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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34 607회 0건
<자아의 이성>


사방이 석벽으로 둘러쌓인, 정사각의 공간내에서 드나들수 있는 문짝 하나만이 존재하는, 음습하고 어두운 공간.


그 어두운 곳에 두명의 여자들이 있었다.


한명은 전신이 결박된채 발끝이 지면을 디디지 못하게 되어져, 촘촘히 구속되있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그런 상대를, 정확히 말하면 고개를 숙인채 헐떡이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하아....."


지친 기색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거친 숨소리.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는 젊은, 그것도 아직 성인이 채 되지 않은, 고등학생으로 짐작되는 여학생이었다.


"....숨이 막힐것 같아....."


강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한번 거친 숨을 토했다. 그런 그녀를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 여왕, 퀸이 빙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때? 즐거운 시간이 되가고 있는것 같아? 응?"


"............."

대답을 촉구하는 듯한 상대의 말투였지만 강희는 침묵했다. 고개조차도 들지 않았다. 상대를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치사하게......"


상대의 수법은 너무나 치밀했다. 설마하니 저 여자가 유정이를 인질로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유정이는 모든 일의 최우선 과제다. 어떻게든 그녀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일단 자기 자신이 이 모양이니....

또각 또각


검은색의 하이힐을 신은 여왕, 진설영은, 그렇게 굽소리를 내가면서 대롱대롱 매어져 꼼짝할수 없는 강희의 턱을 오른손으로 만지면서 치켜들었다.


쓰윽


"..아아..."



강희는 너무나 지쳐 있었기에, 상대가 자신의 턱밑을 매만지는데도, 그런 신음소리정도를 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만지작 만지작


여왕은 강희의 부드럽고 갸름한 턱선이 맘에 드는지, 오른손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움직여가면서 그렇게 매어져 있는 여자애의 턱밑의 살결의 고움을 음미했다.


"...아으...."


강희는 턱밑가가 쓰다듬어지는데도 이상하게 바르르 떨면서 반응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뭐지...나...이정도로 예민했나....아냐...이정도까진..."


이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피부는 상당히 예민하지만, 확실히 이정도까진 아니었다. 고작 턱밑가가 좀 만져진다고 이정도의 간지러움이 전해져 오다니...



강희는 입을 열어야 할, 질문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여왕..."



강희가 입을 떠듬거리자, 여왕은 눈을 크게 뜨고 즐거워하면서 말했다.


"기왕이면 님 자를 붙여주지 않을래? 너한테 들으면 최고의 찬사일듯 한데..."


"......내 몸에...무슨 짓을 한거에요....?"


강희는 힘없는 어조로 중얼거리다시피 질문을 던졌다.


여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되물었다.


"무슨 짓을 했냐고? 널 묶어놓은 걸 두고 하는 말이야?"


"....아까 먹은 건 수면제였어....하지만...그것만으론 설명이 안돼...몸의 반응이 이상...이상해..내가 잠든 사이..나한테 무슨 수작을..부렸죠?"


강희가 그렇게 질문을 던져 오자, 여왕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배시시 웃더니 왼쪽 손을 쓰윽 들어 강희의 오른쪽 겨드랑이의 가장 움푹 패인 부위에 검지손가락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꾸욱


흠칫


"아..아흐!! 흐으윽!!"


강희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몸을 바르르 떨자, 여왕은 강희의 바르르 떨리는 몸매와 신음성을 흘리는 그 소리를 귓가로 즐겁게 만끽하면서 말했다.


"맞아. 눈치챘나보네. 니가 잠든 사이에 주사를 놨지. 신경을 예민하게 해주는 약이야. 약효가 끝내주지. 솔직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넌 상당히 간지럼에 예민할 것 같았어. 하지만, 그래도 난 주사를 놨지. 너의 엉덩이에 말이야. 사나운 맹수는 초반에 빨리 길들여야 하거든. 그래서 스타트를 강하게 끊어야겠다 싶었지. 후후. 이제 좀 대답이 되었니?"


"..역시..."



이젠 확실히 이해가 갔다. 확실히, 강희가 간지럼을 대단히 잘 타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아까의 일은 이상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겨드랑이에서 전해져 오는 느낌도.


꿀붓칠이 겨드랑이에서 옆구리, 발바닥이며 발가락에 되어질때,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기 자신을 좀전에 발견한 것이다. 여왕이 자신을 간지럽히긴 했지만, 그렇게 정말, 그녀의 긴 손톱을 돋우어서 강희의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바각바각 강도높게 긁어대진 않았었다.


그런데도, 그냥 손톱 끝으로 미끄러지듯, 가볍게 몰아친 힘인데도 자신은 심각하게 반응했었다. 그것이 의문점이어서 강희는 혹시나 하여 질문을 한 것이고, 예상은 적중한 것이다.


강희는 이왕 입을 연 거, 어차피 불가피한 질문, 가장 큰 관심사인 질문을 하였다.


"이제부터...나를 어쩔 셈이죠...?"


여왕은 <날 어떻게 할려는거에요?>라는 식의 질문을 하는 강희가 너무 사랑스러운지 갑자기 꺄악 하면서 환호하더니 재빠르게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그리곤 강희가 반응을 할 새도 없이 그녀의 오른쪽 뺨에 키스를 했다.




"!!"

강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결코 피할수도 없는 자기 자신이 서글퍼 눈을 감아버렸다. 지그시..


"제길...제길...제기랄...."


강희가 눈을 꽉 감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여왕은 즐거워하면서 이어 강희의 반대쪽 뺨과 이마에도 키스를 해주었다.


"음음~ 쪽쪽!! 아아, 정말이지 넌 사랑스러울수밖에 없다니깐? 후훗, 그래...뭐.. 그럼 대답을 해줘야겠지?"



"............."


"난...너를 내 딸로 삼을거야. 정식 명칭은 오늘부로 프린세스(공주)야. 어때? 좋지? 프린세스?"



