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en of Mar-tul
-prologue- 2
어비스Abyss 570층, 섄딜라브리-Shendilavri.
잿빛 노을이 지는 어두운 하늘이 이곳이 주물질계-Prime Material Plane가 아닌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하늘에 리리투Lilitu라던가 인큐버스Incubus들이 날아다니는게 보였다. 그 아래 지상에는 생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빛깔의 초목이 듬성듬성 자라난, 숲이라기엔 다소 부족해 보이는 굴곡이 심한 지형이 있었다. 그마저도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타나리Tanar"ri들의 시체와 뼛조각들이 이곳은 전혀 안전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구석진 곳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 챌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위화감이 감돌고 있었다. 몇 백 년 전쯤 한참 살아있었을 때에는 아름다웠을 고목나무 아래에 강제적으로 찢겨진 공간의 균열이 조그맣게 발생했다.
‘으지지지지지직!’
“와아아앗!!”
‘콰다당’
공간의 균열속에서 마치 내뱉어지듯 한 인간 남성이 어비스 내로 튕겨졌다. 그가 타고있는 팬텀 스티드Phantom Steed는 마치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변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사라지고 사내는 어리둥절한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검은 빛이 감도는 조약돌을 손에 쥔 채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그는 마현이었다.
“어..?”
이 공간으로 들어오자 마자 그의 몸에 난 솜털 하나하나 까지도 곤두서며 등언저리에 한기를 느꼈다. 마치 그가 있는 이곳 전체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불길한 느낌을 발산하는 듯 보였다.
“으그그그극...”
한차례 몸을 진저리 치며 그 기분나쁜 느낌을 애써 떨쳐내보려고 하지만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현은 자신을 내뱉어버린 균열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봤지만 공간의 찢어짐 같은 말도 안되는 현상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는 듯 사라져 있었다.
“여긴 또 어디야...”
살풍경한 주위환경을 대충 휘휘 둘러보며 반쯤 체념한 어조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정도로 기괴한 공간들을 수없이 왔다갔다 하고있으니 마현은 대체 어디부터 자신이 현실감각을 잊어버렸는지 파악조차 되질 않았다.
‘분명 먼저 가있으라고 했으니... 곧 나타나시겠지... 이 위치에서 그냥 기다리는게 낫겠구나...’
그는 현재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거대한 악마형상이라던가 잿빛공간의 거대한 배라던가.. 한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현실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이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고나 할까... 한 번 마주친 초현실적 상황은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거듭된 상황에서 그럴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알지도 못하는 환경에 내던져지고 파악은 커녕 몸 가누기도 힘들만큼의 짧은 시간에 또다시 다른 환경으로 가게되었다. 게다가 이젠 ‘안내자’마저 사라진 상황.
“하아....”
영화같은 데 보면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캐릭터가 제일 먼저 죽는다. 그다지 흥미로울 것도 없는 음산하고 기분나쁜 주위 환경에 금방 신경을 끄고는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던 현은 이내 자신이 들고있는 물건에 시선이 갔다.
검은 기운이 서린듯한 ‘조약돌’
검은 기운이라기보다 마치 ‘암흑’그 자체로 보였다. 마치 돌 주위에만 밤이 되어가는 듯 어스름한 어둠이 맴돌고 있었고 그 어둠은 때때로 자신이 쥐어진 것이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듯 마현의 손바닥과 심하게는 손목 언저리까지 그 암흑의 영역을 넓혀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어둠의 영역’을 넓혔다면 그는 기겁을 하고 진작에 그것을 집어던져 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확장과 축소를 반복했고 단지 그뿐으로 그것의 주인에게는 현재로썬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
마현은 말 없이 그 돌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더듬어 보았다. 손끝에는 금속 특유의 차갑지만 매끄러운 느낌만 날 뿐 돌이라고 부르기조차 애매한 그것은 마치 기분이 좋은것인양 마현의 손끝을 따라 어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검은..안개라고 해야하나? 어둠..?? 뭐지대체... 으앗!”
깜짝놀라 건드리던 손가락을 떼고 돌을 바라보는 마현은 갑자기 돌을 따라 주위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피처럼 붉은 기운으로 바뀌며 요동치는 것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한 손으로 이미 쥐고 반대편 손가락으로 건드렸으니 마현의 자극때문만은 아니리라.
아무런 근거없는 추측을 하며 그는 손에서 작게 요동치며 검은 돌 주위에 일렁이는 붉은 기운을 주시했다.
“신호..인가?”
그의 말에 따라서 아주 미약하지만 발광음까지 들리는것이 불이 붙지않는것이 이상할 정도로 붉게 타오르는 기운은 검은 돌을 감싸고 돌며 간헐적으로 순간 강하게 빛나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그가 아연실색하며 쳐다보고 있을 때 점차 그 점멸의 간격이 짧아졌고 마치 무언가를 신호로 알려주는 듯한 불길한 느낌에 현의 등골을 따라 서늘한 감촉이 타고 지나갔다.
‘비명소리.. 발소리...!’
멀찍이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굴곡진 언덕 탓에 그것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조금만 더 접근한다면 현의 형체를 확인할 만큼 가까워 질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 많은수의 존재들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아챈 그는 일단 재빨리 근처의 깊이 패인 지형으로 뛰어가 잽싸게 몸을 숨겼다. 몸을 바닥에 붙이고 긴장하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겪은 상황과 이런 불길하고 기분나쁜 곳에서 무방비로 무언가와 마주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잠시 뒤 비명소리 뿐만 아니라 확실히 들릴 만큼 육중한 발소리, 수레가 굴러가는 소리과 그에따른 진동이 지축을 흔들며 점점 커졌다. 무언가가 바닥에 끌리는 듯 한 소리며 꽥꽥대는 기괴한 울음소리에 여자의 찢어지는 듯 한 비명 등 한데섞인 소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마현은 그 소음과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바짝 긴장하며 진동과 소리의 근원을 향해 신경을 집중시키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
이미 괴상스러운 일을 많이 당한 터라 마현 자신은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으리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눈 앞에 또다시 이해불가능한 광경이 펼쳐지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커다랗게 뜬 눈으로 육중한 발소리의 주인들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점차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 그것들은 가까워짐에 따라서 점점 크기가 커져갔고, 인간정도의 크기로 보였을 때 조차도 그의 가까이에는 아직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가 그것들의 눈동자까지도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되자 그때서야 비로소 마현은 그것들이 12피트 이상의 거체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들은 주위의 불길한 풍경과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기괴한 악마적 모습의 괴물이었고 그것들 뒤로 멀찍이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의 수레가 끌려오고 있었다.
수백마리의 괴물들 중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비친것은 무리의 첨단에서 걸어가는 핏빛의 몸뚱아리와 늑대형상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그 목 언저리에는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매달려 사방으로 쉭쉭대며 움직이고 있었기에 현의 눈길은 그것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은색의 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소름끼치는 그 존재의 손아귀에는 기묘한 문자와 자루끝의 루비가 빛을 발하는 피묻은 거대한 도끼가 들려있었다.
그 존재는 일행의 통솔자인듯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 심하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발음’의 언어로 외쳐댔고 그때마다 수레를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던 뒤쪽의 괴물들은 심하게 날뛰다가도 조용해 졌다.
