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꺼내놓는 말들이 많아질수록.. 솔직히 말해서..비현실의 극치였다.
수라 씨가 방금 뭐랬었지?
별 하나 날려버리는것 정돈 일도 아니지만..이랬었지? 근데 분명 지구 이야길 했단 말야..
그럼 수라 씨는 지구를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만화에서나 나오는 그런...전지전능한 존재란 말야?
보통 사람이 그녀가 하는 말만 들었다면...아마 미친 여자 취급했을짖도 모를 일이겠지..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그녀가 말하면 왠지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녀에겐 그정도의 고압적인...
왠지 모를 납득력이 존재한다랄까... 설득력도 어차피 태도 나름이다. 이처럼 당당한 여자가 이 세상에 있긴 또 있을까...
별따윈 우습게 날려버린다고 저렇게 당연하단 듯이 이야기 하니...그 자체로 이미 <당연한 이야기>가 어느새 되어버리는것 같다.. 물론...평범한 일반인이다 못해 찌질의 극치인 나같은 놈인 경우엔.
최초로 이런 이야길 들을 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잠시 다녀 와야 하지만....뭐 어쨌든..
사실은. 별을 날려버리니 뭐니 같은 황당한 이야길 접했어도.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었던 건 이 대사였다.
"그쪽이라면 한번 이상 대줘도 상관없어요"
나같이 하찮은 놈을 위해서 수라 씨가 이런 말까지 건넬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이처럼 한심한 나인데 말이야..
그리고 대사에 이어서....저 시선.....수라 씨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백이면 백 모든 남자가 헬렐레 거릴 것 같다.
정말이지, 사람의 심혼을 빼앗는 눈빛이다.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절대 헤어날 수 없는..
하지만...내가 계속 멍때리고만 있으면 그녀에게 실례잖은가.
고개를 흔들어 주곤. 또 정중히 질문을 던져보려 하는데....
"지금 분명. 그리 생각하고 있죠? 눈빛과 표정에서 답이 나와요"
"예?"
"이처럼 하찮은 나인데. 왜 저런 말을 하지? 아무하고나 한번 이상은 안해준댔는데. 한심하기 그지없는 내게 왜 그리 해준다고 할까? 뭐 이런 생각 하고 있지 않아요 지금?"
귀신이다....
아니, 수라를 귀신이라고 하기도 하지 않나? 수라 씨의 이름은 어쩌면 그리해서 붙은 것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질 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또 상상의 나래를 펴게끔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각 옆구리에 양 손을 착 하고 짚더니 한숨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성욕은 순간적이었어요. 충동적인 것이었죠. 오래 타들어갈 불길은 아녔어요"
아까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인가? 최초로 나를 보았을 때의 이야기?
수라 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순간적인 욕정. 오래는 안 갈... 하지만 그토록 절실한 눈빛은. 제법 오랜만에 봤어요. 극도의 순수 였거든요.
완전무결했을정도랄까? 이제는 보기 힘든 건데 그런 눈은..후후.."
...내 눈빛이 그리 좋았나? 그냥 술병 나발 불고, 그저 여자하고 한번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그런 좆같은 생각이 담긴 내 눈빛이?
언뜻 잘 이해가 가질 않고 있는데.. 뜻밖에도 수라 씨는 씁슬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 눈빛들을 이젠 보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일까? 잘 모르겠다.
"..난 어정쩡하고 긴 것보단, 짧고 굵은 걸 좋아하는 여자죠. 당신의 성욕은. 길이에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짜리몽땅했지만.
술의 도수에 비유하자면 그만큼 확고했달까? 사생결단적 의지가 느껴졌죠. 난 그게 맘에 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대화를 좀 더 나눠보니. 이래 저래 더 호감이 가더군요. 솔직한 면도 그렇고..
그래서 당신에겐, 1번 이상을 허락한 거예요. 앞으로 언제든. 나를 또 만나도 좋아요. 그럴만한 자격이 보이는 사람이니까. 후후..."
..뭔지 모르겠지만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혼란스런 와중에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수라 씨가 이번엔 말초적 자극을 줄만한 <스산한> 분위기의 웃음을 지었다. 실로 섬뜩해서 머리털이 쭈뼛 하고 일어설 지경이었는데.
내 태도가 어찌하든, 그녀의 외양은 생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스스로의 그 열망에 고마움을 가지도록 해요. 그게 그쪽의 목숨을 살렸으니."
