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어... 마리엔.”
맞은 편에서 벽을 짚은 채 힘겹게 걸어오는 하녀에게 칸피니스는 기쁜 표정으로 아는 체를 한다.
“아, 칸피니스님!”
어딘가 몹시 불편한 듯 어기적거리던 하녀는 칸피니스의 부름에 급히 벽에서 손을 때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여 보인다. 자기 앞에서는 얼마든지 편한 자세로 있어도 좋다고 칸피니스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결코 고쳐지지 않는 철저한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본능같은 움직임이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칸피니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어디 아파?”
하지만 마리엔의 경직된 자세에 대한 불만은 그녀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금방 사라져버린다. 창백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으로 무슨 편한 자세이고 자유로운 태도란 말인가?
“에... 그게...”
나름대로 다정스레 묻는데도 처음 얼굴을 찌푸린 영향인지 마리엔은 얼굴을 굳히며 대답을 주저한다.
“겁내지 말고 얘기해봐. 어디 심각하게 아픈거야? 아프면 의사를 불러줄 수도 있는데...”
최대한 얼굴을 풀고 부드럽게 묻고 있음에도 마리엔은 얼굴만 붉힐 뿐 여전히 대답을 않는다. 칸피니스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을 보아하니 무언가 굉장히 꺼려지는 내용인 모양이다. 칸피니스는 더욱 부드럽게 묻는다.
“괜찮아. 나한테 얘기해도... 나라구. 나 칸피니스. 하녀들의 연인. 마음 놓고 얘기해봐.”
“풋...”
땀으로 번들거리는 붉은 얼굴로 마리엔은 하녀들의 연인이라는 말에 끝내 웃음을 터뜨린다. 칸피니스의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 말을 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스웠던 것이다.
“그래. 그렇게 마음 풀고 얘기해봐. 무슨 일이야? 누구한테 맞았어?”
“아... 아니 그게...”
분명 표정은 많이 풀려있음에도 마리엔은 여전히 말을 꺼내기를 주저한다.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할 수 없어하는 것이 역력하다.
“뭐야? 말해봐. 나한테 못할 말이 어딨어? 그냥 편하게 말해봐.”
“그... 그게...”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집요하게 다그치자 끝내 그녀의 입에서 무언가 나오려고 한다. 여전히 걸리는 것이 있는 듯 나오다 마는 것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뭐야? 답답하게 굴지 말고. 안 그럼 오늘 안 안아준다.”
“에?”
무슨 말을 잘못한 것일까? 오히려 그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다.
“아니, 정정. 말 안하면 오늘 밤에 침실로 쳐들어갈거야!”
“엑!!”
정확히 짚은 모양이다. 얼굴이 파랗게 굳어버리는 것이 마치 공갈협박을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이다. 자신이 쳐들어간다는 말에 저리 질려하는 모습이 칸피니스를 아프게 한다.
“침실로 쳐들어가기 전에 어서 얘기해. 안그럼 진짜 쳐들어가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테니까.”
상처받은 건 상처받은 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이제 고지가 코앞인데 작은 상처 따위로 좌절할 수 없다.
“그... 그게...”
“어허! 어서!”
“그... 그게... 어제... 칸... 피니스님이...”
“에? 내가?”
그러고보니 기억난다. 어제 칸피니스는 마리엔을 그녀의 친구인 모나와 함께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였었다. 그리고 뜨거운 밤을 보냈었는데...“
“그런데 그거 하고 지금 그 모습하고 무슨 관계?”
“그... 그게... 저기...”
얼굴을 붉힌 채 고기를 푹 수그린 그녀의 손이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쓰다듬는다.
“여... 여기가...”
“여기?
하지만 칸피니스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녀는 울쌍을 지으며 손을 더욱 움직여 자신의 엉덩이 계곡 위에 얹는다.
“여기... 그게...”
“아하!”
이제야 감이 잡히는 모양이다. 칸피니스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싱글벙글 장난기어린 웃음이 감돌기 시작한다.
“아아... 거기... 그거구나...”
“에... 예...”
부끄러움에 목덜미까지 발갛게 물든 것이 귀여워보인다. 그 발갛게 물든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기에 더욱 귀엽다.
“흐흐흐... 그냥 이 자리에서 안아버리고 싶다.”
“엑? 그게...”
마리엔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칸피니스의 얼굴에 띄워진 장난기가 더욱 짙어진다. 난처해하는 여자를 보면 우선 놀려주고 싶어지는 것이 역시 소년의 본능인 모양이다. 뭐니뭐니해도 아직 칸피니스는 열 다섯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 아닌가.
“그만하세요. 칸피니스님.”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챈 것일까. 그를 어머니 에렌프의 처소로 안내하던 하녀 린네가 그를 제지한다.
“괜히 하녀아이 놀리면서 허비할 시간 없습니다. 어서 가보셔야 합니다.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엄격한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장난을 그만두어주었으면 하는 모양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엔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칸피니스는 이쯤에서 장난늘 거두기로 한다.
“알았어.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참 그전에...”
“예?”
안도의 표정을 짓고있던 린네는 칸피니스가 말을 덧붙여오자 무슨 말인가 얼굴을 굳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보인다.
“마리엔은 오늘 하루 쉬도록 하는게 나을 것 같아. 몸이 많이 안좋은 모양이거든. 린네가 하녀장에게 말해줄 수 있겠지?”
“아, 예... 그런거라면...”
칸피니스의 말이 의외였는지 린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놀란 것은 린네만이 아니다. 옆에서 칸피니스의 말을 관심있게 듣고있던 마리엔의 표정도 놀라움으로 힘없이 풀어져내린다.
“마리엔,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어. 오늘이래봐야 몇 시간 안남았지만 그래도 일찍 들어가 쉬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겠지. 정 안되겠다 싶으면 내일 하루도 쉬도록 하고. 만일 안된다 그러면 내 방으로 찾아와. 내 방 침대를 빌려줄테니까.”
“저... 저기...”
“왜? 부족한가?”
“아... 아니... 그... 그게...”
부족할 리 없다. 넘쳐서 문제이지 부족할 리 없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아픔 때문에 하루종일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며 하녀로서의 일을 해야 했던 마리엔이다. 그나마 하녀로서 받는 급료가 땅을 갈며 근근히 생활하는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에 아프다는 말조차 못하고 보낸 하루였다. 그런데 오늘과 내일 쉬어도 된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의 주인인 귀족의 자제 칸피니스가. 천성이 농노인 마리엔의 표정은 어느새 감격으로 한껏 일그러진다.
“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긴... 다 나때문인걸. 내가 먼저 신경써주었어야 했는데 무심했네.”
“예... 그게...”
고마워하다가도 저리 직설적으로 말하니 난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말 어쩌면 저리도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마리엔의 얼굴이 타오르듯 붉게 물든다.
“어쨌든 오늘하고 내일 푹 쉬도록 해. 그리고 모레... 나한테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검사받으러 오도록 하고.”
“에?”
“왜? 아픈 이유는 내가 잘 아니까 치료되었는지 여부도 내가 검사하는 게 당연하잖아? 안그래?”
“그... 그렇지만...”
“그럼 이만 들어가 쉬어. 나는 지금 볼 일이 있으니까 이만 가봐야겠다.”
“하... 하지만...”
상당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고는 있지만 결코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꽤나 기꺼워하며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차마 반가워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아픔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칸피니스는 히죽 웃어보인다. 왜 그러는지 다 안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니다.
“걱정마. 그쪽으로는 안할테니까. 나도 그렇게까지 짐승은 아니라구.”
“에...? 그... 그게...”
“알아, 무얼 걱정하는지. 정 그렇게 걱정되면 마리사나 모나에게 물어보도록 해. 그녀들은 너보다 선배이니 잘 가르쳐줄거야.”
“예... 예...”
“그럼 그날 보도록 하자구. 내가 부르지 않아도 네가 알아서 찾아오도록 해.”
