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아, 차돌아
차돌아, 차돌아 [제62부]
깊은 산속,
해가 어두컴컴해져서야 차돌 이와 무아거사는 작고 얼기설기 지은 움막 같은 집이 몇 개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차돌 이는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평소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차돌 이는 무아거사를 따라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우 리 며 거위 뛰다시피 하였다.
온몸에 땀이 나와 속옷을 축축하게 적신지 오래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적지에 당도한 차돌 이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더 이상 서 있기가 힘든지 무릎을 손으로 잡고 엎드려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무아거사는 여기까지 올라와도 호흡은 물론 어디하나 지친 구석이 없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16-18세 정도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와 무아거사에게 절을 하며 반긴다.
말없이 인사를 하는 여자이이의 얼굴은 반가움과 또 한편 차돌 이를 보고는 의구심이 일어나는지 두 사람을 쳐다보는 여자아이의 표정은 보는 사람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다.
[무랑아, 저 아이가 오늘부터 여기에 머물 것이니라.
빈 움막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내일 내려가서 이 아이의 짐을 가져오도록 해라.]
소녀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움막으로 들어간다.
차돌 이는 소녀가 무아거사의 물음에도 고개로 가부를 알리자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린 소녀인데 벙어리라니.....
다시 무아거사의 음성이 들린다.
[저 아이는 벙어리가 아니란다.
그냥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
자. 따라들어 오너라.......]
무아거사는 차돌이의 속을 알고 있는 것처럼 궁금증을 풀어주고 한 움막으로 들어간다.
차돌이도 무아거사의 뒤를 따라 들어가 무아거사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무엇 때문에 고생을 자초하는지는 묻지 않겠다.
네가 뭘 얻기 위해 시련을 견디고 아니 견디고는 네 하기에 달렸으니..
네가 시련을 이겨내면 내가가진 조그만 것을 가르쳐줄 것이고...
하여간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바로 수련에 들것이니 그리 알아라.]
무아거사는 차돌 이를 직시하며 조용하면서도 엄숙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모든 것은 네 하기 나름이다 그런 말이다.
그리고 바쁘게 수련을 지시하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왕 제자를 받아들였으니 한 가지 라도 많이 물려주고 싶은데 시간은 많지 않고 어떻게 하든 한시라도 빨리 제자가 조그만 성취라도 이루는걸 보고 싶은 것이다.
그만큼 거사는 차돌이의 재질과 총명함을 보이는 눈동자에 매료되어 있었다.
[네, 사부님.......]
차돌 이는 사부님의 말에 최대한 공손히 대답하며 입술을 굳게 앙다문다.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아까 보았던 소녀가 조촐하게 차린 밥상을 들고 온다.
밥공기엔 그야말로 두 숟갈만 떠도 없어질 양의 밥이 담겨있었고 찬으로는 이름 모를 채소로 조금씩 두 가지가 차려있었다.
차돌 이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숫제 아니 먹니 만 못할 것 같았다.
무아거사는 차돌이의 심중을 눈치 채었는지 다시 조그맣게 말한다.
[이곳까지 곡식 나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사람이 배가 부르면 게을러지고 그러면 수양에 도움이 되지 못하느니라.
물론 적은 양이라 처음엔 힘들겠지만 ,,,,
그러나 언젠가는 이것도 배가 부르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야.]
[예, 알겠습니다, 사부님..........]
세 사람은 밥상을 두고 밥을 먹는다.
무아거사는 젓가락에 몇 알 안 되는 밥을 입에 넣고는 한참을 오물거리며 먹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차돌 이는 처음 에는 배가고파 급하게 먹었지만 사부님이 저를 놓지 않았는데 제자가 저를 먼저 놓는다는 것은 예가 아니다, 여기며 억지로 속도를 맞춘다.
실로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사부님의 축출 령이 있고서야 차돌 이는 움막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안내를 받고 움막에 와서는 자리에 누워 버린다.
피로가 겹친 탓인지 잠이 연신 쏟아졌기 때문이다.
얕은 홑이불을 깔고 덮으니 추위에 온몸이 오싹해 온다.
움막은 불을 지필 곳도 없는 말 그대로 거적 대기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막이었기에 거적 대기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 온몸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움츠리고 차돌 이는 눈을 감는다.
.
다음날....
차돌 이는 사부로부터 엄청난 꾸중을 들어야했다.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아침을 조촐하게 마친 두 사람은 산으로 다시 오른다.
깊은 골짜기가 나오고 엄청난 바위가 길을 막고 펼쳐져있다.
바위 한 가운데로 물줄기가 내려치고 바위 밑에는 움막의 크기 만 한 웅덩이에 물이 넘쳐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이런 곳이 있다니 자연의 방대함에 그저 놀라는 차돌이다.
무아거사는 차돌 이를 폭포가 떨어지는 바위 밑 조그만 동굴로 안내한다.
바닥엔 거적 대기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굴이었다.
노인은 거적 대기에 앉는다.
[내 곁에 앉아라.]
차돌 이는 사부 옆에 무릎을 꿇는다.
[그렇게 앉지 말고 좌선하는 자세로 앉아라.]
차돌 이는 다시 자세를 고쳐 사부님이 앉아있는 모습을 흉내 내며 앉으려한다.
[허허. 아이야.....
좌선이란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리라.
무엇보다 먼저 몸이 편안해야 수월히 명상에 빠져들 수 있고 불편한 자세로는 깊은
명상에 잠길 수가 없느니라.
그건 육체의 고통이 정신이 가고자함을 막기 때문이니라.
네가 제일 편한 자세로 앉으려무나..........]
차돌 이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절을 하고는 사부의 지시대로 평상시 하던 대로 양반다리로 앉는다.
차돌이가 앉자 무아거사의 목소리가 굴 안에 퍼진다.
[지금 네게 일러줄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노부가 알고 있는 것 중에 그래도 남에게 가르칠만한 것이 기 이니라.