"......명칭따위...아무래도 좋고..날 어쩔거냐구요..."

강희는 눈을 가늘게 뜨곤 다시 물었다.


여왕은 입을 열었다.



"아까 니가 경황이 없어 잘 못들었나보구나. 아님 잊어버렸나? 넌 정신력이 매우 강한 거 같아서 나의 매혹안이 통하질 않아. 그래서...니가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티클링을 할거야. 물론 넌 저항할수 없지. 좀 불편하겠지만, 지금의 그 자세로 계속 있어줘야겠어. 일단, 그 Bondage는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자세 중의 하나거든. 지금의 너의 모습. 아~주 맘에 들어서 말이야 흐흥. 암튼, 넌 결국 나의 아이가 되게 되어 있어. 니가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 티클링을 당하게 되면, 이성이 남아나지 않을걸? 암튼 내 입장에선, 너를 일단 굴복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이건 시간과의 싸움이야. 끌면 끌수록 너만 손해지. 난 잃을것 없어 티렉스 양. 알겠어 내말?"



여왕은 배시시 웃으면서 공중에서 자신의 좌우 손가락들을 열심히 놀리며 티클링을 하는 시늉을 취하였다. 강희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보고 있다가 힘없는 어조로 말했다.


"아쉽군요...정말로...."


"응?"


여왕이 의아해하면서 자신을 보자 강희는 옅게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여왕...당신이...아주머니가 조금만...조금만 더 다른 시각...주관을 가졌다면...나를 즐겁게 해줄수 있었을텐데....나도 무한한 감사를 표할수 있었을텐데....종이 한두장.... 추구하는것들 한두개가....우리를 엇갈리게 하네요....그게 너무....너무 아쉬워...눈물이 날만큼...."


강희는 말을 마치고 더 이상은 입을 열기 싫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여왕은 강희의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무슨 말이지? 무한한 감사를 표할수도 있었다라....나를 좋은 언니로 생각할수도 있었는데 추구하는 <플레이>, SM의 차이점을 두고 말한건가? 흠...."


여왕은 강희의 말에서 은연중, 우리는 정말 좋은 사이가, 될수도 있었다는, 결코 이런 식의 만남이 아니었더라면 좋았을것을 하고 말하는 듯한, 묶여 있는 여자애가 은근히 표현한 <안타까움>의 감정을 읽은 것이다.


"넌 그게 안타깝니? 난...그냥...널 가지기만 하면 돼....니가 슬퍼도....미안하지만...상관없어 렉스 양. 난 그저....널 나의 것으로만 하면 돼. 그게 나의 지향이야. 그게 너에 대한 나의 애정표현이야."



퀸은 강희의 말을 듣고 나서 잠시 그렇게 사색에 빠졌다. 그러다가 그녀도 왠지 착잡한 기분이 되어져서 잠시 바람을 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쉬도록 해. 이걸로 끝이 아니야. 이제부터 더 강도높은 티클링을 할거야. 너의 이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아..아니야. 이런 이야기. 조금 있다 하도록 하자"


퀸은 눈을 감고 있는 강희를 그렇게 홀로 남겨두고는 문을 나섰다. 끼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도,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또각대며 멀어져가도, 강희는 눈을 뜨지 않았다. 지금은...그렇게 눈을 감고 있고 싶었다.....






"피곤해? 졸려?"


"누구...누구야...."


강희는 물에 둥둥 떠있었다. 자신을 받치는 것은 물. 물이었다. 강인지 호수인지, 그도 아니면 바다인지도 모를, 그저 그렇게, 넓고도 거대한 액체덩어리가 밑에서 자신을 받쳐올리고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띄워놓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파래..."


태양조차 존재않는, 오직 새파랄뿐인 하늘, 구름 역시도 없었다. 그저 파랄 뿐이었다. 오로지 그렇게 푸른색으로 덮여있을 뿐이기에, 위쪽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왠지 모르게 물을 연상케 하였다.


세상에는 오로지 그렇게, 자신과 바다, 그리고 푸른 하늘만이 존재하였다. 인격체라고 볼만한 존재는 그렇게 물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자신뿐인데, 그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자가 있었다. 어떠한 존재가 있었다.


"너를 유지해주는 원천력은 힘이잖아? 그게 너의 능력 아니야? 왜 이렇게 지쳐있는거야?"


"누구야....얼굴을 보여..."


강희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면서 목소리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또 울렸다. 아무래도 이건 누군가 말을 건다기보단,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듯한 음성.


"미안하지만...난 너에게 얼굴을 보일수 없어.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인걸?"


"...도대체 뭐야...너 누구야..."


강희는 여전히 멍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목소리는 답을 해왔다.


"나는....자아의 이성이야. 최강희. 너의 몸속에 있는 너의 진정한 성향. 그것의 집결체이자 그 자신. 그러면서 너인 존재. 그게 나야"


"자아의..이성?"


그녀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자아의 이성. 아무튼 우린 하나야. 난..니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고? 널 만난건 이게 처음이야...갑자기 나타나 무슨 말을 하는거야?"


목소리는 강희의 말을 듣고 있다 타이르듯 말했다.


"최강희.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나타났어. 하도 한심해 보여서...."


"..한심하다고?...내가?"


"그럼, 한심하지, 지금 너의 모습을 봐. 이게 무슨 꼴이야? 응? 웃겨서 말이 안나와. 정말, 내가 너라는게 한심하고 창피할 지경이야"


"...너...도움도 안주고 모습도 안보이고 있으면서 무슨 말을...."


목소리는 강희의 말을 잘랐다.


"난 니가 하도 바보같아서 온거야. 내면의 세계에서 표류하고 있는 너를 불러들였어. 대화를 하려고. 그리고 좀 듣고 각성하라고."


"...각성?"


"그래!! 반성하란 말이야!! 너 자신을!! 넌 정말 바보같은 애야!! 너는 니 자신이 딱 부러진다고 생각하지? 흥! 그건 큰 착각이야! 넌 그저, 힘만 무식할 정도로 쎄고, 또 자꾸 변덕만 부리는 심술쟁이란 말이야~ 이 도피쟁이 여자야~!!"


