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가 습격장소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차가 도착하고 칸피니스가 마차에서 내렸을 때 모든 상황은 끝나있었으니까. 아직 파트리샤가 뒤쪽에서 도적들의 경계조와 싸우고는 있었지만 그쪽도 얼마 안있어 정리될 터였다.
덜컥-
롯시가 문을 열어주자 칸피니스는 몸을 일으켜 마차에서 내려섰다. 2미터 20센티. 인간이라기보다는 오거에 가까운 거대한 체구였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기보다는 야성적이었다.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하지만 이 모든 특성들도 그의 눈 하나보다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잔폭함, 인간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은 북해의 얼음이 불타오르는 듯한 그 잔폭함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다. 심지어 뱀파이어인 디아스루에나조차도 그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움찔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책임자가 누구냐?”
목소리는 나직했다. 나직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낮은 울림을 동반한 듣기좋은 허스키보이스였지만 그 안에는 그의 눈동자에서 느낀것과 같은 잔폭한 위압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짧은 한마디에 공포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멀쩡한 것은 그의 이같은 모습에 익숙한 델킨피에르의 기사들 뿐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퍽--!!!
겨우 두려움을 이기고 한 기사가 나서보지만 칸피니스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를 손등으로 날려버렸다. 고작 손등이었지만 인간같지 않은 힘때문인지 훈련으로 단련된 기사는 그 자리에서 핑그르 돌며 무너져내렸다.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지금 무슨...?”
그의 난폭한 모습에 검을 뽑으려던 기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어느새 칸피니스의 손에는 바스타드 소드가 들려있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모습같지 않은 단정하고 냉정한 그의 손에 들린 바스타드소드에는 워낙 빠른 검놀림 때문이었는지 한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책임자가 누구냐?”
“뭐하는...”
“그만!! 자작...”
푸학--!!!
한 사람이 반발하듯 나서는 것을 뒤에 서있던 기사가 말리려 했을 때는 이미 나서려던 기사의 몸이 목을 잃은 채 무너지고 있었다. 뒤늦게 말리던 기사는 공포와 분노가 뒤섞은 표정을 지으며 동료의 몸이 피웅덩이 위로 쓰러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죄... 죄송합니다. 자작님. 제가... 기사들의 선임을 맡고 있는 기사 벤자민 트라울르입니다. 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나이트 벤자민인가? 오랜만이군.”
“기... 기억해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벤자민 트라울르의 얼굴에서 분노는 급속히 사라졌다. 그는 칸피니스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칸피니스는 벤자민 따위가 분노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설사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서는 분노를 가져서는 안되었다. 그같은 사실을 잘 알았기에 벤자민은 모든 감정을 최대한 죽이고, 비굴할 정도로 정중한 태도로 칸피니스를 대했다.
하지만 벤자민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칸피니스의 대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누구까지 알고 있나?”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벤자민은 당혹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물론 그가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답을 말할 수는 없었다. 자칫 그 자신은 물론이고 주군인 남작도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대한 잡아떼기로 결심했다.
“누구까지 알고 있냐고 물었다!”
“무슨...?”
“내가 더 묻기를 바라나?”
“무슨 말씀이신지...”
“와르디는 지금 어디있나?”
“와르디 아가씨는 지금...”
“누가 그녀를 쫓아갔지?”
“그게...”
“너희는 남아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건가?”
“도적들의 습격을 받아...”
“훗!! 다시 묻겠다. 누구까지 알고 있지?”
“저기... 그게... 무슨...?”
이미 힌트를 주었음에도 끝까지 잡아떼려는 벤자민의 모습에 칸피니스의 인상이 굳어졌다.
“안되겠군. 딜레인!”
“옛! 영주님!”
“다 죽여라! 남작에게 직접 묻겠다!”
“옛!”
칸피니스는 더 이상의 물음이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이번 일에 가담한 이상 그에게 죽을 놈들이었다. 그의 결정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어차피 죽일 놈들이라면 그냥 죽여버리고 진상은 주모자인 플로네츠 남작에게 들으면 되는 일이었다.
“자... 자작... 크악!!”
딜레인의 행동은 신속했다. 딜레인이 움직이자 롯시와 엘로나, 펠린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벤자민을 시작으로 플로네츠가의 기사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피레샤츠!!”
“예! 마스터!”
“도망가는 놈들을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둘 필요없다!”
“예! 마스터!”
기회를 봐서 도망가려는 자들도 칸피니스의 명령에 의해 그 퇴로가 봉쇄되었다. 숲에서는 하이엘프보다 강하다는 피레샤츠의 화살이 급히 몸을 빼려는 자들의 몸에 박히며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루에나!”
“옛! 마스터!”
“와르디의 행방을 쫓아라! 와르디의 곁에 있는 자는 모조리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둘 필요 없다!”
