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 - 71
교장 선생 댁은 학교 뒤편의 사택이고 방이 4~5개는 되어 보이며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교장 선생은 4남매가 있다는데 모두 객지에 나가있고 사모님과 단둘이 살고 있어 우리가 기거할 공간은 넉넉했다.
이원주 선생을 비롯해 정호, 순자와 나는 아침 8시까지 사택에 모이기로 했다. 합숙은 첫날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교장 사모님은 50대 중반의 그저 수더분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5년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사모님의 얼굴은 이날 처음 보았다. 그런데 교장 선생의 말처럼 음식솜씨는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아침 밥상에는 소의 사골로 끓였다는 곰탕과 비게가 두둑하고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 굴비구이 등이 있었다. 그밖에 김치와 나물, 장아찌 등도 있었지만 그 3가지 반찬만으로도 정호와 나는 머슴밥처럼 주발 위로 가득 올린 밥그릇을 후딱 비웠다.
“밥 더 줄까? 많이 묵어야 힘도 쓰고 그래야 공부도 잘 되겠제.”
사모님의 말에 우리는 다 손을 내저었고 밥을 너무 빨리 먹은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이원주 선생은 대회 때처럼 4장의 시험지를 내놓았다.
시험지는 대회 때의 인쇄한 것과는 달리 등사판(謄寫版)으로 찍어낸 것이다.
복사기나 컴퓨터가 없었던 당시 학교의 시험지는 담당 교사가 손수 파라핀을 먹인 원지(原紙)에 글씨를 써서 등사판으로 찍어내야 했다.
먼저 원지를 줄칼 같은 쇠판 위에 올려놓고 골필이라고 송곳처럼 끝이 뾰족한 것으로 글씨나 그림을 쓰면 그곳만 파라핀이 벗겨진다. 그 원지를 등사판에 얹어놓고 잉크를 묻힌 로울러로 밀면 글씨가 등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험지는 교사의 손재주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한다. 3학년 때의 담임은 지독한 악필(惡筆)이라 글자를 해독하는데 힘이 들었고, 4학년 담임은 등사기술이 시원찮아 시험지를 받아들면 우선 글자가 안 보이는 곳을 선생이 불러주는 대로 연필로 덧입혀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원주 선생의 등사솜씨는 완벽했다. 글씨체도 예쁠 뿐 아니라 글자가 모두 선명했다.
우리가 교장 선생 댁에서 합숙을 하기로 결정한 후 어제는 꽤 늦은 밤까지 이원주 선생과 나는 함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침 일찍 시험지를 만들어 내놓은 것을 보니 그녀는 밤잠을 못 잤거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작업을 했을 것이다.
우리 3명은 큰 밥상에 둘러앉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아따! 되게 어렵네. 우째 대회 치를 때보다 더 힘드노?”
채 10분도 안되어 순자가 푸념을 하는데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배운 기억이 없는 것 같은 낯선 문제도 있었고 주관식이든 객관식 문제든 까다롭고 아리송해서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끙끙거려야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원주 선생이 불러주는 답에 따라 채점을 했다. 결과를 보니 나는 겨우 82점, 정호와 순자는 70점대였다.
“자, 이제 우리 한번 결과를 검토해볼까? 왜 이렇게 성적이 시원치 않았는지를 ······ ”
틀린 문제들만 집어서 그녀는 우리가 왜 틀렸는가를 먼저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고, 다음은 서로 토의를 하도록 했다. 이런 방법은 평소 우리 교실의 수업시간에도 그녀가 해오던 식이었다. 그래도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우리가 이해하도록 설명을 해주었다.
“산수의 7번 문제는 6학년에 올라가면 정식으로 배우게 될 것이지만, 사인 코사인 탄젠트를 모르더라도 우리가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공의 부피를 내는 공식을 응용하면 이렇게 풀 수 있단다.”
그밖에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를 쉽게 외울 수 있는 요령, 객관식 문제에서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가려낼 수 있는 방법 등을 우리는 합숙훈련 중에 새롭게 터득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이원주 선생은 또 다른 시험지 4장을 우리에게 내 주었다. 역시 문제는 어려워 모두 점수가 시원치 않았지만 틀린 문제를 다시 검토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지식과 생각하는 법을 더 익히게 된다.
저녁 식사 후에는 낮에 시험을 쳤던 시험문제들이 새 종이로 배부되었다. 틀렸던 문제들을 아까 검토했음에도 아무도 100점을 맞지 못했다. 우리는 왜 또 틀렸는가를 선생과 함께 검토했다.
다음날에도 우리는 대회 때처럼 2차례씩 시험을 치렀고 틀린 문제들을 검토하고 다시 시험을 치면서 그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교장 선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를 격려했고, 사모님은 세끼 식사에 밤참까지 정말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역시 이원주 선생이었다. 그녀는 매일 손수 출제를 하고 그 문제를 원지에 써서 등사판으로 찍어내는 8장의 시험지를 우리에게 주었고, 틀린 답의 원인과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우리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리 호된 강행군은 아니었다. 우리는 틈틈이 쉴 수 있었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거실에서 교장 선생 부부와 TV드라마도 한편 볼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때 본 드라마는 제목이 <맏며느리>인데 중간에 보게 되어 전체의 스토리는 잘 모르겠지만 탤런트 허진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감새윤 사미자 유지인 등이 출열했다. 특히 막내딸 역을 맡은 정윤희는 발랄하고 애교스러우면서도 미모가 두드러져 인상에 남았다.
그보다 더한 관심사는 서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었다. 우리 셋은 누구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나의 경우 아버지는 가끔 서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서울을 가본 것이 틀림없고, 엄마는 달비장사를 하느라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일대를 다녔어도 서울은 가보지 못했다. 나는 우리 식구중 두 번째로 서울구경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창경원이라는데 우리 3명의 의견은 일치했다.
그곳에 가면 코끼리와 사자, 기린과 공작새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다. 교과서의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중앙청, 서울역, 경복궁, 남대문, ······ 뿐만 아니라 높은 빌딩도 많고 거리에 사람도 많고 자동차도 많다는 서울 거리를 그냥 걸어보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밖에도 우린느 시간만 나면 서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나누었다.
결국 우리는 서울의 땅을 밟았다.
교장 교감 이원주 선생과 우리 3명 등 일행 6명은 금촌리에서 버스를 타고 읍내에서 다시 안동행 버스, 그곳에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는 14시간이 걸리는 강행군 끝에 서울의 땅을 밟았다. 그리고 결선대회가 열리는 혜화국민학교와 가까운 종로5가의 한 여관에 잠자리를 잡았다. 내일이 결선의 날이다.
서울은 초등학교도 우리 읍내의 학교나 대구의 큰 학교와는 격이 다르다. 교사는 3층 건물이고 운동장도 강당도 훨씬 넓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결선대회가 열리는 강당의 풍경이다.
결선대회의 참가팀은 10개 학교다. 광역시나 직할시가 없던 때라 서울과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도까지 9개 도의 1등을 한 학교들이 4, 5, 6학년마다 3명씩 참가하는 것이다.
강당의 앞쪽 중앙에는 대구 예선 때처럼 30개의 책상과 걸상이 3줄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펜스를 친 주위에는 수백명이 모여 웅성거렸다. 펜스에는 빈틈없이 학교나 특정 학생을 응원하는 플래가드가 둘러싸였고 피켓을 든 사람도 많았다. 모두 출전학교나 학생을 응원하기 위한 것으로 마치 실내 농구경기의 관중들 같았다.
무대 전면에는 <경축 대통령기배 쟁탈 제5회 전국학술경진대회>라는 간판이 큰 글씨로 걸려있고 3개의 대통령기와 우승컵, 상패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요인사들이 무대에 자리 잡으며 웅성거리던 장내는 잠시 조용해졌다.
문교부 장관을 비롯해 서울시장, 서울시 장학사, 청와대 교육담당관, 그리고 몇 명의 국회의원들도 소개되었다.
우리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등 국민의례를 마치고 장관이며 국회의원들의 연설까지 들어야 했다.새삼 이 대회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했다.
행사가 진행 중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어깨에 카메라를 멘 사람들도 보였다. TV방송을 내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볼수록 우리 내리초등학교 팀이 가장 초라해 보였다. 정호는 교장과 교감 선생이 서울대회에 따라오는 것에 대해 투정하듯 말했지만 인솔교사 3명에 참가학생 3명 등 달랑 6명만 온 것은 우리학교가 유일해 보였다.
