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의문이 고장난 온수기에서 물방울 떨어지듯이 새어나왔지만, 쇼트웨이브는 더이상 생각을 진전시키지 않았다. 그녀 역시 이 미치광이 소굴같은 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디지털퍼머의 말에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차를 몰아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차는 제천시 방향으로 난 갈래길을 따라 천천히 달려갔다. 길은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좁다란 홍예다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다리는 커다란 규질암들을 정교하게 잘라서 축조한 것으로 지지부분이 무지개처럼 굽어 있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개울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녀들은 개울 속을 볼 수가 있었는데 개울물이 이미 거의 말라있어 모래와 돌들이 푸석푸석하게 뒹굴고 있었다. 혹시나 끔찍한 광경을 보게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개울에 접근하던 그녀들은 개울 속에 승려들에 의해 던져진 여인의 시신이 보이지 않자 잠시 안도했다.
그러나 차가 홍예다리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디지털퍼머는 개울 속에 박혀있던 어떤 것을 발견했다.
"저거,저거."
"뭐?"
"저기 저 바위. 우리가 학현리에서 봤던 여근석 아냐?"
쇼트웨이브가 차를 잠깐 멈추고 디지털퍼머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과연 그곳엔 이전에 그녀들이 보았던 여근석과 매우 흡사한 바위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여근석은 이전에 본 것과 전체적인 생김새는 비슷했으나 세밀도가 영 달라 보였다. 이전의 여근석이 인치당 픽셀수가 72개 정도의 해상도를 가진 이미지였다면, 지금 것은 적어도 300개 아니, 3000개 이상의 픽셀을 가진 고해상도 사진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것은 바위라고 하기엔 색깔이 너무나 연하고 재질이 보송보송해 보이는 것이, 마치 누벅이나 스웨이드 타입의 가공을 거친 엔트로피노산 양가죽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근석을 쏘고 있는 붉은 달빛은 바위 중앙에 나 있는 구멍 사이의 그늘진 음영을 매우 실제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는데, 그 때문에 이 바위는 말도 못하게 음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거랑 아주 비슷하긴 한데 똑같진 않아보여. 이게 뭐랄까..훨씬 진짜같아."
얼굴을 붉히며 쇼트웨이브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갑자기 냇가 가장자리의 수풀이 크게 흔들리더니 회색 빛의 어떤 물체가 길게 자란 풀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것은 아스팔트처럼 검은 색에 가까운 슬레이트 그레이 빛의 가시같은 털로 숭숭 뒤덮인 커다란 늑대였다.
놈은 달빛을 받아 붉게 번쩍이는 눈에서 욕정을 뚝뚝 흘리며, 입을 벌리고 길게 혀를 빼문 채 바위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늑대가 수풀 사이에서 단단하면서도 투실투실한 몸집을 빼내더니 터벅터벅 개울로 내려갔다.
그러자 늑대가 나타난 옆 수풀에서도 비슷한 풀들의 흔들림이 생기고, 두 마리의 늑대들이 더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늑대들은 발을 구르고 말이 투레질을 하는 것처럼 거품 섞인 침을 흘리며, 목에서 쟁기로 나무 긁는 것같은 소리를 그럭그럭거렸다. 놈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몸을 흔들고는 곧 첫번째 늑대를 쫓아 바위 쪽으로 껑충 뛰어 내달렸다.
모두 세 마리의 늑대가 어슬렁 거리며 여근석 주위를 배회하다가 이윽고 그것에 다가가서 구멍을 핥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징그러우면서도 매우 기묘한 광경이었다.
잠시 그것을 보고 있던 쇼트웨이브는 난데없이 차가운 얼음이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고도 4000미터의 상공에서 낙하를 기다리며, 낡아서 삐걱거리는 경비행기 아래 엉성하게 용접해 놓은 점핑보드에다 발을 올려놓고 지상을 내려보았을 때나 느낄만한 기분이었다.
찌릿하면서도 위험스런 느낌에 사로잡힌 그녀는 개울의 상류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흐린 녹색 빛으로 타오르고 있는 눈동자같은 두 개의 불빛을 찾아냈다. 그것이 눈동자라면 그 눈은 정면으로 그녀들을 보고 있을 터였다. 그 순간 디지털퍼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물었어."
갑지기 무슨 소린가 싶어 쇼트웨이브가 디지털퍼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디지털퍼머는 가슴 앞으로 손가락을 내밀고 있었는데 그것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골무를 볼 수 있었다.
"골무가 물었다구."
디지털퍼머가 빠르게 말했다.
