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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 6부2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59 489회 0건
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6부 2장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6부 - 이어지는 전설 (그로피아 마을편 : 싹트는 위협) - 2장 -


다음날 아침, 푹신푹신한 여관 침대에서 눈을 뜬 미영은 기분좋게 기지개를 켰다.
밤 사이에 어디를 나갔다 오는 건지 여검사 재연이 한밤중에 이층 창문을 넘어 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고 잠이 깨긴 했지만, 다행히 혹시나 걱정했던 클로아 강간을 시도하지는 않고 조용히 침대에 다시 누워서 자는 듯 했다.

"하지만, 주영이와 비슷할 정도로 몸놀림이 가벼워지고 속도도 빨라진 것 같아.
혹시 손톱도 늘어나는 건가?"

생각에 잠긴 미영에게, 그제야 잠이 깬 수진의 갈색 눈동자가 미영을 보고 따뜻하게 빛나더니 아무것도 입지 않은 늘씬한 알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미영도 아침인사를 하듯 마주 따뜻하게 웃어 보이며 속옷과 편한 여행용 반팔 셔츠, 반바지 등을 입고 1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하아암! 언니들도 일어났네."

"안녕하셔요, 미영 언니! 수진이 언니!"

계단을 내려오며 주영과 "아가씨" 지선이 아침인사를 했다.
뒤이어 "젖소" 은주와 클로아, 여검사 재연도 내려와 식당의 넓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뚱뚱한 여관주인이 웃으며 따뜻한 빵들이 가득 담긴 접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가 담긴 작은 항아리, 나무 국자와 오목한 나무 접시 등을 가져다 주었다.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미영 일행이 기분좋게 인사하며 음식들을 막 받아들었을 때였다.

"덜컹!"

거칠게 여관문이 열리더니 조끼같은 검정 가죽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찬 남자들 네 명이 험악한 기세로 여관에 들어섰다.

"아침 일찍부터 미안하네, 보르딩!
이 여관에 묶고 있는 남자들 명단 좀 보여주겠나?
특히 덩치가 크고 힘이 세보이는 낯선 남자들이 손님중에 있으면 좀 알려주게나!"

남자들중 한 명의 말에 여관주인 보르딩이 뚱뚱한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처음 말을 꺼낸 탄탄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밤사이 메리디아 가문의 외동따님께서 변을 당하셨다네.
아침부터 마을 치안대 전부가 비상으로 난리라구."

고객 숙박부를 카운터밑에서 꺼내 내밀며 주인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죠?
살비니 아가씨라면 저도 귀니아 여신님의 사원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지휘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치안대 남자가 - 길게 기른 갈색 콧수염을 오른손으로 약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며 -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건 아니지만 심한 상처를 입었고 충격이 크신 모양이네.
귀니아 여신님의 신관들이 치료를 하러 왔다지만, 완치될는지는 모르겠다고 하고.....
하긴, 신관들이래야..... 약과 붕대로 치료하는게 전부이니 일반 의사들과 다를 것도 없지만....."

귀니아 여신님이라는 이름에 귀가 솔깃한 "아가씨" 지선이 미처 미영이 말리기도 전에 일어서서 다가가더니 입을 열어 끼어들었다.

"저..... 죄송하지만....."

숙박부를 넘기며 이름들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던 치안대 지휘관이 귀찮다는 듯 인상을 쓰며 돌아보다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은발머리와 신비로운 은빛 눈동자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표정이 부드럽게 바뀌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아름다운 아가씨?"

"저도 귀니아 여신님께서 내려주신 치료의 능력을 갖고 있어요.
도움이 돼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놀라는 표정으로 아가씨의 은발머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치안대 지휘관이 뒤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미영과 다른 일행들을 보더니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빼어난 외모에, 금발과 은발, 그리고 색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혹시..... 샹드로 마을을 구원해주신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님과 셍뜨레(성녀)님, 그리고 그 일행분들이 아니신지요?"

"예, 저희가 맞아요."

아가씨가 귀엽게 웃으며 대답하자, 치안대 지휘관과 다른 세 명의 치안대 남자들 모두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인 검정 모자를 오른손으로 벗어들고 가슴에 대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님!"

"헤에! 우릴 알고 있나 봐!"

주영이 기분좋게 외치자 지휘관 남자가 얼굴에 크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솔직히 세비레(구원자)님들이 나타났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샹드로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더군요.
세비레(구원자)님들이 아니었으면 자기들은 전부 밤비르가 되거나 죽었을거라고 말이죠.
참, 저는 그로피아 마을의 치안대장인 페터슨이라고 합니다."

"흐음..... 치안대장님이 직접 범인을 잡으러 다니세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주영의 말에, 페터슨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살비니 아가씨의 상태를 보시면 제 심정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의 아가씨!"

미영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마르 신님의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인 미리어 시엔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 쥬리아 시엔(신주영), 수쟌 리이(이수진), 플로라 바카스(박은주), 클로디아 써어(서재연), 클로아 브라이언, 그리고 방금 인사를 나누신 쟈넷 귀니비어(김지선)입니다.
저희가 도움이 돼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살비니 아가씨를 뵐 수 있을까요?"

미영의 예의바른 태도에 치안대장 페터슨이 따뜻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 생전에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님과 셍뜨레(성녀)님을 모시고 길 안내를 해드릴 수 있다면 가문의 영광이 되겠습니다.
메리디아 가문에서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할 겁니다."

공손한 태도로 페터슨이 앞장서서 문을 여는 가운데, 아가씨와 미영 일행이 여관을 나섰다.

"나는 좀 피곤해서요."

차가운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은 채 물컵을 집어들며 여검사 재연이 입을 열었다.


십여 분 정도 걸어 마을광장을 가로지르자 아치형 철제 대문과 그 양쪽에 하얀 돌사자 조각들이 서 있는 꽤 크고 근사한 하얀 돌로 된 대저택이 나왔다.
앞서 뛰어간 다른 치안대원들의 말을 들은 듯, 가운데 머리가 벗어지고 양옆의 머리카락들이 새하얗게 샌 뚱뚱한 영감이 실내 슬리퍼를 신은 채 허겁지겁 대문까지 뛰어 나오더니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메리디아 와이트입니다.
도와주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셍뜨레(성녀)님!"

