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9부 3장
『 - 사족 -
* 유감스럽게도, 이번 주말에도 9부를 끝내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전쟁씬도 없고 특별히 자극적인 장면도 없는 9부는 그다지 재미있는 대목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전체 스토리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9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시 : 갈림길 / 저주받은 검) - 3장 -
"좋았어! 다섯 마녀를 위하여! 건배! 키킥!"
포도주 취기가 올라 발그레해진 볼을 한 주영이 웃으며 건배를 제안했다.
"마녀라고?"
미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마녀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턱!" "턱!" "턱!"
고운 빛깔의 붉은 포도주를 다시 채운 -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까지 - 여섯 개의 나무 잔들이 가볍게 건배를 하며 부딪쳤다.
약간 독하지만 부드러운 맛의 포도주를 음미하면서, 미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긴 여행으로 너무들 지쳤고, 술까지 조금씩 취했으니.....
내일 맑은 정신으로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어.
오늘은 그만들 일찍 쉬자!"
모두들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영이 카운터의 여관 주인에게 얘기해 방세를 치르고 넓은 방 3개의 열쇠를 받았다.
보통 이런 일을 도맡아 하던 "젖소" 은주는 포도주에 너무 취해서 약간 비틀거리며 매기아러 쟌피르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어리고 귀여운 금발의 클로아는 아예 취한 채 잠이 들어 버려서 수진이 가볍게 안아 들었다.
은주를 부축한 매기아러 쟌피르의 오른손이, 약간 지나칠 정도로 풍만한 은주의 오른쪽 젖가슴 아래쪽을 살짝 주무르는 모습이 이층으로 앞장서서 올라가던 미영의 눈에 얼핏 들어왔다.
"응? 말려야 하나?"
하지만, 다시 보니, 은주는 취하긴 했지만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를 정도로 취한 건 아닌 듯 했다.
"그냥 놔두고..... 주의깊게 소리를 들어보는게 좋겠어."
얕게 한숨을 쉬며 미영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방들이 있는 이층 층계를 올라갔다.
"잘 자, 언니!"
"아가씨" 지선의 옆구리에 왼팔을 두른 주영이 미영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면서 다시 한번 지선의 입에 진하게 키스하는 모습이 보였다.
"으읍! 으으음....."
"휴우....."
자기 방에 들어간 미영이 꽤 넓은 방의 푹신한 침대 위에 던지듯 몸을 뉘었다.
긴 여행과 함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벌써 석달 전.....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보트를 타다 이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 후.....
큰 도시에 가서 메로빙이란 걸 사용하면 멀리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당연히 메로빙은 전화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는 도중에, 도저히 전화기가 있게 생긴 세상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일행들 한 명, 한 명 갖게 된 초월적인 힘.....
결국,..... 랑구르시아시에 도착해서, 메로빙은 역시 전화기가 아니라 마법의 일종이라는 걸 확인했을 뿐 아니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길이 전혀 없다는 막막한 이야기를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 그것도 나머지 다섯 명을 합친 만큼 강한 힘을 가진 - 여검사 재연의 이탈.....
"재연씨는 정말로 이 세계를 정복하려는 걸까?
칼과 활과 마법을 사용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강한 힘을 갖게 됐으니 불가능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미영은 다시 한번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동생과 애인(수진) 등 일행들과 자신은 이제, 몸길이가 삼, 사십 미터는 되는데다 사람을 잡아먹고 말도 할 줄 안다는 랑구르스라는 괴물을 해치우고 사람들을 구해주려고 한다.
"칼을 들고 공룡같은 괴물과 싸운다니....."
미영은 누운 채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눈을 뜨면 다시 원래의 세계에 돌아와 있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스프링 대신 푹신하도록 양털같은 걸 밑에 깔아 놓은 듯한 침대와, 손으로 짠 것 같은 담요, 그리고 전기 스탠드 대신 방을 비추고 있는 탁자위의 기름 램프.....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먼 방안의 모습이, 여기는 다른 세계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잠시후 잠가놓지 않은 문이 열리며 수진이 들어왔다.
"쟌피르씨하고 은주 언니가 같이 있지?
그대로 놔둬도 괜찮을까?"
미영의 물음에, 수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을 거야.
은주 언니가 말도 못할 정도로 취한 건 아니니까.
"실피안!" 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잖아."
침대 위에 편하게 누운 채로 미영이 고개를 저었다.
"은주 언니야 물론 괜찮겠지.
하지만..... 쟌피르씨가 괜찮을지 몰라.
엉큼하고 행동이 좀 가볍지만 나쁜 사람같진 않던데.....
은주 언니가 취해서 힘 조절이 잘 안되면....."
그제야..... 아름드리 나무들을 순식간에 뽑고 오르크의 만오천여 병력을 한꺼번에 밀어버리던,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떠올린 수진이 멈칫 걸음을 멈췄다.
"다시 가서..... 쟌피르씨를 구해올까?"
"일단 놔둬 보자!
지선이가 있으니까, 즉사하지만 않으면 셍뜨 바인(신성한 빛)으로 치료해 줄 수 있을 거야."
약간 무책임한 소리를 하며 미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부드러운 베개에 볼을 기댔다.
한편, 옆방에서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젊은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젖소" 은주를 부축해 침대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왼손을 은주의 등뒤로 돌려 몸을 부축하고, 오른손으로는 몸을 부축하면서 은주의 풍만한 젖가슴을 부드럽게 감싸듯 받치고 있었다.
"많이 취하셨군요, 플로라(은주)씨!
녹색 머리는 종종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처음 봅니다."
킹싸이즈의 넓은 침대 한쪽에 은주와 쟌피르가 나란히 앉았다.
한쪽에서는 포도주에 취한 클로아가 - 수진이 뉘어주고 나간 모습 그대로 -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은주의 긴 연녹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쟌피르의 왼손이 천천히 은주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둘의 입술이 부드럽게 겹쳐졌다.
"으음....."
거부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은주는 쟌피르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잠시 부드러운 키스의 촉감을 즐기던 쟌피르가 눈을 뜨고 양손으로 천천히 편한 반팔 셔츠를 입은 은주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두어 개의 단추를 모두 풀자, 약간 지나치게 풍만한 은주의 젖가슴이 하얀 두 개의 언덕처럼 살짝 위쪽을 드러냈다.
눈을 뜬 은주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쟌피르씨!
하지만..... 저는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어요.
지금은, 다른 세계에 있지만.....
이렇게 빨리는..... 안될 것 같아요."
약간 취한 듯 했지만, 약간 옆으로 째진 은주의 연녹색 눈동자는 쟌피르의 녹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쟌피르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망인(남편이 죽은 여자)이신 걸 몰랐군요.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신다면 너무 가혹하십니다."
역시나,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미영 일행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거나(일부 대화에 대한 기억은 여검사 재연의 최면술 후유증으로 아예 잃었고) 믿지 않아서..... 뭔가 오해를 한 듯 했다.
"실피안!"
고개를 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은주가 말하자, 갑자기 불어온 거센 바람과 함께 이층 방의 창문이 활짝 열려 덜커덕거렸다.
"응?"
쟌피르의 녹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동그래졌다.
"미안해요!
내일 뵈어요!
창으로 해서 내려 드려요!
부드럽게....."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뒷말은 누구에게 얘기한 걸까?" 궁금했던 것도 잠시..... 쟌피르의 몸이 가스를 넣은 풍선처럼 가볍게 뜨더니 그대로 두둥실 활짝 열린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으왁! 으와아아아악!"
바로 옆방 침대에 누워있던 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쟌피르씨 비명소리 맞지?
이제라도 구해주러 갈까?"
나란히 누워서 기분좋게 잠을 청하고 있던 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놀라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을 거야."
놀라운 청력과 존재를 느끼는 감각으로 옆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눈으로 보듯 알고 있는 미영이 웃으며 말하자, 수진이 다시 늘씬한 알몸을 침대에 뉘었다.
단둘이 자게 될 때면, 늘 그랬듯 미영도 수진도 옷을 전부 벗고 있었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레즈비언 섹스를 즐길 기분은 나질 않았다.
졸린 얼굴을 베개에 파묻으며 미영은 생각했다.
"주영이 얘는..... 정말 지치지도 않나 봐!"
"좀더 세게 핥아 봐!
혀를 구멍 안에 넣어! 더!"
옆방에서는 침대위에 주영이 옅은 갈색의 알몸으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었고, "아가씨" 지선 역시 새하얀 알몸인 채로 주영의 다리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양손으로 주영의 성기를 벌린 지선이 혀를 길게 빼서 주영의 성기 구멍 안에 혀를 밀어 넣듯 핥고 있었다.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주영이 몸을 약간 일으켰다.
왼손을 뻗어 지선의 긴 은발 머리채의 뒷머리를 잡고 약간 거칠게 끌어 당겼다.
"아악! 아아아아..... 아파요, 주인님!"
머리채를 잡아당겨져 주영의 몸위에 겹쳐 엎드린 모양이 된 지선의 은빛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하게 괴었다.
약간 그을린 갈색의 피부를 가진 주영에 비해, 지선의 피부는 하얀 우유처럼 마냥 새하R다.
"계속 노숙만 하느라..... 모처럼의 섹스잖아.
내 보지를 핥는 게 싫어?"
붉은 루비같은 둥근 눈동자가 샐쭉한 감정을 담아 지선의 은빛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니요, 주인님!
몸이 너무 지쳐서 그래요. 훌쩍!"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할짜악! 할짝!"
주영의 혀가 지선의 볼을 타고 눈가까지 올라가며 고양이처럼 지선의 눈물을 핥아 먹었다.
"미안! 울지 말아요!
그러면..... 오늘은 내가 봉사해 줄 테니까."
몸을 일으킨 주영이 지선을 대신 침대에 눕혔다.
지선의 새하얀 목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혀를 내밀어 목을 핥기 시작했다.
"으으음....."
이어 고개를 기울여 지선의 부드러운 입술에 키스하고 입술을 부볐다.
지선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자 주영의 혀도 마주 나와 혀끼리 부드럽게 밀고 당기며 엉켰다.
지선의 새하얀 손이 주영의 다리 사이로 향했으나, 주영은 지선의 양손을 잡아 지선의 머리 위쪽에 모아 놓으며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힘드시다면서요? 은발의 아름다운 주인님!
오늘은..... 이 고양이한테 맡겨요.
꼼짝하지 말고....."
주영의 입이 지선의 작지만 귀여운 젖가슴으로 향하더니 부드럽게 작은 분홍빛 젖꼭지를 빨아 당기며 오른손으로는 오른쪽 젖가슴을 쓰다듬듯 애무했다.
"하아..... 아아앙..... 아아....."
이어 입으로는 젖가슴과 목사이를 옮겨다니며 핥고 빨면서, 장난꾸러기 같은 연한 갈색의 손으로 지선의 다리 사이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아아앙..... 아아아앙..... 아아!"
