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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40 1,261회 0건
휴일이 다 지나가고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난 아직 밥도 안먹은 시간인데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 아침부터 누군가? 우리 집에 올 손님이 없는데... 인터폰을 들자 화면에 비춰진 사람은...

“엥? 은진씨??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우리 집에...^^;;”
“그야 당연히 영훈씨랑 같이 출근하려고 왔죠.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잘못된 건 아니구요.. 그게.......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쳇. 갑자기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밥도 못 먹었는데 에휴 내 팔자야... ’

그래도 어쩔 수 있겠는가? 사수가 나오라면 즉각 튀어나가야지.. 나는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단 순식간에 다 씻고 스킨 바르고 옷까지 챙겨입고 집을 나서는데 딱 5분 걸렸다.

“은진씨, 많이 기다렸죠? 자, 이제 갑시다!”

아침은 일단 출근해 놓고 나서 눈치 봐서 몰래 나가서 앞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먹을 요량이었다. 조수석에 타기는 했지만 딱히 할 말도 떠오르지 않고 참 뻘쭘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라도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게 이렇게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나는 말재주가 별로 없고 말로 누군가를 재밌게 해준 적이 없어서 첫 마디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저..은진씨!”
“저..영훈씨!”

엥? 겨우 말을 꺼냈는데 둘이 같은 말을...뭔가 할 말이 있나보다. 나는 속으로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며 은진씨에게 바톤을 넘겼다.

“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말씀하세요..”
“아니요. 영훈씨 먼저 말해 보세요..”
“아니. 저는 딱히... 뭔가 하실 말씀 있으셨던 거 아니었어요?? 아침부터 저를 데리러 오신 것도 수상하고...흐음...”

나는 탐정 흉내를 내며 은진씨를 쳐다보았다. 은진씨는 나를 보며 싱긋 웃더니 뒷좌석에 있던 가방을 가져와 열더니 내가 사무실에 놓고 왔던 충전기를 내민다.

“어? 이건 어디서 나셨어요?”
“충전기를 놓고 다닐 정도로 정신 없이 바쁘셨어요? 어제 밤에 은영씨가 지나가던 길에 들렀다면서 절 불러내더니 이걸 전해주더라구요. 영훈씨 자리에 있는 걸 보니 영훈씨 충전기 같은데 제가 집이 가까우니 저보고 가져다 주라면서 전해주더라구요.”
“아...예.. 그러셨구나. 다른 얘기는 없었구요?”

나는 내심 혹시 들킨 게 소문이 났나 싶어서 조심스레 물었다.

“아뇨. 별다른 얘기는 없었어요.”

나는 내심 안도하면서도 이렇게 충전기를 가져다 줄 정도인데 내가 사무실에 들렀다는 것을 설마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하니 벌써 많은 직원들이 출근을 해서 분주하게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인사를 꾸벅 하고선 내 자리로 가면서 슬쩍 은영씨 자리를 보니 출근은 한 것 같은데 어디 갔나보다. 자리에 없었다. 정식 업무 시간이 되고 다들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열심히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아직 특별한 큰 일이 주어지지 않은 나는 자리에 앉아서 물티슈를 꺼내서 책상을 닦고 내가 보다 말았던 책을 다시 꺼내어 놓고 컴퓨터를 켰다. 일단 출근을 했으니 메일부터 확인하고 아침에 확인하지 못한 스포츠 기사를 보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면서 은영씨가 들어온다. 역시나 오늘도 아이보리색 원피스에다 검은색 구두다. 사실 늘 은영씨 각선미를 볼 때마다 다른 생각보다도 먼저 드는 것은 잘 빠졌다. 예쁘다 였다. 어찌 해볼 생각 같은 것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 예쁜 얼굴이라기 보다는 나이보다는 약간 어려보이는 얼굴 스타일에 귀염성 있는 웃는 인상에 은근히 느껴지는 섹시함이 은영씨의 모습이다. 그러니 은영씨가 왔다갔다 할 때마다 감상을 해주는 것이 은영씨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먼나라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더니 내 옆으로 와서는 인사를 한다.

“영훈씨, 휴일 잘 보냈어요?”
“아...네...”

순간 당황한 나는 단답형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인사를 하면서 은영씨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지난 일에 대해서 은영씨가 눈치를 채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 채 하고 있는 것인지 표정에서 어느 정도 짐작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저 머릿 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을 하기가 어려웠다.

“영훈씨, 저랑 모닝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난 속으로 윽!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왠 모닝커피?? 옆자리에 있던 은진씨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누군 좋겠네. 모닝 커피 하자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서 놀리는 것 같았지만 지금 내 귀에는 그 소리보다는 은영씨가 지난 일에 대해 얘기를 꺼낸다면 뭐라 말해야 할지, 어떻게 변명을 하고 빠져나가야 할 지에 대한 궁리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먼저 앞서서 사무실 내 작은 휴게실로 향하는 은영씨를 보면서 나는 마치 죄를 짓고 끌려가는 죄인마냥 조심스레 뒤따라갔다. 그러면서도 눈은 여전히 은영씨의 골반과 그 밑으로 쭉 뻗은 각선미를 훔쳐보고 있었다. 나란 인간은... 위기 상황에서도... 하긴 세상의 모든 남자라면 대부분이 그럴 것 같다. 섹시한 부장이 혼을 낼 때도 혼나고 있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반성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눈길은 블라우스의 풀어진 단추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하는 부장의 가슴이나 치마 아래로 곧게 뻗은 각선미를 슬금슬금 훔쳐보는 건 남자들의 공통적인 심리이자 본능일테니까...