"...무슨 뜻이야...내가 왜..."


강희는 이 액체덩어리 위에 표류하게 된 뒤로는 계속 몸이 늘어져 있는 상태라 여전히 맥없는 상태로 질문할 수밖에 없었지만, 목소리는 그 또한 자기 자신이라면서 이상하게도 힘이 팔팔한지, 쩌렁쩌렁 울릴정도로 엄청나게 앙칼진 목소리로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럼? 변덕마녀에 심통이 아니고 뭐야? 내가 보기엔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돼! 넌 왜 자꾸 번복을 하는 거야? 응? 니가 말하는건 <완벽한 구속>이었잖아? 지금 니 자신을 봐. 만족스럽지 않아? 이건 니가 원했던, 니가 닥쳤으면 했던 상황이잖아? 안 그래?"


"............."


"난 널 알아! 난 니 안에 내재된 m의 성향의 집결체이기도 하니까!! 난 너의 쾌락 그 자체라구! 그래서 니가 나고 내가 너란 말을 한 거야! 넌 분명 말했어 스스로. 손가락, 발가락까지 움직일수 없는 완벽한 구속을 원한다고! 그 남자애한테도 그랬었지? 널 못 움직이게 할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근데 넌...날 실망시켰어! 넌...너 자신을 두번이나 부정했어!!"


"....두번..."


"그래 두번!! 생각해봐? 생각 안나? 피곤하니 벌써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거야? 니 스스로 그랬잖아. 못 움직이게 할수 있으면 족하다고. 그것만을 바란다고. 그래 좋아. 난 그걸 알아. 그게 모인게 나니까.너의 그런 모습이 말이야. 암튼 넌 그 남자애를 만났지. 그렇지? 공원에서 말이야. 그리고 그 애는 멋지게 제압해줬어. 너와 나를 말이야! 근데 너는...그애가 돌아가고 밤에 홀로 누워 침대에서 생각했지? 이건 내가 원하던 구속이 아닌데...하고...변명을 했어!!"


"아..아냐...변명이 아니야..."


강희는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반박할 말이 없어 말이 망설여졌다. 목소리는 가차없이 몰아붙였다.


"또 변명!! 또 도망치려 해. 또 부정하려 해!! 약았어 넌!! 진짜로!! 넌 처음엔 못움직이게만 할수 있으면 만족할거라 하면서 그 남자애한테 기대감을 심어주었지!! 하지만 막상 그애하고 플레이 하고 난 후에 그애의 능력, 그것에 환호도 했지만 실망도 하는 너 자신을 보았지. 힘을 쓸수 없는건 완벽한 구속이 아니야 하면서 말을 돌렸지"


".....으음...으..."


"흥! 할말이 없지? 그리고 이번엔! 지금 이상황에 넌 또!! 또 부정하려 하고 있어!! 왜 그러는거지 도대체? 이건 니가 원했던 거야!! 완벽한 구속이야!! 왜 발버둥쳐? 왜 풀려나려고 기를 써? 묶여 있어!! 니가 원했던 거잖아!! 넌 꼼짝 못하기를 원했잖아!!"


"아...하...하지만...그 여자는...제정상이 아니야....온전한 SM을 가진 여자가 아니야...플레이에 대한 가치관이 독선적이고...."

"흥!! 듣기 싫어. 입만 열었다 하면 변명이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묶이고 싶다고 좋아할땐 언제고, 막상 닥치니 무섭고 두려운가보지? 이게 니가 추구한 M이야? 흐흥. 정말 코웃음밖에 안나온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니? 그럼 묶이는건데 마냥 좋은것만 있을줄 알았어? 그런것만을 기대했어? 세상이 그리 쉬운줄 알았어? 어때 이젠? 막상 묶여보니 기분 더럽지? 꼼짝 못하겠지? 샘통이다 바보 기집애~"


"시...시끄러워...!! 이건 내가 원했던....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아니란 말이야...!!"


강희는 인상을 쓰면서 부정하려 했지만, 지금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목소리는 그런 그녀를 여지없이 몰아붙였다.


"나한테까지 감추려 하는짓따위 하지마!! 난 너라구. 난 너를 아주 잘 알아. 같으니까. 너로 인해 나는 태어났고 내가 없으면 TBM의, SM의 최강희는 없는거니까!! 티렉스 최강희가!!"


"....자아의 이성이라 했지...너?"


"그래"

"...넌...나의 본성이야?....나 지금....나에게 실망하고 있는거야?"

"....그래"

"...자꾸 번복을 해대는...말을 바꾸는 나한테...?"

"....그래"


"그럼 나보고...지금 도대체....어쩌라는 거야...응? 내 자신조차...나의 편이 아닌데....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지금 나...너무 힘들단말야...몸도 마음도....."


"흥..투정부리지 마 최강희. 넌 티렉스야. 넌 우는소리를 하는 여자애가 아니야. 나한테 기댈 생각일랑 마. 나는 분명 너지만, 난 너의 M이자 쾌락지향자야. 난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싶다구. 애써 부정하려 하지 말라구. 한유정? 그 애가 그렇게 중요해? 너의 M보다? 여왕을 바라봐.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줄수 있어. 너를 묶어줄수 있어. 거절하지마. 기회를 내버리지 마. 그냥...쾌락에 몸을 맡겨. 그게 좋은거야. 그게 행복한거야. 항상 원해왔잖아? 응?"


".......흐윽...."


물에 둥둥 떠 있는 강희의 양쪽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주르륵 하고는 소리없이 좌우로 흘러져 내렸다. 이슬 두방울이 그렇게 흘러내리고 입술을 꼭 깨물던 강희는, 입을 열었다.

"난...난 너야...좋아..인정하겠어. 너 역시 나의 한 부분이란 걸....난...M이야.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하지만!!"


