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패션트렌드를 분석하기 위해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배지수 차장이었다.
어디 오늘 새벽뿐이겠는가? 새로 부임한 백호준 부장이 디자인부로 온 이후부터 그녀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매일 일에 파묻혀서 지내고 있다.
“여보! 일어나요. 회사 늦겠어요!”
흔들어 깨우는 남편의 손길에 억지로 눈을 떼어보려고 노력해보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미간은 습관처럼 잔뜩 찌푸려지고 만다.
앞치마를 곱게 둘러 맨 남편의 보습. 그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밥 거의 다 됐으니까, 얼른 씻어요!”
아침밥이라고?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학창시절부터 자존심이 유독 강한 그녀였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악순이 배여사였을까? 일도, 사랑도, 성공도,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죽고 못 견딜 성격의 그녀였는데,
최근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1년 전, 남편은 다니던 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해서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몇 달간은 그나마 일자리를 다시 찾아보겠다고 노력을 하는 듯하더니, 이젠 아예 포기한 듯 전업주부를 자청하고 있다.
다행히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생활이야 그럭저럭 꾸려나간다고 하지만, 친정 식구들이며,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얼마나 낯이 화끈거리던지......
부부관계를 갖았던 때가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주제에 사내라고 남편은 간혹 그녀가 피곤에 지쳐 잠든 틈을 타서 몇 번이나 관계를 시도하려고 엉겨 붙으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그녀의 반응은 무척 쌀쌀했다.
“애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나라도 벌어야지.”
웬만한 사내 같았으면, 우선 달라붙어서 자신의 욕망부터 달래고 말았을 법도 한데, 저 남편이라는 작자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포기였다.
이젠, 아침마다 무능력한 남편을 대한다는 일이 짜증나는 하루의 시작일 뿐이다.
회사에서는 또 어떤가?
서은영 전 부장이 경쟁사로 이직을 한 후,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주변 직원들 모두들 자신을 차기 부장님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존경심을 내보이던 직원들은 생각지도 않은 낙하산 인사가 단행되자, 그녀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 했다.
그래, 그것도 좋다고 하자.
신임부장이 자신보다 유능한 경력자이고, 실력자가 왔더라면 그녀도 인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신임부장이라는 작자는 말도 안 되는 햇병아리 총각이었고, 더구나 디자인의 디 자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바닥의 신출내기였으니, 그녀의 자존심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기술부에서 근무했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란제리 회사에 근무한다는 작자가 어떻게 속옷소재조차 몰라서 솔리드(단색의 무늬가 없는 소재)와 프린트(솔리드의 반대로 단색이 아닌 여러 색으로 무늬를 놓은 것)를 구분조차 못하냔 말이다.
사실, 정유미 대리의 원단계약 건도 그녀로서는 황당하기만 한 코미디일 뿐이었다.
지금 장난하느냐고 호되게 꾸지람을 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냥 두고 보기로 마음을 돌렸던 것이다.
이 기회에 백부장이라는 작자가 얼마나 무능력한 인물인지,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두뇌회전이 빠른 그녀가 어찌 놓칠 소냐.
그리고 모든 상황은 그녀의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거래처에서 돈을 챙겼을 정유미는 회사를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대다가, 부하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백부장은 좌천이 되던가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면,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던 회사의 인사과와 디자인부 직원들은 그제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동안의 실수를 사죄하겠지......
땅바닥에 내던져졌던 그녀의 자존심도 되찾아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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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침은 먹고 출근하지 그래요?”
싫다는 대도 부득불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붙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한층 스트레스였다.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고 그래요. 정말 짜증나게......”
뒤를 돌아보면서 짜증을 내는 순간, 앞집 현관문이 열리는 기척을 느꼈고, 가뜩이나 단지 내에서 말 많기로 소문나 앞집 여자가 볼 새라 배지수는 빠른 손동작으로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반 뛰다시피 승용차로 달려왔건만, 이번에는 시동키가 먹히지 않는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시간을 보니, 전철을 이용한다면 간신히 회사에 도착할 수는 있을 것만 같았는데, 금방 따라 내려온 앞집 부부와 마주칠 일을 생각하니, 차안에서 쉽게 내릴 수도 없는 지경이 아닌가.
건너편에 주차된 자신들의 차량 앞에서 앞집 여자는 마치 남편을 전쟁터에라도 보내는 사람처럼 양쪽 볼에 키스를 하면서 갖은 호들갑을 다 떨고 있다.
