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아내2
골목을 빠져 나와 근처 공원의 벤치에 주저 앉은 나는 불과 몇십분전까지 천하라도 얻은 것처럼 행복에 잠겼다가 비참하게 추락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제발 꿈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천사처럼 순수하고, 착하고 현숙한 아내에게 "이년아"는 보통이고 "개보지"까지, 형편 없이 폄하하던 천부장의 느끼한 음성을 떠올리는 순간,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근처에 초등학교때 짝꿍이었던 동창이 운영하는 약국이 있는 것을 떠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 지금 한참 근무시간일텐데 기남이가 왠일이니?"
원래 새하얀 얼굴에 화사한 모습으로 인기가 많았던 동창 윤혜미는 약국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안경 너머로 활짝 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그러나 혜미도, 눈가에 주름이 진 모습이 보이고 이제 어느덧 삼십대 후반임을 실감하게 했다.
"어머! 수면제하면 보통 술포날이나 페노바르비탈인데, 그걸 중화시키는 약재는 반드시 처방전이 있어야해. 그런데 뭐 할려고 해?"
"응, 내가 회사 물품 홍보를 하기위해 이벤트로 전공을 살려 연극을 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그냥 조제해주면 안되는 것이야? 혜미야."
"호호! 네가 평소에 연극을 했던 게 회사에서 그래도 도움되나 보네?"
정색을 했던 혜미는 비로소 내말에 수긍하며 약을 조제해 줬다. 나는 혜미로부터 수면제와, 중화제의 부작용과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조제해준 약을 주머니에 단단히 갈무리한 나는 꽃집에 들러 꽃바구니를 사서 들고 집으로 향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지금부터 정신 차리자. 명기남."
현관에 선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명서방인가? 어서 들어오게."
"장모님, 오셨어요? 하늘 엄마는요?"
그새 장모가 와서 나를 반갑게 반겼다. 나는 몸이 좋지 않은 장인 뒷바라지로 고생을 하는 장모의 얼굴을 바라보며 인사를 한 다음 부러 큰소리로 아내를 찾았다.
"하늘아빠 왔어요?"
"숙아, 이거 어때?"
"어머머! 예뻐요. 하늘아빠."
화사한 장미꽃 바구니를 소중한 보물을 받듯이 건네 받는 아내의 모습은 눈부시기만 했다. 옅은 화장에 잘 어울리는 물기 머금은 긴 속눈썹에 어우러진 커다란 눈동자에 이어 미소 짓는 뽀얀 얼굴은 바로 천사의 모습이었다.
아내가 탄력이 넘치는 오동통한 작은 입술을 열자 가즈런히 드러나는 순백의 새하얀 치열, 그리고 길고 가는 목과 조화된 둥그스름한 상반신의 아내 모습에 절로 편안해지는 내모습에 안도하는 순간 움찔했다.
"아!"
아내가 천부장의 지시를 받던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고 아내를 위아래로 재빨리 훑었다. 역시 천부장의 지시대로 뒤로 크게 땋아 내린 머리칼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가슴어림까지 얼핏 보이는 베이지 스웨터에 에어프런 복장은 언뜻 발랄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잠깐 아내의 하체를 보며 무너졌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초미니에 순백의 새하얀 주름 스커트의 복장, 고기비늘처럼 윤이 나는 살색의 스타킹은 그런 아내의 늘씬한 각선미를 강조했다. 나는 아찔했지만 천연덕스럽게 한마디했다.
"흐흐! 우리여보 지금 이렇게 보니까 내가 처음 봤던 처녀때 같아."
"어머! 엄마도 있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어. 호호!"
그런 나와 아내를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장모에게는 왠지 미안했지만 나는 작정한대로, 오늘 끝까지 연극을 하기로했다. 내 속마음은 엄청나게 쌓인 분노와 함께 쓰라렸지만 아무리 아내가 이년아로 폄하되는 형편 없는 창녀라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아내를 죽도록 사랑했던 것이다.
