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전략적인 돌진에 놀란 디지털퍼머가 비명을 지르며 안전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늑대가 자신을 덮치는 차량의 흰색 도장 강판을 힐끗 쳐다보았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와 충돌하게 된 늑대는 당황한 듯 속도를 높여 차를 피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욱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차의 앞 범퍼 모서리에 몸을 부딪혀 바퀴 밑으로 말려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늑대의 뼈가 부러지듯 으드득하는 전율스런 느낌이 휠을 통해 쇼트웨이브가 잡은 운전대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쇼트웨이브가 몸서리칠 새도 없이 차는 늑대를 밟고 균형을 잃은채 껑충 뛰어올랐다가 내동댕이 치듯 떨어졌다. 커다란 파도를 만난 배처럼 차가 엉망으로 롤링되었다.
그 틈을 타 왼쪽에서 접근하던 늑대가 뛰어오르며 차에 힘껏 부딪혔다. 늑대의 거친 태클이 운전석 문쪽에 작렬했다. 송곳같은 회색털이 쇼트웨이브가 앉은 좌석 옆 창에 눌리는가 싶더니,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화염이 들끓는 볼케이노 속의 모루로 떨어지는 음향이 터지며 거미줄같은 금이 창을 뒤덮어버렸다.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옆으로 피했다.
"한번만 더 부딪혔다간 창문이 깨지겠어."
쇼트웨이브가 외쳤다.
그녀는 왼쪽에서 또 한 마리의 늑대가 차를 노리며 접근하는 것을 보자, 이를 악물고 그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급작스런 방향 전환에 충돌 타이밍을 놓친 늑대가 차의 프론트 바디에 걸려들었다. 통나무를 들이받는 듯한 충격이 전해지자 늑대는 허리를 접으며 튕겨나가 나동그라졌다. 늑대가 뒤집혀진 채 땅을 긁으며 밀려난 곳에서, 구조를 위해 무인도에서 피워 올리는 연기처럼 자욱한 흙먼지가 일더니 뒤로 사라졌다.
그녀는 여세를 몰아 같은 쪽에서 덤벼들던 두 마리의 늑대들 쪽으로 차를 몰아갔으나, 두 마리 모두 옆쪽으로 비켜나며 속도를 줄여 차 뒤로 몸을 숨겼다.
두 발로 조수석 시트를 잔뜩 밀어 좌석 깊숙이 몸을 끼어 놓은채,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디지털퍼머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사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뭐라구?"
늑대들의 다음 공격을 예측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쇼트웨이브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사파리 투어를 하는게 꿈이었어."
"험."
쇼트웨이브가 소리를 냈다.
"하지 그랬어. 우리나라에도 있잖아."
"어디? 에버랜드?"
불안한 듯 창문을 넘겨보며 디지털퍼머가 대꾸했다. 긴장감이 쇼트웨이브를 프라이팬의 달걀부침처럼 지져댔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곤두 선 신경이 파김치가 될 만큼 피로해져 있었다. 온 몸에 힘을 빼라는 종이조각의 경구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이 지겨운 늑대들과 공방을 계속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야 했다. 온 몸에 힘을 빼, 온 몸에 힘을 빼라구. 그녀는 입술 끝으로 그 말을 되뇌였다.
"난 진짜를 원했어. 야생의 그것."
"응?"
쇼트웨이브가 눈을 깜박이며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사파리 말야. 탄자니아로 가고 싶었다구. 아루샤에서 지프를 빌려서 세렝게티로 이동하면서 동물들을 쫓아다녀 보고 싶었어. 미친 듯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야."
"험."
쇼트웨이브가 똑같은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룬거야. 지금. 늑대 사파리로."
순간 쇼트웨이브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늑대로부터 시선을 떼어 잠시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잔뜩 움츠려 있는 친구가 거기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손바닥으로 디지털퍼머의 허버지를 아프게 때렸다. 디지털퍼머가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
"말도 안되는 소릴 하니까 그렇지. 사파리는 네가 하는게 아냐."
"그럼?"