‘재수 없는 여편네!’
결국 앞집 부부의 꼴같잖은 촌극이 모두 끝나고, 앞집 여자가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를 마치 훌라 댄서처럼 흔들면서 그녀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야 배지수는 자신의 승용차에서 내렸고, 헐레벌떡 전철역으로 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타보는 버스도 만원이었지만, 전철 안은 또 무슨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전철에 오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자리에 앉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라지만,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손잡이라도 잡았으면 하는 바램인데, 어찌어찌 밀리다 보니, 간신히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휴~ 산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야!’
화사한 분홍색 미니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왔건만, 이리저리 밀쳐오는 사람들로 인해서 옷을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조차 했다.
그런데, 이 얄궂은 느낌은 또 뭐란 말인가?
가뜩이나 부쩍 거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전동차 안이 온통 후덥지근했고, 오랜만에 차려입은 원피스 차림인지라, 몸매라도 틀어져 보일 새라 올인원(브래지어와 웨이스트니퍼, 거들이 합해진 스타일로 가슴, 허리, 힙, 복부의 형태를 보정하는 속옷)까지 착용한 마당이었기 때문에 온 몸이 땀에 젖은 듯 끈적거렸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지수가 무한정 솟구쳐 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녀의 타이트한 엉덩이를 누군가 자꾸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치한? 어떤 자식이 감히?’
평소에도 잔뜩 치켜 올라가 있는 그녀의 눈썹이 무섭도록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학창시절에는 그녀의 치켜 올라간 눈썹이 동기들한테 엄청난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깊은 눈매며, 갸름한 얼굴이며, 잔뜩 치켜 올라간 눈썹이 외국의 유명여배우 미셀파이퍼를 닮았다는 얘기...... 하지만, 화를 낼 때에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를 닮았다던가.
어쨌거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구미호에 가까웠다.
‘어디, 한번만 더 건드려보시지?’
남자라면 이제는 이가 갈리는 그녀가 아닌가. 무능한 남편이 그러했고, 아는 것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억세게 운만 좋은 백부장이 그러했다.
아니, 세상의 남자들이 다 그러했다. 바람나서 일찌감치 어머니와 그녀와 그녀의 형제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아버지란 작자가 그러했고, 학창시절에도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한번 잠자리를 갖기 위해서 안달을 했던 숱한 남학생들이 그러했다.
‘머리에 든 것도 없고, 힘자랑만 하고, 정액만 가득 들어찬 짐승!’
그녀가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 너 오늘 잘 걸렸다!’
긴장한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가 바싹 조여지면서 힘이 들어갔고, 그녀의 온 정신을 자신의 엉덩이에만 집중한 체 함정을 파놓았는데, 어라? 기껏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더니 영 감감무소식이 아닌가?
‘내가 잘못 느꼈던 걸까?’
허탈한 웃음을 내쏟는 순간, 그녀의 원피스 치맛자락이 살짝 들춰지는 느낌이 든다.
순간, 배지수의 긴장된 눈썹이 또 다시 치켜 올라갔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온 몸의 솜털을 곤두세웠는데, 잠시 후 맨살의 허벅지를 누군가 슬쩍 입질을 하듯 터치를 해왔다.
‘더러운 자식!’
생각 같아서는 곧장 손모가지를 낚아채고, 전철 안이 흔들리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상대방은 여간 조심스런 치한이 아니었던 듯 전철이 흔들리는 순간에만 살금살금 입질을 해왔기 때문에 배지수 자신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는 와중에서 녀석을 낚아채기란 보통일이 아닐 듯해서 녀석이 완전히 먹이를 물때가지 온통 신경만 곤두세울 따름이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플랫폼에 도착하는 열차가 크게 덜컹거리면서 멎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치한 녀석의 손길은 다급하게 그녀의 사타구니 중심부를 거칠게 터치하고는 다급하게 도망가는 것이었으니, 정말이지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낚아챌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는데.
사람들이 밀치고 내리는 통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양손을 모두 사용해서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손잡이를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고, 치한 녀석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듯 이번에는 아주 세밀한 동작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져왔다.
‘나, 나쁜 새끼!’
그녀의 남편에게조차도 함부로 허락하지 않는 귀한 보물단지를 근본도 모르는 잡놈에게 버젓이 내맡기고 있는 꼴이라니, 이보다 약 오르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은 그 근본도 모르는 잡놈이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더듬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리면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경멸하던 더러운 사내놈들의 손길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더할 수 없는 수치심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그나마 팬티 위에 보정용 속옷인 올인원을 입었다는 사실이 마치 정조대를 차기라도 한 것처럼 위안을 주긴 했지만.
