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립스틱*어둠이 깔린 안국동 사거리에는 흰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저명인사들이 회동한다는 장소였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인지 경찰들이 조직적으로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교회버스 한 대가 사거리를 지나 신문사 건물로 향하는 도로로 방향을 꺾더니 골목으로 들어간다. 누구도 교회버스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교회 버스 안에서 십여 명 가량의 사내들이 내려섰다.
사내들은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하게 요정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계급장이 없는 군복차림에 군화를 신은 사내들은 움직이는 동상처럼 골목 안을 걸어갔다. 사내들은 덮개로 쌓인 무게감을 느끼는 물건들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사내들 중에는 허리에 찬 권총자루가 보이기도 한다.
사내들이 한옥 주택 형식의 음식점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난데없는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계근무를 하던 경찰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콩 볶듯이 들리는 총소리와 아우성치는 소리가 어두운 밤공기를 흔들었다. 도로를 지나던 사람들도 혼비백산하여 뛰어 달아난다.
“다다다........!”
“탕, 타 탕, 탕.....!”
총소리가 멈추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들이 기관총과 권총을 들고 뛰어 나왔다. 사내들은 재빨리 교회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교회버스는 서대문 방향의 도로를 질주해 달린다. 사람들과는 반대로 총소리가 들리는 음식점으로 뛰어드는 두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시경의 사복형사들이었다. 사복형사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교회버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날 매스컴에는 야권의 저명인사들이 회동을 하다가 테러를 당해 3명이나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루머와 폭력배를 동원한 정치 테러라는 설도 있었으나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언론기관과 매스컴은 안국동 사건에 대해 연일 정부에 의혹이 깃든 비판을 쏟아냈다.
며칠 되지 않아서 정부에 의해 언론기관의 통폐합이 단행되었다. 19개 언론기관이 흡수 또는 통폐합되었으며 중앙지의 지방주재기자와 지방지의 서울주재기자들이 철수하게 되었다.
한해가 저물고 서울에 인접한 광주군 서부지역의 남한산성 북쪽 기슭의 헐벗었던 나무들이 푸르게 변하고 있다.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피었다가 진녹색으로 변하고 철쭉과 아카시아가 꽃망울을 터트린다. 산기슭의 작은 마을 위쪽에는 오래전부터 모 기업가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아담한 가옥이 있었다. 넓지는 않지만 아담한 정원과 어울리는 기와지붕의 한옥이다. 체격이 다부진 청년이 교복을 걸치고 주저앉아 있는 여학생의 손목을 잡아끈다.
“제발, 이제는 말 좀 들어라! 학교는 가야지.”
“싫단 말이야! 오빠도 가지마!”
“나도 출근 하지 말라고......!? 자꾸 이러면 정말 힘들어.”
“그냥 같이 집에 있으면 안 돼?”
“약속했잖아! 학교는 다니기로.......태워다 줄게.”
“.........!?”
여학생은 큰 눈망울을 굴리더니 마지못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일어선다. 청년은 다름 아닌 강민우였고 여학생은 이진아였다. 가방을 든 이진아는 고개를 숙이고 서서 앞서가는 강민우를 따라 나선다. 강민우는 집 앞에 세워놓은 지프차에 올라가 시동을 걸고, 이진아는 묵묵히 조수석에 올라탄다.
강민우의 지프차가 덜컹거리는 비포장 지대의 마을에서 벗어나 읍내로 향한다. 그들은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바라보며 내리기를 기다린다.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의 표정을 읽는다.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 그들 사이만의 대화 방법이다. 멈칫거리던 이진아가 작은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일찍 올 거지?”
“그래, 늦으면 전화할게.”
“싫어! 일찍 와.”
“........!?”
이진아는 토라진 말을 흘리며 지프차의 문을 힘껏 닫고 내린다. 강민우는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이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지프차를 출발시킨다. 서울로 향하는 차량의 물결 속으로 지프차를 몰고 가는 강민우는 지난 일을 떠 올린다.
