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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58 895회 0건
007 삽입면허-3부-



“기찬씨?......”



“으응? 형수?...... 왜?”



“또, 또...... 형수라고 한다. 칫......”



“허허...... 그래, 애경아...... 자칫 습관 들었다가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평소에도 조심해야 하니까 그렇지.”



“칫...... 알았어.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딘데?......”



“나?...... 지금은 집이고...... 조금 있다가 나가봐야 돼. 왜 그러는데?”



“왜는 뭐가 왜야?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참 나...... 이거, 이거...... 누가 들으면 열녀 난 줄 알겠네. 아! 서방이 없어? 숨겨 둔 애인이 없어? 왜 날 찾아?......”



“어머머! 자기 정말 그럴 거야? 칫...... 난 기껏 좋은 정보가 있어서 알려 주려고 했는데......”



“정보?...... 뭔데?”



“피....... 몰라! 이리 오면 가르쳐 주고.......”



“어디에 있는데?......”



“복덕방. 나 혼자 있어.”



“거기는 왜? 서방은 어딜 가고......”



“오늘 업자들 모임 있는 날이라고 나갔어. 보나마나 다 늦게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오겠지.”



“으응...... 그래? 정보라는 건 뭔데?”



“아유, 몰라. 오면 가르쳐 준다니까......”



“하하......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기혼, 미혼을 떠나서 애경은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여자였다. 게다가 나름의 업무 영역을 소화해 내고 있는 입장이니 금전적으로 여유도 있는 편이어서 잘 사귀어 두면 쏠쏠한 재미를 볼 수도 있는 상대였지만, 지금 기찬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 입장이니 그것에 정신을 팔 겨를이 없는 형편이었다.



미라의 올케와 관계되어 있는 사장이라는 놈과 그 부하들을 족치면 적어도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떨어질지도 모를 일인데, 이미 낚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며 놀아 줄 시간은 없는 것이다. 다만 남의 여자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그대로, 내가 부양하고 책임 질 필요가 없는 부담 없는 상대일 뿐이니 그저 품에서 떠나가지 않을 정도의 관리만이 필요한 것, 자칫 애정을 쏟는 것으로 오해해 들어붙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골 아픈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경은 혼자 컴퓨터를 끌어안고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기찬이 소파에 몸을 파묻자 냉큼 달려와 허벅지를 쓸어안으며 애교를 부린다.



“아휴...... 더워. 왜 이리 호들갑이야? 무슨 일인데......”



“자기...... 냉커피라도 타 줄까? 잠깐만 기다려.”



하룻밤 기찬과의 잠자리가 애경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저 바람피우는 현장을 들킨 것에 대한 입막음으로 마지못해 사타구니를 벌리게 된 일이었지만, 기찬은 애경에게 충격이었다. 남편은 물론이지만 가끔 만나는 애인조차도 자신을 그런 비경으로까지 이끌어 준 일은 없었던 것이다.



“아! 그 크기하며...... 그 딱딱함이란......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그 일 이후, 마치 몽유병을 앓는 사람처럼 혼자 상상하다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음부는 젖어들어 기다란 그녀의 손가락을 불러들이고 애경은 할 수없이 화장실을 찾아야만 했다.



욕구불만이란 가진 것이 없는 자들보다 오히려 쥔 자,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라고 하질 않는가?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야 그 체험한 바가 없으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경지에 대한 것은 그저 소박하게 소망하는 정도뿐일 것이다. 혹 기회가 된다면 자신도 누려보고 싶다는 정도의 기대가 욕구불만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니 오히려 영원히 갖지 못할 것에 대한 어설픈 체험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다 할 것이다.



이제 애경은 기찬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지를 맛보았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찬은 그저 생활비가 필요한 휴학 중인 대학생이며, 자신은 약간의 기교를 통해 기찬이 필요한 부분을 일부라도 채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 연하남이란...... 후훗......”



애경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흘끔거리는 눈빛에 애정을 가득 담아 기찬을 향해 커피 잔을 내민다.



“자...... 기찬씨, 시원할 거야.”



“정보란 건 뭐야?”



“아이 참, 급하긴...... 자기, 전세금 받은 거...... 아직 처분 안 했지?”



“으응, 엄마 조금 드리고...... 아직 그대로 있는데......”



“어머! 잘 됐다. 지금 전세 물건이 하나 나왔는데, 기찬씨 아파트 바로 앞 동이거든.”



“이런...... 누가 전세 구한다고 했어? 난 또 뭐라고...... 아! 그 돈은 주식 살 거라니까......”



기찬의 핀잔에도 애경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가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아이 참, 더 들어 보라니깐...... 자기 자꾸 그러면 나 말 안한다.”



샐쭉거리며 토라진 듯 팔짱을 끼며 모로 돌아앉는 모습이 마치 남편에게 애교를 떨어대는 새색시 같아 기찬으로부터 실소를 자아낸다.



“허허...... 참, 알았어. 말해 봐.”



