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전화 안 받지?”
퇴근 시간,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갔고, 맨 마지막에 힘없이 문을 나서는 정유미 대리를 붙잡고 넌지시 물어봤을 때,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역시 예상대로 돌아가는군. 이태석 그 인간이 쉽게 돈을 넘길 까닭이 없지.’
정유미 대리 아버지의 치료비만 아니라면, 그 염병할 인간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하는 방법이야 쉬운 일이겠지만, 문제는 정유미 대리의 돈을 받아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름 골치가 아파진다.
그렇기로서니, 가뜩이나 이런저런 상심이 큰 정유미 대리 앞에서 굳이 자신조차 심각한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애써 태연한 척 얘기했다.
“며칠만 참고 기다려 봐! 정대리 아버님 치료비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받아낼 테니까......”
“아, 아니에요. 어차피 정당한 돈도 아닌걸요. 부장님을 속인 것도 죄송하고, 또 저 때문에 월급까지 감봉되셨잖아요......”
“아, 참...... 내 월급!”
그제야 깜박 잊어버렸던 월급 감봉 건이 떠오르자, 호준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죄, 죄송해요! 부장님!”
“아니야. 괜, 괜찮아! 뭐, 그런 것 같고, 그래...... 몇 푼 되지도 않는데.”
“그래도요......배차장님 얘기로는 기본급에서 10% 정도 될 거라고 하던데요?”
“뭐? 10%씩이나? 그렇게나 많이?”
“죄, 죄송해요......”
“아, 아니야! 하하......”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웃고 있었으나, 속마음이야 어찌 쓰리지 않겠는가.
‘아까 강현희 팀장한테 들을 때에는 감봉이라는 말에 워낙 충격을 받아서 나머지 얘기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렇게나 많았나?’
실망한 호준의 표정을 미안한 듯 바라보던 정유미 대리가 무언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갚아 드릴게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래도 그러네. 치료비도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내 감봉 분까지 갚아주겠다고 그래?”
호준이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정유미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위로했을 때,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던 정유미가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정 안되면......몸이라도 팔아야죠.”
‘지금 몸이라도 팔겠다고 얘기한 거야?’
“그건 안 돼!”
호준이 다급하게 막아서자, 정유미 대리가 의아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왜 안 되는데요?”
“그, 그게 그러니깐......하여간 안 돼!”
호준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쉽게 대답을 못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유미 대리의 얼굴에서 잠깐 화색이 돌았다.
“그러니까 왜 안 되냐 구요? 혹시 부장님! 절 좋아하세요?”
은근슬쩍 흘겨보는 눈매에서 야릇한 여인의 교태가 넘쳐나는 것이 남자 여럿 잡을 품새가 아니던가.
히야. 이런 요물을 봤나? 정유미도 정유미지만, 이런 요물을 껍질만 홀라당 벗겨 먹은 이태석 부장도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내가 먹긴 조금 찝찌름하고, 남 주긴 정말 아까운데. 이런 심보를 도둑놈 심보라고 하던가?
호준이 쉽게 대답을 못하고,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고 있자, 정유미 대리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호호.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세요. 그냥 해본 소린데, 다만......몸이라도 팔아서 갚겠다는 말은 진심이에요.”
“허......그러니깐, 그건 안 되는 말이래도.”
“왜요? 제가 많이 부족한 가요?”
정유미 대리가 갑자기 자신의 유방을 양손으로 받쳐 올리고는 불룩 내밀었기 때문에 호준은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왜 이래?”
“돈을 갚을 능력은 없으니깐, 몸으로 때우겠다고요, 왜요? 맘에 안 드세요?”
아하. 몸을 팔겠다는 얘기가 이런 뜻이었어?
맘에 안 들 까닭이 있나? 감봉이 이렇게나 좋은 거라면 우리 디자인부 여직원들이 모두들 한번 씩만 사고를 쳐줬으면 좋겠는걸. 킥. 킥. 킥.
“단, 월급 감봉 기간까지니까, 딱 2년간만 이에요.”
“그렇게라도 해야지 정대리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나야 뭐......”
젠장, 기왕이면 한 5년 정도 감봉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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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패션이죠? 홍선미 기자님 좀 부탁드립니다.”
호준이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은 몹시 바쁜 듯 귀찮다는 투로 홍선미 기자가 취재차 자리를 비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메모 좀 남겨주시겠어요. 저는 백호준이라고 합니다.”
