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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0 288회 0건
쇼트웨이브는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었다.
열대어라도 헤엄쳐 다닐만큼 습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와,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의자에서 내려와 외줄타기라도 하듯이 조심스레 땅을 딛고서 말없이 황야를 둘러보았다.
2차세계 대전에 쓰였던 독일군의 곡사포들을 모조리 이곳에 집중시켜 포격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변 모두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골짜기 끝에서부터 자신들이 헤쳐 온 벌판 너머까지,그녀가 볼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땅들은, 거무죽죽한 파도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밀려가다가 그대로 화석이 된 양 마구 헤집어진 채로 얼어붙은 것처럼 멎어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문득 마음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주물렀다.

"차 좀 봐. 고물이 다 됐어."
어느새 나왔는지 디지털퍼머가 그녀 옆에서 허리춤에 엄지 손가락을 찔러넣은 채로 말을 붙였다. 쇼트웨이브가 자신의 차를 돌아보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차는 폐차장에서 고압 프레스에 눌려지는 도중, 프레스 조작자가 조는 사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반은 네가 내야 돼."
"응? 반이라니?"
"차 새로 구입할 때 비용 중 반액은 네 부담이라구."
디지털퍼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미쳤니, 이 년아. 왜 나보고 반을 내래."
쇼트웨이브는 한 손으로 다른 팔의 어깨를 감싸며 눈을 흘겼다.
"당연히 공동부담이지. 나만 좋으라구 운전했니."
"싫어. 차 보험 들었을거 아냐. 보험처리해."
"말이 되는 소릴해라. 늑대들이 공격했다는 말을 보험회사에서 믿겠니. 그런 손상은 약관에도 없어."
"몰라. 그런게 어딨어. 그리구 내가 돈을 보태도 차 소유주는 네 명의로 할거잖아."
"물론이지."
"순 날강도 아냐. 친구사이에 정말 이러기야."
쇼트웨이브는 친구의 어깨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쳐서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털어냈다.
"친구사이 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해야 되는거 몰라. 정 아까우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범퍼카를 탄 거라구 생각해."
디지털퍼머가 억울하다는 듯이 쇼트웨이브를 노려보며 말했다.
"못된 년. 잘먹구 잘살아라."
쇼트웨이브가 낄낄대며 디지털퍼머의 팔짱을 끼었다.
"그랜져 살건데. 괜찮지?"
"아예 BMW를 뽑아라, 이 년아."
쇼트웨이브는 흐흥거리며 웃었으나 곧 시큰둥해졌다. 그건 아무런 의미없는 말장난일 뿐이었다.

공기를 꽉 채운 텁텁한 흙냄새를 뚫고 다시금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은 불똥이 튄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이건 또 무슨 신호래."
"설마 또 지진이 오는건 아니겠지."
그녀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골짜기 쪽을 바라보았다.
천정에 못이라도 박을 만큼 드높던 뿔피리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골짜기 쪽에 서 있던 작은 입방체의 건물로부터 붉은 선이 하나 나타나 빠른 속도로 그녀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선이 어느 정도 접근하자 그녀들은 그게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뒤에 길게 꼬리를 달고 맹렬히 회전하며 굴러오는 집채만한 로울러였다.
탱탱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로울러는 부피를 빠르게 줄여가며 그녀들을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서산마애삼존불상 중 제일 큰 석가여래상이 세 개 정도 무등을 타면 거의 비슷할 만한 크기에서, 톰아저씨의 오두막 정도 되는 크기로, 또 거기에서 트리니티가 전화를 걸던 작은 공중전화 부스만한 크기로 변하더니, 그녀들을 몇미터 앞에 두고는 음주운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찰들이 단속을 위해 유흥가 앞에 쳐놓는 음주단속 바리케이트 정도로 낮아졌다. 그녀들은 굴러오던 물체가 돌돌 말려있던 자신의 몸을 그녀들 발치에 툭 내던지며 회전을 멈추었을 때야 비로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카펫이었다. 마사로 된 천의 바탕에, 양모를 고리모양으로 촘촘히 박음질하여 끝을 컷팅한 고급스런 윌튼형 레드 카펫.
