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宦官) 카이만
#02-08 : 개조련사 로크란
인간이란 정말로 간사한 것인가 보다. 죽을 것처럼 목이 마를 때는 입술을 적실 물 단 한 방울만이라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술에 물이 닿으니 벌컥 벌컥 물을 마시고 싶어지고, 또 물을 마시게 되니 "풍덩"하고 물속에 빠져 수영을 하고 싶어진다.
고작 삼일만에 "익숙해졌다"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실제로 로크란은 이러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도피생활에 나름 익숙해져 버린것같았다.
그가 애초에 바라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목숨 하나만이라도 건져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도착한 도피처는 맑은 공기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귀족들, 아니 왕족들의 휴양지라고 해도 될만한 저택이었고, 식사는 귀족나부랑이들이나 먹을 듯한 제대로된 코스요리가 나왔으며, 화려하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물건이 틀림없는 침대에는 푹신한 깃털 배게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기가막힌 미녀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성욕을 풀어줄 상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만한 그런 상황이었다.
헌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이란 정말로 간사한 것인가 보다."
여유가 생겨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 곧 무언가를 구하고 바란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됨을 의미한다.
벨라도나, 그녀는 로크란이 서른 두 해를 살아오면서 품어본 샐 수 없이 많은 여인들중에서도 단연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만한 미녀임에 틀림 없었다. 게다가 그의 욕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여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이 아름다운 붉은머리의 여인은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로크란이 원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를 받아 들여주었는데,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여자였다. 몇 시간이고 계속된 지칠줄 모르는 로크란의 욕정을 견뎌내었음은 물론이고, 거칠게 다루거나 변태적이고 수치스러운 짓을 해도 곧잘 호응해 주었다.
지난밤 로크란은 자신이 지닌 모든 쾌락의 기술과 마지막 한 방울까지의 정력을 모두 쏟아부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대단할 정도의 하룻밤을 그녀에게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왠지 모르게 부족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와의 섹스에서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사랑? 당연히 그따위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녀의 결핍인지 자신의 결핍인지 조차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무언가가 빠진체로 그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얼굴을 보다보면 떠오를듯 말듯한 알 수 없는 기억의 파편 때문이었을까?
공허(空虛)? 우아하게 말하면 그렇고, 조금 더 단순하고 평범하게 말하자면 "심심하다", "따분하다"라는 말을 쓰면 되고, 지금의 경우에는 "질린다"혹은 "질렸다"라는 말을 쓰면 될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먹던 음식이 "질린다"라는 것같은 의미일지, 아니면 정복하지 못할 거대한 산맥을 만난 등산가의 기가 "질렸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백번을 생각해봐도 주제 넘은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뭐 달라져 봤자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로크란은 슬쩍 방문을 열고 슬쩍 복도끝을 훔쳐봤다. 이곳에는 여학생들뿐이 없으니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방에서 나오지 말아달라는 주의를 "엘비"에게서 받았으나, 어차피 그런 꼬맹이들 따위에겐 관심 없었고 그의 목표는 다름 아닌 바로 "엘비" 본인쪽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수준 높은 마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짧은 지식으로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다룰 정도면 제법 수준 높은 마법사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쉽게 넘볼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친절함과 발랄함에 기대어 살랑거려보면 어떻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 로크란의 생각이었다.
"어머! 방에서 나오면 안된다니까요."
운이 좋은것인지 나쁜 것인지 계단을 한 층 내려가 꺽여진 복도에 들어서자 마자, 예쁜 보라색 머리카락을 팔랑거리며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아... 이거."
머리를 긁적거리는 로크란을 향해 커다란 뿔태안경뒤의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체 말하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었다.
"어서요 어서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가요."
로크란의 등을 떠밀며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린체 로크란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이고, 내가 뭐 애들을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잡아먹죠! 잡아 먹으니까 이러는거죠!"