종종 걸음으로 서두르며 앞장 서는 와이트 영감의 모습에 미영 일행도 걸음을 빨리해 - 조각 등이 곳곳에 서 있고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어 꽤 크고 화려해 보이는 - 뜰과 정원을 지나 현관에 들어섰다.

"이쪽입니다. 부디 이쪽으로!"

파란 눈에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허리를 굽신거리며 와이트 영감이 미영 일행을 이층으로 안내했다.
이층 오른쪽에서 두번 째, 꽤 큰 방의 문을 열자 수녀복같은 분위기의 긴 녹색 신관복을 입고 있는 젊은 여자 두 명이 전신에 온통 붕대를 감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의 양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기척에 두 여신관들이 고개를 들더니 그중 한 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비니 아가씨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병문안오신 분들이면 나중에 와주시는게 좋을 것 같군요."

와이트 영감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분들은 샹드로 마을을 밤비르들로부터 구해 주셨다는 그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님과 셍뜨레(성녀)님입니다.
딸 애를 도와주러 오셨습니다."

"셍뜨레(성녀)?"

젊은 여신관 한 명이 약간 귀에 거슬리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가씨" 지선이 방안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떠드는 말일 뿐이에요.
잠깐 살비니씨를 볼 수 있을까요?"

여신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일어나서 침대에서 조금 떨어져 서서 비켜 주었다.

"페터슨씨! 우리는 밖에서 기다립시다!"

미영 일행이 차례로 방안에 들어가자 와이트 영감이 치안대장 페터슨을 잡아끌며 방문을 닫았다.
온통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얇은 담요를 덮고 있는 젊은 처녀 - 살비니를 향해 "아가씨" 지선이 천천히 손을 뻗자 미영이 아가씨의 손을 잡아 만류했다.

"잠깐만, 지선아! 고쳐주기 전에 상처를 잠깐 보는게 좋을 것 같아."

미영으로서는 상처를 고쳐주기 전에 꼭 확인하고 싶은,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 말에 금발에 파란 눈을 한 제법 예쁜 여신관 한 명이 얼굴에 약간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 막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습니다.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풀어보지 않는게 좋을거에요."

그러자 아가씨가 귀엽게 웃으면서 안심시키듯 옆으로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금방 치료해 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셔요.
주영씨! 붕대 좀 풀어 주세요! 조심해서요!"

주영이 앞으로 나서며 담요를 치우고 파자마 같은 고급스런 느낌의 분홍 옷의 단추를 풀고 조심스럽게 벗기자 얼굴은 물론 가슴, 하반신, 팔, 다리 등 거의 전신을 붕대로 칭칭 감은 모습이 드러났다.
붕대 여기저기 새빨간 피가 밖으로까지 배어나와 빨갛게 물이 든 처참한 모습이었다.

"쓰윽!"

주영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오른손 검지 손가락 끝으로 붕대를 누르며 손을 움직이자 마치 아주 예리한 면도날로 종이라도 자르는 것처럼 두껍게 감아 놓은 붕대들이 연달아 "툭!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아아악!"

젊은 처녀의 참혹한 모습이 드러나자, 클로아가 작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젖소" 은주의 품에 어린애처럼 파고들며 고개를 돌렸다.

원래는 길고 치렁치렁 했었던 것 같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절반 이상이 강제로 뽑혀서 찢어진 상처과 피딱지들이 머리카락 대신 흉칙하게 머리 피부를 덮고 있었고, 콧대는 으스러져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으며, 멍하니 벌리고 있는 터진 부은 입술 사이로 이빨들이 거의 몽땅 부러져 나간 피투성이의 잇몸이 보였다.
양팔과 거의 모든 손가락들이 부러져 여신관들이 대어 준 것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부목들이 겨우 받치고 있었고, 붕대를 풀자 드러난 젖가슴은 한쪽은 심하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난 채로 아직까지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아예 유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양쪽 무릎과 오른쪽 발도 큰 망치로 두들기기라도 한 듯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다리 사이를 칭칭 동여맨 붕대를 주영이 끊어서 풀자 음모가 몽땅 뽑혀서 피투성이가 된 모습에, 그 아래의 성기는 크리토리스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였고, 붕대를 안에 밀어 넣어서 피가 새나오는 걸 겨우 막아놓은 성기 구멍은 손이 쑥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찢어져서 뻥 뚫려 있는 듯 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여신관 한 명이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엉덩이쪽은 왼쪽은 이빨로 살을 크게 물어 뜯었고, 오른쪽 엉덩이는 아예 가죽을 넓게 벗겨 놨죠.
항문 구멍도 찢어서 크게 벌려 놨구요.
등도 물론 온통 찢기고 심하게 맞은 상처 투성이입니다.
그것도 꼭 보셔야 하나요?"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죄송합니다! 지선아!"

아가씨가 앞으로 나서며 은빛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변하자 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새나오기 시작했다.

"아!"

여신관들중 한 사람이 놀라움으로 감탄을 터뜨리는 가운데 아가씨가 살비니의 머리부터 천천히 녹색의 빛을 내는 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피투성이인 머리의 상처들이 아무는가 싶더니 갈색의 머리카락이 마술처럼 순식간에 길게 자라나 침대시트에 늘어졌다.
납작하게 내려앉은 코가 오똑하게 솟아오르고 새빨간 잇몸들 안쪽에서 마치 자라나는 것처럼 하얀 이빨들이 솟아 오르더니 온통 터진 채 검붉게 부르터 퉁퉁 부어오른 입술이 부드러운 붉은 색의 작고 귀여운 입술로 변했다.
가슴에 난 흉칙한 이빨 자국들이 없어지더니, 새 살이 돋아나듯 귀여운 유두가 잘려나간 왼쪽 젖가슴의 상처 속에서 솟아 올라왔다.
까맣고 파란 멍투성이에 부러진 채 퉁퉁 부어 늘어져 있던 손가락들이 멍이 없어지며 가늘고 예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팔과 무릎, 발의 상처들도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갈색의 곱슬거리는 음모가 보는 앞에서 길게 자라 성기 위를 풍성하게 덮었다.
작고 귀여운 크리토리스가 성기의 세로줄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아가씨가 피투성이가 된 붕대뭉치를 꺼내자 흉칙하게 벌어져 있던 성기 구멍도 조용히 아물려 닫히며 아직 어려보이는 꼭 다물린 깨끗한 모양의 성기로 돌아왔다.