누군가 카펫이 감긴 엄청나게 큰 뭉치를 마치 볼링공 굴리듯이 가볍게 던져, 그녀들이 서 있는 곳까지 어림잡아 1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에, 학교 복도처럼 일직선으로 된 빨간 색의 좁고 긴 길을 깐 것이었다. 입모가 얼마나 길고 풍성한지 카펫 속에 토끼가 들어가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카펫 끝이 땅에 닿는 순간, 그것을 피해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서며 디지털퍼머가 말했다.
"이게 뭐니?"
"카펫 아냐. 시상식장에서 배우들이 밟고 들어가는거."
"누가 그걸 몰라. 이게 갑자기 왜 깔리느냐가 문제지."
쇼트웨이브는 카펫 끝에 달려있는 황금색 술을 발로 건드려 보았다.
"나한테 묻는 거라면, 글쎄. 누군가 우리한테 호의를 갖고 있는거 아닐까."
"뿔피리를 분 사람?"
"꼭 사람만 뿔피리를 부는건 아니지. 여기선 돌아가는 뽐새를 보건대 말야, 제아무리 비실거리는 실험실용 누드 마우스라도 뿔피리만 입에 물려주면 비발디의 플룻 협주곡 정도는 문제없이 불어낼거 같애. 게다가 지금 들렸던 소리가 꼭 뿔피리 소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거구. 누가 알아. 너구리를 밟았을 때 나는 소린지."
디지털퍼머가 물놀이를 하다가 컨택트렌즈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인상을 쓰며 쇼트웨이브를 노려보았다.
"이 년아, 너 나 겁줄려고 그러는거지."
쇼트웨이브는 그 말을 무시하고 건물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누군가 오는거 같아."

카펫의 반대쪽 끝에서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것은 조금씩 커졌는데 분명 여러 명의 줄지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카펫을 밟는지 스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미끄럽게 그녀들을 향해 다가왔다. 쇼트웨이브가 다급하게 디지털퍼머의 팔을 잡고 물었다.
"골무 어때?"
"괜찮아. 조이지 않는걸."
쇼트웨이브는 약간 안심이 되는 표정으로 깍지를 끼고서 손바닥을 천천히 마주 비볐다. 디지털퍼머가 그녀 쪽으로 한 발 다가섰다.
"저 사람들이 늑대를 쫓은 사람들인가. 만나도 되는걸까."
"글쎄. 위험 신호가 없다면, 한번 만나보지, 뭐."
행렬은 좌우로 대여섯명씩 늘어선 십여명의 사람들이었는데, 덮개가 없는 길다란 가마를 어깨에 매고 있었다.
생김새는 지붕과 장막을 제거한 보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길이가 훨씬 더 길어 적어도 너다섯명 정도는 너끈히 탈 수 있는 크기였다.
가마 위엔 팔을 벌려 난간 위에 걸쳐 얹고, 옆으로 약간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사람이 짧은 파이프의 물부리를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직사각형 모양의 가마에서 난간이 긴 쪽인 옆 면에 앉아 있었는데, 다리를 꼬고 가마가 흔들리는대로 편안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마치 관광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한가롭게 보였다. 행렬의 속도는 대단히 빨라, 그녀들이 만날지 말지를 망설이는 사이, 이미 그녀들 앞에 거의 당도하였다. 행렬이 멈추자 가마꾼들이 가마를 내려놓기도 전에 남자는 난간을 누르며 가볍게 몸을 날려 가마에서 뛰어내렸다.

남자는 키가 컸으며, 달걀모양의 갸름한 턱을 가지고 있었다. 눈은 흑설탕처럼 검은 빛이 도는 갈색이었고, 눈 주위로 젖은 행주처럼 눅눅하게 물이 돌았다. 그는 하얀 치아를 자랑이라도 하듯 활짝 입을 벌려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향해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아가씨들."
