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8부 2장
『 - 사족 -
* 한번쯤 써보고 싶었던 환타지소설을 막상 써보니..... 초반부터..... 그것도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계속 드러나는군요. ㅡ_ㅡ
남성 주인공 부재, 초기 능력치의 밸런싱, 야설과 순수 환타지간의 방향성 등등.....
더욱 큰 문제는..... 어느 환타지 소설에서의 농담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드래곤이 날아와 주인공들을 물고 날아가 버렸다. 끝" 이라고 하지 않는 한.....
소수의 독자님들이 이탈하시지 않기를 빌면서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쿨럭! 쿨럭! ㅡ_ㅡ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8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 대로 : 전사와 도살자) - 2장 -
"실피안!"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사방에서 돌격해 들어오는 보르카의 오르크 대군을 보며 "젖소" 은주가 소리치자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약간 옆으로 찢어진 연녹색 눈동자가 어느새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저 오르크들이 가까이 못 오게 하고, 마음껏 휘젓고 두들겨 부숴 주세요!"
어느새 이십여 미터 앞까지 뛰어서 육박해온 검은 갑옷의 오르크들을 본 "젖소"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얀 구름으로 된 알몸의 여자 모습인 열여섯 실피안들이 일제히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그거라면....."
"쉬운 일이지만....."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그대는 지금....."
미영, "아가씨" 지선 및 오르크들에게는 실피안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6부 내용 참조)
그러나, "젖소"의 외침에 이어, 원형진으로 뭉쳐있는 쟈르칼의 오르크 부대 바깥쪽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거센 바람이 일어났다.
이어 바람이 바깥쪽으로 거세게 불어나가자, 돌격해 뛰어오던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악!"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끼를 높이 들고 뛰어오던 검은 가죽갑옷의 오르크 한 명이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벌러덩 뒤로 넘어져 버렸다.
"와르르르르!"
그 오르크를 시작으로, 원형으로 에워싸고 사방에서 달려오던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이 앞열부터 차례로 뒤로 넘어지며 온통 뒤엉켜 버리기 시작했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눈을 뜨고 앞을 쳐다볼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돌격해 오던 보르카의 오르크들은 일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바람을 피하면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앞열의 오르크들은 아예 바람에 밀려서 전부 넘어져서 온통 뒤엉켜 버린 채였다.
그러나, 심지어 넘어진 오르크들조차도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이 빗자루로 쓰는 것처럼 바람에 밀려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서, 또는 겨우 일어나 자기 발로 뛰어서 다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십여 미터 앞까지 사방에서 육박해 왔던 어마어마한 수의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잠깐 사이에 백여 미터 밖까지 다시 밀려났다.
비록 포위망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지만, 바깥쪽으로 거세게 밀어내는 거대한 바람의 힘에 밀려서 계속 뒤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오른손을 입에 댄 채 "젖소" 은주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놀라움과 감탄, 심지어 존경심이 담긴 표정으로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젖소"가 거만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어떠냐?
너희 만오천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나 하나를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정령사 플로 데 그리니앙(녹색 머리의 젖소)님의 힘이다!
힘이다....."
왠일인지 마지막 부분을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한 "젖소"가 눈을 감으며 휘청하는가 싶더니, 옆으로 피식 쓰러져 버렸다.
실피안들이 둥글게 모여서서 오른손을 높이 든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그대는 지금....."
"우리를 계속....."
"소환한 채로 유지하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소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우리도....."
"정령계로....."
"돌아갈 수 밖에는....."
"괜찮아요, 은주 언니?"
"아가씨" 지선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다가와 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을 내었다.
옆으로 쓰러지는 "젖소"의 몸을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 겨우 받아든 미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숙을 하면서 쉬지 않고 계속한 마차 여행으로, 몸이 너무 지친 상태에서 정령들을 소환해서 그만 쓰러진 것 같아.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만, 이미 정령들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실피안들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는 있는 미영이 상황을 짐작하고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미영이 언니도 마법을 쓰실 수 있잖아요?
범위가 넓은 석화 마법을 써보면 어떨까요?"
미영이 다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마법은 마법사 혼자서 바레라(방어막)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주위의 모두를 공격하는 마법이야.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면 같은 편까지 위험해."
백오십여 미터 밖까지 밀려나버린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우왕좌왕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바람의 정령의 무시무시한 힘에 놀란 듯 했지만, 오래 망설이고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가요?"
녹색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르키스 메르타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메르타와 역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오르크 족장 쟈르칼에게, 안심시키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미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플로라(은주) 언니를 가장 중심의 안쪽으로 옮겨 주셔요!
지선아! 너도 같이 가!
이제부터 다치는 전사들은 가장 안쪽으로 계속 날라 주세요!
자넷(지선)이 셍뜨 바인(신성한 빛)으로 바로 바로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를 포함해서 그대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를 놀라게 하는군,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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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대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는 펄펄 뛰며, 되쫓겨온 부하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바람이 분다고 도망오는 바보들이 어디 있단 말이냐?
당장 다시 돌격하지 못해?"
보르카의 주위에 모여선, 각 부대의 대장 오르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바람이 분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바람도 어느 정도여야지, 힘으로 강제로 밀어버리는데 무슨 수로 돌격한단 말인가?
아까부터 보르카 바로 옆에 붙어 있던, 투구대신 짐승 해골을 머리에 쓰고 수정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손에 든 오르크가 입을 열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정령이 끼어든 듯 합니다, 보르카님!"
"뭐? 쟈르칼이나 그 부하 놈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혹시 그 남으라고 한 인간 년들 중에....."
보르카의 말에 짐승 해골을 쓴 오르크가 대답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보르카님!"
몰려 있던 오르크 대장들이 벌레를 씹은 듯한 불편한 표정들이 됐다.
현명이고 뭐고..... 자기들의 총대장이 인간의 여자를 밝히는 바람에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러나, 보르카는 짐승 해골을 쓴 부하 오르크의 아첨하는 말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기대에 찬 얼굴로 부하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무파카?"
"....."
유감스럽게도, 부하 오르크 무파카는 거기에 대해 아무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에잉! 한심한 놈! 다시 돌격!"
역정을 내는 보르카의 명령에 따라 그의 부하 오르크 대장들이 제각기 이끄는 부대들을 향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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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보르카의 대부대가 사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두 번째로 다시 돌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활시위 소리와 함께 하얀 깃의 화살들이 날아가 검은 가죽 갑옷 오르크들의 허벅지를 맞춰 연달아 쓰러뜨렸다.
놀라운 속도의 연사이자 정확한 활솜씨였다.
그 바람에 뒤따라 달려오던 오르크들이 걸려서 넘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미영이 놀라운 활솜씨로 연달아 활을 쏘고 있는 서쪽, 보르카의 주력 부대 방향쪽뿐이었다.
나머지 세 방향에서는 순식간에 오르크들의 대부대가 코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긴 나무자루의 묵직한 쇠도끼를 높이 쳐든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우우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쟈르칼의 쇠도끼가 흰빛으로 빛나며 쟈르칼의 외침을 멀리까지 퍼지게 해주었다.
동시에, 미영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과 함께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거였구나!
이런 상태에서는 재연씨의 최면술도 통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 기술은 따라할 수 있으면 동료들과 함께 싸울 때 꽤 유용하겠어.
물론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경우의 얘기지만....."
"쾅! 쾅! 쾅! 쾅! 쾅! 쾅! 콰앙!"
잠시후, 미영이 활로 돌격을 늦추고 있는 주력부대 방향을 제외한 세 방향에서 일제히 쇠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오르크들과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오르크들이 손에, 손에 긴 나무자루의 쇠도끼들을 든 채로 거칠게 몸을 부딪치고 도끼끼리 맞부딪치며 격돌하고 있었다.
"우우야야야!"
"쾅!"
요란한 기합소리와 함께 갈색 갑옷을 입을 오르크 한 명이 쳐들어오는 오르크의 뿔달린 투구 쓴 머리를 도끼로 후려갈겼다.
투구가 와그작 찌그러지면서 검은 갑옷을 입은 오르크의 큰 몸집이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콰앙!"
"꾸에에에엑!"
옆에서는 다른 갈색 갑옷의 오르크가 도끼 자루를 돌려 상대의 녹색 피부의 목을 후려 갈기고 있었다.
검정 갑옷 오르크의 내려치는 도끼를 도끼날로 막아 밀어낸 후 순식간에 이루어진 동작이었다.
"우웨에에엑!"
목께를 도끼로 찍힌 또다른 검은 갑옷 오르크가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사방에서 벌어진 양쪽 선두열끼리의 충돌에서, 갈색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이 검은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부하들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연이어 쏴댄 미영의 화살 공격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동료 오르크들을 넘어 육천에 달하는 보르카의 주력부대 오르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밀려 들었다.
마치 검은색과 녹색의 파도같은 모습이었다.
미영이 침착하게 메고 있던 가죽 활집에 활을 넣어 다시 등에 메었다.
"채앵!" 경쾌한 소리와 함께 긴 칼을 뽑아들며 양손으로 높이 쳐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악귀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함성을 지르며 수많은 오르크들이 자루가 긴 도끼들을 손에 손에 높이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미영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오르크들의 돌격을 - 전혀 떨지 않는 채로 - 기다리고 있었다.
"콰앙!"
달려오던 힘으로 세차게 내리친 어느 오르크의 묵직한 쇠도끼를 미영이 긴 칼로 막아냈다.
어느새 붉게 변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미영쪽의 힘이 그 오르크보다 위였다.
그러나, 도끼와 긴 칼이 부딪치는 순간 칼이 부러져 나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이 칼자루를 잡고 있는 미영의 양손에 느껴졌다.
아마 미영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십중팔구 칼을 놓치거나 칼날이 뒤로 밀리면서 당했을 것이다.
힘이 센 자가 마음껏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 - 도끼가 갖고 있는 장점이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힘차게 도끼날을 뒤로 밀어낸 미영이 마주한 오르크가 자세를 바로 잡기도 전에 긴 칼을 오르크의 배에 박아 넣었다.
"푸우욱!"
검은 가죽 갑옷을 뚫으며 긴 칼날이 깊숙히 오르크의 뱃속에 파고 들어갔다.
"꾸에에에엑!"
비명과 함께 오르크의 녹색 얼굴이 일그러지며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오르크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며 천천히 - 미영에게는 마치 슬로모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미영은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 나라에 온 이래, 샹리아 마을에서 산적들을 베어 부상을 입힌 것을 시작으로..... (1부 내용 참조)
샹드로 마을에서는 밤비르인 르몽드를 세로로 두 조각으로 베어 퇴치하기도 했었지만..... (3부 내용 참조)
조금 전에 보르카를 겨눈 화살에 애매하게 죽은 오르크를 제외하고는.....
미영은 사실 이제까지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닭 한 마리도 죽여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아니 오르크를 죽였다!
방금전까지 살아서 숨쉬고 있던 존재가..... 영원히 죽어 버린다.
그것도 이렇게 쉽게....."
"쿠아아아아악!"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두 마리의 덩치 큰 오르크 두 명이 한꺼번에 묵직한 쇠도끼를 들고 미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 푸욱!"
눈깜짝할 사이에 오르크 한 명의 굵은 녹색의 목을 찔러 관통한 미영의 긴 칼날이 어느새 두 번째 오르크의 녹색의 목을 관통해 뒤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르르르르!"
목을 감싸 쥔 첫 번째 오르크가 피를 흘리며 곧바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미영의 긴 칼이 목에 박혀 있는 두 번째 오르크는 여전히 서 있는 채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녹색 얼굴의 검은 눈동자의 촛점이 이미 풀린 채로, 아래 위 어금니들이 튀어나와 있는 입 밖으로 혀를 빼물고 있었다.
지르르 입가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퍼어억!"