"...예?!"
모..목숨?!
"아하하. 아녜요. 당장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 있죠? 나를 몇번 만나다 보면...이 말. 금새 이해하게 될 거예요. 아 그나저나... 이제서야 물어보네. 이름이 뭐죠?"
"제..이름이요?"
"우린 지금 둘이서 대화하고 있거든요?"
"어...죄...죄송합니다. 제 이름은...시우 입니다. 성시우"
"성시우? 알았어요. 시우 씨라고 불러주면 되죠?"
"좋도록 하세요"
"좋아요. 시우 씨. 이젠 좀 안정이 되었나요?"
"예? 예..."
"..아직도 주눅 들어 보이는데...?"
"자...잘못 보신 겁니다..."
"아냐아냐.... 내 말이 맞을걸요? 흠...."
그녀는 한쪽 볼을 부풀렸다 줄였다 하면서 입가 주변을 귀엽게 씰룩이며 내가 실로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또 멍청하게 우물쭈물해대고 있었고..
그런 나를 보면서 수라 씨가 낮게 한숨 쉬더니...
"..그런 눈빛을 한 사람도 오랜만에 봤지만...재미있었던 게 뭔지 알아요?"
"..어떤..."
의아해 하는 내 얼구을 보면서 수라 씨가 피식 하고 웃더니 이리 말했다.
"스스로도 말했지만, 시우 씨는 자신감이 참 없더군요. 이거저거 안보고 아까 내게 달려들려던 그 눈빛과는 너무나도 상극이었어요. 그게 참 웃기더군요. 극과 극의 감정을 극히 짧은 시간만에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남자라...
이 세상에. 나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은 없을거예요. 아니. 없죠. 그런데 시우 씨는....어쩌면 이 세상에서..가장 자신감이 없는 <남성>일수도 있겠더군요. 지금 당장엔."
내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듣게 되니 거참. 자라목이 또 될려 그런다.
수라 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난. 당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계기랄까? 동기랄까? 그런 것만 주어지면...시우 씨는 분명. 새 삶을 살 수 있을테니까"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말하는 중에!"
"네?! 네...수라 씨. 말하는 중에 잘라 미안한데요.. 왜 그렇게까지 제게 해주시는 겁니까? 우린 오늘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수라 씨가 제게 그렇게 애써주신다 해서...당장 큰 이익이 있다던지 뭐 그런것도 없을텐데...왜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는지...."
내 말이 시작되었을때부터 키득거리고 있었는데, 끝나자마자 한바탕 또 짜랑짜랑 거리며 웃은 뒤 그녀는 이리 말해줬다.
"시우 씨는....좋은 사람이니까."
"............"
<나..난 병신인데?>
"그래서 하는 거예요. 아 그리고. 너무 맘 쓰지 마요. 나는 항상. 누가 시켜서 사는게 아니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거니까. 지금의 이런 내 행동들도.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요. 알았죠?"
"...예...예...."
또다시 우물쭈물하면서 멍청스럽게 대답하는데, 수라 씨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생긋 웃어주면서 내게 이리 말했다.
"..자신감이 0인 남자에게... 자신감이 우주 끝까지 뻗친 여자가 붙어 있으면...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나는 믿어요 ^^ "
<..설마하니 자신감을 뚝 쪼개서 제게 주시겠단 건 아니겠죠?>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일이 터졌다.
그들보다 내가 먼저 봤다.
전방에서 보이는 젊은 남자애들 네다섯....고등학교 때 나를 끝없이도 괴롭히고 심부름 시키며 골려 대던... <고등학생 시절의 동창들>...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다가오다가, 이윽고 그쪽에서도 나를 봤는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수라 씨와 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저들이 다가오는것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 기분이다.
또...또 뭔가를 시키거나 하진 않을까?
갑자기 때리거나 하는 거 아냐?
돈을 주라고 할 수도....하지만 지금은 현금도 별로 없는데... 어쩌지?
아냐.. 문제는 그게 아니다..
수라 씨는...옆의 수라 씨는 어떻게 하지?
수라 씨의 안위도 문제지만...내 한심한 꼴을...그녀 앞에서..
저놈들 앞에서 납죽 엎드리는 내 모습을 보여줄지도...
