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여인들 - 초보 연애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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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소설일 뿐입니다. 픽션이라는 얘기죠.
실제 사건만 경험담일 뿐, 배경이나 시간은 설정된 것입니다.
인물도 당연히 가명입니다.
장소 배경을 연수원으로 설정했는데 실제 연수원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좀 달라도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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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이 가장 바쁘게 돌아갈 때는 언제일까?
아니, 가장 긴장될 때는 언제일까?
연수 수료식이나 간부연수처럼 그룹 고위층이 참석할 때?
아니다.
연수원 직원들은 스태프일 뿐이라서 그런 세리머니에서도
뒤에서 진행이 잘 되도록 하는 역할만 하지, 앞에 나서서 얼굴 보일 일이 없다.
연수원 직원들이 긴장할 때는, 프로그램이나 강사가 펑크났을 때다.
펑크는 일년에 한두번, 아니, 십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사고라는데
내가 연수원에서 일하던 삼년 동안에도 한번 겪었다.
사실, 직원들이 긴장한다고 펑크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 닦달한다고 해서 펑크가 빨리 메워지는 것도 아니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프로그램 순서를 바꾸거나 시간을 조정하면 되는데,
원장은 그걸 싫어했다.
펑크가 났다고 보고하자 직원들을 닦달하고
사람에게 저런 욕을 할 수 있을까 싶게 욕을 했다.
보고한 선배에게 인격적인 모독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프로그램 펑크는 회사로 치면 부도난 것과도 같다고 했다.
부도를 내서는 안 되는데 부도가 났으니까 욕도 하고 화도 내는 거라고.
비유를 해도 참 한심하게 했다.
그게 부도라고? 프로그램 하나 펑크 났다고 연수원이 망하나?
굳이 회사랑 비교하자면 상품 하나 실패한 거랑 비교해야지.
상품 내놓으면 대충 팔릴 때도 있고, 대박칠 때도 있고, 완전 쪽박날 때도 있는 거지,
쪽박 한번 났다고 회사가 부도나나?
그리고, 사원 욕한다고 부도난 어음 막을 수 있나?
비유를 비유답게 해야지...
어쨌든, 그렇게 펑크가 난 날이었다.
특강을 맡았던 모 교수가 자기는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오다가 접촉사고가 났다고 연락을 해 왔다.
직원들이 어떻게 손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원장은 사고가 나서 강사가 늦어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처리는 보험에 맡기고 그냥 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긴, 그 말도 맞았다.
다른 교통수단이 있고, 남아서 사고를 처리할 기사나 비서가 있다면...
어쨌든 과장과 선배, 나 모두 그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했다.
제일 욕을 많이 먹은 건 선배였는데 과장이 되려 더 열을 받았고,
과장은 원장이 나가자 씨발씨발거리며 때려치우네 마네 열을 올렸다.
사실, 과장은 화낼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키운 원인 제공자였다.
선배는 그런 과장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테라스에 나가서 줄담배만 피워 댔다.
말단인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커피를 진하게 한잔 타들고 나가서 담뱃재를 터는 선배에게 내밀었다.
- 선배님, 커피 한잔 하시죠...?
- 어, 고마워...
- ......
- 후우.... 처음 겪지? 프로그램 펑크...
- 예? 예...
- 뭐, 한 십년에 한번 있는 일이래...
- 예에... 뭐, 드문 일일 수밖에요...
- 후... 뭐 어쩌겠냐, 말단들이... 저녁에 뭐, 약속 있냐?
- 아니요, 오늘은 없는데요.
- 여자친구는? 오늘 안 만나?
- 걔도 요즘 바빠서요.
- 그래? 그럼 이따 술 한잔 할까? 술이라도 안 먹으면 밋!~쳐버리겠다. 아주...
- 그럴까요? 오늘 칼퇴근하죠. 그럼...
- 그래, 오늘 내가 죽나 술이 모자라나 함 달려 보자. 씨바...
그렇게 선배는 담배꽁초를 튕겨 날려 버렸고,
들어와서 또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며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여섯 시... 땡~! 정각이 되자마자 칼퇴근하려고 했는데
과장이 먼저 일어섰다.
- 나 먼저 가우. 두 분, 정리하고 가시우...
- 예, 들어가십시오.
- 내일 뵙겠습니다....
- 내일은 웃으면서 보자구, 응?
- 아, 예...
- ......
과장이 나간 후, 우리도 바로 나왔다.
선배와 나는 아랫동네라고 부르던 동네의 상가로 나와 삼겹살집에 자리를 잡았다.
배도 어느 정도 채우고 소주도 적당히 들어가자,
직장인이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시작되었다.
회사 뭣 같다는 얘기...
- 아, 그렇잖아. 내가 말하면 좀 들어야지.. 안 그래?
- 그렇죠.
