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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0:35 1,076회 0건
바이러스바이러스

박봉구 이춘식 김유석

안미경, 현정아 외

반일균 목사



제 13부 프리지아



프리지아는 약해보이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맑고 깨끗하다. 청초한 자태를 내보이며 수선화를 따라 피는 프리지아는 그 향기가 너무 감미로워 사람들을 취하게 만든다. 그 옛날 나르시소스를 사랑했지만 부끄럼 많은 숲의 님프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 나르시소스를 그리워만 하다 그가 호수에 빠져죽자 따라 죽었다. 그 님프가 프리지아다. 다행히 신들이 너무 안타깝게 여겨 꽃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노란 프리지아를 큰 항아리에 담으며 꽃향기에 취한다. 향기를 맡는 순간 짜릿한 그 무엇이 스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내음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매장을 채운 향기는 낮게 깔리며 금년 여름 신상품으로 전시하고 있는 오픈 힐을 채우고 있다. 강렬한 빨강색의 힐이다. 6센티 높이의 굽은 매끄러운 선을 그리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조용한 매장이다.

프리지아. 춘식이 봉구 유석과 헤어지고 새롭게 차린 매장이다. 여성용 구두, 그것도 고가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른바 명품매장이다. 가짜 가죽이나 싸구려는 아예 취급하지 않았다. 진짜 가죽이라야만 프리지아처럼 상큼한 향기가 났기 때문이다. 꽃 중에서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프리지아를 상호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향기를 사랑하는 춘식은 가죽이 내뿜는 원시적이며 동물적인 그런 향기를 사랑했다. 여자 발의 매끈한 체취와 은은한 가죽내음이 어우러지면 예전 같은 충동이 일지 않았다. 이빨의 간지러움이 가라앉는지도 꽤 지났다.



“안녕하세요?”

상냥한 음성에 귀여운 말투. 처음 오픈하면서 채용한 여직원이다. 이름이 미경이라 했다. 밖이 더운지 손부채를 하며 들어선다.

“오늘도 프리지아 향이네요. 사장님은 그 꽃을 너무 좋아하시나 봐요?”

미경은 말이 없어 무뚝뚝하지만 사장을 은근히 좋아했다. 젊은 나이에 이런 고급 매장을 열 정도면 능력도 꽤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가끔 자기를 쳐다보는 눈빛이 강렬할 때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특히 채용면접을 볼 때 쑥스럽기는 했다. 그래도 그게 뭐 이상하지는 않았다. 구두매장이면 당연히 직원들의 발도 예뻐야 하고 깨끗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손님들도 고급 구두를 신고 있는 자신들을 보고 참 이쁘구나, 사고 싶은 데, 그렇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급여가 셌다. 전문대를 갓 졸업한 미경은 사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마땅히 갈 곳은 없었다. 그러다 학생과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좋은 자리가 나면 휴대폰 때려달란 부탁을 했는데 마침 그런 곳이 있다는 거다. 월 급여 200이면 이 어려울 때 어딘가. 또 프리지아란 가게이름도 어쩐지 있어 보였다.



면접을 보러간 날은 봄꽃은 졌지만 라일락이 화창한 늦은 봄이었다. 전문매장답게 안이 으리으리했다. 그때도 프리지아 향이 좋았던 기억이다. 그녀 앞으로 벌써 10여 명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맵시 있게 차려입은 모습들에 조금 긴장한 그녀였다.

춘식은 매장 안쪽에 마련된 접견실에 앉아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내뿜는 향기를 들이켰다. 돈이 좋기는 좋군, 닭목을 칠 때가 작년인데 이렇게 사람, 것도 어여쁜 여성을 밑에 두고 부릴 수 있다는 게, 별것 아니군. 봉구란 놈이나 유석이란 놈이 기꺼이 던져 준 돈은 2억이 넘었다. 처음엔 큰 돈이라 생각을 했지만 쓰다보니 큰 돈은 아니었다. 매장 하나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집도 초라한 단층이지만 지하실과 정원이 있어 좋았다. 처음 서울로 갈까하다 고향이 가까운 청주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가끔 유석도 만날 수 있어 좋을 거란 판단이었다.



