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전기 20부
(부제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남자의 죽음)
4부 동모산 전투(5)
어둠속에서 혁과 걸걸중상은 당군(唐軍)의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당군의 진영에서 불길이 확! 치솟았다.
혁은 무릎을 탁! 치며 기뻐했다.
"형님! 이진충 장군이 성공했나 봅니다! 이때입니다. 당군이 혼란스러워 할 때 주민들을 데리고 빠져나가십시오!!"
"아우님! 살아서 보세나!!"
"형님........제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십시오. 형님은 반드시 몸을 보중(保重)하십시오!!"
"핫핫핫! 사나이 대장부가 이순(耳順: 60세)이 넘도록 살았으면 한평생 편안하게 산 것이 아니던가!! 무인(武人)은 전장(戰場)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네!! "
혁은 자꾸 걸걸중상이 죽는다죽는다 소리를 하자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꾹 참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걸걸중상이 급히 나가자 혁은 성내의 병사들 중에서 젊고 몸이 날랜 오천을 뽑아서 만든 결사대(決死隊)앞으로 갔다.
병사들은 모두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없이 단상에 오르는 혁을 바라보았다.
"듣거라. 고구려의 형제들아!!! 우리는 이제 죽을 각오로 적진에 뛰어든다!! 우리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의 부모와 형제와 가족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모두들 죽고자하는 마음으로 싸운다! 알겠나!!!!!!"
"충(忠)!!!"
"목소리 작다!! 알겠나~~~~~~~~~~~!!!!!!!!!!!!!!!"
"추~~~~~~~~~~~~~~~~~웅!!!!!!!!!"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자!! 나가자!! 돌격!!!"
"와아!!!!!!!!"
"부모님의 원수를 갚자!!"
"형제들의 원수를 갚자!!"
혁은 천지도를 들고 선두에 서서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어둠속에서 5천의 결사대들은 힘차게 달려서 당의 본진에 도달하였다.
이때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쿠아----앙!!
쾅!! 쾅!! 번쩍!! 쿠콰쾅!!
당의 본진은 대혼란이 일어났다. 적병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다.
그 와중에 혁의 결사대는 당의 본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서 닥치는데로 베고 찌르고 하였다. 적병들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한 채 막사에서 나오다가 모두 칼을 맞고 쓰러졌다.
이해고는 자다가 적의 침입을 알고 속옷도 걸치지 못하고 황급히 막사에서 튀어나왔다.
"여봐라!! 뭐....뭐냐!!"
"전하! 피하십시오. 적의 급습입니다!!"
"무엇이라고!! 경계병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전하! 피하십.......크악!!"
적의 칩입을 알리던 병사가 난전(戰)중에 날아온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이해고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쭈욱...흘렀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어서 짐을 보호하라!! 여봐라!!"
이해고는 답답한 마음에 주위의 병사들을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어둠속에서 혼란에 빠진 군사들은 미쳐 이해고의 명을 채 못들은 듯 우왕좌왕 했다.
"여봐라!! 네 이놈들!! 짐은 대당제국의 황숙이니라! 여봐라!! 크악!!"
이해고도 어디서인지 모르게 날아온 화살을 다리에 맞고 쓰러졌다.
이때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소장 소철이옵니다! 아...아니 이런!!"
"크.....아악.....네이놈! 소철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게냐! 어서 빨리 짐을 보호하라!"
"망극하옵니다! 여봐라! 어서 빨리 황숙전하를 보호하라!"
이해고는 화살을 다리에 맞은 채 급히 달려온 호위군에 의해 실려나갔다.
자다가 급히 무장을 갖추고 달려온 소정방이 이해고에게 말한다.
"전하! 적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파악되지 않았나이다. 그리고....식량창고와 화약창고가 폭발하여 지금 진중에서는 대화염에 휩싸여 있나이다. 잠시 퇴각하심이...."
