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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제뷔트의 신부 - 1부24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5 00:29 672회 0건
전편은 어느 개객기(보고 있냐? 너말이야 너)가 친절하게 불펌해줘서 구글에서 23편까지 검색될거임. 땡스요 근데 이번편 섹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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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한달 정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날씨는 무더워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더위로 탈진한 이는 수백여명. 죽은이도 다섯이나 된다. 옆의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선박을 세워 탈진한 병사들만이라도 실을까 했지만 군의 사기 문제가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다들 하루에 열두시간 씩 살인적인 행군에 지쳐간다. 더위에 대비해 최소 무장만 남기고 모조리 배에 실었고 식수도 강을 끼고 있어 문제가 없지만 아무래도 익숙치 못한 날씨의 변덕이 문제다. 낮에는 대단히 덮고 밤은 대단히 춥다. 동사 판정으로 사망한 병사도 셋, 전갈독에 죽은 이 둘. 탈영하다 잡혀 처형당한 병사 다섯. 이 정도 예상은 했으나 전투도 한번 치루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안타깝다. 결국 밤마다 열띤 의논 끝에 사령부는 행군 강도는 높이되 하루 여덟시간으로 이동시간을 줄였다. 군대는 유지하는 것만해도 어마어마한 돈이 나간다. 특히 대군을 유지하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 무더운 사막 지방으로 나오면서 병사는 물론 간부들까지 딱딱한 밀가루 덩어리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변변치 않은 식사에 불만이 속출했지만 방도가 없었다. 간혹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었지만 언제나 가능한 것도 아니고 악어나 자이언트 피라냐가 자주 출몰하기에 위험했다.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구나. ”

밤 하늘의 별자리와 지도 상의 거리를 대입해 주둔지와의 거리를 계산한 윌리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일 쯤이면 강을 통해 배를 타고 내려간 이들이 주둔지에서 짐을 풀고 전초기지 건설을 착수할테고 현지인들의 협력하에 서둘러 보급물자를 올려줄 것이다.

“ 으으 춥다. ”

따뜻한 코코아를 한잔 마셨지만 추위가 가시질 않는다. 윌리엄은 참모부의 핵심이었다. 주로 하는 일은 군의 이동 경로와 보급에 관련된 전략 등. 수십만 병사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이동한다. 사실상 전투 외에 귀찮은 일은 모조리 그와 동료들에게 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대우는 상당히 좋았다. 개인 막사가 제공되는 점 하나만으로 바깥에서 노숙하는 이들과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이제 슬슬 잠이들 시간. 보초들이 서성이는 것 빼고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윌리엄은 또 한번 바깥을 살핀 뒤 안으로 들어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자그마한 자물쇠를 풀고 뚜껑을 열자 경악스럽게도 내용물은 왠 여성용 팬티가 있었으니.

“ 오늘은... 역시 마리엘과 함께 해야지. ”

총 석장의 팬티는 각각 마리엘과 헤르미나 세레스의 것으로 하루종일 입은 것을 그대로 상자속에 넣어 여기까지 가져왔다. 이런 변태스런 아이디어의 주인은 헤르미나였다. 마리엘이나 세레스 몰래 팬티를 챙겨 상자에 담아 줬는데 외로울때마다 하나씩 골라 냄새 맡으며 자위하라는 눈물나는 배려심이 아닌가. 무척이나 불순한 행위라 희대의 치녀 헤르조차 건내면서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뜨거운 지역을 오랫동안 이동했기에 밀폐된 상자속에 보관된 팬티의 냄새는 영 좋지 못했지만 희미하게나마 그녀들의 채취가 남아있어 윌리엄은 도무지 참지 못할 밤이 될때마다 한장씩 꺼내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면서 자위를 하였다.

“ 아아아~ 마리엘... ”

- 탁탁탁탁탁! -

사실 당장 집에 돌아가서 마리엘의 말랑하고 푹신한 젖가슴에 파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거기다 헤르미나와 세레스가 사이좋게 펠라치오를 해주면 금상첨화. 실제로 경험도 있고 그 기억들은 지금 윌리엄의 소중한 딸감으로 쓰이고 있다. 능숙치 못한 세레스가 고양이마냥 귀두에 대고 혀를 낼름낼름 거릴때의 아찔한 감각!

“ 아아아악! 제기랄! 그냥 집구석에 쳐박혀 있을걸 흐흐흑. ”

굳이 남벌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었다. 윌리엄이 하는 업무는 주로 국가 경제나 교역 관련업으로 나라의 재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있다. 남벌 참여는 순전히 남들 다 가는데 혼자만 집지키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 뿐. 실제로 친구들은 남벌 군 곳곳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중이다. 물론 공을 세워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목적도 있지만 그냥 아버지에게 허락받기 좋은 허울이기도 하다. 윌리엄은 팔에 힘을 실었다. 이제 곧 나온다!

“ 아하아아.. 마리엘.. 마리에에엘.. ”

팬티의 채취를 더욱 힘껏 마시며 파워풀한 용두질 끝에 마침내 아랫도리에서 확하고 올라온다.

- 찌이익! -

걸죽한 정액이 공중으로 반 미터는 날아올랐을까. 그와 동시에 천막 입구가 걷히고 가넷 페더가 항상 얼음같은 포커페이스를 깨뜨리고 몹시 당황했다.

“ ................... ”
“ ............... ”

윌리엄은 말없이 탁자 위의 천을 가져가 목줄기까지 솟구친 백탁액 찌거기를 닦았다. 가슴팍으로 내려가 배꼽 주변 마무리로 푹 젖은 귀두 부분을 깨끗하게 닦고 바지를 올린 남자는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 앉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땅이 꺼져라 숙인다.

“ 미.. 미.. 미안하다.. 대답이.. 없.. 길래.. 혹시나 해서.. 하하.. 하.. ”

여기사 가넷 페더는 무안한 상황에 우선 의자부터 찾았다. 윌리엄은 한동안 말이 없다. 가넷은 그녀대로 미안하면서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남성의 생리를 모르는건 아니다. 약혼자였던 제이크 리빙스턴 남작과 한 침대에 오르길 몇 번. 남성에 대해 약간은 배웠다. 윌리엄도 건장한 성인. 성욕도 당연히 있을 법 하지만 솔직히 크게 쇼크를 먹은건 그가 가진 이미지였다. 황궁에서 윌리엄은 특히 시녀들에게 자주 입방아가 오르는 대상이었다. 그가 지날떄마다 시녀들의 수근거림이 끊이지 않았고 가넷 역시 지나가면서 여기사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듣는다. 대게 그의 외모와 능력에 관련된 반응이었다. 잘생겼다느니 똑똑하다느니 항상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상하 관계 없이 매사에 깍듯이 대해주는 점에서 변변찮은 귀족 출신인 시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으리라. 생각해보면 황궁에서 그를 싫어하는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더군다나 천하의 헤르미나 황녀가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맞선을 그것도 황제가 주선한 자리마저 단칼에 거절하는 이유가 윌리엄에게 있다는 소문이 있다. 무려 윌리엄의 아내가 헤르미나 황녀와 버금가는 대륙의 손꼽히는 미녀. 마리엘 슈나우더 임에도 말이다. 설마 이혼 기도라도 하는 걸까.