면접은 별거 없었다. 순서를 미리 주고 차례대로 만나 묻고 답하는 것, 이력서에 붙은 사진을 보며 실물과 비교해보는 재미,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는 20대 초중반의 여성을 고르는 것은 어느 놈 목을 먼저 딸까했던 닭 장사 때와는 달랐다. 가벼운 정장차림의 여성들, 대학졸업도 있고 여고를 졸업한 그야말로 생머리도 있었다. 화사한 옷차림과 매력 있는 얼굴에 관심을 둔 애도 몇 있었지만 다리가 너무 가냘프거나 발이 미웠다. 그는 생글거린 얼굴보다 숨겨진 발에 더 진지했다. 제일 싫은 게 엄지발가락 옆에 굳은살이 생겼거나 새끼발톱이 일그러진다거나 뒤꿈치에 시꺼멓게 새살이 돋아나는 것, 그리고 경멸해 마지않은 것은 발이 뒤틀려 마치 아무렇게나 다룬 듯한 기형의 발이다. 그때마다 역겨움이 치밀었다. 그 날도 한 여자의 발이 그랬다. 상큼한 미소였지만 코가 동그란 갈색 펌프 구두를 벗자 춘식의 미소가 사라졌다.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에 거의 달라붙을 정도로 휜 거다. 또 한 여자는 다리가 너무 말라 젓가락 두 짝으로 보였다. 스타킹이 흘러내릴 듯한 가냘픈 다리도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안 미경이란 풋풋한 아이를 만났다. 얼굴은 동그랗지만 그리 동그랗지는 않았다. 반듯한 이목구비가 시원한 분위기를 주면서 그 느낌은 몸매로 이어졌다. 스타킹의 올이 살짝 늘어지며 다리의 갈색 피부와 조화를 이뤘다. 순간 짜릿한 그 무엇이 지나쳤다.



“이름은? 어디에 있더라. 아, 여기 있군. 안 미경?”

“네, 안 미경입니다. 전문대를 이번에 졸업했습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한 미경은 자신 있었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라인은 한몸매 했기 때문이다. 소파에 앉아 자신을 건네다 본 눈초리에서 그것을 느꼈다. 질문을 멈춘 젊은 남자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며 다리를 모으고 서 있는 여자 위아래를 훑었다. 다음엔 무엇을 물을까한 포정이었다. 면접요령대로 미디엄 치마를 입고 단정한 블라우스로 멋을 부린 그녀다.

전공이 무어냐, 일을 해본 적 있느냐는 둥 몇 가지 질문을 마친 춘식은 유달리 아름다운 다리와 엷은 커피색 스타킹에 눈을 뺏겼다. 평평한 검정 플랫 구두에 살짝 드러난 발등이 예뻤다.

“주로 신발은 어디에서 사 신나요?”

“시내요, 가격이 좀 싼 가게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비싼 신발은 부담스럽고.......”

사실이 그랬다. 정장구두는 살 형편이 안 되고 그때그때 캐주얼이나 편한 스니커 종류의 신발을 샀다. 그래서 여름이 좋았다. 샌들이나 어쩔 때는 슬리퍼를 끌고 다니기도 했으니까.

“그래요. 근데 여기는 어떤 곳인지 잘 알죠? 최고급 구두만 취급하는 곳입니다. 그만큼 여기를 찾는 분들도 품위가 있고 기호가 높습니다.”

기호가 높다는 말이 이상했다. 기호가 다양하고 고급을 찾는다면 말이 되겠지만.........

“그래서 직원들도 특별히 교양 있고 또 구두를 신고 있는 발도 아름답고 깨끗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애긴 줄 알겠죠?”

나지막한 음성을 가진 젊은 남자, 아니 사장의 말이 틀리지는 않아 보였다. 구두 가게에 근무하려면 그럴 수도 있을 법했다. 구두가 잘 어울릴 직원, 맞아보였다.

“좀 볼 수 있을까요? 거기 바닥에 스시면 됩니다. 깨끗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미경은 아무런 생각 없이 구두를 벗고 차가운 바닥에 섰다. 그의 말대로 바닥은 새로 깔았는지 티끌하나 없는 대리석이다. 땀에 조금 젖은 발이다. 그러나 커피색 스타킹에 쌓인 발 모양이 작으면서도 갸름했다. 그는 너무 길쭉한 발은 싫었다. 페디큐어를 진하게 칠한 발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자연 그대로의 연분홍 발톱이 커피색에 물든 게 좋았다. 옆으로 가지런히 구두를 벗고 서 있는 그녀에게 동의의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볼 수 있냐고 물었다. 종아리도 마르지 않았고 거의 120도 각도로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린 라인이었다. 뒤로 돌아선 그녀의 두 종아리는 무릎 밑으로 약간의 틈을 줄 뿐 잘 빠진 다리였다.

“좋아요. 아주 어울린 다리군요. 우리 매장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발입니다. 그 발에 고급 구두를 신고 있으면 손님들이 아마 사고 싶어 할 거 에요. 그렇죠?”

미경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합격이란 것은 기분을 좋게 만드니까. 열심히 근무할 거란 생각까지 했다.

“발을 한번 들어 볼래요? 뒤로 그대로 들면 됩니다.”

윤곽이 뚜렷했다. 폭도 적당했다. 너무 넓거나 밋밋한 발바닥을 실어한 춘식이다. 미경의 발바닥은 뒤꿈치의 동그란 원형에서 샘을 만들다 발 앞부분이 도톰하니 돋아났다. 앞부분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적당하니 돋아났다. 오목한 아취가 좋은 모양이다. 스타킹을 통해서도 각질 같은 지저분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향기가 스며들었다. 맑은 향기.



“그래? 그러면 프리지아향이 싫은 가, 미경씬........”

