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남자의 죽음)
2부 First Mission - REBIRTH 14.
영주성 대회의실!
새롭게 말갈족의 추장이 된 혁과 소서노, 걸조영과 걸걸중상이 모여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걸걸중상이 침울하게 말을 꺼낸다.
"음......상황이 더욱 안좋네. 당에 심어둔 우리 첩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당(唐) 조정에서 이번에 좌장군 이해고(李楷固)를 총대장으로 삼아 백만의 대군을 편성해서 이곳 영주성으로 고구려 토벌군을 파견한다고 하네...."
"정확히 영주성의 가능 동원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어제 총 인구수가 5만이라는 소릴 듣긴 했지만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음...그건.....제수씨에게 물어보는게 빠르겠군."
걸걸중상은 슬쩍 소서노에게 고갯짓을 하였다.
"이곳 영주성의 총 인구는 오만 사천이고 이중에서 남자가 삼만 명입니다. 그 중에서 노인과 아이를 빼면 정병(丁兵 : 15세에서 60세 사이의 성인 남자)은 일만 오천명 가량 됩니다."
일만 오천!!!
혁은 이마를 찌푸리며 상황의 심각성을 새삼 인식하였다.
"으음....일만 오천으로 백만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다니.....힘들겠군요."
"힘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겠지...으음...."
걸걸중상은 괴로운 듯 두팔을 깍지끼고 고개를 파묻었다.
"혁 아우님. 차라리 이번에는 유민들을 분산시켜서 당에 흩어버리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어떠하겠는가?"
"그건 안됩니다! 형님! 당에서 내려준 진국공(震國公)벼슬도 마다하신 형님께서 이렇게 약한 말씀을 하시다니요!"
"그럼 어찌하는가! 아우님! 이대로 맞서 싸우다가는 이곳 영주성은 전멸일세!! 당(唐)놈들이 우리를 그대로 살려줄 것 같은가! 이곳에는 풀 한포기 남지 않을것일세! 으흐흑!!"
걸걸중상은 안타까움에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말했다.
"형님....고정하십시오. 일단 이곳을 탈출해야 합니다.. 여기는 당과 맞서 싸우기가 너무 힘든 지형입니다. 사방이 평야로 탁 트인 이곳 영주성에서는 대군과 싸우기가 어렵습니다. "
"탈출한다니!! 우리만 이곳을 빠져나간단 말인가!! 그럼 남아있는 우리 백성들은? 그들은 죽어도 좋단 말인가!"
걸걸중상은 불같이 노해서 하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면서 혁을 노려보며 외쳤다.
혁은 노한 걸걸중상 앞에서도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같이 갑니다."
"뭣이! 같이 간다고? 그게 가능한 말인가?"
이때 잠자코 있던 걸조영이 중간에 말을 자르며 끼어 들었다.
"불가능합니다!! 사방에 당(唐)의 첩자들이 깔려있는데 들키지 않고 오만이 넘는 인원들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더구나 대부분이 비전투원들인데..."
혁은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어야합니다. 백성이 없는 나라는 있을 수 없고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함께 갑니다!!"
"말은 맞는 말이나 어떻게....."
"음.....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일단 제가 오다보니 동모산(東牟山)쪽에 조그마한 산성이 보이더군요. 입구가 좁고 사방이 산으로 막힌 지형이라 수성(守成)에 용이한 호리병모양의 지세(地勢)더군요. 그리로 탈출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만..."
걸조영은 재차 혁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숙부님! 불가능합니다. 동모산성(東牟山城)은 여기서 천리(400㎞)나 떨어진 곳입니다. 말을 타지도 않고 걸어서 이 많은 백성들을 데리고 어떻게 간단 말입니까!"
혁은 그윽히 안타까워하는 젊은 걸조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젊은 나이에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밖에 모르는군. 좀 가능한 생각을 해보면 안되겠는가?"
"그건....."
걸조영은 혁의 지적에 말문이 막혀서 고개를 떨군다.
"그건 제가 보기에도 조금 힘든 일 같습니다만"
소서노도 걸조영을 거들며 만류하였다.
"서노.....아무리 힘들어도 백성을 버리면 안되는 것이오. 그것이 바로 우리 위정자(爲政者)가 해야할 임무라오. 설마 당신은 이제껏 당신이 백성들보다 윗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산 것이 아니오?"
소서노는 혁의 부드럽지만 칼날같은 지적에 고개를 푹 숙인다.
