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70
겨울방학이다.
나 같은 벽촌의 소년에게는 사실 방학이라면 여름방학이 훨씬 좋다. 우선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고 산과 들판에는 먹을거리도 꽤 풍성하다.
산딸기며 앵두, 복숭아, 토마토, ······ 눈을 돌리면 먹을 것이 널려 있다. 밭주인에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수박이나 참외 서리도 즐거움의 하나다.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고 개구리도 큰 놈은 다리만 찢어 구워먹으면 닭고기 맛이 난다.
저수지나 개울에서 헤엄을 치고 목욕하다 보면 긴 여름날의 해도 어느새 져버린다. 그럼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둘러앉아 옥수수나 감자를 삶아먹으며 어른들의 옛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겻들여 진다.
그렇다고 겨울방학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일단 학교에 안 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원주 선생을 못 만나고 틈틈이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말타기나 축구를 하는 즐거움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소년들에게는 매일 학교를 가야한다는 것이 지겹기도 한 것이다.
겨울철에도 놀이는 많다. 얼어붙은 논이나 냇물에서 팽이치기나 썰매를 탈 수도 있다,
너무 추우면 군불을 때고 아랫목에서 그래도 춥다면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화롯불을 쪼이면서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는 것도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포근함 중 하나다. 가장 좋은 것은 물론 학교를 안가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겨울방학도 온전히 쉬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전국학술경진대회’라는 행사의 군(郡) 예선에 우리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술경진대회는 국민학교의 4, 5, 6학년 중 각각 3명씩이 한 팀이 되어 필기시험을 봐서 공부실력을 겨루는 것이다. 정부에서 국민학교 학생들의 학력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것인데 전국 1등을 하면 대통령상과 두둑한 상금과 상품도 받는다는 것이다.
올해가 벌써 5번째라는데 나는 우리학교 대표로 뽑히기까지 그런 대회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런데 점점 더 알게 되니 정말 국민학교나 학생들에게는 대단한 행사였다.
70년대 중반에 전국규모의 행사로는 ‘전국체육대회’라는 것이 있었지만 국민학생과 중학생은 여기서도 분리되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라고 따로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예선조차 한번도 참석한 일이 없었다. 또 요즘처럼 대통령기배 전국 초등학교 야구대회나 축구대회 같은 국민학생이 참가하는 전국규모의 대회는 아예 없었다.
따라서 학술경진대회는 국민학교나 학생들에게 매우 관심있고 중요한 행사였다. 물론 대회에 나가서 겨룰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학교와 학생에 한해서이겠지만.
이 대회는 전국의 모든 국민학교 4, 5, 6학년 학생들에게 참가자격이 있다. 1차 예선은 전국의 군단위로 벌어지며 1등들이 도(道)별로 다시 2차 예선을 치르고 우승팀들은 서울의 본선에서 결전을 치르게 된다.
우리 내리국민학교도 첫 대회 때부터 초청장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이를테면 기권을 해왔으므로 학생들은 그런 대회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하기야 그런 결정을 한 교장의 판단이 옳을지도 모른다. 큰 학교나 대도시의 좋은 학교에 비해 벽촌의 각학년마다 겨우 1개반씩만 있는 따라지 학교는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해도 실력차이가 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야구글러브도 제대로 못 만져본 우리가 전국 야구대회가 참가한다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일이 될 것이다.
우리학교가 군 예선에 참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이원주 선생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일류 학교에 근무했던 그녀는 “실력이 모자라도 학생들에게 도전의 기회는 주어야 하고 그 기회에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며 면학의 욕구도 갖게 되고 너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경험을 얻게 된다.”며 참가를 강력히 주장했고 어쩔 수 없이 교장 선생도 동의했다.
돈이나 장비 같은 것이 따로 드는 것도 아니니 더욱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학교의 참가가 ‘대사건’이라고 할만큼 모두가 놀랄 일의 단초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겨울방학이 시작 된지 3일 후 군의 예선대회가 시작되었다.
4, 5, 6학년의 담임 선생과 각 학년의 3명씩 참가자들이 일찍 교무실에 모였다. 교장 선생도 나와서 “잘 하고 오라.”는 격려의 말을 해줬다.
5학년의 출전자는 2학기 중간의 성적대로 1등인 반장 김정호, 2등인 나, 그리고 3등인 부반장 정순자였다.
“이거 괜히 나가서 들러리만 서고 망신당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6학년 담임인 심재철 선생이 풀죽은 표정으로 말하자 4학년 담임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대회는 읍내의 화도국민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화도국민학교는 일제시대에 세워져 우리 군에서 제일 유서가 깊고 학생 수도 많은 학교다. 강당도 큼직해서 우리학교 전체 건물면적보다 커보였다.
참가팀은 우리를 포함해 모두 12개 팀이다. 우리 군내에 국민학교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전처럼 기권했다면 11개 학교가 치렀을 것이다.
한겨울이지만 강당에는 톱밥난로와 몇 개의 석유난로를 피워놓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책상 걸상이 3개씩 12줄로 놓여있고 똑같은 모양으로 뒤로도 2줄이 더 있어 4학년, 5학년, 6학년의 순서로 앉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교사와 학부모 같은 어른들과 응원단인 듯한 학생들도 거의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만큼 학교에 따라서는 중요하고 관심이 있는 행사인 모양이다.
경기는 50분씩 2시간을 필답시험으로 치루는 것이다. 첫시간은 국어와 과학 위주의 문제들인데 주관식과 객관식이 적당히 섞인 2장의 시험지를 풀게 되어 있었다.
문제를 절반 이상 풀어가다 내가 놀란 것은 문제가 의외로 쉽다는 것이다. 한 문제는 전혀 답을 쓸 수 없었고 몇 개 아리송한 문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 있게 정답을 써 내려갔다. 학교에서 평소에 시험을 칠 때와 별다른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수고 했다. 잘 들 쳤니?”
첫 시간이 끝나고 이원주 선생 앞에 모였을 때 반장인 정호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새임, 문제가 생각보다 쉽던데요?”
“그래? 다행이군. 그건 네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력이 좋기 때문이지.”
둘째시간은 산수와 사회, 그리고 미술 음악과 관련된 문제도 몇 개씩 있었다. 역시 전혀 답을 알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고 아리송한 것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쉽다는 느낌이었다.
시험이 다 끝난 뒤 순자는 자신이 없는 산수와 음악의 문제를 우리에게 물었다. 김정호가 푸는 법과 정답을 알려주었다.
“아, 그래 풀마 되는데 ······ 우리가 다 배운 긴데 ······ 나는 정말 꼴통인갑다.”
“누구나 꼭 만점을 맞는 것은 아니야. 너희들은 다 최선을 다 했으니 잘 한거야.”
순자가 울상을 짓는데 이원주 선생이 위로했다.
참가자며 응원단들이 보고 있는 중에 교사들이 채점을 시작했고 전국적인 대회라 그런지 다른 2명의 교사들이 그것을 다시 검토하고 집계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상장에 학교 이름을 써넣고 발표를 하게 될 때 참가자들은 모두 연단 앞에 학교별로 섰다.
“이제부터 전국학술경진대회 화도군 예선의 입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우선 4학년의 3등부터 말씀드립니다. 3등, 교촌국민학교! ······ ”
해당학교 학생들인 듯 작은 박수소리가 나오고 상장을 받아 들었고 2등도 같은 순으로 진행되었다.
“1등, 화도국민학교!”
“와 ---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도 요란했다. 한쪽에 몰려있는 어른과 학생의 대부분이 화도국민학교의 응원단이었다.
5학년 입상 발표가 이어졌다.
“3등, 대소국민학교!”
박수소리는 4학년의 2, 3등 때처럼 작았다.
“2등, 화도국민학교!”
“어 ······ ?”
누군가 신음처럼 소리를 냈고 잠시 틈을 두고 박수가 나왔다. 아까 4학년의 1등 발표 때 응원했던 사람들이지만 함성도 없고 박수소리는 힘이 없었다.
“1등, ······ ”
그 다음 소리를 나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아, 우리다!”
우리학교 6학년의 누군가 소리치며 박수를 칠 때 나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조금 전 들은 말이 “내리국민학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리국민학교가 어디 붙은 기고?”
“그기사 내리에 있겠제.”
화도국민학교 줄에서 그런 말에 이어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짜슥아, 느그는 웃음이 나오나?”
6학년 줄에서 누군가 말하자 웃음소리는 쑥 들어갔다.
이어진 6학년의 성적발표에서 1등은 역시 화도국민학교였고 함성과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아보였다. 그것은 바로 5학년의 1등 탈락 때문이었다.