“예!”
“가라!”
“예!”
디아스루에나는 명령이 떨어지자 급히 자신의 몸을 검은안개로 바꾸어 바람에 실어 날리기 시작했다. 비록 낮에는 피레샤츠만큼 빠르지 못했지만 그녀는 피냄새를 추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칸피니스의 모든 여자들의 피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그녀만이 조금은 이동속도가 늦더라도 정확히 와르디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릴레이나!”
칸피니스가 이름을 부르자 그의 반지에서 황금빛이 뿜어지더니 공중에 검은 그림자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법진 한가운데서 보라색 눈을 가진 흰 피부를 지닌 여성체 마족이 나타났다. 발밑에까지 끌릴 정도로 길게 기른 검은 머리와 몸에 달라붙는 검은 드레스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릴레이나였다.
릴레이나는 마법진을 나서며 흥분된 눈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칸피니스를 발견하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뛰어들 듯 안겨왔다.
“칸피니스!”
“릴레이나! 오랜만이야.”
“칸피니스... 칸피니스... 너무했어. 그동안 불러주지도 않구...”
“하하하... 그럴 사정이...”
“쳇... 3000살이나 먹은 늙다리 하이엘프 때문이구나?”
“늙다리 하이엘프? 프리첼시를 말하는 거야?”
“흥! 프리첼시가 아니면? 누가 감히 칸피니스와 나 사이를 방해할 수 있겠어?”
“훗... 하긴... 프리첼시가 릴레이나를 싫어하기는 하지.”
“흥!! 프리첼시가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 릴레이나가 프리첼시를 싫어하는거야. 프리첼시는 이 고위마족 릴레이나님을 두려워하는 거고.”
“프리첼시에게 전해주지.”
“흥! 전해줘도 상관없어! 이번 기회에 승부를 내고 말테니까.”
“언제쯤이나 프리첼시와 사이가 좋아질까?”
“하이엘프와 마족이? 헷... 칸피니스도 농담이 늘었구나.”
“안되나? 뭐 그럼 할 수 없는거고.”
“홋홋... 칸피니스 때문에 프리첼시를 죽이지 않고 있잖아. 그것만으로 만족해.”
“하긴 덕분에 릴레이나와는 이렇게 외도의 스릴을 느끼며 즐길 수 있는거니까.”
“어머어머... 그럼 나 칸피니스의 숨겨둔 정부인거야?”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꺄아... 꺄... 멋지다아~~!!”
“훗...”
한참 오랜만에 만난 칸피니스와의 대화를 즐기던 릴레이나는 그의 눈에 담긴 잔폭한 기운을 느끼자 흥분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칸피니스가 화난 것이다. 자신을 매료시킨 반려의 분노에 릴레이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마족인 그녀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무슨 일로 부른거야? 누가 또 화나게 한거야?”
“아아... 부탁이 있어.”
“뭔데?”
“루에나를 도와줘.”
“디아스루에나를?”
“루에나는 뱀파이어. 아무리 고위급 뱀파이어라고는 하지만 본질은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낮에는 그 힘을 모두 발휘할 수 없어. 재수없어서 조금 강한 놈이라도 있으면 위험해질 거야. 네가 가서 도와줘.”
“흥! 오랜만에 만난 정부에게 다른 애인 도와주라고 부탁하는 거야? 너무해!!”
“하지만 너밖에는 부탁한 상대가 없으니까. 누가 뱀파이어인 그녀의 위치를 찾아내서 그녀에게 힘을 줄 수 있겠어? 피레샤츠도 그건 무리라구.”
“흥!! 그대신 오늘바암~~ 응? 알지? 응응?”
“훗... 밤새도록 상대해주지.”
“후훗... 약속이다아~~?”
“그래!”
“마.족.의.약.속.?”
“릴레이나도 프리첼시 닮아가나?”
“뭐?”
“아니. 혼잣말이야. 알았어. 약속.”
“그럼 있다봐~~! 하니~~”
“그래. 있다 보자구.”
릴레이나를 떠나보내고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장내는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처음 명령했던대로 한 명의 도적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시체가 되어 땅에 누워있었다. 서있는 것은 오직 칸피니스의 딸과 기사들 뿐이었다. 어느새 도적들을 전부 죽이고 달려왔는지 파트리샤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그녀들의 옆에 같이 서있었다.
“모두 끝났나?”
“예!”
칸피니스의 물음에 절도있는 그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칸피니스는 그런 그녀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여주었다.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키고, 목표가 분명해지자 살기가 어느정도 누그러진 것이다. 와르디를 구하는 일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디아스루에나와 릴레이나에게 맡긴 것으로 충분할 것이기에 더 이상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럼 남은 도적은 마차 지붕위에 던져놓고 점심부터 먹자.”