혁은 좌중을 둘러보며 위엄있게 말하였다.
"조영, 서노 잘 들으시게. 우리가 먹는 쌀 한톨, 고기 한점도 다 백성들의 피땀에서 나온것일세. 우리가 백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생충(寄生蟲)밖에 안되는 것일세!!!"
장내에는 혁의 서릿발같은 위엄으로 숙연해졌다.
이때, 고개를 묻고있던 걸걸중상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핫! 이거 아우님에게 한 수 배웠네 그려!! 나도 그동안 깜박 잊고 지내던 걸 다시 아우님께서 일깨워 주셨구랴!! "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할 뿐입니다."
혁은 황급히 공손하게 사과하였다.
"아닐세. 방금 혁아우님께서 말씀하신게 참으로 옳으이! 들어라! 제수씨! 조영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백성들과 함께 간다!! 만일 더 이상 토를 다는 자가 있다면....."
걸걸중상은 칼을 스스릉 뽑아서 탁자위에 탁 꽂았다.
"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시아주버님." "알겠습니다. 형님!"
회의장의 분위기는 갑자기 해보자는 의욕으로 가득차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이런저런 회의를 하다가 혁은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자리를 빠져나와 성내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음.....말은 그렇게 했지만 힘들어....어떻게 해야 하지...."
혁은 장차 닥쳐올 대환란(大患亂)에 걱정이 되었다.
성내의 대부분의 백성들은 평소에 무기라고는 잡아보지 못한 농민들이다.
그들도 장래에 닥쳐 올 환란을 예견하곤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을 진정시켜서 동모산까지 함께 가야한다. 어떻게 할까....어떻게 해야 하나...
혁이 무작정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성내의 북문쪽까지 와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초라한 오두막 속에서 웬 아이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무서워요. 이제 우리는 다 죽는거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거라.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거야. 우리에게는 혈발사신님이 계시지 않느냐."
"혈발사신님이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가요?"
"그럼~~~ 혈발사신님의 무공은 신(神)과 같으신 분이야. 돌아가신 전대 추장님께서 우리 말갈족들을 살려주려고 혈발사신님을 보내신 거란다."
"와~~~ 대단하네요~~~"
"그럼~~~ 어떠한 경우에도 그분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거야. 자~~ 착한 우리 애기 이제 그만 자야지~~~"
"헤헤헤... 요즘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인기있는줄 아세요?"
"글쎄다... 걸걸중상님이시니?"
"에이~~~ 성주님도 인기있는 분이지만 요즘은요 혈발사신님이 인기 짱!! 이라구요~~헤헤헤.."
"호호호... 그러니? 우리 온(순우리말로 100이라는 뜻)이도 커서 혈발사신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야 한단다..."
"네!! 꼭 그분처럼 우리 말갈족을 구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거에요!!"
"호호호....이 어미는 우리 온이만 보고 있으면 너무 대견해요...호호호..."
"헤헤헤..... 저도요 엄마가 너무 좋아요....헤헤"
두 모자의 소리가 비록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움막이지만 정겨운 대화로 이어진다.
혁은 자기도 모르게 슬쩍 움막안을 들여다보았다.
평범한 30대 후반의 여인과 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맑은 사내아이가 한참 정겨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혁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사내아이를 보자 하계에 버려두고 온 딸 정현이 생각났다.
반드시 이들과 함께 동모산으로 가야한다. 어린아이의 눈망울에 다시는 눈물이 맺히지 않도록..... 혁은 가슴깊이 치밀어 오르는 무거운 사명감에 갑자기 힘이 번쩍 나는 듯 하였다.
병사들도 백성들도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 반드시 탈출시켜야 한다. 반드시.....반드시....
혁은 급히 회의실로 다시 되돌아가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회의실문이 벌컥 열리며 한 병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급히 뛰어 들어왔다.
"성주님.....크....큰일 났습니다!!"
"뭐냐?"
"당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뭣이! 이렇게나 빨리!!!"
당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리에 회의장에 모든 사람들은 벌떡 일어서 버렸다.
걸걸중상은 급히 병사에게 고함치듯이 물었다.
"당의 본대는!!! 성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성에서 300리 밖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큰일이군...."
걸걸중상은 손을 이마에 짚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형님!! 이렇게 가만히 계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빨리 성안에 일제 동원령을 내리시고 백성들에게 피난준비를 지시하십시오!!"
"그...그렇지.... 제수씨!! 빨리 나가서 백성들을 피난준비를 시키시게!!"
