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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58 877회 0건
007 삽입면허-1부-



“야! 이놈아. 젊은 놈이 등창 날라. 매일 방구석에서 빈둥거리지만 말고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쏘이고 와.”



“아이구...... 엄마는 차암...... 그래도 틈틈이 돈 벌어다 드리잖아요. 그거 적은 금액도 아니구먼.”



“이놈아. 누가 돈 때문에 그래? 돈도 돈이지만 젊은 놈이 뚜렷한 직장이 있어야 장가도 들고 그럴 거 아니야? 평생 그러고 살 거야? 에이그...... 쯧쯧...... 제 형 반만 닮았어도......”



“히히...... 어마마마. 그럼 소자...... 밤새 동네 치안에 별 일은 없었는지 한 바퀴 순찰이라도 돌고 오겠사옵니다.”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헤벌죽 웃으며 방바닥의 담배를 상의 포켓에 넣고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강기찬. 잘 다니던 대학교도 무슨 생각에선지 어느 날인가 걷어치우고 훌쩍 군대를 입대하더니 제대 후 복학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릴없이 세월만 죽이고 있는 터지만, 타고 난 돈키호테로 동네의 일에 이 일 저 일 관여치 않는 일이 없어 주변의 평판은 나쁠 리 없었고, 그 점에 있어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엄마도 싫은 표정만은 아니었다.



청년실업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었으니 구들장을 지고 산다 한들 딱히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게다가 어디서 구하는지 틈틈이 목돈을 불쑥 불쑥 내미는 넉살 좋은 놈을 매양 몰아 댈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돈의 출처를 물어도 입을 꾹 다문 채 빙그레 웃기만 하는 기찬을 보고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어려서부터 아들의 품성을 잘 알고 있으니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닐 거라고 믿어 주는 듯 묻기도 지친 모양으로 요즘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받아서 생활비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여보세요?”



어디선가 온 전화를 받아 턱 밑으로 어깨에 끼워 고정시킨 채 주머니를 더듬어 담배를 피워 문다.



“강기찬?”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와아...... 전화번호 그대로네? 다행이다. 나야. 나...... 병국이. 최병국.”



“최...... 병국?...... 아아! 선배...... 오랜만이네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한테 전화를 다 하십니까? 히히...... 잘 하면 오늘 공짜 막걸리라도......”



“자아식...... 여전하구나? 그래, 한 번 보자. 어디 막걸리뿐이겠냐? 내가 너한테 상의할 일도 조금 있고......”



“그래요. 얼굴 한 번 봅시다. 아,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로 안부를 건넨 후, 약속을 정해두고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동네 어귀로 옮긴다.



“어라?...... 저게 누구야? 이쪽까지 거래를 하나?”



기찬은 공연히 마주치면 귀찮아질 것을 우려했는지 고개를 모로 돌려 못 본척하려 했으나 이미 저쪽에서도 움찔거리며 놀라는 모습이 기찬을 발견한 모양이다.

다행히 일행과의 일정이 바빴는지 굳이 아는 척을 해 오질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고 발걸음을 바삐 놀려 자리를 벗어나 버린다.



“아휴...... 다행이다. 저 형수한테 붙잡혔으면 또 수다 떤다고 한 시간은 빼앗겼을 텐데...... 아니지...... 생각 난 김에 거기나 한 번 가 볼까?”



중얼거리며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찬은 방향을 바꿔 큰 길로 나서 멀리 보이는 아파트촌으로 걸음을 옮긴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어엉? 이게 누구야? 허허허...... 어서 와.”



“어머머...... 아유, 그러게 누구 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잖아?”



부동산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은 다방 레지 아가씨를 품고 가슴어리를 주무르다 민망한 듯 바삐 손을 거두고 아가씨는 짧은 치마를 단속하며 다리를 꼬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아이고...... 차암, 여전하십니다. 오다 보니 형수님은 손님 모시고 집 소개하러 다니는 모양이던데...... 형님은 여기서 아방궁을 꾸미고 계십니다. 그려......”



