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회장님, 청운대학교 김 현수 교수라는 분 전화입니다.”
미샤가 내 방문을 열고 말했다.
“청운대학교 교수?
내가 아는 사람인가?”
“지난 번 개업식때 오셨던 인테리어 디자인학과 교수랍니다.”
“그래? 알았어. 돌려줘.”
“네, 회장님.”
잠시 후 탁한 사내의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일전에 장원 인테리어 디자이너 협회 개업식때 인사 드렸던 청운대 김 현수 입니다.”
“아~네, 교수님.
안녕하셨습니까?”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여자들은 남김없이 기억을 하지만 남자들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별로 기억에 두지 않는다.
그는 내게 여름 학기 중 실무 디자인에 대한 특강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전화 끝에 에둘러 드러낸 그의 진심은 다른 것 이었다.
자기 학생들을 인턴으로 받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스케줄을 조정해서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진희야, 잠깐 들어와 봐.”
인터폰으로 진희를 불렀다.
문을 닫고 들어선 진희가 ‘투두둑’ 소리를 내며 원피스 앞자락을 확 벌렸다.
속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버버리 원피스 속의 나신이 깜찍했다.
“하하하…
오늘은 바바리 걸 컨셉이야?
정말 넌 못 당하겠다. 하하하…”
“예쁘지?
치… 오빠가 하도 관심을 안 가져 주니까 그러지 뭐.
집에서도 나한테 특별히 관심을 안 보이고…”
“그래… 하하하… 미안하다.
이리 와봐.”
진희가 폴짝 뛰어 내게 달려오더니 의자에 앉은 내 머리를 꼬옥 끌어안는다.
“오빠가 장원의 주인님만 아니었어도, 그리고 내가 주인님의 개인 비서만 아니었어도 오빤 나한테 주~욱었을꺼야…”
“하~아~ 야~ 숨막히잖아.”
“치… 숨막히라고 그런 거다, 뭐…
근데 왜 불렀어, 오빠?”
머리를 다소 느슨하게 풀어주며 여전히 나를 안은 채 진희가 물었다.
“이번 주 내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응…… 내일 오전에 리버프론트 골프장 사장과 골프 약속이 잡혀있고 오후에는 신영 패션 매장 PT 준비 회의가 있어.
목요일에는 대원 오페라 하우스 시공 업체 입찰이 있고 금요일에는 아침부터 각 팀 별로 미팅이 잡혀있네.”
“오늘 오후는 비었나?”
“오후에는 별일 없지만 오빠 옛날 친구와 저녁 약속 잡아놨잖아.”
“그렇지? 그게 오늘이었지?”
“그런데 어떤 친구야?”
“고등학교 동창.”
몇 일 전 늦게까지 일을 하던 중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전화번호중의 하나를 돌렸었다.
15년도 더 지난 오래된 전화번호여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여보세요, 이 한규씨 댁인가요?”
“예, 그런데요. 누구…신가?”
“한규 어머니시죠?
저에요, 어머니. 한규 고등학교 동창 대훈입니다, 어머니.”
“대훈이… 대훈이… 아~! 대훈이야?
아니 이게 얼마만이야?
그래 미국 갔다더니 돌아 온 거야?”
“네, 어머니.”
“아이구~ 그래~
결혼은 했구?”
“아뇨… 아직…”
“왜~? 아니 그 잘생긴 대훈이를 여자들이 여태 그냥 놔 뒀대?”
“하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건강하시죠?”
“나야 뭐 늘 건강하고 씩씩하지.”
“한규는 집에 있나요?”
“응, 조금 전에 퇴근해서 씻고 있어.
아! 저기 나오는 구나. 바꿔줄게.
언제 한번 놀러 와야지?”
“네, 어머니.
한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라.”
그렇게 한규와 연락이 닿았고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럼 오늘 오빠…. 하~~응~~ 늦겠네… 흐~~~응…”
젖가슴을 빨며 엉덩이 뒤에서 손가락으로 보지를 살짝 문지르자 진희가 콧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치… 몰라…
나 이렇게는 못 나가. 오빠가 책임져.”
“하하하…”
어느새 진희는 내 바지를 벗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튕겨져 나온 내 자지를 타고 앉았다.
“무슨 주인님이 개인 비서를 이렇게 소 닭 보듯 해?
총집사님은 전 주인님에게 너무 시달려서 힘들 지경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오빠도 총집사님 무지하게 괴롭혔다면서?
근데 난 뭐야?
시달리기는커녕 오빠 자지가 어떤 맛인지도 잊어버릴 지경이잖아.”