‘그나저나, 이 변태 녀석의 손모가지를 당장 낚아채야 할 텐데......’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배지수는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손잡이에서 오른 손을 무의식 적인 듯 살그머니 차렷 자세로 내려놓았다.
치한 녀석이 또 다시 침범한다면 이번에는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녀석의 손을 낚아채리라 다짐하면서.
독산역에 전철이 도착하는 순간, 이번에도 낯선 손길이 그녀의 사타구니를 힘껏 어루만져왔고, 배지수는 분명 그의 손을 낚아챌 수 있었는데, 이상한 게 또 여자의 심리라고, 갑자기 상대방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이유는 무슨 까닭인지.
배지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상대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던 손가락이 타이트한 올인원의 밑단을 젖히면서 갈라진 대음순 사이를 파고들었고, 배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신음을 내쏟고 말았다.
“으흥......”
이제껏 자신의 엉덩이에 바짝 밀착되어 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인물이 사내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뒤로 돌아보는 순간 치한의 얼굴은 너무도 고상한 인상을 가진 삼십대 후반의 유부녀였던 탓이리라.
무언가 모를 안도감이 그녀의 긴장감을 한순간 느슨하게 만들었던 것이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침입한 손가락이 대범하게도 그녀의 대음순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같은 여자들이 보기에도 내가 섹시한 것일까?’
저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같은 여자에게서 욕망을 느낀다는 말이냐.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배지수에게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섹스라는 것 자체도 즐겨본지가 너무나 오래였던 탓에 그 느낌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 했었는데, 갑자기 뜨거운 욕망이 온 몸을 달구는 듯 했다.
배지수의 신음소리를 들었음이 분명했고, 그것을 허락으로 여긴 탓인지 사타구니 속에 들어온 손가락은 아예 그녀의 소음순을 활짝 벌리고는 좁은 동굴 속을 은근하게 탐닉하고 있었다.
‘어쩐지......남자 손 치고는 너무나 작고 보드랍다고 느꼈어.’
배지수의 얼굴에서 은근한 홍조가 떠올랐고, 그녀는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챌까 오히려 전전긍긍이 되어버렸다.
‘아, 이 느낌! 얼마만인가!’
같은 여자라서 일지는 몰라도 여자의 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분 좋은 애무가 이어졌고, 배지수는 여자가 작업하기 쉽도록 허벅지를 한층 더 벌려주고는 엉덩이를 한층 더 내밀었다.
‘하악......’
그녀의 내밀한 동굴에 침입한 손가락이 잘박잘박 물장구를 치면서 뛰어놀았고, 마치 시골 고향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아늑하기만 했다.
‘아흑......클리토리스도 좀 만져줬으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이곳은 사람들이 많은 전철 안이었고, 더구나 공공장소였으니.
할 수 없이 상대방의 손가락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자꾸만 엉덩이를 뒤로 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아니, 왜 자꾸만 밀치고 그래요?”
자신을 애무하던 귀부인이 갑자기 큰소리로 배지수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뭐야? 먼저 건드린 게 누군데?’
당황한 배지수가 황당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후다닥 그녀의 사타구니를 벗어나는 손길이 느껴졌고, 배지수의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그 도망가는 손길을 더듬어 ?았는데.
‘어머나! 이런 얌통머리 없는 녀석을 봤나?’
겨우 초등학교 3,4학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사내 녀석이 자신을 나무랐던 귀부인의 손을 움켜쥔 채, 자꾸만 제 엄마의 치마 뒤로 몸을 숨기려고 얼굴을 파묻는 것이 아닌가.
‘설마, 저 어린 녀석이 나를?’
약이 잔뜩 오른 배지수가 질 수 없다는 듯이 큰소리로 되받는다.
“아니, 이 아줌마가 지금 누구한테 뭐라고 그래요? 아들 교육이나 똑바로 시켜요. 어린 녀석이 누굴 닮아서 벌써 이렇게 밝히는 거야!”
“이, 이 여자가 미쳤나? 왜 멀쩡한 남의 아들한테 화를 내? 화를 내긴. 애가 기라도 죽으면 어떡하려고. 별 미친 년 다 봤네.”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귀부인은 기분 나쁘다는 투로 그녀를 덜컥 밀치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내렸고, 그 와중에도 사내 녀석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배지수를 환하게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원, 재수가 없으려니......’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누구를 탓하리요. 참을 수밖에.