- 아니, 내가 잘 알아, 지가 잘 알아? 내가 연수원 사년찬데, 과장 지금 몇 개월 됐어?
과장은 원장에게 욕먹기 싫어서 펑크 보고를 선배에게 미루었고,
선배는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는데도 과장은 선배에게 시켰다.
선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곤란할 거라는 생각에 원장실을 노크했고....
결국 욕을 두 배로 먹었다.
펑크로 욕먹고,
네가 뭔데 원장에게 보고하느냐, 과장은 어디 갔느냐... 이걸로 욕을 또 먹은 거였다.
- 아, 씨발, 아니, 모르면 짬밥 먹은 사람 말을 좀 들어야지, 이건 뭐 고문관이야 뭐야...
- 크크크, 고문관... 딱이네요.
- 좋은 건 남의 일도 지가 하고, 귀찮고 싫은 건 지 일도 아랫사람 시키고... 그게 무슨 치프야...? 안 그래?
- 에휴... 뭐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제가...
- 원장도 그래. 거기서 욕하고 앉아 있으면 뭐가 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 맞아요, 그건 진짜... 아, 말로만...
- 나 갈궈서 해결이 되면 하루종일이라도 갈구라 이거야... 근데...
- 자, 선배님. 한잔 하시고... 쨍~
선배는 열을 올리고, 나는 그런 선배가 과열되지 않도록 맞장구쳐 주면서 술과 안주를 권하고...
그러면서 술병은 늘어 갔다.
- 내가 프로정신이 없어서, 직업의식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
- 사람 욕해서 해결되는 건 없어... 응?
선배는 술이 들어가자 말이 많아지고 길어졌다.
논리도 정연해서, 아까 펑크났을 때 대신 들어가서 강의를 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일이 터졌을 때, 응? 사람 욕한다고 해결이 돼? 아니라구...
- 맞습니다. 맞죠...
- 내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걸 내가 뭐, 잘못한 거야? 걔가 오다가 사고난 걸 나보고 어쩌라고?
- 그죠...
- 내가 실수했어도 그래. 욕한다고 앞으로 실수 안 하나? 실수는 한번 격려하고 넘어가 주는 거야. 그러면 미안해서라도 더 잘 한다? 진짜야... 한선생도 그거 명심해. 욕하고 화낸다고 실수 안 하는 거 아니야, 욕하면 오히려 긴장해서 실수를 더 해도 하지...
- 네에...
선배의 말은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실수라면 왜 실수했는지만 명확히 짚어준 다음 나무라지 말고 넘어가는 게 좋다.
선배는 점점 흥분하는 듯했지만 점점 진지해지기도 했다.
나도 술잔을 든 채, 마시는 것도 잊고 얘기에 집중했을 정도로.
- 내가 만약에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그건 징계를 해야지. 회사 손실난 거 있으면 법적으로 책임도 묻고. 그런데 세상에 그런 짓을 일부러 하는 놈이 어딨겠냐?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뭐, 돈 수억 다루는 경리부나 영업부도 아니고 말이야...
- 아이고, 그까짓 거 가지고 무슨 징계예요...
- 고의적이라면 말이지... 그리고, 내가 할 일을 못했냐 이거야... 못했으면 자르든가...
- 자르다니요? 말도 안 돼...
- 아니, 능력이 부족하면 자르는 게 맞아. 그 사람을 위해서도. 능력 문제가 아니라면 그 사람한테 맞는 다른 일을 시키든가. 맨날 보잖아. 그런 사람...
- 에이, 그 얘기는 하지 마시구요.
- 하긴, 뭐... 에이, 씨... 백번 양보해서 능력이 부족하네 뭐네 해도 그건 개인 잘못이 아니야. 누가 뽑으래? 회사가 뽑아서 일 시켜 놓고서 능력이 있네 없네 이따위 소리 하는 게 웃긴 거 아니야?
선배는 과장을 지칭해서 말하는 거였다.
없는 사람 얘기는 하지 말자고 급히 끊기는 했지만,
사실 사무실에서 제일 갑갑하게 구는 사람은 과장이었다.
어쨌든 그날, 선배와 나는 사무실과 직원의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선배는 최소한 말과 행동은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가끔 궁금하다.
그날 선배와 한 대화는 그 이후로도 많이 생각났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상황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수했을 때 욕먹은 사람이 다음에 같은 일을 할 때
또 욕먹을까 긴장해서 또다른 실수를 하게 되는 걸 많이 보았다.
그러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안타깝기도 하고, 사람을 쓰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웃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다루는 거,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낮에는 마치 죽을 때까지 퍼마실 것처럼 말했던 선배도
한참을 떠들더니 기분이 좀 풀렸는지 아니면 회사에 실망하고 포기했는지,
맥주로 입가심하자는 얘기도 없이 그 자리를 마치고 바로 헤어졌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선배 말에 그저 네, 네 하면서 술만 마시다가 들어온 탓에 기분이 좀 처져 있었다.