"하늘엄마, 내가 뭐 부터 도와 줘야 할까?"
"명서방,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점심도 못먹고 왔을텐데 뭐라도 먹어야지."
"조금 있으면 많이 먹을 텐데 조금 참죠 뭐. 허허!"
"그럼 하늘 아빤 바다나라가서 회를 떠다 줄래요?"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는 나에게 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늘엄마."
"호호! 당신은? 회뜨고 남은 매운탕꺼리도 포장해달라 하세요."
"명서방이 아주 신났네. 그래."
활기찬 내 태도에 한참 싱크대에서 준비하던 아내가 나를 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에 얼핏 젖어든 모습이 눈에 뜨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러나 여전히 아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순간 시린듯한 아내의 모습에 나는 이내 눈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허어! 명과장, 이사람 손님들 초대해 놓고 이제야 나타나는가?"
"아! 예, 이사님, 그리고 부장님 오셨습니까?"
"어머! 저희들도 왔어요."
"어! 아영씨하고 서대리도 왔구만, 많이들 들어. 그런데 표차장님은?"
"조금 있으면 오실 거예요. 어머! 저기 오시네요."
앞머리가 개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천만복부장과 곱슬머리가 꽤 강단있어 보이는 강우재이사, 그리고 요염한 미소를 짓는 은아영과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초리를 숨긴 서영은대리를 차례로 둘러보며 사례를 하는 순간 표부열차장과 낯 모르는 사람이 널찍한 가구를 힘겨운 표정으로 함께 들고 들어섰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 표차장이 들고 있는 부분을 건네 받았다.
"차장님, 이게다 뭡니까?"
"허어! 손님 맞을 상이 없다는 소릴 자네 안사람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튼튼한 것으로 준비했네."
표차장의 말대로 인부가 포장지를 벗겨 바닥에 펴자 잔치상으로 손색이 없는데다 꽤 단단해 보였다. 단지 밥먹는 상으로만 쓰기에는 아까워 보일 정도로 튼튼했다.
"자, 이만하면 자네같은 어른이 올라가서 쇼를 해도 끄떡 없을 것 같지 않은가? 유대리가 보기에는 어때?"
"아, 예. 감사합니다. 차장님."
이때만해도 나는 표차장의 호기로운 말에 담긴 진의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표차장과 함께 자리에 상을 펴면서 아내의 점차 잦아드는 말을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거실에 상을 편 순간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앞치마를 두른 은아영과 서대리, 그리고 장모까지 나서 그간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상에 차리는 모습은 얼핏 보기에도 여늬 잔치집과 다름이 없게 보여 내가 아까 들었던 천부장과 아내의 통화내용이 악몽을 꾸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였다.
"허어! 원체 많이 차렸구먼, 유대리."
"이사님, 많이 드세요."
"유대리, 잔뜩 차렸는데 생선회는 이따가 술먹을 때 먹도록 하지.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명하늘 입장시켜야지."
강이사는 아내가 회사다닐 때 부르듯이 대리 직급을 그대로 호칭하며 스스럼없이 이것저것 주문했다. 이윽고 음식이 차려지자 딸 하늘이를 커다란 탁자앞에 세우고 돐의식을 진행하며 아내와 나까지 나란히 포즈를 잡게해 사진을 찍었다.
"자, 건배!"
"예, 부장님."
"그럼, 오늘의 주인공 명하늘을 위하여 할까."
천부장의 제안에 음식과 술을 마시며 나는 경각심을 가지고 신경을 모으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나를 잠재울것인지 권하는 술잔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여러사람들에게 장단을 맞췄다.
"유대리, 하늘이 한테 아무래도 담배는 안 좋겠지?"
강이사의 말에 눈치를 챈 아내는 장모에게 한 마디하였다.
"엄마, 아까 말씀드린대로 우리 하늘이 데리고 정미네로 가실래요."