“치...... 그런데 그 사람 딸이 외국 유학 중인데다가 마누라마저 곧 뒷바라지하러 출국한다더라고......”



“그래서?......”



“으응, 그래서 자기 혼자 덩그러니 넓은 집에 있는 건 식사준비도 번거롭고 해서 회사 기숙사로 들어간다더라고...... 그래서 빨리 전세를 넘기고 가고 싶다고 엄청 싼 값에 내놓았어. 그거...... 다시 전 전세를 놓더라도 몇 천은 차익을 굴릴 수 있겠던데...... 어차피 자기 주식 굴릴 거면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거 아냐?”



“으응, 그야 물론이지. 야! 이거 정말 좋은 정보네...... 어디...... 몇 동 몇 호라고?”



기찬은 애경이 알려주는 주소와 인적사항을 받아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대법원 사이트에 접속한다.



“어디 보자...... 인터넷 등기소가...... 음, 여기 있네......”



잠시 후 출력시킨 등기부 등본을 손에 들고 갑, 을부를 모두 살핀 후 애경을 바라보는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흐미...... 이쁜 것 같으니라고...... 이리 와 봐.”



놀란 척 뒤로 물러서며 내숭을 떠는 애경을 끌어당겨 깊은 입맞춤을 나눈다.



“하악...... 몰라. 미쳤어. 누구 들어오면 어쩌려고......”



애경은 가쁜 숨을 내쉬며 입술을 거울에 비쳐보곤 투정을 부린다.



“그럼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그 사람 전화해서 빨리 서류 집어넣으라고 해. 당장 계약하자고...... 아니, 마음 변하면 안 되니까 계약금이고, 잔금이고 다 때려치우고...... 오늘 전세금 일시불로 완납시켜준다고 해.”



“으응, 알았어. 지금 전화하고 있어. 그래, 차라리 그 이 없을 때 해치워 버려야지. 그 인간 또 자기한테 복비 달라고 하면 골치 아프잖아? 호호호......”



“으응? 크큭...... 그게 그렇게 되나? 하하하......”



연락을 받은 사내는 오래지 않아 부동산 사무실에 모습을 보이고, 기찬도 그 사이 준비해 온 전세 대금을 사내에게 건넴으로 일처리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기찬은 임대차 계약서를 품안 에 갈무리하며 인사치레를 잊지 않는다.



“하하...... 이거 고맙습니다. 계약기간도 넉넉히 주시고......”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 아이도 삼 년이 지나야 들어오니까 그 동안은 빈 집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뭐...... 혼자 밥 해 먹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자, 그럼...... 저는 내일이라도 짐을 빼고 이사를 할 테니까...... 열쇠는 여기로 갖다 드리면 될까요?”



순간 기찬과 애경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손을 내젓는다. 애경이 남편이 알면 안 될 일이니 기찬이 서둘러 말을 띄운다.



“아, 아니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맡겨 주세요. 제가 찾으러 가지요. 여기는 손님이 오면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서요.”



“아! 그렇겠군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그럼......”



사내를 보내놓고 기찬은 더 있다 가라는 애경을 뿌리치고 부동산 사무실을 벗어난다. 곧바로 다시 제삼자에게 전세를 내놓아야 하니 속히 주소이전을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 두어야 나중에라도 기찬이 그 아파트에 대한 전세권을 주장할 수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후훗...... 이것만 처리 돼도 이천만 원은 더 굴릴 수 있겠네. 애경이가 은근히 쏠쏠한 재미를 주는데......이 참에 춤이나 배워 가지고 제비족으로 아예 나서 버릴까? 큭큭큭......”



시종일관 싱글거리며 일을 마무리 짓고,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움직일 시간이 되어 어제 족친 영진기업의 기획실장에게 전화를 넣는다.



“여보시오. 실장님이신가?”



“아! 네, 네...... 저, 박경호입니다.”



“음...... 오늘 그 김비서라는 인간도 접촉을 해 볼 계획인데 지금 자리에 있을까?”



“아! 네...... 아직은 퇴근 안 했을 겁니다. 제가 좀 붙잡아 둘까요?”



“아, 아니요. 일부러 그럴 건 없고...... 어쨌든 내가 회사 근처에 가서 다시 전화를 할 테니까 그런 줄 아쇼.”



“네, 네...... 알았습니다.”



저승사자가 따로 없을 것이다. 심령마저 제압당한 사람처럼 기찬의 올가미에서 허덕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쳐온다. 마치 전화기 저 편에서 수화기를 붙잡고 절이라도 하는 듯 바쁜 호흡으로 가까스로 받아낸다.

기찬은 택시를 잡아타고 영진기업 근처의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는 사장과 김비서란 자의 근황을 묻기 위해 다시 기획실장에게 전화를 해 불러 내린다.

잠시 후 커피숍으로 들어서는 기획실장은 잔뜩 풀이 죽어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얼굴을 구기고 기찬의 앞에 자리를 한다.



“아, 안녕하셨습니까?”