“아니요, 저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장미나 안개꽃도 좋지만 노란 프리지어는 정말 보기 좋아요. 어쩐지 약해보이면서도 수줍어하지 않는..........”

자기가 그런 꽃 같다는 말은 삼키며 그녀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매장에서 꼭 신어야 할 고급 구두를 갈아 신었다. 가장 유행할 구두를 기꺼이 직원들에게 선사하는 그다. 비싸 보이는 구두는 낮은 굽에 앞뒤와 양 옆이 트인 오픈 스타일이다. 가느다란 푸른 빛 헝겊 끈이 발을 감쌌다. 발가락과 뒤꿈치가 보이는 오픈 구두는 춘식, 그에게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하얗거나 혹은 갈색의 맨발은 뜰에 피어 있는 꽃들처럼 그의 시선을 즐겁게 해주었다. 깨끗이 씻어 분홍빛 맨살을 드러낸 미경이의 발은 춘식에게 기쁨을 주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가냘파 보이지 않는 그녀의 발을 언제고 깨물고 핥으며 즐길 것이다. 강제로 낚아챌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게 춘식의 마음이다. 겁에 질린 하얀 발도 좋지만 사랑을 느낀 분홍색 발도 좋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정식 직원이야 미경 혼자고, 아직 출근 전인 아르바이트생들이 전부다. 아르바이트도 철저히 면접을 거쳤다. 이런 고급 매장에서 높은 일당을 받는 다는 것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로 다들 여겼다. 고교를 막 졸업한 아이들이었지만 그래서 분홍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발은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조몰락조몰락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예쁜 발이었다. 특히 한 아이는 통통한 발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 애는 샌들을 신겼다. 발 중앙이 오목하니 들어가 아치가 멋진 굴곡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춘식은 바지가 불끈 했다. 잊고 지냈던, 족취 속에서 그나마 가라 앉혔던 충동이 불쑥 솟아났었다. 거기에 성기를 끼우고 싶었던 것이다. 틈을 파고들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 춘식은 얼른 돌아서 가죽구두를 들어 얼굴에 댔다. 깊은 숨을 몰아쉬자 그제야 빠져나갔다.



“안녕하세요?”

“아, 어서 와. 오늘은 늦었네. 빨리 준비 하고 일을 시작하지”

정아는 올해 고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할까하다 포기를 했다. 공부도 싫었지만 돈도 없었다. 뭘 할까 둘러 봐도 마땅한 게 없었다. 그러다 마침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구직난을 보고 찾아오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근무를 하고 있다. 여자들의 꿈은 많지만 그 중 하나가 멋진 신발을 한번 신어보고 싶은 것, 정아는 이름만 들어도 비싸 보이는 구두를 신어 볼 수 있었다. 여기를 찾는 고객들도 다 있어 보였다. 3, 4십 한 구두를 가볍게 사는 고객들이었다. 정아는 1, 2만원 하는 구두도 망설인 처지였다. 무엇보다 사장이 좋았다. 부드러운 음성, 건장한 체격에 능력도 제법이었다. 가게를 오픈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청주에서는 알아주는 명품 매장이 될 정도였다.

“정아는 발이 참 예뻐. 언제 한번 예쁜 발 콘테스트를 열어 모델을 뽑으려는데 한번 출전해보면 어떨까?”

“아이........, 제가 어디 예뻐요. 이렇게 통통하니 살이나 오르고”

맨발을 드러낸 정아를 본 순간 흰빛이 번쩍했다. 또 머리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너무 예뻐, 잠깐”

몸을 돌려 사무실로 피했다. 록을 채운 그는 사무실 한 쪽에 마련된 비품실을 찾았다. 살아 있는 향기가 필요했다. 그 향기는 이 지끈거린 고통을 잊게 해줄 것 같았다. 잠자던 해일이 일어난 것이다. 방파제가 필요한 그다.



비품실은 직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라 야릇한 체취가 가득했다. 바닥 한 쪽에 가지런히 놓인 펌프스가 눈에 띄자 얼른 들었다. 가벼운 검정 여성화. 바닥은 살색이다. 구두코에 발가락 자국이 나있다. 발의 살집이 통통한 정아 거였다. 구두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톡 쏘는 탄산가스처럼 구두 속 그녀의 땀내음이 춘식의 후각을 진정시켰다. 몇 번 더 숨을 들이키자 가죽내음이 맡아졌다. 내음이 사라지려하자 옆에 굽이 조금 높은 뮬을 들었다. 샌들에 가까운 이 뮬은 아마 미경의 것이리라. 편하게 신기 좋다는 그녀였었다. 밑창에 혀를 대고 내음을 빨아들이자 지난 시간들이 빠르게 스쳤다. 여인들의 하얗고 갈색 맨발들과 스타킹의 보드라운 감촉 등이 촉수를 드러내며 춘식을 갈궈댔다. 깊이 가라앉는 내음은 고서점의 낡은 책들이 풍기는 그 냄새다. 시간을 쌓고 지식을 모아둔 고서점의 냄새, 지금 그는 그렇게 쌓아놓은 시간의 흔적을 빨들이고 있는 것이다.