“어허! 이 놈 말하는 거 보게…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야겠다.”
그대로 진희의 엉덩이를 안고 일어서 소파에 함께 쓰러졌다.
보지에 자지를 박힌 채 깔려있는 그녀의 표정이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아~흥…
이제야 제대로 됐네.”
그때 방문이 열리며 희정이 들어섰다.
“회장님…
어? 모야~?
또 둘이서만 재미있는 놀이 하는 거야?”
뭐라고 대꾸할 겨를도 없이 희정이 눈깜짝할 사이에 허물을 벗고 달려들며 진희를 타고 있는 내 상의를 벗겨 낸다.
“주인님, 너무 해요.
저도 같이 끼워 주세요.”
“아~이~씨… 내가 쟤 땜에 못살아~~”
“하하하…
그래 알았다.
대신 다른 애들 다 들어오면 피곤하니까 좀 조용히 하자, 응?”
단순히 일정을 확인하려고 비서를 불렀는데 어느 틈에 질펀한 2대1 섹스 판이 되어버렸다.
장미 장원에서 공수해와 매일 거르지 않고 먹고 있는 보약이 아니었다면 난 벌써 뼈만 앙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아~~ 바로 이 맛이야…”
“허~응~ 주인님… 너무 맛있엉...”
두 여인이 사이 좋게 내 정액을 나누어 먹으며 입맛을 다셨다.
“너희들 때문에 나 일찍 은퇴하게 생겼다.”
“하여튼 엄살은… 앙!”
“아얏!”
진희가 내 자지를 꽉 물어버렸다.
그 모습에 희정이가 깔깔거렸고 그런 그녀들을 쓰다듬어 주고는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희정이는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지?”
“아 참! 내 정신 좀 봐!
아~ 어떡해~~
한 관장님 소개를 받았다고 어떤 여자분께서 전화하셨는데…
어쩌죠? 전화 끊지도 않고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뭐야?
하여튼 이것들을 확 짤라 버릴 수도 없고…”
미샤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주인님, 끝나셨어요?”
“응? 아~ 응… 그래…”
미샤가 대기중인 전화를 받고 대충 얼버무려 놓았던 모양이었다.
“눈치 챘었어? 너도 들어오지 그랬어…”
“호호호… 주인님 일찍 은퇴하시면 안 되잖아요.”
“흠흠… 들었지? 너희도 미샤 반만 따라가봐라.
이것들이 아주 일은 안하고 허구한날 나 잡아 먹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원, 쯧쯧쯧!”
미샤가 깔깔거렸고 진희와 희정은 입술을 씰룩 거리며 눈을 예쁘게 흘겼다.
“전화번호 받아 놨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그래. 바로 연결해 줘.”
“네, 주인님.”
“너희들도 나가 봐.
나른 하다고 농땡이 부릴 생각 말고 일 똑바로 해!
특히 희정이 너 오늘부터 일주일간 나한테 접근 금지야. 알았어?”
“고거 쌤통이다.”
“실장님~~!”
“자자~ 다들 맘 잡고 할 일들 하자고.
오실장! 일하자!”
“네, 주인님. 나가자, 희정아.”
“네, 실장님.”
정신 없는 회오리가 진정되고 전화를 받았다.
한 영숙 관장에게서 소개를 받았다는 여인은 이번에 유학에서 돌아오는 딸의 아파트 인테리어를 부탁하고 싶다며 찾아오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될 무렵 살집이 퉁퉁한 부잣집 부인과 함께 짧은 탱크 탑 나시와 청바지가 정말 잘 어울리는 어린 여자애가 내 방으로 안내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반가워요, 이 회장.
여긴 이번에 미국에서 들어온 내 딸.”
거만함이 몸에 밴 여자였다.
이 여자와 통화를 끝내고 영숙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정보를 입수했었다.
상류층의 메이저는 아니었고 여러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하는 소위 큰손의 부인이었다.
국내에서 현금 동원능력이 가장 뛰어난 몇 사람 중의 하나가 그녀의 남편이었다.
딸이라고 데려온 아이는 중학교 때 조기유학을 보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20살의 나이로 귀국하게 되었다고 했다.
천방지축, 소위 날라리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아휴~ 요즘 애들이 부모 말을 들어 쳐먹어야 말이지.
간섭 받는 거 싫다고 독립하겠다는 데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
강남에 60평짜리 하꼬방 하나 사주고 내 보내려고 그래요.
그래도 사람 사는 꼴은 만들어 주려고 인테리어 업자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한 관장 아우님이 이 회장을 소개시켜줘서 왔어요.”