번쩍번쩍 닦여진 스테인레스 스틸 위로 잘 연마된 쇠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매끄러운 발음이었다. 잔주름이 진 입가 위에는 펜촉처럼 얇은 콧수염이 길게 입꼬리까지 자라 있었다. 밥 먹고 하품하는 시간 외엔 거울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 정도로 매우 공들여 짧게 다듬은 수염이었다.
쇼트웨이브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는 주름하나 없이 칼같이 다림질을 한 흰색 린넨 바지와, 과일 무늬가 프린트된 연두색 반팔 코튼 셔츠를 걸치고 있었는데, 왼쪽 가슴부위에 틈을 낸 상의 주머니엔 셔츠와 같은 색깔인 연두색 손수건이 삼각형으로 접혀 단도처럼 끝을 세우고 있었다.
송곳으로 써도 될 만큼 뾰족한 가죽구두는, 하얀 색과 검은 색이 반반씩 섞였으며 구두코에 가로로 스티치가 들어간 스트레이트 팁이었는데 전구를 달은 것처럼 빛이 났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의 품이 풍성하여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대체적인 체형은 군살이 없는 마른 체형의 사람인 듯 싶었다.
숱이 많아 보이는 검은 색 머리는 재래김처럼 기름을 발라 뒤로 빗어 넘겨서 좁은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불을 지르면 횃불로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들이 아무 말이 없자 그는 벌렸던 손을 마주 잡고 허리를 약간 굽힌 채로 다시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잘 오셨습니다. 우리 제천시를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디지털퍼머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뭐라구요? 여기가 제천시라구요."
그가 대답을 해주어 고맙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눈을 크게 뜨며 한 손으로 붉고 커다란 달을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이올습니다. 마침 바람도 불어주고 특히 달이 아주 밝지 않습니까."
쇼트웨이브가 말을 가로챘다.
"우리가 아는 제천은 이런 곳이 아닌데요. 진짜로 여기는 어딘가요?"
그는 그녀의 반박이 억울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 올리더니 다시금 고른 치아를 드러냈다.
"궁금한게 많으실줄 압니다만, 가시면서 얘기하면 안될까요."
그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며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이곳은 아직 위험합니다. 시내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누가 어디서 우리를 공격할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요?"
쇼트웨이브가 날카롭게 반문했다. 남자가 거스름 돈을 건네듯 덧붙였다.
"저와 아가씨들 말이예요."
쇼트웨이브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언제부터 아저씨와 저희들이 우리가 됐지요?"
남자는 그렇게 재미있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어설픈 웃음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몇번 부딪혀 박수소리를 냈다.
"정말 매력적인 분들이시군요. 맞아요, 맞습니다. 함부로 낯선 사람을 믿으면 안되죠."
그는 여전히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믿으셔도 돼요. 아까 아가씨들을 공격했던 늑대들 말입니다만, 그런 것들이 이곳엔 수두룩 해요. 여기선 누구나 자신의 영역을 갖추고 살지요. 영역 내에서는 그런대로 안전하지만 외곽에서는 항상 습격과 약탈이 일어납니다."
"약탈이라니요, 무얼 약탈하나요?"
남자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고는 그녀들 쪽으로 머리를 낮추었다.
"이 곳에서 가치있는 단 하나의 약탈물, 영혼이지요. 영혼. 게다가 또..아가씨들의 경우엔 덤으로 육체까지도.."
말끝을 흐리는 남자의 눈이 순간 가재의 집게발처럼 가늘어졌다가 다시금 커졌다. 디지털퍼머가 쇼트웨이브 쪽으로 바짝 붙었다. 쇼트웨이브가 남자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늑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진을 일으킨게 그쪽이신가요? 그 지진은 자연적인게 아니었죠?"
다시금 남자는 입이 귀에 걸릴만큼 크게 미소를 지었다.
"큰 희생이었습니다, 아가씨들. 우리로서도 큰 희생이 필요한 것이었지요."
