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2부
『 - 사족 -
1부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본 별볼일 없는 ㅡ_ㅡ 환타지 야설은,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다섯 분은 되신다고 확신이 서는 동안에만 계속 연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쓰는게 느리고 주말에만 제대로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순수 아마츄어(회사원)인 관계로, 일주일에 한 부씩이라는 극악의 연재속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점에 대해 거듭 양해 말씀을 올립니다.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매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위 안내문은 상투적인 머릿말이 아니며, 본 야설의 실제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아래 내용을 읽으시지 말 것을 거듭 권고 드립니다.
- 2부 - 이어지는 전설 (블랑키아 마을 편 : 고양이의 분노)
"소이라 미리어(미리어 누나)!"
이 나라 말로 부르며 품에 뛰어 드는 꼬마 카알을 미영이 활짝 웃으며 꼬옥 안아 주었다.
이 마을에 도착한지도 어느새 한 달, 미영의 이 나라 말 실력도 이제는 어느 정도 늘어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미영" 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 했다.
특히 어린 카알에게는 더욱 어려웠는지 어느날부터 자기 마음대로 미영을 "미리어"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주영은 "주리아", 수진은 "수잔", 지선은 "쟈넷" ..... 아마 발음이 비슷한 이 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준 듯 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여자들은 어린 카알이 붙여주는 이름을 마을 사람들과 얘기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주 - "젖소"는 "플로라".
"플로라? 어머! 괜찮네! 아마 꽃이라는 뜻인가 보지?"
(한 달째 같이 있게 되면서 28살로 가장 나이가 많은 "젖소"는 별로 친해지지 않은 여검사 재연을 제외한 다른 여자들에게는 말을 놓게 되었다.)
"아마..... 그럴 걸요."
미영을 돌아보며 묻는 "젖소"에게 아직 어휘가 부족한 미영은 얼버무리듯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며칠후, 카알에게 이 나라 말을 배우던 중 미영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돼지는 "오키", 젖소는 "플로"?"
이 나라 말로 어린 여자를 "로라" 라고 부르니 "플로라" 라고 하면 아마 "젖소 아가씨"?
미영은 뒤늦게 알아낸 사실을 "젖소"에게 알려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해서 일단 그냥 있기로 했다.
그리고 여검사 재연은.....
"클로디아!"
이름을 지어주려고 고민하는 어린 카알을 보고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흐음..... 클로디아요?"
"요즘은 영어 이름 하나 정도는 기본이죠."
신기해하는 주영에게 변함없이 쌀쌀맞은 목소리로 재연이 말했다.
사실 지선이라는 아가씨를 부를 때 마을 사람들은 "쟈넷"이라는 이름보다는 "셍뜨레" 좀더 길게 부를 때는 "셍뜨레 데 실비앙" 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했다.
이 나라 말로 "셍뜨레" 는 "성녀", "셍뜨레 데 실비앙" 은 "은발의 성녀" 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난 번 산적 소탕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은 미영 일행들에게 항상 매우 정중하게 감사와 존경의 태도를 갖고 대하게 되었고, 특히 지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마치 지상에 내려온 천사나 성녀를 보는 듯한 공손함과 황송함이 어려 있었다.
"아닙니다! 셍뜨레(성녀)님께 서빙을 시킬 수는 없죠! 아가씨들 모두 오늘부터는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다 하겠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여기에 머무르시고 식사도 계속 공짜로 대접해 드릴 수 있다면 가문의 큰 영광입니다!"
무뚝뚝한 얼굴에 턱수염까지 기르고 있는 식당 주인이 안 어울리게 당황스런 얼굴로 아직 이 나라 말이 서툰 미영 일행에게 열심히 손짓 발짓을 섞어서 이렇게 말했지만, 미영은 웃으며 부엌에 들어가 평소처럼 밀가루를 섞어 빵을 만들고 감자와 버섯 스프를 끓였고, 다시 벌목일을 하러 간 수진을 제외한 지선과 다른 여자들은 음식을 날랐다.
은발의 아름다운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생긋 웃으며 빵접시를 가져다 줄 때면, 모든 사내들이 두 손으로 공손히 접시를 받았고, 심지어 몇 명은 - 자기 돈 내고 사먹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 셍뜨레(성녀)님께서 친히 하사해 주시는 음식을 받는 황송함과 감격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산적들은 창고에 묶어서 가둬 두었는데 연락이 가면 다음달쯤 큰 마을에서 호송마차가 올 거라고 했다.
"저 사람들에게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거니?"
미영이 묻자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천사처럼 귀엽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언니! 아직 저는 치료하는 능력뿐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 같아요.
수진이 언니의 능력이 좀더 적당하지 않을까요?"
"휴우! 이 앤 종종 의외로 냉정하다니까!"
미영이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따뜻하고 선량하고 착하고 모두 좋은 사람들..... 부유하진 않지만 다들 나름대로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있는 것 같고..... 이 마을에 계속 머무르며 살고 싶다!"
미영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샹리아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붕붕!" 하고 자동차를 설명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전화에 대해서 얘기하자 대부분 아는 눈치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큰 마을"이라고 부르는 마을에도 아마 없지만 더 큰 마을이나 도시로 가서 "메로빙" 이라는 걸 사용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이 마을은 도대체 어디길래 이렇게 몇백 년전 옛날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걸까?
심지어 산적들도 총이 아니라 칼을 들고 다니질 않나!
온화한 날씨로 봐서 아프리카도 아닌데.....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고민하며 미영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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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셔야 합니까? 미리어님이 끓여주시는 버섯 스프는 이 나라 제일의 맛이었는데....."
샹리아 마을의 늙은 촌장이 한숨을 쉬며 이 나라 말로 미영에게 말했다.
드디어 한달에 한 번씩 모아 놓은 나무를 싣고 가는 여러 대의 대형 마차들이 큰 마을로부터 도착했고 촌장 등의 부탁으로 미영 일행도 큰 마을까지 태워주기로 되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미영 일행을 환송하러 나와 아쉬움과 슬픈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소이라(누나)! 소이라(누나)!"
이 나라 말로 미영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어린 꼬마 카알을 미영도 눈물을 흘리며 꼬옥 안아 주며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미안, 카알!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올게!"
"정말이지, 소이라 미리어(미리어 누나)? 꼭 돌아와야 해!"
미영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가 어딘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간 뒤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마차를 타고서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올게!"
무뚝뚝한 얼굴에 안 어울리게 슬픈 표정을 가득 짓고 있는 술집 주인에게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은발의 빛나는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가까이 걸어가더니 넓은 품에 "푸욱!" 안겨서 주인의 넓은 가슴에 어린애처럼 머리를 비비고 문지르며 눈물을 흘리면서 이 나라 말로 말했다.
"그동안 너무 고마왔어요, 아저씨! 저도 언젠가 다시 놀러올게요!"
술집 주인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부디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님께서 놀러와 주신다면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그 동안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따라서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몇몇 젊은 남자들이 술집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가득가득 배어 있었다.
"이건 얼마 안됩니다만, 저희들을 구해주신데 대한 작은 보답입니다. 부디 받아 주시길....."
늙은 촌장이 이 나라 말로 말하며 작은 불룩한 주머니를 내밀자, 미영이 손을 저으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 주시지 않아....."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젖소" 은주가 어느새 앞으로 나와 두손으로 주머니를 받으며 꾸벅했다.
"은주 언니! 이 나라 돈은 어차피 한국에 가면 쓸 수도 없다구요!"
볼을 붉히며 미영이 항의하자, "젖소"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주신 성의도 있잖아! 그리고 여행 경비로라도 쓰지 뭐!"
잠시후 여섯 대의 대형마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영 일행은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마차 밖으로 손을 흔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정말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을이었다!
네댓 시간 마차를 달린 후, 작은 공터에서 마차들이 멈춰 섰다.
여섯 대의 대형 목재마차를 모는 마부와 일꾼들은 모두 열 다섯명이었다.
마차마다 여섯마리의 말들이 끄는 마차들은 - 말들의 줄이 묶여 있고 마부석이 있는 앞 부분, 바퀴달린 길고 두꺼운 나무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나무들을 가득 실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뒷 부분, 아주 작은 창들이 네 군데 나 있는 중간 부분의 - 각각 바퀴들이 달려 있는 세 부분을 붙여 놓은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미영 일행은 그중 한 마차의 중간 부분에 모여서 타고 있었다.
다들 모이자 몇 명이 나무를 모아 피운 모닥불위에 큰 남비를 얻고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영이 웃는 얼굴로 끼어들어 솜씨좋게 칼로 감자 껍질을 까고 버섯과 이름모를 채소 등을 넣으며 스프를 만드는 것을 거들었다.
약간 험한 인상에 볼에는 상처 흉터까지 있는 남자가 미영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 미영의 허리에 찬 긴 칼을 - 산적들이 쓰던 - 힐끔거리며 이 나라 말로 말을 걸어 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짐스웰이라고 합니다."
"미리어라고 합니다."
미영이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그제야 다른 사내들도 멋적게 웃으며 자기 이름들을 얘기하고 미영 일행도 이 나라 말 또는 영어 이름들을 얘기했다.
짐스웰이 한숨을 쉬며 이 나라 말로 얘기했다.
"귀족 아가씨들 같은 분위기로군요. 아가씨들이 산적들을 스무 명이나 소탕하셨다는게 사실인가요?"
귀족 이라는 말은 미영이 배운 어휘 중에 없어서 의미를 물어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미영이 서툰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단지 운이 좋았죠."
그러자 짐스웰이 다시 한숨을 쉬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나는 아가씨들과의 동행에 반대했습니다.
