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수랑에 즐비하게 위치한 또 다른 첨두형 아치들 중 하나를 통해, 바닷가에 밀려온 향유고래의 늑골 속에 들어온 것만 같던 회랑을 빠져나갔다.
아치 뒤는 바로 막다른 벽이었는데, 그곳엔 비자나무로 만든 두꺼운 한쪽 여닫이 문이 버티고 있었다. 꽤나 육중한 문이었는지라 문 귀퉁이의 상부와 하부에는 피봇과 플로어 힌지가 박혀 단단히 문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들어간 좁은 사각형의 공간은 일종의 코브 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계단참에서 보았던 알 수 없는 광원이 벽의 구조체 속에 들어가, 벽면으로 가려진 반사광을 통해 얇은 새틴 레이스처럼 해바라기 색으로 너울거리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문은 마치 후광을 업은 듯 은은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에는 은빛을 띤 칼날이 연상되는, 가늘고 휘어진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이마가 오는 위치에 3이라고 씌여진 문패가 오롯이 걸려 있었다.
"이건 일종의 승강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아가씨들께서 아시던 승강기와는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요."
집사는 3이라고 씌여진 문패를 문에서 떼어내 문 옆에 있는 작은 협탁의 서랍 속에 넣고, 그 속을 뒤져 5라고 씌여진 다른 문패를 꺼냈다. 협탁의 다리가 캐브리올(주: 로코코 시대 가구의 굽은 다리) 양식으로 굽어져 짐승의 발톱이 공을 쥐고 있는 모습인 클라우 앤 볼 형태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이 숫자는 아가씨들이 가고자 하는 층 수를 말하는 겁니다."
집사는 5라는 문패를 문에 고정된 걸쇠에 걸었다.
"그쪽 세상에서는 승강기가 사람들을 태우고 움직여서, 고정되어 있는 다른 층으로 이동시켜 주지요. 그렇죠?"
집사가 손잡이를 잡으며 확인하듯이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만든 승강기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아가씨들께서 움직이지 않으셔도 아가씨들 앞으로 원하는 공간을 이동시켜 줍니다. 제가 5라는 문패를 단 것은 아가씨들이 묵을 숙소가 5층에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문패를 달고 문을 열면 5층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거지요."
집사가 손잡이를 옆으로 제끼며 문을 당겼다. 문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조용하게 열렸다. 문틀 건너편에는 요철이 강조된 호형 천장이 높고 둥글게 굴곡져 있는 시원한 복도가 나타났다.
"어떻습니까. 이런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사용자 중심의 시스템 아니겠어요."
동의를 구하듯 집사가 그녀들을 마주 보았지만, 그녀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났다는 5층 복도를 건너다 볼 뿐이었다. 그녀들이 복도 안 쪽으로 들어오자 집사는 뒤에서 문을 닫았다. 닫힌 문 안쪽에는 1이라고 씌어있는 문패가 걸려 있었고, 문 옆엔 문 바깥 쪽에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협탁이 놓여있었다.
5층 복도는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호텔 로비를 보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무개념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넓고 긴 복도의 한쪽 벽은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다른 쪽 벽엔 커다란 방문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창문은 없었지만, 조명이 벽화가 있는 쪽 벽의 코니스에 달려있어 위에서 아래로 벽을 씻어 내리듯이 내리쬐는 월워싱 기법으로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명의 현휘가 높아 벽화가 벽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들은 집사를 따라가면서 유명 화랑의 갤러리를 방문한 것처럼 벽화를 구경했다. 벽화는 하나로 된 커다란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이 끝나면 약간 사이를 두고 또 다른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여러 개의 그림을 벽면 전체에 차례로 그려놓은 것이었다. 그림은 매우 낯설었고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딱딱했으며 단순한 색상과 묘사로 일관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전시된 모든 벽화를 한 사람이 그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림이 거칠군요."
첫번째 그림을 보면서 디지털퍼머가 말했다.
"그림 선정을 집사님이 하셨나요?"
집사가 돌아보더니 뒷짐을 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부 제 의견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림이 거칠게 느껴지는건 아마 판화라 그럴 겁니다."
디지털퍼머는 그림의 일부분으로써 상단에 오브제처럼 존재하는 글자를 가리켰다.
"저 글자는 뭐라고 읽는 건가요? 디반 자포네스?"
