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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9:47 630회 0건
‘후욱!’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파이 앞에 놓여진 촛대의 불 하나를 꺼버렸다.

“사가랴 녀석도 의외로 촌티나는 구석이 있었군.”
“사실 오래 묵은 녀석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 그것보다 내 부하들이 코어나이트를 이기지 못하는 건 녀석들이 무한히 되살아나는 존재라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프로메테우스쪽의 촛불은 단 하나가 꺼졌을 뿐이지만 파이의 양초는 이미 여섯개나 꺼졌다.
그들 중 넷이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쓰러졌으니 나머지 하나가 쓰러지는건 그야말로 시간의 문제.
심연의 푸르름이라기 보다는 심연의 어두움이라 불러도 좋을 진한 녹색의 눈동자가 루이를 향한다.
‘후욱!’

“정말 쓸데 없는 짓이야.”
“아아… 정말이다.”

나른한 표정으로 꺼져버린 마지막 촛불을 바라보고 있는 루이와 파이.
그때 반듯한 집사복을 입은 사가랴가 쟁반에 음료를 담아 실실 쪼개며 나타났다.

“아무래도 잠시 후에 인간측의 영웅이 올라올 것 같군. 유감이야 파이.”
“네, 정말 유감이군요.”

조용히 레드와인을 비우는 파이.
잠시 후 최후의 촛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영웅들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차아아아아아아앗!”
“우워어어어억!”

물결의 할버드 웨이브를 풍차처럼 휘돌리며 돌격해 들어오는 창의 고수 니엘 쿠퍼! 하지만 상대는 어이없게도 그의 일격을 가볍게 한 손으로 받아내는 동시에 야만 전사의 심장을 노리고 강렬한 발차기를 찔러 넣었다.
‘슈우우우우우…’
가까스로 정신 방벽을 올린 덕분에 치명상을 피할 순 있었지만 가벼워 보이는 그녀의 일격에 발자크의 정신 방벽은 그야말로 붕괴 직전.

“흐읏!”

하지만 코어나이트는 그들 둘이 아니다.
짧은 기합과 함께 거의 20미터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죽음의 시녀를 휘두르는 엘리스.
거리는 이미 지나치게 떨어져 있고, 도약조차 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생명을 떨구는 보이지 않는 사신의 낫은 어김없이 그녀의 목을 노리고 쇄도해 들어가 그녀의 목에 적중했다.
‘카아아앙!’

“크읏!”
“겨우…”

의외의 충격에 진저리치며 뒤로 물러서는 엘리스.
설마하니 죽음의 시녀에 직격으로 목을 당하고도 오히려 무기가 튕겨져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이런 무기로 내게 대항 할 생각이었나?”
“설마, 그들은 시간 끌기일 뿐이야! 마스터! 이 틈에 변신을!”

‘키이이이이이잉!’
하늘에 떠 오른 사람은 기네비아, 슈슈, 유키.
세 명의 마녀가 동시 캐스팅에 들어갔다.
그것은…

“9서클 극성마법!”
“이터널!”
“웨이브!”

‘푸o우우우우웅!’
투명한 파동의 기둥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그녀에게 도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순간적으로 반투명한 방어막이 그녀의 전면에 전개되며 무지막지한 음파의 반향을 울려낸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슈슈가 노렸던 것.

“사이오닉…”
“쉴드!”
“쉴드!”
“쉴드!”
“쉴드!”
“쉴드!”

어느 틈엔가 이미 여섯 방위를 점한 여섯명의 코어나이트가 그녀를 둘러싸고 강렬한 방어 결계를 구축해 그녀를 결계 안에 가뒀다.
음파는 이미 그녀에게 도달해 반사되어 나오기 시작해서 어느 쪽이든 방어막을 파괴 당하거나 해제하는 쪽이 조금 전의 일격을 고스란이 뒤집어쓰게 될 상황.
그나마 코어나이트의 경우 탁 트인 공간을 등지고 있으니 들어오는 데미지를 빗겨가게 해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파이는 다르다.

“음파로 완전히 둘러싸서 날 찜 쪄먹을 속셈? 웃기지도 않는군.”
“아아…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일이야.”

슈슈들이 시간을 벌어줬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변신하지 않았다.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물러서.”
“마스터…”
“지금의 그녀는 그대들이 어떻게 해볼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래, 지금의 난 그대들이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지.”

어이없게도 순순히 방어막을 풀어버린 파이.
강렬한 음파가 그녀의 몸을 잡아 찢을 듯이 밀려들었지만 그녀는 마치 폭풍속에 홀로 고요한 어느 성자마냥 가만히 그것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입술을 떨며 물러서는 슈슈.
아무리 그녀가 강하다고 하지만 이런 터무니 없는 존재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혼자 한 것도 아니고 가장 듬직한 아군인 기네비아와 아직은 미숙하지만 유키가 함께 날린 9서클 극성마법… 그것 세 방을 직격 당하고도 저렇게까지 아무렇지도 않다면 솔직히 말해 대책이 없다.