오른발을 들어 오르크의 배를 걷어차며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아당겨 칼날을 목에서 뽑았다.
그러자, 오르크의 큰 덩치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미영은 빠른 동작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힘으로 도끼로 후려친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한 방에 검은 갑옷 오르크 한 명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목없는 몸통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퍼어억!"
"꾸에에에엑!"
서로 힘을 줘 도끼날들끼리 밀고 있던 오르키스(여자 오르크) 메르타가 굵은 녹색 팔에 힘을 주었다.
힘에서 밀린 상대방은 도끼 뒤쪽에 이마를 세게 맞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래! 이게 전쟁이야!
내가 망설이면 우리 편이 죽는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주영아! 수진아!"
칼자루를 잡고 있는 양손에 불끈 힘을 주며, 미영이 소리 높여 함성을 질렀다.
"하아아아아아아앗!"
"촤아아악!"
동시에, 이번에는 가차없이 휘둘러진 긴 칼날이 다가오는 오르크의 굵은 목을 후려쳤다.
뿔달린 투구를 쓴 녹색의 머리가 허공을 날며 사방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푸욱! 푸욱!"
목없는 오르크의 몸이 채 쓰러지기도 전에 미영의 긴 칼날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두 명의 오르크들의 굵은 목을 연달아 관통하고 있었다.
미영의 가차없는 움직임에는 이제 더이상 아무 망설임도 남아 있지 않았다.
.....
한참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고 찌르던 미영은 어느새 더이상 다가오는 검은 가죽 갑옷의 오르크들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고개를 들자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수도 없이 사방에 쌓여 있는 동료 오르크들의 시체들을 버려둔 채로.....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대부대가 일제히 뒤로 물러서며 천천히 후퇴하고 있었다.
"상황은 어떤가, 메르타?"
온통 적의 붉은 피를 덮어 쓴 채로, 아직도 피가 줄줄 흘러 내리고 있는 도끼날을 아래로 하며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물었다.
역시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족장 내지는 부총대장의 위치에 있는 듯 했다.
덩치 큰 오르키스 메르타가 - 안 어울리게도 - 아주 부드럽고 여성적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최소한 사오백 명의 적을 해치운 것 같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열 명 남짓입니다."
야만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크고 옆으로 벌어진 녹색 코의 큰 콧구멍이 흥분한 듯 벌름거리고 있었다.
메르타의 보고에,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놀라운 전과로군!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오르키스 메르타 역시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사들이 부상을 입는 대로 지시하신 대로 원형진의 한가운데서 대기하고 있는 은발머리의 인간 여자에게 데려갔습니다.
그 인간 여자가 손에서 녹색의 빛을 내뿜자, 이미 숨이 끊어진 열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자리에서 바로 부상이 회복돼 버렸습니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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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대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는 씩씩거리며, 되쫓겨온 부하들에게 두 번째로 화를 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이번에는 바람도 안 불었는데 왜 쫓겨온거야?
5배가 넘는 병력으로 포위 공격하면서 쫓겨온다는게 말이나 돼?"
보르카의 말에 각 부대의 대장들인 오르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전사들도 용감하고 강합니다만, 쟈르칼의 부하들이 훨씬 더 강했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뭐?"
보르카가 버럭 호통을 치자, 말을 꺼냈던 오르크가 머뭇거리는 태도로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 좀 이상합니다.
쟈르칼의 부하 놈들 어쩐지 아무리 쓰러뜨려도 인원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그 말에 모여 서 있던 다른 대장 오르크들도 동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르르르르르르!"
분노한 오르크 보르카가 입에서 마치 화난 개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귀청이 나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들아!
그건 너희 놈들이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역시 별 수 없군.
사키아를 쓸 준비를 해라!"
"사키아를 말입니까?"
입을 모아 되물으며, 둘러선 각 부대의 대장들이 긴장하는 얼굴로 꿀꺽 침을 삼켰다.
"그래! 대장들은 목에 건 목걸이를 잘 확인해!"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의 말에 주위에 서 있던 대장 오르크들과, 백여 명의 호위병 오르크들이 일제히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확인하듯 점검했다.
호위병 오르크들은 아까부터 꼼짝않고 보르카의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쇠로 된 굵은 줄에 달린 쇠로 된 조그만 메달같은 펜던트 가운데에는, 깨알처럼 아주 작은 갈색의 보석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각 부대의 대장들이 각각 자신이 이끄는 부대로 돌아갔다.
그 후, 큰 짐승의 하얀 해골을 투구 대신 머리에 쓰고 손에는 수정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오르크 무파카가 붉은 피가 담겨 있는 작은 단지에 헝겊을 담갔다.
무파카가 쓸 수 있는 마법은 전투 전에 보여준 확성 마법만이 아닌 듯 했다.
짐승 해골을 쓴 오르크 무파카가 바닥에 붉은 피를 적신 헝겊으로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나 열심히 원안에 기하학적인 모양의 다양한 무늬들을 그려 넣더니, 붉은 피가 아직도 남아있는 단지를 원의 중앙에 놓았다.
원안에 들어선 오르크 무파카가, 수정구슬 지팡이를 높이 들고 단지를 빙빙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듯 손발을 흔들다가 크게 외쳤다.
"사메니! 사메니! 사메니! 왐바! 사키아!"
단지 안에서 남아 있던 붉은 피가 연기처럼 단지 구멍으로 뿜어 나오더니, 마치 살아 있는 피의 구름 뭉치처럼 뭉친 채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짐승 해골을 쓴 오르크 무파카가 녹색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어, 수정구슬 지팡이를 손에 든 채로 크게 외쳤다.
"살육과 광기의 중급 정령 사키아여!
그대의 광기를 이들에게 내려 두려움없는 전사로 만드소서!"
한편, 백여 미터 이상, 멀찌감치 후퇴한 보르카의 오르크 대부대가 포위진형을 유지한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미영이 중얼거렸다.
"뭘하고 있는거지? 뭔가 기다리고 있는건가?"
옆에 서 있던 오르키스 메르타가 긴장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것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은 가죽 갑옷들을 입고 있는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이 갑자기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오른손에는 도끼를 든 양손을 높이 치켜 들고,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부들부들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입을 열었다.
"역시 사용하는군!"
이어 손에 든 도끼에서 흰 빛을 내며 사방에 울리는 큰 목소리로 쟈르칼이 외쳤다.
"나의 전사들이여, 준비하라!
사키아에 홀린 미친 자들이 몰려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또 한 번의 일제 함성과 함께, 보르카의 대부대가 한꺼번에 전력 질주라도 하듯 도끼를 흔들며 달려오면서, 세번 째 일제 공격이 시작되었다.
"핑! 피잉! 핑! 핑! 핑!"
하얀 깃이 달린 화살들이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미영의 활에서 연달아 발사 되었다.
허벅지를 맞혔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의 화살들은 달려오는 오르크들의 얼굴이나, 목, 가슴 등 치명적인 부위들을 향해 용서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진격을 늦추는 효과는 거의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쓰러진 동료를 피하려다 서로 뒤엉켰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치명상을 입은 동료들을 가차없이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그 시체를 짓밟으며 그대로 돌격해왔던 것이다.
그 엄청난 기세에, 미영이 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다섯 발이었다.
급한 동작으로 활을 등 뒤에 맨 미영이 "채앵" 소리와 함께 긴 칼을 뽑아 들었다.
"하아아아앗!"
기합과 함께 가차없이 휘둘러진 미영의 긴 칼이 오르크 한 명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다른 오르크의 왼쪽 가슴을 갑옷을 뚫으며 깊숙히 찔렀다.
미영의 긴 칼이 다시, 세 번째 오르크의 드러난 굵은 녹색 목에 깊숙히 박혔다.
하지만, 세 명의 오르크들이 채 쓰러지기도 전에, 검은 갑옷을 입은 새로운 오르크들이 거세게 도끼를 휘둘러 댔다.
쓰러지며 숨이 멎어가는 동료들을 사정없이 밀어 붙이고 있었다.
흰자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목숨 따위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한, 말그대로 미친 돌격이었다.
"푸욱!"
미영의 긴 칼의 칼날이 오르크 한 명의 굵은 녹색 목을 뚫고 뒤로 빠져나가, 뒤에 있는 다른 오르크의 목까지 한꺼번에 꿰뚫었다.
"퍼억!"
바로 앞의 오르크의 배를 발로 차며 칼날을 목에서 뽑은 미영의 붉은 보석같은 눈동자가 차갑게 반짝였다.
연달아 칼을 찌르고 다시 뽑고 또 찌르는 공격을 반복했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푸욱!"
어떻게나 빠른지 칼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게다가, 놀랍게도 한 번씩 칼을 길게 찌를 때마다, 한 번에 두 명, 심지어는 세 명씩의 오르크들이 녹색의 목에서 피를 뿜으며 동시에 뒤로 쓰러져 갔다.
마치 꼬치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깐 사이에 미영의 주위에만 검은 가죽 갑옷 오르크들의 시체가 수십 명이나 수북히 쌓였다.
위에서 또는 옆으로 크게 휘둘러서 공격해야 하는 도끼에 비해, 찌르기 공격을 할 수 있는 칼은 능숙한 사용자라면 도끼보다 훨씬 빠른 공격으로, 그 이상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였다.
미영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곳 위스토아에서 아미트(기사)라고 불리는 인간의 직업 전사계급이 칼 또는 검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날이 있는 무기를 도끼나 철퇴같은 다른 무기들보다 선호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 나라에 온 이후로, 수진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는 엄청난 힘과.....
주영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눈으로 움직임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
그 위에, 보지 않고도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미영만의 독특한 감각.....
이 세 가지 능력이 하나로 합쳐지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쿨럭! 쿨럭!"
쓰러지는 어느 오르크의 어깨를 스치듯 찔러나간 미영의 긴 칼에 목이 관통당한 오르크 하나가 숨이 넘어가며, 기침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뒤에서는 또 다른 오르크가 앞의 오르크의 목을 관통해 뚫고 나온 긴 칼날에 꼬치처럼 동시에 목을 찔린 채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미영의 모습은 미처 보지도 못한 채였다.
"푸우욱!"
그 오르크들이 채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또 다시 내지른 미영의 긴 칼이 또다른 오르크 두 명의 목을 동시에 꿰어 버렸다.
칼을 찌르거나 휘두르기 위해 상대의 모습을 눈으로 볼 필요조차 없었다.
"퍼어억!"
조금 떨어진 옆에서, 검은 가죽 갑옷 오르크 한 명의 머리를 도끼로 후려치던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미영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얼굴 가득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저 인간의 여자는 긴 칼을 차고 있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본 건 조금 아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 덤벼든 적을 쓰러뜨리고 잠깐 멍해졌던 모습이 틀림없이.....
하지만..... 지금의 저 모습은.....
저 인간의 여자! 싸우면서 싸움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것도 말도 안될 정도의 속도로....."
조금 아까 머리를 도끼로 맞는 치명상을 입고 동료들에 의해 안쪽으로 옮겨졌던 부하 오르크 한 명이 어느새 다시 합류해 싸우고 있는 것이 쟈르칼의 눈에 띄었다.
여전히 찌그러진 채인 투구를 머리에 쓰고 있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잠깐 새에, 그렇게 큰 상처를..... 그것도 이어지는 부상자들을 계속해서 고쳐주고 있다니.....
아까 메르타가 말한 그대로군.
그 은발 머리의 여자..... 역시 단순한 셍뜨 바이너(신성한 빛을 쓰는 자)가 아니라 셍뜨레(성녀) 수준인게 틀림없다!
소환진도 없이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내서 만오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한꺼번에 밀어내던 그 녹색 머리의 여자는 또 어떤가!
운디르(짐승) 마스터라..... 어렸을 때 옛날 얘기에서나 듣던 존재가 아닌가!