“예...”
“혼자 오기 무서우면 다른 아이랑 같이 와도 되고. 알았지? 모레 보자.”
“예...‘
“그럼 몸조리 잘해.”
마리엔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인 칸피니스는 고개를 돌려 린네를 향한다. 지금껏 그와 마리엔의 대화를 들으며 곤혹스러움인지 놀라움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자신에게로 맞춰오는 칸피니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원래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럼, 마리엔. 모레... 기대하라구.”
“예... 칸피니스님...”
기어들어갈 듯 작은 목소리가 한껏 붉힌 얼굴로 푹 수그린 그녀의 고개 아래에서 들려온다. 당혹스러움에 아래로 기대와 기쁨의 떨림이 묻어난다. 칸피니스는 더욱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저... 칸피니스님...”
마리엔과 헤어져 한참을 걸어가는데 린네가 머뭇거리며 칸피니스를 부른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참고 있는 것이 역력한 모습이다.
“왜?”
“마... 리엔... 요...”
“음? 마리엔이 왜?”
“그게...”
“...???”
말은 꺼냈지만 역시 말을 잇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계속 말을 하려는 듯 하면서도 끝내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녀가 편히 말할 수 있기를 기다릴 뿐이다.
“저기... 마리엔이 아픈게...”
“음?”
“거기... 그러니까...”
“아하...”
대충 알 것 같다.
“저기... 칸... 피니스... 님이...”
“응. 맞아.”
“그... 그게... 그쪽으로도...?”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
“응. 리넨은 한 번도 안해봤지?”
“엑?”
“아직 안 해봤잖아?”
“저... 저도... 해야... 하는건가... 요?”
얼굴을 보아하니 무서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써부터 그 아픔을 떠올리는 듯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 얼굴이 안쓰러워보인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그 정도에 흔들리지 않는다.
“왜? 싫어?”
“그... 그게...”
“진짜 싫은거야?”
“아... 아니... 그...”
칸피니스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니 리넨은 어쩔줄 몰라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분명 싫은 일임에도 칸피니스가 저리 실망하고 있으니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싫은 일이라 하더라도 칸피니스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는 끔찍한 갈등에 휩싸인다.
“하... 하지만... 그... 그게... 그게... 어떻게 엉덩이로...”
“하지만 가능한걸?”
“그... 마리엔은...? 그렇게 아픈데...?”
“아플까봐 무서워?”
“... 예...”
울쌍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진짜 무서운 모양이다. 어느새 엉덩이로 돌아간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옷 위로 느껴질 정도다.
“카... 칸피니스님의 자지는... 저... 너무... 크니까... 그게... 너무 커서... 어떻게 이쪽으로... 이 작은 항문으로... 그게...”
눈이 흘끗 칸피니스의 사타구니를 향하는 것을 보니 칸피니스의 자지 크기를 가늠해보는 모양이다. 그녀의 손에 잡히던, 입안과 보지 속을 가득 채우던 그 느낌이 항문으로 들어온다 생각하니 절로 소름이 돋는 지 가볍게 그녀의 몸이 떨린다.
“훗... 그렇게 무서워?”
“에? 예...”
“안 무섭게 해줄게.”
“예?”
“안 무섭게 해준다고. 아프지도 않게. 최대한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줄게.”
“그... 그게...”
역시 칸피니스. 빈말로라도 하지 않겠다는 말은 결코 않는다. 어느때라도 색마의 본분을 절대 잊지 않는 색마의 모범이다.
“음... 그래. 오늘 밤이 좋겠다. 어때? 오늘밤?”
“오... 오늘밤요?”
“그래. 오늘밤. 슬라임은 한 입에 삼키랬다고 오늘 말 나온 김에 리넨의 항문 첫경험을 하는거야. 내가 오늘 특별히 서비스해 주지.”
“오... 오늘요...?”
리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다. 공포와 절망, 고통이 어우러진 보는 것만으로도 처참해지는 그런 모습이다. 안쓰러움에 칸피니스는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안는다.
“걱정마. 애무도 충분히 해줄거고,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기술을 발휘할테니까. 며칠 움직이는 데 지장이야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거야. 믿으라구. 나 칸피니스의 말이니까.”
“예... 예...”
굳어있던 근육이 힘없이 풀어지는 것이 끌어안은 팔 너머로 느껴진다. 탄력없이 늘어진 것으로 보아 안심해서가 아니라 체념한 때문인 듯 하다.
“오늘밤에 내 방으로 오라구. 아님 내가 네 방으로 갈까? 린네는 캐시랑 방을 같이 쓰지? 캐시랑 같이 하면 되겠다. 캐시가 경험이 있으니까 네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줄 수 있을거야.”
“엑? 캐... 캐시도...?”
칸피니스의 입에서 룸메이트 캐서린의 애칭이 나오자 체념으로 풀어졌던 그녀의 몸이 다시 바싹 긴장한다.
“응. 몰랐어? 한 두어달 됐는데.”
“그... 그게... 그게 그럼...”
“뭔진 모르지만 네 짐작이 맞을거야. 캐시도 무척 아파했었으니까.”
“으으...”
“어쨌든 있다 네 방으로 찾아갈테니까 캐시한테도 미리 말해놔. 아마 캐시도 좋아할거야.”
“하... 하지만...”
“아니다. 지금 네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어머니와의 일이 끝나면 바로 네게 갈테니까. 오늘밤 어머니 시중은 마리사에게 대신 맡기도록 하고. 내가 시켰다고 하고 내일 하루 쉬게 해준다고 하면 마리사가 들어줄거야.”
“에...?”
리넨은 뭐라 말을 꺼내려 애써보지만 칸피니스의 기쁨에 들뜬 눈빛에 그만 머뭇거리고 만다. 저토록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할 수 없다고 말하기엔 리넨의 마음이 너무도 여린 때문이다.
“알았지? 지금 가서 마리사에게 말해놔. 그리고 캐시한테 말해서 오늘 밤을 위한 준비를 해두도록 하고. 일단 사전준비가 있으면 좋은거니까.”
“사... 전준비요?”
“그래. 캐시에게 물어보면 가르쳐줄거야.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예에...”
리넨은 결국 칸피니스의 반짝반짝 눈빛 공격에 굴복하고 만다. 아무리 항문섹스가 무서워도 칸피니스의 저리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거부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럼 먼저 가 있어. 나는 혼자서 어머니께 갈테니까.”
“저어... 칸피니스님...”
“왜?”
칸피니스가 혼자 어머니께 간다는 말에 리넨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여전히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이다.
“아... 아니에요.”
“그래?”
무언가 말하려다가 다시 집어넣는 리넨에게 칸피니스는 심드렁하니 대꾸한다. 조금전까지 즐겁기만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거리감이 느껴지는 냉정한 모습이다.
“뭔 생각하는지 알겠어. 네 생각이 맞아. 맞으니까 다른 생각 말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난 여자에게만큼은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니까. 그건 너도 알고 있겠지?”
“예? 예에...”
그의 생경한 표정에 주눅든 탓일까? 리넨의 몸과 말이 그의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든다.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지금부터 네가 생각해야 할 일은 오늘밤 있을 나와의 섹스야.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해야 해. 다른 일은 관심을 가져서도, 떠올려서도 안돼. 당연히 말을 해서도 안되겠지? 알겠어?”
“예...”
“그럼 됐어. 가봐. 내가 한 말 결코 잊어서는 안돼.”
“아... 알겠습니다. 칸피니스님.”
“그럼 나중에 보자구.”
“예에...”
조금전까지의 다정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처음 보는 사람인 듯한 생경함이 차가운 살기와 함께 리넨에게로 다가온다. 몇 번이나 멀리서 보았던 그 잔폭한 광기 속에 냉정하고 돌아서는 칸피니스의 단단한 등은 마치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높고 두터운 성벽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오늘밤에 보자구.”