심지어 검붉게 말라붙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던 붕대뭉치들 조차도 마치 새 것들처럼 하얗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흐음..... 언니! 뒤쪽도 치료하게 뒤집을까?"

주영의 물음에 아가씨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뒤쪽도 같이 치료했어."


"털썩!"

여신관 둘이 동시에 바닥에 꿇어 엎드려 이마까지 바닥에 붙인 채 "아가씨" 지선을 향해 외쳤다.

"알아보지 못한 저희의 불경을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셍뜨레(성녀)님!"

"용서해 주십시오, 셍뜨레님!"

아가씨가 당황하며 두 사람을 바닥에서 일으켰다.

"저는 다른 나라 사람이고, 신관도, 셍뜨레도 아니에요.
치료능력을 귀니아 여신님께서 주셨다는 것밖에는 아는게 아무 것도 없구요."

여신관 하나가 감격스런 표정을 가득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랑과 생명의 여신이신 귀니아님께서 이런 큰 축복을 허락하셨으니 이제 온 나라에 귀니아님의 믿음이 널리 퍼지는 것도 시간 문제입니다.
정말 크신 은혜이십니다.
먼저 사원부터 가시죠.
대신관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저..... 죄송합니다만....."

미영이 조심스런 말투로 끼어들었다.

"혹시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짐작가시는 바라도 있으신가요?"

미영의 허리에 찬 긴 칼을 쳐다보며 여신관 한 사람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아미트레(여기사)님께서도 귀니아 여신님의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이신가요?"

"아뇨! 아닙니다만....."

그 말에 여신관이 눈에 띄게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범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고 있는게 없습니다.
다만, 치료를 맡았던 신관으로서 말씀드리면....."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신관이 말을 이었다.

"범인들은 아마도 엄청나게 덩치가 크고 힘이 아주 센 여러 명의 남자들입니다."

"남자들이요?"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얘기에 미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 동시에 악마처럼 잔인한 자들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범인들은 살비니 아가씨를 묶어 놓고 마음껏 성추행하고 강간한 후,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일종의 화풀이나 복수로 이런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 듯 합니다.
코뼈와 팔 다리를 부러뜨린 대부분의 상처들은 단 한 번의 가격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 머리카락과 젖가슴, 성기의 일부 등을 인형이라도 부수듯 아주 쉽게 잡아당겨서 뜯어냈답니다.
아마도 대형 망치와 고문용 집게같은 걸 갖고 들어온 거겠죠.
그리고..... (민망한 듯 말을 흐렸다) 살비니 아가씨의 성기와 항문에 박아넣은 아주 단단하고 굵은 몽둥이도 아마 가져왔을 거구요. 망치 자루를 넣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남자들이 강간한 흔적이 있었나요?"

미영의 질문에 여신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정액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피임 목적으로 쓰이는 짐승의 창자막이나 아주 얇은 천 등으로 자기들의 것을 감싼 채 강간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나라에도 콘돔같은 게 있나 보군." 생각하면서 미영이 다시 물었다.

"혹시 망치나 집게없이 맨손으로 이런 짓을 한 건 아닐까요?"

미영의 질문에 여신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아! 아아아!"

약한 신음소리를 내더니 살비니라는 젊은 처녀의 눈꺼풀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그러더니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안돼요! 안돼!"

"벌컥!" 문이 열리며 와이트 영감이 뛰어 들어왔다.

"괜찮니, 살비니? ..... 아니! 너! 다 나았구나! 다 나았어!"

"아빠!"

여전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새하얀 알몸인 채로 -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깨끗히 다 나았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 살비니가 울면서 와이트 영감의 품에 와락 안겼다.
와이트 영감이 파란 눈동자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제 다 괜찮단다.
여기 셍뜨레(성녀)님과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님이 너를 도와주러 오셨어.
자! 옷도 제대로 입고....."

와이트 영감이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알몸인 살비니의 몸에 분홍 파자마를 걸쳐 주며 고개를 돌리더니, 미영 일행을 향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셍뜨레(성녀)님! 그리고 여러분!
저는 평생 갚지 못할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주름진 영감의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이 될 정도로 눈에서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여신관들중 한 명이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의 셍뜨레(성녀)님께서 이 댁을 방문하신 것도 전부 귀니아님의 크신 사랑 덕분입니다.
평소에 살비니 아가씨께서 귀니아님을 열심히 섬긴 데 대한 보답을 내려주신 것이죠."

그 말에, 와이트 영감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귀니아 여신님의 크신 은혜에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다소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미영이 다시 조심스런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살비니씨! 이런 걸 물어서 정말 미안하지만..... 혹시 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나요?"

그러자, 살비니의 파란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순간 커졌다가, 다시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 그게.... 아무 기억도 나질 않아요.
흑흑흑! 제 젖가슴을 이빨로 물어서 젖꼭지를 잘라내고, 거기와 엉덩이에 손을 손목까지 통째로 집어넣어서 쑤시면서, 엉덩이 가죽을 잡아당겨 짐승가죽을 벗기듯 길게 찢어내면서..... 흑흑흑흑! 깔깔거리며 잔인하게 웃었다는건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정작 범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아요. 으흑흑! 흐으으으으윽!"

살비니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큰 소리로 흐느꼈다.

다시 외동딸을 품에 꼬옥 안아주면서 와이트 영감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게..... 밤에 집을 지키던 하인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법 똑똑하고 야무진 젊은이인데.....
그 친구은 물론, 심지어는 개들 조차도 아침에 일어나보니 약을 먹은 것처럼 멍청한 채로 있다가 조금전에야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답니다.
하긴..... 살비니가 무사히 회복된 것만으로도 저는 감지덕지입니다!"

두 명의 여신관들중, 좀더 나이든 쪽으로 - 이십대 후반 정도로 - 보이는 금발에 파란 눈의 여신관이 나무라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살비니 아가씨는 충격을 크게 받으셔서 지금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물어보실게 있으시더라도 나중에 하시고 쉬게 해주시죠.
슈린!"

"예, 자매님!"