“하하...... 아! 그랬어? 그 사람이야 물건 규모가 나하곤 다르니까 내가 알 바 아니지. 나야 전월세 전문이고 그 사람은 사무실이나 오피스텔만 담당하잖아.”



“네....... 그야 그렇지요. 아닌 게 아니라 공연히 형수 마주치면 길어질까 봐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쳐 왔어요. 아가씨, 차 남았으면 나도 한 잔 주지?”



“호호...... 조금밖에 없을 건데요? 그래도 드릴까요?”



“그래, 뭐...... 배 부르자고 먹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형님, 내가 부탁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정말 안 구해 줄 거야?”



“에이...... 그것 참, 그래. 네가 발이 길긴 긴 모양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오늘 오기로 한 손님이 있긴 있는데, 너한테 연결시켜 줄 테니까...... 그 대신 복비는 두둑하게 내놓아야 한다.”



“아! 정말...... 우리 사이에...... 그러고 보니 형님, 그동안 복비 때문에 나한테 연결 안 해주고 다른 손님한테만 돌린 거 아니요? 치사하게......”



“어허...... 그럴 리가 있냐? 그럴만한 손님이 어디 흔해야 말이지......”



“알았어요. 복비는 얼마나?......”



“한 이백은 줘야 되지 않겠냐?”



“무슨 복비를...... 이백씩이나...... 그러지 말고 백 줄 테니까 사정 좀 봐 주쇼. 지금 내 입장에 백만 원도 심장이 벌렁거리는구먼.”



기찬은 대학교를 다닐 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렴풋이나마 실물경제에 눈을 뜨고는 엉뚱하게도 사람이 태어나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총체적인 교육비를 계산해 보고는 느닷없이 학교를 그만둬 버렸다. 물론 가족과는 일절 상의를 하지 않은 채 학교는 계속 다니는 척하면서 때로는 공사 현장에서, 때로는 과외공부를 지도하는 등 돈을 모아 집에서 타 낸 학비와 합쳐 모두 주식에 투자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나름의 투자 준비를 했던 것이 주효해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는 있었으나, 학교를 그만두고서는 국가의 부름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남들이 생각할 때에는 학교를 잘 다니다가 뜬금없이 군대에 간 경우라고들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돈이 기반이 되어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도 계속 재원을 불려 나갈 수가 있었고,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한다며 주변을 속이고 우연히 이 부동산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새로운 방법에도 눈을 뜨게 되었었다.



아파트 한 채의 값이 전세 가격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다가 세금 문제나 기타의 이유로 재산 등록을 꺼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사람들은 돈이 있더라도 아파트를 사지 않고 전세를 얻는 경우들이 있어 돈을 굴리기 위해 그간 주식 투자로 벌어 온 돈을 모두 털어 아파트를 매입한 것이었다.



자리가 좋은 아파트야 갖고 있으면 해가 갈수록 값이야 뛰겠지만, 돈을 굴리기 위해서는 이제 그 아파트에 전세입주를 할 사람을 찾는 것인데, 전세 입주를 하더라도 세입자가 전세권을 등록한다든지 확정일자 따위를 받게 되면 그 아파트를 가지고는 은행 대출을 받는다든지 더 이상 재원으로 굴릴 수가 없는 일이니, 음성적으로 아파트를 얻고자 하는 세입자를 찾아 온 것이었다. 그래야만 그 아파트를 담보로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받아 하던 주식투자를 규모를 키워 계속 할 수 있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재산을 감추기 원하는 공직자들이 있으니 그럴 수 있는 일이고, 부인이나 자식들 몰래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도 호텔을 드나들며 얼굴 팔리느니 별장 개념으로 한 채씩 얻어두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자, 그럼 형님만 믿고 갑니다. 잘 좀 진행해 주세요.”



