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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41 1,558회 0건
내팽겨쳐져있는 각종 티셔츠들과 바지. 정돈이 안된 책상. 그리고 몸을 뒤집은 채 반은 꼬아서 자고 있는 준희. 이 광경을 본 당신이 준희의 친구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규현이라면...


"빡"

"아악! X발!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어제 너 노숙하던거 데려다준 은인이다!"

"...차키 돌려받으러 왔구만. 어떻게 주말이라곤 해도 12시가 될 때 까지 퍼자냐?"

"...너냐? 머리아파 뒤지겠네... 해장술 하러가자."

"해장술은 무슨 해장술이야 미친놈아! 순댓국 사왔으니까 규현이랑 같이 먹어!"

"아 진짜 엄마! 술 푸는데는 해장술이 최고라고요!"

"뭐 임마?"


엉망이 된 방 안으로 준희의 엄마가 발로 옷가지들을 차며 들어가 준희의 머릿끄덩이를 잡아당겼다.


"아 엄마!! 아퍼!! 술 먹고 방금 깬 아들한테 이래도 돼?!"

"돼 이 내새끼야. 너 며칠째 술먹고 밤늦게 들어오고 하더니 이젠 처음 보는 고등학교 친구를 불러서 먹은 다음

대리까지 받아서 와? 그런 애가 해장술? 미쳤어 애가!"

"아 진짜!!! 술 먹을만한 일이 있으니까 술먹지! 내가 괜히 술먹어?"

"뭐? 술을 먹을만한 일? 니가 뭔 군대라도 가? 군대 기다려준 여친도 있는 애가 뭐가 슬퍼서 술을 마셔?"

"어머니 잠깐만요..."

"뭐? 잠깐? 왜?"

"그래! 시발! 그런 여친이랑 헤어졌어! 내가 잘못해갔고!!!"


방 안이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엄마가 그제서야 어깨와 얼굴의 힘을 살짝 누그러뜨리며 준희를 바라봤다. 준희가 고개를 떨군 모습을 보자 애처로웠는지 엄마가 어깨를 두드리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미안하다. 그래도 사내놈이 그러면 안되지! 슬퍼도 좀 웃어라! 술은 그만 먹고!"

"...알았어요..."

"알았으면 밥이나 먹자. 순댓국 저기 너희 어머니가 해놓으셨다."

"그래..."


그제야 준희가 터덜터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 상 위에 올려져 있는 순댓국 앞에 앉는다. 곧이어 앉은 규현이 희준의 새빨간 순댓국에 순간 경악한다.


"...너 원래 순댓국 그렇게 먹냐?"

"...엉..."


새빨간 순댓국을 준희는 맛이 있는지 없는지 개의치 않다는 듯 우걱우걱 먹어댔다.


"아 그래. 순간 내가 저 땐 솔직히 개빡이었어. 근데 그럴 수 있잖아. 사람이 맨날 바른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투정 부릴 수 있는 거잖아? 뭐 어때? 너넨 첫사랑이랑 이별 안해봤어? 25살 먹고 이별 못해봤냐고. 그럴 수 있어. 찌질한 거 아는데 욕하진 마. 나도 아니까.... 글고 순댓국은 원래 이렇게 먹어."


준희가 순댓국을 우걱우걱 먹더니 결국 대접을 5분만에 비웠다. 규현이 어이가 없었는지 허 웃는다.


"...넌 무슨 순댓국을 비타민처럼 드링킹하냐? 천천히 먹지..."

"참견하지마. 차키 받으러 왔으면 받고 가지 순댓국 먹고 가는 건 뭔데?"

"나 어제 너 대리시킬라고 내 차에 2만원 썼다. 넌 순댓국 2만원 주고 사먹냐?"

"...개새끼..."

"빡치는건 알겠는데 나한테 풀지 마라. 난 너한테 잘못한거 없어."

"알았다고. 먹었으면 가라."

"어쩔건데?"

"뭘 어쩔거야? 끝난건데."


준희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와 밖으로 나갔다. 규현이 준희를 보고선 한숨을 내쉬며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어머니, 잘먹었습니다."

"그래. 잘먹었..."


어머니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규현은 문을 박차고 준희를 따라갔다.


----------------------------------------------------------------------


"흐극... 흐... 흐아아앙..."