나와 처음 싸웠던 검은 머리의 여자도..... 방심하지 않았다면 객관적으로 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전혀 아니었다.
타고난 전투종족인 오르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내가 말이다!
저 인간의 여자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전설이나 옛날 얘기에나 나올 법한 능력들을 갖고 있다.
게다가 저 금발머리의 여자를 보면..... 완성된 능력이 아니라 이제 겨우 능력에 눈뜨기 시작한 단계인 것 같다.
허허허! 여기서 만약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면, 저 인간 여자들에게 보어(멧돼지) 고기를 대접하겠다고 한 것을 아마도 이 쟈르칼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 꼽아야 할 것 같군!"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오르크 대부대는 마치 검은색과 녹색의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 들어 왔다.
그 엄청난 기세에 원형진을 짜고 뭉쳐 있는 쟈르칼의 오르크 부대원들중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는 한, 아무리 심한 부상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들도 부대의 중앙에서 대기하고 있는 지선에게 날라져 갔다가 잠시 후면 멀쩡한 몸으로 다시 돌아와 싸움에 합류했다.
게다가, 방어를 전혀 생각지 않고 오직 도끼를 휘둘러 공격하는 것만 생각하는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그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생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개개인의 전투실력이 쟈르칼의 부하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공격만을 감행한 결과였다.
아까, 쟈르칼이 보르카에게 말했던, 사키아 사용의 문제점이 적절한 지적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퇴! 후퇴하라!"
각 부대들의 뒤쪽 대열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보르카의 부대 대장들이 목에 걸고 있던 깨알만한 갈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들을 각각 손에 쥔 채로 크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 때까지도 충혈된 눈을 한 채 도끼를 휘두르며 앞으로 앞으로 계속 돌격만 하고 있던 검은 가죽 갑옷의 오르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상황은 좀 어떤가, 메르타?"
조금 지친 듯 숨을 고르며,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오르키스 메르타에게 물었다.
덩치만 클 뿐 아니라, 오르크치고도 유난히 큰 입으로 활짝 웃음을 지으며 오르키스 메르타가 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까와 합쳐서 이제까지 최소한 2,000여 명의 적을 해치운 걸로 보입니다.
아군의 피해는 100여 명이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어쩌면, 이 싸움..... 우리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역시나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전과였다.
"하아! 하아! 하아!"
쟈르칼 부대의 원형진 한 복판에서는 녹색 여신관복 차림의 미녀가 양손에서 부드러운 느낌의 녹색의 빛을 내고 있었다.
은발의 긴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동료들에 의해 운반되어 온 녹색 피부의 오르크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상처가 회복되어 놀란 표정으로 다시 일어섰다.
셍뜨 바인(신성한 빛)을 계속 내는 것이 체력을 상당히 소모시키는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녹색의 부드러운 빛은 처음 그대로 전혀 약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도끼에 비스듬히 맞아 피가 줄줄 흐르던 얼굴의 큰 상처가 순식간에 소리도 없이 사라지자, 녹색 피부의 오르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드립니다, 위대한 인간이시여!"
녹색의 얼굴 가득 존경과 감탄의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별 말씀을요!"
마주 상냥하게 환히 웃던 "아가씨"가 마지막 부상자가 대열로 돌아가는 걸 보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아! 하아아!"
다소 가쁘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녹색 머리의 "젖소" 은주가 이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코까지 "색색!" 작은 소리로 골며 기분좋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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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대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는 펄펄 뛰며, 되쫓겨온 부하들에게 세 번째로 화를 내고 있는 참이었다.
"멍청한 놈들! 사키아의 힘까지 사용했는데도 쫓겨오다니, 도대체 왜 병력을 후퇴시킨 거냐?
대답해 봐!"
버럭 고함을 지르는 보르카의 말에, 몰려서 있던 각 부대의 대장들중 한 명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계속 돌격시켰다간 자칫하면 우리가 패배할 수도 있다고 판단돼서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르카님!"
"뭐야?"
키가 이 미터에 가까운 오르크 보르카의 큰 덩치가 발광하듯 펄쩍 뛰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쟈르칼이 뭔가 이상한 수를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쟈르칼의 병력이 거의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쪽 피해는 이미 2,000 명이 조금 넘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또다른 대장 오르크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확인차 조금 가까이까지 제가 가봤는데 틀림없습니다.
쟈르칼의 부하들 중에는 도끼에 맞아 찌그러진 투구나 박살나 너덜거리는 갑옷을 입은 놈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즉사해버린 놈들외에는 뭔가 수를 써서 바로 바로 부상을 낫게 만들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된거냐, 무파카?"
짐승 해골을 쓴 부하 오르크에게 엉뚱하게 역정을 내듯 소리쳐 묻는 보르카에게 오르크 무파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인간들중에는 셍뜨 바인(신성한 빛)을 사용해서 기적처럼 바로 바로 부상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숫자는 매우 적습니다만.....
이것은 아마도..... 인간 여자들중에 대단히 강력한 여신관이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쟈르칼의 손님이라는 인간 년들인가?
도대체 어디서 그런 괴물같은 년들만 데려온거야?"
인상을 쓰며 보르카가 투덜거리는 가운데, 각 부대의 대장 오르크들이 눈에 띄게 불만어린 표정들을 지었다.
아까에 이어 또다시 총대장 보르카의 인간 여자 수집 취미 때문에 이런 꼴이 됐다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 중 한 명의 오르크가 입을 열었다.
"보르카님께서 남으라고 하신 인간 계집년들중 금발 계집년도 완전히 괴물입니다.
그 년 혼자서 긴 칼로 - 보어(멧돼지) 바베큐처럼 - 목을 꿰어서 죽인 전사들만 최소한 백 명이 훨씬 넘을 겁니다.
그 외에 그 년이 쏜 화살에 맞아, 죽거나 치명상을 입은 전사들도 삼십여 명이 넘습니다."
그 말에 몰려 서 있던 오르크 대장들의 표정이 더욱 불온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쟈르칼과 그 휘하 브라우니 보어족 전사들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은 오르크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임무를 어렵다고 생각했던 오르크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강한 전사들이라도, 다섯 배가 넘는 오르크 병력에게 들판에서 포위된 이상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황은 전혀 예상외로 흘러가서.....
적들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바람에 밀려 쫓겨온 처음의 일제 돌격부터 시작해서.....
세 차례의 돌격끝에, 적들에게 피해는 거의 입히지도 못한 채, 무려 2,000여 명이 넘는 아군 병력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그 모든게 전부 총대장 보르카의 - 그것도 다른 종족 여자에 대한 - 변태적인 취향이 원인이었다니.....
총대장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은 커녕..... 당장 일제히 도끼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하들의 불만스런 분위기를 느낀,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인상을 쓰며 고함쳤다.
"닥쳐라, 멍청한 놈들!
그런 대단한 인간 계집들이란 걸 알게 된 이상 더더욱 살려 보내서는 안된다!
이 세상을 정복하려는 위대하신 부쳐크님의 위대한 계획에 방해가 될 년들을 죽이거나 잡아가면, 위대하신 부쳐크님께서 크게 상을 내리실 것이다!"
보르카가 현명하게도 그 점을 미리 예상하고 인간 여자들을 남게했다고 생각하는 오르크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불만을 품은 중에도 오르크 대장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그중 한 명이 주춤거리며 나서서 입을 열었다.
"또 한가지,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점이 있습니다, 보르카님!"
"또 뭐냐?"
신경질난다는 표정으로 보르카가 퉁명스럽게 묻자, 그 오르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쟈르칼의 부족은 브라우니(갈색) 보어(멧돼지)들을 잘 길들여서 부족 이름으로까지 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라고는 하지만, 한 마리, 한 마리의 위력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몇백 마리는 된다고 들은, 길들인 브라우니 보어들이 아까부터 한 마리도 안 보입니다."
그 말에, 하얀 짐승 해골을 투구 대신 쓰고 있는 오르크 무파카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기습입니다, 보르카님!
아까 도망쳐 나간 무리들 중에 섞여서 빠져 나갔다가, 뒤로 돌아서 기습해 오려는 겁니다!
어서 부대 안쪽으로 이동하십시오!"
그 말에 콧방귀를 뀐 오르크 보르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멍청한 놈! 너는 샤먼(주술사)이라는게 그런 것도 모르냐?
브라우니 보어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고 말도 잘 안 듣는 것들을 타고, 들키지 않게 빙 돌아와서 기습하려면 오는데만 하루는 걸리겠다.
멍청한 쟈르칼 놈이나 그런 걸 타고 다니지.....
제 때 도착할 수 있는 놈들은 몇백 마리중 잘해야 몇십 마리도 채 안될텐데..... 겨우 그거가지고 무슨 기습을 하냐?
그보다 이 상황에서 쟈르칼 놈과 저 괴물같은 인간 계집년들을 해치울 궁리나 해 봐!"
보르카의 다그침에 짐승 해골을 머리에 쓰고 있는 샤먼 무파카가 머뭇거리면서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실은..... 틀림없이 저 놈들을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그 말에 반색을 하며 재촉했다.
"그래? 뭐냐? 빨리 말해 봐!"
"사키아를 좀더 강하게 사용하는 겁니다.
다만 부작용이 굉장히 큰 데다가, 사용하려면 오르크의 피가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퍼억!"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어느 호위병 오르크의 도끼를 뺏어 든 보르카가 다짜고짜 도끼로 그 오르크의 목을 후려 갈겨 버렸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호위병 오르크의 머리가 날아가 버리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머리없는 몸이 "쿠웅!"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가자,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만족스런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끼끽끽끽끽끽!
이 정도 피가 있으면 충분한가?"
"꿀꺽!"
질린 얼굴의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침을 삼키더니 대답했다.
"예, 충분합니다, 보르카님!"
대부대의 총대장이 된 오르크답게, 보르카의 도끼로 후려 갈기는 속도와 일격으로 목을 떨어뜨리는 정확함은 놀랄만한 솜씨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보다도, 일개 호위병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부하의 목을 망설임없이 도끼로 따 버리는 잔인함에 모두들 기가 질려버렸다.
몰려 서 있던 오르크 대장들의 얼굴에서 총대장의 인간 여자 밝힘증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기색들이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오르크 전사의 목에서 쿨렁쿨렁 쏟아져 나오는 피를, 머리에 짐승 해골을 쓴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단지 하나에 가득히 담았다.
아까 사키아를 사용했을 때보다 두세 배는 더 커보이는 단지였다.
헝겊에 피를 묻혀가며 바닥에 열심히 큰 원과 그 안의 기하학적인 무늬들을 새빨간 색으로 그려넣은 무파카가 큰 단지를 원의 정 중앙에 놓았다.
단지 안에는 아직도 호위병 오르크의 붉은 피가 많이 남아 있었다.
여전히 원안에 들어가 있는 채로, 수정구슬 지팡이를 든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춤을 추듯 손발을 흔들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메니! 사메니! 사메니! 왐바! 사키아!"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단지 안에서 남아 있던 붉은 피가 연기처럼 단지 구멍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어, 새빨간 피의 구름 뭉치처럼 둥글게 뭉친 채로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수정구슬 지팡이를 오른손에 든 채로 소리 높이 외쳤다.
"살육과 광기의 중급 정령 사키아여!
그대의 광기를, 그대가 지금 먹고 있는 피를 가진 이들에게 내려, 그 혈관에 피와 함께 피보다 더 붉은 광기가 흐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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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칼을 칼집에 꽂은 미영은 다시 활을 꺼내 든 채로, 곧이어 이어질 보르카의 대군의 네 번째 일제 돌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의 오르크들 모두 처음에 비해서는 긴장들이 조금 풀린 약간 느긋한 기색들을 하고 있었다.
미영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사실 그보다는, "아가씨"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 치유력이 생각외로 엄청난 덕분이었다.
그때였다.