흑사회 조직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혼절한 이진아를 메고 나온 강민우는 근처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새벽두시가 넘은 시각이라 어느 병원도 문을 열어주는 곳이 없었다.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근처의 모텔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혼절에서 깨어난 이진아는 강민우를 보고도 벌벌 떨면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막상 어린소녀를 구해주었으나 나이 스물여덟이 되도록 공직생활만 해온 강민우로서는 막막하였다. 정신과 육체적인 상처를 입고 공포에 떨고 있는 이진아가 비명에 죽은 어린 여동생 같기도 하여 우선 세면장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샤워를 시켰다. 발가벗겨진 이진아의 얼굴과 몸에서는 여섯 개의 하트를 그렸던 검은 매직 물과 남성의 분비물, 그리고 선혈이 응고되었던 검붉은 핏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강민우는 이진아의 몸을 정성껏 씻겨주며 처참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와 여동생을 생각했다. 반듯이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다음날 이진아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진찰을 마친 여의사가 일주일간은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면서 정신적인 피해도 클 것이라고 했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향했다. 품삯을 들여 아수라장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장례를 치렀다. 강민우의 아버님도 외동아들이었고 돌발적인 상황이라서 친척 몇 사람만 참석한 조촐한 장례식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간직한 어머니의 반지를 목걸이의 펜던트로 걸고 놈들에게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강민우는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안 되고 수습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 소속된 비밀조직 NDSS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 NDSS는 철저하게 피라미드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다른 팀과의 연락은 불가능했다. 단지 상위 직급인 마스터라는 지휘자의 지시를 받고 있고 마스터를 통한 연락만 가능했다. 강민우는 마스터와 연락을 하여 현재 복귀하지 못하는 입장을 밝히고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마스터는 강민우에게 당분간 광주지역의 중앙정보부 정보원으로 임무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세한 사항은 광주지역 정보 담당책임자인 갈색보라매에게 지시받으라며 연락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갈색보라매와 연락하니 강민우의 사정을 통지 받았다고 하면서 개인 일을 마친 후 업무복귀를 하려면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강민우는 최태웅과 남경식의 행방을 추적하며 동분서주했으나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이진아가 입원한지 일주일이 되어서 병원에 들렀다. 병실로 들어서니 이진아는 겁먹은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잠옷만 걸친 이진아를 퇴원시키려면 옷을 구입해서 입혀야겠다고 생각한 강민우가 다시 병실을 나서려고 뒤돌아섰다. 그런데 웅크리고 있던 이진아가 붙잡고 매달리며 말없이 울기만 했다.
강민우는 잠시 나갔다 올 것이라며 이진아를 진정시키고 근처 백화점으로 갔다. 망설이던 강민우는 눈에 띠는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옷을 구입했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을 이진아에게 입히고 병원비를 계산하여 퇴원시켰다. 본래 남다른 미모를 지닌 이진아는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이진아의 얼굴에는 공포와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하였다. 강민우는 이진아에게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다.
거리로 나온 강민우는 이진아에게 이제 갈 길로 가라고 하면서 손짓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강민우를 보고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계를 하던 이진아가 졸졸 쫓아 왔다. 처참하게 변한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강민우도 이진아의 처지와 심정을 알지만, 이진아를 데리고 다니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강민우는 같이 있을 수 없는 사정을 이진아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진아는 말없이 그를 졸졸 따라왔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돌아보면 이진아가 고개를 숙이고 쫓아오고 있어 강민우가 가라고 손짓을 해도 이진아는 막무가내였다.
이진아는 여전히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할 수없이 강민우는 집안일을 수습한 뒤에 이진아를 마땅한 고아원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휴가를 내어 어머니와 여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고향의 선산에 묘지를 안장하였다. 그리고 이진아를 다른 고아원으로 데리고 갔다. 낌새를 알아차린 이진아는 뒷걸음질하더니 달음박질하여 집에 와 있었다. 어쩔 도리 없이 강민우는 한동안은 이진아를 보살피기로 했다.
그렇지만 오직 국가에 젊음을 받치고 있던 강민우에게 이진아를 보살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원흉들에게 복수할 준비를 하는 그에게 이진아는 버거운 짐이기도 했다. 대인공포증 증세가 있는 이진아는 하루 종일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잠을 자다가도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는지 외마디를 지르며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진아는 충격의 깊은 늪에 빠져 정신적인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도 않을뿐더러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 스스로 발가벗은 몸에 검은 매직으로 하트를 그려 넣었다. 흑사회 조직원들에게 당한 아픔을 되살리는 이진아의 병적인 행동에 강민우는 섬뜩함마저 느꼈었다. 안타깝기는 해도 때로는 이진아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애정이 실타래처럼 그의 마음을 얽어 묶었다.
평소에도 겁에 질린 모습으로 강민우에게 매달리는 이진아는 이따금 잠에서 깨어나서 강민우의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강민우에게 매달리며 와들와들 떨었다. 강민우도 악몽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낭자하게 선혈을 흘리며 사망한 어머니와 여동생이 꿈속에 나타나고, 총성과 함께 복면의 괴한들로부터 쫓기는 악몽을 꾸고 기겁을 하여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었다.
강민우가 이진아를 정신과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극심한 충격으로 정신분열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서 입원치료를 권고했다. 그렇지만 이진아는 입원을 거부하며 강민우에게 매달려 발버둥 쳤다. 어쩔 수없이 정기적인 정신질환 치료와 약을 복용시켰다. 다행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진아가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면서, 대화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강민우는 이진아가 일상생활에 적응하기를 바라며 학교에 등록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강하게 반발하며 등교를 거부하였다.