이런 저런 생각이 만감을 교차하며 휘돌고 있는 사이...
고등학생 때 가장 잘 나갔던 녀석. 회수가 거들먹거리며 나와 그녀의 코앞에 당도했다.
"이야! 긴가민가 했는데...맞네? 야 오랜만이다 시우. 잘 사냐 임마? 하하~"
첫인사와 동시에 내 어깨를 제법 힘세게 밀치는 이녀석....손버릇이 항상 나빴었지....저 손에 참 많이도 맞고 꺾이고 울었다..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어설프게 같이 인사를 건넸다. 몸이 몇발자국 뒤로 힘없이 밀리면서...
"어...어 그래...오랜만이다... 회수야... 아는 애들도 보이고..모르는 애들도 있고..그러네?"
"아는 애들? 아...너 때린 애들? 하하. 얘 성진이랑 유광 이잖아. 심부름 많이 했었을텐데...그새 이름 까먹었냐?"
"어..아니...그냥 간단히 말한거야. 이름들이야..기억나지..."
"그래야지...이름 잊어먹었다고 하면 얘네가 가만 있을 놈들이 아니지. 너 처세술이 좀 늘었다? 하하. 그리고 얘넨...
우리 학교 동창이 아니니. 넌 당연히 모르지 병신아. 병신새끼..크크..."
..이녀석의 더러운 입버릇도 전혀 달라진게 없군..
난 씁쓸한 표정으로 인상이 구겨지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회수는 성진이랑 유광이와 더불어 나머지 두놈과 낄낄대다가, 이윽고 수라 씨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래도 해떨어지진가 꽤 되었기에, 근처 가로등이 있는 곳은 거리가 좀 있어, 어슴푸레하게 보이지 잘은 안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내게만 관심을 가졌던 건데. 좀더 제대로 보니 수라 씨가 여자라는 것. 그리고 가지 않고 서 있다는것에서 나와 일행이란 생각이 이윽고 들었는지 이제사 집중해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회수는 호~오 하면서 놀랍다는 듯 나를 한번 봤다.
"..뭐..뭐야? 이..여잔? 너..여자친구 생겼냐? 설마? 설마 니가? 성시우. 니놈이 여친이 생겼다고? 와하하. 이거 참. 일어날수 없는 일일텐데?!"
녀석은 과장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덕분에 다른 패거리놈들도 흥미 있어 하면서 그녀를 봤다.
그들은 처음엔 <내 여자친구> 라고 예상해서 그런지 별 생각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점 점 입 들이 떠~~억 하고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턱들이 따다닥 하고 벌어지니 정말 소리가 들렸다...)
회수는 떠듬 떠듬 거리면서 나를 봤다.
"어...뭐...무슨...니....니 여자친..구? 여친?! 니 깔...정말 맞..냐?!"
수라 씨의 외모는 어슴푸레한 이곳에서도 홀로 빛났는지, 시선 주고 제대로 바라보니까 과연 녀석들도 보이긴 보였나보다.
하긴....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지....
내가 한숨 쉬면서 설명 하려 하는데.... 그녀가 빨랐다.
" 야. "
야 라고 하는 말은 사실 듣기에 따라선, 혹은 상황에 따라, 사용하기에 따라서 매우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단어이자 언어이다.
근데, 목소리의 주인이 주인이다 보니, 그 음색이 실로 고와, 나는 물론이요 여섯 사내의 목을 휙 돌아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다.
회수는 저도 모르게 수라 씨를 바라봤다가, 친구들을 비롯해 좌우를 둘러보더니, 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자, 오른손 검지를 곧추세워 자기 얼굴을 가리키면서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진 않고 입모양으로 <나?!> 하며 반응하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두눈 모두 크게 떠져 멍청해 보일 정도로 둥그래져 있었다. 절세미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서 저런걸까?!
저녀석. 이미 이여자 저여자랑 많은 경험을 해봤겠지만...수라 씨같은 여자는 단연코 처음이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내 옆에 서 있는 수라 씨는 생글거리면서, 회수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고, 그걸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 근처에 잘만한 장소 내가 아는데. 다들 같이 갈래? 하나도 빠짐 없이 너희들 똘똘이 다 빨아줄테니깐. 아. 단체플 하려면 하든가. 난 상관없어 ^^ "
"................"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유난히도 차가운 바람이 기분 나쁘게도 오랫동안 우리 주위를 휘돌다가 사라져 갔다..