무릇 기란 자기성찰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알고 있는 수련방법을 그나마
알려주고자 함이니라.
그것을 얼마나 빨리 느끼고 깨닫고는 아이 네가 하기 달렸느니라.
먼저 지금부터 벽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공을 깨달아보아라.
공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비워 없는 것을 말한다.
그걸 깨달으려면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미래에 관한 어떤 고정된 생각이나 희망을 지니고 있는 한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새를 보라 그러면 나는 흔적도 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새의 흔적은 볼 수 없는데도 우리는 그 흔적을 말한다.
그건 마치 볼 수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반대로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니라.
사람들의 진정한 존재는 공으로 시작해서 공으로 돌아간다.
내 마음이 어느 한곳으로 집중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 두 거라.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듯 그냥 가는 데로 맡겨 두 거라.
집중을 하면 안 된다.
마음이 가는 데로 호흡도 생각도 모든 것을 그냥 두고 단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
이러한 수행을 계속하다보면 공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존재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네가 깨달으면 다음엔 공의 공간에 하나의 마음을 심었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손가락으로 이동하도록 해라.
공의 세계에 돌입하면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겠는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아주 자연스러워지니 어렵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면 네가 모르는 우주의 기와 네 신체의 잠 력 이 그곳으로 이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니라.
그때 손가락에 모인 마음의 기를 몸 밖으로 내 보낸다 생각하고 힘을 써보아라.
그래서 이것을 손가락으로 찔러 깨뜨린다면 기를 네 몸속에 받아들이고 발출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느니라.
내가 가르칠 것이 이것이니라.
얼마나 이것을 빨리 깨닫고는 네 정신여하에 달렸으니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그걸 이루고 그리고 다시 부단히 수련하면 더욱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니라.
만약 네가 그런 경지에 이른다면 다음으로 내가 가진 조그마한 비기마저 전수해주마.
내 나이 고령이라 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가 빼앗아가려면 조금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될 것이니라.....
그러니 오늘부터 여기서 생활하며 이 자그마한 돌을 손가락으로 깨뜨리지 못한다면
내려오지를 말거라.
만일 참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기 길로 바로 하산해야 할 것이다.
내말 알아듣겠는가.]
무아거사는 긴 설명을 하고는 눈을 감는다.
오래 간만에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제자를 깨우치게 하려는 전수였지만 과연 이룰 수 있을지도 염려가 된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자기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그마한 성취를 보았는데 과연 제자가 모진 고통을 참으며 아주 작은 성취라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아직 젊은 나이이고 외국 사람인데 수련 중에 불상사라도 나면 어찌할까 염려가 되어 많은 말을 한 것이다.
차돌 이는 일순 당황했다.
어떻게 좌선을 하고 어떻게 마음을 비우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다 전혀 그런 말씀은 없다.
오로지 차돌 이에게 맡겨놓을 뿐이다.
차돌이도 사부님이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따를 것을 다짐한다.
[예, 사부님, 절대 사부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그래야지, 그럼 지금부터 면벽에 들어 수련을 시작하도록 하 거라.......
어지러운 자연 환경보다 단순한 벽이 생각을 편하게 하고 공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리라. 지루하고 고통스럽겠지만.....
또 한 가지 모든 일에는 쉬움과 어려움이 겹치는 법이다,
쉽다고 척척 해치우고 어렵다고 피하면 아무 일도 끝내지 못하는 법이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는 수월했던 것을 생각해 믿고 의지해 어려움을 의심해 보거라,
그러면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 이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하는 법이고 깊은 물에서 놀고 싶으면
얕은 물에서 먼저 물놀이를 해야 하는 법이다.
이렇게 세상만물이치는 간단한데도 인간은 늘 항상 망각하고 잊고 사는 것이다.
큰 것을 얻으려면 작은 것을 소중히 하듯이 처음이 무척 중요한 법이다.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니라.]
사부는 일어난다.
무아거사는 일어나며 차돌 이를 무심하게 쳐다본다.
기의 수련을 어찌 말로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오로지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아는 것이며 인체의 신비한 힘을 이끌어 내는 것인데 남의 힘을 빌 어 터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아거사는 자기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그대로를 차돌 이에게 일러주고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아니 고통보다는 외로움, 그리고 좀체 들지 못하는 공의세계에 절망감, 모든 것이 얼마나 힘 든다는 걸 알기에 얼굴에 표정은 그리지 않았지만 측은한 눈으로 쳐다본 것이다.
차돌 이는 굴 앞까지 나와 공손히 합장하며 인사를 드리고는 굴속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보며 눈을 감는다.
차돌이도 한시라도 지체할 여유나 시간도 없었다.
이루고자 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있는데 그것을 이루는데 도움 되는 공부를 하고자왔지만 오래 머물 여건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이루로 차돌 이는 사부가 일러준 대로 수련에 집중한다.
세월은 흘러간다.
처음 차돌 이는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지 못하고 엄청난 마음의 방황을 알아야했다.
아침에 한번 소녀가 주먹밥을 갖다 주면 그것으로 하루를 때워야했고 배고픔과 깨달음을
얻지 못해 엄청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가게 마련이고 차돌이의 집념은 무서우리만치 집요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허 하고 없는 마치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내 몸이
가벼워 하늘에 둥둥 날아다닐 것도 같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었구나.
정신을 흩트리면 세상에 내가 와있지만 정신을 수습하면 다시 편안해지는 것이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더욱 편안해지는 속도가 빨리 오고 몸은 무엇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이것이 공이란 것이었구나.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렵고, 그러면서도 너무나 보잘것없는 그런 세계가 공의 세계였구나.
차돌 이는 공의 경지를 느끼고 그걸 깨닫고자 수련을 계속하자 그때부터 그토록 괴롭히던 배고픔과 앉아있는 자세에 대한 고통도 점점 사라짐을 느끼게 되었다.