백여 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사방을 넓게 포위하고 있던 보르카의 오르크 전사들이 일제히 양손을 높이 쳐들었다.
이어, 마치 발작하듯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또 사키아를 쓰는 건가? 소용없을텐데....."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여유있게 중얼거렸으나, 미영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후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오르크 전사들 모두 긴 자루의 도끼를 양손으로 들고 휘두르며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핑!"
화살 한 발을 쏜 미영의 루비처럼 크고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더욱 커졌다.
아직도 만이삼천 명에 달하는 보르카의 오르크 전사들 모두가 마치 맨몸의 백미터 경주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육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두꺼운 검은 가죽갑옷을 입고, 무거운 투구를 쓴 채, 묵직한 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이상 도저히 불가능한 속도였다.
"채앵!"
활을 다시 등뒤에 제대로 멜 여유조차 없었다.
다급하게 활을 바닥에 던진 미영이 긴 칼을 뽑아들자 마자,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검은 가죽갑옷의 오르크들이 거센 검은 파도처럼 밀어 닥쳤다.
"푸욱!"
길게 긴 칼을 찌른 미영의 일격이 가장 앞장선 오르크의 목을 뚫고 그 뒤에 서 있던 오르크의 목까지 한꺼번에 꿰뚫었다.
"앗!"
그러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도 뒤로 쓰러지는 대신, 거세게 도끼를 내리치는 오르크의 공격에 미영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하게 몸을 옆으로 틀어 겨우 피하며 칼을 비틀어 칼날을 뽑았다.
"크와아아아!"
방금의 칼날을 비틀어 목에서 뽑는 동작으로, 오르크의 목의 절반이 칼에 잘려 나가 버리며, 큰 상처가 벌어졌다.
"촤악!"
끔찍한 소리와 함께 목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게도, 그 오르크는 쓰러지기는 커녕 도끼를 높이 쳐들더니 또다시 미영을 향해 내리쳤다.
게다가, 그 내리치는 속도도 앞서 돌격때의 오르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썩둑!"
역시 몸을 틀며 아슬아슬하게 도끼 공격을 피한, 미영의 긴 칼이 그 오르크의 목을 세차게 후려쳐서 아예 머리를 잘라내 버렸다.
그제야, 목없는 몸통이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천천히 뒤로 쓰러져 갔다.
그러나, 그 오르크가 채 쓰러지기도 전에, 아까 미영의 칼날에 한꺼번에 목이 꿰뚫렸던 뒤에 서 있던 오르크가 역시 목에서 피를 뿜으면서도 무서운 속도로 도끼를 휘둘러댔다.
"푸욱! 푹! 푹!"
위에서 내려치는 도끼를 옆으로 비켜서며 피한 미영이 빠른 속도로 칼을 움직였다.
무려 세 번이나 연속으로 그 오르크의 심장께를 긴 칼로 깊숙히 찔러 난자하다시피 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치명상을 입어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데다가, 지금의 공격으로 심장이 터져 버렸는지 왼쪽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번째 오르크는 그 뒤로도 두세 번이나 더 도끼를 휘두른 후 몇 초 뒤에야 숨이 끊어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지만, 미영은 방금 깨달은 바를 주위의 모든 아군들이 알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적들의 목을 쳐서 머리를 잘라요!
머리를 자르지 않는 한 아무리 치명상을 입어도, 바로는 죽지 않습니다!"
"우와아아악!"
갈색 갑옷을 입은 오르크 한 명이 머리에 도끼를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우으으으으윽!"
갈색 갑옷을 입은 다른 오르크 전사가 도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깊숙히 찍었으나 자신도 오른쪽 어깨에 도끼를 정통으로 맞은 채로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퍼억! 퍼억!"
갈색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는 어깨를 맞은 고통과 충격으로 신음소리를 낼 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상대방은 옆구리를 도끼에 찍히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에 박고 있는 도끼를 뽑더니, 연거푸 사납게 휘둘러댔다.
흰자위가 온통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희번덕거리는 것이 얼핏 보기에도 제 정신이 아닌 모습이었다.
피가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이번에야말로 치명상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사방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갈색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들이 연거푸 쓰러져가고 있었다.
무기와 갑옷의 수준에 별다른 차이가 없고, 특별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육박전에서, 부대간의 우열은 크게 세 가지 조건에 따라 나뉜다고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 부대를 구성하는 병사들 개개인의 전반적인 체력과 힘의 수준.....
둘째는 병사들의 무기를 다루는 전반적인 속도와 정확성.....
셋째는 병사들의 전반적인 사기와 정신자세.....
첫째 조건인, 체력과 힘에서는 사실,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과 보르카의 부하들간에 처음부터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그들 모두 강인한 체력과 힘을 대체로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전투종족 오르크의 전사들인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인, 사기와 정신자세에서는, 충성도가 높은 쟈르칼의 부하들쪽이 대체로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르카의 부하들도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칠 정도로 나약한 정신자세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그 차이가 크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양쪽의 전사들간에 처음부터 차이가 났었고, 다시 그 차이가 완전히 뒤집혀버린 부분은 둘째 조건인 속도와 정확성이었다.
똑같은 무기를 손에 쥐어줘도 숙련도가 높고 - 요컨데, 싸움 경험이 많고 -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전사들은
그렇지 못한 전사들이 어디를 칠까 순간 망설일 때, 이미 무기를 휘두를 수 있으며.....
애송이 전사들이 심지어 살아있는 걸 죽이기 겁나서 주춤거릴 때, 가차없이 적을 내려칠 수 있고.....
서투른 전사들이 조급함으로 - 헛스윙을 하는 홈런타자처럼 - 허공에 헛손질을 할 때, 허공대신 적을 때릴 수 있고.....
미숙한 전사들이 적의 어깨나 팔다리를 후려칠 때, 머리나 가슴같은 좀더 치명적인 부위를 공격할 수 있다.
오르크 대족장 부쳐크의 친위대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전사들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은 그 자부심에 걸맞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도끼를 휘두르는 속도와 정확성은 보르카가 데려온 오르크들보다 전반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 차이는 세 번째 일제 공격에서, 사키아를 처음 사용했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키아 사용의 치명적인 약점 - 방어를 도외시하고 오직 공격만 하게 되므로 강한 적들과 싸울 때는 오히려 사용하는 쪽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만 높아진다는 - 까지 드러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의 네 번째 일제 돌격에서, 두 번째로 사용된 사키아의 힘은 이전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재차 사키아에 홀린 보르카의 부하들은 쟈르칼의 부하들을 속도면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요컨데, 훨씬 더 빠른 동작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도끼를 휘두르는 동작의 정확성면에서는 쟈르칼의 부하들이 여전히 우위였다.
그러나, 속도에서 워낙 뒤지는 이상은 쟈르칼의 부하들도 부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이번에 사용된 사키아의 힘이 가진 또 한가지 특별한 힘이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은, 머리를 잘리거나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한,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고 계속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썩둑! 썩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가로로 휘둘러진 미영의 긴 칼에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오르크 두 명의 머리가 연속으로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퍼억!"
크게 휘두른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도끼에 맞아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통이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콰앙! 콰앙!"
엄청난 속도로 - 말그대로 광기에 넘쳐 - 휘둘러대는 상대방의 도끼날을 오르키스 메르타가 도끼로 마주 후려쳐 막아냈다.
"콰악!"
틈을 노려 상대방의 굵은 녹색의 목 깊숙히 도끼를 박아 넣는가 싶더니, 그대로 힘을 주어 머리통을 바닥에 떨궈 버렸다.
그러나, 이 세 명외에는 전장 전체에서,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물론, 더러더러 쟈르칼의 부하쪽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경우도 있었고.....
치명상을 입은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가 결국 숨이 끊겨 바닥에 쓰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밀리는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도끼라는 무기의 특성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는데.....
둔하지만 타격력이 큰 무기인 도끼로, 싸움중에 정확하게 상대방의 목을 후려쳐서 머리를 잘라내는 것은 대부분의 쟈르칼의 부하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지금처럼 자신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방의 도끼를 막으면서, 틈을 노려 겨우 겨우 공격하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목을 후려칠 수 있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놀랄 일이었다.
물론, 도끼대신 미영처럼 긴 칼을 들었어도 결과에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도끼는..... 다소 둔한, 후려치는 무기이지, 정확하게 베거나 자르는 무기가 아닌 것이다.
미영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오르크 부하들이 연거푸 쓰러지는 것을 미영은 느낄 수 있었다.
사방에서 포위되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도끼에 맞아 자신까지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너져가는 대열과 함께 계속 뒤로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최악인 것은 "아가씨"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 치료도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돼 버렸다는 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더러더러 발생하는 부상자를 뒷열의 오르크들이 재빨리 대열에서 잡아빼서.....
원형진 중앙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상자 및 사망자들이 사방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뒷열 오르크들도 바로바로 그 자리를 메꿔서 싸워야 할 형편이었으니, 여유있는 부상자 운송과 치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썩둑!"
목을 긴 칼로 후려쳐서, 또 한 명의 오르크의 머리를 가차없이 떨어뜨리면서 미영은 몸을 떨었다.
"이대로 가면..... 전멸!
이렇게 많은 수의 오르크들에게 사방이 온통 휩싸인 채로 언제까지나 피하거나 막아낼 수는 없다!
여기서 정말로 죽는 건가?"
.......................................................................................................................
"끼끼끽끽끽끽끽끽끽끽!"
저쪽 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가 온몸을 흔들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미쳐 날뛰는 본진쪽의 오르크들 한복판에서 밑판만 있는 가마에 올라탄 채로 전황을 내려다 보고 있던 참이었다.
백여 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뒤에 남았던 앞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돌격하는 본진 중앙에 섞여서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갈색 멧돼지 기병대를 이용한 기습을 우려한 샤먼 오르크 무파카의 말을 아까는 비웃었지만, 역시 걱정이 되었던 듯 했다.
총대장 보르카와 샤먼 오르크 무파카는 물론, 주위의 호위병들과, 심지어는 세 명의 알몸의 여자들 - 보르카의 인간 여자 수집품들 - 역시 깨알만한 갈색 보석이 박혀있는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다.
펜던트의 갈색 보석에는 사키아에 홀린 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힘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주변의 일반 오르크 전사들 모두 충혈된 눈을 한 채, 적과 싸우고 싶어서 미쳐 날뛰고 있었지만, 보르카와 그 호위병 등의 주위는 피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전부 해치울 수 있겠군! 끼끽끽끽끽끽끽끽!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까지 사용안하고 감춰둔 거냐, 무파카?"
짐승의 해골을 투구대신 머리에 쓰고 있는 오르크 샤먼 무파카가 머리를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큰 모래시계가 네 번 쏟아질 정도밖에는(2시간 정도) 힘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르카님!
게다가, 사키아의 힘을 이렇게 강하게 사용한 뒤에는, 모두 쓰러져서, 모래시계가 한 번 쏟아질 정도 시간동안 손끝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무방비상태가 돼 버립니다."
"끼끽끽끽! 멍청한 놈!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는.....
쟈르칼과 그 부하 놈들은 네 번은 고사하고 모래시계가 두 번 쏟아질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거다!
그 재수없는 괴물같은 인간 년들과 함께..... 끼끽끽끽끽끽!"
기분좋게 웃던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가마를 메고 있는 호위병들에게 말했다.
"내려 놔라!"
"옛, 보르카님!"
"그 재수없는 괴물 인간 년들을 먹는 기분으로.....
자! 이리 와봐, 인간 년들아!"
호위병들이 밑판만 있는 가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다른 호위병들의 등에 엎힌 채 여기까지 따라온 빨간색, 갈색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8부 2장
『 - 사족 -
* 한번쯤 써보고 싶었던 환타지소설을 막상 써보니..... 초반부터..... 그것도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계속 드러나는군요. ㅡ_ㅡ
남성 주인공 부재, 초기 능력치의 밸런싱, 야설과 순수 환타지간의 방향성 등등.....