다른 여신관의 대답에, 조금 나이가 위인 듯한 그 여신관이 말을 이었다.

"살비니 아가씨를 돌봐드리고 있어요!
나는 셍뜨레(성녀)님을 사원으로 안내해 드릴테니...."

"예, 자매님!"

지시를 마친 여신관이 미영 일행을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살비니 아가씨가 쉬실 수 있도록 우리는 비켜드릴까요?
셍뜨레님은 물론 일행 분들도 귀니아 여신님의 사원에 함께 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참, 저는 귀니아 여신님의 종 싱크루라고 합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여섯 마리의 말들이 끄는 메리디아 가문의 호사스런 대형 마차가 일행을 귀니아 여신의 사원까지 태워 주었다.
새하얀 벽돌로 지은 사원 건물은 꽤 높고 큰 화려했다.
아치형의 근사한 철제 정문 - 사원답게 누구라도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려 있었다 - 앞에서 마차를 내려 정문을 들어서자, 정문에서 사원건물까지 깔려 있는 새하얀 돌길을 따라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색의 아름다운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돌길 양옆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헤에에! 꽃밭이 무척 예뻐요!"

감탄하는 주영을 보고, 여신관 싱크루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신자님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죠.
귀니아 여신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역시 활짝 열려 있는 사원 앞에서는, 신자들을 위한 기부금함으로 보이는 - 위에 손을 넣는 구멍이 있는 - 고급스런 나무상자 옆에서,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고 상당히 미인인 금발에 녹색 눈의 여신관 한 명이 서있다가 싱크루와 미영 일행을 보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공손하게 꾸벅 머리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활짝 웃었다.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의 사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자 여러분!"

말은 전혀 안했지만, 왠지 기부금함에 돈을 내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에 "젖소" 은주가 - 아깝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마주 웃으며 - 허리에 차고 있던 돈자루에서 돈을 조금 꺼내서 넣었다.

"귀니아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금발의 여신관이 활짝 웃으며 다시 한번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고급스런 - 소파처럼 옆으로 넓고 등받이가 붙어있으며 꽤 푹신한 - 앉을 것들과 테이블이 있는 넓은 방으로 일행을 안내한 여신관 싱크루가 웃으며 말했다.

"대신관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흐음..... 꽤 화려하고 근사한 사원이네.
샹드로 마을의 마르 신의 사원도 근사했지만 이쪽이 훨씬 커!"

여신관 싱크루가 사라진 뒤, 주영이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꼭 돈까지 내면서 들어올 필요가 있었을까?"

"젖소" 은주가 투덜거리듯 말하자, 클로아가 웃으며 몸을 기댔다.

"저는 사원이라는 데는 생전 처음 와보지만 정말 예쁘네요, 엄마!"

"귀니아 여신을 접하면 지선이의 능력이 올라갈지도 모르니까..... 아무래도 오는 편이 낫겠죠."

미영이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특히..... 이제 와서 도중에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재연씨가 있는 이상은.....
그런데..... 아까 그 잔인한 짓은 정말로 재연씨가 한 짓일까?
아무 증거도 없긴 하지만 그저께 저녁 클로아가 그랬듯이 기억을 잃었다는 점은 아무래도....."


"환영합니다, 셍뜨레(성녀)님과 그 일행 여러분!
귀니아 여신님의 작은 종으로 과분하게 대신관직을 맡고 있는 루이스라고 합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한 나이가 지긋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키가 훤칠하게 큰 노인이 환영하듯 양손을 옆으로 넓게 벌리며 웃는 얼굴로 방 안에 들어섰다.
미영 일행이 일어나서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 분이 셍뜨레이신가요?"

부드럽게 웃으며 묻는 대신관 루이스의 말에, 따라 들어온 여신관 싱크루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아가씨" 지선이 입을 열었다.

"쟈넷 귀니비어라고 해요. 처음 뵙겠어요."

대신관 루이스가 여전히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님이시군요.
괜찮으시면 셍뜨 바인(신성한 빛)을 잠깐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

아가씨의 크고 아름다운 은빛 눈동자가 마술처럼 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양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감탄하던 루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밝고 아름다운 셍뜨 바인이로군요!
이보다 더 밝게도 내실 수 있으신가요?"

아가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해지면서 넓은 방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였다.

"오오오! 귀니아 여신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셍뜨레(성녀)이시군요."

아가씨가 어리광부리는 듯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다른 나라에서 와서 아무것도 몰라요.
셍뜨레라는게 어떤 의미죠?"

그러자, 대신관 루이스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셍뜨레(성녀)라는 것은 일반 신자님들을 위한 말이랍니다.
정확히는 셍뜨 바인(신성한 빛)의 강도에 따라 셍뜨 바이너 초급, 중급, 상급으로 나뉘어야 되겠죠.
초급은 치료 속도를 빠르게 하고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 중급은 상처를 낫게 하고 절단된 신체의 일부를 다시 붙일 수 있는 정도, 상급은 완전히 파손돼 버린 신체를 재생시킬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그보다 위에,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는 단계도 있을 것으로 믿어지지만, 추측이나 전설일 뿐입니다.
일반 신자님들은 셍뜨 바이너 중급 이상을 셍뜨(성자) 또는 셍뜨레(성녀)라고 부르곤 합니다만, 신의 크신 은혜를 입었다는 점에서 틀린 표현은 아니겠죠."

다시 은빛으로 돌아온 눈동자를 빛내며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를 보고 대신관 루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시면 쟈넷님께서는 아직 신관 서품도 받지 않으셨겠군요?"

"신관 서품이요? 예!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대신관 루이스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제가 쟈넷님을 귀니아 여신님의 정식 신관으로 서품드리는 특별한 은혜를 입을 수 있을는지요?"

예상못한 말에 당황한 기색의 아가씨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걸요."

대신관 루이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랑과 생명의 여신이신 귀니아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신다면, 어디 출신이신지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서품식을 사흘 뒤에 가지면 어떨까요?"

그 말에 일행들 쪽으로 쳐다본 아가씨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저희는 랑구르시아시로 급하게 여행중이라서..... 고마운 말씀이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자 대신관 루이스가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러시면 내일 오후 늦게 정도면 가능하실는지요?"