나름 애써 정리한 듯 한 핑크빛 방 안, 20대 초중반으로 되어 보이는 여자가 책상에 앉아 울고 있다. 방 안엔 "총맞은 것처럼" 노래가 울려퍼지며, 쓰레기통엔 계속 울어서인지 흰 티슈로 가득 차있다.


"안녕하세요. 전 고은주라고 해요.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며칠 전에 7년 정도(?) 된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헤어진 이유요? ...사실 스물다섯 먹고 이런 말 하긴 그런데... 남자친구랑 성관계 하는게 무서워서 헤어졌어요..; 요즘 여자들은 고등학교 때도 하는 애들 많다고 하는데 전 솔직히... 좀 무섭더라구요... 남자친구도 말로는 첫경험이라는데 혹시 또 모르고... 암튼 그 땐 절 덮쳤는데... 솔직히 무섭고 그래서 확 밀쳐냈어요. 평소랑 다르게 막 흥분한 것도 같아서... 그런데 그 뒤로 많이 서먹해져서... 암튼 결국엔 헤어지자는 말도 제가 먼저 꺼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살짝 후회도 되는데... 모르겠어요. 그냥 슬퍼요..."


노래가 끝나갈 즈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언니, 미안한데 소리가 다 들려. 좀 조용히 해줘."

"흐.흐극... 은지야..."


은주가 문을 열며 동생인 은지한테 껴안겼다. 은지가 은주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그래... 알아... 맘껏 울어...


은주가 다리 힘이 풀린 듯 쓰러지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은지가 다 안다는 듯 엄마처럼 살짝 더 힘을 주며 안았다. 집 안 가득 은주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고, 시곗소리가 똑딱똑딱 조용히 속삭였다. 몇 분 정도 지나서 은주의 울음이 멈췄고, 은지가 은주에게서 몸을 떼며 은주를 바라봤다.


"어쩌다 헤어진거야? 3일 전엔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껜 외박하더니 어젠 울기만 하고. 오늘은 말 좀 해줘!"

"...솔직히 말해도 나 이상하다 생각 안할 거야?"

"당연하지. 내가 언니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말해봐."

"...진짜지!"

"진짜로!"

"...사실..."


은주가 은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다. 듣는 내내 은지의 표정은 진지했고, 은주는 말하면서 감정이 덜 풀렸는지 살짝 떨면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은지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니까 언니 남친이 덮치려다가 안되서 서먹해진게 끝까지 갔다 이거네?"

"아니 덮치려던 건 아니고... 내가 무서워서 하다가 끊은 거..."

"언니가 강제로 하려던 걸 밀쳐서 끝냈다며? 그럼 강제로 하려던 거 잖아?"

"...그, 그래도 만난 지 7년 정도 됐는데 첫경험은 같이..."

"만난지 7년이든 7일이든 70년이든 강간은 범죄라고! 이거 데이트 강간이야!"

"강간은 아냐! 나도 첨엔 같이 하자고 했고..."

"그래서 결국 했어?"

"아니. 하진 않았는데 그 뒤로 좀 서먹해져서..."

"후... 그럼 지금 언니는 어떤데? 다시 할 마음이 있어?"

"그게... 다시 하려자니 그냥 무섭고... 그렇다고 헤어지기엔 좀 그렇고..."

"일단 좀 진정하고, 마음부터 정리해 봐. 그다음에 내가 뭘 원하는지, 남자친구는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서

만날 거면 만나고, 선 그을 거면 선을 긋던지 해."

"알았어.."


은주가 진정한 듯 일어나서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은지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다시 누워 이불을 덮는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은주 너 아메리카노 안 먹잖아?"

"왠일이야? 너 아메리카노 안먹잖아."

"그러게? 무슨 일 있어?"

"그냥 먹고 싶어서."

"그래? 음... 전 카페라떼요."

"저도 카페라떼요."

"전 녹차라떼"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하고 카페라떼 2개, 녹차라떼 맞으십니까? 18000원입니다."

"여습니다."

"네. 여기..."

"여기요..."

"여기..."


네 여자가 카페 주문대에서 주문을 한 뒤 창가 쪽 자리로 가 앉았다. 한 여자는 울었는 지 눈이 살짝 부어 있고, 그 옆의 세 여자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살짝 눈이 부은 여자의 눈치를 보고 있다. 눈이 부은 여자가 창밖을 보다가 세 여자 쪽을 보자 여자들이 움찔댄다.


"에이 왜그래;; 다들 뭔 일 있어?"

"너야 말로 무슨 일인데?"