"늑대가 하는 거지. 지금은 늑대가 우릴 상대로 사파리 하는거야. 그러니까 네 꿈은 아직 멀었어, 이 년아."
디지털퍼머가 얼어붙은 얼굴에 약한 미소를 띄웠다.
"조심해."
쇼트웨이브가 소리치며 디지털퍼머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조수석 쪽의 문을 겨냥하며 달려들던 늑대가 쇼트웨이브에게 체크되어 범퍼 모서리에 받히고 공처럼 몸을 말며 크게 굴렀다. 디지털퍼머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몰아 쉬었다.
치열한 몸싸움 와중에서도 점차로 골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디지털퍼머는 골짜기 쪽에 희미하게 서있는 작은 사각형 모양의 구조물을 보았다. 그녀가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곳으로 가보자. 몸을 숨길 데가 있을지도 몰라."
늑대들의 공격이 거세졌다. 이번엔 십여마리가 넘는 수의 늑대들이, 운명 교향곡의 첫소절을 그래픽화한 오디오 엠프의 이퀄라이져 바처럼 순식간에 양 옆에서 솟아올랐다.
"끝장을 보려나봐."
쇼트웨이브가 작고 빠르게 속삭였다.
잠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늑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측의 한 마리가 빠르게 접근하자,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걸 증명하려는 사람처럼 쇼트웨이브는 방향을 틀어 저돌적으로 맞부딪혀갔다.
하지만 이번엔 늑대 역시 작심이라도 한듯 망설이지 않고 강하게 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각도가 다른 삼각함수 곡선들이 엇갈리듯, 충돌궤적 위에서 운동하던 두 강체가 엇박자로 부딪히며 핀트가 어긋나, 늑대는 디지털퍼머 쪽의 리어미러를 부수고 창틀을 이루는 A필라에 등을 찧으면서 보닛 위를 타고 올라갔다.
그녀들로서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으나, 늑대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가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고난이도의 레이백 스핀을 시도하듯 옆으로 누운채 보닛 위에서 한바퀴 회전을 하며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졌다. 희번덕거리는 늑대의 눈이 붉은 안광을 뿌리며 이미 금이 가 있던 앞 유리창에 길게 잔영을 남겼다.
쇼트웨이브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거친 전사처럼 차를 몰며, 돌진해 오던 또 한마리의 늑대를 무자비하게 바디첵 했다. 힘에서 밀린 늑대가 마치 100년 묵은 여우가 부리는 묘기처럼 뒤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땅바닥에 내팽겨쳐져 전장에서 이탈되었다.
그녀들로서는 눈부신 선전이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늑대들을 그렇게 하나씩 처리하기에는 중과부적일만큼 수가 많았던 것이다. 쇼트웨이브가 두 세마리의 늑대들을 쓸어버리는 사이 차에 근접하는데 성공한 다른 늑대들이 차례차례 차로 돌진하였다.
첫번째 공격이 쇼트웨이브 쪽 도어에 격중되었다. 쇼트웨이브는 운전대를 붙잡고 겨우 균형을 유지했다. 차 문이 우그러지는 듯한 충격에 차가 옆으로 밀리며 휘청댔다.
잇달은 공격이 디지털퍼머의 문 쪽과 뒷도어에 작렬했다. 그녀가 복부를 맞은 권투선수같이 허리를 접으며, 대쉬보드를 두 팔로 짚었다. 차량이 마치 분만을 앞둔 산모처럼 격렬하게 진통했다.
킹핀축이 뒤틀려 스티어링과 브레이킹의 적절한 모멘트를 잃어버린 탓에, 쇼트웨이브는 운전대가 아니라 계기판에 박힌 말뚝을 붙잡고 차를 모는 것 같았다. 모노코크 바디의 플로어 패널이 인장력의 한계에 다달아 찌그러질듯이 삐걱댔다.
공격은 전성기 시절 슈거레이 레너드의 소나기 펀치처럼 정신없이 이어졌다. 2,3마리의 늑대가 트렁크 쪽의 리어바디 부분을 두들겨 차동기어장치를 흔들어 놓고 트렁크를 우그러뜨렸다.
