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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34 570회 0건
문화제가 막을 내렸다.


xx고등학교의 최고 인기인, 최강희란 인물이 만화부에 한 팔을 거들어줌으로써, 만화부는 창립 역사 이후 사상 유래 없었던 실적, 그리고 호황을 받았으며, 좋은 평가를 일궈냈다.


교단에서도, 학교 내의 문화적 장르 측면과 관련해서 타 학교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에게까지 널리 선전을 해준 만화부에 대해 시각을 대폭 넓히는 계기를 강희가 마련해준 것이다. 비록 본인이 하고 싶어 한건 아니지만 말이다.


문화제가 그렇게 매우 만족할 만한 성과를 끝으로 막이 내려진지 일주일 가량이 지난 어느 날.


강희는 침대에 누워서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다가 전화벨이 울리기에 받아보았다. 친구 유정이었다.


"아, 유정아, 무슨 일이야?"

유정이는 강희에게 전화를 하는 빈도가 가장 잦은 친구였기에 강희는 스스럼없이 받고는 용건을 물었다.

"며칠 전에 문화제, 니 덕분에 다 잘된건데, 밥 한끼도 아직 제대로 못사줘 미안해서."

강희는 깔깔 웃더니 말했다.

"야야, 됐어. 무슨...친구 사이에. 나 원래 시시콜콜한거 잘 안따지잖아. 알면서"

"그래도 아니다 싶었어"

"에이, 됐대두. 더구나 문화제 끝나고 난 후에 더 뒤숭숭했잖아. 원래 뒷처리가 더 힘든 법이잖아. 최근에 마무리, 수습해대느라 정신없이 움직여대는게 훤히 보이드만. 그래서 괜시리 얼쩡대기 미안해가지고 축제 끝나고 만화부 근처도 요새 얼씬 안한거 알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 부가 이번에 대박난건 다 니 덕분인걸. 니가 일등공신인 셈이지"

"거참...아무튼 그래서 왜?"

유정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어서 운을 떼기 시작했다.

"이제 대강 수습도 다 되었고 해서, 내일이 주말이잖아?"

"응"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한끼 하고, 내가 봐놓은 음...괜찮은 목욕탕이 하나 있거든"

"목욕탕?"

"응. 이번엔 너랑 가면 처음일텐데 넌 모를거야. 크기가 좀 작다고 해야 하나...암튼 아담한 편이라서 말이지"

"작은데 굳이 가려 하는걸 보면 뭐가 있나보지?"

"거기 여주인 아주머니가 되게 써비스가 좋으셔. 음료수도 내키는데로 막 주실 때도 있고. 그리고 운만 좋으면 맛사지라던지 기타등등 공짜로 특혜도 받을수 있대"

"뭐? 진짜? 그런데가 다있어? 그럼 그집주인아줌만 무지 손해보는거 아니야?"


강희는 이상하다 싶어 물었지만 유정이 또 말하기 시작했다.

"뭐 어때? 우린 고객인걸. 싸고 편할수록 좋은거 아닐까? 암튼 괜찮은 곳이야. 내가 최근에 발견했어. 너랑 꼭 가고 싶어. 같이 가자. 응?"

강희는 토요일, 일요일에 딱히 무슨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유정이가 보답도 할겸 같이 놀고 싶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희는 흔쾌히 승낙했다.

"뭐 좋아. 그러지 뭐"

둘은 전화 내용으로 대략의 계획을 정했다. 일단 조조로 영화를 끊어서 보면 값이 싸니까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일찌감치 만나 아침 식사 후 영화를 한편 보고, 주말이니까 아예 간만에 몸도 푹 풀어줄겸 1박 2일 코스로 찜질방을 가기로 한 것이다.

유정이의 말에 의하면 그 목욕탕은 주인의 맘에 따라서 24시간 운영을 할 때도 있는, 그리고 손님이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체제방식이라니, 유정과 같이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어보는것도 괜찮겠다 싶은 강희는, 별 생각 없이 1박 2일 코스를 수락했다.

그리고 시간과 만날 장소를 정한 후에 강희는 유정과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금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같은 날 오후.


두 남학생이 교복 차림으로 시내에 있는, 조용하기로 유명한 공원에 들어서서 같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음료수를 조금씩 마셔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정안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만화부 써클 멤버인 김한웅이었다. 둘은 같은 1학년이고, 절친한 친구였다.


"하아......"

한웅이 아스팔트 바닥을 보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것을 물끄러미 보던 정안이 물었다.

"뭔데 그래? 빨리 말해봐"

재촉해봐도 묵묵부답인 친구. 키가 184센티에 몸무게가 90 가까이 나가는 한웅은, 이름에 웅 자가 들어가서 학교에선 반달곰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정안이는 아마, 틀림없이 여자 문제, 그것도 회장인 유정 선배의 문제와 직결될 것이 틀림없다는 감을 받았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만화부 멤버들은, 한웅이가 유정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한웅은 원래 운동 계열 쪽의, 유도 아니면 씨름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애다. 그리고 학기 초반엔 씨름부에 잠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유정을 보고 나더니 오로지 그녀와 같은 써클이고 싶다는 마음, 일념 하나로 크게 관심사도 아닌 만화부에 가입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항상 용기를 많이 내서, 나름 적극적으로 유정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유정이가 그를 좋은 후배 정도로 여기고 그 이상 진척이 없다는것 또한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유정도 아무래도 연하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녀는 연하와의 사랑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조차 않은게 분명했다.