선배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지만,
선배는 곧 다른 부서로 전출할 가능성이 높은 연차가 되었고,
나 혼자 남아서 그 과장과 같이 몇 년을 거기서 일할 생각을 하면 답답하기만 했다.
집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마침, 전화가 왔다.
- 오빠...
- 응, 혜진아...
- 어디야?
- 응. 방금 들어왔어.
- 저녁 먹었어?
- 그럼, 몇 신데...
- 나 안 보고 싶었어?
- 그럴 리가 있나. 많이 보고 싶었지.
- 근데 전화도 안 하구...
- 아, 미안, 미안... 선배랑 얘기 좀 하느라
- 오빠 요즘 나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냐?
나는 그런 분위기가 진짜 싫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오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이런 발암 멘트 나오면
아무리 웃기는 개그라도 보기가 싫어진다.
하고픈 얘기가 있으면 하면 되지, 맞춰봐... 왜 못 맞추냐...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소홀한 게 있으면 콕 찝어서 이런 거 섭섭했다고 하면
내가 고칠 게 있으면 고치고, 해명할 게 있으면 해명하면 되지.
나는 섭섭한데... 라고 하면 내가 뭐 때문에 섭섭한지 알 수가 있나...
거기다 대고 왜 모르냐고 투정하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는 거다.
그래도 일단은 웃으며 말했다.
- 아, 미안, 미안...
- 치, 이제는 아주 오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그럼, 혜진이, 내 거지.
- 잡은 물고기는 미끼 안 준다고...
-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런 말 싫어하는 거 알잖아.
- 나 좋다는 남자 많아. 알아?
얘가 언제부터인가 말이 짧아지더니, 이제는 슬슬 시험하려 드는 듯해서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번 더 참았다.
- 알았어. 안 그럴게.
- 엄마가 오빠에 대해 물어봐.
- 그래? 잘 말씀드려.
- 뭘 잘 말씀드려?
- 사윗감으로 좋게 보실 수 있게...
- 사윗감? 하하하...
뭔가 이상했다. 혜진이는 이 얘기에 왜 웃는 거지?
이십대 후반의 남녀가 깊게 사귀면 결혼을 전제로 하는 거 아니었나?
나만 그런가?
혜진이는 진짜 우스운 얘기를 들었다는 듯, 한참을 웃었다.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쑥스러움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뭐가 우스워?
- 아니, 아니야. 하하, 아니야.
- 왜? 나, 결혼상대자로 생각 안 해?
- 오빠, 다른 얘기 하자.
- 아니, 혜진인 날 어떻게 생각하냐구...
혜진이는 계속 확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짜증이 났다.
날 좋아한다고 남들 다 알 정도로 혼자 오버하던 애가
막상 부모님 얘기를 꺼내 놓고는 결혼얘기는 슬슬 피하다니...
결혼은 생각 없이 그냥 연애만 하자는 건지, 뭔지...
다른 얘기를 하면서도 대화는 겉돌았다.
내가 하는 얘기는 혜진이가 말을 돌렸고,
혜진이가 하는 얘기는 별로 관심이 가는 주제가 아니었다.
그날 통화에서 결혼 얘기를 다시 하는 건 너무 집요해 보이겠다는 생각에,
나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간단히 씻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와 ‘걱정시키지 않겠다’ 와 ‘결혼상대자’ 가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오빠, 나...
- 응, 혜진아.
- 오빠, 집이지?
- 응? 자고 있었는 걸?
- 나, 오빠 집 다 왔어요. 금방 갈게.
옷을 대충 걸쳐 입고 혜진이를 마중나갔다.
시간을 보니 여섯시 반, 출근 준비하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이시각에 여길 오려면 혜진이는 집에서 몇 시에 나온 걸까?
- 오빠...
골목에서 나가 얼마 안 가서 혜진이를 만나 데리고 들어왔다.
혜진이는 백을 내려놓자마자 내 품에 안겼다.
아니, 내 허리에 팔을 둘러 안았다.
나도 혜진이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올렸다.
- 혜진아, 무슨 일 있어?
혜진이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부딪쳐 왔다.
그런 혜진이를 안고 키스하고 있는데 혜진이가 나를 침대로 밀었다.
그대로 넘어졌다간 다칠 정도로 생각없이 미는 혜진이를 안고 침대로 누웠다.
마구 들이밀고 부벼대는 혜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오빠...
- 그래, 혜진아.
- 나 사랑해 줘요.
- 오빠가 혜진이 많이 사랑해...
- 아니, 지금 안아 달라구요.
섹스를 요구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아들었다.
그런데 왜지? 내가 왜 말을 돌리고 있는 거지?
머리가 혼란스러운데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혜진이가 내 옷을 벗겼다.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금새 벗기고,
팬티를 대충 내리고 반쯤 발기해서 덜렁거리는 자지를 입에 물었다.