샹리아 마을 사람들과는 여러 해 동안 친하게 지냈고 촌장 어르신의 각별한 부탁에 특별 수당까지 주셔서 태워드리긴 합니다만..... 이 마차여행은 5일을 꼬박 가는 힘들 길일 뿐 아니라 중간에 블랑키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블랑키라는게 뭐죠?"
미영의 말에 짐스웰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보군요. 블랑키는 키가 요 정도 (미영의 허리께를 손으로 가리켰다) 되는 작은 소인들입니다."
"흐음..... 위험한가요?"
주영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물었다.
"식인종들이죠!"
"에에에? 아직도 식인종이 있어요?"
주영이 크고 예쁜 붉은 눈동자를 더욱 크게 하며 놀라움으로 물었다.
하지만 짐스웰은 오히려 그 얘기를 처음 듣는 것 같은 미영 일행이 더 놀라운 듯 했다.
"죄송하지만, 여분의 갑옷이 없군요. 마차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안에 있는 활은 위험하니 안 만지시는게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부와 일꾼들 모두 가슴과 몸통 부위를 앞뒤로 가리는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고 말들도 목과 몸통에 가죽 가리개를 대고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차들의 중간 부분도 약간 불필요할 정도로 크고 튼튼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습격을 받을 경우에 안에 들어가서 싸우기 위한 엄폐 목적을 겸하는 듯 했다.
일꾼들은 미영이 끓인 스프를 먹으면서 "같은 재료로 끓였는데 왜 우리가 끓인 것보다 훨씬 맛있는거지?" 하면서 좋아했고 덕분에 미영 일행에 대한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
식사를 한 후 모두들 다시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위해 숲속 길치고는 제법 넓은 길이 숲을 가로질러 뻥 뚫려 있었지만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리고 흔들려서 사실 마차 여행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리고 또 다음 날도 한참 마차를 달린 후 오후 무렵에야 겨우, 통나무를 세워 만든 담으로 둘러 쌓여 있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에엥? 벌써 큰 마을에 도착한 건가요?"
주영의 물음에 마부석의 마부가 킬킬 거리며 역시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아니요! 중간에 쉬어가는 마을입죠!"
"끼이이이이이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육중한 통나무 문이 열리고 마차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문이 닫혔다.
말을 돌봐주러 온 마을 사람들이 마차중 한 대에서 내리는 아름다운 다섯 명의 아가씨들과 여자 한 사람 - 여검사 재연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체 집 수가 열 집도 안되는 정말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열 살이나 조금 넘었을까 남매로 보이는 어린 꼬마 두 명이 신기한 듯 넋을 잃고 올려보는 걸 보고 카알의 생각이 난 미영의 얼굴이 흐려졌다.
하지만 반갑게 웃으며 이 나라 말로 인사했다.
"살루앙(안녕)?"
"살루앙테(안녕하셔요)?"
꼬마들이 꾸벅 고개를 숙여 귀엽게 인사했다.
"이 마을은 이름이 뭐니?"
"블랑키아요."
"블랑키아면 식인종이라는 블랑키들의 마을이라는 뜻인가?"
미영이 섬?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 마을은 마을 전체가 여관업을 해서 먹고 사는 듯 했다.
마을회관 겸 여관으로 쓰이는 것 같은 큰 통나무집에서 마부, 일꾼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가져오는 빵과 스프를 먹으면서, 미영은 - 겨우 한 달 있었지만 - 처음 도착했던 샹리아 마을의 친절했던 마을 사람들이 어느새 그리워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하얀 턱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한 사람이 맥주를 마시며 아마 이 마을 사람들은 수백 번도 더 들었을 레파토리를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 마을도 한 때는 잘 나갔었는데 말이야. 그 놈의 블랑키 놈들 때문에 이제는 마을이 없어지기 직전이야."
아직 서투른 미영의 이 나라 말 실력으로는 알아듣기 조금 힘들었지만 대충 그런 취지의 말인 듯 했다.
"애들은 잡아 먹히고 여자들은 끌려가고 저 울타리 밖으로 꼼짝도 못하고 못 나가 보니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거겠어!"
노인의 푸념에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짐스웰이 맥주잔을 가볍게 부딪쳐 건배하며 물었다.
"요즘도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나요, 영감님?"
"작년, 올해는 아직 없었어! 밤마다 열심히 불침번을 서니까! 하지만 언제 또....."
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을 회관의 나무 문이 벌컥 열리며 미친 여자처럼 갈색의 긴 머리카락이 온통 헝클어진 조금 나이든 여자가 구르듯 뛰어 들어왔다.
"살려 주셔요! 살려 주셔요! 저희 애가, 에이미가 잡혀갔어요!"
"뭐라구요!"
모두들 깜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미친 여자처럼 횡설수설하며 급한 목소리로 떠드는 얘기에 따르면 블랑키들이 집안까지 들어와 딸애를 납치해 갔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구하러 가 줄 것을 애걸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불침번 놈들은 뭐한거야! 블랑키 놈들이 숨어드는 것도 발견 못하고....."
노인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맥주를 거칠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흐음..... 잡혀가면 잡아먹히는 건가요?"
주영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겁먹은 작은 목소리로 이 나라 말로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이 아직도 울면서 옆에서 떠들고 있는 여자를 보며 - 마을 사람들이 진정하라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이미는 이제 겨우 11살이니 아마 잡아 먹히겠지. 더 나이든 여자들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당한다네."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 주영의 표정을 보고 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가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군. 아가씨도 조심하게.
블랑키들은 여자를 잡아가면 잡아 가둬 두고 새끼를 낳게 하지.
블랑키와 인간 사이에서는 왠일인지 항상 블랑키만 나오거든.
죽을 때까지 돼지처럼 묶여서 블랑키들의 새끼를 낳는다고 생각해 보게."
상상이 안가는 끔찍한 얘기에 주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에이미라는 아이 구하러 가지 않나요?"
주영의 말에 노인이 슬픔과 부끄러움이 함께 담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예전에는 이 마을도 꽤 컸었지. 여관만이 아니라 벌목 마을을 겸해서 오십여 집에 이백 명이 넘게 살았던 적도 있었다네.
십여 년전에 처음 블랑키들이 몇 놈씩 나타났을 때는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블랑키들을 토벌하려고 더러더러 시도도 했었네.
하지만 이 근처 숲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블랑키들의 마을을 찾을 수가 없었어.
블랑키 놈들은 남자들이 잔뜩 모이면 도망가 숨어 있다가 흩어지거나 밤이 되면 역습을 해서 도리어 한 사람씩 죽이곤 했네.
그리고 밤이면 툭하면 마을을 습격해서 어린 애들을 잡아가 잡아먹고 여자들을 잡아갔지.
도저히 배겨낼 방법이 없었네.
이제는 마을의 사람 숫자가 너무 적어져서 토벌대를 만들 여력도 없네.
주위에 울타리를 쌓고 쥐새끼들처럼 숨어서 지낼 뿐이지."
얘기를 듣고 있던 미영이 끼어들었다.
"블랑키들이 여자들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노인의 얼굴이 더욱 슬픈 표정으로 흐려졌다.
"잡혀갔던 한 여자가 알몸으로 도망쳐 온 적이 있었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에 완전히 미쳐서 블랑키들의 마을 위치조차 알려줄 수 없었네.
결국 두어달 뒤 블랑키 새끼들을 낳다가 죽었지만....."
주영이 미영에게 말했다.
"흐음..... 언니! 우리가 구하러 가 볼까?"
미영이 곰곰히 생각하며 대답했다.
"너무 위험하고 어려울 거야.
우리는 블랑키들이 소인에 식인종이라는 것밖에는 몇 명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또 내일 아침에 마차들이 떠날 때 마차를 얻어 타고 같이 떠나야 하니까."
"얘기하면 며칠 정도 시간을 주지 않을까?"
주영이 침통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짐스웰에게 다가가 뭐라고 얘기하는 듯 했으나, 짐스웰은 "푸욱!" 하고 맥주를 내뱉으면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더니 미영에게 뛰다시피 다가와 이 나라 말로 말했다.
"아가씨들이 산적을 스무 명이나 토벌했고 치료의 기적까지 발휘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나는 샹리아 마을 사람들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블랑키들은 산적들 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에요!
너무 작고 너무 날쌔서 특히 어두운 밤에는 숲속에서 인간은 블랑키의 상대가 되질 못합니다!
여기 이 상처 보입니까?"
짐스웰이 볼에 길게 난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삼 년쯤 전의 어느날, 오늘 밤처럼 어떤 어린애가 납치되었을 때, 마침 마을에 머무르던 저도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죠.
다음날 아침 마을 남자 삼십여 명과 함께 저도 단단히 무장을 하고 블랑키들을 토벌하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블랑키 놈들은 낮에는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두워지자 사방에서 한 명씩 한 명씩 마을 사람들을 기습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처는 갑자기 덤불에서 튀어나온 어느 블랑키가 휘두른 날카로운 돌에 맞은 자국입니다.
새벽 녘에 겨우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삼십여 명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겨우 열댓 명 뿐이었습니다!
잡혀갔던 어린애도 구출하지 못했고, 죽인 블랑키는 잘해야 다섯 놈도 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원통함이 생각난 듯 무뚝뚝하고 험악한 인상의 짐스웰의 파란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떠납니다. 절대로 엉뚱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안됩니다!!!"
어느새 미영의 일행들 모두 둘러서서 짐스웰의 말을 듣고 있었다.
"휴우!" 한숨을 쉬며 미영과 일행들 모두 마을 회관에 딸린 작은 방 하나로 자러 들어갔다.
아이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구하러 가주셔요! 제 딸애 좀 살려 주셔요!" 라고 울부짖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주 눈물을 흘리면서 여자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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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지 30분이나 지났을까, 깜빡 잠이 들었던 미영은 뭔가 인기척을 느끼고 반짝 잠이 깼다.