"크악....아....아파..... 네 이놈들 뭐하는게냐! 어서 빨리 퇴각하라!"
당의 거대한 본진은 화염에 휩싸인 채 우두머리급만 급히 마차에 타고 불타는 본진을 빠져나왔다.
혁은 결사대와 함께 몇 명을 베었는지 모른다. 이마에서 흐르는 핏물을 훔치며 잠시 숨을 골랐다.
어둠속에서도 동녘에서 희붐하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후우.....후우.....이만하면 충분히 시간을 벌었겠지. 자 모두 해가 뜨기전에 퇴각한다!!"
"충(忠)!!!"
오천의 결사대도 피로 뒤범벅된 갑주를 뒤집어쓰고 힘차게 답했다. 이미 병사들은 피맛을 본 듯 희미한 여명속에서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한편! 혁과 결사대가 불타는 당의 진영을 향해 돌격하고난 후 걸걸중상과 소서노는 주민들을 수습하여 급히 성을 빠져나왔다.
"자! 자! 모두들 신속하게 움직인다! 해가 뜨기전에 패수(覇水)를 건너야 한다!
모두들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고 움직여라!!"
주민들은 어둠속에서 꾸역꾸역 끊임없는 긴 행렬을 지은 채 영주성을 빠져나와서 차가운 요동평원의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이동했다.
"엉~~엉~~엄마 나 다리 아퍼요! 추워요! 엉~~엉~~"
이제 채 4살도 안된 계집아이가 차가운 요동성의 새벽바람에 걷다가 풀썩 주저앉아서 투정을 부린다.
"혜(惠)아야! 일어나지 못해! 여기서 주저앉으면 우리모두 다 죽어!"
"엉엉~~~~엄마~~~~나 추워!! 춥단 말이야! 다리도 아퍼서 못걷겠단 말야!! 엉~~~엉~~~"
이때 한 꼬마사내아이가 피난민의 행렬에서 쑥 나서서 혜아를 들쳐업었다.
"읏차! 자! 이젠 다리 안아프지?"
"헤헤......안아퍼. 온 오빠의 등은 정말 너무 따뜻해 헤헤...."
온은 씨익 웃으며 혜아를 들쳐업고 급히 피난민의 행렬에 맞추어서 따라갔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자 이해고는 본대 막사에서 30리 떨어진 곳까지 급히 마차를 이동해서 진영을 정비하였다.
"보고하라! 아군의 피해는 어느정도인가!"
소정방이 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보고하였다.
"아군의 피해는 사망이 10만이고 부상자가 20만이옵니다."
"뭐라!! 크억!"
이해고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가 화살을 맞은 다리의 통증 때문에 도로 털석 주저앉아버렸다.
"소정방! 당장 추격군을 보내라! 적군은 아직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을 터! 기병 5만을 줄터이니 적병을 모조리 죽여버려!!"
이해고는 핏발이 선 채 시뻘건 눈으로 태사의에 앉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존명(尊命)!"
소정방은 기마병 5만을 거느리고 영주성에서 빠져나온 주민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해가 떠오를 때쯤 피난민들은 패수 어귀에 도착하였다.
걸걸중상과 소서노도 지친 기색을 보이며 말에서 내려 급히 선박에 주민들을 태워서 보내기 시작했다.
"휴우.......혁아우님이 성공했나보이. 아직까지 추격군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러게 말입니다. 서방님께서 무사하셔야 할텐데...."
소서노는 불안한 듯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혁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때!
"크핫핫핫!! 네놈들은 이제 가지 못한다!! 여기서 뼈를 묻거라!!"
피난민들이 배를 타는 나루터 주변으로 한때의 기마병이 출현했다!!
걸걸중상은 곧 병사들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헉!! 저놈들은......돌궐의 병사들인데 여기는 어떻게!!"
"크하하! 오래간만이외다! 걸(乞) 대장군!"
"으윽! 네놈은.....돌궐의 묵철왕! 네놈이 여기에 어떻게...."