"어! 알았어. 명서방, 나 하늘이 데리고 작은 딸네 갈테니 손님들 모자라지 않게 잘 모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모님,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저희가 부산피워서 내쫓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합니다. 제가 마음먹고 모처럼 초대했으니까 지금부터 화끈하게 노십시요. 저는 잠깐, 실례를 하겠습니다."
엊그제 해산한 처제네로 하늘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장모의 말에 나는 다시 퍼뜩 정신이 들며 장모를 배웅하고 이내 욕실에 들어서며 볼일을 보고 난다음 실내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허어! 명과장 말마따나 그럼 화끈하게 놀아 볼까. 건배를 해야 하는데."
"이사님, 명과장님이 자리에 앉는대로 건배하시죠."
서영은 대리의 낭랑한 목소리에 나는 윤혜미가 조제해준 약을 주머니에서 꺼내 입안에 머금었다. 이윽고 다시 내 자리에 앉아 좌중을 둘러보자 부서원들은 하나같이 묘한 열기에 들뜬 눈빛들이었다.
"자, 명과장, 앞에 잔들어."
부장의 권유에 내앞에 놓인 맥주컵에 가득 담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유대리도 이리와서 건배하지."
"예, 이사님."
"자, 그럼 화끈한 밤을 위하여~!"
"위하여!"
열기에 들뜬 강이사의 건배 제창에 나는 입속에 머금은 약을 의식하며 입만 크게 벌려 호응했다. 이윽고 술잔을 가져가는 순간 창백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마주보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아내의 모습에 확신을 하고 술을 입안에 부었다. 순간 지금까지 마신 술맛과 다른 것을 확실히 음미하며 술병을 들어 술을 가득채워 강이사에게 권했다.
"강, 이사님, 한 잔, 드, 드십시요."
"어! 그래."
"천, 천, 부장님도요."
나는 동공이 풀린 모습으로 변신하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표, 차~차장님도 드려..야..하는데 가, 가, 갑자기 눈이, 자..잠..."
"어허! 명과장, 이렇게 술이 약해서야... 명과장."
"조....조...금 ....쉬면..괜...."
"그래, 여기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부치게."
"예...죄...죄......"
나는 비틀거리며 표부열차장의 권유대로 쇼파에 몸을 뉘었다. 그러나 수면제를 해소하는 약을 먹었는데도 어찔거리는 것이 실제로 논꺼플이 잠겨들었갔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의식적으로 코를 골다 이윽고 새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 연기를 시작했다.
"드르릉"드릉"드릉"드르릉".......
"명과장!"
"...."
"뻗었는데요. 이사님."
"호호! 아영이가 지은 것하고, 제가 지은 것을 한꺼번에 먹었으니 명과장인들 견딜 수 있겠어요?"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며 득의양양한 서영은의 음성에 나는 분노를 느끼며 여섯끼나 되는 중화제를 한꺼번에 먹은 것을 깨닫고 내 선견지명에 고무되었다.
"흥! 내가 그럴줄알고 중화제를 여섯끼에 맞춰 먹었다."
내가 분노에 잠겨 속으로 삭이는 동안 아내의 걱정어린 말이 들려왔다.
"어머! 영은씨, 너무 많지 않아?"
"흥! 갈보년 같으니라고 그래도 제년 서방이라고 걱정되나보지?"
"아~"
갑자기 변신한 서영은의 태도에 당황한 아내가 어쩔줄을 몰라 입을 쩍 벌린 모습에 이어 은아영이 입을 열었다.
"호호! 유대리 언니, 걱정마. 여섯끼를 한꺼번에 복용하면 의사소견으로는 적어도 스무시간은 깨어나지 못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실한 것이 좋은데..."
"이사님, 그럼 아예 묶어 놓죠."
"그건 저한테 맞기시죠."
강이사의 말에 벌떡 일어선 표차장은 구석에 놓인 가방을 들었다.