“네~ 잘 오셨습니다, 사모님.
그럼 우리 레지덴샬 팀장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인터폰 수화기를 들려는 나를 그녀가 제지했다.
“난 이 회장이 직접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랫사람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 회장이 직접 해줘요.”
역시 안하무인의 전형적인 졸부였다.
같이 온 여자애만 아니었어도 그냥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럼 한 관장님 체면도 있으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기본적인 사항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아파트의 위치와 대략적인 취향을 물었다.
무식한 졸부의 마누라는 어디서 들었는지 무조건 최고의 장식재와 가구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거론하고 있었다.
스타일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돈으로 바르면 끝나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그러나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애에게 쏠리고 있었다.
가슴 바로 아래부터 골반까지 훤히 드러난 탱크 탑이 힘겹게 걸려있을 만큼 큰 가슴과 꽉 끼는 스키니 진에 드러난 풍만한 하체까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육체를 가진 아이였다.
자그마한 얼굴에 편견 없이 보면 한 없이 귀여운 표정의 이 아이는 눈을 내리깐 채 계속 꼰 다리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우선 실측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아파트가 여기서 멀지 않으니 지금 가 보실까요?”
“난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렇고 어차피 미진이가 집주인이니 미진이하고 얘기하세요.
그리고 끝나면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죠, 이 회장?”
“네, 그러죠.”
“미진아, 엄마는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볼 테니 여기 이 회장하고 같이 움직이거라.”
여자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건성으로 고개만 까딱였다.
“그럼 잘 부탁해요, 이 회장.”
돌아서는 여인의 뒤 태에도 거만함이 삐져 나온 살집만큼이나 가득 묻어났다.
“살펴 가십시오, 사모님.”
여인이 나가고 방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명 이 아이는 어딘가 잘못 돼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나가 볼까요?”
미진이라는 아이가 고개를 삐죽 쳐들더니 입을 열었다.
“나, 배고파, 아저씨.”
아저씨?
안하무인인 엄마를 그대로 빼다 박은 표정과 말투였다.
“그래? 그럼 먹고 싶은 거 얘기 해봐.
어차피 점심시간도 다 됐으니 밥 먹고 하자.”
“후훗! 말이 통하는 아저씨네?
엄마 아빠 졸졸 따라다니는 찌질이들처럼 나한테 깍듯이 존댓말도 안하고.
일단은 맘에 드네.
그럼 나 떡볶이 사줘.”
떡볶이?
의외의 메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동행 없이 미진이 만을 데리고 얼마 전 한 관장이 선물로 준 빨간 포르쉐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뚜껑 열면 안 돼?”
“그럴까?”
버튼을 눌러 차의 뚜껑을 열었다.
이윽고 건널목 한 귀퉁이에 떡볶이와 오뎅 등을 파는 노점이 보이자 미진이 그 곳을 가리켰다.
“아저씨, 돈 많지?
나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다.
아까우면 엄마한테 디자인비 청구할 때 얹어서 하든지…”
“하하하… 그래 따블로 청구할 테니 맘껏 먹어라.”
매콤한 떡볶이를 오래간만에 먹어본다.
미진이는 떡볶이와 오뎅을 정신 없이 먹어 치웠다.
혼자 3인분을 먹어 치우는 먹성이 밉지 않았다.
“떡볶이를 좋아하는구나.”
“예전에 길에서 사먹다가 엄마한테 들켰었어.
근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먹던 내 친구한테 짜증을 부리지 뭐야.
니가 꼬셔서 우리 애 이런 불량식품 먹였다고.
그때부터 난 왕따였고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
후훗!
그렇다고 혼자는 아니였으니까 불쌍하게 생각할 건 없어.
내 돈, 아니 우리 아빠 돈 때문에 꼬봉들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으니까…”
싸가지 없는 아이의 모습에 감도는 쓸쓸함이 나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고 있었다.
“자~알 먹었다.”
떡볶이를 찍어 먹던 이쑤시개를 빈 쟁반에 툭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 차에 가 냉큼 앉는다.
“뭐해, 아저씨?
빨랑 와.”
계산을 마치고 차를 몰아 미진의 새 아파트에 도착했다.
20살 어린 여자애가 혼자 쓰기에 너무 큰 60평 아파트는 최근에 완공되어 분양된 최고급 아파트였다.
이미 호화로운 마감재로 꾸며져 있어 굳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당장 들어와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냥 깔끔하고 넓게 만들어줘.
가구 같은 거 많이 필요 없고 그 대신 나 영화 보는 거 좋아하니까 홈시어터 시스템은 좀 신경 써 주고.”