“음...... 어서 오슈.”



“저......”



사내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지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로 봉투를 하나 들이밀고, 기찬은 사내의 얼굴과 봉투를 번갈아 보며 묻는다.



“이건 뭐요?”



“네...... 그저 별 뜻은 없습니다. 화, 활동비로 써 주십사 하고......”



“풋......”



마치 들으라는 듯이 기찬은 실소를 흘리고, 봉투를 집어 들어 내용을 확인한다. 일금 일천만 원정...... 점점이 찍힌 숫자는 일천만 원이라는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뭐야? 당신...... 이것으로 어떻게 무마해 보자는 생각인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처분에 따를 뿐이지요. 그냥 순수한 제 성의로 알아 주셨으면......”



“당신이 성의 표시 안 해도 내 활동비는 다 국방부에서 지출해 줍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 마시고......”



기찬은 사내가 봉투를 다시 집어넣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선지 봉투를 사내 앞으로 다시 밀어 둔다.



“아, 아니...... 제, 제발...... 다, 다만 저는......”



“그래, 하고 싶은 얘기가 뭐요?”



“처, 처벌을 하시면 달게 받겠습니다만, 제발 죄목이라도......”



“오호라! 차라리 회사의 일을 뒤집어쓸지라도 강간범이라는 오명은 쓰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신가?”



기찬 역시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할 뿐이지만, 사내는 그것조차 신경이 쓰이는지 거푸 주변을 살핀다.



“선생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도 처자식이 있는데...... 차라리 죽어 버릴까 하고 밤새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사내는 정말 심한 고민으로 뒤척였는지 하룻밤 만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저질러? 좋소. 내가 처리하기에 따라서는 당신 죄목을 바꿔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이 일에서 무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 일이지......”



“네, 네...... 선생님......”



“내가 모르고 지나쳤으면 모를까...... 이미 개입한 사실이 있는데, 그 아가씨에 대한 책임은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돼야 할 텐데......”



“그,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네?......”



기찬은 짐짓 고민을 하는 듯 잠시 시간을 흘려보내고는 고개를 들어 사내를 마주 바라본다.



“음...... 그러면 오천 정도만 더 준비해 보쇼. 당신은 그래도 뉘우치고 있는 것 같으니, 당신 말마따나 당신 처자식을 생각해서라도 기회를 줄 테니까...... 그렇게 하면 성의를 봐서 회사의 일과도 무관하게 처리해서 무사하게 해 주지.”



사내는 기찬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 기찬의 매서운 눈초리에 기겁을 하고는 손을 놓는다.



“아! 네,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내가 거푸 절을 하는 사이 기찬은 봉투를 품에 갈무리하면서 사내에게 말을 던진다.



“자, 그럼...... 당신은 올라가서 퇴근시간에 맞춰 김비서라는 자를 이 자리로 보내시오. 알고 있겠지만 자세한 설명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저 누가 찾는다는 말만 하시고......”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돈은 바로 준비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전화가 울린다. 거리는 아직 뜨거운 볕이 내리쬐고 있어 제법 해가 길어진 모양이다.



“여보세요.”



“저...... 미라예요.”



“으응, 미라야. 어디니?”



“네, 저 지금 학교 마치고 여진이 만나려고 가는 중이에요.”



“으응, 그런데 왜?...... 참, 그리고 이제 너...... 나한테 존댓말 하지마라. 우리 사이에......나도 조금 불편하다.”



“호호...... 그래도 될지 모르겠어요. 제 마스터신데......”



“마스터?...... 허허...... 거기는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지? 무슨 연예인처럼...... 하기야 듣긴 좋다. 훨씬 부드럽고......”



“그래서 그래요. 남들 눈도 있을 건데...... 저야 기찬씨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겠지만......”



“그래, 그럼 너 좋을 대로 해. 그 대신 무슨 일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상의하고......”



“네, 그럴게요.”



“참, 그런데 왜 전화했지?”



“아! 네...... 저, 여진이하고 상의해서 나중에 이사할 계획 잡을 거거든요.”



“으응, 그런데......”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호호...... 지금 보고 드리는 거예요. 제 마스터시니까......”



“하하...... 그래, 알았다. 나중에 이사할 때 내가 도와줄 테니까 다시 연락해.”



“어머! 정말이요?”



“아무렴, 내가 마스터잖아. 하하하......”



“음...... 우리 오빠나 새언니가 보면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뭐 어때서...... 그냥 남자 친구라고 하면 될 일을......”



“후훗...... 알았습니다. 주인님......”



“그래, 하지만 단순히 마스터라고만 생각하지 마. 미라가 원하는 일이어서 그렇게 해 주는 거지만, 나는 그저 앞으로도 변함없을 미라의 친구야.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할 거고......”



“어머!......”



전화기 저 쪽에서 미라가 다소 놀란 듯 잠시 말을 멈춘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할게요. 기찬씨...... 고마워요. 저도 사랑해요. 이만 끊을게요.”