"당의 무후(측천무후)와 계약을 맺었지. 후후후!"
묵철왕은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피난민들에게로 병사들을 접근시켰다.
다급해진 걸걸중상은 소서노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제수씨! 어서 빨리 피난민들을 마저 태우고 떠나시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아주버님.......저 혼자 어떻게 살아간단 말입니까!"
"다 죽을 작정이오! 어서!! 어서!!"
소서노는 눈물을 흘리며 주민들을 태우고 떠나갔다.
"후후후.....멍청한 이해고 녀석이 이럴줄 알았지! 여기를 지키고 있으면 네놈들이 나타날 줄 알았다 흐흐흐...."
묵철왕은 구릿빛 얼굴에 가늘게 난 염소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걸걸중상에게 느물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걸걸중상은 환두대도를 땅바닥에 탁! 꽂으며 고함질렀다.
"여기서 더 이상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돌아가라!"
"흐흐흐....드디어 네놈의 목을 베게 되는구나.....네놈만 죽이면 강을 건너가는거야 식은죽 먹기지 클클클..."
"묵철왕! 네놈은 선제(先帝: 고구려의 마지막 황제 - 보장황제)께서 살아계실때는 찍소리도 못하고 북쪽에만 있더니 이제 와서 쥐새끼처럼 나타나는구나! 하하하!!"
"크으.......곧 죽을놈이 말이 많구나!!"
"하하하!!! 무인이 전장에서 죽는건 최고의 영예! 네놈이 감히 나의 칼을 받을 용기가 있느냐!!"
"크악!! 이놈.....걸걸중상!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차앗~~~!!"
묵철왕은 낯빛이 변한 채 만월도(滿月刀 :둥글게 휘어진 칼)를 휘두르며 걸걸중상에게 말을 타고 달려들어갔다.
"크하하!! 네놈이 감히 나와 대적하려 하느냐!!"
걸걸중상은 크게 웃으며 묵철왕의 만월도를 가볍게 피하며 환두대도를 휘둘러 묵철왕이 탄 말의 발목을 베어버렸다.
묵철왕은 비명성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곧 정신을 차린 묵철왕은 크게 노하여 만월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걸걸중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걸걸중상은 웃음을 띠며 여유있게 공격을 피하며 묵철왕의 만월도에 맞서갔다.
"크.....이놈 걸걸중상!! 네놈의 실력은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가 않는구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묵철왕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곧 뒤돌아보며 병사들에게 악을 썼다.
"뭐하는 게냐!! 어서 빨리 화살을 쏘아라!!"
곧 걸걸중상의 주위로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그러나 걸걸중상은 대도로 화살비를 여유있게 막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쥐새끼 같은놈!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냐!!"
묵철왕은 수치로 얼굴이 벌개진 채 병사들에게 악을 써댔다.
"뭐하는 게냐! 전군은 돌격하라!! 저 늙은놈을 베어버리란 말이다!!"
곧 돌궐의 병사들이 걸걸중상을 에워싸면서 달려들었다. 걸걸중상은 닥치는대로 베고 베고 또 베면서 속으로 안타깝게 외쳤다.
"아우님!!! 뭐하는게요!!! 빨리 와주시오!!"
피융~~~!!
한참을 돌궐의 병사들을 베던 걸걸중상의 다리위로 화살이 푹! 박혔다.
"크윽!"
걸걸중상의 신형이 휘청하면서 무릎이 꺾였다.
돌궐 병사들이 환호성이 지르면서 화살비가 새까맣게 걸걸중상을 향해 쏟아졌다.
걸걸중상은 성난 호랑이처럼 환두대도를 휘두르며 돌궐 병사들의 진영으로 뛰어들어서 닥치는 대로 마구마구 베어버렸다.
그러나 곧 파앗!! 파공성과 함께 걸걸중상의 팔에도 화살이 꽃혔다.