“너 몇 살 이지?”
“허! 나이는 왜 물어?
아저씨도 나한테 꼰대 짓 하려고 그래?
열나 짱나네”
“몇 살이야?”
미진의 팔목을 잡으며 얼굴에 표정을 싹 지우고 낮고 단호히 물었다.
“뭐야~? 이거 놔! 안 놔?”
팔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똑바로 미진의 눈을 응시했다.
“스물 꽉 찼어.”
내 단호함에 미진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듯 했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잡았던 팔목을 놓아주고 가방에서 거리를 재는 디지털 스캐너를 꺼내 실측을 시작했다.
“뭐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너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구나.”
“지금 내 말 씹는 거야?
그리고 코딱지 만한 아파트가 넓긴 뭐가 넓다는 거야?
이 아저씨 진짜 지대로 짱나는 꼰대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무시해버리자 미진이 껑충껑충 뛰었다.
흔들리는 풍만한 젖가슴이 보기 좋았다.
난 실측을 하면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 다 됐다.
가자. 집에 데려다 주마.”
“아~ 진짜 이 아저씨 까칠하네~”
“맘에 안 들면 엄마한테 디자이너 바꿔달라고 떼를 쓰던지 맘대로 해라.
난 오늘 실측한 걸 바탕으로 기본계획 세우고 있으마.
금요일까지는 스케줄이 잡혀있으니 토요일 오전에 사무실로 와라.
11시까지 안 오면 없던 일로 하지.”
“허! 허허!”
기가 막힌 듯 미진은 연신 콧바람만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억지로 차에 태워 청담동 주택가 어귀에 내려주고 그대로 돌아서 나와버렸다.
미진은 이제 나의 또 다른 프로젝트가 되어있었다.
사무실에 들러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신디와 함께 한규와 만나기로 한 논현동의 위스키 바로 향했다.
“나 기다리지 말고 그냥 들어가.
친구와 술 한잔 하고 갈 때는 택시 타고 갈 테니까.”
“아니에요, 주인님.
끝나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런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해주고는 돌려보내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를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예전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입고 있는 양복이 나름대로 자리잡은 사내의 위치를 대변하고 있었다.
“안 죽고 살아 있었냐, 새꺄?”
“어!? 나~ 이 자식… 형님 오래간만에 만나놓고 말하는 싸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미친놈… 옛말에 나이 어린 아저씨는 있어도 나이 많은 동생은 없다고 했다.
나보다 2달이나 어린 놈이 형님 무서운 줄 모르다니.”
한규는 정말 달라진 게 없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였지만 스스럼없이 대하는 녀석이 고맙고 반가웠다.
“오냐, 그래.
늙어서 좋겠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잘 사냐?”
“나 이렇게 먹고 산다.”
녀석이 내민 명함엔 성형외과 전문의의 타이틀이 박혀있었다.
“너 의대 갈 때 불안해 보였는데 그래도 졸업은 한 모양이네?
그래 요즘 젖탱이 키워달라고 옷 벗고 덤벼드는 년들 많다는데 오늘 너한테 제대로 접대한 번 받아보자.”
“아~ 나~ 이 씨벌놈…
그래 넌 미국에서 언제 나왔냐?”
“얼마 안 됐어.
오자 마자 너부터 찾았다 임마.”
“기특한 놈.
그래 뭐 해먹고 사냐?”
“그냥 뭐… 전공 살려서 조그만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 하나 차렸어.”
“하하하… 강남 사모님들 여럿 울리겠군, 이 놈이 이거…”
“그래 임마…
그 사모님들 나한테 오기 전에 너한테 가서 이쁜이 수술 받아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다.
헐렁한 아줌마들 재미 없거든……”
“뭐~어? 푸하하……
여전 하구나, 개새끼.”
이런저런 얘기들, 한규의 와이프와 두 아들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등 별다를 것 없는 사내들의 수다를 나누며 스카치 한 병을 다 비웠다.
“야, 일어나자.
오늘 내가 술값 덤터기 쓰는 김에 제대로 쏠 테니 2차 가자.
혼자 사는 놈 회포도 풀어줘야지.”
“2차?
뭐, 어디 좋은데 데려 갈꺼야?”
“너 성형외과 의사들이 얼마나 지저분하게 노는지 모르지?
그런 우리들도 정신 못 차리게 해주는 끝내주는 데가 있지.
나가자.”
걸쳐 놓은 양복 상의와 계산서를 집어 들고 한규가 앞서 나갔다.
“오냐.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망가지는 거 구경 좀 하자.”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는 2차로 향했다.