간신히 출근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배지수의 눈에서는 또 다시 쌍심지가 켜질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출근을 못하리라 여겼던 정유미 대리가 천연덕스럽게 출근을 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어머! 차장님! 지금 오세요!”
마지못해서 답례를 건네긴 했지만, 마음이 영 불편하기만 했다.
더구나, 지금 여직원들의 작태가 정말이지 가관이지 않은가 말이다.
각양각색의 속옷을 입혀놓은 인체 바디 앞에서 백부장을 비롯한 여직원들이 농담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희희낙락이었기 때문이다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이런 재질을 뭐라고 부르죠? 난 이런 게 좋던데.”
“호호......시스루요. 우리 여직원들 중에서는 안효정 대리님이 즐겨 입죠......호.호.”
정유미 대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안효정 대리를 거론하자, 옆에 서 있던 안효정 대리가 눈을 흘기면서 특유의 코맹맹이 목소리로 되받는다.
“자기도 쪼금만 더 나이를 먹어 봐...... 빤쓰 하나를 입더라도 조금 더 야한 것만 찾게 되지.”
“호호호호......”
뭐가 저리들 좋다고 호들갑들인지. 배지수로서는 모든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은근슬쩍 배지수를 바라보던 호준이 인사치례로 건넨 말이 더욱 부아를 긁는 것이 아닌가.
“오늘 배차장님 안색이 너무 좋습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죠? 빨갛게 상기된 표정이 마치 새색시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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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여직원들과 어울려서 기분 좋게 출발한 아침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준의 낯빛은 점점 초췌하게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이 또 찾으세요.”
쭈뼛쭈뼛 다가온 강나영 주임이 호준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주 조심스런 말투를 건네 왔다.
“또?”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기로서니, 이건 아예 말려죽일 심산인가 보다. 되묻는 호준의 억양이 강했던 탓인지 강나영 주임이 오히려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어린 햇병아리 신입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눈치를 본단 말이냐. 모든 것은 다 자신의 잘못인 걸.
“아니, 오해하지 마! 강주임한테 화를 낸 게 아니니까.”
“그래도요. 제가 죄송해서......”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이라야지. 나랑 같이 근무하다 보면, 숱하게 봐야하는 모습일 테니까 지레 겁먹지는 말라 구.”
호준이 눈을 찡긋거리면서 대범한 모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나영 주임도 마지못한 듯 웃는 표정을 짓는다.
으이구. 착한 것.
그러나 대범한 모습도 잠시. 팀장실에 불려갔다가 내려온 호준의 표정은 아예 사색이 되어있었으니,
“차라리 사표를 내라고 하지...... 월급쟁이한테 2년간 감봉이라니, 도대체 말이 돼?”
자리에 앉자마자, 호준은 분한 듯 씨근덕거렸고, 주변에 앉아 있던 여직원들도 싸늘한 분위기 탓에 모두들 고개를 파묻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원인을 제공한 정유미 대리와 팀장실의 호출내용을 일일이 호준에게 알려야만 하는 강나영 주임의 표정은 호준보다 더 한층 굳을 수밖에.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 삼삼오오 일어서서 호준에게 다가왔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밥인들 제대로 넘어가겠는가.
“먼저들 식사하고 와요. 난 좀 생각할 게 있으니까.”
가장 죄책감에 시달렸던 정유미 대리와 강나영 주임도 더 이상 권하기 힘든 듯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갔는데,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강나영 주임이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어? 왜 다시 돌아와? 직원들이랑 같이 식사하지 않고?”
“예. 다시 나갈 거예요.”
뒷짐을 진 채, 주춤주춤 다가선 강나영 주임의 표정이 어쩐지 붉게 상기된 모습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호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강나영 주임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얼굴도 마주보지 않은 채, 무언가를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후다닥 뛰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게?’
물끄러미 내려다보니, 그것은 그녀가 방금 벗은 것 같은 보라색 꽃무늬의 팬티였고 그 위에는 조그만 쪽지가 한 장 얹혀 있었다.
『부장님! 힘내세요! 파이팅!』
* 첨엔 화이팅으로 썼는데, 한방불루스님 리플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파이팅이 맞는 표현인 것 같아서
고쳤습니다. 넌지시 언질주신 한방불루스님. 고맙습니다.