정안이 에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물었다.


"유정이 누나때문에?"


친구는 말없이 고개만 까딱까딱. 그러고 나더니 갑자기 으아악 하고 낮게 괴성을 지르면서 고개를 휙 들었다.


정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왜 그러는데? 넌 항상 누나가 아무리 그래도 포기 않고 계속 밀어붙였잖아? 잘 하고 있어 넌! 너답게 말이야. 근데 왜그래? 흔들리기 시작했어? 많이 힘들어서 그래?"


"그게 아니야~!!!"

갑자기 친구가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쳐다보자 정안은 흠칫 했다가 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한웅은 다시 푹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유정이 누나가 ...이상해..."

"뭐? 뭐가 이상해?"

정안이가 지켜본 유정의 최근 모습은,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매사에 열중이고, 멤버들 잘 꾸리고, 열심히 해나가는, 부지런한 여회장.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안경을 항상 착용하던 그녀가 문화제가 끝나고 나서 최근에 렌즈로 바꾸었다는 점 정도랄까?


"누나가 최근에 달라진 거라곤....축제 끝나고 안경을 벗은거 말곤 뚜렷하게 느껴지는게 없는데....렌즈로 바꾼게 이상해?"


"아냐...아니란 말이야....유정이 누나가...좀...차가워졌어....나를...아냐. 꼭 내가 아니더라도...누구한테 말을 걸던지, 누가 질문을 해오던지간에, 대화할때 들어보면....좀 단조로워.....그전엔 정감이 항상 있었단 말야...유정이 누나는 화가 나도 잘 참고, 또 짜증이 나도 애써 상냥하게 상대에게 말해주려 배려를 할만큼 착한 사람이란 말야. 근데 요샌....화를 막 낸다는건 아닌데...딱!! 할말만 하고, 질문 받은것만 대답해주고...하는...사무적인 태도같은 모습이랄까? 아무튼....사람이 좀 변했단말야!!"


한웅은 끝마디를 강하게 맺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정안도 그 말 듣고 보니 좀 짚이는 바가 있었다.


확실히 유정은 상냥한 성격의 인물이었다.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과, 모두를 잘 설득할 듯한, 그런 여러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었기에 3학년 선배들이 스스로 그녀에게 회장직을 양보했을 정도의 인물이 한유정이다. 근데 요샌....자신이 뭔가 질문을 할때, 그리고 그녀 쪽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때...그녀가 웃는것을 본적이 없다.


마치...


"기계같았어..."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정안은 배시시 웃으면서 친구 녀석의 등을 가볍게 탁 쳐줬다.


"야야. 그래도 너 문화제 끝난 후엔 좋아했잖아? 안경 벗으니까 훨씬 더 이뻐진거 같다고 말이야. 안그래?"


유정은 주근깨가 얼굴에 좀 있는 편이긴 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상당히 귀염성 있는, 그리고 예쁜 얼굴을 간직한 여학생이었다. 안경을 벗어버리니까, 어디에 가서든 최강희와 같이 붙어다닌다 해도, 얼굴이나 몸매로 평가해볼때도 적어도 빛을 잃지 않을, 강희와는 다른 그녀만의 매력을 발산할 정도의 수준급 외모를 가진 이가 바로 한유정이었다.

한유정은 비록 최강희처럼 팬까페가 있을정돈 아니지만, xx고등학교에서 최강희와 더불어 양대산맥, 쌍벽을 이룬다고 은근히 일컬어질정도의 인물이다.


비록 안경을 쓰기때문에, 초반에는 딱딱한 인상을 미치는 면이 없잖아 있어서 그랬지만, 문화제를 마친 이후에 렌즈를 착용한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그녀를 돌아보게 되는 남학생들도 부쩍 늘었다.


아무튼 최강희와 그정도로 친하다면, 남학생은 말할것도 없고, 같은 여학생들조차도 시기할만하건만, 한유정의 착한 품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고, 결코 적이 생길만한 스타일의 인물이 아닌지라 누구도 그녀를 시기하지 않는것이다. 솔직히 시기하는 이가 단 한명도 없다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거나 나서는 인물이 없는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무튼, 그 착하디 착한 한유정이, 최근엔 좀, 냉~하다고 보여지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걸 이리 빨리 눈치챈 인물은 그녀를 향한 불변의 사랑의 소유자, 김한웅이었던 것이다.

"아무튼....요샌 좀 많이 힘들어....유정이 누나가 왠지 누나만의 색깔이 옅어지는것 같다는 느낌이야....그리고...그전에도 그렇게 연하를 싫어하는걸 보면....나하곤 정말 안된다고 생각하나봐...크흑...."


한웅이 거칠게 숨을 토하면서 다시 바닥을 보았다.


".........."


정안은 잠시 입을 다물고 앞을 보면서 쭈욱 생각하다가 에휴 하고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


"너나~ 나나 .....힘든 사랑을 하고 있구나.....연하...그놈의 연하가 문제인거야? 쳇....그깟 한두살 차이가 뭐라고..."

정안의 푸념을 듣고 있던 한웅이 물었다.


"...힘든...사랑?"


정안이 서글피 웃으면서 말했다.


"임마......넌 유정이 누나지?......내가 말 안했나? 난 강희 누나야.....강희 누나를 내여자, 내 애인으로 할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다..."