주영이 양손으로 지선의 무릎께를 잡고 지선의 양다리를 활짝 벌렸다.
우유처럼 새하얗고 부드러운 허벅지께부터 천천히 혀로 핥으며 중심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아..... 으응....."
"할짝! 할짝! 할짝!"
"아앙..... 아앙... 아아앙.."
양손 엄지로 지선의 성기를 벌려 부드러워 보이는 붉은 빛이 섞인 분홍색 속살을 드러냈다.
조그맣게 열린 성기 구멍 주위는 이미 흘러내린 애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주영의 혀가 성기 구멍을 파고 들려는 듯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선의 신음소리가 커져갔다.
"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앙....."
얼마후..... 혀를 사용한 주영의 애무에 비교적 쉽게 절정에 달한 지선이 새하얀 알몸을 파닥이듯 몸부림치며 신음했다.
희고 고운 양손이 흥분으로 뾰족하게 선 젖꼭지를 스스로 애무하고 있었다.
"키키킥! 괜찮았어요, 주인님?"
지선의 성기에서 흘러나온 애액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주영이 웃으며 말했다.
오른손으로 얼굴에 묻은 애액을 훔치더니 낼름낼름 혀로 핥기 시작했다.
"아앙..... 아아앙... 너무 좋았어, 주영아!
하아..... 하아....."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는 쾌감에 숨을 헐떡이며 지선이 입을 열었다.
"나 혼자만 즐겨 버려서..... 하아..... 미안해.....
너..... 그러고 있으니까 정말 고양이 같다."
"헤헤헤헤!"
어린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주영이 날씬하면서도 건강해 보이는 옅은 갈색의 알몸을 지선의 새하얀 알몸에 찰싹 붙였다.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게 이 야옹이의 가장 큰 기쁨이에요.
귀여우면 쓰다듬어 주셔요!"
"푸훗!"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린 지선이 - 남자처럼 짧은 길이를 겨우 면한 길이의 - 주영의 붉은 단발머리를 하얀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야옹! 야아옹!"
주영은 지선의 새하얀 알몸에 알몸을 비비며 기분좋게 야옹거리는 소리로 어리광을 부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음날 아침, 미영 일행이 일어나서 식당을 겸한 여관 일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넉살좋은 인사와 함께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입고 있었던 은빛 별무늬가 새겨진 화려한 보라색 로브 대신, 평범한 - 하지만 고급스런 재질의 - 하얀 반팔 셔츠와 갈색 조끼, 갈색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군요."
빵을 스프에 찍어먹고 있던 미영이 웃으면서 마주 인사했다.
"저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시는 대로 오늘의 수업을 시작할까요?"
쟌피르의 말에 주영이 스프를 떠먹던 스푼을 손에 든 채로 입을 열었다.
"일찍 일어나시나 봐요, 아저씨?
흐음..... 나이가 많으면 아침 잠이 없다던데....."
의심스런 표정으로 주름살이라도 없나 찾듯 쟌피르의 얼굴을 살피는 주영을 보고, 쟌피르가 오른손을 뒷머리에 댄 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모습이 제 진짜 모습이 맞답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젖소" 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이라도 쐬려는 듯 여관 문쪽으로 향했다.
살짝 그 옆에 붙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너무 죄송했습니다."
은주가 고개를 저으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야말로..... 너무 놀라게 해서 미안했네요."
식사를 마친 나머지 일행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쟌피르가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제 탑으로들 가시죠.
여관 방보다는 넓고 아늑하답니다."
샹드로 마을에서부터 몰고 온 대형 마차를, 여느 때처럼 주영이 몰고 쟌피르의 탑으로 향했다.
아침 나절에 보는 랑구르시아시는 잘 포장된 돌길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붐비는 과연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석달에 한 번씩 젊은 여자들을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는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궁금한 생각이 든 미영이 마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
"랑구르스에게 바치는 제물은 어떻게 뽑는 거죠?"
클로아, "젖소" 은주와 나란히, 마차안 좌석에 앉아 있던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대답했다.
녹색의 눈에 씁쓸한 감정이 어렸다.
"돈을 주고 사죠.
자발적으로 제물이 되겠다고 나서는 여자에게 영주님이 30,000세테르의 몸값을 치른답니다."
"석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30,000세테르를 받고 죽겠다는 여자를 찾을 수 있었나 보죠?"
은주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랑구르시아시는 20,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굉장히 큰 도시랍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으면 항상 누군가는 빚에 쫓기거나 궁지에 몰려서..... 돈을 받고 자기 목숨을, 또는 딸의 목숨을 내놓게 마련이죠.
30,000세테르라는 돈은 정말로 크거든요.
일반 시민들로서는 평생 안 쓰고 벌어도 모을 수 없을 만큼..... 아니, 아마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말이죠."
씁쓸한 표정으로 쟌피르가 대답했다.
잠시후, 도착한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4층 탑 현관앞에서는 아직도 "영업 안합니다" 라는 의미의 보라색 연기가 바닥에서 솟아올라 하늘로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효과가 전혀 없을지도 모를 정력제 - 카안족의 잘린 성기 - 를 수업료로 준게 속으로 찔렸는지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연기 표시를 해놨네요?"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오른손을 뒷머리에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와하하하하하하하!
천하의 보물을 수업료로 주셨으니 제가 아는 걸 다 가르쳐드릴 때까지는 영업은 쉬어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기아러(마법사)는 꽤 고소득 직업이라서 벌어놓은 돈도 많이 있으니까요."
사나와 보이지만 의외로 마음이 무척 약한 면이 있는 은주가 몹시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넓은 방 하나로 되어 있는 1층의 테이블에 쟌피르와 클로아를 포함한 미영 일행, 모두 일곱 명이 빙 둘러서 의자와 쇼파 등에 나누어 앉았다.
" 플로라(은주)님은 매기아를 몇 가지 알고 계시다고 하셨든가요?
정령사로서도 대단한 실력을 가지신 것 같던데..... 대단하시군요."
어제 저녁 몸소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의 위력을 체험한 쟌피르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어요.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거든요."
"젖소" 은주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영이 개구장이처럼 양손을 뒷머리에 깍지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오늘은 랑구르스를 해치울 계획을 짜기로 하지 않았어, 언니들?"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쟌피르씨!
먼저 랑구르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셔요.
아마 여행의 피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2, 3일은 더 쉬어야 겠지만.....
랑구르시아는 시 외곽 동쪽 숲에 살고 있다고 했던가요?"
매기아러 쟌피르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어제의 얘기는 술자리의 객담(실없는 소리)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여러분이 수백 마리나 되는 밤비르(흡혈귀)들을 해치우고 샹드로 마을을 구해주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와 셍뜨레(성녀), 정령사 겸 매기아러(마법사)..... 긴 도끼를 등에 메고 계신 키 큰 아가씨는 아마 전사겠죠?
다른 분들도 아마 뭔가 특별한 능력들이 있으실테니..... 정말 강하고, 이상적으로 구성된 모험가 집단이시군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요.
솔직하게, 모험가 집단이라기 보다는..... 세상 일을 잘 모르시는 것 같고, 또 고운 외모가..... 세상 구경을 나온 어느 귀족 집안 따님들로 보입니다만.....
어떤 분들이시든 간에..... 랑구르스를 상대로 싸우시는 건 무리입니다.
여러 말씀 드릴 것 없이 며칠 더 여기 계시다가, 다음번 제물을 바칠 때 직접 랑구르스를 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키가 성벽보다도 클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물을 상대로 싸운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죠.
드래곤 슬레이어(용을 베어죽인 자)는 전설에서는 나오지만..... 실제로는 가능한 얘기가 아닙니다."
"휴우....."
미영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는 미영 일행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말을 믿기 어려워 하는 듯 했다.
"하긴 누군가 갑자기 자기는 4차원에서 왔다고 주장했다면..... 이 세계에 오기 전의 나라도 아마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이 돌바닥 아래쪽도 돌인가요?"
미영의 갑작스런 질문에 매기아러 쟌피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예, 튼튼한 큰 바위라서 헐값에 사서 탑을 쌓았답니다.
일반 집을 짓기에는 사실 마땅치 않거든요.
"채앵!"
의자에서 일어서며, 가벼운 동작으로 긴 칼을 빼든 미영의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변하면서 칼날이 눈부실 정도로 새파랗게 빛났다.
"우와앗!"
갑작스런 강한 빛에 놀란 쟌피르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렸다.
"푸우욱!"
아주 가벼운 소리와 함께 70센치가 조금 넘는 칼날이 칼받침이 닿을 정도로 깊숙히 돌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미영이 바닥에 주저 앉으면서 오른손 한 손만으로 칼자루를 잡은 채 바닥에 박아넣은 것이다.
"여기가 랑구르스의 목이나 머리였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평범한 칼인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돌바닥에 박히다니 놀랍군요.
하지만....."
뭐라고 항의하려던 매기아러 쟌피르가 -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 미영의 모습이 흔들리는 듯 하다가 없어져 버리자 당황해서 말을 멈췄다.
"툭!"
어느새 쟌피르의 뒤에 선 미영이 쟌피르의 어깨에 가볍게 오른손을 얹고 있었다.
크고 동그란 눈이 인상적인 얼굴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미영이 환한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동생인 쥬리아(주영)는 저보다도 훨씬 더 빠르죠.
수잔(수진)은 저보다 훨씬 힘이 세구요.
그리고..... 수잔이 어깨에 메고 있는 무기는 저주받은 검 그랑데르(위대함)를 만든 나잉족 무챠바크가 만든 도끼에요.
이름이 같은 나잉족이 또 있는게 아니라면요.
물론..... 랑구르스의 목이나 머리를 칠 수 있어야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되겠죠.
하지만..... 플로라(은주) 언니의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리면 그 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게다가..... 즉사하지만 않으면 쟈넷(지선)이 신성력으로 치료해줄 수 있어요."
보여주려는 듯..... "아가씨" 지선이 도자기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쳐들자 방안에 녹색의 태양이라도 생겨난 것처럼 환한 녹색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방안을 구석구석까지 온통 녹색으로 물들였다.
수진이 등뒤로 손을 뻗어 도끼자루와 도끼날 모두 칠흑처럼 검은 빛의 길고 육중한 도끼를 내려 보여 주었다.
"툭!"
갑자기 왼쪽 볼을 가볍게 치는 부드러운 감촉에 매기아러 쟌피르가 몸을 움찔했다.
긴 쇼파에서, 쟌피르의 바로 맞은 편에 앉은 미영의 옆 자리에 - 그러니까 쟌피르와는 거의 테이블을 사이에 둔 자리에 - 앉아 있는 주영이 장난스럽게 오른손을 까닥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른손으로 살짝 건드렸어요, 아저씨!"