10장에서 계속…
“회장님, 청운대학교 김 현수 교수라는 분 전화입니다.”
미샤가 내 방문을 열고 말했다.
“청운대학교 교수?
내가 아는 사람인가?”
“지난 번 개업식때 오셨던 인테리어 디자인학과 교수랍니다.”
“그래? 알았어. 돌려줘.”
“네, 회장님.”
잠시 후 탁한 사내의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일전에 장원 인테리어 디자이너 협회 개업식때 인사 드렸던 청운대 김 현수 입니다.”
“아~네, 교수님.
안녕하셨습니까?”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여자들은 남김없이 기억을 하지만 남자들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별로 기억에 두지 않는다.
그는 내게 여름 학기 중 실무 디자인에 대한 특강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전화 끝에 에둘러 드러낸 그의 진심은 다른 것 이었다.
자기 학생들을 인턴으로 받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스케줄을 조정해서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진희야, 잠깐 들어와 봐.”
인터폰으로 진희를 불렀다.
문을 닫고 들어선 진희가 ‘투두둑’ 소리를 내며 원피스 앞자락을 확 벌렸다.
속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버버리 원피스 속의 나신이 깜찍했다.
“하하하…
오늘은 바바리 걸 컨셉이야?
정말 넌 못 당하겠다. 하하하…”
“예쁘지?
치… 오빠가 하도 관심을 안 가져 주니까 그러지 뭐.
집에서도 나한테 특별히 관심을 안 보이고…”
“그래… 하하하… 미안하다.
이리 와봐.”
진희가 폴짝 뛰어 내게 달려오더니 의자에 앉은 내 머리를 꼬옥 끌어안는다.
“오빠가 장원의 주인님만 아니었어도, 그리고 내가 주인님의 개인 비서만 아니었어도 오빤 나한테 주~욱었을꺼야…”
“하~아~ 야~ 숨막히잖아.”
“치… 숨막히라고 그런 거다, 뭐…
근데 왜 불렀어, 오빠?”
머리를 다소 느슨하게 풀어주며 여전히 나를 안은 채 진희가 물었다.
“이번 주 내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응…… 내일 오전에 리버프론트 골프장 사장과 골프 약속이 잡혀있고 오후에는 신영 패션 매장 PT 준비 회의가 있어.
목요일에는 대원 오페라 하우스 시공 업체 입찰이 있고 금요일에는 아침부터 각 팀 별로 미팅이 잡혀있네.”
“오늘 오후는 비었나?”
“오후에는 별일 없지만 오빠 옛날 친구와 저녁 약속 잡아놨잖아.”
“그렇지? 그게 오늘이었지?”
“그런데 어떤 친구야?”
“고등학교 동창.”
몇 일 전 늦게까지 일을 하던 중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전화번호중의 하나를 돌렸었다.
15년도 더 지난 오래된 전화번호여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여보세요, 이 한규씨 댁인가요?”
“예, 그런데요. 누구…신가?”
“한규 어머니시죠?
저에요, 어머니. 한규 고등학교 동창 대훈입니다, 어머니.”
“대훈이… 대훈이… 아~! 대훈이야?
아니 이게 얼마만이야?
그래 미국 갔다더니 돌아 온 거야?”
“네, 어머니.”
“아이구~ 그래~
결혼은 했구?”
“아뇨… 아직…”
“왜~? 아니 그 잘생긴 대훈이를 여자들이 여태 그냥 놔 뒀대?”
“하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건강하시죠?”
“나야 뭐 늘 건강하고 씩씩하지.”
“한규는 집에 있나요?”
“응, 조금 전에 퇴근해서 씻고 있어.
아! 저기 나오는 구나. 바꿔줄게.
언제 한번 놀러 와야지?”
“네, 어머니.
한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라.”
그렇게 한규와 연락이 닿았고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럼 오늘 오빠…. 하~~응~~ 늦겠네… 흐~~~응…”
젖가슴을 빨며 엉덩이 뒤에서 손가락으로 보지를 살짝 문지르자 진희가 콧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치… 몰라…
나 이렇게는 못 나가. 오빠가 책임져.”
“하하하…”
어느새 진희는 내 바지를 벗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튕겨져 나온 내 자지를 타고 앉았다.
“무슨 주인님이 개인 비서를 이렇게 소 닭 보듯 해?
총집사님은 전 주인님에게 너무 시달려서 힘들 지경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오빠도 총집사님 무지하게 괴롭혔다면서?
근데 난 뭐야?
시달리기는커녕 오빠 자지가 어떤 맛인지도 잊어버릴 지경이잖아.”