‘끄으........’ 눈을 감은 그는 절망의 신음이다. 도망갈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빨이 간지로운 그는 뮬의 뒤축을 물어뜯었다. 단단한 합성가죽에 잇자국이 또렷했다.



“해 봐. 애인을 만나러 갈 때 하듯 정성스런 마음으로”

낮고 부드러운 조명이 화장대 옆 서랍 위에서 스물은 넘은 듯한 여성을 비추고 있다. 붉은 기운이 돈 스탠드 빛은 여자 얼굴의 선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옆모습이지만 갸름한 게 미운 얼굴은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는 온 몸이 발가벗긴 채다. 손목의 빨간 자국이 묶여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훌쩍거린 여자를 을러대는 남자, 유석이다. 창밖은 어둠, 다만 방안은 스탠드의 불빛이 두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전을 찾는 유석은 상상 속 <샹그리아>를 바로 이곳으로 여겼다. 자신을 속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그는 오늘도 한 빌라를 찍었다. 작은 동네지만 어깨를 맞대고 원룸과 투룸이 이어졌다. 창을 열면 며칠 전 덮쳤던 그 집이 멀리 보일 것이다. 신고가 두렵지 않느냐고? 웃기는 말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밑에서부터 끊어 오른 이 욕구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모....... 못하겠어요.”

눈물을 글썽이다 또 훌쩍거린 갸름한 년이 얼굴을 가로 저으며 가슴을 가렸다. 목을 조일까 하다 유석은 칼등으로 등을 그었다. 소름이 돋은 야들야들한 등을 칼로 그으며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겁에 질린 눈을 쏘아보며 칼을 목울대에 댔다.

“시간은 짧아.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하나 둘..........”

눈물이 반사된 빛은 맑다. 코를 따라 흐른 눈물은 턱에서 칼을 적시고 가슴으로 떨어졌다. 두 손을 내린 채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는 무슨 뜻인지 알았다. 작은 유방이 과일처럼 달린 아담한 가슴이 부풀다 가라앉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허벅지는 불빛으로 붉은 기운이 돌았다. 여자 살결은 붉은 색이 어울린다. 먹음직스럽다.

남자를 보며 다시 화장을 하기 시작한 여자다. 자려고 화장을 다 지운 얼굴은 맑았다. 막 잠자리에 누워 알람을 맞추고 누웠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는 미쳐 상황을 분간조차 못하게 빨리 입을 막고 칼을 겨눴다. 그 힘은 너무 억세 얼굴이 부서질 것 같았었다. 반항은 생각지도 못했다. 노린내가 진동을 한 남자가 잔인한 눈빛으로 자신을 볼 때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 그대로 주저앉을 뿐이었다.

“말을 하면서......., 애인에게 하 듯”

“처, 처음엔 크린싱으로 닦고 다, 다음엔 크림로션을 바르고”

“그런 것 말고 눈하고 입을 해 봐”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눈썹을 칠했다. 눈을 감고 라인을 넣고 눈을 뜨고 몇 번 깜박거렸다. 눈물이 흘러 곧 아이쉐도우를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휴지로 닦아 낸 후 립스틱을 들었다. 장미색, 흑자주에 가까운 장미색은 여자에 잘 어울렸다.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선물을 한 그 립스틱이었다. 돌리자 성기처럼 나타난 루즈를 입술에 발랐다. 입술을 오므리고 펴면서 안에서부터 가에 까지 골고루 칠했다. 그때야 얼굴이 한 송이 꽃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피어났다. 여자의 다문 입이 흑자주로 변하자 유석은 손으로 트레이닝 하의를 가리켰다. 불룩 솟은 하의를 보자 여자는 울상을 지며 빌었다. 그것만은 하지 말아달란 애처로운 사정이다. 눈물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설레설레했다.

“울지 마. 예쁜 화장이 지워지잖아. 죽은 다음에 내가 해줄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산처럼 버티고 있는 이 남자는 자기 정도는 가볍게 죽일 것 같았다. 죽음은 싫었다. 아무도 모른 죽음은 정말이지 싫었다. 내가 선택한 죽음도 아니다. 그의 칼이 유방을 그으며 유두를 건드릴 때 화장을 마친 여자는 바닥을 선택했다. 의자에서 바닥으로 내려앉는 여자는 트레이닝 하의를 잡았다. 딱딱한 물건은 옷을 뚫을 듯 했다. 남자의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여자는 무서웠다. 손으로 잡아본 적도 없었다. 사귀는 남자가 입맞춤을 하며 스커트 안을 파고든 적은 있어도 자신이 남자의 바지에 손을 넣어 본적은 없었다.



