라디오 전용 대본으로.

그러나
상황과 행동 설정을
지저분한 해설 없이
대화 속에 스며들게 하되 무리가 없게
자연스럽게 풀어 가는 일이
과연 이번에도 가능할까 ?

침묵하는 다수의 독자들이나
전문가가 얼마나 욕을 할까 ?

다리가 후들거리고
구멍 없는 팬티의
오줌이 마렵다.

그러나 비 온 뒤의 땅이 더욱 단단해 진다고 하면
어차피 맞을 매는
빨리 맞자.

자다가도, 오줌을 누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혼자 자위를 하다가도
벌떡벌떡 일어 생각이 나는 대로 그때그때 적은
손바닥만한 메모지 30장의 카드를
토막쳐 방바닥에 펼쳐 놓고

이 카드를 도입부에
이 메모지를 전개부에
이 이야기는 반전부에
그래,
이것은 말단부에

밤을 새워 순서를 정해 논 카드를
새벽에 다시 엉망진창의 뒤섞어 놓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팬티 없는 치마 밑에 손을 넣어 조무락거리며
카드놀이는 계속된다.

스토리 구성이 끝나고 나니
뼈대에 살을 부치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

그러나
많은 분량의 초고를 앞에 놓고
나는 절망한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이렇게 많은 글자를 찍었나 ?
왜 ?
무엇 때문에
무슨 설명이 이렇게도 필요할까 ?

내가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이렇게 많은 글을 쓴 것이 아니고
혹시 내가,
나를 이해시키고자
이렇게 많은 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

그러니까 내 말은
여기서 절반을 뚝 잘라서
한 문장이면 족하고

그렇게 해도
독자들은 벌써 먼저 이해를 하고 저만치 가고 있는데
나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독자 뒤를 따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

이 무슨 군더더기가 이토록 많은가 ?
무슨 설명과 잔소리가 이렇게 구구절절 한가 ?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은 법.

그런데도 정작 말이 막혀서 말 없슴 표 ("......") 로
무성의하게 때운 곳은 없는가 ?

콩을 콩이라 하지 않아도
팥을 팥이라 하지 않아도
두 문장 사이의 행간의 의미로 느껴야
그것이 진정한 글 맛인데
이건 콩도 아니고 팥도 아닌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심한 자괴감에 가슴 한구석이 허하다.

내 책상 앞에 걸어 놓은 메모를 본다.

가장 많은 내용을
가장 야하게
가장 재미있게
가장 쉬운 구도로
가장 간단하게
가장 명료하게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짧은 언어로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허무하고
가장 우습게.

그러나 가장 깊은 내용을 담아라.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덫을 만들고
함정을 만들어
그것을 들키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다가
마지막
한방으로
터트린다.

독자가 읽고 난 뒤
탁 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기막힌
반전을 위해.

그런데 이게 무슨 개수작인가 ?

쇼킹한 것으로부터의 유혹을 뿌리치자.
황당한 허구를 배제하고
철저한 상식 선에서 스토리 재구성하자.

이제 어떻게 해서든지 쇼킹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남과 다른 응응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드디어 무리수를 범하게 되면 어떡하나 ?

그러나 아직은......
적어도 나는 ......하고 있지만
소재가 고갈되고 입에 침이 마르면 그 쪽으로 눈이 돌아가는데
나 역시 그 유혹을 떨쳐 버리고
차리리 붓을 놓을 수 있는 용기가 과연 내게도 있을까 ?

그래 다시 검토하자.
찬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106키판 앞에 앉았다.
커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가만, 그 비디오가 어디 있더라 ?
여자가 위에서 타고 할딱거리는 비디오였는데
반납을 했나 ?

줄거리 전개 과정 수립 단계,
반전 구성,
이야기 속에 숨겨 둘 각종 장치 점검 및 삽입.

일차 초고 완성, 15장,
어휴
줄여,
줄여.

다듬기,

1차 군더더기 제거
맞춤법 검사,

2차 군더더기 제거, 14장, 어휴 줄여, 줄여.

친구에게 보이기
친구 의견 수렴.
3차 군더더기 제거, 13장, 어휴 줄여, 줄여.