"툭"
이번에는 오른쪽 볼을 가볍게 치는 느낌에 매기아러 쟌피르가 다시 몸을 움찔했다.
"이번에는 왼손..... 헤헤!"
쇼파에 꼼짝하지 않고 앉은 채로 주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죠?"
"아저씨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여서 아저씨 볼을 살짝 건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은 거에요.
안 믿어져요?"
미영과 똑같은 느낌의 크고 동그란 눈동자를 장난스런 빛으로 반짝이던 주영의 오른손 위에 갑자기 마법처럼 굵은 땔감 나무토막 하나가 나타났다.
"저 옆에 있는 벽난로에서 집어온 거에요."
주영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꽤 떨어진 탑 한쪽 벽의 벽난로 안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공격!"
"털퍼덕! 털퍽!"
주영의 오른손 손가락 끝에서 손톱들이 길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꽤 굵은 나무토막이 깨끗하게 여섯 토막으로 잘려나가 테이블 위를 굴렀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젊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질린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미영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믿으시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네 세계의 누군가가 우리를 소환하는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소환되어 왔죠.
소환된 장소는 어느 조그만 산골 마을이었고, 여기 오면 우리 세계와 연락해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틀린 것 같군요.
랑구르스를 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랑구르스를 해치우려고 하고,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우리를 도와 주세요.
우리는 랑구르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세계 자체에 대해서도 아직 알고 있는게 별로 없긴 마찬가지지만....."
매기아러 쟌피르가 꿀꺽 군침을 삼켰다.
"제가 아는 한, 소환 매기아(마법)에 대한 지식은 이미 몇백 년전에 단절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소환 매기아의 용도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의 소환이죠."
미영의 말에 쟌피르의 녹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사실, 어제 쟌피르 자신이 해준 얘기였지만, 여검사 재연의 최면술 후유증으로 쟌피르는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소환자가 우리를 소환한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 세계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니까요."
"소환된 사람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미영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 재연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듯한 - 쟌피르에게 그런 얘기를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랑구르스의 퇴치를 원해요."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몇 번이나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미영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일행들과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매기아러 쟌피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태초에 여러 신들이 물, 불, 바람, 흙의 4가지 원소를 모아 평평한 이 세계 위스토아를 창조한 후....."
"흐음..... 둥근 세계가 아니구요?"
주영이 검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빼며 끼어들자, 미영이 주영에게 고개를 저어 말렸다.
계속 해달라는 뜻으로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멈췄던 매기아러 쟌피르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더 이상 이 세계에 머무르지 못하고 신계로 돌아가야 했던 신들은 그들 대신 위스토아를 수호할 존재로서 드래곤이라는 존재들을 만들었습니다.
날개와 뿔이 달린 거대한 도마뱀의 모습을 한 드래곤들은 신들 다음으로 우월한 육체와 지성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들로서..... 이 세계를 보호하고 지나치게 균형이 깨지는 것을 막을 책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 드래곤들은 또한 매기아(마법)의 창조자로서, 육체적으로는 비교적 약하지만 지성을 가진 존재들, 인간, 엘루시, 오르크 등에게 매기아를 전수해 주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들과 같은 불멸불사의 존재는 아니었던 드래곤들이 대를 거듭해 가면서, 그들의 세계의 수호자로서의 의식은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중에는 세계의 수호자라는 의식 따위는 전혀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드는 자들까지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룡이라는 존재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룡들은 말그대로 드래곤이면서도 드래곤이 아닌 존재..... 드래곤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들중 하나 또는 상당수를 갖지 못한 존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요컨데, 아룡은 원래의 드래곤들에 비해서는 약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여전히 두렵고 벅찬 존재입니다.
때로는 드래곤과는 관계없는 거대한 괴물 뱀이 아룡이라고 잘못 불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랑구르스는 매우 전형적인 아룡입니다.
블라키(검은) 드래곤과 거의 유사해 보이는 외모의 거대한 덩치와 매우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죠.
다행히도 그외에는 드래곤다운 면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해서..... 날개가 없고, 따라서 날지도 못하며, 독안개나 불을 뿜는 능력도 없고, 심지어는 매기아(마법)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대신 드래곤들도 갖고 있지 못한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 이전에도 한 차례 말씀드린 바 있지만 - 랑구르스에게는 그 어떠한 매기아도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자랑하듯, 오른손 손톱을 30센치 길이로 늘린 채로 훑어 보면서 주영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랑구르스가 사는 위치를 자세히 말씀해 주셔요, 아저씨!
2, 3일 푹 쉰 뒤에 바로 쳐들어갈 수 있게요."
어깨를 움찔해 보인 쟌피르가 대답했다.
"저도 물론 가본 적은 없습니다만, 랑구르시아시의 동쪽 숲속 깊숙히 들어가면 작은 바위산이 나온다고 합니다.
랑구르스는 그 바위산 안의 거대한 동굴 안에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영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한 활이나 쇠뇌는 랑구르스의 가죽을 뚫을 수 있다고 했던가요?
랑구르시아시 병사들이 활과 쇠뇌를 갖고 같이 싸워주게 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들만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싸움이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 따위 필요없어, 언니!
우리들만으로 충분해!"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어린 주영이 자신있게 장담했으나, 신중한 성격의 미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매기아러 쟌피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현 영주님은 근본적으로 군인 타입이 전혀 아닌 데다가 나이도 많고 소심해서 그런 도움을 얻으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랑구르스의 퇴치라고 용건을 말씀하셔서는 아마 만나주지 조차 않을 겁니다.
도움을 얻으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쪽 숲속의 랑구르스의 소굴로 쳐들어가는 대신, 제물을 바치는 날 랑구르스가 나오기를 기다려서 싸우시는 겁니다.
설사 영주님이 나서지 않더라도 그 날은 병사들은 물론 많은 일반 시민들도 활이나 쇠뇌, 창을 가지고 있으니 호응을 얻을 수도 있거든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운데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물을 바치는 자리에 무기를 가져가는 걸 랑구르스가 허락을 한단 말인가요?"
갈색 조끼의 단추를 쓰다듬으며 매기아러 쟌피르가 한숨을 쉰 후 대답했다.
"허락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랑구르스의 뜻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지난 240여 년간 계속 그랬다고 합니다."
"전혀 이해가 가질 않네요."
고개를 젓는 은주에게, 우울한 표정으로 쟌피르가 설명했다.
"[갖.고. 있.는. 무.기.를. 전.부. 갖.고. 나.와.라.
사.정.이. 없.는. 한. 성.인. 남.자.는. 반.드.시. 전.부. 나.와.야. 한.다.]
약 240년 전에 랑구르스는 그렇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죠.
손에 무기를 든 채, 거대한 괴물이 제물인 어린 여자를 잘근잘근 씹으며 잡아먹는 모습을..... 두려움과 무력감에 떨며 보게 만드려는 겁니다.
40여 년전부터는 거기에 저주받은 검 "그라페르(쓰레기)"가 추가됐죠.
성인 남자들만 만여 명이나 손에는 활이며 창을 들고, 바닥에는 대형 쇠뇌들을 열지어 놓고.....
바위에는 뽑히지 않는 검 "그라페르"를 꽂아놓은 채로.....
절망감과 무력감에 떠는거죠."
"키키키키킥!"
재미있다는 듯 주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영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들어서..... 아니, 아마도 드로인 마을에서 숲의 수호신 카안족들과 마을 처녀들을 살해한 괴물 사냥꾼들 14명을 한꺼번에 처치해 버린 이후부터..... 동생인 주영에게서는 종종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4부 내용 참조)
지금도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고양이처럼 빛내면서 주영은 그렇게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괴물이네!
다음번 제물을 바치는 날이 언제죠?
그 날 죽여 버리자!"
이마에 늘어진 연녹색의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뒤로 넘기며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날 갑자기 생전 처음보는 낯선 여자들이 달려 나온다고 해서.....
병사들과 일반 시민들이 도와줄지는 의심스러운데....."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영도 대답했다.
"그리고..... 설사 거절당하더라도, 영주님에게도 랑구르스를 퇴치하겠다고 말하고 협조를 요청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쟌피르씨 말대로 아예 만나주지도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멋으로, 시늉처럼 약간 기른 갈색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젊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입을 열었다.
"병사들을 포함해서 랑구르시아시 시민들 모두에게 여러분을 널리 알리고.....
영주님을 대면하고.....
이 두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금..... 아니, 많이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요."
......................................................................................................................
"무술대회라..... 상대방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건 좋지만, 그러면 실격이라니..... 시시한 대회일 것 같아!"
"주영아!"
마부석에서 말을 몰면서 동생 주영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미영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무술대회라니..... 그런 건 처음 봐요!
재미있겠다!"
어린 클로아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마냥 즐겁고 재미있어 하는 듯 했다.
"무려,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답니다."
같이 대형 마차에 탄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설명에 미영이 입을 열었다.
"40년이라면....."
미영의 추측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쟌피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전 영주님이 홧병으로 돌아가시기 직전 만든 대회가 이어져 오는 거죠.
우승자는 그라페르(쓰레기)를 뽑아보는 것이 관례입니다.
누군가가 그 저주받은 검을 바위에서 뽑아줄 것을 바란, 전 영주님의..... 아니, 아마도 랑구르시아시 시민들 모두의 염원이 담겨있는 대회죠.
당연히..... 아직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요."
"하지만, 꼭 나가야 돼!
우승 상금이 20,000세테르나 된다잖아!
준우승도 5,000세테르나 준다구요?"
"젖소" 은주가 약간 옆으로 찢어진 연녹색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신이 난 듯한 음성이었다.
은주의 풍만한 가슴을 힐끔거리다가 멋적은 듯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매기아러 쟌피르가 대답했다.
"예! 8강까지 올라간 사람들까지 상금이 주어집니다.
4강까지 오른 사람들은 각각 2,000세테르, 8강까지 오른 사람은 각각 1,000세테르씩이죠.
요즘같은 전란의 시대에는 우수한 용병이며 인재를 모으기 위한 무술대회가 여기저기서 많이 열립니다만.....
랑구르시아시의 이 대회만큼 상금이 큰 무술대회는 제가 아는 한 없답니다.
최소한 정식 아미트(기사)들이 거의 참가하지 않는, 거의 용병들만을 위한 대회로서는 말이죠."
"흐음..... 아미트(기사)들은 왜 참석하지 않죠?"
마부석의 주영이 목소리를 높여서 물었다.
그럴 필요는 사실 전혀 없었지만, 주영의 뛰어난 청력을 모르는 쟌피르가 역시 큰 소리로 소리치듯 대답했다.
"죽이면 실격이라는 것 외에는, 그리고 매기아(마법)와 독의 사용은 금지되지만..... 그 외에는 무기나 수법의 제한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뭔가 치사한 수법에 당해서 지기라도 하면 체면이 깎이거든요.
