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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22 491회 0건
“이제 당신이 나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요.”

마치 빛을 모두 흡수해 버릴 것 같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반대로 순백의 로브를 입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보석함속에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는 동그란 오브를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사내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희열에 찬 표정을 하고 오브를 한참이나 쳐다보던 노인이 보석함을 조심스레 닫고는 표정을 굳히고 사내에게 물었다.

“오브의 사용법은 알아냈나?”

“황제가 말하길 반드시 살아있는 황족의 피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이다. 그리고는 자결해 버리더군.”

사내의 말을 들은 노인은 표정을 살짝 찡그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귀찮게 되었군. 다른 황족들은 어떻게 되었나?”

“황궁 안에 살고 있던 모든 황족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황제가 보는 앞에서 죽였소.”

“이런 젠장~!!!”

노인이 표정을 확 구기며 소리 질렀다.

“황제의 입을 열기위해서 어쩔 수 없었소.”

“에이~잇! 젠장!... 뭐 황족이야 찾다보면 한둘은 있기 마련이니까...”

노인은 시종일관 무뚝뚝한 태도를 고수하는 사내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는 못하고 참다가 약간의 귀찮음은 감수하겠다는 말을 내비쳤다.

“그럼 이제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줄 차례요.”

사내가 처음 오브를 건네주며 했던 말을 다시금 꺼냈다.

사내를 한번 흘겨본 노인은 오브가 들어있는 보석함을 조심스레 자신의 로브 안에 넣고는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꺼내 사내 앞에 휙 던졌다.

턱.

“백만골드면 의뢰비로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의 발 앞에 놓인 주머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서 노인에게 말했다.

“나는 이딴 돈따위는 필요치 않소.”

“흥! 네까짓 어세신은 평생 구경도 못한 금액이다. 작은 왕국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지.”

“대마도사인 당신도 불가능한 것이오?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었군. 마법사의 약속은 아주 중요한 것 일텐데...”

“이제 오브가 내손에 들어왔으니 그깟 약속쯤이야 아무 상관이 없다. 대마도사를 넘어서 궁극의 9서클을 이룩할 날이 멀지않았으니 네놈도 내 밑으로 들어와 충성한다면 네게 제국의 일부분을 넘겨주마.”

“거래는 취소되었소. 오브를 넘겨주시오.”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하던 노인은 무심한 사내의 말을 듣고서 화가 치솟았다.

“감히 네놈이!!!”

순간 노인의 손에 빛이 맺히더니 곧바로 한줄기 전기가 사내에게 쏘아졌고 동시에 사내의 몸이 흐릿해졌다.

둘 사이에 전기가 방전되는 밝은 빛이 걷히고 난 후의 모습은 전혀 뜻밖이었다.

노인은 손을 뻗은 채로 굳어버렸고 노인의 코앞에는 마법에 직격 당했는지 온몸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사내가 서있었다.

“어... 어떻게... 쿨럭~!!!”

노인은 낭패한 얼굴로 한마디 하더니 입으로 피를 토했다.

사내는 노인의 가슴에 꽂혀있는 단검에서 손을 슬며시 때고는 허리를 곳게 펴고 뒤로 물러났다.

“황제라 그런지 좋은 아티펙트를 많이도 갖고 있더군. 그나저나 당신도 대단하군. 황제의 아티펙트로도 이정도라니... 큽!”

사내도 노인의 마법에 피해를 입었는지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품에서 오묘한 푸른빛을 내는 병을 꺼내들고 속에 든 액체를 한숨에 들이켰다.

이제 투명한 빈병이 들린 손으로 피가 묻은 입가를 스윽하고 닦고서 노인에게 차가운 말을 건냈다.

“잘가시오.”

노인은 마법을 펼치기위해 필사적으로 마나를 끌어 모았지만 심장에 박혀있는 단검 때문에 서클이 파괴되어 버렸기에 자신의 꿈을 코앞에 놔두고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쓰러져버린 노인과는 다르게 사내의 혈색은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황제여 고맙소. 죽어서도 나를 두 번이나 살려주다니.”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쓰러져있는 노인의 로브를 뒤적여 보석함을 찾아냈다.

보석함을 열어보니 안에는 오브가 무사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황족을 찾는 일만 남았군.”