"크윽!!"
걸걸중상은 치밀어오르는 비명성을 속으로 삼키며 화살을 쏜 병사들의 진영으로 뛰어들어갔다.
파앗!! 파앗!! 파앗!!
비가 쏟아지듯이 화살이 하늘에서 아지면서 한발이 걸걸중상의 목을 관통하였다.
"크악!!"
걸걸중상의 입에서 참았던 비명성이 쏟아지면서 한쪽 무릎이 푹 꺾였다.
"늙은 놈이 화살에 맞았다!! 자 더 쏘아라!! 더!! 더!!"
묵철왕은 더욱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화살을 퍼부었다.
"고구려의 대장군 걸걸중상 오늘 여기서 하늘을 바라보노라!! 크하하!!!"
곧 걸걸중상의 몸위로 새까맣개 화살이 박히며 걸걸중상의 몸이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돌궐의 병사들도 걸걸중상의 놀라운 무위에 질린 듯 걸걸중상이 죽고나서도 한참을 머뭇머뭇하다가 조심스럽게 칼을 들고 걸걸중상에게 다가와서 칼로 등을 푹 찔렀다.
스르르 걸걸중상의 몸이 허물어지면서 땅에 쓰러지자 돌궐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휴우......지독한 놈이구나! 마지막까지 죽어가면서도 우리 병사들을 베다니...."
묵철왕도 걸걸중상의 투혼에 질린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배를 타고 패수를 건너던 주민들은 걸걸중상이 화살을 맞자 뱃전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묵철왕은 급히 말을 타고 패수를 건너다가 곧 불가능함을 깨닫고 멀어져가는 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곧 비오듯 화살비가 쏟아지고 여기저기서 화살에 맞아서 강으로 떨어지는 주민들이 속출하였다.
푸욱!
공교롭게도 온의 등에 업혀서 강을 건너던 혜아의 다리에 화살이 꽃혀버렸다.
혜아는 비명을 지르며 강물위로 떨어졌다.
"아악!! 혜아야!! 혜아야!! 으아악~~~!!!"
뱃전에서 딸이 화살에 맞고 강물에 떨어진 것을 본 혜아의 어머니는 미친 듯이 강물로 뛰어들려고 하다가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이를 어쩌나!! 어린애가 강물에 빠졌다!!"
사람들은 안타까운 듯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때 뱃머리에서 걸루아가 벌떡 일어나서 강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아악!! 루아야!! 안되!!"
소서노는 강물에 뛰어드는 걸루아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나 걸루아는 강속으로 깊이 잠수하여 화살을 맞고 기절한 혜아를 건져서 뱃전에 올려주고 자신도 배에 오르려 하였다.
이때!!
파----악!! 아악!!!
화살하나가 걸루아의 허벅지에 정통으로 꽃히고 걸루아는 비명성을 지르며 강물로 떨어져버렸다.
"아악!! 루아야!!! 루아야!!! 루아야!!"
소서노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강물로 뛰어들려 하다가 자신의 팔을 붙잡는 억센 힘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
한 젊은 병사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소서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되오!! 추장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는 어떡하란 말이오!!"
"안되!! 내딸이 강에 빠졌단 말야!!"
"짜-----------악!!!"
병사는 말없이 손을 들어서 미친 듯이 발악하는 소서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당신은 우리의 지도자시오!! 이 배에 타고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모형제자식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오! 무책임하게 당신이 강물로 뛰어든다면 우리는 곧 당의 추격군에게 사로잡혀 모두 죽을 것이오!! 정신 차리시오!!"
"아악~~~~~!! 루아야!! 흑흑......."
소서노는 온통 머리가 헝클어진 채 난간을 잡고 강물을 바라보며 쉴새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루아야!! 루아야!! 미안해!! 미안해!! 이 어미를 용서해다오!! 미안해 미안해!! 아악~~~!!!"