더욱 초라하고 주눅이 들게 한 것은 우리 3명 학생의 용모와 차림새였다.
나는 서울나들이라고 지난번 서울띠기가 남편의 옷을 줄여 만들어준 신사복 기지의 바지를 다려 입고 영숙 누나가 사준 푸른색 점퍼를 입었다. 정호는 목에 털이 둘려있고 가슴이나 소매에 장식도 꽤 야단스러운 반코트를 새로 사 입었고 나이키 상표의 운동화를 신었다. 순자는 빨간색 쉐터에 가로무늬가 있는 주름치마를 입었고 검은색 긴 양말에다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었다. 우리 학교나 동네에서라면 이 정도 차림으로 충분히 남의 눈을 끌고 자신도 뽐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회장에서는 우리가 뽐내려던 그 차림새가 바로 너무 초라한 점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세련되어 있었다. 가죽옷을 입은 아이들도 꽤 있었고 색깔이나 무늬가 다양했지만 모두 옷의 임자와 잘 어울려 얼굴과 옷차림을 함께 돋보이게 했다.
참가자들은 서울과 각 도 대표라지만 모두 도청 소재지인 대도시의 학생들이었다. 살결이 희고 얼굴은 통통하고 화색이 돌며 체격도 좋았다. 남자애들은 모두 상고머리라고 머리를 길렀고 몇 명의 여자애들은 생머리를 길게 늘였거나 예쁘게 땋고 파마를 안 아이들도 있었다. 더러는 가슴도 튀어나왔다.
그에 비하면 정호와 나는 박박머리, 순자는 단발을 했지만 모두 햇볕에 그을려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영양실조기도 있는 것 같아 촌티가 물신 풍겼다.
수백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필답시험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문제들은 예선 때보다 까다롭고 어려웠다. 문제 중 한 4~5개는 이원주 선생과의 합숙 때 배우지 않았으면 답을 못 썼을 것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그리 잘 친 것 같지는 않았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선생들 앞에 모였을 때 정호와 순자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승전보는 여기서 멈추었다. 승리의 여신이 우리를 외면한 모양이다.
경상북도를 대표한 내리초등학교 팀은 3등까지만 시상하는 대회에서 5등으로 밀려났다.
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각 학년의 1등은 대통령기와 우승컵, 두둑한 상금과 상장, 상품 등을 받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2, 3등도 상패와 상금, 상장, 상품을 받았다. 그밖의 팀은 순위를 적은 참가증서와 참가 기념품을 받는데 그쳤다.
“몰라서 못쓴 것도 많지만 국어 3번도, 산수에 7번 문제도 내가 다 아는 긴데 그걸 틀리고 ······ 내가, 이 돌대가리가 우리 편 점수를 다 까먹은 기라요.”
발을 동동 구르던 순자는 이실직고를 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무도 순자를 탓하지 않았다. 나는 입상을 못한 것이 분하거나 아쉽지도 않았다. 응원단이나 참가학생들의 그 잘 생기고 세련된 것만 봐도 우리는 애초에 역부족인 것이다.
“괘않다! 제군들은 마지막까지 너무나 훌륭하게 잘해주었다. 다른 팀들은 모두 도청 소재지의 명문 학교들이고 면소재지의 학교는 30개팀 중 우리가 유일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5학년에서 5등이나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또 최소한 경상북도 대표로서는 제일 좋은 성적을 낸 것이다. 제군들 정말 수고 많았다. 자, 이제 남은 시간은 서울구경을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풀도록 하자.”
교장 선생의 말에 우리 셋의 표정은 금방 풀어졌다. 경상북도 대표 중 6학년은 6등, 4학년은 8등을 했다고 한다. 어떻든 이제 마음의 부담은 없어졌다.
일행은 점심을 먹고 여관에 들려 잠시 짐을 비운 후 곧바로 3명의 학생이 가장 원했던 창경원으로 향했다.
아, 창경원은 정말 멋진 곳이다! --- 우리는 상상하고 고대했던 코끼리와 사자, 기린, 공작새 뿐 아니라 온갖 희귀한 동물들을 보았다.
솜사탕을 들고 하마, 악어, 낙타, 곰도 불곰에다 반달곰, 시베리아 백곰까지, ······ 원숭이들이 담배를 빼꼼빼꼼 피우다 구경꾼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고는 “엿먹어라.” 식으로 한팔을 훑어보이는 재롱에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겨울의 평일인데도 손님은 많았고 단체로 온 학생들도 보였다. 선생들은 한 바퀴만 우리와 함께 돌고 차를 마시겠다고 매점에 들어갔지만 우리는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몇 바퀴를 돌았다.
저녁 식사 후 교장 교감 선생은 피로하다며 여관으로 들어갔지만 우리는 이원주 선생의 인솔로 종로거리를 걸었다. 서울생활을 오래 한 이원주 선생은 정말 친절하고 훌륭한 가이드였다. 밤거리의 서울은 더욱 웅장하고 번잡스러우며 화려했다.
인도에는 포장마차와 악세사리나 운동화 등을 파는 노점들이 널려 있고 빵집이나 악기점 같은 것도 크고 화려했다. 이어진 빌딩 중에도 높아 보이는 빌딩의 층수를 우리가 세어 봤는데 20층이 넘자 자꾸 헷갈린다. 그때 이원주 선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빌딩들을 짓누르듯이 우뚝 서있는 검은 색의 탑 같은 건물이 보였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삼일빌딩이고 이름처럼 31층이나 된다고 한다.
파고다공원이나 보신각 같은 명소도 겉으로 지나쳤지만 구경은 한 셈이다. 종로거리에는 단성사, 피카디리 같은 극장과 대구에서 감탄한 것 같은 큰 포스터도 보였지만 서울에서는 별로였다. 그보다는 다른 대형 간판들과 화려하게 명멸하는 네온사인에 더욱 눈길이 갔다.
우리는 걸어서 서울시청 청사도 구경하고 주위의 빌딩들을 겉으로 둘러본 뒤 여관까지 오는 길은 지하철을 탔다. 기차가 땅속으로만 다니다니, ······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타보니 속도도 빠르고 신기해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지하철은 순식간에 우리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식사를 끝내자 곧바로 경복궁으로 향했다. 그 전에 광화문과 중앙청도 먼발치에서 보았다.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 건물로 일본놈들이 지었다는 그 웅장한 석조건물에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부처가 들어있다고 한다.
경복궁과 경회루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교장 선생은 교감 선생에게 건물의 유래며 건축양식 등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창경원이나 종로거리처럼 그리 신기하지는 않았다.
경복궁을 나와서는 교장 교감 선생과 헤어졌다. 관광도 나이에 따라 흥미나 호기심이 다를테니 따로 노는 것이 우리들도 좋았다.
햄버거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다. 빵을 한입 물으면 그속에 향긋한 고기가 씹히고 콜라와 함께 먹으니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정호와 내가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고 이원주 선생은 한 개씩 더 주문했다. 두 개를 먹으니 밥 한그릇을 먹은 것처럼 배가 그득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남대문을 구경하고 다시 걸어서 우리나라의 모든 돈을 관리한다는 한국은행 건물을 보고는 신세계백화점에 들어갔다.
아, 이곳 역시 창경원만큼 놀라운 곳이다. 세상에,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물건들이 널려 있다니 ······ 마치 동화 속의 보물창고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으로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라는 신기한 것을 타고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감탄했다.
“새임, 물건 하나 사도 될까요?”
순자가 머플러와 장갑 등이 진열된 판매대 앞에서 이원주 선생에게 물었다.
“왜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니?”
순자가 가리킨 것은 상반신만 있는 마네킹의 목에 두른 목도리였다. 내 눈에도 탐나 보이지만 나는 이 엄청난 보물창고에서 내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그런데 백화점은 물건 값이 좀 비싸단다. 여기서는 실컷 눈구경, 영어로는 아이 쇼핑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구경만 하고 남대문시장으로 가보자.”
친절한 가이드의 권유대로 잠시 후 발걸음을 옮긴 남대문시장은 또 하나의 별천지였다.
들어설 때는 읍내의 장터와 비슷해 보였다. 좌판에서 국밥을 팔기도 했고, 과일이나 건어물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러나 몇걸음 더 들어서자 끝없이 점포가 이어지며 정말 없는게 없을 정도로 온갖 상품들이 널려 있었다.