이어지는 미라의 목소리가 다소 울먹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찬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왕 필요악일지언정 그 세계는 그런 것이 룰이라면 따를 수밖에, 다만 할 수 없이 이루어지는 관계일지라도 미라에게 빌붙어 기생한다든지, 착취를 한다는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기찬의 마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딸랑거리는 벨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홀 마담이 팻말을 들고 돌아다닌다.



“네, 여깁니다.”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손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그녀의 안내로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테이블로 다가선다. 예상한 대로 이 사내도 그저 사장의 지시에 신세를 망치는 과잉충성을 한 모양이었다.



“실......례입니다만, 어디서 오셨는지......”



“네, 일단 앉으십시오. 저는 강기찬이라고 합니다. 아! 제 이름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자리에 앉는 사내에게 예의 표찰을 꺼내 보여주니 군 수사관의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다소 질린 것처럼 안색이 희어진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도 일단 수사기관에서 접촉하면 뭔지 모를 불안감이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 하물며 비밀스런 일을 저지른 입장에서 비록 경찰 관계자는 아니더라도 수사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자신을 지목해 찾는다는 것은 충분히 안색에 변화를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는 일일 게다.



“아,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명색이 비서라면 회사에서 추진 중인 일에 대해 깊이 관여하고 있을 터, 보급부대 로비라는 등 되지도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느니 방법을 달리 하기로 작정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송미라라는 아가씨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네?”



사내는 그 말 한 마디에 바로 안색이 어두워지고 테이블 위에 얹어 둔 팔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 저......”



“우리 부대장님의 자제분과 약혼을 했던 아가씬데...... 느닷없는 파혼 소식이 날아들어서 뒷조사를 하라는 지시를 받아 움직이다 보니까 당신이 나오더군. 당신...... 소리 소문 없이 죽는다는 것이 뭔지 알아?”



“아, 아...... 사, 살려 주십시오. 자, 잘못했습니다.”



이 심약한 사내는 대뜸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자리에서 벗어나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끌어서야 기찬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셋을 셀 동안 자리에 앉는다. 하나...... 둘......”



“아, 아...... 네, 네......”



“당신...... 사진도 찍어 뒀다고 들었는데......”



“저...... 그, 그건 지금 없는데......요.”



“어디에 뒀지?”



“네, 지, 집에 있는 컴퓨터에...... 있습니다.”



“일어 서.”



“네?......”



“앞장서란 말이야. 확인하고 폐기해야 할 것 아니야.”



“아! 네, 네......”



사내는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내의 집에 당도할 동안 기찬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러는지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내의 차는 동작대교를 넘어 방배동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고개 근처에 이르러 속도를 줄이더니 한 골목으로 차를 집어넣는다.



“으흠, 제법 잘 사는 모양이군. 그래.”



“......”



사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처분만 바라는 모양이었다.



“자, 앞장 서야 따라갈 것 아니야? 당신 식구들 앞에서 체면 살려 주려는 거야. 내가 들쑤시기 시작하면 당신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



사내는 다시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매달려온다.



“저, 저...... 제발...... 마누라나 자식들이 알면......”



“인간들 하곤...... 어차피 알려질 것 아닌가? 그럼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어?”



“제, 제발......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차라리 저, 저를 총으로 쏴 죽이십시오.”



“오호! 제법 갸륵한 생각을 하셨구먼. 좋아. 어차피 보고야 까짓 것...... 별 일 없더라고 해 버리면 그만일 것이고, 그럼 그 대신 뭔가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은근히 기찬은 내심을 비추고 사내는 귀가 번쩍 뜨이는 듯 고개를 들고 기찬을 바라본다.



“아, 아! 네, 네...... 보, 보상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일단 사진부터 없애자고...... 자, 일어 서. 식구들에게 나는 거래처 손님이라고 하고......”



“네, 네...... 알았습니다.”



허둥지둥 들어서는 사내를 따라 대문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선다. 사내를 반기는 여자를 보니 기찬의 눈이 다 시원해질 정도의 미인이어서 고개를 들어 왜소한 사내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실례합니다.”



“어, 어머! 어서 오세요. 손님이 계셨네요?”



“으응...... 거, 거래처 손님이신데 상의할 게 좀 남아서 모시고 왔어.”



“어머! 그럼 전화를 미리 하든지 하지. 아유...... 집에 아무 것도 차릴 게 없는데...... 술상이라도 준비하려면......”



“으응, 그래요. 당신이 알아서 좀......”



“네, 그럼...... 요 앞 마트라도 좀 나갔다 올게요. 아유...... 죄송해요. 그럼 잠시만 앉아서 일 보세요.”



“아! 네, 네......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잠시 후 차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내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진다. 기찬은 실내장식 따위를 돌아보며 이것저것 건드려 보기도 하고 한 곳에 멈춰 서서는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부인이 상당한 미인이요? 저런 부인을 두고서...... 이 사진은...... 따님이신가?”