다음으로 이어진 마현의 시선 끝에는 그것들의 뒤를 따르는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감옥이 수레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것이 마치 새장같은 느낌으로 와 닿았다. 내부에는 날개달린 여성의 형상을 한 존재들이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가 갖혀 있었고 그것들은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댔기에 그는 그 지독한 소리에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뼈로 이루어진 새장들’을 호위하는 듯이 걸어가는 나머지 존재들 역시도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제각각의 무기를 여섯 개의 팔로 들고있는 뱀의 하반신을 가진 여성과 고릴라와 멧돼지를 합쳐놓은 듯한 기괴한 모습의 날개달린 괴물들을 필두로 크고작은 악마같은 형상의 존재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수백마리는 됨직한 이형(異形)의 존재들이 마현의 지척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만약에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찌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숨소리 조차 낼 수 없는 긴장감으로 마현이 떨고 있을 때 그의 머리맡에 땅딸막하고 배가 툭 튀어나온 상대적으로 작은 괴물 하나가 발을 멈췄다. 그것은 기분 나쁜듯이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돌아보고 작게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퀘이엑?! 퀴엑 케게켁 켁 켁 켁 쿠쿠쿠”
‘헉.... 사람냄새 같은.. 그런게 나나....????’
어렸을 적 전래동화 등을 읽을 때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의 뇌리에 스쳤다. 도깨비를 피해 숨은 나뭇꾼이라던가 사람잡아먹는 도적 등등 동화속 괴물들은 ‘사람냄새’를 무척이나 잘 맡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놈도 그런 부류인가... 어쩌지..”
‘검은 돌’을 쥐고 있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척의 그 못생긴 괴물이 조금만 다가온다면 자신은 금방 들키리라. 붙잡힌다면 자신은 어찌될까... 숨막히는 공포감이 순간적으로 몰려오며 마현의 다리를 덜덜 떨리게 만드는 듯 했다..
‘퀴익....? 퀴퀙퀙퀙 켁 켁 웩 퀙’
쉬지도 않고 퀙퀙거리며 그것은 주위를 돌아보다 서서히 마현이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앗....‘
최대한 땅에 몸을 바짝 붙인채로 그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괴물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고 다리도 이리저리 괴상한 궤도로 구부러진 것으로 보아 빨리 뛰진 못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은 그냥 전속력으로 뛰쳐나가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진정이 되질 않았고 무릎을 부여잡으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뛰어”
수없이 되뇌이지만 공황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사고회로 탓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길 않는다. 머리맡에서 불과 수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수천마리의 괴물들이 지나고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자신을 눈치챈게 틀림이 없다.
“뛰자. 뛰자. 뛰자.”
수없이 되뇌이며 마현은 나직히 심호흡을 했다.
“흡!”
‘콰쾅!!’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뛰어나가려는 찰나, 멀찍이 마현으로부터 떨어진 뼈로 이루어진 감옥 한켠이 그 조잡함과 적재가능한 인원 이상을 실어서인지 마치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현을 향해 다가오던 못생긴 괴물은 그곳을 반사적으로 돌아보곤 다급히 그쪽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퍼퍽!’
뼈가 부서짐과 동시에 갇혀있는 존재들 몇이 튀어나와 길바닥으로 나뒹굴었고 그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개를 펴고 날아 도망가려 했다.
‘날개달린... 저것도 괴물?’
박쥐의 그것과 같은 비막 형태의 날개에 인간의 형상이 붙어있다. 그것도 여성체.
“크웨웨웩!!”
“끼야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수행하던 고릴라 형상의 존재 몇몇이 그것을 보고 괴성을 질러댔다.
“크으..”
소름끼칠만큼 역겨운 비명과 날아 도망가는 존재들이 질러대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상당히 떨어져있던 마현의 귓가를 무자비하게 찔러대는 듯 했다. 그는 그렇잖아도 지끈거리는 머리가 소리가 커짐에 따라 한층 더 깨질듯이 고통스러웠고 그것을 견디려 인상은 잔뜩 찌푸려졌다. 그가 바라보는 순간 그 뼈 수레에 뚫려버린 공동으로부터 마치 새들이 날아가듯 안에 가득 차 있던‘날개달린 여자’들이 전부다 홰를 치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족히 수백은 되는 듯 하늘의 일부는 새까맣게 날개들로 덮이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다급하게 ‘행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릴라 괴물들은 자신의 등에 돋아나있는 덩치에 안맞게 조그마한 날개를 펼치고 날아 도망가려는 가냘픈 존재들을 쫓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4,5m는 될 듯한 육중한 덩치가 그에 맞지 않는 작은 날개만으로도 놀라우리만치 재빠르게 도망자들의 뒤를 추격해갔다. 마치 날개는 장식인 양 퍼덕이고 몸은 수퍼맨인 듯 자유자재로 나는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퍽!!’
‘퍼퍽!’
“키야악!!”
“꺄악!... 아악!”
그들의 육중한 주먹이 날아 도망가는 파리떼를 잡듯이 날개달린 여성을 피떡으로 만들어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도망자들을 다시 잡아 새장같은 곳에 집어넣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마치 즐기는 듯한 모양으로 하나하나 쫓아가서 처참하게 도륙해버리는 것이 그들이 하는 전부였다.
도망치는 존재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무리의 맨 앞에서 나아가던 통솔자인 듯한 늑대머리 괴물 역시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잡아가는 수가 많아서 인지.... 뼈 새장의 일부가 부서져 그것들이 도망치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그 괴물은 별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길을 재촉 할 뿐이었다.
‘도망자’중 운좋게도 가장 먼저 날아오른 존재 하나가 그들의 손아귀를 피해 날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한 괴물 한 마리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마현의 시야에서 그 육중한 몸체가 흐릿하게 사라진다 싶더니 멀리 날아가는 여성의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나 주먹으로 그 머리를 쳐 날려버렸다.
‘퍼어억!’
‘으헉...’
주인을 잃은 몸뚱아리는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우연히도 행렬을 이루고 굴러가는 뼈 새장의 위에 걸쳐져 뇌수와 핏물을 쏟아내는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릴 따름이었다.
마현이 그렇게 공중을 바라 볼 때 마치 그렇게 되기를 예감이라도 한 듯이 몇몇의 날개달린 여성들은 지면을 박차고 낮게 뛰듯이 날아 도망치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악!”
그러나 그들 역시 ‘뱀 형상의 여성’이 가로막고는 기괴한 신음소릴 내지르며 여섯팔의 무기들을 제멋대로 휘둘러대며 그런 그녀들에게 달려든다.
“카아아악!”
“키아악!”
찢어지는 듯 한 비명소리와 진짜로 갈래갈래 찢겨나가는 여성체들. 뱀 괴물의 무기로 토막토막 썰려 버렸고,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화한 그것들 역시도 다시금 뼈 새장에 집어 던져지고 말았다.
“히이익!”
“히익!”
그리고 그 사이 순식간에 현의 눈앞까지 다가온 여자하나.
둘은 동시에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놀랐다.
“우와... ”
현과 마주친 그녀의 눈은 절망감에 젖어있고 잔뜩 찡그린 얼굴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소모된 체력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인간과 다르게 다소 이질감 느껴지는 얼굴과 피처럼 붉은 머리칼, 커다란 유방과 잘록한 허리, 다리사이의 역시 붉은색을 띤 채모마저 현의 눈앞에 똑똑히 보이자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뜨리며 몸매를 정신없이 감상했다.
‘콰칵!’
“커억!”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 외마디 신음소리를 끝으로 매력적이고 커다란 양 유방사이로 칼날이 삐죽이 튀어나오고 그 몸뚱아리는 힘을 잃은채 현의 발앞에 쓰러져 굴렀다.
“으힉!”
“쿠억...”
기겁을 하며 뒷걸음치는 현의 눈앞에 쓰러진 존재는 등 뒤부터 길다란 칼이 깊숙이 박혀있고 입으로는 새빨간 선혈을 몇 울컥 토해냈다. 서서히 그를 바라보는 두 눈은 흰자위를 드러내며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몸은 간헐적으로 부들부들 떨더니 바닥을 피로 물들이며 곧 잠잠해졌다.