미영을 쳐다보는 아가씨의 조르는 듯한 시선에 미영이 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가씨가 귀엽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해가 지기 조금 전에 이곳 사원에서 서품식을 갖는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대신관 루이스가 만면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리디아 가문의 고급스런 대형 마차가 미영 일행을 다시 여관까지 데려다 주었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젖소" 은주가 입을 열었다.

"혹시 신관 서품에도 사례금을 내야하는 건 아닐까?"

"설마요?"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어쩐지 돈을 내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미영이 귀니아 여신의 신관들로부터 받은 솔직한 인상이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했군요, 싱크루 자매님!
상급의 셍뜨 바이너(신성한 빛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위스토아 전체의 귀니아 여신님의 신관들 중에서도 다섯 명을 채 넘지 못하는데, 우리 사원에서 발견해서 신관 서품까지 하게 됐다니, 교단에 큰 공을 세웠어요."

미영 일행이 사라진 후, 흡족하게 웃으며 입을 여는 대신관 루이스에게, 싱크루 여신관이 마주 웃으며 하지만 약간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셍뜨 바인(신성한 빛)을 발할 때 저 여자의 눈이 빨간 색으로 바뀌는 걸 보셨나요, 대신관님?
대신관님께서도 물론 잘 아시겠지만 빨간 색은 귀니아 여신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색이 아니라....."

"그만! 셍뜨 바인의 빛은 귀니아 여신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녹색이 맞더군요.
게다가 치유의 권능이야말로, 사랑과 생명의 여신이신 귀니아님의 셍뜨 바인에서 특히 가장 두드러진 권능 - 자매님도 기적처럼 놀라운 치유의 권능이 발휘되는 모습을 직접 보셨다면서요?"

대신관 루이스의 말에 움추러든 기색이 된 싱크루 여신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건 슈린 자매와 함께, 확실히 직접 봤습니다만....."

대신관 루이스가 단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 자체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다른 상급의 셍뜨 바이너들도 눈동자 색깔이 변하는지는 알 수 없군요.
하지만 눈동자 색깔이 무슨 색으로 변하건 그런 건 우리에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 점을 명심하도록 하세요!"

"예, 대신관님!"

금발의 여신관 싱크루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여관 문을 들어서려가, 미영 일행은 어디를 나갔다가 마침 들어오는 듯한 여검사 재연과 문앞에서 마주쳤다.
검정색의 아주 고급스런 천으로 만든, 방금 막 만든 것 같은 - 위아래 한 세트같은 - 새 여행복을 입고 있었고, 목에는 반짝이는 루비가 박힌 금목걸이를, 양팔목과 양발목에도 루비, 사파이어, 에머랄드 등 갖가지 보석들이 박혀서 색색으로 빛나는 팔찌, 발찌들를 두르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양손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 모두에 반짝이는 색색의 보석 반지들을 낀 채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게 뭐죠, 재연씨?"

미영이 의심스런 눈빛으로 묻자,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돈주고 산 거죠! 보증서라도 보여줘요?"

그 말에 일행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의 돈은 - 이 나라의 화폐인 동화며 은화들이 꽤 무겁고 부피도 큰 관계로 - 몇 개의 주머니에 나누어 "젖소" 은주와 미영, 수진이 나누어서 들고 다니면서, 지출 및 관리는 전적으로 - 돈과 셈에 밝은 - "젖소"를 통해서 하고 있었다.

재연이 은빛 안경테의 안경을 쓴 사나운 얼굴에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이 나라의 원시인같은 덜 떨어진 것들에게 내 앞선 우월한 지식을 조금 가르쳐 주고 돈을 받았어요.
뭐 문제될 거라도 있나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지만, 미영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은 돈이에요. 항상 신세만 졌으니 벌어온 돈을 드릴 때도 있어야겠죠!
나도 조금 갖고 있지만....."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 역시 방금 만든 새 걸로 보이며, 오른쪽 어깨에 핸드백처럼 멜 수 있게 만들어진, 고급스런 작은 검정 가죽배낭에서 꺼내 - "젖소"에게 내민 작지만 불룩한 주머니에는 반짝이는 은화 백 여개 - 이천 세테르가 넘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다.
(은화 1개 = 동화 20개 = 20 세테르)

"그리고..... 참! 이건... 클로아 주고 싶어서 하나 사왔어! 받아줄래, 클로아?
촌구석이라서 더 예쁜게 없더라구!"

"예?"

클로아가 파랗고 큰 예쁜 눈동자를 더욱 크게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새빨간 루비들이 여기저기 박힌 고급스럽게 세공된 황금 목걸이줄에, 꽤 큰 하얀 진주알이 매달린 아주 비싸보이는 목걸이는 얼핏 보기에도 대형 보석상에 가서 "이 가게에서 제일 좋고 제일 비싼 목걸이로 주세요!" 라고 말해야 겨우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의 보물로 보였다.

"이런 걸 받아도..... 게다가 목걸이라면 이미....."

옆에 서 있는 "젖소"를 힐끔거리는 클로아의 목에는, "젖소"가 걸어줬는지 오빠 클로렌이 "젖소"에게 줬던 - 볼피아 마을을 저주했던 갈색옷의 신관이 200여 년전 갖고 있었다고 하는 - 동그란 갈색 보석이 펜던츠처럼 달린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재연이 클로아의 목에 자기가 가져온 목걸이를 겹쳐서 걸어주며 사나운 얼굴에 안 어울리게 활짝 웃었다.

"이것도 같이 걸어! 괜찮아!
훔친거 아니니까, 걱정말고 받아!
잘 어울린다!"

재연이 들어간 후 여관앞에서 일행들 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주영이 버릇처럼 검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가 빼며 입을 열었다.

"흐음..... 혹시 조금 있다가 치안대원들이 우르르 달려오는거 아냐?
목걸이도 돈도 다시 저 아줌마 돌려주고서, 치안대원들이 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몰라요. 저 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참! 저 사람이 누군지도 우리는 몰라요." 라고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예에?"

주영의 말에 클로아가 반짝이는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울상을 짓자, 미영이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받아둬, 클로아! 저렇게 대놓고 걸고 다니는 걸로 봐서, 문제가 되진 않을거야.
틀림없이....."


"들어오셨군요, 셍뜨 아미트레 데 골쥬앙(금발의 여 성기사)님!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님! 그리고 일행 여러분!
더운 물 목욕을 준비할까요?"