소서노는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조영아! 너도 빨리 나가서 병사들을 모으거라!!"
걸조영도 곧 투구를 쓰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형님! 우리도 나가봐야죠!!"
"그렇지!!"
"참! 형님 혹시 쓸만한 칼이 있으시면 두 자루만 주십시오!"
"그렇겠군"
걸걸중상은 급히 성주실로 들어가서 5척의 환두대도 두자루를 혁에게 건네주었다.
"흠....이 칼은..."
혁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대도를 바라보며 감탄하였다.
"우리 가문에서 선황제(先皇帝)께 하사받은 천지도(天地刀)일세"
"이건...가문의 가보가 아닙니까!"
"이 환란중에 가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명도는 주인을 알아보는 법일세. 내 보기에 자네만큼 이 도에 어울리는 사람도 찾기 힘들 듯 싶으이."
"감사합니다. 형님"
혁은 상황이 급박한지라 사양않고 두자루를 받아서 허리에 차고 걸걸중상과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영주성 성문위 누각!
걸걸중상과 혁, 그리고 걸조영이 안색을 찌푸리고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보이시는가? 아우님?"
"전 먼지구름밖에는 안보이는데요. 아버님"
"음....당의 본대는 300리 밖에 진을 치고있고 당의 선봉대가 50리 밖에 진을 치고 있군요."
"아... 역시 혁아우님은 대단하이..."
걸걸중상과 걸조영은 새삼 혁의 놀라운 무공에 감탄하였다.
"어엇! 저거 뭐지? 누가 여기로 달려오고 있잖아?"
당의 선봉대에서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나오고 있었다!!
9척의 장신에 고리짝 눈을 하고 입주위에는 온통 고슴도치같은 수염을 한 적장(賊將)!!
"으하하!! 누가 나와서 이 설인귀(薛仁鬼)님의 칼을 받겠느냐!! 고구려의 쥐새끼들아!!"
"아니...저놈이!!"
성문위에서 설인귀라 불리는 장수를 바라보던 걸조영은 뛰쳐나가려 하였다.
"가만히 있으시게 조카님!! 저놈은 내가 상대해보지!!"
혁은 급히 갑주도 걸치지 않고 천지도만 차고 말을 몰고 성문으로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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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First Mission - REBIRTH 14.
영주성 대회의실!
새롭게 말갈족의 추장이 된 혁과 소서노, 걸조영과 걸걸중상이 모여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걸걸중상이 침울하게 말을 꺼낸다.
"음......상황이 더욱 안좋네. 당에 심어둔 우리 첩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당(唐) 조정에서 이번에 좌장군 이해고(李楷固)를 총대장으로 삼아 백만의 대군을 편성해서 이곳 영주성으로 고구려 토벌군을 파견한다고 하네...."
"정확히 영주성의 가능 동원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어제 총 인구수가 5만이라는 소릴 듣긴 했지만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음...그건.....제수씨에게 물어보는게 빠르겠군."
걸걸중상은 슬쩍 소서노에게 고갯짓을 하였다.
"이곳 영주성의 총 인구는 오만 사천이고 이중에서 남자가 삼만 명입니다. 그 중에서 노인과 아이를 빼면 정병(丁兵 : 15세에서 60세 사이의 성인 남자)은 일만 오천명 가량 됩니다."
일만 오천!!!
혁은 이마를 찌푸리며 상황의 심각성을 새삼 인식하였다.
"으음....일만 오천으로 백만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다니.....힘들겠군요."
"힘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겠지...으음...."
걸걸중상은 괴로운 듯 두팔을 깍지끼고 고개를 파묻었다.
"혁 아우님. 차라리 이번에는 유민들을 분산시켜서 당에 흩어버리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어떠하겠는가?"
"그건 안됩니다! 형님! 당에서 내려준 진국공(震國公)벼슬도 마다하신 형님께서 이렇게 약한 말씀을 하시다니요!"
"그럼 어찌하는가! 아우님! 이대로 맞서 싸우다가는 이곳 영주성은 전멸일세!! 당(唐)놈들이 우리를 그대로 살려줄 것 같은가! 이곳에는 풀 한포기 남지 않을것일세! 으흐흑!!"
걸걸중상은 안타까움에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말했다.