“만져. 두 손으로, 소중한 보물처럼 생각하며”

옷을 벗지 않아도 거대한 남자란 걸 알 수 있었다. 알몸으로 다리를 모아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발목이 좀 굵은 편이지만 허벅지와 다리가 잘 빠졌다. 두 발을 모았지만 어둔 그늘의 보지가 살짝살짝 드러났다. 이미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릴 때 충분히 눈으로 즐긴 보지다. 유석은 화장품 냄새에 섞인 여자의 향기를 맡으며 허리 아래서부터 뻐근해졌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을 죽이면서 맛을 음미할 것이다. 고통에 가득 찬 여자의 눈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울음에 신음까지 삼키면서 경련을 일으킨 여운은 그에게 살아있는 기쁨이었다. 아니 그래야 존재할 수 있었다.

‘후우......후우.......’ 숨을 내쉴 때마다 독한 내음이 방을 채웠다.

“좋지? 이년아. 옷으로 만져도 온 몸으로 뜨거움이 넘실대지? 벗겨, 팬티까지”

그것은 경악이었다. 놀란 눈이 된 스물 초반의 여자는 몸을 뒤로 했다. 얼굴을 숙이며 피했다. 어쩌다 본 음란물의 남자들하고는 너무 달랐다. 마치 고무호스 아니 알로에 밑동처럼 굵직하고 길었다.

“장미빛 입술이 너무 귀여워. 그 빨간 장미를 느끼고 싶어 미치겠어. 핏빛으로 물들은 그 입술이면 내 좆이 좋아할 거야. 사랑을 느껴볼까?”

성큼 다가서는 발길에 움찔 뒤로 물러나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다리가 벌어진 것도 모른 채 엉덩방아 찧는 자세로 여자는 멍하니 올려본다.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여자는 바로 얼굴 앞에서 시계추처럼 건들거린 남자의 심벌에 입을 벌렸다. 받아드릴 입이 아니었지만 다물 새 없이 그것은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 앞니에 머물렀다.

“이빨을 부러뜨려줄까? 잘게 부셔서 이빨 빠진 잇몸을 즐길까 그럴까? 앞니 네 개만 빼면 되겠는데........”

주먹도 컸다. 눈을 가린 그 주먹에 여자는 또 훌쩍이면서 이빨을 벌린다. 능히 그럴 사람으로 보인다. 처음 옆구리를 한 대 맞을 때 마치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떠올랐다.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집과 방이 타인의 눈을 피해주는 고마움이 있다지만 오늘 같은 날은 집과 방이란 게 너무 싫었다. 소리를 질러? 그 전에 저 주먹이 내 얼굴을 일그러뜨릴 것이 뻔했다.

흑자주 입술은 달콤한 체리 잼이다. 침의 점액이 좆을 끈끈하게 해주었다. 너무 커 더 깊이 들어가지 않은 좆은 조금 꺼낼 때마다 반질거린 침이 마치 잼이다. 맛있는 빵을 먹기 위해선 달짝지근한 잼도 있어야 되는 것. ‘쩝, 쩝’ 가슴을 열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남자의 하체를 받고 있는 여자는 손가락에 힘을 줘가며 더 다가서지 않았으면 한다. 목구멍을 건드릴 때마다 구토가 일어나 속이 울렁거린다. ‘우우욱…….’ 끝내 잔기침을 뱉으며 토하는 시늉이다. 좆은 반 너머 침으로 반질거린다. 조명에 반사되자 3개들이 소시지 묶음이다. 알알한 입을 한 손으로 만지며 그를 쳐다보는 여자의 얼굴은 울상이다. 흑자주 입술이 일그러져 턱에까지 장미물이 들었다. 입가의 침을 닦은 여자가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다시 세 묶음의 소시지를 박는다. ‘어어어, 끄르르-’ 숨이 빠져나가지 못한 공기는 코를 통해 흐른다. 가슴을 세차게 요동치는 스물 초반의 통통한 년, 좆대가리를 물고 침을 폴폴 흘리고 있는 년의 얼굴이 입술을 닮아간다. 호흡이 좆나게 힘들 것이다. 입과 코로 숨을 쉬다가 갑자기 입이 소시지로 막히자 놀란 목구멍이 경기를 일으키고 있다. 꾸역꾸역 흘린 침이 입안에 고이다 그 목구멍으로 넘기는 소리도 들린다. 주저앉는 자세다. 두 발을 옆으로 벌리고 빵빵한 엉덩이를 바닥에 걸치고 있는 모습이다. 뒷머리를 잡아 하체에 아예 가져다 붙인다. 얼굴이 달라붙은 형국이다. ‘으......,’ 공포로 떨리는 목소리. 물론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다. 공명이 막힌 소리는 인간의 말이 아니다. ‘즙, 즙, 즙, 즙’ 쉴 새 없이 입을 파고든 동물 같은 남자다. 뒷머리를 잡아당기며 하체를 리듬에 맞춰 움직이자 소리는 ‘퍽, 퍽, 퍽, 퍽,’으로 변한다. 턱에 부딪히는 큰 방울이 테니스공만하다. 큰 공이 얼굴을 때릴 때마다 공포심은 커진다.