옷가게도 신사복, 숙녀복, 아동복에 군복 종류들이 따로 있었고 구두나 운동화, 장남감이며 미제나 일제 등 외제만 파는 가게, 튀김 전문집이나 떡볶이, 순대국밥집 등 ······ 신기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물건들을 팔면서 같은 업종의 점포들이 몇 개씩이나 몰려있다는 점이다.
“자, 우선 각자 사고 싶은 물건들을 골라봐. 혹 이것으로나 너희들 가진 돈으로 부족하면 선생님이 빌려줄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우리에게 각각 3만원씩을 주었다. 나는 서울 나들이를 한다니까 엄마가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지만 몰려다니다 보니 한푼도 쓸 틈이 없었다. 그런데 3만원씩이나 주다니 ······ .
뒤에 안 것이지만 우리가 대구의 2차 예선이나 서울의 결선대회에 참가할 때 지방학교는 정부에서 여비와 숙박비 등의 경비가 나온다고 한다. 이원주 선생은 교장 선생에게 졸라 우리들의 쇼핑비를 받아온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가죽 장갑, 영숙 영미 누나를 위해서는 무늬가 화려한 머플러와 머리핀을 샀다. 그래도 돈이 남아 엄마에게도 누나들과 같은 머플러를 하나 더 샀다.
이날도 관광은 밤까지 이어졌다. 이 넓디넓고 온갖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찬 서울은 한달을 쏘다녀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튿날은 서울 관광에 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가이드인 이원주 선생이 서울의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루의 일정을 잡았다. 사실 그녀는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에 왔건만 우리들 시중을 드느라 꼼짝도 못했던 셈이다. 그래도 그녀는 우리들의 관광일정을 꼼꼼히 마련해 주었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했을 때 정호는 영화를, 순자는 다시 한번 남대문시장을, 나는 한강을 보고 싶다고 했다.
교장과 교감 선생은 전날 오후처럼 자기들끼리 관광에 나섰다.
이원주 선생이 일러준 대로 우리는 먼저 버스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넌 뒤 한강을 실컷 보고 다시 인도교를 건넜다. 양쪽 강변에 번화가의 빌딩들처럼 높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 단성사에서 <죠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커다란 백상아리가 해수욕장에서 수영객들을 잡아먹고 그것을 잡으려는 전문 사냥꾼까지 해치고 배를 침몰시키는데 그 흉측한 모습이 너무 실감나 순자는 몇차례나 비명을 질러댔다.
영화관을 나서자 정호가 괴로운 표정으로 배탈이 난데다 감기가 더 심해져 “혼자 여관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했다. 친구가 아픈 것은 안타까웠지만 모처럼 서울 관광을 중단할 수는 없다. 순자와 나는 동대문시장을 구경하고 둘이서만 저녁을 사먹고 밤거리를 배회하다 늦게 여관으로 돌아왔다.
“니 좀 괘않나?”
우리는 정호의 안부부터 물었다.
“응, 좀 쉬고 선생님이 사주신 약도 먹었더니 이제 좀 괘않다.”
교장 교감 선생과 이원주 선생은 이미 여관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4층 건물인 여관의 1층 온돌방 2개를 빌려 각각 남자 3명과 여자 3명이 함께 묵었다. 정호와 나는 겨울철이라 꼭 닫은 방안에서 교장 선생이 연신 피워대는 담배연기 때문에 자주 기침을 하면서 가끔은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어야 했다.
그날도 우리는 여관의 4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겨울바람이 불어오지만 서울의 야경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니 그거 아나?”
“뭘 ······ ?”
뚱딴지 같이 묻는 질문에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교장 선생님캉 교감 선생님이 붙어먹은 거 ······ ”
“뭐라꼬, 니가 봤나?”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붙어먹었다는 것은 두사람이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 직접 보고 끙끙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정호는 빙긋 웃으며 으스대듯 자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 오후 배탈 때문에 먼저 여관에 돌아온 그는 옥상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방으로 내려가는데 3층 복도에서 교장 선생을 봤다. 아는 체를 하려다 행동이 좀 이상해 보여 계단 옆으로 몸을 숨겼는데 교장 선생은 한 객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살피며 교감 선생이 나타나더니 그 방에 노크를 하고 교장 선생이 그녀를 맞으며 방문을 닫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니 눈으로 보지는 않았잖나? 한방에 있다고 꼭 붙어먹는다고는 ······ ”
나는 잘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도 교장과 교감은 제일 높은 선생이다. 평소 두사람 다 근엄했고 학생들도 어려워했는데 학생들과 같이 묵으면서 그런 짓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보지는 못했어도 소리는 들었다.”
마침 복도에 다른 인기척이 없어 정호는 문앞에 귀를 갖다 대었다.
“역시 경숙씨는 이 나이에도 몸매는 날씬해.”
“아이, 사모님 그 큰 것에 비하면 가슴도 쪼매한데 ····· ”
이런 말들이 들려왔고 침대가 찌걱거리고 교감이 콧소리로 신음을 내는 것도 똑똑히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부지 어무이 할 때나 똑같은데 내가 그걸 모르겠나?”
그의 말은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담뱃진으로 몸 냄새가 고약한 교장과 바짝 마르고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입술은 얇아 늘 차가운 인상을 주는 교감의 빠구리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서울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밤 9시쯤 여관을 나서 서울역에서 밤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교장과 교감 선생은 오늘도 자기들끼리 들릴 데가 있다고 했고 이원주 선생도 오전에 따로 볼일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원주 선생이 살짝 나를 따로 불렀다.
“너 오늘은 몸이 아파서 오전은 그냥 여관에서 쉬겠다고 해. 오후에 정호 순자와 만날 수 있도록 데려다 줄테니까. 나는 나갔다가 10씨쯤 다시 돌아올게.”
나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가슴이 뛰었다. 우리는 잠시 후 빠구리를 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근 열흘동안 그녀와 침식이며 나들이를 함께 하면서도 직접 안아볼 수는 없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오죽하면 그저께는 혼자 자위까지 한 터였다.
모두 여관을 나서고 한 시간쯤 뒤 이원주 선생만 되돌아 왔다. 그녀는 나를 여자들만 묵던 바로 옆방으로 데려갔다. 방에 들어서자 우리는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의 입술부터 찾았다.
“시간이 별로 없지만 우선 좀 씻어야겠다. 어젯밤 교감 선생님이 하도 오래 욕실에 머물러 있어 샤워도 못했어.”
그녀는 겉옷만 벗은 채 속옷바람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완전히 알몸이 되어 욕실문을 벌컥 열었다.
“어머나!”
그녀는 비명과 함께 등을 보이며 돌아서서 그래도 두손으로 젖통을 가렸다.
“나 곧 끝낼게. 잠간만 기다려.”
나는 뒤에서 그녀의 젖은 몸을 껴안았다. 벌떡 선 자지가 그녀의 엉덩이골에 닿았다.
“새임을 씻겨 들일라고요. 새임과 같이 씻고 싶어서요.”
“아이 참!”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비누칠해져 있는 샤워타올을 뒤로 건넸다. 넓은 등판과 풍만한 엉덩이를 나는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문질렀다. 등 쪽을 다 했으니 이제는 앞 차례다.
“아이 참!”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하며 돌아선 채 여전히 두손으로 젖통을 가렸다. 참 여자는 이상하고 복잡한 동물이다. 잠시 후면 그 젖통에 내 손과 입이 닿고 자지와 보지도 섞일텐데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젖가슴과 아랫배를 거쳐 허벅지와 다리까지 씻는 동안 이제 그녀는 손으로 어디를 가리지 않았다. 샤워기로 비눗물을 다 닦아내자 그녀는 타올에 비누칠을 하고 마주 섰다. 이제는 내 차례인 것이다.
그녀 역시 나를 등판에서 엉덩이까지, 그리고 가슴과 배 허벅지를 꼼꼼하게 씻겨주었다. 그리고 타올은 내려놓고 손에 비누칠을 해서 자지와 불알도 씻겨주었다.
나는 그녀의 보지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은 특별 서비스다. 미끌 거리는 비누 거품 속에서 그녀의 손바닥 마찰에 자지가 벌떡거리면서 온몸이 짜릿해 왔다. 그 동작이 조금 더 오래 계속되었다면 그대로 사정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함께 목욕까지 하고나니 기분은 더 산뜻하고 열정이 쉽게 달아올랐다.