강민우가 이진아를 간신히 달래서 등교를 시키면 중간에 돌아오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했다. 때로는 같은 반 학생을 폭행하여 강민우가 학교와 학부형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평소 말이 없는 이진아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이진아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에 닥치는 대로 발로 걷어찼다. 길을 가다가도 쓰레기통이나 개들을 이유 없이 걷어차서 동네 사람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강민우가 집을 나서려면 매달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광주사태는 군부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정치와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중앙정보부가 개편되고 강민우는 특수조직인 NDSS에서 국가안전기획부의 정보담당 팀의 팀장이 되었다. 중앙정보부가 안기부로 개편되면서 흑사회를 조정했던 최태웅과 남경식의 자취는 더욱 묘연하였다. 강민우는 어머님과 여동생의 사망과 관련된 놈들에 관한 신상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기부 서울 본부에서 근무하게 된 강민우는 처참한 기억을 떠올리는 광주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민우의 본관은 진주이고 원래 고향은 수원이다. 경찰간부였던 그의 아버지가 광주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가 정착하게 되었다. 간첩소탕 작전을 하다가 사망한 그의 아버지는 임대료로 노년을 보낼 생각으로 몇 채의 건물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님과 어머님이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고향인 수원의 전답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건물과 가옥, 전답 일부를 처분하고 은행잔고까지 합치니 거액의 돈이 강민우의 수중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활기찬 강민우의 인생은 사라지고 비명에 죽음을 당한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한 삶 속으로 강민우는 빠져 들었다. 그의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이진아의 치욕적인 고통도 포함된다. 그는 우선 서울 근교의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을 구했다. 그들은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은연중에 서로 의지가 되고 동질감을 느꼈다. 강민우는 같은 시간에 겪은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이진아에게 정성을 쏟았다.
서울로 옮겨오고 시간이 갈수록 이진아는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지, 이따금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공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진아를 볼 때마다 강민우는 가슴 아파한다. 횟수는 줄었지만 자다가도 악몽에 시달리는 이진아는 베개를 끌어안고 방을 건너와 강민우의 이불 속으로 뛰어든다. 강민우는 이진아의 정신적인 질환을 받아주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이진아가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민우뿐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진아는 고통의 순간이 떠오르면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에게 고통과 치욕을 안겨준 인간들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분노는 저주로 변하고 막연한 보복심이 일어났다. 인간의 저주와 보복심은 삶에 대한 애착심으로 변해간다.
강민우는 생활에 차츰 적응해가는 이진아가 대견스러웠다. 처음에는 어줍은 말투로 아저씨라고 하더니 요즘에는 오빠라고 호칭하며 대화가 늘어가고 있다. 친근감을 표현하는 이진아를 보니 보살폈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이따금 언어를 잃은 것처럼 하루 종일 웅크리고 침묵에 빠지는 그녀를 보는 강민우는 처참하게 살해된 여동생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는 아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육체적으로 이진아는 숙성해지며 소녀티를 벗겨내고 있다. 핏기 없는 얼굴이 점점 뽀얗게 변하고 여자다운 몸매로 변하고 있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진아는 원래 남다른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리지만 눈에 띠는 이진아의 미모가 엘에프 조직원의 욕망을 동요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트로이전쟁의 원인은 제우스의 딸 헬레네의 미모 때문이라고 한다. 어리지만 이진아는 타고난 미모를 지니고 있다. 도화살 이라는 말이 있다. 도화, 즉 복사꽃은 눈에 띄는 화려한 꽃이다. 도화는 특히 벌이 많이 날아든다. 꽃 속에는 벌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수십 마리의 벌은 도화를 죽이는 살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긴 속눈썹과 까맣고 큰 눈망울을 가진 이진아는 시간이 길수록 생기를 찾아가면서 잃었던 미소도 되찾아가고 있다. 점차 밝은 표정으로 보조개를 드리우는 이진아의 모습에 강민우는 다행스럽게 여겼다. 숙성해가는 이진아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처녀다운 체취가 흘러나옴에 멋쩍은 표정으로 외면을 한다. 강민우도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아직도 강민우는 대화를 꺼려하는 이진아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곤혹스럽고 난처할 때가 많았다. 서슴지 않고 발가벗은 몸을 들어내고 옷을 갈아입는 평소의 행동에서도 그렇지만, 불만이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강민우를 붙들고 앙탈을 했다. 그럴 때면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강민우도 그녀를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떤 때는 불만을 표현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이진아가 앙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알고 보니 생리기간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를 보살펴 본 경험도 없고 하여 처음에는 곤혹스러웠지만, 알고부터는 미리 생리대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준비해주기도 했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받아드린 것을 운명처럼 생각한다. 어쩔 수없이 받아드린 이진아를 보살피는 일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이진아가 의외로 순발력이 좋고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이진아가 생활에 적응하도록 피아노를 구입해주고 학원에도 다니게 해 주었다.
어느 날은 이진아가 불쑥 태권도를 배우게 해 달라고 했다.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호신술을 익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강민우는 흔쾌히 본인이 원하는 태권도 도장에도 다니게 해주었다.
강민우 자신도 고통스런 기억 속에 살고 있지만, 상처받은 이진아를 보호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보살펴온 이진아에게 끈끈한 애정을 느낀다. 자신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던 이진아가 낭랑한 목소리로 감정을 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이진아의 톡톡 쏘는 말투를 떠올리며 강민우는 지프차의 기속 페달을 밟는다.