“눈을 떠. 예쁘게 화장한 눈을 보고 싶어. 나를 보라구”

이미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다. 눈도 마찬가지. 색조가 젖은 눈이 더 검어 보인다. 눈을 뜨기가 두려운 계집년을 그냥 두는 유석이 아니다. 오른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다 긴 속눈썹을 보이고 있는 눈꺼풀을 연다. 검은 눈동자를 숨기는 년. 흰자위가 하얗게 퍼진다.

“눈깔을 파줄까? 사탕처럼 으드득 씹어 먹을까?”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눈물을 또 주룩 흘리며 눈을 뜬다. 긴 속눈썹이 아름다운 처녀 얼굴을 먹는다는 것, 이것은 눈물 젖은 빵이 아니다. 눈물로 군 소부르다. 아가리를 찢어지게 벌린 얼굴은 하체를 밀 때마다 눈동자를 크게 뜬다. 리드미컬한 음을 연주하는 키보드 주자처럼 유석은 엉덩이를 돌리며 따뜻하고 촉촉한 입맛을 즐겼다. 등골이 곧추서며 짜릿한 물결이 일자 얼굴을 놓았다.

“엎드려.” 바닥을 가리킨 손가락. 비닐이 깔린 바닥을 두 손과 두 무릎으로 엎드린다. 입에서 그 큰 성기가 빠져나가자 멍한 표정으로 ‘컥, 컥’ 몇 차례 기침을 한 여자에게 유석은 좆을 디밀으며 엎드리게 했다. 두텁고 긴 성기는 그대로 흔들거렸다.

“아........, ” 기침이 멎자 긴 신음을 내며 스물 초반 어리게 보인 여자는 엎드리면서도 울먹인다.

"하지 말아 주세요. 무, 무서워요. 정말 쓰러질 것 같아요“

“사랑이야. 난 너를 사랑하거든. 너의 고운 입술과 너의 검은 눈을........., 그리고.”

점액으로 반질거린 좆대가리를 반으로 쪼개진 골짜기 위부터 저 아래로 훑는다. 꿈틀 움직인 둔부. 하얀 둔부가 붉은 빛에 물들었다. 마치 지는 놀이다. 태양이 하루를 끝내는 마지막 순간의 아름다움이 계집년의 엉덩이에서 빛났다.

“이 구멍과 이 구멍에 내 사랑을 줄 게. 가만히 있어야 돼. 조금이라도 사랑을 놓치면 이 칼이 대신 이뻐해줄 거야”

유석은 한 손으로 좆을 받히며 한 손은 칼을 들고 둔부의 갈라진 연한 틈을 그었다. 고개를 들어 얕은 신음을 낸다.

좆대가리로 아래쪽 어둔 구멍을 몇 번 때린다. 그때마다 움찍 한 년의 등짝과 허리도 기뻤다. 밀어 넣는다. 조금 조금. 직경 3센티나 된 귀두는 보지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빡빡한 느낌이다. 허리를 천천히 돌리며 마중을 기다린다. 그냥 뚫고 싶은 유석에게 반응을 보였다. 미끌미끌한 점액질이 질 벽을 타고 흘렀다. 몸을 앞으로 숙이며 힘을 준다. ‘퍽!’ 소리가 마음으로 들렸다. 아마 이 년의 처녀막이 터진 것이리. ‘아, 아파. 아파, 아파’ 허리를 뒤채며 발버둥치는 계집년의 가슴을 잡는다. 뭉클한 젖통이다. 딱딱해진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잡아 비튼다. ‘아........’ 긴 비명. 아래의 아픔보다 가슴의 고통이 더 큰 계집년은 뒤에서 덮친 남자의 힘에 눌려 바닥에 쓰러진다.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고 가랑이가 찢어져 버린 것 같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의식이 가물가물해 진다. 배를 대고 누운 여자를 내리 꼽듯 박아댄다. 긴 좆이 펌프질을 해댄다. 물을 흘리고 좆에 뿌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널브러진 몸을 일으켜 든 그는 뒤에서 안은 자세로 여자를 품는다. 두 다리를 허벅지로 모아 각각 들고 공중에 띄운다. 가벼운 몸이다. 불끈 들려진 여자는 이미 고통에 정신이 없는 듯 남자의 손에 몸을 맡긴다.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머리가 끄덕인다. 목덜미를 핥으며 어깨를 깨물며 여자 살맛을 보는 그다. 항문에 날카로운 아픔이 찾아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김이 빠진 숨을 쉰다. 따뜻한 엉덩이의 감촉이 아랫도리를 더 뜨겁게 한다. 끈끈한 점액이 묻어난 좆은 단단하게 여문 항문을 어렵지 않게 파고든다. 신음만 겨우 흘린 여자는 오줌을 지렸는지 허벅지가 축축해졌다.



“발이 예쁘시네요. 관리를 잘 하시나 봐요.”

“그럼요. 매일 뷰티센터에 가 캐리어를 받는데요. 전 지저분한 발을 보면 아주 싫거든요”

“그래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쁜 구두를 신을 자격은 바로 아주머니 같은 분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발과 이렇게 멋진 구두, 정말 잘 어울립니다.”