골목을 빠져 나와 근처 공원의 벤치에 주저 앉은 나는 불과 몇십분전까지 천하라도 얻은 것처럼 행복에 잠겼다가 비참하게 추락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제발 꿈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천사처럼 순수하고, 착하고 현숙한 아내에게 "이년아"는 보통이고 "개보지"까지, 형편 없이 폄하하던 천부장의 느끼한 음성을 떠올리는 순간,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근처에 초등학교때 짝꿍이었던 동창이 운영하는 약국이 있는 것을 떠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 지금 한참 근무시간일텐데 기남이가 왠일이니?"
원래 새하얀 얼굴에 화사한 모습으로 인기가 많았던 동창 윤혜미는 약국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안경 너머로 활짝 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그러나 혜미도, 눈가에 주름이 진 모습이 보이고 이제 어느덧 삼십대 후반임을 실감하게 했다.
"어머! 수면제하면 보통 술포날이나 페노바르비탈인데, 그걸 중화시키는 약재는 반드시 처방전이 있어야해. 그런데 뭐 할려고 해?"
"응, 내가 회사 물품 홍보를 하기위해 이벤트로 전공을 살려 연극을 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그냥 조제해주면 안되는 것이야? 혜미야."
"호호! 네가 평소에 연극을 했던 게 회사에서 그래도 도움되나 보네?"
정색을 했던 혜미는 비로소 내말에 수긍하며 약을 조제해 줬다. 나는 혜미로부터 수면제와, 중화제의 부작용과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조제해준 약을 주머니에 단단히 갈무리한 나는 꽃집에 들러 꽃바구니를 사서 들고 집으로 향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지금부터 정신 차리자. 명기남."
현관에 선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명서방인가? 어서 들어오게."
"장모님, 오셨어요? 하늘 엄마는요?"
그새 장모가 와서 나를 반갑게 반겼다. 나는 몸이 좋지 않은 장인 뒷바라지로 고생을 하는 장모의 얼굴을 바라보며 인사를 한 다음 부러 큰소리로 아내를 찾았다.
"하늘아빠 왔어요?"
"숙아, 이거 어때?"
"어머머! 예뻐요. 하늘아빠."
화사한 장미꽃 바구니를 소중한 보물을 받듯이 건네 받는 아내의 모습은 눈부시기만 했다. 옅은 화장에 잘 어울리는 물기 머금은 긴 속눈썹에 어우러진 커다란 눈동자에 이어 미소 짓는 뽀얀 얼굴은 바로 천사의 모습이었다.
아내가 탄력이 넘치는 오동통한 작은 입술을 열자 가즈런히 드러나는 순백의 새하얀 치열, 그리고 길고 가는 목과 조화된 둥그스름한 상반신의 아내 모습에 절로 편안해지는 내모습에 안도하는 순간 움찔했다.
"아!"
아내가 천부장의 지시를 받던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고 아내를 위아래로 재빨리 훑었다. 역시 천부장의 지시대로 뒤로 크게 땋아 내린 머리칼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가슴어림까지 얼핏 보이는 베이지 스웨터에 에어프런 복장은 언뜻 발랄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잠깐 아내의 하체를 보며 무너졌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초미니에 순백의 새하얀 주름 스커트의 복장, 고기비늘처럼 윤이 나는 살색의 스타킹은 그런 아내의 늘씬한 각선미를 강조했다. 나는 아찔했지만 천연덕스럽게 한마디했다.
"흐흐! 우리여보 지금 이렇게 보니까 내가 처음 봤던 처녀때 같아."
"어머! 엄마도 있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어. 호호!"
그런 나와 아내를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장모에게는 왠지 미안했지만 나는 작정한대로, 오늘 끝까지 연극을 하기로했다. 내 속마음은 엄청나게 쌓인 분노와 함께 쓰라렸지만 아무리 아내가 이년아로 폄하되는 형편 없는 창녀라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아내를 죽도록 사랑했던 것이다.