"...하지만?"


"쾌락이 제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만을 느끼기 위해!! 그것만을 위해 살만큼 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거야!!! 내게 있어 유정이는!! 가장 소중한 친구이니까!!"

"....완벽한 구속을 줄수 있는 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니가 지향해왔으면서도?"

그렇게 물어오는 자아의 이성에게 강희는 상관없다는 듯 단호하게 외쳤다.

"그래!!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동물이 아니라구!! 내겐....지켜야 하고 보고 싶고 같이 느끼고 싶고!! 같이 숨쉬고 싶은 많은 이들이 있으니까!!"


".........그게 지금 정한 너의 선택?"

"그래!! 그게 내 결정이야!! 절대 번복하지 않아!! 난...나는!! 여기서 나갈거야!! 유정이를 데리고!! "


".....휴우...역시 너답군....무식하게 고집은 쎄가지고...."


자아의 이성은 강희의 고집이 진저리난다는 듯한 음성을 내뱉으며 이어 말했다.


"명심해. 난 너야. 우린, 언제든, 중요한 순간엔 다시 또 만날 거야. 날 떨쳐버릴 생각은 하지 마. 난 m. 쾌락의집결체, 너의 이 부분들을 담당하는 그 자체이니까..."


강희는 대답했다.

"좋아. 다음 만남을 기대하겠어.."

"그럼 가봐. 어디 어떻게 하나 지켜봐주지. 바보 괴력녀"

자아의 이성은 그렇게 사라지려 하다가 알쏭달쏭한 말을 한마디 내뱉었다.


"힘이 있음 뭐하니? 제대로 활용도 못하면서..."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강희는, 조만간이 되었든 아니든간에, 자아의 이성을 필연적으로 또 만날것이란 직감을 받았다.

"나중에 봐....나의 m...나의 쾌락..."


중얼거림을 끝으로 자신을 받치던 파도들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보!!>






"핫! 하앗....하악......"

강희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곳은 현실. 촘촘히 결박되어 있는 자신의 몸을 느끼며 강희는 현실을 상기한다.

"후우...돌아왔네...."


강희는 현실로 돌아오자 한숨을 한번 푸욱 내쉬었다. 터프한 그녀가 한숨을 이렇게 땅이 꺼져라 내쉬기는 무척이나 보기 어려운 일이지만, 오늘은 너무 입이 바쁜것같다.


웃느라고 바쁘고(원해서 터져나오는 웃음은 아니지만) 숨골라내느라 바쁘고(역시), 한숨쉬느라 바쁘고(상황이 상황이니까)


"자아 그럼....자아의 이성에겐 배짱좋게 말해놓고는....어떻게 해야 할지 참...나도 대책없네..후훗..."


자아의 이성을 내면의 세계, 마치 꿈속이었던 곳 같은 정신세계에서 만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훤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강희는 현실에 돌아와서도 그렇게 아까 일을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짓는 중이었다.


그때....


"아앗!!"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그리고 떠오른 그 다음 생각은!!


"바...바보오~!!"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바보바보~~!!, 진짜진짜 멍청했어 나!! 아유 최강희 이 돌머리...힘만 돌쇠같아가지곤!!"


여지껏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던 것이다.

강희는 중얼거리면서 놀라운 어조로 말했다.

"아아...그래서 자아의 이성이 내게 그런 말을 한거구나...."


<힘이 있음 뭐해? 활용을 할줄 모르는데>


<잘있어 바.보 괴력녀>


바보...


"아아..정말 바보였어...."


강희는 퀸의 말을 떠올렸다. 퀸의 말도 잘 생각해보면 사실 힌트가 있었는데....


<어쩌면 너라면...>

<팔다리힘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2톤 이상이...>

<하지만...>

<너의 손가락 하나하나..>

<너의 발가락 하나하나론...>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못푼단다.....>

<그래서 일부러 따로따로....>

<꼼꼼히 분류해서...>

<세심하게....>



"그래!! 내 힘을...분산시켜놓은거야!!"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사실 강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결박하는 데에 성공한,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보강재 중의 최고재료이자, 최강의 섬유인 아라미드 섬유에게 결박을 처음 당해본 터라, 무척이나 당황을 했었다.

5미리미터 남짓의 섬유끈이 장력 2000kg을 견뎌낸다는데, 설명을 들을땐 얼마나 황당했는지. 여왕의 설명을 듣고 난 후에 맥이 더 빠진 탓도 있었고, 강희 본인이 생각을 잘못 한 것이 하나 있었다.

강희는, 자신의 손목과 발목부터 풀어낼 생각을 한게 아니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씩 묶고 있는 가는 섬유끈부터 제거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원래 팔에 힘을 써도, 맨손바닥의 상태에서 부르르 떨정도로 힘을 넣는 것보단, 주먹을 꽈악 쥐고 힘을 가하는게 스스로 느끼기에도, 실제로도 더 많은 힘을 쓸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하체 쪽도, 움직이려 하면 10개 죄다 발가락을 붙잡고 있는 그놈의 섬유끈이 거슬렸었다. 일단 발가락이 자유롭게 되게 한 후에 본격적으로 손목과 발목에 힘을 가하려고 강희는 계산했던 것이다.


양 손등이 밀착되게 한 후에 8자로 겹겹이 감아서, 주먹조차 쥘수 없게 결박을 해놓으니, 그 역시 불편하기도, 거슬리기 짝이 없기도 하였고.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묶는 데는 한 가닥이 아닌, 여러 가닥이 뭉친,

상대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묶은, 각 마디의 끝에 해당되어져 하나씩만 결박으로 사용한 섬유끈보다, 손발목과 무릎을 여러 섬유끈으로 겹겹이 묶은 쪽이 더 풀러내기가 힘들거라 판단.

강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태반을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힘을 써댄것이다. 죄다 말이다.