“호호호, 그래요? 고맙습니다. 근데 이 매장은 정말 소문이 자자해요. 오픈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안목이 대단하고 물건도 좋고, 사장 능력이 대단한가 봐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제가 사장입니다. 저의 신조는 아주머니처럼 아름다운 발에 꼭 어울리는 구두를 파는 것, 바로 그겁니다. 이름도 그래서 프리지아 아닙니까. 맑고 달콤한 향기를 내는 프리지아처럼 저희 구두도 여성에게 그런 향기를 주고 싶어서죠. 잘 어울린 구두네요. 한번 만져 봐도 될까요?”

“어머, 호호호. 총각이 사장님이에요. 어쩜, 그렇다 했더니, 호호”

마흔 중반의 여인은 웃음이 많은 편이다. 삶의 즐거움을 웃음으로 드러내나 보다. 춘식은 왼 손으로 보드라운 살을 느낀다.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는 두 다리를 옆으로 곱게 펴고 있다. 얇은 스타킹, 뭉치면 갈색으로 보이겠지만 펼쳐 놓으면 색이 흘러나가 다리의 살색이 그대로 내비칠 듯하다. 긴 스커트가 무릎아래를 덥고 있다. 종아리는 살이 붙었지만 뚱뚱한 중년의 느낌보다는 오히려 풍만한 여인의 그거였다. 고급스런 취향의 여자란 것을 향수에서 안 그다. 초여름 새로 나온 제품으로 백 오픈 펌프스다. 발꿈치가 예쁜 여인에게는 너무나 잘 어울릴 오픈 구두지만 뒤꿈치에 굳은살이 있거나 발목이 굵은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 여인에게는 어울렸다. 주인을 만난 오픈 구두는 진초록의 색깔로 여인의 발을 감싼다. 푸른 물이 든 듯한 여인의 발은 이른 봄의 보리밭이 된다. 녹고 있는 흙 내음이 아련한 향수를 일으킨다. 발꿈치를 만지며 그 따뜻한 생명을 느낀다. 너무 매끄러워 손에서 빠져 나갈 듯한 뒤꿈치가 밴드에 걸려 있다. 분홍빛 살, 아니 하얀 살이다. 굵은 주름을 끼고 구두 뒤축에 걸친 발꿈치를 입에 넣어 굴리고 싶은 그다.

“야, 모델을 해도 되시겠어요. 정말 어울리는 발에 구두입니다.”

춘식은 뒤꿈치를 만진 손을 발 옆으로 옮겨 구두 째 잡고 작으나 통통한 발을 즐기다 내려 놓으며 말을 보탰다.

“모델은 요. 서울이나 가야지 이런 곳에 어디 있겠어요? 호호호”

모델이란 말에 혹한 여인은 웃음을 날리며 그리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제가 한번 콘테스트를 하려고 하거든요. 그때 나와 주시죠? 꼭.”

빈 말은 아니다. 어렴풋했지만 춘식은 뭔가 해야 될 거란, 아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압박감을 가졌다. 세상에 단 하나의 구두,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닌 단 하나의 구두를 만들고 싶었다. 며칠 전 미경의 뮬을 깨물 때에도 정아의 단정한 펌프스 향을 맡을 때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요동을 쳤었다.



“이건 싸주시고요, 얼마죠?”

신고 왔던 구두를 벗고 새로 산 구두를 신은 여인은 그 예쁜 발꿈치를 보이며 오토윈도우를 나섰다. 밖은 6월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났다. 가게는 잘 됐다. 돈이 좋아 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소문을 타고 성황을 이룬 것은 좋은 일이었다. 부유층이나 상류층에서는 프리지아, 그러면 인정을 했다. 여인들의 마음을 빼앗는 비결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춘식의 감각이 크게 한 몫을 한 것은 분명했다.

“사장님. 이 분도 한번 봐주시죠? 꼭 이걸 원하시는 데요”

“왜?, 미경씨”

이름을 그냥 부르지 않은 춘식이다. 아름다운 발을 가진 여인은 그에게 여신이었다. 미경은 보라색의 토어 오픈 구두를 신고 있는 서른 후반의 여인을 가리키며 그를 불렀다.

“보라색은 이별과 슬픔을 나타낸 색이지만 대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색입니다. 인디고에 엘로우를 섞으면 나타난 이 색은 파랑의 겸허함과 빨강의 정열을 함께 품고 있어서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색입니다. 다만 토어 오픈은 스타킹을 신지 않아야 더 빛나 보입니다.”

평균 보다는 커 보인 여인이다. 167은 돼 보이는 키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베이지 바지와 연노란 스웨터를 입고 있는 여인은 속은 여린 마음이지만 겉은 화사함을 좋아한 듯 하다. 발목 스타킹을 벗게 하고 보라색 오픈구두를 신긴다. 앞이 틘 구두는 다섯 개의 하얀 발가락을 피아노 건반처럼 가지런히 놓이게 했다. 각질이나 피부 건조로 인한 살비듬 하나 없는 깨끗한 발가락이다. 굳이 물감을 들이지 않아도 옅은 갈색의 발톱이 아름답다. 보라색 구두와 하얀 발가락이 잘 어울린다.