뚱뚱한 여관주인 보르딩이 미영 일행을 보고 반갑게 웃으며 눈에 띄게 친절해진 태도로 말을 걸었다.
미영 일행들에 대한 얘기를 그 동안 여기저기서 전해 들은 듯 했다.

"예, 부탁드릴게요!"

"예!"

보르딩이 웃으면서 여관의 일꾼들에게 지시했다.


얼마 후, 일꾼들이 욕조에 가득 받아놓은 더운 물 속에 푸욱 건강하면서도 날씬한 - 그을린 아주 옅은 갈색의 - 알몸을 담근 채 미영이 기분좋게 웃었다.

"아! 정말 개운해!"

역시 알몸으로 같이 들어와 있는 수진이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미영아?"

"왜?"

웃으며 묻는 미영에게 수진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너..... 요새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 보여. 재연씨 때문이야?"

그러자 미영이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응! 살비니라는 여자를 습격한 건 아무래도 재연씨였던 것 같아."

그 말에 수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치안대장 페터슨씨도, 아까 그 여신관도 덩치 큰 남자들이 범인일거라고 했잖아."

"그게..... 실은, 그저께 저녁때 재연씨가 땔감을 주으러 간 클로아에게 최면술을 걸고 있는 걸 봤어.
살비니라는 여자처럼 클로아도 아무것도 기억 못하더라구.
그리고 어제 한밤중에 서재연씨가 밖을 나갈 때 느꼈어.
주영이와 비슷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를 내는 걸.....
어쩌면 힘도 세진게 아닌가 싶어.
뭐..... 짐작일 뿐이지만....."

수진이 미영의 짐작을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웃으면서 말했다.

"설마! 여자가 여자를 그렇게 잔인하게 강간할 리가 있을까?"

미영이 다시 얕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러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한밤이 깊은 무렵, 소리없이 창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터억!"

이층에서 뛰어내린 여검사 재연이 여관앞 길 바닥에 손을 짚고 앉은 자세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내일도 자고 모레 아침에 떠난단 말이지?
그거 잘 됐네!
이 마을 예쁜 년들 이름과 주소를 많이 알아 뒀는데.....
디아나라고 했던가 광장 근처 저택에 산다는 금발 년이.....
이번에는 양쪽 엉덩이 가죽을 몽땅 벗겨볼까?
새하얀 엉덩이 가죽을 손으로 잡아당겨 찢어서 벗기면서, 몸부림치며 엉엉 우는 걸 보는 재미가 기분 째지게 좋던데.....
깔깔깔깔깔!"

채 웃음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조금 앞의 큰 나무 뒤에서 갑자기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눈부신 파란 빛으로 빛나는 긴 칼날이 소리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닿을 정도 길이의 금발 머리에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를 한 미영이 파랗게 빛을 내는 긴 칼을 든 채,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뭐죠?"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죠?"

미영이 파랗게 빛나는 칼을 재연쪽으로 똑바로 겨누며 은빛 안경테의 안경 속에서 새빨갛게 빛나고 있는 재연의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내가..... 뭐라고 말했던가요?"

재연이 미영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 노려보며 뻔뻔하게 되물었다.

"광장 근처의 살비니라는 젊은 처녀가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온몸의 뼈들이 부러지고 심지어 엉덩이 가죽까지 벗겨지는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미영의 말에 재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안됐군요! 그런데요?"

미영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게 놔둘 수는 없어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재연이 대답했다.

"그래서 아무 증거도 없이..... 그 칼로 맨손인 나를 베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미영이 단호한 표정으로 재연의 새빨간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이런 일이 우리가 머무르는 마을에서 공교롭게 다시 발생한다면, 당신은 혼자서 랑구르시아시로 가야할 거에요.
그리고 나는 절대로 그런 범인을 용서하지 않을 거구요!"

재연의 새빨간 눈동자가 안경 속에서 마치 달아오르듯 더욱 새빨갛게 변하면서 오른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살기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맨손이라도 이년 하나쯤은....."

그 때 여관문이 열리면서 여자치고는 낮은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재연의 뒤에서 들려왔다.

"미영아! 계속 나와 있을거야? 어? 재연씨?"

재연의 표정이 천천히 누그러지며 꽉 쥐었던 오른손의 주먹이 풀렸다.

"치잇!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을 거에요.
그러면 됐죠?"

재연이 차갑게 말하며 냉랭한 표정으로 미영의 옆을 지나쳐서 사라졌다.

미영의 크고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다시 평소의 금빛으로 돌아왔다.

"괜찮아, 미영아?"

미영이 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만 들어가서 자자, 수진아!"


"으드드득!"

여검사 재연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인상쓴 얼굴로 이를 갈았다.

"재수없는 미영이 년!
그 덩치 큰 년만 없었어도 이번 기회에 아예 죽여 버렸을텐데....."

"헤이! 아가씨! 예쁜데!"

어느 지방이나 으슥한 곳에서는 종종 그렇듯이, 할일 없이 골목을 서성거리던 서너 명의 양아치들이 재연을 보고 휘파람을 불며 추근거리는 말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후.....

"아아아악! 아아악!"

"끄아아아아악!"

.....

마치 오뉴월에 개들을 몽둥이로 때려잡는 듯한 끔찍한 비명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


"헤에에에! 가까이서 보니 정말 근사한 동상이네!"

주영이 감탄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날 오후, 여검사 재연도 포함해서, 일행 모두 마을 광장에 나와 바람을 쐬며 한가롭게 구경들을 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 봤던, 괴물을 타고 있는 기사의 동상을 보고 주영이 한창 호들갑스럽게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황소만큼 큰 덩치에, 사자를 닮은 굵은 네 발과 깃털이 덮힌 몸통, 그리고 독수리를 닯은 날카로운 부리가 달린 머리와, 활짝 펼친 힘있고 거대한 날개..... 엄청나게 힘이 세고 강해 보이는 거대한 괴물의 입에는 말처럼 재갈과 고삐가 물려 있었고 그 고삐 줄을 잡고 꽤 잘생긴, 콧수염을 길게 기른 기사가 긴 칼을 높이 빼든 채 마치 지금 막 돌격중인 것 같은 모습을 생동감넘치게 표현한 - 검은 칠을 입힌 - 청동제 동상이었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치, 언니?
이름모를 콧수염 아저씨와 한 컷!"