곁에 있던 다방 아가씨의 엉덩이를 지긋이 주물러 주는 것으로 커피를 잘 마셨다는 인사를 대신 한다.



“씨바......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 먹을 인간 같으니라고...... 내 돈을 빨아 먹으려고...... 내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제 놈한테 벌어 준 돈이 얼만데......”



함께 일한 옛정을 생각해 그냥 소개해 줄 수도 있는 일을 복비 운운하며 시간을 끌어 온 복덕방 사장이 맘에 들지 않는지 마뜩치 않은 시선을 부동산 사무실로 던지며 이제 대학 시절 선배와 약속한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주변은 대낮처럼 훤하게 밝아 있어 술을 마시기는 이른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그게 문제가 될 리는 없으니 벌써 코끝에 술 냄새로 회가 동해 뱃속의 술 벌레들이 요동을 친다.



“어라! 일행이 계셨네?”



“아! 기찬아, 어서 와라.”



“아! 안녕하세요? 송미라예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기찬은 자리에 엉거주춤 앉으면서 선배와 함께 나온 여자를 바라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찬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도저히 선배와는 어울리지 않는 빼어난 용모였기 때문에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었으나 남녀 사이의 일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마주 인사를 나눈다.



“아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강기찬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거...... 선배는 언제부터 이런 미인을 꿰차고 다닌 거요? 소리 소문도 없이......”



“하하...... 녀석. 여전하구나. 그래...... 복학 계획은 없고?......”



“아...... 선배는 모르고 있었구나? 나 학교 아주 그만뒀어. 음...... 이것저것 생각 해 보니 학교 졸업해 봐야 내 성적으로 어디 그럴싸한 곳에 취직할 자신도 없고...... 그래, 나는 왜 보자고 한 건데?......”



“녀석...... 성격 급한 건 여전하네. 자, 자...... 술부터 한 잔 하고......”



잔을 따르는 선배 몰래 시선이 마주 앉은 여자에게 가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슬쩍 바라본다. 여자는 기찬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목덜미까지 발갛게 물이 오르는 모습이 심하게 부끄럼을 타는 모양이라 공연히 미안해져 헛기침을 하게 한다.



“음....... 흠...... 자, 선배도 한 잔 받아.”



술이 한 순배 돌아 거나할 무렵, 미라는 옆에 앉은 병국의 허리를 찔러 말을 재촉한다.



“뭐해요? 병국씨...... 이제 얘기 좀 해 줘요.”



“으응?...... 아! 그래. 아...... 이거 오랜만이라 반가운 김에 술을 마시다 보니 본론을 잊고 있었네.”



기찬도 비로소 자신을 만나자는 이유가 궁금해져 선배와 미라를 번갈아 바라본다.



“뭐야? 두 사람...... 나를 만나자는 게 선배가 아니라 미라씨였어요?”



기찬의 말을 병국이 받으며 미라를 바라본다.



“으응, 실은 미라 친구에게 아주 곤란한 일이 생겼다는데, 그 친구 프라이버시가 있어서 내겐 말을 못한다고 하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자꾸 기찬이 너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잖아.”



“아, 아...... 그래요? 그게 무슨 일인데?......”



“아! 나야 모르지. 그렇게 통사정을 해도 내겐 말을 안 해 주더라고...... 어쨌든 네가 유명하긴 유명했던 모양이더라. 네가 학교에서 사라진 게 벌써 언젠데...... 아직도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야. 하하하......”



“허허...... 그러게...... 그것 참...... 별 일이네.”



아닌 게 아니라 학교 다니던 시절 온갖 기행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기찬을 모른다면 그 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로 유명 인사였던 터, 새삼스런 기억에 기찬의 입 꼬리에 미소가 걸린다.



“자, 그럼...... 나는 이제 술도 취하고 배도 부르니 이만 자리를 떠야겠다. 그 대신 기찬이 네가 우리 미라 잘 좀 에스코트 해 주고......”