“백......호준씨......”
상대방에서 호준의 이름을 반복하는 순간, 누군가 상대방의 수화기를 확 낚아채는 음향이 들려왔고, 다짜고짜 질문이 건너오는 것이 아닌가.
“당신! 지금 어디에요?”
오호라. 기자 아가씨께서 아주 단단히 급했나 보군.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왠지 더욱 곯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또 무슨 까닭인지.
“제가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흥. 그걸 말이라고 해요? 어디에요? 내가 금방 갈께요.”
“아니, 사실은 부탁을 좀 드릴 일이 있어서요......”
“알았으니까, 만나서 얘기해요. 우리. 어디로 가면 될까요?”
글쎄. 어디가 좋을까? 잠깐 궁리를 하던 호준의 머릿속에서 마침 그럴싸한 장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조용한 장소에서 얘기하고 싶으니까, 이현지양 원룸에서 만나기로 하죠. 오랜만에 현지도 좀 볼 겸.”
“그럼, 현지랑은 그동안 서로 연락하고 지냈던 거예요?”
홍선미의 목소리에서 묘한 질투심과 서운함 느껴진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마침, 현지한테도 부탁할 것이 있어서요.”
“...... 알겠어요.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호준은 곧장 이현지에게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는 수준이었다.
“오빠, 정말 너무해요. 그렇게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미안해. 너무 바빠서 그랬어.”
“독고빈이랑은 자주 만났을 거 아니에요?”
하여간, 여자들이란......
“빈이도 대학 들어가서 적응하느라고 바쁘기 때문에 거의 못 만났어.”
“정말?”
“응. 오늘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네 원룸으로 찾아가도 될까?”
“당근이쥐~. 빨랑 와요.”
들뜬 이현지가 전화를 끊으려는 찰라, 호준은 깜박 잊었던 것이 있었던 듯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참, 홍선미 기자도 갈 거야!”
“홍기자 언니? 그 언니는 왜?”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할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호준의 마법에 녹아난 터.
“내가 좀 부탁을 할 일이 있거든......”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호준의 얼굴에서 야릇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킥. 킥.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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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뺑소니 사고 뒷조사를 해달라는 말이에요?”
쟁반위에 놓여있던 술잔이 이미 몇 순배 돌았기 때문에, 홍선미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상태였고, 그녀는 취기 탓인지 자세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활동성이 강한 청바지 대신 회색 정장차림이었는데, 술상 건너편에서 자주 자세를 고쳐 앉는 탓에 짧은 치마사이로 검은색 팬티가 적나라하게 노출되곤 했다.
정면에 앉은 호준의 시선이 자꾸만 얄궂은 그녀의 허벅지에 내리꽂히고 있었음을 분명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혹시나 경찰 쪽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예전에 사회부 기자를 맡은 적이 있으니까, 아는 사람이야 몇 명 있죠. 그렇지만, 내가 왜 백호준씨를 도와주어야 하죠?”
오호. 이것 봐라! 양동 공격을 펼쳐오는군.
아래 입과 윗입이 서로 다른 전술을 전개하면서 나를 애먹여 보겠다는 심산이로군.
만만치는 않을 거라고 내심 생각은 했지만, 기자라서 그런지 여간내기가 아니네.
“뭐 꼭 도와달라는 부탁은 아닙니다. 다만, 정대리 사정이 너무 딱한 것 같아서 그렇죠. 그리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생각 같아서는 양쪽 구멍에 약물이나 듬뿍 발라서 꼼짝달싹 못하고, 애원을 하게끔 만들고 싶었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약물을 남발한다는 것은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또한 홍선미의 거침없는 성격상 어떤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지도 미지수였고.
그때, 호준의 우측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이현지가 갑자기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아휴. 더워! 술기운이 오르니깐 무지 덥네.”
어린 나이라고 어디 여자의 본능인 직감조차 어릴 소냐. 호준의 시선이 자꾸만 홍선미의 치맛자락 속에 꽂히는 것이 싫었음이 분명하리라.
늘씬한 이현지가 새하얀 브래지어 차림이 되자, 홍선미가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사회경험이 노련한 언니답게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랬다.
“현지야!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남자 앞에서 그런 차림으로 있으면 어떡해!”