그대로 몸이 굳어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된 현은 그저 입을 벙끗거리며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버린 존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하악... 학”
그러나 다시 지척에 들리는 가쁜 숨소리. 반사적으로 몸을 슬쩍 일으켜 전방을 주시하자, 마치 인간 여성인양 울상을 짓고 있는 표정에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팔 다리를 네발짐승처럼 놀리며 정신없이 날개를 퍼덕이는 또다른 ‘그것’이 순식간에 그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자신이 이 일방적 살육전의 한켠에 발을 걸쳐놓았음을 서서히 실감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도 죽게되는건가..”
멀찍이서 얼마 도망가지 못 한 또다른 ‘도망자’들이 처참하게 피를 흩뿌리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며 숨이 가빠졌다. 몸은 뇌의 명령을 듣지 못하고 눈에 보일정도로 부들부들 떨린다. 반면 머리는 차갑게 식어감을 느낀다.. 조금전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몸뚱이가 토막나는, 예쁜 가슴에 칼이 박혀드는 광경이 눈앞의 여자에게도 서서히 오버랩되어간다. 검은 조약돌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떨림을 멈추려고 해보지만 마음먹은대로 진정이 되지 않는다.
기괴한 뱀의 형상을 한 괴물이 도망치는 여자의 끝까지 따라붙어 다섯 개의 팔로 각종 무기를 휘두르며 도망치는 여자를 추격했다. 한 팔에만 무기를 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현의 옆 시체에 꽂혀있는 무기의 주인임이 틀림없었다.
“크아!”
“끼아아악!!”
그중 창끝이 도망치던 여성의 날개를 스쳤고 피가 튀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낮게 뛰듯이 도망치던 그녀는 축 쳐진 날개를 질질 끌며 더욱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극한의 긴장속에 마현은 몸을 더욱 낮추고 자신쪽으로 달려오는 여자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섣부르게 움직일 순 없었기에 조심스럼게 몸을 움직여선 검은 돌은 주머니에 넣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에 박혀있는 긴 칼을 잡아 뽑았다.
‘쑤욱’
“으욱...”
약간의 저항과 함께 몸뚱아리에 박혀있는 칼을 뽑는 그 생생한 느낌. 칼날을 통해 부드러운 여체의 감촉이 섬뜩하리만치 잘 느껴지자 꼬리뼈부터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는 듯했다. 4피트쯤 되는 길이에 인간을 위해 제작된 무기가 아닌듯 무언가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었지만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길다란 날붙이를 손에 쥐게 된 현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다만 손에 쥔 식은땀에 칼 손잡이의 감촉은 꽤나 불쾌할 뿐이었다.
다행히 고릴라 괴물들은 아까처럼 순간적으로 이곳까지 도약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이대로는 들키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도망자와 추적자는 점점 현이 숨어있는 움푹 패여있는 분지형의 지형까지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우...”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파른 경사면의 지면에 몸을 비스듬히 뉘이고는 칼을 굳게 부여잡고 가슴쪽에 바짝 끌어당겨 똑바로 곧추세웠다. 칼날에서 흐르는 시뻘건 선혈에서 비릿한 피내음이 났다. 이상하게도 미친듯 뛰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 했고 격렬히 떨리던 몸이 서서히 진정해가는 듯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긴장이 극에 달해서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은 피묻은 칼날을 단 몇 초의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흘러가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한 번이다.. 단 한 번....’
스스로도 왜인지 몰랐다. 패닉상태에 빠질법도 하고 아직 자신에게 주의가 쏠리진 않았으니 포복으로 기어서라도 도망친다면 운이 좋을 경우 눈치재지 못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은 머리가 차갑게 식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눈앞의 무기를 이용해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저 나지막히 몇 번이고 되뇌이며 중심을 바로 하고 칼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를 겨누고는 다가오는 소리와 칼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하악...하악...... ... 꺅!”
날개달링 여성형의 존재는 마현이 몸을 낮추고 있는 곳 까지 도달해 뛰었지만 그곳이 갑자기 움품 패인 지형이라는 것은 알 길이 없었는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발은 그 앞의 허공을 헛디뎠고 피를 흩뿌리는 날개의 주인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그의 눈앞에서 격하게 넘어지며 뒹굴어 버렸다.
‘우당탕!’
“흐윽.....”
넘어지는 순간 희망의 끝에 다다른 것을 아는 듯, 여성은 눈물과 먼지가 뒤섞인 절망적인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은 크게 떠지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칼을 곧추 세우고 몸을 낮추고 있는 주물질계-Prime Material Plane인간으로 보이는 존재가 경사면에 웅크린채로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
“.....!?”
극히 짧은 순간에 마현 역시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조각한 듯한 특출난 외모에 붉은색의 긴 머리, 당황스러운 표정에서조차 요사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이는 금안(金眼). 지척에서 다시 바라보자 이 존재 역시도 무언가 불길한 악마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쁘다....’
하지만 마치 요부같은 느낌이 풍겨지는 외모에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뇌리엔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듯.. 순간적으로 한가지 감상만이 떠올랐다
“키히히히히!!”
찰나의 쓸데없는 감상은 사라지고 바로 이어서 뱀이 지면을 휩쓸며 기어오는 기분나쁜 소리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현의 귓가에 들렸다.
‘이익!’
시커먼 그림자가 그의 머리위를 덮으며 나아가려 할 때 그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가 다급히 일어섰다.
“콰곽!‘
고함소리도, 과격한 몸놀림도 없었다. 야트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는 그저 강하고 힘있게 일어서며 뒤 따라오는 뱀 여성의 목줄기를 롱소드로 꿰뚫어버렸다.
“히히이... 커컥!”
괴물은 그저 눈앞의 목표물을 도륙해버리기 위해 짓던 환희의 표정 그대로 목과 입에서 폭포처럼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괴물은 자신이 잡고자 했던 존재 앞쪽으로 널부러져 버렸다.
“쿵!”
괴물이 쓰러지고 약한 경련과 함께 죽어가는 모양을 보자 그때서야 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잠깐의 시간은 몇 년과 같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또다시 그가 느끼는 시간은 미친듯이 빨리 흘러가는 듯 했다. 재빨리 칼을 거두고는 쓰러진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망연자실해 하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으나 그에 관계없이 마현은 거칠게 그 존재의 손목을 낚아챘다.
“빨리!”
언덕이 가로막고 있어 이곳을 봤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고릴라 형상을 한 그 악마같은 녀석이 언제 순식간에 튀어나올 지 알 수 없기에 그는 그녀를 끌어당기며 낮게 외쳤다.
“아....”
둘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는 ‘행렬’에서 멀어지기 위해 미친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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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븐 스파인-Elven Spine이라 불리우는 엘프들의 거대숲 마이제르-Maizzerue(마이제르 또는 마이즈-제루에 로 불린다). 끝자락에 위치한 엘프도시 에라나-루셀레-Erana Rousselet.