“예?”
딸과 기사들의 얼굴표정이 밝아졌다. 장난스런 말투에서 그의 살기가 누그러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아침도 안먹었잖아. 먼저 점심부터 먹고, 점심 먹고 나면 플로네츠 남작을 찾아가도록 하자.”
“예, 하지만 와르디는...?”
“릴레이나가 갔으니까 됐다.”
“예?”
“여기서 릴레이나를 상대할 사람이 있나?”
“아...”
피레샤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납득해버렸다. 딜레인이 여기 모인 인간 가운데 칸피니스 다음으로 강하다지만 섀도우엘프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섀도우엘프 피레샤츠가 인정했다. 딜레인이나 다른 사람들도 피레샤츠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와르디는 플로네츠 남작은 만난 다음에 해결한다. 어차피 큰 위험은 없을거야. 죽일거라면 굳이 납치하지는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혹시 몹쓸짓이라도 당하면...”
아무래도 걱정되는 듯 롯시가 끼어들었다. 난폭한 도적들이었다. 죽지 않는다 할지라도 강간과 같은 치욕적인 일을 겪을 수도 있었기에 걱정이 안될 수 없었다.
“당하면... 뭐가 어때서?”
“에?”
“와르디는 내 여자다. 죽지만 않는다면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설사 사지가 잘리고 얼굴이 난자당한다 할지라도, 한 번 내 여자로 인정한 이상 그녀는 내 여자다. 그녀는 살아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책임진다. 내가 책임지고 내 여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됐나?”
“예... 옛! 영주님!”
롯시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활기차게 대답했다. 칸피니스의 말이 단순히 와르디를 향한 것만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롯시와 다른 칸피니스의 여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롯시는 새삼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알았으면 우선 점심부터 먹고 천천히 출발한다. 롯시가 점심준비를 책임지고 지휘하도록.”
“옛! 삼촌!”
영주로서의 칸피니스에게는 오로지 영주님이나 주군이라는 호칭만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로서의 칸피니스였기에 공적인 호칭보다는 가족으로서의 호칭이 더 적절했다.
“피레샤츠는 저 보기싫은 시체들을 노움을 시켜서 땅에 묻어버려. 밥먹는데 지장 있으니까.”
“예! 마스터!”
피레샤츠가 명령에 따라 정령을 부르는 동안 칸피니스의 시선이 파트리샤에게로 향했다. 꽤 극심한 격정을 치렀는지 온몸이 피에 절어있는 그녀는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격전의 피로로 창백해진 그녀의 피부에 묻어있는 피가 매우 선정적이고 매혹적인 매력을 풍겼다.
“파트리샤!”
“예! 영주님!”
파트리샤는 바짝 언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칸피니스가 화내는 모습에 주눅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같이 곱게 자란 귀족의 따님이 그런 잔혹하고 냉정한 위압감을 경험해봤을 리 없을테니 쉽게 적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너무 굳어있지 말고. 누가 잡아먹으려는 줄 알겠다.”
“예... 옛!”
“지금 잡아먹으려 하고 있잖아요?”
파트리샤가 칸피니스의 미소에 겨우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려는 순간 펠린이 끼어들었다. 그녀의 장난기어린 웃음을 보며 파트리샤는 얼굴을 붉혀야했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너무 딱딱하면 이가 아프거든. 기왕 먹으려면 부드럽고 매끈힌 처녀의 살이 맛있지. 안그래, 파트리샤?”
“뜨겁고 매끈거리는 보지가 더 맛있겠죠.”
“주름이 꿈틀거리며 조여오면 더 좋을테고.
“그지?”
“저... 저기...”
“어이, 그만들 놀리라구. 파트리샤가 부끄러워하잖아.”
빨개진 파트리샤의 얼굴을 보며 칸피니스는 그녀의 어깨를 안아갔다. 근육이 약간 굳어있는 것을 감싸안은 손으로 가볍게 주물러 풀어주었다. 파트리샤는 칸피니스의 손길에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쩌릿쩌릿한 쾌감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그의 손으로부터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어 그녀의 근육을 하나하나 이완시키며 다시 긴장시켜갔다.
“음... 아음...”
“어때?”
“조... 좋아...요.”
“흠... 힘들었나보지?”
“아... 아뇨.”
“처음 사람을 죽인 거잖아?”
“괘... 괜차...”
“괜찮을 리 없지. 아무리 삼 년간 검술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그전까지는 얌전한 귀족 아가씨였을테니까.”
“....”
칸피니스의 말에 파트리샤의 고개가 숙여졌다. 다른 이유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 그녀의 근육이 다시 굳어져오는 것이 칸피니스의 손에 느껴졌다.