“네, 네...... 지금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그러니 제발 가족들은 모르게...... 허이구...... 내가 어쩌다가...... 내가 죽일 놈입니다.”



“자, 사진부터 없애고 얘기합시다.”



“네, 네......”



사내는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의 전원을 넣고 부팅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순간 기찬은 다른 생각이 들었는지 사내를 만류하고 본체를 해체해 하드 디스크를 뽑아 곁에 있는 서류봉투에 담아 한 옆으로 밀어 둔다.



“저, 저...... 없애 주신다고 하시고선......”



“아! 물론 없애 주지. 하지만 지금은...... 조건이 충족될 만큼 당신의 각오가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조금 보류해 두자고...... 이거 하나면 당신의 모든 것이 증명될 테니......”



“......”



“그리고, 이 사진이 사장에게는 없는가? 사장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면 보고 자료로 제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네, 네?...... 아, 아닙니다. 사장님은 모르시는 일입니다.”



“뭐야? 사장이 지시한 일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어디서 오리발이야? 이 새끼......”



기찬의 발길질에 사내는 방구석으로 내동댕이쳐지고 한동안 숨쉬기가 곤란한지 버둥거리다가 어렵사리 주춤거리며 일어선다. 호흡은 가빠지고 얼굴은 온통 공포에 젖어 하얗게 질려 버린 모습이다.



“아, 아...... 사, 사실입니다. 사실대로 제가 다 말씀 드릴게요.”



김비서를 통해 들은 얘기도 기획실장에게 들은 바와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단지 다른 점이라면 사장은 그저 미라의 올케가 사장과 통정을 한다는 것을 미라가 인식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지, 미라를 해코지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간이 작은 이 친구는 그것조차 혼자 해 내지 못하고, 기획실장이란 놈을 끌어들였고, 미라가 기절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일까지 벌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이 개새끼...... 네놈이 그냥 과잉충성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말이지. 그 짓을 할 때 네 딸년 얼굴은 떠오르지 않던가?”



사내는 한 번 더 나동그라지고 큰 소리를 내며 방문에 부딪혀 응접실로 굴러 떨어진다.



“어머! 여보!......”



“이, 이런...... 젠장......”



하필 그 때, 장을 보러 나갔던 여자가 돌아오고, 기어이 못 볼꼴을 보고야 만 것이다.



“어머머! 왜, 왜 그러세요? 도대체 무슨 일로......”



여자는 냉큼 남편에게 달려가 부축을 하고 호흡을 힘겨워 하는 남편을 돕는다.



“여보! 여보!...... 잠, 잠깐만이요. 겨, 경찰에......”



“허억...... 아, 아니야. 안 돼. 바, 바깥에 대문 잠갔지?”



사내는 오히려 아내를 만류하고 문을 잠글 것을 당부한다.



“네...... 도대체 왜 그래요? 뭘 잘못했기에......”



여자는 남편의 태도를 보고 순간 상황을 인식했는지 기찬을 향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한다.



“서, 선생님...... 이 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아이가 돌아 올 텐데...... 제발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



기찬은 할 수 없다는 듯 여자를 안심시킨다.



“으흠...... 좋습니다. 부인을 봐서 그렇게 하지요. 잠시 남편과 단 둘이 의논을 할 테니 부인은 술상이나 좀 봐 주시겠습니까?”



“네, 네...... 그럴게요. 그, 그럼...... 여, 여보...... 괜찮겠어요?”



“으응, 그래...... 당신은 어서 저쪽으로 가 봐.”



“네, 네...... 알았어요.”



여자가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한 후 부엌 쪽으로 몸을 돌리고, 기찬은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사내를 가까이 부른다.



맞은편에 앉은 사내 곁으로 건너가 바싹 다가앉아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당신, 이 일이 사실대로 보고되면 당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고, 시체조차도 온전히 보존할 수 없어. 군부대에서 유야무야하는 사건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는 당신도 잘 알 거 아냐? 지금은 당신이 자수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고, 우리 부대장이 보복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신 마누라나 딸년도 그 여자하고 똑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거란 말이지. 어쩌면 더 심한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일 테고......”



사내는 온 몸을 떨어 댈 뿐, 아무 말도 못하고 간간이 고개를 들어 처량한 눈빛만 보내올 뿐이다.



“방법을 하나 제시하지.”



“네, 네...... 뭐든지 시키는......”



“듣기나 해.”



“네, 네......”



“이 집을 넘겨. 다만...... 당장 이사할 곳이 없다면 당분간 이 집에서 그냥 살도록 해 줄 테니까 서둘러서 이사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그 아가씨가 몹쓸 일을 당하고 상처가 심해서 파혼까지 제의한 모양이지만, 이 일을 비밀리에 무마하려면 어떻게든 그 아가씨를 설득해서 우리 부대장님 자제분하고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내가 그냥 돌아가서 별 일 없는 것 같다고 보고를 하면 추후로 다른 수사관을 파견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고...... 그 아가씨 부모를 설득하려 해도 빈손으로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쯤이면 느낌이 오지 않나?”