다시 들려오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 어느새 그의 몸을 휘감던 잔혹하고 광기어린 살기는 씻은 듯 사라져있다. 그의 단단한 등은 달려가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다정하고 육감적이다. 조금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이다. 어느새 리넨의 몸이 차갑게 굳는다.
“흠흠... 오늘밤... 흠흠... 오늘밤... 흠흠... 한 소녀가... 흠흠... 뒤쪽의 작은 구멍으로... 흠흠... 그 핑크빛 주름으로... 흠흠... 항상 무언가를 내놓던 그 곳으로... 흠흠... 커다라고 단단한 것을... 흠흠... 나의 훌륭한 그것을... 흠흠... 처음으로... 흠흠... 깊이 받아들이고... 흠흠...”
평소라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채 칸피니스를 비난의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했을 음란한 장난기가 섞인 노랫소리에도 리넨의 굳어진 표정은 풀어질 줄 모른다. 그에게서 느꼈던 그 공포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그 다정하고 따뜻한 등은 냉정하게 그녀로부터 멀어진다. 한 번도 돌아보는 일 없이, 한 번도 머뭇거리는 일 없이, 에일 정도로 따뜻함만을 뿌리며 그는 복도 저편, 그녀가 알고 있는 곳으로 멀어져간다.
그가 떠난 곳, 여전히 굳어있는 린네만이 서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얼굴 근육도 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리는 새어나오지 않는다. 억눌린 숨소리만이 침묵속에 조용히 흩어질 뿐이다.
똑똑--
“리넨이니?”
노크 소리에 맑고 앳띤 목소리가 제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억양으로 대답해온다. 약간 끌리는 듯, 콧소리가 섞인 마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다.
“접니다.”
“칸피니스? 칸피니스니?”
“예. 부르셨다구요?”
“그래. 내가 불렀어. 아아... 어서... 어서 들어와라... 어서 들어와. 나의 아들... 나의 칸피니스.”
달칵--!
“칸피니스!!”
문이 열리자 달려들어 안아오듯 그녀의 목소리가 그를 반긴다. 물론 목소리만이다. 문 근처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저 멀리 꽤 넓은 방의 맞은 편 창가에서 들려오고 있다.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에도 그녀는 창가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어딘지 모르는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다. 아들이 들어오는 것이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선이나 동작이 따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공허하기만 하다.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하지만 칸피니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언제나처럼 그녀가 볼 수 없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갈 뿐이다. 새삼 놀라거나 어색해하기엔 너무 익숙한 일상인 때문이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짙은 피부빛은 칸피니스가 어머니 에렌프를 닮은 것이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동안도, 큰 키에 늘씬한 몸매도 모두 에렌프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마치 단성생식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칸피니스와 너무도 닮아있다.
“오오... 칸피니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니?”
다행히 칸피니스가 들어오는 소리는 들을 수 있는지 힘겹고 어색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상체가 칸피니스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검고 맑은 눈동자는 칸피니스를 보고있지 않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양 먼 허공에 멈추어있을 뿐이다.
“예? 하지만 저는 어머니라 부르는 게 더 좋은걸요?”
“너는 좋을 지 모르지만 나는 싫단 말야. 다시는 어머니라 부르지 마.”
“쳇... 할 수 없죠. 어머니의 명령이신데. 그럼 이름을 불러드릴까요?”
“그래. 나의 이름을 불러줘. 에렌프라는 내 이름을...”
“알았어요. 그럼.”
어색함을 떨치려는 듯 칸피니스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손발의 근육을 풀어본다. 항상 해오던 일임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탓이다.
“오랜만이에요. 에렌프.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 잘 지냈어. 칸피니스도 잘 지냈지?”
“예.”
“그동안 나 안보고 싶었어?”
칸피니스를 바라보지 않으며 칸피니스를 향해 물어오는 표정이 애절하기까지하다. 여자에 익숙한 칸피니스조차도 심장이 옭죄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질 정도다.
“보고싶었어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어 태연한 듯 대답하니 애처롭던 그녀의 표정이 활짝 개인다. 여전히 그녀의 눈은 그를 보고 있지 않지만 그녀의 기쁨은 정확히 칸피니스를 향한다. 그녀의 기쁨에 동화된 때문일까? 칸피니스의 표정도 한없는 기쁨으로 물든다.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정말 보고 싶어서 눈이 멀어버릴 정도였다니까.”
자기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말인 듯하다. 웃음을 참지 못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칸피니스를 향해 기대어린 눈빛을 보내는 것이 칸피니스가 웃어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하하... 그래서 앞이 안보이시게 된건가요?”
“어머, 어떻게 알았니? 진짜야. 네가 오지 않아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기다리다가 이렇게 네가 와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니?”
억지로 웃어보이지만 칸피니스의 표정은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다. 그녀가 농담의 소재로 사용한 그녀의 눈에 얽힌 사정이 너무도 아프게 떠오른 때문이다.
“하하하...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네요. 제가 보고 싶어서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기다리다가 끝내는 이렇게 찾아와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예요.”
“하하하... 그렇지? 이 모든 게 너때문이야. 네가 자주 찾아와주었다면 이렇게 너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하하... 제가 잘못한건가요?”
“그래, 네가 잘못한거야.”
그녀는 한 번도 칸피니스를 본 적이 없다. 칸피니스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저 손으로 만져본 느낌으로 기억할 뿐이다. 아마 그녀가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오히려 칸피니스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손으로 더듬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당신의 아들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억지 웃음 속에 칸피니스의 가슴으로 싸늘한 불길이 타오른다. 심장의 박동을 타고 크게 일어난 불길이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흐르며 그의 세포 하나하나를 아프게 일깨운다.
“하하하... 제 잘못이라면 사과드려야죠. 잘못했어요. 에렌프. 모두 제 잘못이에요. 용서해주세요.”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증오와 분노라는 이름의 싸늘한 불길로 인한 아픔에 칸피니스는 과장된 웃음을 지어보인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무의미한 웃음 속에 부서진 칼날처럼 허공에 흩뿌려진다.
“흥! 말로만?”
수파니인 에렌프가 칸피니스의 살기를 느끼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칸피니스의 살기따위는 있지도 않았다는 듯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여전히 장난어린 말투다.
“에? 사과로는 부족한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음... 어떻게 할까?”
“부탁해요. 제가 용서를 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아아... 제발... 에렌프가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든 저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아마도 저는 살 의미를 잃게 될 거에요. 저를 구원해주신다 생각하시고 제발 저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호호호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예. 무슨 일이든 시켜만주세요. 에렌프가 하라는 일은 모두 할 수 있으니.”
“그래?”
그녀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서서히 붉게 불들어간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그녀의 검은 눈에 끈적거리는 욕망이 번들거리며 빛나고 있다. 칸피니스가 몇 번을 보아온,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럼... 음...”
“말씀해주세요. 에렌프. 어떻게 하면 되죠?”
“음... 그럼 가르쳐줄게.”
“예. 어떻게 할까요?”
“우선 이리로 와봐.”
“예.”
에렌프에게 가까이 갈수록 칸피니스의 표정은 더욱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치마의 천이 내려앉은 사타구니 양 끝으로 뾰족할 정도로 앙상하게 나란히 뻗은 그녀의 다리가 아프게 눈에 가득차 들어온 때문이다.
“여전히 다리가 불편하신건가요?”
“그래. 아직도 다리가 아프구나. 어서 나아야 할텐데... 그래야 너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할텐데... 너무 아파서... 너무 아파서 그럴 수 없어 미안하구나.”
거짓말이다. 아플 리 없다. 저 다리가 저리 된 것은 칸피니스가 태어나기보다 3년 전의 일이다. 이미 18년이나 지나 신경까지 죽어버린 저 다리가 이제와서 아플 리 없다. 아프다면 마음일 것이다. 저 다리와 함께 죽어버린 그녀의 마음이 칸피니스 앞에서 다시 깨어나 아파하는 것일 것이다.