“어쨌든 잘했다. 훌륭했어. 삼 년간 배운 실력치고는 이만하면 훌륭해. 어차피 죽어야 할 도적들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너였을 뿐이야. 마음에 부담 따위는 가질 필요 없어.”
“예...”
“자... 들어가서 아까 하던 거 마저 해야지? 그러고보니 하던 일 중간에 그만둔 것도 그놈들 때문이잖아?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넘치고도 남는 걸? 안그래?”
“예...”
“그래. 들어가자.”
“...”
칸피니스가 움직이자 파트리샤도 칸피니스에게 몸을 맡긴 채 힘없이 따라왔다.
“딜레인.”
“예!”
“우리 점심은 마차 안으로 들여줘.”
“나와서 먹어욧!”
“구경하고 싶은 거야?”
“응!”
“파트리샤, 여기서 할까? 엘로나가 저렇게 원하는데.”
“예... 전...”
괜찮다고 말하려는 듯 했으니 전혀 괜찮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습기에 찬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칸피니스는 딜레인에게 살짝 눈짓을 해보였다.
“아아... 한두번 본 것도 아닌데 괜히 봐봐야 열만 받지. 얼른 들어가요. 점심은 있다 마차로 챙겨 넣어줄테니까.”
“알았다. 들어가자, 파트리샤.”
“예...”
“하긴 몰래 엿보는 게 더 재미있긴 하지. 기대해요, 아빠.”
“삼촌, 저도 봐도 되죠?”
“영주님.”
“시꺼! 식사 끝나면 플로네츠 남작 저택으로 바로 출발한다.”
“쳇! 구두쇠!”
“약았어!”
“시꺼! 파트리샤, 가자!”
“예...”
칸피니스는 파트리샤를 안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동안 마음의 정리가 되었는지 목소리는 작았지만 떨림은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은 힘있는 걸음으로 칸피니스의 걸음에 맞추며 파트리샤는 살인으로 인한 혼란과 두려움을 어느정도 떨쳐낼 수 있었다.
“어? 꼿꼿이 섰잖아?”
“에? 에...”
오히려 칸피니스와 가질 섹스의 쾌락에 들뜨기 시작했다. 젖꼭지가 서면서 금고리가 옷 안에서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타구니도 축축히 젖어왔다. 칸피니스가 예민해진 젖꼭지를 만져오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어디어디...”
“여... 영주님...”
“음... 젖은건가?”
“아흑... 흑... 아앗... 영... 영주... 앗...”
“벗겨보면 알겠지.”
“아앙... 문좀...”
“닫을까?”
“예...”
“그냥 두지 뭐.”
“영주님...”
“아앗...”
“반응이 빠른데?”
“아앙... 아아앙... 앗... 앗... 핫... 학...”
“어이, 딸네미들. 점심 안먹을거냐?”
“여... 영주님...”
“쳇... 문이나 닫든가.”
“맞아, 롯시 언니. 보란 듯이 문 열어놓고서 저 얄밉게 말하는 것 좀 봐.”
“이 더운날 점식식사 준비하는 딸들에게 구경 좀 시켜주면 어때서.”
“맞아맞아. 눈요기라도 해야 일하는 보람 있을 거 아냐.”
“누구네 딸들인지 정말 걱정된다. 꼭 아빠의 좋은 일을 구경해야겠니?”
“응!”
“파트리샤, 그렇다는데?”
“여... 영주님!”
“파트리샤가 괜찮다니까 계속 봐라. 점심만 늦지 말고.”
파트리샤의 빨개진 얼굴은 무시한 채 칸피니스는 자신의 딸들을 보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고 롯시들도 즐겁게 웃으며 파트리샤를 놀리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레인과 루시는 칸피니스가 노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롯시와 딜레인들 대신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정비하고 있었다.
피레샤츠는 언제나와 같은 정겨운 모습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뭔가 빠뜨린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는 허전함의 정체를 금방 깨닫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르디님의 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건가?”
그녀의 말대로 칸피니스의 일행들은 더 이상 와르디의 안전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칸피니스에 대한 믿음이었다. 또한 칸피니스가 보낸 디아스루에나와 릴레이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와르디가 안전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기에 태연히 무시한 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피레샤츠도 마찬가지였다.
“뭐, 디아스루에나님과 릴레이나님이 같이 가셨으니까. 죽지야 않겠지.”
그녀의 마지막 중얼거림은 칸피니스의 생각이었으며 그 일행 전체의 생각이었다. 피레샤츠는 가볍게 생각을 정리한 후 아직도 놀고 있는 롯시와 딜레인들을 대신해서 레인과 루시를 돕기 시작했다. 자신이라도 돕지 않으면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롯시와 딜레인들은 칸피니스와 놀고 있었고, 칸피니스 아래에서는 파트리샤가 알몸이 되어 쾌락의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앙... 아앙... 앗... 앗... 하학... 핫... 아앙...”