주먹을 쥘수 있고, 발가락쪽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체를 좀더 제대로, 발목과 무릎을 묶은 쪽만 신경을 쓰면서 힘을 크게 실을수 있다면, 더 쉽게 풀어낼수 있을것이라 생각한 그녀의 발상 자체가 오산이었다.

여왕이 말했지만, 아무리 강희라 해도,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씩만으론 아라미드 섬유를 끊어낼수가 없다. 제아무리 강희여도 그건 무리였다 확실히.

손가락 하나당, 발가락 하나당 끝마디에 딱 한줄기의 아라미드 섬유만 사용한다 해도 그녀는 그것에서 못벗어난다.


하지만...가닥가닥이 설령 2톤을 견뎌내는, 지상 최고의 섬유인 아라미드 섬유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게 좀 여러겹이 겹친, 장력이 더 필요한 상황쪽으로 되어진다 하여도, 손발목과 무릎이라면!!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켜쥔 섬유들을 끊는것보다, 손목과 무릎, 발목쪽에 여러겹을 대어 결박한 아라미드 섬유쪽이 강희의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훨씬 더 끊어내기 쉬운 것이란걸 강희는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강희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힘의 최대치를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팔다리에 온전히 힘이 실린 펀치력이거나 각력, 뭔가를 밀어내거나 들어올리는 완력이라면...그녀의 몸은...겨우 2톤 정도로는 절대로 구속할수 없다.


아까 여왕이 강희를 간지럽히면서 강희가 몸부림칠때, 그리고 초반에 결박을 풀려고 강희가 몸을 발버둥칠때는 참으로 많은 변수와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여왕은 강희의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죄다 묶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결박주의 측면, 즉 완벽을 기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고, 그렇게 묶임으로서 강희로 하여금, 손발목이나 무릎보다, 손가락 발가락을 묶은 섬유들에 더 심리가 가게끔, 강희가 그쪽으로 감각이 잡히게끔 계산을 한것이다.


일단 손가락 발가락쪽이 묶인 부위들을 제압하는데 사용한 실끈이 단 한가닥인데도 그정도라면, 상대적으로 손발목이나 무릎쪽은 여러겹을 사용해 묶었으니 훨씬 풀기 힘들겠다고 누구나 생각할테니까.


그리고 강희는 아라미드 섬유란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에 이런 엄청난 실끈이 있다는것에 대한 충격에,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완전히 제압하는 딱 한줄기의 실끈의 위력에 경악해서 제정신도 아니었고 힘도 막무가내로 아무렇게나 쏟았고.


참으로 많은 요인들이 강희를 방해하고, 또 발상을 못하게 했기에 여지껏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강희는 드디어 눈을 뜬것이다.


강희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우후훗~ 하고 웃었다.


"돼..됐어!! 좋아 그럼....일단 이것들을 끊자!! 그리고 나서 여왕을 찾아 곧바로 제압해야 해...감각은 왠만큼 돌아왔으니 기절만 시킬정도로 힘조절이야 하면 되는거고...여왕만 기절시키면 유정이하고 여자들이 정신을 차릴지도 몰라. 그리고 나선? 음...에이 몰라. 일단 그때 가 생각해야지. 일단은 이것들을 풀어야 해!!"


강희는 마음을 먹고 이빨을 꽉 문채 힘을 넣기 시작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들을 잡고 있는 그런 자잘한 것들이 아닌....손목과 발목, 무릎쪽으로.

"이야아압~~!!!"

쿠아아아


와드드드.....


팔과 다리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면서 그녀를 옥죄고 있는 아라미드 섬유끈들이, 2톤 이상의 장력을 쏟지 않는 한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끈들이 여러가닥인데도 불구하고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한두개씩....


티딕


티디딕


끊어지기 시작했다.


"조...좋아!! 된다. 이히힛~!!"

강희는 희망이 보이자 미소를 짓고는 계속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할때 기합을 넣은게 문제였다......






"휴우....."


또각또각


바람을 좀 쐬고 난 후에 머리가 어느 정도 식은 듯하자, 심난하던 마음도 그런데로 가라앉은 퀸은 강희를 매어다놓은 어두운 방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퀸은 아까 강희가 했던 말이 아직도 좀 어른거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 아인 언제든 나를 죽일수 있었어..."


그건 진실이었다. 최강희가 마음만 먹고 딱 한번만, 아무렇게나 내키는데로 후려쳐도 자신은 즉사였다.


최강희에겐, 티렉스라는 칭호를 가진 그 여자애에겐 능히 그럴 만한 능력이, 실력이 넘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여려..."


최강희는 한유정을 포기 못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이 위험하면서도 데리고 나가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수면제에 당해 쓰러졌을때도, 그녀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시선은 한유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퀸은 강희의 눈동자가, 그리 순수해 보일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다는 감정, 못 지켜내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안타까운 감정, 속죄의 감정 등. 온갖 것이 그때 당시 그 아이의 눈길에 내재되어 있었다.


"사실...안잡히려고만 한다면....M은 몰라도 나는 절대 그 아이를..."


유정이와 여자들을 들먹이면서 협박을 하긴 했지만, 만약 유정이가 죽던말던, 여자들이 자살을 하건 말건, 최강희가 일절 신경을 꺼버리고 도망을 가려 마음먹었다면, 자기의 능력으로선 죽었다 깨어나도 최강희를 사로잡을수 없었다. 매혹안도 통하지 않고, 인질도 통하지 않는데 무슨 수로 잡겠는가. 하지만 최강희는...친구를 위해 순순히 잡혀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최강희가 유정이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다는것을 여왕은 느낄수 있었다.


"휴...암튼 진짜 착하긴 한데...고집이 너무 쎄서.....아무튼 최대한 빨리 얌전하게 만들고 싶은데...가장 단기간에 굴복시키려면....역시 발바닥에 오일을 발라야 하나....으음..."


여왕은 최강희를 최대한 단시간에 사로잡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공주, 딸로, 프린세스로 삼고 모두가 떠받들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생포한 티렉스,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하지만 워낙 대쪽같은 성격의 아이같으니....