"그건 프랑스어예요. 디방 자포네라고 읽습니다."
그림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한 늙은 신사와 테이블에 앉아 공연을 구경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여인은 세르메라는 여성입니다. 물랑루즈에서 일하던 무희였지요. 물랑루즈는 아시지요? 술과 노래와 공연을 모아놓은 세기 말의 유흥지였지요."
집사는 손으로 가리키며 그림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 그림의 작가는 카페 콩세르라는 프랑스의 공연카페 내부 풍경을 판화로 찍어낸 겁니다. 그 카페의 이름이 디방 자포네구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전역에 석판화 기법의 포스터를 처음으로 유행시키지요. 주로 무희들이나 창녀촌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집사가 그녀들을 향해 다랑어떼를 발견한 심해 상어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 힌트면 그림의 작가가 누군지 아실 법도 한데요."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를 건너다 보았다. 알고 있니 하는 표정이었다.
"툴루즈 로트렉이겠죠."
쇼트웨이브는 매우 따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나."
집사가 알고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지는 다른 그림에는 아예 세르메라는 글자가 써 있었는데, 한 여인이 무대에서 긴 치마를 입은 채 한쪽 다리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카드리유라는 춤의 동작이었다. 그림의 아랫부분에는 털이 숭숭난 큼지막한 손 하나가 첼로처럼 보이는 현악기의 머리부분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그림 역시 앞선 그림들처럼 주요 특징들만을 매우 과장하여 만화를 그리듯이 그려낸 포스터였다.
그녀들이 복도를 따라 앞으로 가자, 판화가 아닌 유화로 보이는 그림도 보였고 아예 스케치만 되어 있는 그림도 몇 점 보였다. 집사가 그 중 하나의 그림을 짚었다.
"이 그림은 그가 1889년에 열렸던 부조리 미술 전시회에 "탄산수 수채화와 하잘것 없는 부스러기같은 조각 부문"에 출품한 그림이었습니다. 로트렉의 선진적인 미술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제목은 "매독에 걸린 불행한 가족의 초상화"입니다."
쇼트웨이브가 잠시 그림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글쎄, 선진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기품있는 그림이라고 보긴 좀..여하튼 저희 취향은 아니군요. 집사님 말씀대로라면 로트렉이 출품했다는 부조리 미술 전시회라는 것 자체가 약간 부조리했던 목적이 있었지 않나 싶네요. 그러니까 이런 희화화된 그림이 걸리는 것 아니겠어요."
집사가 기분이 상했는지 아무 말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계속해서 이어진 대부분의 그림은 여성들을 그린 것이었는데,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 중에는 엉덩이 부분이 불룩하게 올라온 버슬을 착용한 경우도 있었다. 가끔 보이는 남자들은 모두 긴 외투에 실크햇이나 보울러를 쓰고 있었다.
집사는 복도 끝에 있는 크고 화려한 문 앞에 섰다.
"여기가 아가씨들의 방입니다."
집사가 암적색의 치밀한 주목나무로 만들어진 양여닫이 문을 당겨 열었다.
방에 들어선 그녀들은 고풍스럽게 펼쳐진 엔티크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마루는 갈색의 은은한 자단을 헤링본 패턴으로 잘라 만든 것으로, 뉴욕에 있는 카네기홀의 무대마루에나 어울릴 법한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문을 마주보고 있는 맞은편 긴 벽에는 금속 격자가 들어간 커다란 미서기 창 세 개가 자리잡고 있었고, 각각의 창문엔 밸런스를 단 엷은 크리스크로스 커튼이 태슬밴드에 걸려 자연스럽게 늘어진 채로 매달려 있었다.
방 중앙에는 커다란 오크 원목을 사용한 푹신한 더블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침대 위엔 벨벳으로 만든 페이즐리 패턴의 베드 스프레드가 깔려 있었다. 침대의 네 다리 위엔 사각 기둥이 높게 세워져 침대의 사면 모두를 프릴 달린 커튼으로 투명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침대머리가 있는 쪽 벽면에는 마호가니로 만든 육중한 화장대가 놓여있었는데, 거기엔 전함 포템킨을 시네마스코프 규격으로 상영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다. 더구나 화장대의 와이드체스트 부분엔 황금색 도장이 길게 장식되어 있어 먼지를 닦는 것조차 송구스러울 만큼 고급스런 느낌을 자아냈다.