“괜찮아요. 언젠가 같이 나가 돌아다닐 수 있겠죠.”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마법이다. 9서클의 대마도사가 펼치는 재구성마법은 인간의 유전정보를 검색해 모든 것을 완벽히 재구성해낼 수 있다. 아무리 오래된 상처라 할지라도, 아니 절단되어 그 부위가 사라진 지 오래라 할지라도 완벽히 원상태로 만들 수 있는 궁극의 마법이다. 그 마법만 있다면 그녀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9서클 마법을 익힌 마도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전제에서다. 존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9서클 대마도사를 만나 치료를 허락받은 이후에나 가져볼 수 있는 희망이다. 미약하지만 그것만이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겠지?”
“예. 확실히.”
“훗... 다시 너와 같이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설레는구나. 마치 처녀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야. 다시 걸을 수 있게되면 더욱 두근거리겠지? 심장이 미친듯이 뛰다가 터져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구나.”
“예? 심장이 터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차라리 걷지 못하는 게 다행이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
너무도 태연한 대화. 하지만 그 태연함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칸피니스다. 주먹조차 아프게 쥐지 못하는 그 억눌린 아픔이 그의 뼛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그의 영혼보다 더욱 깊은 곳에 증오의 각인을 새긴다.
“그럼 이제 말해줘요. 어떻게 하면 저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거죠?”
“아, 그것 때문에 이리 가까이 오라 했던 거였지?”
“예.”
“그래? 이리 오렴.”
“예.”
그녀가 시키는대로 칸피니스가 그녀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니 그녀의 손이 칸피니스의 사타구니를 더듬어온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너무도 정확하고 익숙한 손놀림이다. 아직 죽어있는 칸피니스의 자지와 불알을 타이트한 바지 너머로 능숙하게 어루만진다.
“으음... 여전히 크구나.”
“예에...”
“그 귀여운 꼬추가 이렇게 커지다니...”
“훗....”
“아아... 그 귀엽고 쭈글쭈글한 것이... 이렇게 단단하고... 음... 훌륭하게...”
“으음... 음...”
자식의 고추를 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인양 부드럽고 다정하다가도 연인의 자지를 애무하는 손길인양 격정적이고 유혹적이다. 그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칸피니스는 참지 못하고 몸을 움찔거린다. 어머니의 손길이라는 도착적인 쾌감과 그녀의 능숙함이 더해진 견딜 수 없는 쾌락에 신음을 토하며 몸을 내맡긴다.
“아아... 귀여워... 예뻐... 훌륭해.”
어느새 바지를 내린 그녀의 눈이 칸피니스의 자지를 황홀하게 바라본다. 물론 그녀의 눈은 그의 자지를 보지 않는다. 아니 보지 못한다. 그저 표정이 그의 자지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기쁜 표정에서 칸피니스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낀다. 그녀가 만지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은 자기 자지임에도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지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은 분명 저 모호한 눈빛 너머에 있는 누군가일 것이다. 그 누군가가 아들인 자신을 통해 투영될 뿐이리라.
“으음...”
하지만 에렌프의 행동을 저지할 수는 없다. 거부할 수도 없다. 이것이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앞도 보지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동족과 떨어진 채 인간의 멸시 속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있다. 정을 둘 곳도, 마음을 의지할 곳도 더 이상 그녀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그녀의 아들 뿐이다. 아들을 통해 바라보는 그 누군가 뿐이다.
“허헉... 으음...”
에렌프의 혀는 유연하고 강인하다. 탄력있고 부드럽다. 영활하게 구석구석을 움직이며 감싸듯 넓어졌다가도 찌르듯 가늘어진다. 혀바닥의 부드러운 융모를 활용할 줄도 알고, 혀 뒤쪽의 미끈거리는 혈관으로 귀두를 훑을 줄도 안다. 칸피니스조차도 전혀 경험해 본 적 없는 최고의 쾌락이 에렌프의 혀에 있다.
그럼에도 칸피니스는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낄 수 없다. 자지는 서있고 입으로는 신음으 터져나오지만 그가 느끼는 것은 무한한 고통과 슬픔 뿐이다. 고독과 절망 뿐이다. 자신의 자지를 빨아들이는 그 뜨거운 입 속이 마치 무한의 지옥처럼 그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할짝... 할짝... 쭈웁... 쯔읍.... 쩝...
“우웅... 음... 음...”
“허헉... 으음...”
차라리 패륜이라면 좋을 것이다. 자기 어미와 사랑에 빠지는 패륜이라면 기꺼이 그 패륜을 즐겼을 것이다. 에렌프가 좋아 이런 관계가 되었다면 색마로서의 본분을 지켜 기꺼이 어머니인 에렌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섹스를 나누는 것은 어미와 자식이 아니다. 에렌프와 칸피니스가 아니다. 에렌프는 칸피니스 너머의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고, 칸피니스는 에렌프가 아닌 모성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즐길 뿐이다. 그 공포와 절망의 슬픈 나락 속에 차마 버리지 못할 감정 하나를 붙잡은 채 절규할 뿐이다.
“허헉... 헉...”
“음... 음... ?... 웁... 우웁... 쩝... 쯔읍...”
신음을 토하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은 쾌락 때문이 아니다. 에렌프의 표정이 황홀경에 빠져든 것 또한 칸피니스 때문이 아니다. 섹스가 단순한 성기의 접촉이라면 분명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은 근친상간의 섹스일 것이다. 하지만 섹스가 사람과 사람, 이성과 이성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섹스일 수 없다.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으음... 음... 으음...”
“헉... 허헉... 헉...”
칸피니스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에렌프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새 옷을 벗고 서로의 알몸을 부비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자각이 없다. 섹스를 하는 것인지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조차 없다. 습관적으로 행위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으음... 아앙... 앙...”
“헉... 허헉... 허헉... 헉...”
뜨거운 열락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욕망은 존재치 않는다. 알몸으로 꿈틀거리는 몸 어디에도 서로에 대한 탐욕이나 쾌락에 희구는 보이지 않는다. 본능 뿐이다. 나락으로 떨구어지듯 섹스라는 행위 속으로 스스로를 떨굴 뿐이다.
“헉... 헉... 허헉...”
“으음.. 아앙... 으응... 으으으응.... 앙...”
욕망도 쾌락도 없는, 섹스가 아닌 섹스가 계속된다. 해가 지고 남청색 하늘이 사위로 어둠을 뿌리는 가운데 어차피 그무엇보 보지 않고 있던 그 눈은 서로가 아닌 서로를 탐하며 열락아닌 열기로 방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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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저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공포가 뜨거운 열기가 되어 뱃속을 태우는 것이 느껴집니다. 불안이 마치 차가운 뱀처럼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미래에 대한, 아니 현재에 대한 절망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무기력증에 빠진 채 무엇을 해도 의욕이 없는 정신적인 죽음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글이 쉽게 써지지 않네요.
글을 쓴다는 것은 먼저 완성된 글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그 글을 따라 쳐가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완성된 글을 손가락이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글쓰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떤 글을 두고 있는데 손은 그 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불안과 절망의 관을 머리에 올린 듯 무겁고 멍한 머리로는 도무지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올리는 이 글도 올리면서도 왜 올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습관처럼 써놓고 올릴 뿐입니다.
지금이 심리상태로는 색마검천황을 처음 쓰면서 언급했던 즐거운 색마류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둡게 가라앉고 있는 제 마음대로라면 더없이 어둡고 음침한 이야기가 되기 쉬울 것입니다. 일종의 폭주상태라 할까요? 그런 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건 즐거운 색마류가 아닐 겁니다. 결국 즐거운 색마류로서의 야설의 포기상태가 되겠죠. 어찌될지 저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음회예고>> 가벼운 사나이 칸피니스가 작가의 사정에 따라 음울하고 칙칙한 캐릭터로 바뀔 위기에 처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건 히리스 뿐. 과연 그녀는 칸피니스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맞은 편에서 벽을 짚은 채 힘겹게 걸어오는 하녀에게 칸피니스는 기쁜 표정으로 아는 체를 한다.