트렁크 잠금장치가 영구히 망가지자 계기판엔 트렁크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붉은 경고등이 들어왔고, 헤머질을 방불케하는 충격에 순간적으로 뒷바퀴의 회전비가 달라져, 차량은 빙판 위를 달리는 것처럼 좌우로 미끌어졌다. 강판이 심하게 우그러져 트렁크 락이 풀렸음에도 트렁크 문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근접해 있던 늑대들 무리 중에서 몇 마리가, 조향장치가 있는 프론트 바디에 테러를 집중하여 심각한 충격을 야기시켰다. 섹터축과 너클암이 흔들리자 차량은 쇼트웨이브의 통제권을 벗어났다. 차가 옆으로 미끌어지며 전복이라도 될 듯이 스핀을 하기 시작했다. 디지털퍼머는 도어트림에 몸을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쇼트웨이브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스핀의 반대방향으로 운전대를 꺾었다. 흙과 먼지를 사방으로 뿌려대며 차는 반바퀴를 더 돌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늑대 한마리가 보닛 위를 뛰어올라와 머리로 유리창을 들이받았다. 차 유리는 내부를 압축,인장시킨 강화유리인 덕에 깨져서 파편이 튀진 않았지만, 팥알 모양의 금이 가며 실그러지듯 안쪽으로 휘어져 글래스 댐과 고무몰딩이 창틀에서 벗겨져 버렸다.
창이 벌어진 틈으로 습한 바깥 공기와 함께 늑대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채 이글거리는 눈으로 늑대가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움직이지마. 움직이면 안돼."
쇼트웨이브가 들릴듯 말듯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그녀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깨진 유리창은 그녀들에게 아무런 보호막이 될 수 없었다. 쇼트웨이브는 등으로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늑대들이 이중 삼중으로 차를 둘러싸고 모여들었다. 또다른 늑대가 트렁크를 밟고 뛰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머리를 달로 향하여 만만찮은 사냥에 성공했음을 자축하는 스산하고 공포스런 울음을 터뜨렸다. 디지털퍼머는 그녀 쪽 땅에 드리워진, 지붕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감광된 한 장의 인화지같은 그림자를 보았다. 그녀가 절망에 떨리는 손으로 쇼트웨이브의 손을 더듬어 찾아 쥐었다.
그 순간 멀리서 날카로운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표준편차가 작은 정규분포 곡선처럼, 낮은 음으로 시작하여 찢어질 듯 높은 F음으로 변하더니 다시금 떨어져 처음 시작했던 낮은 음으로 바뀌고는 끝났다.
늑대들이 행동을 멈추고 돌연 긴장한채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골짜기 쪽이었다.
"누가 있나봐. 저 건물에."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그래. 늑대 주인이 아니면 좋겠어."
쇼트웨이브가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한번 느리고 긴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거칠 것 없이 들판을 퍼져나갔다. 그녀들은 느낄 수 없었으나, 늑대들은 그 소리에서 어떤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늑대들이 그쪽을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잠시후 아무런 사전 경고없이 거대한 지진파가 밀어닥쳤다.
그것은 뿔피리 소리가 들린 곳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지표의 표면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는 레일리파처럼 강력한 역회전 원운동으로 거친 땅거죽을 주름잡아버렸다. 수백만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끌고 이랑을 판 것처럼 지형이 뒤바뀌면서 폭발적인 진동이 번져와, 순식간에 그들을 덮치고 소용돌이치는 매질의 파괴력으로 늑대들을 휩쓸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녀들에게 닥친 진동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서 나룻배를 타다가, 모터보트가 지나간 물결에 가볍게 상하로 출렁거리는 것 정도였는데, 늑대들은 강풍에 휘말린 휴지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지진파의 충격이 선택적으로 작용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2타,3타의 지진파가 거듭 그들을 덮쳤고, 늑대들은 마치 썰물이 빠지듯 들판 쪽으로 떠내려갔다. 마침내 지진이 멈췄을 때 그녀들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다.