귀여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작게 소리치는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잡아 먹다니요, 내가 무슨 식인종입니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잡아 먹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는 벨라한테나 물어보세요. 정말!"
로크란의 능청스러운 말에 그의 등을 떠밀던 엘비가 어깨의 살을 한웅큼 꼬집어 뜯으며 새침하게 말하자, 그는 비명을 지르고 잔뜩 엄살을 떨어대며 말했다.
"아핫뜨! 오히려 엘비씨가 나를 뜯어 먹는 거 아닙니까 이거?"
"아유. 알았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요. 정말."
밝고 명랑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다. 로크란은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의 귀여운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뭐 엘비씨같은 미녀에게라면 얼마라도 행복하게 잡아 먹혀 줄 수 있을것같지만 말이죠."
그의 말에 엘비는 잠시 발을 멈추고 서서 느끼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크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폭소를 하며 말했다.
"꺄하하핫. 뭐. 뭐에요 그거! 꺄하하하."
그녀는 정말 소녀처럼 귀엽게 웃고 있었다. 물론 웃을 때마다 출렁 출렁 흔들리는 가슴과 육감적인 몸매는 그 어떤 남자의 가슴이라도 흔들어 놓을만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하하... 아아 정말. 못살겠어. 그거 지금 나, 꼬시는 거에요?"
로크란은 살짝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으흠? 그렇게 되나요? 엘비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야 좋지요."
"휴우우우."
웃느라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훔치곤, 엘비는 왠지 짓궂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왜요? 벨라가 이제 안놀아 준대요? 아니면 벨라랑 노는게 질려서 이젠 놀기 싫어진거에요?"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로크란은 뜨끔하며 뭔가 할말을 잊고 말았다.
"후훗. 어쨌든 나는 지금 처녀라서 로크란씨랑 놀아주기는 조금 곤란할 것같네요."
그가 그러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엘비는 여전히 짓궂은 표정으로 귀엽게 재잘거리며 로크란을 방문으로 밀어 붙였다.
그런데 로크란이 애써 담담한척하면서 문을 여는 순간, 침대에 앉아 그를 빤히 처다보는 붉은머리의 미녀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벨라 있었니?"
엘비의 반응으로 보아 그녀는 이미 벨라도나가 로크란의 방에 와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것 같았으나, 살짝 놀라 정신이 분산된 로크란이 그런것까지 알 순 없었다.
"아아... 엘비 언니도 로크란씨랑 놀려고?"
벨라도나는 엘비보고 앉으라는 듯이 침대위에서 엉덩이를 살짝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주며 말했다.
"아잉. 벨라도 참. 내가 처녀라는거 알면서."
"흐흥. 엉터리 처녀겠지. 같이 노는 것도 재밌을 텐데. 조금 질.린.것 같아..."
"아유. 그러면 다른 애들하고 같이 놀든지."
엘비가 고개를 살살 저으며 새침하게 말하자, 벨라도나는 두 손을 등뒤로 뻗은체 요염한 몸짓으로 한쪽 다리를 꼬으며 로크란에게 말했다.
"우후훗. 로크란씨 어떤 타입의 여자가 좋으세요? 저보다는 엘비언니같은 타입이 취향?"
벨라도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비도 귀여운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맞아 맞아. 어떤 여자가 좋아요?"
"에?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로크란이 당황해하며 되물었지만, 어느새 침대위에 앉은 엘비는 벨라도나를 뒤에서 끌어안고는 그녀의 풍만한 유방을 두 손으로 받쳐들며, 누구에게 말하는지 모를 말을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가슴은 큰 쪽이 좋은가? 남자들은 대개 그러니까."
"글쌔 취향이란건 다양하니까... 안그래요 로크란씨?"
살짝 흥분한것처럼 보이는 벨라도나는 진한 암컷의 향기를 내뿜으며 말을 걸어왔고, 끈적하게 엉켜있는 두 여인을 보고 있자니 아랫도리에서 그의 분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예... 아니, 그게 음..."