“아, 칸피니스님!”
어딘가 몹시 불편한 듯 어기적거리던 하녀는 칸피니스의 부름에 급히 벽에서 손을 때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여 보인다. 자기 앞에서는 얼마든지 편한 자세로 있어도 좋다고 칸피니스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결코 고쳐지지 않는 철저한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본능같은 움직임이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칸피니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어디 아파?”
하지만 마리엔의 경직된 자세에 대한 불만은 그녀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금방 사라져버린다. 창백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으로 무슨 편한 자세이고 자유로운 태도란 말인가?
“에... 그게...”
나름대로 다정스레 묻는데도 처음 얼굴을 찌푸린 영향인지 마리엔은 얼굴을 굳히며 대답을 주저한다.
“겁내지 말고 얘기해봐. 어디 심각하게 아픈거야? 아프면 의사를 불러줄 수도 있는데...”
최대한 얼굴을 풀고 부드럽게 묻고 있음에도 마리엔은 얼굴만 붉힐 뿐 여전히 대답을 않는다. 칸피니스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을 보아하니 무언가 굉장히 꺼려지는 내용인 모양이다. 칸피니스는 더욱 부드럽게 묻는다.
“괜찮아. 나한테 얘기해도... 나라구. 나 칸피니스. 하녀들의 연인. 마음 놓고 얘기해봐.”
“풋...”
땀으로 번들거리는 붉은 얼굴로 마리엔은 하녀들의 연인이라는 말에 끝내 웃음을 터뜨린다. 칸피니스의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 말을 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스웠던 것이다.
“그래. 그렇게 마음 풀고 얘기해봐. 무슨 일이야? 누구한테 맞았어?”
“아... 아니 그게...”
분명 표정은 많이 풀려있음에도 마리엔은 여전히 말을 꺼내기를 주저한다.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할 수 없어하는 것이 역력하다.
“뭐야? 말해봐. 나한테 못할 말이 어딨어? 그냥 편하게 말해봐.”
“그... 그게...”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집요하게 다그치자 끝내 그녀의 입에서 무언가 나오려고 한다. 여전히 걸리는 것이 있는 듯 나오다 마는 것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뭐야? 답답하게 굴지 말고. 안 그럼 오늘 안 안아준다.”
“에?”
무슨 말을 잘못한 것일까? 오히려 그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다.
“아니, 정정. 말 안하면 오늘 밤에 침실로 쳐들어갈거야!”
“엑!!”
정확히 짚은 모양이다. 얼굴이 파랗게 굳어버리는 것이 마치 공갈협박을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이다. 자신이 쳐들어간다는 말에 저리 질려하는 모습이 칸피니스를 아프게 한다.
“침실로 쳐들어가기 전에 어서 얘기해. 안그럼 진짜 쳐들어가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테니까.”
상처받은 건 상처받은 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이제 고지가 코앞인데 작은 상처 따위로 좌절할 수 없다.
“그... 그게...”
“어허! 어서!”
“그... 그게... 어제... 칸... 피니스님이...”
“에? 내가?”
그러고보니 기억난다. 어제 칸피니스는 마리엔을 그녀의 친구인 모나와 함께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였었다. 그리고 뜨거운 밤을 보냈었는데...“
“그런데 그거 하고 지금 그 모습하고 무슨 관계?”
“그... 그게... 저기...”
얼굴을 붉힌 채 고기를 푹 수그린 그녀의 손이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쓰다듬는다.
“여... 여기가...”
“여기?
하지만 칸피니스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녀는 울쌍을 지으며 손을 더욱 움직여 자신의 엉덩이 계곡 위에 얹는다.
“여기... 그게...”
“아하!”
이제야 감이 잡히는 모양이다. 칸피니스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싱글벙글 장난기어린 웃음이 감돌기 시작한다.
“아아... 거기... 그거구나...”
“에... 예...”
부끄러움에 목덜미까지 발갛게 물든 것이 귀여워보인다. 그 발갛게 물든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기에 더욱 귀엽다.
“흐흐흐... 그냥 이 자리에서 안아버리고 싶다.”
“엑? 그게...”
마리엔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칸피니스의 얼굴에 띄워진 장난기가 더욱 짙어진다. 난처해하는 여자를 보면 우선 놀려주고 싶어지는 것이 역시 소년의 본능인 모양이다. 뭐니뭐니해도 아직 칸피니스는 열 다섯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 아닌가.
“그만하세요. 칸피니스님.”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챈 것일까. 그를 어머니 에렌프의 처소로 안내하던 하녀 린네가 그를 제지한다.
“괜히 하녀아이 놀리면서 허비할 시간 없습니다. 어서 가보셔야 합니다.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엄격한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장난을 그만두어주었으면 하는 모양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엔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칸피니스는 이쯤에서 장난늘 거두기로 한다.
“알았어.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참 그전에...”
“예?”
안도의 표정을 짓고있던 린네는 칸피니스가 말을 덧붙여오자 무슨 말인가 얼굴을 굳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보인다.
“마리엔은 오늘 하루 쉬도록 하는게 나을 것 같아. 몸이 많이 안좋은 모양이거든. 린네가 하녀장에게 말해줄 수 있겠지?”
“아, 예... 그런거라면...”
칸피니스의 말이 의외였는지 린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놀란 것은 린네만이 아니다. 옆에서 칸피니스의 말을 관심있게 듣고있던 마리엔의 표정도 놀라움으로 힘없이 풀어져내린다.
“마리엔,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어. 오늘이래봐야 몇 시간 안남았지만 그래도 일찍 들어가 쉬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겠지. 정 안되겠다 싶으면 내일 하루도 쉬도록 하고. 만일 안된다 그러면 내 방으로 찾아와. 내 방 침대를 빌려줄테니까.”
“저... 저기...”
“왜? 부족한가?”
“아... 아니... 그... 그게...”
부족할 리 없다. 넘쳐서 문제이지 부족할 리 없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아픔 때문에 하루종일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며 하녀로서의 일을 해야 했던 마리엔이다. 그나마 하녀로서 받는 급료가 땅을 갈며 근근히 생활하는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에 아프다는 말조차 못하고 보낸 하루였다. 그런데 오늘과 내일 쉬어도 된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의 주인인 귀족의 자제 칸피니스가. 천성이 농노인 마리엔의 표정은 어느새 감격으로 한껏 일그러진다.
“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긴... 다 나때문인걸. 내가 먼저 신경써주었어야 했는데 무심했네.”
“예... 그게...”
고마워하다가도 저리 직설적으로 말하니 난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말 어쩌면 저리도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마리엔의 얼굴이 타오르듯 붉게 물든다.
“어쨌든 오늘하고 내일 푹 쉬도록 해. 그리고 모레... 나한테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검사받으러 오도록 하고.”
“에?”
“왜? 아픈 이유는 내가 잘 아니까 치료되었는지 여부도 내가 검사하는 게 당연하잖아? 안그래?”
“그... 그렇지만...”
“그럼 이만 들어가 쉬어. 나는 지금 볼 일이 있으니까 이만 가봐야겠다.”
“하... 하지만...”
상당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고는 있지만 결코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꽤나 기꺼워하며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차마 반가워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아픔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칸피니스는 히죽 웃어보인다. 왜 그러는지 다 안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니다.
“걱정마. 그쪽으로는 안할테니까. 나도 그렇게까지 짐승은 아니라구.”
“에...? 그... 그게...”
“알아, 무얼 걱정하는지. 정 그렇게 걱정되면 마리사나 모나에게 물어보도록 해. 그녀들은 너보다 선배이니 잘 가르쳐줄거야.”
“예... 예...”
“그럼 그날 보도록 하자구. 내가 부르지 않아도 네가 알아서 찾아오도록 해.”