수라 씨가 방금 뭐랬었지?
별 하나 날려버리는것 정돈 일도 아니지만..이랬었지? 근데 분명 지구 이야길 했단 말야..
그럼 수라 씨는 지구를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만화에서나 나오는 그런...전지전능한 존재란 말야?
보통 사람이 그녀가 하는 말만 들었다면...아마 미친 여자 취급했을짖도 모를 일이겠지..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그녀가 말하면 왠지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녀에겐 그정도의 고압적인...
왠지 모를 납득력이 존재한다랄까... 설득력도 어차피 태도 나름이다. 이처럼 당당한 여자가 이 세상에 있긴 또 있을까...
별따윈 우습게 날려버린다고 저렇게 당연하단 듯이 이야기 하니...그 자체로 이미 <당연한 이야기>가 어느새 되어버리는것 같다.. 물론...평범한 일반인이다 못해 찌질의 극치인 나같은 놈인 경우엔.
최초로 이런 이야길 들을 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잠시 다녀 와야 하지만....뭐 어쨌든..
사실은. 별을 날려버리니 뭐니 같은 황당한 이야길 접했어도.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었던 건 이 대사였다.
"그쪽이라면 한번 이상 대줘도 상관없어요"
나같이 하찮은 놈을 위해서 수라 씨가 이런 말까지 건넬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이처럼 한심한 나인데 말이야..
그리고 대사에 이어서....저 시선.....수라 씨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백이면 백 모든 남자가 헬렐레 거릴 것 같다.
정말이지, 사람의 심혼을 빼앗는 눈빛이다.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절대 헤어날 수 없는..
하지만...내가 계속 멍때리고만 있으면 그녀에게 실례잖은가.
고개를 흔들어 주곤. 또 정중히 질문을 던져보려 하는데....
"지금 분명. 그리 생각하고 있죠? 눈빛과 표정에서 답이 나와요"
"예?"
"이처럼 하찮은 나인데. 왜 저런 말을 하지? 아무하고나 한번 이상은 안해준댔는데. 한심하기 그지없는 내게 왜 그리 해준다고 할까? 뭐 이런 생각 하고 있지 않아요 지금?"
귀신이다....
아니, 수라를 귀신이라고 하기도 하지 않나? 수라 씨의 이름은 어쩌면 그리해서 붙은 것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질 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또 상상의 나래를 펴게끔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각 옆구리에 양 손을 착 하고 짚더니 한숨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성욕은 순간적이었어요. 충동적인 것이었죠. 오래 타들어갈 불길은 아녔어요"
아까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인가? 최초로 나를 보았을 때의 이야기?
수라 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순간적인 욕정. 오래는 안 갈... 하지만 그토록 절실한 눈빛은. 제법 오랜만에 봤어요. 극도의 순수 였거든요.
완전무결했을정도랄까? 이제는 보기 힘든 건데 그런 눈은..후후.."
...내 눈빛이 그리 좋았나? 그냥 술병 나발 불고, 그저 여자하고 한번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그런 좆같은 생각이 담긴 내 눈빛이?
언뜻 잘 이해가 가질 않고 있는데.. 뜻밖에도 수라 씨는 씁슬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 눈빛들을 이젠 보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일까? 잘 모르겠다.
"..난 어정쩡하고 긴 것보단, 짧고 굵은 걸 좋아하는 여자죠. 당신의 성욕은. 길이에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짜리몽땅했지만.
술의 도수에 비유하자면 그만큼 확고했달까? 사생결단적 의지가 느껴졌죠. 난 그게 맘에 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대화를 좀 더 나눠보니. 이래 저래 더 호감이 가더군요. 솔직한 면도 그렇고..
그래서 당신에겐, 1번 이상을 허락한 거예요. 앞으로 언제든. 나를 또 만나도 좋아요. 그럴만한 자격이 보이는 사람이니까. 후후..."
..뭔지 모르겠지만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혼란스런 와중에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수라 씨가 이번엔 말초적 자극을 줄만한 <스산한> 분위기의 웃음을 지었다. 실로 섬뜩해서 머리털이 쭈뼛 하고 일어설 지경이었는데.
내 태도가 어찌하든, 그녀의 외양은 생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스스로의 그 열망에 고마움을 가지도록 해요. 그게 그쪽의 목숨을 살렸으니."