더듬거리는 로크란에게 엘비가 깜빡 잊었다는 듯이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은 안 되요."
"아니 애시당초에 그런 꼬맹이들은 관심 없습니다."
로크란이 그녀의 말에 끌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엉겁결에 대답해버리자, 벨라도나도 질세라 엘비의 풍만한 유방을 주물거리면서 말했다.
"우흥. 그럼 "마키나"는 탈락이네 걔는 절벽이니까. 우후훗."
"후훗. "시피"랑 "리세"도 탈락!"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말은, 가슴크기 따위에 대한 말이 아니라 "곧잘 앵앵거리는 어린애들하고 하는 것은 질색이다"라는 뜻이었는데 그 생각이 제대로 말로 정리되어 나오질 않고 있었다.
"흐응... 그래서 어떤 타입이 좋다는 거에요?"
어느새 엘비도 색기를 풀풀풍겨대면서, 이젠 뭔가 끈적하고 요염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처다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예? 아니 그러니까..."
"올라탄다면, 어떤 계집의 몸둥이에 올라타고 싶냐고요."
벨라도나의 끈적한 목소리가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화주(火酒)처럼 로크란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야아아 나도. 나도 보고 싶어."
"우후훗. 언니도 같이 하면 되잖아."
"나는 처녀라서 안된다니까 그러네"
엘비가 새침하게 말하자 벨라도나는, 그녀의 유방이 손가락 사이로 살짝 삐져나올 정도로 거세게 움켜쥐며 대꾸했다.
"지금 거짓말을 하는게 바로 이 가슴이지?"
"얘는 정말... 하여간 로크란씨 어떤 타입이 좋아요? 뭐 가슴말고도 머리색이나 눈색이라든지 종족이라든지... 아! 하지만 나는 빼고요 후후훗."
뿔태안경 뒤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마치 그 눈동자에 홀려버린듯 반쯤 무의식적으로 그의 입술이 열렸다.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짐승인간)"..."
어제 오전 쯤이었던가? 창문밖을 바라보니 저택 앞의 잔디밭위에 마침 아름다운 은빛머리카락의 여인이 걷고 있었다. 그녀는 검사인듯 큼직한 칼을 등에 메고 있었는대, 기다란 꼬리와 팔꿈치에 난 은빛 털, 그리고 머리위쪽에 솟아난 귀를 보아하니 웨어울프의 반수화 상태인것같아 보였다.
"헤에... 그런 타입이 좋은거에요?"
하지만 사실 큰 이유는 없었고 그저 갑작스럽게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버렸던 것같았다.
"우후훗. 확실히 당신같은 짐승하고 제대로 하려면 라이칸스로프 정도는 되야 할지도..."
"아아..."
뭐라 대답하기도 어려웠기에 그냥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뱉고 있는 로크란이었지만, 정작 두 여인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듯 또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우후훗 라이칸스로프라... 라이칸스로프라... 재미있을 것같은데... 엘비언니, 지금 누가 있지?"
"어디보자 일단 아이들은 빼고, 제일 먼저 "헬렌", "실크"는... 지금 없고, 뭐 라이칸스로프는 아니지만 비슷한걸로 "에링"도 있지만 걔는 마침 탈피중이라서 안되고, "묘우"나 "키에리아"도 해당 되겠지?"
엘비의 말에 벨라도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헬렌 그 재미없는 멍멍이랑 노는건 내쪽에서 사양할래."
"호호홋. 하긴 그 전에 로크란씨를 들이대봤자 헬렌이 물어뜯기 밖에 더하겠어? 으음. 나는 묘우랑 하는걸 봤으면 재밌을 것같은데."
엘비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벨라도나는 여전히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손을 설레설레 지으며 대꾸했다.
"하아? 묘우님? 묘우님이 아버님 말고 다른 남자를 상대할리가 없잖아."
"그러면 빙빙돌아서 결국엔 다시 키에리아네?"