대회를 늘 주최해 온 화도국민학교는 1회 때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4, 5, 6학년의 1등을 석권해 왔다는데 오늘 5학년만은 어디 붙었는지도 잘 모르는 내리국민학교라는 복병을 만나 그 영예를 잃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1등을 했다. 상장과 함께 군수의 선물이라는 두툼한 국어사전도 각각 상품으로 받았다.
“이 아이들 점심은 먹여야죠.”
처음에는 뿔뿔이 흩어질 것 같았지만 이원주 선생의 제의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중국집은 좌석이 꽉 차있었다. 다른 학교의 참가자들이 앞서 점령을 했기 때문이다.
짜장면과 어쩌면 탕수육을 먹을 수도 있었는데, ······ 아쉬었지만 가락국수와 만두로 점심을 때웠다.
그 자리에서 6학년 담임 심재철 선생이 우리를 칭찬해줬다.
“느그들 5학년이 정말 잘 해줘서 그래도 내리국민학교 체면은 세웠네. 수고들 했다.”
“이게 우찌 우리가 잘한 깁니까? 담임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기지요.”
정호의 말에 심재철 선생은 좀 무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그 말에는 공감이 갔다.
1등을 한 5학년 팀은 바로 헤어지지 않고 다시 학교로 가서 교장 선생에게 보고겸 인사를 했다.
“제군들! 정말 대단한 활약을 했다. 우리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준 것에 대해 교장으로서 심심한 감사와 축하를 전하는 바이다.”
전교생이 조회를 할 때 단상에서 연설하는 것처럼 말투는 딱딱했지만 파안대소를 하는 것 보면 기분은 무척 좋은 모양이다.
“자, 이것은 개학식 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다시 수여하도록 하겠다.”
교장 선생은 우리가 받은 상장과 꽤 두툼한 국어사전을 회수해 갔다. 그때까지 우리집에는 국어사전이라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생긴 것인가 빨리 한번 펴보고 싶었는데 개학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아쉬었다.
“이원주 선생님,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구 대회까지 참가하게 됐으니 따로 모여 공부를 하거나 좀 더 준비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학술경진대회의 출제경향은 5학년 교과서뿐 아니라 지금껏 배운 전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며칠 동안 벼락공부하는 것으로 별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진정하고 평소 쌓은 실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하기사 ······ 나도 몇 년 전부터 들어온 거지만 명문학교들은 이 대회를 위해 수백명이 선발고사를 치루고 마지막 출전자 3명은 한달 이상 집중 교육을 한다는 소문이예요. 그래서 더욱 우리 학교의 참가에 엄두를 못냈지만 ······ 그리고 우리야 성적에 집착하기보다 참가에 의미를 두어야지.”
교장 선생의 말은 더 이상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으리라는 현실적 체념이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아 참, 기분이 쎄하다! 우리집에 같이 갈래? 엄마한테 보고도 하고, ······ 그라마 뭘 시켜 주든지 맛있는 거라도 해줄 끼다.”
학교를 나와 이원주 선생과 헤어지자 정호가 새로운 제의를 했다. 정호의 아버지는 내리면의 면장이었고 꽤 널찍한 기와집에 살고 있었다. 출전선수였던 우리끼리라도 좀 더 자축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호의 말처럼 그의 엄마는 우리가 1등을 했다는 소식에 아들을 껴안기까지 하며 좋아했다.
“야는 문영도라고 금촌리에 살고 우리반에서 2등 한 아다.”
순자는 이미 이 집에 와본 모양으로 인사만 했고 정호가 나를 엄마에게 소개했다.
“그래? 남자답게 잘 생겼네. 모두 드가거라. 내 곧 챙겨 갈게.”
듣기 좋게 한 말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주저앉은 곳은 정호의 독방인 모양이다. 벽에는 우등상을 비롯한 상장들이 가득 붙어있고 책장에는 꽤 만은 참고서와 소설책 몇권도 끼어 있었다.
정호는 1학년 때부터 줄곧 반에서 1등을 해왔고 3, 4학년에 이어 5학년 때도 반장을 맡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에 공부도 잘하지만 통솔력도 있고 자기주장이나 아는 것도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정호에 이어 2등을 했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4학년 때까지는 성적이 중간에 머물러, 그와 말하자면 노는 물이 달랐고, 5학년에 와서도 공부는 열심히 한 편이지만 그 밖에 시간이 나면 남자애들을 사귀기보다 빠구리 상대를 찾아 헤매느라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 오늘 정말 신나는 날이다! ······ 그 화도학교 갸들, ······ 부모들까지 몰려나와 법석을 떨다 우리 때문에 야코가 콱 죽은 거 봤제? 그 꼴을 보는 것도 너무 기분 좋더라.”
“그기 니가 잘 나서 그런 기가?”
순자의 아직도 들떠있는 말을 정호가 오히려 야코를 죽이듯 잘랐다.
“뭐라꼬 ······ ?”
“우리가 1등 한게 니가 잘나서 그런 거냐고 ······ ?”
순자는 잠시 혼란스런 표정을 짓다 약간은 볼멘 소리로 말했다.
“니가 시험은 제일 잘 쳤겠지만 나도 한사람 몫은 한 거 아이가?”
“그래. 니나 영도도 잘 했겠지. 하지만 그게 우리가 잘 나서 그런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고?”
순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나도 정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느그도 오늘 시험문제가 쉽다고 생각했제?”
“그래. 나는 전국대회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어려운 문제들이 나올까 쫄았었는데 ······ ”
“느그들 말처럼 나는 문제가 쉬워 오히려 놀랬다.”
나도 순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기 다 우리 담임선생님 때문인 기라.”
“그기사 당연한 기지. 내가 뭐라 캤나?”
“그러니 더욱 우리가 괜히 우쭐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생각해봐라. 그 선생님 안 만났으마 우리가 4학년이나 6학년 아들하고 뭐가 달랐겠노? 그런데 갸들은 쪽도 못썼는데 우리는 1등을 했잖나? 나는 정말 감동했다. 생각할수록 이원주라는 담임선생님이 우러러 뵈고 존경스럽고, ······ 그래서 그런 선생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라도 절대로 내가 우쭐대거나 뽐내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호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나는 좀 기가 죽었다. 나는 아직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었기 때문이다. 순자도 비슷한 기분인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오늘 무림소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 원래 형편없는 촌놈인데 진정한 무림의 고수를 사부로 맞게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가늠할 수가 없다. 아무하고도 싸워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강호의 고수들이 참가한 무술대회에서 얼떨결에 우승까지 하게되면서 비로서 나도 진정한 고수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사부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나는 괜히 남들 앞에 무예를 뽐내기보다 어디 계신지 모르는 사부를 찾아 나선다. ······ ”
언제부터 그런 줄거리를 짰을까, ······ 정호는 눈까지 사르르 감았다 뜨며 오늘의 감격을 상상속에서 다른 색깔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히 히 히, ······ 니가 무협소설 좀 읽더니 아주 소설 한편 쓰네. ······ 그럼 나는 미운 오리새끼 주인공이 될까? 맨날 못생겼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는데 어느날 보니 나도 매혹적인 백조가 되어 있는기라.“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사부가 없잖나?”
“사부 ······ ?”
“그래. 니를 백조로 만들어 주는 좋은 선생 ······ ”
“아! ······ 그럼 나는 발레리나로 할 기다. 나도 역시 형편없는 촌 가시내인데 좋은 선생님을 만나 콩쿨에서 우승까지 하는 ······ ”
상상의 나래를 펴며 희희덕거리는 중 정호의 엄마가 주문을 했는지 집에서 만들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 튀김과 사이다를 가져왔다.
“자, 남들 앞에서는 잰 체 안하더라도 우리끼리는 짱 한번 하자.”
순자의 제의로 우리는 사이다 잔을 함께 부딪혔다.
“나는 대구 대회에서도 잘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리의 지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 . 그래도 각자 교과서를 다시 훑어보며 자습이라도 하면서 준비 좀 하자.”
정호의 말에 순자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끼리 축하의 자리를 가진 것도 좋았지만 서로 다짐을 하면서 각오도 새로워진 기분이다.
곡 1주일 뒤 우리는 읍내에서 느즈막히 안동행 버스를 탔다. 안동에서는 또 몇시간을 기다려야 대구행 밤기차를 탈 수 있고 그래서 아침 6시쯤 대구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금촌리가 오지인데다 교통편이 별로 없어 힘들게 짠 일정이었다.