소서노는 미친 듯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다가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부제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남자의 죽음)
4부 동모산 전투(5)
어둠속에서 혁과 걸걸중상은 당군(唐軍)의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당군의 진영에서 불길이 확! 치솟았다.
혁은 무릎을 탁! 치며 기뻐했다.
"형님! 이진충 장군이 성공했나 봅니다! 이때입니다. 당군이 혼란스러워 할 때 주민들을 데리고 빠져나가십시오!!"
"아우님! 살아서 보세나!!"
"형님........제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십시오. 형님은 반드시 몸을 보중(保重)하십시오!!"
"핫핫핫! 사나이 대장부가 이순(耳順: 60세)이 넘도록 살았으면 한평생 편안하게 산 것이 아니던가!! 무인(武人)은 전장(戰場)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네!! "
혁은 자꾸 걸걸중상이 죽는다죽는다 소리를 하자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꾹 참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걸걸중상이 급히 나가자 혁은 성내의 병사들 중에서 젊고 몸이 날랜 오천을 뽑아서 만든 결사대(決死隊)앞으로 갔다.
병사들은 모두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없이 단상에 오르는 혁을 바라보았다.
"듣거라. 고구려의 형제들아!!! 우리는 이제 죽을 각오로 적진에 뛰어든다!! 우리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의 부모와 형제와 가족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모두들 죽고자하는 마음으로 싸운다! 알겠나!!!!!!"
"충(忠)!!!"
"목소리 작다!! 알겠나~~~~~~~~~~~!!!!!!!!!!!!!!!"
"추~~~~~~~~~~~~~~~~~웅!!!!!!!!!"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자!! 나가자!! 돌격!!!"
"와아!!!!!!!!"
"부모님의 원수를 갚자!!"
"형제들의 원수를 갚자!!"
혁은 천지도를 들고 선두에 서서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어둠속에서 5천의 결사대들은 힘차게 달려서 당의 본진에 도달하였다.
이때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쿠아----앙!!
쾅!! 쾅!! 번쩍!! 쿠콰쾅!!
당의 본진은 대혼란이 일어났다. 적병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다.
그 와중에 혁의 결사대는 당의 본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서 닥치는데로 베고 찌르고 하였다. 적병들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한 채 막사에서 나오다가 모두 칼을 맞고 쓰러졌다.
이해고는 자다가 적의 침입을 알고 속옷도 걸치지 못하고 황급히 막사에서 튀어나왔다.
"여봐라!! 뭐....뭐냐!!"
"전하! 피하십시오. 적의 급습입니다!!"
"무엇이라고!! 경계병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전하! 피하십.......크악!!"
적의 칩입을 알리던 병사가 난전(戰)중에 날아온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이해고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쭈욱...흘렀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어서 짐을 보호하라!! 여봐라!!"
이해고는 답답한 마음에 주위의 병사들을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어둠속에서 혼란에 빠진 군사들은 미쳐 이해고의 명을 채 못들은 듯 우왕좌왕 했다.
"여봐라!! 네 이놈들!! 짐은 대당제국의 황숙이니라! 여봐라!! 크악!!"
이해고도 어디서인지 모르게 날아온 화살을 다리에 맞고 쓰러졌다.
이때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소장 소철이옵니다! 아...아니 이런!!"
"크.....아악.....네이놈! 소철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게냐! 어서 빨리 짐을 보호하라!"
"망극하옵니다! 여봐라! 어서 빨리 황숙전하를 보호하라!"
이해고는 화살을 다리에 맞은 채 급히 달려온 호위군에 의해 실려나갔다.
자다가 급히 무장을 갖추고 달려온 소정방이 이해고에게 말한다.
"전하! 적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파악되지 않았나이다. 그리고....식량창고와 화약창고가 폭발하여 지금 진중에서는 대화염에 휩싸여 있나이다. 잠시 퇴각하심이...."