“아! 그래...... 그럼 선배 먼저 가. 미라씨는 걱정하지 말고......”



병국이 자리를 벗어난 후, 둘만 남은 자리가 어쩐지 머쓱해 실없는 소리로 분위기를 띄워본다.



“아니?...... 어쩌다가 미라씨 같은 미인이 병국 선배 같은 사람을 만났어요? 저 인간 그 사이 복권이라도 당첨 됐나?......하하하......”



“저......”



“네, 말씀하세요. 미라씨.”



기찬의 농담에도 전혀 반응치 않고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떨어뜨리는 미라에게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낀다.



“실은 병국씨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제 친구가 기찬씨 얘기를 하던데, 수소문하다 보니까 옛날에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선배라는 말을 듣고 병국씨에게 접근하면 기찬씨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던 거예요.”



“네에?......”



“......”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치맛단만 매만지는 미라에게 기찬이 의아하다는 듯 말을 던진다.



“아니?...... 도대체 그 친구 분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그렇게까지....... 그리고 제가 도와 드릴 수는 있는 일인지......”



“저...... 여진이 아시죠?”



“여, 여진이요?...... 미라씨, 여진이 친구세요?...... 아니? 그 계집애는 아직도 그러고 다닌답니까? 나 원 참......”



윤여진. 기찬의 재학 시절 학교 친구로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사귀게 되었다. 학교 앞까지 여진을 쫓아 온 불량배들을 기찬이 놀라운 신위로 물리친 적이 있었다. 여진은 뛰어난 미모로 재색을 겸비한 재원이었던 만큼 그 콧대도 높아 그동안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던 기찬으로서는 그것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것은 실로 대단한 싸움이었다. 그 일 이후 기찬도 몇 개월을 깁스를 한 채 지내야 했으니 여진의 이름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 여진과도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국 자세한 경위를 알 수는 있었으나, 그 무렵 여진은 뛰어난 용모와 빼어난 몸매를 무기 삼아 이른바 몰래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찬은 여러 차례 그 일을 그만 둘 것을 종용하였으나 이미 씀씀이가 변해 버린 여진은 기찬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고, 그 무렵 기찬도 학교를 그만두며 군대에 가게 되어 서로가 그렇게 소식도 모른 채 지내왔던 것인데, 오늘 그 이름을 생각지도 않은 자리에서 듣게 된 것이다.



“저...... 기찬씨......”



“아유, 그 애 말씀이라면 하지도 마세요. 아직도 그러고 다니는 모양인데......”



“저...... 그게 아니라요. 사실은 제 문제예요. 제가 고민하고 있으니까 여진이가 기찬씨 얘기를 해 주더라고요. 병국씨에겐 차마 바른 대로 말해 줄 수가 없어서......”



“네에?......”



기찬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파묻는다. 시선은 여전히 미라에게 꽂은 채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결국은 자신을 찾기 위해 병국 선배처럼 순박한 사내를 꼬드겨 그 도구로 삼았다는 말이니 기찬 자신이 특별히 병국 선배를 애틋하게 생각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남자 알기를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생각지 않는 계집애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담배를 꺼내 물어 연기를 뿜어대는 모습이 기찬도 굳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 미라씨는 어디에서 일 합니까? 여진이하고 같은 집에 나가나요? 그럼 신촌?...... 아니면 요즘 인기 좋다는 압구정?......”



“아, 아니에요. 저, 저는...... 흑...... 흐흑......”



미라가 갑자기 서러운 감정이 북받치는지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하고 이제는 기찬이 당황스런 사정에 몰린다. 미처 말릴 겨를도 없었던 일이어서 얼른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얼굴에 꽂힌다.



“이, 이런...... 젠장......”