추운 겨울날에 굴속에 들어간 차돌이가 돌멩이를 무의식중에 내 뻗친 손가락에 의해 깨어진 것은 무더위가 기성을 부리는 여름철이었다.
세월을 잊고 오직 기의 수련에만 매달린 효과였다.
차돌 이는 너무나 감격에 벅차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모진 고초 속에 얻은 깨달음이 아닌가.
전에 없던 몸속에서 뭔가 살아 전신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기이한 힘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 움직임을 전부 손가락으로 모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마음으로 그 기를 실어 찌른 결과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아니던가.
이제 스승님이 바라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벅찬 감격에 해냈다는 자부심에 그간의 고초를 잊고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차돌 이는 한달음에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수염이 텁수룩이 자라 보이지도 않는 입으로 사부님께 아뢴다.
[사부님, 제자가 해냈습니다.
드디어 사부님이 바라던 바를 제자가 해내고 말았습니다.]
차돌 이는 사부님의 면전에 무릎을 꿇으며 환호의 소리를 질러댄다.
감격에 들떠 더듬거리며 말하는 차돌 이를 무아거사는 눈을 부라리며 냉정하게 꾸짖는다.
[아이야, 그 깐 것을 지금 이루고서 감격하다니 정말 실망이로다.
산천에 펄펄 날던 꾀꼬리는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에게 잡혀 조롱 속에서
얻어먹고 살고 마음이 깊고 넓은 사람은 꾀꼬리 같은 목청을 지니고 있어도 뱁새처럼
산다했다.
가슴에 옥을 품어도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산다며 노자님이 남기신 말도 있다.
부를 자랑하면 졸부가 되고 지위를 자랑하면 간신이 되느니라.
졸부란 헐벗은 허수아비처럼 자신을 감추는 짓이고 간신은 굶주린 개가 남의 밥통을
훔치듯 염탐꾼에 불과할 뿐이니라.
자랑할 것이 많을수록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항상 겸손하고 겸양해야 참다운 자아를 이루는 것이니라.
내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야,
네가 늦게나마 성취를 이루었다니 사부는 조금은 보람을 느끼느니라....
그러니 조금치도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하여간 고생이 많았느니라.
얼굴이랑 머리를 다듬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른 공부를 해야 하니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도록..........
그리고 지금 네가 이룬 경지를 계속 수련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 것이니라.
그러하니 부단히 노력하고 더욱더 열심히 정진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무아거사는 차돌이가 조그마한 성취로 기뻐 날뛰며 자만하는 것을 나무란다.
어미가 젖을 먹일 때 아이에게 영양 좋은 젖이라고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그렇지만 제자가 성취를 이룬 것에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사실 무아거사는 속으로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제자의 빠른 성취가 자기의 상상을 너무나 벗어났기에...........
그러나 한줌의 표정도 흩으러 떨이트리지 않고 자만하는 차돌 이를 나무란다.
[예, 사부님 이 제자가 조그만 성취에 너무 자만하였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차돌 이는 부끄러워졌다.
조그만 성취에 도취되어 날 띤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차돌이가 얼굴을 붉히며 더욱더 열심히 수련할 것을 맹세한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나의 성취는 대단할 것도 아닌데 괜한
호들갑을 떨어 사부님을 실망시켰구나,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나였더란 말인가.
머나먼 이국땅까지 와서 이정도로 만족하고 날뛰는 망아지처럼 설치려고 왔단 말인가.
아직 멀었구나. 내가 너무 자만했구나.
사람이란 뜨거운 불똥이 살갗에 떨어져야 뜨거운 줄 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뜨거운 줄도 모르는 법이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새롭게 의지를 다지는 차돌이다.
그러자 사부는 흐뭇한 듯 차돌 이를 보며 웃는다.
[그래, 그래야하느니라.....
그러니 이만 나가 보거라,
네놈에게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구나.
무랑이 네 머리를 손질해줄 테니 깨끗이 하여 내일 보자꾸나...]
[예, 사부님, 그럼........]
차돌이가 사부님의 질타만 받고 나온다.
차돌이가 나가자 거사는 그제 서야 얼굴에 당혹한 빛을 그린다.
젊은 아이가 정말로 이정도의 경지에 6개월이라는 시간에 성취를 이룰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몰랐기 때문이다.
진 노인이 극찬하고 자기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는 골격과 품새에 조금 가르쳐보고자 했으나 이렇게 빠른 시일에 이런 경지까지 도달하리라곤 전혀 뜻밖이었다.
[허허허..정말 놀랄 일이네...
난 그 아이가 제풀에 지쳐 그만 갈 줄 알았는데 그러한 경지까지 가다니......
정말 무서울 정도로 집념이 강한 아이로고....허허허.....]
끝내는 흐뭇한 웃음으로 바뀌는 무아거사이다.
제자가 이렇게 훌륭한 성취를 이루자 사부로써 기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잘 되었어,
이제 나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 되었는데...........
저 아이라면 우리 무랑 이를 잘 보살펴 줄 수 있으리라......
정말 남은 걱정거리를 저 아이가 풀어줬으면 좋으련만............]
무아거사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는다..
.
그날이후
차돌 이는 사부로부터 기의 흐름과 발출하는 방법 또 신체부위와 혈맥의 상관관계 등을 전수받는다.
또한 어찌하면 몸속의 기를 발출하여 적은 힘으로도 상당한 파괴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 기를 운용하는 방법도 알려주었고 시시각각 움직임이 틀리다는 혈의 운동과 활용하는 법과 혈을 순탄히 하여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비법도 전수하길 마다않았다.
또한 시간이 나면 차돌이가 새벽에 운동할 때 움직임을 보고 적시에 빠르게 기를 활용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차돌이의 몸엔 은연중 근접키 힘든 중압감을 지니게 되었고 눈빛은 더욱 총총하게 빛나고 몸은 가볍고 재빨라져갔다.
