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락…팔락…
말없이 책장을 넘긴다. 기껏해야 대학노트정도의 두께를 지닌 정체불명의 책을 부여잡은지 벌써 5시간째.
벌써 아침을 지나 점심이 다가오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배가 고픈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책에 매달려 있었다.
‘악마계약의 서" 라는 이름의 이 책은 예상했던 대로 알 수 없는 문자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5시간이나 지나는 동안, 나는 이 책을 10번 정도 정독할 수 있었고, 거기서 나온 결론은 이 책에 빽빽이 적혀진 전체의 내용은 실은 페이크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특수한 체계로 맞추어진 채로 글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총 페이지 수는 99장.
나는 책의 페이지마다 한 단어씩의 언어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목차로 이루어진 최초의 장과, 서문으로 들어가는 첫 페이지. 그리고 다소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 육망성이 그려진 마법진 그림을 제외하고서 총 96장의 페이지.
나는 이 96페이지의 문장들을 모조리 다 찾아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숨겨진 문장을 조합할 수 있었다.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생소한 언어이지만, 뜻을 해독하자면 이랬다.
[태초의 계약에 따라, 신의 의지는 주인을 찾아간다. 진정한 주인이 깨어나게 되면 그 계약에 의해 주인은 심연으로부터 깨어나, 배반자를 응징하리라.]
상당히 섬뜩하면서도, 그럴듯한 문장. 사실 여기쯤에서 멈췄어야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미 깊이 침전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까지 그리고 말야..."
나는 거실바닥에 매직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육망성을 보며 중얼거렸다.
진부할 정도로 만들어진 육망성의 곳곳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로 새겨져 있었고 그 중앙의 육각형 부분에는 자그마한 원형의 그림과 제단을 형상화 한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가 그린거긴 하지만 엄청 정교하게 잘 그렸군.
다시 그려보라고 하면 아마 못 그릴 거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려낸 거니까.
“그나저나…이제 어쩐다.”
자그마치 5시간이나 투자해서 숨겨진 문장을 해독해내고, 거창하게 마법진까지 그려냈다. 이제 남은 것은 맨 마지막 페이지 아래에 적혀진 글귀에 따라 행하는 것뿐.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나면, 마법진을 앞에 두고 선채로 주문을 암송한 뒤 계약의 표시로 피 한 방울을 제단위로 떨어뜨려라.]
상당히 본격적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열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배고픈 것도 잊을 정도로 이 일에 몰두해있었고 이제 마무리만 앞두고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병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현실과 이상을 혼동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제 정신을 갖춘 사람이라면…사실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부추기는 것처럼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광기와 같은 감정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나는 작업용으로 사둔 작은 커트칼을 들고 마법진 앞에 섰다. 그리고 해독해낸 주문을 그 언어대로 암송해나간다.
“르. 델라. 아르. 세피른. 아르카나. 델. 르피. 에델 레 아프리스크. 뎀 레르 시프 훌라…….”
해석한 내용에 비해 꽤나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주문. 모든 주문을 정확히 암송하는데 30여초의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마지막 언어를 내뱉는다.
“……알루세피나!”
마지막 주문을 외우면서 나는 커트칼을 이용해 왼손바닥을 베어냈다.
“큿.”예리한 칼날이 스쳐지나간 곳으로 일자의 붉은 실선이 새겨지며, 이내 실선으로부터 번져 나온 검붉은 핏물이 그 범위를 넓혀간다.
큭, 생각했던 거 보다 무지 따끔거리네.
나는 상처를 쥐어짜듯이 왼손을 그대로 움켜쥐며 왼손을 제단그림 위로 가져갔다.
뚝, 뚝, 뚝뚝.
손바닥으로부터 비롯된 핏물이 손바닥의 주름을 타고흘러 쥐여진 주먹아래를 통해 땅바닥으로 활공한다.
방울방울지며 떨어져 내린 핏물은 조금씩 제단그림을 적셔가고 있었다. 한 방울…두 방울…마법진 위로 떨어져 내리는 자신의 핏물을 보면서 나는 왠지 흥분하고 있었다.
정석대로라면…이제 우우웅 하는 공명음 같은 게 들리고 마법진 으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거나, 음산한 공기가 번져나온다거나 할 것이었다.
“…….”
침묵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핏물은 제단을 적셔나가고 있다.