여근석이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늑대들이 후다닥 몇 발자국 뒤로 후퇴했다. 다시한번 여근석이 들썩거렸다. 그러더니 여근석 밑으로 묻혀있던 굵은 나무 줄기같은 것이 흙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마치 길게 묻혀있던 파이프라인이 지진으로 인해 땅에서 튀어올라오는 것 같았다. 둥근 나무 줄기에 묻어서 따라올라오던 흙과 모래더미가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여근석을 꼭지점으로 해서 V자 형태로 벌어진 2개의 나무줄기였는데 그녀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2,3미터쯤 위로 올라가더니 말굽 모양으로 굽어져 더이상의 상승을 멈추었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그녀들이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녀들은 구부려서 세운 거대한 허벅지와 무릎과 종아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퍼머가 놀라서 소리쳤다.
"저거 다리지,응?"
"그래. 거인의 다리야."
디지털퍼머가 정신없이 그것을 쳐다보다가 비로서 생각이 미쳤다는 듯 말했다.
"그럼 저 바위는 여근석이 아니었던거야? 그렇담 저게.."
쇼트웨이브가 거대한 다리를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
"살아있는 거였어, 바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성기."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는 여인의 하체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마치 바닷가에서 모래찜질을 하듯이 몸을 개울 모래 속에 깊숙이 파묻고 성기만을 노출시키고 있다가 이제 무릎을 세워든 것이었다. 곧이어 개울 옆 편에서 바닥을 뚫고 커다란 손 하나가 솟구쳐 올라왔다. 손은 무엇을 할퀴려는듯 고양이 발톱처럼 손가락을 웅크린채 어깨를 앞으로 하여 하늘을 향해 팔을 쭉 펴 올렸다.
팔 옆으로는 검은 쇠사슬이 철컹거리며 주르르 따라 올라왔는데 그것은 손목에 채워진 투박하고 단단해 보이는 쇠고랑에 걸려 있었다. 일자로 펴졌던 팔이 수평으로 내려오며 팔꿈치를 꺾어 직각으로 땅을 받쳤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손이 개울 건너편에서 튀어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올라갔다가 꺾어져 내려와 땅을 받쳤다.
아까 쇼트웨이브를 노려봤던 두 개의 불빛이 천천히 다가왔다. 불빛은 공중으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그것을 감싸고 있던 윤곽을 드러냈다. 불빛 주위로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미간과 날선 이마, 코, 그리고 달걀 모양의 커다란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공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생각했던대로 불빛은 그 얼굴에 박혀있는 두 개의 눈이었던 것이다.
땅바닥을 받친 팔에 힘을 주며 여근석 위쪽으로 거대한 몸통이 일어나더니 폐자재를 잔뜩 실은 트럭 적재칸이 세워졌을 때처럼 몸통 위에 쌓여있던 자갈과 흙더미를 와르르 쏟아냈다. 거인이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을 때 그녀들은 이 커다란 여인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여인은 두 손목에는 축이라 불리는 쇠고랑을, 두 발목에는 요라고 불리는 족쇄를, 목에는 질식이라도 시킬듯이 꽉 끼게 감아놓은 두터운 철삭을 두른 채 쇠사슬로 엮여져 개울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구속된 사람처럼 그녀는 개울에 결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연한 갈색 빛깔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매끄럽게 코팅된 내퍼 타입의 가죽점퍼처럼 윤이 나고 있었다. 단단하게 곤두선 유방이 거친 숨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렸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와 커피빛 복부 사이에서는 늑대들이 핥던 미끈한 음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가느다란 실뱀들이 가득 돋아나 있었는데 혀를 날름거리며 뒤엉켜 있는 모습이 전설 속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를 연상하게 했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들의 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검은 입술을 벌려 어두운 동굴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목구멍 속에서 끈끈하게 끄집어낸 메탈릭한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길고 긴 고음의 괴성이 벌판 전역을 뒤덮고 뒤편의 험준한 봉우리들 틈에서 메아리쳐 되돌아왔지만, 나이든 소방관이 쉬지않고 돌려대는 사이렌의 회전판처럼 그녀가 지르는 소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기겁을 하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빨리 도망가. 빨리."
디지털퍼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마리의 늑대들이 그녀들의 차를 향해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증오와 굶주림으로 목울대를 울려대며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숨도 쉬지 않는지 여전히 멈추지 않는 그녀의 괴성 속에서 절의 중문이 활짝 열리며 승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경고음을 지르며 침입자를 가리키는 거대한 여인을 보았고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홍예다리 입구에 서 있는 그녀들의 차를 보았다.