사내는 방금 전 노인과의 대화중에서 이 ‘영광의 오브’라고 이름이 붙은 물건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물건임을 유추해 내고는 다음 목표를 황족으로 정했다.

어세신이기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내가 보석함을 버릴 요량으로 오브를 손에 드는 순간 오브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나왔다.

‘허... 참... 내가 황족이었다니. 우습군.’

서서히 멀어져가는 의식속에서도 사내는 허탈해 했다.







사내가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온통 흰색의 공간 안이었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사내가 고민하려던 차에 한쪽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밝음과 그 경건함에 사내는 절로 무릎을 꿇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대는 타이노스의 후손이기도 하면서 다른 세상의 사람이군요.”

“네. 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의 페르시아제국의 아사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의 거지아이가 되어있더군요.”

“거지아이라... 타이노스의 후손이면 황족일 텐데 어찌하여 거지아이가 된 것이지요?”

“그 것은 저도 기억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제가 황족이라는 사실도 방금 알았습니다.”

“흠... 어쨌든 그대가 타이노스의 후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이제 그대의 부탁을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드디어 이 세상에 떨어진지 40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육신의 고향은 이곳일지나 영혼의 고향은 그곳입니다. 저를 다시 그 세상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아아~ 그런 소원이라... 상당히 까다롭군요. 음~...”

경건하면서도 왠지 귀찮아 하는듯한 목소리라 사내는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군요. 들어드리는 수밖에... 타이노스가 마신으로부터 이 세상을 지켜낸 대가로 얻어낸 보상을 다른 세상의 사람인 당신이 써버리다니 참 우스운 일이군요.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그럼 안녕히...”

‘드... 드디어...!!’

그렇게 다시금 사내의 의식은 멀어져갔다.







“젠장!! 젠장!! 빌어먹을 놈의 신 나부랭이가!!”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지만 입이 아주 거칠었다.

분함을 참지 못하는지 커다란 킹사이즈의 침대위에 누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욕을 해댔다.

“에이 썅~!! 보내주려면 제대로 보내줘야지 이게 뭐야 진짜!! 아~ 씨발...”

소년은 페르시아제국의 아사신 ‘하산’ 이었다가 타이노스제국의 암살왕 ‘하산’ 이었던 자.

성신의 도움으로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가 바라던 귀환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처음 의식을 되찾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 한번 절망했다.

전혀 또 다른 세상에 온 것으로 착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의식 속으로 쏟아지는 신체의 기억 때문에 또 한 번 절망했다.

같은 세상인 것을 깨달았지만 우선 그가 살던 시대에서 1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게다가 페르시아제국도 없어지고 이란이 생겼다.

또 자신이 몸담았던 아사신파도 몽골에 의해 괴멸 당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그랬다는데 틀릴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다시 어린아이의 몸, 그나마 거지가 아닌 점이 다행이긴 했다.

절망하며 신을 욕하며 지내길 1주일, 신체의 의식과 자신의 서서히 합쳐지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아사신파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사라졌다.

그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에 이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그렇게 희망했지만 21세기의 사고방식이 자리 잡은 그의 의식은 예전의 자신이 어리석게만 생각되었다.

10세기전의 의식수준은 지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 이렇게 사람 살기 좋은 세상에서 다시 살아가는 것도 좋을테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소년은 일주일째 처박혀 있던 방에서 나왔다.

“정우도련님 나오셨어요? 사장님께서 많이 걱정하셨어요.”

김정우. 현재 이름이다.

“아빠가 언제 내 걱정을 했다고 그래. 배고프니까 밥이나 차려줘.”

“예. 금방 차려드릴게요.”

정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샤워를 하러갔다.

정우의 아버지 김덕명은 아들이 뭘 하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이지만 자신의 사업이 우선이고 아들은 뒷전이었다.

사업이라고 해봤자 사업 같지도 않은 조직폭력배 두목이 정우의 아버지 김덕명이다.

의식이 깨어나기 전의 정우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서 자세한 관심이 없었고 그저 언제나 풍족하게 주는 용돈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의 정우는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전에 아버지보다 더한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그쪽의 생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심 없는 아버지에 반해 정우보다 3살 연상의 누나 김정은은 정우와 사이가 좋았다.