역시 대구대회에 참석하는 화도국민학교의 4학년, 6학년 팀은 이미 하루 전 낮차를 타고 대구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잔다지만 우리는 그런 융통성도 부릴 수 없었다.
출발에 앞서 우리는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의 칭찬과 격려의 훈시를 들었다. 그리고 경비에 쓰라고 흰 봉투 하나도 인솔자인 이원주 선생에게 건넸다.
“제군들이 정말 훌륭한 일을 해주어 우리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주었다. 이번 대구 대회도 최선을 다 해주기 바란다.”
그 훈시에 “이번에도 꼭 1등을 하라.”는 식의 말은 없었다.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배려일수도 있겠지만 감히 어떻게 1등을 하겠는가 하고 미리 체념했을 수도 있다.
안동 역전에서 찐빵을 먹으며 몇시간을 떨다 우리는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훈훈했고 승객이 별로 없어 우리는 오붓하게 4자리를 차지해 마주 앉았다.
밤이라 차창 밖의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삶은 달걀과 땅콩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정호는 대구에 2번이나 가봤기에 도착하기 전부터 대구의 거리며 건물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순자는 나처럼 대구가 처음이었다.
겨울이라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대구역에 도착해 해장국을 먹고 행사장인 수창국민학교로 향할 때는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여기가 중앙통이라는 길이다. 곧장 가마 반월당에서 앞산까지 이어지는 기라.”
정호가 신이 나서 설명하는데 길이 정말 차가 몇줄로 다닐만큼 넓고 끝이 안보이며 4~5층짜리 빌딩들이 줄지어 있어 과연 대도시다웠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도 예선에서도 또 1등을 했다.
군 예선 때보다 문제가 조금은 더 까다로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별로 막힘없이 답을 써낼 수 있었고 정호와 순자도 “비교적 잘 친 것 같다.”고 했는데 발표를 보니 또 1등인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경상북도 내의 5학년 중에는 제일 공부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호와 나누었던 말을 생각하며 우리는 겉으로 아무도 우쭐대거나 잰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원주 선생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함은 더욱 굳어졌다.
4학년은 대구의 덕산국민학교, 6학년은 대회를 주최한 수창국민학교가 1등을 했는데 시상식에서 여전히 “내리국민학교가 어디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기차 시간이 적당하지 않아. 너희들 피로하기도 할테니 오늘은 대구 거리구경도 하고 좀 쉬다가 하룻밤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차를 타야겠다.”
이원주 선생의 일정계획을 듣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정도는 뽐내거나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걸릴 것도 없었다.
우리는 양키시장이라는 곳을 구경하다 냉면을 먹고 미제 초콜릿도 하나씩 입에 물고 거리를 거닐었다. 시장에는 온갖 물건이 풍성하게 널려있고 거리에는 사람이 북적댔다.
간판들도 화려했지만 내 눈을 가장 끈 것은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간판이었다. 우리 읍내에도 극장이 2곳이나 있고 역시 물감으로 그린 간판이 걸려있었지만 대구의 극장에 비하면 너무 초라했다.
이곳의 극장들 간판은 크기도 하지만 마치 배우들의 숨소리도 들릴 것처럼 얼굴이 꼭 닮은데다 화려한 색깔로 실감있게 그려져 있다.
“앗! 저거 이소룡이다!”
정호가 소리치며 간판을 한참 둘러보더니 앞에 붙여놓은 스틸까지 꼼꼼히 살펴보며 이소룡에 대한 지식을 순자와 나에게 떠벌인다.
이원주 선생이 빙긋 웃더니 표를 샀다.
우리가 본 영화 제목은 <맹룡과강>이었다. 스크린이 크고 화면이 깨끗한 것도 특별했지만 주인공이 매서운 눈초리로 괴상한 소리를 내다가 펄펄 날며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은 정말 신바람이 났다. 나는 이소룡뿐 아니라 그런 격투영화를 처음 보았다.
저녁은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식당도 무척 큰데 사람이 가득 차고 내리나 읍내의 중국집에서 먹어본 것에 비하면 맛도 훨신 좋았다. 밤의 대구거리는 네온사인으로 번쩍였다. 낮에는 극장의 선전간판, 밤에는 네온사인, 그것들만 구경하는 것도 새로워 계속 거리를 쏘다니고 싶었다.
다만 잠자리는 좀 불편했다. 꽤 널찍한 온돌방에서 남녀가 각각 떨어져 요를 폈지만 한방에서 잔다는 것이 좀 어색하고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 하루 호강은 했으나 강행군을 했기 때문인지 곧 잠이 들어 푹 잘 수 있었다.
아침 기차를 타고 지나치는 바깥 풍경을 보게 되니 더욱 기차 타는 맛이 났다. 게다가 우리는 밤차를 탔을 때처럼 삶은 계란과 땅콩을 먹었다. 기차에서 까먹는 삶은 계란 맛은 정말 갹별했다.
안동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읍내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 그리고 4학년 담임 강수남 선생까지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다. 더구나 3개의 화환을 우리의 목에 각각 걸어주고 이원주 선생에게는 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우리는 상장과 상품을 들고 교장 교감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리는 개선장군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 환영은 읍내의 가장 큰 식당으로까지 이어졌다.
숯불에 이글이글 갈비가 익고 있다. 불갈비라는 것을 나는 처음 먹어보는데 얼마 전 황달자네 집에서 먹어본 갈비찜과는 또 다른 감칠맛이 났다.
교장, 교감선생은 연신 이원주 선생과 우리를 칭찬하고 고맙다면서 번갈아 우리에게 많이 먹으라며 음식을 앞접시에 옮겨주기도 했다.
“허 허 허! 나는 우리학교에 너희 같은 수재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몰라본 것이 미안하더구나. 특히 ······”
“교장 선생님! 그래 말씀하시면 안 되지예.”
교장 선생의 우리들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는데 순자가 느닷없이 그 말을 잘랐다.
“그기 어디 우리가 잘나서 그렇습니까? 4학년이나 6학년이나 다 똑같은 내리국민학교 학생들인데 우리만 그리 된 것은 담임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지예.”
순자의 말은 너무 당돌하고 당당해서 어른들은 모두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킥 웃음이 나올 번했다. 그녀의 말은 꼭 1주일전 정호가 심재철 선생에게 한 말에서 한술 더 뜬 것이다. 그러나 교장 선생은 곧 그 말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암, 네 말이 맞다. 이선생님 아니었으면 어찌 우리학교에서 이런 경사가 있을 수 있겠소. 다시 한번 이선생님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이원주 선생은 고개를 한번 숙이며 답례하고 순자를 돌아보며 미소를 띠운 얼굴로 말했다.
“순자야. 어른들, 특히 교장 선생님 말씀을 그렇게 앞에서 반박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란다. 너의 그런 행동을 보고 내가 네 선생이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나를 잘못 가르쳤다고 놀릴지도 몰라.”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다시 그러지 않고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즉각 나온 순자의 반응이 너무 공손하고 말투도 또박또박해 오히려 나는 그녀가 장난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큰 대회에 2번이나 참가하면서 우리는 모두 좀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이선생님, 학술경진대회의 도 예선에서 등수에 들은 것도 그렇지만 결선에 진출한 것은 우리 군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오. 군수님도 아침에 축하인사를 전해주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을 잘 가르쳐 주셨소? 하여튼 이번 일로 지나온 내 인생까지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구료.”
교장 선생이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야 그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 따라줘서 좋은 결과를 맺은 것이지 ·····”
“그렇지만 저 애의 말처럼 이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소.”
“저는 어떤 아이들이나 원질은 보석덩어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교사는 그저 세공사인 셈이죠. 그러니 잘만 깎아주면 아이들의 본질이 광채를 내고 반짝거리는 거죠.”
“그러게 말이오. 나도 사범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학생들은 모두 그저 흰 도화지다. 교사인 내가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멋진 그림을 그리게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에 찌들면서 또 벽지학교에 부임하면서 그저 자포자기에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거죠.”
어려운 말들도 있었지만 교장 선생의 말은 솔직하면서도 좀 구슬프게 들렸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학교 전체에 좀 새 바람을 불어넣을 생각이오. 그리고 이왕 결선까지 가게 됐으니 며칠만이라도 이선생님이 합숙을 하며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꼭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의 최선을 한다는 의미에서 ······ ”
“얘들이 저의 집에서 기거하는 것은 좋지만 약간 문제가 ······ ”
이원주 선생이 좀 머뭇거리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제가 원래 음식솜씨가 형편 없거든요.”
“하 하 하! 이선생님이 못하는 것도 있군요.”