승려들이 그녀들을 향해 조용히 돌아서더니, 모두들 일순 한치 정도 키가 줄어든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가 갑자기 모든 관절이 탈구된양 신체를 이리저리 기괴하게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앙에 선 한 명의 키 큰 승려를 필두로 하늘을 향해 사람이라면 절대 낼 수 없는 오싹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리고 차례차례 땅바닥에 엎드려 네발로 몸을 지탱하더니 순식간에 회색털이 가득한 짐승으로 바뀌어 갔다. 처음에 본 세 마리의 늑대들처럼 승려들 하나하나가 모두 포악스런 늑대로 변한 것이었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모두 변신을 마치자 마치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그들은 그녀들의 차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쇼트웨이브는 전속력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빠르게 홍예다리를 빠져나와 벌판으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늑대들이 스프링이라도 달은 것처럼 탄력있게 뛰어오르며 가볍게 개울을 건너왔다.
차가 몹시 삐걱댔으나 쇼트웨이브는 차가 들려주는 모든 이상징후를 무시하고 운전대를 단단하게 움켜잡고는 속력을 높였다. 갈대들이 물결처럼 차를 스쳐 지나갔다. 길인지 벌판인지 구분할 수 없는 통로에 높게 자라있던 잡초와 풀들이 차의 범퍼에 부딪히고 타이어에 꺾이며 그녀들이 지나간 흔적을 초속 30미터의 직선으로 보여주었다.
늑대들은 넓게 산개한 채 그녀들을 쫓아왔다. 그것은 전형적인 늑대들의 사냥법이었다. 먹이가 군집이었다면 며칠 간을 그렇게 쫓으면서 그 중 가장 약한 개체를 골라 사냥했을 터이지만 그녀들의 경우처럼 단 하나의 개체를 사냥하는 것이라면 먹이가 공포에 질려 쫓기다가 지치고 기운이 빠지며 심리적으로 무너져 자포자기가 되었을때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큰 일이야."
쇼트웨이브가 제 멋대로 요동치려는 운전대를 고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소리쳤다. 디지털퍼머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차는 기름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늑대들은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서둘지 않고 그녀들을 놓치지 않을 거리에서 끈덕지게 따라붙고 있었다.
"어쩌지?"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를 쳐다보았다.
쇼트웨이브는 휠에서 전달되는 충격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주머니를 하나 열어볼 때가 된거 아냐?"
그녀들의 차는 제천시 방향으로 난 갈래길을 따라 천천히 달려갔다. 길은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좁다란 홍예다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다리는 커다란 규질암들을 정교하게 잘라서 축조한 것으로 지지부분이 무지개처럼 굽어 있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개울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녀들은 개울 속을 볼 수가 있었는데 개울물이 이미 거의 말라있어 모래와 돌들이 푸석푸석하게 뒹굴고 있었다. 혹시나 끔찍한 광경을 보게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개울에 접근하던 그녀들은 개울 속에 승려들에 의해 던져진 여인의 시신이 보이지 않자 잠시 안도했다.
그러나 차가 홍예다리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디지털퍼머는 개울 속에 박혀있던 어떤 것을 발견했다.
"저거,저거."
"뭐?"
"저기 저 바위. 우리가 학현리에서 봤던 여근석 아냐?"
쇼트웨이브가 차를 잠깐 멈추고 디지털퍼머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과연 그곳엔 이전에 그녀들이 보았던 여근석과 매우 흡사한 바위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여근석은 이전에 본 것과 전체적인 생김새는 비슷했으나 세밀도가 영 달라 보였다. 이전의 여근석이 인치당 픽셀수가 72개 정도의 해상도를 가진 이미지였다면, 지금 것은 적어도 300개 아니, 3000개 이상의 픽셀을 가진 고해상도 사진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것은 바위라고 하기엔 색깔이 너무나 연하고 재질이 보송보송해 보이는 것이, 마치 누벅이나 스웨이드 타입의 가공을 거친 엔트로피노산 양가죽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근석을 쏘고 있는 붉은 달빛은 바위 중앙에 나 있는 구멍 사이의 그늘진 음영을 매우 실제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는데, 그 때문에 이 바위는 말도 못하게 음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거랑 아주 비슷하긴 한데 똑같진 않아보여. 이게 뭐랄까..훨씬 진짜같아."
얼굴을 붉히며 쇼트웨이브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갑자기 냇가 가장자리의 수풀이 크게 흔들리더니 회색 빛의 어떤 물체가 길게 자란 풀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것은 아스팔트처럼 검은 색에 가까운 슬레이트 그레이 빛의 가시같은 털로 숭숭 뒤덮인 커다란 늑대였다.