"크악....아....아파..... 네 이놈들 뭐하는게냐! 어서 빨리 퇴각하라!"
당의 거대한 본진은 화염에 휩싸인 채 우두머리급만 급히 마차에 타고 불타는 본진을 빠져나왔다.
혁은 결사대와 함께 몇 명을 베었는지 모른다. 이마에서 흐르는 핏물을 훔치며 잠시 숨을 골랐다.
어둠속에서도 동녘에서 희붐하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후우.....후우.....이만하면 충분히 시간을 벌었겠지. 자 모두 해가 뜨기전에 퇴각한다!!"
"충(忠)!!!"
오천의 결사대도 피로 뒤범벅된 갑주를 뒤집어쓰고 힘차게 답했다. 이미 병사들은 피맛을 본 듯 희미한 여명속에서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한편! 혁과 결사대가 불타는 당의 진영을 향해 돌격하고난 후 걸걸중상과 소서노는 주민들을 수습하여 급히 성을 빠져나왔다.
"자! 자! 모두들 신속하게 움직인다! 해가 뜨기전에 패수(覇水)를 건너야 한다!
모두들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고 움직여라!!"
주민들은 어둠속에서 꾸역꾸역 끊임없는 긴 행렬을 지은 채 영주성을 빠져나와서 차가운 요동평원의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이동했다.
"엉~~엉~~엄마 나 다리 아퍼요! 추워요! 엉~~엉~~"
이제 채 4살도 안된 계집아이가 차가운 요동성의 새벽바람에 걷다가 풀썩 주저앉아서 투정을 부린다.
"혜(惠)아야! 일어나지 못해! 여기서 주저앉으면 우리모두 다 죽어!"
"엉엉~~~~엄마~~~~나 추워!! 춥단 말이야! 다리도 아퍼서 못걷겠단 말야!! 엉~~~엉~~~"
이때 한 꼬마사내아이가 피난민의 행렬에서 쑥 나서서 혜아를 들쳐업었다.
"읏차! 자! 이젠 다리 안아프지?"
"헤헤......안아퍼. 온 오빠의 등은 정말 너무 따뜻해 헤헤...."
온은 씨익 웃으며 혜아를 들쳐업고 급히 피난민의 행렬에 맞추어서 따라갔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자 이해고는 본대 막사에서 30리 떨어진 곳까지 급히 마차를 이동해서 진영을 정비하였다.
"보고하라! 아군의 피해는 어느정도인가!"
소정방이 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보고하였다.
"아군의 피해는 사망이 10만이고 부상자가 20만이옵니다."
"뭐라!! 크억!"
이해고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가 화살을 맞은 다리의 통증 때문에 도로 털석 주저앉아버렸다.
"소정방! 당장 추격군을 보내라! 적군은 아직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을 터! 기병 5만을 줄터이니 적병을 모조리 죽여버려!!"
이해고는 핏발이 선 채 시뻘건 눈으로 태사의에 앉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존명(尊命)!"
소정방은 기마병 5만을 거느리고 영주성에서 빠져나온 주민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해가 떠오를 때쯤 피난민들은 패수 어귀에 도착하였다.
걸걸중상과 소서노도 지친 기색을 보이며 말에서 내려 급히 선박에 주민들을 태워서 보내기 시작했다.
"휴우.......혁아우님이 성공했나보이. 아직까지 추격군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러게 말입니다. 서방님께서 무사하셔야 할텐데...."
소서노는 불안한 듯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혁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때!
"크핫핫핫!! 네놈들은 이제 가지 못한다!! 여기서 뼈를 묻거라!!"
피난민들이 배를 타는 나루터 주변으로 한때의 기마병이 출현했다!!
걸걸중상은 곧 병사들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헉!! 저놈들은......돌궐의 병사들인데 여기는 어떻게!!"
"크하하! 오래간만이외다! 걸(乞) 대장군!"
"으윽! 네놈은.....돌궐의 묵철왕! 네놈이 여기에 어떻게...."