보통 숲에서 생활하는 실반-Silvan,와일드-Wild,우드-Wood엘프는 조심스럽게 나무를 자라도록 만들어 나무집을 만들고,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통해 좁은 통로를 만들어낸다. 자유로운 야생의 엘프들은 그들의 숲을 은밀함과 나무위에서 쏘아날리는 화살로 지켜왔고 이들은 외부인이 엘프 마을 깊숙하게 들어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숲과 잘 조화된 거주지를 꾸미고 산다. 사촌인 엘라드린Eladrin들이 아케인 스펠ArcaneSpell을 더 선호하는 반면 이들은 자연적인 세계의 근원적인 힘을 더 선호함에 있어서도 자연과의 조화라는 특징은 무척이나 잘 드러난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과거 몇 백년 전부터 에라나-루셀레가 존재하기 전, 홉고블린Hobgoblin 카이낙 클랜-ClanKainark 이 수많은 엘프마을을 습격하고 유린했으며 엘프들은 점차 똘똘 뭉쳐 대항해서 드디어 엘븐스파인 동쪽 끝에도 도시급의 엘프 거주지 에라나-루셀레가 건설되기에 이른다. 홉고블린은 200년 전 엘프영웅 드레스파나-Drecephana에 의해 격퇴되었지만 여전히 그 잔당들은 호시탐탐 엘븐스파인을 노리고 있고 그 덕에 에라나-루셀레의 엘프들은 홉고블린에 대해 지독하리만치 증오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도시 중앙에 위치한 엘프신 에베오-Eveo(혹은 이브오,에브오)의 신전 에브라세아.
외곽 경비병의 하나인 엘븐 스카우트-Elven Scout의 전형적 장비인 레더아머Leather에 숏소드로 무장한 여성하나가 신전 주위 한 켠에 서서 초조한 얼굴을 한 채 에브라세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엘레시니페닌 세아루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들 짧게 ‘엘’로 불리는 그녀는 엘븐스카우트가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신전 입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발에 파란눈, 오똑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슴탓에 흡사 페이세드레드-feycedred여왕 알리에나와 견줄 정도라는 찬사를 듣는 그녀는 모처럼만의 신전 방문에 여기저기서의 시선을 느끼고는 서서히 짜증이 한계에 달해있었다.
그 때 흔히들 마르-티르-Mar-Tir라고 불리우는 에베오 신전의 정문, 그곳을 통해 엘븐체인-ElvenChain과 레이피어-Rapier로 무장한 한 무리의 인영이 들어서고 있었다. 전투용은 아닌지 레이피어는 화려한 문양과 보석으로 장식되어있었고 엘븐체인 역시도 각종 문양과 불필요한 보석장식등으로 햇빛을 반사해 화려하게 빛났다.
무리의 가운데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듯한 남성의 복장은 그렇게 그녀와는 다른 의미로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전입구에서 자신 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그의 얼굴이 식별 가능할 정도로 어렴풋이 보이자 엘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더욱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젠장..”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신전 내부로 통하는 입구에 도착하자 턱을 살짝들어 그녀를 내려다보며 멈춰섰다. 갈색머리에 얄팍한 입술, 살짝 찢어닌 눈매에서 우러나오는 오만한 인상이 살짝 웃음을 머금고 있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거부감을 본능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외모였다. 그가 몇걸음 더 다가오자 엘은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듯 찌푸린 표정을 풀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페라하닌 님. 답례와 감사의 의식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요.”
페라하닌이라 불리운 남자는 자신의 뾰족한 귀를 슬쩍 다듬으며 거만하게 대답했다.
“이봐 엘, 그냥 멜코즈넬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라니까 왜 그러나? 자네하고 나 사이잖아? 응? 안그래?”
그 옆에서 엘프들 특유의 예복을 깔끔히 차려입은 반달형 눈매에 선량한 인상의 ‘인간’남자가 거들었다.
“엘, 오랜만이야. 커다란 가슴은 여전한데? 하핫.”
웃음을 지으며 멜코즈넬은 자신의 수하가 말하는 양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명망있는 페라하닌 가문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을텐데 그렇게 딱딱하게 대답하지 말라구~”
“..... 할코, 네가 끼어들 자린 아닌거 같은데.”
엘은 멜코즈넬의 말은 무시한 채로 할코의 말에 대답했다. 할코라고 불리운 옛 경비병 동료였던 남자는 이제 완벽하게 멜코즈넬의 개가 된 모양이라고 엘은 생각했다. 멜코즈넬의 수하로 들어가며 여러 이득을 챙겼다는 소문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신전의 공유재산이나 재물에도 손을 뻗친 듯한 루머도 꽤나 나돌았고 그는 최근 마치 귀족이 된 듯한 차림새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탓에 엘은 에라나-루셀레의 원주민 엘프를 제외한 종종 보이는 하프엘프나 인간을 무척이나 혐오하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숏소드를 꺼내들어 눈앞의 남자들 목줄기를 끊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뒤에 시립해 있는 무리들에는 하프엘프나 인간으로 보이는 이들도 더 끼어있었고 그들의 화려한 복장과는 달리 말투와 행동은 추잡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단자들 같으니...’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신전 내부로 통하는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며 한 엘프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징없는 평범한 외모에 잎사귀 문양의 초록색 관을 쓰고 갈색바탕에 나뭇가지 문양이 수놓아진 로브를 걸친 에베오의 프리스트였다. 사람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한발 한발 나아가서는 엘과 페라하닌의 곁을 지나 신전 한 가운데 작은 단상에 서서 중앙광장에 대고 알렸다.
“방금 신탁의 의식이 끝났습니다. 에베오께서 평상시와 같은 축복을 모두에게 내리셨습니다.”
역시 클레릭을 바라보고 있던 멜코즈넬은 가볍게 손을 모으고는 웃으며 중얼 거렸다.
“역시나 자애로우신 에베오께서 이곳을 여전히 사랑해주시는구나. 하하”
엘프답지않은, 언젠가 인간들의 도시에 갔을때 느꼈던 인간들의 경망한 말투를 멜코즈넨에게 느낀 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동시에 프리스트의 발언에 위화감을 느꼈다.
‘평상시와 같은...?’
“답례와 감사의 의식은 여왕님의 준비가 끝나는데로 거행하겠습니다.”
엘은 그의 말을 듣고는 슬쩍 고개를 갸웃했다. 흔히 에베오에 대한 예찬부터 시작해 장황한 연설 후 의식 결과에 관해 말하는게 일반적인데 지나치게 간략하다. 다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지만...
엘은 눈앞의 남성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신탁이 나왔으니 전 이만 가봐야겠군요. 그럼.”
멜코즈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재빨리 뒤돌아 정문을 향해 가는 엘에게 할코가 말했지만 그녀는 못들은 척 하고 걸음을 재촉 할 뿐이었다.
“어이 엘~ 여왕의 죽이는 자태도 구경 안하고 그냥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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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오의 신전 내부. 브릴레니아라 불리우는 나뭇가지와 잎사귀의 홀.
에베오의 프리스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조용히 말했다.
“파타니라세님 고생하셨습니다.”
홀 한가운데에 한 여성이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있다.
밝은 갈색의 윤기있는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었고 의식을 위한 비단같은 재질의 하얀 예복 역시도 젖어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어있는 여성.
마치 거친 운동이라도 한 듯 거친 숨을 가쁘게 내쉬는 그녀의 커다란 가슴 역시도 젖어들어 모양좋은 풍만함을 그대로 과시하며 그대로 호흡에 맞춰 심한 기복을 보여준다. 거기에 잘록한 허리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커다란 엉덩이가 옷이 달라붙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얇은 홑겹의 의식복인듯 그녀의 살결이 어렴풋이 비춰 보였기에 남성 프리스트나 관계자들의 눈에는 경건함이나 신탁의 궁금함 대신 욕망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요염한 자태였다.
의식을 혼자 주관해 끝마친 그녀 파타니라세-코루-멜 에임드는 엘프도시 에라나-루셀레의 여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가볍게 이마를 짚으며 방금전 프리스트에게 했던 말이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에베오의 초즌-Chosen..? 아닌가? 아바타-Avatar인가?... 마르툴 신은 대체...”
몸을 추스르고 다음 의식을 거행할 정신도 없이 그녀는 혼란스러운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찾지못하고 눈앞이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prologue- 2
어비스Abyss 570층, 섄딜라브리-Shendilavri.