놈은 달빛을 받아 붉게 번쩍이는 눈에서 욕정을 뚝뚝 흘리며, 입을 벌리고 길게 혀를 빼문 채 바위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늑대가 수풀 사이에서 단단하면서도 투실투실한 몸집을 빼내더니 터벅터벅 개울로 내려갔다.
그러자 늑대가 나타난 옆 수풀에서도 비슷한 풀들의 흔들림이 생기고, 두 마리의 늑대들이 더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늑대들은 발을 구르고 말이 투레질을 하는 것처럼 거품 섞인 침을 흘리며, 목에서 쟁기로 나무 긁는 것같은 소리를 그럭그럭거렸다. 놈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몸을 흔들고는 곧 첫번째 늑대를 쫓아 바위 쪽으로 껑충 뛰어 내달렸다.
모두 세 마리의 늑대가 어슬렁 거리며 여근석 주위를 배회하다가 이윽고 그것에 다가가서 구멍을 핥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징그러우면서도 매우 기묘한 광경이었다.
잠시 그것을 보고 있던 쇼트웨이브는 난데없이 차가운 얼음이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고도 4000미터의 상공에서 낙하를 기다리며, 낡아서 삐걱거리는 경비행기 아래 엉성하게 용접해 놓은 점핑보드에다 발을 올려놓고 지상을 내려보았을 때나 느낄만한 기분이었다.
찌릿하면서도 위험스런 느낌에 사로잡힌 그녀는 개울의 상류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흐린 녹색 빛으로 타오르고 있는 눈동자같은 두 개의 불빛을 찾아냈다. 그것이 눈동자라면 그 눈은 정면으로 그녀들을 보고 있을 터였다. 그 순간 디지털퍼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물었어."
갑지기 무슨 소린가 싶어 쇼트웨이브가 디지털퍼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디지털퍼머는 가슴 앞으로 손가락을 내밀고 있었는데 그것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골무를 볼 수 있었다.
"골무가 물었다구."
디지털퍼머가 빠르게 말했다.
여근석이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늑대들이 후다닥 몇 발자국 뒤로 후퇴했다. 다시한번 여근석이 들썩거렸다. 그러더니 여근석 밑으로 묻혀있던 굵은 나무 줄기같은 것이 흙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마치 길게 묻혀있던 파이프라인이 지진으로 인해 땅에서 튀어올라오는 것 같았다. 둥근 나무 줄기에 묻어서 따라올라오던 흙과 모래더미가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여근석을 꼭지점으로 해서 V자 형태로 벌어진 2개의 나무줄기였는데 그녀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2,3미터쯤 위로 올라가더니 말굽 모양으로 굽어져 더이상의 상승을 멈추었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그녀들이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녀들은 구부려서 세운 거대한 허벅지와 무릎과 종아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퍼머가 놀라서 소리쳤다.
"저거 다리지,응?"
"그래. 거인의 다리야."
디지털퍼머가 정신없이 그것을 쳐다보다가 비로서 생각이 미쳤다는 듯 말했다.
"그럼 저 바위는 여근석이 아니었던거야? 그렇담 저게.."
쇼트웨이브가 거대한 다리를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
"살아있는 거였어, 바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성기."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는 여인의 하체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마치 바닷가에서 모래찜질을 하듯이 몸을 개울 모래 속에 깊숙이 파묻고 성기만을 노출시키고 있다가 이제 무릎을 세워든 것이었다. 곧이어 개울 옆 편에서 바닥을 뚫고 커다란 손 하나가 솟구쳐 올라왔다. 손은 무엇을 할퀴려는듯 고양이 발톱처럼 손가락을 웅크린채 어깨를 앞으로 하여 하늘을 향해 팔을 쭉 펴 올렸다.
팔 옆으로는 검은 쇠사슬이 철컹거리며 주르르 따라 올라왔는데 그것은 손목에 채워진 투박하고 단단해 보이는 쇠고랑에 걸려 있었다. 일자로 펴졌던 팔이 수평으로 내려오며 팔꿈치를 꺾어 직각으로 땅을 받쳤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손이 개울 건너편에서 튀어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올라갔다가 꺾어져 내려와 땅을 받쳤다.
아까 쇼트웨이브를 노려봤던 두 개의 불빛이 천천히 다가왔다. 불빛은 공중으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그것을 감싸고 있던 윤곽을 드러냈다. 불빛 주위로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미간과 날선 이마, 코, 그리고 달걀 모양의 커다란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공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생각했던대로 불빛은 그 얼굴에 박혀있는 두 개의 눈이었던 것이다.