“예...”
“혼자 오기 무서우면 다른 아이랑 같이 와도 되고. 알았지? 모레 보자.”
“예...‘
“그럼 몸조리 잘해.”
마리엔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인 칸피니스는 고개를 돌려 린네를 향한다. 지금껏 그와 마리엔의 대화를 들으며 곤혹스러움인지 놀라움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자신에게로 맞춰오는 칸피니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원래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럼, 마리엔. 모레... 기대하라구.”
“예... 칸피니스님...”
기어들어갈 듯 작은 목소리가 한껏 붉힌 얼굴로 푹 수그린 그녀의 고개 아래에서 들려온다. 당혹스러움에 아래로 기대와 기쁨의 떨림이 묻어난다. 칸피니스는 더욱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저... 칸피니스님...”
마리엔과 헤어져 한참을 걸어가는데 린네가 머뭇거리며 칸피니스를 부른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참고 있는 것이 역력한 모습이다.
“왜?”
“마... 리엔... 요...”
“음? 마리엔이 왜?”
“그게...”
“...???”
말은 꺼냈지만 역시 말을 잇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계속 말을 하려는 듯 하면서도 끝내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녀가 편히 말할 수 있기를 기다릴 뿐이다.
“저기... 마리엔이 아픈게...”
“음?”
“거기... 그러니까...”
“아하...”
대충 알 것 같다.
“저기... 칸... 피니스... 님이...”
“응. 맞아.”
“그... 그게... 그쪽으로도...?”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
“응. 리넨은 한 번도 안해봤지?”
“엑?”
“아직 안 해봤잖아?”
“저... 저도... 해야... 하는건가... 요?”
얼굴을 보아하니 무서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써부터 그 아픔을 떠올리는 듯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 얼굴이 안쓰러워보인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그 정도에 흔들리지 않는다.
“왜? 싫어?”
“그... 그게...”
“진짜 싫은거야?”
“아... 아니... 그...”
칸피니스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니 리넨은 어쩔줄 몰라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분명 싫은 일임에도 칸피니스가 저리 실망하고 있으니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싫은 일이라 하더라도 칸피니스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는 끔찍한 갈등에 휩싸인다.
“하... 하지만... 그... 그게... 그게... 어떻게 엉덩이로...”
“하지만 가능한걸?”
“그... 마리엔은...? 그렇게 아픈데...?”
“아플까봐 무서워?”
“... 예...”
울쌍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진짜 무서운 모양이다. 어느새 엉덩이로 돌아간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옷 위로 느껴질 정도다.
“카... 칸피니스님의 자지는... 저... 너무... 크니까... 그게... 너무 커서... 어떻게 이쪽으로... 이 작은 항문으로... 그게...”
눈이 흘끗 칸피니스의 사타구니를 향하는 것을 보니 칸피니스의 자지 크기를 가늠해보는 모양이다. 그녀의 손에 잡히던, 입안과 보지 속을 가득 채우던 그 느낌이 항문으로 들어온다 생각하니 절로 소름이 돋는 지 가볍게 그녀의 몸이 떨린다.
“훗... 그렇게 무서워?”
“에? 예...”
“안 무섭게 해줄게.”
“예?”
“안 무섭게 해준다고. 아프지도 않게. 최대한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줄게.”
“그... 그게...”
역시 칸피니스. 빈말로라도 하지 않겠다는 말은 결코 않는다. 어느때라도 색마의 본분을 절대 잊지 않는 색마의 모범이다.
“음... 그래. 오늘 밤이 좋겠다. 어때? 오늘밤?”
“오... 오늘밤요?”
“그래. 오늘밤. 슬라임은 한 입에 삼키랬다고 오늘 말 나온 김에 리넨의 항문 첫경험을 하는거야. 내가 오늘 특별히 서비스해 주지.”
“오... 오늘요...?”
리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다. 공포와 절망, 고통이 어우러진 보는 것만으로도 처참해지는 그런 모습이다. 안쓰러움에 칸피니스는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안는다.
“걱정마. 애무도 충분히 해줄거고,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기술을 발휘할테니까. 며칠 움직이는 데 지장이야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거야. 믿으라구. 나 칸피니스의 말이니까.”
“예... 예...”
굳어있던 근육이 힘없이 풀어지는 것이 끌어안은 팔 너머로 느껴진다. 탄력없이 늘어진 것으로 보아 안심해서가 아니라 체념한 때문인 듯 하다.
“오늘밤에 내 방으로 오라구. 아님 내가 네 방으로 갈까? 린네는 캐시랑 방을 같이 쓰지? 캐시랑 같이 하면 되겠다. 캐시가 경험이 있으니까 네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줄 수 있을거야.”
“엑? 캐... 캐시도...?”
칸피니스의 입에서 룸메이트 캐서린의 애칭이 나오자 체념으로 풀어졌던 그녀의 몸이 다시 바싹 긴장한다.
“응. 몰랐어? 한 두어달 됐는데.”
“그... 그게... 그게 그럼...”
“뭔진 모르지만 네 짐작이 맞을거야. 캐시도 무척 아파했었으니까.”
“으으...”
“어쨌든 있다 네 방으로 찾아갈테니까 캐시한테도 미리 말해놔. 아마 캐시도 좋아할거야.”
“하... 하지만...”
“아니다. 지금 네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어머니와의 일이 끝나면 바로 네게 갈테니까. 오늘밤 어머니 시중은 마리사에게 대신 맡기도록 하고. 내가 시켰다고 하고 내일 하루 쉬게 해준다고 하면 마리사가 들어줄거야.”
“에...?”
리넨은 뭐라 말을 꺼내려 애써보지만 칸피니스의 기쁨에 들뜬 눈빛에 그만 머뭇거리고 만다. 저토록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할 수 없다고 말하기엔 리넨의 마음이 너무도 여린 때문이다.
“알았지? 지금 가서 마리사에게 말해놔. 그리고 캐시한테 말해서 오늘 밤을 위한 준비를 해두도록 하고. 일단 사전준비가 있으면 좋은거니까.”
“사... 전준비요?”
“그래. 캐시에게 물어보면 가르쳐줄거야.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예에...”
리넨은 결국 칸피니스의 반짝반짝 눈빛 공격에 굴복하고 만다. 아무리 항문섹스가 무서워도 칸피니스의 저리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거부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럼 먼저 가 있어. 나는 혼자서 어머니께 갈테니까.”
“저어... 칸피니스님...”
“왜?”
칸피니스가 혼자 어머니께 간다는 말에 리넨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여전히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이다.
“아... 아니에요.”
“그래?”
무언가 말하려다가 다시 집어넣는 리넨에게 칸피니스는 심드렁하니 대꾸한다. 조금전까지 즐겁기만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거리감이 느껴지는 냉정한 모습이다.
“뭔 생각하는지 알겠어. 네 생각이 맞아. 맞으니까 다른 생각 말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난 여자에게만큼은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니까. 그건 너도 알고 있겠지?”
“예? 예에...”
그의 생경한 표정에 주눅든 탓일까? 리넨의 몸과 말이 그의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든다.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지금부터 네가 생각해야 할 일은 오늘밤 있을 나와의 섹스야.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해야 해. 다른 일은 관심을 가져서도, 떠올려서도 안돼. 당연히 말을 해서도 안되겠지? 알겠어?”
“예...”
“그럼 됐어. 가봐. 내가 한 말 결코 잊어서는 안돼.”
“아... 알겠습니다. 칸피니스님.”
“그럼 나중에 보자구.”
“예에...”
조금전까지의 다정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처음 보는 사람인 듯한 생경함이 차가운 살기와 함께 리넨에게로 다가온다. 몇 번이나 멀리서 보았던 그 잔폭한 광기 속에 냉정하고 돌아서는 칸피니스의 단단한 등은 마치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높고 두터운 성벽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오늘밤에 보자구.”