“ 그래도 조금은.. 충격이구나.. ”
“ 하아.. ”

그가 여덟살 쯤 때였으이라. 윌리엄이 누나 리사의 바지자락을 잡으며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는 모습.

“ 그땐 참 귀여운 꼬마였는데.. ”

차가운 냉혈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몹시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 언제 말씀이시죠? ”
“ 네가 아카데미 초등부 입학식 날. 넌 잘 모르겠지만 대단히 유명인이었어. 스튜어트 공작가의 아들이니까. 장차 커서 가문과 작위를 계승해 나라의 중역이 될지도 모르는 재목이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굉장히 경계했었지. 으으음.. 정말로 쬐그맣고 귀여운 아이였는데.......!!! ”

가넷이 화들짝 놀라 눈을 돌리자 윌리엄도 덩달아 당황했다.

“ 아.. 아니...그때는 .. 귀여웠다고.. 하하.. 오해하지마. ”
“ 뭘요. 어릴땐 다 귀여웠잖아요. ”
“ 그렇지? ”

윌리엄은 속으로 안도했다. 역시 그녀는 보기와 달리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남벌 이후 내내 무표정에 때때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불안했었지만 본심이 아니란걸 지금 이 순간부터 확신되었다.

“ 저기 오늘 일은.. 비밀로.. ”
“ 사랑하는 아내의 팬티를 종류별로 가져와 냄새를 맡으며 자위하던 일을 잊어달라는 거지? 하지만 이상한걸. 보니까 사이즈가 다른데? ”

노골적인 주석을 달며 직접 확인하려 들자 윌리엄은 냉큼 팬티들을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 혹시 마리엘 공주를 두고 다른 여자를.. ”
“ 그럴리가 있습니까! ”

가넷 페더는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일소시켰다. 다소 장난끼가 섞였던 얼굴도 냉철하게 돌아와 테이블에 앉는다.

“ 어찌되었건 경과 상의 할 일이 있어 찾아왔다. ”

최근들어 군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윌리엄도 짤막하게 보고는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지금은 달랐다. 가넷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병사들 사이에 악몽 이야기가 많아. 나 역시 악몽을 꾸었고 부하들도 절반 이상이 각자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꿈을 꾸었다더군. 내용은 천차만별이야. ”
“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
“ 그대는 어떤가? 악몽을 꾼 적은 없는가? ”

악몽은 커녕 마리엘과 헤르, 세레스 셋이서 한침대에 올라 격렬하게 섹스하는 꿈만 지독시리 꿔서 미칠 지경이다. 가뜩이나 해소할 여건도 안되는데 하루종일 하체가 빳빳하게 서서 땀과 섞여 속옷에 휩쓸릴때의 쓰라림이란..

“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는 느낌이야. 악몽을 꾼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는가? 하루에만 끝나는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 나흘에 한번. 이틀에 한번. 심지어 매일 꾸는 병사는 정신이 피폐해져 성격이 몹시 날카롭고 호전적으로 돌변한다더군. 엊그제 탈영한 병사들 중 둘은 매일 악몽을 꾼다고 호소한 자들이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이교도들의 저주라느니 별별 희안한 소문이 다돌고 있어. 장기간의 행군이라 정신과의 싸움이지만 이건 꼭.... ”
“ 짚이는 곳이라도 있나요? ”
“ 애초에 남벌 자체가 문제가 많아. 제국군의 절반 가량을 툭 때였다. 5만 정도의 기마군으로 구성해서 빠른 시간내 타격을 해야지 이런 식으로는 시간과 돈 낭비.. 관리할 부분이 예상외로 많아졌어. 지속적으로 간부급을 차출해 관리했지만 이것도 한계다. ”
“ 잘 알고 있습니다. 율단 왕국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은 카르델 국왕이 직접 군을 지휘하는 부분에 불만이 많으니까요. ”
“ 혹시나 하지만 악몽은 단순히 시작이고 뭔가 더 큰 일이 벌어질 거란 예감이 든다. ”

윌리엄은 싱긋 웃으며 가넷의 어깨를 토닥였다

“ 저역시 불안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걱정은 보급로의 차단으로 이렇게 많은 군이 식량 부족 문제를 겪을까 걱정됩니다. ”

처음 남벌 계획을 잡고 이 문제에 대해 수도 없이 토론했었다. 처음부터 군대의 수를 줄이면 되지 않냐는 안이 있었으나 교황국은 최대한 많은 병사들을 동원해 쓸어버려야한다고 신이란 이름의 명분으로 크게 반발해 전부 갈아 엎은게 지금의 이 방식이다. 물자를 싣은 배들이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행군 쪽으로 식량과 장비를 던져주고 목적지에 도달해 짐을 전부 푼 다음 물줄기를 따라 바다에 진입 후 육지 외곽을 돌아서 다시 보급을 받아 강을 타고 내려오는 딱 한번씩 로테이션을 돌리면 대강 전시 계획이 종료될 예정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본대는 나름대로 일정 거리에 맞춰 이동하면서 봉화대를 짓고 약 백 명의 군이 남아 방위 업무를 맡게된다. 이론상으로 최적안이었고 실제로도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물론 애초에 군의 수를 대폭 줄였으면 이런 고생도 없겠지만.

“ 도착 후에도 걱정인걸.. ”
“ 알고 계셨습니까? ”

가젯이 말한 일은 도착 후 군을 재편성 하여 이교도 지역을 토벌하는 일이다. 도중에 오아시스 하나 없는 사막이라 최소 5만 정도는 동원해야 정확한 실체를 모르는 이교도 집단의 변수를 차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나온 방식이 선발대 5만이 먼저 출발하고 보름 뒤 후속대가 물자를 가져가면서 선발대와 교대하는 식으로 해야 안정적이다.

“ 일단은 늦었으니 숙소로 돌아가겠다. 편히 쉬도록.. ”

악몽이라. 윌리엄은 그냥 들어눕기에 너무 아쉬웠다. 다시 상자쪽으로 손을 대려하자 천막이 열리고 가넷이 얼굴을 빼곰히 들이댄다.

“ 너무 무리하지마라. ”
“ 커.. 커.. ”

그로부터 사흘 뒤. 회의에서 악몽을 비롯해 지친 병사들의 노고를 풀기 위하여 하룻동안 행군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교황국 측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지친건 마찬가지라 곧 침묵했다. 사령부 막사에서 윌리엄의 손이 지도 위로 바쁘게 움직인다. 이교도 집단의 아지트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군을 배치하여 최소한의 피해를 받아 최대한의 공격을 하느냐. 그뿐만 아니라 참모진 전원이 머리를 맞대고 열띤 의논을 펼쳤다.

“ 스튜어트 경! ”
“ 무슨 일입니까? ”

부관 하나가 긴장된 얼굴로 오자 윌리엄은 뭔가 싶어 그 뒤를 따랐다. 라젠 디 코넬리 총사령권을 필두로 아인 카르델 국왕과 그외 각국의 대표주자들이 한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고 윌리엄 역시 부관에게 망원경을 건내받아 사막쪽으로 향했다. 인간이었다. 온 몸에 뒤짚어쓴 피는 자신의 것인지 몰라도 검게 굳어 있었고 그런 자가 열명 정도 되었다. 궁수들이 겨누자 장군은 윌리엄에게 시선을 보낸다.