“…….”
벌써 제단은 완전히 핏물로 잠기고, 번져나간 핏물은 마법진마저 덮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 어떤 징조마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흐음.”
침중한 신음을 내뱉어본다. 벌써 마법진위로 피를 뿌리기 시작한지 2분 째.
그 어떠한 이야기에도 발동이 이리 오래 걸리는 계약 마법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였어. 끄응…현실적인 판단력으로 유명한 내가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으악, 따가워!”
그래, 미쳤지. 웬 미친놈의 장난에 걸려들어선…아, 나 진짜로 정신과에라도 한번 다녀와야 하나?
“응? 그만두는 거야?”
“그래. 당연하지. 이런 미친 짓을 애초에 한 것부터가 잘못…응?"
누군가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대답을 해나가던 나는 문득 괴리감을 느끼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붉은색 눈동자가 두개.
“왜에? 꽤 재밌는 구경거리였는데. 엄~청 달콤한 냄새가 나기도 했고 말야♡”
비교할 대상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AV라던가, 미연시, 야애니 같은 장르에서 일본이 앞서가는 이유는 그 그림체와 아이디어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귀여운 신음소리가 있기 때문인 점이 컸다.
왜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냐하면…방금 귓속을 파고든 목소리가 듣는 것만으로 긴장이 될 만큼 무척이나 고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날 바라보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묻어날 것처럼 새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기.
보라빛의 단발머리는 그 요염함을 더해주고 있었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붉은색의 눈동자는 바라보는 대상을 빨아들이기라도 할 것처럼 선명히 뜨여져 있으며 묘하게 음란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붉은색의 입술은 그 존재만으로도 나의 자제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고작 10대 중반.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외모.
하지만 묘하게 색기가 넘쳐서 결코 아이로 대할수 없는 소녀에게서 나는 시선을 때어낼 수 없었다.
순간 후훗 하고 소녀가 작은 미소를 흘린다.
가슴을 진탕시키는 매혹의 미소를. 역사에 자주 묘사되는 남자를 빨아들이는 "우물" 이라는 건 아마 저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한동안 홀린 채로 소녀를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소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입은 옷이 또 묘하게 선정적인 형태의 탱크탑과 핫팬츠여서 나는 또 한번 범죄와 탐욕사이에서 갈등해야만 했다.
그렇게 약 5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또다시 귓가를 파고드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봐, 정신 차리라구. 날 처음 본 녀석들의 반응을 모르는건 아니지만…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응? 아, 그, 그렇군….”
“후훗, 정신이 들었으면 이리로 와. 이름이 분명…진 쿠로사키. 맞지?”
“그, 그렇지. 근데 넌 누구…?”
난 그제서야 눈앞의 이 소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물음에 소녀는 싱긋 웃으며 꼬았던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그 장면에 나는 가슴이 진탕되는 것과 동시에 왜 과거에 샤론스톤이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하튼…나는 겨우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테이블에서 의자를 꺼내와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좋아, 이야기할 준비가 된 것 같군. 난 초대 악마왕 엠마뉴엘이라고 한다. 악마계약의 서를 읽어봤다면 아마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엉? 내가 뭘 들은 거지? 악마왕? 소녀의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머릿속으로 파고든 정보에 나는 순간 엄청난 공황상태를 격었지만 이내 진정시키고 명석한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켜본다.
확실히 엠마뉴엘이라는 이름은 악마계약의 서를 읽는 동안 몇 번이고 본 이름이었다.
과거, 중간계를 두고 천계와 마계에서 이권을 다투고 있을 때에, 당시 마계가 가진 힘의 절반수준밖에 지니지 못했던 천계는 중간계를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물론 힘으로 승부하게 된다면야 볼 것도 없이 중간계는 마계의 차지가 되었겠지만, 당시의 마계는 풍족했고…또 중간계라는 공간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천계가 싫어서 방해하고 있을 뿐이지 본격적으로 중간계를 얻어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에 마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 초대의 악마왕이자, 매혹의 악마인 엠마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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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의 작가가 맞습니다.
일본에서 퍼온 것도, 번역한 것도 아니구요.
그리고 조아라에서의 연재는 접었습니다. 그쪽 보다 최근에 생긴 사과박스
http://www.sagabox.com/root/
라는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연재 중이죠. 이쪽이 더 나아서....