“어허! 이 놈 말하는 거 보게…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야겠다.”
그대로 진희의 엉덩이를 안고 일어서 소파에 함께 쓰러졌다.
보지에 자지를 박힌 채 깔려있는 그녀의 표정이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아~흥…
이제야 제대로 됐네.”
그때 방문이 열리며 희정이 들어섰다.
“회장님…
어? 모야~?
또 둘이서만 재미있는 놀이 하는 거야?”
뭐라고 대꾸할 겨를도 없이 희정이 눈깜짝할 사이에 허물을 벗고 달려들며 진희를 타고 있는 내 상의를 벗겨 낸다.
“주인님, 너무 해요.
저도 같이 끼워 주세요.”
“아~이~씨… 내가 쟤 땜에 못살아~~”
“하하하…
그래 알았다.
대신 다른 애들 다 들어오면 피곤하니까 좀 조용히 하자, 응?”
단순히 일정을 확인하려고 비서를 불렀는데 어느 틈에 질펀한 2대1 섹스 판이 되어버렸다.
장미 장원에서 공수해와 매일 거르지 않고 먹고 있는 보약이 아니었다면 난 벌써 뼈만 앙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아~~ 바로 이 맛이야…”
“허~응~ 주인님… 너무 맛있엉...”
두 여인이 사이 좋게 내 정액을 나누어 먹으며 입맛을 다셨다.
“너희들 때문에 나 일찍 은퇴하게 생겼다.”
“하여튼 엄살은… 앙!”
“아얏!”
진희가 내 자지를 꽉 물어버렸다.
그 모습에 희정이가 깔깔거렸고 그런 그녀들을 쓰다듬어 주고는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희정이는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지?”
“아 참! 내 정신 좀 봐!
아~ 어떡해~~
한 관장님 소개를 받았다고 어떤 여자분께서 전화하셨는데…
어쩌죠? 전화 끊지도 않고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뭐야?
하여튼 이것들을 확 짤라 버릴 수도 없고…”
미샤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주인님, 끝나셨어요?”
“응? 아~ 응… 그래…”
미샤가 대기중인 전화를 받고 대충 얼버무려 놓았던 모양이었다.
“눈치 챘었어? 너도 들어오지 그랬어…”
“호호호… 주인님 일찍 은퇴하시면 안 되잖아요.”
“흠흠… 들었지? 너희도 미샤 반만 따라가봐라.
이것들이 아주 일은 안하고 허구한날 나 잡아 먹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원, 쯧쯧쯧!”
미샤가 깔깔거렸고 진희와 희정은 입술을 씰룩 거리며 눈을 예쁘게 흘겼다.
“전화번호 받아 놨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그래. 바로 연결해 줘.”
“네, 주인님.”
“너희들도 나가 봐.
나른 하다고 농땡이 부릴 생각 말고 일 똑바로 해!
특히 희정이 너 오늘부터 일주일간 나한테 접근 금지야. 알았어?”
“고거 쌤통이다.”
“실장님~~!”
“자자~ 다들 맘 잡고 할 일들 하자고.
오실장! 일하자!”
“네, 주인님. 나가자, 희정아.”
“네, 실장님.”
정신 없는 회오리가 진정되고 전화를 받았다.
한 영숙 관장에게서 소개를 받았다는 여인은 이번에 유학에서 돌아오는 딸의 아파트 인테리어를 부탁하고 싶다며 찾아오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될 무렵 살집이 퉁퉁한 부잣집 부인과 함께 짧은 탱크 탑 나시와 청바지가 정말 잘 어울리는 어린 여자애가 내 방으로 안내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반가워요, 이 회장.
여긴 이번에 미국에서 들어온 내 딸.”
거만함이 몸에 밴 여자였다.
이 여자와 통화를 끝내고 영숙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정보를 입수했었다.
상류층의 메이저는 아니었고 여러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하는 소위 큰손의 부인이었다.
국내에서 현금 동원능력이 가장 뛰어난 몇 사람 중의 하나가 그녀의 남편이었다.
딸이라고 데려온 아이는 중학교 때 조기유학을 보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20살의 나이로 귀국하게 되었다고 했다.
천방지축, 소위 날라리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아휴~ 요즘 애들이 부모 말을 들어 쳐먹어야 말이지.
간섭 받는 거 싫다고 독립하겠다는 데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
강남에 60평짜리 하꼬방 하나 사주고 내 보내려고 그래요.
그래도 사람 사는 꼴은 만들어 주려고 인테리어 업자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한 관장 아우님이 이 회장을 소개시켜줘서 왔어요.”