잿빛 노을이 지는 어두운 하늘이 이곳이 주물질계-Prime Material Plane가 아닌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하늘에 리리투Lilitu라던가 인큐버스Incubus들이 날아다니는게 보였다. 그 아래 지상에는 생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빛깔의 초목이 듬성듬성 자라난, 숲이라기엔 다소 부족해 보이는 굴곡이 심한 지형이 있었다. 그마저도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타나리Tanar"ri들의 시체와 뼛조각들이 이곳은 전혀 안전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구석진 곳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 챌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위화감이 감돌고 있었다. 몇 백 년 전쯤 한참 살아있었을 때에는 아름다웠을 고목나무 아래에 강제적으로 찢겨진 공간의 균열이 조그맣게 발생했다.
‘으지지지지지직!’
“와아아앗!!”
‘콰다당’
공간의 균열속에서 마치 내뱉어지듯 한 인간 남성이 어비스 내로 튕겨졌다. 그가 타고있는 팬텀 스티드Phantom Steed는 마치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변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사라지고 사내는 어리둥절한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검은 빛이 감도는 조약돌을 손에 쥔 채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그는 마현이었다.
“어..?”
이 공간으로 들어오자 마자 그의 몸에 난 솜털 하나하나 까지도 곤두서며 등언저리에 한기를 느꼈다. 마치 그가 있는 이곳 전체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불길한 느낌을 발산하는 듯 보였다.
“으그그그극...”
한차례 몸을 진저리 치며 그 기분나쁜 느낌을 애써 떨쳐내보려고 하지만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현은 자신을 내뱉어버린 균열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봤지만 공간의 찢어짐 같은 말도 안되는 현상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는 듯 사라져 있었다.
“여긴 또 어디야...”
살풍경한 주위환경을 대충 휘휘 둘러보며 반쯤 체념한 어조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정도로 기괴한 공간들을 수없이 왔다갔다 하고있으니 마현은 대체 어디부터 자신이 현실감각을 잊어버렸는지 파악조차 되질 않았다.
‘분명 먼저 가있으라고 했으니... 곧 나타나시겠지... 이 위치에서 그냥 기다리는게 낫겠구나...’
그는 현재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거대한 악마형상이라던가 잿빛공간의 거대한 배라던가.. 한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현실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이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고나 할까... 한 번 마주친 초현실적 상황은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거듭된 상황에서 그럴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알지도 못하는 환경에 내던져지고 파악은 커녕 몸 가누기도 힘들만큼의 짧은 시간에 또다시 다른 환경으로 가게되었다. 게다가 이젠 ‘안내자’마저 사라진 상황.
“하아....”
영화같은 데 보면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캐릭터가 제일 먼저 죽는다. 그다지 흥미로울 것도 없는 음산하고 기분나쁜 주위 환경에 금방 신경을 끄고는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던 현은 이내 자신이 들고있는 물건에 시선이 갔다.
검은 기운이 서린듯한 ‘조약돌’
검은 기운이라기보다 마치 ‘암흑’그 자체로 보였다. 마치 돌 주위에만 밤이 되어가는 듯 어스름한 어둠이 맴돌고 있었고 그 어둠은 때때로 자신이 쥐어진 것이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듯 마현의 손바닥과 심하게는 손목 언저리까지 그 암흑의 영역을 넓혀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어둠의 영역’을 넓혔다면 그는 기겁을 하고 진작에 그것을 집어던져 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확장과 축소를 반복했고 단지 그뿐으로 그것의 주인에게는 현재로썬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
마현은 말 없이 그 돌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더듬어 보았다. 손끝에는 금속 특유의 차갑지만 매끄러운 느낌만 날 뿐 돌이라고 부르기조차 애매한 그것은 마치 기분이 좋은것인양 마현의 손끝을 따라 어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검은..안개라고 해야하나? 어둠..?? 뭐지대체... 으앗!”
깜짝놀라 건드리던 손가락을 떼고 돌을 바라보는 마현은 갑자기 돌을 따라 주위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피처럼 붉은 기운으로 바뀌며 요동치는 것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한 손으로 이미 쥐고 반대편 손가락으로 건드렸으니 마현의 자극때문만은 아니리라.
아무런 근거없는 추측을 하며 그는 손에서 작게 요동치며 검은 돌 주위에 일렁이는 붉은 기운을 주시했다.
“신호..인가?”
그의 말에 따라서 아주 미약하지만 발광음까지 들리는것이 불이 붙지않는것이 이상할 정도로 붉게 타오르는 기운은 검은 돌을 감싸고 돌며 간헐적으로 순간 강하게 빛나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그가 아연실색하며 쳐다보고 있을 때 점차 그 점멸의 간격이 짧아졌고 마치 무언가를 신호로 알려주는 듯한 불길한 느낌에 현의 등골을 따라 서늘한 감촉이 타고 지나갔다.
‘비명소리.. 발소리...!’
멀찍이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굴곡진 언덕 탓에 그것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조금만 더 접근한다면 현의 형체를 확인할 만큼 가까워 질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 많은수의 존재들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아챈 그는 일단 재빨리 근처의 깊이 패인 지형으로 뛰어가 잽싸게 몸을 숨겼다. 몸을 바닥에 붙이고 긴장하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겪은 상황과 이런 불길하고 기분나쁜 곳에서 무방비로 무언가와 마주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잠시 뒤 비명소리 뿐만 아니라 확실히 들릴 만큼 육중한 발소리, 수레가 굴러가는 소리과 그에따른 진동이 지축을 흔들며 점점 커졌다. 무언가가 바닥에 끌리는 듯 한 소리며 꽥꽥대는 기괴한 울음소리에 여자의 찢어지는 듯 한 비명 등 한데섞인 소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마현은 그 소음과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바짝 긴장하며 진동과 소리의 근원을 향해 신경을 집중시키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
이미 괴상스러운 일을 많이 당한 터라 마현 자신은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으리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눈 앞에 또다시 이해불가능한 광경이 펼쳐지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커다랗게 뜬 눈으로 육중한 발소리의 주인들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점차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 그것들은 가까워짐에 따라서 점점 크기가 커져갔고, 인간정도의 크기로 보였을 때 조차도 그의 가까이에는 아직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가 그것들의 눈동자까지도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되자 그때서야 비로소 마현은 그것들이 12피트 이상의 거체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들은 주위의 불길한 풍경과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기괴한 악마적 모습의 괴물이었고 그것들 뒤로 멀찍이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의 수레가 끌려오고 있었다.
수백마리의 괴물들 중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비친것은 무리의 첨단에서 걸어가는 핏빛의 몸뚱아리와 늑대형상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그 목 언저리에는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매달려 사방으로 쉭쉭대며 움직이고 있었기에 현의 눈길은 그것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은색의 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소름끼치는 그 존재의 손아귀에는 기묘한 문자와 자루끝의 루비가 빛을 발하는 피묻은 거대한 도끼가 들려있었다.
그 존재는 일행의 통솔자인듯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 심하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발음’의 언어로 외쳐댔고 그때마다 수레를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던 뒤쪽의 괴물들은 심하게 날뛰다가도 조용해 졌다.