먼저 키스를 하고 젖가슴을 문지르고 빨아대다 내 입은 자연스레 그녀의 보지로 향했다. 그녀는 부끄럼을 타거나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랑이를 벌려 주었고 그녀가 몸을 비틀며 신음을 낼 때까지 나는 혀 끝으로 질구를 콕콕 찌르고 공알을 집중적으로 빨아 주었다.
답례처럼 그녀도 내 위에 엎어져 자지를 빨아 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 거의 그랬듯 나는 슬슬 몸을 돌려 69자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빠구리는 항상 그녀의 집 침대 위에서 벌어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여관방의 요 위에서다. 침대와 감촉은 좀 달랐지만 낯선 여관방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새로운 느낌과 스릴도 더 하다.
가만히 보니 그녀는 여관방이라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애써 터져 나오는 소리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음이 점점 커지자 그녀는 내 방아질을 중단시키고 자신이 위로 올라왔다. 잠간 숨을 돌리며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러나 점점 강도가 세어지자 그녀의 젖통이 더 크게 출렁이며 신음도 커져갔다. 나는 젖통을 움켜쥐어 출렁임을 멈추게 했지만 그래도 아쉬어 몸을 일으켜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감싸며 더욱 엉덩이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으음! ······ 으음! ······ 으으! ······ 으으 ······ ! 윽!”
또 한번의 절정을 맞았는지 그녀는 애써 소리를 죽이며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잠시 흐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그녀를 눕혀놓고 방아질의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사정할 때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뒤처리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마주 보며 한동안 서로를 애무했다. 그녀와는 특이 이런 뒷마무리가 감미로웠다. 손끝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크고 맑은 눈동자를 보면 내가 그 속에 빨려드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살짝 감은 눈의 유난히 긴 속눈썹을 보면 꿈 꾸는 여인을 나 역시 꿈에서 만난 것 같은 아늑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너와 함께 했던 게 겨우 열흘 전이잖아. 한달에 한번으로 약속을 해놓고도 내가 너무 밝히는 여자 같지?”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아이라예. 저도 새임캉 맨날 얼굴을 맞대고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막상 둘만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어요.”
“정말 너도 그랬어? ······ 아마 우리가 다 여행을 했다는 것 때문에 더 마음이 들뜬 것 같아. 이를테면 쉽게 유혹당하는 여행자의 일탈(逸脫)이지. ······ 아, 정말 너와 단둘이만 어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자의 일탈 ······ 그 말을 듣자 나는 또 한쌍, 일탈을 보인 여행자가 생각났다.
“새임, 교장 선생님하고 교감 선생님이 붙어먹었어예?”
“저런 ······ ! 학생들 앞에서 조심들 하시지.”
불쑥 튀어나온 나의 말에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니?”
“제가 안게 아니라요.”
“알지 못했다면서 그런 말을 ······ ?”
“정호가 들려줬어요.”
“정호가 뭐라고 했는데 ······ ?”
나는 정호가 말해준 내용을 간단하게 들려주었다. 3층의 한방에 교장과 교장이 차례로 들어갔고 거기서 침대가 삐걱거리고 속삭임과 신음도 배어나왔다는 것을.
“저런 ······ !”
그녀의 눈과 입이 한껏 커지며 놀란 표정을 짓다가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물더니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문제가 너무 심각하구나.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그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녀가 어떻게 나서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커지면 나도 고자질쟁이로 몰릴 것이다.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일었다.
“우리도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영원한 비밀이라는 것은 없는데 ······ 너와 나는 정말 답답하고 곤혹스러워. 아,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지?”
결국 그녀와 나의 문제로까지 걱정이 이어진다는 것에 나도 곤혹스러웠다.
이원주 선생과 나는 오후에 정호 순자와 합류했다. 오늘은 서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모두 함께 하기로 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가끔 군것질만 했다.
한 집에 들어가 이원주 선생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 ······ 그런데 가게의 꽤 많은 손님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고 그 맛은 읍내 가게에서 사먹는 콘이나 바와는 차원이 다르게 맛있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오자 이원주 선생은 정호를 살짝 불러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기에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정호가 방에 들어오더니 교장 선생의 담배연기를 맡으면서 함께 TV를 보고 있는 나를 눈짓으로 불러냈다. 우리는 4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니 그거 다른 누구한테라도 말한 사람 있나?”
“뭐를 ······ ?”
“어제 내가 여기서 해준 말, 교장캉 교감선생님이 빠구리했다는 말 ······ ”
나도 짐작은 했었지만 역시 그 말이다.
“아니.”
나는 좀 마음이 켕겼지만 시침을 떼었다.
“휴, 다행이다.”
나를 불러내며 불안하고 조급했던 표정이 좀 가라앉았다.
“니, 참말이제?”
“하모! 내가 누구한테 말할 시간이라도 있었나?”
“니, 앞으로도 절대 이 일은 입밖에 내면 안된다! 약속할 수 있제?”
교장과 교감이 빠구리를 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나의 경우 이원주 선생과의 그런 문제도 있어 남에게 퍼뜨린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참말로 그 약속은 꼭 지키기다!”
다시 한번 다짐하며 그가 내민 새끼 손가락에 내 것을 걸려고 하는데 그는 손바닥을 폈다.
“이건 남자대 남자로, 대장부의 명예를 걸고 하는 기다. 그러니 악수로 하자. 이건 신사협정이다.”
나는 그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빙긋 웃었다.
“어제는 신이 나서 들려주더니 와 갑자기 내 입은 틀어 막을라 카노?”
“그기 내가 깜빡 잘못 생각한 기다. 그분들도 각각 가정이 있고 나름대로 지금껏 쌓아온 사회적 신분도 있는데 우리가 나불거려가 그런 걸 망치마 얼마나 못된 짓이고? 이솝우화에도 나오제. 어린애가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니 개구리가 너희는 장난으로 하지만 우리는 목숨이 걸린 거라고 ······ .”
“니 말이 맞다. 우리가 신사협정까지 했고 내 입은 언제나 봉창할 거니 마음 놓아라.”
“그래, 고맙다. 사실 이런 일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만 서양사람들은 영어로 프라베트, ······ 아니, 프라이버시, 그래 프라이버시라는 말이 우리말로 하자면 사생활이라는 긴데 그렇게 사생활은 서로 존중해준다 카더라. 우리 선생님들의 사생활도 우리가 보호해 드려야지.”
“정호야.”
나는 좀 정색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니나 내나 다 국민학교 5학년짜리 천둥벌거숭이 머슴아들, ······ 나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니는 말이나 생각이 우째 그리 어른스럽노?”
나는 절대로 그를 추켜세우려 한 말이 아니었다. 두선생의 가정이나 사회적 신분을 생각해서 배려하고 프라이버시를 들먹이는 것에 나는 정말 감탄했다. 나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히 히 ······ !”
그는 좀 멋쩍은 듯 웃고 말했다.
“사실은 우리 담임선생님한테 인생공부 좀 했다. 선생님은 정말 실력이 좋아 우리를 잘 가르쳐 주시지만 또 세상 일도 많이 알고 정말 착한 분이잖나.”
정호의 이원주 선생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그를 설득하는데도 큰 힘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안다는 걸 우째 아셨을까?”
이 말을 하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데 나는 찔끔했다. 그 시선이 좀 더 계속되었다면 나는 고자질을 시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 잔머리를 굴렸다.
“니가 훔쳐보는 걸 선생님이 또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아아, 그렇구나! 바로 그거야. 남을 훔쳐볼 때 나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걸 조심했어야 하는데 ······ ”
뜻밖에 바로 내 말을 수긍해주기에 나는 한가지 마음의 짐을 벗었다.
그날 밤 10시 기차를 타고 우리는 서울을 떠났다.
3박4일의 짧고 분주한 일정의 여러 장면들이 깜깜한 차창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학술경진대회의 참가도 참 귀중한 경험이었다.
온갖 다양하고 화려한 많은 것을 간직한 서울, 그곳에 살고 싶다. 언젠가 나의 인생에 그런 날이 있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
여관방이란 곳에서 처음 해본 이원주 선생과의 뜨거웠던 여행자의 일탈도 잊지 못할 추억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 참, 그곳에서는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도 빠구리를 했지. 그러나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의 스캔들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정호와 나의 신사협정은 잘 지켜진 셈이다.