"우훗. 그렇게 되나, 마침 슬슬 일어나실 때도 됐고, 흐흥 더 놀고 싶었는데 말이지."
벨라도나는 뭔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로크란을 바라보았고,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두려주며 엘비가 말했다.
"놀고 싶으면 더 놀면 되잖아. 케에리아랑 같이 해버려, 나는 뒤에서 구경하면서 응원해줄께."
"언니도 참 말도 안되는 소리를... 흥, 이 가슴이지?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게?"
자신의 유방을 마구 꼬집어 대는 벨라도나에게 질세라 엘비도 그녀에게 덤벼들어 그녀의 엉덩이와 유방을 마구 주물러 대기 시작했다.
"흐흠."
눈앞에 펼쳐진 두 미녀의 장난질이 재미있었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멍청하게 서서 보고 있기도 힘들었기에, 로크란이 살짝 헛기침을 하자, 두 미녀는 장난질을 멈추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동시에 말했다.
"그럼 가시죠."
"예? 갑자기 어디로 말입니까?"
로크란은 솔직히 지금 당장 그녀들의 사이에 끼어들어 2대1로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기에 떨떠름한 마음을 숨기며 대꾸했다.
"그거야..."
엘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자마자, 벨라도나가 그녀의 말을 이어받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당신의 운명에게로 지요."
"예? 운명이라니...?"
"그거야... 운명이 알고 있겠지요. 우후훗"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벨라도나의 목소리가 로크란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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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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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다고 말하자마자 데드라인 돌파네요. 이틀동안 추천 21에 덧글 4라... 결국 데드엔드네요 ㅋㅋㅋㅋ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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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썼던 글이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맺음을 맞게되는군요.
이전에도 수 차례가 넘게 계속 언급한 바가 있었지만,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독자의 반응이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덧글 조회수 추천수 이런것들 말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연재량 연재속도 그리고 부끄럽지만 연재퀄러티 역시 문제가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오로지 문제는 내가 대다수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안썼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02-08 : 개조련사 로크란
인간이란 정말로 간사한 것인가 보다. 죽을 것처럼 목이 마를 때는 입술을 적실 물 단 한 방울만이라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술에 물이 닿으니 벌컥 벌컥 물을 마시고 싶어지고, 또 물을 마시게 되니 "풍덩"하고 물속에 빠져 수영을 하고 싶어진다.
고작 삼일만에 "익숙해졌다"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실제로 로크란은 이러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도피생활에 나름 익숙해져 버린것같았다.
그가 애초에 바라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목숨 하나만이라도 건져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도착한 도피처는 맑은 공기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귀족들, 아니 왕족들의 휴양지라고 해도 될만한 저택이었고, 식사는 귀족나부랑이들이나 먹을 듯한 제대로된 코스요리가 나왔으며, 화려하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물건이 틀림없는 침대에는 푹신한 깃털 배게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기가막힌 미녀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성욕을 풀어줄 상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만한 그런 상황이었다.
헌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이란 정말로 간사한 것인가 보다."
여유가 생겨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 곧 무언가를 구하고 바란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됨을 의미한다.
벨라도나, 그녀는 로크란이 서른 두 해를 살아오면서 품어본 샐 수 없이 많은 여인들중에서도 단연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만한 미녀임에 틀림 없었다. 게다가 그의 욕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여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이 아름다운 붉은머리의 여인은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로크란이 원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를 받아 들여주었는데,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여자였다. 몇 시간이고 계속된 지칠줄 모르는 로크란의 욕정을 견뎌내었음은 물론이고, 거칠게 다루거나 변태적이고 수치스러운 짓을 해도 곧잘 호응해 주었다.
지난밤 로크란은 자신이 지닌 모든 쾌락의 기술과 마지막 한 방울까지의 정력을 모두 쏟아부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대단할 정도의 하룻밤을 그녀에게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왠지 모르게 부족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와의 섹스에서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사랑? 당연히 그따위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녀의 결핍인지 자신의 결핍인지 조차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무언가가 빠진체로 그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얼굴을 보다보면 떠오를듯 말듯한 알 수 없는 기억의 파편 때문이었을까?