교장 선생이 큰소리로 웃었지만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우리집에서 합숙하도록 합시다. 집사람 음식솜씨가 괜찮은 편이고, 나도 뭔가 역할을 좀 해야지.”
교장 선생 일행과 헤어져 나오며 이원주 선생이 이번 서울결선에는 교장, 교감 선생이 함께 갈 것이라고 들려주었다.
“아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먹는다 카더니 ······ ”
정호가 약간은 볼멘 소리로 반응했다.
“너는 교장 선생님이 되놈이라는 말이냐?”
“아니, 꼭 그런 것은 ······ ”
정호가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나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속담은 알고 있다.
“하지만 새임 아니었으면 우리는 참가도 못했을 것 아입니까? 그 전에도 늘 기권을 해왔으니 ······ 그런데 결선에 나가게되니 교장 선생님이 생색을 내는 것 같아서 ······ ”
그 말에는 나도 좀 공감이 갔다.
“정호야!”
이원주 선생은 정호를 정답게 부른 뒤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통솔하고 경영하는 최고 책임자야. 모처럼 우리가 2차전까지 승리를 했으니 더욱 우리를 북돋고 응원해주시려는 거지. 더구나 두분이 같이 가시면 서울 관광도 더 알차게 ······ ”
“관광이 뭐라예?”
순자가 선생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말뜻도 알 수가 없다. 나도 그 말을 몰랐다.
“응, 유명한 장소나 명승지 같은 곳을 구경하고 즐기는 것이지.”
“그럼 우리가 서울 구경, 그러니 관광도 하는 기라에?”
“물론! 모처럼 갔으니 서울구경도 해야지. 교장 선생님이 가시니 한층 여유있고 잘 먹으면서 관광할 수 있을 걸.”
“와, 신난다!”
복순이 호들갑을 떠는데 돌아보니 정호도 나처럼 빙긋 웃고 있었다. 웃음 속에서 나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따져보자면 우리가 한 것은 남들보다 시험문제를 약간 더 맞힌 것일 뿐이다.
그런데 대구까지 가서 호강을 하고, 교장 선생 댁에서 잠을 자고, 그 사모님이 직접 해주는 음식을 먹게 되다니 ······ 더군다나 서울관광까지, 그런데 내게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 순자와도 작별인사를 하며 제각기 흩어질 때 이원주 선생이 다시 나를 불렀다.
“너 오늘 오후 6시쯤 우리집에 올 수 있겠니?”
내가 도착했을 때 이원주 선생은 화장을 지운 맨 얼굴에 원피스 차림이었다. 그런데 가슴 쪽을 보니 겉으로도 젖꼭지가 약간 도드라져 보였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그녀와 빠구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 옷차림 때문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배고프지? 우선 저녁부터 먹을까?”
“괘않심더. 배 안 고파요.”
세걸음을 옮기자 그녀와 코가 맞부딪힐 만큼 가까워 졌다. 아직도 키가 나보다 큰 그녀와 입술을 맞대려면 나는 먼산을 바라보듯 고개를 약간 젖혀야 한다. 나는 그녀의 두팔을 잡고 그렇게 했다. 그녀는 잠시 놀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적당히 숙여 주었다.
그녀의 혀가 먼저 들어왔고 세차게 빨아대다 혀를 들여 미니 그녀 역시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꺼플 헝겊이 가려있기는 하지만 젖통을 움켜 잡으니 뭉클한 감촉이 전해진다.
“하아 ······, 이제 그만! 우리 방으로 갈까?”
입술을 떼자 그녀가 먼저 내 손을 이끌었다. 침대 앞에 마주 선 우리는 이제 꺼릴 것이 없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서로의 몸을 애무하며 숨소리도 조금씩 거칠어 졌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풍만하면서도 뜨거웠다.
“꼭 한달을 채운다면 사흘 뒤지만 교장 선생님 댁에서 우리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아.”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러나 대구의 대회 때문에 그 생각에 매달릴 수 없었고 내일부터는 교장 선생 댁에서 합숙까지 계획되어 있기에 포기, 아니 마음 속으로 연기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는 이 상황에서도 포기나 연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알몸이 된 채 부등켜안고 키스와 애무를 이어갔다. 학술경진대회라는 번잡스런 형편에서도 이렇게 짬을 내서 얽힐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짜릿하고 욕구가 용솟음 쳤다.
“아아, 영도야!”
자지를 꼽자 그녀는 두덩이 맞닿을 수 있도록 엉덩이를 한껏 들어 올렸다.
이미 물기가 그득한 그곳은 질벽의 오톨도톨한 감촉이 느껴지면서도 아늑했다. 그곳이 조금씩 옴찔거리기 시작했다.
방아질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늘상 함께 거닐었던 길을 다시 걷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신음은 점점 커지며 비명으로 이어졌고 나도 자지에서 시작된 황홀감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더러는 잠시 멈추어 꽃구경도 하고 하늘을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세를 몇 번 바꾸어 주도적 역할도 번갈아 했다.
이렇게 살을 섞고 있을 때 그녀는 이제 망설임이나 부끄럼이 전혀 없었다. 큰 젖통을 출렁이며 내 위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스스로 엎드려서 나를 재촉하기도 하고, 누워서는 두다리로 나를 옭죄이면서 흔드는 엉덩이에 박자를 맞추듯 비명을 질러댄다.
어쩌면 그토록 이지적이며 모든 학생들에게 존경과 흠모를 받고 있는 그녀가 바로 그 제자와 알몸으로 얽히면 이렇게 변하는가.
음탕기와 성욕이 넘치는 것 같은 그녀의 반응은 나와 두 번 째 빠구리를 할 때부터 나타나 나를 혼란스럽게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좋기도 했다. 그 상반된 면모가 그녀를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아아! ······ 오늘은 어째 더 빨리, ······ 하아! ······ 하아! ······ 학!”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세 번째 절정에 몸을 떨어댈 때 나는 사정했다.
한겨울인데도 땀투성이가 된 우리는 뒤처리를 하고도 한동안 가쁜 숨이 진정될 때까지 서로를 어루 만졌다.
“영도야! 너희들 이번에 참 수고 많았어. ······ 학술경진대회에서 개인 성적은 원래 공개하지 않기로 되어 있지만 그래도 살펴보니 우리 팀에서는 네가 제일 성적이 좋더구나.”
그녀가 내 젖꼭지를 살살 부비다 아랫배를 거쳐 이제는 풀이 죽어있는 자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가 아무리 잘했다 캐도 그건 제가 잘나서 그런 기 아닙니더.”
“그건 무슨 뜻 ······ ?”
“그 모두가 새임의 은혜와 덕택이고 그래서 우리는 새임을 더욱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더.”
“얘들은 ······ ”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을 이었다.
“정호도 순자도 그러더니 너희는 왜 자꾸 그런 말을, 더구나 남들 앞에서 해서 나를 부끄럽게 하니?”
그 말에 나도 갑자기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처음에 한 것이 아니고 정호와 순자의 말을 들으면서 깨달은 것인데 어느 새 나도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솔직해야 했다.
“정호하고 순자하고 우리는 다짐을 했심더. 우리가 2번이나 대회에서 1등을 한 것은 모두 담임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고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으스대거나 잘 난 체 하기 말자고 ······ ”
“어쩌면! ······ 너희들은 마음가짐도 그렇게 순수하구나!”
잠시 뜸을 두었다가 그녀가 말했다.
“나도 이번 일로 새삼스럽게 보람을 느꼈어. 어쩌다 시골학교에 오게 되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풍성한 수확을 거둔 농부처럼 마냥 흡족한 기분이야.”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자지가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기운을 차리면 한번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지에서 뗀 손으로 내 귀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또 하나 큰 보람은 영도, 너를 만난 거야. 나는 너를 만나고서야 이 나이에 그걸 처음 느꼈단다.”
“뭐를 느껴예?”
나는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어 ······ ! 아이 참! ······ 괜히 그런 말을 ······ 여자들한테는, ······ 여자만 아는 그런 게 있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다른 여인들에게서 몇 번 들었던 오르가슴에 관한 것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그러나 다시 되묻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너를 만나면서 한껏 황홀한 파도가 나를 감싸 주지만 그것이 밀려가고 나면 다시 답답하고 후회가 가득안 감정이 그 자리를 차지하니 ······ 아!, ······ 너와 나는 정말 어떡해야 하는지, ······ 너무 곤혹스러워.”
열정의 시간이 지나면 가끔 그랬듯 그녀는 어두운 표정이다. 그녀가 나로 인해서 개인적 보람을 느꼈다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덤으로 그녀에게 곤혹이라는 짐을 얹어주었다는 점에도 나도 마음이 좀 무거웠다.