지프차에서 내려 교문 안으로 들어선 이진아는 기둥 뒤에서 멀리 사라지는 강민우의 지프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해준 강민우는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한동안 멀어져가는 지프차를 바라보고 있던 이진아는 화단의 돌부리를 걷어차고 교정으로 향한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이진아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울분이 터진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괴한들에게 윤간을 당하던 순간이 치욕적이고 고통스럽게 항상 각인되어 있었다.
저주스러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이진아는 자신의 몸이 다른 동료 학생들과는 다르다는 열등감에 젖어있다. 학교 동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말조차도 이진아는 비웃는 것으로 들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들이 모두 그녀를 천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피붙이 하나 없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강민우뿐이고, 의지할 사람도 강민우뿐이었다.
공연히 앙탈을 하고 고집을 부리는 그녀를 곤혹스럽게 바라보면서도 헤아려 주는 사람은 강민우뿐이었다. 이진아에게 강민우는 떼어낼 수 없는 생활의 전부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따금 이유도 없이 강민우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터벅터벅 층계를 오르던 이진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같은 반의 옆자리에 앉은 정은숙이었다.
“진아야! 너, 오늘 더 예쁘다.”
“뭐라고.......!?”
뒤를 돌아본 이진아는 대뜸 은숙의 엉덩이를 발길질로 걷어찼다. 이진아의 발에 걷어차인 은숙은 겁먹은 표정으로 한발 물러서서 눈치를 살핀다.
“미안해, 정말 예뻐서 그런데......”
은숙은 명랑하고 활달한 성격이지만, 이진아보다 키가 작고 갸름한 얼굴이면서도 통통한 체격이라서 무척 성숙해 보인다. 평소에 말이 없는 이진아가 그래도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 은숙이었다. 이진아가 톡톡 튀는 거친 말과 행동을 해도 은숙은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이진아는 은숙뿐만 아니라, 같은 반 학생들에게도 주시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한 달 전쯤이었다. 이진아가 학교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중이었다. 학교 담장 밑을 지나는데 은숙이가 여학생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학생들도 꺼리는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서클의 학생들이었다. 이진아는 말없이 다가가서 은숙의 손을 잡아끌었다. 평소에 이진아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진아의 교복을 낚아챘다.
그 순간 이진아의 팔꿈치가 교복을 낚아챈 학생의 명치를 올려쳤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이진아에게 달려들었다. 이진아는 여학생이라고 믿기지 않는 몸놀림으로 은숙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제압하였다. 은숙은 이진아의 빠른 몸놀림에 감탄하여 넋을 잃고 보았다. 결국은 이진아도 상처를 입었지만 여학생들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이진아는 먼저 상대를 강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패한다는 원칙을 몸소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건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학생들은 이진아의 짝으로 옆자리에 앉은 은숙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은숙은 묘한 매력을 느끼는 이진아를 고맙게 까지 생각한다.
이진아와 같은 학년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녀의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다. 잦은 결석을 해도 성적이 상위권 일뿐만 아니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미모와는 달리 언제나 묵묵하고 도도해 보이는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는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으면서도 학교행사나 체육대회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을 발휘했다. 때로는 그녀의 돌발적인 거친 행동과 말투는 신비감을 느끼게 하고 의외로 상대를 흡인하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진아는 동료 학생들의 우정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저주스러운 상처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육체에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다. 동료 학생들과 다르다는 열등감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경계심을 느낀다.
보통 사람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진아의 가슴속에는 항상 분노와 두려움이 쌓여있다.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있는 그녀는 상처를 입힌 상대에 대한 원한과 스스로를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우선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강민우에게 태권도장을 다니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진아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도장뿐만 아니라, 학교 출석도 하지 않는 날이 적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전념하지 못하는 이진아는 혼자만의 침묵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침묵은 고통스런 기억을 떠 올리게 한다. 그녀가 침묵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음악이었다. 의외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서툴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배운 실력으로 스스로 건반을 두들겨서 흘러나오는 음률이 스스로의 목소리 같아서 다른 세상 속의 열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고통의 과거와 열정의 시간들이 흘러간다. 시간의 개념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미래는 서서히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미래를 행해 가는 것은 사람이지 시간이 아니다. 계절은 시간의 흐름이다.
이년 후의 늦은 봄, 일요일 오후에 강민우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던 전과범의 탈주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절도혐의로 기소 중인 절도전과 11범의 범죄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구치감에 대기 중에 교도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구치감 건물 벽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탈주한 사건이 벌어졌다. 부유층과 권력층 집만 골라 털었던 조세형이라는 범죄자였다. 탈주 후 6일 만에 검거되었지만 대담한 탈주행각은 대도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조세형은 고위 관료 등 부유층과 권력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편, 훔친 현금의 일부를 거지나 고아원 등에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는 신문기사가 세관의 관심을 사고 있었다. 재벌회장과 5공 시절 만연한 권력층 부정부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서민들에게 그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것이다. 홍길동 같은 영웅처럼 비쳐진 것이다. 어쩌면 조세형의 탈주는 사회의 단면목이고 서민들에게 내심 통쾌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내들은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하게 요정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계급장이 없는 군복차림에 군화를 신은 사내들은 움직이는 동상처럼 골목 안을 걸어갔다. 사내들은 덮개로 쌓인 무게감을 느끼는 물건들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사내들 중에는 허리에 찬 권총자루가 보이기도 한다.