“아, 그러지 말고 잠깐 같이 나가요. 내가 요 앞에 편의점에서 맛있는 커피로 사줄 테니까”

나는 뭐 대꾸할 필요도 이유도 없이 그저 시키는대로 묵묵히 따라갔다. 내가 일하는 곳은 정문을 나서면 근처에 있는 거라고는 편의점 하나와 작은 커피전문점 하나 그리고 골목길에 인쇄업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별볼일 없는 그런 곳이었다.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은영씨가 들어가면서 나보고 잠깐 기다리란다. 그리고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커피색 스타킹 하나와 엔제리자나 커피 두 병을 사들고 온다. 그리고는 청사 뒤에 있는 자그마한 등나무가 있는 야외 휴게실로 날 데리고 간다.

야외 휴게실은 동그란 돌벤치 네개와 가운데 대리석으로 된 테이블이 한세트로 되어 있는데 이게 두 세트가 세팅되어 있고 안쪽 테이블은 청사의 벽과 가까이 있어서 그곳으로는 출입이 어렵다. 그리고 등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때에는 야외 휴게실 안을 보려면 청사 뒤로 와서 그냥 보면 등나무로 가려져 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로 점심 후에 여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먼저 선점하는 팀이 임자인 어찌 보면 수다 떨기에도 딱 좋은 명당자리다. 은영씨는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나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내게 커피를 내밀었다. 난 커피를 받아들고 말없이 커피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일은 할 만 해요?”
“네.. 그럭저럭이요...”

이 말을 끝으로 또 한 동안 침묵이다. 둘 다 커피를 손에 쥐고 말없이 있다가 또 은영씨가 말을 꺼낸다.

“충전기는 받으셨죠?”
“아...네...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들렀는데 영훈씨 자리에 충전기가 올려져 있더라구요. 집에도 충전기가 있겠지만 그래도 충전기를 잃어버렸다고 걱정하실 것 같아서 제가 사무실 들른 김에 은진씨에게 갖다 주라고 전해준 거에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새 걸 안사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혹시 금요일에 사무실 오셨다 가셨어요?”
“네? 글쎄요. 휴일 내내 잠만 자느라 기억이 잘.... 그런데 왜요?”

나는 당황하는 얼굴 표정을 최대한 숨기고 은영씨의 눈치를 살폈다.

“아.. 그러셨구나. 아니면 됐어요. 별 건 아니구요. 휴일에 보면 가끔 사무실에 도둑이 들기도 하거든요. 경비도 있으니 별 문제야 없겠지만 필기구나 간혹 물건이 하나씩 없어질 때가 있어서요.. 겨우 필기구 때문에 cctv 돌려보고 신고하고 그러기도 좀 그렇잖아요?”
“네.. 그렇긴 하죠... cctv.....”

난 속으로 아차했다. 은영씨라면 충분히 cctv를 돌려봤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우리 사무실의 많은 살림을 책임지고 권한을 갖고 있기에 그 정도도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혹시 돌려보다가 나를 발견했는가 해서 난 심장이 떨려왔다.

은영씨는 나를 보며 싱긋 웃더니 이내 아까 같이 사온 커피색 스타킹 포장을 뜯더니 한 번 쭉 펼쳐보고 나더니 나보고 스타킹 갈아 신을 동안 누가 오는지 망을 좀 봐달란다... 으잉? 다른 사람이 와서 보면 안되고 바로 옆에 같이 있는 나는 뭐 고목나무로 보이나?? 나는 그러겠다고 하고선 등나무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깐 쳐다보지 마세요.. 저 스타킹 좀 신을께요...”

그러더니 나를 등진 채로 돌아앉아서 힐을 벗고 한쪽씩 스타킹을 신더니 천천히 양쪽을 꼼꼼하게 확인해가면서 올려신는다. 그리고 허벅지까지 올린 후에 다시 힐을 신고 자신의 원피스를 살짝 올리고 꼼꼼하게 마무리를 한다. 나는 망을 봐주는 척 하면서 수시로 흘깃 거리면서 은영씨가 스타킹 신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아.. 밴드 스타킹이네. 팬티스타킹이었으면 팬티까지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됐어요. 망 보느라 수고했어요.”

또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그러더니 내 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으면서 혹시 이상하지 않냐? 괜찮냐? 보기에 어떠냐? 하고 묻는다. 난 예쁘다고 대답을 해줬다. 진짜 이쁘니깐. 그런데 자기는 팬티 스타킹만 신는데 편의점에 스타킹이 다 떨어져서 오늘은 이걸 어쩔 수 없이 신게 됐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더니 나보고 이제 그만 가자면서 내 오른쪽으로 바짝 다가와 붙더니 내 팔짱을 낀다.

‘아! 이 여자 뭐야?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머릿 속을 해부해보고 싶었지만 팔짱을 낄 때 느껴지는 가슴의 뭉클함이 나를 녹여버렸다. 은근히 비비는 듯도 하고 그 틈에 나는 은근슬쩍 은영씨 옆구리를 스치듯 부딪혀 봤지만 그건 아무 느낌도 없는 듯 행동했다. 어쨌든 기분이 좋아서 잠시 고민은 잊어버렸다. 다시 청사 옆문으로 들어가면서 꼈던 팔짱을 풀고 한 마디 던진다.

“영훈씨, 나중에 우리 시간 내서 맥주 한 잔 해요.”

술이라... 뭐 좋다. 그런데 지금은 행복감을 느낄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모를 불안감, 그리고 알 수 없지만 묘한 스릴과 함께 뭔가 재밌는 일이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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