진설영은 또각또각 힐소리를 내며 걸어가면서 곰곰히 생각했다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유정이에게 강희의 신상명세랑..특이점을 물을때 그게 있었지?"


최강희의 가장 친한 친구. 한유정이라면 최강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것이라고 생각, 최강희의 비밀이라거나 특이한 점, 성격, 그리고 혹시 알지 어떨진 모르지만 간지럼을 가장 잘 타는 부위까지 유정에게 꼼꼼히 강희의 질문을 던진 퀸이었다.


그때 한유정은 말했었다.

"강희는.....스타킹을 신으면 발이 훨씬 예민해진다고 하더군요. 나일론 재질에 알레르기성 반응같은게 있다고..."

"저..정말?"


여왕은 그때 흥분해서, 강희를 사로잡은 후 꼭 스타킹을 신긴 후에 간지럼을 태울 작정이었지만, 막상 일이 잘 풀리고 정말 티렉스를 사로잡는데 성공하자, 티렉스가 잡혔다는 사실 자체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만 그걸 잠시 망각한 것이다.


여왕은 생글거리며 웃었다.


"호호, 좋아 그럼. 방에 들어가서 거기 있는 박스에 있는 스타킹을 신기고 음...발가락을 덮는 부위만 가위로 자른 후에...발가락은 내가 혀로 핥으면서...스타킹으로 반들거리는 발바닥을 고문하면...후후, 금방 이성이 무너지겠지? 그리고..그렇게 하고 나서 후후...."

자신의 프린세스로....

그런 희열을 느끼면서 걸어가고 있는 무렵인데.....

그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날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야아압~!!"

우르르...

깜짝


털썩


"뭐!! 뭐야!!"


여왕은 너무 놀라서 복도로 이어진 길의 옆의 석벽면을 짚으면서 비틀댔다. 방금 뭔가...엄청난게 움직인 듯했다. 그리고 고함이....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 아인가?"


그때 다시...


우르르르....


드드드드!!


"에이잇!!"


흠칫


설영은 짐작가는 바가 있어서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자신이 잠시 없었던 그 사이!! 그 아이가 뭔가 하는게 분명했다.


"서...설마!! 아라미드 섬유를 끊어내려 하고 있다는거야? 그아이?"


그녀는 너무나 놀라서 미친듯이 뛰어갔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었다.


"!!"



"회!!회장님!!"


여탕 레즈주인인 정유림이 방에서 덜덜 떠는 시선으로, 무섭게 몸부림치는 최강희를 바라보고 있다가 여왕이 들어오자 파리해진 안색으로 그녀를 불렀다.



정유림은 옆에서 비누가 묻은 타월로 침대에 누워 있는 한유정을 간지럽히고 있다가, 갑자기 지진이 난것처럼 옆방이 울려대자 한유정을 그대로 내버려둔채 달려와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섭게 날뛰면서 힘을 주고 있는 최강희가 두려워, 그녀는 단지 덜덜 떨면서 지켜만 보고 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설영이 경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아라미드 섬유를!!"


끊어내고 있었다. 저 아이가.


힘으로. 오로지 힘만으로.


티딕


티디딕


아라미드 섬유가 늘어나고, 끊어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설영은 똑똑히 지켜보았다. 손목을, 발목을, 무릎을 묶어놓았던 섬유들이 점차 느슨해지고 있었다.


"마...말도 안돼!! 가닥당 2톤이라구!! 일부러 손발목이랑 무릎은 더 신경을 썼는데 훨씬? 어떻게 저걸 끊어!!"

여자아이는 손가락이랑 발가락이 제압된건 포기하고 손발목을 자유롭게 할 결심으로 마음을 돌렸나 보다. 그때 퀸과 티렉스의 눈이 마주쳤다.

흠칫


설영은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눈앞에 있는 것은 여리디 여린 모습의 소녀가 아니었다.


"파..파충류...공룡?"


거대한...뭔가 막대한 존재가, 자신을 노려보는듯한 착각. 터무니 없는 힘을 소유한 인물이 그 구속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자신을 타겟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아..."


설영이 기가 질려서 상대방 여자애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여자애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더니 말했다.


"여왕.. 안됐네요. 실수했어요. 아까 나한테 힌트를 줘버렸잖아요? 여왕님 스스로!"

강희는 풀려날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건지 설영에게 여왕이 아닌, 님까지 붙여주었다.

설영은 입술을 깨물더니 무섭게 외쳤다.

"아...안돼!! 넌 못가!! 안놔줄거야!!"

강희는 코웃음쳤다.


"소용없어요!! 결박의 트릭을 간파한 이상, 이 아라..무슨 섬유라 할지라도 날 어쩔수 없어요. 기다리세요 여왕님. 곧 제 손으로 어루만져드리죠. 정성껏!"


강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기합을 넣으면서 몸을 뒤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설영은 입술을 물면서 속으로 외쳤다.


"안돼!! 얼마나 잡기 힘들었는데!! 절대 풀려나게 해선 안돼!! 못해!!"


상대는 마음대로 잡았다 풀어줬다 잡았다 풀어줬다 할만큼 녹록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가 붙잡고 있는 사람은 <지상 최강의 여학생>이다. 지금 놓치면, 두번 다시 잡을수 있을지 없을지 아예 계산자체가 안되는 존재.


설영은 벌벌 떨더니 핫 하고 탄성을 지른 후 방 안에 있던 구석에 박힌, 페인트통 옆에 있는 박스상자면의 뚜껑을 거칠게 치웠다.


타당

투다닥


그것들을 치우자, 여지껏 정유림이 모았던 예쁜 여자아이들, 젊은 여성들의 각종 스타킹이 들어있는 박스, 그리고 그 옆에는, 에테르(마취제)의 성분이 액체화되어 잔뜩 들어있는 1리터 가량 크기 병과 마취제를 묻힐때 쓰는 솜뭉치, 그리고 감기에 걸렸을시에 양 귀에 착용해서 쓰고 다니는 마스크들이 들어 있었다.