"형님....고정하십시오. 일단 이곳을 탈출해야 합니다.. 여기는 당과 맞서 싸우기가 너무 힘든 지형입니다. 사방이 평야로 탁 트인 이곳 영주성에서는 대군과 싸우기가 어렵습니다. "
"탈출한다니!! 우리만 이곳을 빠져나간단 말인가!! 그럼 남아있는 우리 백성들은? 그들은 죽어도 좋단 말인가!"
걸걸중상은 불같이 노해서 하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면서 혁을 노려보며 외쳤다.
혁은 노한 걸걸중상 앞에서도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같이 갑니다."
"뭣이! 같이 간다고? 그게 가능한 말인가?"
이때 잠자코 있던 걸조영이 중간에 말을 자르며 끼어 들었다.
"불가능합니다!! 사방에 당(唐)의 첩자들이 깔려있는데 들키지 않고 오만이 넘는 인원들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더구나 대부분이 비전투원들인데..."
혁은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어야합니다. 백성이 없는 나라는 있을 수 없고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함께 갑니다!!"
"말은 맞는 말이나 어떻게....."
"음.....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일단 제가 오다보니 동모산(東牟山)쪽에 조그마한 산성이 보이더군요. 입구가 좁고 사방이 산으로 막힌 지형이라 수성(守成)에 용이한 호리병모양의 지세(地勢)더군요. 그리로 탈출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만..."
걸조영은 재차 혁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숙부님! 불가능합니다. 동모산성(東牟山城)은 여기서 천리(400㎞)나 떨어진 곳입니다. 말을 타지도 않고 걸어서 이 많은 백성들을 데리고 어떻게 간단 말입니까!"
혁은 그윽히 안타까워하는 젊은 걸조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젊은 나이에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밖에 모르는군. 좀 가능한 생각을 해보면 안되겠는가?"
"그건....."
걸조영은 혁의 지적에 말문이 막혀서 고개를 떨군다.
"그건 제가 보기에도 조금 힘든 일 같습니다만"
소서노도 걸조영을 거들며 만류하였다.
"서노.....아무리 힘들어도 백성을 버리면 안되는 것이오. 그것이 바로 우리 위정자(爲政者)가 해야할 임무라오. 설마 당신은 이제껏 당신이 백성들보다 윗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산 것이 아니오?"
소서노는 혁의 부드럽지만 칼날같은 지적에 고개를 푹 숙인다.
혁은 좌중을 둘러보며 위엄있게 말하였다.
"조영, 서노 잘 들으시게. 우리가 먹는 쌀 한톨, 고기 한점도 다 백성들의 피땀에서 나온것일세. 우리가 백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생충(寄生蟲)밖에 안되는 것일세!!!"
장내에는 혁의 서릿발같은 위엄으로 숙연해졌다.
이때, 고개를 묻고있던 걸걸중상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핫! 이거 아우님에게 한 수 배웠네 그려!! 나도 그동안 깜박 잊고 지내던 걸 다시 아우님께서 일깨워 주셨구랴!! "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할 뿐입니다."
혁은 황급히 공손하게 사과하였다.
"아닐세. 방금 혁아우님께서 말씀하신게 참으로 옳으이! 들어라! 제수씨! 조영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백성들과 함께 간다!! 만일 더 이상 토를 다는 자가 있다면....."
걸걸중상은 칼을 스스릉 뽑아서 탁자위에 탁 꽂았다.
"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시아주버님." "알겠습니다. 형님!"
회의장의 분위기는 갑자기 해보자는 의욕으로 가득차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이런저런 회의를 하다가 혁은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자리를 빠져나와 성내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음.....말은 그렇게 했지만 힘들어....어떻게 해야 하지...."
혁은 장차 닥쳐올 대환란(大患亂)에 걱정이 되었다.
성내의 대부분의 백성들은 평소에 무기라고는 잡아보지 못한 농민들이다.
그들도 장래에 닥쳐 올 환란을 예견하곤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을 진정시켜서 동모산까지 함께 가야한다. 어떻게 할까....어떻게 해야 하나...
혁이 무작정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성내의 북문쪽까지 와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초라한 오두막 속에서 웬 아이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무서워요. 이제 우리는 다 죽는거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거라.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거야. 우리에게는 혈발사신님이 계시지 않느냐."
"혈발사신님이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가요?"
"그럼~~~ 혈발사신님의 무공은 신(神)과 같으신 분이야. 돌아가신 전대 추장님께서 우리 말갈족들을 살려주려고 혈발사신님을 보내신 거란다."
"와~~~ 대단하네요~~~"
"그럼~~~ 어떠한 경우에도 그분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거야. 자~~ 착한 우리 애기 이제 그만 자야지~~~"
"헤헤헤... 요즘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인기있는줄 아세요?"