늑대가 자신을 덮치는 차량의 흰색 도장 강판을 힐끗 쳐다보았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와 충돌하게 된 늑대는 당황한 듯 속도를 높여 차를 피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욱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차의 앞 범퍼 모서리에 몸을 부딪혀 바퀴 밑으로 말려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늑대의 뼈가 부러지듯 으드득하는 전율스런 느낌이 휠을 통해 쇼트웨이브가 잡은 운전대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쇼트웨이브가 몸서리칠 새도 없이 차는 늑대를 밟고 균형을 잃은채 껑충 뛰어올랐다가 내동댕이 치듯 떨어졌다. 커다란 파도를 만난 배처럼 차가 엉망으로 롤링되었다.
그 틈을 타 왼쪽에서 접근하던 늑대가 뛰어오르며 차에 힘껏 부딪혔다. 늑대의 거친 태클이 운전석 문쪽에 작렬했다. 송곳같은 회색털이 쇼트웨이브가 앉은 좌석 옆 창에 눌리는가 싶더니,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화염이 들끓는 볼케이노 속의 모루로 떨어지는 음향이 터지며 거미줄같은 금이 창을 뒤덮어버렸다.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옆으로 피했다.
"한번만 더 부딪혔다간 창문이 깨지겠어."
쇼트웨이브가 외쳤다.
그녀는 왼쪽에서 또 한 마리의 늑대가 차를 노리며 접근하는 것을 보자, 이를 악물고 그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급작스런 방향 전환에 충돌 타이밍을 놓친 늑대가 차의 프론트 바디에 걸려들었다. 통나무를 들이받는 듯한 충격이 전해지자 늑대는 허리를 접으며 튕겨나가 나동그라졌다. 늑대가 뒤집혀진 채 땅을 긁으며 밀려난 곳에서, 구조를 위해 무인도에서 피워 올리는 연기처럼 자욱한 흙먼지가 일더니 뒤로 사라졌다.
그녀는 여세를 몰아 같은 쪽에서 덤벼들던 두 마리의 늑대들 쪽으로 차를 몰아갔으나, 두 마리 모두 옆쪽으로 비켜나며 속도를 줄여 차 뒤로 몸을 숨겼다.
두 발로 조수석 시트를 잔뜩 밀어 좌석 깊숙이 몸을 끼어 놓은채,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디지털퍼머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사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뭐라구?"
늑대들의 다음 공격을 예측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쇼트웨이브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사파리 투어를 하는게 꿈이었어."
"험."
쇼트웨이브가 소리를 냈다.
"하지 그랬어. 우리나라에도 있잖아."
"어디? 에버랜드?"
불안한 듯 창문을 넘겨보며 디지털퍼머가 대꾸했다. 긴장감이 쇼트웨이브를 프라이팬의 달걀부침처럼 지져댔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곤두 선 신경이 파김치가 될 만큼 피로해져 있었다. 온 몸에 힘을 빼라는 종이조각의 경구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이 지겨운 늑대들과 공방을 계속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야 했다. 온 몸에 힘을 빼, 온 몸에 힘을 빼라구. 그녀는 입술 끝으로 그 말을 되뇌였다.
"난 진짜를 원했어. 야생의 그것."
"응?"
쇼트웨이브가 눈을 깜박이며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사파리 말야. 탄자니아로 가고 싶었다구. 아루샤에서 지프를 빌려서 세렝게티로 이동하면서 동물들을 쫓아다녀 보고 싶었어. 미친 듯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야."
"험."
쇼트웨이브가 똑같은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룬거야. 지금. 늑대 사파리로."
순간 쇼트웨이브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늑대로부터 시선을 떼어 잠시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잔뜩 움츠려 있는 친구가 거기 있었다. 쇼트웨이브는 손바닥으로 디지털퍼머의 허버지를 아프게 때렸다. 디지털퍼머가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
"말도 안되는 소릴 하니까 그렇지. 사파리는 네가 하는게 아냐."
"그럼?"