"뭐~어? 진짜?"


한웅은 정안이 강희를 마음에 두고 있는줄은 몰랐다. 정안이 아직까지도 말을 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최강희란 인물은 남학생들 입장에선 저 위에 떠 있는 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모두의 정설이었다.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는. 그런 이미지. 그 어떤 남학생들과도 타협하지도, 사귀지도 않는다는 여자.


실제로 그녀는 그것을 잘 준수하고 있는게 눈에 훤히 보이고, 남학생들 역시 안타까워하며 입술을 피가 나라고 깨물어대는것조차 더더욱 눈에 훤히 보인다. 근데 옆에 있는 이인간이, 왠걸? 별을 딸 생각을, 허황된 생각을 하질 않는가.

"야~! 미쳤냐? 강희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그래?!!"

정안은 또 한숨을 쉬었다.


"에휴...나 보고 힘을 내라고 한 소리야 임마. 유정이 누난 착하기라도 하지....강희 누나는 당최....너무 도도해서....어디 부딪혀도 코뼈엔 이상없을 누나야. 너무 높아보여..."

"..............."

"강희 누나도!! 연하가 싫댄다!! 쳇~!! 제길.....너나 나나~ 완전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오르는기분같지 않냐 진짜?"

"....정말....그래...."

"후우.........그래도...."

"...그래도....."

둘은 눈빛을 마주치더니 씨익 웃으면서 서로 손뼉이 부서져라 짝 마주치곤 힘껏 맞잡으면서 동시에 외쳤다.

"올라봐야지~!!!"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의 기점의 한 때.



타닥 타닥


채찍과 검은 드레스를 걸친 아바타. 퀸이 홀로 또 접속해서 조만간 벌어질 일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컴퓨터의 마우스를 연신 클릭해댄채, 강희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끊임없이 돌려가면서, 봐가면서 또 한편으론 TBM에 올려진 그녀의 성향 파악을 면밀히 살피는 중이었다.


"후후~ M 이란 좋은거야. 강희야. 넌 참 재미있는 아이야. 보통 너같은 애는 이런데 일절 관심도 없는게 정상인데 말이야. 세상에 어쩜. 이런 성향이라니? 호호. 넌 마치 나와 어울리기 위해 태어난 아이같잖아 정말. 흐흥~"


티렉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일순간 우뚝 하고 멈췄다.

멈칫


퀸의 눈동자는 자신 말고 접속해 있는 또 한명의 접속자를 시선에 담고 있었다. 그의 닉네임은.... M이었다. 그의 등급표시는....붉은색 왕관이 씌어져 있었다.

퀸은 고민했다.


"1:1을 먼저 할까....아니면 기다려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대 쪽에서 먼저 1:1을 신청해 왔다. 퀸은 또 잠시 망설이다 수락을 받아들였다.


Queen(여왕)님께서 1:1 대화 신청에 응하셨습니다


M: 오랜만입니다. 여왕


그는 상대에게, 퀸에게 님 자를 붙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상대의 글을 바라봤다. 자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자가 이 사람이란걸 그녀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그녀는 답변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퀸: 저도요. 1, 2년은 된것 같죠? M....아니...마스터라 불러드릴까요?


M...그는 바로....이 까페의 창립자인, 까페지기였던 것이다.


M: 그냥 부르던 데로 불러요. 간단히. 조촐하게.


퀸: 당신이 나타나다니. 무슨 바람이 분거죠?


상대는 잠시 글이 없다가 답변이 올라왔다.


M: 최근에 흥미 있는 정회원이 한명이 보이기에.


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퀸: 그 정회원이 설마 티렉스는 아니겠지요?


M: 왜 설마 라는 말이 문장에 들어가 있지요?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쏟으면 안될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여왕?


퀸은 입술을 세게 물면서 속으로 외쳤다.


"이런!... 낭패야. 설마 M이 나설줄이야....곤란하게 되었는걸 정말?"



설마 이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올줄은 그녀는 상상도 못했다. M. 풀 명칭으론 마스터. 이 까페의 설립자이자 주인인 그는, 비록 그가 TBM을 만들었긴 하지만, 자주 접속을 하진 않았다. 그는 몇년 전에, 썩 맘에 드는 여자들 몇명을 만난 후로, 그리고 무엇때문인진 모르지만 어떠한 사정이 있는건지 등등으로 까페에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접속을 하지 않았다.


그가 비록 주인일지언정, 까페엔 그가 올린 글과 자료를 하나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모습을 감추기 직전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까페가 유지되는 이유는 순전히 우수회원들이 주축으로 되어서 계속 활동이 이어져 올뿐, 사실상 이 까페의 최고 등급과 권위를 가진 이는 베일에 가려지듯 사라졌다 최근에 <티렉스>라는 여성 회원때문에 모습을 드러낸 까페지기, 주인인 M과 유일한 특별회원, 퀸. 이 두 사람이었다.



"정말 낭패야....보아하니 관심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은데....어떻게 한다?



티렉스를 옭아매서 사로잡은 후 즐길때 만끽할 쾌락만을 상상하던 퀸으로선 정말 당황감이 엄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퀸이 이만큼 당황할 정도로 상대는 상상을 넘어서는 존재였지만, 그건 상대쪽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제기랄... 그새 데리고 놀던 장난감들이 싫증난거야? 하긴 나도 마찬가지지지만...아무튼 설마 이여자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M 역시 기분이 영 아니었던 것이다.


