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에 카바레에서 수철씨와 자주 춤을 추게 된다.
물론 수철씨가 춤은 미숙하지만, 내가 춤에 대해 경지에 오르다 보니 구태여 춤을 잘 추는
남자와 춤을 추고 싶은 마음보다 좀 미숙한 수철씨와 춤을 추며 가르쳐 주고 싶고,
또, 나로 인해 늘어 가는 수철씨의 춤을 보며 나름대로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아마.. 속으로 수철씨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춤을 추고 카바레에서 나오면 미진이와 셋이서 같이 어울려 식사도 하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점점 수철씨와 친해져 갔다.
수철씨 역시 구체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 느낌으론 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같다 보니, 여러가지 면에서 말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수철씨의 남자다움이
좋았다. 생긴 모습도 그렇고, 박력이 있는 성격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선 이상은 넘으려 하지 않았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카바레에서 춤을 추고 나와서 같이 술을 마셔도 나를 점잖게 대했고, 술을 마시고 나와서도
아파트 부근까지 바래다 주고는 가버렸다.
애가 달은 것은 수철씨 보다 오히려 나였다.
그날도 카바레에서 춤을 추고 밖으로 나와 수철씨가 미진이와 날보고 갈증이 나는데,
간단하게 호프집으로 가서 목이나 축이고 가자고 바람을 넣는다.
평소 같으면 먼저 가자고 설칠 미진이가 미안하다는 듯 말한다.
“전..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하는데, 둘이서 한잔해요.
현숙아. 나 먼저 갈 테니까, 수철씨와 같이 한잔하고 와.”
“그럴까? 그럼, 잘 가. 내일 연락하고..”
“기집애.. 빈말이라도 같이 가자고 한번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수철씨가 좋아?”
갑자기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다.
“무슨?”
미진이가 깔깔거리며 놀린다.
“호호호! 뜨끔한 모양이네? 속마음을 들켜서..”
“뭐야?”
“호! 호! 호! 호!”
“하! 하! 하! 하!”
셋이서 한바탕 웃는다.
미진이가 먼저 버스를 타고 가고 수철씨가 내게 말한다.
“그럼, 둘이서 맥주 한잔 할까요?”
“그래요..”
둘이서 같이 걸어서 부근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이층에 있는 호프집인데, 내부가 넓은 게 좌석이 편한 소파로 되어 있고,
바닥과 벽은 목재로 되어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실내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지금 시간이 아직 다섯시 밖에 안 됐다. 오늘 남편은 오후 근무라 저녁 열시 반에
집에 오니, 시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애들이야 미리 간식을 만들어 줬고,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을 것이다.
병맥주 세 병을 시키고 안주로 감자튀김을 시킨다.
내가 먼저 수철씨에게 말한다.
“이 곳은 몇 번을 왔었지만, 참 분위기가 아늑한 것 같아요..”
“그렇지요? 전부터 한번씩 카바레에 오면 들렸다가 가는 곳인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고
괜찮은 것 같아요.”
주문했던 맥주와 안주가 나온다.
수철씨가 먼저 내 잔에 맥주를 따라주고, 다시 내가 수철씨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내가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건배를 청한다.
“수철씨, 우리 건배해요. 음.. 뭐라고 건배를 할까? 우리의 만남이 오래 지속되기를..”
“좋은 사이가 되기를..”
잔을 들어 한번에 다 마신다.
다시, 서로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내가 수철씨에게 묻는다.
“수철씬 무슨 일을 해요?”
“그 동안 이야길 안 했었나? 난 공무원이에요. 항만계통에 종사하는..”
“그렇게 안 보이는 데요?”
“그럼, 어떻게 보여요?”
“수철씬 서비스 계통에서 일하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게 보여요?”
“인물도 그렇고, 성품도 그렇고, 공무원하고는 웬지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전 공무원이라고 하면 뭔가 사무적이고 고지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내가 보기엔 안 그런데요?”
“글쎄요..”
맥주잔이 비워지고 다시 맥주를 따라 마신다.
내가 다시 묻는다.
“부인은 어떤 분이에요?”
“글쎄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이재에는 밝은 사람이에요.”