내가 다리를 움직여 허벅지에 걸린 팬티를 벗어 차버렸다.
그렇게 자지를 빨리며 혜진이 머리를 쓰다듬다가 혜진이를 돌려 눕히고 가슴을 빨았다.
그리고 옆구리, 골반... 배꼽 쪽으로 입술을 옮기자 혜진이가 나를 잡아끌었다.
보지로 향할까봐 경계하는 거였다.
- 오빠, 지금 해줘...
- ......
- 어서... 응?
흥분이 급격히 올라왔다.
그런데 告? 자지는 빳빳하게 서서 꺼떡거리는데, 머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평소에 섹스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팔다리를 좌악 벌리고 박아달라고 조르는 혜진이를 보면서
흥분이 되는 대신에 애처롭고 안타까운 느낌이 먼저 들었다.
천천히 혜진이의 몸 위에 내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또 천천히 자지를 박아넣었다.
삽입하고 나니 흥분이 밀려왔다.
흥분하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익숙한 여체, 익숙한 느낌...
격하게 피스톤 운동을 했다.
끝까지 빼냈다가 끝까지 박아대다가 이내 빠른 속도로 박아댔다.
혜진이의 몸이 내 거친 좆질에 밀려 조금씩 침대 위로 밀려올라갔다.
내가 혜진이보다 조금 더 큰 키였던 탓에 내 머리가 먼저 침대 헤드에 닿았다.
- 쿵, 쿵, 쿵...
내가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침대 헤드에 부딪치며 쿵쿵 소리를 냈다.
그러자 혜진이가 한 손을 올려 내 머리를 감쌌다.
내 머리는 덜 아팠지만,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감싸고 손등을 침대 헤드에 부딪치고 있는 혜진이의 손은?
혜진이의 얼굴을 보았다.
혜진이는 전혀 흥분한 얼굴이 아니었다.
걱정스런 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혜진이의 얼굴을 외면하고 잠시 혜진이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자지에서 슬슬 피어오르던 감촉도 갑자기 식었다.
움직임도 멈추고 가만히 혜진이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우리는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상체를 일으켜 혜진이의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후배위로 다시 자지를 박았다.
물건도 아까보다는 힘이 빠져 있었지만 거칠게 그저 박기만 했다.
임신해라. 임신해서 결혼하자. 책임질 일을 만들자...
뭐 그런 생각으로 박아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의 애매한 관계과 불확실한 미래를 그런 식으로라도 결정지어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성욕보다 독점욕이라고나 할까?
나는 결혼만 생각하며, 결혼을 위해 임신시키려고, 임신을 위해 사정하려고 박아댔다.
내가 박아댈 때마다 혜진이가 신음했다.
쾌감일까, 고통일까? 아니면 흥분하는 척하는 것일까...?
그러나 혜진이에게 신경쓰지 않고 사정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저 싸기 위해 박아댔다.
모든 신경을 좆 끝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혜진이의 몸에 사정했다.
깊이, 더 깊이... 많이, 더 많이... 임신해라, 제발... 임신해라...
그리고는 바로 자지를 뽑아 드러누웠다.
혜진이는 섹스하고 나서 늘 우리가 누웠던 자세 그대로 내 품에 기대었다.
사정을 하면서도 별로 짜릿하지도 않았고,
사정하고 나서 시원하지도 않았다.
사정하고 나서 느끼던 나른한 느낌도 없었고,
자위하고 나서 느끼는 허무함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나려 했다.
눈을 빨리 깜빡이며 참았다.
참을 수 있었다.
품에 안겨오는 혜진이의 어깨만 꼬옥 껴안았다.
- 하아~ 오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혜진이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출근시간이 걱정되어 일어났다.
- 출근해야지?
- 네....
내가 팔을 빼자 혜진이가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 아~ 위기는 넘겼어...
위기? 넘겨? 무슨 말이지?
섹스는 수단일까, 목적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닐까?
나에겐 수단도 목적도 아니었다.
누군가와 섹스하고 싶어서 사귀거나 접근한 적이 없었으니 목적은 아니었고,
섹스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 한 것도 아니니 수단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쾌락을 얻는 수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
그러나 그날 아침, 혜진이에게 있어서는 섹스가 또 다른 수단이었던 듯하다.
그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참 답답했다.
왜 갈등을 일으킬 말을 해 놓고 그걸 섹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섹스한 다음,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이 네 가지로 늘었다.
하루 종일 그 말들이 머리에서 맴돌아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결혼상대자...
위기는 넘겼어...
그래서?...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결혼상대자... 위기는 넘겼어... 결혼은?... 결혼시키지 않을게요... 위기는?... 위기 만들지 않을게요... 걱정상대자... 넘기는 건?... 걱정은?... 위기상대자... 결혼은 넘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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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소설일 뿐입니다. 픽션이라는 얘기죠.