둘은 비록 눈을 마주하고 있진 않았지만,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각자의 눈에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퀸: 아무래도 말씀하는 것이 그녀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것 같군요. 그것도 가볍지 않은듯해요 어째?


M: 잘 아시는군. 여왕께 미안하지만.....나한테 양보하지 그래요? 역시 남녀가 같이 놀아야 재미있는거 아닐까요?


퀸은 코웃음을 치곤 자판을 두드렸다.


퀸: 하~! 나의 취향을 알면서 하는 소리에요? 난 남성따위 안중에도 없어요. 내 가치관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성은 여성 뿐이에요


M: 골수 레즈 여왕님의 악취미는 여전하시군요


퀸: 흥! 그런 당신도 여자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긴 마찬가지잖아요?


M: 그럼 비긴 걸로 해두는게 어떨까요. 우리는 장난감을 원하는 똑같은 자들이요. 됐습니까?


퀸:.....뭐 아무튼...그녀는 제꺼에요. 간섭말아주세요


M:....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 가능한지 모를 당신이 아닐텐데?


퀸: 당신이야말로. 나와 오프라인을 해봤으면서 그런 말을 하나요? 그쪽이야말로 내가 어떤 여잔지 모르는건 아닐테죠?


M:.....정말 해보자 이겁니까?


퀸: 후후 언제라도 와보시죠. 저도 각오는 되어 있다구요. 단! 당신도 각오하는게 좋을걸요?


둘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채 모니터만을 바라봤다,


M과 퀸. 이 둘은 사실상, TBM 까페의 쌍벽이라 보면 좋을 존재들이었다. 두 사람은 능력자였고, 서로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이들이다.


나이는 퀸이 더 많지만, M의 능력을 보고 난 후에 속으로 질겁한, 그리고 나름의 경탄의 의미에서 그녀는 상대에게 존대를 해주는 쪽이었다.


M 역시 퀸의 능력을 보고 황당하기 그지없는건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녀를 접한 후에 그가 느꼈던 생각, 그리고 그녀가 그를 보고 느꼈던 생각. 그것은.


"괴물..."


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점에 다다른 자들.


한명은 물질영역 계.

한명은 정신영역 계.


그 두 방면에서, 세계에서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능력자>들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때 커피숍에서 한번 만난 후에 둘이 은밀한 장소에 가서, 서로 합의를 하고 Bondage와 Tickling을 가미한 플레이를 즐겼다.

그리고 나서 헤어진 후에,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서로. 그리고 직감했던 것이다. 적으로 돌리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때렸었다.

아무튼 그때 마주친 둘은, 필연적으로 둘이 마주쳐 좋을게 없다는, 그리고 서로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TBM 까페의 진정한 실력자들이었던 것이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으면서 퀸은 곰곰히 생각했다.



"다 된 밥에...재가 뿌려지게 할 순 없어!!"


그녀는 타자를 두드렸다.


타닥 타닥


퀸: 중개인, 심판을 세우는게 어때요?


M은 퀸의 요청에 관심을 가져 왔다.


M: 무슨 소리인지?


퀸: Dr(닥터).Sole 박사를 중개인으로 하자구요. 어때요. 내 제안이?


M: Dr. sole? 발바닥 박사 말입니까?


퀸: 그래요. 닥터를 중개인으로 하자구요. 닥터의 연구소에선, 여자아이들의 신체조사가 가능하잖아요. 간지럼 체크 반응정도도 검사할수 있고. 그러니, 우리 내기를 하는게 어때요?


M: 어떤 내기 말입니까


퀸: 사실, 이미 거의 손을 써둔 상태에요. 내가 보기에, M. 당신이 나보단 티렉스의 존재를 늦게 눈치챈것 같네요. 정보도 나보단 적어 보이고.



M:....여왕보단 짧을겁니다. 확실히.



퀸은 생긋 웃더니 또 타자를 두드렸다.


퀸: 조만간...아, 까놓고 다 말하죠. 내 계획대로면, 티렉스, 그 아이는 내일 중에 제 함정에 빠져요. 치밀하게 계산했으니 거의 손아귀에 확실히 들어올것이라 장담할수 있어요.


M:....난 티렉스에 대해서 확실히 여왕, 당신보단 적게 알지만, 적어도 보통은 훨씬 넘는 여자라는것 정돈 눈치챘는데....그 여자. 능력자인것 같았단 말입니다


퀸: 아. 물론 알고 있어요. 이미 티렉스와 플레이를 즐겼던 상대편을 몇명 만난 상태에요.


M:...당신 능력이면 다 캐내었겠군.


퀸: 네. 그럼요. 아무튼 제 추측이 맞다면, 그 아이의 능력은 <힘>이에요. 그것도 엄청난....


M:힘....이라...나도 그렇게 짐작했었지


퀸: 그것도 보통이 아니에요. 완력으로 따지면 세계에서도 따를 자가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어요. 정보를 수집하면서.


M:...설마?


퀸: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아무튼 그 아이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 솔직히...나름대로 정보를 많이 모은다고 모았는데, 현재까지도 추측 불가능이에요.


M:...잡을 자신이 있는겁니까?

퀸은 단호히 글을 썼다.