겨울방학이다.
나 같은 벽촌의 소년에게는 사실 방학이라면 여름방학이 훨씬 좋다. 우선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고 산과 들판에는 먹을거리도 꽤 풍성하다.
산딸기며 앵두, 복숭아, 토마토, ······ 눈을 돌리면 먹을 것이 널려 있다. 밭주인에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수박이나 참외 서리도 즐거움의 하나다.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고 개구리도 큰 놈은 다리만 찢어 구워먹으면 닭고기 맛이 난다.
저수지나 개울에서 헤엄을 치고 목욕하다 보면 긴 여름날의 해도 어느새 져버린다. 그럼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둘러앉아 옥수수나 감자를 삶아먹으며 어른들의 옛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겻들여 진다.
그렇다고 겨울방학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일단 학교에 안 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원주 선생을 못 만나고 틈틈이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말타기나 축구를 하는 즐거움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소년들에게는 매일 학교를 가야한다는 것이 지겹기도 한 것이다.
겨울철에도 놀이는 많다. 얼어붙은 논이나 냇물에서 팽이치기나 썰매를 탈 수도 있다,
너무 추우면 군불을 때고 아랫목에서 그래도 춥다면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화롯불을 쪼이면서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는 것도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포근함 중 하나다. 가장 좋은 것은 물론 학교를 안가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겨울방학도 온전히 쉬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전국학술경진대회’라는 행사의 군(郡) 예선에 우리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술경진대회는 국민학교의 4, 5, 6학년 중 각각 3명씩이 한 팀이 되어 필기시험을 봐서 공부실력을 겨루는 것이다. 정부에서 국민학교 학생들의 학력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것인데 전국 1등을 하면 대통령상과 두둑한 상금과 상품도 받는다는 것이다.
올해가 벌써 5번째라는데 나는 우리학교 대표로 뽑히기까지 그런 대회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런데 점점 더 알게 되니 정말 국민학교나 학생들에게는 대단한 행사였다.
70년대 중반에 전국규모의 행사로는 ‘전국체육대회’라는 것이 있었지만 국민학생과 중학생은 여기서도 분리되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라고 따로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예선조차 한번도 참석한 일이 없었다. 또 요즘처럼 대통령기배 전국 초등학교 야구대회나 축구대회 같은 국민학생이 참가하는 전국규모의 대회는 아예 없었다.
따라서 학술경진대회는 국민학교나 학생들에게 매우 관심있고 중요한 행사였다. 물론 대회에 나가서 겨룰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학교와 학생에 한해서이겠지만.
이 대회는 전국의 모든 국민학교 4, 5, 6학년 학생들에게 참가자격이 있다. 1차 예선은 전국의 군단위로 벌어지며 1등들이 도(道)별로 다시 2차 예선을 치르고 우승팀들은 서울의 본선에서 결전을 치르게 된다.
우리 내리국민학교도 첫 대회 때부터 초청장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이를테면 기권을 해왔으므로 학생들은 그런 대회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하기야 그런 결정을 한 교장의 판단이 옳을지도 모른다. 큰 학교나 대도시의 좋은 학교에 비해 벽촌의 각학년마다 겨우 1개반씩만 있는 따라지 학교는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해도 실력차이가 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야구글러브도 제대로 못 만져본 우리가 전국 야구대회가 참가한다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일이 될 것이다.
우리학교가 군 예선에 참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이원주 선생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일류 학교에 근무했던 그녀는 “실력이 모자라도 학생들에게 도전의 기회는 주어야 하고 그 기회에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며 면학의 욕구도 갖게 되고 너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경험을 얻게 된다.”며 참가를 강력히 주장했고 어쩔 수 없이 교장 선생도 동의했다.
돈이나 장비 같은 것이 따로 드는 것도 아니니 더욱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학교의 참가가 ‘대사건’이라고 할만큼 모두가 놀랄 일의 단초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겨울방학이 시작 된지 3일 후 군의 예선대회가 시작되었다.
4, 5, 6학년의 담임 선생과 각 학년의 3명씩 참가자들이 일찍 교무실에 모였다. 교장 선생도 나와서 “잘 하고 오라.”는 격려의 말을 해줬다.
5학년의 출전자는 2학기 중간의 성적대로 1등인 반장 김정호, 2등인 나, 그리고 3등인 부반장 정순자였다.
“이거 괜히 나가서 들러리만 서고 망신당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6학년 담임인 심재철 선생이 풀죽은 표정으로 말하자 4학년 담임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대회는 읍내의 화도국민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화도국민학교는 일제시대에 세워져 우리 군에서 제일 유서가 깊고 학생 수도 많은 학교다. 강당도 큼직해서 우리학교 전체 건물면적보다 커보였다.
참가팀은 우리를 포함해 모두 12개 팀이다. 우리 군내에 국민학교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전처럼 기권했다면 11개 학교가 치렀을 것이다.
한겨울이지만 강당에는 톱밥난로와 몇 개의 석유난로를 피워놓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책상 걸상이 3개씩 12줄로 놓여있고 똑같은 모양으로 뒤로도 2줄이 더 있어 4학년, 5학년, 6학년의 순서로 앉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교사와 학부모 같은 어른들과 응원단인 듯한 학생들도 거의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만큼 학교에 따라서는 중요하고 관심이 있는 행사인 모양이다.
경기는 50분씩 2시간을 필답시험으로 치루는 것이다. 첫시간은 국어와 과학 위주의 문제들인데 주관식과 객관식이 적당히 섞인 2장의 시험지를 풀게 되어 있었다.
문제를 절반 이상 풀어가다 내가 놀란 것은 문제가 의외로 쉽다는 것이다. 한 문제는 전혀 답을 쓸 수 없었고 몇 개 아리송한 문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 있게 정답을 써 내려갔다. 학교에서 평소에 시험을 칠 때와 별다른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수고 했다. 잘 들 쳤니?”
첫 시간이 끝나고 이원주 선생 앞에 모였을 때 반장인 정호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새임, 문제가 생각보다 쉽던데요?”
“그래? 다행이군. 그건 네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력이 좋기 때문이지.”
둘째시간은 산수와 사회, 그리고 미술 음악과 관련된 문제도 몇 개씩 있었다. 역시 전혀 답을 알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고 아리송한 것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쉽다는 느낌이었다.
시험이 다 끝난 뒤 순자는 자신이 없는 산수와 음악의 문제를 우리에게 물었다. 김정호가 푸는 법과 정답을 알려주었다.
“아, 그래 풀마 되는데 ······ 우리가 다 배운 긴데 ······ 나는 정말 꼴통인갑다.”
“누구나 꼭 만점을 맞는 것은 아니야. 너희들은 다 최선을 다 했으니 잘 한거야.”
순자가 울상을 짓는데 이원주 선생이 위로했다.
참가자며 응원단들이 보고 있는 중에 교사들이 채점을 시작했고 전국적인 대회라 그런지 다른 2명의 교사들이 그것을 다시 검토하고 집계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상장에 학교 이름을 써넣고 발표를 하게 될 때 참가자들은 모두 연단 앞에 학교별로 섰다.
“이제부터 전국학술경진대회 화도군 예선의 입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우선 4학년의 3등부터 말씀드립니다. 3등, 교촌국민학교! ······ ”
해당학교 학생들인 듯 작은 박수소리가 나오고 상장을 받아 들었고 2등도 같은 순으로 진행되었다.
“1등, 화도국민학교!”
“와 ---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도 요란했다. 한쪽에 몰려있는 어른과 학생의 대부분이 화도국민학교의 응원단이었다.
5학년 입상 발표가 이어졌다.
“3등, 대소국민학교!”
박수소리는 4학년의 2, 3등 때처럼 작았다.
“2등, 화도국민학교!”
“어 ······ ?”
누군가 신음처럼 소리를 냈고 잠시 틈을 두고 박수가 나왔다. 아까 4학년의 1등 발표 때 응원했던 사람들이지만 함성도 없고 박수소리는 힘이 없었다.
“1등, ······ ”
그 다음 소리를 나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아, 우리다!”
우리학교 6학년의 누군가 소리치며 박수를 칠 때 나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조금 전 들은 말이 “내리국민학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리국민학교가 어디 붙은 기고?”
“그기사 내리에 있겠제.”
화도국민학교 줄에서 그런 말에 이어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짜슥아, 느그는 웃음이 나오나?”
6학년 줄에서 누군가 말하자 웃음소리는 쑥 들어갔다.
이어진 6학년의 성적발표에서 1등은 역시 화도국민학교였고 함성과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아보였다. 그것은 바로 5학년의 1등 탈락 때문이었다.