얼핏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를 들은 듯 했다.
"잘못 들었나?"
주위를 둘러보자, 놀랍게도 바로 옆자리에 누워있던 주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영은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을 회관옆의 재래식 화장실도 들여다 보았으나 거기에도 주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미영의 몸이 두려움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부싯돌을 찾아 등불을 켜 보려다가 포기하고 어둠 속에서 다른 여자들을 깨우며 미영이 말했다.
"어떻게 해, 수진아? 주영이가..... 주영이가 잡혀간 에이미라는 애를 구하러 간 것 같아!"
"빨리 따라가자!"
수진도 당황하며 외쳤다.
"저도 따라갈게요. 혹시 다치시면 도움이 될 수 있을거에요."
지선이라는 아가씨의 말에 "젖소" 은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빨리 따라가 보자!"
잠이 깼던 여검사 재연이 귀찮은 듯 인상을 쓰더니 도로 잠자리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지난 번 산적 사건때도 어딘가에 혼자 숨어 있다가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나온 재연이었다.
미영은 재연에게 말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것 없이 서둘러서 옷을 챙겨 입고 허리띠에 검집을 줄로 묶고 긴 칼을 찬 후, 마을회관 겸 여관 밖으로 나갔다.
마을 입구에 가자 긴 칼을 허리에 찬 채 불침번을 서고 있던 두 명의 마을 남자들이 막으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밤에는 나가시면 안됩니다. 블랑키들이 있어요!"
"제 동생이 에이미를 구하러 나갔어요. 빨리 따라가야 해요."
두 남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말했다.
"이 안 어디에 있겠죠. 아무도 나간 사람은 없습니다. 이 무거운 통나무 문은 남자 두 명이 잡아당겨야 겨우 열 수 있어요.
몰래 열 수 있는게 아닙니다."
"아니요! 틀림없이 나갔어요! 우리도 따라가야 해요!"
그 때 "끼이이이이이이익!" 하고 통나무가 바닥에 끌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진이 문의 빗장을 풀고 도르레를 통해 통나무 문에 연결된 굵은 밧줄 한 가닥을 잡아당기자 천천히 육중한 통나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그 모습을 쳐다보던 남자들이 말했다.
"힘이 굉장히 세군요! 하지만 블랑키들은 힘만 세다고 잡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나가지 마십시오!"
"죄송합니다! 가 봐야 해요! 횃불 몇 개만 가져갈게요!"
미영이 통나무 담에 설치된 횃불 대에서 횃불 한 개를 뺀 후, 서둘러 열린 통나무 문으로 빠져나가자 수진, 지선, "젖소" 은주도 횃불 하나씩을 빼들고 뒤따라 빠져 나갔다.
남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네 명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숨을 쉬면서 반대쪽에 있는 다른 굵은 밧줄 한 가닥을 둘이 같이 잡아당겼다.
몸무게를 실으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힘을 주며 매달려 잡아당기자 천천히 육중한 통나무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주영은 어두운 숲속 오솔길을 소리 없이 달리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지만 대낮에 큰 길을 전력질주하듯 어두운 숲속 길을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는데도 달리는 동작이 어떻게나 부드러운지 발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고 숨도 전혀 차지 않는 듯 했다.
"흐음..... 역시 혼자 나오니까 무서워!
미영이 언니에게 내가 한밤중에도 환히 볼 수 있게 됐다는 걸 얘기하고 같이 나올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다가 언니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역시 나 혼자 조용히 에이미라는 애를 구해서 튀는게 최고야!
하지만..... 흐음..... 근데 이 방향이 맞는거야?"
무작정 한참을 뛰던 주영이 문득 중요한 문제를 깨닫고 발을 멈췄다.
"아니..... 이 방향이 맞아! 바닥에서 나는 진하고 역겨운 노린내가 마을에서부터 이쪽으로 죽 이어지고 있어!"
주영은 다시 어둠속을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헉헉! 숨 차! 나무에 여기저기 긁혔어! 역시 횃불 불빛 만으로는 너무 어두워!"
"젖소" 은주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약간 지나칠 정도로 풍만한 가슴이 숨을 크게 쉴 때마다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보이지 않아요!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에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쪽이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느낄 수 있어!"
미영이 단호하게 말하며 다시 걸음을 빨리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길이 아니어서 미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며 나무뿌리, 돌부리들이 계속 몸이며 발에 걸려서 좀처럼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한편, 한참을 전력질주하듯 숲속의 좁은 오솔길을 달리던 주영의 눈에 멀리 앞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키가 1미터나 조금 넘을까 싶은 조그만 것들이 그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축 늘어진 무언가를 넷이서 들고 달리고 있었다.
"찾았다! 거의 따라 잡았어!"
주영이 걸음을 빨리하자 앞에서 움직이던 것들이 빽빽한 나무들 앞에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
"에에에? 뭐.... 뭐야?"
주영도 뛰어서 나무들 앞으로 다가갔다.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마치 담장처럼 빽빽하게 우거져서 조금의 틈도 없이 앞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밀어보자 억세보이는 가지들은 놀랍게도 매우 부드러웠고 쉽게 구부러지며 밀어졌다.
"이렇게 밀면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건가?"
주영의 몸이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부드러운 나뭇가지들은 주영이 움직이는 대로 밀렸다가 지나가자 다시 원래 자리로 들어와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십여 미터 정도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뚫고 가자 놀랍게도 제법 넓은 공터에 풀과 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 같은 조잡한 모양의 움막들이 수십 채 보였다.
그리고 원숭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블랑키들은.....!
"뭐야! 저거! 소인이라더니 인간이 아니잖아? 저게 도대체 뭐야? 으윽! 노린내같은 고약한 냄새가 지독해!"
주영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TV에서 본 피그미같은 난쟁이 원주민을 생각했었으나, 눈앞의 블랑키들은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1미터 조금 넘는 작은 키에 무엇보다 피부가 녹색이었고 귀는 박쥐처럼 크고 위쪽이 뾰족한 데다가, 거의 귀까지 짝 찢어진 큰 입에는 개들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반짝거렸다.
허리 둘레에 지푸라기 같은 걸 둘러서 겨우 가리는 시늉만 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작은 덩치에 비해 팔 다리는 제법 굵어서 힘이 꽤 세 보였다.
"끄으으응!"
막 도착한 네 명 - 아마도 네 마리라고 불러야 할 블랑키들이 끌고 온 에이미라는 어린 여자애를 거칠게 바닥에 던지자 정신이 드는지 에이미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블랑키들이 "꺄악! 꺄악!" 원숭이 같은 소리들을 내더니 어린 여자애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서 벗기기 시작했다.
11살이라더니 아직 가슴도 없고 성기에도 음모가 없이 깨끗한 정말 어린애의 알몸이 드러났다.
"어떻게 하지? 구해줘야 하는데..... 하지만 오십 마리도 훨씬 넘어 보이는데! 이래서는 몰래 구할 수도 없겠어!"
주영이 망설이고 있을 때, 블랑키 한 마리가 위에서 에이미의 양손을 꽉 잡고 다른 한 마리는 에이미의 다리를 벌리고 꺅꺅 거리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아야야야야! 아야! 아야! 아야야! 엄마! 엄마아!!"
정신을 차렸는지 어린 에이미가 고개를 들고 울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퍼어억!"
블랑키 한 마리가 잔인하게도 큰 돌맹이로 사정없이 에이미의 턱을 내리치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에이미는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조용해졌다.
하지만 하체에 붙은 블랑키가 그것을 몸속에 밀어넣자 매우 고통스런 듯 어린 에이미는 고개를 흔들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밤이지만 환히 보이는 주영의 눈에 블랑키의 그것이 보였는데 의외로 인간 남자들의 그것만큼 큰 크기였다.
"조그만 것들이 좆은 좆같이 크네! 몰래 다가가서 하나씩 뒤통수를 묵직한 걸로 치면.....? 아냐! 말도 안돼!
틀림없이 들킬거야!"
"어바바바바!"
입이 온통 터지고 턱까지 깨졌는지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어린 에이미가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냈다.
블랑키들이 에이미를 엎드려 놓더니 한 마리가 밑에 누워 에이미를 몸 위에 올라 앉힌 채 에이미의 성기에 그것을 박고 다른 한 마리는 피를 줄줄 흘리는 에이미의 작은 입안에 발기한 그것을 쑤셔 박았다.
또 한 마리의 블랭키가 에이미의 아직 어리고 작은 엉덩이 사이에 그것을 강제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지만 지르르 피가 터지면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이미의 온 몸이 끔찍한 고통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저 새끼들이! 예전에 어떤 개새끼들이 했던 짓하고 비슷한 짓을 하고 있잖아! 합체라고 했었든가? 개새끼들!!!"
("강제로 길들이기" 10부 내용 참조)
주영의 주먹이 하얘질 만큼 꽉 쥐어쥐더니 온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블랑키 몇 마리가 "꺅!" "꺅!" 소리를 지르더니 어느 움막에서 뭔가를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돼지? 큰 원숭이인가? 서... 설마? 인간? 여자?"
인간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지저분하게 까맣고 갈색 얼룩과 먼지투성이인 여자가 알몸으로 돼지처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끌려 나왔다.
머리는 말도 안될 정도로 산발이 되어 있었고 뭐라고 입을 벌렸으나 턱이 박살이 나서 어긋났는지 아무 소리도 새나오지 않았다.
여자를 좀더 자세히 보자 왜 그렇게 몰골이 엉망일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리는 멀쩡했지만 여자의 양 손목은 모두 잘려 있었다!
"저..... 저것들이!"