퀸: 네!! 확~실히 잡을 수 있어요. 나도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다 기했다구요. 그 아이가 어느 정도일지의 힘일진 모르겠지만...후후. 자신있어요.



M:...아무튼 잡았다 치고. 그다음엔?


퀸: 티렉스를 사로잡고 나서 곧바로 데리고 닥터의 연구소로 가서 심전도 체크기로, 가장 간지러워하는 부위부터 시작해서, 낱낱이 파헤칠거에요. 조사를 본격적으로 할거거든요.


M:.........나는?


퀸: 당신도 닥터의 연구소로 와요. 우리는 각자 닥터를 아는 사이잖아요?


퀸도, M도, 각자 나름대로의 우여곡절 끝에 닥터 솔과 알게 된 사이. 두 사람은 같이 가본적이 없어도 박사의 연구소는 알고 있다.


M: 그래서?


퀸: 우리 둘 중에, 그 아이를 먼저 절정으로 다다르게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에요.


M:....당신은 그 여학생을 아주 보내버릴 셈이군.


퀸: 왜요? 당신도 여자들을 그렇게 가지고 놀지 않나요? 당신이라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을 텐데?


M:....내 능력과 당신의 능력. 나름의 방식으로 해서 그 여자앨 더 먼저 지치게 하는 쪽이 승자라는건가?


퀸: 요지는 그거죠.


M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답글을 보내 왔다.


M:....사양하지. 그리고 내가 보기에 당신은......왠지....


퀸: 왠지 뭐요?


M:....아닙니다. 이만 이야기하죠. 뭐 암튼...그래 좋아. 당신이 먼저 발견했고, 계획까지 다 짜놓은 마당에 지금 와서 끼어들긴 싫군


퀸: 그럼 어쩔 셈이죠?


퀸은 아직도 M이 혹, 마음을 확 바꿔 독단으로 나서서 티렉스를 강탈하려 나설까봐 조바심 내면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다.


M:....기다려보도록 하지. 내 차례가 올 것이라 믿으려 합니다. 자..그럼....이만 난 퇴장을...



1:1이 끝나고 그와 동시에 M은 까페에서 모습을 감췄다. 퀸은 M의 돌발적 행동, 그리고 그가 하려 했다가 망설였던 일 등 여러가지가 걸렸지만 그가 나서지 않겠다는데에야 크게 안도하지 않을수 없었다. 여왕은 가슴을 쓸었다.



"후우...다행이네. 만약 그가 하려고 했다면, 정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을 거야..."


그녀는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가슴을 몰아쉬었다. 그리곤 다시 지어지는 오싹한 미소.


"조금만 더 있으면.....그 아이의 겨드랑이랑 발바닥을.....핥을수 있을거야...우후후~~"


M은 아무것도 모니터링되어있지 않은 화면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왠지...여왕...당신이라 해도 이번엔 쉽지 않을것 같아...실패할지도?"


"큭큭...큭큭큭....티렉스라....."



그는 조용히 낮게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강희는 약속장소에서 유정과 만나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조조영화관람을 하는 등,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었다. 강희나 유정이나 차려 입는걸 별로 신경쓰지 않는, 편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애들이었기에, 강희는 흰색 반팔 폴라에 청자켓, 그리고 청바지와 흰 발목양말, 운동화 차림이었고, 유정 역시 거의 유사한 복장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 나란히 걸으면서 강희는 킥킥대가며 유정을 보곤 말했다.


"야, 진짜. 나 그땐 정말 웃겼어. 무슨...펑~ 하고 튀고. 황당해하면서 넋놓고 쓰러지고...킥킥~"


"...그러니?"


앞만 보면서 걸어가며 무표정으로 재미없게 대답을 하는 유정을 보면서 강희는 좀 어리둥절해했다.


"이상하다?....왜 이러지 얘가? 웃고 떠들때는 나못지 않은 앤데...."


유정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 앞에선 몰라도 강희와 둘이서 놀땐 그래도 꽤 활기차게 노는 여자애였다. 그녀와 단짝인 강희가 그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강희는 유정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져주면서 슬쩍 물었다.


"왜그래? 아침부터...무슨 일 있어? 걱정거리가 있어보인다거나 하는 표정은 아닌데?"


강희의 질문을 받은 유정은 눈을 감고는 도리질을 쳤다.


"아냐...그런거 아냐. 없어"


"없어?"


"응. 강희야 이제. 내가 말했던 곳 가자"


"그 서비스 좋다는 목욕탕?"


"응"


"뭐 좋아. 가자 그래. 오랜만에 뜨뜻한 물에 몸좀 팍 담가보자. 히힛~"


강희는 신나하면서 혼자 흥얼댔고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보는 유정의 눈은 왠지 멍-하니 풀려있었다.


"여기야?"


"응"


"흠...참 아담하긴 하네. 사람들이 찾기 쪼금 힘들겠다야. 보통 이정도로 아담하면 간판이라도 크게 만들려 하지 않나? 멀리서 간판이라도 보고 오라고"


"글쎄...들어가자"


입구에 들어가자 왠지 이발사나 미용사들이 걸칠 법한 흰 가운을 걸친 평범한 외모의 여인이 계산대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마치 강희와 유정이 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그들을 빤히 쳐다보는 여인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못해 약간 서늘한 기운마저 주고 있었다.


강희는 유정에게 조그맣세 소근거렸다.