“지금 그녀에겐 슈르의 힘까지 있어. 그대들이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지.”
“정확한 지적이야 프로메테우스. 용호(虎)의 상박(相搏)에는 토끼가 낄 자리가 없는 법이지.”

‘쿠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짙은 심연의 바람을 일으키며 거대해지는 파이.
하지만 의외로 그녀의 거대화 모습은 드래곤이 아닌 인간형의 모습이다.

[그대도 준비하는 것이 좋아. 비겁하게 기습해서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으니.]
[아아… 그거 좋지.]

‘쿠와아아아악!’
프로메테우스 역시 인간이 형태에서 상당히 벗어난 인간형의 거인으로 변신했다.
그것은… 생명체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옛날 인간이 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강철의 신 데우스마키나의 모습인지 헷갈리는 모습.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뭐야… 이거…”
“이건 정말이지 우리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겠군.”

멍해진 슈슈의 옆으로 다가온 기네비아.
이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과거 그녀들이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인간이 마족에게서 독립하던 시점에서 이미 마족에게는 종족 대표자 ‘바알’이 있었다.
그런 바알을 몰아내고 인간의 나라를 건국한 프로메테우스는 과연 인간형의 모습이었을까?
바알을 비롯해 티르오닉, 센터우르스, 씨쓰, 슈르, 렐메네스는 모두 거대화의 능력 내지는 본래부터 거대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큰 격전을 치를 때 거대화를 해서 싸웠고, 실제로 보기에도 그렇게 할 경우 그들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 역시 거대화의 모습을 갖고 있을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우워어어어어억!”

움켜쥔 프로메테우스의 주먹에 막대한 에너지가 집결된다.
그것은 마법사가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만드는 마법진과는 또 다른 형태의 힘의 집적방식.
그것을 바라보던 슈슈의 입이 멍하니 벌어지며 저도 모르게 뭔가를 중얼거린다.

“힘에… 마도의 법이 이끌리고 있어.”

‘쿠와아아아아앙!’
터무니 없는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팔방으로 밀려나가고 기네비아와 니엘이 이를 악물고 방어막을 형성해 모두를 보호하고 있다.

“나는… 결국… 그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존재인가?”
“슈슈!”
“나는…”
“정신차려 슈슈!”
“빌어먹을 난 제정신이야! 난… 난…”

그 방대한 마도의 지식이 저 압도적인 싸움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일격 하나 하나에는 별을 파괴할 힘이 깃들어 있고, 큰 기술이라도 쓸 참이면 아예 공간역장이 통째로 비틀리며 비명을 토해낸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세계에 희대의 거인이 싸우는 이 지점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이지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쉘을 희생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실망이네.”

뭔가에 홀린 듯 휘적 휘적 방어막 가장자리까지 다가가는 엘리스.
하지만 그래봤자 강력한 방어막을 깨부수고 나가지 않는 이상 더 전진하는 건 무리다.
‘슈욱…’

“무슨!”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어막을 통과했던 것.

“탈레스의 무의미의 장막… 그 기술을 엘리스 네가 어떻게…”

탈레스코어의 코어웨폰은 소울이터.
그리고 그 소울이터는 슈슈가 갖고 있는데 슈슈는 탈레스의 기술을 아직 한번도 유출한 적이 없다.
물론 전대 사용자 광전사 조든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칠현자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공유했어. 물론 코어에는 각자의 기술만 기술해놨지만 칠현자들은 상대의 기술을 모두 알고 있었지.”

천천히 돌아서는 엘리스의 눈동자는 어느샌가 찬란히 빛나는 에메랄드빛으로 변해 있었다.

“설마 당신은… 페리안드로스?”
“오랜만이다 슈슈.”

그것은 페리안드로스 전용의 마법 스킬을 위한 일종의 장치.
또한 그것은 사용자의 육체를 급속도로 갉아먹는 육체 부스터나 다름없는 것이다.

“많이 타락했구나 보랏빛의 마녀여.”
“네?”
“류우 마하와 함께하던 시절의 너는 좀 더 용기 있는 코어나이트였는데 말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건 용기 이전에…”

뭔가 말하려는 슈슈를 버려두고 하나 둘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것은 마치… 슈슈를 버리는 듯한 움직임.
모두가 기네비아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자 기네비아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린 네 짐이 아냐.”
“난…”

마지막으로 기네비아가 떠나갔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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