공허(空虛)? 우아하게 말하면 그렇고, 조금 더 단순하고 평범하게 말하자면 "심심하다", "따분하다"라는 말을 쓰면 되고, 지금의 경우에는 "질린다"혹은 "질렸다"라는 말을 쓰면 될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먹던 음식이 "질린다"라는 것같은 의미일지, 아니면 정복하지 못할 거대한 산맥을 만난 등산가의 기가 "질렸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백번을 생각해봐도 주제 넘은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뭐 달라져 봤자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로크란은 슬쩍 방문을 열고 슬쩍 복도끝을 훔쳐봤다. 이곳에는 여학생들뿐이 없으니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방에서 나오지 말아달라는 주의를 "엘비"에게서 받았으나, 어차피 그런 꼬맹이들 따위에겐 관심 없었고 그의 목표는 다름 아닌 바로 "엘비" 본인쪽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수준 높은 마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짧은 지식으로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다룰 정도면 제법 수준 높은 마법사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쉽게 넘볼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친절함과 발랄함에 기대어 살랑거려보면 어떻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 로크란의 생각이었다.
"어머! 방에서 나오면 안된다니까요."
운이 좋은것인지 나쁜 것인지 계단을 한 층 내려가 꺽여진 복도에 들어서자 마자, 예쁜 보라색 머리카락을 팔랑거리며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아... 이거."
머리를 긁적거리는 로크란을 향해 커다란 뿔태안경뒤의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체 말하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었다.
"어서요 어서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가요."
로크란의 등을 떠밀며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린체 로크란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이고, 내가 뭐 애들을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잡아먹죠! 잡아 먹으니까 이러는거죠!"
귀여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작게 소리치는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잡아 먹다니요, 내가 무슨 식인종입니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잡아 먹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는 벨라한테나 물어보세요. 정말!"
로크란의 능청스러운 말에 그의 등을 떠밀던 엘비가 어깨의 살을 한웅큼 꼬집어 뜯으며 새침하게 말하자, 그는 비명을 지르고 잔뜩 엄살을 떨어대며 말했다.
"아핫뜨! 오히려 엘비씨가 나를 뜯어 먹는 거 아닙니까 이거?"
"아유. 알았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요. 정말."
밝고 명랑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다. 로크란은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의 귀여운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뭐 엘비씨같은 미녀에게라면 얼마라도 행복하게 잡아 먹혀 줄 수 있을것같지만 말이죠."
그의 말에 엘비는 잠시 발을 멈추고 서서 느끼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크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폭소를 하며 말했다.
"꺄하하핫. 뭐. 뭐에요 그거! 꺄하하하."
그녀는 정말 소녀처럼 귀엽게 웃고 있었다. 물론 웃을 때마다 출렁 출렁 흔들리는 가슴과 육감적인 몸매는 그 어떤 남자의 가슴이라도 흔들어 놓을만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하하... 아아 정말. 못살겠어. 그거 지금 나, 꼬시는 거에요?"
로크란은 살짝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으흠? 그렇게 되나요? 엘비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야 좋지요."
"휴우우우."
웃느라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훔치곤, 엘비는 왠지 짓궂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왜요? 벨라가 이제 안놀아 준대요? 아니면 벨라랑 노는게 질려서 이젠 놀기 싫어진거에요?"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로크란은 뜨끔하며 뭔가 할말을 잊고 말았다.
"후훗. 어쨌든 나는 지금 처녀라서 로크란씨랑 놀아주기는 조금 곤란할 것같네요."
그가 그러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엘비는 여전히 짓궂은 표정으로 귀엽게 재잘거리며 로크란을 방문으로 밀어 붙였다.