예전에 뛰어넘지 못하던 곳도 어렵지 않게 몸을 솟구쳐 넘어갈 수가 있었고 힘들고 오랜 뜀박질에도 쉬 피로가 오지 않았다.
차돌 이는 세월이 가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차돌이가 일치월장하며 성취를 더해가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 무랑이가 차돌이의 공부를 방해한다.
[거사 할아버지가 찾으십니다.]
무랑의 목소리다.
카랑카랑하고 색깔이 없는 무심한 소리다.
허긴 무랑이도 사부님과 생활한 것이 근 10여년이 되었으니 웬만한 장정 몇 사람은 가볍게 물리칠 수 있는 기와 기술을 갖추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고 있던 차돌이다.
[하하. 그래, 가보자꾸나,]
차돌이가 사부님의 면전에 조용히 무릎 꿇으며 앉는다.
차돌 이를 안내하고 왔던 무랑이가 할일을 끝내고 나가려다 사부님의 제지를 받고 차돌이 옆에 무릎 꿇고 앉는다.
[무랑아, 너도 앉아라. 네게도 할 말이 있느니라.
아이야, 세월이 무쌍하구나,
네가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을 훌쩍 넘겼으니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나,
보구나........]
무아거사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하며 차돌 이를 쳐다본다.
[아니, 사부님 어인 말씀입니까,
제자는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발 절 내치려하지 말아 주십시오, 사부님....]
차돌 이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갑자기 불러 이제 헤어지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차돌 이는 머리를 조아리고는 사부를 올려다본다.
1년 전보다 몸은 더욱 마르셨고 총기는 점점 흐려진 듯해 보인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가 이리저리 날리고 있지만 아직은 정정해 보이는데 갑자기 이별을 예고하니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사연을 몰라 전전긍긍해진다.
무아거사는 그런 차돌 이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이야, 내말 잘 들어야 하 느 니라,
세상은 사람을 백년천년 잡아두지를 않는단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네가 있어 여간 좋았지 않았다.
이젠 네가 가기 싫어도 내가 가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아무소리 말고 떠날 채비를 차리고 내일 떠나도록 해라.
그리고 떠나는 네게 부탁하나 하려는데 들어줄 수 있겠느냐.]
아....사부는 생의 끝남을 말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을 보여주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미련이 있어 그걸 차돌 이에게 부탁하려는 것이다.
[사부님,
사부님 부탁을 제가 어찌 망설일 수 있습니까,
부탁은 모두 제가 이루어 드릴 테니 제발 떠나라는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사부님.......]
차돌이도 은연중 사부와 정이 들었다.
고지식해보이지만 마음속엔 누구보다 따뜻한 정을 품고계시는 사부님이 아니신가,
사부의 말씀은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소리로 이별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 저마다 각기 다른 일생을 맞이하는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은 살아있는 동안
밝을 수도 흐릴 수도 있다.
사부님이 어떤 길을 걸으며 살아왔는지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지금 꺼져가는 등불처럼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려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등불의 불꽃처럼 기름이 떨어지면 꺼지고 만다.
누구나 겪는 세상의 이치인데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도 그의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고맙다, 아이야.....
내가 죽으면 무랑 이를 어쩔까 걱정이 되었는데 네가 거두어 주려무나.......
아이가 말수가 적고 입이 무거워 네가 데리고 있어도 해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배운 비기는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된다.
세상의 사람들을 구하고 도움 주는데 활용했으면 하느니라.
알았느냐....]
사부는 차돌이가 이룬 기의 비기로 잘못 활용하여 사람을 다치게 할까 경계한 것이다.
세상을 떠나며 갖고 가기가 뭣해서 제자에게 전수를 하였지만 그럴 악용하여 사용할까봐 언질을 준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남을 무랑이가 걱정되어 차돌 이에게 의지시키려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해서 무랑이가 나빠질 수도 있지만 이제 무랑 이를 혼자 둘 수도 없었고 무랑이의 운명을 차돌 이에게 넘기는 것이다.
[아..사부님...흐흑...흑........
제자가 어찌 사부님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을 잊을 수가 있습니까, 사부님..흑..흑....]
차돌이가 그만 흐느끼며 눈물을 토하고 만다.
무아거사는 그런 차돌 이를 보더니 돌연 무랑을 쳐다본다.
[넌 제자를 따라가도록 해라...
그리고 이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니 맹세할 수 있겠느냐?.]
무아거사는 무랑을 직시하며 결단을 요구한다.
무랑이도 사부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임을 알아챘다.
갈 곳 없는 자기를 10여년이 넘게 키워주신 분이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당부하는 말인지라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해도 눈물이 흘러 볼을 적시고 있었다.
무랑은 고개를 끄덕인다.
[넌 제자를 나를 섬기듯 섬기면서 모셔야 하느니라.
제자가 무엇을 하던 무랑이 넌 벙어리가 되고 봉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 날
보살피듯 옆에서 보살피고 지켜야 할 것이니라.
제자의 액운이 겹쳐있어 네가 옆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니라.
그리할 수 있겠느냐.....]
[예,..........흑. 흑....]
무랑도 격한 마음에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조그맣게 대답을 하곤 그만 엎드려 소리 내어 울고 만다.
무아거사는 울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내일 떠나도록 하거 라.
이제 너희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려무나...허허허.............]
차돌 이와 무랑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께 매달렸지만 끝내 사부님의 노한 소리에 할 수없이 움막을 나와야했다.
그리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이렇게 떠나지 않겠다. 만일 사부님이 별세하시면 손수 무덤이라도 만들어드리고 떠나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렇게 밤은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온다.
무랑이 자기에게 뛰어온다.
눈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있다.
차돌 이는 무슨 이유인지 대충 감이 왔다.
급히 움막으로 들어가자 사부님이 앉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지 않는가......
사부님은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던 것이다.
차돌 이와 무랑은 그 자리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흐흐 흑...흑. 사부님..................]
[엉........엉엉........]