그는 커다란 동작으로 손을 공중에 휘휘 저었다.
"그렇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아가씨들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정말이지 아깐 저희들도 무척 다급했답니다. 못된 중놈들이 그렇게 빨리 달려들지 누가 알았겠어요."
그녀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니, 다 보고 계셨나요?"
남자는 마치 부채를 펴듯 손사래를 쳤는데, 그러자 둥글게 말린 부드러운 모자 하나가 손에서 튀어 나왔다. 그가 휘파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가볍게 말린 모자를 폈다. 매우 멋진 파나마 모자였다.
"물론이죠, 아가씨들. 그건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남자는 엄지 손가락으로 골짜기 쪽에 솟아있는 산을 가리켰다.
"높은데 올라가면 멀리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그는 돌고래라도 통째로 튀길 수 있을 만큼 느끼한 미소를 지어냈다.
"약탈이 심하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아저씨를 어떻게 믿어요?"
남자가 미소를 거두고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가씨들을 못 믿지요."
디지털퍼머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남자가 자신의 광대뼈 밑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는 아가씨들이 기다리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합니다. 거의요. 백프로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아가씨들이 아귀의 일종이고,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의 행세를 하며 우리 시의 심장부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완전히 절단나는 거지요. 아시겠어요? 이건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디지털퍼머가 여전히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일이요? 무슨 일이요? 대체 저희를 왜 기다리고 있었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무슨 일을 해야 된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것은 제가 하나하나 다 얘기를 해드리지요.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게 있습니다."
남자가 목을 가다듬는 듯 헛기침을 했다. 쇼트웨이브는 새삼 남자가 입고있는 셔츠에 프린트된 무늬를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처음 흘낏 봤을 때 과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 본 것이었다. 그건 손톱만한 크기로 가지와 오이, 그리고 바나나가 번갈아 가며 인쇄된 것이었다. 연두색은 단순한 바탕 색깔이 아니라 그것들을 묶고 있는 덩쿨과 잎사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아가씨들이 우리가 찾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배포한 초대장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초대장이요? 그런거 없는데요."
디지털퍼머가 약간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래요? 정말인가요?"
그는 야단났다는 듯이 이마를 닦고 귓볼을 만지고 두 손을 비볐다. 마치 할머니 장례식에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않은 상주처럼 큰 낭패를 봤다는 표정이었다. 손수건을 꺼내 별로 땀도 보이지 않는 목덜미를 부산하게 찍어누른 다음 그가 큰 실수를 했다는 듯이 말했다.
"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사람을 착각했나 보군요. 가시던 길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지요."
남자는 가마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가만히 있던 쇼트웨이브가 그를 불렀다.
"잠깐만요. 제가 그 초대장을 알거 같군요."
남자가 불러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들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리며 활짝 웃었다.
"그렇죠? 있으시죠? 놀랐지 뭡니까."
"혹시 배우가 꿈이더라도 오디션은 보지 마세요. 연기가 너무 뻔하거든요. 잠깐 기다리세요."
쇼트웨이브가 냉담하게 말하고는 디지털퍼머의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디지털퍼머가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쇼트웨이브의 귀에 소곤거렸다.
"초대장이 어딨다구 그래?"
쇼트웨이브 역시 남자 쪽에 안들리도록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 짐작이 맞다면 저 작자가 우릴 여기에 끌어들인 장본인인거 같아."
디지털퍼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그 초대장이라건 부적을 말하는 걸테지."
"이제 어쩌지?"
"부적을 건네주고 무슨 수작을 할지 봐야겠어."
"그러다 잘못 되면 어떻게 해?"
"별 수 없잖아. 지금보다 더 나빠지겠어?"
그녀들은 다시 걸음을 옮겨 차 앞에 당도했다. 디지털퍼머는 차 안에서 여행책자가 담긴 가방을 꺼냈고, 쇼트웨이브도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서 손지갑과 함께 가지고 다니던 배낭식 가죽 가방에 넣고 차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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