"하늘엄마, 내가 뭐 부터 도와 줘야 할까?"
"명서방,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점심도 못먹고 왔을텐데 뭐라도 먹어야지."
"조금 있으면 많이 먹을 텐데 조금 참죠 뭐. 허허!"
"그럼 하늘 아빤 바다나라가서 회를 떠다 줄래요?"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는 나에게 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늘엄마."
"호호! 당신은? 회뜨고 남은 매운탕꺼리도 포장해달라 하세요."
"명서방이 아주 신났네. 그래."
활기찬 내 태도에 한참 싱크대에서 준비하던 아내가 나를 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에 얼핏 젖어든 모습이 눈에 뜨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러나 여전히 아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순간 시린듯한 아내의 모습에 나는 이내 눈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허어! 명과장, 이사람 손님들 초대해 놓고 이제야 나타나는가?"
"아! 예, 이사님, 그리고 부장님 오셨습니까?"
"어머! 저희들도 왔어요."
"어! 아영씨하고 서대리도 왔구만, 많이들 들어. 그런데 표차장님은?"
"조금 있으면 오실 거예요. 어머! 저기 오시네요."
앞머리가 개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천만복부장과 곱슬머리가 꽤 강단있어 보이는 강우재이사, 그리고 요염한 미소를 짓는 은아영과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초리를 숨긴 서영은대리를 차례로 둘러보며 사례를 하는 순간 표부열차장과 낯 모르는 사람이 널찍한 가구를 힘겨운 표정으로 함께 들고 들어섰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 표차장이 들고 있는 부분을 건네 받았다.
"차장님, 이게다 뭡니까?"
"허어! 손님 맞을 상이 없다는 소릴 자네 안사람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튼튼한 것으로 준비했네."
표차장의 말대로 인부가 포장지를 벗겨 바닥에 펴자 잔치상으로 손색이 없는데다 꽤 단단해 보였다. 단지 밥먹는 상으로만 쓰기에는 아까워 보일 정도로 튼튼했다.
"자, 이만하면 자네같은 어른이 올라가서 쇼를 해도 끄떡 없을 것 같지 않은가? 유대리가 보기에는 어때?"
"아, 예. 감사합니다. 차장님."
이때만해도 나는 표차장의 호기로운 말에 담긴 진의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표차장과 함께 자리에 상을 펴면서 아내의 점차 잦아드는 말을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거실에 상을 편 순간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앞치마를 두른 은아영과 서대리, 그리고 장모까지 나서 그간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상에 차리는 모습은 얼핏 보기에도 여늬 잔치집과 다름이 없게 보여 내가 아까 들었던 천부장과 아내의 통화내용이 악몽을 꾸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였다.
"허어! 원체 많이 차렸구먼, 유대리."
"이사님, 많이 드세요."
"유대리, 잔뜩 차렸는데 생선회는 이따가 술먹을 때 먹도록 하지.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명하늘 입장시켜야지."
강이사는 아내가 회사다닐 때 부르듯이 대리 직급을 그대로 호칭하며 스스럼없이 이것저것 주문했다. 이윽고 음식이 차려지자 딸 하늘이를 커다란 탁자앞에 세우고 돐의식을 진행하며 아내와 나까지 나란히 포즈를 잡게해 사진을 찍었다.
"자, 건배!"
"예, 부장님."
"그럼, 오늘의 주인공 명하늘을 위하여 할까."
천부장의 제안에 음식과 술을 마시며 나는 경각심을 가지고 신경을 모으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나를 잠재울것인지 권하는 술잔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여러사람들에게 장단을 맞췄다.
"유대리, 하늘이 한테 아무래도 담배는 안 좋겠지?"
강이사의 말에 눈치를 챈 아내는 장모에게 한 마디하였다.
"엄마, 아까 말씀드린대로 우리 하늘이 데리고 정미네로 가실래요."