더욱 큰 문제는..... 어느 환타지 소설에서의 농담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드래곤이 날아와 주인공들을 물고 날아가 버렸다. 끝" 이라고 하지 않는 한.....
소수의 독자님들이 이탈하시지 않기를 빌면서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쿨럭! 쿨럭! ㅡ_ㅡ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8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 대로 : 전사와 도살자) - 2장 -
"실피안!"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사방에서 돌격해 들어오는 보르카의 오르크 대군을 보며 "젖소" 은주가 소리치자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약간 옆으로 찢어진 연녹색 눈동자가 어느새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저 오르크들이 가까이 못 오게 하고, 마음껏 휘젓고 두들겨 부숴 주세요!"
어느새 이십여 미터 앞까지 뛰어서 육박해온 검은 갑옷의 오르크들을 본 "젖소"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얀 구름으로 된 알몸의 여자 모습인 열여섯 실피안들이 일제히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그거라면....."
"쉬운 일이지만....."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그대는 지금....."
미영, "아가씨" 지선 및 오르크들에게는 실피안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6부 내용 참조)
그러나, "젖소"의 외침에 이어, 원형진으로 뭉쳐있는 쟈르칼의 오르크 부대 바깥쪽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거센 바람이 일어났다.
이어 바람이 바깥쪽으로 거세게 불어나가자, 돌격해 뛰어오던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악!"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끼를 높이 들고 뛰어오던 검은 가죽갑옷의 오르크 한 명이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벌러덩 뒤로 넘어져 버렸다.
"와르르르르!"
그 오르크를 시작으로, 원형으로 에워싸고 사방에서 달려오던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이 앞열부터 차례로 뒤로 넘어지며 온통 뒤엉켜 버리기 시작했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눈을 뜨고 앞을 쳐다볼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돌격해 오던 보르카의 오르크들은 일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바람을 피하면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앞열의 오르크들은 아예 바람에 밀려서 전부 넘어져서 온통 뒤엉켜 버린 채였다.
그러나, 심지어 넘어진 오르크들조차도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이 빗자루로 쓰는 것처럼 바람에 밀려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서, 또는 겨우 일어나 자기 발로 뛰어서 다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십여 미터 앞까지 사방에서 육박해 왔던 어마어마한 수의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잠깐 사이에 백여 미터 밖까지 다시 밀려났다.
비록 포위망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지만, 바깥쪽으로 거세게 밀어내는 거대한 바람의 힘에 밀려서 계속 뒤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오른손을 입에 댄 채 "젖소" 은주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놀라움과 감탄, 심지어 존경심이 담긴 표정으로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젖소"가 거만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어떠냐?
너희 만오천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나 하나를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정령사 플로 데 그리니앙(녹색 머리의 젖소)님의 힘이다!
힘이다....."
왠일인지 마지막 부분을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한 "젖소"가 눈을 감으며 휘청하는가 싶더니, 옆으로 피식 쓰러져 버렸다.
실피안들이 둥글게 모여서서 오른손을 높이 든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그대는 지금....."
"우리를 계속....."
"소환한 채로 유지하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소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우리도....."
"정령계로....."
"돌아갈 수 밖에는....."
"괜찮아요, 은주 언니?"
"아가씨" 지선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다가와 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을 내었다.
옆으로 쓰러지는 "젖소"의 몸을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 겨우 받아든 미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숙을 하면서 쉬지 않고 계속한 마차 여행으로, 몸이 너무 지친 상태에서 정령들을 소환해서 그만 쓰러진 것 같아.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만, 이미 정령들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실피안들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는 있는 미영이 상황을 짐작하고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미영이 언니도 마법을 쓰실 수 있잖아요?
범위가 넓은 석화 마법을 써보면 어떨까요?"
미영이 다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마법은 마법사 혼자서 바레라(방어막)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주위의 모두를 공격하는 마법이야.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면 같은 편까지 위험해."
백오십여 미터 밖까지 밀려나버린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우왕좌왕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바람의 정령의 무시무시한 힘에 놀란 듯 했지만, 오래 망설이고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가요?"
녹색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르키스 메르타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메르타와 역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오르크 족장 쟈르칼에게, 안심시키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미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플로라(은주) 언니를 가장 중심의 안쪽으로 옮겨 주셔요!
지선아! 너도 같이 가!
이제부터 다치는 전사들은 가장 안쪽으로 계속 날라 주세요!
자넷(지선)이 셍뜨 바인(신성한 빛)으로 바로 바로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를 포함해서 그대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를 놀라게 하는군,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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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대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는 펄펄 뛰며, 되쫓겨온 부하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바람이 분다고 도망오는 바보들이 어디 있단 말이냐?
당장 다시 돌격하지 못해?"
보르카의 주위에 모여선, 각 부대의 대장 오르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바람이 분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바람도 어느 정도여야지, 힘으로 강제로 밀어버리는데 무슨 수로 돌격한단 말인가?
아까부터 보르카 바로 옆에 붙어 있던, 투구대신 짐승 해골을 머리에 쓰고 수정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손에 든 오르크가 입을 열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정령이 끼어든 듯 합니다, 보르카님!"
"뭐? 쟈르칼이나 그 부하 놈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혹시 그 남으라고 한 인간 년들 중에....."
보르카의 말에 짐승 해골을 쓴 오르크가 대답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보르카님!"
몰려 있던 오르크 대장들이 벌레를 씹은 듯한 불편한 표정들이 됐다.
현명이고 뭐고..... 자기들의 총대장이 인간의 여자를 밝히는 바람에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러나, 보르카는 짐승 해골을 쓴 부하 오르크의 아첨하는 말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기대에 찬 얼굴로 부하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무파카?"
"....."
유감스럽게도, 부하 오르크 무파카는 거기에 대해 아무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에잉! 한심한 놈! 다시 돌격!"
역정을 내는 보르카의 명령에 따라 그의 부하 오르크 대장들이 제각기 이끄는 부대들을 향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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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보르카의 대부대가 사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두 번째로 다시 돌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핑!"
활시위 소리와 함께 하얀 깃의 화살들이 날아가 검은 가죽 갑옷 오르크들의 허벅지를 맞춰 연달아 쓰러뜨렸다.
놀라운 속도의 연사이자 정확한 활솜씨였다.
그 바람에 뒤따라 달려오던 오르크들이 걸려서 넘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미영이 놀라운 활솜씨로 연달아 활을 쏘고 있는 서쪽, 보르카의 주력 부대 방향쪽뿐이었다.
나머지 세 방향에서는 순식간에 오르크들의 대부대가 코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긴 나무자루의 묵직한 쇠도끼를 높이 쳐든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우우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쟈르칼의 쇠도끼가 흰빛으로 빛나며 쟈르칼의 외침을 멀리까지 퍼지게 해주었다.
동시에, 미영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과 함께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거였구나!
이런 상태에서는 재연씨의 최면술도 통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 기술은 따라할 수 있으면 동료들과 함께 싸울 때 꽤 유용하겠어.
물론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경우의 얘기지만....."
"쾅! 쾅! 쾅! 쾅! 쾅! 쾅! 콰앙!"
잠시후, 미영이 활로 돌격을 늦추고 있는 주력부대 방향을 제외한 세 방향에서 일제히 쇠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오르크들과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오르크들이 손에, 손에 긴 나무자루의 쇠도끼들을 든 채로 거칠게 몸을 부딪치고 도끼끼리 맞부딪치며 격돌하고 있었다.
"우우야야야!"
"쾅!"
요란한 기합소리와 함께 갈색 갑옷을 입을 오르크 한 명이 쳐들어오는 오르크의 뿔달린 투구 쓴 머리를 도끼로 후려갈겼다.
투구가 와그작 찌그러지면서 검은 갑옷을 입은 오르크의 큰 몸집이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콰앙!"
"꾸에에에엑!"
옆에서는 다른 갈색 갑옷의 오르크가 도끼 자루를 돌려 상대의 녹색 피부의 목을 후려 갈기고 있었다.
검정 갑옷 오르크의 내려치는 도끼를 도끼날로 막아 밀어낸 후 순식간에 이루어진 동작이었다.
"우웨에에엑!"
목께를 도끼로 찍힌 또다른 검은 갑옷 오르크가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사방에서 벌어진 양쪽 선두열끼리의 충돌에서, 갈색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이 검은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부하들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연이어 쏴댄 미영의 화살 공격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동료 오르크들을 넘어 육천에 달하는 보르카의 주력부대 오르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밀려 들었다.
마치 검은색과 녹색의 파도같은 모습이었다.
미영이 침착하게 메고 있던 가죽 활집에 활을 넣어 다시 등에 메었다.
"채앵!" 경쾌한 소리와 함께 긴 칼을 뽑아들며 양손으로 높이 쳐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악귀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함성을 지르며 수많은 오르크들이 자루가 긴 도끼들을 손에 손에 높이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미영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오르크들의 돌격을 - 전혀 떨지 않는 채로 - 기다리고 있었다.
"콰앙!"
달려오던 힘으로 세차게 내리친 어느 오르크의 묵직한 쇠도끼를 미영이 긴 칼로 막아냈다.
어느새 붉게 변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미영쪽의 힘이 그 오르크보다 위였다.
그러나, 도끼와 긴 칼이 부딪치는 순간 칼이 부러져 나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이 칼자루를 잡고 있는 미영의 양손에 느껴졌다.
아마 미영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십중팔구 칼을 놓치거나 칼날이 뒤로 밀리면서 당했을 것이다.
힘이 센 자가 마음껏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 - 도끼가 갖고 있는 장점이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힘차게 도끼날을 뒤로 밀어낸 미영이 마주한 오르크가 자세를 바로 잡기도 전에 긴 칼을 오르크의 배에 박아 넣었다.
"푸우욱!"
검은 가죽 갑옷을 뚫으며 긴 칼날이 깊숙히 오르크의 뱃속에 파고 들어갔다.
"꾸에에에엑!"
비명과 함께 오르크의 녹색 얼굴이 일그러지며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오르크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며 천천히 - 미영에게는 마치 슬로모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미영은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 나라에 온 이래, 샹리아 마을에서 산적들을 베어 부상을 입힌 것을 시작으로..... (1부 내용 참조)
샹드로 마을에서는 밤비르인 르몽드를 세로로 두 조각으로 베어 퇴치하기도 했었지만..... (3부 내용 참조)
조금 전에 보르카를 겨눈 화살에 애매하게 죽은 오르크를 제외하고는.....
미영은 사실 이제까지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닭 한 마리도 죽여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아니 오르크를 죽였다!
방금전까지 살아서 숨쉬고 있던 존재가..... 영원히 죽어 버린다.
그것도 이렇게 쉽게....."
"쿠아아아아악!"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두 마리의 덩치 큰 오르크 두 명이 한꺼번에 묵직한 쇠도끼를 들고 미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 푸욱!"
눈깜짝할 사이에 오르크 한 명의 굵은 녹색의 목을 찔러 관통한 미영의 긴 칼날이 어느새 두 번째 오르크의 녹색의 목을 관통해 뒤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르르르르!"
목을 감싸 쥔 첫 번째 오르크가 피를 흘리며 곧바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미영의 긴 칼이 목에 박혀 있는 두 번째 오르크는 여전히 서 있는 채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녹색 얼굴의 검은 눈동자의 촛점이 이미 풀린 채로, 아래 위 어금니들이 튀어나와 있는 입 밖으로 혀를 빼물고 있었다.
지르르 입가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퍼어억!"
오른발을 들어 오르크의 배를 걷어차며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아당겨 칼날을 목에서 뽑았다.