주영의 몸의 떨림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때 블랑키 한 마리가 신이 난 듯한 소리로 끽끽 거리더니 큰 돌맹이로 마치 돼지를 잡듯이 끌려나온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여자는 소리도 나지 않는 입을 벌리고 뭐라고 절규하다 눈이 하얗게 뒤집히며 옆으로 픽 쓰러졌다!
"팍삭!!"
그 순간 바라보고 있던 주영의 머리 속에서도 뭔가가 깨져 나갔다!!!
주영의 원래 붉은 색인 눈동자가 거의 알아채기 힘들 만큼 아주 조금 더 붉게 변했다!!!!
주영은 숨어 있던 나무 덤불 사이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음 순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저주하는 듯한 끔찍한 포효가, 피를 갈구하는 잔인한 맹수의 울부짖음이 밤하늘을 가르며 길게 울려 퍼졌다!!!!!!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옹!!!!!!!!!!"
.................................................................................................
횃불을 켜들고 밤길을 달리던 미영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미영아?"
수진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저 앞에서 고양이 소리가 난 것 같아!"
"고양이 소리?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좀더 빨리 가야 할 것 같아!"
미영이 지선이라는 아가씨와 "젖소" 은주를 바라 보았다.
둘다 숨이 차서 쓰러지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헉헉헉! 우리 걱정 말고..... 헉헉! 먼저 가! 블랑키란 것들도 저 앞에 있는 거잖아! 헉헉!"
"먼저 가세요, 언니들! 학학학! 저흰 도저히 더는 못 뛰겠어요!"
미영은 횃불을 땅에 비벼 꺼 버리고, 지금까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수진은 횃불을 들고 따라왔지만 나무 뿌리며 가지 등에 자주 발이 걸려 빠른 속도로 따라오기는 힘들어했다.
"미영아! 너는 이렇게 깜깜한 밤에도 잘 보이는거야?"
"응! 조금 전에야 깨달았는데 밤눈이 꽤 밝아진 것 같아! 하지만 아주 환하게 잘 보이는 정도는 아니야!"
잠시후 나무들이 벽처럼 빽빽하게 우거진 곳이 나타났다.
"이 안에 주영이가 있어!"
수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확실해? 들어갈 수 없게 생겼는데?"
하지만 미영이 억세 보이는 나뭇가지를 밀자 의외로 부드럽게 밀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들어가자!"
부드러운 나뭇가지들을 십여 미터쯤 계속 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넓은 공터와 함께 풀과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조잡한 움막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이게 뭐야!"
미영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떨렸다.
사방이 온통 피바다였다!
녹색의 원숭이인지 인간인지 구별이 안 갈 이상하게 생긴 조그만 것들이 머리, 팔, 다리 할 것 없이 온통 토막토막이 나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철썩!"
피바다 웅덩이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더니 벌떡 일어났다.
"주..... 주영이니?"
피속에서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전신이 피로 범벅이 된 주영이었다!
"언니? 언니! 언니이이이!!!"
주영이 눈물을 흘리면서 미영에게 뛰어들어 덥썩 안겼다.
코를 찌르는 피냄새에 역함을 느끼며 미영이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네가 전부 이렇게 한거야?"
주영이 우는 얼굴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응! 내가 그랬어! 이것들은 이렇게 죽어도 싸! 내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내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한 사람이 또 죽었어!
흑흑흑! 아아아앙!"
"맙소사! 이 많은 것들을 너 혼자 전부 죽였다고?"
"예순 일곱마리였어! 흑흑! 흐으으윽!"
"다치진 않았니, 주영아?"
"응! 난 괜찮아!"
미영의 입이 놀라움으로 벌어진 가운데, 따라 들어온 수진이 바닥을 살피다 말했다.
"여기 이 사람은..... 끔찍하다! 이미 죽었군! 여기 이 애는 아직 살아 있어!"
수진이 에이미를 안아들고 미영이 엉엉 우는 주영을 부축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는 도중에 지선이라는 아가씨와 "젖소" 은주를 만나 함께 마을로 이번에는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어느새 천천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마을 앞에 도착해서 큰소리로 부르자, 문옆에 아주 조그맣게 난 창으로 내다 본 보초 남자가 질겁을 하더니 크게 소리를 쳤다!!!
"아가씨들이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미영 일행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니! 왜들 이렇게 온통 피범벅인가요? 어디 다치셨습니까?"
앞장서서 뛰어온 짐스웰이 황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다친데는 전혀 없어요. 주영이가 돌아오는 길에 울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안기는 바람에....."
하지만 짐스웰은 미영의 대답을 듣던 중 수진의 품을 보더니 이를 부들부들 떨며 부딪치며 외쳤다!
"아니! 아니!! 아니!!! 정말로 에이미를 구해오신 건가요?"
"에이미! 에이미이이이이!!!!!"
사람들 속에서 갈색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가 구르듯 뛰어나와 수진의 품에서 에이미를 받아 들었다!
"에이미 눈 좀 떠 봐! 괜찮니? 에이미!!!"
미친 듯이 절규하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셔요! 약간 충격을 입었을 뿐, 큰 상처는 없어요!"
말과 함께 아가씨의 아름다운 은빛 눈동자가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 에이미의 몸에 묻은 먼지와 여기저기 난 상처들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물로 목욕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깨끗하게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에이미의 몸이 꿈틀하는 것 같더니 반짝 눈을 떴다!
"엄마?"
"에이미! 에이미!"
여자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에이미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털썩!"
짐스웰이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감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흉터까지 볼에 있는 험악한 얼굴에 안 어울리게도 얼굴에서는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는 솔직히 샹리아 마을 사람들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었군요!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주문이라도 되는 듯 눈물을 흘리며 입을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
미영이 문득 떠오른 의문에,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우리 말로 아가씨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선아! 왜 아까 바로 치료해주지 않은거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서였니?"
때마침 아침 햇살이 통나무 담을 넘어 들어와 비추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가씨의 아름다운 은발이 마치 후광처럼, 찬란한 은빛으로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그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더더욱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를 외치며 미영 일행에게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거듭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셍뜨레(성녀)다운 자애로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역시 우리 말로 미영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보는 앞에서 치료해줘야 생색이 나죠!"
미영이 황당함에 말문이 막힌 가운데, 주영이 볼을 부풀리며 입을 삐죽 했다.
"흐음..... 죽도록 싸워서 블랑키들을 전부 죽인건 난데 이 사람들은 지선이 언니에게만 감사하고 있잖아!"
그러자 아가씨가 주영을 향해 귀여운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화났니, 우리 귀여운 달링?"
그러자 아직까지도 전신에 피칠을 하고 있는 주영이 아가씨에게 몸을 기대면서 고양이처럼 어리광 부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어요, 주인님! 야옹 야옹!"
미영은 왠지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을 느꼈다!
짐스웰이 아직도 감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 용케도 블랑키 놈들에게서 도망쳐 나오셨군요."
그러자 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소굴이 또 있는게 아니라면..... 블랑키들은 전부 죽었어요!"
그 말을 들은 짐스웰과 마을 사람들 모두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전부 죽었다구요?"
"예, 예순일곱 마리 전부요!"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의 함성이 새벽 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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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키들의 교묘히 숨겨진 소굴과 토막토막이 난 시체들을 직접 본 마을 사람들과 짐스웰, 마부 및 일꾼들은 다시 한번 놀람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돌에 맞아 죽은 여자는 마지막으로 2년 전에 납치됐었던 어떤 젊은 처녀였던 것으로 확인되어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시체를 거두었다.
주영 덕분에 모두 피범벅이 된 옷과 몸을 씻고 정오가 되기 조금 전 드디어 다들 마차에 올랐다.
샹리아 마을을 떠날 때처럼, 블랑키아 마을 사람들도 모두 마을 앞으로 미영 일행을 마중 나왔다.
간밤에 맥주를 마시며 푸념을 하던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와 작은 불룩한 주머니를 내밀었다.
"우리 마을 블랑키아는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만..... 그리고 이건 셍뜨레(성녀)님들께서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의 만분지 일도 안되지만, 부디 여행경비에라도 써주시기 바랍니다!"
"델라.... 웁웁!"
어느새 앞으로 나서려는 "젖소" 은주의 입을 티나지 않게 조용히 손으로 막으면서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어린 애를 구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사례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자 노인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정말 얼마 안되지만..... 제발 받아 주십시오!
이 늙은이는 말년에 아무 희망도 없이 쥐처럼 울타리안에 숨어서 벌벌 떨며 살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여러 분들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주셨어요! 제발 받아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휴우!" 미영이 한숨을 쉬는 가운데, "젖소"가 다시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받아 들며 활짝 웃었다.
"디펭송 푸에(잘 쓸게요)!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노인과 마을 사람들 모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입을 모아 대답했다.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잠시후 마을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가운데 마차는 마을을 빠져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뒤늦게 문득 떠오르는 의문들을 느끼며 미영이 주영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주영아!"
"왜, 언니?"
"간밤에 마을 입구의 통나무 문도 안 열고 어떻게 마을 밖으로 나갔니?
게다가 너는 칼도 갖고 있지 않잖아! 도대체 뭘로 그 많은 블랑키들을 전부 토막토막 내버린거니?"
"흐음..... 그야 물론 이....."
대답하려던 주영의 붉은 색의 큰 눈동자가 장난기로 반짝 빛났다!
"헤헤! 비밀이야! 나중에 알려줄게!"
"뭐야? 이래도?"
미영이 어린 아이에게 장난치듯 주영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주영의 웃음소리가 마차 안에 울려 퍼졌다.