“뭐, 어때요. 오빠랑은 이미 볼 것 다 본 사인데, 더우면 언니도 벗지 그래요?”
한바탕 쏘아붙인 이현지가 호준을 바라보면서 생긋 미소를 짓는다.
“오빠! 나한테는 뭐 부탁할 것 없어요? 난 뭐든지 다 들어줄 수 있는데.”
순간, 이현지를 바라보는 홍선미의 안색에서 언뜻 살의까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오호......철부지 아가씨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겠는걸.’
“현지한테도 당연히 부탁할 일이 있지.”
“뭔데요?”
“그건 조금 있다가 단둘이 얘기하자.”
호준의 질투심 유발 작전이 나름 성공을 거둔 듯 홍선미는 약이 바짝 오른 표정이다.
“홍기자님께서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부탁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 제가 식사 대접 한번 하죠.”
말은 정중한 듯 했으나, 내용인 즉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죽 쒀서 개준다고. 머리가 텅 빈 어린 계집애 때문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홍선미의 자존심이 일순간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젠 뭐 이판사판일 수밖에.
이현지를 한껏 째려보던 홍선미가 질 수 없다는 듯 오기를 부린다.
“내 대답 아직 안 끝났어요...... 그런데, 정말 왜 이렇게 더운 거야!”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정장상의를 벗어던진 홍선미가 이현지처럼 브래지어만을 남겨두고는 블라우스도 벗어던졌고, 그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던지, 아예 자리에 앉은 채로 스커트까지 벗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모델인 이현지의 늘씬하고, 탱글탱글한 몸매야 워낙 쭉쭉빵빵이라지만, 이십대 후반의 성숙한 여체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 괜찮긴 하군. 더구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여기자님께서 속옷차림으로 자존심까지 팽개친 모습이라니.
홍선미가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들이밀면서 건배를 제의해왔다.
“자, 건배하죠. 우리! 뺑소니 사건의 해결을 위하여!”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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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맥주에 양주 폭탄주까지 연거푸 들이켰기 때문에 호준도 얼근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내심 스리섬을 기대했건만, 두 여자의 신경전이 은근히 서로를 견제했기 때문에 누구 한사람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결국 분위기는 술판으로만 이어졌던 까닭이다.
“호준씨! 나 좀 일으켜줄래요?”
술이 가장 약했던 이현지가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자신의 침대위로 올라가서 눕자, 홍선미가 어눌한 발음으로 부탁해왔다.
“왜요?”
“화, 화장실 좀......”
“그러죠, 뭐.”
홍선미의 왼팔을 감아서 자신의 어깨 위에 두르고 몸을 일으키는데, 브래지어 속에 담긴 풍만한 젖가슴이 호준의 옆구리에 물컹거리면서 밀착해왔기 때문에 야릇한 설렘이 느껴졌다.
변기까지 부축해가서 앉히려고 몸을 굽히는 순간, 홍선미의 입술이 호준의 입술을 덮어왔다.
쭈웁~
같은 술을 마셨는데도, 어째서 여자의 입술은 이렇게나 향긋한 것인지.
입술이 떼어진 순간, 홍선미가 그의 목을 감싸 안은 채, 귓속에 속삭여왔다.
“물어볼게 있어요.”
“뭔데요?”
“지난번에 나한테 했던 거...... 어떤 방법이었죠?”
“지난번에 했던 거라니요?”
순간,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기자라는 그녀의 직업이 어쩐지 꺼림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면은 아닌 것 같고, 약물반응도 정상으로 나왔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역시 기자였기 때문인지 그녀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조사를 했고, 검사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냥, 마술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마술? 정말 마술이란 말이에요? 핏...... 거짓말! 이 세상에 그런 마술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는걸.”
“얼른 볼일이나 마저 보고 나오시죠.”
호준이 들러붙는 그녀의 팔을 억지로 풀고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가 애원을 하듯 더욱 달라붙으면서 투정을 부렸다.
“싫어! 이대로는......한번만 더 보여줘요. 그 마술.”
“지금? 여기에서?”
“아무려면 어때요. 변태 아저씨! 처음부터 현지네 원룸으로 오라고 할 때부터 각오했는걸.”
오호라. 그녀도 내심 스리섬을 예상했었나 보군. 젠장, 진즉에 까놓고 얘기하지 왜 이제 와서......