그러자, 오르크의 큰 덩치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미영은 빠른 동작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힘으로 도끼로 후려친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한 방에 검은 갑옷 오르크 한 명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목없는 몸통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퍼어억!"
"꾸에에에엑!"
서로 힘을 줘 도끼날들끼리 밀고 있던 오르키스(여자 오르크) 메르타가 굵은 녹색 팔에 힘을 주었다.
힘에서 밀린 상대방은 도끼 뒤쪽에 이마를 세게 맞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래! 이게 전쟁이야!
내가 망설이면 우리 편이 죽는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주영아! 수진아!"
칼자루를 잡고 있는 양손에 불끈 힘을 주며, 미영이 소리 높여 함성을 질렀다.
"하아아아아아아앗!"
"촤아아악!"
동시에, 이번에는 가차없이 휘둘러진 긴 칼날이 다가오는 오르크의 굵은 목을 후려쳤다.
뿔달린 투구를 쓴 녹색의 머리가 허공을 날며 사방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푸욱! 푸욱!"
목없는 오르크의 몸이 채 쓰러지기도 전에 미영의 긴 칼날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두 명의 오르크들의 굵은 목을 연달아 관통하고 있었다.
미영의 가차없는 움직임에는 이제 더이상 아무 망설임도 남아 있지 않았다.
.....
한참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고 찌르던 미영은 어느새 더이상 다가오는 검은 가죽 갑옷의 오르크들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고개를 들자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수도 없이 사방에 쌓여 있는 동료 오르크들의 시체들을 버려둔 채로.....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대부대가 일제히 뒤로 물러서며 천천히 후퇴하고 있었다.
"상황은 어떤가, 메르타?"
온통 적의 붉은 피를 덮어 쓴 채로, 아직도 피가 줄줄 흘러 내리고 있는 도끼날을 아래로 하며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물었다.
역시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족장 내지는 부총대장의 위치에 있는 듯 했다.
덩치 큰 오르키스 메르타가 - 안 어울리게도 - 아주 부드럽고 여성적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최소한 사오백 명의 적을 해치운 것 같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열 명 남짓입니다."
야만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크고 옆으로 벌어진 녹색 코의 큰 콧구멍이 흥분한 듯 벌름거리고 있었다.
메르타의 보고에,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놀라운 전과로군!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오르키스 메르타 역시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사들이 부상을 입는 대로 지시하신 대로 원형진의 한가운데서 대기하고 있는 은발머리의 인간 여자에게 데려갔습니다.
그 인간 여자가 손에서 녹색의 빛을 내뿜자, 이미 숨이 끊어진 열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자리에서 바로 부상이 회복돼 버렸습니다."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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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대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는 씩씩거리며, 되쫓겨온 부하들에게 두 번째로 화를 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이번에는 바람도 안 불었는데 왜 쫓겨온거야?
5배가 넘는 병력으로 포위 공격하면서 쫓겨온다는게 말이나 돼?"
보르카의 말에 각 부대의 대장들인 오르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전사들도 용감하고 강합니다만, 쟈르칼의 부하들이 훨씬 더 강했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뭐?"
보르카가 버럭 호통을 치자, 말을 꺼냈던 오르크가 머뭇거리는 태도로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 좀 이상합니다.
쟈르칼의 부하 놈들 어쩐지 아무리 쓰러뜨려도 인원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그 말에 모여 서 있던 다른 대장 오르크들도 동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르르르르르르!"
분노한 오르크 보르카가 입에서 마치 화난 개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귀청이 나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들아!
그건 너희 놈들이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역시 별 수 없군.
사키아를 쓸 준비를 해라!"
"사키아를 말입니까?"
입을 모아 되물으며, 둘러선 각 부대의 대장들이 긴장하는 얼굴로 꿀꺽 침을 삼켰다.
"그래! 대장들은 목에 건 목걸이를 잘 확인해!"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의 말에 주위에 서 있던 대장 오르크들과, 백여 명의 호위병 오르크들이 일제히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확인하듯 점검했다.
호위병 오르크들은 아까부터 꼼짝않고 보르카의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쇠로 된 굵은 줄에 달린 쇠로 된 조그만 메달같은 펜던트 가운데에는, 깨알처럼 아주 작은 갈색의 보석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각 부대의 대장들이 각각 자신이 이끄는 부대로 돌아갔다.
그 후, 큰 짐승의 하얀 해골을 투구 대신 머리에 쓰고 손에는 수정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오르크 무파카가 붉은 피가 담겨 있는 작은 단지에 헝겊을 담갔다.
무파카가 쓸 수 있는 마법은 전투 전에 보여준 확성 마법만이 아닌 듯 했다.
짐승 해골을 쓴 오르크 무파카가 바닥에 붉은 피를 적신 헝겊으로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나 열심히 원안에 기하학적인 모양의 다양한 무늬들을 그려 넣더니, 붉은 피가 아직도 남아있는 단지를 원의 중앙에 놓았다.
원안에 들어선 오르크 무파카가, 수정구슬 지팡이를 높이 들고 단지를 빙빙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듯 손발을 흔들다가 크게 외쳤다.
"사메니! 사메니! 사메니! 왐바! 사키아!"
단지 안에서 남아 있던 붉은 피가 연기처럼 단지 구멍으로 뿜어 나오더니, 마치 살아 있는 피의 구름 뭉치처럼 뭉친 채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짐승 해골을 쓴 오르크 무파카가 녹색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어, 수정구슬 지팡이를 손에 든 채로 크게 외쳤다.
"살육과 광기의 중급 정령 사키아여!
그대의 광기를 이들에게 내려 두려움없는 전사로 만드소서!"
한편, 백여 미터 이상, 멀찌감치 후퇴한 보르카의 오르크 대부대가 포위진형을 유지한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미영이 중얼거렸다.
"뭘하고 있는거지? 뭔가 기다리고 있는건가?"
옆에 서 있던 오르키스 메르타가 긴장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것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은 가죽 갑옷들을 입고 있는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이 갑자기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오른손에는 도끼를 든 양손을 높이 치켜 들고,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부들부들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입을 열었다.
"역시 사용하는군!"
이어 손에 든 도끼에서 흰 빛을 내며 사방에 울리는 큰 목소리로 쟈르칼이 외쳤다.
"나의 전사들이여, 준비하라!
사키아에 홀린 미친 자들이 몰려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또 한 번의 일제 함성과 함께, 보르카의 대부대가 한꺼번에 전력 질주라도 하듯 도끼를 흔들며 달려오면서, 세번 째 일제 공격이 시작되었다.
"핑! 피잉! 핑! 핑! 핑!"
하얀 깃이 달린 화살들이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미영의 활에서 연달아 발사 되었다.
허벅지를 맞혔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의 화살들은 달려오는 오르크들의 얼굴이나, 목, 가슴 등 치명적인 부위들을 향해 용서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진격을 늦추는 효과는 거의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쓰러진 동료를 피하려다 서로 뒤엉켰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치명상을 입은 동료들을 가차없이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그 시체를 짓밟으며 그대로 돌격해왔던 것이다.
그 엄청난 기세에, 미영이 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다섯 발이었다.
급한 동작으로 활을 등 뒤에 맨 미영이 "채앵" 소리와 함께 긴 칼을 뽑아 들었다.
"하아아아앗!"
기합과 함께 가차없이 휘둘러진 미영의 긴 칼이 오르크 한 명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다른 오르크의 왼쪽 가슴을 갑옷을 뚫으며 깊숙히 찔렀다.
미영의 긴 칼이 다시, 세 번째 오르크의 드러난 굵은 녹색 목에 깊숙히 박혔다.
하지만, 세 명의 오르크들이 채 쓰러지기도 전에, 검은 갑옷을 입은 새로운 오르크들이 거세게 도끼를 휘둘러 댔다.
쓰러지며 숨이 멎어가는 동료들을 사정없이 밀어 붙이고 있었다.
흰자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목숨 따위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한, 말그대로 미친 돌격이었다.
"푸욱!"
미영의 긴 칼의 칼날이 오르크 한 명의 굵은 녹색 목을 뚫고 뒤로 빠져나가, 뒤에 있는 다른 오르크의 목까지 한꺼번에 꿰뚫었다.
"퍼억!"
바로 앞의 오르크의 배를 발로 차며 칼날을 목에서 뽑은 미영의 붉은 보석같은 눈동자가 차갑게 반짝였다.
연달아 칼을 찌르고 다시 뽑고 또 찌르는 공격을 반복했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푸욱!"
어떻게나 빠른지 칼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게다가, 놀랍게도 한 번씩 칼을 길게 찌를 때마다, 한 번에 두 명, 심지어는 세 명씩의 오르크들이 녹색의 목에서 피를 뿜으며 동시에 뒤로 쓰러져 갔다.
마치 꼬치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깐 사이에 미영의 주위에만 검은 가죽 갑옷 오르크들의 시체가 수십 명이나 수북히 쌓였다.
위에서 또는 옆으로 크게 휘둘러서 공격해야 하는 도끼에 비해, 찌르기 공격을 할 수 있는 칼은 능숙한 사용자라면 도끼보다 훨씬 빠른 공격으로, 그 이상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였다.
미영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곳 위스토아에서 아미트(기사)라고 불리는 인간의 직업 전사계급이 칼 또는 검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날이 있는 무기를 도끼나 철퇴같은 다른 무기들보다 선호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 나라에 온 이후로, 수진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는 엄청난 힘과.....
주영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눈으로 움직임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
그 위에, 보지 않고도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미영만의 독특한 감각.....
이 세 가지 능력이 하나로 합쳐지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쿨럭! 쿨럭!"
쓰러지는 어느 오르크의 어깨를 스치듯 찔러나간 미영의 긴 칼에 목이 관통당한 오르크 하나가 숨이 넘어가며, 기침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뒤에서는 또 다른 오르크가 앞의 오르크의 목을 관통해 뚫고 나온 긴 칼날에 꼬치처럼 동시에 목을 찔린 채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미영의 모습은 미처 보지도 못한 채였다.
"푸우욱!"
그 오르크들이 채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또 다시 내지른 미영의 긴 칼이 또다른 오르크 두 명의 목을 동시에 꿰어 버렸다.
칼을 찌르거나 휘두르기 위해 상대의 모습을 눈으로 볼 필요조차 없었다.
"퍼어억!"
조금 떨어진 옆에서, 검은 가죽 갑옷 오르크 한 명의 머리를 도끼로 후려치던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미영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얼굴 가득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저 인간의 여자는 긴 칼을 차고 있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본 건 조금 아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 덤벼든 적을 쓰러뜨리고 잠깐 멍해졌던 모습이 틀림없이.....
하지만..... 지금의 저 모습은.....
저 인간의 여자! 싸우면서 싸움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것도 말도 안될 정도의 속도로....."
조금 아까 머리를 도끼로 맞는 치명상을 입고 동료들에 의해 안쪽으로 옮겨졌던 부하 오르크 한 명이 어느새 다시 합류해 싸우고 있는 것이 쟈르칼의 눈에 띄었다.
여전히 찌그러진 채인 투구를 머리에 쓰고 있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잠깐 새에, 그렇게 큰 상처를..... 그것도 이어지는 부상자들을 계속해서 고쳐주고 있다니.....
아까 메르타가 말한 그대로군.
그 은발 머리의 여자..... 역시 단순한 셍뜨 바이너(신성한 빛을 쓰는 자)가 아니라 셍뜨레(성녀) 수준인게 틀림없다!
소환진도 없이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내서 만오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한꺼번에 밀어내던 그 녹색 머리의 여자는 또 어떤가!
운디르(짐승) 마스터라..... 어렸을 때 옛날 얘기에서나 듣던 존재가 아닌가!
나와 처음 싸웠던 검은 머리의 여자도..... 방심하지 않았다면 객관적으로 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전혀 아니었다.
타고난 전투종족인 오르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내가 말이다!