"어! 알았어. 명서방, 나 하늘이 데리고 작은 딸네 갈테니 손님들 모자라지 않게 잘 모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모님,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저희가 부산피워서 내쫓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합니다. 제가 마음먹고 모처럼 초대했으니까 지금부터 화끈하게 노십시요. 저는 잠깐, 실례를 하겠습니다."
엊그제 해산한 처제네로 하늘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장모의 말에 나는 다시 퍼뜩 정신이 들며 장모를 배웅하고 이내 욕실에 들어서며 볼일을 보고 난다음 실내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허어! 명과장 말마따나 그럼 화끈하게 놀아 볼까. 건배를 해야 하는데."
"이사님, 명과장님이 자리에 앉는대로 건배하시죠."
서영은 대리의 낭랑한 목소리에 나는 윤혜미가 조제해준 약을 주머니에서 꺼내 입안에 머금었다. 이윽고 다시 내 자리에 앉아 좌중을 둘러보자 부서원들은 하나같이 묘한 열기에 들뜬 눈빛들이었다.
"자, 명과장, 앞에 잔들어."
부장의 권유에 내앞에 놓인 맥주컵에 가득 담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유대리도 이리와서 건배하지."
"예, 이사님."
"자, 그럼 화끈한 밤을 위하여~!"
"위하여!"
열기에 들뜬 강이사의 건배 제창에 나는 입속에 머금은 약을 의식하며 입만 크게 벌려 호응했다. 이윽고 술잔을 가져가는 순간 창백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마주보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아내의 모습에 확신을 하고 술을 입안에 부었다. 순간 지금까지 마신 술맛과 다른 것을 확실히 음미하며 술병을 들어 술을 가득채워 강이사에게 권했다.
"강, 이사님, 한 잔, 드, 드십시요."
"어! 그래."
"천, 천, 부장님도요."
나는 동공이 풀린 모습으로 변신하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표, 차~차장님도 드려..야..하는데 가, 가, 갑자기 눈이, 자..잠..."
"어허! 명과장, 이렇게 술이 약해서야... 명과장."
"조....조...금 ....쉬면..괜...."
"그래, 여기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부치게."
"예...죄...죄......"
나는 비틀거리며 표부열차장의 권유대로 쇼파에 몸을 뉘었다. 그러나 수면제를 해소하는 약을 먹었는데도 어찔거리는 것이 실제로 논꺼플이 잠겨들었갔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의식적으로 코를 골다 이윽고 새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 연기를 시작했다.
"드르릉"드릉"드릉"드르릉".......
"명과장!"
"...."
"뻗었는데요. 이사님."
"호호! 아영이가 지은 것하고, 제가 지은 것을 한꺼번에 먹었으니 명과장인들 견딜 수 있겠어요?"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며 득의양양한 서영은의 음성에 나는 분노를 느끼며 여섯끼나 되는 중화제를 한꺼번에 먹은 것을 깨닫고 내 선견지명에 고무되었다.
"흥! 내가 그럴줄알고 중화제를 여섯끼에 맞춰 먹었다."
내가 분노에 잠겨 속으로 삭이는 동안 아내의 걱정어린 말이 들려왔다.
"어머! 영은씨, 너무 많지 않아?"
"흥! 갈보년 같으니라고 그래도 제년 서방이라고 걱정되나보지?"
"아~"
갑자기 변신한 서영은의 태도에 당황한 아내가 어쩔줄을 몰라 입을 쩍 벌린 모습에 이어 은아영이 입을 열었다.
"호호! 유대리 언니, 걱정마. 여섯끼를 한꺼번에 복용하면 의사소견으로는 적어도 스무시간은 깨어나지 못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실한 것이 좋은데..."
"이사님, 그럼 아예 묶어 놓죠."
"그건 저한테 맞기시죠."
강이사의 말에 벌떡 일어선 표차장은 구석에 놓인 가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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