어느새 조각위에 올라가서 기사 뒤쪽의 괴물 몸통에 올라탄 채, 손으로 브이를 그리면서 주영이 웃으며 하는 말에 부드러운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월터님이시랍니다, 예쁜 아가씨!
아미트 데 블루앙(파란 머리의 기사) 월터 반 베리간님이시죠."

치안대장 페터슨이 어느새 다가와서 웃으면서 입을 열고 있었다.
치안대장이 보는 앞에서 조각에 계속 올라타고 있기가 멋적었던지, 가볍게 뛰어 내린 주영이 거의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면서 페터슨이 말을 이었다.

"위스토아는 벌써 오백여 년 가까이, 크고 작은 수많은 나라들로 나뉘어 전란에 휩싸여 있답니다.
당연히 작은 마을들은 괴물들이나 산적 등으로부터 거의 전혀 보호받고 있지 못하죠.
운이 좋으면 마을 자체의 힘으로 그런 재난을 막아낼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쁜 경우에는 하룻밤 사이에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주민들 모두가 학살당하는 비극적인 경우도 드물지않게 발생한답니다."

한숨을 쉬는 페터슨의 말에, 오면서 본 마을들을 생각하며 미영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을 이런 절망에서 구원해줄 세비레(구원자)의 등장을 고대해 왔습니다.
종종 세비레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심지어는 헛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사람들은 다시 절망과 체념속으로 돌아가곤 했었죠.
베리간 영주의 둘째 아드님인 월터님이 등장하신 것이 그 때 -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 년전이었습니다.
이미 뛰어난 아미트(기사)였던 월터님은 우연히 다른 괴물들과 싸우는 어린 그로프 한 마리를 구해면서 우정을 맺게 되어 결국 그로프 라이더(그로프를 타는 자)가 되셨죠.
그 후 베리간 영지를 떠나 위스토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십오 년 가까이 산적, 괴물,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 등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마을들과 사람들을 구해 주셨답니다.
그 분이야말로 진정한 아미트(기사)중의 아미트이시자 세비레(구원자)님이셨죠."

"그로피아 마을도 월터님의 구원을 받은 적이 있나 보죠?"

미영의 질문에 페터슨이 갈색 콧수염으로 오른손으로 만지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보니, 치안대장 페터슨의 갈색 콧수염도 아마도 월터의 콧수염을 본따서 기르고 있는 듯 했다.

"아마 약 이십여 년전, 제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였습니다.
오백여 마리의 오르크 부대가 그로피아 마을을 기습했었죠."

"흐음..... 오르크가 뭐죠?"

주영의 질문에 페터슨이 약간 놀라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정말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맞군요!
오르크는 녹색 피부를 가진 잔인하고 교활한 괴물입니다.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인간과 별 차이없는 지능을 갖고 있어서, 말도 하고 무기와 갑옷을 사용하고, 부대를 구성해서 심지어 전술도 구사할 줄 알죠.
인간은 훈련받은 병사나 아미트(기사)들만이 전사라고 불릴 수 있지만, 오르크는 전원이 전사라고 불릴 정도로 타고난 전투 종족입니다.
그런 오르크들이 오백 마리나 그것도 기습해 왔을 때, 이 곳 그라이아 마을은 - 당시에는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 끝장이라고 생각했었죠.
순식간에 마을 외벽인 나무 울타리가 뚫리고 치안대원들이 차례로 바닥에 쓰러지는 가운데 오르크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기적처럼, 하늘에서 거대한 그로프 하이씨아를 탄 월터님이 등장하셨죠!
마치 매처럼 쏜살같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다시 높이 올라갔다를 반복하면서, 눈깜짝할 사이에 오르크의 대장들을 차례로 해치우자, 기가 질린 오르크의 남은 대장들은 훨씬 우세한 병력과 유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후퇴를 명령했습니다.

죽다가 살아난 그라이아 마을 사람들은 월터님과 그분의 그로프 하이씨아의 조각을 만들어 마을 중앙에 세우고 마을이름도 그로피아로 바꾸어 그분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군요. 그 뒤 월터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미영의 질문에 치안대장 페터슨의 얼굴이 흐려졌다.

"유감스럽게도, 어느날, 월터님께 원한을 품은 - 사악하고 강력한 다쓰 프레이어 카이파와 오르크 족장 부쳐크의 연합 부대가 월터님의 고향인 베리간을 기습 공격했다고 합니다.
월터님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고향을 구하러 가셨지만 그만 결국 패해서 베리간은 잿더미가 되고 베리간 영주님과 그 가족들을 포함해서 모든 주민들이 학살당했으며, 그 이후 아무도 월터님과 그분의 그로프 하이씨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흐음..... 다쓰 프레이어라는게 뭐죠?"

"말 그대로 다쓰(죽음)를 프레이(희롱하는) 자, 시체를 조종하고 움직이고 저주하는 그런 사악한 힘을 가진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배드 엔딩이네요."

"젖소" 은주가 씁쓸한 표정으로 감상을 말하자, 클로아가 위로하듯 "젖소"를 옆에서 안으며, 풍만한 "젖소"의 가슴에, 치렁치렁한 금발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머리를 조용히 기댔다.
여검사 재연의 사나운 눈초리가 안경 속에서 질투심으로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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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늦은 오후, 지는 해가 뉘역뉘역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아마도 초대장이라도 미리 돌린 듯 귀니아 여신의 크고 넓은 사원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사원 내의 사람들 모두 매우 고급스런 옷차림인 것이, 마을의 부유한 유지들과 그 가족들인 듯 했다.
일전에 봤던 아름다운 금발의 여신관이 환하게 웃으며 미영 일행을 맞이하며 인사했다.

"오셨군요,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님과 그 일행 여러분!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의 사원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역시나 들어가는 사람들 모두 여신관 옆의 기부금함에 돈을 내고 들어가는 분위기에, "젖소" 은주가 아까운 표정을 감추며 허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돈을 조금 꺼내 함에 집어 넣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금발의 여신관이 환하게 웃으며 일행에게 감사를 표하듯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날개달린 천사들이 귀니아 여신의 주위를 찬양하듯 날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예배당 안을, 향초라도 피운 듯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신도들로 보이는 십여 명의 젊고 아름다운 처녀들이 예배당 앞쪽 왼쪽에 모여서서 귀니아 여신을 찬양하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가운데, 고급스런 녹색의 신관복을 입은 대신관 루이스가 자애로운 미소를 얼굴 가득 띠고 단상위에 올랐다.