63부에 계속
차돌아, 차돌아 [제62부]
깊은 산속,
해가 어두컴컴해져서야 차돌 이와 무아거사는 작고 얼기설기 지은 움막 같은 집이 몇 개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차돌 이는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평소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차돌 이는 무아거사를 따라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우 리 며 거위 뛰다시피 하였다.
온몸에 땀이 나와 속옷을 축축하게 적신지 오래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적지에 당도한 차돌 이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더 이상 서 있기가 힘든지 무릎을 손으로 잡고 엎드려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무아거사는 여기까지 올라와도 호흡은 물론 어디하나 지친 구석이 없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16-18세 정도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와 무아거사에게 절을 하며 반긴다.
말없이 인사를 하는 여자이이의 얼굴은 반가움과 또 한편 차돌 이를 보고는 의구심이 일어나는지 두 사람을 쳐다보는 여자아이의 표정은 보는 사람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다.
[무랑아, 저 아이가 오늘부터 여기에 머물 것이니라.
빈 움막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내일 내려가서 이 아이의 짐을 가져오도록 해라.]
소녀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움막으로 들어간다.
차돌 이는 소녀가 무아거사의 물음에도 고개로 가부를 알리자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린 소녀인데 벙어리라니.....
다시 무아거사의 음성이 들린다.
[저 아이는 벙어리가 아니란다.
그냥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
자. 따라들어 오너라.......]
무아거사는 차돌이의 속을 알고 있는 것처럼 궁금증을 풀어주고 한 움막으로 들어간다.
차돌이도 무아거사의 뒤를 따라 들어가 무아거사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무엇 때문에 고생을 자초하는지는 묻지 않겠다.
네가 뭘 얻기 위해 시련을 견디고 아니 견디고는 네 하기에 달렸으니..
네가 시련을 이겨내면 내가가진 조그만 것을 가르쳐줄 것이고...
하여간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바로 수련에 들것이니 그리 알아라.]
무아거사는 차돌 이를 직시하며 조용하면서도 엄숙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모든 것은 네 하기 나름이다 그런 말이다.
그리고 바쁘게 수련을 지시하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왕 제자를 받아들였으니 한 가지 라도 많이 물려주고 싶은데 시간은 많지 않고 어떻게 하든 한시라도 빨리 제자가 조그만 성취라도 이루는걸 보고 싶은 것이다.
그만큼 거사는 차돌이의 재질과 총명함을 보이는 눈동자에 매료되어 있었다.
[네, 사부님.......]
차돌 이는 사부님의 말에 최대한 공손히 대답하며 입술을 굳게 앙다문다.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아까 보았던 소녀가 조촐하게 차린 밥상을 들고 온다.
밥공기엔 그야말로 두 숟갈만 떠도 없어질 양의 밥이 담겨있었고 찬으로는 이름 모를 채소로 조금씩 두 가지가 차려있었다.
차돌 이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숫제 아니 먹니 만 못할 것 같았다.
무아거사는 차돌이의 심중을 눈치 채었는지 다시 조그맣게 말한다.
[이곳까지 곡식 나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사람이 배가 부르면 게을러지고 그러면 수양에 도움이 되지 못하느니라.
물론 적은 양이라 처음엔 힘들겠지만 ,,,,
그러나 언젠가는 이것도 배가 부르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야.]
[예, 알겠습니다, 사부님..........]
세 사람은 밥상을 두고 밥을 먹는다.
무아거사는 젓가락에 몇 알 안 되는 밥을 입에 넣고는 한참을 오물거리며 먹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차돌 이는 처음 에는 배가고파 급하게 먹었지만 사부님이 저를 놓지 않았는데 제자가 저를 먼저 놓는다는 것은 예가 아니다, 여기며 억지로 속도를 맞춘다.
실로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사부님의 축출 령이 있고서야 차돌 이는 움막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안내를 받고 움막에 와서는 자리에 누워 버린다.
피로가 겹친 탓인지 잠이 연신 쏟아졌기 때문이다.
얕은 홑이불을 깔고 덮으니 추위에 온몸이 오싹해 온다.
움막은 불을 지필 곳도 없는 말 그대로 거적 대기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막이었기에 거적 대기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 온몸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움츠리고 차돌 이는 눈을 감는다.
.
다음날....
차돌 이는 사부로부터 엄청난 꾸중을 들어야했다.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아침을 조촐하게 마친 두 사람은 산으로 다시 오른다.
깊은 골짜기가 나오고 엄청난 바위가 길을 막고 펼쳐져있다.
바위 한 가운데로 물줄기가 내려치고 바위 밑에는 움막의 크기 만 한 웅덩이에 물이 넘쳐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이런 곳이 있다니 자연의 방대함에 그저 놀라는 차돌이다.
무아거사는 차돌 이를 폭포가 떨어지는 바위 밑 조그만 동굴로 안내한다.
바닥엔 거적 대기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굴이었다.
노인은 거적 대기에 앉는다.
[내 곁에 앉아라.]
차돌 이는 사부 옆에 무릎을 꿇는다.
[그렇게 앉지 말고 좌선하는 자세로 앉아라.]
차돌 이는 다시 자세를 고쳐 사부님이 앉아있는 모습을 흉내 내며 앉으려한다.
[허허. 아이야.....
좌선이란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리라.
무엇보다 먼저 몸이 편안해야 수월히 명상에 빠져들 수 있고 불편한 자세로는 깊은
명상에 잠길 수가 없느니라.
그건 육체의 고통이 정신이 가고자함을 막기 때문이니라.
네가 제일 편한 자세로 앉으려무나..........]
차돌 이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절을 하고는 사부의 지시대로 평상시 하던 대로 양반다리로 앉는다.
차돌이가 앉자 무아거사의 목소리가 굴 안에 퍼진다.
[지금 네게 일러줄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노부가 알고 있는 것 중에 그래도 남에게 가르칠만한 것이 기 이니라.