어디 오늘 새벽뿐이겠는가? 새로 부임한 백호준 부장이 디자인부로 온 이후부터 그녀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매일 일에 파묻혀서 지내고 있다.
“여보! 일어나요. 회사 늦겠어요!”
흔들어 깨우는 남편의 손길에 억지로 눈을 떼어보려고 노력해보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미간은 습관처럼 잔뜩 찌푸려지고 만다.
앞치마를 곱게 둘러 맨 남편의 보습. 그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밥 거의 다 됐으니까, 얼른 씻어요!”
아침밥이라고?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학창시절부터 자존심이 유독 강한 그녀였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악순이 배여사였을까? 일도, 사랑도, 성공도,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죽고 못 견딜 성격의 그녀였는데,
최근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1년 전, 남편은 다니던 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해서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몇 달간은 그나마 일자리를 다시 찾아보겠다고 노력을 하는 듯하더니, 이젠 아예 포기한 듯 전업주부를 자청하고 있다.
다행히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생활이야 그럭저럭 꾸려나간다고 하지만, 친정 식구들이며,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얼마나 낯이 화끈거리던지......
부부관계를 갖았던 때가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주제에 사내라고 남편은 간혹 그녀가 피곤에 지쳐 잠든 틈을 타서 몇 번이나 관계를 시도하려고 엉겨 붙으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그녀의 반응은 무척 쌀쌀했다.
“애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나라도 벌어야지.”
웬만한 사내 같았으면, 우선 달라붙어서 자신의 욕망부터 달래고 말았을 법도 한데, 저 남편이라는 작자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포기였다.
이젠, 아침마다 무능력한 남편을 대한다는 일이 짜증나는 하루의 시작일 뿐이다.
회사에서는 또 어떤가?
서은영 전 부장이 경쟁사로 이직을 한 후,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주변 직원들 모두들 자신을 차기 부장님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존경심을 내보이던 직원들은 생각지도 않은 낙하산 인사가 단행되자, 그녀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 했다.
그래, 그것도 좋다고 하자.
신임부장이 자신보다 유능한 경력자이고, 실력자가 왔더라면 그녀도 인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신임부장이라는 작자는 말도 안 되는 햇병아리 총각이었고, 더구나 디자인의 디 자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바닥의 신출내기였으니, 그녀의 자존심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기술부에서 근무했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란제리 회사에 근무한다는 작자가 어떻게 속옷소재조차 몰라서 솔리드(단색의 무늬가 없는 소재)와 프린트(솔리드의 반대로 단색이 아닌 여러 색으로 무늬를 놓은 것)를 구분조차 못하냔 말이다.
사실, 정유미 대리의 원단계약 건도 그녀로서는 황당하기만 한 코미디일 뿐이었다.
지금 장난하느냐고 호되게 꾸지람을 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냥 두고 보기로 마음을 돌렸던 것이다.
이 기회에 백부장이라는 작자가 얼마나 무능력한 인물인지,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두뇌회전이 빠른 그녀가 어찌 놓칠 소냐.
그리고 모든 상황은 그녀의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거래처에서 돈을 챙겼을 정유미는 회사를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대다가, 부하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백부장은 좌천이 되던가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면,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던 회사의 인사과와 디자인부 직원들은 그제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동안의 실수를 사죄하겠지......
땅바닥에 내던져졌던 그녀의 자존심도 되찾아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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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침은 먹고 출근하지 그래요?”
싫다는 대도 부득불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붙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한층 스트레스였다.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고 그래요. 정말 짜증나게......”
뒤를 돌아보면서 짜증을 내는 순간, 앞집 현관문이 열리는 기척을 느꼈고, 가뜩이나 단지 내에서 말 많기로 소문나 앞집 여자가 볼 새라 배지수는 빠른 손동작으로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반 뛰다시피 승용차로 달려왔건만, 이번에는 시동키가 먹히지 않는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시간을 보니, 전철을 이용한다면 간신히 회사에 도착할 수는 있을 것만 같았는데, 금방 따라 내려온 앞집 부부와 마주칠 일을 생각하니, 차안에서 쉽게 내릴 수도 없는 지경이 아닌가.
건너편에 주차된 자신들의 차량 앞에서 앞집 여자는 마치 남편을 전쟁터에라도 보내는 사람처럼 양쪽 볼에 키스를 하면서 갖은 호들갑을 다 떨고 있다.