“ 부관! 의관들을 불러 모으십시오. 통역사가 필요하니 찾아서 불러주시구요. ”

윌리엄이 말에 올라타 그들에게 향하자 가넷또한 뒤를 따랐다. 그들의 몰골은 가까이에서 맞았을때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대게 소년이나 소녀, 어린아이들. 아이를 안은 여인이 유목민 언어로 울부짖자 윌리엄은 팔을 벌려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안심하세요.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

이교도의 첩자가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지만 윌리엄이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강하게 나오자 다들 꼬리를 내리고 순응했다. 아직도 리암 스튜어트 공작의 그림자는 무척 짙었기에. 늦은 밤이 되서야 여인은 정신을 차리고 엎드려 윌리엄의 신발에 키스를 하였다.

“ 정말로 고맙다는군요. ”
“ 유목민들의 감사 인사는 이렇게 부담스럽나요? ”

윌리엄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올려 의자에 앉혀주었다. 이후 통역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기본적인 질문 만으로 그녀가 다시 울먹이자 윌리엄이 물었다.

“ 왜 그러죠? ”
“ 이교도들이 마을을 습격했다는군요. 예... 서쪽으로 사흘 정도가면 나오는 오아시스가 있는 작은 마을인데 약 백여명 정도 되는 이교도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도륙했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묻은 피는 죽은 마을 사람들의 것이랍니다. 죽이고 뿌렸답니다.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무슨 의식을 치루려 했다는데.. ”
“ 의식? ”
“ 밤에 그들이 잠든 틈을 타 보초 하나를 죽이고 아이들을 구출해 여기까지 왔답니다. ”

그녀는 가넷의 품에 안겨 정말 서럽게 울었다. 하루 아침에 모든게 끝이 나버렸으니 제정신으로 버티는 것도 용하다. 총사령관의 호출을 받은 윌리엄이 막사에 들어서자 아인 슈나우더가 반겨준다.

“ 매형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
“ 말씀 낮추십시오. 카르델 국왕 전하. ”
“ 뭐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서 저와 윌리엄 스튜어트 경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잖수. ”

아인은 피식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포도주를 들이켰다. 총사령관 라젠 장군이 착석을 권하자 부관이 의자를 대령했다.

“ 스튜어트 경. 보고는 들었네. 놈들이 아직도 그 마을에 있다지? ”
“ 중무장한 백 여명의 이교도가 자리를 잡았답니다. 이대로 지나친다면 필시 보급로를 습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 난 한시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네만.. 알다시피 오늘 하루를 쉬는 것도 모험이야. 예정이 하루는 늦춰졌다고. 거기다 백명인지 천명인지 정확하게 파악 안되는 놈들을 두고 군 병력을 투입하자니 좀 그렇군. 내 대답은 반댈세. 대신 이곳에 군사 천 명을 두지. 봉화대도 설치해서.. ”
“ 놈들도 눈이 있습니다. ”
“ 반대로 경고의 표시도 되겠지. 경은 별로 탐탁치 않나 보군. 뭔가 다른 생각이라도 있나? ”
“ 이교도의 행동이 묘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일방적 학살 보다는 약탈과 납치를 목적으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세력권 안의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그 피를 생존자들에게.... ”

아인이 잔을 비우고 말했다.

“ 의식이라잖소. 악마를 불러들이는 의식이 아니면 뭘까. ”
“ 악마라니.. 그런 미신.. ”
“ 매형은 놈들을 쉽게 보는군. 우리 왕국내 이교도들이 한 짓을 모르십니까? ”
“ 그건 흑마도인지 뭔지 하는 사이비 교단의... ”
“ 디아코노스! 놈들.. 우리가 치는 이교도 놈들을 가르켜 디아코노스라고 부르지. 매형, 악마는 있소.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소. ”

윌리엄은 아인의 확고한 의지에 입을 닫았다.

“ 총사령관. 놈들도 우리가 오는걸 알거요. ”

알고는 있지만 빠져나갈 길은 없다. 이쪽 길은 이미 동쪽 국가로 이뤄진 연합이 먹었고 반대쪽 대륙 끝으로 내려오고 있을 서쪽 연합또한 북진의 길을 차단했다. 아무리 그들만의 길이 있다해도 결국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한 두개로 겨우 버텨 올라간들 국경 쪽으로 방위 병력들이 배치됐기에 그들의 선택은 죽음을 기다리거나 열심히 남쪽으로 달려가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것 뿐이다. 물론 배를 만들어 나간들 미리 보급선을 맞이하기 위해 배치된 군함들의 집중 포화로 일망타진. 놈들은 확실히 포위되었다.

“ 놈들이 게릴라 식으로 치고 빠지든 어차피 그것도 한계 아니겠소. ”
“ 전하, 아무리 우리 군의 수가 압도적이라 해도 약속된 승리라 선언하여도 저는 우리군에 단 한사람이라도 덜 죽고 더 많은걸 얻는 전쟁을 하고 싶습니다. ”
“ 으음, 아무래도 나와 매형 사이엔 의견 차이가 있군. 난 총사령관의 선택을 따르겠소. ”

총사령관은 전진을 택했다. 예정대고 군사 일 천여명을 남기고 꼭두새벽부터 출발할 예정. 마음에 계속 걸렸지만 명령은 절대복종이다. 생존자들은 곧 동이 트면 지나칠 배에 태워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라임 공국에 내려주겠다고 총사령관의 입으로 직접 약속했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까. 자신의 막사로 돌아오는 길에 윌리엄은 걸음을 멈추고 가넷을 지켜보았다. 장검이나 활을 메고 말에 식량과 물을 올리는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자 달려가 앞을 막았다.

“ 어딜 가십니까? ”
“ 비켜라. ”
“ 어딜 가냐고 묻지 않습니까? 이건 상관으로서 명령입니다! ”
“ 탈영병으로 쳐도 좋아. 나는 놈들을 찾아가 죽여야겠어. ”

탈영은 곧 사형이다. 그걸 본인도 잘 알고 있으리라. 윌리엄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 설마.. ”

그녀는 죽으러 갈 셈이다. 백여명이나 우글거리는 곳에 단신으로 쳐들어가겠다니. 누가봐도 자살행위였다.

“ 안됩니다! 안돼! 가넷 페더! 참모장 윌리엄 스튜어트로서 명령한다! 당장 말에서 떨어져라! 안그러면 그댈 베겠다! ”

윌리엄이 검을 들자 가넷은 잠시동안 날카로운 칼끝을 주시하더니 코웃음쳤고 동시에 섬광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튀어나온 검은 어느틈에 윌리엄의 목을 노린다. 공중에서 떨어진 그의 검을 가볍게 잡아 바닥에 꽂은 그녀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무기를 거두고 다시 할일을 이어나갔다.

“ 남벌의 목적이 뭐냐. 이교도의 처단 아닌가? 단 한명도 살려둘 수 없다. ”
“ 당신의 임무는 저의 경호입니다. ”
“ 스스로 지킬 힘은 있잖아. 리사 프림로즈 스튜어트의 동생에 걸맞게 당당하게 행동해라. ”

그녀는 기어코 고삐를 내쳐 달렸다. 미처 불러 세우기도 전에 저만치 나가고 보초들의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는 가운데 누군가 윌리엄의 어깨를 붙들어 일으킨다.