“네~ 잘 오셨습니다, 사모님.
그럼 우리 레지덴샬 팀장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인터폰 수화기를 들려는 나를 그녀가 제지했다.
“난 이 회장이 직접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랫사람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 회장이 직접 해줘요.”
역시 안하무인의 전형적인 졸부였다.
같이 온 여자애만 아니었어도 그냥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럼 한 관장님 체면도 있으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기본적인 사항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아파트의 위치와 대략적인 취향을 물었다.
무식한 졸부의 마누라는 어디서 들었는지 무조건 최고의 장식재와 가구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거론하고 있었다.
스타일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돈으로 바르면 끝나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그러나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애에게 쏠리고 있었다.
가슴 바로 아래부터 골반까지 훤히 드러난 탱크 탑이 힘겹게 걸려있을 만큼 큰 가슴과 꽉 끼는 스키니 진에 드러난 풍만한 하체까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육체를 가진 아이였다.
자그마한 얼굴에 편견 없이 보면 한 없이 귀여운 표정의 이 아이는 눈을 내리깐 채 계속 꼰 다리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우선 실측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아파트가 여기서 멀지 않으니 지금 가 보실까요?”
“난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렇고 어차피 미진이가 집주인이니 미진이하고 얘기하세요.
그리고 끝나면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죠, 이 회장?”
“네, 그러죠.”
“미진아, 엄마는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볼 테니 여기 이 회장하고 같이 움직이거라.”
여자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건성으로 고개만 까딱였다.
“그럼 잘 부탁해요, 이 회장.”
돌아서는 여인의 뒤 태에도 거만함이 삐져 나온 살집만큼이나 가득 묻어났다.
“살펴 가십시오, 사모님.”
여인이 나가고 방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명 이 아이는 어딘가 잘못 돼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나가 볼까요?”
미진이라는 아이가 고개를 삐죽 쳐들더니 입을 열었다.
“나, 배고파, 아저씨.”
아저씨?
안하무인인 엄마를 그대로 빼다 박은 표정과 말투였다.
“그래? 그럼 먹고 싶은 거 얘기 해봐.
어차피 점심시간도 다 됐으니 밥 먹고 하자.”
“후훗! 말이 통하는 아저씨네?
엄마 아빠 졸졸 따라다니는 찌질이들처럼 나한테 깍듯이 존댓말도 안하고.
일단은 맘에 드네.
그럼 나 떡볶이 사줘.”
떡볶이?
의외의 메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동행 없이 미진이 만을 데리고 얼마 전 한 관장이 선물로 준 빨간 포르쉐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뚜껑 열면 안 돼?”
“그럴까?”
버튼을 눌러 차의 뚜껑을 열었다.
이윽고 건널목 한 귀퉁이에 떡볶이와 오뎅 등을 파는 노점이 보이자 미진이 그 곳을 가리켰다.
“아저씨, 돈 많지?
나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다.
아까우면 엄마한테 디자인비 청구할 때 얹어서 하든지…”
“하하하… 그래 따블로 청구할 테니 맘껏 먹어라.”
매콤한 떡볶이를 오래간만에 먹어본다.
미진이는 떡볶이와 오뎅을 정신 없이 먹어 치웠다.
혼자 3인분을 먹어 치우는 먹성이 밉지 않았다.
“떡볶이를 좋아하는구나.”
“예전에 길에서 사먹다가 엄마한테 들켰었어.
근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먹던 내 친구한테 짜증을 부리지 뭐야.
니가 꼬셔서 우리 애 이런 불량식품 먹였다고.
그때부터 난 왕따였고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
후훗!
그렇다고 혼자는 아니였으니까 불쌍하게 생각할 건 없어.
내 돈, 아니 우리 아빠 돈 때문에 꼬봉들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으니까…”
싸가지 없는 아이의 모습에 감도는 쓸쓸함이 나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고 있었다.
“자~알 먹었다.”
떡볶이를 찍어 먹던 이쑤시개를 빈 쟁반에 툭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 차에 가 냉큼 앉는다.
“뭐해, 아저씨?
빨랑 와.”
계산을 마치고 차를 몰아 미진의 새 아파트에 도착했다.
20살 어린 여자애가 혼자 쓰기에 너무 큰 60평 아파트는 최근에 완공되어 분양된 최고급 아파트였다.
이미 호화로운 마감재로 꾸며져 있어 굳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당장 들어와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냥 깔끔하고 넓게 만들어줘.
가구 같은 거 많이 필요 없고 그 대신 나 영화 보는 거 좋아하니까 홈시어터 시스템은 좀 신경 써 주고.”