대회를 늘 주최해 온 화도국민학교는 1회 때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4, 5, 6학년의 1등을 석권해 왔다는데 오늘 5학년만은 어디 붙었는지도 잘 모르는 내리국민학교라는 복병을 만나 그 영예를 잃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1등을 했다. 상장과 함께 군수의 선물이라는 두툼한 국어사전도 각각 상품으로 받았다.
“이 아이들 점심은 먹여야죠.”
처음에는 뿔뿔이 흩어질 것 같았지만 이원주 선생의 제의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중국집은 좌석이 꽉 차있었다. 다른 학교의 참가자들이 앞서 점령을 했기 때문이다.
짜장면과 어쩌면 탕수육을 먹을 수도 있었는데, ······ 아쉬었지만 가락국수와 만두로 점심을 때웠다.
그 자리에서 6학년 담임 심재철 선생이 우리를 칭찬해줬다.
“느그들 5학년이 정말 잘 해줘서 그래도 내리국민학교 체면은 세웠네. 수고들 했다.”
“이게 우찌 우리가 잘한 깁니까? 담임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기지요.”
정호의 말에 심재철 선생은 좀 무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그 말에는 공감이 갔다.
1등을 한 5학년 팀은 바로 헤어지지 않고 다시 학교로 가서 교장 선생에게 보고겸 인사를 했다.
“제군들! 정말 대단한 활약을 했다. 우리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준 것에 대해 교장으로서 심심한 감사와 축하를 전하는 바이다.”
전교생이 조회를 할 때 단상에서 연설하는 것처럼 말투는 딱딱했지만 파안대소를 하는 것 보면 기분은 무척 좋은 모양이다.
“자, 이것은 개학식 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다시 수여하도록 하겠다.”
교장 선생은 우리가 받은 상장과 꽤 두툼한 국어사전을 회수해 갔다. 그때까지 우리집에는 국어사전이라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생긴 것인가 빨리 한번 펴보고 싶었는데 개학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아쉬었다.
“이원주 선생님,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구 대회까지 참가하게 됐으니 따로 모여 공부를 하거나 좀 더 준비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학술경진대회의 출제경향은 5학년 교과서뿐 아니라 지금껏 배운 전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며칠 동안 벼락공부하는 것으로 별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진정하고 평소 쌓은 실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하기사 ······ 나도 몇 년 전부터 들어온 거지만 명문학교들은 이 대회를 위해 수백명이 선발고사를 치루고 마지막 출전자 3명은 한달 이상 집중 교육을 한다는 소문이예요. 그래서 더욱 우리 학교의 참가에 엄두를 못냈지만 ······ 그리고 우리야 성적에 집착하기보다 참가에 의미를 두어야지.”
교장 선생의 말은 더 이상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으리라는 현실적 체념이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아 참, 기분이 쎄하다! 우리집에 같이 갈래? 엄마한테 보고도 하고, ······ 그라마 뭘 시켜 주든지 맛있는 거라도 해줄 끼다.”
학교를 나와 이원주 선생과 헤어지자 정호가 새로운 제의를 했다. 정호의 아버지는 내리면의 면장이었고 꽤 널찍한 기와집에 살고 있었다. 출전선수였던 우리끼리라도 좀 더 자축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호의 말처럼 그의 엄마는 우리가 1등을 했다는 소식에 아들을 껴안기까지 하며 좋아했다.
“야는 문영도라고 금촌리에 살고 우리반에서 2등 한 아다.”
순자는 이미 이 집에 와본 모양으로 인사만 했고 정호가 나를 엄마에게 소개했다.
“그래? 남자답게 잘 생겼네. 모두 드가거라. 내 곧 챙겨 갈게.”
듣기 좋게 한 말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주저앉은 곳은 정호의 독방인 모양이다. 벽에는 우등상을 비롯한 상장들이 가득 붙어있고 책장에는 꽤 만은 참고서와 소설책 몇권도 끼어 있었다.
정호는 1학년 때부터 줄곧 반에서 1등을 해왔고 3, 4학년에 이어 5학년 때도 반장을 맡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에 공부도 잘하지만 통솔력도 있고 자기주장이나 아는 것도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정호에 이어 2등을 했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4학년 때까지는 성적이 중간에 머물러, 그와 말하자면 노는 물이 달랐고, 5학년에 와서도 공부는 열심히 한 편이지만 그 밖에 시간이 나면 남자애들을 사귀기보다 빠구리 상대를 찾아 헤매느라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 오늘 정말 신나는 날이다! ······ 그 화도학교 갸들, ······ 부모들까지 몰려나와 법석을 떨다 우리 때문에 야코가 콱 죽은 거 봤제? 그 꼴을 보는 것도 너무 기분 좋더라.”
“그기 니가 잘 나서 그런 기가?”
순자의 아직도 들떠있는 말을 정호가 오히려 야코를 죽이듯 잘랐다.
“뭐라꼬 ······ ?”
“우리가 1등 한게 니가 잘나서 그런 거냐고 ······ ?”
순자는 잠시 혼란스런 표정을 짓다 약간은 볼멘 소리로 말했다.
“니가 시험은 제일 잘 쳤겠지만 나도 한사람 몫은 한 거 아이가?”
“그래. 니나 영도도 잘 했겠지. 하지만 그게 우리가 잘 나서 그런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고?”
순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나도 정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느그도 오늘 시험문제가 쉽다고 생각했제?”
“그래. 나는 전국대회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어려운 문제들이 나올까 쫄았었는데 ······ ”
“느그들 말처럼 나는 문제가 쉬워 오히려 놀랬다.”
나도 순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기 다 우리 담임선생님 때문인 기라.”
“그기사 당연한 기지. 내가 뭐라 캤나?”
“그러니 더욱 우리가 괜히 우쭐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생각해봐라. 그 선생님 안 만났으마 우리가 4학년이나 6학년 아들하고 뭐가 달랐겠노? 그런데 갸들은 쪽도 못썼는데 우리는 1등을 했잖나? 나는 정말 감동했다. 생각할수록 이원주라는 담임선생님이 우러러 뵈고 존경스럽고, ······ 그래서 그런 선생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라도 절대로 내가 우쭐대거나 뽐내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호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나는 좀 기가 죽었다. 나는 아직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었기 때문이다. 순자도 비슷한 기분인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오늘 무림소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 원래 형편없는 촌놈인데 진정한 무림의 고수를 사부로 맞게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가늠할 수가 없다. 아무하고도 싸워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강호의 고수들이 참가한 무술대회에서 얼떨결에 우승까지 하게되면서 비로서 나도 진정한 고수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사부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나는 괜히 남들 앞에 무예를 뽐내기보다 어디 계신지 모르는 사부를 찾아 나선다. ······ ”
언제부터 그런 줄거리를 짰을까, ······ 정호는 눈까지 사르르 감았다 뜨며 오늘의 감격을 상상속에서 다른 색깔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히 히 히, ······ 니가 무협소설 좀 읽더니 아주 소설 한편 쓰네. ······ 그럼 나는 미운 오리새끼 주인공이 될까? 맨날 못생겼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는데 어느날 보니 나도 매혹적인 백조가 되어 있는기라.“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사부가 없잖나?”
“사부 ······ ?”
“그래. 니를 백조로 만들어 주는 좋은 선생 ······ ”
“아! ······ 그럼 나는 발레리나로 할 기다. 나도 역시 형편없는 촌 가시내인데 좋은 선생님을 만나 콩쿨에서 우승까지 하는 ······ ”
상상의 나래를 펴며 희희덕거리는 중 정호의 엄마가 주문을 했는지 집에서 만들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 튀김과 사이다를 가져왔다.
“자, 남들 앞에서는 잰 체 안하더라도 우리끼리는 짱 한번 하자.”
순자의 제의로 우리는 사이다 잔을 함께 부딪혔다.
“나는 대구 대회에서도 잘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리의 지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 . 그래도 각자 교과서를 다시 훑어보며 자습이라도 하면서 준비 좀 하자.”
정호의 말에 순자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끼리 축하의 자리를 가진 것도 좋았지만 서로 다짐을 하면서 각오도 새로워진 기분이다.
곡 1주일 뒤 우리는 읍내에서 느즈막히 안동행 버스를 탔다. 안동에서는 또 몇시간을 기다려야 대구행 밤기차를 탈 수 있고 그래서 아침 6시쯤 대구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금촌리가 오지인데다 교통편이 별로 없어 힘들게 짠 일정이었다.