‘재수 없는 여편네!’
결국 앞집 부부의 꼴같잖은 촌극이 모두 끝나고, 앞집 여자가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를 마치 훌라 댄서처럼 흔들면서 그녀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야 배지수는 자신의 승용차에서 내렸고, 헐레벌떡 전철역으로 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타보는 버스도 만원이었지만, 전철 안은 또 무슨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전철에 오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자리에 앉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라지만,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손잡이라도 잡았으면 하는 바램인데, 어찌어찌 밀리다 보니, 간신히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휴~ 산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야!’
화사한 분홍색 미니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왔건만, 이리저리 밀쳐오는 사람들로 인해서 옷을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조차 했다.
그런데, 이 얄궂은 느낌은 또 뭐란 말인가?
가뜩이나 부쩍 거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전동차 안이 온통 후덥지근했고, 오랜만에 차려입은 원피스 차림인지라, 몸매라도 틀어져 보일 새라 올인원(브래지어와 웨이스트니퍼, 거들이 합해진 스타일로 가슴, 허리, 힙, 복부의 형태를 보정하는 속옷)까지 착용한 마당이었기 때문에 온 몸이 땀에 젖은 듯 끈적거렸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지수가 무한정 솟구쳐 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녀의 타이트한 엉덩이를 누군가 자꾸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치한? 어떤 자식이 감히?’
평소에도 잔뜩 치켜 올라가 있는 그녀의 눈썹이 무섭도록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학창시절에는 그녀의 치켜 올라간 눈썹이 동기들한테 엄청난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깊은 눈매며, 갸름한 얼굴이며, 잔뜩 치켜 올라간 눈썹이 외국의 유명여배우 미셀파이퍼를 닮았다는 얘기...... 하지만, 화를 낼 때에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를 닮았다던가.
어쨌거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구미호에 가까웠다.
‘어디, 한번만 더 건드려보시지?’
남자라면 이제는 이가 갈리는 그녀가 아닌가. 무능한 남편이 그러했고, 아는 것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억세게 운만 좋은 백부장이 그러했다.
아니, 세상의 남자들이 다 그러했다. 바람나서 일찌감치 어머니와 그녀와 그녀의 형제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아버지란 작자가 그러했고, 학창시절에도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한번 잠자리를 갖기 위해서 안달을 했던 숱한 남학생들이 그러했다.
‘머리에 든 것도 없고, 힘자랑만 하고, 정액만 가득 들어찬 짐승!’
그녀가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 너 오늘 잘 걸렸다!’
긴장한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가 바싹 조여지면서 힘이 들어갔고, 그녀의 온 정신을 자신의 엉덩이에만 집중한 체 함정을 파놓았는데, 어라? 기껏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더니 영 감감무소식이 아닌가?
‘내가 잘못 느꼈던 걸까?’
허탈한 웃음을 내쏟는 순간, 그녀의 원피스 치맛자락이 살짝 들춰지는 느낌이 든다.
순간, 배지수의 긴장된 눈썹이 또 다시 치켜 올라갔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온 몸의 솜털을 곤두세웠는데, 잠시 후 맨살의 허벅지를 누군가 슬쩍 입질을 하듯 터치를 해왔다.
‘더러운 자식!’
생각 같아서는 곧장 손모가지를 낚아채고, 전철 안이 흔들리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상대방은 여간 조심스런 치한이 아니었던 듯 전철이 흔들리는 순간에만 살금살금 입질을 해왔기 때문에 배지수 자신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는 와중에서 녀석을 낚아채기란 보통일이 아닐 듯해서 녀석이 완전히 먹이를 물때가지 온통 신경만 곤두세울 따름이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플랫폼에 도착하는 열차가 크게 덜컹거리면서 멎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치한 녀석의 손길은 다급하게 그녀의 사타구니 중심부를 거칠게 터치하고는 다급하게 도망가는 것이었으니, 정말이지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낚아챌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는데.
사람들이 밀치고 내리는 통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양손을 모두 사용해서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손잡이를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고, 치한 녀석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듯 이번에는 아주 세밀한 동작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져왔다.
‘나, 나쁜 새끼!’
그녀의 남편에게조차도 함부로 허락하지 않는 귀한 보물단지를 근본도 모르는 잡놈에게 버젓이 내맡기고 있는 꼴이라니, 이보다 약 오르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은 그 근본도 모르는 잡놈이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더듬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리면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경멸하던 더러운 사내놈들의 손길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더할 수 없는 수치심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그나마 팬티 위에 보정용 속옷인 올인원을 입었다는 사실이 마치 정조대를 차기라도 한 것처럼 위안을 주긴 했지만.