“뭘 하시는데요?”
“나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에요. 세무서에 계장으로 있어요.”
“금슬이 좋아요?”
“글쎄.. 금슬이 좋다면 내가 카바레에 오겠어요? 만일 온다고 해도 마누라랑 같이
오겠지요.. 근데, 현숙씨 남편은 뭐 하시는 분인데요?”
“그냥..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금슬이 좋으냐고 물으면 안 되겠지요?”
“글쎄요..”
우리 부부는 예전부터 금슬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난, 처음 카바레에서 현숙씨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볼 때 많이 궁금했어요.
어떤 여자일까 하고요. 가정주부치고는 춤을 너무 능숙하게 추는 것 같았고..”
“왜요? 술집 여자 정도로 생각했어요?”
“술집 여자라고 보기에는 사람이 너무 수수하게 보였고.., 뭐랄까? 술집 여자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도 혹시 술집 여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은 해봤군요?”
“하!하!하! 이거.. 한방 맞았군요..”
“저기.. 수철씨..”
“왜요?”
“우리 사귈래요?”
내가 무엇에 씌였나? 남자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이야길 다 하다니..
”현숙씨.. 나도 그 동안 현숙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현숙씨를 보면 참 특별한 것 같아요. 어떨 때 보면 정말 여자다운 것 같으면서도
대담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남자 같기도 하고..”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잖아요?”
기왕에 내뱉은 말..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재차 묻는다.
“제가 감지덕지지요.”
“그런 의미로 다시 건배해요.”
다시 잔을 들어 올리고 수철씨랑 건배를 한다.
그날은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수철씨와 헤어진다.
그 이후로 우리가 만나는 장소는 주로 카바레이고, 이젠 다른 남자의 손은 잡지 않고
수철씨의 손만 잡는다.
내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수철씨의 춤을 다듬는다.
그리고, 카바레에서 나오면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씩 하고 헤어진다.
이젠 미진이도 우리의 사이를 눈치채고 편안하게 받아들여 준다.
그렇게 내가 수철씨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하고, 같이 춤의 파트너가 되어 친밀하게
지내도, 수철씨는 내 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게 신사답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했다. 혹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었고..
그 날은 남편이 주간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남편이 오후 근무를 하는 날은 오후 시간이 많기 때문에 걱정이 없지만,
남편이 야간 근무를 한다든지 주간 근무를 하는 날은 카바레에 갈수가 없었다.
미진이 역시 그걸 알고는 날보고 카바레에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몇 일째 카바레에 가지 못하다 보니, 몸살이 다 날 지경이었다.
수철씨랑 가까운 사이가 되기 전에는 카바레에 몇 일을 가지 않아도 별로 몰랐지만,
이젠 카바레에 삼일만 가지 못해도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춤도 춤이지만, 수철씨를 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은 오후 두시가 넘어도 집에 오지 않는다.
오늘 역시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모양이었다.
카바레에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선다.
큰 아이에게 엄마가 계모임이 있어서 나갔다 온다고 말해놓고..
큰애가 국민학교 사학년이다 보니 말귀를 알아 듣는다.
혹시라도 내가 집에 오기 전에 남편이 와서 나를 찾으면 아빠에게 그렇게 말을
전할 것이다.
집을 나오자 마자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카바레로 향한다.
카바레에 들어서니, 수철씨가 어떤 여자랑 춤을 추고 있었다.
주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수철씨와 같이 춤을 추는 여자만
확대되어 내 눈에 들어온다.
수철씨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안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다.
내가 질투를 하는 걸까?
수철씨에게 나와 저 여자가 다른 게 무엇인가?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가 버리는 것 같다.
한 곡이 끝나고 수철씨가 그 여자랑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내게로 다가와서 반갑게 말을 건다.
“안 올 줄 알았는데.. 언제 왔어요?”
“왜요? 내가 안 왔으면 좋겠어요?”
“허허! 오늘 찬바람이 쌩쌩 부네요? 뭐.. 화나는 일 있어요?”
“화나는 일 은 무슨?”
“같이 나가서 춤을 추지요?”
수철씨가 내게 손을 내민다.