“어때요? 예쁘죠. 이런 구두는 발가락이 길면 더 어울리죠.”

이 말이 자신에게 하는 거란 걸 안 여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뭉툭하지 않은 자기 발가락은 길고 갸름한 게 꼭 자신의 몸매 같았다. 마른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통하지도 않은 발은 여름철 샌들을 신으면 남성들의 눈길을 붙잡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잘 빠진 다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릎 아래에서 발목까지 길게 원을 그린 것처럼 뻗은 다리는 한번쯤 만지고 싶은 충동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가 둘이지만 처녀 같은 몸매에 아름다운 각선미를 가진 여인은 만족의 웃음이다.

“어디 한번 볼까요? 잘 어울리나”

춘식은 여인의 옆에 앉으며 구두 속의 발을 만진다. 건성이다. 촉촉하지 않은 살갗이 손가락의 세포를 타고 건너온다. 구두를 만지듯 하며 발가락을 쥐어본다. 깜짝 놀란 여자.

“어울립니다. 아주 멋져요. 이번 초여름은 아주머니 것이 분명합니다.”

가지런한 발가락을 내려놓으며 마지막 내음에 미련을 남긴 그다. 발가락을 코로 가져와 향기를 맡고 싶었지만, 아쉬웠다.



“사장님, 오늘은 회식 하죠? 내일이 일요일인데........”

마무리 시간에 미경이다. 뒤로 아르바이트생들이 보였다. 정아의 통통한 발이 눈에 들어왔다. 춘식은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봉구는 가끔 머리가 멍하니 비워졌다. 요즘엔 그 횟수가 더 늘고 마치 누군가가 꿈속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착각을 갖곤 했다. 멀리 호수의 빛나는 화살이 눈을 부시게 했다. 반 목사와 함께 있는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을 자꾸 꺼내면 화를 낸 그였다. 그때마다 그 사람은 뒷걸음질쳤다. 픽, 웃으면 다시 에녹서가 어떻고 타락천사가 누구고 사탄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을 구원할 또 하나의 신이라는 말을 해댔다. 참다못한 봉구는 그 따위 것 말고 어디 여자가 없나 찾아봐라 했다. 전번에는 혼자였지만 당신 말대로 내가 신의 부활이라면 몇 십 명 정도는 내 발밑에 둘 수 있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지금 생각해도 우스웠다. 그때 그 사람은 멀뚱멀뚱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나갔다. 어제 나간 그가 오늘 전화를 한거다. 빨리 금산에 있는 대종교 본당으로 오라는 거였다. 다짜고짜. 정말이지 어딘지도 모르고 돈도 없던 처지였다. 돈은 다 털어 춘식에게 준 그다.

대전으로 나와 아무 택시나 집어타고 가자고 했다. 멀었다. 오후 늦게 도착한 대전에서 그곳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다행히 양복을 걸쳤지만 교인들과는 거리가 먼 차림이다. 힐끔힐끔 쳐다본 교인들의 눈을 피해 본당을 찾아갔다. 어마어마한 건물이 이런 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한 봉구다. 10여 미터 이상 높은 건물이 거대한 빌딩으로 보였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돌로 되어 있어 고대 마법의 성으로 보인 것 뿐.

“어서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실력을 가지신 분이라고요.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하셨다는 애기 들었습니다.”

음악? 무슨? 반 목사만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한 곳은 본당에서 멀리 떨어진 음악당이다. 종탑과 맑은 하모니가 흘러나와 대충 짐작을 했지만 여성의 하모니는 듣기 좋았다. 섹스를 나눌 때의 그 화음처럼. 입구에 둘이 남자 봉구를 음악가라 부르겠다며 절대 달리 생각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반 목사는,

“나도 그게 궁금했네, 봉구 자네의 능력, 신이 부여한 그 능력이 과연 어디까지일지. 단지 하느님을 공경하는 기독 신자가 아닌 다른 신도들도 무릎 아래 꿇릴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자네는 serpent의 부활이 틀림없네. 드라큘라나 뱀파이어 따위의 잡탕이 아닌 진실한 부활. 이 안에 있는 합창단원들은 참고로 말하면 기독교와 불교 대종교의 여신도들이 모인 종교합창단이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가대지. 왜 자네도 많이 봤지 않았는가? 우리 교회에서”

봤다. 아름다운 음성이 천상의 소리 같았던 그 성가대. 하얀 예복이 예뻤다.

“좋아요. 대신 목사님은 들어오지 마시기를......., 나온 다음 들어와 주었으면 합니다. 근데” “아무도 오지 않네. 금남의 구역이며 신성한 곳으로 여기네. 들어갈 때 자네는 지휘자라고 하게나. 미리 말을 해뒀으니까”

봉구의 눈빛은 차갑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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