화장대 위엔 특이한 빛깔의 조개와 고둥껍질이 크기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선형의 패각무늬가 신비로운 색깔과 조화되어 방 안의 분위기를 한층 고즈넉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서랍콘솔이 놓여 있었는데, 화장대와 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서 견고해 보이는 놋쇠 손잡이 사이에 붉은 꽃과 나뭇잎이 핸드페인팅 되어 있었다. 서랍콘솔 위엔 장미꽃이 가득 차 있는 꽃병과 이젤에 받쳐져 있는 황갈색의 화접,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는 작은 보석이 가득 박혀 있는 보석상자, 그리고 8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는 탑 모양의 순금 탁상시계가 올려져 있었다.
방구석에는 잘 건조된 귀목으로 만들어진 보라색 벨벳 암체어와 작고 동그란 차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엔 보라색 꽃무늬가 들어간 흰색 다기세트가 신방에 처음 들어간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방의 나머지 한쪽 면은 메이플 무늬목으로 만들어진 흑갈색의 커다란 벽장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페르시아 양탄자를 닮은, 보르도색 러그가 적당한 크기로 재단되어 침대 밑에 깔려 푹신한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들은 아까 집사가 말한 사용자 중심 시스템의 일환인지도 몰랐다. 사용자 입장의 그녀들로서는 하늘을 찌를 듯이 거창하게 만든 시청 본관의 건축보다는 이 방의 세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병주고 약주는 것처럼 말이었다.
막대모양의 스틱몰딩이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에 길게 몰딩되어 있었고, 그 밑으로는 홍차색의 레이스가 줄을 이었다. 벽지는 펠트로 만든 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캐러멜색과 진주색으로 프린트한 가랜드와 아라베스크 무늬로 채워져 있었다.
"저쪽이 욕실입니다."
집사가 벽 한쪽에 붙어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럼 피곤하실텐데 잠시 쉬십시오. 한 시간쯤 후에 저녁식사가 차려질 예정입니다. 그때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집사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디지털퍼머는 그가 나가자마자 작은 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상에. 무슨 여왕 침실도 아니고. 저 침대 좀 봐. 그 위에서 수영을 해도 되겠어."
쇼트웨이브는 벽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벽장엔 양모로 짠 부드러운 담요 몇 장과 목욕가운, 잠옷 등이 걸려 있었다.
"그냥 이렇게 신발 신고 돌아다녀도 되는거야?"
바닥이 너무 깨끗해서 신발을 벗어야 할지 신어야 할지 알 수 없어진 디지털퍼머가 조심스레 발을 딛으며 말했다.
그녀는 욕실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유백색의 대리석이 깔린 목욕실이 나타났다. 커다란 욕조와 세면대, 그리고 범상치 않은 모양의 양변기가 있었다.
양변기는 그녀들이 흔히 보았던 변기와는 달리, 둥근 원형의 떡조개가 입을 벌린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재질도 세라믹이 아니었으며, 얇고 튼실한 실제 조개껍질처럼 보이는 재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배수구와 앉을 수 있는 시트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 물이 고여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변기가 맞긴 맞는 것 같았다.
뒷 편에서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디밀고 욕실 안을 쳐다보았다. 전신을 비출 수 있는 전면거울이 욕조 앞에 세워져 있었다.
"욕조 정말 크다."
디지털퍼머가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이 쇼트웨이브에게 말했다.
"저 변기는 어떻게 사용하는거니. 휴지도 없는데..비데가 되는건가?"
"한번 써보면 알겠지,뭐."
쇼트웨이브는 장난스럽게 디지털퍼머의 어깨를 치고는 욕실을 지나쳐 창가 쪽을 향해 걸어갔다. 디지털퍼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신발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쇼트웨이브는 가운데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커튼은 색조와 형태에 있어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주의깊게 선정된 것 같았다. 창문은 얇은 금속 틀로 꽃무늬를 만들고, 그 격자 사이사이에 투명한 유리를 끼워 넣은 것이었다. 창 밖엔 붉은 달빛아래 제천시의 시가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매우 특이한 건물 한 채를 발견했다. 동서남북의 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 30도쯤 틀어진 곳으로 몇 개의 교차로를 지난 곳에 블럭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길쭉하고 커다란 검은 건물이 있었다. 그녀가 그 건물을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랬는데, 첫번째는 그 앞에 서 있는 빨간 풍차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풍차도 풍차지만 그 건물은 석재로 지어진 다른 건물과는 달리 목재로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쇼트웨이브가 눈썹을 모으며 그 건물을 주시했다. 그때 욕실에서 비명이 들렸다. 쇼트웨이브는 깜짝 놀라 욕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욕실 문을 열고 쇼트웨이브가 소리쳤다.