역시 대구대회에 참석하는 화도국민학교의 4학년, 6학년 팀은 이미 하루 전 낮차를 타고 대구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잔다지만 우리는 그런 융통성도 부릴 수 없었다.
출발에 앞서 우리는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의 칭찬과 격려의 훈시를 들었다. 그리고 경비에 쓰라고 흰 봉투 하나도 인솔자인 이원주 선생에게 건넸다.
“제군들이 정말 훌륭한 일을 해주어 우리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주었다. 이번 대구 대회도 최선을 다 해주기 바란다.”
그 훈시에 “이번에도 꼭 1등을 하라.”는 식의 말은 없었다.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배려일수도 있겠지만 감히 어떻게 1등을 하겠는가 하고 미리 체념했을 수도 있다.
안동 역전에서 찐빵을 먹으며 몇시간을 떨다 우리는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훈훈했고 승객이 별로 없어 우리는 오붓하게 4자리를 차지해 마주 앉았다.
밤이라 차창 밖의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삶은 달걀과 땅콩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정호는 대구에 2번이나 가봤기에 도착하기 전부터 대구의 거리며 건물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순자는 나처럼 대구가 처음이었다.
겨울이라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대구역에 도착해 해장국을 먹고 행사장인 수창국민학교로 향할 때는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여기가 중앙통이라는 길이다. 곧장 가마 반월당에서 앞산까지 이어지는 기라.”
정호가 신이 나서 설명하는데 길이 정말 차가 몇줄로 다닐만큼 넓고 끝이 안보이며 4~5층짜리 빌딩들이 줄지어 있어 과연 대도시다웠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도 예선에서도 또 1등을 했다.
군 예선 때보다 문제가 조금은 더 까다로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별로 막힘없이 답을 써낼 수 있었고 정호와 순자도 “비교적 잘 친 것 같다.”고 했는데 발표를 보니 또 1등인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경상북도 내의 5학년 중에는 제일 공부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호와 나누었던 말을 생각하며 우리는 겉으로 아무도 우쭐대거나 잰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원주 선생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함은 더욱 굳어졌다.
4학년은 대구의 덕산국민학교, 6학년은 대회를 주최한 수창국민학교가 1등을 했는데 시상식에서 여전히 “내리국민학교가 어디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기차 시간이 적당하지 않아. 너희들 피로하기도 할테니 오늘은 대구 거리구경도 하고 좀 쉬다가 하룻밤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차를 타야겠다.”
이원주 선생의 일정계획을 듣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정도는 뽐내거나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걸릴 것도 없었다.
우리는 양키시장이라는 곳을 구경하다 냉면을 먹고 미제 초콜릿도 하나씩 입에 물고 거리를 거닐었다. 시장에는 온갖 물건이 풍성하게 널려있고 거리에는 사람이 북적댔다.
간판들도 화려했지만 내 눈을 가장 끈 것은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간판이었다. 우리 읍내에도 극장이 2곳이나 있고 역시 물감으로 그린 간판이 걸려있었지만 대구의 극장에 비하면 너무 초라했다.
이곳의 극장들 간판은 크기도 하지만 마치 배우들의 숨소리도 들릴 것처럼 얼굴이 꼭 닮은데다 화려한 색깔로 실감있게 그려져 있다.
“앗! 저거 이소룡이다!”
정호가 소리치며 간판을 한참 둘러보더니 앞에 붙여놓은 스틸까지 꼼꼼히 살펴보며 이소룡에 대한 지식을 순자와 나에게 떠벌인다.
이원주 선생이 빙긋 웃더니 표를 샀다.
우리가 본 영화 제목은 <맹룡과강>이었다. 스크린이 크고 화면이 깨끗한 것도 특별했지만 주인공이 매서운 눈초리로 괴상한 소리를 내다가 펄펄 날며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은 정말 신바람이 났다. 나는 이소룡뿐 아니라 그런 격투영화를 처음 보았다.
저녁은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식당도 무척 큰데 사람이 가득 차고 내리나 읍내의 중국집에서 먹어본 것에 비하면 맛도 훨신 좋았다. 밤의 대구거리는 네온사인으로 번쩍였다. 낮에는 극장의 선전간판, 밤에는 네온사인, 그것들만 구경하는 것도 새로워 계속 거리를 쏘다니고 싶었다.
다만 잠자리는 좀 불편했다. 꽤 널찍한 온돌방에서 남녀가 각각 떨어져 요를 폈지만 한방에서 잔다는 것이 좀 어색하고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 하루 호강은 했으나 강행군을 했기 때문인지 곧 잠이 들어 푹 잘 수 있었다.
아침 기차를 타고 지나치는 바깥 풍경을 보게 되니 더욱 기차 타는 맛이 났다. 게다가 우리는 밤차를 탔을 때처럼 삶은 계란과 땅콩을 먹었다. 기차에서 까먹는 삶은 계란 맛은 정말 갹별했다.
안동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읍내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 그리고 4학년 담임 강수남 선생까지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다. 더구나 3개의 화환을 우리의 목에 각각 걸어주고 이원주 선생에게는 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우리는 상장과 상품을 들고 교장 교감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리는 개선장군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 환영은 읍내의 가장 큰 식당으로까지 이어졌다.
숯불에 이글이글 갈비가 익고 있다. 불갈비라는 것을 나는 처음 먹어보는데 얼마 전 황달자네 집에서 먹어본 갈비찜과는 또 다른 감칠맛이 났다.
교장, 교감선생은 연신 이원주 선생과 우리를 칭찬하고 고맙다면서 번갈아 우리에게 많이 먹으라며 음식을 앞접시에 옮겨주기도 했다.
“허 허 허! 나는 우리학교에 너희 같은 수재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몰라본 것이 미안하더구나. 특히 ······”
“교장 선생님! 그래 말씀하시면 안 되지예.”
교장 선생의 우리들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는데 순자가 느닷없이 그 말을 잘랐다.
“그기 어디 우리가 잘나서 그렇습니까? 4학년이나 6학년이나 다 똑같은 내리국민학교 학생들인데 우리만 그리 된 것은 담임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지예.”
순자의 말은 너무 당돌하고 당당해서 어른들은 모두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킥 웃음이 나올 번했다. 그녀의 말은 꼭 1주일전 정호가 심재철 선생에게 한 말에서 한술 더 뜬 것이다. 그러나 교장 선생은 곧 그 말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암, 네 말이 맞다. 이선생님 아니었으면 어찌 우리학교에서 이런 경사가 있을 수 있겠소. 다시 한번 이선생님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이원주 선생은 고개를 한번 숙이며 답례하고 순자를 돌아보며 미소를 띠운 얼굴로 말했다.
“순자야. 어른들, 특히 교장 선생님 말씀을 그렇게 앞에서 반박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란다. 너의 그런 행동을 보고 내가 네 선생이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나를 잘못 가르쳤다고 놀릴지도 몰라.”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다시 그러지 않고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즉각 나온 순자의 반응이 너무 공손하고 말투도 또박또박해 오히려 나는 그녀가 장난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큰 대회에 2번이나 참가하면서 우리는 모두 좀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이선생님, 학술경진대회의 도 예선에서 등수에 들은 것도 그렇지만 결선에 진출한 것은 우리 군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오. 군수님도 아침에 축하인사를 전해주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을 잘 가르쳐 주셨소? 하여튼 이번 일로 지나온 내 인생까지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구료.”
교장 선생이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야 그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 따라줘서 좋은 결과를 맺은 것이지 ·····”
“그렇지만 저 애의 말처럼 이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소.”
“저는 어떤 아이들이나 원질은 보석덩어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교사는 그저 세공사인 셈이죠. 그러니 잘만 깎아주면 아이들의 본질이 광채를 내고 반짝거리는 거죠.”
“그러게 말이오. 나도 사범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학생들은 모두 그저 흰 도화지다. 교사인 내가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멋진 그림을 그리게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에 찌들면서 또 벽지학교에 부임하면서 그저 자포자기에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거죠.”
어려운 말들도 있었지만 교장 선생의 말은 솔직하면서도 좀 구슬프게 들렸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학교 전체에 좀 새 바람을 불어넣을 생각이오. 그리고 이왕 결선까지 가게 됐으니 며칠만이라도 이선생님이 합숙을 하며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꼭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의 최선을 한다는 의미에서 ······ ”
“얘들이 저의 집에서 기거하는 것은 좋지만 약간 문제가 ······ ”
이원주 선생이 좀 머뭇거리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제가 원래 음식솜씨가 형편 없거든요.”
“하 하 하! 이선생님이 못하는 것도 있군요.”