“그, 그렇게만 해 드리면...... 저, 저는......”



“그러지. 그렇게만 하면 더 이상 이 일로 인해서 괴로워 할 필요가 없도록 뒤처리를 해 주지. 그 아가씨도 설득해서 결혼을 시켜 버리고, 증거인멸에...... 만약 눈치를 채는 수사관이 있다면 그 수사관들 입막음도 내가 할 것이며, 당신 가족에게도 내가 적절한 다른 핑계를 대 줄 테니까......”



“네, 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당장이라도......”



“좋아, 그리고 그 기획실장이나 사장에게는 내가 별도의 조사를 들어갈 거야. 행여 그 인간들에게 미리 이런 눈치를 보였다간 모든 일이 원인무효가 되는 거야. 알겠어?”



“아, 아! 네, 네...... 물론입니다. 처, 철저히 함구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술이나 한 잔 합시다. 당신 부인에게도 내가 좀 둘러대야겠지?”



“아, 아! 네, 네...... 저...... 여보! 지금 준비 되겠어?”



사내가 주방을 향해 소리를 치자 이내 여자가 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아유...... 저는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죄, 죄송해요. 상차림이 변변찮아서......”



“아, 아닙니다. 부인도 잠시 앉으세요. 따님이 오기 전에 이야기를 마무리 지읍시다.”



이윽고 여자가 한 옆에 자리하고 영문도 모른 채 한껏 풀죽은 표정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음...... 부군께서 일을 보시던 중, 군부대 보급품 밀수에 조금 관여를 하게 됐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군 수사기관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사건이 정리될 때까지 가족들 모르게 비밀리에 수사를 해야 원칙인데, 이거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순간 여자는 사내를 돌아보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내 기찬에게 사정을 해 온다.



“어머! 세상에...... 아유, 난 몰라. 이 이가 미쳤나 봐. 도대체 어쩌자고...... 아유, 선생님...... 제발 어떻게 봐 주실 수는 없나요? 네, 제가 이렇게 빌게요.”



“허허...... 이것 참, 곤란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부인을 봐서 무마를 시켜 드린다고 해도 이번 사건 수사관이 저 혼자만이 아닌데다가 부군이 개입한 증거를 모두 찾아 없애고 그 입들을 막으려면 한두 푼으로 될 일이 아니고, 한두 사람 만나서 될 일도 아닙니다.”



“아유...... 제발...... 허엉......”



이제 여자는 울며불며 기찬의 바지를 붙잡고 매달린다. 사내는 괜히 머쓱해졌지만 어차피 집은 날리는 것이고,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파렴치범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길이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자, 자...... 진정하시고 제 말씀을 더 들으세요. 그래서......”



기찬의 말에서 어떤 희망이라도 찾으려는 듯 여자는 눈물 젖은 얼굴로 눈빛을 빛낸다.



“네, 네......”



“어차피 부인도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부군과 대강 상의를 했습니다만, 이 집을 담보한다면 수사관끼리 어떤 합의를 끌어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뭐...... 조건부니까 당장 여기서 이사를 하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수사관들도 자기 죽을 자리는 안 들어가니까......이 집을 우선 누군가에게 권리 이전시켜 두고, 나중에 이 일이 완전히 무마돼 모든 일이 가라앉으면, 그 때쯤 이사하시라는 통보가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사건은 군부대와 관련된 일이라서 부군이 체포되면 적어도 환갑 전에는 못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부군은 그 일에 동의하셨는데......”



“네, 그럴게요. 저도 동의하면 그렇게 해 주시는 거죠? 네?”



“허허...... 참, 좋습니다. 저도 장담은 못하겠지만, 한 번 추진해 봅시다. 그 대신 이 일이 절대 외부 누구에게라도 발설이 되면 그 때는 여럿 죽는 겁니다. 아시겠죠?”



“아, 아...... 네, 네...... 아유......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자, 그럼 이젠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겁니다. 자......”



이젠 여러 순배의 술이 돌고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 사내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원래 못하는 술을 기찬을 접대하느라 그랬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괴로운 표정이다.



“아, 그리고...... 이젠 시간도 어지간히 되었는데, 따님이 안 들어오네요?”



“아! 네...... 아까 제가 하도 놀라서 아이한테 전화를 했어요. 오늘 아빠 중요한 손님이 오셨으니까 집에 오지 말고 독서실에서 하루만 공부하라고......”



“아! 그랬군요. 허허...... 이거 참, 그러면 저는 오늘 마음 놓고 한 잔 하렵니다. 이거 수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고 많은 날 동가식서가숙에다가......”



“아유...... 네, 물론 그러시죠. 오늘은 마음 푹 놓으시고 여기서 주무세요. 제가 아이 방에 자리 마련해 드릴게요.”



“아! 이거...... 그래도 되겠습니까? 폐가 될 텐데......”



“아, 아닙니다. 수사관님은 저희를 위해서 더 어려운 일도 해 주실 텐데......”