사내들이 한옥 주택 형식의 음식점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난데없는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계근무를 하던 경찰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콩 볶듯이 들리는 총소리와 아우성치는 소리가 어두운 밤공기를 흔들었다. 도로를 지나던 사람들도 혼비백산하여 뛰어 달아난다.
“다다다........!”
“탕, 타 탕, 탕.....!”
총소리가 멈추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들이 기관총과 권총을 들고 뛰어 나왔다. 사내들은 재빨리 교회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교회버스는 서대문 방향의 도로를 질주해 달린다. 사람들과는 반대로 총소리가 들리는 음식점으로 뛰어드는 두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시경의 사복형사들이었다. 사복형사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교회버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날 매스컴에는 야권의 저명인사들이 회동을 하다가 테러를 당해 3명이나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루머와 폭력배를 동원한 정치 테러라는 설도 있었으나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언론기관과 매스컴은 안국동 사건에 대해 연일 정부에 의혹이 깃든 비판을 쏟아냈다.
며칠 되지 않아서 정부에 의해 언론기관의 통폐합이 단행되었다. 19개 언론기관이 흡수 또는 통폐합되었으며 중앙지의 지방주재기자와 지방지의 서울주재기자들이 철수하게 되었다.
한해가 저물고 서울에 인접한 광주군 서부지역의 남한산성 북쪽 기슭의 헐벗었던 나무들이 푸르게 변하고 있다.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피었다가 진녹색으로 변하고 철쭉과 아카시아가 꽃망울을 터트린다. 산기슭의 작은 마을 위쪽에는 오래전부터 모 기업가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아담한 가옥이 있었다. 넓지는 않지만 아담한 정원과 어울리는 기와지붕의 한옥이다. 체격이 다부진 청년이 교복을 걸치고 주저앉아 있는 여학생의 손목을 잡아끈다.
“제발, 이제는 말 좀 들어라! 학교는 가야지.”
“싫단 말이야! 오빠도 가지마!”
“나도 출근 하지 말라고......!? 자꾸 이러면 정말 힘들어.”
“그냥 같이 집에 있으면 안 돼?”
“약속했잖아! 학교는 다니기로.......태워다 줄게.”
“.........!?”
여학생은 큰 눈망울을 굴리더니 마지못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일어선다. 청년은 다름 아닌 강민우였고 여학생은 이진아였다. 가방을 든 이진아는 고개를 숙이고 서서 앞서가는 강민우를 따라 나선다. 강민우는 집 앞에 세워놓은 지프차에 올라가 시동을 걸고, 이진아는 묵묵히 조수석에 올라탄다.
강민우의 지프차가 덜컹거리는 비포장 지대의 마을에서 벗어나 읍내로 향한다. 그들은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바라보며 내리기를 기다린다.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의 표정을 읽는다.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 그들 사이만의 대화 방법이다. 멈칫거리던 이진아가 작은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일찍 올 거지?”
“그래, 늦으면 전화할게.”
“싫어! 일찍 와.”
“........!?”
이진아는 토라진 말을 흘리며 지프차의 문을 힘껏 닫고 내린다. 강민우는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이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지프차를 출발시킨다. 서울로 향하는 차량의 물결 속으로 지프차를 몰고 가는 강민우는 지난 일을 떠 올린다.