같이 홀로 나와 수철씨와 내가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일부러 내가 있는 테크닉 없는 테크닉을 다 구사해서 춤을 춘다.
방금 수철씨와 춤을 춘 여자에게 보라는 심정으로..
수철씨도 오늘따라 현란하게 춤을 추는 나를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그 동안 수철씨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내 기분을 내기 보다는 수철씨를 가르친다는
기분으로 춤을 추다 보니, 내 실력을 다 발휘해서 춤을 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세 곡을 연속해서 수철씨와 같이 춤을 춘다.
세 번째 곡이 끝나고 같이 밖으로 나온다.
수철씨가 자판기에서 캔을 두 개 꺼내와서 내게 하나를 건네며 말한다.
“오늘.. 춤을 너무 멋있게 추시던데요?”
이 양반아.. 그 동안 내가 당신에게 춤을 가르친다고 일부로 맞춰서 춤을 춘 줄 몰라?
“내가 춤을 멋있게 추니까 기분이 어때요?”
“황홀하고 좋지요..”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고?
“수철씨. 오늘은 제가 한잔 사고 싶은데, 같이 나가실래요?”
“현숙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수철씨에게 술 한잔 살 정도의 돈은 있어요. 그럼, 같이 나가요.”
수철씨와 둘이 밖으로 나온다.
“음.. 어디로 갈까? 수철씨, 어디로 갈래요?”
“지난번에 갔던 호프집에 갈까요?”
“거기 말고.. 아직 식사전인데 식사도 할 겸 아구찜 먹으러 가요.”
“이 부근에 아구찜 파는 데가 있으려나?”
“잠시 걷다 보면 있겠지요.”
내가 수철씨의 팔짱을 낀다.
수철씨가 좀 의외라는 듯 날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 웬일이에요? 평소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뭐가 다르게 보여요?”
“글쎄.. 오늘따라 현숙씨가 활달하게 보이네요.”
“아무한테나 그러진 않아요. 수철씨니까 그러지..”
수철씨 말마따나 오늘 내가 왜 이러나?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걷다 보니, 마침 아구찜이라고 써놓은 식당이 보인다.
“수철씨, 저기로 들어가요.”
“그렇게 하죠.”
같이 아구 찜 파는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구 찜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자.. 수철씨, 한잔 받아요.”
내가 술병을 들고 술을 한잔 따른다.
“현숙씨도 한잔 받아요.”
이번엔 수철씨가 나에게 술을 따라준다.
같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듯하다.
취기가 올라오고, 앞에 앉은 수철씨가 점점 마음에 든다.
남자답게 보이고, 박력이 있어 보이는데다 인물까지 남자답게 생겼다.
수철씨가 이야기 한다.
“이젠 술도 꽤 마셨고, 많이 취하는데 그만 일어서죠?”
“그렇게 해요..”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여덟 시다.
남편이 들어 왔을려나?
만일 들어 왔다면, 난리가 나겠지..
별로 걱정은 되지 않고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다.
내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같이 밖으로 나온다.
술 기운이 확 올라오고 간이 배 밖에 나오는 거 같고 세상이 돈짝만하게 보인다.
내가 수철씨 옆에서 팔짱을 낀다.
수철씨가 그런 나를 보고 말한다.
“시간이 늦었는데 집에 가야지요?”
“안 가면 안돼요?”
“예?”
수철씨의 눈이 동그래진다.
“왜 그렇게 놀라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잡아 먹을지 몰라요?”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정말 맛이 있나 없나 잡아 먹을 거예요?”
“그렇게 하세요..”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허 참..”
내가 수철씨의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일부러 가슴을 수철씨의 팔에 바짝 붙인다.
걷고 있으니 팔이 흔들려 유방을 자극한다.
온 몸이 찌르르해 지면서 이미 아랫도리에는 물이 흘러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기분으로는 그냥 가기가 싫다.
수철씨의 억센 가슴에 안겨서 흐벅지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내가 한쪽 팔을 들어 여관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시식할 장소가 보이네요?”
“저.. 농담 아닙니다."
“나도 농담 아니에요.”