비록 지금은 정은이 사춘기에 들었는지 둘 사이가 약간 소원해진 경향이 있었지만 남매간의 우애는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자랐고 덕명은 남매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둘은 서로를 보살펴가면서 자랐다.

항상 꼭 붙어다녔지만 지금은 정은이 중학생이고 정우는 초등학생이기에 떨어져 지내는 중이다.

“후~... 이 볼품없는 몸뚱이부터 바꿔야겠군. 보살핌 속에 자라서 그런지 정말 형편없군.”

정우가 화장실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춰보면서 중얼거렸다.

정우는 태어났을 때부터 부유했기에 어딜 가든 기사 딸린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어떤 일이던 대신해줄 사람이 주변에 있었기에 신체가 또래들보다 왜소하고 허약했다.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고생꽤나 하겠군.”

겉으로는 별생각 없는 꼬맹이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머릿속에는 훈련계획이 치밀하게 짜여지고 있다.

우선은 암살기술.

페르시아제국의 아사신의 기술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타이노스제국 암살왕의 암살기술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소드마스터를 암살하고 우연히 얻은 마나수련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흑마법이었다.

암살왕이었을 때 무수히 죽인 마법사로부터 많은 마법을 얻었지만 빠르게 익히고 어세신에게 더 유용한 암흑마법을 익혔다.

물론 이것도 암살 후 얻은 것이고 혼자서 익힌 탓에 몇 수준은 낮지만 암살에 상당히 유용했다.

생각을 정리한 정우는 샤워를 대충 끝내고 가정부가 차려준 밥을 열심히 먹었다.

깨작깨작 먹던 예전과는 다르게 밥을 충분히 먹었다.

이제부터 훈련을 소화하려면 우선 잘 먹어야 했다.

그리고 신체도 더욱 자라야 하니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정우는 19살이 되었다.

그 동안의 결과물을 살펴보자면 정우로써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성취이다.

일단 암살기술은 만족스러웠다.

세월로 따지면 거의 80년 가까이 수련한 셈이기 때문에 흠잡을 곳이 마땅히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다른 두가지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세상이 다른 탓이었는지 마나수련법은 10년이 다되도록 신체만 겨우 활성화시킬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래가지고서는 평생을 수련해봐야 마스터는 요원한 목표였다.

암흑마법도 마찬가지.

마기의 분포가 희박한 수준이고 그나마 있는 마기도 순수하지 못하고 잡스러웠기에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이 몇 개 되지 않았고 마기를 모으려면 한참이나 걸리기에 과거에 가장 즐겨 썼던 커스포이즌 마법도 한번 쓰려면 반나절동안 마기를 모아야 했다.

그리고 마나수련법이 지지부진한 탓이었는지 키도 고만고만한 173밖에 자라지 않았다.

만약에 유전 탓이라면 모계 쪽이리라.

아버지 덕명은 190에 가까운 거구이니까.

정우는 자신이 어세신이기에 지금정도의 키가 가장 알맞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눈높이의 여자들을 볼 때마다 살짝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련님 오셨어요? 저녁식사 하세요. 사장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어.”

가정부의 말에 태연스럽게 반말로 대답한 정우는 방에 교복을 벗어던져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주방으로 갔다.

“앉아라. 밥먹자.”

“예.”

50의 나이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덩치와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는 덕명이 최근 들어서 정우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우습게도 정우가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정우의 폭력성이 들어났다.

중학생 때 까지는 수련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주변에서 자극해오는 학생들 때문에 참고 있던 성격이 되살아났다.

평생을 피와 함께 살던 두 번의 삶이 있었기에 세 번째 삶도 평화와는 영 거리가 멀어졌다.

계속되는 사건사고에 덕명이 나서서 뒤처리를 해야 했고 전학에 전학을 거쳐 문제아들이 모여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되었다.

일대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잔인한 손속과 무패행진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정우의 모습에 덕명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했다.

두 부자는 묵묵히 저녁을 먹기만 했고 정우가 저녁을 다 먹고 일어날 때까지 말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그나마 이정도도 예전의 집안 분위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은 셈이다.

정우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덕명과 같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명도 저녁을 다 먹자 일어나 집을 나선다.

“다녀오십시오. 사장님.”

덕명이 나가는 소리를 들은 정우는 그제서야 다시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관심이 보이는 것이 아직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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