다음으로 이어진 마현의 시선 끝에는 그것들의 뒤를 따르는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감옥이 수레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것이 마치 새장같은 느낌으로 와 닿았다. 내부에는 날개달린 여성의 형상을 한 존재들이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가 갖혀 있었고 그것들은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댔기에 그는 그 지독한 소리에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뼈로 이루어진 새장들’을 호위하는 듯이 걸어가는 나머지 존재들 역시도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제각각의 무기를 여섯 개의 팔로 들고있는 뱀의 하반신을 가진 여성과 고릴라와 멧돼지를 합쳐놓은 듯한 기괴한 모습의 날개달린 괴물들을 필두로 크고작은 악마같은 형상의 존재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수백마리는 됨직한 이형(異形)의 존재들이 마현의 지척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만약에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찌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숨소리 조차 낼 수 없는 긴장감으로 마현이 떨고 있을 때 그의 머리맡에 땅딸막하고 배가 툭 튀어나온 상대적으로 작은 괴물 하나가 발을 멈췄다. 그것은 기분 나쁜듯이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돌아보고 작게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퀘이엑?! 퀴엑 케게켁 켁 켁 켁 쿠쿠쿠”
‘헉.... 사람냄새 같은.. 그런게 나나....????’
어렸을 적 전래동화 등을 읽을 때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의 뇌리에 스쳤다. 도깨비를 피해 숨은 나뭇꾼이라던가 사람잡아먹는 도적 등등 동화속 괴물들은 ‘사람냄새’를 무척이나 잘 맡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놈도 그런 부류인가... 어쩌지..”
‘검은 돌’을 쥐고 있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척의 그 못생긴 괴물이 조금만 다가온다면 자신은 금방 들키리라. 붙잡힌다면 자신은 어찌될까... 숨막히는 공포감이 순간적으로 몰려오며 마현의 다리를 덜덜 떨리게 만드는 듯 했다..
‘퀴익....? 퀴퀙퀙퀙 켁 켁 웩 퀙’
쉬지도 않고 퀙퀙거리며 그것은 주위를 돌아보다 서서히 마현이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앗....‘
최대한 땅에 몸을 바짝 붙인채로 그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괴물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고 다리도 이리저리 괴상한 궤도로 구부러진 것으로 보아 빨리 뛰진 못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은 그냥 전속력으로 뛰쳐나가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진정이 되질 않았고 무릎을 부여잡으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뛰어”
수없이 되뇌이지만 공황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사고회로 탓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길 않는다. 머리맡에서 불과 수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수천마리의 괴물들이 지나고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자신을 눈치챈게 틀림이 없다.
“뛰자. 뛰자. 뛰자.”
수없이 되뇌이며 마현은 나직히 심호흡을 했다.
“흡!”
‘콰쾅!!’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뛰어나가려는 찰나, 멀찍이 마현으로부터 떨어진 뼈로 이루어진 감옥 한켠이 그 조잡함과 적재가능한 인원 이상을 실어서인지 마치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현을 향해 다가오던 못생긴 괴물은 그곳을 반사적으로 돌아보곤 다급히 그쪽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퍼퍽!’
뼈가 부서짐과 동시에 갇혀있는 존재들 몇이 튀어나와 길바닥으로 나뒹굴었고 그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개를 펴고 날아 도망가려 했다.
‘날개달린... 저것도 괴물?’
박쥐의 그것과 같은 비막 형태의 날개에 인간의 형상이 붙어있다. 그것도 여성체.
“크웨웨웩!!”
“끼야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수행하던 고릴라 형상의 존재 몇몇이 그것을 보고 괴성을 질러댔다.
“크으..”
소름끼칠만큼 역겨운 비명과 날아 도망가는 존재들이 질러대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상당히 떨어져있던 마현의 귓가를 무자비하게 찔러대는 듯 했다. 그는 그렇잖아도 지끈거리는 머리가 소리가 커짐에 따라 한층 더 깨질듯이 고통스러웠고 그것을 견디려 인상은 잔뜩 찌푸려졌다. 그가 바라보는 순간 그 뼈 수레에 뚫려버린 공동으로부터 마치 새들이 날아가듯 안에 가득 차 있던‘날개달린 여자’들이 전부다 홰를 치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족히 수백은 되는 듯 하늘의 일부는 새까맣게 날개들로 덮이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다급하게 ‘행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릴라 괴물들은 자신의 등에 돋아나있는 덩치에 안맞게 조그마한 날개를 펼치고 날아 도망가려는 가냘픈 존재들을 쫓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4,5m는 될 듯한 육중한 덩치가 그에 맞지 않는 작은 날개만으로도 놀라우리만치 재빠르게 도망자들의 뒤를 추격해갔다. 마치 날개는 장식인 양 퍼덕이고 몸은 수퍼맨인 듯 자유자재로 나는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퍽!!’
‘퍼퍽!’
“키야악!!”
“꺄악!... 아악!”
그들의 육중한 주먹이 날아 도망가는 파리떼를 잡듯이 날개달린 여성을 피떡으로 만들어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도망자들을 다시 잡아 새장같은 곳에 집어넣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마치 즐기는 듯한 모양으로 하나하나 쫓아가서 처참하게 도륙해버리는 것이 그들이 하는 전부였다.
도망치는 존재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무리의 맨 앞에서 나아가던 통솔자인 듯한 늑대머리 괴물 역시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잡아가는 수가 많아서 인지.... 뼈 새장의 일부가 부서져 그것들이 도망치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그 괴물은 별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길을 재촉 할 뿐이었다.
‘도망자’중 운좋게도 가장 먼저 날아오른 존재 하나가 그들의 손아귀를 피해 날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한 괴물 한 마리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마현의 시야에서 그 육중한 몸체가 흐릿하게 사라진다 싶더니 멀리 날아가는 여성의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나 주먹으로 그 머리를 쳐 날려버렸다.
‘퍼어억!’
‘으헉...’
주인을 잃은 몸뚱아리는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우연히도 행렬을 이루고 굴러가는 뼈 새장의 위에 걸쳐져 뇌수와 핏물을 쏟아내는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릴 따름이었다.
마현이 그렇게 공중을 바라 볼 때 마치 그렇게 되기를 예감이라도 한 듯이 몇몇의 날개달린 여성들은 지면을 박차고 낮게 뛰듯이 날아 도망치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악!”
그러나 그들 역시 ‘뱀 형상의 여성’이 가로막고는 기괴한 신음소릴 내지르며 여섯팔의 무기들을 제멋대로 휘둘러대며 그런 그녀들에게 달려든다.
“카아아악!”
“키아악!”
찢어지는 듯 한 비명소리와 진짜로 갈래갈래 찢겨나가는 여성체들. 뱀 괴물의 무기로 토막토막 썰려 버렸고,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화한 그것들 역시도 다시금 뼈 새장에 집어 던져지고 말았다.
“히이익!”
“히익!”
그리고 그 사이 순식간에 현의 눈앞까지 다가온 여자하나.
둘은 동시에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놀랐다.
“우와... ”
현과 마주친 그녀의 눈은 절망감에 젖어있고 잔뜩 찡그린 얼굴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소모된 체력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인간과 다르게 다소 이질감 느껴지는 얼굴과 피처럼 붉은 머리칼, 커다란 유방과 잘록한 허리, 다리사이의 역시 붉은색을 띤 채모마저 현의 눈앞에 똑똑히 보이자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뜨리며 몸매를 정신없이 감상했다.
‘콰칵!’
“커억!”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 외마디 신음소리를 끝으로 매력적이고 커다란 양 유방사이로 칼날이 삐죽이 튀어나오고 그 몸뚱아리는 힘을 잃은채 현의 발앞에 쓰러져 굴렀다.
“으힉!”
“쿠억...”
기겁을 하며 뒷걸음치는 현의 눈앞에 쓰러진 존재는 등 뒤부터 길다란 칼이 깊숙이 박혀있고 입으로는 새빨간 선혈을 몇 울컥 토해냈다. 서서히 그를 바라보는 두 눈은 흰자위를 드러내며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몸은 간헐적으로 부들부들 떨더니 바닥을 피로 물들이며 곧 잠잠해졌다.