무릇 기란 자기성찰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알고 있는 수련방법을 그나마
알려주고자 함이니라.
그것을 얼마나 빨리 느끼고 깨닫고는 아이 네가 하기 달렸느니라.
먼저 지금부터 벽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공을 깨달아보아라.
공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비워 없는 것을 말한다.
그걸 깨달으려면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미래에 관한 어떤 고정된 생각이나 희망을 지니고 있는 한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새를 보라 그러면 나는 흔적도 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새의 흔적은 볼 수 없는데도 우리는 그 흔적을 말한다.
그건 마치 볼 수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반대로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니라.
사람들의 진정한 존재는 공으로 시작해서 공으로 돌아간다.
내 마음이 어느 한곳으로 집중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 두 거라.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듯 그냥 가는 데로 맡겨 두 거라.
집중을 하면 안 된다.
마음이 가는 데로 호흡도 생각도 모든 것을 그냥 두고 단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
이러한 수행을 계속하다보면 공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존재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네가 깨달으면 다음엔 공의 공간에 하나의 마음을 심었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손가락으로 이동하도록 해라.
공의 세계에 돌입하면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겠는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아주 자연스러워지니 어렵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면 네가 모르는 우주의 기와 네 신체의 잠 력 이 그곳으로 이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니라.
그때 손가락에 모인 마음의 기를 몸 밖으로 내 보낸다 생각하고 힘을 써보아라.
그래서 이것을 손가락으로 찔러 깨뜨린다면 기를 네 몸속에 받아들이고 발출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느니라.
내가 가르칠 것이 이것이니라.
얼마나 이것을 빨리 깨닫고는 네 정신여하에 달렸으니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그걸 이루고 그리고 다시 부단히 수련하면 더욱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니라.
만약 네가 그런 경지에 이른다면 다음으로 내가 가진 조그마한 비기마저 전수해주마.
내 나이 고령이라 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가 빼앗아가려면 조금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될 것이니라.....
그러니 오늘부터 여기서 생활하며 이 자그마한 돌을 손가락으로 깨뜨리지 못한다면
내려오지를 말거라.
만일 참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기 길로 바로 하산해야 할 것이다.
내말 알아듣겠는가.]
무아거사는 긴 설명을 하고는 눈을 감는다.
오래 간만에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제자를 깨우치게 하려는 전수였지만 과연 이룰 수 있을지도 염려가 된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자기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그마한 성취를 보았는데 과연 제자가 모진 고통을 참으며 아주 작은 성취라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아직 젊은 나이이고 외국 사람인데 수련 중에 불상사라도 나면 어찌할까 염려가 되어 많은 말을 한 것이다.
차돌 이는 일순 당황했다.
어떻게 좌선을 하고 어떻게 마음을 비우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다 전혀 그런 말씀은 없다.
오로지 차돌 이에게 맡겨놓을 뿐이다.
차돌이도 사부님이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따를 것을 다짐한다.
[예, 사부님, 절대 사부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그래야지, 그럼 지금부터 면벽에 들어 수련을 시작하도록 하 거라.......
어지러운 자연 환경보다 단순한 벽이 생각을 편하게 하고 공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리라. 지루하고 고통스럽겠지만.....
또 한 가지 모든 일에는 쉬움과 어려움이 겹치는 법이다,
쉽다고 척척 해치우고 어렵다고 피하면 아무 일도 끝내지 못하는 법이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는 수월했던 것을 생각해 믿고 의지해 어려움을 의심해 보거라,
그러면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 이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하는 법이고 깊은 물에서 놀고 싶으면
얕은 물에서 먼저 물놀이를 해야 하는 법이다.
이렇게 세상만물이치는 간단한데도 인간은 늘 항상 망각하고 잊고 사는 것이다.
큰 것을 얻으려면 작은 것을 소중히 하듯이 처음이 무척 중요한 법이다.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니라.]
사부는 일어난다.
무아거사는 일어나며 차돌 이를 무심하게 쳐다본다.
기의 수련을 어찌 말로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오로지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아는 것이며 인체의 신비한 힘을 이끌어 내는 것인데 남의 힘을 빌 어 터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아거사는 자기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그대로를 차돌 이에게 일러주고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아니 고통보다는 외로움, 그리고 좀체 들지 못하는 공의세계에 절망감, 모든 것이 얼마나 힘 든다는 걸 알기에 얼굴에 표정은 그리지 않았지만 측은한 눈으로 쳐다본 것이다.
차돌 이는 굴 앞까지 나와 공손히 합장하며 인사를 드리고는 굴속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보며 눈을 감는다.
차돌이도 한시라도 지체할 여유나 시간도 없었다.
이루고자 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있는데 그것을 이루는데 도움 되는 공부를 하고자왔지만 오래 머물 여건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이루로 차돌 이는 사부가 일러준 대로 수련에 집중한다.
세월은 흘러간다.
처음 차돌 이는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지 못하고 엄청난 마음의 방황을 알아야했다.
아침에 한번 소녀가 주먹밥을 갖다 주면 그것으로 하루를 때워야했고 배고픔과 깨달음을
얻지 못해 엄청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가게 마련이고 차돌이의 집념은 무서우리만치 집요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허 하고 없는 마치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내 몸이
가벼워 하늘에 둥둥 날아다닐 것도 같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었구나.
정신을 흩트리면 세상에 내가 와있지만 정신을 수습하면 다시 편안해지는 것이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더욱 편안해지는 속도가 빨리 오고 몸은 무엇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이것이 공이란 것이었구나.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렵고, 그러면서도 너무나 보잘것없는 그런 세계가 공의 세계였구나.
차돌 이는 공의 경지를 느끼고 그걸 깨닫고자 수련을 계속하자 그때부터 그토록 괴롭히던 배고픔과 앉아있는 자세에 대한 고통도 점점 사라짐을 느끼게 되었다.