실제 사건만 경험담일 뿐, 배경이나 시간은 설정된 것입니다.
인물도 당연히 가명입니다.
장소 배경을 연수원으로 설정했는데 실제 연수원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좀 달라도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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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이 가장 바쁘게 돌아갈 때는 언제일까?
아니, 가장 긴장될 때는 언제일까?
연수 수료식이나 간부연수처럼 그룹 고위층이 참석할 때?
아니다.
연수원 직원들은 스태프일 뿐이라서 그런 세리머니에서도
뒤에서 진행이 잘 되도록 하는 역할만 하지, 앞에 나서서 얼굴 보일 일이 없다.
연수원 직원들이 긴장할 때는, 프로그램이나 강사가 펑크났을 때다.
펑크는 일년에 한두번, 아니, 십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사고라는데
내가 연수원에서 일하던 삼년 동안에도 한번 겪었다.
사실, 직원들이 긴장한다고 펑크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 닦달한다고 해서 펑크가 빨리 메워지는 것도 아니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프로그램 순서를 바꾸거나 시간을 조정하면 되는데,
원장은 그걸 싫어했다.
펑크가 났다고 보고하자 직원들을 닦달하고
사람에게 저런 욕을 할 수 있을까 싶게 욕을 했다.
보고한 선배에게 인격적인 모독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프로그램 펑크는 회사로 치면 부도난 것과도 같다고 했다.
부도를 내서는 안 되는데 부도가 났으니까 욕도 하고 화도 내는 거라고.
비유를 해도 참 한심하게 했다.
그게 부도라고? 프로그램 하나 펑크 났다고 연수원이 망하나?
굳이 회사랑 비교하자면 상품 하나 실패한 거랑 비교해야지.
상품 내놓으면 대충 팔릴 때도 있고, 대박칠 때도 있고, 완전 쪽박날 때도 있는 거지,
쪽박 한번 났다고 회사가 부도나나?
그리고, 사원 욕한다고 부도난 어음 막을 수 있나?
비유를 비유답게 해야지...
어쨌든, 그렇게 펑크가 난 날이었다.
특강을 맡았던 모 교수가 자기는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오다가 접촉사고가 났다고 연락을 해 왔다.
직원들이 어떻게 손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원장은 사고가 나서 강사가 늦어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처리는 보험에 맡기고 그냥 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긴, 그 말도 맞았다.
다른 교통수단이 있고, 남아서 사고를 처리할 기사나 비서가 있다면...
어쨌든 과장과 선배, 나 모두 그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했다.
제일 욕을 많이 먹은 건 선배였는데 과장이 되려 더 열을 받았고,
과장은 원장이 나가자 씨발씨발거리며 때려치우네 마네 열을 올렸다.
사실, 과장은 화낼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키운 원인 제공자였다.
선배는 그런 과장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테라스에 나가서 줄담배만 피워 댔다.
말단인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커피를 진하게 한잔 타들고 나가서 담뱃재를 터는 선배에게 내밀었다.
- 선배님, 커피 한잔 하시죠...?
- 어, 고마워...
- ......
- 후우.... 처음 겪지? 프로그램 펑크...
- 예? 예...
- 뭐, 한 십년에 한번 있는 일이래...
- 예에... 뭐, 드문 일일 수밖에요...
- 후... 뭐 어쩌겠냐, 말단들이... 저녁에 뭐, 약속 있냐?
- 아니요, 오늘은 없는데요.
- 여자친구는? 오늘 안 만나?
- 걔도 요즘 바빠서요.
- 그래? 그럼 이따 술 한잔 할까? 술이라도 안 먹으면 밋!~쳐버리겠다. 아주...
- 그럴까요? 오늘 칼퇴근하죠. 그럼...
- 그래, 오늘 내가 죽나 술이 모자라나 함 달려 보자. 씨바...
그렇게 선배는 담배꽁초를 튕겨 날려 버렸고,
들어와서 또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며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여섯 시... 땡~! 정각이 되자마자 칼퇴근하려고 했는데
과장이 먼저 일어섰다.
- 나 먼저 가우. 두 분, 정리하고 가시우...
- 예, 들어가십시오.
- 내일 뵙겠습니다....
- 내일은 웃으면서 보자구, 응?
- 아, 예...
- ......
과장이 나간 후, 우리도 바로 나왔다.
선배와 나는 아랫동네라고 부르던 동네의 상가로 나와 삼겹살집에 자리를 잡았다.
배도 어느 정도 채우고 소주도 적당히 들어가자,
직장인이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시작되었다.
회사 뭣 같다는 얘기...
- 아, 그렇잖아. 내가 말하면 좀 들어야지.. 안 그래?
- 그렇죠.