"나 좀 꺼내줘."
디지털퍼머가 변기에 의해 접혀진 채로, 당황한 나머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쇼트웨이브를 향해 소리쳤다. 쇼트웨이브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잠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변기 뚜껑이 디지털퍼머의 등을 내리 눌러, 앉은 자세 그대로 넓적다리와 가슴을 납작하게 붙여 놓고 있었다. 바지와 팬티가 정강이에 내려와 있는 것으로 보아 디지털퍼머는 아마도 볼 일을 보기 위해 변기를 사용한 것 같았다.
"나 좀 빨리."
디지털퍼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그제서야 쇼트웨이브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디지털퍼머가 변기 위에 앉았을 때 변기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시트와 뚜껑을 오무려 마치 조개가 입을 다물듯이 그녀를 물어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허리와 엉덩이, 넓적다리 부분이 변기 속에 들어가 단지 얼굴과 상체 일부분, 팔다리만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쇼트웨이브가 얼른 뛰어가 디지털퍼머의 양손을 잡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녀는 무시무시한 흡인력에 잡혀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디지털퍼머가 울상이 되어 변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이를 어째."
어쩔 줄 모르고 쇼트웨이브는 이번엔 변기 뚜껑과 시트 사이에 난 틈을 붙잡고 뚜껑을 들어올리려고 힘써 봤지만 뚜껑 역시 전혀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엄마."
디지털퍼머가 갑자기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쇼트웨이브가 그녀의 비명에 사색이 되었다.
"이 속에 뭔가 살아있어."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뭔가 벌레 같은게 엉덩이에 닿았어. 나 좀 빨리 꺼내줘. 그게..그게..항문으로 들어오려고 해. 엄마, 나 어떡해."
그녀가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쇼트웨이브가 놀라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시 힘을 써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욕실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누구없어요! 집사님!"
아치 뒤는 바로 막다른 벽이었는데, 그곳엔 비자나무로 만든 두꺼운 한쪽 여닫이 문이 버티고 있었다. 꽤나 육중한 문이었는지라 문 귀퉁이의 상부와 하부에는 피봇과 플로어 힌지가 박혀 단단히 문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들어간 좁은 사각형의 공간은 일종의 코브 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계단참에서 보았던 알 수 없는 광원이 벽의 구조체 속에 들어가, 벽면으로 가려진 반사광을 통해 얇은 새틴 레이스처럼 해바라기 색으로 너울거리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문은 마치 후광을 업은 듯 은은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에는 은빛을 띤 칼날이 연상되는, 가늘고 휘어진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이마가 오는 위치에 3이라고 씌여진 문패가 오롯이 걸려 있었다.
"이건 일종의 승강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아가씨들께서 아시던 승강기와는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요."
집사는 3이라고 씌여진 문패를 문에서 떼어내 문 옆에 있는 작은 협탁의 서랍 속에 넣고, 그 속을 뒤져 5라고 씌여진 다른 문패를 꺼냈다. 협탁의 다리가 캐브리올(주: 로코코 시대 가구의 굽은 다리) 양식으로 굽어져 짐승의 발톱이 공을 쥐고 있는 모습인 클라우 앤 볼 형태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이 숫자는 아가씨들이 가고자 하는 층 수를 말하는 겁니다."
집사는 5라는 문패를 문에 고정된 걸쇠에 걸었다.
"그쪽 세상에서는 승강기가 사람들을 태우고 움직여서, 고정되어 있는 다른 층으로 이동시켜 주지요. 그렇죠?"
집사가 손잡이를 잡으며 확인하듯이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만든 승강기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아가씨들께서 움직이지 않으셔도 아가씨들 앞으로 원하는 공간을 이동시켜 줍니다. 제가 5라는 문패를 단 것은 아가씨들이 묵을 숙소가 5층에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문패를 달고 문을 열면 5층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거지요."