"당의 무후(측천무후)와 계약을 맺었지. 후후후!"
묵철왕은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피난민들에게로 병사들을 접근시켰다.
다급해진 걸걸중상은 소서노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제수씨! 어서 빨리 피난민들을 마저 태우고 떠나시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아주버님.......저 혼자 어떻게 살아간단 말입니까!"
"다 죽을 작정이오! 어서!! 어서!!"
소서노는 눈물을 흘리며 주민들을 태우고 떠나갔다.
"후후후.....멍청한 이해고 녀석이 이럴줄 알았지! 여기를 지키고 있으면 네놈들이 나타날 줄 알았다 흐흐흐...."
묵철왕은 구릿빛 얼굴에 가늘게 난 염소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걸걸중상에게 느물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걸걸중상은 환두대도를 땅바닥에 탁! 꽂으며 고함질렀다.
"여기서 더 이상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돌아가라!"
"흐흐흐....드디어 네놈의 목을 베게 되는구나.....네놈만 죽이면 강을 건너가는거야 식은죽 먹기지 클클클..."
"묵철왕! 네놈은 선제(先帝: 고구려의 마지막 황제 - 보장황제)께서 살아계실때는 찍소리도 못하고 북쪽에만 있더니 이제 와서 쥐새끼처럼 나타나는구나! 하하하!!"
"크으.......곧 죽을놈이 말이 많구나!!"
"하하하!!! 무인이 전장에서 죽는건 최고의 영예! 네놈이 감히 나의 칼을 받을 용기가 있느냐!!"
"크악!! 이놈.....걸걸중상!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차앗~~~!!"
묵철왕은 낯빛이 변한 채 만월도(滿月刀 :둥글게 휘어진 칼)를 휘두르며 걸걸중상에게 말을 타고 달려들어갔다.
"크하하!! 네놈이 감히 나와 대적하려 하느냐!!"
걸걸중상은 크게 웃으며 묵철왕의 만월도를 가볍게 피하며 환두대도를 휘둘러 묵철왕이 탄 말의 발목을 베어버렸다.
묵철왕은 비명성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곧 정신을 차린 묵철왕은 크게 노하여 만월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걸걸중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걸걸중상은 웃음을 띠며 여유있게 공격을 피하며 묵철왕의 만월도에 맞서갔다.
"크.....이놈 걸걸중상!! 네놈의 실력은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가 않는구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묵철왕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곧 뒤돌아보며 병사들에게 악을 썼다.
"뭐하는 게냐!! 어서 빨리 화살을 쏘아라!!"
곧 걸걸중상의 주위로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그러나 걸걸중상은 대도로 화살비를 여유있게 막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쥐새끼 같은놈!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냐!!"
묵철왕은 수치로 얼굴이 벌개진 채 병사들에게 악을 써댔다.
"뭐하는 게냐! 전군은 돌격하라!! 저 늙은놈을 베어버리란 말이다!!"
곧 돌궐의 병사들이 걸걸중상을 에워싸면서 달려들었다. 걸걸중상은 닥치는대로 베고 베고 또 베면서 속으로 안타깝게 외쳤다.
"아우님!!! 뭐하는게요!!! 빨리 와주시오!!"
피융~~~!!
한참을 돌궐의 병사들을 베던 걸걸중상의 다리위로 화살이 푹! 박혔다.
"크윽!"
걸걸중상의 신형이 휘청하면서 무릎이 꺾였다.
돌궐 병사들이 환호성이 지르면서 화살비가 새까맣게 걸걸중상을 향해 쏟아졌다.
걸걸중상은 성난 호랑이처럼 환두대도를 휘두르며 돌궐 병사들의 진영으로 뛰어들어서 닥치는 대로 마구마구 베어버렸다.
그러나 곧 파앗!! 파공성과 함께 걸걸중상의 팔에도 화살이 꽃혔다.