교장 선생 댁은 학교 뒤편의 사택이고 방이 4~5개는 되어 보이며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교장 선생은 4남매가 있다는데 모두 객지에 나가있고 사모님과 단둘이 살고 있어 우리가 기거할 공간은 넉넉했다.
이원주 선생을 비롯해 정호, 순자와 나는 아침 8시까지 사택에 모이기로 했다. 합숙은 첫날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교장 사모님은 50대 중반의 그저 수더분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5년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사모님의 얼굴은 이날 처음 보았다. 그런데 교장 선생의 말처럼 음식솜씨는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아침 밥상에는 소의 사골로 끓였다는 곰탕과 비게가 두둑하고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 굴비구이 등이 있었다. 그밖에 김치와 나물, 장아찌 등도 있었지만 그 3가지 반찬만으로도 정호와 나는 머슴밥처럼 주발 위로 가득 올린 밥그릇을 후딱 비웠다.
“밥 더 줄까? 많이 묵어야 힘도 쓰고 그래야 공부도 잘 되겠제.”
사모님의 말에 우리는 다 손을 내저었고 밥을 너무 빨리 먹은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이원주 선생은 대회 때처럼 4장의 시험지를 내놓았다.
시험지는 대회 때의 인쇄한 것과는 달리 등사판(謄寫版)으로 찍어낸 것이다.
복사기나 컴퓨터가 없었던 당시 학교의 시험지는 담당 교사가 손수 파라핀을 먹인 원지(原紙)에 글씨를 써서 등사판으로 찍어내야 했다.
먼저 원지를 줄칼 같은 쇠판 위에 올려놓고 골필이라고 송곳처럼 끝이 뾰족한 것으로 글씨나 그림을 쓰면 그곳만 파라핀이 벗겨진다. 그 원지를 등사판에 얹어놓고 잉크를 묻힌 로울러로 밀면 글씨가 등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험지는 교사의 손재주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한다. 3학년 때의 담임은 지독한 악필(惡筆)이라 글자를 해독하는데 힘이 들었고, 4학년 담임은 등사기술이 시원찮아 시험지를 받아들면 우선 글자가 안 보이는 곳을 선생이 불러주는 대로 연필로 덧입혀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원주 선생의 등사솜씨는 완벽했다. 글씨체도 예쁠 뿐 아니라 글자가 모두 선명했다.
우리가 교장 선생 댁에서 합숙을 하기로 결정한 후 어제는 꽤 늦은 밤까지 이원주 선생과 나는 함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침 일찍 시험지를 만들어 내놓은 것을 보니 그녀는 밤잠을 못 잤거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작업을 했을 것이다.
우리 3명은 큰 밥상에 둘러앉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아따! 되게 어렵네. 우째 대회 치를 때보다 더 힘드노?”
채 10분도 안되어 순자가 푸념을 하는데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배운 기억이 없는 것 같은 낯선 문제도 있었고 주관식이든 객관식 문제든 까다롭고 아리송해서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끙끙거려야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원주 선생이 불러주는 답에 따라 채점을 했다. 결과를 보니 나는 겨우 82점, 정호와 순자는 70점대였다.
“자, 이제 우리 한번 결과를 검토해볼까? 왜 이렇게 성적이 시원치 않았는지를 ······ ”
틀린 문제들만 집어서 그녀는 우리가 왜 틀렸는가를 먼저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고, 다음은 서로 토의를 하도록 했다. 이런 방법은 평소 우리 교실의 수업시간에도 그녀가 해오던 식이었다. 그래도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우리가 이해하도록 설명을 해주었다.
“산수의 7번 문제는 6학년에 올라가면 정식으로 배우게 될 것이지만, 사인 코사인 탄젠트를 모르더라도 우리가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공의 부피를 내는 공식을 응용하면 이렇게 풀 수 있단다.”
그밖에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를 쉽게 외울 수 있는 요령, 객관식 문제에서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가려낼 수 있는 방법 등을 우리는 합숙훈련 중에 새롭게 터득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이원주 선생은 또 다른 시험지 4장을 우리에게 내 주었다. 역시 문제는 어려워 모두 점수가 시원치 않았지만 틀린 문제를 다시 검토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지식과 생각하는 법을 더 익히게 된다.
저녁 식사 후에는 낮에 시험을 쳤던 시험문제들이 새 종이로 배부되었다. 틀렸던 문제들을 아까 검토했음에도 아무도 100점을 맞지 못했다. 우리는 왜 또 틀렸는가를 선생과 함께 검토했다.
다음날에도 우리는 대회 때처럼 2차례씩 시험을 치렀고 틀린 문제들을 검토하고 다시 시험을 치면서 그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교장 선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를 격려했고, 사모님은 세끼 식사에 밤참까지 정말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역시 이원주 선생이었다. 그녀는 매일 손수 출제를 하고 그 문제를 원지에 써서 등사판으로 찍어내는 8장의 시험지를 우리에게 주었고, 틀린 답의 원인과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우리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리 호된 강행군은 아니었다. 우리는 틈틈이 쉴 수 있었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거실에서 교장 선생 부부와 TV드라마도 한편 볼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때 본 드라마는 제목이 <맏며느리>인데 중간에 보게 되어 전체의 스토리는 잘 모르겠지만 탤런트 허진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감새윤 사미자 유지인 등이 출열했다. 특히 막내딸 역을 맡은 정윤희는 발랄하고 애교스러우면서도 미모가 두드러져 인상에 남았다.
그보다 더한 관심사는 서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었다. 우리 셋은 누구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나의 경우 아버지는 가끔 서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서울을 가본 것이 틀림없고, 엄마는 달비장사를 하느라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일대를 다녔어도 서울은 가보지 못했다. 나는 우리 식구중 두 번째로 서울구경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창경원이라는데 우리 3명의 의견은 일치했다.
그곳에 가면 코끼리와 사자, 기린과 공작새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다. 교과서의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중앙청, 서울역, 경복궁, 남대문, ······ 뿐만 아니라 높은 빌딩도 많고 거리에 사람도 많고 자동차도 많다는 서울 거리를 그냥 걸어보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밖에도 우린느 시간만 나면 서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나누었다.
결국 우리는 서울의 땅을 밟았다.
교장 교감 이원주 선생과 우리 3명 등 일행 6명은 금촌리에서 버스를 타고 읍내에서 다시 안동행 버스, 그곳에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는 14시간이 걸리는 강행군 끝에 서울의 땅을 밟았다. 그리고 결선대회가 열리는 혜화국민학교와 가까운 종로5가의 한 여관에 잠자리를 잡았다. 내일이 결선의 날이다.
서울은 초등학교도 우리 읍내의 학교나 대구의 큰 학교와는 격이 다르다. 교사는 3층 건물이고 운동장도 강당도 훨씬 넓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결선대회가 열리는 강당의 풍경이다.
결선대회의 참가팀은 10개 학교다. 광역시나 직할시가 없던 때라 서울과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도까지 9개 도의 1등을 한 학교들이 4, 5, 6학년마다 3명씩 참가하는 것이다.
강당의 앞쪽 중앙에는 대구 예선 때처럼 30개의 책상과 걸상이 3줄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펜스를 친 주위에는 수백명이 모여 웅성거렸다. 펜스에는 빈틈없이 학교나 특정 학생을 응원하는 플래가드가 둘러싸였고 피켓을 든 사람도 많았다. 모두 출전학교나 학생을 응원하기 위한 것으로 마치 실내 농구경기의 관중들 같았다.
무대 전면에는 <경축 대통령기배 쟁탈 제5회 전국학술경진대회>라는 간판이 큰 글씨로 걸려있고 3개의 대통령기와 우승컵, 상패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요인사들이 무대에 자리 잡으며 웅성거리던 장내는 잠시 조용해졌다.
문교부 장관을 비롯해 서울시장, 서울시 장학사, 청와대 교육담당관, 그리고 몇 명의 국회의원들도 소개되었다.
우리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등 국민의례를 마치고 장관이며 국회의원들의 연설까지 들어야 했다.새삼 이 대회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했다.
행사가 진행 중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어깨에 카메라를 멘 사람들도 보였다. TV방송을 내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볼수록 우리 내리초등학교 팀이 가장 초라해 보였다. 정호는 교장과 교감 선생이 서울대회에 따라오는 것에 대해 투정하듯 말했지만 인솔교사 3명에 참가학생 3명 등 달랑 6명만 온 것은 우리학교가 유일해 보였다.