하지만, 20,000세테르는 보통의 용병들에게는 평생 목숨을 걸고 용병생활해도 모으기 힘든 거액이죠.
1년에 꼭 한 번 뿐이지만, 대회가 열릴 때면 랑구르시아시 전체가 용병들로 북적거린답니다.
사실..... 상당수의 용병들은 대회 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대회에 참석하는 실력있는 용병들이 거느린 부하들이거나 그 동료들로서 따라오는 거지만요.
한편으로는..... 용병들이 찾아와서 뿌리는 돈으로, 그리고 상인들에게 일정 비율로 받는 세금이며 이런저런 명목으로 걷어들이는 돈들때문에..... 랑구르시아시의 무술대회는 상금으로 돈을 쓰는 대회가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벌어들이는 대회라는 말도 있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 말을 듣고 보니..... 거리에서 긴 칼이며, 도끼, 철퇴 등을 든 덩치 큰 남자들의 모습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드로인 마을에서 봤던 괴물 사냥꾼이라는 자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에, 미영이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물었다.
"저런 사람들은 상당히 거칠텐데..... 이 맘때면 경비병들이 고생하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매기아러 쟌피르가 대답했다.
"랑구르시아시에는 약 2,000명의 경비 및 치안담당 병사들이 있어서.....
요즈음은 보통 20,000명이 조금 안되는 수준인, 총 인구에 비해서는 적지 않은 병사들을 갖고 있지만.....
무술대회 전후해서는 항상 인력이 모자란 느낌이랍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은 부유한 도시인 반면에, 꽤 거친 곳입니다.
금광에서 대박을 노리고 오는 뜨내기들이 많죠.
사실 금광은 전부 영주님 소유지만요."
"젖소" 은주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 영주는 대단한 부자겠군요."
"원래..... 앙리아 남작 가문은 귀족 가문인 동시에 학자로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돈은 별로 없는 가난한 귀족이었다고 합니다만.....
약 250년 전에 그 조상들중 한 분이 대대로 내려오는 영지인 이 곳에서 금광을 찾아냈다고 하죠.
그 뒤로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작은 영주령 마을이었던 앙리아는 앙리아시라고 불릴 만큼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그 얼마후, 랑구르스가 나타나면서 지금은 랑구르시아시로 이름까지 바뀌었지만요."
"워! 워!"
어느새, 무술시합이 열린다는 도시의 중앙 광장에 도착했는지 주영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랑구르시아시의 중앙 광장은 바닥이 두꺼워보이는 돌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 지름이 적어도 50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단히 큰 광장이었다.
항상 20,000에 달하는 인구가 산다는 - 이곳 위스토아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 대도시의 광장다운 모습이었다.
비록 그 거의 대부분을 목재로 지은 원형의 경기장이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경기장이라야 사실..... 원래, 바닥이 돌인 광장 중앙에 지름 100여 미터 정도의 동그란 터를 남겨 놓고, 주위에 시민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층층히 나무 계단을 동그랗게 쌓아올린 것 뿐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삼천 명은..... 빽빽하게 앉으면 그보다 더 많이 동시에 대회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커서.....
미영 일행이 이 세계에 온 이래로 처음 보는 대형 건축물이었다.
아마도 자주 있지는 않겠지만 무술시합 이외에 시의 각종 행사 등에도 사용될 듯 했다.
원형 경기장 입구 근처에 대형 보라색 천막 하나가 쳐 있었는데 거기서 무술시합 참가신청을 받아준다고 했다.
"지금은 대회가 불과 5일 앞이기 때문에..... 멀리서 와야 하는 대부분의 용병들은 신청을 마쳤을 겁니다.
일주일 전후로 해서 신청도 꽤 붐빈다더군요."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설명과 함께 미영 일행은 대형 마차에서 내려섰다.
"마차를 맡아주는 비용은 1세테르요."
다가온 병사 두 명에게 "젖소" 은주가 돈을 꺼내 주었다.
아예, 마차며, 말을 맡아주는 담당 병사들까지 있는 듯 했다.
"참가 신청은 잠깐이면 될텐데 돈까지 받다니 너무 하잖아!"
은주가 긴 연녹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뒤로 넘기며 투덜거렸다.
보라색 천막에 들어서자, 두 명의 병사들이 따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미영 일행을 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책상을 앞에 놓고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금속제 흉갑옷(가슴과 몸통을 가리는 갑옷)과 위쪽이 뾰족한 금속제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혹시, 아가씨들도 무술시합에 참가하러 온 건가요?"
병사들중 한 사람이 물었다.
"예! 전부 다는 아니지만요."
미영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사람좋아 보이는 인상의 그 병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아마 호기심에 들른 귀족 아가씨들인가 보군요.
여긴 아주 무서운 대회이니 잘못하면 크게 다칩니다."
"걱정말고 신청을 받아주셔요.
저는 미리어 시엔(신미영)입니다."
미영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처음 말을 꺼냈던 병사가 이름을 받아 적으며 대답했다.
"참가비도 1인당 50세테르나 됩니다.
실력없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참가하는 걸 막기 위해서죠.
그래도 참가하실 건가요?"
"예!"
미영이 대답하며 은주를 쳐다보자, 은주가 돈이 아깝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세르농은 뭘로 하실 건가요?"
"세르농이요?"
이 나라, 아니 이 세계 말에 꽤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듣는 말에 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서 있던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설명했다.
"이름외에 별도로 불리길 원하는 이름 말씀입니다."
"흐음..... 보통은 뭘로 하는데요?"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묻는 주영에게, 아직 젊은 그 병사가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까지 가장 많은 세르농(별칭)은 블라키 다쓰(검은 죽음)였답니다."
"촌스럽다."
주영이 감상을 말하는 가운데, 미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저는 이미 있어요.
셍뜨 아미트레 데 골쥬앙(금발의 여 성기사)이라고 적어 주세요."
화려한 세르농(별칭)을 들은 두 명의 병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색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그리고 - 여검사 재연이 빠진 지금은 - 전원이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미영 일행을 다시 한번 둘러 보았다.
"꿀꺽!"
침을 삼킨 후, 계속 접수를 받던 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샹드로 마을을 밤비르(흡혈귀)들로부터 구해주신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 일행분들이신가요?"
"예, 맞아요."
신비롭게까지 보이는 동그랗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미영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두 명의 병사들 모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을 모아 외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몰라뵈어서 크게 실례했습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헤헤! 우리 꽤 유명한가봐!
다들 알게!"
주영이 웃으면서 기분좋은 표정으로 얘기하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샹드로는 많은 목재를 공급하는 꽤 큰 마을이니까요.
여섯 분 모두 대단히 아름다운 분들이시라더니 정말 그렇군요."
"여섯 분?"
샹드로 마을에 있을 때의 여섯 명이라면 그 이후 볼피아 마을에서 합류한 금발의 클로아가 아니라 여검사 재연을 포함한 인원을 말하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 명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미영은 생각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쥬리아 시엔(신주영)이에요.
세르농(별칭)은 까슈 데 레쥬앙(붉은 머리의 고양이)!"
"호오!"
다시 의자에 앉은 두 명의 병사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잘 어울리는 귀여운 세르농이로군!"
생각하는 듯 했다.
"수잔 리이(이수진).
세르농은 보어 데 브라우니앙(갈색 머리의 멧돼지)!"
"호오!"
두 명의 병사들이 다시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키가 크고 터프하게 생긴 아가씨가 세르농도 참 터프하군!"
생각하는 듯 했다.
"저는 플로라 바카스(박은주)에요.
세르농은 플로 데 그리니앙(녹색 머리의 젖소)!"
"호오!"
두 명의 병사들이 다시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샹드로 마을의 세비레(구원자)로 명성이 꽤 높은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의 일행이라니 차마 대놓고 웃지는 못하는 듯 했다.
아마도, 무술대회 참가자가 이런 별칭을 사용하는 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 아마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 것이다.
"에엥! 은주 언니도 참가할 거에요?"
주영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미영도, 수진도, 지선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매기아(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무술대회에 무술과는 거리가 먼 은주가 참석한다니.....
"물론이지! 8강까지 상금이 있다잖아!
우리가 1, 2, 3, 4등을 하면 총 29,000세테르나 된다구!"
이미 당연히 우승한 것처럼 말하는 은주였다.
"와아! 엄마! 너무너무 멋져요!"
금발의 클로아가 신이 나서 감탄하며 은주의 팔에 매달렸다.
"언니는 참가 안해?"
주영의 질문에 아가씨 은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할줄 아는 건 치료밖에 없는데,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 치료하고 또 치료하고 이렇게 인간 샌드백이 되라는 거야?"
"흐음..... 그런가?"
"참, 확인차 신분증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병사들중 한 명의 정중한 요청에 미영이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신분증은 당연히 없었지만, 성문을 통과하면서 처음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을 때는 여검사 재연이 최면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신분증이 필요 없었다.
"그게..... 지금 신분증이 없어요."
미영의 대답에 난감한 표정을 지은 병사가 대답했다.
"뭐 소문으로 들은 바 대로의 외모이시니, 신분은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만.....
혹시 신분증이 없다면 꼭 만들어 두십시오.
성밖의 간이 사무실에서 신청하고 기다리시면 3일은 걸리지만, 광장 밖 서기 사무실에서 서기를 직접 만나시면 바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여기 무술대회 참가신청 접수증도 가져 가십시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단추가 많이 달린 검은 옷을 입은 서기가 일행의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에 서명을 해서 내주면서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고 말씀하시니..... 출생지는 랑구르시아시로 기재하겠소.
옆집의 대장간에 이 종이를 주시오.
1인당 3세테르요."
그리고..... 옆의 대장간에 1인당 다시 5세테르를 지불한 끝에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의 메달같은 청동제 신분증을 가질 수 있었다.
랑구르시아시에서는 정말 뭐든지 돈이 들었다.
클로아가 읽어준 바에 따르면 미영의 신분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미리어 시엔. 키 3헥사 2토르 반(162센치). 금발. 금빛 눈. 랑구르시아시 태생."
(1헥사 = 약 50센치, 1토르 = 약 5센치)
자기 신분증을 신기한 듯 들여다 보면서 주영이 입을 열었다.
"흐음..... 이런 청동 메달 정도는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겠다.
가명으로 몇 개씩 만들 수도 있겠고....
이런 걸 왜 만들라고 하는 거야?"
"서기 사무소를 통해서 현재 이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 전원의 이름과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보관된답니다.
그걸 근거로 영주님이 세금을 물리고, 개략적인 인구를 파악하죠.
서기가 한 명뿐이니 한 사람이 가명으로 여러 개를 만들 수는 없답니다.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서기의 서명 없이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대장장이는 없을 겁니다.