- 아니, 내가 잘 알아, 지가 잘 알아? 내가 연수원 사년찬데, 과장 지금 몇 개월 됐어?
과장은 원장에게 욕먹기 싫어서 펑크 보고를 선배에게 미루었고,
선배는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는데도 과장은 선배에게 시켰다.
선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곤란할 거라는 생각에 원장실을 노크했고....
결국 욕을 두 배로 먹었다.
펑크로 욕먹고,
네가 뭔데 원장에게 보고하느냐, 과장은 어디 갔느냐... 이걸로 욕을 또 먹은 거였다.
- 아, 씨발, 아니, 모르면 짬밥 먹은 사람 말을 좀 들어야지, 이건 뭐 고문관이야 뭐야...
- 크크크, 고문관... 딱이네요.
- 좋은 건 남의 일도 지가 하고, 귀찮고 싫은 건 지 일도 아랫사람 시키고... 그게 무슨 치프야...? 안 그래?
- 에휴... 뭐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제가...
- 원장도 그래. 거기서 욕하고 앉아 있으면 뭐가 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 맞아요, 그건 진짜... 아, 말로만...
- 나 갈궈서 해결이 되면 하루종일이라도 갈구라 이거야... 근데...
- 자, 선배님. 한잔 하시고... 쨍~
선배는 열을 올리고, 나는 그런 선배가 과열되지 않도록 맞장구쳐 주면서 술과 안주를 권하고...
그러면서 술병은 늘어 갔다.
- 내가 프로정신이 없어서, 직업의식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
- 사람 욕해서 해결되는 건 없어... 응?
선배는 술이 들어가자 말이 많아지고 길어졌다.
논리도 정연해서, 아까 펑크났을 때 대신 들어가서 강의를 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일이 터졌을 때, 응? 사람 욕한다고 해결이 돼? 아니라구...
- 맞습니다. 맞죠...
- 내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걸 내가 뭐, 잘못한 거야? 걔가 오다가 사고난 걸 나보고 어쩌라고?
- 그죠...
- 내가 실수했어도 그래. 욕한다고 앞으로 실수 안 하나? 실수는 한번 격려하고 넘어가 주는 거야. 그러면 미안해서라도 더 잘 한다? 진짜야... 한선생도 그거 명심해. 욕하고 화낸다고 실수 안 하는 거 아니야, 욕하면 오히려 긴장해서 실수를 더 해도 하지...
- 네에...
선배의 말은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실수라면 왜 실수했는지만 명확히 짚어준 다음 나무라지 말고 넘어가는 게 좋다.
선배는 점점 흥분하는 듯했지만 점점 진지해지기도 했다.
나도 술잔을 든 채, 마시는 것도 잊고 얘기에 집중했을 정도로.
- 내가 만약에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그건 징계를 해야지. 회사 손실난 거 있으면 법적으로 책임도 묻고. 그런데 세상에 그런 짓을 일부러 하는 놈이 어딨겠냐?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뭐, 돈 수억 다루는 경리부나 영업부도 아니고 말이야...
- 아이고, 그까짓 거 가지고 무슨 징계예요...
- 고의적이라면 말이지... 그리고, 내가 할 일을 못했냐 이거야... 못했으면 자르든가...
- 자르다니요? 말도 안 돼...
- 아니, 능력이 부족하면 자르는 게 맞아. 그 사람을 위해서도. 능력 문제가 아니라면 그 사람한테 맞는 다른 일을 시키든가. 맨날 보잖아. 그런 사람...
- 에이, 그 얘기는 하지 마시구요.
- 하긴, 뭐... 에이, 씨... 백번 양보해서 능력이 부족하네 뭐네 해도 그건 개인 잘못이 아니야. 누가 뽑으래? 회사가 뽑아서 일 시켜 놓고서 능력이 있네 없네 이따위 소리 하는 게 웃긴 거 아니야?
선배는 과장을 지칭해서 말하는 거였다.
없는 사람 얘기는 하지 말자고 급히 끊기는 했지만,
사실 사무실에서 제일 갑갑하게 구는 사람은 과장이었다.
어쨌든 그날, 선배와 나는 사무실과 직원의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선배는 최소한 말과 행동은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가끔 궁금하다.
그날 선배와 한 대화는 그 이후로도 많이 생각났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상황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수했을 때 욕먹은 사람이 다음에 같은 일을 할 때
또 욕먹을까 긴장해서 또다른 실수를 하게 되는 걸 많이 보았다.
그러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안타깝기도 하고, 사람을 쓰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웃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다루는 거,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낮에는 마치 죽을 때까지 퍼마실 것처럼 말했던 선배도
한참을 떠들더니 기분이 좀 풀렸는지 아니면 회사에 실망하고 포기했는지,
맥주로 입가심하자는 얘기도 없이 그 자리를 마치고 바로 헤어졌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선배 말에 그저 네, 네 하면서 술만 마시다가 들어온 탓에 기분이 좀 처져 있었다.