따랑


설영은 미친듯이 1리터병의 병마개를 풀어헤친 후에 그것을 콸콸 소리가 날정도로, 아주 폭삭 젖을 정도로 숨뭉치를 적신 후에 강희에게 달려갔다.


"!!"


강희도 힘을 주다가 설영이 하는 것을 보곤 속으론 당황했다.



"이!! 이런!! 또 나를 잠재울 수작이야!!"


아직은 아라미드 섬유를 다 끊어내지 못했다. 발목, 손목, 무릎 어느 한쪽도 다 끊어내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거의 십수가닥의 아라미드 섬유들이 하체쪽은 무릎과 발목을 8자로 감아 묶은 만큼, 그리고 발가락을 최대한 당겨서 견고히 결박하고 있는만큼, 하체쪽보단 상체쪽이 더 금방 끊어질 조짐이었다.


"소!!손만 자유로워지면 돼!! 그럼 이 둘쯤이야!!"


그런 계산으로 강희는 하체쪽은 포기하고 손목에 자신이 가진 힘을 다 넣기 시작했다.


"이야앗!!"


까드득..


티디딕 티디...


섬유들이 무섭게 늘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설영이 강희의 등뒤를 점한것도 그때였다.


"안돼!! 못가!! "


여왕은 오른손에 솜뭉치를 든채 그걸로 왼손은 강희가 몸을 퍼득거리지 못하게 꽈악 끌어당기곤 솜뭉치를 들고 있는 손은 강희의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터억


"으읍!!으으읍~!!"


강희는 순간 입과 코가 막히자 당황을 해서 버둥거렸다. 원래 이럴때는 일단 숨을 참아보는게 정설이지만, 숨을 멈춰놓고 있으면서 손목쪽에 계속 힘을 가해, 단시간에 끊어낼 자신이, 시간, 타이밍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섬유들은 진짜 질기기도 했다.


"제..젠장~!! 거의 다 되었는데!!"


강희는 필사적으로 손목쪽을 바라보며 힘을 가하고 있었다.


꽈아악

꽈악


손목에 핏줄이 오르고 붉은 빛이 강하게 어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강희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될셈인듯 아라미드 섬유들은 정말로 이제 거의 끊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아직은 아니었다...아직은 결박상태였다.


필사적이기는 강희를 절대 놔주고 싶지 않은, 놓칠 맘이 없는 정설영, 여왕도 마찬가지여서 그녀는 악을 썼다.


"유림씨!! 얘 발바닥을 간지럽혀!! 빨리~!!"


정유림은 그때까지도 강희의 무서운 움직임에 기가 질려서 쩔쩔매고 있었다. 무슨 놈의 여자애가 날뛰니까 완전 이건 공룡이 아닌가 싶은 여자애이지 않는가. 힘이 정말 장난이 아닌 여자애였다.


그러다 설영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유림은 멍청히 되물었다.


"에? 예?"


설영은 악을 썼다.


"지금 빨리!! 이애 발바닥을 간지럽히란 말이야!! 지금 숨을 참으면서 손목을 풀어내려 하는거야!! 잘못하면 놓친다구요!! 빨리이~~!!!"


여왕의 필사적인 음성을 듣고 정유림도 안색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아직 결박을 못풀고 있는, 발가락까지 아직 제대로 제압되어 꼼짝못하는 강희의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손을 뻗었다.


"에잇!!"


정유림은 길고 긴, 매니큐어까지 칠해진 손톱 끝으로 강희의 발바닥을 힘껏 간지럽혔다.


간질간질

부북 부북!!


"아!! 아흐흐~!! 하악!!으읍!!"


강희는 순간 호흡이 뒤틀어지면서 그만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말았다. 그러자 머리가 급속도로 핑핑 돌기 시작했다.



"아..안돼!! 이 아줌마가 진짜!!아으윽!!!"


티렉스에 대한 퀸의 집착은 광적일 정도였다. 퀸은 정유림을 시켜서 강희의 발바닥을 간지럽혀 호흡이 곤란해지게 해서 숨을 빨리 들이쉬게 하여 마취제가 빨리 퍼지게 한 것이다. 정말 무서운 여자가 아닐수 없었다.


강희는 입술까지 깨물어가면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자신에게 덮쳐 오는,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마취제의 약효를 참아내려 했지만, 정유림이 문제였다!!


간질간질간질

부북 부부북!!


"아흡!!아흐흐~~흐으읍!!!아으윽!!"


"이..이런 제길!! 아씨 진짜!! 놓으란 말이얏!!"


강희는 인상을 찌푸려가면서 고개를 저어댔지만, 여왕이 자신의 허리를 꽉 껴안은채 절대 용납을 않는다. 그때였다.


부르르....


강희가 무섭게 발버둥은 치지만, 조금씩 몸동작이 둔해지는걸 보면서 여왕은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생긋 웃더니 강희의 귓가에 소근거렸다.


"안돼...안돼...넌 자야 해...너에겐 잠이 필요해...얌전히 있어. 응? 잠만 자면 돼..알았지?프린세스.."


"...으읍...으으..."


강희의 고개가 점차 뒤로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추우욱


강희는 결국...또다시 잠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후우...후우..."


"...하아..하아........."


고개를 뒤로 꺾은 강희의 코와 입가에 여전히 마취제가 절은 솜뭉치를 갖다대고 있는 설영. 그런 그 둘을 바라보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유림,


두 사람 다 지금, 완전 무슨, 거대한 맹수와 한판 한 심정이었다. 그것도 생사를 건..

둘은 연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땀을 비오듯 흘렸다. 두 사람의 공포는 그 정도였다.


"하아 하아....회장님?"

"허억 허억..왜그러죠 유림씨?"


"저...이제 완전히 잠든거 같은데...계속 그렇게 오랫동안 솜뭉치를 가져댜대면..위험하지 않을까요?"