가짜 신분증 제조는 중죄로서 엄청난 벌금을 물고 시에서 쫓겨나게 될테니까요."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설명해 주었다.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9부 3장
『 - 사족 -
* 유감스럽게도, 이번 주말에도 9부를 끝내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전쟁씬도 없고 특별히 자극적인 장면도 없는 9부는 그다지 재미있는 대목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전체 스토리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9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시 : 갈림길 / 저주받은 검) - 3장 -
"좋았어! 다섯 마녀를 위하여! 건배! 키킥!"
포도주 취기가 올라 발그레해진 볼을 한 주영이 웃으며 건배를 제안했다.
"마녀라고?"
미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마녀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턱!" "턱!" "턱!"
고운 빛깔의 붉은 포도주를 다시 채운 -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까지 - 여섯 개의 나무 잔들이 가볍게 건배를 하며 부딪쳤다.
약간 독하지만 부드러운 맛의 포도주를 음미하면서, 미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긴 여행으로 너무들 지쳤고, 술까지 조금씩 취했으니.....
내일 맑은 정신으로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어.
오늘은 그만들 일찍 쉬자!"
모두들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영이 카운터의 여관 주인에게 얘기해 방세를 치르고 넓은 방 3개의 열쇠를 받았다.
보통 이런 일을 도맡아 하던 "젖소" 은주는 포도주에 너무 취해서 약간 비틀거리며 매기아러 쟌피르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어리고 귀여운 금발의 클로아는 아예 취한 채 잠이 들어 버려서 수진이 가볍게 안아 들었다.
은주를 부축한 매기아러 쟌피르의 오른손이, 약간 지나칠 정도로 풍만한 은주의 오른쪽 젖가슴 아래쪽을 살짝 주무르는 모습이 이층으로 앞장서서 올라가던 미영의 눈에 얼핏 들어왔다.
"응? 말려야 하나?"
하지만, 다시 보니, 은주는 취하긴 했지만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를 정도로 취한 건 아닌 듯 했다.
"그냥 놔두고..... 주의깊게 소리를 들어보는게 좋겠어."
얕게 한숨을 쉬며 미영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방들이 있는 이층 층계를 올라갔다.
"잘 자, 언니!"
"아가씨" 지선의 옆구리에 왼팔을 두른 주영이 미영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면서 다시 한번 지선의 입에 진하게 키스하는 모습이 보였다.
"으읍! 으으음....."
"휴우....."
자기 방에 들어간 미영이 꽤 넓은 방의 푹신한 침대 위에 던지듯 몸을 뉘었다.
긴 여행과 함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벌써 석달 전.....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보트를 타다 이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 후.....
큰 도시에 가서 메로빙이란 걸 사용하면 멀리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당연히 메로빙은 전화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는 도중에, 도저히 전화기가 있게 생긴 세상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일행들 한 명, 한 명 갖게 된 초월적인 힘.....
결국,..... 랑구르시아시에 도착해서, 메로빙은 역시 전화기가 아니라 마법의 일종이라는 걸 확인했을 뿐 아니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길이 전혀 없다는 막막한 이야기를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 그것도 나머지 다섯 명을 합친 만큼 강한 힘을 가진 - 여검사 재연의 이탈.....
"재연씨는 정말로 이 세계를 정복하려는 걸까?
칼과 활과 마법을 사용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강한 힘을 갖게 됐으니 불가능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미영은 다시 한번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동생과 애인(수진) 등 일행들과 자신은 이제, 몸길이가 삼, 사십 미터는 되는데다 사람을 잡아먹고 말도 할 줄 안다는 랑구르스라는 괴물을 해치우고 사람들을 구해주려고 한다.
"칼을 들고 공룡같은 괴물과 싸운다니....."
미영은 누운 채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눈을 뜨면 다시 원래의 세계에 돌아와 있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스프링 대신 푹신하도록 양털같은 걸 밑에 깔아 놓은 듯한 침대와, 손으로 짠 것 같은 담요, 그리고 전기 스탠드 대신 방을 비추고 있는 탁자위의 기름 램프.....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먼 방안의 모습이, 여기는 다른 세계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잠시후 잠가놓지 않은 문이 열리며 수진이 들어왔다.
"쟌피르씨하고 은주 언니가 같이 있지?
그대로 놔둬도 괜찮을까?"
미영의 물음에, 수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을 거야.
은주 언니가 말도 못할 정도로 취한 건 아니니까.
"실피안!" 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잖아."
침대 위에 편하게 누운 채로 미영이 고개를 저었다.
"은주 언니야 물론 괜찮겠지.
하지만..... 쟌피르씨가 괜찮을지 몰라.
엉큼하고 행동이 좀 가볍지만 나쁜 사람같진 않던데.....
은주 언니가 취해서 힘 조절이 잘 안되면....."
그제야..... 아름드리 나무들을 순식간에 뽑고 오르크의 만오천여 병력을 한꺼번에 밀어버리던,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떠올린 수진이 멈칫 걸음을 멈췄다.
"다시 가서..... 쟌피르씨를 구해올까?"
"일단 놔둬 보자!
지선이가 있으니까, 즉사하지만 않으면 셍뜨 바인(신성한 빛)으로 치료해 줄 수 있을 거야."
약간 무책임한 소리를 하며 미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부드러운 베개에 볼을 기댔다.
한편, 옆방에서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젊은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젖소" 은주를 부축해 침대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왼손을 은주의 등뒤로 돌려 몸을 부축하고, 오른손으로는 몸을 부축하면서 은주의 풍만한 젖가슴을 부드럽게 감싸듯 받치고 있었다.
"많이 취하셨군요, 플로라(은주)씨!
녹색 머리는 종종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처음 봅니다."
킹싸이즈의 넓은 침대 한쪽에 은주와 쟌피르가 나란히 앉았다.
한쪽에서는 포도주에 취한 클로아가 - 수진이 뉘어주고 나간 모습 그대로 -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은주의 긴 연녹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쟌피르의 왼손이 천천히 은주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둘의 입술이 부드럽게 겹쳐졌다.
"으음....."
거부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은주는 쟌피르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잠시 부드러운 키스의 촉감을 즐기던 쟌피르가 눈을 뜨고 양손으로 천천히 편한 반팔 셔츠를 입은 은주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두어 개의 단추를 모두 풀자, 약간 지나치게 풍만한 은주의 젖가슴이 하얀 두 개의 언덕처럼 살짝 위쪽을 드러냈다.
눈을 뜬 은주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쟌피르씨!
하지만..... 저는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어요.
지금은, 다른 세계에 있지만.....
이렇게 빨리는..... 안될 것 같아요."
약간 취한 듯 했지만, 약간 옆으로 째진 은주의 연녹색 눈동자는 쟌피르의 녹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쟌피르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망인(남편이 죽은 여자)이신 걸 몰랐군요.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신다면 너무 가혹하십니다."
역시나,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미영 일행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거나(일부 대화에 대한 기억은 여검사 재연의 최면술 후유증으로 아예 잃었고) 믿지 않아서..... 뭔가 오해를 한 듯 했다.
"실피안!"
고개를 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은주가 말하자, 갑자기 불어온 거센 바람과 함께 이층 방의 창문이 활짝 열려 덜커덕거렸다.
"응?"
쟌피르의 녹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동그래졌다.
"미안해요!
내일 뵈어요!
창으로 해서 내려 드려요!
부드럽게....."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뒷말은 누구에게 얘기한 걸까?" 궁금했던 것도 잠시..... 쟌피르의 몸이 가스를 넣은 풍선처럼 가볍게 뜨더니 그대로 두둥실 활짝 열린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으왁! 으와아아아악!"
바로 옆방 침대에 누워있던 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쟌피르씨 비명소리 맞지?
이제라도 구해주러 갈까?"
나란히 누워서 기분좋게 잠을 청하고 있던 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놀라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을 거야."
놀라운 청력과 존재를 느끼는 감각으로 옆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눈으로 보듯 알고 있는 미영이 웃으며 말하자, 수진이 다시 늘씬한 알몸을 침대에 뉘었다.
단둘이 자게 될 때면, 늘 그랬듯 미영도 수진도 옷을 전부 벗고 있었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레즈비언 섹스를 즐길 기분은 나질 않았다.
졸린 얼굴을 베개에 파묻으며 미영은 생각했다.
"주영이 얘는..... 정말 지치지도 않나 봐!"
"좀더 세게 핥아 봐!
혀를 구멍 안에 넣어! 더!"
옆방에서는 침대위에 주영이 옅은 갈색의 알몸으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었고, "아가씨" 지선 역시 새하얀 알몸인 채로 주영의 다리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양손으로 주영의 성기를 벌린 지선이 혀를 길게 빼서 주영의 성기 구멍 안에 혀를 밀어 넣듯 핥고 있었다.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주영이 몸을 약간 일으켰다.
왼손을 뻗어 지선의 긴 은발 머리채의 뒷머리를 잡고 약간 거칠게 끌어 당겼다.
"아악! 아아아아..... 아파요, 주인님!"
머리채를 잡아당겨져 주영의 몸위에 겹쳐 엎드린 모양이 된 지선의 은빛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하게 괴었다.
약간 그을린 갈색의 피부를 가진 주영에 비해, 지선의 피부는 하얀 우유처럼 마냥 새하R다.
"계속 노숙만 하느라..... 모처럼의 섹스잖아.
내 보지를 핥는 게 싫어?"
붉은 루비같은 둥근 눈동자가 샐쭉한 감정을 담아 지선의 은빛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니요, 주인님!
몸이 너무 지쳐서 그래요. 훌쩍!"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할짜악! 할짝!"
주영의 혀가 지선의 볼을 타고 눈가까지 올라가며 고양이처럼 지선의 눈물을 핥아 먹었다.
"미안! 울지 말아요!
그러면..... 오늘은 내가 봉사해 줄 테니까."
몸을 일으킨 주영이 지선을 대신 침대에 눕혔다.
지선의 새하얀 목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혀를 내밀어 목을 핥기 시작했다.
"으으음....."
이어 고개를 기울여 지선의 부드러운 입술에 키스하고 입술을 부볐다.
지선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자 주영의 혀도 마주 나와 혀끼리 부드럽게 밀고 당기며 엉켰다.
지선의 새하얀 손이 주영의 다리 사이로 향했으나, 주영은 지선의 양손을 잡아 지선의 머리 위쪽에 모아 놓으며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힘드시다면서요? 은발의 아름다운 주인님!
오늘은..... 이 고양이한테 맡겨요.
꼼짝하지 말고....."
주영의 입이 지선의 작지만 귀여운 젖가슴으로 향하더니 부드럽게 작은 분홍빛 젖꼭지를 빨아 당기며 오른손으로는 오른쪽 젖가슴을 쓰다듬듯 애무했다.
"하아..... 아아앙..... 아아....."
이어 입으로는 젖가슴과 목사이를 옮겨다니며 핥고 빨면서, 장난꾸러기 같은 연한 갈색의 손으로 지선의 다리 사이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아아앙..... 아아아앙..... 아아!"