그런데 로크란이 애써 담담한척하면서 문을 여는 순간, 침대에 앉아 그를 빤히 처다보는 붉은머리의 미녀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벨라 있었니?"
엘비의 반응으로 보아 그녀는 이미 벨라도나가 로크란의 방에 와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것 같았으나, 살짝 놀라 정신이 분산된 로크란이 그런것까지 알 순 없었다.
"아아... 엘비 언니도 로크란씨랑 놀려고?"
벨라도나는 엘비보고 앉으라는 듯이 침대위에서 엉덩이를 살짝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주며 말했다.
"아잉. 벨라도 참. 내가 처녀라는거 알면서."
"흐흥. 엉터리 처녀겠지. 같이 노는 것도 재밌을 텐데. 조금 질.린.것 같아..."
"아유. 그러면 다른 애들하고 같이 놀든지."
엘비가 고개를 살살 저으며 새침하게 말하자, 벨라도나는 두 손을 등뒤로 뻗은체 요염한 몸짓으로 한쪽 다리를 꼬으며 로크란에게 말했다.
"우후훗. 로크란씨 어떤 타입의 여자가 좋으세요? 저보다는 엘비언니같은 타입이 취향?"
벨라도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비도 귀여운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맞아 맞아. 어떤 여자가 좋아요?"
"에?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로크란이 당황해하며 되물었지만, 어느새 침대위에 앉은 엘비는 벨라도나를 뒤에서 끌어안고는 그녀의 풍만한 유방을 두 손으로 받쳐들며, 누구에게 말하는지 모를 말을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가슴은 큰 쪽이 좋은가? 남자들은 대개 그러니까."
"글쌔 취향이란건 다양하니까... 안그래요 로크란씨?"
살짝 흥분한것처럼 보이는 벨라도나는 진한 암컷의 향기를 내뿜으며 말을 걸어왔고, 끈적하게 엉켜있는 두 여인을 보고 있자니 아랫도리에서 그의 분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예... 아니, 그게 음..."
더듬거리는 로크란에게 엘비가 깜빡 잊었다는 듯이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은 안 되요."
"아니 애시당초에 그런 꼬맹이들은 관심 없습니다."
로크란이 그녀의 말에 끌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엉겁결에 대답해버리자, 벨라도나도 질세라 엘비의 풍만한 유방을 주물거리면서 말했다.
"우흥. 그럼 "마키나"는 탈락이네 걔는 절벽이니까. 우후훗."
"후훗. "시피"랑 "리세"도 탈락!"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말은, 가슴크기 따위에 대한 말이 아니라 "곧잘 앵앵거리는 어린애들하고 하는 것은 질색이다"라는 뜻이었는데 그 생각이 제대로 말로 정리되어 나오질 않고 있었다.
"흐응... 그래서 어떤 타입이 좋다는 거에요?"
어느새 엘비도 색기를 풀풀풍겨대면서, 이젠 뭔가 끈적하고 요염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처다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예? 아니 그러니까..."
"올라탄다면, 어떤 계집의 몸둥이에 올라타고 싶냐고요."
벨라도나의 끈적한 목소리가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화주(火酒)처럼 로크란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야아아 나도. 나도 보고 싶어."
"우후훗. 언니도 같이 하면 되잖아."
"나는 처녀라서 안된다니까 그러네"
엘비가 새침하게 말하자 벨라도나는, 그녀의 유방이 손가락 사이로 살짝 삐져나올 정도로 거세게 움켜쥐며 대꾸했다.
"지금 거짓말을 하는게 바로 이 가슴이지?"
"얘는 정말... 하여간 로크란씨 어떤 타입이 좋아요? 뭐 가슴말고도 머리색이나 눈색이라든지 종족이라든지... 아! 하지만 나는 빼고요 후후훗."
뿔태안경 뒤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마치 그 눈동자에 홀려버린듯 반쯤 무의식적으로 그의 입술이 열렸다.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짐승인간)"..."