강희가 마취되어 고개를 뒤로 젖힌지 2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녀의 호흡기관에 수면성 마취솜을 호흡시키고 있는 설영을 보며 유림은 그리 물었다.

그녀가 염려할만도 한것이, 아까 보니까 솜이 완전 폭삭 젖을정도로 마취제를 적셨던데, 저정도면 마취대상자가 못깨어날수도 있는거 아닌가 싶어서 물은것이다.

하지만 설영은 왼손으론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도, 오른손에선 쉽사리 마취솜을 강희의 콧가에서 내려놓을 생각을 안했다.


설영은 그렇게 오른손으론 강희를 계속 마취솜으로 호흡시키면서, 몸을 조금 돌려 강희의 눈꺼풀을 들어올려보고, 완전히 풀린 눈동자를 확인하면서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유림씨..좀전에도 봤지만 이 아이를 일반 여학생과 똑같이 치부해선 안되요...우리가 오히려 잡아먹힌다구요...이 애는 마음만 먹으면..정말 무슨 일이든 할수 있는 애란 말이에요. 나조차도 이 아이를 잡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베스트 프렌드부터 시작해서 같은 학교의 후배아이들까지 마인드컨트롤을 걸고...그 짧은 길이에 수만달러를 호가하는, 최고의 섬유 아라미드 섬유까지 구입했어요. 오로지 이 아이 하나를 잡기 위해서요."


"...그...그래요?"


새삼 강희의 무서움이 느껴지는 유림은 떨면서 고개를 숙이곤 잠든 여자애의 묶인 발가락이며 발바닥을 바라보았다.


"발은 이렇게 이쁜데.....부드러운 표면을 가진....상냥하고 여릴것만 같은 여고등학생이...이렇게나 무서운....."


유림이 그러고 있는데 설영이 아직까지도 마취제로 강희를 호흡시키면서 말했다.


"이 아이를 재우려면 적어도...코끼리도 잡을 수 있는 수면제를 써야 해요....휴우 암튼....."


그녀는 강희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는 강희의 귓볼을 혀끝으로 살짝 만져준 후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물론 쌕쌕거리면서 잠든 강희는 들을수 없었지만...


"힘쎄고 말안듣는 아이를 자녀로 둔 어머니들은....무진장 고생이겠어..후훗~"






1시간 뒤

정유림은 눈을 좀 크게 뜨면서 물었다.

"지금 데려가시게요?"

속옷 차림인채 퀸의 등에 업힌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강희의 얼굴을 보면서 정유림이 던진 질문이다.

그녀의 시선에 보이는 강희는, 마취솜이 젖어든채 양 귀에 걸려 마스크를 걸친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강희의 신체조건이 얼마나 뛰어난지 대략 지켜본 여왕이, 강희가 혹여 깨어날까봐 아예 지속적으로, 강희를 못 깨어나게 할 속셈으로 착용시킨 강제수면성 마스크였다.


"확실히 저걸 계속 채워놓으면 아무리 저 아이라 해도 깨어나지 못하겠지. 호흡하면서 계속 마취향을 맡는거니까.."

유림은 강희의 편안히 잠든 얼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왕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다시 한번 강희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치켜올리면서 끙차 하고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네. 여기 있는 아라미드 섬유만으론 불안해요. 아는 사람 중에 Dr. sole(발바닥). 닥터 솔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티클링에 관한한 개인 연구소를 가진 중년의 박사가 있거든요. 그 박사와 힘을 합쳐서, 이 아이를 완전히 결박할 셈이에요. 도망 못가게 하려구요."


"그 박사는 이 아이를 온전히 제압할 수단이 있나요?"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무리 이 아이라 해도...박사와 제가 힘을 합치면...후후.....설령 공룡이 현재 세상에 있다 해도 꼼짝 못할걸요. 박사는 구속에 관한 한 전문이니까요. 나도 나름대로 꽤 생각해둔게 있고"


정유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물었다.


"한유정은요?"

여왕은 말했다.


"이미 지시를 내려두었어요. 그 아인 그냥 월요일부터 다시 학교에 나가면 되요 평범하게. 이미 손은 다 써놨고...그리고 이번 계약직. 한유정을 유림씨에게 준다는 조건이었지요? 뭐. 마음대로 하세요. 그것도 말해뒀으니 유정이는 당신이 시키는건 다할거에요 후훗"

정유림은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궁금한 질문을 물어보았다.

"보아하니 정말 보통이 아닌 여자애인데....복종시킬 자신이 있으신건가요?"


여왕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딸을 둔 모든 어머니들은, 그 딸이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며 성장하길 바랄거라 보고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여왕은 강희를 업고 욕탕을 나섰다. 욕탕 바로 근처에 자신의 검은색 승용차를 주차시켜놓은 설영. 밖에선 안을 볼수 없게 창문은 검은색 일색으로 덧씌워져 어둡기만 하였다.

여왕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강희를 트렁크에 조심스레 눕히고는 미리 준비해놨던, 트렁크 바닥에 있는, 여우털로 짜인 이불을 여자애의 몸에 덮어씌웠다.


차 안에는 이미 강희가 입고 있었던 의복류와 운동화, 핸드폰 모두 여왕이 회수하여 실어놓은 상태였다.


여왕은 트렁크를 탁 하고 닫은 후에 정유림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요 하는 말을 남기곤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부우웅

여왕이 차를 이끌고 멀어져 갈때까지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림은 생각했다.


"최강희 라....참으로 예쁜 아이었어...휴. 불쌍도 하지. 저 여자는 나보다 더 지독한 레즈로 알고 있는데.....아름다움이 저주로구나 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유림은 다시 욕탕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잃은 최강희를 납치해 유유히 여왕이 사라진 후 한시간 뒤쯤...


xx탕 입구에 정안과 한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xx탕의 현관 입구에선 <임시휴업>이라고 쓰여진 글이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현관 입구 유리문은 잠겨져 있었다.


정안과 한웅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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