더욱 초라하고 주눅이 들게 한 것은 우리 3명 학생의 용모와 차림새였다.
나는 서울나들이라고 지난번 서울띠기가 남편의 옷을 줄여 만들어준 신사복 기지의 바지를 다려 입고 영숙 누나가 사준 푸른색 점퍼를 입었다. 정호는 목에 털이 둘려있고 가슴이나 소매에 장식도 꽤 야단스러운 반코트를 새로 사 입었고 나이키 상표의 운동화를 신었다. 순자는 빨간색 쉐터에 가로무늬가 있는 주름치마를 입었고 검은색 긴 양말에다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었다. 우리 학교나 동네에서라면 이 정도 차림으로 충분히 남의 눈을 끌고 자신도 뽐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회장에서는 우리가 뽐내려던 그 차림새가 바로 너무 초라한 점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세련되어 있었다. 가죽옷을 입은 아이들도 꽤 있었고 색깔이나 무늬가 다양했지만 모두 옷의 임자와 잘 어울려 얼굴과 옷차림을 함께 돋보이게 했다.
참가자들은 서울과 각 도 대표라지만 모두 도청 소재지인 대도시의 학생들이었다. 살결이 희고 얼굴은 통통하고 화색이 돌며 체격도 좋았다. 남자애들은 모두 상고머리라고 머리를 길렀고 몇 명의 여자애들은 생머리를 길게 늘였거나 예쁘게 땋고 파마를 안 아이들도 있었다. 더러는 가슴도 튀어나왔다.
그에 비하면 정호와 나는 박박머리, 순자는 단발을 했지만 모두 햇볕에 그을려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영양실조기도 있는 것 같아 촌티가 물신 풍겼다.
수백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필답시험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문제들은 예선 때보다 까다롭고 어려웠다. 문제 중 한 4~5개는 이원주 선생과의 합숙 때 배우지 않았으면 답을 못 썼을 것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그리 잘 친 것 같지는 않았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선생들 앞에 모였을 때 정호와 순자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승전보는 여기서 멈추었다. 승리의 여신이 우리를 외면한 모양이다.
경상북도를 대표한 내리초등학교 팀은 3등까지만 시상하는 대회에서 5등으로 밀려났다.
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각 학년의 1등은 대통령기와 우승컵, 두둑한 상금과 상장, 상품 등을 받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2, 3등도 상패와 상금, 상장, 상품을 받았다. 그밖의 팀은 순위를 적은 참가증서와 참가 기념품을 받는데 그쳤다.
“몰라서 못쓴 것도 많지만 국어 3번도, 산수에 7번 문제도 내가 다 아는 긴데 그걸 틀리고 ······ 내가, 이 돌대가리가 우리 편 점수를 다 까먹은 기라요.”
발을 동동 구르던 순자는 이실직고를 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무도 순자를 탓하지 않았다. 나는 입상을 못한 것이 분하거나 아쉽지도 않았다. 응원단이나 참가학생들의 그 잘 생기고 세련된 것만 봐도 우리는 애초에 역부족인 것이다.
“괘않다! 제군들은 마지막까지 너무나 훌륭하게 잘해주었다. 다른 팀들은 모두 도청 소재지의 명문 학교들이고 면소재지의 학교는 30개팀 중 우리가 유일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5학년에서 5등이나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또 최소한 경상북도 대표로서는 제일 좋은 성적을 낸 것이다. 제군들 정말 수고 많았다. 자, 이제 남은 시간은 서울구경을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풀도록 하자.”
교장 선생의 말에 우리 셋의 표정은 금방 풀어졌다. 경상북도 대표 중 6학년은 6등, 4학년은 8등을 했다고 한다. 어떻든 이제 마음의 부담은 없어졌다.
일행은 점심을 먹고 여관에 들려 잠시 짐을 비운 후 곧바로 3명의 학생이 가장 원했던 창경원으로 향했다.
아, 창경원은 정말 멋진 곳이다! --- 우리는 상상하고 고대했던 코끼리와 사자, 기린, 공작새 뿐 아니라 온갖 희귀한 동물들을 보았다.
솜사탕을 들고 하마, 악어, 낙타, 곰도 불곰에다 반달곰, 시베리아 백곰까지, ······ 원숭이들이 담배를 빼꼼빼꼼 피우다 구경꾼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고는 “엿먹어라.” 식으로 한팔을 훑어보이는 재롱에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겨울의 평일인데도 손님은 많았고 단체로 온 학생들도 보였다. 선생들은 한 바퀴만 우리와 함께 돌고 차를 마시겠다고 매점에 들어갔지만 우리는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몇 바퀴를 돌았다.
저녁 식사 후 교장 교감 선생은 피로하다며 여관으로 들어갔지만 우리는 이원주 선생의 인솔로 종로거리를 걸었다. 서울생활을 오래 한 이원주 선생은 정말 친절하고 훌륭한 가이드였다. 밤거리의 서울은 더욱 웅장하고 번잡스러우며 화려했다.
인도에는 포장마차와 악세사리나 운동화 등을 파는 노점들이 널려 있고 빵집이나 악기점 같은 것도 크고 화려했다. 이어진 빌딩 중에도 높아 보이는 빌딩의 층수를 우리가 세어 봤는데 20층이 넘자 자꾸 헷갈린다. 그때 이원주 선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빌딩들을 짓누르듯이 우뚝 서있는 검은 색의 탑 같은 건물이 보였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삼일빌딩이고 이름처럼 31층이나 된다고 한다.
파고다공원이나 보신각 같은 명소도 겉으로 지나쳤지만 구경은 한 셈이다. 종로거리에는 단성사, 피카디리 같은 극장과 대구에서 감탄한 것 같은 큰 포스터도 보였지만 서울에서는 별로였다. 그보다는 다른 대형 간판들과 화려하게 명멸하는 네온사인에 더욱 눈길이 갔다.
우리는 걸어서 서울시청 청사도 구경하고 주위의 빌딩들을 겉으로 둘러본 뒤 여관까지 오는 길은 지하철을 탔다. 기차가 땅속으로만 다니다니, ······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타보니 속도도 빠르고 신기해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지하철은 순식간에 우리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식사를 끝내자 곧바로 경복궁으로 향했다. 그 전에 광화문과 중앙청도 먼발치에서 보았다.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 건물로 일본놈들이 지었다는 그 웅장한 석조건물에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부처가 들어있다고 한다.
경복궁과 경회루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교장 선생은 교감 선생에게 건물의 유래며 건축양식 등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창경원이나 종로거리처럼 그리 신기하지는 않았다.
경복궁을 나와서는 교장 교감 선생과 헤어졌다. 관광도 나이에 따라 흥미나 호기심이 다를테니 따로 노는 것이 우리들도 좋았다.
햄버거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다. 빵을 한입 물으면 그속에 향긋한 고기가 씹히고 콜라와 함께 먹으니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정호와 내가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고 이원주 선생은 한 개씩 더 주문했다. 두 개를 먹으니 밥 한그릇을 먹은 것처럼 배가 그득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남대문을 구경하고 다시 걸어서 우리나라의 모든 돈을 관리한다는 한국은행 건물을 보고는 신세계백화점에 들어갔다.
아, 이곳 역시 창경원만큼 놀라운 곳이다. 세상에,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물건들이 널려 있다니 ······ 마치 동화 속의 보물창고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으로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라는 신기한 것을 타고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감탄했다.
“새임, 물건 하나 사도 될까요?”
순자가 머플러와 장갑 등이 진열된 판매대 앞에서 이원주 선생에게 물었다.
“왜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니?”
순자가 가리킨 것은 상반신만 있는 마네킹의 목에 두른 목도리였다. 내 눈에도 탐나 보이지만 나는 이 엄청난 보물창고에서 내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그런데 백화점은 물건 값이 좀 비싸단다. 여기서는 실컷 눈구경, 영어로는 아이 쇼핑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구경만 하고 남대문시장으로 가보자.”
친절한 가이드의 권유대로 잠시 후 발걸음을 옮긴 남대문시장은 또 하나의 별천지였다.
들어설 때는 읍내의 장터와 비슷해 보였다. 좌판에서 국밥을 팔기도 했고, 과일이나 건어물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러나 몇걸음 더 들어서자 끝없이 점포가 이어지며 정말 없는게 없을 정도로 온갖 상품들이 널려 있었다.