어제 오전 쯤이었던가? 창문밖을 바라보니 저택 앞의 잔디밭위에 마침 아름다운 은빛머리카락의 여인이 걷고 있었다. 그녀는 검사인듯 큼직한 칼을 등에 메고 있었는대, 기다란 꼬리와 팔꿈치에 난 은빛 털, 그리고 머리위쪽에 솟아난 귀를 보아하니 웨어울프의 반수화 상태인것같아 보였다.
"헤에... 그런 타입이 좋은거에요?"
하지만 사실 큰 이유는 없었고 그저 갑작스럽게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버렸던 것같았다.
"우후훗. 확실히 당신같은 짐승하고 제대로 하려면 라이칸스로프 정도는 되야 할지도..."
"아아..."
뭐라 대답하기도 어려웠기에 그냥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뱉고 있는 로크란이었지만, 정작 두 여인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듯 또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우후훗 라이칸스로프라... 라이칸스로프라... 재미있을 것같은데... 엘비언니, 지금 누가 있지?"
"어디보자 일단 아이들은 빼고, 제일 먼저 "헬렌", "실크"는... 지금 없고, 뭐 라이칸스로프는 아니지만 비슷한걸로 "에링"도 있지만 걔는 마침 탈피중이라서 안되고, "묘우"나 "키에리아"도 해당 되겠지?"
엘비의 말에 벨라도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헬렌 그 재미없는 멍멍이랑 노는건 내쪽에서 사양할래."
"호호홋. 하긴 그 전에 로크란씨를 들이대봤자 헬렌이 물어뜯기 밖에 더하겠어? 으음. 나는 묘우랑 하는걸 봤으면 재밌을 것같은데."
엘비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벨라도나는 여전히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손을 설레설레 지으며 대꾸했다.
"하아? 묘우님? 묘우님이 아버님 말고 다른 남자를 상대할리가 없잖아."
"그러면 빙빙돌아서 결국엔 다시 키에리아네?"
"우훗. 그렇게 되나, 마침 슬슬 일어나실 때도 됐고, 흐흥 더 놀고 싶었는데 말이지."
벨라도나는 뭔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로크란을 바라보았고,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두려주며 엘비가 말했다.
"놀고 싶으면 더 놀면 되잖아. 케에리아랑 같이 해버려, 나는 뒤에서 구경하면서 응원해줄께."
"언니도 참 말도 안되는 소리를... 흥, 이 가슴이지?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게?"
자신의 유방을 마구 꼬집어 대는 벨라도나에게 질세라 엘비도 그녀에게 덤벼들어 그녀의 엉덩이와 유방을 마구 주물러 대기 시작했다.
"흐흠."
눈앞에 펼쳐진 두 미녀의 장난질이 재미있었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멍청하게 서서 보고 있기도 힘들었기에, 로크란이 살짝 헛기침을 하자, 두 미녀는 장난질을 멈추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동시에 말했다.
"그럼 가시죠."
"예? 갑자기 어디로 말입니까?"
로크란은 솔직히 지금 당장 그녀들의 사이에 끼어들어 2대1로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기에 떨떠름한 마음을 숨기며 대꾸했다.
"그거야..."
엘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자마자, 벨라도나가 그녀의 말을 이어받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당신의 운명에게로 지요."
"예? 운명이라니...?"
"그거야... 운명이 알고 있겠지요. 우후훗"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벨라도나의 목소리가 로크란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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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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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다고 말하자마자 데드라인 돌파네요. 이틀동안 추천 21에 덧글 4라... 결국 데드엔드네요 ㅋㅋㅋㅋ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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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썼던 글이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맺음을 맞게되는군요.
이전에도 수 차례가 넘게 계속 언급한 바가 있었지만,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독자의 반응이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덧글 조회수 추천수 이런것들 말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연재량 연재속도 그리고 부끄럽지만 연재퀄러티 역시 문제가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오로지 문제는 내가 대다수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안썼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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