“ 매형, 따라가십시오. ”
“ 국왕 전하? ”

아인은 미리 준비해뒀는지 여분의 식량과 물을 탑재한 말의 고삐를 내밀었다.

“ 가넷 페더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황제의 임페리얼 가드란 엄청난 자리를 내치면서까지 남벌에 참여했다지요. ”

윌리엄을 직접 손으로 받쳐 올려태운 아인은 부관들에게 손짓하여 보초들을 진정시켜라 명했다.

“ 하지만 싸우진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정찰 만을 허락하겠습니다. 그녀를 설득해 데려와 배를 얻어 타고 내려오십시오. 총사령관에겐 그렇게 말해두죠. 어서 가시오! ”
“ 전하. 감사합니다. ”

윌리엄을 태운 말이 가넷을 따라 달리자 뒤이어 중무장한 자들이 따라붙었다. 모두 가넷의 부하였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아인은 막사로 돌아와 총사령관에게 술을 건낸다.

“ 오히려 잘됐군. 가넷 페더가 알아서 나갈 줄이야. ”
“ 이것으로 계획이 일보 전진했구려. ”
“ 아니지 열보는 전진했지. 윌리엄 스튜어트를 겁쟁이 탈영병으로 몰고 리암 스튜어트 공작까지 개털로 만들 수 있겠어. ”
“ 공작 작위는 몰수될겁니다. ”
“ 어차피 명맥은 끊길텐데. 누님이 놈의 아이를 임신만 안했다면 말이지. 후후. ”

잔을 비운 아인은 총사령관의 술을 받아 연거푸 마셨다. 몰래 윌리엄 스튜어트에게 접근해 부추길 계획이었는데 가넷 페더가 반응해준 덕분에 일이 굉장히 순조롭게 풀린 축하주의 맛이란 몹시도 달콤했다. 남은건 마을에 대기타고 있을 카르델 왕국의 특무대. 가넷 페더가 아무리 뛰어난 기사인들 쪽수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 후후후후... 리암 스튜어트, 썩어문들어진 시체를 안고 오열하는 네 놈을 보고 싶구나. 크하핫! 기다려라! 그때까지 꼭 살아있거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새벽 내내 달렸을까. 사막의 쌀쌀한 아침에 모포를 깊게 두른 윌리엄은 장작 불에 몸을 녹혔다. 가넷의 부하들은 전부 근위 기사 출신으로 각각 상당한 실력을 가졌다. 그들은 남벌 행군으로 몸이 근질근질 했는지 각자 무기를 다듬거나 장비를 살피면서 전투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 사람들은 진짜로 백여명 아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를 적과 싸울 생각이다. 이쪽의 인원은 다 합쳐 열명. 한명당 최소 열명씩은 잡아야한다.

“ 왜 따라왔지? ”
“ 카르델 국왕의 명령이라면 납득 하시겠습니까? ”
“ 아니, 난 너한테 묻는게 아니야. ”

무안해진 윌리엄이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건장한 기사가 무겁게 말했다.

“ 제이크의 복수다. 가넷.. 우리도 너와 같다. ”
“ 본대랑 같이 하면 실컷 할텐데도 말인가? ”
“ 들리는 말에 의하면 경험많고 실력있는 엘리트들은 뒤로 물린다는군. 고로 본진에서 짱박혀 손가락만 빨다 돌아갈 확률이 높다는 뜻이지. ”

가넷이 노려보자 윌리엄은 고개를 돌렸다. 오전이 되자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달콤한 쪽잠에서 깨어난 윌리엄은 사람 깨워주지도 않고 벌써 저 멀리까지 가버린 그들을 보고 시겁해 모포를 뒤짚어 쓴채 얼른 말에 올랐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승전국들이 전리품 문제로 투닥거렸지만 윌리엄은 더 이상 관여하기 싫고 어서 집에 돌아가 마리엘을 만나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은 대단히 가벼웠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익숙한 풍경이 들어오자 말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 저기봐! 스튜어트 공자 님이셔! ”
“ 윌리엄 스튜어트 만세! ”

마침내 집에 왔다. 그리운 냄새를 가득 맡으며 정문을 벌컥 열자 그의 기쁨에 찬 눈동자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 ... 뭐야.. 누구 없습니까? ”

마그리나 샤샤도 보이질 않는다. 허나 주방에선 주전자가 화로 위에 올려져 물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 후후, 깜짝 파티라도 하시겠다? 우리 마누라님의 생각이시구만.. ”

그들의 환영식에 어울려 윌리엄은 발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윗층에서 뭔가가 들썩이는 소리가 나는걸로보아 아마도 모두들 그곳에 숨은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들썩 흔들리는게 꼭 침대가 뭔가 충격을 계속 받아가면서 내는 소리였다. 무척이나 익숙하다. 윌리엄도 그게 무슨 소린지 알면서도 인지할 수 없었다.

“ 우우우하아아앙! ”

굉장히 야릇하고 섹시한 신음소리. 오직 윌리엄 스튜어트만이 알고있는 색기 충만한 교성. 윌리엄은 아버지 방을 조심스래 열었다. 여느때나 다름없지만 한가지 이상한 점이 벽에 걸려있어야할 액자가 바닥에 눕혀있었다.

“ 우리 방에서 나는 소리? 마리엘..? ”

다시 본래의 자리로 걸려는 찰나. 윌리엄은 액자가 걸려진 자리의 중심에 엄지 손가락만한 구멍을 발견했다. 장작불 빛에 휙휙 지나가는 그림자. 그 구멍 속으로 눈을 가져가는 순간!

“ !!!!!!!!!!!!!!!!!!!!!!!!!!!!!!!!!!!!!!!!!!!!!!!!!!!!!!!!!!! ”

그녀가 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마리엘 슈나우더. 그녀가 어떤 벌거벗은 남자의 위에서 새하얀 나신을 힘껏 드러내며 격렬하게 허리를 흔드는게 아닌가. 땀으로 흠뻑 젖은 젖무덤을 위로 쳐올려 부드럽게 만져가던 남자는 손가락으로 목을 타고 올라고 입술에 넣자 그녀는 정말로 사랑스럽게 빨아주면서 뜨거운 교태를 부렸다.

- 쾅! -

안방의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는 침실을 맞닥들인 윌리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분명 방금. 십초도 안되는 순간에 그들이 도망갔다는건 말도 안된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바로 그때! 지붕이 찢겨나가고 굉장한 폭풍이 몰아쳤다.

-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

그 어떤 짐승보다도 살벌하고 흉칙한 울음소리에 윌리엄은 쭈그려 앉아 귀를 막는다. 어느 틈엔가 그의 주변엔 황량한 대지가 남았다. 모든게 날아갈만큼 엄청난 돌풍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다리는 용케도 지면에 붙어 버텼다.