교장 선생이 큰소리로 웃었지만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우리집에서 합숙하도록 합시다. 집사람 음식솜씨가 괜찮은 편이고, 나도 뭔가 역할을 좀 해야지.”
교장 선생 일행과 헤어져 나오며 이원주 선생이 이번 서울결선에는 교장, 교감 선생이 함께 갈 것이라고 들려주었다.
“아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먹는다 카더니 ······ ”
정호가 약간은 볼멘 소리로 반응했다.
“너는 교장 선생님이 되놈이라는 말이냐?”
“아니, 꼭 그런 것은 ······ ”
정호가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나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속담은 알고 있다.
“하지만 새임 아니었으면 우리는 참가도 못했을 것 아입니까? 그 전에도 늘 기권을 해왔으니 ······ 그런데 결선에 나가게되니 교장 선생님이 생색을 내는 것 같아서 ······ ”
그 말에는 나도 좀 공감이 갔다.
“정호야!”
이원주 선생은 정호를 정답게 부른 뒤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통솔하고 경영하는 최고 책임자야. 모처럼 우리가 2차전까지 승리를 했으니 더욱 우리를 북돋고 응원해주시려는 거지. 더구나 두분이 같이 가시면 서울 관광도 더 알차게 ······ ”
“관광이 뭐라예?”
순자가 선생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말뜻도 알 수가 없다. 나도 그 말을 몰랐다.
“응, 유명한 장소나 명승지 같은 곳을 구경하고 즐기는 것이지.”
“그럼 우리가 서울 구경, 그러니 관광도 하는 기라에?”
“물론! 모처럼 갔으니 서울구경도 해야지. 교장 선생님이 가시니 한층 여유있고 잘 먹으면서 관광할 수 있을 걸.”
“와, 신난다!”
복순이 호들갑을 떠는데 돌아보니 정호도 나처럼 빙긋 웃고 있었다. 웃음 속에서 나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따져보자면 우리가 한 것은 남들보다 시험문제를 약간 더 맞힌 것일 뿐이다.
그런데 대구까지 가서 호강을 하고, 교장 선생 댁에서 잠을 자고, 그 사모님이 직접 해주는 음식을 먹게 되다니 ······ 더군다나 서울관광까지, 그런데 내게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 순자와도 작별인사를 하며 제각기 흩어질 때 이원주 선생이 다시 나를 불렀다.
“너 오늘 오후 6시쯤 우리집에 올 수 있겠니?”
내가 도착했을 때 이원주 선생은 화장을 지운 맨 얼굴에 원피스 차림이었다. 그런데 가슴 쪽을 보니 겉으로도 젖꼭지가 약간 도드라져 보였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그녀와 빠구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 옷차림 때문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배고프지? 우선 저녁부터 먹을까?”
“괘않심더. 배 안 고파요.”
세걸음을 옮기자 그녀와 코가 맞부딪힐 만큼 가까워 졌다. 아직도 키가 나보다 큰 그녀와 입술을 맞대려면 나는 먼산을 바라보듯 고개를 약간 젖혀야 한다. 나는 그녀의 두팔을 잡고 그렇게 했다. 그녀는 잠시 놀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적당히 숙여 주었다.
그녀의 혀가 먼저 들어왔고 세차게 빨아대다 혀를 들여 미니 그녀 역시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꺼플 헝겊이 가려있기는 하지만 젖통을 움켜 잡으니 뭉클한 감촉이 전해진다.
“하아 ······, 이제 그만! 우리 방으로 갈까?”
입술을 떼자 그녀가 먼저 내 손을 이끌었다. 침대 앞에 마주 선 우리는 이제 꺼릴 것이 없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서로의 몸을 애무하며 숨소리도 조금씩 거칠어 졌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풍만하면서도 뜨거웠다.
“꼭 한달을 채운다면 사흘 뒤지만 교장 선생님 댁에서 우리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아.”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러나 대구의 대회 때문에 그 생각에 매달릴 수 없었고 내일부터는 교장 선생 댁에서 합숙까지 계획되어 있기에 포기, 아니 마음 속으로 연기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는 이 상황에서도 포기나 연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알몸이 된 채 부등켜안고 키스와 애무를 이어갔다. 학술경진대회라는 번잡스런 형편에서도 이렇게 짬을 내서 얽힐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짜릿하고 욕구가 용솟음 쳤다.
“아아, 영도야!”
자지를 꼽자 그녀는 두덩이 맞닿을 수 있도록 엉덩이를 한껏 들어 올렸다.
이미 물기가 그득한 그곳은 질벽의 오톨도톨한 감촉이 느껴지면서도 아늑했다. 그곳이 조금씩 옴찔거리기 시작했다.
방아질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늘상 함께 거닐었던 길을 다시 걷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신음은 점점 커지며 비명으로 이어졌고 나도 자지에서 시작된 황홀감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더러는 잠시 멈추어 꽃구경도 하고 하늘을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세를 몇 번 바꾸어 주도적 역할도 번갈아 했다.
이렇게 살을 섞고 있을 때 그녀는 이제 망설임이나 부끄럼이 전혀 없었다. 큰 젖통을 출렁이며 내 위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스스로 엎드려서 나를 재촉하기도 하고, 누워서는 두다리로 나를 옭죄이면서 흔드는 엉덩이에 박자를 맞추듯 비명을 질러댄다.
어쩌면 그토록 이지적이며 모든 학생들에게 존경과 흠모를 받고 있는 그녀가 바로 그 제자와 알몸으로 얽히면 이렇게 변하는가.
음탕기와 성욕이 넘치는 것 같은 그녀의 반응은 나와 두 번 째 빠구리를 할 때부터 나타나 나를 혼란스럽게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좋기도 했다. 그 상반된 면모가 그녀를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아아! ······ 오늘은 어째 더 빨리, ······ 하아! ······ 하아! ······ 학!”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세 번째 절정에 몸을 떨어댈 때 나는 사정했다.
한겨울인데도 땀투성이가 된 우리는 뒤처리를 하고도 한동안 가쁜 숨이 진정될 때까지 서로를 어루 만졌다.
“영도야! 너희들 이번에 참 수고 많았어. ······ 학술경진대회에서 개인 성적은 원래 공개하지 않기로 되어 있지만 그래도 살펴보니 우리 팀에서는 네가 제일 성적이 좋더구나.”
그녀가 내 젖꼭지를 살살 부비다 아랫배를 거쳐 이제는 풀이 죽어있는 자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가 아무리 잘했다 캐도 그건 제가 잘나서 그런 기 아닙니더.”
“그건 무슨 뜻 ······ ?”
“그 모두가 새임의 은혜와 덕택이고 그래서 우리는 새임을 더욱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더.”
“얘들은 ······ ”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을 이었다.
“정호도 순자도 그러더니 너희는 왜 자꾸 그런 말을, 더구나 남들 앞에서 해서 나를 부끄럽게 하니?”
그 말에 나도 갑자기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처음에 한 것이 아니고 정호와 순자의 말을 들으면서 깨달은 것인데 어느 새 나도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솔직해야 했다.
“정호하고 순자하고 우리는 다짐을 했심더. 우리가 2번이나 대회에서 1등을 한 것은 모두 담임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고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으스대거나 잘 난 체 하기 말자고 ······ ”
“어쩌면! ······ 너희들은 마음가짐도 그렇게 순수하구나!”
잠시 뜸을 두었다가 그녀가 말했다.
“나도 이번 일로 새삼스럽게 보람을 느꼈어. 어쩌다 시골학교에 오게 되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풍성한 수확을 거둔 농부처럼 마냥 흡족한 기분이야.”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자지가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기운을 차리면 한번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지에서 뗀 손으로 내 귀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또 하나 큰 보람은 영도, 너를 만난 거야. 나는 너를 만나고서야 이 나이에 그걸 처음 느꼈단다.”
“뭐를 느껴예?”
나는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어 ······ ! 아이 참! ······ 괜히 그런 말을 ······ 여자들한테는, ······ 여자만 아는 그런 게 있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다른 여인들에게서 몇 번 들었던 오르가슴에 관한 것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그러나 다시 되묻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너를 만나면서 한껏 황홀한 파도가 나를 감싸 주지만 그것이 밀려가고 나면 다시 답답하고 후회가 가득안 감정이 그 자리를 차지하니 ······ 아!, ······ 너와 나는 정말 어떡해야 하는지, ······ 너무 곤혹스러워.”
열정의 시간이 지나면 가끔 그랬듯 그녀는 어두운 표정이다. 그녀가 나로 인해서 개인적 보람을 느꼈다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덤으로 그녀에게 곤혹이라는 짐을 얹어주었다는 점에도 나도 마음이 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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