옷가게도 신사복, 숙녀복, 아동복에 군복 종류들이 따로 있었고 구두나 운동화, 장남감이며 미제나 일제 등 외제만 파는 가게, 튀김 전문집이나 떡볶이, 순대국밥집 등 ······ 신기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물건들을 팔면서 같은 업종의 점포들이 몇 개씩이나 몰려있다는 점이다.
“자, 우선 각자 사고 싶은 물건들을 골라봐. 혹 이것으로나 너희들 가진 돈으로 부족하면 선생님이 빌려줄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우리에게 각각 3만원씩을 주었다. 나는 서울 나들이를 한다니까 엄마가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지만 몰려다니다 보니 한푼도 쓸 틈이 없었다. 그런데 3만원씩이나 주다니 ······ .
뒤에 안 것이지만 우리가 대구의 2차 예선이나 서울의 결선대회에 참가할 때 지방학교는 정부에서 여비와 숙박비 등의 경비가 나온다고 한다. 이원주 선생은 교장 선생에게 졸라 우리들의 쇼핑비를 받아온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가죽 장갑, 영숙 영미 누나를 위해서는 무늬가 화려한 머플러와 머리핀을 샀다. 그래도 돈이 남아 엄마에게도 누나들과 같은 머플러를 하나 더 샀다.
이날도 관광은 밤까지 이어졌다. 이 넓디넓고 온갖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찬 서울은 한달을 쏘다녀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튿날은 서울 관광에 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가이드인 이원주 선생이 서울의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루의 일정을 잡았다. 사실 그녀는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에 왔건만 우리들 시중을 드느라 꼼짝도 못했던 셈이다. 그래도 그녀는 우리들의 관광일정을 꼼꼼히 마련해 주었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했을 때 정호는 영화를, 순자는 다시 한번 남대문시장을, 나는 한강을 보고 싶다고 했다.
교장과 교감 선생은 전날 오후처럼 자기들끼리 관광에 나섰다.
이원주 선생이 일러준 대로 우리는 먼저 버스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넌 뒤 한강을 실컷 보고 다시 인도교를 건넜다. 양쪽 강변에 번화가의 빌딩들처럼 높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 단성사에서 <죠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커다란 백상아리가 해수욕장에서 수영객들을 잡아먹고 그것을 잡으려는 전문 사냥꾼까지 해치고 배를 침몰시키는데 그 흉측한 모습이 너무 실감나 순자는 몇차례나 비명을 질러댔다.
영화관을 나서자 정호가 괴로운 표정으로 배탈이 난데다 감기가 더 심해져 “혼자 여관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했다. 친구가 아픈 것은 안타까웠지만 모처럼 서울 관광을 중단할 수는 없다. 순자와 나는 동대문시장을 구경하고 둘이서만 저녁을 사먹고 밤거리를 배회하다 늦게 여관으로 돌아왔다.
“니 좀 괘않나?”
우리는 정호의 안부부터 물었다.
“응, 좀 쉬고 선생님이 사주신 약도 먹었더니 이제 좀 괘않다.”
교장 교감 선생과 이원주 선생은 이미 여관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4층 건물인 여관의 1층 온돌방 2개를 빌려 각각 남자 3명과 여자 3명이 함께 묵었다. 정호와 나는 겨울철이라 꼭 닫은 방안에서 교장 선생이 연신 피워대는 담배연기 때문에 자주 기침을 하면서 가끔은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어야 했다.
그날도 우리는 여관의 4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겨울바람이 불어오지만 서울의 야경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니 그거 아나?”
“뭘 ······ ?”
뚱딴지 같이 묻는 질문에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교장 선생님캉 교감 선생님이 붙어먹은 거 ······ ”
“뭐라꼬, 니가 봤나?”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붙어먹었다는 것은 두사람이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 직접 보고 끙끙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정호는 빙긋 웃으며 으스대듯 자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 오후 배탈 때문에 먼저 여관에 돌아온 그는 옥상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방으로 내려가는데 3층 복도에서 교장 선생을 봤다. 아는 체를 하려다 행동이 좀 이상해 보여 계단 옆으로 몸을 숨겼는데 교장 선생은 한 객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살피며 교감 선생이 나타나더니 그 방에 노크를 하고 교장 선생이 그녀를 맞으며 방문을 닫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니 눈으로 보지는 않았잖나? 한방에 있다고 꼭 붙어먹는다고는 ······ ”
나는 잘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도 교장과 교감은 제일 높은 선생이다. 평소 두사람 다 근엄했고 학생들도 어려워했는데 학생들과 같이 묵으면서 그런 짓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보지는 못했어도 소리는 들었다.”
마침 복도에 다른 인기척이 없어 정호는 문앞에 귀를 갖다 대었다.
“역시 경숙씨는 이 나이에도 몸매는 날씬해.”
“아이, 사모님 그 큰 것에 비하면 가슴도 쪼매한데 ····· ”
이런 말들이 들려왔고 침대가 찌걱거리고 교감이 콧소리로 신음을 내는 것도 똑똑히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부지 어무이 할 때나 똑같은데 내가 그걸 모르겠나?”
그의 말은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담뱃진으로 몸 냄새가 고약한 교장과 바짝 마르고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입술은 얇아 늘 차가운 인상을 주는 교감의 빠구리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서울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밤 9시쯤 여관을 나서 서울역에서 밤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교장과 교감 선생은 오늘도 자기들끼리 들릴 데가 있다고 했고 이원주 선생도 오전에 따로 볼일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원주 선생이 살짝 나를 따로 불렀다.
“너 오늘은 몸이 아파서 오전은 그냥 여관에서 쉬겠다고 해. 오후에 정호 순자와 만날 수 있도록 데려다 줄테니까. 나는 나갔다가 10씨쯤 다시 돌아올게.”
나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가슴이 뛰었다. 우리는 잠시 후 빠구리를 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근 열흘동안 그녀와 침식이며 나들이를 함께 하면서도 직접 안아볼 수는 없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오죽하면 그저께는 혼자 자위까지 한 터였다.
모두 여관을 나서고 한 시간쯤 뒤 이원주 선생만 되돌아 왔다. 그녀는 나를 여자들만 묵던 바로 옆방으로 데려갔다. 방에 들어서자 우리는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의 입술부터 찾았다.
“시간이 별로 없지만 우선 좀 씻어야겠다. 어젯밤 교감 선생님이 하도 오래 욕실에 머물러 있어 샤워도 못했어.”
그녀는 겉옷만 벗은 채 속옷바람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완전히 알몸이 되어 욕실문을 벌컥 열었다.
“어머나!”
그녀는 비명과 함께 등을 보이며 돌아서서 그래도 두손으로 젖통을 가렸다.
“나 곧 끝낼게. 잠간만 기다려.”
나는 뒤에서 그녀의 젖은 몸을 껴안았다. 벌떡 선 자지가 그녀의 엉덩이골에 닿았다.
“새임을 씻겨 들일라고요. 새임과 같이 씻고 싶어서요.”
“아이 참!”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비누칠해져 있는 샤워타올을 뒤로 건넸다. 넓은 등판과 풍만한 엉덩이를 나는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문질렀다. 등 쪽을 다 했으니 이제는 앞 차례다.
“아이 참!”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하며 돌아선 채 여전히 두손으로 젖통을 가렸다. 참 여자는 이상하고 복잡한 동물이다. 잠시 후면 그 젖통에 내 손과 입이 닿고 자지와 보지도 섞일텐데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젖가슴과 아랫배를 거쳐 허벅지와 다리까지 씻는 동안 이제 그녀는 손으로 어디를 가리지 않았다. 샤워기로 비눗물을 다 닦아내자 그녀는 타올에 비누칠을 하고 마주 섰다. 이제는 내 차례인 것이다.
그녀 역시 나를 등판에서 엉덩이까지, 그리고 가슴과 배 허벅지를 꼼꼼하게 씻겨주었다. 그리고 타올은 내려놓고 손에 비누칠을 해서 자지와 불알도 씻겨주었다.
나는 그녀의 보지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은 특별 서비스다. 미끌 거리는 비누 거품 속에서 그녀의 손바닥 마찰에 자지가 벌떡거리면서 온몸이 짜릿해 왔다. 그 동작이 조금 더 오래 계속되었다면 그대로 사정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함께 목욕까지 하고나니 기분은 더 산뜻하고 열정이 쉽게 달아올랐다.