"깔깔깔깔! 아하하하하하하! 야옹! 야옹! 야옹!"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2부
『 - 사족 -
1부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본 별볼일 없는 ㅡ_ㅡ 환타지 야설은,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다섯 분은 되신다고 확신이 서는 동안에만 계속 연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쓰는게 느리고 주말에만 제대로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순수 아마츄어(회사원)인 관계로, 일주일에 한 부씩이라는 극악의 연재속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점에 대해 거듭 양해 말씀을 올립니다.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매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위 안내문은 상투적인 머릿말이 아니며, 본 야설의 실제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아래 내용을 읽으시지 말 것을 거듭 권고 드립니다.
- 2부 - 이어지는 전설 (블랑키아 마을 편 : 고양이의 분노)
"소이라 미리어(미리어 누나)!"
이 나라 말로 부르며 품에 뛰어 드는 꼬마 카알을 미영이 활짝 웃으며 꼬옥 안아 주었다.
이 마을에 도착한지도 어느새 한 달, 미영의 이 나라 말 실력도 이제는 어느 정도 늘어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미영" 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 했다.
특히 어린 카알에게는 더욱 어려웠는지 어느날부터 자기 마음대로 미영을 "미리어"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주영은 "주리아", 수진은 "수잔", 지선은 "쟈넷" ..... 아마 발음이 비슷한 이 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준 듯 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여자들은 어린 카알이 붙여주는 이름을 마을 사람들과 얘기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주 - "젖소"는 "플로라".
"플로라? 어머! 괜찮네! 아마 꽃이라는 뜻인가 보지?"
(한 달째 같이 있게 되면서 28살로 가장 나이가 많은 "젖소"는 별로 친해지지 않은 여검사 재연을 제외한 다른 여자들에게는 말을 놓게 되었다.)
"아마..... 그럴 걸요."
미영을 돌아보며 묻는 "젖소"에게 아직 어휘가 부족한 미영은 얼버무리듯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며칠후, 카알에게 이 나라 말을 배우던 중 미영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돼지는 "오키", 젖소는 "플로"?"
이 나라 말로 어린 여자를 "로라" 라고 부르니 "플로라" 라고 하면 아마 "젖소 아가씨"?
미영은 뒤늦게 알아낸 사실을 "젖소"에게 알려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해서 일단 그냥 있기로 했다.
그리고 여검사 재연은.....
"클로디아!"
이름을 지어주려고 고민하는 어린 카알을 보고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흐음..... 클로디아요?"
"요즘은 영어 이름 하나 정도는 기본이죠."
신기해하는 주영에게 변함없이 쌀쌀맞은 목소리로 재연이 말했다.
사실 지선이라는 아가씨를 부를 때 마을 사람들은 "쟈넷"이라는 이름보다는 "셍뜨레" 좀더 길게 부를 때는 "셍뜨레 데 실비앙" 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했다.
이 나라 말로 "셍뜨레" 는 "성녀", "셍뜨레 데 실비앙" 은 "은발의 성녀" 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난 번 산적 소탕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은 미영 일행들에게 항상 매우 정중하게 감사와 존경의 태도를 갖고 대하게 되었고, 특히 지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마치 지상에 내려온 천사나 성녀를 보는 듯한 공손함과 황송함이 어려 있었다.
"아닙니다! 셍뜨레(성녀)님께 서빙을 시킬 수는 없죠! 아가씨들 모두 오늘부터는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다 하겠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여기에 머무르시고 식사도 계속 공짜로 대접해 드릴 수 있다면 가문의 큰 영광입니다!"
무뚝뚝한 얼굴에 턱수염까지 기르고 있는 식당 주인이 안 어울리게 당황스런 얼굴로 아직 이 나라 말이 서툰 미영 일행에게 열심히 손짓 발짓을 섞어서 이렇게 말했지만, 미영은 웃으며 부엌에 들어가 평소처럼 밀가루를 섞어 빵을 만들고 감자와 버섯 스프를 끓였고, 다시 벌목일을 하러 간 수진을 제외한 지선과 다른 여자들은 음식을 날랐다.
은발의 아름다운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생긋 웃으며 빵접시를 가져다 줄 때면, 모든 사내들이 두 손으로 공손히 접시를 받았고, 심지어 몇 명은 - 자기 돈 내고 사먹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 셍뜨레(성녀)님께서 친히 하사해 주시는 음식을 받는 황송함과 감격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산적들은 창고에 묶어서 가둬 두었는데 연락이 가면 다음달쯤 큰 마을에서 호송마차가 올 거라고 했다.
"저 사람들에게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거니?"
미영이 묻자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천사처럼 귀엽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언니! 아직 저는 치료하는 능력뿐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 같아요.
수진이 언니의 능력이 좀더 적당하지 않을까요?"
"휴우! 이 앤 종종 의외로 냉정하다니까!"
미영이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따뜻하고 선량하고 착하고 모두 좋은 사람들..... 부유하진 않지만 다들 나름대로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있는 것 같고..... 이 마을에 계속 머무르며 살고 싶다!"
미영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샹리아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붕붕!" 하고 자동차를 설명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전화에 대해서 얘기하자 대부분 아는 눈치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큰 마을"이라고 부르는 마을에도 아마 없지만 더 큰 마을이나 도시로 가서 "메로빙" 이라는 걸 사용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이 마을은 도대체 어디길래 이렇게 몇백 년전 옛날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걸까?
심지어 산적들도 총이 아니라 칼을 들고 다니질 않나!
온화한 날씨로 봐서 아프리카도 아닌데.....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고민하며 미영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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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셔야 합니까? 미리어님이 끓여주시는 버섯 스프는 이 나라 제일의 맛이었는데....."
샹리아 마을의 늙은 촌장이 한숨을 쉬며 이 나라 말로 미영에게 말했다.
드디어 한달에 한 번씩 모아 놓은 나무를 싣고 가는 여러 대의 대형 마차들이 큰 마을로부터 도착했고 촌장 등의 부탁으로 미영 일행도 큰 마을까지 태워주기로 되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미영 일행을 환송하러 나와 아쉬움과 슬픈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소이라(누나)! 소이라(누나)!"
이 나라 말로 미영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어린 꼬마 카알을 미영도 눈물을 흘리며 꼬옥 안아 주며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미안, 카알!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올게!"
"정말이지, 소이라 미리어(미리어 누나)? 꼭 돌아와야 해!"
미영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가 어딘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간 뒤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마차를 타고서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올게!"
무뚝뚝한 얼굴에 안 어울리게 슬픈 표정을 가득 짓고 있는 술집 주인에게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은발의 빛나는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가까이 걸어가더니 넓은 품에 "푸욱!" 안겨서 주인의 넓은 가슴에 어린애처럼 머리를 비비고 문지르며 눈물을 흘리면서 이 나라 말로 말했다.
"그동안 너무 고마왔어요, 아저씨! 저도 언젠가 다시 놀러올게요!"
술집 주인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부디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셍뜨레 데 실비앙(은발의 성녀)님께서 놀러와 주신다면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그 동안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따라서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몇몇 젊은 남자들이 술집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가득가득 배어 있었다.
"이건 얼마 안됩니다만, 저희들을 구해주신데 대한 작은 보답입니다. 부디 받아 주시길....."
늙은 촌장이 이 나라 말로 말하며 작은 불룩한 주머니를 내밀자, 미영이 손을 저으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 주시지 않아....."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젖소" 은주가 어느새 앞으로 나와 두손으로 주머니를 받으며 꾸벅했다.
"은주 언니! 이 나라 돈은 어차피 한국에 가면 쓸 수도 없다구요!"
볼을 붉히며 미영이 항의하자, "젖소"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주신 성의도 있잖아! 그리고 여행 경비로라도 쓰지 뭐!"
잠시후 여섯 대의 대형마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영 일행은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마차 밖으로 손을 흔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정말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을이었다!
네댓 시간 마차를 달린 후, 작은 공터에서 마차들이 멈춰 섰다.
여섯 대의 대형 목재마차를 모는 마부와 일꾼들은 모두 열 다섯명이었다.
마차마다 여섯마리의 말들이 끄는 마차들은 - 말들의 줄이 묶여 있고 마부석이 있는 앞 부분, 바퀴달린 길고 두꺼운 나무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나무들을 가득 실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뒷 부분, 아주 작은 창들이 네 군데 나 있는 중간 부분의 - 각각 바퀴들이 달려 있는 세 부분을 붙여 놓은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미영 일행은 그중 한 마차의 중간 부분에 모여서 타고 있었다.
다들 모이자 몇 명이 나무를 모아 피운 모닥불위에 큰 남비를 얻고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영이 웃는 얼굴로 끼어들어 솜씨좋게 칼로 감자 껍질을 까고 버섯과 이름모를 채소 등을 넣으며 스프를 만드는 것을 거들었다.
약간 험한 인상에 볼에는 상처 흉터까지 있는 남자가 미영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 미영의 허리에 찬 긴 칼을 - 산적들이 쓰던 - 힐끔거리며 이 나라 말로 말을 걸어 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짐스웰이라고 합니다."
"미리어라고 합니다."
미영이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그제야 다른 사내들도 멋적게 웃으며 자기 이름들을 얘기하고 미영 일행도 이 나라 말 또는 영어 이름들을 얘기했다.
짐스웰이 한숨을 쉬며 이 나라 말로 얘기했다.
"귀족 아가씨들 같은 분위기로군요. 아가씨들이 산적들을 스무 명이나 소탕하셨다는게 사실인가요?"
귀족 이라는 말은 미영이 배운 어휘 중에 없어서 의미를 물어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미영이 서툰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단지 운이 좋았죠."
그러자 짐스웰이 다시 한숨을 쉬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나는 아가씨들과의 동행에 반대했습니다.
샹리아 마을 사람들과는 여러 해 동안 친하게 지냈고 촌장 어르신의 각별한 부탁에 특별 수당까지 주셔서 태워드리긴 합니다만..... 이 마차여행은 5일을 꼬박 가는 힘들 길일 뿐 아니라 중간에 블랑키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블랑키라는게 뭐죠?"