수철씨가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발걸음을 여관으로 향한다.
물론 수철씨가 춤은 미숙하지만, 내가 춤에 대해 경지에 오르다 보니 구태여 춤을 잘 추는
남자와 춤을 추고 싶은 마음보다 좀 미숙한 수철씨와 춤을 추며 가르쳐 주고 싶고,
또, 나로 인해 늘어 가는 수철씨의 춤을 보며 나름대로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아마.. 속으로 수철씨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춤을 추고 카바레에서 나오면 미진이와 셋이서 같이 어울려 식사도 하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점점 수철씨와 친해져 갔다.
수철씨 역시 구체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 느낌으론 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같다 보니, 여러가지 면에서 말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수철씨의 남자다움이
좋았다. 생긴 모습도 그렇고, 박력이 있는 성격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선 이상은 넘으려 하지 않았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카바레에서 춤을 추고 나와서 같이 술을 마셔도 나를 점잖게 대했고, 술을 마시고 나와서도
아파트 부근까지 바래다 주고는 가버렸다.
애가 달은 것은 수철씨 보다 오히려 나였다.
그날도 카바레에서 춤을 추고 밖으로 나와 수철씨가 미진이와 날보고 갈증이 나는데,
간단하게 호프집으로 가서 목이나 축이고 가자고 바람을 넣는다.
평소 같으면 먼저 가자고 설칠 미진이가 미안하다는 듯 말한다.
“전..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하는데, 둘이서 한잔해요.
현숙아. 나 먼저 갈 테니까, 수철씨와 같이 한잔하고 와.”
“그럴까? 그럼, 잘 가. 내일 연락하고..”
“기집애.. 빈말이라도 같이 가자고 한번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수철씨가 좋아?”
갑자기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다.
“무슨?”
미진이가 깔깔거리며 놀린다.
“호호호! 뜨끔한 모양이네? 속마음을 들켜서..”
“뭐야?”
“호! 호! 호! 호!”
“하! 하! 하! 하!”
셋이서 한바탕 웃는다.
미진이가 먼저 버스를 타고 가고 수철씨가 내게 말한다.
“그럼, 둘이서 맥주 한잔 할까요?”
“그래요..”
둘이서 같이 걸어서 부근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이층에 있는 호프집인데, 내부가 넓은 게 좌석이 편한 소파로 되어 있고,
바닥과 벽은 목재로 되어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실내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지금 시간이 아직 다섯시 밖에 안 됐다. 오늘 남편은 오후 근무라 저녁 열시 반에
집에 오니, 시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애들이야 미리 간식을 만들어 줬고,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을 것이다.
병맥주 세 병을 시키고 안주로 감자튀김을 시킨다.
내가 먼저 수철씨에게 말한다.
“이 곳은 몇 번을 왔었지만, 참 분위기가 아늑한 것 같아요..”
“그렇지요? 전부터 한번씩 카바레에 오면 들렸다가 가는 곳인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고
괜찮은 것 같아요.”
주문했던 맥주와 안주가 나온다.
수철씨가 먼저 내 잔에 맥주를 따라주고, 다시 내가 수철씨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내가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건배를 청한다.
“수철씨, 우리 건배해요. 음.. 뭐라고 건배를 할까? 우리의 만남이 오래 지속되기를..”
“좋은 사이가 되기를..”
잔을 들어 한번에 다 마신다.
다시, 서로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내가 수철씨에게 묻는다.
“수철씬 무슨 일을 해요?”
“그 동안 이야길 안 했었나? 난 공무원이에요. 항만계통에 종사하는..”
“그렇게 안 보이는 데요?”
“그럼, 어떻게 보여요?”
“수철씬 서비스 계통에서 일하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게 보여요?”
“인물도 그렇고, 성품도 그렇고, 공무원하고는 웬지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전 공무원이라고 하면 뭔가 사무적이고 고지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내가 보기엔 안 그런데요?”
“글쎄요..”
맥주잔이 비워지고 다시 맥주를 따라 마신다.
내가 다시 묻는다.
“부인은 어떤 분이에요?”
“글쎄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이재에는 밝은 사람이에요.”