흑사회 조직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혼절한 이진아를 메고 나온 강민우는 근처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새벽두시가 넘은 시각이라 어느 병원도 문을 열어주는 곳이 없었다.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근처의 모텔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혼절에서 깨어난 이진아는 강민우를 보고도 벌벌 떨면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막상 어린소녀를 구해주었으나 나이 스물여덟이 되도록 공직생활만 해온 강민우로서는 막막하였다. 정신과 육체적인 상처를 입고 공포에 떨고 있는 이진아가 비명에 죽은 어린 여동생 같기도 하여 우선 세면장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샤워를 시켰다. 발가벗겨진 이진아의 얼굴과 몸에서는 여섯 개의 하트를 그렸던 검은 매직 물과 남성의 분비물, 그리고 선혈이 응고되었던 검붉은 핏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강민우는 이진아의 몸을 정성껏 씻겨주며 처참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와 여동생을 생각했다. 반듯이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다음날 이진아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진찰을 마친 여의사가 일주일간은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면서 정신적인 피해도 클 것이라고 했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향했다. 품삯을 들여 아수라장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장례를 치렀다. 강민우의 아버님도 외동아들이었고 돌발적인 상황이라서 친척 몇 사람만 참석한 조촐한 장례식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간직한 어머니의 반지를 목걸이의 펜던트로 걸고 놈들에게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강민우는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안 되고 수습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 소속된 비밀조직 NDSS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 NDSS는 철저하게 피라미드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다른 팀과의 연락은 불가능했다. 단지 상위 직급인 마스터라는 지휘자의 지시를 받고 있고 마스터를 통한 연락만 가능했다. 강민우는 마스터와 연락을 하여 현재 복귀하지 못하는 입장을 밝히고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마스터는 강민우에게 당분간 광주지역의 중앙정보부 정보원으로 임무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세한 사항은 광주지역 정보 담당책임자인 갈색보라매에게 지시받으라며 연락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갈색보라매와 연락하니 강민우의 사정을 통지 받았다고 하면서 개인 일을 마친 후 업무복귀를 하려면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강민우는 최태웅과 남경식의 행방을 추적하며 동분서주했으나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이진아가 입원한지 일주일이 되어서 병원에 들렀다. 병실로 들어서니 이진아는 겁먹은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잠옷만 걸친 이진아를 퇴원시키려면 옷을 구입해서 입혀야겠다고 생각한 강민우가 다시 병실을 나서려고 뒤돌아섰다. 그런데 웅크리고 있던 이진아가 붙잡고 매달리며 말없이 울기만 했다.
강민우는 잠시 나갔다 올 것이라며 이진아를 진정시키고 근처 백화점으로 갔다. 망설이던 강민우는 눈에 띠는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옷을 구입했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을 이진아에게 입히고 병원비를 계산하여 퇴원시켰다. 본래 남다른 미모를 지닌 이진아는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이진아의 얼굴에는 공포와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하였다. 강민우는 이진아에게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다.
거리로 나온 강민우는 이진아에게 이제 갈 길로 가라고 하면서 손짓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강민우를 보고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계를 하던 이진아가 졸졸 쫓아 왔다. 처참하게 변한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강민우도 이진아의 처지와 심정을 알지만, 이진아를 데리고 다니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강민우는 같이 있을 수 없는 사정을 이진아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진아는 말없이 그를 졸졸 따라왔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돌아보면 이진아가 고개를 숙이고 쫓아오고 있어 강민우가 가라고 손짓을 해도 이진아는 막무가내였다.
이진아는 여전히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할 수없이 강민우는 집안일을 수습한 뒤에 이진아를 마땅한 고아원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휴가를 내어 어머니와 여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고향의 선산에 묘지를 안장하였다. 그리고 이진아를 다른 고아원으로 데리고 갔다. 낌새를 알아차린 이진아는 뒷걸음질하더니 달음박질하여 집에 와 있었다. 어쩔 도리 없이 강민우는 한동안은 이진아를 보살피기로 했다.
그렇지만 오직 국가에 젊음을 받치고 있던 강민우에게 이진아를 보살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원흉들에게 복수할 준비를 하는 그에게 이진아는 버거운 짐이기도 했다. 대인공포증 증세가 있는 이진아는 하루 종일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잠을 자다가도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는지 외마디를 지르며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진아는 충격의 깊은 늪에 빠져 정신적인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도 않을뿐더러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 스스로 발가벗은 몸에 검은 매직으로 하트를 그려 넣었다. 흑사회 조직원들에게 당한 아픔을 되살리는 이진아의 병적인 행동에 강민우는 섬뜩함마저 느꼈었다. 안타깝기는 해도 때로는 이진아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애정이 실타래처럼 그의 마음을 얽어 묶었다.
평소에도 겁에 질린 모습으로 강민우에게 매달리는 이진아는 이따금 잠에서 깨어나서 강민우의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강민우에게 매달리며 와들와들 떨었다. 강민우도 악몽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낭자하게 선혈을 흘리며 사망한 어머니와 여동생이 꿈속에 나타나고, 총성과 함께 복면의 괴한들로부터 쫓기는 악몽을 꾸고 기겁을 하여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었다.
강민우가 이진아를 정신과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극심한 충격으로 정신분열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서 입원치료를 권고했다. 그렇지만 이진아는 입원을 거부하며 강민우에게 매달려 발버둥 쳤다. 어쩔 수없이 정기적인 정신질환 치료와 약을 복용시켰다. 다행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진아가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면서, 대화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강민우는 이진아가 일상생활에 적응하기를 바라며 학교에 등록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강하게 반발하며 등교를 거부하였다.
