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앵~
“무,무슨 짓이냐?!”
라파엘 왕자에게로 다가선 아젠티는 라파엘 왕자의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는 숏 소드를 빼들어 라파엘 왕자에게 겨누었다. 왕자의 숏 소드는 장식용 검인 듯 수많은 보석들과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검신 보다는 검 자루가 훨씬 길었다. 하지만 그래도 꽤 소중하게 다룬 듯 검날은 예리하고 날카롭게 잘 벼루어져 있었다.
“당신…당신 때문에…”
아젠티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했고 검을 잡은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후…강제로…끌려 온…것인가? 그렇군..나로 인해…”
라파엘 왕자는 그런 아젠티의 모습을 보자 처음의 당혹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흐렸던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당신만 죽으면…당신만 죽으면…나,나는….”
“그래, 나만 죽는다면…이 따위 전쟁은 끝나겠지…너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나도 편해질 수 있겠지..큭큭…자, 찔러라…망설이지 말고 검을 내 심장에 박아다오…”
“이,이…이….”
라파엘 왕자는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아젠티에게 고마운 감정마저 들었다. 차마 용기가 없어 죽음을 택하지 못하고 괴로워만 했었는데 이제 아젠티가 자신의 괴로움을 지워버리고 영원한 안식을 주려 하고 있었다.
푸욱~!
“너, 너???!!!”
검이 생 살을 찢고 육신을 죽음의 늪으로 인도하였다. 라파엘 왕자는 눈을 부릅뜨고 아젠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검은 자신이 아닌 아젠티의 복부를 찌르고 있었다. 아젠티가 마지막 순간 검 자루를 돌려 쥔 것이다.
“왜…왜???”
라파엘 왕자는 스러지는 아젠티의 몸을 안은 채 소리쳤다.
벌컥~!
“무슨 일이십니까 저하?!”
라파엘 왕자의 고함소리를 듣고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위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저하, 도대체 이게…”
아젠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인자하고도 포근한 그런 미소가…
“너,넌…”
쿨럭~!
“어,어서 의원을 불러라~! 어서!”
아젠티가 토한 피가 왕자의 의복을 적셨지만 왕자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아젠티를 안은 채 소리쳤다.
(11)
“오? 앤더슨, 이게 뭐야? 편지?”
“아앗~! 라나양 내놔요~!”
앤더슨은 조금 전까지 자신의 손에 있던 것을 다시 되찾기 위해 소리쳤지만 라나는 앤더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손에 든 것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오호, 친애하는 아젠티양? 아젠티가 누구야?”
“아앗…돌려줘요~”
앤더슨은 다급한 마음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위로와 동정의 눈길 뿐이었다.
“아직 무사한 것이겠지요? 오늘도 전 그리움으로 인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친애하는 아젠티양…
아직 무사한 것이겠지요?
오늘도 전 그리움으로 인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언젠간…아니 조만간 내가 이 편지를 당신께 직접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전쟁에서 패터슨이 죽었습니다. 라이안 아저씨는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위 하셨지만 충격이 크신 듯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돌아와 당신의 소식을 들은 전 당신을 찾기 위해 맥키언과 함께 용병이 돼었습니다. 실력이 모자라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용병단에도 들었답니다.
카틀란 용병단이라는 곳인데, 저와 맥키언을 포함해 여섯 명 밖에는 되지 않는 용병단이지만 제 사정을 듣고는 의뢰가 없을 땐 당신을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해준 고마운 분들 입니다.
대장인 게리 카틀란씨는 귀족 신분이랍니다. 저나 맥키언도 처음에 그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놀랐었죠. 귀족이 도대체 요 용병일을 할까 하고요. 게리 대장 말로는 큰 돈을 벌고 몰락한 가문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라고 하더군요. 전쟁 중에 용병만큼 바쁘고 각광받는 직업도 없다나요. 돈을 좀 많이 밝히는 성격이긴 하지만 유쾌하고 귀족이라고 다른 사람을 무시 하지도 않는 분이랍니다. 검법에도 뛰어나셔서 소드 익스퍼더 중급의 경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마법사인 올드만씨. 올드만씨는 마법사이고 매우 유식하신 분이랍니다. 자신은 겨우 3클래스의 마법사라고 겸손해 하시지만 주문 한마디로 손에서 불을 만들어 내시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올드만씨의 말이 6클래스가 되면 원하는 곳을 눈 깜짝 할 사이에 갈 수 있는 텔레포트라는 마법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 마법이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요즘 매일 같이 올드만씨를 졸라대고 있답니다. 만약에 제가 마법사가 되어 텔레포트라는 마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아젠티 당신에게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텐데요.
게리 대장과 올드만씨 이외에도 오닐씨와 라나양이라는 동료가 있는데, 오닐씨와는 아직 눈인사 외엔 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했습니다. 무척 과묵하신 분인데 항상 검을 닦거나 훈련을 하느라 하루를 모두 보내기 때문에 말 걸기가 왠지 어렵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맥키언은 오닐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비슷한 성격이라 그런지 졸졸 따라 다니더니 요즘은 라이안 아저씨가 길 떠나기 전 주신 검을 들고 오닐씨에게 검술을 지도 받고 있습니다. 맥키언의 솜씨는 예전에 마을에서도 알아주었으니까요. 활이라면 나도 자신 있는데, 검은 왠지…아무튼 게리 대장의 말로는 정통적인 검으로는 자신이 앞서지만 실전에선 오닐씨에겐 상대도 안된다고 하니 오닐씨의 실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나양이 있는데. 붉은 머리 하며 수다스러운 것이 패터슨과 꼭 닮은 사람이랍니다. 처음에 전 패터슨이 살아 돌아와 여장을 한것이거나 라이안 아저씨의 숨겨둔 딸이 아닐까 매우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으니까요. 키도 저만큼이나 크고 여자이지만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키만한 바스타드 소드를 가볍게 휘두룬답니다. 어쩔 땐…아니 항상 용병단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지요. 모두들 아직은 모두 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들 좋은 분들이고 믿음직스러운 동료들 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만난 것 또한 저에겐 행운이겠지요.
아젠티양,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시요…
제가 곧 구하러 갈테니까요. 힘이 없어서 어렵다면 키울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당신께 가기 위해 한 시도 쉬지 않고 노력 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살아만 있어 주세요…당신이 겪을 어려움들 괴로운 일들…아마도 제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갈때까지 부디 살아만 있어주십시요… -
“에…또…”
“돌려주세요…”
“어,어…”
앤더슨은 어색하게 웃고있는 라나의 손에서 편지를 빼았았다.
“미,미안…”
“찾는다는 사람이 편지 속의 여인인가?”
올드만이 약간의 시간이 흐른뒤 물어왔다.
“예…”
“흐음…”
다시 침묵이 흐르고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닐과 맥키언은 검 닦기에만 열중이었다.
“하하, 뭐 괜찮아요…이제 곧 만날건데요 뭐…”
“그래, 분명 그렇게 될 걸세…암, 그렇게 되야지…”
“이 라나님도 물심 양면으로 돕지. 내가 또 사람 찾는덴 도사거든. 하하…하…”
“…”
휘잉~
라나의 허풍에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진짜라고…”
벌컥~!
“하하하, 드디어 의뢰예요 의뢰! 하하하하! 에…엥? 분위기가 왜이래?”
그때 여관 문이 벌컥 열리면서 라파엘 왕자에 대한 정보와 의뢰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던 게리가 들어왔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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