‘그나저나, 이 변태 녀석의 손모가지를 당장 낚아채야 할 텐데......’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배지수는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손잡이에서 오른 손을 무의식 적인 듯 살그머니 차렷 자세로 내려놓았다.
치한 녀석이 또 다시 침범한다면 이번에는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녀석의 손을 낚아채리라 다짐하면서.
독산역에 전철이 도착하는 순간, 이번에도 낯선 손길이 그녀의 사타구니를 힘껏 어루만져왔고, 배지수는 분명 그의 손을 낚아챌 수 있었는데, 이상한 게 또 여자의 심리라고, 갑자기 상대방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이유는 무슨 까닭인지.
배지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상대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던 손가락이 타이트한 올인원의 밑단을 젖히면서 갈라진 대음순 사이를 파고들었고, 배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신음을 내쏟고 말았다.
“으흥......”
이제껏 자신의 엉덩이에 바짝 밀착되어 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인물이 사내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뒤로 돌아보는 순간 치한의 얼굴은 너무도 고상한 인상을 가진 삼십대 후반의 유부녀였던 탓이리라.
무언가 모를 안도감이 그녀의 긴장감을 한순간 느슨하게 만들었던 것이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침입한 손가락이 대범하게도 그녀의 대음순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같은 여자들이 보기에도 내가 섹시한 것일까?’
저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같은 여자에게서 욕망을 느낀다는 말이냐.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배지수에게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섹스라는 것 자체도 즐겨본지가 너무나 오래였던 탓에 그 느낌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 했었는데, 갑자기 뜨거운 욕망이 온 몸을 달구는 듯 했다.
배지수의 신음소리를 들었음이 분명했고, 그것을 허락으로 여긴 탓인지 사타구니 속에 들어온 손가락은 아예 그녀의 소음순을 활짝 벌리고는 좁은 동굴 속을 은근하게 탐닉하고 있었다.
‘어쩐지......남자 손 치고는 너무나 작고 보드랍다고 느꼈어.’
배지수의 얼굴에서 은근한 홍조가 떠올랐고, 그녀는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챌까 오히려 전전긍긍이 되어버렸다.
‘아, 이 느낌! 얼마만인가!’
같은 여자라서 일지는 몰라도 여자의 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분 좋은 애무가 이어졌고, 배지수는 여자가 작업하기 쉽도록 허벅지를 한층 더 벌려주고는 엉덩이를 한층 더 내밀었다.
‘하악......’
그녀의 내밀한 동굴에 침입한 손가락이 잘박잘박 물장구를 치면서 뛰어놀았고, 마치 시골 고향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아늑하기만 했다.
‘아흑......클리토리스도 좀 만져줬으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이곳은 사람들이 많은 전철 안이었고, 더구나 공공장소였으니.
할 수 없이 상대방의 손가락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자꾸만 엉덩이를 뒤로 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아니, 왜 자꾸만 밀치고 그래요?”
자신을 애무하던 귀부인이 갑자기 큰소리로 배지수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뭐야? 먼저 건드린 게 누군데?’
당황한 배지수가 황당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후다닥 그녀의 사타구니를 벗어나는 손길이 느껴졌고, 배지수의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그 도망가는 손길을 더듬어 ?았는데.
‘어머나! 이런 얌통머리 없는 녀석을 봤나?’
겨우 초등학교 3,4학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사내 녀석이 자신을 나무랐던 귀부인의 손을 움켜쥔 채, 자꾸만 제 엄마의 치마 뒤로 몸을 숨기려고 얼굴을 파묻는 것이 아닌가.
‘설마, 저 어린 녀석이 나를?’
약이 잔뜩 오른 배지수가 질 수 없다는 듯이 큰소리로 되받는다.
“아니, 이 아줌마가 지금 누구한테 뭐라고 그래요? 아들 교육이나 똑바로 시켜요. 어린 녀석이 누굴 닮아서 벌써 이렇게 밝히는 거야!”
“이, 이 여자가 미쳤나? 왜 멀쩡한 남의 아들한테 화를 내? 화를 내긴. 애가 기라도 죽으면 어떡하려고. 별 미친 년 다 봤네.”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귀부인은 기분 나쁘다는 투로 그녀를 덜컥 밀치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내렸고, 그 와중에도 사내 녀석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배지수를 환하게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원, 재수가 없으려니......’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누구를 탓하리요. 참을 수밖에.