영락없이 계집애를 울리는 사내가 되어 버렸으니 모두의 머릿속에는 ‘저놈이 저 여자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저럴까?’ 하는 생각뿐 일 것이다. 못된 짓을 하고는 아마도 이별이라도 통보한 모양이라고 생각할 테니 얼굴이 화끈거려 할 수 없이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겨 미라의 옆으로 가 앉으며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버린다.



“이, 이봐요. 미라씨......”



“흐윽...... 죄, 죄송해요. 그만......”



옅은 보라색 하늘거리는 원피스 밑으로 곧게 뻗은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차츰 코를 자극하는 향기도 기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당면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미라를 재촉한다.



“그래, 말해 봐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네......”



그러고도 한참을 뜸을 들인 후에야 비로소 미라는 입을 떼기 시작했고, 주변을 의식해서인지 매우 작은 소리로 소곤거려 기찬은 그 말을 듣기 위해 자세를 숙인 채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흰 연기를 뱉어내며 재떨이를 끌어당긴다. 어느새 수북한 꽁초들이 경과한 시간을 말해 주고 뒤적여 만들어 낸 빈자리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신경질적으로 시계를 바라본다.



“아니? 그런 일이라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만 경찰에 가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들이 생길 것 같아서...... 여진이도 말리더라고요. 공연히 입장만 난처해진다면서...... 기찬씨를 찾아보라고......”



“나...... 이것 참, 이 계집애는 도대체가 도움이 안돼요.”



“네, 네?”



“아, 아니...... 미라씨 말고...... 여진이 말입니다.”



기찬의 망설이는 표정에 낙담한 미라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고, 기찬은 하는 수 없이 미라의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다.



“저, 정말...... 이시죠?”



“그래요. 나중에 전화 연락을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기다려요. 그리고 병국 선배도 정말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면 애먼 사람들 마음에 상처 주지 말고 그만 만나요. 알았어요?”



“네, 그럴게요. 그렇게 해야지요.”



미라를 에스코트해 주겠다던 약속조차 무의미해져 버렸으니 저 혼자 돌려보내고 기찬도 발걸음을 돌린다.



“젠장...... 공술이라고 좋아했다가...... 그나저나 병국 선배는 이게 무슨 꼴이람......”



얼마 전,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끌려가 정조를 잃게 되었고, 부끄러운 사진을 찍히는 수모를 겪었다는 말이었다. 소문이 무서웠을 테니 할 수 없이 그 일 이후에도 한 두 차례 불려나가 상대를 해 줘야만 했는데, 뭔가 모르게 이상한 점이 느껴져 여진이에게 상의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었고 결국 오늘 기찬의 앞에서 그 사연을 늘어놓게 된 것이었다.



“거 참...... 계집애, 아깝다. 그런 일을 당했다는데 재미 좀 보자고 할 수도 없고...... 히힛...... 씨바...... 한강 배 지나간 자리 표시 나는 일도 아닌데 한 번 달라고 할 걸 그랬나?”



기찬은 회가 동하는 듯 주머니에 꽂은 손을 뻗어 사타구니를 주물러 대다가 고개를 돌려 총총히 멀어져 가는 미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느덧 주변은 어둑해져 곳곳의 가게 앞에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퇴근길의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음...... 술이 부족한 것 같은데...... 어디를 가서 한 잔 더 빨아 보나?”



적당한 자리라도 찾는지 주변을 더듬어 시선을 돌리던 기찬의 몸이 한 순간 굳어진다.



“어, 어라!”



잠시 머뭇거리던 기찬의 눈이 번쩍이며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씨바...... 잘 걸렸다. 어디 맛 좀 봐라.”



철없는 아이처럼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달려가 상대를 덥석 붙잡는다.



“형수!”



“엄마야! 깜짝이야...... 어머...... 삼촌......”



몹시 놀란 여자는 뒷걸음질을 친다. 급기야 기찬을 알아보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여 함께 있던 남자를 모른 척 눈치를 주며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기찬을 한 옆으로 이끌어 낸다.