덜컥-
롯시가 문을 열어주자 칸피니스는 몸을 일으켜 마차에서 내려섰다. 2미터 20센티. 인간이라기보다는 오거에 가까운 거대한 체구였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기보다는 야성적이었다.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하지만 이 모든 특성들도 그의 눈 하나보다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잔폭함, 인간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은 북해의 얼음이 불타오르는 듯한 그 잔폭함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다. 심지어 뱀파이어인 디아스루에나조차도 그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움찔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책임자가 누구냐?”
목소리는 나직했다. 나직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낮은 울림을 동반한 듣기좋은 허스키보이스였지만 그 안에는 그의 눈동자에서 느낀것과 같은 잔폭한 위압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짧은 한마디에 공포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멀쩡한 것은 그의 이같은 모습에 익숙한 델킨피에르의 기사들 뿐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퍽--!!!
겨우 두려움을 이기고 한 기사가 나서보지만 칸피니스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를 손등으로 날려버렸다. 고작 손등이었지만 인간같지 않은 힘때문인지 훈련으로 단련된 기사는 그 자리에서 핑그르 돌며 무너져내렸다.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지금 무슨...?”
그의 난폭한 모습에 검을 뽑으려던 기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어느새 칸피니스의 손에는 바스타드 소드가 들려있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모습같지 않은 단정하고 냉정한 그의 손에 들린 바스타드소드에는 워낙 빠른 검놀림 때문이었는지 한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책임자가 누구냐?”
“뭐하는...”
“그만!! 자작...”
푸학--!!!
한 사람이 반발하듯 나서는 것을 뒤에 서있던 기사가 말리려 했을 때는 이미 나서려던 기사의 몸이 목을 잃은 채 무너지고 있었다. 뒤늦게 말리던 기사는 공포와 분노가 뒤섞은 표정을 지으며 동료의 몸이 피웅덩이 위로 쓰러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죄... 죄송합니다. 자작님. 제가... 기사들의 선임을 맡고 있는 기사 벤자민 트라울르입니다. 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나이트 벤자민인가? 오랜만이군.”
“기... 기억해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벤자민 트라울르의 얼굴에서 분노는 급속히 사라졌다. 그는 칸피니스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칸피니스는 벤자민 따위가 분노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설사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서는 분노를 가져서는 안되었다. 그같은 사실을 잘 알았기에 벤자민은 모든 감정을 최대한 죽이고, 비굴할 정도로 정중한 태도로 칸피니스를 대했다.
하지만 벤자민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칸피니스의 대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누구까지 알고 있나?”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벤자민은 당혹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물론 그가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답을 말할 수는 없었다. 자칫 그 자신은 물론이고 주군인 남작도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대한 잡아떼기로 결심했다.
“누구까지 알고 있냐고 물었다!”
“무슨...?”
“내가 더 묻기를 바라나?”
“무슨 말씀이신지...”
“와르디는 지금 어디있나?”
“와르디 아가씨는 지금...”
“누가 그녀를 쫓아갔지?”
“그게...”
“너희는 남아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건가?”
“도적들의 습격을 받아...”
“훗!! 다시 묻겠다. 누구까지 알고 있지?”
“저기... 그게... 무슨...?”
이미 힌트를 주었음에도 끝까지 잡아떼려는 벤자민의 모습에 칸피니스의 인상이 굳어졌다.
“안되겠군. 딜레인!”
“옛! 영주님!”
“다 죽여라! 남작에게 직접 묻겠다!”
“옛!”
칸피니스는 더 이상의 물음이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이번 일에 가담한 이상 그에게 죽을 놈들이었다. 그의 결정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어차피 죽일 놈들이라면 그냥 죽여버리고 진상은 주모자인 플로네츠 남작에게 들으면 되는 일이었다.
“자... 자작... 크악!!”
딜레인의 행동은 신속했다. 딜레인이 움직이자 롯시와 엘로나, 펠린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벤자민을 시작으로 플로네츠가의 기사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피레샤츠!!”
“예! 마스터!”
“도망가는 놈들을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둘 필요없다!”
“예! 마스터!”
기회를 봐서 도망가려는 자들도 칸피니스의 명령에 의해 그 퇴로가 봉쇄되었다. 숲에서는 하이엘프보다 강하다는 피레샤츠의 화살이 급히 몸을 빼려는 자들의 몸에 박히며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루에나!”
“옛! 마스터!”
“와르디의 행방을 쫓아라! 와르디의 곁에 있는 자는 모조리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둘 필요 없다!”
“예!”
“가라!”
“예!”