대사가 1줄을 넘으면 짜고 자고 또 쥐어짜서 1줄로 압축.
상황 묘사를 대화체로 설명.
이차 초고 완성.

이틀 밤 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묵혀 숙성.
3일째 전혀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정독.
4차 군더더기 제거, 11장, 어휴 줄여, 줄여.

더 줄여-
또 줄여-

더 짧게-
또 짧게-

대사는 버벅대지 말아야 한다.
대사가 버벅거리면
독자의 눈에는 그 글이 씹히게 되고
곧 짜증을 내며

그 짜증은 곧장 "뒤로"를 클릭하게 되니
그것은 내 글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숨겨 논 장치 배치 순서와 덫 확인.
5차 군더더기 제거, 10장, 어휴 줄여, 줄여.

최종적으로 가장 짧은 다른 말로 대체.
6차 군더더기 제거, .9.5장, 몰라, 몰라, 더 이상 안 돼.

음악과 음향 지문 확인하고

맞춤법 검사.
탈고.

휴-유-이

하늘같이 무서운
소라의 독자들의 단 5분의 즐거움(?),
아님 짜증(?)을 주기 위해
나는 몇 날의 낮과 밤을
우둔한 이 머리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던가 ?
그러나
쓰레기 같은 내 글,
나는 그것이 꼴에 글이라고 썼지만 그것을 읽어 줄
소라의 독자가 있는 한
나는 행복하다.

잠깐,

지금 막 초고를 끝낸 이 글은 갓 버무린 배추김치와 같아
매운 고춧가루 맛과 마늘 생강 후추 설탕 양파 대파 젓갈이 어울린 양념 맛만 나지
진정한 김치 맛이 나지 않아

소라에 올리기 전에
김치를 숙성시키듯
눈감고 캄캄한 지하실에 잊은 듯 던져 놓고
3개월이 흐른
지금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처음 읽는 것처럼 이 글을 읽어본다.

그러나
마치 고등학생이
자신이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를 보고
유치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것과 같은 기분이다.

아-
너무 유치하다

야-아, 이 년아. 실실 웃기만 하지말고
너의 경험으로 현정이가 응응하는 부분을 좀 고쳐 주라. 응.
너도 니가 위에서 하는 거 좋아한다며 ?
친구가 눈을 흘긴다.
좀더 쉬운 말로 예쁘게 할 수 없니 ?
이 년이......

야, 니가 형사가 되어 생각 해 봐.
이만하면 현정이의 범행이 완전범죄라고 할 수 있겠니 ?

아무래도
저수지 토사 부분이 그렇고

물고기가 자지를 뜯어먹는 설정은 너무 잔인하지 않겠니 ?
실컷 응응 분위기 띄워 놓고 물고기가 자지를 하는 게......뭐냐 ?
니 생각은 ?

야, 설앵초,
너 ?
이것 밖에 안 되니 ?
이것이 너의 한계니 ?
그래 놓고 글을 쓴 다고 촐랑거렸니 ?
아서라. 아서.
머리도 좋지 않은 기집애가 무슨 지랄이야. 지랄은 ?
친구의 힐책이 비수가 되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쓴 한 줄의 글을 대하여
A4 두 장으로 반박하는 친구를 가진 것이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단 한 줄의 글을 쓸 줄은 모른다.
그럴 때는 언제나
"너 신문선이 축구하는 거 봤어 ? 봤어 ?"하고 나를 몰아세운다.
신문선이 무명의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그 친구는 모른다.

굳이 현정이도 같이 죽일 거는 없잖니 ?
완전 범죄만 성립시키고 현정이는 살리지 그랬니 ?
어차피 복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말이야.

너, 반전의 묘미를 ?
그래. 이 년아. 반전도 반전이지만,
너, 요즘 테마가 자꾸 어두워지는 게 걱정이 돼서 그래.

그래도 언제나 헤여 질 때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는
"설앵초야, 수고했어" 라는 메모를 남기고 가는 것은 잊지 않는다.
이년이 ?
수고라면 잘 했다는 거냐 ? 못썼다는 거냐 ?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며 뭘 하는 사람일까 ?
남자일까 ? 여자일까 ?
며칠간 끈질기게 보내 온 여러 통의 멜을 다 읽고 답장을 썼다.