하지만 기찬이 그것을 모른 척 해줄 리가 없는 일이다.



“뭐요? 형수...... 아까 낮에 내가 복덕방 사무실에 갈 때부터 저 남자랑 함께 다니던데, 여태껏 여관에 있었던 거요?”



“어머! 삼촌...... 미쳤나 봐. 여관은 무슨 여관...... 방 보러 다니는 손님인데......”



여자는 복덕방 사장의 부인이었고, 이미 낮에 한 번 지나쳐 가며 함께 있던 남자를 봐 두었으니, 그 얼굴을 모를 리도 없다. 이 시간에 그 남자와 다정하게 여관에서 나오는 상황을 애써 업무였다고 치부하더라도 샤워를 마친지 오래지 않아 촉촉한 머릿결이며 비누냄새, 발그레한 볼을 기찬에게 감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칫...... 언제부터요? 형수...... 어, 어? 킥킥...... 저 인간...... 소리 없는 방귀처럼 냄새만 풍기고 사라지는데......”



“......”



애써 부인해 봐야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니, 여자도 더 이상 부인치 않는 눈치였고 바삐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찬은 빙그레 웃으며 여자를 바라본다.



“왜? 저 남자...... 계약 안 할 모양이지? 그냥 가는 걸 보면...... 도장을 찍긴 찍었나? 킥......”



“아이, 참...... 삼촌은...... 이제 그만 해. 다 알면서 짓궂게 그러지 말고...... 저기 앉아서 술이나 한 잔 해. 우리......”



“허허...... 우리?...... 뭐, 그러지. 그럼......”



어느새 기찬은 복덕방 사장 부인에게 말을 놓고 있었고, 그녀도 그런 기찬에게 무언의 협조를 이끌어 내려는 듯 허물치 않고, 끌어안은 기찬의 팔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잔뜩 힘주어 안은 팔에 그녀의 가슴이 형체를 잃어 간다.



“어머머! 그 이가 기찬씨한테 복비를 달라고 한다고? 그것도 백만 원이나......”



“씨바...... 그것도 깎은 거야. 처음엔 이백을 달라고 하던데......”



석쇠에 익어가는 안주를 뒤적여가며 풍겨오는 연기에 손사래를 친다. 이미 두 사람은 취기를 빌어 다정한 연인이라도 된 듯, 살갑게 굴어 댄다. 비밀을 공유하게 된 셈이니 여자는 아쉬운 입장일 것이고 기찬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끌어내며 지켜보는 그 반응이 사뭇 재미있는 모양이다.



“음...... 형수는 이름이 뭐야? 그동안 이름도 모르고 지냈는데......”



“아이 참, 내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게...... 나애경이야.”



“애경이?...... 이름 예쁘네.”



“피...... 예쁘긴 뭐가 예뻐...... 참, 그러면 그이가 달라는 복비......백만 원은 나를 만나서 나한테 줬다고 말해.”



“응? 정말?...... 그럼 그 돈을 형수가 대신 해결해 준다는 거야?”



“으응, 그래......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삼촌은 나한테 줬다고 그래. 그 대신 삼촌도 비밀 지켜 주는 거야. 알았지?”



“칫......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가 있겠나? 뭐...... 나야 손해 볼 거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은 왜일까?...... 음, 흠......”



헛기침을 해 대며 빙그레 미소 짓는 기찬을 보고 애경은 팔을 뻗어 기찬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는다.



“에그...... 못살아. 내가...... 알았어. 그 대신 정말 비밀인 거야.”



“킥킥...... 그야 물론이지.”



생각지도 않은 일로 복비 지출이 굳어 버리고, 한때나마 사장 부인이었던 여자와 묘한 관계를 맺게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애경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는지 의외로 순순히 기찬에게 공간을 허락한다.