강민우가 이진아를 간신히 달래서 등교를 시키면 중간에 돌아오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했다. 때로는 같은 반 학생을 폭행하여 강민우가 학교와 학부형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평소 말이 없는 이진아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이진아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에 닥치는 대로 발로 걷어찼다. 길을 가다가도 쓰레기통이나 개들을 이유 없이 걷어차서 동네 사람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강민우가 집을 나서려면 매달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광주사태는 군부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정치와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중앙정보부가 개편되고 강민우는 특수조직인 NDSS에서 국가안전기획부의 정보담당 팀의 팀장이 되었다. 중앙정보부가 안기부로 개편되면서 흑사회를 조정했던 최태웅과 남경식의 자취는 더욱 묘연하였다. 강민우는 어머님과 여동생의 사망과 관련된 놈들에 관한 신상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기부 서울 본부에서 근무하게 된 강민우는 처참한 기억을 떠올리는 광주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민우의 본관은 진주이고 원래 고향은 수원이다. 경찰간부였던 그의 아버지가 광주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가 정착하게 되었다. 간첩소탕 작전을 하다가 사망한 그의 아버지는 임대료로 노년을 보낼 생각으로 몇 채의 건물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님과 어머님이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고향인 수원의 전답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건물과 가옥, 전답 일부를 처분하고 은행잔고까지 합치니 거액의 돈이 강민우의 수중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활기찬 강민우의 인생은 사라지고 비명에 죽음을 당한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한 삶 속으로 강민우는 빠져 들었다. 그의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이진아의 치욕적인 고통도 포함된다. 그는 우선 서울 근교의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을 구했다. 그들은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은연중에 서로 의지가 되고 동질감을 느꼈다. 강민우는 같은 시간에 겪은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이진아에게 정성을 쏟았다.
서울로 옮겨오고 시간이 갈수록 이진아는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지, 이따금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공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진아를 볼 때마다 강민우는 가슴 아파한다. 횟수는 줄었지만 자다가도 악몽에 시달리는 이진아는 베개를 끌어안고 방을 건너와 강민우의 이불 속으로 뛰어든다. 강민우는 이진아의 정신적인 질환을 받아주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이진아가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민우뿐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진아는 고통의 순간이 떠오르면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에게 고통과 치욕을 안겨준 인간들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분노는 저주로 변하고 막연한 보복심이 일어났다. 인간의 저주와 보복심은 삶에 대한 애착심으로 변해간다.
강민우는 생활에 차츰 적응해가는 이진아가 대견스러웠다. 처음에는 어줍은 말투로 아저씨라고 하더니 요즘에는 오빠라고 호칭하며 대화가 늘어가고 있다. 친근감을 표현하는 이진아를 보니 보살폈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이따금 언어를 잃은 것처럼 하루 종일 웅크리고 침묵에 빠지는 그녀를 보는 강민우는 처참하게 살해된 여동생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는 아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육체적으로 이진아는 숙성해지며 소녀티를 벗겨내고 있다. 핏기 없는 얼굴이 점점 뽀얗게 변하고 여자다운 몸매로 변하고 있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진아는 원래 남다른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리지만 눈에 띠는 이진아의 미모가 엘에프 조직원의 욕망을 동요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트로이전쟁의 원인은 제우스의 딸 헬레네의 미모 때문이라고 한다. 어리지만 이진아는 타고난 미모를 지니고 있다. 도화살 이라는 말이 있다. 도화, 즉 복사꽃은 눈에 띄는 화려한 꽃이다. 도화는 특히 벌이 많이 날아든다. 꽃 속에는 벌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수십 마리의 벌은 도화를 죽이는 살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긴 속눈썹과 까맣고 큰 눈망울을 가진 이진아는 시간이 길수록 생기를 찾아가면서 잃었던 미소도 되찾아가고 있다. 점차 밝은 표정으로 보조개를 드리우는 이진아의 모습에 강민우는 다행스럽게 여겼다. 숙성해가는 이진아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처녀다운 체취가 흘러나옴에 멋쩍은 표정으로 외면을 한다. 강민우도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아직도 강민우는 대화를 꺼려하는 이진아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곤혹스럽고 난처할 때가 많았다. 서슴지 않고 발가벗은 몸을 들어내고 옷을 갈아입는 평소의 행동에서도 그렇지만, 불만이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강민우를 붙들고 앙탈을 했다. 그럴 때면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강민우도 그녀를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떤 때는 불만을 표현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이진아가 앙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알고 보니 생리기간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를 보살펴 본 경험도 없고 하여 처음에는 곤혹스러웠지만, 알고부터는 미리 생리대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준비해주기도 했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받아드린 것을 운명처럼 생각한다. 어쩔 수없이 받아드린 이진아를 보살피는 일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이진아가 의외로 순발력이 좋고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이진아가 생활에 적응하도록 피아노를 구입해주고 학원에도 다니게 해 주었다.
어느 날은 이진아가 불쑥 태권도를 배우게 해 달라고 했다.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호신술을 익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강민우는 흔쾌히 본인이 원하는 태권도 도장에도 다니게 해주었다.
강민우 자신도 고통스런 기억 속에 살고 있지만, 상처받은 이진아를 보호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보살펴온 이진아에게 끈끈한 애정을 느낀다. 자신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던 이진아가 낭랑한 목소리로 감정을 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이진아의 톡톡 쏘는 말투를 떠올리며 강민우는 지프차의 기속 페달을 밟는다.