미영의 말에 짐스웰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보군요. 블랑키는 키가 요 정도 (미영의 허리께를 손으로 가리켰다) 되는 작은 소인들입니다."
"흐음..... 위험한가요?"
주영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물었다.
"식인종들이죠!"
"에에에? 아직도 식인종이 있어요?"
주영이 크고 예쁜 붉은 눈동자를 더욱 크게 하며 놀라움으로 물었다.
하지만 짐스웰은 오히려 그 얘기를 처음 듣는 것 같은 미영 일행이 더 놀라운 듯 했다.
"죄송하지만, 여분의 갑옷이 없군요. 마차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안에 있는 활은 위험하니 안 만지시는게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부와 일꾼들 모두 가슴과 몸통 부위를 앞뒤로 가리는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고 말들도 목과 몸통에 가죽 가리개를 대고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차들의 중간 부분도 약간 불필요할 정도로 크고 튼튼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습격을 받을 경우에 안에 들어가서 싸우기 위한 엄폐 목적을 겸하는 듯 했다.
일꾼들은 미영이 끓인 스프를 먹으면서 "같은 재료로 끓였는데 왜 우리가 끓인 것보다 훨씬 맛있는거지?" 하면서 좋아했고 덕분에 미영 일행에 대한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
식사를 한 후 모두들 다시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위해 숲속 길치고는 제법 넓은 길이 숲을 가로질러 뻥 뚫려 있었지만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리고 흔들려서 사실 마차 여행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리고 또 다음 날도 한참 마차를 달린 후 오후 무렵에야 겨우, 통나무를 세워 만든 담으로 둘러 쌓여 있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에엥? 벌써 큰 마을에 도착한 건가요?"
주영의 물음에 마부석의 마부가 킬킬 거리며 역시 이 나라 말로 대답했다.
"아니요! 중간에 쉬어가는 마을입죠!"
"끼이이이이이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육중한 통나무 문이 열리고 마차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문이 닫혔다.
말을 돌봐주러 온 마을 사람들이 마차중 한 대에서 내리는 아름다운 다섯 명의 아가씨들과 여자 한 사람 - 여검사 재연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체 집 수가 열 집도 안되는 정말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열 살이나 조금 넘었을까 남매로 보이는 어린 꼬마 두 명이 신기한 듯 넋을 잃고 올려보는 걸 보고 카알의 생각이 난 미영의 얼굴이 흐려졌다.
하지만 반갑게 웃으며 이 나라 말로 인사했다.
"살루앙(안녕)?"
"살루앙테(안녕하셔요)?"
꼬마들이 꾸벅 고개를 숙여 귀엽게 인사했다.
"이 마을은 이름이 뭐니?"
"블랑키아요."
"블랑키아면 식인종이라는 블랑키들의 마을이라는 뜻인가?"
미영이 섬?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 마을은 마을 전체가 여관업을 해서 먹고 사는 듯 했다.
마을회관 겸 여관으로 쓰이는 것 같은 큰 통나무집에서 마부, 일꾼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가져오는 빵과 스프를 먹으면서, 미영은 - 겨우 한 달 있었지만 - 처음 도착했던 샹리아 마을의 친절했던 마을 사람들이 어느새 그리워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하얀 턱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한 사람이 맥주를 마시며 아마 이 마을 사람들은 수백 번도 더 들었을 레파토리를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 마을도 한 때는 잘 나갔었는데 말이야. 그 놈의 블랑키 놈들 때문에 이제는 마을이 없어지기 직전이야."
아직 서투른 미영의 이 나라 말 실력으로는 알아듣기 조금 힘들었지만 대충 그런 취지의 말인 듯 했다.
"애들은 잡아 먹히고 여자들은 끌려가고 저 울타리 밖으로 꼼짝도 못하고 못 나가 보니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거겠어!"
노인의 푸념에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짐스웰이 맥주잔을 가볍게 부딪쳐 건배하며 물었다.
"요즘도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나요, 영감님?"
"작년, 올해는 아직 없었어! 밤마다 열심히 불침번을 서니까! 하지만 언제 또....."
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을 회관의 나무 문이 벌컥 열리며 미친 여자처럼 갈색의 긴 머리카락이 온통 헝클어진 조금 나이든 여자가 구르듯 뛰어 들어왔다.
"살려 주셔요! 살려 주셔요! 저희 애가, 에이미가 잡혀갔어요!"
"뭐라구요!"
모두들 깜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미친 여자처럼 횡설수설하며 급한 목소리로 떠드는 얘기에 따르면 블랑키들이 집안까지 들어와 딸애를 납치해 갔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구하러 가 줄 것을 애걸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불침번 놈들은 뭐한거야! 블랑키 놈들이 숨어드는 것도 발견 못하고....."
노인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맥주를 거칠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흐음..... 잡혀가면 잡아먹히는 건가요?"
주영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겁먹은 작은 목소리로 이 나라 말로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이 아직도 울면서 옆에서 떠들고 있는 여자를 보며 - 마을 사람들이 진정하라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이미는 이제 겨우 11살이니 아마 잡아 먹히겠지. 더 나이든 여자들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당한다네."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 주영의 표정을 보고 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가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군. 아가씨도 조심하게.
블랑키들은 여자를 잡아가면 잡아 가둬 두고 새끼를 낳게 하지.
블랑키와 인간 사이에서는 왠일인지 항상 블랑키만 나오거든.
죽을 때까지 돼지처럼 묶여서 블랑키들의 새끼를 낳는다고 생각해 보게."
상상이 안가는 끔찍한 얘기에 주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에이미라는 아이 구하러 가지 않나요?"
주영의 말에 노인이 슬픔과 부끄러움이 함께 담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예전에는 이 마을도 꽤 컸었지. 여관만이 아니라 벌목 마을을 겸해서 오십여 집에 이백 명이 넘게 살았던 적도 있었다네.
십여 년전에 처음 블랑키들이 몇 놈씩 나타났을 때는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블랑키들을 토벌하려고 더러더러 시도도 했었네.
하지만 이 근처 숲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블랑키들의 마을을 찾을 수가 없었어.
블랑키 놈들은 남자들이 잔뜩 모이면 도망가 숨어 있다가 흩어지거나 밤이 되면 역습을 해서 도리어 한 사람씩 죽이곤 했네.
그리고 밤이면 툭하면 마을을 습격해서 어린 애들을 잡아가 잡아먹고 여자들을 잡아갔지.
도저히 배겨낼 방법이 없었네.
이제는 마을의 사람 숫자가 너무 적어져서 토벌대를 만들 여력도 없네.
주위에 울타리를 쌓고 쥐새끼들처럼 숨어서 지낼 뿐이지."
얘기를 듣고 있던 미영이 끼어들었다.
"블랑키들이 여자들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노인의 얼굴이 더욱 슬픈 표정으로 흐려졌다.
"잡혀갔던 한 여자가 알몸으로 도망쳐 온 적이 있었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에 완전히 미쳐서 블랑키들의 마을 위치조차 알려줄 수 없었네.
결국 두어달 뒤 블랑키 새끼들을 낳다가 죽었지만....."
주영이 미영에게 말했다.
"흐음..... 언니! 우리가 구하러 가 볼까?"
미영이 곰곰히 생각하며 대답했다.
"너무 위험하고 어려울 거야.
우리는 블랑키들이 소인에 식인종이라는 것밖에는 몇 명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또 내일 아침에 마차들이 떠날 때 마차를 얻어 타고 같이 떠나야 하니까."
"얘기하면 며칠 정도 시간을 주지 않을까?"
주영이 침통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짐스웰에게 다가가 뭐라고 얘기하는 듯 했으나, 짐스웰은 "푸욱!" 하고 맥주를 내뱉으면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더니 미영에게 뛰다시피 다가와 이 나라 말로 말했다.
"아가씨들이 산적을 스무 명이나 토벌했고 치료의 기적까지 발휘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나는 샹리아 마을 사람들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블랑키들은 산적들 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에요!
너무 작고 너무 날쌔서 특히 어두운 밤에는 숲속에서 인간은 블랑키의 상대가 되질 못합니다!
여기 이 상처 보입니까?"
짐스웰이 볼에 길게 난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삼 년쯤 전의 어느날, 오늘 밤처럼 어떤 어린애가 납치되었을 때, 마침 마을에 머무르던 저도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죠.
다음날 아침 마을 남자 삼십여 명과 함께 저도 단단히 무장을 하고 블랑키들을 토벌하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블랑키 놈들은 낮에는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두워지자 사방에서 한 명씩 한 명씩 마을 사람들을 기습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처는 갑자기 덤불에서 튀어나온 어느 블랑키가 휘두른 날카로운 돌에 맞은 자국입니다.
새벽 녘에 겨우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삼십여 명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겨우 열댓 명 뿐이었습니다!
잡혀갔던 어린애도 구출하지 못했고, 죽인 블랑키는 잘해야 다섯 놈도 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원통함이 생각난 듯 무뚝뚝하고 험악한 인상의 짐스웰의 파란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떠납니다. 절대로 엉뚱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안됩니다!!!"
어느새 미영의 일행들 모두 둘러서서 짐스웰의 말을 듣고 있었다.
"휴우!" 한숨을 쉬며 미영과 일행들 모두 마을 회관에 딸린 작은 방 하나로 자러 들어갔다.
아이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구하러 가주셔요! 제 딸애 좀 살려 주셔요!" 라고 울부짖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주 눈물을 흘리면서 여자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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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지 30분이나 지났을까, 깜빡 잠이 들었던 미영은 뭔가 인기척을 느끼고 반짝 잠이 깼다.
