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세린, 이번에 결정하면 돌이키지 못한다."
정말로 돌이키지 못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네르세린을 내것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그러나 내 엄포에도 네르세린은 조금 침울한 표정을 지었을 뿐, 번복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제 할애비라는 공작놈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사과했을 뿐이다.
"이미 결정한 걸요. 할아버님, 더 이상 저를 흔들지 말아요."
본인이 그렇다는데야 별 수 있겠는가. 건방진 공작놈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댔지만, 별달리 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 하긴, 여기서 더 뭔가 말했다면 내가 참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무례만 해도 드래곤으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참아준 것이다.
"하지만 6황녀 마마!"
"그만 하세요, 할아버님! 제국의 멸망을 보고 싶으신 거에요?"
세르네린이 호통을 쳤다. 저 아이, 유약하고 온순하기만 한 줄로 알았는데, 의외로 위엄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고통스러운지 안색은 좋지 못했지만, 표정만은 위엄있는 황녀였다.
나는 지나치게 적절할 때 호통을 친 세르네린 탓에 화내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저들을 밖으로 걷어차내고 싶지만, 가만히 놔둬도 세르네린이 알아서 할 것 같으니.
"멸망당해도 변명조차 못할 일을 저질렀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숨쉬고 있는 건 레스테나드님 덕분이잖아요? 할아버님, 제발... 더 이상은 주인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주인님! 세르네린이 나를 가리켜 주인님이라 말했다. 주인님이라, 주인님이라! 뭐랄까... 라이아에게서 처음 주인님이란 말을 들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뭔지 알 수 없는 흥분감이 솟아올랐다. 이건 설마 성욕인가? 아니다, 성욕과도 다르다.
정체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가벼운 흥분을 즐기며, 나는 어느샌가 품에서 잠든 휴린을 세르네린 옆에 눕혔다.
"더 할 말이 남아있는가?"
나는 분노를 가장하며 말했다. 이미 공작들과 할 얘기는 다 했으니 그들이 굳이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자비로웠는지 눈치챌 때가 됐고, 나는 모처럼 좋아진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꼴도 보기 싫은 남자놈들을 쫓아낼 때가 됐다.
"피차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만."
"그리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눈치 꽤 있는 놈과 너무 예의바른 놈 둘이서 시건방진 놈 하나를 붙잡고 일어났다. 건방진 공작놈은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를 꽉 물고 있었지만, 양쪽 팔을 잡고 있는 두놈에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잠깐."
나는 문을 나서려는 공작들을 불러세웠다. 이쯤에서 끝내자고 말은 했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해둬야겠다. 나는 엄밀히 말하여 제국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있는 것이다. 세르네린과 네르세린이 노예가 된 것은 단순히 내게 바쳐진 것이 아니라 헤츨링 사육이라는 사건에 대한 입막음이라는 것.
나는 잠든 휴린의 이불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 아이, 꽤 귀엽지 않나?"
그들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물론 그들의 눈에 휴린이 귀엽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내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닐 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싼 거야."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내쫓았다. 싼 거다. 절대로.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들의 존재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내 감각은 몰라도 판단만큼은.
남겨진 이들은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었다. 세르네린은 내 눈치를 살피고 있고, 라이아는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창밖을 보며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네르세린은 내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네르세린을 올려보며 말했다.
"네르세린."
"네, 주인님."
많이 침착해진 목소리다. 복종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일까. 지금까지 빠지지 않던 반항기나 말꼬리를 높이는 식의 어투는 전혀 아니었다. 복종, 복종인가. 네르세린은 단지 한번의 각오로 주인님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착실한 노예의 온상이 되어 있었다.
글쎄, 바람직하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나는 분명 네게 기회를 줬지만,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고 있어요."
기대한 것과는 달리 곧바로 대답이 나와버렸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도 전혀 겁먹은 기색도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약간 갈라진 것이,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는 못할 만한 상황이다.
"네가 잘못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네르세린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 목소리에 서린 분노를 느꼈으리라. 이대로 내게서 떠나갔다면 모를까, 남기로 결정한 이상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내가 어떤 처분을 내릴지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터. 내 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녀는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힘겹게 대답했다.
"네... 잘못...했습니다."