디아스루에나는 명령이 떨어지자 급히 자신의 몸을 검은안개로 바꾸어 바람에 실어 날리기 시작했다. 비록 낮에는 피레샤츠만큼 빠르지 못했지만 그녀는 피냄새를 추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칸피니스의 모든 여자들의 피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그녀만이 조금은 이동속도가 늦더라도 정확히 와르디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릴레이나!”
칸피니스가 이름을 부르자 그의 반지에서 황금빛이 뿜어지더니 공중에 검은 그림자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법진 한가운데서 보라색 눈을 가진 흰 피부를 지닌 여성체 마족이 나타났다. 발밑에까지 끌릴 정도로 길게 기른 검은 머리와 몸에 달라붙는 검은 드레스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릴레이나였다.
릴레이나는 마법진을 나서며 흥분된 눈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칸피니스를 발견하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뛰어들 듯 안겨왔다.
“칸피니스!”
“릴레이나! 오랜만이야.”
“칸피니스... 칸피니스... 너무했어. 그동안 불러주지도 않구...”
“하하하... 그럴 사정이...”
“쳇... 3000살이나 먹은 늙다리 하이엘프 때문이구나?”
“늙다리 하이엘프? 프리첼시를 말하는 거야?”
“흥! 프리첼시가 아니면? 누가 감히 칸피니스와 나 사이를 방해할 수 있겠어?”
“훗... 하긴... 프리첼시가 릴레이나를 싫어하기는 하지.”
“흥!! 프리첼시가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 릴레이나가 프리첼시를 싫어하는거야. 프리첼시는 이 고위마족 릴레이나님을 두려워하는 거고.”
“프리첼시에게 전해주지.”
“흥! 전해줘도 상관없어! 이번 기회에 승부를 내고 말테니까.”
“언제쯤이나 프리첼시와 사이가 좋아질까?”
“하이엘프와 마족이? 헷... 칸피니스도 농담이 늘었구나.”
“안되나? 뭐 그럼 할 수 없는거고.”
“홋홋... 칸피니스 때문에 프리첼시를 죽이지 않고 있잖아. 그것만으로 만족해.”
“하긴 덕분에 릴레이나와는 이렇게 외도의 스릴을 느끼며 즐길 수 있는거니까.”
“어머어머... 그럼 나 칸피니스의 숨겨둔 정부인거야?”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꺄아... 꺄... 멋지다아~~!!”
“훗...”
한참 오랜만에 만난 칸피니스와의 대화를 즐기던 릴레이나는 그의 눈에 담긴 잔폭한 기운을 느끼자 흥분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칸피니스가 화난 것이다. 자신을 매료시킨 반려의 분노에 릴레이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마족인 그녀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무슨 일로 부른거야? 누가 또 화나게 한거야?”
“아아... 부탁이 있어.”
“뭔데?”
“루에나를 도와줘.”
“디아스루에나를?”
“루에나는 뱀파이어. 아무리 고위급 뱀파이어라고는 하지만 본질은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낮에는 그 힘을 모두 발휘할 수 없어. 재수없어서 조금 강한 놈이라도 있으면 위험해질 거야. 네가 가서 도와줘.”
“흥! 오랜만에 만난 정부에게 다른 애인 도와주라고 부탁하는 거야? 너무해!!”
“하지만 너밖에는 부탁한 상대가 없으니까. 누가 뱀파이어인 그녀의 위치를 찾아내서 그녀에게 힘을 줄 수 있겠어? 피레샤츠도 그건 무리라구.”
“흥!! 그대신 오늘바암~~ 응? 알지? 응응?”
“훗... 밤새도록 상대해주지.”
“후훗... 약속이다아~~?”
“그래!”
“마.족.의.약.속.?”
“릴레이나도 프리첼시 닮아가나?”
“뭐?”
“아니. 혼잣말이야. 알았어. 약속.”
“그럼 있다봐~~! 하니~~”
“그래. 있다 보자구.”
릴레이나를 떠나보내고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장내는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처음 명령했던대로 한 명의 도적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시체가 되어 땅에 누워있었다. 서있는 것은 오직 칸피니스의 딸과 기사들 뿐이었다. 어느새 도적들을 전부 죽이고 달려왔는지 파트리샤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그녀들의 옆에 같이 서있었다.
“모두 끝났나?”
“예!”
칸피니스의 물음에 절도있는 그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칸피니스는 그런 그녀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여주었다.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키고, 목표가 분명해지자 살기가 어느정도 누그러진 것이다. 와르디를 구하는 일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디아스루에나와 릴레이나에게 맡긴 것으로 충분할 것이기에 더 이상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럼 남은 도적은 마차 지붕위에 던져놓고 점심부터 먹자.”
“예?”