"우와..무슨 욕탕이 아니라 귀신의 집 입구같다야. 왠지 싸~한데?그지?"


"응....암튼 계산하자"


오늘따라 정말로 말수가 없는 유정. 강희는 또 이상하게 여겼으나 계산을 하러 여자에게 다가갔다.


계산대 앞에 써 있는 가격표를 바라보면서 지갑의 현금을 꺼내려는 강희를 보더니 여자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손님"


"네? 특별한 날이요?"


강희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묻자, 여자는 그냥 그렇게만 알라는 듯 손짓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두분 모두"


"아..아니 그래도..계산을.."


강희가 좀 이건 아니다 싶어 돈 안받겠다는데도 망설여대는데, 오히려 평소라면 더 조목조목 따질 스타일의 유정이가 강희의 왼쪽 팔에 슬그머니 팔짱을 끼면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냥 들어가라는걸 뭐. 들어가자"

"아..음...알았어"


그렇게 그냥 들어가려다가 강희는 갑자기 아. 하면서 유정의 손을 풀러내고는 욕탕 바로 들어가기 직전에 보였던 옆건물의 화장실을 떠올렸다.


"갔다와야지"


화장실에 갈 생각을 한 강희는 밖에 잠깐 금방 다녀올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유정에게 말을 한 후에 후딱 나와서 옆건물의 1층 화장실에 들어섰다.

"흐암..."

강희가 간단히 작은 일을 마치고 나와서 손을 씻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띠리리~~

"응? 누구야?"

강희는 폰을 빼들곤 누군지 액정을 바라봤다.


"정안이?"


정안과 알게 된 후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터라 강희는 발신자가 누군지를 바로 알고는 통화를 받았다.


"응? 왜?"


정안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뭐해요? 주말인데...일없으면 같이 밥한끼 해요"


"아! 안돼. 나 지금 유정이랑 같이 있어. 욕탕 들어갈거야"


"욕탕이요? 어디 있는건데요?"


"왜? 올라구? 오지도 못할 거면서."


"아..암튼요. 그냥...못만날거 같아 아쉬워 그러죠 뭐"


정안이 정말 아쉬워하는듯하자 강희는 속으로 깔깔대면서 말해줬다.


"입구 들어서면서 봤는데 무슨.. xx탕이라더라"


"아..거기요? 좀 외진 데죠? 저 거기 주인아주머니도 몇번 봤는데. 암튼 남탕가봤어요"


"그러냐? 암튼 나 지금 유정이 기다리거든? 끊자"


"네..."


"아. 넌 지금은 뭐하냐?"


문득 궁금해서 강희가 물어보자 정안이 말했다.


"아 지금 친구 중에...그 만화부 멤번데요. 한웅이 아시죠?"


"한웅이? 아 그..덩치 곰처럼 큰녀석?"


"네"


"둘이 같이 있냐?"


"네, 공원에서 좀...바람좀 쐬요. 요새 좀 힘들어서요"


"차암나...어린 녀석이 뭐가 힘들어 임마. 머리 아프면 자! 자는게 남는것! 자는 게 보약! 자는 게 최고야 임마. 알았어?"


"네..."


시무룩한 상대의 목소릴 듣고는 강희는 끊는다~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어린 녀석이 뭐가 그리 힘들어? 한숨은...나까지 힘빠지네. 에휴~"


강희는 한번 가볍게 한숨 쉰 후에 다시 욕탕을 향했다.







공원쪽.




핸드폰 통화를 마치고 폰을 닫은 후에 정안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한웅에게 말했다.


"유정이 누나랑 같이 노나봐...xx탕 들어갔대 지금..."


한웅은 그의 말을 듣더니 또 아스팔트 바닥을 보면서 푹푹 한숨쉬곤 말했다.


"후우...넷이서 밥한끼라도 하고 싶었는데..."



힘없어 하는 덩치 큰 친구의 등이며 어깨를 쓸어주면서 정안은 애써 기운을 또 내보기 위해 맑은 하늘을 쳐다봤다.



"참 힘들다.....짝사랑이란거...."






정안이가 그런 시간을 한웅이와 가지고 있을때쯤...강희는 욕탕의 현관 입구에 완전히 들어섰고, 그녀가 들어섬과 동시에 이발사가 계산대에서 훌쩍 몸을 일으키고는 목욕탕이 위치한 건물입구문을 찰칵 하고 걸어잠근 후에 <임시휴업>이라는 글을 써서 유리문 안쪽에 붙이곤 밖에서 보이게끔 해놓았다. 그리고 이발사는 쓰윽 사라졌다...



쑤욱


강희는 자신의 흰 운동화를 벗고는 오른손에 쥐어든 채로 욕탕 내로 향하려 했다. 좀만 앞으로 나아가자 살집 좋아 보이는, 거의 푸짐하다 표현될 정도로 살집좋아 보이는 여자가 영업용 미소를 살포시 지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



"이 아주머니가 여기 주인인가?"


단박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카운터를 맡아 보는 듯한, 그 여자가 강희보고 어서 오세요 하고 말하더니 키를 하나 주고는 번호까지 친절히 불러주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아 네.."


강희는 상대의 지나친 친절함이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겨져 간단히 대답하곤 지정된 번호가 써져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주인은 그런 강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유미가 최고인줄로 알았는데, 설마 저런 애가 있을 줄이야...아아..너무 아름다워"


여주인은 정말 강희의 모습에 너무 황홀경에 빠진 터라 혼자 흥분하고 있는데 그때 카운터 앞에 놓인 전화기가 디리리 하고 울렸다.