“너 몇 살 이지?”
“허! 나이는 왜 물어?
아저씨도 나한테 꼰대 짓 하려고 그래?
열나 짱나네”
“몇 살이야?”
미진의 팔목을 잡으며 얼굴에 표정을 싹 지우고 낮고 단호히 물었다.
“뭐야~? 이거 놔! 안 놔?”
팔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똑바로 미진의 눈을 응시했다.
“스물 꽉 찼어.”
내 단호함에 미진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듯 했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잡았던 팔목을 놓아주고 가방에서 거리를 재는 디지털 스캐너를 꺼내 실측을 시작했다.
“뭐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너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구나.”
“지금 내 말 씹는 거야?
그리고 코딱지 만한 아파트가 넓긴 뭐가 넓다는 거야?
이 아저씨 진짜 지대로 짱나는 꼰대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무시해버리자 미진이 껑충껑충 뛰었다.
흔들리는 풍만한 젖가슴이 보기 좋았다.
난 실측을 하면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 다 됐다.
가자. 집에 데려다 주마.”
“아~ 진짜 이 아저씨 까칠하네~”
“맘에 안 들면 엄마한테 디자이너 바꿔달라고 떼를 쓰던지 맘대로 해라.
난 오늘 실측한 걸 바탕으로 기본계획 세우고 있으마.
금요일까지는 스케줄이 잡혀있으니 토요일 오전에 사무실로 와라.
11시까지 안 오면 없던 일로 하지.”
“허! 허허!”
기가 막힌 듯 미진은 연신 콧바람만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억지로 차에 태워 청담동 주택가 어귀에 내려주고 그대로 돌아서 나와버렸다.
미진은 이제 나의 또 다른 프로젝트가 되어있었다.
사무실에 들러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신디와 함께 한규와 만나기로 한 논현동의 위스키 바로 향했다.
“나 기다리지 말고 그냥 들어가.
친구와 술 한잔 하고 갈 때는 택시 타고 갈 테니까.”
“아니에요, 주인님.
끝나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런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해주고는 돌려보내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를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예전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입고 있는 양복이 나름대로 자리잡은 사내의 위치를 대변하고 있었다.
“안 죽고 살아 있었냐, 새꺄?”
“어!? 나~ 이 자식… 형님 오래간만에 만나놓고 말하는 싸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미친놈… 옛말에 나이 어린 아저씨는 있어도 나이 많은 동생은 없다고 했다.
나보다 2달이나 어린 놈이 형님 무서운 줄 모르다니.”
한규는 정말 달라진 게 없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였지만 스스럼없이 대하는 녀석이 고맙고 반가웠다.
“오냐, 그래.
늙어서 좋겠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잘 사냐?”
“나 이렇게 먹고 산다.”
녀석이 내민 명함엔 성형외과 전문의의 타이틀이 박혀있었다.
“너 의대 갈 때 불안해 보였는데 그래도 졸업은 한 모양이네?
그래 요즘 젖탱이 키워달라고 옷 벗고 덤벼드는 년들 많다는데 오늘 너한테 제대로 접대한 번 받아보자.”
“아~ 나~ 이 씨벌놈…
그래 넌 미국에서 언제 나왔냐?”
“얼마 안 됐어.
오자 마자 너부터 찾았다 임마.”
“기특한 놈.
그래 뭐 해먹고 사냐?”
“그냥 뭐… 전공 살려서 조그만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 하나 차렸어.”
“하하하… 강남 사모님들 여럿 울리겠군, 이 놈이 이거…”
“그래 임마…
그 사모님들 나한테 오기 전에 너한테 가서 이쁜이 수술 받아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다.
헐렁한 아줌마들 재미 없거든……”
“뭐~어? 푸하하……
여전 하구나, 개새끼.”
이런저런 얘기들, 한규의 와이프와 두 아들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등 별다를 것 없는 사내들의 수다를 나누며 스카치 한 병을 다 비웠다.
“야, 일어나자.
오늘 내가 술값 덤터기 쓰는 김에 제대로 쏠 테니 2차 가자.
혼자 사는 놈 회포도 풀어줘야지.”
“2차?
뭐, 어디 좋은데 데려 갈꺼야?”
“너 성형외과 의사들이 얼마나 지저분하게 노는지 모르지?
그런 우리들도 정신 못 차리게 해주는 끝내주는 데가 있지.
나가자.”
걸쳐 놓은 양복 상의와 계산서를 집어 들고 한규가 앞서 나갔다.
“오냐.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망가지는 거 구경 좀 하자.”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는 2차로 향했다.
10장에서 계속…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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