“ 헉?! ”

무식하게 거대한 그리고 칠흑같이 어둡고 불길한 기운이 가득 서려진 존재. 흡사 신화 속에 나오는 용과 같은 모습으로 그 존재는 붉은 안광을 드리운채 그에게 달려오고 있다. 그 아래 온갖 크고 작은 무수한 괴물들. 처음에는 나름 작아보였지만 착각이었다. 굉장히 작아 보이던 녀석도 점점 가까이 오자 그의 키를 훌쩍 넘는게 아닌가. 검은 용은 눈깜짝 할 사이에 윌리엄의 머리 위로 지나갔고 수 많은 괴물들의 그를 피해 지나친다. 얼마나 많은지 끝도 없이 지나쳐 놈들의 모습에 공포는 커녕 정마저 들 지경이다. 이후 온 세상에 빛이 번쩍였다. 태양 빛을 아득히 초월한 빛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곧이어 검은 용이 빛 기둥을 품에 안은채 저 멀리 날아갔다.

- 도와줘요 윌리엄! -
“ 마리엘! 어디에 있는거야?! 마리엘! ”

돌연 용이 날아간 방향으로 메아리치는 그녀의 외침. 윌리엄은 미친듯이 달리고 또 달리면서 목소리를 쫓아갔지만 그때마다 들리는 방향이 틀어졌고 한참을 더 달리다 지친 그는 숨을 몰아내쉬다 주변이 환해지자 어리둥절 주변을 살핀다. 익숙한 광경이다. 공작가의 별장, 얼마전 자신도 마리엘과 헤르, 세레스 셋이서 황홀한 섹스를 즐겼던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인간으로 보이는 시커면 형상의 품에 안겨 헐떡이는 아내의 모습.

“ 너 이 새끼 누구야! ”

치밀어오르던 분노는 쾌락에 젖은 아내의 얼굴과 마주하자 깊은 절망감으로 닥쳤다. 지독한 상실감에 말문이 닫힌 윌리엄은 냅다 검을 뽑아들고 시커먼 형체를 향하여 성큼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어깨를 붙잡아 당겼다.

“ 헉? 누.. 누나.? “

죽은 누나가 말없이 자신을 잡아 당기자 주변은 다시금 암흑 천지로 변하고 아내의 외침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윌리엄 스튜어트.. -

정신을 차리자 주변은 온통 암흑 천지. 자신이 서있는지 판단조차 불가능한 세계 속에 왠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윌리엄은 거대한 공포에 짖눌렀다. 처음에는 작은 불덩이로 보였다. 다가오는 그것은 불덩이가 아닌 어떤 엄청나게 큰 생물의 눈으로 실로 가공할만한 공포였다.

- 드디어 때가 다가온다.. -
“ 무슨 소리야! 때라니? ”
-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의 순간이다. -
“ 이상한 소리 그만하시죠!? 기회라니? 설명을 해보시죠! ”
- 넌 이미 알고 있다. -

가넷의 말대로 윌리엄또한 악몽을 꾸었다. 그것도 마리엘의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굉장히 기분 나쁜 꿈이다. 그외 이상한 것들도 많이 봤지만 역시 아내의 불륜이 주는 임팩트만큼은 아니다. 마지막 기회의 순간이니 뭐니 그딴게 뭔 상관이야!

‘ 아~ 설마 예지몽은 아니겠지? ’

불안했지만 아내의 사랑스런 미소가 떠오르자 일순간 불순한 기억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선두가 멈추자 두번째 주자였던 가넷이 손을 들어 일행을 세웠다. 드디어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바닥에 바짝 누워 바위 절벽 아래 마을의 전경을 살핀 가넷에게서 망원경을 건내 받은 윌리엄은 우선 오아시스부터 확인했다. 오아시스 크기는 준수했다. 나무도 넉넉해 마을 자체가 목재와 돌 양식으로 구축되었다. 절벽을 등지고 외곽에 설치된 높은 담벼락은 이곳의 험난한 생활을 유추어 볼 수 있다.

“ 사람이 안보여.. ”

대략 오십 여채의 크고 작은 집이 모인 마을이건만 너무나도 고요한 적막감 속에 마을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 시선이 닿자 윌리엄은 냉큼 망원경을 내렸다.

“ 크윽.. ”

가넷도 그곳을 발견했는지 입술을 깨문다. 적어도 수십여구의 시체가 산으로 쌓여있다. 도망친 그녀의 말대로 정말 이교도가 들이닥친 것일까.

“ 일단 적은 보이질 않는군요. ”
“ 내려가 확인해보자. ”

불길함이 가득했지만 가넷의 말대로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밖에 없었다. 일행은 저마다 무기를 점검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기에 완벽을 기해야한다. 가넷을 선두로 말을 이끌어 마을 입구에 당도하자 일행들은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린다. 상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하고 끔찍했다. 곳곳에 베인 시체들. 사지가 나가떨어진 살점이 사방을 뒤엎었고 썩은 시체 냄새가 요동쳤다. 기사 하나가 건물에 기대어 죽은 자를 조사했다. 검붉은 피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걸 확인하고 제스츄어를 취하자 일행들은 말에서 내려 무기를 꺼내들었다.

“ 개자식들.. ”

죽은 자 가운데는 어린 아이도 더러 있었다. 복부를 꿰뚫고 내장이 흐르는 광경은 제 아무리 냉혹한 자라도 욕을 뱉게 만든다. 무척 과묵한 기사조차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며 공포에 젖은 아이의 눈을 감겨주었다.

- 달그락.. -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모였다. 그림자 하나가 건물 코너 뒤로 사라지자 가넷의 손짓에 기사 둘이 좌우경계 상태로 빠르게 쫓는다. 가넷은 정면에 엎드려있는 시체를 뒤집고는 곳곳을 훝었다. 피부색 만으로 이곳 지역의 사람이 아니다. 정보부 소속의 기사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팔 부분의 옷깃을 찢어 들췄다.

“ 태양과 달 모양의 문신... ”

가넷이 묻자 그는 근처 다른 시체도 확인하고 무겁게 입을 연다.

“ 이 놈들은 카르델 특무대다. 팔목에 찍힌 문신이 그 증거지. ”
“ 특무대가 왜 이런 곳에 와서... 죽었지? ”
“ 내가 묻고 싶군. 하지만 짐작이 가는 곳이 있다. ”

그는 윌리엄 스튜어트를 주목했다. 난생 처음보는 피와 살덩이들의 끔찍한 광경에 다소 충격을 먹었는지 비틀거리다 자리에 푹 주저앉은 젊은 참모장은 손과 옷에 묻은 검붉은 핏물에 신음을 흘렸다.

“ 실전 경험이 없는 도련님 치고는 잘 버티는군. 우리 정보부에선 전부터 카르델 국왕 아인 슈나우더와 워싱턴 후작의 유착을 면밀히 주시했다. 넌 모르겠지만 리암 스튜어트 공작이 카르델 왕에게 한방 크게 먹였다더군. ”
“ 마리엘 공주를 볼모로 삼은 일 말인가? ”
“ 그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 현 국왕이 마리엘 공주를 ... 같은 피가 흐르는 친누이에게 혹심을 가진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자세한건 당사자들이 아니니 모르지만.. ”
“ 기밀이라면 말안해도 돼. 핵심은 뭐지? ”
“ 카르델 특무대는 아인 슈나우더의 친위대다. 오직 국왕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개들이 왜 이런 곳에 죽어있냐는 뜻이다. 처음엔 윌리엄 스튜어트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서 함정을 만든게 아닌가 했지만 봐라, 이들도 참혹하게 죽었다. 실력이라면 교황기사단에 버금가는 손꼽히는 자들이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몰골로 시체가 되었다. ”

때마침 그림자를 쫓았던 기사들이 돌아왔다. 저마다 못볼 것을 봤다며 목격담을 전해주자 가넷은 벽에 기대어 앉아 헛구역질을 하는 윌리엄을 부축해 일으킨다.