저 인간의 여자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전설이나 옛날 얘기에나 나올 법한 능력들을 갖고 있다.
게다가 저 금발머리의 여자를 보면..... 완성된 능력이 아니라 이제 겨우 능력에 눈뜨기 시작한 단계인 것 같다.
허허허! 여기서 만약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면, 저 인간 여자들에게 보어(멧돼지) 고기를 대접하겠다고 한 것을 아마도 이 쟈르칼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 꼽아야 할 것 같군!"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오르크 대부대는 마치 검은색과 녹색의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 들어 왔다.
그 엄청난 기세에 원형진을 짜고 뭉쳐 있는 쟈르칼의 오르크 부대원들중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는 한, 아무리 심한 부상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들도 부대의 중앙에서 대기하고 있는 지선에게 날라져 갔다가 잠시 후면 멀쩡한 몸으로 다시 돌아와 싸움에 합류했다.
게다가, 방어를 전혀 생각지 않고 오직 도끼를 휘둘러 공격하는 것만 생각하는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들은 그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생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개개인의 전투실력이 쟈르칼의 부하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공격만을 감행한 결과였다.
아까, 쟈르칼이 보르카에게 말했던, 사키아 사용의 문제점이 적절한 지적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퇴! 후퇴하라!"
각 부대들의 뒤쪽 대열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보르카의 부대 대장들이 목에 걸고 있던 깨알만한 갈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들을 각각 손에 쥔 채로 크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 때까지도 충혈된 눈을 한 채 도끼를 휘두르며 앞으로 앞으로 계속 돌격만 하고 있던 검은 가죽 갑옷의 오르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상황은 좀 어떤가, 메르타?"
조금 지친 듯 숨을 고르며, 오르크 족장 쟈르칼이 오르키스 메르타에게 물었다.
덩치만 클 뿐 아니라, 오르크치고도 유난히 큰 입으로 활짝 웃음을 지으며 오르키스 메르타가 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까와 합쳐서 이제까지 최소한 2,000여 명의 적을 해치운 걸로 보입니다.
아군의 피해는 100여 명이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어쩌면, 이 싸움..... 우리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역시나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전과였다.
"하아! 하아! 하아!"
쟈르칼 부대의 원형진 한 복판에서는 녹색 여신관복 차림의 미녀가 양손에서 부드러운 느낌의 녹색의 빛을 내고 있었다.
은발의 긴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동료들에 의해 운반되어 온 녹색 피부의 오르크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상처가 회복되어 놀란 표정으로 다시 일어섰다.
셍뜨 바인(신성한 빛)을 계속 내는 것이 체력을 상당히 소모시키는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녹색의 부드러운 빛은 처음 그대로 전혀 약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도끼에 비스듬히 맞아 피가 줄줄 흐르던 얼굴의 큰 상처가 순식간에 소리도 없이 사라지자, 녹색 피부의 오르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드립니다, 위대한 인간이시여!"
녹색의 얼굴 가득 존경과 감탄의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별 말씀을요!"
마주 상냥하게 환히 웃던 "아가씨"가 마지막 부상자가 대열로 돌아가는 걸 보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아! 하아아!"
다소 가쁘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녹색 머리의 "젖소" 은주가 이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코까지 "색색!" 작은 소리로 골며 기분좋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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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대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는 펄펄 뛰며, 되쫓겨온 부하들에게 세 번째로 화를 내고 있는 참이었다.
"멍청한 놈들! 사키아의 힘까지 사용했는데도 쫓겨오다니, 도대체 왜 병력을 후퇴시킨 거냐?
대답해 봐!"
버럭 고함을 지르는 보르카의 말에, 몰려서 있던 각 부대의 대장들중 한 명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계속 돌격시켰다간 자칫하면 우리가 패배할 수도 있다고 판단돼서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르카님!"
"뭐야?"
키가 이 미터에 가까운 오르크 보르카의 큰 덩치가 발광하듯 펄쩍 뛰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쟈르칼이 뭔가 이상한 수를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쟈르칼의 병력이 거의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쪽 피해는 이미 2,000 명이 조금 넘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또다른 대장 오르크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확인차 조금 가까이까지 제가 가봤는데 틀림없습니다.
쟈르칼의 부하들 중에는 도끼에 맞아 찌그러진 투구나 박살나 너덜거리는 갑옷을 입은 놈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즉사해버린 놈들외에는 뭔가 수를 써서 바로 바로 부상을 낫게 만들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된거냐, 무파카?"
짐승 해골을 쓴 부하 오르크에게 엉뚱하게 역정을 내듯 소리쳐 묻는 보르카에게 오르크 무파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인간들중에는 셍뜨 바인(신성한 빛)을 사용해서 기적처럼 바로 바로 부상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숫자는 매우 적습니다만.....
이것은 아마도..... 인간 여자들중에 대단히 강력한 여신관이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쟈르칼의 손님이라는 인간 년들인가?
도대체 어디서 그런 괴물같은 년들만 데려온거야?"
인상을 쓰며 보르카가 투덜거리는 가운데, 각 부대의 대장 오르크들이 눈에 띄게 불만어린 표정들을 지었다.
아까에 이어 또다시 총대장 보르카의 인간 여자 수집 취미 때문에 이런 꼴이 됐다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 중 한 명의 오르크가 입을 열었다.
"보르카님께서 남으라고 하신 인간 계집년들중 금발 계집년도 완전히 괴물입니다.
그 년 혼자서 긴 칼로 - 보어(멧돼지) 바베큐처럼 - 목을 꿰어서 죽인 전사들만 최소한 백 명이 훨씬 넘을 겁니다.
그 외에 그 년이 쏜 화살에 맞아, 죽거나 치명상을 입은 전사들도 삼십여 명이 넘습니다."
그 말에 몰려 서 있던 오르크 대장들의 표정이 더욱 불온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쟈르칼과 그 휘하 브라우니 보어족 전사들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은 오르크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임무를 어렵다고 생각했던 오르크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강한 전사들이라도, 다섯 배가 넘는 오르크 병력에게 들판에서 포위된 이상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황은 전혀 예상외로 흘러가서.....
적들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바람에 밀려 쫓겨온 처음의 일제 돌격부터 시작해서.....
세 차례의 돌격끝에, 적들에게 피해는 거의 입히지도 못한 채, 무려 2,000여 명이 넘는 아군 병력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그 모든게 전부 총대장 보르카의 - 그것도 다른 종족 여자에 대한 - 변태적인 취향이 원인이었다니.....
총대장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은 커녕..... 당장 일제히 도끼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하들의 불만스런 분위기를 느낀,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인상을 쓰며 고함쳤다.
"닥쳐라, 멍청한 놈들!
그런 대단한 인간 계집들이란 걸 알게 된 이상 더더욱 살려 보내서는 안된다!
이 세상을 정복하려는 위대하신 부쳐크님의 위대한 계획에 방해가 될 년들을 죽이거나 잡아가면, 위대하신 부쳐크님께서 크게 상을 내리실 것이다!"
보르카가 현명하게도 그 점을 미리 예상하고 인간 여자들을 남게했다고 생각하는 오르크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불만을 품은 중에도 오르크 대장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그중 한 명이 주춤거리며 나서서 입을 열었다.
"또 한가지,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점이 있습니다, 보르카님!"
"또 뭐냐?"
신경질난다는 표정으로 보르카가 퉁명스럽게 묻자, 그 오르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쟈르칼의 부족은 브라우니(갈색) 보어(멧돼지)들을 잘 길들여서 부족 이름으로까지 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라고는 하지만, 한 마리, 한 마리의 위력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몇백 마리는 된다고 들은, 길들인 브라우니 보어들이 아까부터 한 마리도 안 보입니다."
그 말에, 하얀 짐승 해골을 투구 대신 쓰고 있는 오르크 무파카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기습입니다, 보르카님!
아까 도망쳐 나간 무리들 중에 섞여서 빠져 나갔다가, 뒤로 돌아서 기습해 오려는 겁니다!
어서 부대 안쪽으로 이동하십시오!"
그 말에 콧방귀를 뀐 오르크 보르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멍청한 놈! 너는 샤먼(주술사)이라는게 그런 것도 모르냐?
브라우니 보어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고 말도 잘 안 듣는 것들을 타고, 들키지 않게 빙 돌아와서 기습하려면 오는데만 하루는 걸리겠다.
멍청한 쟈르칼 놈이나 그런 걸 타고 다니지.....
제 때 도착할 수 있는 놈들은 몇백 마리중 잘해야 몇십 마리도 채 안될텐데..... 겨우 그거가지고 무슨 기습을 하냐?
그보다 이 상황에서 쟈르칼 놈과 저 괴물같은 인간 계집년들을 해치울 궁리나 해 봐!"
보르카의 다그침에 짐승 해골을 머리에 쓰고 있는 샤먼 무파카가 머뭇거리면서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실은..... 틀림없이 저 놈들을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그 말에 반색을 하며 재촉했다.
"그래? 뭐냐? 빨리 말해 봐!"
"사키아를 좀더 강하게 사용하는 겁니다.
다만 부작용이 굉장히 큰 데다가, 사용하려면 오르크의 피가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퍼억!"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어느 호위병 오르크의 도끼를 뺏어 든 보르카가 다짜고짜 도끼로 그 오르크의 목을 후려 갈겨 버렸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호위병 오르크의 머리가 날아가 버리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머리없는 몸이 "쿠웅!"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가자,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만족스런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끼끽끽끽끽끽!
이 정도 피가 있으면 충분한가?"
"꿀꺽!"
질린 얼굴의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침을 삼키더니 대답했다.
"예, 충분합니다, 보르카님!"
대부대의 총대장이 된 오르크답게, 보르카의 도끼로 후려 갈기는 속도와 일격으로 목을 떨어뜨리는 정확함은 놀랄만한 솜씨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보다도, 일개 호위병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부하의 목을 망설임없이 도끼로 따 버리는 잔인함에 모두들 기가 질려버렸다.
몰려 서 있던 오르크 대장들의 얼굴에서 총대장의 인간 여자 밝힘증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기색들이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오르크 전사의 목에서 쿨렁쿨렁 쏟아져 나오는 피를, 머리에 짐승 해골을 쓴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단지 하나에 가득히 담았다.
아까 사키아를 사용했을 때보다 두세 배는 더 커보이는 단지였다.
헝겊에 피를 묻혀가며 바닥에 열심히 큰 원과 그 안의 기하학적인 무늬들을 새빨간 색으로 그려넣은 무파카가 큰 단지를 원의 정 중앙에 놓았다.
단지 안에는 아직도 호위병 오르크의 붉은 피가 많이 남아 있었다.
여전히 원안에 들어가 있는 채로, 수정구슬 지팡이를 든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춤을 추듯 손발을 흔들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메니! 사메니! 사메니! 왐바! 사키아!"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단지 안에서 남아 있던 붉은 피가 연기처럼 단지 구멍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어, 새빨간 피의 구름 뭉치처럼 둥글게 뭉친 채로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먼 오르크 무파카가 수정구슬 지팡이를 오른손에 든 채로 소리 높이 외쳤다.
"살육과 광기의 중급 정령 사키아여!
그대의 광기를, 그대가 지금 먹고 있는 피를 가진 이들에게 내려, 그 혈관에 피와 함께 피보다 더 붉은 광기가 흐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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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칼을 칼집에 꽂은 미영은 다시 활을 꺼내 든 채로, 곧이어 이어질 보르카의 대군의 네 번째 일제 돌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의 오르크들 모두 처음에 비해서는 긴장들이 조금 풀린 약간 느긋한 기색들을 하고 있었다.
미영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사실 그보다는, "아가씨"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 치유력이 생각외로 엄청난 덕분이었다.
그때였다.
백여 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사방을 넓게 포위하고 있던 보르카의 오르크 전사들이 일제히 양손을 높이 쳐들었다.