주영이 양손으로 지선의 무릎께를 잡고 지선의 양다리를 활짝 벌렸다.
우유처럼 새하얗고 부드러운 허벅지께부터 천천히 혀로 핥으며 중심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아..... 으응....."
"할짝! 할짝! 할짝!"
"아앙..... 아앙... 아아앙.."
양손 엄지로 지선의 성기를 벌려 부드러워 보이는 붉은 빛이 섞인 분홍색 속살을 드러냈다.
조그맣게 열린 성기 구멍 주위는 이미 흘러내린 애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주영의 혀가 성기 구멍을 파고 들려는 듯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선의 신음소리가 커져갔다.
"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앙....."
얼마후..... 혀를 사용한 주영의 애무에 비교적 쉽게 절정에 달한 지선이 새하얀 알몸을 파닥이듯 몸부림치며 신음했다.
희고 고운 양손이 흥분으로 뾰족하게 선 젖꼭지를 스스로 애무하고 있었다.
"키키킥! 괜찮았어요, 주인님?"
지선의 성기에서 흘러나온 애액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주영이 웃으며 말했다.
오른손으로 얼굴에 묻은 애액을 훔치더니 낼름낼름 혀로 핥기 시작했다.
"아앙..... 아아앙... 너무 좋았어, 주영아!
하아..... 하아....."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는 쾌감에 숨을 헐떡이며 지선이 입을 열었다.
"나 혼자만 즐겨 버려서..... 하아..... 미안해.....
너..... 그러고 있으니까 정말 고양이 같다."
"헤헤헤헤!"
어린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주영이 날씬하면서도 건강해 보이는 옅은 갈색의 알몸을 지선의 새하얀 알몸에 찰싹 붙였다.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게 이 야옹이의 가장 큰 기쁨이에요.
귀여우면 쓰다듬어 주셔요!"
"푸훗!"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린 지선이 - 남자처럼 짧은 길이를 겨우 면한 길이의 - 주영의 붉은 단발머리를 하얀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야옹! 야아옹!"
주영은 지선의 새하얀 알몸에 알몸을 비비며 기분좋게 야옹거리는 소리로 어리광을 부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음날 아침, 미영 일행이 일어나서 식당을 겸한 여관 일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넉살좋은 인사와 함께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입고 있었던 은빛 별무늬가 새겨진 화려한 보라색 로브 대신, 평범한 - 하지만 고급스런 재질의 - 하얀 반팔 셔츠와 갈색 조끼, 갈색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군요."
빵을 스프에 찍어먹고 있던 미영이 웃으면서 마주 인사했다.
"저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시는 대로 오늘의 수업을 시작할까요?"
쟌피르의 말에 주영이 스프를 떠먹던 스푼을 손에 든 채로 입을 열었다.
"일찍 일어나시나 봐요, 아저씨?
흐음..... 나이가 많으면 아침 잠이 없다던데....."
의심스런 표정으로 주름살이라도 없나 찾듯 쟌피르의 얼굴을 살피는 주영을 보고, 쟌피르가 오른손을 뒷머리에 댄 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모습이 제 진짜 모습이 맞답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젖소" 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이라도 쐬려는 듯 여관 문쪽으로 향했다.
살짝 그 옆에 붙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너무 죄송했습니다."
은주가 고개를 저으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야말로..... 너무 놀라게 해서 미안했네요."
식사를 마친 나머지 일행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쟌피르가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제 탑으로들 가시죠.
여관 방보다는 넓고 아늑하답니다."
샹드로 마을에서부터 몰고 온 대형 마차를, 여느 때처럼 주영이 몰고 쟌피르의 탑으로 향했다.
아침 나절에 보는 랑구르시아시는 잘 포장된 돌길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붐비는 과연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석달에 한 번씩 젊은 여자들을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는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궁금한 생각이 든 미영이 마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
"랑구르스에게 바치는 제물은 어떻게 뽑는 거죠?"
클로아, "젖소" 은주와 나란히, 마차안 좌석에 앉아 있던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대답했다.
녹색의 눈에 씁쓸한 감정이 어렸다.
"돈을 주고 사죠.
자발적으로 제물이 되겠다고 나서는 여자에게 영주님이 30,000세테르의 몸값을 치른답니다."
"석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30,000세테르를 받고 죽겠다는 여자를 찾을 수 있었나 보죠?"
은주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랑구르시아시는 20,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굉장히 큰 도시랍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으면 항상 누군가는 빚에 쫓기거나 궁지에 몰려서..... 돈을 받고 자기 목숨을, 또는 딸의 목숨을 내놓게 마련이죠.
30,000세테르라는 돈은 정말로 크거든요.
일반 시민들로서는 평생 안 쓰고 벌어도 모을 수 없을 만큼..... 아니, 아마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말이죠."
씁쓸한 표정으로 쟌피르가 대답했다.
잠시후, 도착한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4층 탑 현관앞에서는 아직도 "영업 안합니다" 라는 의미의 보라색 연기가 바닥에서 솟아올라 하늘로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효과가 전혀 없을지도 모를 정력제 - 카안족의 잘린 성기 - 를 수업료로 준게 속으로 찔렸는지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연기 표시를 해놨네요?"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오른손을 뒷머리에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와하하하하하하하!
천하의 보물을 수업료로 주셨으니 제가 아는 걸 다 가르쳐드릴 때까지는 영업은 쉬어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기아러(마법사)는 꽤 고소득 직업이라서 벌어놓은 돈도 많이 있으니까요."
사나와 보이지만 의외로 마음이 무척 약한 면이 있는 은주가 몹시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넓은 방 하나로 되어 있는 1층의 테이블에 쟌피르와 클로아를 포함한 미영 일행, 모두 일곱 명이 빙 둘러서 의자와 쇼파 등에 나누어 앉았다.
" 플로라(은주)님은 매기아를 몇 가지 알고 계시다고 하셨든가요?
정령사로서도 대단한 실력을 가지신 것 같던데..... 대단하시군요."
어제 저녁 몸소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의 위력을 체험한 쟌피르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어요.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거든요."
"젖소" 은주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영이 개구장이처럼 양손을 뒷머리에 깍지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오늘은 랑구르스를 해치울 계획을 짜기로 하지 않았어, 언니들?"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쟌피르씨!
먼저 랑구르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셔요.
아마 여행의 피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2, 3일은 더 쉬어야 겠지만.....
랑구르시아는 시 외곽 동쪽 숲에 살고 있다고 했던가요?"
매기아러 쟌피르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어제의 얘기는 술자리의 객담(실없는 소리)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여러분이 수백 마리나 되는 밤비르(흡혈귀)들을 해치우고 샹드로 마을을 구해주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와 셍뜨레(성녀), 정령사 겸 매기아러(마법사)..... 긴 도끼를 등에 메고 계신 키 큰 아가씨는 아마 전사겠죠?
다른 분들도 아마 뭔가 특별한 능력들이 있으실테니..... 정말 강하고, 이상적으로 구성된 모험가 집단이시군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요.
솔직하게, 모험가 집단이라기 보다는..... 세상 일을 잘 모르시는 것 같고, 또 고운 외모가..... 세상 구경을 나온 어느 귀족 집안 따님들로 보입니다만.....
어떤 분들이시든 간에..... 랑구르스를 상대로 싸우시는 건 무리입니다.
여러 말씀 드릴 것 없이 며칠 더 여기 계시다가, 다음번 제물을 바칠 때 직접 랑구르스를 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키가 성벽보다도 클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물을 상대로 싸운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죠.
드래곤 슬레이어(용을 베어죽인 자)는 전설에서는 나오지만..... 실제로는 가능한 얘기가 아닙니다."
"휴우....."
미영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는 미영 일행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말을 믿기 어려워 하는 듯 했다.
"하긴 누군가 갑자기 자기는 4차원에서 왔다고 주장했다면..... 이 세계에 오기 전의 나라도 아마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이 돌바닥 아래쪽도 돌인가요?"
미영의 갑작스런 질문에 매기아러 쟌피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예, 튼튼한 큰 바위라서 헐값에 사서 탑을 쌓았답니다.
일반 집을 짓기에는 사실 마땅치 않거든요.
"채앵!"
의자에서 일어서며, 가벼운 동작으로 긴 칼을 빼든 미영의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변하면서 칼날이 눈부실 정도로 새파랗게 빛났다.
"우와앗!"
갑작스런 강한 빛에 놀란 쟌피르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렸다.
"푸우욱!"
아주 가벼운 소리와 함께 70센치가 조금 넘는 칼날이 칼받침이 닿을 정도로 깊숙히 돌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미영이 바닥에 주저 앉으면서 오른손 한 손만으로 칼자루를 잡은 채 바닥에 박아넣은 것이다.
"여기가 랑구르스의 목이나 머리였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평범한 칼인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돌바닥에 박히다니 놀랍군요.
하지만....."
뭐라고 항의하려던 매기아러 쟌피르가 -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 미영의 모습이 흔들리는 듯 하다가 없어져 버리자 당황해서 말을 멈췄다.
"툭!"
어느새 쟌피르의 뒤에 선 미영이 쟌피르의 어깨에 가볍게 오른손을 얹고 있었다.
크고 동그란 눈이 인상적인 얼굴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미영이 환한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동생인 쥬리아(주영)는 저보다도 훨씬 더 빠르죠.
수잔(수진)은 저보다 훨씬 힘이 세구요.
그리고..... 수잔이 어깨에 메고 있는 무기는 저주받은 검 그랑데르(위대함)를 만든 나잉족 무챠바크가 만든 도끼에요.
이름이 같은 나잉족이 또 있는게 아니라면요.
물론..... 랑구르스의 목이나 머리를 칠 수 있어야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되겠죠.
하지만..... 플로라(은주) 언니의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리면 그 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게다가..... 즉사하지만 않으면 쟈넷(지선)이 신성력으로 치료해줄 수 있어요."
보여주려는 듯..... "아가씨" 지선이 도자기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쳐들자 방안에 녹색의 태양이라도 생겨난 것처럼 환한 녹색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방안을 구석구석까지 온통 녹색으로 물들였다.
수진이 등뒤로 손을 뻗어 도끼자루와 도끼날 모두 칠흑처럼 검은 빛의 길고 육중한 도끼를 내려 보여 주었다.
"툭!"
갑자기 왼쪽 볼을 가볍게 치는 부드러운 감촉에 매기아러 쟌피르가 몸을 움찔했다.
긴 쇼파에서, 쟌피르의 바로 맞은 편에 앉은 미영의 옆 자리에 - 그러니까 쟌피르와는 거의 테이블을 사이에 둔 자리에 - 앉아 있는 주영이 장난스럽게 오른손을 까닥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른손으로 살짝 건드렸어요, 아저씨!"