"여보세요? 아....회장님. 지금 막 들어왔습니다. 네네...아...예. 걱정마세요. 음..아. 거의 다 오셨네요? 마중 나갈까요? 아..네네 알겠습니다"


달칵


전화통화를 하는 내내 소리죽여서 이야기를 하던 여주인은 통화를 끊고 나선 의식적으로 한번 주위를 쓱 살펴준 후에 다시 강희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유정이가 저쪽에 없었으니까...음...아 찾았다~"


수증기가 팍팍 피어오르고 연한 물내음이 물씬 풍기는 안쪽으로 들어선 후에 강희는 미지근한 강도의 물이 차있는 곳에서 자신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는 유정을 보았다.


강희는 생긋 웃어주곤 유정에게 점차 다가갔다. 근데 다가가면서 느껴지는게 한가지 있어 그녀는 욕탕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

이상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다 젊네?"


욕탕 내엔 하나같이 젊은 여자들만 있었다. 욕탕 내에 있는 여인들의 수는 대략 30여명 남짓.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태반이고, 가장 나이 있어 보이는 여자가 대학졸업이나 했으려나 싶은, 20대 초중반 정도?

"보통...이런데 오면 아이들도 있고...아주머니 할머니들도 계시지 않나? 특이하네?"


차가운 물에든, 뜨거운 물에든, 샤워기 앞에 서 있든, 의자에 앉아 있든간에 씻고 있는 사람들이 죄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자들이란걸 눈치챈 강희는 새삼 이런 날도 있나 싶어서 약간의 놀라움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조금 더 놀랐다.


"어...우리 학교 학생들도 있네?"


여자애들 중엔 자신을 알고 있는 후배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이 바라보자 가볍게 고개를 까닥 하면서 인사를 했다. 강희는 얼른 어어..하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어줬다.


"거참...이상하다 정말?"


욕탕에 오면 으레 뛰어노는 아이들조차 없으니 상당히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기이한 느낌을 강희는 계속 받을수밖에 없었다.


참방 참방

강희는 쓰윽 하고는 탕속으로 들어와 유정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생긋 웃어주곤 말했다.


"야, 유정아. 오늘 진짜 특이하지 않냐? 다 젊은 사람들만 있어"


"응..그렇네. 정말"


유정은 또 가볍게 대답해준 후 강희를 멍 하니 봤다. 강희는 또 입을 열려다가 왠지 탕 내에 있는 여자들이 자신을 힐끔힐끔 계속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유정에게 말했다.


"왠지...사람들이 날 계속 의식하는 것같지 않니?"


여지껏 거의 건성이다 싶을 정도로 간단히 대답하던 유정이가 이번엔 강희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여자들은....다....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강희야...넌 모르겠지만...."


"뭐~어?"


강희는 유정의 말을 듣고 좀 황당하다 싶어 약간 크게 오버하면서 물었고 다시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살금살금 보고 있었다.


유정이 또 말했다.


"이 사람들은....다 너를 동경하거나.....어떤 식으로든...너에게 빠져 있는 사람들이야 ..강희야..나도 그렇고."


강희는 약간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무..무슨 소리야.. 암튼..이상한 소리좀 하지마라야. 누가 들으면 완전 그런 여자들끼리 모인줄 알겠네"


"....틀린 말은 아니지..."


유정의 대답이 황당해서 잠시 강희가 어이없어 하는 시선으로 보는데 유정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물밖으로 나서 문쪽으로 향했다.


유정의 뒷모습을 보면서 강희는 물기에 젖어 촉촉한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쟤가 오늘...왜저러지? 뭐 잘못 먹었나?"



20분 뒤



"후아~ 덥다더워~ 더워어~"


사우나에서 후끈한 열기에 몸을 좀 맡겼다가 나온 강희는 갈증이 나서 문밖에 있는 정수기로 나왔다. 정수기를 찾고 있는데 그런 강희에게 어느새 다가온 유정이 있었다.


"응?"


강희가 다가오는 유정을 보고 살피는데 유정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내밀었다.


"마셔"


"어? 아..응"


친구가 물까지 따라줘 권하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강희는 스스럼없이 유정이가 준 물 한컵을 꼴깍꼴깍 다 마셔버렸다.


"음. 푸하~ 시원해~"


강희가 물을 다마시길 묵묵히 보면서 기다리던 유정은 강희가 들고있는 빈컵을 보다가 차분히 말했다.


"갈증나면 더 마셔. 많이..."


"응. 뭐. 한잔 정돈 더?"


강희는 컵을 잠시 빙글빙글 돌려보다 한컵을 더 마셨다. 그리고 난 후에 유정을 물끄러미 보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유정아..."


"응?"


유정은 멍한 표정으로 강희를 보았다. 강희는 잠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그래? 오늘..."


"...뭐가?"


"..너답지 않아. 유정이같지가 않아."


"...어떤게?"


"지금의 넌 꼭...인형같아...."


"..........."


"말해봐. 왜그러는데?"


강희는 두 손을 유정의 가는 어깨에 올리고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물었다. 대답을 들어야겠다 싶었다. 그때.....