딸과 기사들의 얼굴표정이 밝아졌다. 장난스런 말투에서 그의 살기가 누그러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아침도 안먹었잖아. 먼저 점심부터 먹고, 점심 먹고 나면 플로네츠 남작을 찾아가도록 하자.”
“예, 하지만 와르디는...?”
“릴레이나가 갔으니까 됐다.”
“예?”
“여기서 릴레이나를 상대할 사람이 있나?”
“아...”
피레샤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납득해버렸다. 딜레인이 여기 모인 인간 가운데 칸피니스 다음으로 강하다지만 섀도우엘프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섀도우엘프 피레샤츠가 인정했다. 딜레인이나 다른 사람들도 피레샤츠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와르디는 플로네츠 남작은 만난 다음에 해결한다. 어차피 큰 위험은 없을거야. 죽일거라면 굳이 납치하지는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혹시 몹쓸짓이라도 당하면...”
아무래도 걱정되는 듯 롯시가 끼어들었다. 난폭한 도적들이었다. 죽지 않는다 할지라도 강간과 같은 치욕적인 일을 겪을 수도 있었기에 걱정이 안될 수 없었다.
“당하면... 뭐가 어때서?”
“에?”
“와르디는 내 여자다. 죽지만 않는다면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설사 사지가 잘리고 얼굴이 난자당한다 할지라도, 한 번 내 여자로 인정한 이상 그녀는 내 여자다. 그녀는 살아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책임진다. 내가 책임지고 내 여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됐나?”
“예... 옛! 영주님!”
롯시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활기차게 대답했다. 칸피니스의 말이 단순히 와르디를 향한 것만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롯시와 다른 칸피니스의 여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롯시는 새삼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알았으면 우선 점심부터 먹고 천천히 출발한다. 롯시가 점심준비를 책임지고 지휘하도록.”
“옛! 삼촌!”
영주로서의 칸피니스에게는 오로지 영주님이나 주군이라는 호칭만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로서의 칸피니스였기에 공적인 호칭보다는 가족으로서의 호칭이 더 적절했다.
“피레샤츠는 저 보기싫은 시체들을 노움을 시켜서 땅에 묻어버려. 밥먹는데 지장 있으니까.”
“예! 마스터!”
피레샤츠가 명령에 따라 정령을 부르는 동안 칸피니스의 시선이 파트리샤에게로 향했다. 꽤 극심한 격정을 치렀는지 온몸이 피에 절어있는 그녀는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격전의 피로로 창백해진 그녀의 피부에 묻어있는 피가 매우 선정적이고 매혹적인 매력을 풍겼다.
“파트리샤!”
“예! 영주님!”
파트리샤는 바짝 언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칸피니스가 화내는 모습에 주눅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같이 곱게 자란 귀족의 따님이 그런 잔혹하고 냉정한 위압감을 경험해봤을 리 없을테니 쉽게 적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너무 굳어있지 말고. 누가 잡아먹으려는 줄 알겠다.”
“예... 옛!”
“지금 잡아먹으려 하고 있잖아요?”
파트리샤가 칸피니스의 미소에 겨우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려는 순간 펠린이 끼어들었다. 그녀의 장난기어린 웃음을 보며 파트리샤는 얼굴을 붉혀야했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너무 딱딱하면 이가 아프거든. 기왕 먹으려면 부드럽고 매끈힌 처녀의 살이 맛있지. 안그래, 파트리샤?”
“뜨겁고 매끈거리는 보지가 더 맛있겠죠.”
“주름이 꿈틀거리며 조여오면 더 좋을테고.
“그지?”
“저... 저기...”
“어이, 그만들 놀리라구. 파트리샤가 부끄러워하잖아.”
빨개진 파트리샤의 얼굴을 보며 칸피니스는 그녀의 어깨를 안아갔다. 근육이 약간 굳어있는 것을 감싸안은 손으로 가볍게 주물러 풀어주었다. 파트리샤는 칸피니스의 손길에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쩌릿쩌릿한 쾌감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그의 손으로부터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어 그녀의 근육을 하나하나 이완시키며 다시 긴장시켜갔다.
“음... 아음...”
“어때?”
“조... 좋아...요.”
“흠... 힘들었나보지?”
“아... 아뇨.”
“처음 사람을 죽인 거잖아?”
“괘... 괜차...”
“괜찮을 리 없지. 아무리 삼 년간 검술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그전까지는 얌전한 귀족 아가씨였을테니까.”
“....”
칸피니스의 말에 파트리샤의 고개가 숙여졌다. 다른 이유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 그녀의 근육이 다시 굳어져오는 것이 칸피니스의 손에 느껴졌다.
“어쨌든 잘했다. 훌륭했어. 삼 년간 배운 실력치고는 이만하면 훌륭해. 어차피 죽어야 할 도적들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너였을 뿐이야. 마음에 부담 따위는 가질 필요 없어.”