진정 마음이 깃든 사죄인 것일까? 확신할 수가 없다. 하긴 용서를 구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겨우 말 몇 마디로 용서해줄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기묘한 흥분 속에서도 고개를 들이미는 분노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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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돌이키지 못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네르세린을 내것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그러나 내 엄포에도 네르세린은 조금 침울한 표정을 지었을 뿐, 번복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제 할애비라는 공작놈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사과했을 뿐이다.
"이미 결정한 걸요. 할아버님, 더 이상 저를 흔들지 말아요."
본인이 그렇다는데야 별 수 있겠는가. 건방진 공작놈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댔지만, 별달리 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 하긴, 여기서 더 뭔가 말했다면 내가 참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무례만 해도 드래곤으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참아준 것이다.
"하지만 6황녀 마마!"
"그만 하세요, 할아버님! 제국의 멸망을 보고 싶으신 거에요?"
세르네린이 호통을 쳤다. 저 아이, 유약하고 온순하기만 한 줄로 알았는데, 의외로 위엄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고통스러운지 안색은 좋지 못했지만, 표정만은 위엄있는 황녀였다.
나는 지나치게 적절할 때 호통을 친 세르네린 탓에 화내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저들을 밖으로 걷어차내고 싶지만, 가만히 놔둬도 세르네린이 알아서 할 것 같으니.
"멸망당해도 변명조차 못할 일을 저질렀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숨쉬고 있는 건 레스테나드님 덕분이잖아요? 할아버님, 제발... 더 이상은 주인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주인님! 세르네린이 나를 가리켜 주인님이라 말했다. 주인님이라, 주인님이라! 뭐랄까... 라이아에게서 처음 주인님이란 말을 들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뭔지 알 수 없는 흥분감이 솟아올랐다. 이건 설마 성욕인가? 아니다, 성욕과도 다르다.
정체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가벼운 흥분을 즐기며, 나는 어느샌가 품에서 잠든 휴린을 세르네린 옆에 눕혔다.
"더 할 말이 남아있는가?"
나는 분노를 가장하며 말했다. 이미 공작들과 할 얘기는 다 했으니 그들이 굳이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자비로웠는지 눈치챌 때가 됐고, 나는 모처럼 좋아진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꼴도 보기 싫은 남자놈들을 쫓아낼 때가 됐다.
"피차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만."
"그리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눈치 꽤 있는 놈과 너무 예의바른 놈 둘이서 시건방진 놈 하나를 붙잡고 일어났다. 건방진 공작놈은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를 꽉 물고 있었지만, 양쪽 팔을 잡고 있는 두놈에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잠깐."
나는 문을 나서려는 공작들을 불러세웠다. 이쯤에서 끝내자고 말은 했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해둬야겠다. 나는 엄밀히 말하여 제국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있는 것이다. 세르네린과 네르세린이 노예가 된 것은 단순히 내게 바쳐진 것이 아니라 헤츨링 사육이라는 사건에 대한 입막음이라는 것.
나는 잠든 휴린의 이불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 아이, 꽤 귀엽지 않나?"
그들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물론 그들의 눈에 휴린이 귀엽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내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닐 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싼 거야."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내쫓았다. 싼 거다. 절대로.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들의 존재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내 감각은 몰라도 판단만큼은.
남겨진 이들은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었다. 세르네린은 내 눈치를 살피고 있고, 라이아는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창밖을 보며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네르세린은 내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네르세린을 올려보며 말했다.
"네르세린."
"네, 주인님."
많이 침착해진 목소리다. 복종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일까. 지금까지 빠지지 않던 반항기나 말꼬리를 높이는 식의 어투는 전혀 아니었다. 복종, 복종인가. 네르세린은 단지 한번의 각오로 주인님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착실한 노예의 온상이 되어 있었다.
글쎄, 바람직하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나는 분명 네게 기회를 줬지만,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고 있어요."
기대한 것과는 달리 곧바로 대답이 나와버렸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도 전혀 겁먹은 기색도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약간 갈라진 것이,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는 못할 만한 상황이다.
"네가 잘못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네르세린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 목소리에 서린 분노를 느꼈으리라. 이대로 내게서 떠나갔다면 모를까, 남기로 결정한 이상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내가 어떤 처분을 내릴지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터. 내 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녀는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힘겹게 대답했다.
"네... 잘못...했습니다."
진정 마음이 깃든 사죄인 것일까? 확신할 수가 없다. 하긴 용서를 구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겨우 말 몇 마디로 용서해줄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기묘한 흥분 속에서도 고개를 들이미는 분노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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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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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9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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