선배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지만,
선배는 곧 다른 부서로 전출할 가능성이 높은 연차가 되었고,
나 혼자 남아서 그 과장과 같이 몇 년을 거기서 일할 생각을 하면 답답하기만 했다.
집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마침, 전화가 왔다.
- 오빠...
- 응, 혜진아...
- 어디야?
- 응. 방금 들어왔어.
- 저녁 먹었어?
- 그럼, 몇 신데...
- 나 안 보고 싶었어?
- 그럴 리가 있나. 많이 보고 싶었지.
- 근데 전화도 안 하구...
- 아, 미안, 미안... 선배랑 얘기 좀 하느라
- 오빠 요즘 나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냐?
나는 그런 분위기가 진짜 싫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오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이런 발암 멘트 나오면
아무리 웃기는 개그라도 보기가 싫어진다.
하고픈 얘기가 있으면 하면 되지, 맞춰봐... 왜 못 맞추냐...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소홀한 게 있으면 콕 찝어서 이런 거 섭섭했다고 하면
내가 고칠 게 있으면 고치고, 해명할 게 있으면 해명하면 되지.
나는 섭섭한데... 라고 하면 내가 뭐 때문에 섭섭한지 알 수가 있나...
거기다 대고 왜 모르냐고 투정하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는 거다.
그래도 일단은 웃으며 말했다.
- 아, 미안, 미안...
- 치, 이제는 아주 오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그럼, 혜진이, 내 거지.
- 잡은 물고기는 미끼 안 준다고...
-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런 말 싫어하는 거 알잖아.
- 나 좋다는 남자 많아. 알아?
얘가 언제부터인가 말이 짧아지더니, 이제는 슬슬 시험하려 드는 듯해서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번 더 참았다.
- 알았어. 안 그럴게.
- 엄마가 오빠에 대해 물어봐.
- 그래? 잘 말씀드려.
- 뭘 잘 말씀드려?
- 사윗감으로 좋게 보실 수 있게...
- 사윗감? 하하하...
뭔가 이상했다. 혜진이는 이 얘기에 왜 웃는 거지?
이십대 후반의 남녀가 깊게 사귀면 결혼을 전제로 하는 거 아니었나?
나만 그런가?
혜진이는 진짜 우스운 얘기를 들었다는 듯, 한참을 웃었다.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쑥스러움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뭐가 우스워?
- 아니, 아니야. 하하, 아니야.
- 왜? 나, 결혼상대자로 생각 안 해?
- 오빠, 다른 얘기 하자.
- 아니, 혜진인 날 어떻게 생각하냐구...
혜진이는 계속 확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짜증이 났다.
날 좋아한다고 남들 다 알 정도로 혼자 오버하던 애가
막상 부모님 얘기를 꺼내 놓고는 결혼얘기는 슬슬 피하다니...
결혼은 생각 없이 그냥 연애만 하자는 건지, 뭔지...
다른 얘기를 하면서도 대화는 겉돌았다.
내가 하는 얘기는 혜진이가 말을 돌렸고,
혜진이가 하는 얘기는 별로 관심이 가는 주제가 아니었다.
그날 통화에서 결혼 얘기를 다시 하는 건 너무 집요해 보이겠다는 생각에,
나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간단히 씻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와 ‘걱정시키지 않겠다’ 와 ‘결혼상대자’ 가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오빠, 나...
- 응, 혜진아.
- 오빠, 집이지?
- 응? 자고 있었는 걸?
- 나, 오빠 집 다 왔어요. 금방 갈게.
옷을 대충 걸쳐 입고 혜진이를 마중나갔다.
시간을 보니 여섯시 반, 출근 준비하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이시각에 여길 오려면 혜진이는 집에서 몇 시에 나온 걸까?
- 오빠...
골목에서 나가 얼마 안 가서 혜진이를 만나 데리고 들어왔다.
혜진이는 백을 내려놓자마자 내 품에 안겼다.
아니, 내 허리에 팔을 둘러 안았다.
나도 혜진이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올렸다.
- 혜진아, 무슨 일 있어?
혜진이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부딪쳐 왔다.
그런 혜진이를 안고 키스하고 있는데 혜진이가 나를 침대로 밀었다.
그대로 넘어졌다간 다칠 정도로 생각없이 미는 혜진이를 안고 침대로 누웠다.
마구 들이밀고 부벼대는 혜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오빠...
- 그래, 혜진아.
- 나 사랑해 줘요.
- 오빠가 혜진이 많이 사랑해...
- 아니, 지금 안아 달라구요.
섹스를 요구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아들었다.
그런데 왜지? 내가 왜 말을 돌리고 있는 거지?
머리가 혼란스러운데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혜진이가 내 옷을 벗겼다.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금새 벗기고,
팬티를 대충 내리고 반쯤 발기해서 덜렁거리는 자지를 입에 물었다.