집사가 손잡이를 옆으로 제끼며 문을 당겼다. 문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조용하게 열렸다. 문틀 건너편에는 요철이 강조된 호형 천장이 높고 둥글게 굴곡져 있는 시원한 복도가 나타났다.
"어떻습니까. 이런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사용자 중심의 시스템 아니겠어요."
동의를 구하듯 집사가 그녀들을 마주 보았지만, 그녀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났다는 5층 복도를 건너다 볼 뿐이었다. 그녀들이 복도 안 쪽으로 들어오자 집사는 뒤에서 문을 닫았다. 닫힌 문 안쪽에는 1이라고 씌어있는 문패가 걸려 있었고, 문 옆엔 문 바깥 쪽에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협탁이 놓여있었다.
5층 복도는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호텔 로비를 보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무개념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넓고 긴 복도의 한쪽 벽은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다른 쪽 벽엔 커다란 방문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창문은 없었지만, 조명이 벽화가 있는 쪽 벽의 코니스에 달려있어 위에서 아래로 벽을 씻어 내리듯이 내리쬐는 월워싱 기법으로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명의 현휘가 높아 벽화가 벽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들은 집사를 따라가면서 유명 화랑의 갤러리를 방문한 것처럼 벽화를 구경했다. 벽화는 하나로 된 커다란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이 끝나면 약간 사이를 두고 또 다른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여러 개의 그림을 벽면 전체에 차례로 그려놓은 것이었다. 그림은 매우 낯설었고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딱딱했으며 단순한 색상과 묘사로 일관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전시된 모든 벽화를 한 사람이 그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림이 거칠군요."
첫번째 그림을 보면서 디지털퍼머가 말했다.
"그림 선정을 집사님이 하셨나요?"
집사가 돌아보더니 뒷짐을 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부 제 의견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림이 거칠게 느껴지는건 아마 판화라 그럴 겁니다."
디지털퍼머는 그림의 일부분으로써 상단에 오브제처럼 존재하는 글자를 가리켰다.
"저 글자는 뭐라고 읽는 건가요? 디반 자포네스?"
"그건 프랑스어예요. 디방 자포네라고 읽습니다."
그림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한 늙은 신사와 테이블에 앉아 공연을 구경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여인은 세르메라는 여성입니다. 물랑루즈에서 일하던 무희였지요. 물랑루즈는 아시지요? 술과 노래와 공연을 모아놓은 세기 말의 유흥지였지요."
집사는 손으로 가리키며 그림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 그림의 작가는 카페 콩세르라는 프랑스의 공연카페 내부 풍경을 판화로 찍어낸 겁니다. 그 카페의 이름이 디방 자포네구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전역에 석판화 기법의 포스터를 처음으로 유행시키지요. 주로 무희들이나 창녀촌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집사가 그녀들을 향해 다랑어떼를 발견한 심해 상어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 힌트면 그림의 작가가 누군지 아실 법도 한데요."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를 건너다 보았다. 알고 있니 하는 표정이었다.
"툴루즈 로트렉이겠죠."
쇼트웨이브는 매우 따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나."
집사가 알고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지는 다른 그림에는 아예 세르메라는 글자가 써 있었는데, 한 여인이 무대에서 긴 치마를 입은 채 한쪽 다리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카드리유라는 춤의 동작이었다. 그림의 아랫부분에는 털이 숭숭난 큼지막한 손 하나가 첼로처럼 보이는 현악기의 머리부분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그림 역시 앞선 그림들처럼 주요 특징들만을 매우 과장하여 만화를 그리듯이 그려낸 포스터였다.
그녀들이 복도를 따라 앞으로 가자, 판화가 아닌 유화로 보이는 그림도 보였고 아예 스케치만 되어 있는 그림도 몇 점 보였다. 집사가 그 중 하나의 그림을 짚었다.
"이 그림은 그가 1889년에 열렸던 부조리 미술 전시회에 "탄산수 수채화와 하잘것 없는 부스러기같은 조각 부문"에 출품한 그림이었습니다. 로트렉의 선진적인 미술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제목은 "매독에 걸린 불행한 가족의 초상화"입니다."
쇼트웨이브가 잠시 그림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글쎄, 선진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기품있는 그림이라고 보긴 좀..여하튼 저희 취향은 아니군요. 집사님 말씀대로라면 로트렉이 출품했다는 부조리 미술 전시회라는 것 자체가 약간 부조리했던 목적이 있었지 않나 싶네요. 그러니까 이런 희화화된 그림이 걸리는 것 아니겠어요."