그대로 몸이 굳어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된 현은 그저 입을 벙끗거리며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버린 존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하악... 학”
그러나 다시 지척에 들리는 가쁜 숨소리. 반사적으로 몸을 슬쩍 일으켜 전방을 주시하자, 마치 인간 여성인양 울상을 짓고 있는 표정에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팔 다리를 네발짐승처럼 놀리며 정신없이 날개를 퍼덕이는 또다른 ‘그것’이 순식간에 그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자신이 이 일방적 살육전의 한켠에 발을 걸쳐놓았음을 서서히 실감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도 죽게되는건가..”
멀찍이서 얼마 도망가지 못 한 또다른 ‘도망자’들이 처참하게 피를 흩뿌리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며 숨이 가빠졌다. 몸은 뇌의 명령을 듣지 못하고 눈에 보일정도로 부들부들 떨린다. 반면 머리는 차갑게 식어감을 느낀다.. 조금전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몸뚱이가 토막나는, 예쁜 가슴에 칼이 박혀드는 광경이 눈앞의 여자에게도 서서히 오버랩되어간다. 검은 조약돌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떨림을 멈추려고 해보지만 마음먹은대로 진정이 되지 않는다.
기괴한 뱀의 형상을 한 괴물이 도망치는 여자의 끝까지 따라붙어 다섯 개의 팔로 각종 무기를 휘두르며 도망치는 여자를 추격했다. 한 팔에만 무기를 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현의 옆 시체에 꽂혀있는 무기의 주인임이 틀림없었다.
“크아!”
“끼아아악!!”
그중 창끝이 도망치던 여성의 날개를 스쳤고 피가 튀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낮게 뛰듯이 도망치던 그녀는 축 쳐진 날개를 질질 끌며 더욱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극한의 긴장속에 마현은 몸을 더욱 낮추고 자신쪽으로 달려오는 여자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섣부르게 움직일 순 없었기에 조심스럼게 몸을 움직여선 검은 돌은 주머니에 넣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에 박혀있는 긴 칼을 잡아 뽑았다.
‘쑤욱’
“으욱...”
약간의 저항과 함께 몸뚱아리에 박혀있는 칼을 뽑는 그 생생한 느낌. 칼날을 통해 부드러운 여체의 감촉이 섬뜩하리만치 잘 느껴지자 꼬리뼈부터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는 듯했다. 4피트쯤 되는 길이에 인간을 위해 제작된 무기가 아닌듯 무언가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었지만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길다란 날붙이를 손에 쥐게 된 현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다만 손에 쥔 식은땀에 칼 손잡이의 감촉은 꽤나 불쾌할 뿐이었다.
다행히 고릴라 괴물들은 아까처럼 순간적으로 이곳까지 도약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이대로는 들키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도망자와 추적자는 점점 현이 숨어있는 움푹 패여있는 분지형의 지형까지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우...”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파른 경사면의 지면에 몸을 비스듬히 뉘이고는 칼을 굳게 부여잡고 가슴쪽에 바짝 끌어당겨 똑바로 곧추세웠다. 칼날에서 흐르는 시뻘건 선혈에서 비릿한 피내음이 났다. 이상하게도 미친듯 뛰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 했고 격렬히 떨리던 몸이 서서히 진정해가는 듯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긴장이 극에 달해서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은 피묻은 칼날을 단 몇 초의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흘러가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한 번이다.. 단 한 번....’
스스로도 왜인지 몰랐다. 패닉상태에 빠질법도 하고 아직 자신에게 주의가 쏠리진 않았으니 포복으로 기어서라도 도망친다면 운이 좋을 경우 눈치재지 못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은 머리가 차갑게 식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눈앞의 무기를 이용해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저 나지막히 몇 번이고 되뇌이며 중심을 바로 하고 칼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를 겨누고는 다가오는 소리와 칼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하악...하악...... ... 꺅!”
날개달링 여성형의 존재는 마현이 몸을 낮추고 있는 곳 까지 도달해 뛰었지만 그곳이 갑자기 움품 패인 지형이라는 것은 알 길이 없었는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발은 그 앞의 허공을 헛디뎠고 피를 흩뿌리는 날개의 주인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그의 눈앞에서 격하게 넘어지며 뒹굴어 버렸다.
‘우당탕!’
“흐윽.....”
넘어지는 순간 희망의 끝에 다다른 것을 아는 듯, 여성은 눈물과 먼지가 뒤섞인 절망적인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은 크게 떠지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칼을 곧추 세우고 몸을 낮추고 있는 주물질계-Prime Material Plane인간으로 보이는 존재가 경사면에 웅크린채로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
“.....!?”
극히 짧은 순간에 마현 역시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조각한 듯한 특출난 외모에 붉은색의 긴 머리, 당황스러운 표정에서조차 요사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이는 금안(金眼). 지척에서 다시 바라보자 이 존재 역시도 무언가 불길한 악마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쁘다....’
하지만 마치 요부같은 느낌이 풍겨지는 외모에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뇌리엔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듯.. 순간적으로 한가지 감상만이 떠올랐다
“키히히히히!!”
찰나의 쓸데없는 감상은 사라지고 바로 이어서 뱀이 지면을 휩쓸며 기어오는 기분나쁜 소리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현의 귓가에 들렸다.
‘이익!’
시커먼 그림자가 그의 머리위를 덮으며 나아가려 할 때 그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가 다급히 일어섰다.
“콰곽!‘
고함소리도, 과격한 몸놀림도 없었다. 야트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는 그저 강하고 힘있게 일어서며 뒤 따라오는 뱀 여성의 목줄기를 롱소드로 꿰뚫어버렸다.
“히히이... 커컥!”
괴물은 그저 눈앞의 목표물을 도륙해버리기 위해 짓던 환희의 표정 그대로 목과 입에서 폭포처럼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괴물은 자신이 잡고자 했던 존재 앞쪽으로 널부러져 버렸다.
“쿵!”
괴물이 쓰러지고 약한 경련과 함께 죽어가는 모양을 보자 그때서야 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잠깐의 시간은 몇 년과 같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또다시 그가 느끼는 시간은 미친듯이 빨리 흘러가는 듯 했다. 재빨리 칼을 거두고는 쓰러진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망연자실해 하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으나 그에 관계없이 마현은 거칠게 그 존재의 손목을 낚아챘다.
“빨리!”
언덕이 가로막고 있어 이곳을 봤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고릴라 형상을 한 그 악마같은 녀석이 언제 순식간에 튀어나올 지 알 수 없기에 그는 그녀를 끌어당기며 낮게 외쳤다.
“아....”
둘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는 ‘행렬’에서 멀어지기 위해 미친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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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븐 스파인-Elven Spine이라 불리우는 엘프들의 거대숲 마이제르-Maizzerue(마이제르 또는 마이즈-제루에 로 불린다). 끝자락에 위치한 엘프도시 에라나-루셀레-Erana Rousselet.