"사랑와 생명의 여신 귀니아 여신님의 은총이 여기 모이신 모든 선량한 종들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인삿말과 함께 부드럽지만 힘찬 목소리로 설교가 시작되었다.

".....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아마, 이름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는 어느 선량하고 착한 귀니아님의 딸이, 집에 침입했다 도망가는 강도의 망치에 얼굴을 맞아 심하게 다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지키는 하인이 있어서 다행히 그외에 별다른 일은 당하지 않으셨지만, 아름다운 처녀에게 생명보다 소중한 얼굴을 다치다니!
항상 여신님을 정성으로 섬기고 누구못지 않게 사랑했던 여신님의 딸에게 어찌하여 그런 가혹한 일이 생겼을까요?

저희 모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귀니아 여신님께 간구했습니다.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이시여! 여신님의 어리고 순수한 믿음 깊은 종이 지금 괴로와하고 있나이다!
부디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여신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신님께서는, 샹드로 마을을 저 끔찍한 밤비르들로부터 구원해주신 당신의 종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에게 바로 우리 마을로 - 그것도 얼굴을 다친 처녀의 집에 자기 발로 찾아가서 상처 하나 없이 다시 깨끗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고쳐주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귀니아 여신님의 무한히 크신 사랑인 것입니다!"

대신관 루이스의 손짓에, 일행들과 함께 -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 큰 예배당의 -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가씨" 지선이 천천히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가며 양손을 높이 들자, 은빛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면서 양손에서 은은하고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새나오더니 점점 강해져서 넓은 예배당 전체를 은은한 녹색으로 물들였다.

"아아아아아아!"

"델라 크로아, 데아사레 귀니아 리에! (귀니아 여신님, 감사합니다!)"

"데아사레 리에! (여신님!)"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예배당 안의 신자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주영이 작은 소리로 우리말로 투덜거렸다.

"흐음..... 얼굴만 다친게 아니었잖아.
사실, 밤비르들을 해치운 건 미영이 언니였는데.....
저 할아버지 신관이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네.
그리고, 저 할아버지가 기도를 했든 잠을 잤든, 그거하고 우리가 다친 여자 집에 찾아간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대답할지도....."

아직도 두 번이나 낸 기부금이 아까운 듯 허리에 찬 돈주머니를 만지며 "젖소" 은주가 투덜거리자, 얕은 한숨을 쉬며 미영이 말을 이었다.

"나쁜 거짓말은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군요.
하지만....."

확실히 감동적이고 박력있는 뛰어난 설교에, 신자들도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 하고 있었지만, 미영은 어딘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울러, 아직도 일반 신자에 머물러 있던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 쟈넷 귀니비어양에게 정식 신관 자격을 부여하는 큰 영광을, 보잘 것 없는 제게 맡게 주신 귀니아 여신님께 끝없는 감사와 찬미를 바치는 바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되십니다!

자!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귀니아 여신님을 찬미합시다!"

그 말에 신자들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소리 외쳤다.

"데아사레 귀니아 리에! (귀니아 여신님!)"

"그란드 데아사레 리에 데 아모르 앵 비에! (사랑과 생명의 위대하신 여신님!)"

"델라 크로아, 데아사레 리에! (감사합니다, 여신님!)"

"엘로게아 데아사레 리에! (여신님을 찬미합니다!)"

.....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미영 일행도 분위기상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쟈넷 귀니비어! 그대는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의 영광스런 신관으로서 여신님의 크신 사랑과 빛을 이 세상에 널리 퍼뜨릴 신성한 사명을 다할 것을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아가씨" 지선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지만 또렷하게 대답했다.

이어, 조금 아까 입구에 서 있었던 아름다운 금발의 젊은 여신관이 - 아무래도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여신관이 이곳의 여신관들중 가장 미인인 듯 했다 - 곱개 개어진 녹색의 여신관복을 공손하게 두손으로 받쳐들고 단상에 올라갔다.
이어, 대신관 루이스가 여신관복을 - 뒤에 머리에 쓸 수 있는 후드가 달려 있고, 부드러운 녹색의 매우 고급스런 천을 기본 재질로 해서, 소매, 칼라, 허리띠 등에는 금실, 은실로 부드러운 원형의 곡선들이 서로 얽힌 무늬들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수 놓아져 있고, 전체적으로는 긴 수녀복과 비슷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 받아들고 아가씨에게 걸쳐 주며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대를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의 신관으로 임명하는 바입니다!"


"쥬빌리아 셍뜨레 리에! (성녀님 만세!)"

"쥬빌리아 데아사레 귀니아 리에! (귀니아 여신님 만세!)"

"델라 크로아, 데아사레 리에! (감사합니다, 여신님!)"

.....

신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열광하는 가운데, 금발의 젊은 여신관의 안내로 녹색의 신관복을 걸친 아가씨가 행진하듯 예배당 한가운데로 난 신자들 좌석 사이의 길을 따라 천천히 예배당 밖으로 나섰다.
미영 일행도 옆으로 빠져나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예배당 밖으로 따라 나왔다.

"사랑과 생명의 여신 귀니아님의 정식 신관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델라 크로아! (고마와요!)"

금발의 여신관의 축하말에 아가씨가 은빛 눈동자를 기쁨으로 빛내면서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자, 여신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외부에 계신 분께 신관복을 드릴 때는 소정의 제작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한 벌당 100 세테르입니다! 여행중에 갈아 입으실 수 있게 네 벌쯤 사시는게 좋을 것 같군요."

생각도 못한 비용 얘기에 아가씨는 약간 당황하는 듯 했지만, 꽤 고급스럽고 근사한 녹색 신관복이 갖고 싶은 표정으로 미영과 "젖소" 은주쪽을 돌아 보았다.
"젖소" 은주가 억지로 웃으며 끼어들어 돈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예, 세 벌 더 주셔요!"

"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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