“ 그러고도 나를 따라올 생각이었나? ”
“ 으으윽.. 제 걱정은 마..세요.. ”
“ 그래야지. 고작 이런걸 보고 정신 못차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거냐. ”

그들이 앞장서 당도한 곳엔 다른 건물보다 컸다. 입구에는 한 남자가 팔 한짝을 잃은채 고통을 호소했는데 일행이 다가서자 핏발 서린 광기의 눈으로 무시무시한 적의를 드러냈다. 가넷은 냉큼 다가가 축 늘어진 다리 하나를 분질렀다.

“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고요한 적막감을 꿰뚫는 단발마의 비명. 검끝이 목으로 향하자 그는 울부짖으며 애원한다.

“ 정신이 드는가? ”
“ 구.. 구해줘! ”
“ 구해달라고? 자네를 구해달라는 뜻인가? ”
“ 구해야 돼... 구해야.. ”

칼끝이 목을 살짝 파고들어갔는데도 그는 무조건 구해야한다며 중얼거렸다.

“ 미쳤군. 완전히 돌았어. ”

건물 안에서 나온 기사는 끔찍한 것을 봤다며 인상을 구긴다.

“ 안에는 더 가관이야. 그나마 대화가 되는 놈 같은데.. 한번 들어가보지. ”
“ .....일단 나와 스튜어트 경은 이곳에 남겠다. 너희들은 둘 셋, 셋으로 팀을 나누어 주변을 조사해보도록. 뭔가 발견한게 있으면 즉시 이곳에 와라. ”

본디 여관이었는지 식탁들이 한곳으로 쭉 모여 치워져있다. 밖이나 안이나 참혹한 시체는 여전했지만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내리쬐는 쪽으로 자그마한 식탁 하나가 있는데 한 남자가 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윌리엄이 뒤에서 슬쩍 밀자 가넷은 한숨부터 쉰다.

“ 그렇게 붙지마라. 사내자식이 뭐가 무섭다고.. ”
“ 무.. 무섭기는요. ”

남자는 앉은채 머리로 벽을 쿵쿵 쳐댔다. 벽에 묻은 핏물이 얼마나 소름돋는지 가넷도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 구해라...... 구하라.. ”

바짝 마른 음산한 목소리에 음침한 분위기. 그 역시 바깥의 남자처럼 구하라는 헛소릴 중얼댄다. 가넷이 어깨를 잡아 돌리자 둘은 저마다 크고 작은 비명을 터트렸다.

“ 크윽! ”
“ 으허어어억! ”

단순히 깨진 이마로 흐르는 피가 아니다. 두 눈이 날카로운 뭔가에 후벼파져 피만 흘러대는 경악스런 광경에 가넷은 흠칫 뒷걸음질 쳤고 윌리엄은 아예 엉덩이를 내려 깔았다. 식탁 위에 핏덩어리들은 바로 그의 눈알이었다. 아마도 옆의 단검으로 스스로의 눈을 후벼판 것이 아닐까. 남자는 벌떡 일어나 손을 허우적댔다.

“ 거기.. 누구냐?!”

연신 비명을 질러대는 윌리엄의 발을 강하게 밟아 진정시킨 그녀는 검 끝을 겨누자 상대는 보이지 않아도 뭔가를 느꼈는지 껄껄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 카르델 왕국의 특무대인가? ”
“ 그렇다네.. 껄껄.. 전하께서 보낸 재물이로군. ”
“ 재물이라고? ”
“ 아니, 재물은 우리를 말한 걸지도.. 하하하하하하하하.. ”

그 역시 미쳤는지 벽을 두고 계속 웃기만 했고 가넷은 반쯤 넋을 잃은 윌리엄의 어깨를 툭 쳤다.

“ 윗층을 보고 오겠다. 경은 저 놈을 감시해라. ”
“ 자.. 잠시만요.. ”
“ 그럼 같이 올라가 시체 구경이나 할까? ”
“ ....여기서 기다리죠.. ”

가넷이 윗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윌리엄은 대뜸 웃음소리가 멈춘 남자를 경계했다.

“자네가 윌리엄 스튜어트인가? ”

대뜸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윌리엄은 검을 뽑아들었다.

“ 그래.. 자네였군... 내 소개를 하자면 카르델 국왕 전하의 직속 특무대장을 맡은 바커스다. 그래, 그래, 바커스였지... ”

목소리가 사뭇 부드러웠지만 오히려 그게 섬짓한 인상을 주었다.

“ 이리로 오게. 국왕 전하께서 자네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네. ”
“ 우.. 움직이지 마세요. 베겠습니다. ”
“ 지금 검을 들었나? 살기가 전혀 없어서 몰랐네. 껄껄껄. 혹시 겁이라도 먹었는가? ”
“ 움직이지마라고 경고했습니다. ”

경고를 무시하고 일어선 남자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바닥에 놓인 술병을 찾았다.

“ 하아.. 이곳의 술 맛은 참 오묘하단 말이야. 꼭 낙타가 싼 오줌 맛이야. ”

술병을 깨트리자 윌리엄의 어깨도 들썩였다. 애초에 술은 단 한방울도 없었고 부숴진 파편을 향하여 한참을 중얼거리던 남자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 크으.... 아직도 거기 있나? ”
“ 왜 특무대가 이곳에 있습니까? 설마 마을 사람들을 죽인게 당신들입니까? ”
“ 마을? 아아, 여기 마을이었지. 그래,, 계획대로라면.. ”
“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
“ 미안하구먼.. 기억이 잘 안나는데... 거기 구석에 내가 지도를 떨어뜨린거 같은데 주워다 주겠나. 그래, 그래, 눈이 안보여도 손으로 만져도 알 수 있게... 그렇게 제작된 지도지... 그래그래, 주워서 이쪽으로 던져주게.. ”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정말 지도로 보이는 두루마리가 굴러다녔다. 그것을 주워 던지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바로 코앞으로 눈알이 뽑힌 면상이 닥쳤다. 거리 상으로 수 미터가 떨어진 사이를 눈깜짝 할사이에 들이닥쳐 목을 졸랐다.

“ 으아아아아아..컥!? ”

윌리엄은 숨이 턱턱 막혀 필사적으로 온 몸을 비틀고 발악했다. 어찌나 힘이 장사인지 발로 계속 아랫배와 사타구니를 쳐대는대도 그는 장승처럼 빳빳하게 굳어 두 손에 힘을 계속 실었다.

“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어! ”

사선의 문턱에서 윌리엄은 젖먹던 힘까지 다 내어 벽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이자 쿵 소리가 나며 충격을 먹었는지 조르던 힘도 약해졌고 그 틈에 밀쳐 검을 들었으나 상대는 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경악스럽게도 마치 전부다 보이는 듯이 손목을 꺾어 검을 빼앗고는 얼굴을 향해 찌르기를 하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아슬아슬하게 살짝 스친 섬광 뒤로 뺨에서 피가 맺혔고 그대로 벽에 꽂혀진 검을 뽑느라 힘을 주는 사이 윌리엄은 잽싸게 빠져나와 식탁 위의 단검을 집었다. 그와 동시에 내리치는 검날.