"쓰레기 같은 글을 아무데서나 아무나 볼 수 있도록 하면 안 돼 ?
어차피 쓰레기인데.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래"

흑흑흑.
그래요.
쓰레기 같은 글이 맞긴 맞지만
비록 쓰레기일망정 내 배를 아프게 해서 낳은 내 자식을
내가 다른 곳에 올려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은 이상
그러시면 난 매우 슬프고,
앞으로도 결코 그런 부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라는 오랜 세월 동안 나와 함께 자랐으며
나에게 99%의 상상력을 키워 주었고
그것에다 내가 가진 1%의 경험을 더하여
100여편의 단편과 10여편의 장편을 쓰게 해주었으며
이제 막 분에 넘치게도 내가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멍석까지 깔아 주었는데
저더러 소라를 배반하고 어디로 오라고요 ?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건 안됩니다.

죽어도 그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더 이상 이러시면 전 붓을 던지고 또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리하지 마옵소서.
정말 그리하지 마옵소서.

설앵초
올림"

뭘 하는 사람이 뭘 하자는 건가 ?.

그래
고쳐라

끓어라
끓어라

단어를
문장을

독자에 숨에 맞추어
끓어라

한 호흡으로
한 단원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도록

끓어라
고쳐라.

어려워,
어려워,
너무 어려워,

그래, 그렇게 한다고 하더니
단편이라고 하더니.
14,417개의 글자, 4,164개의 낱말, 541줄, 원고지가 무려 96.2장......
이게 뭐야 ?
이게 뭐야 ?
나도 항복이다.
이제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다.

매번 이렇게 주저앉아 통곡을 해야 하나 ?
내가 이렇게 머리가 나빴던가 ?

다른 사람도 글을 쓸 때 이럴까 ?
누구에게 물어 봐야 하나 ?
"소설 토론방"에 올려 볼까 ?

어휴,

미쳐,
미쳐.

그러나.

우둔한 내 머리를 원고로 때리며
좀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한
내 돌대가리를 원망하면서.

이제,
손톱을 깍고
발톱을 깍고
보지 털 중 하나가 유난히 길게 자라 거치적거였는데
그 년을 잡아 눈을 질끔 감고 ,
아야 하며 당겨서 단숨에 뽑아 낸 후.

내 이름을 걸고
진한
뽀뽀와 함께.

안녕.

잘 가서
부디 잘 크거라.

흑흑흑.


새끼야.

(끝)

그 꽃잎이
너무 슬픈

설앵초가

벚나무 가지가
팡팡 소리내며 하얀 팝콘을 터트리는

4월의
어느 길목에서.



자유로맨 : 올리셨던 글은 잘 보았습니다. 소라에서 또다른 진주를 찾아낸 기분이에요. 님의 글을 뒤져보았지만 세개 뿐인게 아쉬웠다는.. 자주는 못 옵니다만 그래도 올적마다 님의 글이 혹여 올라왔나 찾아볼랍니다. 그간엔 늑대몰이님 글만 찾았더 랬는데.. 건필하시구요.. 참. 오빠 잘가..를 올리시는 데 석달 이라면 이 글 올리시는 데는 반년은 족히 걸리셨을 듯.. ^^;
2004-04-13

달그림자 : 대단하네요...이 글을 읽고 님의 글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리고 과연 님이 예전에는 어떤 아뒤를 쓰셨는지 감히 상상해 봅니다.
2004-04-15

해적 :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계세요? 아무리 봐도 이건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니오.
2004-04-16

바람의 숲 : 전 초보자 입니다. 독자로서는 훌륭하지만 죄송한 말씀을 올리자면 소설은 이성적인 [사실 나열식으로 경험을 바탕으로 한]글이 있고 감성적인 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감성적인 글을 쓰시는 분으로서는 많은 생각보다 많은 느낌을 자주 가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주 감성적인 글들 속에 철학이 녹은 듯한 글들로 팬이 된 사람이 감히 한 마디 합니다.
200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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