“예...”
“자... 들어가서 아까 하던 거 마저 해야지? 그러고보니 하던 일 중간에 그만둔 것도 그놈들 때문이잖아?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넘치고도 남는 걸? 안그래?”
“예...”
“그래. 들어가자.”
“...”
칸피니스가 움직이자 파트리샤도 칸피니스에게 몸을 맡긴 채 힘없이 따라왔다.
“딜레인.”
“예!”
“우리 점심은 마차 안으로 들여줘.”
“나와서 먹어욧!”
“구경하고 싶은 거야?”
“응!”
“파트리샤, 여기서 할까? 엘로나가 저렇게 원하는데.”
“예... 전...”
괜찮다고 말하려는 듯 했으니 전혀 괜찮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습기에 찬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칸피니스는 딜레인에게 살짝 눈짓을 해보였다.
“아아... 한두번 본 것도 아닌데 괜히 봐봐야 열만 받지. 얼른 들어가요. 점심은 있다 마차로 챙겨 넣어줄테니까.”
“알았다. 들어가자, 파트리샤.”
“예...”
“하긴 몰래 엿보는 게 더 재미있긴 하지. 기대해요, 아빠.”
“삼촌, 저도 봐도 되죠?”
“영주님.”
“시꺼! 식사 끝나면 플로네츠 남작 저택으로 바로 출발한다.”
“쳇! 구두쇠!”
“약았어!”
“시꺼! 파트리샤, 가자!”
“예...”
칸피니스는 파트리샤를 안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동안 마음의 정리가 되었는지 목소리는 작았지만 떨림은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은 힘있는 걸음으로 칸피니스의 걸음에 맞추며 파트리샤는 살인으로 인한 혼란과 두려움을 어느정도 떨쳐낼 수 있었다.
“어? 꼿꼿이 섰잖아?”
“에? 에...”
오히려 칸피니스와 가질 섹스의 쾌락에 들뜨기 시작했다. 젖꼭지가 서면서 금고리가 옷 안에서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타구니도 축축히 젖어왔다. 칸피니스가 예민해진 젖꼭지를 만져오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어디어디...”
“여... 영주님...”
“음... 젖은건가?”
“아흑... 흑... 아앗... 영... 영주... 앗...”
“벗겨보면 알겠지.”
“아앙... 문좀...”
“닫을까?”
“예...”
“그냥 두지 뭐.”
“영주님...”
“아앗...”
“반응이 빠른데?”
“아앙... 아아앙... 앗... 앗... 핫... 학...”
“어이, 딸네미들. 점심 안먹을거냐?”
“여... 영주님...”
“쳇... 문이나 닫든가.”
“맞아, 롯시 언니. 보란 듯이 문 열어놓고서 저 얄밉게 말하는 것 좀 봐.”
“이 더운날 점식식사 준비하는 딸들에게 구경 좀 시켜주면 어때서.”
“맞아맞아. 눈요기라도 해야 일하는 보람 있을 거 아냐.”
“누구네 딸들인지 정말 걱정된다. 꼭 아빠의 좋은 일을 구경해야겠니?”
“응!”
“파트리샤, 그렇다는데?”
“여... 영주님!”
“파트리샤가 괜찮다니까 계속 봐라. 점심만 늦지 말고.”
파트리샤의 빨개진 얼굴은 무시한 채 칸피니스는 자신의 딸들을 보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고 롯시들도 즐겁게 웃으며 파트리샤를 놀리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레인과 루시는 칸피니스가 노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롯시와 딜레인들 대신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정비하고 있었다.
피레샤츠는 언제나와 같은 정겨운 모습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뭔가 빠뜨린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는 허전함의 정체를 금방 깨닫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르디님의 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건가?”
그녀의 말대로 칸피니스의 일행들은 더 이상 와르디의 안전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칸피니스에 대한 믿음이었다. 또한 칸피니스가 보낸 디아스루에나와 릴레이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와르디가 안전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기에 태연히 무시한 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피레샤츠도 마찬가지였다.
“뭐, 디아스루에나님과 릴레이나님이 같이 가셨으니까. 죽지야 않겠지.”
그녀의 마지막 중얼거림은 칸피니스의 생각이었으며 그 일행 전체의 생각이었다. 피레샤츠는 가볍게 생각을 정리한 후 아직도 놀고 있는 롯시와 딜레인들을 대신해서 레인과 루시를 돕기 시작했다. 자신이라도 돕지 않으면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롯시와 딜레인들은 칸피니스와 놀고 있었고, 칸피니스 아래에서는 파트리샤가 알몸이 되어 쾌락의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앙... 아앙... 앗... 앗... 하학... 핫... 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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