“허허...... 저, 장담은 못합니다. 그저 한 번 해 보겠다는 얘기지......”



“어머! 또 왜 이러세요. 아까는 해 주신다고 하시고선...... 자, 자...... 한 잔 더 받으세요. 제가 따라 드릴게요.”



“아! 네, 네......”



사내를 방에 눕히고도 기찬과 여자는 한참을 더 마시다가 제법 시간이 이슥하여 기찬도 안내해 주는 딸아이의 방으로 들어선다.

몸을 눕혀 창가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다가 얼핏 몰려오는 잠에 아득해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다만 취중에도 잠자리가 낯설어서인지 이상한 느낌에 곧 눈을 뜨게 된다.



“으응?......”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방 안으로 들어서는 흰 그림자는 사내의 아내였다. 손에는 쟁반에 물그릇을 들고 잠옷차림으로 들어서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자는 척 바라보고 있는 기찬을 내려다보고는 길게 탄식을 뿜어낸다.



“휴우......”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서 있는 여자를 비추고, 그래서인지 늘씬한 여체 안의 실루엣이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온다. 곧게 뻗은 두 다리가 마주치는 지점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즈음, 기찬은 안으로부터의 울림을 받아들인다.



“허억! 엄마야......”



천천히 일어나 앉아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몹시 당황하여 한 걸음 물러서지만 이 시간, 아무 용무 없이 자리끼를 들고 외간남자의 방문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이리 와서 앉아 봐요.”



기찬은 한 곁의 자리를 만들어 주며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잠시 망설이던 여자는 이내 기찬의 곁으로 다가와 앉는다.



“이름이 뭐예요?”



“강......지수라고 해요.”



“나이는?”



“서른일...... 곱......”



“후훗...... 나하고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군요.”



“어머...... 죄, 죄송해요. 저...... 이만 나가 볼게요.”



마치 내심을 들켜 버리기라도 한 듯 어두운 실내의 달빛만으로도 지수의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찬은 일어서려는 지수의 팔을 잡아 만류하고 지수는 한 무릎을 세운자세로 앉아 몹시 당황스러운 듯 화끈거리는 얼굴만 매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자칫 늙은 년이 이 기회를 핑계로 젊은 남자에게 안기려고 했다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이 두려운 것일 게다.



“화장...... 새로 했어요?”



기찬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지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가족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지수씨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단지 남편의 처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러는 것이라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내가 최선을 다 해서 일처리를 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가 봐요.”



“흐흑......”



“이런......”



나가지도 않고 앉은 채로 흐느끼는 지수를 기찬은 한참을 지켜보다가 팔을 둘러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을 잇는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정...... 안심이 안 되면......”



기찬이 말을 멈추자 지수는 눈물 맺힌 눈을 들어 기찬을 바라본다.



“나는 어떤 이유로든 나와 관계되는 여자를 함부로 생각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그 시간부로 그 여자는 내 여자라는 얘기지. 물론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여자라도...... 지수씨도 나를 그렇게 마음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다면 오늘 약속을 합시다...... 그러면 저 녀석도 내가 친조카처럼 생각해서 뒤를 돌봐 줄 거고......”



기찬은 방에 걸려있는 계집아이의 사진을 손으로 가리킨다.



“지수씨, 나 같은 동생 하나쯤 만들어 둬도 괜찮을 텐데...... 나도 지수씨처럼 예쁘고 날씬한 누이가 있으면 좋을 것 같고...... 후훗......”



“풋...... 말도 안 돼요.”



기찬의 장난스러움이 의외였는지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의 짐을 내려놓는 모양이다.



“허허...... 이제 좀 긴장이 풀려요? 봐.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



“아유, 자꾸 놀리지 마세요. 늙었다고 비웃는 거 같아요.”



“참 나...... 참, 남편은 잠들었어요?”



“네...... 저 이는 원래 술도 못 마시는데...... 어쩌면 내일 출근이나 할 수 있을지......”



“자...... 이제 편안히 생각합시다. 지수씨는 아무 걱정 말고......”



“저, 정말 아무 탈 없이 뒤처리를 해 주실 수 있는 거지요?”



“아! 글쎄...... 이 동생을 믿어 보라니깐...... 하하...... 그 대신 지수씨도 내 말 명심하고...... 더 이상 나를 남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는 거...... 마음 깊이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네...... 저도 그, 그럴......게요.”



남편의 무사안녕을 위해 저 젊은 사내를 오늘 밤 장악해야만 한다. 이까짓 집이야 없어도 그만, 나를 위해 그리고 내 딸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 집의 가장이 쓰러져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도 우리 아이의 울타리가 무너져서는 안 될 일이다. 잠들어 지쳐 쓰러진 남편의 곁에서 다른 남자를 위해 고운 화장을 한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나는 내 눈물로 이 화장을 지울 것이다. 첫날밤을 준비하는 신부처럼 아껴두었던 고운 속옷을 꺼내 입고 한껏 실루엣을 뽐낼 수 있는 가운도 걸친다. 아! 그를 사로잡을 향수도 잊어선 안 될 일...... 손톱 곱게 가다듬은 섬섬옥수에 자리끼를 받쳐 들고 그의 방문 앞에 선다.