"크윽!!"
걸걸중상은 치밀어오르는 비명성을 속으로 삼키며 화살을 쏜 병사들의 진영으로 뛰어들어갔다.
파앗!! 파앗!! 파앗!!
비가 쏟아지듯이 화살이 하늘에서 아지면서 한발이 걸걸중상의 목을 관통하였다.
"크악!!"
걸걸중상의 입에서 참았던 비명성이 쏟아지면서 한쪽 무릎이 푹 꺾였다.
"늙은 놈이 화살에 맞았다!! 자 더 쏘아라!! 더!! 더!!"
묵철왕은 더욱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화살을 퍼부었다.
"고구려의 대장군 걸걸중상 오늘 여기서 하늘을 바라보노라!! 크하하!!!"
곧 걸걸중상의 몸위로 새까맣개 화살이 박히며 걸걸중상의 몸이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돌궐의 병사들도 걸걸중상의 놀라운 무위에 질린 듯 걸걸중상이 죽고나서도 한참을 머뭇머뭇하다가 조심스럽게 칼을 들고 걸걸중상에게 다가와서 칼로 등을 푹 찔렀다.
스르르 걸걸중상의 몸이 허물어지면서 땅에 쓰러지자 돌궐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휴우......지독한 놈이구나! 마지막까지 죽어가면서도 우리 병사들을 베다니...."
묵철왕도 걸걸중상의 투혼에 질린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배를 타고 패수를 건너던 주민들은 걸걸중상이 화살을 맞자 뱃전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묵철왕은 급히 말을 타고 패수를 건너다가 곧 불가능함을 깨닫고 멀어져가는 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곧 비오듯 화살비가 쏟아지고 여기저기서 화살에 맞아서 강으로 떨어지는 주민들이 속출하였다.
푸욱!
공교롭게도 온의 등에 업혀서 강을 건너던 혜아의 다리에 화살이 꽃혀버렸다.
혜아는 비명을 지르며 강물위로 떨어졌다.
"아악!! 혜아야!! 혜아야!! 으아악~~~!!!"
뱃전에서 딸이 화살에 맞고 강물에 떨어진 것을 본 혜아의 어머니는 미친 듯이 강물로 뛰어들려고 하다가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이를 어쩌나!! 어린애가 강물에 빠졌다!!"
사람들은 안타까운 듯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때 뱃머리에서 걸루아가 벌떡 일어나서 강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아악!! 루아야!! 안되!!"
소서노는 강물에 뛰어드는 걸루아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나 걸루아는 강속으로 깊이 잠수하여 화살을 맞고 기절한 혜아를 건져서 뱃전에 올려주고 자신도 배에 오르려 하였다.
이때!!
파----악!! 아악!!!
화살하나가 걸루아의 허벅지에 정통으로 꽃히고 걸루아는 비명성을 지르며 강물로 떨어져버렸다.
"아악!! 루아야!!! 루아야!!! 루아야!!"
소서노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강물로 뛰어들려 하다가 자신의 팔을 붙잡는 억센 힘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
한 젊은 병사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소서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되오!! 추장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는 어떡하란 말이오!!"
"안되!! 내딸이 강에 빠졌단 말야!!"
"짜-----------악!!!"
병사는 말없이 손을 들어서 미친 듯이 발악하는 소서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당신은 우리의 지도자시오!! 이 배에 타고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모형제자식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오! 무책임하게 당신이 강물로 뛰어든다면 우리는 곧 당의 추격군에게 사로잡혀 모두 죽을 것이오!! 정신 차리시오!!"
"아악~~~~~!! 루아야!! 흑흑......."
소서노는 온통 머리가 헝클어진 채 난간을 잡고 강물을 바라보며 쉴새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루아야!! 루아야!! 미안해!! 미안해!! 이 어미를 용서해다오!! 미안해 미안해!! 아악~~~!!!"
소서노는 미친 듯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다가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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