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란과의 일이 있은지 한달이 지난 어느날.

나는 그날도 일찍 퇴근을 했다. 요즘 혜란과의 일 때문에 퇴근이 빨라졌다. 그녀의 남편은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고 그런 날이면 나는 아내에게 야근이 있다고 하거나 회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혜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날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혜란의 집으로 향했다. 혜란의 집 현관문에서 조심스럽게 디지털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혹시나 아내가 갑작스럽게 나올까봐 항상 긴장이 되는 순간이다. 바로 옆집이라 왔다갔다 하기에 좋은 점은 있었지만 아내가 언제 갑자기 불쑥 나올지 몰라 긴장이 되기도 하는 단점이 있었다.

무사히 비밀번호를 누르고 혜란의 집으로 들어간 나는 신발을 벗고 큰 목소리로 혜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나는 다음 순간 할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혜란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혜란이 아니라 아내였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내가 집을 잘못 들어온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집안을 둘러본 나는 착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집에 있는 가구와 디자인들은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분명 혜란의 집임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흥, 어쩐지 요즘 늦는다 싶더니 고작 이거였어?”

순간 나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혜란이는 어디....”
“흥, 혜란? 잘들노는 짓이다.”
“혜란이는 어딨어?”
“왜? 그 애가 어딨는지 알고 싶어?”

나는 아무 대답도 안하고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호호, 좋아. 당신이 정 그 애를 보고 싶다고 하니 보여주지. 하지만 후회하지는 마! 그럴 자신 있겠지?”

아내는 비웃는 듯, 혹은 나를 경멸하는 듯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웃더니 앞장 서서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는 바로 옆의 우리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허둥대며 아내의 뒤를 따랐다.

아내의 뒤를 따라 집에 들어선 나는 뭔가 확 몰아치는 공기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웬 남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대충 세 명이나 네 명 정도 돼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 눈에 익숙한 혜란의 신발이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다.

“혜란이는? 혜란이는 어딨어?”
“궁금하면 당신이 안방으로 직접 들어가서 봐봐.”

아내는 팔짱을 끼고 도도한 표정으로 혜란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성급히 안방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한 여자의 날카로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혜란의 목소리... 그리고 혜란이 열락에 빠질때 내는 날카로운 신음소리...

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혜란을 안고 있는 사람... 흑인... 그것도 거짓말 조금 보태서 팔뚝 하나가 왠만한 한국남자 다리통 정도는 될 것 같은 건장하고 늠름한 흑인남성의 모습을....

그리고 그 흑인이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씩이나 되는 것을...

혜란은 세 명의 흑인에게 둘러싸여 흑인들에 의해 이미 완전히 발가벗겨져 하얀 알몸을 드러낸채 범해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