다시 들려오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 어느새 그의 몸을 휘감던 잔혹하고 광기어린 살기는 씻은 듯 사라져있다. 그의 단단한 등은 달려가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다정하고 육감적이다. 조금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이다. 어느새 리넨의 몸이 차갑게 굳는다.
“흠흠... 오늘밤... 흠흠... 오늘밤... 흠흠... 한 소녀가... 흠흠... 뒤쪽의 작은 구멍으로... 흠흠... 그 핑크빛 주름으로... 흠흠... 항상 무언가를 내놓던 그 곳으로... 흠흠... 커다라고 단단한 것을... 흠흠... 나의 훌륭한 그것을... 흠흠... 처음으로... 흠흠... 깊이 받아들이고... 흠흠...”
평소라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채 칸피니스를 비난의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했을 음란한 장난기가 섞인 노랫소리에도 리넨의 굳어진 표정은 풀어질 줄 모른다. 그에게서 느꼈던 그 공포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그 다정하고 따뜻한 등은 냉정하게 그녀로부터 멀어진다. 한 번도 돌아보는 일 없이, 한 번도 머뭇거리는 일 없이, 에일 정도로 따뜻함만을 뿌리며 그는 복도 저편, 그녀가 알고 있는 곳으로 멀어져간다.
그가 떠난 곳, 여전히 굳어있는 린네만이 서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얼굴 근육도 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리는 새어나오지 않는다. 억눌린 숨소리만이 침묵속에 조용히 흩어질 뿐이다.
똑똑--
“리넨이니?”
노크 소리에 맑고 앳띤 목소리가 제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억양으로 대답해온다. 약간 끌리는 듯, 콧소리가 섞인 마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다.
“접니다.”
“칸피니스? 칸피니스니?”
“예. 부르셨다구요?”
“그래. 내가 불렀어. 아아... 어서... 어서 들어와라... 어서 들어와. 나의 아들... 나의 칸피니스.”
달칵--!
“칸피니스!!”
문이 열리자 달려들어 안아오듯 그녀의 목소리가 그를 반긴다. 물론 목소리만이다. 문 근처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저 멀리 꽤 넓은 방의 맞은 편 창가에서 들려오고 있다.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에도 그녀는 창가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어딘지 모르는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다. 아들이 들어오는 것이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선이나 동작이 따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공허하기만 하다.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하지만 칸피니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언제나처럼 그녀가 볼 수 없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갈 뿐이다. 새삼 놀라거나 어색해하기엔 너무 익숙한 일상인 때문이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짙은 피부빛은 칸피니스가 어머니 에렌프를 닮은 것이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동안도, 큰 키에 늘씬한 몸매도 모두 에렌프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마치 단성생식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칸피니스와 너무도 닮아있다.
“오오... 칸피니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니?”
다행히 칸피니스가 들어오는 소리는 들을 수 있는지 힘겹고 어색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상체가 칸피니스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검고 맑은 눈동자는 칸피니스를 보고있지 않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양 먼 허공에 멈추어있을 뿐이다.
“예? 하지만 저는 어머니라 부르는 게 더 좋은걸요?”
“너는 좋을 지 모르지만 나는 싫단 말야. 다시는 어머니라 부르지 마.”
“쳇... 할 수 없죠. 어머니의 명령이신데. 그럼 이름을 불러드릴까요?”
“그래. 나의 이름을 불러줘. 에렌프라는 내 이름을...”
“알았어요. 그럼.”
어색함을 떨치려는 듯 칸피니스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손발의 근육을 풀어본다. 항상 해오던 일임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탓이다.
“오랜만이에요. 에렌프.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 잘 지냈어. 칸피니스도 잘 지냈지?”
“예.”
“그동안 나 안보고 싶었어?”
칸피니스를 바라보지 않으며 칸피니스를 향해 물어오는 표정이 애절하기까지하다. 여자에 익숙한 칸피니스조차도 심장이 옭죄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질 정도다.
“보고싶었어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어 태연한 듯 대답하니 애처롭던 그녀의 표정이 활짝 개인다. 여전히 그녀의 눈은 그를 보고 있지 않지만 그녀의 기쁨은 정확히 칸피니스를 향한다. 그녀의 기쁨에 동화된 때문일까? 칸피니스의 표정도 한없는 기쁨으로 물든다.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정말 보고 싶어서 눈이 멀어버릴 정도였다니까.”
자기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말인 듯하다. 웃음을 참지 못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칸피니스를 향해 기대어린 눈빛을 보내는 것이 칸피니스가 웃어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하하... 그래서 앞이 안보이시게 된건가요?”
“어머, 어떻게 알았니? 진짜야. 네가 오지 않아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기다리다가 이렇게 네가 와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니?”
억지로 웃어보이지만 칸피니스의 표정은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다. 그녀가 농담의 소재로 사용한 그녀의 눈에 얽힌 사정이 너무도 아프게 떠오른 때문이다.
“하하하...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네요. 제가 보고 싶어서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기다리다가 끝내는 이렇게 찾아와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예요.”
“하하하... 그렇지? 이 모든 게 너때문이야. 네가 자주 찾아와주었다면 이렇게 너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하하... 제가 잘못한건가요?”
“그래, 네가 잘못한거야.”
그녀는 한 번도 칸피니스를 본 적이 없다. 칸피니스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저 손으로 만져본 느낌으로 기억할 뿐이다. 아마 그녀가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오히려 칸피니스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손으로 더듬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당신의 아들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억지 웃음 속에 칸피니스의 가슴으로 싸늘한 불길이 타오른다. 심장의 박동을 타고 크게 일어난 불길이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흐르며 그의 세포 하나하나를 아프게 일깨운다.
“하하하... 제 잘못이라면 사과드려야죠. 잘못했어요. 에렌프. 모두 제 잘못이에요. 용서해주세요.”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증오와 분노라는 이름의 싸늘한 불길로 인한 아픔에 칸피니스는 과장된 웃음을 지어보인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무의미한 웃음 속에 부서진 칼날처럼 허공에 흩뿌려진다.
“흥! 말로만?”
수파니인 에렌프가 칸피니스의 살기를 느끼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칸피니스의 살기따위는 있지도 않았다는 듯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여전히 장난어린 말투다.
“에? 사과로는 부족한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음... 어떻게 할까?”
“부탁해요. 제가 용서를 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아아... 제발... 에렌프가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든 저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아마도 저는 살 의미를 잃게 될 거에요. 저를 구원해주신다 생각하시고 제발 저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호호호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예. 무슨 일이든 시켜만주세요. 에렌프가 하라는 일은 모두 할 수 있으니.”
“그래?”
그녀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서서히 붉게 불들어간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그녀의 검은 눈에 끈적거리는 욕망이 번들거리며 빛나고 있다. 칸피니스가 몇 번을 보아온,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럼... 음...”
“말씀해주세요. 에렌프. 어떻게 하면 되죠?”
“음... 그럼 가르쳐줄게.”
“예. 어떻게 할까요?”
“우선 이리로 와봐.”
“예.”
에렌프에게 가까이 갈수록 칸피니스의 표정은 더욱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치마의 천이 내려앉은 사타구니 양 끝으로 뾰족할 정도로 앙상하게 나란히 뻗은 그녀의 다리가 아프게 눈에 가득차 들어온 때문이다.
“여전히 다리가 불편하신건가요?”
“그래. 아직도 다리가 아프구나. 어서 나아야 할텐데... 그래야 너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할텐데... 너무 아파서... 너무 아파서 그럴 수 없어 미안하구나.”
거짓말이다. 아플 리 없다. 저 다리가 저리 된 것은 칸피니스가 태어나기보다 3년 전의 일이다. 이미 18년이나 지나 신경까지 죽어버린 저 다리가 이제와서 아플 리 없다. 아프다면 마음일 것이다. 저 다리와 함께 죽어버린 그녀의 마음이 칸피니스 앞에서 다시 깨어나 아파하는 것일 것이다.