"툭"
이번에는 오른쪽 볼을 가볍게 치는 느낌에 매기아러 쟌피르가 다시 몸을 움찔했다.
"이번에는 왼손..... 헤헤!"
쇼파에 꼼짝하지 않고 앉은 채로 주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죠?"
"아저씨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여서 아저씨 볼을 살짝 건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은 거에요.
안 믿어져요?"
미영과 똑같은 느낌의 크고 동그란 눈동자를 장난스런 빛으로 반짝이던 주영의 오른손 위에 갑자기 마법처럼 굵은 땔감 나무토막 하나가 나타났다.
"저 옆에 있는 벽난로에서 집어온 거에요."
주영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꽤 떨어진 탑 한쪽 벽의 벽난로 안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공격!"
"털퍼덕! 털퍽!"
주영의 오른손 손가락 끝에서 손톱들이 길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꽤 굵은 나무토막이 깨끗하게 여섯 토막으로 잘려나가 테이블 위를 굴렀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젊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질린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미영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믿으시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네 세계의 누군가가 우리를 소환하는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소환되어 왔죠.
소환된 장소는 어느 조그만 산골 마을이었고, 여기 오면 우리 세계와 연락해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틀린 것 같군요.
랑구르스를 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랑구르스를 해치우려고 하고,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우리를 도와 주세요.
우리는 랑구르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세계 자체에 대해서도 아직 알고 있는게 별로 없긴 마찬가지지만....."
매기아러 쟌피르가 꿀꺽 군침을 삼켰다.
"제가 아는 한, 소환 매기아(마법)에 대한 지식은 이미 몇백 년전에 단절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소환 매기아의 용도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의 소환이죠."
미영의 말에 쟌피르의 녹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사실, 어제 쟌피르 자신이 해준 얘기였지만, 여검사 재연의 최면술 후유증으로 쟌피르는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소환자가 우리를 소환한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 세계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니까요."
"소환된 사람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미영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 재연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듯한 - 쟌피르에게 그런 얘기를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랑구르스의 퇴치를 원해요."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몇 번이나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미영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일행들과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매기아러 쟌피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태초에 여러 신들이 물, 불, 바람, 흙의 4가지 원소를 모아 평평한 이 세계 위스토아를 창조한 후....."
"흐음..... 둥근 세계가 아니구요?"
주영이 검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빼며 끼어들자, 미영이 주영에게 고개를 저어 말렸다.
계속 해달라는 뜻으로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멈췄던 매기아러 쟌피르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더 이상 이 세계에 머무르지 못하고 신계로 돌아가야 했던 신들은 그들 대신 위스토아를 수호할 존재로서 드래곤이라는 존재들을 만들었습니다.
날개와 뿔이 달린 거대한 도마뱀의 모습을 한 드래곤들은 신들 다음으로 우월한 육체와 지성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들로서..... 이 세계를 보호하고 지나치게 균형이 깨지는 것을 막을 책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 드래곤들은 또한 매기아(마법)의 창조자로서, 육체적으로는 비교적 약하지만 지성을 가진 존재들, 인간, 엘루시, 오르크 등에게 매기아를 전수해 주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들과 같은 불멸불사의 존재는 아니었던 드래곤들이 대를 거듭해 가면서, 그들의 세계의 수호자로서의 의식은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중에는 세계의 수호자라는 의식 따위는 전혀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드는 자들까지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룡이라는 존재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룡들은 말그대로 드래곤이면서도 드래곤이 아닌 존재..... 드래곤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들중 하나 또는 상당수를 갖지 못한 존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요컨데, 아룡은 원래의 드래곤들에 비해서는 약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여전히 두렵고 벅찬 존재입니다.
때로는 드래곤과는 관계없는 거대한 괴물 뱀이 아룡이라고 잘못 불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랑구르스는 매우 전형적인 아룡입니다.
블라키(검은) 드래곤과 거의 유사해 보이는 외모의 거대한 덩치와 매우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죠.
다행히도 그외에는 드래곤다운 면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해서..... 날개가 없고, 따라서 날지도 못하며, 독안개나 불을 뿜는 능력도 없고, 심지어는 매기아(마법)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대신 드래곤들도 갖고 있지 못한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 이전에도 한 차례 말씀드린 바 있지만 - 랑구르스에게는 그 어떠한 매기아도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자랑하듯, 오른손 손톱을 30센치 길이로 늘린 채로 훑어 보면서 주영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랑구르스가 사는 위치를 자세히 말씀해 주셔요, 아저씨!
2, 3일 푹 쉰 뒤에 바로 쳐들어갈 수 있게요."
어깨를 움찔해 보인 쟌피르가 대답했다.
"저도 물론 가본 적은 없습니다만, 랑구르시아시의 동쪽 숲속 깊숙히 들어가면 작은 바위산이 나온다고 합니다.
랑구르스는 그 바위산 안의 거대한 동굴 안에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영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한 활이나 쇠뇌는 랑구르스의 가죽을 뚫을 수 있다고 했던가요?
랑구르시아시 병사들이 활과 쇠뇌를 갖고 같이 싸워주게 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들만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싸움이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 따위 필요없어, 언니!
우리들만으로 충분해!"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어린 주영이 자신있게 장담했으나, 신중한 성격의 미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매기아러 쟌피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현 영주님은 근본적으로 군인 타입이 전혀 아닌 데다가 나이도 많고 소심해서 그런 도움을 얻으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랑구르스의 퇴치라고 용건을 말씀하셔서는 아마 만나주지 조차 않을 겁니다.
도움을 얻으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쪽 숲속의 랑구르스의 소굴로 쳐들어가는 대신, 제물을 바치는 날 랑구르스가 나오기를 기다려서 싸우시는 겁니다.
설사 영주님이 나서지 않더라도 그 날은 병사들은 물론 많은 일반 시민들도 활이나 쇠뇌, 창을 가지고 있으니 호응을 얻을 수도 있거든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운데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물을 바치는 자리에 무기를 가져가는 걸 랑구르스가 허락을 한단 말인가요?"
갈색 조끼의 단추를 쓰다듬으며 매기아러 쟌피르가 한숨을 쉰 후 대답했다.
"허락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랑구르스의 뜻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지난 240여 년간 계속 그랬다고 합니다."
"전혀 이해가 가질 않네요."
고개를 젓는 은주에게, 우울한 표정으로 쟌피르가 설명했다.
"[갖.고. 있.는. 무.기.를. 전.부. 갖.고. 나.와.라.
사.정.이. 없.는. 한. 성.인. 남.자.는. 반.드.시. 전.부. 나.와.야. 한.다.]
약 240년 전에 랑구르스는 그렇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죠.
손에 무기를 든 채, 거대한 괴물이 제물인 어린 여자를 잘근잘근 씹으며 잡아먹는 모습을..... 두려움과 무력감에 떨며 보게 만드려는 겁니다.
40여 년전부터는 거기에 저주받은 검 "그라페르(쓰레기)"가 추가됐죠.
성인 남자들만 만여 명이나 손에는 활이며 창을 들고, 바닥에는 대형 쇠뇌들을 열지어 놓고.....
바위에는 뽑히지 않는 검 "그라페르"를 꽂아놓은 채로.....
절망감과 무력감에 떠는거죠."
"키키키키킥!"
재미있다는 듯 주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영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들어서..... 아니, 아마도 드로인 마을에서 숲의 수호신 카안족들과 마을 처녀들을 살해한 괴물 사냥꾼들 14명을 한꺼번에 처치해 버린 이후부터..... 동생인 주영에게서는 종종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4부 내용 참조)
지금도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고양이처럼 빛내면서 주영은 그렇게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괴물이네!
다음번 제물을 바치는 날이 언제죠?
그 날 죽여 버리자!"
이마에 늘어진 연녹색의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뒤로 넘기며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날 갑자기 생전 처음보는 낯선 여자들이 달려 나온다고 해서.....
병사들과 일반 시민들이 도와줄지는 의심스러운데....."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영도 대답했다.
"그리고..... 설사 거절당하더라도, 영주님에게도 랑구르스를 퇴치하겠다고 말하고 협조를 요청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쟌피르씨 말대로 아예 만나주지도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멋으로, 시늉처럼 약간 기른 갈색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젊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입을 열었다.
"병사들을 포함해서 랑구르시아시 시민들 모두에게 여러분을 널리 알리고.....
영주님을 대면하고.....
이 두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금..... 아니, 많이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요."
......................................................................................................................
"무술대회라..... 상대방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건 좋지만, 그러면 실격이라니..... 시시한 대회일 것 같아!"
"주영아!"
마부석에서 말을 몰면서 동생 주영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미영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무술대회라니..... 그런 건 처음 봐요!
재미있겠다!"
어린 클로아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마냥 즐겁고 재미있어 하는 듯 했다.
"무려,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답니다."
같이 대형 마차에 탄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설명에 미영이 입을 열었다.
"40년이라면....."
미영의 추측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쟌피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전 영주님이 홧병으로 돌아가시기 직전 만든 대회가 이어져 오는 거죠.
우승자는 그라페르(쓰레기)를 뽑아보는 것이 관례입니다.
누군가가 그 저주받은 검을 바위에서 뽑아줄 것을 바란, 전 영주님의..... 아니, 아마도 랑구르시아시 시민들 모두의 염원이 담겨있는 대회죠.
당연히..... 아직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요."
"하지만, 꼭 나가야 돼!
우승 상금이 20,000세테르나 된다잖아!
준우승도 5,000세테르나 준다구요?"
"젖소" 은주가 약간 옆으로 찢어진 연녹색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신이 난 듯한 음성이었다.
은주의 풍만한 가슴을 힐끔거리다가 멋적은 듯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매기아러 쟌피르가 대답했다.
"예! 8강까지 올라간 사람들까지 상금이 주어집니다.
4강까지 오른 사람들은 각각 2,000세테르, 8강까지 오른 사람은 각각 1,000세테르씩이죠.
요즘같은 전란의 시대에는 우수한 용병이며 인재를 모으기 위한 무술대회가 여기저기서 많이 열립니다만.....
랑구르시아시의 이 대회만큼 상금이 큰 무술대회는 제가 아는 한 없답니다.
최소한 정식 아미트(기사)들이 거의 참가하지 않는, 거의 용병들만을 위한 대회로서는 말이죠."
"흐음..... 아미트(기사)들은 왜 참석하지 않죠?"
마부석의 주영이 목소리를 높여서 물었다.
그럴 필요는 사실 전혀 없었지만, 주영의 뛰어난 청력을 모르는 쟌피르가 역시 큰 소리로 소리치듯 대답했다.
"죽이면 실격이라는 것 외에는, 그리고 매기아(마법)와 독의 사용은 금지되지만..... 그 외에는 무기나 수법의 제한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뭔가 치사한 수법에 당해서 지기라도 하면 체면이 깎이거든요.