추운 겨울날에 굴속에 들어간 차돌이가 돌멩이를 무의식중에 내 뻗친 손가락에 의해 깨어진 것은 무더위가 기성을 부리는 여름철이었다.
세월을 잊고 오직 기의 수련에만 매달린 효과였다.
차돌 이는 너무나 감격에 벅차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모진 고초 속에 얻은 깨달음이 아닌가.
전에 없던 몸속에서 뭔가 살아 전신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기이한 힘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 움직임을 전부 손가락으로 모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마음으로 그 기를 실어 찌른 결과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아니던가.
이제 스승님이 바라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벅찬 감격에 해냈다는 자부심에 그간의 고초를 잊고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차돌 이는 한달음에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수염이 텁수룩이 자라 보이지도 않는 입으로 사부님께 아뢴다.
[사부님, 제자가 해냈습니다.
드디어 사부님이 바라던 바를 제자가 해내고 말았습니다.]
차돌 이는 사부님의 면전에 무릎을 꿇으며 환호의 소리를 질러댄다.
감격에 들떠 더듬거리며 말하는 차돌 이를 무아거사는 눈을 부라리며 냉정하게 꾸짖는다.
[아이야, 그 깐 것을 지금 이루고서 감격하다니 정말 실망이로다.
산천에 펄펄 날던 꾀꼬리는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에게 잡혀 조롱 속에서
얻어먹고 살고 마음이 깊고 넓은 사람은 꾀꼬리 같은 목청을 지니고 있어도 뱁새처럼
산다했다.
가슴에 옥을 품어도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산다며 노자님이 남기신 말도 있다.
부를 자랑하면 졸부가 되고 지위를 자랑하면 간신이 되느니라.
졸부란 헐벗은 허수아비처럼 자신을 감추는 짓이고 간신은 굶주린 개가 남의 밥통을
훔치듯 염탐꾼에 불과할 뿐이니라.
자랑할 것이 많을수록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항상 겸손하고 겸양해야 참다운 자아를 이루는 것이니라.
내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야,
네가 늦게나마 성취를 이루었다니 사부는 조금은 보람을 느끼느니라....
그러니 조금치도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하여간 고생이 많았느니라.
얼굴이랑 머리를 다듬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른 공부를 해야 하니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도록..........
그리고 지금 네가 이룬 경지를 계속 수련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 것이니라.
그러하니 부단히 노력하고 더욱더 열심히 정진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무아거사는 차돌이가 조그마한 성취로 기뻐 날뛰며 자만하는 것을 나무란다.
어미가 젖을 먹일 때 아이에게 영양 좋은 젖이라고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그렇지만 제자가 성취를 이룬 것에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사실 무아거사는 속으로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제자의 빠른 성취가 자기의 상상을 너무나 벗어났기에...........
그러나 한줌의 표정도 흩으러 떨이트리지 않고 자만하는 차돌 이를 나무란다.
[예, 사부님 이 제자가 조그만 성취에 너무 자만하였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차돌 이는 부끄러워졌다.
조그만 성취에 도취되어 날 띤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차돌이가 얼굴을 붉히며 더욱더 열심히 수련할 것을 맹세한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나의 성취는 대단할 것도 아닌데 괜한
호들갑을 떨어 사부님을 실망시켰구나,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나였더란 말인가.
머나먼 이국땅까지 와서 이정도로 만족하고 날뛰는 망아지처럼 설치려고 왔단 말인가.
아직 멀었구나. 내가 너무 자만했구나.
사람이란 뜨거운 불똥이 살갗에 떨어져야 뜨거운 줄 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뜨거운 줄도 모르는 법이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새롭게 의지를 다지는 차돌이다.
그러자 사부는 흐뭇한 듯 차돌 이를 보며 웃는다.
[그래, 그래야하느니라.....
그러니 이만 나가 보거라,
네놈에게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구나.
무랑이 네 머리를 손질해줄 테니 깨끗이 하여 내일 보자꾸나...]
[예, 사부님, 그럼........]
차돌이가 사부님의 질타만 받고 나온다.
차돌이가 나가자 거사는 그제 서야 얼굴에 당혹한 빛을 그린다.
젊은 아이가 정말로 이정도의 경지에 6개월이라는 시간에 성취를 이룰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몰랐기 때문이다.
진 노인이 극찬하고 자기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는 골격과 품새에 조금 가르쳐보고자 했으나 이렇게 빠른 시일에 이런 경지까지 도달하리라곤 전혀 뜻밖이었다.
[허허허..정말 놀랄 일이네...
난 그 아이가 제풀에 지쳐 그만 갈 줄 알았는데 그러한 경지까지 가다니......
정말 무서울 정도로 집념이 강한 아이로고....허허허.....]
끝내는 흐뭇한 웃음으로 바뀌는 무아거사이다.
제자가 이렇게 훌륭한 성취를 이루자 사부로써 기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잘 되었어,
이제 나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 되었는데...........
저 아이라면 우리 무랑 이를 잘 보살펴 줄 수 있으리라......
정말 남은 걱정거리를 저 아이가 풀어줬으면 좋으련만............]
무아거사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는다..
.
그날이후
차돌 이는 사부로부터 기의 흐름과 발출하는 방법 또 신체부위와 혈맥의 상관관계 등을 전수받는다.
또한 어찌하면 몸속의 기를 발출하여 적은 힘으로도 상당한 파괴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 기를 운용하는 방법도 알려주었고 시시각각 움직임이 틀리다는 혈의 운동과 활용하는 법과 혈을 순탄히 하여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비법도 전수하길 마다않았다.
또한 시간이 나면 차돌이가 새벽에 운동할 때 움직임을 보고 적시에 빠르게 기를 활용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차돌이의 몸엔 은연중 근접키 힘든 중압감을 지니게 되었고 눈빛은 더욱 총총하게 빛나고 몸은 가볍고 재빨라져갔다.