“뭘 하시는데요?”
“나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에요. 세무서에 계장으로 있어요.”
“금슬이 좋아요?”
“글쎄.. 금슬이 좋다면 내가 카바레에 오겠어요? 만일 온다고 해도 마누라랑 같이
오겠지요.. 근데, 현숙씨 남편은 뭐 하시는 분인데요?”
“그냥..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금슬이 좋으냐고 물으면 안 되겠지요?”
“글쎄요..”
우리 부부는 예전부터 금슬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난, 처음 카바레에서 현숙씨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볼 때 많이 궁금했어요.
어떤 여자일까 하고요. 가정주부치고는 춤을 너무 능숙하게 추는 것 같았고..”
“왜요? 술집 여자 정도로 생각했어요?”
“술집 여자라고 보기에는 사람이 너무 수수하게 보였고.., 뭐랄까? 술집 여자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도 혹시 술집 여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은 해봤군요?”
“하!하!하! 이거.. 한방 맞았군요..”
“저기.. 수철씨..”
“왜요?”
“우리 사귈래요?”
내가 무엇에 씌였나? 남자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이야길 다 하다니..
”현숙씨.. 나도 그 동안 현숙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현숙씨를 보면 참 특별한 것 같아요. 어떨 때 보면 정말 여자다운 것 같으면서도
대담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남자 같기도 하고..”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잖아요?”
기왕에 내뱉은 말..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재차 묻는다.
“제가 감지덕지지요.”
“그런 의미로 다시 건배해요.”
다시 잔을 들어 올리고 수철씨랑 건배를 한다.
그날은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수철씨와 헤어진다.
그 이후로 우리가 만나는 장소는 주로 카바레이고, 이젠 다른 남자의 손은 잡지 않고
수철씨의 손만 잡는다.
내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수철씨의 춤을 다듬는다.
그리고, 카바레에서 나오면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씩 하고 헤어진다.
이젠 미진이도 우리의 사이를 눈치채고 편안하게 받아들여 준다.
그렇게 내가 수철씨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하고, 같이 춤의 파트너가 되어 친밀하게
지내도, 수철씨는 내 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게 신사답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했다. 혹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었고..
그 날은 남편이 주간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남편이 오후 근무를 하는 날은 오후 시간이 많기 때문에 걱정이 없지만,
남편이 야간 근무를 한다든지 주간 근무를 하는 날은 카바레에 갈수가 없었다.
미진이 역시 그걸 알고는 날보고 카바레에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몇 일째 카바레에 가지 못하다 보니, 몸살이 다 날 지경이었다.
수철씨랑 가까운 사이가 되기 전에는 카바레에 몇 일을 가지 않아도 별로 몰랐지만,
이젠 카바레에 삼일만 가지 못해도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춤도 춤이지만, 수철씨를 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은 오후 두시가 넘어도 집에 오지 않는다.
오늘 역시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모양이었다.
카바레에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선다.
큰 아이에게 엄마가 계모임이 있어서 나갔다 온다고 말해놓고..
큰애가 국민학교 사학년이다 보니 말귀를 알아 듣는다.
혹시라도 내가 집에 오기 전에 남편이 와서 나를 찾으면 아빠에게 그렇게 말을
전할 것이다.
집을 나오자 마자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카바레로 향한다.
카바레에 들어서니, 수철씨가 어떤 여자랑 춤을 추고 있었다.
주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수철씨와 같이 춤을 추는 여자만
확대되어 내 눈에 들어온다.
수철씨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안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다.
내가 질투를 하는 걸까?
수철씨에게 나와 저 여자가 다른 게 무엇인가?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가 버리는 것 같다.
한 곡이 끝나고 수철씨가 그 여자랑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내게로 다가와서 반갑게 말을 건다.
“안 올 줄 알았는데.. 언제 왔어요?”
“왜요? 내가 안 왔으면 좋겠어요?”
“허허! 오늘 찬바람이 쌩쌩 부네요? 뭐.. 화나는 일 있어요?”
“화나는 일 은 무슨?”
“같이 나가서 춤을 추지요?”
수철씨가 내게 손을 내민다.