“음...... 자기는 여자친구 없어? 그러고 보니까 그동안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으응? 자기라고?...... 킥킥...... 아유, 닭살 올라. 형수가 나한테 자기라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아이 참, 놀리지 말고...... 뭐, 자기랑 나랑 나이 차이 몇 살이나 난다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러지 말고 우리 저기 들어가자. 나도 어서 가봐야 하는데......”



“으응, 그럴까? 하긴 이제 배도 부르고......”



그래도 같은 여관에 시간 차이를 두고 다른 남자와 재차 들어가기는 낯 뜨거웠는지 조금 걸어 내려와 다른 여관으로 앞장 서 걸음을 옮긴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서 눈짓으로 먼저 올라가라는 눈치를 전해온다. 이층으로 걸음을 옮기자 잠시 후 뛰어올라오는 발소리와 함께 더운 입김을 풍기며 어깨에 안겨 온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니 적막한 복도에 구두소리만이 가득하다.



“기찬씨, 씻고 와. 나는 금방 씻었잖아. 어머!”



말을 해 놓고는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했는지 애경은 입을 가리며 돌아선다.

돌아서는 애경을 뒤에서 끌어안아 가슴을 쥐어 본다. 주먹 가득 쥐어지는 가슴에 부드럽게 힘을 주어 본다.



“어떻게 하다가 형수랑 내가 이렇게 돼 버렸지? 후후......”



“아이, 형수라고 하지 마. 여기까지 와서는?......”



“그래, 기다려. 금방 씻고 나올 테니까......”



애경의 입술에 가벼이 입을 맞춰 주고 옷을 훌훌 벗어 던지자 애경은 눈을 흘기며 모두 주워 옷걸이에 걸어준다.

양치질을 한 후 시원한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비누를 찾아 거품을 일으킨다. 온몸을 문지르다 그곳에 이르러 한껏 힘을 실어 본다. 잔뜩 발기된 곳에 거품을 먹여 흔들어 주니 거품 사이로 굵은 혈관이 구불구불 드러나며 손바닥으로 감촉을 전해준다.



“자기, 오래 걸려?”



“으응? 같이 씻으려고?......”



“아니, 나...... 양치질 좀 하려고......”



“으응, 들어 와. 다 씻었어.”



수건을 몸에 감고 들어서며 기찬의 몸으로 시선을 던진다.



“어머...... 자기, 몸 좋다. 늘씬하고...... 그동안 전혀 몰랐네...... 어머머!”



이윽고 기찬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애경의 동공이 열린다.



“후훗...... 남자 물건 처음 보는 사람처럼 왜 그래?”



“어머머! 자기 물건 너무 실하다. 이렇게 힘찬 물건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호호호......”



“까불지 말고 빨리 양치질이나 하고 나오셔. 나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기찬의 몸은 굵직한 근육으로 뭉쳐있진 않아도 운동을 게을리 하진 않은 듯, 잔 근육이 섬세하게 퍼져 있어 오히려 보기에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유니섹스도 패션인지 계집애, 사내아이들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절이 있더니 요즘은 아예 사내 녀석들이 귀걸이 등을 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 단단한 체격을 가진 사내들의 인기도 이미 한 물 간 시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잘 관리된 듯 기찬의 몸은 호리호리하면서도 날렵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애경이 침대로 올라와 기찬의 옆으로 몸을 누인다.



“오늘 기찬씨한테 많이 놀란다.”



“왜?......”



기찬의 손은 부드럽게 애경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애경은 달뜬 표정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여자친구도 없다면서 벗은 여자 앞에서 어쩜 이렇게 여유가 있어? 마치 한 십 년 산 사람처럼......”



애경은 말의 끝을 잇지 못한다. 기찬은 애경을 끌어당겨 배 위에 올려두고 흔들리는 젖가슴을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하악...... 아파......”



번갈아 가며 양쪽 젖가슴을 유린하던 기찬은 애경의 허리를 들어 밑으로 끌어내리고 이내 눈이 마주친 애경은 잔뜩 발기한 기찬의 물건을 쥐곤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흐윽......”