"늑대가 하는 거지. 지금은 늑대가 우릴 상대로 사파리 하는거야. 그러니까 네 꿈은 아직 멀었어, 이 년아."
디지털퍼머가 얼어붙은 얼굴에 약한 미소를 띄웠다.
"조심해."
쇼트웨이브가 소리치며 디지털퍼머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조수석 쪽의 문을 겨냥하며 달려들던 늑대가 쇼트웨이브에게 체크되어 범퍼 모서리에 받히고 공처럼 몸을 말며 크게 굴렀다. 디지털퍼머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몰아 쉬었다.
치열한 몸싸움 와중에서도 점차로 골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디지털퍼머는 골짜기 쪽에 희미하게 서있는 작은 사각형 모양의 구조물을 보았다. 그녀가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곳으로 가보자. 몸을 숨길 데가 있을지도 몰라."
늑대들의 공격이 거세졌다. 이번엔 십여마리가 넘는 수의 늑대들이, 운명 교향곡의 첫소절을 그래픽화한 오디오 엠프의 이퀄라이져 바처럼 순식간에 양 옆에서 솟아올랐다.
"끝장을 보려나봐."
쇼트웨이브가 작고 빠르게 속삭였다.
잠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늑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측의 한 마리가 빠르게 접근하자,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걸 증명하려는 사람처럼 쇼트웨이브는 방향을 틀어 저돌적으로 맞부딪혀갔다.
하지만 이번엔 늑대 역시 작심이라도 한듯 망설이지 않고 강하게 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각도가 다른 삼각함수 곡선들이 엇갈리듯, 충돌궤적 위에서 운동하던 두 강체가 엇박자로 부딪히며 핀트가 어긋나, 늑대는 디지털퍼머 쪽의 리어미러를 부수고 창틀을 이루는 A필라에 등을 찧으면서 보닛 위를 타고 올라갔다.
그녀들로서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으나, 늑대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가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고난이도의 레이백 스핀을 시도하듯 옆으로 누운채 보닛 위에서 한바퀴 회전을 하며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졌다. 희번덕거리는 늑대의 눈이 붉은 안광을 뿌리며 이미 금이 가 있던 앞 유리창에 길게 잔영을 남겼다.
쇼트웨이브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거친 전사처럼 차를 몰며, 돌진해 오던 또 한마리의 늑대를 무자비하게 바디첵 했다. 힘에서 밀린 늑대가 마치 100년 묵은 여우가 부리는 묘기처럼 뒤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땅바닥에 내팽겨쳐져 전장에서 이탈되었다.
그녀들로서는 눈부신 선전이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늑대들을 그렇게 하나씩 처리하기에는 중과부적일만큼 수가 많았던 것이다. 쇼트웨이브가 두 세마리의 늑대들을 쓸어버리는 사이 차에 근접하는데 성공한 다른 늑대들이 차례차례 차로 돌진하였다.
첫번째 공격이 쇼트웨이브 쪽 도어에 격중되었다. 쇼트웨이브는 운전대를 붙잡고 겨우 균형을 유지했다. 차 문이 우그러지는 듯한 충격에 차가 옆으로 밀리며 휘청댔다.
잇달은 공격이 디지털퍼머의 문 쪽과 뒷도어에 작렬했다. 그녀가 복부를 맞은 권투선수같이 허리를 접으며, 대쉬보드를 두 팔로 짚었다. 차량이 마치 분만을 앞둔 산모처럼 격렬하게 진통했다.
킹핀축이 뒤틀려 스티어링과 브레이킹의 적절한 모멘트를 잃어버린 탓에, 쇼트웨이브는 운전대가 아니라 계기판에 박힌 말뚝을 붙잡고 차를 모는 것 같았다. 모노코크 바디의 플로어 패널이 인장력의 한계에 다달아 찌그러질듯이 삐걱댔다.
공격은 전성기 시절 슈거레이 레너드의 소나기 펀치처럼 정신없이 이어졌다. 2,3마리의 늑대가 트렁크 쪽의 리어바디 부분을 두들겨 차동기어장치를 흔들어 놓고 트렁크를 우그러뜨렸다.