“여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 남자는 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나를 온전하게 바치라고 한다. 어쩌면 나이 들은 늙은 여우라며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한없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냥 이 방을 뛰쳐나가는 것이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저 눈빛은 또 왜 저리 다정한 것이야? 저 무서운 사내가 동생이라니...... 말도 안 돼...... 아니야. 어쩌면 이 험한 세상 우리 아이에게 믿음직한 외삼촌이 생기는 것일지도...... 아! 모르겠어...... 당신은 진정 마음 깊이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가요? 우리......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건가요?



“으흥......”



돌아앉은 지수의 가운을 머리 위로 올리고 그녀에게서 필요치 않은 천 조각을 마저 떼어낸다. 돌아보는 그녀의 입술은 진홍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일어선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에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여자들의 속옷은 입기 위함이 아니라 벗기 위함이라던가? 그래서 그런 건지 점점 드러나는 그녀의 고운 엉덩이가 기찬의 입술을 끌어들인다.



“흐...... 윽...... 아! 싫어......요.”



“후훗...... 가만히 있어요.”



기찬은 점차 지수의 허벅지로 입술을 옮겨 더운 입김을 뱉어내고 선 채로 어쩌지 못하는 지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하악......싫어......”



“푸훗...... 누님, 이런 거...... 안 해 봤어요?”



“흐윽...... 이런 거...... 싫어......”



“그래도 조금만 참아 봐......”



“하악......”



쉼 없이 그녀를 자극하던 기찬은 손을 뻗어 그녀의 고운 엉덩이를 쓰다듬고 이내 계곡을 탐한다. 방초 우거진 계곡은 의례 맑은 샘이 있는 법, 여행자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안 돼...... 허......응......”



혀가 닿는 느낌에 지수는 진저리를 쳐 보지만 기찬의 억센 손아귀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뒤로 잔뜩 내민 채 할 수 없이 아이의 책상을 짚어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허......윽...... 너무 해...... 흑...... 흑......”



이런 체험을 과연 처음 하는 것인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이내 물을 쏟아내곤 흐느껴 울기 시작하고 손을 뻗어 살집 사이의 돌기를 만져주자 잔 경련을 일으키곤 끝내 주저앉아 버린다.



“허윽...... 흑...... 흑......”



기찬의 손과 방바닥은 어느새 흥건히 젖어 할 수 없이 그녀의 가운으로 바닥을 훔쳐 내야만 했다.



“자...... 누님, 일어서 봐. 조금만 더 참고...... 나, 이제 사랑하기로 했잖아?”



“흐윽...... 네......”



다시 책상을 짚고 일어서는 그녀를 돌려 안고 충분히 젖어있는 샘을 찾아 허리를 밀어 넣는다.



“아아...... 아하앙......”



그녀의 비음을 들으며 잔뜩 내민 그녀 안으로 진군한다. 의외로 사랑을 생물학적 필요에 의한 행위로만 알고 지낸 모양이니 완급을 조절하며 낯설어 하는 그녀를 배려한다.



“허억...... 허억...... 여, 여보......”



“후욱...... 그래, 여보...... 누, 누님, 이제 나 사랑하는 거지?”



“몰라...... 흐윽...... 몰라......”



창문 밖으로는 밤이어서 그런지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살짝 열어 둔 창문으로 실바람이 들어 와 그녀의 향기를 간간이 전해준다. 기찬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그녀의 몸 위로 떨어질 무렵 밤하늘에도, 그녀 안에도 별똥별이 떨어진다.



“크으윽......”



활처럼 뒤로 휘어진 자세로 한동안 그녀를 향한 아쉬움을 표시한다. 가녀린 그녀도 엉덩이만은 풍만했고, 그것이 이런 포만감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천생 타고 난 여자란 이런 것인가? 애경에게서도, 미라에게서도 이런 엉덩이를 느끼진 못했었다.



기찬의 움직임이 멈춘 후, 한 동안 그 자세로 숨을 고르던 지수는 눈물범벅이 된 채 고개를 들어 자세를 풀어 줄 것을 부탁하는 모양이다. 이내 기찬이 물러서며 담배를 피워 물자 지수는 속옷과 가운을 들어 방을 훔쳐 낸 뒤 조심스럽게 방문을 나선다.



들려오는 물소리만으로는 몸을 태우던 열정을 식힐 수 없다는 듯 기찬은 창문을 활짝 열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어느새 시원한 밤바람이 그의 몸을 휘돌고 지나간다.



“가서 씻고 오세요.”



샤워를 마친 지수가 가운을 갈아입고 다시 들어와 물수건으로 바닥을 훔쳐내며 이부자리를 손보고 있다. 굵게 웨이브 진 머리를 질끈 동여 맨 뒷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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