네이버에서 사과박스라고 치시면 갈 수 있습니다.
팔락…팔락…
말없이 책장을 넘긴다. 기껏해야 대학노트정도의 두께를 지닌 정체불명의 책을 부여잡은지 벌써 5시간째.
벌써 아침을 지나 점심이 다가오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배가 고픈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책에 매달려 있었다.
‘악마계약의 서" 라는 이름의 이 책은 예상했던 대로 알 수 없는 문자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5시간이나 지나는 동안, 나는 이 책을 10번 정도 정독할 수 있었고, 거기서 나온 결론은 이 책에 빽빽이 적혀진 전체의 내용은 실은 페이크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특수한 체계로 맞추어진 채로 글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총 페이지 수는 99장.
나는 책의 페이지마다 한 단어씩의 언어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목차로 이루어진 최초의 장과, 서문으로 들어가는 첫 페이지. 그리고 다소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 육망성이 그려진 마법진 그림을 제외하고서 총 96장의 페이지.
나는 이 96페이지의 문장들을 모조리 다 찾아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숨겨진 문장을 조합할 수 있었다.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생소한 언어이지만, 뜻을 해독하자면 이랬다.
[태초의 계약에 따라, 신의 의지는 주인을 찾아간다. 진정한 주인이 깨어나게 되면 그 계약에 의해 주인은 심연으로부터 깨어나, 배반자를 응징하리라.]
상당히 섬뜩하면서도, 그럴듯한 문장. 사실 여기쯤에서 멈췄어야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미 깊이 침전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까지 그리고 말야..."
나는 거실바닥에 매직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육망성을 보며 중얼거렸다.
진부할 정도로 만들어진 육망성의 곳곳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로 새겨져 있었고 그 중앙의 육각형 부분에는 자그마한 원형의 그림과 제단을 형상화 한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가 그린거긴 하지만 엄청 정교하게 잘 그렸군.
다시 그려보라고 하면 아마 못 그릴 거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려낸 거니까.
“그나저나…이제 어쩐다.”
자그마치 5시간이나 투자해서 숨겨진 문장을 해독해내고, 거창하게 마법진까지 그려냈다. 이제 남은 것은 맨 마지막 페이지 아래에 적혀진 글귀에 따라 행하는 것뿐.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나면, 마법진을 앞에 두고 선채로 주문을 암송한 뒤 계약의 표시로 피 한 방울을 제단위로 떨어뜨려라.]
상당히 본격적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열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배고픈 것도 잊을 정도로 이 일에 몰두해있었고 이제 마무리만 앞두고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병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현실과 이상을 혼동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제 정신을 갖춘 사람이라면…사실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부추기는 것처럼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광기와 같은 감정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나는 작업용으로 사둔 작은 커트칼을 들고 마법진 앞에 섰다. 그리고 해독해낸 주문을 그 언어대로 암송해나간다.
“르. 델라. 아르. 세피른. 아르카나. 델. 르피. 에델 레 아프리스크. 뎀 레르 시프 훌라…….”
해석한 내용에 비해 꽤나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주문. 모든 주문을 정확히 암송하는데 30여초의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마지막 언어를 내뱉는다.
“……알루세피나!”
마지막 주문을 외우면서 나는 커트칼을 이용해 왼손바닥을 베어냈다.
“큿.”예리한 칼날이 스쳐지나간 곳으로 일자의 붉은 실선이 새겨지며, 이내 실선으로부터 번져 나온 검붉은 핏물이 그 범위를 넓혀간다.
큭, 생각했던 거 보다 무지 따끔거리네.
나는 상처를 쥐어짜듯이 왼손을 그대로 움켜쥐며 왼손을 제단그림 위로 가져갔다.
뚝, 뚝, 뚝뚝.
손바닥으로부터 비롯된 핏물이 손바닥의 주름을 타고흘러 쥐여진 주먹아래를 통해 땅바닥으로 활공한다.
방울방울지며 떨어져 내린 핏물은 조금씩 제단그림을 적셔가고 있었다. 한 방울…두 방울…마법진 위로 떨어져 내리는 자신의 핏물을 보면서 나는 왠지 흥분하고 있었다.
정석대로라면…이제 우우웅 하는 공명음 같은 게 들리고 마법진 으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거나, 음산한 공기가 번져나온다거나 할 것이었다.
“…….”