"너야 말로 무슨 일인데?"

"너야 말로 무슨 일인데?"


"...티났나봐"


"응?"

"너 오늘 좀 이상해."

"맞아. 한번도 안 먹는 아메리카노 먹고 눈도 살짝 부어있고."

"무슨 일 있지?"

"...헤어졌어..."


순간 넷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내가 이래서 말 안하려 했던 건데...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 망치는 거 싫어. 이 얘기 하는 것도 싫고..."


"어쩌다?"

"왜 헤어졌어?"

"너네 잘 지냈잖아?"

"그냥 성격차로 헤어졌지 뭐..."

"제대로 말해봐... 우리가 상담 해줄게!"

"아냐... 좀 됐어. 헤어진지도... 괜찮아!"

"그래도 말 해봐,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지."

"괜찮대두..."


네 여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한 여자는 해명하기에 바빴고, 세 여자는 추궁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 구도도 곧 풀어졌고, 어느새 네 여자가 서로 어울리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몇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어서야 네 여자는 카페에서 나와 헤어졌다.


"그럼 잘가~"

"그래!"

"은주 괜찮지?"

"괜찮다니까! 잘가~"


"어찌됐건 끝났네요, 무슨 얘기 했냐구요? 별 얘기 안했어요. 그냥 일상 얘기 하고, 친구나 대학 얘기... 근데 애들이 말 할 때마다 제 눈치 보는게 느껴지긴 했는데... 뭐 그냥 그렇다고 둘러댔어요. 그나저나 야밤인데... 할 게 없네..."


은주가 힘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간다. 그렇게 몇십분 쯤 걷다가, 한 웨이터 차림의 사람이 은주에게 다가왔다.


"누나~ 나 XX클럽인데. 한번만 가줘라!"

"죄송한데... 저 클럽 안가서..."

"에이, 한번만... 누나 너무 예뻐서 그래! 물 좋으니까 한번만! 나 봐서라도!"

"...한번만이예요?"

"오예! 땡큐! 누님 감사! 이쪽으로 내려가면 되요!"


"사실 저도 클럽 가본 적은 있어요. 대학 막 입학했을때 남자친구하고 몇 번 가봤어요. 막 클럽 노래 나오고 남자친구랑 같이 춤추는데 재밌긴 하더라구요. 술도 마셔보고. 친구들이랑 갔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춤은 일부러 안 췄어요. 춤추면 남자들도 달라붙어서... 근데 혼자서는 가본적이 없어요. 남자친구가 있기도 했고 혼자 가기도 무섭고 해서... 그래도 한번 가볼려고요. 어차피 헤어졌는데."


은주가 살짝 긴장한 듯 클럽 계단을 내려갔다. 은주가 나타나자 아까 그 삐끼와 같은 웨이터 복장의 사람이 손전등을 들고서 은주를 막았다.


"민증 확인 좀 할게요"

"아, 네!"


은주가 핸드백 속 지갑의 주민등록증을 꺼내 웨이터에게 보여줬다. 웨이터가 받은 민증과 은주의 얼굴에 손전등을 차례로 비추더니 은주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재밌게 노세요~"


은주가 클럽 회장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빠세 후"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몇면 사람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무대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은주는 살짝 시끄러웠어도 노래에 맞춰서 무대에 나와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취했는지 빠졌는지 주변의 남자들이 슬슬 은주의 주변에 붙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한 남자가 갑자기 취했는지 은주의 뒤로 와 부비부비를 시도했다.


"뭐, 뭐야! 갑자기!"


은주가 놀라 몸을 앞으로 뺐다. 뒤에 있던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은주의 손을 꽉 잡았다.


"아이 누나! 한번만 같이 놀자~ 어차피 클럽 왔으면 즐겨아지, 안그래?"

"저, 저기... 죄송한데;;"

"꼬마야, 비켜"


한 남자가 들러붙는 남자의 손을 팍 잡더니 뿌리쳐버린다. 들러붙던 남자가 화가 났는지 표정이 더욱 일그러지며
남자의 가슴을 밀쳤다.


"아저씨, 누군데 시비예요. 이 누나 남친이라도 돼?"

"나?"


밀쳐진 남자가 피식 웃더니 취한 남자를 세게 밀쳐 넘어뜨려버린다.


"나 이 누나 친구다. 됐냐?"

"저, 저기... 누구?"


은주가 고개를 틀어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오똑한 코에 살짝 매서운 눈. 바로 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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