지프차에서 내려 교문 안으로 들어선 이진아는 기둥 뒤에서 멀리 사라지는 강민우의 지프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해준 강민우는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한동안 멀어져가는 지프차를 바라보고 있던 이진아는 화단의 돌부리를 걷어차고 교정으로 향한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이진아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울분이 터진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괴한들에게 윤간을 당하던 순간이 치욕적이고 고통스럽게 항상 각인되어 있었다.
저주스러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이진아는 자신의 몸이 다른 동료 학생들과는 다르다는 열등감에 젖어있다. 학교 동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말조차도 이진아는 비웃는 것으로 들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들이 모두 그녀를 천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피붙이 하나 없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강민우뿐이고, 의지할 사람도 강민우뿐이었다.
공연히 앙탈을 하고 고집을 부리는 그녀를 곤혹스럽게 바라보면서도 헤아려 주는 사람은 강민우뿐이었다. 이진아에게 강민우는 떼어낼 수 없는 생활의 전부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따금 이유도 없이 강민우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터벅터벅 층계를 오르던 이진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같은 반의 옆자리에 앉은 정은숙이었다.
“진아야! 너, 오늘 더 예쁘다.”
“뭐라고.......!?”
뒤를 돌아본 이진아는 대뜸 은숙의 엉덩이를 발길질로 걷어찼다. 이진아의 발에 걷어차인 은숙은 겁먹은 표정으로 한발 물러서서 눈치를 살핀다.
“미안해, 정말 예뻐서 그런데......”
은숙은 명랑하고 활달한 성격이지만, 이진아보다 키가 작고 갸름한 얼굴이면서도 통통한 체격이라서 무척 성숙해 보인다. 평소에 말이 없는 이진아가 그래도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 은숙이었다. 이진아가 톡톡 튀는 거친 말과 행동을 해도 은숙은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이진아는 은숙뿐만 아니라, 같은 반 학생들에게도 주시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한 달 전쯤이었다. 이진아가 학교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중이었다. 학교 담장 밑을 지나는데 은숙이가 여학생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학생들도 꺼리는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서클의 학생들이었다. 이진아는 말없이 다가가서 은숙의 손을 잡아끌었다. 평소에 이진아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진아의 교복을 낚아챘다.
그 순간 이진아의 팔꿈치가 교복을 낚아챈 학생의 명치를 올려쳤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이진아에게 달려들었다. 이진아는 여학생이라고 믿기지 않는 몸놀림으로 은숙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제압하였다. 은숙은 이진아의 빠른 몸놀림에 감탄하여 넋을 잃고 보았다. 결국은 이진아도 상처를 입었지만 여학생들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이진아는 먼저 상대를 강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패한다는 원칙을 몸소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건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학생들은 이진아의 짝으로 옆자리에 앉은 은숙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은숙은 묘한 매력을 느끼는 이진아를 고맙게 까지 생각한다.
이진아와 같은 학년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녀의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다. 잦은 결석을 해도 성적이 상위권 일뿐만 아니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미모와는 달리 언제나 묵묵하고 도도해 보이는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는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으면서도 학교행사나 체육대회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을 발휘했다. 때로는 그녀의 돌발적인 거친 행동과 말투는 신비감을 느끼게 하고 의외로 상대를 흡인하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진아는 동료 학생들의 우정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저주스러운 상처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육체에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다. 동료 학생들과 다르다는 열등감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경계심을 느낀다.
보통 사람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진아의 가슴속에는 항상 분노와 두려움이 쌓여있다.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있는 그녀는 상처를 입힌 상대에 대한 원한과 스스로를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우선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강민우에게 태권도장을 다니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진아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도장뿐만 아니라, 학교 출석도 하지 않는 날이 적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전념하지 못하는 이진아는 혼자만의 침묵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침묵은 고통스런 기억을 떠 올리게 한다. 그녀가 침묵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음악이었다. 의외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서툴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배운 실력으로 스스로 건반을 두들겨서 흘러나오는 음률이 스스로의 목소리 같아서 다른 세상 속의 열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고통의 과거와 열정의 시간들이 흘러간다. 시간의 개념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미래는 서서히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미래를 행해 가는 것은 사람이지 시간이 아니다. 계절은 시간의 흐름이다.
이년 후의 늦은 봄, 일요일 오후에 강민우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던 전과범의 탈주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절도혐의로 기소 중인 절도전과 11범의 범죄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구치감에 대기 중에 교도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구치감 건물 벽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탈주한 사건이 벌어졌다. 부유층과 권력층 집만 골라 털었던 조세형이라는 범죄자였다. 탈주 후 6일 만에 검거되었지만 대담한 탈주행각은 대도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조세형은 고위 관료 등 부유층과 권력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편, 훔친 현금의 일부를 거지나 고아원 등에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는 신문기사가 세관의 관심을 사고 있었다. 재벌회장과 5공 시절 만연한 권력층 부정부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서민들에게 그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것이다. 홍길동 같은 영웅처럼 비쳐진 것이다. 어쩌면 조세형의 탈주는 사회의 단면목이고 서민들에게 내심 통쾌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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