먼저 키스를 하고 젖가슴을 문지르고 빨아대다 내 입은 자연스레 그녀의 보지로 향했다. 그녀는 부끄럼을 타거나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랑이를 벌려 주었고 그녀가 몸을 비틀며 신음을 낼 때까지 나는 혀 끝으로 질구를 콕콕 찌르고 공알을 집중적으로 빨아 주었다.
답례처럼 그녀도 내 위에 엎어져 자지를 빨아 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 거의 그랬듯 나는 슬슬 몸을 돌려 69자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빠구리는 항상 그녀의 집 침대 위에서 벌어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여관방의 요 위에서다. 침대와 감촉은 좀 달랐지만 낯선 여관방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새로운 느낌과 스릴도 더 하다.
가만히 보니 그녀는 여관방이라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애써 터져 나오는 소리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음이 점점 커지자 그녀는 내 방아질을 중단시키고 자신이 위로 올라왔다. 잠간 숨을 돌리며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러나 점점 강도가 세어지자 그녀의 젖통이 더 크게 출렁이며 신음도 커져갔다. 나는 젖통을 움켜쥐어 출렁임을 멈추게 했지만 그래도 아쉬어 몸을 일으켜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감싸며 더욱 엉덩이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으음! ······ 으음! ······ 으으! ······ 으으 ······ ! 윽!”
또 한번의 절정을 맞았는지 그녀는 애써 소리를 죽이며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잠시 흐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그녀를 눕혀놓고 방아질의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사정할 때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뒤처리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마주 보며 한동안 서로를 애무했다. 그녀와는 특이 이런 뒷마무리가 감미로웠다. 손끝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크고 맑은 눈동자를 보면 내가 그 속에 빨려드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살짝 감은 눈의 유난히 긴 속눈썹을 보면 꿈 꾸는 여인을 나 역시 꿈에서 만난 것 같은 아늑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너와 함께 했던 게 겨우 열흘 전이잖아. 한달에 한번으로 약속을 해놓고도 내가 너무 밝히는 여자 같지?”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아이라예. 저도 새임캉 맨날 얼굴을 맞대고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막상 둘만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어요.”
“정말 너도 그랬어? ······ 아마 우리가 다 여행을 했다는 것 때문에 더 마음이 들뜬 것 같아. 이를테면 쉽게 유혹당하는 여행자의 일탈(逸脫)이지. ······ 아, 정말 너와 단둘이만 어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자의 일탈 ······ 그 말을 듣자 나는 또 한쌍, 일탈을 보인 여행자가 생각났다.
“새임, 교장 선생님하고 교감 선생님이 붙어먹었어예?”
“저런 ······ ! 학생들 앞에서 조심들 하시지.”
불쑥 튀어나온 나의 말에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니?”
“제가 안게 아니라요.”
“알지 못했다면서 그런 말을 ······ ?”
“정호가 들려줬어요.”
“정호가 뭐라고 했는데 ······ ?”
나는 정호가 말해준 내용을 간단하게 들려주었다. 3층의 한방에 교장과 교장이 차례로 들어갔고 거기서 침대가 삐걱거리고 속삭임과 신음도 배어나왔다는 것을.
“저런 ······ !”
그녀의 눈과 입이 한껏 커지며 놀란 표정을 짓다가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물더니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문제가 너무 심각하구나.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그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녀가 어떻게 나서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커지면 나도 고자질쟁이로 몰릴 것이다.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일었다.
“우리도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영원한 비밀이라는 것은 없는데 ······ 너와 나는 정말 답답하고 곤혹스러워. 아,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지?”
결국 그녀와 나의 문제로까지 걱정이 이어진다는 것에 나도 곤혹스러웠다.
이원주 선생과 나는 오후에 정호 순자와 합류했다. 오늘은 서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모두 함께 하기로 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가끔 군것질만 했다.
한 집에 들어가 이원주 선생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 ······ 그런데 가게의 꽤 많은 손님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고 그 맛은 읍내 가게에서 사먹는 콘이나 바와는 차원이 다르게 맛있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오자 이원주 선생은 정호를 살짝 불러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기에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정호가 방에 들어오더니 교장 선생의 담배연기를 맡으면서 함께 TV를 보고 있는 나를 눈짓으로 불러냈다. 우리는 4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니 그거 다른 누구한테라도 말한 사람 있나?”
“뭐를 ······ ?”
“어제 내가 여기서 해준 말, 교장캉 교감선생님이 빠구리했다는 말 ······ ”
나도 짐작은 했었지만 역시 그 말이다.
“아니.”
나는 좀 마음이 켕겼지만 시침을 떼었다.
“휴, 다행이다.”
나를 불러내며 불안하고 조급했던 표정이 좀 가라앉았다.
“니, 참말이제?”
“하모! 내가 누구한테 말할 시간이라도 있었나?”
“니, 앞으로도 절대 이 일은 입밖에 내면 안된다! 약속할 수 있제?”
교장과 교감이 빠구리를 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나의 경우 이원주 선생과의 그런 문제도 있어 남에게 퍼뜨린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참말로 그 약속은 꼭 지키기다!”
다시 한번 다짐하며 그가 내민 새끼 손가락에 내 것을 걸려고 하는데 그는 손바닥을 폈다.
“이건 남자대 남자로, 대장부의 명예를 걸고 하는 기다. 그러니 악수로 하자. 이건 신사협정이다.”
나는 그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빙긋 웃었다.
“어제는 신이 나서 들려주더니 와 갑자기 내 입은 틀어 막을라 카노?”
“그기 내가 깜빡 잘못 생각한 기다. 그분들도 각각 가정이 있고 나름대로 지금껏 쌓아온 사회적 신분도 있는데 우리가 나불거려가 그런 걸 망치마 얼마나 못된 짓이고? 이솝우화에도 나오제. 어린애가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니 개구리가 너희는 장난으로 하지만 우리는 목숨이 걸린 거라고 ······ .”
“니 말이 맞다. 우리가 신사협정까지 했고 내 입은 언제나 봉창할 거니 마음 놓아라.”
“그래, 고맙다. 사실 이런 일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만 서양사람들은 영어로 프라베트, ······ 아니, 프라이버시, 그래 프라이버시라는 말이 우리말로 하자면 사생활이라는 긴데 그렇게 사생활은 서로 존중해준다 카더라. 우리 선생님들의 사생활도 우리가 보호해 드려야지.”
“정호야.”
나는 좀 정색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니나 내나 다 국민학교 5학년짜리 천둥벌거숭이 머슴아들, ······ 나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니는 말이나 생각이 우째 그리 어른스럽노?”
나는 절대로 그를 추켜세우려 한 말이 아니었다. 두선생의 가정이나 사회적 신분을 생각해서 배려하고 프라이버시를 들먹이는 것에 나는 정말 감탄했다. 나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히 히 ······ !”
그는 좀 멋쩍은 듯 웃고 말했다.
“사실은 우리 담임선생님한테 인생공부 좀 했다. 선생님은 정말 실력이 좋아 우리를 잘 가르쳐 주시지만 또 세상 일도 많이 알고 정말 착한 분이잖나.”
정호의 이원주 선생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그를 설득하는데도 큰 힘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안다는 걸 우째 아셨을까?”
이 말을 하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데 나는 찔끔했다. 그 시선이 좀 더 계속되었다면 나는 고자질을 시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 잔머리를 굴렸다.
“니가 훔쳐보는 걸 선생님이 또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아아, 그렇구나! 바로 그거야. 남을 훔쳐볼 때 나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걸 조심했어야 하는데 ······ ”
뜻밖에 바로 내 말을 수긍해주기에 나는 한가지 마음의 짐을 벗었다.
그날 밤 10시 기차를 타고 우리는 서울을 떠났다.
3박4일의 짧고 분주한 일정의 여러 장면들이 깜깜한 차창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학술경진대회의 참가도 참 귀중한 경험이었다.
온갖 다양하고 화려한 많은 것을 간직한 서울, 그곳에 살고 싶다. 언젠가 나의 인생에 그런 날이 있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
여관방이란 곳에서 처음 해본 이원주 선생과의 뜨거웠던 여행자의 일탈도 잊지 못할 추억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 참, 그곳에서는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도 빠구리를 했지. 그러나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의 스캔들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정호와 나의 신사협정은 잘 지켜진 셈이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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