이현지가 잠들기 전에 셋이 즐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정말이지 아까운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호준의 실망감을 눈치 챈 듯 홍선미가 한껏 눈을 흘긴다.
“하여간, 남자들은 못 말린다니까. 이봐요, 변태아저씨! 지금 현지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엥? 이건 또 뭔 귀신 씨 나락 까는 소리란 말이냐?
“그럼, 잠든 거 아닌가요?”
“호호. 절대로......”
아니, 이것들이 좀 전에는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더니, 결국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단 말인가? 순간, 홍선미가 마치 혼잣말을 읊조리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절대로, 그냥 잠들 리가 없지......당신이란 사람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여자로서 섹스상대를 공유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했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포기할 만큼 그렇게 좋았던 것일까?
어쩐지 그녀의 혼잣말이 이상하게도 가슴 속을 짓누르는 듯 했고, 갑자기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선미씨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여자예요. 좋습니다. 내가 마술을 부려주죠. 눈을 감아요.”
호준이 주머니 속에서 시약병의 뚜껑을 따는 순간, 홍선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여기서는......현지 옆에 눕혀주세요. 어차피 당신이라는 남자, 내가 혼자 가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말을 마친 그녀가 살그머니 두 눈을 감은 채, 그의 품에 안겨왔다.
퇴근 시간,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갔고, 맨 마지막에 힘없이 문을 나서는 정유미 대리를 붙잡고 넌지시 물어봤을 때,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역시 예상대로 돌아가는군. 이태석 그 인간이 쉽게 돈을 넘길 까닭이 없지.’
정유미 대리 아버지의 치료비만 아니라면, 그 염병할 인간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하는 방법이야 쉬운 일이겠지만, 문제는 정유미 대리의 돈을 받아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름 골치가 아파진다.
그렇기로서니, 가뜩이나 이런저런 상심이 큰 정유미 대리 앞에서 굳이 자신조차 심각한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애써 태연한 척 얘기했다.
“며칠만 참고 기다려 봐! 정대리 아버님 치료비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받아낼 테니까......”
“아, 아니에요. 어차피 정당한 돈도 아닌걸요. 부장님을 속인 것도 죄송하고, 또 저 때문에 월급까지 감봉되셨잖아요......”
“아, 참...... 내 월급!”
그제야 깜박 잊어버렸던 월급 감봉 건이 떠오르자, 호준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죄, 죄송해요! 부장님!”
“아니야. 괜, 괜찮아! 뭐, 그런 것 같고, 그래...... 몇 푼 되지도 않는데.”
“그래도요......배차장님 얘기로는 기본급에서 10% 정도 될 거라고 하던데요?”
“뭐? 10%씩이나? 그렇게나 많이?”
“죄, 죄송해요......”
“아, 아니야! 하하......”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웃고 있었으나, 속마음이야 어찌 쓰리지 않겠는가.
‘아까 강현희 팀장한테 들을 때에는 감봉이라는 말에 워낙 충격을 받아서 나머지 얘기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렇게나 많았나?’
실망한 호준의 표정을 미안한 듯 바라보던 정유미 대리가 무언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갚아 드릴게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래도 그러네. 치료비도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내 감봉 분까지 갚아주겠다고 그래?”
호준이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정유미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위로했을 때,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던 정유미가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정 안되면......몸이라도 팔아야죠.”
‘지금 몸이라도 팔겠다고 얘기한 거야?’
“그건 안 돼!”
호준이 다급하게 막아서자, 정유미 대리가 의아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왜 안 되는데요?”
“그, 그게 그러니깐......하여간 안 돼!”
호준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쉽게 대답을 못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유미 대리의 얼굴에서 잠깐 화색이 돌았다.
“그러니까 왜 안 되냐 구요? 혹시 부장님! 절 좋아하세요?”
은근슬쩍 흘겨보는 눈매에서 야릇한 여인의 교태가 넘쳐나는 것이 남자 여럿 잡을 품새가 아니던가.
히야. 이런 요물을 봤나? 정유미도 정유미지만, 이런 요물을 껍질만 홀라당 벗겨 먹은 이태석 부장도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내가 먹긴 조금 찝찌름하고, 남 주긴 정말 아까운데. 이런 심보를 도둑놈 심보라고 하던가?