예전에 뛰어넘지 못하던 곳도 어렵지 않게 몸을 솟구쳐 넘어갈 수가 있었고 힘들고 오랜 뜀박질에도 쉬 피로가 오지 않았다.
차돌 이는 세월이 가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차돌이가 일치월장하며 성취를 더해가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 무랑이가 차돌이의 공부를 방해한다.
[거사 할아버지가 찾으십니다.]
무랑의 목소리다.
카랑카랑하고 색깔이 없는 무심한 소리다.
허긴 무랑이도 사부님과 생활한 것이 근 10여년이 되었으니 웬만한 장정 몇 사람은 가볍게 물리칠 수 있는 기와 기술을 갖추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고 있던 차돌이다.
[하하. 그래, 가보자꾸나,]
차돌이가 사부님의 면전에 조용히 무릎 꿇으며 앉는다.
차돌 이를 안내하고 왔던 무랑이가 할일을 끝내고 나가려다 사부님의 제지를 받고 차돌이 옆에 무릎 꿇고 앉는다.
[무랑아, 너도 앉아라. 네게도 할 말이 있느니라.
아이야, 세월이 무쌍하구나,
네가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을 훌쩍 넘겼으니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나,
보구나........]
무아거사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하며 차돌 이를 쳐다본다.
[아니, 사부님 어인 말씀입니까,
제자는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발 절 내치려하지 말아 주십시오, 사부님....]
차돌 이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갑자기 불러 이제 헤어지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차돌 이는 머리를 조아리고는 사부를 올려다본다.
1년 전보다 몸은 더욱 마르셨고 총기는 점점 흐려진 듯해 보인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가 이리저리 날리고 있지만 아직은 정정해 보이는데 갑자기 이별을 예고하니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사연을 몰라 전전긍긍해진다.
무아거사는 그런 차돌 이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이야, 내말 잘 들어야 하 느 니라,
세상은 사람을 백년천년 잡아두지를 않는단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네가 있어 여간 좋았지 않았다.
이젠 네가 가기 싫어도 내가 가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아무소리 말고 떠날 채비를 차리고 내일 떠나도록 해라.
그리고 떠나는 네게 부탁하나 하려는데 들어줄 수 있겠느냐.]
아....사부는 생의 끝남을 말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을 보여주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미련이 있어 그걸 차돌 이에게 부탁하려는 것이다.
[사부님,
사부님 부탁을 제가 어찌 망설일 수 있습니까,
부탁은 모두 제가 이루어 드릴 테니 제발 떠나라는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사부님.......]
차돌이도 은연중 사부와 정이 들었다.
고지식해보이지만 마음속엔 누구보다 따뜻한 정을 품고계시는 사부님이 아니신가,
사부의 말씀은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소리로 이별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 저마다 각기 다른 일생을 맞이하는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은 살아있는 동안
밝을 수도 흐릴 수도 있다.
사부님이 어떤 길을 걸으며 살아왔는지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지금 꺼져가는 등불처럼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려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등불의 불꽃처럼 기름이 떨어지면 꺼지고 만다.
누구나 겪는 세상의 이치인데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도 그의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고맙다, 아이야.....
내가 죽으면 무랑 이를 어쩔까 걱정이 되었는데 네가 거두어 주려무나.......
아이가 말수가 적고 입이 무거워 네가 데리고 있어도 해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배운 비기는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된다.
세상의 사람들을 구하고 도움 주는데 활용했으면 하느니라.
알았느냐....]
사부는 차돌이가 이룬 기의 비기로 잘못 활용하여 사람을 다치게 할까 경계한 것이다.
세상을 떠나며 갖고 가기가 뭣해서 제자에게 전수를 하였지만 그럴 악용하여 사용할까봐 언질을 준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남을 무랑이가 걱정되어 차돌 이에게 의지시키려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해서 무랑이가 나빠질 수도 있지만 이제 무랑 이를 혼자 둘 수도 없었고 무랑이의 운명을 차돌 이에게 넘기는 것이다.
[아..사부님...흐흑...흑........
제자가 어찌 사부님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을 잊을 수가 있습니까, 사부님..흑..흑....]
차돌이가 그만 흐느끼며 눈물을 토하고 만다.
무아거사는 그런 차돌 이를 보더니 돌연 무랑을 쳐다본다.
[넌 제자를 따라가도록 해라...
그리고 이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니 맹세할 수 있겠느냐?.]
무아거사는 무랑을 직시하며 결단을 요구한다.
무랑이도 사부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임을 알아챘다.
갈 곳 없는 자기를 10여년이 넘게 키워주신 분이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당부하는 말인지라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해도 눈물이 흘러 볼을 적시고 있었다.
무랑은 고개를 끄덕인다.
[넌 제자를 나를 섬기듯 섬기면서 모셔야 하느니라.
제자가 무엇을 하던 무랑이 넌 벙어리가 되고 봉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 날
보살피듯 옆에서 보살피고 지켜야 할 것이니라.
제자의 액운이 겹쳐있어 네가 옆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니라.
그리할 수 있겠느냐.....]
[예,..........흑. 흑....]
무랑도 격한 마음에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조그맣게 대답을 하곤 그만 엎드려 소리 내어 울고 만다.
무아거사는 울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내일 떠나도록 하거 라.
이제 너희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려무나...허허허.............]
차돌 이와 무랑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께 매달렸지만 끝내 사부님의 노한 소리에 할 수없이 움막을 나와야했다.
그리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이렇게 떠나지 않겠다. 만일 사부님이 별세하시면 손수 무덤이라도 만들어드리고 떠나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렇게 밤은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온다.
무랑이 자기에게 뛰어온다.
눈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있다.
차돌 이는 무슨 이유인지 대충 감이 왔다.
급히 움막으로 들어가자 사부님이 앉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지 않는가......
사부님은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던 것이다.
차돌 이와 무랑은 그 자리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흐흐 흑...흑. 사부님..................]
[엉........엉엉........]
6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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