집사가 기분이 상했는지 아무 말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계속해서 이어진 대부분의 그림은 여성들을 그린 것이었는데,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 중에는 엉덩이 부분이 불룩하게 올라온 버슬을 착용한 경우도 있었다. 가끔 보이는 남자들은 모두 긴 외투에 실크햇이나 보울러를 쓰고 있었다.
집사는 복도 끝에 있는 크고 화려한 문 앞에 섰다.
"여기가 아가씨들의 방입니다."
집사가 암적색의 치밀한 주목나무로 만들어진 양여닫이 문을 당겨 열었다.
방에 들어선 그녀들은 고풍스럽게 펼쳐진 엔티크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마루는 갈색의 은은한 자단을 헤링본 패턴으로 잘라 만든 것으로, 뉴욕에 있는 카네기홀의 무대마루에나 어울릴 법한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문을 마주보고 있는 맞은편 긴 벽에는 금속 격자가 들어간 커다란 미서기 창 세 개가 자리잡고 있었고, 각각의 창문엔 밸런스를 단 엷은 크리스크로스 커튼이 태슬밴드에 걸려 자연스럽게 늘어진 채로 매달려 있었다.
방 중앙에는 커다란 오크 원목을 사용한 푹신한 더블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침대 위엔 벨벳으로 만든 페이즐리 패턴의 베드 스프레드가 깔려 있었다. 침대의 네 다리 위엔 사각 기둥이 높게 세워져 침대의 사면 모두를 프릴 달린 커튼으로 투명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침대머리가 있는 쪽 벽면에는 마호가니로 만든 육중한 화장대가 놓여있었는데, 거기엔 전함 포템킨을 시네마스코프 규격으로 상영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다. 더구나 화장대의 와이드체스트 부분엔 황금색 도장이 길게 장식되어 있어 먼지를 닦는 것조차 송구스러울 만큼 고급스런 느낌을 자아냈다.
화장대 위엔 특이한 빛깔의 조개와 고둥껍질이 크기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선형의 패각무늬가 신비로운 색깔과 조화되어 방 안의 분위기를 한층 고즈넉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서랍콘솔이 놓여 있었는데, 화장대와 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서 견고해 보이는 놋쇠 손잡이 사이에 붉은 꽃과 나뭇잎이 핸드페인팅 되어 있었다. 서랍콘솔 위엔 장미꽃이 가득 차 있는 꽃병과 이젤에 받쳐져 있는 황갈색의 화접,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는 작은 보석이 가득 박혀 있는 보석상자, 그리고 8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는 탑 모양의 순금 탁상시계가 올려져 있었다.
방구석에는 잘 건조된 귀목으로 만들어진 보라색 벨벳 암체어와 작고 동그란 차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엔 보라색 꽃무늬가 들어간 흰색 다기세트가 신방에 처음 들어간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방의 나머지 한쪽 면은 메이플 무늬목으로 만들어진 흑갈색의 커다란 벽장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페르시아 양탄자를 닮은, 보르도색 러그가 적당한 크기로 재단되어 침대 밑에 깔려 푹신한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들은 아까 집사가 말한 사용자 중심 시스템의 일환인지도 몰랐다. 사용자 입장의 그녀들로서는 하늘을 찌를 듯이 거창하게 만든 시청 본관의 건축보다는 이 방의 세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병주고 약주는 것처럼 말이었다.
막대모양의 스틱몰딩이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에 길게 몰딩되어 있었고, 그 밑으로는 홍차색의 레이스가 줄을 이었다. 벽지는 펠트로 만든 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캐러멜색과 진주색으로 프린트한 가랜드와 아라베스크 무늬로 채워져 있었다.
"저쪽이 욕실입니다."
집사가 벽 한쪽에 붙어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럼 피곤하실텐데 잠시 쉬십시오. 한 시간쯤 후에 저녁식사가 차려질 예정입니다. 그때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집사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디지털퍼머는 그가 나가자마자 작은 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상에. 무슨 여왕 침실도 아니고. 저 침대 좀 봐. 그 위에서 수영을 해도 되겠어."