침묵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핏물은 제단을 적셔나가고 있다.
“…….”
벌써 제단은 완전히 핏물로 잠기고, 번져나간 핏물은 마법진마저 덮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 어떤 징조마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흐음.”
침중한 신음을 내뱉어본다. 벌써 마법진위로 피를 뿌리기 시작한지 2분 째.
그 어떠한 이야기에도 발동이 이리 오래 걸리는 계약 마법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였어. 끄응…현실적인 판단력으로 유명한 내가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으악, 따가워!”
그래, 미쳤지. 웬 미친놈의 장난에 걸려들어선…아, 나 진짜로 정신과에라도 한번 다녀와야 하나?
“응? 그만두는 거야?”
“그래. 당연하지. 이런 미친 짓을 애초에 한 것부터가 잘못…응?"
누군가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대답을 해나가던 나는 문득 괴리감을 느끼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붉은색 눈동자가 두개.
“왜에? 꽤 재밌는 구경거리였는데. 엄~청 달콤한 냄새가 나기도 했고 말야♡”
비교할 대상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AV라던가, 미연시, 야애니 같은 장르에서 일본이 앞서가는 이유는 그 그림체와 아이디어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귀여운 신음소리가 있기 때문인 점이 컸다.
왜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냐하면…방금 귓속을 파고든 목소리가 듣는 것만으로 긴장이 될 만큼 무척이나 고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날 바라보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묻어날 것처럼 새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기.
보라빛의 단발머리는 그 요염함을 더해주고 있었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붉은색의 눈동자는 바라보는 대상을 빨아들이기라도 할 것처럼 선명히 뜨여져 있으며 묘하게 음란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붉은색의 입술은 그 존재만으로도 나의 자제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고작 10대 중반.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외모.
하지만 묘하게 색기가 넘쳐서 결코 아이로 대할수 없는 소녀에게서 나는 시선을 때어낼 수 없었다.
순간 후훗 하고 소녀가 작은 미소를 흘린다.
가슴을 진탕시키는 매혹의 미소를. 역사에 자주 묘사되는 남자를 빨아들이는 "우물" 이라는 건 아마 저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한동안 홀린 채로 소녀를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소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입은 옷이 또 묘하게 선정적인 형태의 탱크탑과 핫팬츠여서 나는 또 한번 범죄와 탐욕사이에서 갈등해야만 했다.
그렇게 약 5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또다시 귓가를 파고드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봐, 정신 차리라구. 날 처음 본 녀석들의 반응을 모르는건 아니지만…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응? 아, 그, 그렇군….”
“후훗, 정신이 들었으면 이리로 와. 이름이 분명…진 쿠로사키. 맞지?”
“그, 그렇지. 근데 넌 누구…?”
난 그제서야 눈앞의 이 소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물음에 소녀는 싱긋 웃으며 꼬았던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그 장면에 나는 가슴이 진탕되는 것과 동시에 왜 과거에 샤론스톤이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하튼…나는 겨우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테이블에서 의자를 꺼내와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좋아, 이야기할 준비가 된 것 같군. 난 초대 악마왕 엠마뉴엘이라고 한다. 악마계약의 서를 읽어봤다면 아마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엉? 내가 뭘 들은 거지? 악마왕? 소녀의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머릿속으로 파고든 정보에 나는 순간 엄청난 공황상태를 격었지만 이내 진정시키고 명석한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켜본다.
확실히 엠마뉴엘이라는 이름은 악마계약의 서를 읽는 동안 몇 번이고 본 이름이었다.
과거, 중간계를 두고 천계와 마계에서 이권을 다투고 있을 때에, 당시 마계가 가진 힘의 절반수준밖에 지니지 못했던 천계는 중간계를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물론 힘으로 승부하게 된다면야 볼 것도 없이 중간계는 마계의 차지가 되었겠지만, 당시의 마계는 풍족했고…또 중간계라는 공간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천계가 싫어서 방해하고 있을 뿐이지 본격적으로 중간계를 얻어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에 마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 초대의 악마왕이자, 매혹의 악마인 엠마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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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의 작가가 맞습니다.
일본에서 퍼온 것도, 번역한 것도 아니구요.
그리고 조아라에서의 연재는 접었습니다. 그쪽 보다 최근에 생긴 사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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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연재 중이죠. 이쪽이 더 나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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