같이 홀로 나와 수철씨와 내가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일부러 내가 있는 테크닉 없는 테크닉을 다 구사해서 춤을 춘다.
방금 수철씨와 춤을 춘 여자에게 보라는 심정으로..
수철씨도 오늘따라 현란하게 춤을 추는 나를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그 동안 수철씨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내 기분을 내기 보다는 수철씨를 가르친다는
기분으로 춤을 추다 보니, 내 실력을 다 발휘해서 춤을 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세 곡을 연속해서 수철씨와 같이 춤을 춘다.
세 번째 곡이 끝나고 같이 밖으로 나온다.
수철씨가 자판기에서 캔을 두 개 꺼내와서 내게 하나를 건네며 말한다.
“오늘.. 춤을 너무 멋있게 추시던데요?”
이 양반아.. 그 동안 내가 당신에게 춤을 가르친다고 일부로 맞춰서 춤을 춘 줄 몰라?
“내가 춤을 멋있게 추니까 기분이 어때요?”
“황홀하고 좋지요..”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고?
“수철씨. 오늘은 제가 한잔 사고 싶은데, 같이 나가실래요?”
“현숙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수철씨에게 술 한잔 살 정도의 돈은 있어요. 그럼, 같이 나가요.”
수철씨와 둘이 밖으로 나온다.
“음.. 어디로 갈까? 수철씨, 어디로 갈래요?”
“지난번에 갔던 호프집에 갈까요?”
“거기 말고.. 아직 식사전인데 식사도 할 겸 아구찜 먹으러 가요.”
“이 부근에 아구찜 파는 데가 있으려나?”
“잠시 걷다 보면 있겠지요.”
내가 수철씨의 팔짱을 낀다.
수철씨가 좀 의외라는 듯 날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 웬일이에요? 평소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뭐가 다르게 보여요?”
“글쎄.. 오늘따라 현숙씨가 활달하게 보이네요.”
“아무한테나 그러진 않아요. 수철씨니까 그러지..”
수철씨 말마따나 오늘 내가 왜 이러나?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걷다 보니, 마침 아구찜이라고 써놓은 식당이 보인다.
“수철씨, 저기로 들어가요.”
“그렇게 하죠.”
같이 아구 찜 파는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구 찜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자.. 수철씨, 한잔 받아요.”
내가 술병을 들고 술을 한잔 따른다.
“현숙씨도 한잔 받아요.”
이번엔 수철씨가 나에게 술을 따라준다.
같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듯하다.
취기가 올라오고, 앞에 앉은 수철씨가 점점 마음에 든다.
남자답게 보이고, 박력이 있어 보이는데다 인물까지 남자답게 생겼다.
수철씨가 이야기 한다.
“이젠 술도 꽤 마셨고, 많이 취하는데 그만 일어서죠?”
“그렇게 해요..”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여덟 시다.
남편이 들어 왔을려나?
만일 들어 왔다면, 난리가 나겠지..
별로 걱정은 되지 않고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다.
내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같이 밖으로 나온다.
술 기운이 확 올라오고 간이 배 밖에 나오는 거 같고 세상이 돈짝만하게 보인다.
내가 수철씨 옆에서 팔짱을 낀다.
수철씨가 그런 나를 보고 말한다.
“시간이 늦었는데 집에 가야지요?”
“안 가면 안돼요?”
“예?”
수철씨의 눈이 동그래진다.
“왜 그렇게 놀라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잡아 먹을지 몰라요?”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정말 맛이 있나 없나 잡아 먹을 거예요?”
“그렇게 하세요..”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허 참..”
내가 수철씨의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일부러 가슴을 수철씨의 팔에 바짝 붙인다.
걷고 있으니 팔이 흔들려 유방을 자극한다.
온 몸이 찌르르해 지면서 이미 아랫도리에는 물이 흘러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기분으로는 그냥 가기가 싫다.
수철씨의 억센 가슴에 안겨서 흐벅지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내가 한쪽 팔을 들어 여관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시식할 장소가 보이네요?”
“저.. 농담 아닙니다."
“나도 농담 아니에요.”
수철씨가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발걸음을 여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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