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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4 436회 0건
“엄마!”
그녀가 잠결에 엄마를 찾았다. 색귀는 쓴웃음을 짓고 그녀의 육체에 밀착했다. 그녀의 숨결과 체온을 통해 미약하게 발산되는 음정이 느껴졌다. 너무 미미해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느끼면서도 그것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흡수를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선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책상에서 잠들었는데?’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급히 자신의 몸을 체크했다. 별다른 통증이 없고 이상한 곳도 없었다. 내심 안도하면서 씻으려고 욕실로 향했다. 간밤에 색귀를 의식해서 샤워를 못한 것이 못내 찝찝해서 샤워가 하고 싶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히자.’
그녀는 색귀를 의식하면서도 거침없이 잠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샤워기 앞에 섰다. 처녀의 본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이 긴장되었다. 따뜻한 물을 틀어 샤워를 하자 마음이 안정되어 색귀도 잊고 샤워를 했다.
그녀는 교복을 입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식당에서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계셨다.
“우리딸, 잘 잤니?”
“네, 엄마도 잘 주무셨죠?”
“그럼, 아침 먹으렴. 언니 불러야겠다.”
진아는 큰딸을 부르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진아와 민아가 내려왔다. 민아가 식탁에 앉자 진아도 식사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선아는 먼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해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가 도착했다. 그녀와 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학교로 가는 버스노선이 한 대 뿐이고, 학생들이 많이 타는 시간이라서 버스는 만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틈에 끼어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섰다. 버스가 출발하자 사람들이 밀리면서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버텼다. 두 정거장 가서 같은 반 친구 최희정이 탔다.
“에구, 오늘도 말린 오징어신세구나.”
희정이가 힘겹게 선아의 옆으로 와서 말했다.
“올해로 마지막이니까 참아.”
선아와 희정이는 자잘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응?’
선아는 희정이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다.
‘색귀?’
그녀는 가장 먼저 색귀를 의심했으나 곧 뒤에 서 있는 아저씨라는 걸 느꼈다.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바로 뒤에 붙어서 엉덩이를 희롱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남자는 모른 척 외면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불쾌해서 인상을 썼다. 그러자 희정이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말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만 벙긋거렸다.
-어떡해?
선아도 어찌할지 몰라 고개를 살짝 젓고 몸을 틀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틈에 남자가 더 바짝 붙었다. 엉덩이로 손 말고 뭔가 찌르는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이 남자의 자지란 걸 느끼고 울고 싶어졌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고, 손을 치워달라고 말하기에 너무 부끄러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희정이도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때 색귀의 음성이 머리 속에 울렸다.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음성이 아니라 마음과의 공명으로 전달되었다.
“도와줄까?”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생각하듯 물었다.
“조건이 있는 도움인가요?”
“그런 거 없어. 그냥 네가 곤란해 하는 것 같아서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그, 그럼 도와주세요.”
“내가 잠시 너의 육체를 움직일 거야. 조금 느낌이 이상해도 별거 아니니까 참고 있어. 곧 풀릴 거니까.”
그녀는 살짝 불안해졌으나 참기로 했다. 그녀의 육체를 누군가 움직이는 것 같은 생소한 기분과 힘이 강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색귀가 선아의 육체로 완전히 빙의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본래 색귀는 정신만 존재하고 물리력은 행사하지 않는 형태로 빙의해 있었다. 여인의 음정을 취하지 못한 상태로 소비되는 기력은 탄생과 함께 부여된 자연력을 소모하고 그 기운이 약화되면 색귀의 능력이 저하되면서 종래에는 소멸되는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에 최대한 자연력을 소비하지 않는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숙주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부득이 숙주의 몸을 지배하며 물리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색귀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색귀는 주먹을 쥐어보았다. 선아의 몸이지만 어느 정도 힘이 느껴졌다. 그녀의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본래 그녀가 가진 힘보다 강한 힘이었다. 엉덩이로 치한의 손길이 느껴졌다.
‘감히 이 몸의 숙주를 희롱한 벌을 내려주마.’
색귀는 앞사람을 밀어 순간적으로 공간을 확보하면서 오른 팔꿈치로 치한의 안면을 가격했다. 인체 중 가장 단단한 부위여서 치한의 코에 강력한 충격을 선사했다.
뻑!
“으악!”
갑자기 버스 안에서 큰소리가 울렸다. 선아 뒤의 남자가 코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색귀가 뒤를 돌아보니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 썅년이...”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뺨을 때리려는 듯 손을 치켜들었다.
“꺄악!!”
희정이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색귀는 반대편으로 몸을 틀면서 왼 팔꿈치로 턱을 후려쳤다.
“컥!”
충격이 상당이 컸는지 남자가 큰 비명을 질렀다.
그때 비명소리에 놀란 버스기사가 차를 세우고 소리쳐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저씨, 도와주세요. 치한이에요.”
색귀는 선아의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아니 어떤 놈의 새끼가 딸자식 같은 학생을 괴롭힌단 말야.”
버스기사가 크게 소리치며 앞문과 뒷문을 열었다.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지은 죄가 있어서 버스기사가 앞문으로 내려 잡으러 오려고 하자 학생들을 밀쳐서 뒷문으로 도망쳤다. 색귀는 그 모습을 보고 위협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다시 육체를 선아에게 넘기고 잠수했다. 선아는 색귀가 행한 일들을 모두 보고 느끼고 있었던 터라 버스기사가 뒷문으로 올라오자 치한이 놀라 도망쳤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런 놈들은 죄다 콩밥을 먹여야해. 또 나타나면 소리를 지르도록 해.”
버스기사가 흥분해서 말하고 다시 돌아가 버스를 출발시켰다. 희정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야. 너 정말 대단했어. 너한테 그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어.”
선아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닌지라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냥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런 거야.”
“너 나 모르게 태권도장이라도 다니는 거니?”
“그런 거 아냐. 정말 우연이라니까.”
희정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단숨에 치한을 제압한 솜씨는 우연이라 하기에 너무 멋있고 완벽했다. 선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마워요!”
선아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나 색귀는 사라진 것처럼 대답이 없었다.
그 날 선아는 희정이가 버스에서 치한을 퇴치한 일을 소문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친구들이 사실 여부를 캐물어 귀찮고 당혹스러웠지만 백마 탄 기사님의 보호를 받는 공주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선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책가방을 내려놓고 침상에 앉아 색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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