“ ..크어.. ”

그는 윌리엄을 비스듬하게 비켜가 쓰러진다. 턱에 단검으로 꿰뚫려 즉사한 것이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거진 윌리엄은 몸위로 엎어진 그를 내던지고 물러났다.

“ 하아.. 하아.. ”

생애 처음으로 맞닥들인 살인. 오로지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고 그 결과 사람을 죽였다.

“ 놈은... 죽었군. ”
“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절 죽이려 했다구요! ”

가넷은 망연자실한 그에게 달려가 뺨을 새차게 후려친 뒤 멱살을 잡아 일으켜 다시 한번 후려갈겼다.

“ 그렇다고 질질 짜지마. 너만 특별한 경험을 한게 아니니까. ”
“ 사람.. 사람이 죽는게 좋습니까? ”
“ 불쾌하지만 내가 살고 내 동료가 살고 내 가족과 나라를 지키려면 죽여야해. 이게 전장이야. ”
“ 적어도 이곳은 전쟁터가 아닙니다! ”
“ 싸우고 살아남았잖아.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해? ”

문을 열고 나서자 마침 동료들이 휘파람을 불며 달려왔다.

“ 생존자가 있다. ”
“ 마을 사람인가? ”
“ 아니, 특무대 녀석들이다. ”

마을에서 가장 구석진 절벽 아래 집에서 생존한 4명이 공포심에 짖눌러 전의를 상실한채 가넷 일행을 보자마자 제발 살려달라며 울부짖는다.

“ 다.. 당장 여기서 나가야합니다... ”
“ 그전에 묻는 질문에 대답해라. 여기서 뭘 했지? 광장에 쌓인 시체들은 뭐냐. 대답 여하에 따라서 너희들을 이교도로 간주하고 전원 처형을 명할 수도 있다. ”
“ 처형이라니!! 저희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

검끝이 다가오려는 그의 코앞에 놓였다.

“ 대답해라.. 아니면... 여기서 말 못할 이유라도 있는건가? ”

윌리엄이 큰 소리로 구토하자 긴장감이 가득한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킥킥 웃어대며 그를 부축한 동료들이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가넷은 생존자의 멱살을 붙잡아 벽에 쳐박고는 얼굴 옆으로 칼침을 박았다.

“ 말해라. ”

카르델 왕국 특무대. 공식적으로 국왕 휘하의 친위대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실은 첩보, 교란, 염탐등을 비롯해 심지어 국가에 반하는 요인 암살 등도 도맡아 왕권 강화를 꾀하고 있다. 그런 사실이 제국 정보부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자 생존자는 얼굴색이 새파래졌다. 아마도 일반인이 알아선 안되는 비밀인가 보다.

“ 저도 확실한건 모릅니다. ”
“ 그런데 왜 여기까지... 이곳에서 뭘 할려고 했지? ”
“ 대장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에요. 저희들은 정말 뭘 하는지 몰랐습니다. ”
“ 좋아, 네 놈이 알고있는 것만 말해라. ”

그가 설명하길 특무대는 남벌에 투입된 카르델 왕국군과는 별도로 백명 가량의 소수정예를 구성해 사막을 가로질렀다. 대다수의 대원들은 영문도 모른채 그저 이교도 세력을 조사하기 위한 첩보대 쯤으로 알았고 그렇게 오아시스 루트를 따라 남하했다. 문제는 이곳까지 조금 거리가 남았을때 터졌다. 그때까지 각 대원들은 요상한 악몽에 시달렸는데 마치 전염병처럼 악몽을 꾸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고 특무대장도 다른 대원과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일정 기간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라는 임무인지라 울며겨자먹기로 갔고 그러다 거대한 모래폭풍과 맞닥들였다.

“ 모래폭풍? ”
“ 무척 거대한... 정말로 큰게 숨조차 못 쉴 아찔한 폭풍이었습니다.

모래폭풍이 반나절동안 지속된 와중에 여섯명이 실종되었으나 대장은 젖먹던 힘을 다해 전진만을 외쳤고 마침내 다음날 아침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간 밤새 돌아다녔으니 녹초가 된 그들은 오아시스에서 짐을 풀고 들어누웠으나 악몽 증세는 대단히 악화되어 누구하나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었다.

“ 모두가... 지쳤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녀석들도 많았구요.. 그리고.. ”

대장을 비롯한 부관들이 믿기 힘든 명령을 내렸다. 그날 마을 사람들이랑 뭔가 안좋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인상을 구긴채 나타난 대장은 즉시 마을의 모든 이를 강제로 끌여내라는 명령을 내렸고 마을 측에서도 무장한 장정들이 저항하자 결국 피를 부르고야 말았다. 마을 청년 하나를 벤 것이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마을측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그로인해 특무대측도 한명이 죽고 두명이 크게 다치자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하였다. 대장은 큰 소리로 모두 죽여라 명령했다. 아무리 건강한 장정이라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무대를 당해낼리가 만무하다. 평화롭던 마을은 반나절만에 초상집으로 돌변했다. 저항이 불가능한 여인과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시체가 광장으로 모였다. 특무대장은 그들또한 이교도의 끄나풀이라고 외쳤으나 제정신인 사람이 보기에 무고한 학살로 명백했다. 그후 며칠 사이 큰 분멸이 일어났다. 대장이 이끄는 충성파와 그 반대파로 나눠져 본국에 돌아가 보고하느니 마느니 옥신각신하는 통에 모래폭풍마저 들이닥쳤고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자욱한 먼지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서로 죽고 죽이다 결국 네놈들만 남은거냐.. ”

그 이후부터가 감히 말로 담을 수 없을 끔찍한 핏덩이 쇼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자신의 팔을 자르고 고함을 치는 이. 직접 단검으로 허벅지를 수십차례 찌르고 후벼파던 남자. 스스로 입안으로 검날을 집어넣고 꿰뚫어버리거나 이런건 약과고 타인의 시체를 파먹거나 내장을 쭉 뽑아내 목에 걸거나 얼굴 가죽을 벗겨내 자신의 얼굴에 덮는등 짐승도 하지 않는 악마같은 짓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

“ 그들은 뭔가에 씌워 단단히 미쳐버렸습니다. 우리들은 가까스로 그들을 피해 집에 들어가 숨었구요. ”
“ 특무대장은 자기 눈을 다 파버렸더군. ”
“ 그를 보셨습니까? ”
“ 우리가 죽였다. ”

자기 상관이 죽었다는 말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그래서 목적이 뭐였지? 특무대장은 뭘 원한거냐? ”
“ 이곳 사람들에게 협조를 부탁했더군요. 말만 들어주면 더 좋은 곳에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도록 해주겠다고.. ”
“ 누가? ”
“ 국왕폐하의 전언입니다. ”
“ 역시... 그를 죽이기 위해서인가.. ”

정보부의 말대로 그들의 목적인 윌리엄 스튜어트의 암살. 보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꾸미기 위해 엘리트 집단인 특무대까지 거침없이 쓰는 비범함에 가넷 페더는 치를 떨었다.