“괜찮아요. 언젠가 같이 나가 돌아다닐 수 있겠죠.”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마법이다. 9서클의 대마도사가 펼치는 재구성마법은 인간의 유전정보를 검색해 모든 것을 완벽히 재구성해낼 수 있다. 아무리 오래된 상처라 할지라도, 아니 절단되어 그 부위가 사라진 지 오래라 할지라도 완벽히 원상태로 만들 수 있는 궁극의 마법이다. 그 마법만 있다면 그녀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9서클 마법을 익힌 마도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전제에서다. 존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9서클 대마도사를 만나 치료를 허락받은 이후에나 가져볼 수 있는 희망이다. 미약하지만 그것만이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겠지?”
“예. 확실히.”
“훗... 다시 너와 같이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설레는구나. 마치 처녀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야. 다시 걸을 수 있게되면 더욱 두근거리겠지? 심장이 미친듯이 뛰다가 터져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구나.”
“예? 심장이 터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차라리 걷지 못하는 게 다행이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
너무도 태연한 대화. 하지만 그 태연함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칸피니스다. 주먹조차 아프게 쥐지 못하는 그 억눌린 아픔이 그의 뼛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그의 영혼보다 더욱 깊은 곳에 증오의 각인을 새긴다.
“그럼 이제 말해줘요. 어떻게 하면 저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거죠?”
“아, 그것 때문에 이리 가까이 오라 했던 거였지?”
“예.”
“그래? 이리 오렴.”
“예.”
그녀가 시키는대로 칸피니스가 그녀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니 그녀의 손이 칸피니스의 사타구니를 더듬어온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너무도 정확하고 익숙한 손놀림이다. 아직 죽어있는 칸피니스의 자지와 불알을 타이트한 바지 너머로 능숙하게 어루만진다.
“으음... 여전히 크구나.”
“예에...”
“그 귀여운 꼬추가 이렇게 커지다니...”
“훗....”
“아아... 그 귀엽고 쭈글쭈글한 것이... 이렇게 단단하고... 음... 훌륭하게...”
“으음... 음...”
자식의 고추를 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인양 부드럽고 다정하다가도 연인의 자지를 애무하는 손길인양 격정적이고 유혹적이다. 그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칸피니스는 참지 못하고 몸을 움찔거린다. 어머니의 손길이라는 도착적인 쾌감과 그녀의 능숙함이 더해진 견딜 수 없는 쾌락에 신음을 토하며 몸을 내맡긴다.
“아아... 귀여워... 예뻐... 훌륭해.”
어느새 바지를 내린 그녀의 눈이 칸피니스의 자지를 황홀하게 바라본다. 물론 그녀의 눈은 그의 자지를 보지 않는다. 아니 보지 못한다. 그저 표정이 그의 자지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기쁜 표정에서 칸피니스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낀다. 그녀가 만지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은 자기 자지임에도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지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은 분명 저 모호한 눈빛 너머에 있는 누군가일 것이다. 그 누군가가 아들인 자신을 통해 투영될 뿐이리라.
“으음...”
하지만 에렌프의 행동을 저지할 수는 없다. 거부할 수도 없다. 이것이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앞도 보지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동족과 떨어진 채 인간의 멸시 속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있다. 정을 둘 곳도, 마음을 의지할 곳도 더 이상 그녀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그녀의 아들 뿐이다. 아들을 통해 바라보는 그 누군가 뿐이다.
“허헉... 으음...”
에렌프의 혀는 유연하고 강인하다. 탄력있고 부드럽다. 영활하게 구석구석을 움직이며 감싸듯 넓어졌다가도 찌르듯 가늘어진다. 혀바닥의 부드러운 융모를 활용할 줄도 알고, 혀 뒤쪽의 미끈거리는 혈관으로 귀두를 훑을 줄도 안다. 칸피니스조차도 전혀 경험해 본 적 없는 최고의 쾌락이 에렌프의 혀에 있다.
그럼에도 칸피니스는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낄 수 없다. 자지는 서있고 입으로는 신음으 터져나오지만 그가 느끼는 것은 무한한 고통과 슬픔 뿐이다. 고독과 절망 뿐이다. 자신의 자지를 빨아들이는 그 뜨거운 입 속이 마치 무한의 지옥처럼 그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할짝... 할짝... 쭈웁... 쯔읍.... 쩝...
“우웅... 음... 음...”
“허헉... 으음...”
차라리 패륜이라면 좋을 것이다. 자기 어미와 사랑에 빠지는 패륜이라면 기꺼이 그 패륜을 즐겼을 것이다. 에렌프가 좋아 이런 관계가 되었다면 색마로서의 본분을 지켜 기꺼이 어머니인 에렌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섹스를 나누는 것은 어미와 자식이 아니다. 에렌프와 칸피니스가 아니다. 에렌프는 칸피니스 너머의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고, 칸피니스는 에렌프가 아닌 모성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즐길 뿐이다. 그 공포와 절망의 슬픈 나락 속에 차마 버리지 못할 감정 하나를 붙잡은 채 절규할 뿐이다.
“허헉... 헉...”
“음... 음... ?... 웁... 우웁... 쩝... 쯔읍...”
신음을 토하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은 쾌락 때문이 아니다. 에렌프의 표정이 황홀경에 빠져든 것 또한 칸피니스 때문이 아니다. 섹스가 단순한 성기의 접촉이라면 분명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은 근친상간의 섹스일 것이다. 하지만 섹스가 사람과 사람, 이성과 이성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섹스일 수 없다.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으음... 음... 으음...”
“헉... 허헉... 헉...”
칸피니스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에렌프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새 옷을 벗고 서로의 알몸을 부비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자각이 없다. 섹스를 하는 것인지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조차 없다. 습관적으로 행위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으음... 아앙... 앙...”
“헉... 허헉... 허헉... 헉...”
뜨거운 열락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욕망은 존재치 않는다. 알몸으로 꿈틀거리는 몸 어디에도 서로에 대한 탐욕이나 쾌락에 희구는 보이지 않는다. 본능 뿐이다. 나락으로 떨구어지듯 섹스라는 행위 속으로 스스로를 떨굴 뿐이다.
“헉... 헉... 허헉...”
“으음.. 아앙... 으응... 으으으응.... 앙...”
욕망도 쾌락도 없는, 섹스가 아닌 섹스가 계속된다. 해가 지고 남청색 하늘이 사위로 어둠을 뿌리는 가운데 어차피 그무엇보 보지 않고 있던 그 눈은 서로가 아닌 서로를 탐하며 열락아닌 열기로 방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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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저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공포가 뜨거운 열기가 되어 뱃속을 태우는 것이 느껴집니다. 불안이 마치 차가운 뱀처럼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미래에 대한, 아니 현재에 대한 절망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무기력증에 빠진 채 무엇을 해도 의욕이 없는 정신적인 죽음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글이 쉽게 써지지 않네요.
글을 쓴다는 것은 먼저 완성된 글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그 글을 따라 쳐가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완성된 글을 손가락이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글쓰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떤 글을 두고 있는데 손은 그 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불안과 절망의 관을 머리에 올린 듯 무겁고 멍한 머리로는 도무지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올리는 이 글도 올리면서도 왜 올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습관처럼 써놓고 올릴 뿐입니다.
지금이 심리상태로는 색마검천황을 처음 쓰면서 언급했던 즐거운 색마류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둡게 가라앉고 있는 제 마음대로라면 더없이 어둡고 음침한 이야기가 되기 쉬울 것입니다. 일종의 폭주상태라 할까요? 그런 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건 즐거운 색마류가 아닐 겁니다. 결국 즐거운 색마류로서의 야설의 포기상태가 되겠죠. 어찌될지 저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음회예고>> 가벼운 사나이 칸피니스가 작가의 사정에 따라 음울하고 칙칙한 캐릭터로 바뀔 위기에 처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건 히리스 뿐. 과연 그녀는 칸피니스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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