"글쎄다... 걸걸중상님이시니?"
"에이~~~ 성주님도 인기있는 분이지만 요즘은요 혈발사신님이 인기 짱!! 이라구요~~헤헤헤.."
"호호호... 그러니? 우리 온(순우리말로 100이라는 뜻)이도 커서 혈발사신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야 한단다..."
"네!! 꼭 그분처럼 우리 말갈족을 구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거에요!!"
"호호호....이 어미는 우리 온이만 보고 있으면 너무 대견해요...호호호..."
"헤헤헤..... 저도요 엄마가 너무 좋아요....헤헤"
두 모자의 소리가 비록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움막이지만 정겨운 대화로 이어진다.
혁은 자기도 모르게 슬쩍 움막안을 들여다보았다.
평범한 30대 후반의 여인과 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맑은 사내아이가 한참 정겨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혁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사내아이를 보자 하계에 버려두고 온 딸 정현이 생각났다.
반드시 이들과 함께 동모산으로 가야한다. 어린아이의 눈망울에 다시는 눈물이 맺히지 않도록..... 혁은 가슴깊이 치밀어 오르는 무거운 사명감에 갑자기 힘이 번쩍 나는 듯 하였다.
병사들도 백성들도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 반드시 탈출시켜야 한다. 반드시.....반드시....
혁은 급히 회의실로 다시 되돌아가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회의실문이 벌컥 열리며 한 병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급히 뛰어 들어왔다.
"성주님.....크....큰일 났습니다!!"
"뭐냐?"
"당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뭣이! 이렇게나 빨리!!!"
당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리에 회의장에 모든 사람들은 벌떡 일어서 버렸다.
걸걸중상은 급히 병사에게 고함치듯이 물었다.
"당의 본대는!!! 성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성에서 300리 밖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큰일이군...."
걸걸중상은 손을 이마에 짚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형님!! 이렇게 가만히 계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빨리 성안에 일제 동원령을 내리시고 백성들에게 피난준비를 지시하십시오!!"
"그...그렇지.... 제수씨!! 빨리 나가서 백성들을 피난준비를 시키시게!!"
소서노는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조영아! 너도 빨리 나가서 병사들을 모으거라!!"
걸조영도 곧 투구를 쓰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형님! 우리도 나가봐야죠!!"
"그렇지!!"
"참! 형님 혹시 쓸만한 칼이 있으시면 두 자루만 주십시오!"
"그렇겠군"
걸걸중상은 급히 성주실로 들어가서 5척의 환두대도 두자루를 혁에게 건네주었다.
"흠....이 칼은..."
혁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대도를 바라보며 감탄하였다.
"우리 가문에서 선황제(先皇帝)께 하사받은 천지도(天地刀)일세"
"이건...가문의 가보가 아닙니까!"
"이 환란중에 가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명도는 주인을 알아보는 법일세. 내 보기에 자네만큼 이 도에 어울리는 사람도 찾기 힘들 듯 싶으이."
"감사합니다. 형님"
혁은 상황이 급박한지라 사양않고 두자루를 받아서 허리에 차고 걸걸중상과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영주성 성문위 누각!
걸걸중상과 혁, 그리고 걸조영이 안색을 찌푸리고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보이시는가? 아우님?"
"전 먼지구름밖에는 안보이는데요. 아버님"
"음....당의 본대는 300리 밖에 진을 치고있고 당의 선봉대가 50리 밖에 진을 치고 있군요."
"아... 역시 혁아우님은 대단하이..."
걸걸중상과 걸조영은 새삼 혁의 놀라운 무공에 감탄하였다.
"어엇! 저거 뭐지? 누가 여기로 달려오고 있잖아?"
당의 선봉대에서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나오고 있었다!!
9척의 장신에 고리짝 눈을 하고 입주위에는 온통 고슴도치같은 수염을 한 적장(賊將)!!
"으하하!! 누가 나와서 이 설인귀(薛仁鬼)님의 칼을 받겠느냐!! 고구려의 쥐새끼들아!!"
"아니...저놈이!!"
성문위에서 설인귀라 불리는 장수를 바라보던 걸조영은 뛰쳐나가려 하였다.
"가만히 있으시게 조카님!! 저놈은 내가 상대해보지!!"
혁은 급히 갑주도 걸치지 않고 천지도만 차고 말을 몰고 성문으로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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