"어머~나, 여기서 또 만나네요. 그렇죠? 강희 학생~"



강희가 고개를 돌려보자 언제 왔는지 여인이 한명 서 있었다. 이 욕탕의 주인인 사장과 같이 그렇게 나란히.

"....아주머니는?"

검정색 정장상의와 무릎까지 오는 치마. 붉게 칠한 입술. 나이와 어울리지 않을듯 하면서도 참으로 잘 어울리는 숏컷. 완숙미의 매력. 상대는...

"여왕...?"

여기서 의외의 인물을 갑자기 만난 강희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아주머니가 여긴 왜..."



강희가 의아해하며 물음을 던지려 할때 여자는 양 팔을 으쓱 하면서 오히려 질문을 던져 왔다.


"왜요? 나도 여잔데...난 여탕 오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나?"


"아...아뇨..."


강희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여자가 여탕에 왔다는데 누가 뭐라 한단 말인가.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강희가 당황해하자 여자는 생글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제 말대로 되었네요. 말했죠? 조만간에 만날 것 같다구요. 후후~ 우리...좋은 인연인가봐요....그렇게 생각 안해요? 응? 후훗~~"


"............."


대답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강희는 순간, 오늘, 뭔가 일어날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아주, 불길한 감을....

"후후. 난 예쁜 강희 학생을 또 봐서 참 반가운데....강희 학생은 안그런가요?"


왠지 모르게 으시시한 말투. 분명 문맥상에 이상은 없는데 이상하게 오싹거리는 느낌이 자꾸 느껴진다고 강희는 생각했다.


"글..쎄요. 전 ...별로..."


여자는 안타깝단 표정이었다.


"이런...별로 안 반갑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


계속 별로 말이 없는 강희. 여자는 그런 강희에게 좀 변화를 줘야겠다 싶었다. 여자는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자, 그럼 이렇게 말하면 좀 더 반가울 까나요? 티렉스 양?"

"!!"

강희는 순간 꽤나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아주머니...내 닉네임을 어떻게....."


여자는 강희가 역시나 꽤 놀라자 만족스럽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TBM 까페의 일원이에요. 나의 닉네임은 퀸. Queen이라 해요"

"퀴...퀸?!!"

강희도 퀸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까페의 단 한명뿐인 특별회원인데 모를 리가 없었다.


"아주머니가..여왕...이었어요?"


약간 떠듬거리면서 강희가 묻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나에요. 아무튼...요 근래에 흥미가 부쩍 당기는 인물이 까페에 있기에 부쩍 접속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 흥미를 만드는 사람이?"


여자는 생긋 웃었다.


"바로 당신이에요. 강희 양"


강희는 설마 이런 곳에서 결박과 티클링 쪽 까페의 회원을 만날줄은 몰랐는지라 멍 하니 있다가 순간 핫 하고는 유정을 쳐다봤다.

"유...유정이도 내 이쪽 취미는 모르는데?"


가장 친한 친구인 유정에게조차도 TBM이라는 까페에 소속되어 있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선 밝힌 바 없었다. 그래서 강희는 당황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원래 타인이 들어서 이해를 쉽게 해줄수 있는 문제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 법이다. 성정체성에 대해서 또래에 비해 훨씬 깨우쳐 있는 강희에 비해, 유정이는 아직 순수한 구석이 많은 여자애였다. 그런 유정이에게 괜시리 자신의 취향같은 이야기해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 강희는 유정이라 할지어도 자기의 이쪽 취향에 대해선 말한 적이 없다.


"아..안돼!! 저 아줌마 입을 막아야 해!!"


강희는 얼른 사태를 종결지으려고, 유정이의 한쪽 손을 잡으면서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후다닥 사라지려 했다.


강희는 가기 전에 한마딘 해야겠다 싶어 여자에게 말했다.


"저..그럼...나중에 이야기하죠"


하지만 여자는 강희와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강희의 말에 대꾸가 없던 여자가 갑자기 호호호 하고 크게 웃더니 순간 크게 외쳤다.


"자아~ 다들 나와라~"


그녀가 높게 고음으로 실내를 뒤흔들다시피 크게 외치자, 욕탕내에 있던 모든 여자들이 소리를 듣고 와서는 몸을 가릴 생각도 않은채 몸에서 물까지 뚝뚝 흘려가며 강희와 유정. 욕탕주인과 여왕을 안에 두고 둥그렇게 원형으로 서기 시작했다.


"뭐...뭐야...."


강희는 하도 황당해서 나신의 여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그래 연신 당황해하는 강희를 재미있게 지켜보던 여자가 말했다.


"뭐, 별로 놀랄 거 없어요. 이건 마음만 먹으면 내겐 아주 쉬운 일이거든. 암튼 그보다는, 강희 양에게 말할게 있는데...."


"뭐죠?"

상대가 하는 짓거리가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듯하자 강희는 슬슬 차가운 시선으로 돌변하면서 그녀를 쏘아보며 냉랭히 말했다.

여자는 강희의 태도는 상관없다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간~단히 말해서, 강희 양이 난 맘에 들었어요. 아~~주 많이 말이야..."

"...? 맘에 들었다구요? 내 어떤게?"


강희는 짚이는게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었다. 여자는 환희의 표정을 띄며 말했다.


"강희 양의 육체. 그 아름다움이 맘에 들었어요."

".............."


"가지고 싶어요. 강희..아니...티렉스를......"


"............."



두 여자 사이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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