얼핏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를 들은 듯 했다.
"잘못 들었나?"
주위를 둘러보자, 놀랍게도 바로 옆자리에 누워있던 주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영은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을 회관옆의 재래식 화장실도 들여다 보았으나 거기에도 주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미영의 몸이 두려움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부싯돌을 찾아 등불을 켜 보려다가 포기하고 어둠 속에서 다른 여자들을 깨우며 미영이 말했다.
"어떻게 해, 수진아? 주영이가..... 주영이가 잡혀간 에이미라는 애를 구하러 간 것 같아!"
"빨리 따라가자!"
수진도 당황하며 외쳤다.
"저도 따라갈게요. 혹시 다치시면 도움이 될 수 있을거에요."
지선이라는 아가씨의 말에 "젖소" 은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빨리 따라가 보자!"
잠이 깼던 여검사 재연이 귀찮은 듯 인상을 쓰더니 도로 잠자리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지난 번 산적 사건때도 어딘가에 혼자 숨어 있다가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나온 재연이었다.
미영은 재연에게 말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것 없이 서둘러서 옷을 챙겨 입고 허리띠에 검집을 줄로 묶고 긴 칼을 찬 후, 마을회관 겸 여관 밖으로 나갔다.
마을 입구에 가자 긴 칼을 허리에 찬 채 불침번을 서고 있던 두 명의 마을 남자들이 막으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밤에는 나가시면 안됩니다. 블랑키들이 있어요!"
"제 동생이 에이미를 구하러 나갔어요. 빨리 따라가야 해요."
두 남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말했다.
"이 안 어디에 있겠죠. 아무도 나간 사람은 없습니다. 이 무거운 통나무 문은 남자 두 명이 잡아당겨야 겨우 열 수 있어요.
몰래 열 수 있는게 아닙니다."
"아니요! 틀림없이 나갔어요! 우리도 따라가야 해요!"
그 때 "끼이이이이이이익!" 하고 통나무가 바닥에 끌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진이 문의 빗장을 풀고 도르레를 통해 통나무 문에 연결된 굵은 밧줄 한 가닥을 잡아당기자 천천히 육중한 통나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그 모습을 쳐다보던 남자들이 말했다.
"힘이 굉장히 세군요! 하지만 블랑키들은 힘만 세다고 잡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나가지 마십시오!"
"죄송합니다! 가 봐야 해요! 횃불 몇 개만 가져갈게요!"
미영이 통나무 담에 설치된 횃불 대에서 횃불 한 개를 뺀 후, 서둘러 열린 통나무 문으로 빠져나가자 수진, 지선, "젖소" 은주도 횃불 하나씩을 빼들고 뒤따라 빠져 나갔다.
남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네 명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숨을 쉬면서 반대쪽에 있는 다른 굵은 밧줄 한 가닥을 둘이 같이 잡아당겼다.
몸무게를 실으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힘을 주며 매달려 잡아당기자 천천히 육중한 통나무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주영은 어두운 숲속 오솔길을 소리 없이 달리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지만 대낮에 큰 길을 전력질주하듯 어두운 숲속 길을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는데도 달리는 동작이 어떻게나 부드러운지 발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고 숨도 전혀 차지 않는 듯 했다.
"흐음..... 역시 혼자 나오니까 무서워!
미영이 언니에게 내가 한밤중에도 환히 볼 수 있게 됐다는 걸 얘기하고 같이 나올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다가 언니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역시 나 혼자 조용히 에이미라는 애를 구해서 튀는게 최고야!
하지만..... 흐음..... 근데 이 방향이 맞는거야?"
무작정 한참을 뛰던 주영이 문득 중요한 문제를 깨닫고 발을 멈췄다.
"아니..... 이 방향이 맞아! 바닥에서 나는 진하고 역겨운 노린내가 마을에서부터 이쪽으로 죽 이어지고 있어!"
주영은 다시 어둠속을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헉헉! 숨 차! 나무에 여기저기 긁혔어! 역시 횃불 불빛 만으로는 너무 어두워!"
"젖소" 은주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약간 지나칠 정도로 풍만한 가슴이 숨을 크게 쉴 때마다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보이지 않아요!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에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쪽이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느낄 수 있어!"
미영이 단호하게 말하며 다시 걸음을 빨리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길이 아니어서 미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며 나무뿌리, 돌부리들이 계속 몸이며 발에 걸려서 좀처럼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한편, 한참을 전력질주하듯 숲속의 좁은 오솔길을 달리던 주영의 눈에 멀리 앞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키가 1미터나 조금 넘을까 싶은 조그만 것들이 그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축 늘어진 무언가를 넷이서 들고 달리고 있었다.
"찾았다! 거의 따라 잡았어!"
주영이 걸음을 빨리하자 앞에서 움직이던 것들이 빽빽한 나무들 앞에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
"에에에? 뭐.... 뭐야?"
주영도 뛰어서 나무들 앞으로 다가갔다.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마치 담장처럼 빽빽하게 우거져서 조금의 틈도 없이 앞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밀어보자 억세보이는 가지들은 놀랍게도 매우 부드러웠고 쉽게 구부러지며 밀어졌다.
"이렇게 밀면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건가?"
주영의 몸이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부드러운 나뭇가지들은 주영이 움직이는 대로 밀렸다가 지나가자 다시 원래 자리로 들어와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십여 미터 정도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뚫고 가자 놀랍게도 제법 넓은 공터에 풀과 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 같은 조잡한 모양의 움막들이 수십 채 보였다.
그리고 원숭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블랑키들은.....!
"뭐야! 저거! 소인이라더니 인간이 아니잖아? 저게 도대체 뭐야? 으윽! 노린내같은 고약한 냄새가 지독해!"
주영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TV에서 본 피그미같은 난쟁이 원주민을 생각했었으나, 눈앞의 블랑키들은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1미터 조금 넘는 작은 키에 무엇보다 피부가 녹색이었고 귀는 박쥐처럼 크고 위쪽이 뾰족한 데다가, 거의 귀까지 짝 찢어진 큰 입에는 개들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반짝거렸다.
허리 둘레에 지푸라기 같은 걸 둘러서 겨우 가리는 시늉만 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작은 덩치에 비해 팔 다리는 제법 굵어서 힘이 꽤 세 보였다.
"끄으으응!"
막 도착한 네 명 - 아마도 네 마리라고 불러야 할 블랑키들이 끌고 온 에이미라는 어린 여자애를 거칠게 바닥에 던지자 정신이 드는지 에이미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블랑키들이 "꺄악! 꺄악!" 원숭이 같은 소리들을 내더니 어린 여자애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서 벗기기 시작했다.
11살이라더니 아직 가슴도 없고 성기에도 음모가 없이 깨끗한 정말 어린애의 알몸이 드러났다.
"어떻게 하지? 구해줘야 하는데..... 하지만 오십 마리도 훨씬 넘어 보이는데! 이래서는 몰래 구할 수도 없겠어!"
주영이 망설이고 있을 때, 블랑키 한 마리가 위에서 에이미의 양손을 꽉 잡고 다른 한 마리는 에이미의 다리를 벌리고 꺅꺅 거리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아야야야야! 아야! 아야! 아야야! 엄마! 엄마아!!"
정신을 차렸는지 어린 에이미가 고개를 들고 울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퍼어억!"
블랑키 한 마리가 잔인하게도 큰 돌맹이로 사정없이 에이미의 턱을 내리치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에이미는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조용해졌다.
하지만 하체에 붙은 블랑키가 그것을 몸속에 밀어넣자 매우 고통스런 듯 어린 에이미는 고개를 흔들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밤이지만 환히 보이는 주영의 눈에 블랑키의 그것이 보였는데 의외로 인간 남자들의 그것만큼 큰 크기였다.
"조그만 것들이 좆은 좆같이 크네! 몰래 다가가서 하나씩 뒤통수를 묵직한 걸로 치면.....? 아냐! 말도 안돼!
틀림없이 들킬거야!"
"어바바바바!"
입이 온통 터지고 턱까지 깨졌는지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어린 에이미가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냈다.
블랑키들이 에이미를 엎드려 놓더니 한 마리가 밑에 누워 에이미를 몸 위에 올라 앉힌 채 에이미의 성기에 그것을 박고 다른 한 마리는 피를 줄줄 흘리는 에이미의 작은 입안에 발기한 그것을 쑤셔 박았다.
또 한 마리의 블랭키가 에이미의 아직 어리고 작은 엉덩이 사이에 그것을 강제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지만 지르르 피가 터지면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이미의 온 몸이 끔찍한 고통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저 새끼들이! 예전에 어떤 개새끼들이 했던 짓하고 비슷한 짓을 하고 있잖아! 합체라고 했었든가? 개새끼들!!!"
("강제로 길들이기" 10부 내용 참조)
주영의 주먹이 하얘질 만큼 꽉 쥐어쥐더니 온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블랑키 몇 마리가 "꺅!" "꺅!" 소리를 지르더니 어느 움막에서 뭔가를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돼지? 큰 원숭이인가? 서... 설마? 인간? 여자?"
인간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지저분하게 까맣고 갈색 얼룩과 먼지투성이인 여자가 알몸으로 돼지처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끌려 나왔다.
머리는 말도 안될 정도로 산발이 되어 있었고 뭐라고 입을 벌렸으나 턱이 박살이 나서 어긋났는지 아무 소리도 새나오지 않았다.
여자를 좀더 자세히 보자 왜 그렇게 몰골이 엉망일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리는 멀쩡했지만 여자의 양 손목은 모두 잘려 있었다!
"저..... 저것들이!"