땅바닥을 받친 팔에 힘을 주며 여근석 위쪽으로 거대한 몸통이 일어나더니 폐자재를 잔뜩 실은 트럭 적재칸이 세워졌을 때처럼 몸통 위에 쌓여있던 자갈과 흙더미를 와르르 쏟아냈다. 거인이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을 때 그녀들은 이 커다란 여인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여인은 두 손목에는 축이라 불리는 쇠고랑을, 두 발목에는 요라고 불리는 족쇄를, 목에는 질식이라도 시킬듯이 꽉 끼게 감아놓은 두터운 철삭을 두른 채 쇠사슬로 엮여져 개울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구속된 사람처럼 그녀는 개울에 결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연한 갈색 빛깔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매끄럽게 코팅된 내퍼 타입의 가죽점퍼처럼 윤이 나고 있었다. 단단하게 곤두선 유방이 거친 숨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렸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와 커피빛 복부 사이에서는 늑대들이 핥던 미끈한 음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가느다란 실뱀들이 가득 돋아나 있었는데 혀를 날름거리며 뒤엉켜 있는 모습이 전설 속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를 연상하게 했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들의 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검은 입술을 벌려 어두운 동굴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목구멍 속에서 끈끈하게 끄집어낸 메탈릭한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길고 긴 고음의 괴성이 벌판 전역을 뒤덮고 뒤편의 험준한 봉우리들 틈에서 메아리쳐 되돌아왔지만, 나이든 소방관이 쉬지않고 돌려대는 사이렌의 회전판처럼 그녀가 지르는 소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기겁을 하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빨리 도망가. 빨리."
디지털퍼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마리의 늑대들이 그녀들의 차를 향해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증오와 굶주림으로 목울대를 울려대며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숨도 쉬지 않는지 여전히 멈추지 않는 그녀의 괴성 속에서 절의 중문이 활짝 열리며 승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경고음을 지르며 침입자를 가리키는 거대한 여인을 보았고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홍예다리 입구에 서 있는 그녀들의 차를 보았다.
승려들이 그녀들을 향해 조용히 돌아서더니, 모두들 일순 한치 정도 키가 줄어든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가 갑자기 모든 관절이 탈구된양 신체를 이리저리 기괴하게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앙에 선 한 명의 키 큰 승려를 필두로 하늘을 향해 사람이라면 절대 낼 수 없는 오싹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리고 차례차례 땅바닥에 엎드려 네발로 몸을 지탱하더니 순식간에 회색털이 가득한 짐승으로 바뀌어 갔다. 처음에 본 세 마리의 늑대들처럼 승려들 하나하나가 모두 포악스런 늑대로 변한 것이었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모두 변신을 마치자 마치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그들은 그녀들의 차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쇼트웨이브는 전속력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빠르게 홍예다리를 빠져나와 벌판으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늑대들이 스프링이라도 달은 것처럼 탄력있게 뛰어오르며 가볍게 개울을 건너왔다.
차가 몹시 삐걱댔으나 쇼트웨이브는 차가 들려주는 모든 이상징후를 무시하고 운전대를 단단하게 움켜잡고는 속력을 높였다. 갈대들이 물결처럼 차를 스쳐 지나갔다. 길인지 벌판인지 구분할 수 없는 통로에 높게 자라있던 잡초와 풀들이 차의 범퍼에 부딪히고 타이어에 꺾이며 그녀들이 지나간 흔적을 초속 30미터의 직선으로 보여주었다.
늑대들은 넓게 산개한 채 그녀들을 쫓아왔다. 그것은 전형적인 늑대들의 사냥법이었다. 먹이가 군집이었다면 며칠 간을 그렇게 쫓으면서 그 중 가장 약한 개체를 골라 사냥했을 터이지만 그녀들의 경우처럼 단 하나의 개체를 사냥하는 것이라면 먹이가 공포에 질려 쫓기다가 지치고 기운이 빠지며 심리적으로 무너져 자포자기가 되었을때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큰 일이야."
쇼트웨이브가 제 멋대로 요동치려는 운전대를 고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소리쳤다. 디지털퍼머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차는 기름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늑대들은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서둘지 않고 그녀들을 놓치지 않을 거리에서 끈덕지게 따라붙고 있었다.
"어쩌지?"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를 쳐다보았다.
쇼트웨이브는 휠에서 전달되는 충격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주머니를 하나 열어볼 때가 된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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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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