부드러운 살덩이에 닿는 느낌이 촉촉한 감촉으로 전해진다.

삽입이 이어지고......

애경의 질 깊숙한 곳으로부터 기찬의 분신을 통해 전해지는 은근한 압력은 몸 전체를 떨어 울린다.



힘주어 기찬을 공략하려는지 잠시도 그를 놓아 주질 않는다. 미끈거리는 암굴에서 경험하는 옥죄임으로부터 쾌감을 경험한다. 마치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서 온 몸의 힘을 빼고 둥둥 떠다니는 듯 착각을 불러온다. 우주유영이란 것이 이렇게 아득한 기분일까?......



가슴 위에 엎어져 더운 입김을 뿜어 대는 애경의 등을 쓸어 준다. 간간이 느껴지는 잔 경련은 나름의 기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 게다. 어느새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가 돌처럼 단단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자기...... 나만 먼저 해서 어떻게 해?”



“푸훗, 괜찮아. 별 걱정을 다 한다. 자, 이젠 내가 해 줄 테니까 밑으로 누워.”



“나...... 좀 씻고 올까?”



“괜찮다니까......”



기찬은 침대 곁에 내려서서 애경의 발목을 끌어당기고 사타구니에 허리를 들이민다.



“엄마...... 하악...... 너무 깊어...... 으흑......”



침대의 높이가 다소 낮은지 할 수 없이 몸을 기울여 침대를 짚는다. 잔득 웅크린 채 사타구니를 벌린 애경의 얼굴은 이미 기찬의 가슴께에 파묻혀 있어 표정을 읽을 수도 없지만, 끊어질 듯 들려오는 거친 호흡 소리가 그녀의 열락에 빠져있음을 전해준다.



이미 여러 번 밀고 올라오는 쾌감에 기찬의 허리를 감아 완급을 당부하던 애경도 이제는 그 힘이 다 했는지 그저 너부러진 상태로 흔들림에 몸을 실어 애꿎은 허공에 발질만 해 댈 뿐이다.



“여...... 보......”



“후욱...... 후욱......”



“끄르르륵......”



“이제...... 다...... 됐어...... 싸, 싼다....... 흐윽......”



울컥거리는 느낌과 함께 허리를 활처럼 휘며 애경의 속 깊은 곳까지 공략해 들어간다. 단단하게 옥죄어 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부드러운 살 속으로 침몰해 들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느낌도 아득할 즈음, 약간의 현기증은 기분 좋은 쾌감으로 다가온다.



“이제 그만 갈까?”



“......”



“애경아......”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애경은 시선을 멀리 둔 채 멍한 표정이다. 몇 번 흔들어 본다.



“이, 이런...... 애경아, 애경아......”



뺨을 몇 차례 맞고서야 동공이 돌아온다.



“어흑...... 그, 그만...... 때리지 마......”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는지 어깨가 들썩인다. 그러고도 십 분 쯤 흘렀는지 주섬주섬 수건을 챙겨 일어서 엉거주춤 욕실로 들어가는 애경의 뒷모습을 기찬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한 잔 더 할까? 늦었으면 이만 들어가고......”



여관을 나선 기찬이 애경을 바라보며 묻지만 애경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알지. 사람이 이상해진 것 같아. 도대체 왜 그래?”



기찬이 팔을 빼 몸을 흔들어 대자 그제서 정신이 다시 돌아온 듯 몹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린다.



“아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지금 아직도 이상하단 말이야. 자꾸 말 시키지 말고......”



“나...... 원 참, 그럼 한 잔만 더 해. 형수 이대로 집에 갔다간 큰 일 치르겠다. 사장이 대번에 이상한 낌새를 차릴 텐데...... 그 얼굴 표정이 뭐야? 넋 나간 사람처럼......”



“치......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리고 자기...... 자꾸 형수라고 할 거야? 우리 둘만 있을 때는 그러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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