주영의 몸의 떨림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때 블랑키 한 마리가 신이 난 듯한 소리로 끽끽 거리더니 큰 돌맹이로 마치 돼지를 잡듯이 끌려나온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여자는 소리도 나지 않는 입을 벌리고 뭐라고 절규하다 눈이 하얗게 뒤집히며 옆으로 픽 쓰러졌다!
"팍삭!!"
그 순간 바라보고 있던 주영의 머리 속에서도 뭔가가 깨져 나갔다!!!
주영의 원래 붉은 색인 눈동자가 거의 알아채기 힘들 만큼 아주 조금 더 붉게 변했다!!!!
주영은 숨어 있던 나무 덤불 사이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음 순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저주하는 듯한 끔찍한 포효가, 피를 갈구하는 잔인한 맹수의 울부짖음이 밤하늘을 가르며 길게 울려 퍼졌다!!!!!!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옹!!!!!!!!!!"
.................................................................................................
횃불을 켜들고 밤길을 달리던 미영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미영아?"
수진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저 앞에서 고양이 소리가 난 것 같아!"
"고양이 소리?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좀더 빨리 가야 할 것 같아!"
미영이 지선이라는 아가씨와 "젖소" 은주를 바라 보았다.
둘다 숨이 차서 쓰러지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헉헉헉! 우리 걱정 말고..... 헉헉! 먼저 가! 블랑키란 것들도 저 앞에 있는 거잖아! 헉헉!"
"먼저 가세요, 언니들! 학학학! 저흰 도저히 더는 못 뛰겠어요!"
미영은 횃불을 땅에 비벼 꺼 버리고, 지금까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수진은 횃불을 들고 따라왔지만 나무 뿌리며 가지 등에 자주 발이 걸려 빠른 속도로 따라오기는 힘들어했다.
"미영아! 너는 이렇게 깜깜한 밤에도 잘 보이는거야?"
"응! 조금 전에야 깨달았는데 밤눈이 꽤 밝아진 것 같아! 하지만 아주 환하게 잘 보이는 정도는 아니야!"
잠시후 나무들이 벽처럼 빽빽하게 우거진 곳이 나타났다.
"이 안에 주영이가 있어!"
수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확실해? 들어갈 수 없게 생겼는데?"
하지만 미영이 억세 보이는 나뭇가지를 밀자 의외로 부드럽게 밀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들어가자!"
부드러운 나뭇가지들을 십여 미터쯤 계속 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넓은 공터와 함께 풀과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조잡한 움막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이게 뭐야!"
미영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떨렸다.
사방이 온통 피바다였다!
녹색의 원숭이인지 인간인지 구별이 안 갈 이상하게 생긴 조그만 것들이 머리, 팔, 다리 할 것 없이 온통 토막토막이 나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철썩!"
피바다 웅덩이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더니 벌떡 일어났다.
"주..... 주영이니?"
피속에서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전신이 피로 범벅이 된 주영이었다!
"언니? 언니! 언니이이이!!!"
주영이 눈물을 흘리면서 미영에게 뛰어들어 덥썩 안겼다.
코를 찌르는 피냄새에 역함을 느끼며 미영이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네가 전부 이렇게 한거야?"
주영이 우는 얼굴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응! 내가 그랬어! 이것들은 이렇게 죽어도 싸! 내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내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한 사람이 또 죽었어!
흑흑흑! 아아아앙!"
"맙소사! 이 많은 것들을 너 혼자 전부 죽였다고?"
"예순 일곱마리였어! 흑흑! 흐으으윽!"
"다치진 않았니, 주영아?"
"응! 난 괜찮아!"
미영의 입이 놀라움으로 벌어진 가운데, 따라 들어온 수진이 바닥을 살피다 말했다.
"여기 이 사람은..... 끔찍하다! 이미 죽었군! 여기 이 애는 아직 살아 있어!"
수진이 에이미를 안아들고 미영이 엉엉 우는 주영을 부축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는 도중에 지선이라는 아가씨와 "젖소" 은주를 만나 함께 마을로 이번에는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어느새 천천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마을 앞에 도착해서 큰소리로 부르자, 문옆에 아주 조그맣게 난 창으로 내다 본 보초 남자가 질겁을 하더니 크게 소리를 쳤다!!!
"아가씨들이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미영 일행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니! 왜들 이렇게 온통 피범벅인가요? 어디 다치셨습니까?"
앞장서서 뛰어온 짐스웰이 황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다친데는 전혀 없어요. 주영이가 돌아오는 길에 울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안기는 바람에....."
하지만 짐스웰은 미영의 대답을 듣던 중 수진의 품을 보더니 이를 부들부들 떨며 부딪치며 외쳤다!
"아니! 아니!! 아니!!! 정말로 에이미를 구해오신 건가요?"
"에이미! 에이미이이이이!!!!!"
사람들 속에서 갈색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가 구르듯 뛰어나와 수진의 품에서 에이미를 받아 들었다!
"에이미 눈 좀 떠 봐! 괜찮니? 에이미!!!"
미친 듯이 절규하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 나라 말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셔요! 약간 충격을 입었을 뿐, 큰 상처는 없어요!"
말과 함께 아가씨의 아름다운 은빛 눈동자가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 에이미의 몸에 묻은 먼지와 여기저기 난 상처들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물로 목욕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깨끗하게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에이미의 몸이 꿈틀하는 것 같더니 반짝 눈을 떴다!
"엄마?"
"에이미! 에이미!"
여자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에이미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털썩!"
짐스웰이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감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흉터까지 볼에 있는 험악한 얼굴에 안 어울리게도 얼굴에서는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는 솔직히 샹리아 마을 사람들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었군요!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주문이라도 되는 듯 눈물을 흘리며 입을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
미영이 문득 떠오른 의문에,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우리 말로 아가씨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선아! 왜 아까 바로 치료해주지 않은거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서였니?"
때마침 아침 햇살이 통나무 담을 넘어 들어와 비추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가씨의 아름다운 은발이 마치 후광처럼, 찬란한 은빛으로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그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더더욱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셍뜨레 데 실비앙 리에(은발의 성녀님)!!!" 를 외치며 미영 일행에게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거듭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셍뜨레(성녀)다운 자애로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역시 우리 말로 미영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보는 앞에서 치료해줘야 생색이 나죠!"
미영이 황당함에 말문이 막힌 가운데, 주영이 볼을 부풀리며 입을 삐죽 했다.
"흐음..... 죽도록 싸워서 블랑키들을 전부 죽인건 난데 이 사람들은 지선이 언니에게만 감사하고 있잖아!"
그러자 아가씨가 주영을 향해 귀여운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화났니, 우리 귀여운 달링?"
그러자 아직까지도 전신에 피칠을 하고 있는 주영이 아가씨에게 몸을 기대면서 고양이처럼 어리광 부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어요, 주인님! 야옹 야옹!"
미영은 왠지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을 느꼈다!
짐스웰이 아직도 감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 용케도 블랑키 놈들에게서 도망쳐 나오셨군요."
그러자 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소굴이 또 있는게 아니라면..... 블랑키들은 전부 죽었어요!"
그 말을 들은 짐스웰과 마을 사람들 모두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전부 죽었다구요?"
"예, 예순일곱 마리 전부요!"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의 함성이 새벽 하늘에 울려 퍼졌다!
........................................................................................................
블랑키들의 교묘히 숨겨진 소굴과 토막토막이 난 시체들을 직접 본 마을 사람들과 짐스웰, 마부 및 일꾼들은 다시 한번 놀람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돌에 맞아 죽은 여자는 마지막으로 2년 전에 납치됐었던 어떤 젊은 처녀였던 것으로 확인되어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시체를 거두었다.
주영 덕분에 모두 피범벅이 된 옷과 몸을 씻고 정오가 되기 조금 전 드디어 다들 마차에 올랐다.
샹리아 마을을 떠날 때처럼, 블랑키아 마을 사람들도 모두 마을 앞으로 미영 일행을 마중 나왔다.
간밤에 맥주를 마시며 푸념을 하던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와 작은 불룩한 주머니를 내밀었다.
"우리 마을 블랑키아는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만..... 그리고 이건 셍뜨레(성녀)님들께서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의 만분지 일도 안되지만, 부디 여행경비에라도 써주시기 바랍니다!"
"델라.... 웁웁!"
어느새 앞으로 나서려는 "젖소" 은주의 입을 티나지 않게 조용히 손으로 막으면서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어린 애를 구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사례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자 노인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정말 얼마 안되지만..... 제발 받아 주십시오!
이 늙은이는 말년에 아무 희망도 없이 쥐처럼 울타리안에 숨어서 벌벌 떨며 살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여러 분들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주셨어요! 제발 받아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휴우!" 미영이 한숨을 쉬는 가운데, "젖소"가 다시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받아 들며 활짝 웃었다.
"디펭송 푸에(잘 쓸게요)!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노인과 마을 사람들 모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입을 모아 대답했다.
"델라 크로아(고맙습니다)!!!"
잠시후 마을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가운데 마차는 마을을 빠져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뒤늦게 문득 떠오르는 의문들을 느끼며 미영이 주영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주영아!"
"왜, 언니?"
"간밤에 마을 입구의 통나무 문도 안 열고 어떻게 마을 밖으로 나갔니?
게다가 너는 칼도 갖고 있지 않잖아! 도대체 뭘로 그 많은 블랑키들을 전부 토막토막 내버린거니?"
"흐음..... 그야 물론 이....."
대답하려던 주영의 붉은 색의 큰 눈동자가 장난기로 반짝 빛났다!
"헤헤! 비밀이야! 나중에 알려줄게!"
"뭐야? 이래도?"
미영이 어린 아이에게 장난치듯 주영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주영의 웃음소리가 마차 안에 울려 퍼졌다.
"깔깔깔깔! 아하하하하하하! 야옹! 야옹! 야옹!"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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