간신히 출근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배지수의 눈에서는 또 다시 쌍심지가 켜질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출근을 못하리라 여겼던 정유미 대리가 천연덕스럽게 출근을 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어머! 차장님! 지금 오세요!”
마지못해서 답례를 건네긴 했지만, 마음이 영 불편하기만 했다.
더구나, 지금 여직원들의 작태가 정말이지 가관이지 않은가 말이다.
각양각색의 속옷을 입혀놓은 인체 바디 앞에서 백부장을 비롯한 여직원들이 농담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희희낙락이었기 때문이다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이런 재질을 뭐라고 부르죠? 난 이런 게 좋던데.”
“호호......시스루요. 우리 여직원들 중에서는 안효정 대리님이 즐겨 입죠......호.호.”
정유미 대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안효정 대리를 거론하자, 옆에 서 있던 안효정 대리가 눈을 흘기면서 특유의 코맹맹이 목소리로 되받는다.
“자기도 쪼금만 더 나이를 먹어 봐...... 빤쓰 하나를 입더라도 조금 더 야한 것만 찾게 되지.”
“호호호호......”
뭐가 저리들 좋다고 호들갑들인지. 배지수로서는 모든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은근슬쩍 배지수를 바라보던 호준이 인사치례로 건넨 말이 더욱 부아를 긁는 것이 아닌가.
“오늘 배차장님 안색이 너무 좋습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죠? 빨갛게 상기된 표정이 마치 새색시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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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여직원들과 어울려서 기분 좋게 출발한 아침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준의 낯빛은 점점 초췌하게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이 또 찾으세요.”
쭈뼛쭈뼛 다가온 강나영 주임이 호준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주 조심스런 말투를 건네 왔다.
“또?”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기로서니, 이건 아예 말려죽일 심산인가 보다. 되묻는 호준의 억양이 강했던 탓인지 강나영 주임이 오히려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어린 햇병아리 신입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눈치를 본단 말이냐. 모든 것은 다 자신의 잘못인 걸.
“아니, 오해하지 마! 강주임한테 화를 낸 게 아니니까.”
“그래도요. 제가 죄송해서......”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이라야지. 나랑 같이 근무하다 보면, 숱하게 봐야하는 모습일 테니까 지레 겁먹지는 말라 구.”
호준이 눈을 찡긋거리면서 대범한 모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나영 주임도 마지못한 듯 웃는 표정을 짓는다.
으이구. 착한 것.
그러나 대범한 모습도 잠시. 팀장실에 불려갔다가 내려온 호준의 표정은 아예 사색이 되어있었으니,
“차라리 사표를 내라고 하지...... 월급쟁이한테 2년간 감봉이라니, 도대체 말이 돼?”
자리에 앉자마자, 호준은 분한 듯 씨근덕거렸고, 주변에 앉아 있던 여직원들도 싸늘한 분위기 탓에 모두들 고개를 파묻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원인을 제공한 정유미 대리와 팀장실의 호출내용을 일일이 호준에게 알려야만 하는 강나영 주임의 표정은 호준보다 더 한층 굳을 수밖에.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 삼삼오오 일어서서 호준에게 다가왔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밥인들 제대로 넘어가겠는가.
“먼저들 식사하고 와요. 난 좀 생각할 게 있으니까.”
가장 죄책감에 시달렸던 정유미 대리와 강나영 주임도 더 이상 권하기 힘든 듯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갔는데,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강나영 주임이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어? 왜 다시 돌아와? 직원들이랑 같이 식사하지 않고?”
“예. 다시 나갈 거예요.”
뒷짐을 진 채, 주춤주춤 다가선 강나영 주임의 표정이 어쩐지 붉게 상기된 모습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호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강나영 주임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얼굴도 마주보지 않은 채, 무언가를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후다닥 뛰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게?’
물끄러미 내려다보니, 그것은 그녀가 방금 벗은 것 같은 보라색 꽃무늬의 팬티였고 그 위에는 조그만 쪽지가 한 장 얹혀 있었다.
『부장님! 힘내세요! 파이팅!』
* 첨엔 화이팅으로 썼는데, 한방불루스님 리플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파이팅이 맞는 표현인 것 같아서
고쳤습니다. 넌지시 언질주신 한방불루스님. 고맙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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