보통 숲에서 생활하는 실반-Silvan,와일드-Wild,우드-Wood엘프는 조심스럽게 나무를 자라도록 만들어 나무집을 만들고,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통해 좁은 통로를 만들어낸다. 자유로운 야생의 엘프들은 그들의 숲을 은밀함과 나무위에서 쏘아날리는 화살로 지켜왔고 이들은 외부인이 엘프 마을 깊숙하게 들어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숲과 잘 조화된 거주지를 꾸미고 산다. 사촌인 엘라드린Eladrin들이 아케인 스펠ArcaneSpell을 더 선호하는 반면 이들은 자연적인 세계의 근원적인 힘을 더 선호함에 있어서도 자연과의 조화라는 특징은 무척이나 잘 드러난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과거 몇 백년 전부터 에라나-루셀레가 존재하기 전, 홉고블린Hobgoblin 카이낙 클랜-ClanKainark 이 수많은 엘프마을을 습격하고 유린했으며 엘프들은 점차 똘똘 뭉쳐 대항해서 드디어 엘븐스파인 동쪽 끝에도 도시급의 엘프 거주지 에라나-루셀레가 건설되기에 이른다. 홉고블린은 200년 전 엘프영웅 드레스파나-Drecephana에 의해 격퇴되었지만 여전히 그 잔당들은 호시탐탐 엘븐스파인을 노리고 있고 그 덕에 에라나-루셀레의 엘프들은 홉고블린에 대해 지독하리만치 증오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도시 중앙에 위치한 엘프신 에베오-Eveo(혹은 이브오,에브오)의 신전 에브라세아.
외곽 경비병의 하나인 엘븐 스카우트-Elven Scout의 전형적 장비인 레더아머Leather에 숏소드로 무장한 여성하나가 신전 주위 한 켠에 서서 초조한 얼굴을 한 채 에브라세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엘레시니페닌 세아루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들 짧게 ‘엘’로 불리는 그녀는 엘븐스카우트가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신전 입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발에 파란눈, 오똑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슴탓에 흡사 페이세드레드-feycedred여왕 알리에나와 견줄 정도라는 찬사를 듣는 그녀는 모처럼만의 신전 방문에 여기저기서의 시선을 느끼고는 서서히 짜증이 한계에 달해있었다.
그 때 흔히들 마르-티르-Mar-Tir라고 불리우는 에베오 신전의 정문, 그곳을 통해 엘븐체인-ElvenChain과 레이피어-Rapier로 무장한 한 무리의 인영이 들어서고 있었다. 전투용은 아닌지 레이피어는 화려한 문양과 보석으로 장식되어있었고 엘븐체인 역시도 각종 문양과 불필요한 보석장식등으로 햇빛을 반사해 화려하게 빛났다.
무리의 가운데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듯한 남성의 복장은 그렇게 그녀와는 다른 의미로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전입구에서 자신 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그의 얼굴이 식별 가능할 정도로 어렴풋이 보이자 엘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더욱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젠장..”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신전 내부로 통하는 입구에 도착하자 턱을 살짝들어 그녀를 내려다보며 멈춰섰다. 갈색머리에 얄팍한 입술, 살짝 찢어닌 눈매에서 우러나오는 오만한 인상이 살짝 웃음을 머금고 있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거부감을 본능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외모였다. 그가 몇걸음 더 다가오자 엘은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듯 찌푸린 표정을 풀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페라하닌 님. 답례와 감사의 의식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요.”
페라하닌이라 불리운 남자는 자신의 뾰족한 귀를 슬쩍 다듬으며 거만하게 대답했다.
“이봐 엘, 그냥 멜코즈넬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라니까 왜 그러나? 자네하고 나 사이잖아? 응? 안그래?”
그 옆에서 엘프들 특유의 예복을 깔끔히 차려입은 반달형 눈매에 선량한 인상의 ‘인간’남자가 거들었다.
“엘, 오랜만이야. 커다란 가슴은 여전한데? 하핫.”
웃음을 지으며 멜코즈넬은 자신의 수하가 말하는 양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명망있는 페라하닌 가문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을텐데 그렇게 딱딱하게 대답하지 말라구~”
“..... 할코, 네가 끼어들 자린 아닌거 같은데.”
엘은 멜코즈넬의 말은 무시한 채로 할코의 말에 대답했다. 할코라고 불리운 옛 경비병 동료였던 남자는 이제 완벽하게 멜코즈넬의 개가 된 모양이라고 엘은 생각했다. 멜코즈넬의 수하로 들어가며 여러 이득을 챙겼다는 소문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신전의 공유재산이나 재물에도 손을 뻗친 듯한 루머도 꽤나 나돌았고 그는 최근 마치 귀족이 된 듯한 차림새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탓에 엘은 에라나-루셀레의 원주민 엘프를 제외한 종종 보이는 하프엘프나 인간을 무척이나 혐오하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숏소드를 꺼내들어 눈앞의 남자들 목줄기를 끊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뒤에 시립해 있는 무리들에는 하프엘프나 인간으로 보이는 이들도 더 끼어있었고 그들의 화려한 복장과는 달리 말투와 행동은 추잡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단자들 같으니...’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신전 내부로 통하는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며 한 엘프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징없는 평범한 외모에 잎사귀 문양의 초록색 관을 쓰고 갈색바탕에 나뭇가지 문양이 수놓아진 로브를 걸친 에베오의 프리스트였다. 사람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한발 한발 나아가서는 엘과 페라하닌의 곁을 지나 신전 한 가운데 작은 단상에 서서 중앙광장에 대고 알렸다.
“방금 신탁의 의식이 끝났습니다. 에베오께서 평상시와 같은 축복을 모두에게 내리셨습니다.”
역시 클레릭을 바라보고 있던 멜코즈넬은 가볍게 손을 모으고는 웃으며 중얼 거렸다.
“역시나 자애로우신 에베오께서 이곳을 여전히 사랑해주시는구나. 하하”
엘프답지않은, 언젠가 인간들의 도시에 갔을때 느꼈던 인간들의 경망한 말투를 멜코즈넨에게 느낀 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동시에 프리스트의 발언에 위화감을 느꼈다.
‘평상시와 같은...?’
“답례와 감사의 의식은 여왕님의 준비가 끝나는데로 거행하겠습니다.”
엘은 그의 말을 듣고는 슬쩍 고개를 갸웃했다. 흔히 에베오에 대한 예찬부터 시작해 장황한 연설 후 의식 결과에 관해 말하는게 일반적인데 지나치게 간략하다. 다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지만...
엘은 눈앞의 남성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신탁이 나왔으니 전 이만 가봐야겠군요. 그럼.”
멜코즈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재빨리 뒤돌아 정문을 향해 가는 엘에게 할코가 말했지만 그녀는 못들은 척 하고 걸음을 재촉 할 뿐이었다.
“어이 엘~ 여왕의 죽이는 자태도 구경 안하고 그냥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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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오의 신전 내부. 브릴레니아라 불리우는 나뭇가지와 잎사귀의 홀.
에베오의 프리스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조용히 말했다.
“파타니라세님 고생하셨습니다.”
홀 한가운데에 한 여성이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있다.
밝은 갈색의 윤기있는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었고 의식을 위한 비단같은 재질의 하얀 예복 역시도 젖어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어있는 여성.
마치 거친 운동이라도 한 듯 거친 숨을 가쁘게 내쉬는 그녀의 커다란 가슴 역시도 젖어들어 모양좋은 풍만함을 그대로 과시하며 그대로 호흡에 맞춰 심한 기복을 보여준다. 거기에 잘록한 허리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커다란 엉덩이가 옷이 달라붙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얇은 홑겹의 의식복인듯 그녀의 살결이 어렴풋이 비춰 보였기에 남성 프리스트나 관계자들의 눈에는 경건함이나 신탁의 궁금함 대신 욕망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요염한 자태였다.
의식을 혼자 주관해 끝마친 그녀 파타니라세-코루-멜 에임드는 엘프도시 에라나-루셀레의 여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가볍게 이마를 짚으며 방금전 프리스트에게 했던 말이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에베오의 초즌-Chosen..? 아닌가? 아바타-Avatar인가?... 마르툴 신은 대체...”
몸을 추스르고 다음 의식을 거행할 정신도 없이 그녀는 혼란스러운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찾지못하고 눈앞이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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