"...예?!"
모..목숨?!
"아하하. 아녜요. 당장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 있죠? 나를 몇번 만나다 보면...이 말. 금새 이해하게 될 거예요. 아 그나저나... 이제서야 물어보네. 이름이 뭐죠?"
"제..이름이요?"
"우린 지금 둘이서 대화하고 있거든요?"
"어...죄...죄송합니다. 제 이름은...시우 입니다. 성시우"
"성시우? 알았어요. 시우 씨라고 불러주면 되죠?"
"좋도록 하세요"
"좋아요. 시우 씨. 이젠 좀 안정이 되었나요?"
"예? 예..."
"..아직도 주눅 들어 보이는데...?"
"자...잘못 보신 겁니다..."
"아냐아냐.... 내 말이 맞을걸요? 흠...."
그녀는 한쪽 볼을 부풀렸다 줄였다 하면서 입가 주변을 귀엽게 씰룩이며 내가 실로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또 멍청하게 우물쭈물해대고 있었고..
그런 나를 보면서 수라 씨가 낮게 한숨 쉬더니...
"..그런 눈빛을 한 사람도 오랜만에 봤지만...재미있었던 게 뭔지 알아요?"
"..어떤..."
의아해 하는 내 얼구을 보면서 수라 씨가 피식 하고 웃더니 이리 말했다.
"스스로도 말했지만, 시우 씨는 자신감이 참 없더군요. 이거저거 안보고 아까 내게 달려들려던 그 눈빛과는 너무나도 상극이었어요. 그게 참 웃기더군요. 극과 극의 감정을 극히 짧은 시간만에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남자라...
이 세상에. 나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은 없을거예요. 아니. 없죠. 그런데 시우 씨는....어쩌면 이 세상에서..가장 자신감이 없는 <남성>일수도 있겠더군요. 지금 당장엔."
내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듣게 되니 거참. 자라목이 또 될려 그런다.
수라 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난. 당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계기랄까? 동기랄까? 그런 것만 주어지면...시우 씨는 분명. 새 삶을 살 수 있을테니까"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말하는 중에!"
"네?! 네...수라 씨. 말하는 중에 잘라 미안한데요.. 왜 그렇게까지 제게 해주시는 겁니까? 우린 오늘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수라 씨가 제게 그렇게 애써주신다 해서...당장 큰 이익이 있다던지 뭐 그런것도 없을텐데...왜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는지...."
내 말이 시작되었을때부터 키득거리고 있었는데, 끝나자마자 한바탕 또 짜랑짜랑 거리며 웃은 뒤 그녀는 이리 말해줬다.
"시우 씨는....좋은 사람이니까."
"............"
<나..난 병신인데?>
"그래서 하는 거예요. 아 그리고. 너무 맘 쓰지 마요. 나는 항상. 누가 시켜서 사는게 아니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거니까. 지금의 이런 내 행동들도.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요. 알았죠?"
"...예...예...."
또다시 우물쭈물하면서 멍청스럽게 대답하는데, 수라 씨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생긋 웃어주면서 내게 이리 말했다.
"..자신감이 0인 남자에게... 자신감이 우주 끝까지 뻗친 여자가 붙어 있으면...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나는 믿어요 ^^ "
<..설마하니 자신감을 뚝 쪼개서 제게 주시겠단 건 아니겠죠?>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일이 터졌다.
그들보다 내가 먼저 봤다.
전방에서 보이는 젊은 남자애들 네다섯....고등학교 때 나를 끝없이도 괴롭히고 심부름 시키며 골려 대던... <고등학생 시절의 동창들>...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다가오다가, 이윽고 그쪽에서도 나를 봤는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수라 씨와 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저들이 다가오는것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 기분이다.
또...또 뭔가를 시키거나 하진 않을까?
갑자기 때리거나 하는 거 아냐?
돈을 주라고 할 수도....하지만 지금은 현금도 별로 없는데... 어쩌지?
아냐.. 문제는 그게 아니다..
수라 씨는...옆의 수라 씨는 어떻게 하지?
수라 씨의 안위도 문제지만...내 한심한 꼴을...그녀 앞에서..
저놈들 앞에서 납죽 엎드리는 내 모습을 보여줄지도...
이런 저런 생각이 만감을 교차하며 휘돌고 있는 사이...