이어, 마치 발작하듯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또 사키아를 쓰는 건가? 소용없을텐데....."
오르키스 메르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여유있게 중얼거렸으나, 미영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후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보르카의 오르크 전사들 모두 긴 자루의 도끼를 양손으로 들고 휘두르며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핑!"
화살 한 발을 쏜 미영의 루비처럼 크고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더욱 커졌다.
아직도 만이삼천 명에 달하는 보르카의 오르크 전사들 모두가 마치 맨몸의 백미터 경주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육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두꺼운 검은 가죽갑옷을 입고, 무거운 투구를 쓴 채, 묵직한 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이상 도저히 불가능한 속도였다.
"채앵!"
활을 다시 등뒤에 제대로 멜 여유조차 없었다.
다급하게 활을 바닥에 던진 미영이 긴 칼을 뽑아들자 마자,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검은 가죽갑옷의 오르크들이 거센 검은 파도처럼 밀어 닥쳤다.
"푸욱!"
길게 긴 칼을 찌른 미영의 일격이 가장 앞장선 오르크의 목을 뚫고 그 뒤에 서 있던 오르크의 목까지 한꺼번에 꿰뚫었다.
"앗!"
그러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도 뒤로 쓰러지는 대신, 거세게 도끼를 내리치는 오르크의 공격에 미영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하게 몸을 옆으로 틀어 겨우 피하며 칼을 비틀어 칼날을 뽑았다.
"크와아아아!"
방금의 칼날을 비틀어 목에서 뽑는 동작으로, 오르크의 목의 절반이 칼에 잘려 나가 버리며, 큰 상처가 벌어졌다.
"촤악!"
끔찍한 소리와 함께 목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게도, 그 오르크는 쓰러지기는 커녕 도끼를 높이 쳐들더니 또다시 미영을 향해 내리쳤다.
게다가, 그 내리치는 속도도 앞서 돌격때의 오르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썩둑!"
역시 몸을 틀며 아슬아슬하게 도끼 공격을 피한, 미영의 긴 칼이 그 오르크의 목을 세차게 후려쳐서 아예 머리를 잘라내 버렸다.
그제야, 목없는 몸통이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천천히 뒤로 쓰러져 갔다.
그러나, 그 오르크가 채 쓰러지기도 전에, 아까 미영의 칼날에 한꺼번에 목이 꿰뚫렸던 뒤에 서 있던 오르크가 역시 목에서 피를 뿜으면서도 무서운 속도로 도끼를 휘둘러댔다.
"푸욱! 푹! 푹!"
위에서 내려치는 도끼를 옆으로 비켜서며 피한 미영이 빠른 속도로 칼을 움직였다.
무려 세 번이나 연속으로 그 오르크의 심장께를 긴 칼로 깊숙히 찔러 난자하다시피 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치명상을 입어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데다가, 지금의 공격으로 심장이 터져 버렸는지 왼쪽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번째 오르크는 그 뒤로도 두세 번이나 더 도끼를 휘두른 후 몇 초 뒤에야 숨이 끊어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지만, 미영은 방금 깨달은 바를 주위의 모든 아군들이 알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적들의 목을 쳐서 머리를 잘라요!
머리를 자르지 않는 한 아무리 치명상을 입어도, 바로는 죽지 않습니다!"
"우와아아악!"
갈색 갑옷을 입은 오르크 한 명이 머리에 도끼를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우으으으으윽!"
갈색 갑옷을 입은 다른 오르크 전사가 도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깊숙히 찍었으나 자신도 오른쪽 어깨에 도끼를 정통으로 맞은 채로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퍼억! 퍼억!"
갈색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는 어깨를 맞은 고통과 충격으로 신음소리를 낼 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상대방은 옆구리를 도끼에 찍히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에 박고 있는 도끼를 뽑더니, 연거푸 사납게 휘둘러댔다.
흰자위가 온통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희번덕거리는 것이 얼핏 보기에도 제 정신이 아닌 모습이었다.
피가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이번에야말로 치명상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사방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갈색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들이 연거푸 쓰러져가고 있었다.
무기와 갑옷의 수준에 별다른 차이가 없고, 특별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육박전에서, 부대간의 우열은 크게 세 가지 조건에 따라 나뉜다고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 부대를 구성하는 병사들 개개인의 전반적인 체력과 힘의 수준.....
둘째는 병사들의 무기를 다루는 전반적인 속도와 정확성.....
셋째는 병사들의 전반적인 사기와 정신자세.....
첫째 조건인, 체력과 힘에서는 사실,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과 보르카의 부하들간에 처음부터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그들 모두 강인한 체력과 힘을 대체로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전투종족 오르크의 전사들인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인, 사기와 정신자세에서는, 충성도가 높은 쟈르칼의 부하들쪽이 대체로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르카의 부하들도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칠 정도로 나약한 정신자세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그 차이가 크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양쪽의 전사들간에 처음부터 차이가 났었고, 다시 그 차이가 완전히 뒤집혀버린 부분은 둘째 조건인 속도와 정확성이었다.
똑같은 무기를 손에 쥐어줘도 숙련도가 높고 - 요컨데, 싸움 경험이 많고 -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전사들은
그렇지 못한 전사들이 어디를 칠까 순간 망설일 때, 이미 무기를 휘두를 수 있으며.....
애송이 전사들이 심지어 살아있는 걸 죽이기 겁나서 주춤거릴 때, 가차없이 적을 내려칠 수 있고.....
서투른 전사들이 조급함으로 - 헛스윙을 하는 홈런타자처럼 - 허공에 헛손질을 할 때, 허공대신 적을 때릴 수 있고.....
미숙한 전사들이 적의 어깨나 팔다리를 후려칠 때, 머리나 가슴같은 좀더 치명적인 부위를 공격할 수 있다.
오르크 대족장 부쳐크의 친위대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전사들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쟈르칼의 부하 오르크들은 그 자부심에 걸맞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도끼를 휘두르는 속도와 정확성은 보르카가 데려온 오르크들보다 전반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 차이는 세 번째 일제 공격에서, 사키아를 처음 사용했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키아 사용의 치명적인 약점 - 방어를 도외시하고 오직 공격만 하게 되므로 강한 적들과 싸울 때는 오히려 사용하는 쪽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만 높아진다는 - 까지 드러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의 네 번째 일제 돌격에서, 두 번째로 사용된 사키아의 힘은 이전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재차 사키아에 홀린 보르카의 부하들은 쟈르칼의 부하들을 속도면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요컨데, 훨씬 더 빠른 동작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도끼를 휘두르는 동작의 정확성면에서는 쟈르칼의 부하들이 여전히 우위였다.
그러나, 속도에서 워낙 뒤지는 이상은 쟈르칼의 부하들도 부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이번에 사용된 사키아의 힘이 가진 또 한가지 특별한 힘이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은, 머리를 잘리거나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한,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고 계속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썩둑! 썩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가로로 휘둘러진 미영의 긴 칼에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오르크 두 명의 머리가 연속으로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퍼억!"
크게 휘두른 오르크 족장 쟈르칼의 도끼에 맞아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통이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콰앙! 콰앙!"
엄청난 속도로 - 말그대로 광기에 넘쳐 - 휘둘러대는 상대방의 도끼날을 오르키스 메르타가 도끼로 마주 후려쳐 막아냈다.
"콰악!"
틈을 노려 상대방의 굵은 녹색의 목 깊숙히 도끼를 박아 넣는가 싶더니, 그대로 힘을 주어 머리통을 바닥에 떨궈 버렸다.
그러나, 이 세 명외에는 전장 전체에서,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부하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물론, 더러더러 쟈르칼의 부하쪽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경우도 있었고.....
치명상을 입은 보르카의 부하 오르크가 결국 숨이 끊겨 바닥에 쓰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밀리는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도끼라는 무기의 특성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는데.....
둔하지만 타격력이 큰 무기인 도끼로, 싸움중에 정확하게 상대방의 목을 후려쳐서 머리를 잘라내는 것은 대부분의 쟈르칼의 부하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지금처럼 자신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방의 도끼를 막으면서, 틈을 노려 겨우 겨우 공격하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목을 후려칠 수 있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놀랄 일이었다.
물론, 도끼대신 미영처럼 긴 칼을 들었어도 결과에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도끼는..... 다소 둔한, 후려치는 무기이지, 정확하게 베거나 자르는 무기가 아닌 것이다.
미영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갈색 가죽 갑옷을 입은 쟈르칼의 오르크 부하들이 연거푸 쓰러지는 것을 미영은 느낄 수 있었다.
사방에서 포위되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도끼에 맞아 자신까지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너져가는 대열과 함께 계속 뒤로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최악인 것은 "아가씨"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 치료도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돼 버렸다는 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더러더러 발생하는 부상자를 뒷열의 오르크들이 재빨리 대열에서 잡아빼서.....
원형진 중앙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상자 및 사망자들이 사방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뒷열 오르크들도 바로바로 그 자리를 메꿔서 싸워야 할 형편이었으니, 여유있는 부상자 운송과 치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썩둑!"
목을 긴 칼로 후려쳐서, 또 한 명의 오르크의 머리를 가차없이 떨어뜨리면서 미영은 몸을 떨었다.
"이대로 가면..... 전멸!
이렇게 많은 수의 오르크들에게 사방이 온통 휩싸인 채로 언제까지나 피하거나 막아낼 수는 없다!
여기서 정말로 죽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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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끽끽끽끽끽끽끽끽!"
저쪽 편 총대장인 덩치 큰 오르크 보르카가 온몸을 흔들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미쳐 날뛰는 본진쪽의 오르크들 한복판에서 밑판만 있는 가마에 올라탄 채로 전황을 내려다 보고 있던 참이었다.
백여 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뒤에 남았던 앞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돌격하는 본진 중앙에 섞여서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갈색 멧돼지 기병대를 이용한 기습을 우려한 샤먼 오르크 무파카의 말을 아까는 비웃었지만, 역시 걱정이 되었던 듯 했다.
총대장 보르카와 샤먼 오르크 무파카는 물론, 주위의 호위병들과, 심지어는 세 명의 알몸의 여자들 - 보르카의 인간 여자 수집품들 - 역시 깨알만한 갈색 보석이 박혀있는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다.
펜던트의 갈색 보석에는 사키아에 홀린 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힘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주변의 일반 오르크 전사들 모두 충혈된 눈을 한 채, 적과 싸우고 싶어서 미쳐 날뛰고 있었지만, 보르카와 그 호위병 등의 주위는 피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전부 해치울 수 있겠군! 끼끽끽끽끽끽끽끽!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까지 사용안하고 감춰둔 거냐, 무파카?"
짐승의 해골을 투구대신 머리에 쓰고 있는 오르크 샤먼 무파카가 머리를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큰 모래시계가 네 번 쏟아질 정도밖에는(2시간 정도) 힘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르카님!
게다가, 사키아의 힘을 이렇게 강하게 사용한 뒤에는, 모두 쓰러져서, 모래시계가 한 번 쏟아질 정도 시간동안 손끝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무방비상태가 돼 버립니다."
"끼끽끽끽! 멍청한 놈!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는.....
쟈르칼과 그 부하 놈들은 네 번은 고사하고 모래시계가 두 번 쏟아질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거다!
그 재수없는 괴물같은 인간 년들과 함께..... 끼끽끽끽끽끽!"
기분좋게 웃던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가마를 메고 있는 호위병들에게 말했다.
"내려 놔라!"
"옛, 보르카님!"
"그 재수없는 괴물 인간 년들을 먹는 기분으로.....
자! 이리 와봐, 인간 년들아!"
호위병들이 밑판만 있는 가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르크 총대장 보르카가 다른 호위병들의 등에 엎힌 채 여기까지 따라온 빨간색, 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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