트렁크 잠금장치가 영구히 망가지자 계기판엔 트렁크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붉은 경고등이 들어왔고, 헤머질을 방불케하는 충격에 순간적으로 뒷바퀴의 회전비가 달라져, 차량은 빙판 위를 달리는 것처럼 좌우로 미끌어졌다. 강판이 심하게 우그러져 트렁크 락이 풀렸음에도 트렁크 문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근접해 있던 늑대들 무리 중에서 몇 마리가, 조향장치가 있는 프론트 바디에 테러를 집중하여 심각한 충격을 야기시켰다. 섹터축과 너클암이 흔들리자 차량은 쇼트웨이브의 통제권을 벗어났다. 차가 옆으로 미끌어지며 전복이라도 될 듯이 스핀을 하기 시작했다. 디지털퍼머는 도어트림에 몸을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쇼트웨이브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스핀의 반대방향으로 운전대를 꺾었다. 흙과 먼지를 사방으로 뿌려대며 차는 반바퀴를 더 돌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늑대 한마리가 보닛 위를 뛰어올라와 머리로 유리창을 들이받았다. 차 유리는 내부를 압축,인장시킨 강화유리인 덕에 깨져서 파편이 튀진 않았지만, 팥알 모양의 금이 가며 실그러지듯 안쪽으로 휘어져 글래스 댐과 고무몰딩이 창틀에서 벗겨져 버렸다.
창이 벌어진 틈으로 습한 바깥 공기와 함께 늑대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채 이글거리는 눈으로 늑대가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움직이지마. 움직이면 안돼."
쇼트웨이브가 들릴듯 말듯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그녀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깨진 유리창은 그녀들에게 아무런 보호막이 될 수 없었다. 쇼트웨이브는 등으로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늑대들이 이중 삼중으로 차를 둘러싸고 모여들었다. 또다른 늑대가 트렁크를 밟고 뛰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머리를 달로 향하여 만만찮은 사냥에 성공했음을 자축하는 스산하고 공포스런 울음을 터뜨렸다. 디지털퍼머는 그녀 쪽 땅에 드리워진, 지붕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감광된 한 장의 인화지같은 그림자를 보았다. 그녀가 절망에 떨리는 손으로 쇼트웨이브의 손을 더듬어 찾아 쥐었다.
그 순간 멀리서 날카로운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표준편차가 작은 정규분포 곡선처럼, 낮은 음으로 시작하여 찢어질 듯 높은 F음으로 변하더니 다시금 떨어져 처음 시작했던 낮은 음으로 바뀌고는 끝났다.
늑대들이 행동을 멈추고 돌연 긴장한채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골짜기 쪽이었다.
"누가 있나봐. 저 건물에."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그래. 늑대 주인이 아니면 좋겠어."
쇼트웨이브가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한번 느리고 긴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거칠 것 없이 들판을 퍼져나갔다. 그녀들은 느낄 수 없었으나, 늑대들은 그 소리에서 어떤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늑대들이 그쪽을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잠시후 아무런 사전 경고없이 거대한 지진파가 밀어닥쳤다.
그것은 뿔피리 소리가 들린 곳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지표의 표면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는 레일리파처럼 강력한 역회전 원운동으로 거친 땅거죽을 주름잡아버렸다. 수백만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끌고 이랑을 판 것처럼 지형이 뒤바뀌면서 폭발적인 진동이 번져와, 순식간에 그들을 덮치고 소용돌이치는 매질의 파괴력으로 늑대들을 휩쓸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녀들에게 닥친 진동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서 나룻배를 타다가, 모터보트가 지나간 물결에 가볍게 상하로 출렁거리는 것 정도였는데, 늑대들은 강풍에 휘말린 휴지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지진파의 충격이 선택적으로 작용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2타,3타의 지진파가 거듭 그들을 덮쳤고, 늑대들은 마치 썰물이 빠지듯 들판 쪽으로 떠내려갔다. 마침내 지진이 멈췄을 때 그녀들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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