하지만, 20,000세테르는 보통의 용병들에게는 평생 목숨을 걸고 용병생활해도 모으기 힘든 거액이죠.
1년에 꼭 한 번 뿐이지만, 대회가 열릴 때면 랑구르시아시 전체가 용병들로 북적거린답니다.
사실..... 상당수의 용병들은 대회 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대회에 참석하는 실력있는 용병들이 거느린 부하들이거나 그 동료들로서 따라오는 거지만요.
한편으로는..... 용병들이 찾아와서 뿌리는 돈으로, 그리고 상인들에게 일정 비율로 받는 세금이며 이런저런 명목으로 걷어들이는 돈들때문에..... 랑구르시아시의 무술대회는 상금으로 돈을 쓰는 대회가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벌어들이는 대회라는 말도 있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 말을 듣고 보니..... 거리에서 긴 칼이며, 도끼, 철퇴 등을 든 덩치 큰 남자들의 모습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드로인 마을에서 봤던 괴물 사냥꾼이라는 자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에, 미영이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물었다.
"저런 사람들은 상당히 거칠텐데..... 이 맘때면 경비병들이 고생하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매기아러 쟌피르가 대답했다.
"랑구르시아시에는 약 2,000명의 경비 및 치안담당 병사들이 있어서.....
요즈음은 보통 20,000명이 조금 안되는 수준인, 총 인구에 비해서는 적지 않은 병사들을 갖고 있지만.....
무술대회 전후해서는 항상 인력이 모자란 느낌이랍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은 부유한 도시인 반면에, 꽤 거친 곳입니다.
금광에서 대박을 노리고 오는 뜨내기들이 많죠.
사실 금광은 전부 영주님 소유지만요."
"젖소" 은주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 영주는 대단한 부자겠군요."
"원래..... 앙리아 남작 가문은 귀족 가문인 동시에 학자로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돈은 별로 없는 가난한 귀족이었다고 합니다만.....
약 250년 전에 그 조상들중 한 분이 대대로 내려오는 영지인 이 곳에서 금광을 찾아냈다고 하죠.
그 뒤로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작은 영주령 마을이었던 앙리아는 앙리아시라고 불릴 만큼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그 얼마후, 랑구르스가 나타나면서 지금은 랑구르시아시로 이름까지 바뀌었지만요."
"워! 워!"
어느새, 무술시합이 열린다는 도시의 중앙 광장에 도착했는지 주영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랑구르시아시의 중앙 광장은 바닥이 두꺼워보이는 돌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 지름이 적어도 50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단히 큰 광장이었다.
항상 20,000에 달하는 인구가 산다는 - 이곳 위스토아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 대도시의 광장다운 모습이었다.
비록 그 거의 대부분을 목재로 지은 원형의 경기장이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경기장이라야 사실..... 원래, 바닥이 돌인 광장 중앙에 지름 100여 미터 정도의 동그란 터를 남겨 놓고, 주위에 시민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층층히 나무 계단을 동그랗게 쌓아올린 것 뿐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삼천 명은..... 빽빽하게 앉으면 그보다 더 많이 동시에 대회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커서.....
미영 일행이 이 세계에 온 이래로 처음 보는 대형 건축물이었다.
아마도 자주 있지는 않겠지만 무술시합 이외에 시의 각종 행사 등에도 사용될 듯 했다.
원형 경기장 입구 근처에 대형 보라색 천막 하나가 쳐 있었는데 거기서 무술시합 참가신청을 받아준다고 했다.
"지금은 대회가 불과 5일 앞이기 때문에..... 멀리서 와야 하는 대부분의 용병들은 신청을 마쳤을 겁니다.
일주일 전후로 해서 신청도 꽤 붐빈다더군요."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설명과 함께 미영 일행은 대형 마차에서 내려섰다.
"마차를 맡아주는 비용은 1세테르요."
다가온 병사 두 명에게 "젖소" 은주가 돈을 꺼내 주었다.
아예, 마차며, 말을 맡아주는 담당 병사들까지 있는 듯 했다.
"참가 신청은 잠깐이면 될텐데 돈까지 받다니 너무 하잖아!"
은주가 긴 연녹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뒤로 넘기며 투덜거렸다.
보라색 천막에 들어서자, 두 명의 병사들이 따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미영 일행을 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책상을 앞에 놓고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금속제 흉갑옷(가슴과 몸통을 가리는 갑옷)과 위쪽이 뾰족한 금속제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혹시, 아가씨들도 무술시합에 참가하러 온 건가요?"
병사들중 한 사람이 물었다.
"예! 전부 다는 아니지만요."
미영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사람좋아 보이는 인상의 그 병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아마 호기심에 들른 귀족 아가씨들인가 보군요.
여긴 아주 무서운 대회이니 잘못하면 크게 다칩니다."
"걱정말고 신청을 받아주셔요.
저는 미리어 시엔(신미영)입니다."
미영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처음 말을 꺼냈던 병사가 이름을 받아 적으며 대답했다.
"참가비도 1인당 50세테르나 됩니다.
실력없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참가하는 걸 막기 위해서죠.
그래도 참가하실 건가요?"
"예!"
미영이 대답하며 은주를 쳐다보자, 은주가 돈이 아깝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세르농은 뭘로 하실 건가요?"
"세르농이요?"
이 나라, 아니 이 세계 말에 꽤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듣는 말에 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서 있던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설명했다.
"이름외에 별도로 불리길 원하는 이름 말씀입니다."
"흐음..... 보통은 뭘로 하는데요?"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묻는 주영에게, 아직 젊은 그 병사가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까지 가장 많은 세르농(별칭)은 블라키 다쓰(검은 죽음)였답니다."
"촌스럽다."
주영이 감상을 말하는 가운데, 미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저는 이미 있어요.
셍뜨 아미트레 데 골쥬앙(금발의 여 성기사)이라고 적어 주세요."
화려한 세르농(별칭)을 들은 두 명의 병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색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그리고 - 여검사 재연이 빠진 지금은 - 전원이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미영 일행을 다시 한번 둘러 보았다.
"꿀꺽!"
침을 삼킨 후, 계속 접수를 받던 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샹드로 마을을 밤비르(흡혈귀)들로부터 구해주신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 일행분들이신가요?"
"예, 맞아요."
신비롭게까지 보이는 동그랗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미영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두 명의 병사들 모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을 모아 외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몰라뵈어서 크게 실례했습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헤헤! 우리 꽤 유명한가봐!
다들 알게!"
주영이 웃으면서 기분좋은 표정으로 얘기하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샹드로는 많은 목재를 공급하는 꽤 큰 마을이니까요.
여섯 분 모두 대단히 아름다운 분들이시라더니 정말 그렇군요."
"여섯 분?"
샹드로 마을에 있을 때의 여섯 명이라면 그 이후 볼피아 마을에서 합류한 금발의 클로아가 아니라 여검사 재연을 포함한 인원을 말하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 명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미영은 생각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쥬리아 시엔(신주영)이에요.
세르농(별칭)은 까슈 데 레쥬앙(붉은 머리의 고양이)!"
"호오!"
다시 의자에 앉은 두 명의 병사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잘 어울리는 귀여운 세르농이로군!"
생각하는 듯 했다.
"수잔 리이(이수진).
세르농은 보어 데 브라우니앙(갈색 머리의 멧돼지)!"
"호오!"
두 명의 병사들이 다시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키가 크고 터프하게 생긴 아가씨가 세르농도 참 터프하군!"
생각하는 듯 했다.
"저는 플로라 바카스(박은주)에요.
세르농은 플로 데 그리니앙(녹색 머리의 젖소)!"
"호오!"
두 명의 병사들이 다시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샹드로 마을의 세비레(구원자)로 명성이 꽤 높은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의 일행이라니 차마 대놓고 웃지는 못하는 듯 했다.
아마도, 무술대회 참가자가 이런 별칭을 사용하는 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 아마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 것이다.
"에엥! 은주 언니도 참가할 거에요?"
주영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미영도, 수진도, 지선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매기아(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무술대회에 무술과는 거리가 먼 은주가 참석한다니.....
"물론이지! 8강까지 상금이 있다잖아!
우리가 1, 2, 3, 4등을 하면 총 29,000세테르나 된다구!"
이미 당연히 우승한 것처럼 말하는 은주였다.
"와아! 엄마! 너무너무 멋져요!"
금발의 클로아가 신이 나서 감탄하며 은주의 팔에 매달렸다.
"언니는 참가 안해?"
주영의 질문에 아가씨 은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할줄 아는 건 치료밖에 없는데,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 치료하고 또 치료하고 이렇게 인간 샌드백이 되라는 거야?"
"흐음..... 그런가?"
"참, 확인차 신분증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병사들중 한 명의 정중한 요청에 미영이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신분증은 당연히 없었지만, 성문을 통과하면서 처음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을 때는 여검사 재연이 최면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신분증이 필요 없었다.
"그게..... 지금 신분증이 없어요."
미영의 대답에 난감한 표정을 지은 병사가 대답했다.
"뭐 소문으로 들은 바 대로의 외모이시니, 신분은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만.....
혹시 신분증이 없다면 꼭 만들어 두십시오.
성밖의 간이 사무실에서 신청하고 기다리시면 3일은 걸리지만, 광장 밖 서기 사무실에서 서기를 직접 만나시면 바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여기 무술대회 참가신청 접수증도 가져 가십시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단추가 많이 달린 검은 옷을 입은 서기가 일행의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에 서명을 해서 내주면서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고 말씀하시니..... 출생지는 랑구르시아시로 기재하겠소.
옆집의 대장간에 이 종이를 주시오.
1인당 3세테르요."
그리고..... 옆의 대장간에 1인당 다시 5세테르를 지불한 끝에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의 메달같은 청동제 신분증을 가질 수 있었다.
랑구르시아시에서는 정말 뭐든지 돈이 들었다.
클로아가 읽어준 바에 따르면 미영의 신분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미리어 시엔. 키 3헥사 2토르 반(162센치). 금발. 금빛 눈. 랑구르시아시 태생."
(1헥사 = 약 50센치, 1토르 = 약 5센치)
자기 신분증을 신기한 듯 들여다 보면서 주영이 입을 열었다.
"흐음..... 이런 청동 메달 정도는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겠다.
가명으로 몇 개씩 만들 수도 있겠고....
이런 걸 왜 만들라고 하는 거야?"
"서기 사무소를 통해서 현재 이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 전원의 이름과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보관된답니다.
그걸 근거로 영주님이 세금을 물리고, 개략적인 인구를 파악하죠.
서기가 한 명뿐이니 한 사람이 가명으로 여러 개를 만들 수는 없답니다.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서기의 서명 없이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대장장이는 없을 겁니다.
가짜 신분증 제조는 중죄로서 엄청난 벌금을 물고 시에서 쫓겨나게 될테니까요."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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