내가 다리를 움직여 허벅지에 걸린 팬티를 벗어 차버렸다.
그렇게 자지를 빨리며 혜진이 머리를 쓰다듬다가 혜진이를 돌려 눕히고 가슴을 빨았다.
그리고 옆구리, 골반... 배꼽 쪽으로 입술을 옮기자 혜진이가 나를 잡아끌었다.
보지로 향할까봐 경계하는 거였다.
- 오빠, 지금 해줘...
- ......
- 어서... 응?
흥분이 급격히 올라왔다.
그런데 告? 자지는 빳빳하게 서서 꺼떡거리는데, 머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평소에 섹스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팔다리를 좌악 벌리고 박아달라고 조르는 혜진이를 보면서
흥분이 되는 대신에 애처롭고 안타까운 느낌이 먼저 들었다.
천천히 혜진이의 몸 위에 내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또 천천히 자지를 박아넣었다.
삽입하고 나니 흥분이 밀려왔다.
흥분하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익숙한 여체, 익숙한 느낌...
격하게 피스톤 운동을 했다.
끝까지 빼냈다가 끝까지 박아대다가 이내 빠른 속도로 박아댔다.
혜진이의 몸이 내 거친 좆질에 밀려 조금씩 침대 위로 밀려올라갔다.
내가 혜진이보다 조금 더 큰 키였던 탓에 내 머리가 먼저 침대 헤드에 닿았다.
- 쿵, 쿵, 쿵...
내가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침대 헤드에 부딪치며 쿵쿵 소리를 냈다.
그러자 혜진이가 한 손을 올려 내 머리를 감쌌다.
내 머리는 덜 아팠지만,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감싸고 손등을 침대 헤드에 부딪치고 있는 혜진이의 손은?
혜진이의 얼굴을 보았다.
혜진이는 전혀 흥분한 얼굴이 아니었다.
걱정스런 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혜진이의 얼굴을 외면하고 잠시 혜진이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자지에서 슬슬 피어오르던 감촉도 갑자기 식었다.
움직임도 멈추고 가만히 혜진이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우리는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상체를 일으켜 혜진이의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후배위로 다시 자지를 박았다.
물건도 아까보다는 힘이 빠져 있었지만 거칠게 그저 박기만 했다.
임신해라. 임신해서 결혼하자. 책임질 일을 만들자...
뭐 그런 생각으로 박아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의 애매한 관계과 불확실한 미래를 그런 식으로라도 결정지어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성욕보다 독점욕이라고나 할까?
나는 결혼만 생각하며, 결혼을 위해 임신시키려고, 임신을 위해 사정하려고 박아댔다.
내가 박아댈 때마다 혜진이가 신음했다.
쾌감일까, 고통일까? 아니면 흥분하는 척하는 것일까...?
그러나 혜진이에게 신경쓰지 않고 사정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저 싸기 위해 박아댔다.
모든 신경을 좆 끝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혜진이의 몸에 사정했다.
깊이, 더 깊이... 많이, 더 많이... 임신해라, 제발... 임신해라...
그리고는 바로 자지를 뽑아 드러누웠다.
혜진이는 섹스하고 나서 늘 우리가 누웠던 자세 그대로 내 품에 기대었다.
사정을 하면서도 별로 짜릿하지도 않았고,
사정하고 나서 시원하지도 않았다.
사정하고 나서 느끼던 나른한 느낌도 없었고,
자위하고 나서 느끼는 허무함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나려 했다.
눈을 빨리 깜빡이며 참았다.
참을 수 있었다.
품에 안겨오는 혜진이의 어깨만 꼬옥 껴안았다.
- 하아~ 오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혜진이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출근시간이 걱정되어 일어났다.
- 출근해야지?
- 네....
내가 팔을 빼자 혜진이가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 아~ 위기는 넘겼어...
위기? 넘겨? 무슨 말이지?
섹스는 수단일까, 목적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닐까?
나에겐 수단도 목적도 아니었다.
누군가와 섹스하고 싶어서 사귀거나 접근한 적이 없었으니 목적은 아니었고,
섹스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 한 것도 아니니 수단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쾌락을 얻는 수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
그러나 그날 아침, 혜진이에게 있어서는 섹스가 또 다른 수단이었던 듯하다.
그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참 답답했다.
왜 갈등을 일으킬 말을 해 놓고 그걸 섹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섹스한 다음,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이 네 가지로 늘었다.
하루 종일 그 말들이 머리에서 맴돌아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결혼상대자...
위기는 넘겼어...
그래서?...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결혼상대자... 위기는 넘겼어... 결혼은?... 결혼시키지 않을게요... 위기는?... 위기 만들지 않을게요... 걱정상대자... 넘기는 건?... 걱정은?... 위기상대자... 결혼은 넘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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