“ 아마도 우리들은 탈영병 취급을 받겠지. 이대로 돌아가면 불명예를 뒤집어 쓰는 것도 모잘라 자칫 목숨마저 위험할거다. 총사령관도 카르델 국왕이 매수했단 첩보가 있으니까. 놈들을 이용해서 본국에 보고해야돼 승전후 전리품 분배때 제국 다음으로 카르델 왕국쪽에 돌아가는게 많다고 타국에서 불만이 많아. 그외에 다방면으로 압박이 요긴하겠지. 리암 스튜어트 공작이 미쳐 날뛰면 제 아무리 날고기는 워싱턴 후작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 ”
“ 정보부측 입장은 그런가... ”
“ 우리는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최적의 결론을 내놓는다. 이것도 예상된 일이야. 아니, 너무나도 예상에 척척 맞아 떨어져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만.. ”
“ 만일 마을 사람들이 협력했다면 우리는 시체가 됐겠군. ”

갑자기 그때였다. 건물 뒤켠으로 뭔가가 질질 끌려다니는 소리에 일행들은 눈깜짝 할 사이 무기를 빼어든다. 어떤 남자가 흐느적거리며 나타났다. 가슴팍에 거대한 칼자국이 그어진 그는 썩은 동태눈마냥 멍하니 이쪽을 보면서 다가왔고 가넷은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경계를 늦추지 마라 지시했다.

“ 말도 안돼. 저 자는 그때 죽었을텐데.. ”

특무대원이 믿을 수없다며 말을 이었다.

“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 분명 대장이 직접 베어 죽였다구요. ”
“ 그런데 살아있군. ”

가넷이 눈동자를 굴르자 정보부소속 동료가 이곳 언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상대는 묘한 신음을 흘리면서 점점 거리를 좁혀온다. 급기야 누런 이를 드러내며 상대의 어깨를 붙잡고는 목덜미를 꽉 물자 끔찍한 비명이 터졌다. 일행이 촌장을 제지했지만 무슨 힘이 이리도 쌘지 손으로 뿌리치자 장정 여럿이 나가떨어진다.

“ 당장 구해야지! 뭣 들 하는거냐! ”

보다못한 가넷이 촌장의 등을 베었다. 상대가 누구든 동료의 피를 보게 만든 자. 냉정한 검날에 베인 촌장은 그제서야 동료를 놓고 비틀거린다.

“ 이건?. ”

척추를 끊었을 터인데 촌장은 기우뚱거릴 뿐. 다시금 균형을 잡자 재빨리 목줄기에 섬광을 그엇고 피가 쏟아지며 머리통이 바닥을 통통 튀어 구른다.

“ 우어어어어.. ”
“ 아우우아으아갸아. ”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사이 가넷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검끝을 겨눴다.

“ 마치 시체 같아. ”
“ 지옥이 따로 없구먼.. 이봐. 친구들. 물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베는 수밖에.. ”
“ 어이, 어린 아이도 있는데? ”
“ 죽기 싫으면 죽여. ”

이미 물린 동료는 얼마나 강하게 물렸기에 목에 피를 철철 흘리며 의식불명에 빠졌다. 가장 뛰어난 실력자이고 계급또한 제일 높으니 실질적인 리더인 가넷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부상자와 포로들은 윌리엄 경이 있는 곳으로.. ”

적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눈으로 보이는 것만 삼십명. 그리고 계속 늘어난다. 각자 무기를 든 일행들 앞으로 되살아난 시체들은 허리쪽이 반쯕 베어져 내장이 너덜너덜하게 빠져나왔는데도 걸어오거나 하반신은 어디로갔는지 상체만 남아 바닥을 기어 이빨을 드러내는 자.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흰자위만 드러낸채 피투성이로 느릿하게 다가왔다.

“ 그 이상 다가오면 베겠다. 경고한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

경고가 멱힐리 만무했다. 어느 사이에 포위망이 형성되어 좁혀오자 가넷은 말한대로 실행에 옳겼다. 그녀가 손짓하자 동료 둘이 석궁을 쏘며 견제에 들어가고 검을 든 동료와 함께 가넷은 전방으로 돌격했다. 의외로 상대는 휘두르는 검에 피할 생각도 없이 베여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 크아악! ”

쓰러진 적이 동료의 발목을 붙잡고 물자 가넷이 달려가 목을 절단시켰다.

“ 머릴 노려 머리를 박살 못내면 계속 일어날거야! ”

약 반 시간. 짧은 시간에 오십에 가까운 적을 쓰러뜨렸다. 벌써 이쪽으로 물린 이는 다섯명. 전부 죽였다고 방심했다 당한 이들로 하나같이 무척이나 피곤한 기색이다.

“ 괜찮아? ”
“ 몸이 굉장히 무거워... ”

그중에 한명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비틀거렸다. 그러는 사이. 가넷은 마을 중심에 놓여진 시체 더미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분명 죽은 시체들일 터 하나 둘씩 방금전 신나게 벤 놈들처럼 느릿하게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는게 아닌가.

- 푸아아악! -

그 순간. 한 녀석의 머리통이 수박이 깨지듯 터져버리고 피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쓰러진 녀석의 등 뒤로 회색 로브를 깊게 뒤집어쓴 이방인이 나타났다. 여자? 이런 낯선 곳에 홀로 나타난 로브의 여성은 몸통만 남은 시체를 발로 이리저리 만지며 확인하고는 허리춤에 섬광이 그어졌다. 쩍 하고 몸통이 고깃덩이처럼 반으로 갈라지자 검붉은 진액이 악취를 풍기면서 흘러나온다.

“ 녀석은 좀비다. 그것도 살아있는 자를 물어서 동료로 만드는 악질이지. ”
“ 무슨 헛소리냐. ”
“ 직접 보고도 모르겠는가? ”
“ 초면에 무례하군. 먼저 로브를 벗어 정체를 밝혀라. ”

가넷이 검끝을 겨누자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 순간 팔에서 섬광처럼 뻗어나간 은빛 물체가 가넷의 뺨을 스치고 여러 동료 기사들 사이를 지나쳐 전방의 적 이마에 박혔다. 그녀가 말한 좀비라 불리는 자는 꺼림칙한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고 어느 틈에 로브의 여자가 공중을 날아 내려와 머리통을 짖뭉갠다.

‘ 빠르다.. ‘
‘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

인간답지 않은 스피드. 가넷조차 눈으로 따라가기 힘돈 속도에 아인 슈나우더를 떠올렸다. 그녀는 시체 더미에서 부활하는 좀비를 향해 달려가 발로 차 다시 더미 속으로 파묻었다. 그리고는 원을 그려 걸으며 일어나는 좀비 목을 댕강 잘랐고 대충 됐다 싶었는지 품 속을 뒤적거리더니 손을 뺄 때 어마어마한 불길이 확하고 시체 더미를 덮쳤다. 이 모든게 정말 순식간에 이뤄졌고 누구도 그녀의 손에서 일어난 불꽃의 메커니즘을 설명 할 수가 없었다.

“ 시체를 전부 이쪽으로 던져! ”

일단 지시대로 마을에 남아있는 모든 시체를 불길 속으로 밀어넣었지만 아직 문제가 남았다.

“ 우리도 저들처럼 되는가? ”

물리면 똑같이 좀비가 된다는 말에 동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냉큼 말에 올라타 방향을 돌려가며 전방 끝을 주시하더니 꼼짝말고 기다려라는 말과 함께 마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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