고등학생 때 가장 잘 나갔던 녀석. 회수가 거들먹거리며 나와 그녀의 코앞에 당도했다.
"이야! 긴가민가 했는데...맞네? 야 오랜만이다 시우. 잘 사냐 임마? 하하~"
첫인사와 동시에 내 어깨를 제법 힘세게 밀치는 이녀석....손버릇이 항상 나빴었지....저 손에 참 많이도 맞고 꺾이고 울었다..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어설프게 같이 인사를 건넸다. 몸이 몇발자국 뒤로 힘없이 밀리면서...
"어...어 그래...오랜만이다... 회수야... 아는 애들도 보이고..모르는 애들도 있고..그러네?"
"아는 애들? 아...너 때린 애들? 하하. 얘 성진이랑 유광 이잖아. 심부름 많이 했었을텐데...그새 이름 까먹었냐?"
"어..아니...그냥 간단히 말한거야. 이름들이야..기억나지..."
"그래야지...이름 잊어먹었다고 하면 얘네가 가만 있을 놈들이 아니지. 너 처세술이 좀 늘었다? 하하. 그리고 얘넨...
우리 학교 동창이 아니니. 넌 당연히 모르지 병신아. 병신새끼..크크..."
..이녀석의 더러운 입버릇도 전혀 달라진게 없군..
난 씁쓸한 표정으로 인상이 구겨지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회수는 성진이랑 유광이와 더불어 나머지 두놈과 낄낄대다가, 이윽고 수라 씨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래도 해떨어지진가 꽤 되었기에, 근처 가로등이 있는 곳은 거리가 좀 있어, 어슴푸레하게 보이지 잘은 안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내게만 관심을 가졌던 건데. 좀더 제대로 보니 수라 씨가 여자라는 것. 그리고 가지 않고 서 있다는것에서 나와 일행이란 생각이 이윽고 들었는지 이제사 집중해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회수는 호~오 하면서 놀랍다는 듯 나를 한번 봤다.
"..뭐..뭐야? 이..여잔? 너..여자친구 생겼냐? 설마? 설마 니가? 성시우. 니놈이 여친이 생겼다고? 와하하. 이거 참. 일어날수 없는 일일텐데?!"
녀석은 과장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덕분에 다른 패거리놈들도 흥미 있어 하면서 그녀를 봤다.
그들은 처음엔 <내 여자친구> 라고 예상해서 그런지 별 생각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점 점 입 들이 떠~~억 하고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턱들이 따다닥 하고 벌어지니 정말 소리가 들렸다...)
회수는 떠듬 떠듬 거리면서 나를 봤다.
"어...뭐...무슨...니....니 여자친..구? 여친?! 니 깔...정말 맞..냐?!"
수라 씨의 외모는 어슴푸레한 이곳에서도 홀로 빛났는지, 시선 주고 제대로 바라보니까 과연 녀석들도 보이긴 보였나보다.
하긴....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지....
내가 한숨 쉬면서 설명 하려 하는데.... 그녀가 빨랐다.
" 야. "
야 라고 하는 말은 사실 듣기에 따라선, 혹은 상황에 따라, 사용하기에 따라서 매우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단어이자 언어이다.
근데, 목소리의 주인이 주인이다 보니, 그 음색이 실로 고와, 나는 물론이요 여섯 사내의 목을 휙 돌아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다.
회수는 저도 모르게 수라 씨를 바라봤다가, 친구들을 비롯해 좌우를 둘러보더니, 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자, 오른손 검지를 곧추세워 자기 얼굴을 가리키면서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진 않고 입모양으로 <나?!> 하며 반응하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두눈 모두 크게 떠져 멍청해 보일 정도로 둥그래져 있었다. 절세미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서 저런걸까?!
저녀석. 이미 이여자 저여자랑 많은 경험을 해봤겠지만...수라 씨같은 여자는 단연코 처음이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내 옆에 서 있는 수라 씨는 생글거리면서, 회수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고, 그걸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 근처에 잘만한 장소 내가 아는데. 다들 같이 갈래? 하나도 빠짐 없이 너희들 똘똘이 다 빨아줄테니깐. 아. 단체플 하려면 하든가. 난 상관없어 ^^ "
"................"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유난히도 차가운 바람이 기분 나쁘게도 오랫동안 우리 주위를 휘돌다가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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