쇼트웨이브는 벽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벽장엔 양모로 짠 부드러운 담요 몇 장과 목욕가운, 잠옷 등이 걸려 있었다.
"그냥 이렇게 신발 신고 돌아다녀도 되는거야?"
바닥이 너무 깨끗해서 신발을 벗어야 할지 신어야 할지 알 수 없어진 디지털퍼머가 조심스레 발을 딛으며 말했다.
그녀는 욕실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유백색의 대리석이 깔린 목욕실이 나타났다. 커다란 욕조와 세면대, 그리고 범상치 않은 모양의 양변기가 있었다.
양변기는 그녀들이 흔히 보았던 변기와는 달리, 둥근 원형의 떡조개가 입을 벌린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재질도 세라믹이 아니었으며, 얇고 튼실한 실제 조개껍질처럼 보이는 재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배수구와 앉을 수 있는 시트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 물이 고여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변기가 맞긴 맞는 것 같았다.
뒷 편에서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디밀고 욕실 안을 쳐다보았다. 전신을 비출 수 있는 전면거울이 욕조 앞에 세워져 있었다.
"욕조 정말 크다."
디지털퍼머가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이 쇼트웨이브에게 말했다.
"저 변기는 어떻게 사용하는거니. 휴지도 없는데..비데가 되는건가?"
"한번 써보면 알겠지,뭐."
쇼트웨이브는 장난스럽게 디지털퍼머의 어깨를 치고는 욕실을 지나쳐 창가 쪽을 향해 걸어갔다. 디지털퍼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신발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쇼트웨이브는 가운데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커튼은 색조와 형태에 있어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주의깊게 선정된 것 같았다. 창문은 얇은 금속 틀로 꽃무늬를 만들고, 그 격자 사이사이에 투명한 유리를 끼워 넣은 것이었다. 창 밖엔 붉은 달빛아래 제천시의 시가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매우 특이한 건물 한 채를 발견했다. 동서남북의 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 30도쯤 틀어진 곳으로 몇 개의 교차로를 지난 곳에 블럭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길쭉하고 커다란 검은 건물이 있었다. 그녀가 그 건물을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랬는데, 첫번째는 그 앞에 서 있는 빨간 풍차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풍차도 풍차지만 그 건물은 석재로 지어진 다른 건물과는 달리 목재로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쇼트웨이브가 눈썹을 모으며 그 건물을 주시했다. 그때 욕실에서 비명이 들렸다. 쇼트웨이브는 깜짝 놀라 욕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욕실 문을 열고 쇼트웨이브가 소리쳤다.
"나 좀 꺼내줘."
디지털퍼머가 변기에 의해 접혀진 채로, 당황한 나머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쇼트웨이브를 향해 소리쳤다. 쇼트웨이브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잠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변기 뚜껑이 디지털퍼머의 등을 내리 눌러, 앉은 자세 그대로 넓적다리와 가슴을 납작하게 붙여 놓고 있었다. 바지와 팬티가 정강이에 내려와 있는 것으로 보아 디지털퍼머는 아마도 볼 일을 보기 위해 변기를 사용한 것 같았다.
"나 좀 빨리."
디지털퍼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그제서야 쇼트웨이브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디지털퍼머가 변기 위에 앉았을 때 변기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시트와 뚜껑을 오무려 마치 조개가 입을 다물듯이 그녀를 물어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허리와 엉덩이, 넓적다리 부분이 변기 속에 들어가 단지 얼굴과 상체 일부분, 팔다리만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쇼트웨이브가 얼른 뛰어가 디지털퍼머의 양손을 잡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녀는 무시무시한 흡인력에 잡혀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디지털퍼머가 울상이 되어 변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이를 어째."
어쩔 줄 모르고 쇼트웨이브는 이번엔 변기 뚜껑과 시트 사이에 난 틈을 붙잡고 뚜껑을 들어올리려고 힘써 봤지만 뚜껑 역시 전혀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엄마."
디지털퍼머가 갑자기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쇼트웨이브가 그녀의 비명에 사색이 되었다.
"이 속에 뭔가 살아있어."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뭔가 벌레 같은게 엉덩이에 닿았어. 나 좀 빨리 꺼내줘. 그게..그게..항문으로 들어오려고 해. 엄마, 나 어떡해."
그녀가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쇼트웨이브가 놀라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시 힘을 써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욕실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누구없어요! 집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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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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