호준이 쉽게 대답을 못하고,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고 있자, 정유미 대리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호호.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세요. 그냥 해본 소린데, 다만......몸이라도 팔아서 갚겠다는 말은 진심이에요.”
“허......그러니깐, 그건 안 되는 말이래도.”
“왜요? 제가 많이 부족한 가요?”
정유미 대리가 갑자기 자신의 유방을 양손으로 받쳐 올리고는 불룩 내밀었기 때문에 호준은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왜 이래?”
“돈을 갚을 능력은 없으니깐, 몸으로 때우겠다고요, 왜요? 맘에 안 드세요?”
아하. 몸을 팔겠다는 얘기가 이런 뜻이었어?
맘에 안 들 까닭이 있나? 감봉이 이렇게나 좋은 거라면 우리 디자인부 여직원들이 모두들 한번 씩만 사고를 쳐줬으면 좋겠는걸. 킥. 킥. 킥.
“단, 월급 감봉 기간까지니까, 딱 2년간만 이에요.”
“그렇게라도 해야지 정대리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나야 뭐......”
젠장, 기왕이면 한 5년 정도 감봉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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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패션이죠? 홍선미 기자님 좀 부탁드립니다.”
호준이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은 몹시 바쁜 듯 귀찮다는 투로 홍선미 기자가 취재차 자리를 비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메모 좀 남겨주시겠어요. 저는 백호준이라고 합니다.”
“백......호준씨......”
상대방에서 호준의 이름을 반복하는 순간, 누군가 상대방의 수화기를 확 낚아채는 음향이 들려왔고, 다짜고짜 질문이 건너오는 것이 아닌가.
“당신! 지금 어디에요?”
오호라. 기자 아가씨께서 아주 단단히 급했나 보군.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왠지 더욱 곯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또 무슨 까닭인지.
“제가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흥. 그걸 말이라고 해요? 어디에요? 내가 금방 갈께요.”
“아니, 사실은 부탁을 좀 드릴 일이 있어서요......”
“알았으니까, 만나서 얘기해요. 우리. 어디로 가면 될까요?”
글쎄. 어디가 좋을까? 잠깐 궁리를 하던 호준의 머릿속에서 마침 그럴싸한 장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조용한 장소에서 얘기하고 싶으니까, 이현지양 원룸에서 만나기로 하죠. 오랜만에 현지도 좀 볼 겸.”
“그럼, 현지랑은 그동안 서로 연락하고 지냈던 거예요?”
홍선미의 목소리에서 묘한 질투심과 서운함 느껴진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마침, 현지한테도 부탁할 것이 있어서요.”
“...... 알겠어요.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호준은 곧장 이현지에게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는 수준이었다.
“오빠, 정말 너무해요. 그렇게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미안해. 너무 바빠서 그랬어.”
“독고빈이랑은 자주 만났을 거 아니에요?”
하여간, 여자들이란......
“빈이도 대학 들어가서 적응하느라고 바쁘기 때문에 거의 못 만났어.”
“정말?”
“응. 오늘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네 원룸으로 찾아가도 될까?”
“당근이쥐~. 빨랑 와요.”
들뜬 이현지가 전화를 끊으려는 찰라, 호준은 깜박 잊었던 것이 있었던 듯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참, 홍선미 기자도 갈 거야!”
“홍기자 언니? 그 언니는 왜?”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할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호준의 마법에 녹아난 터.
“내가 좀 부탁을 할 일이 있거든......”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호준의 얼굴에서 야릇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킥. 킥.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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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뺑소니 사고 뒷조사를 해달라는 말이에요?”
쟁반위에 놓여있던 술잔이 이미 몇 순배 돌았기 때문에, 홍선미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상태였고, 그녀는 취기 탓인지 자세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활동성이 강한 청바지 대신 회색 정장차림이었는데, 술상 건너편에서 자주 자세를 고쳐 앉는 탓에 짧은 치마사이로 검은색 팬티가 적나라하게 노출되곤 했다.
정면에 앉은 호준의 시선이 자꾸만 얄궂은 그녀의 허벅지에 내리꽂히고 있었음을 분명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혹시나 경찰 쪽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예전에 사회부 기자를 맡은 적이 있으니까, 아는 사람이야 몇 명 있죠. 그렇지만, 내가 왜 백호준씨를 도와주어야 하죠?”
오호. 이것 봐라! 양동 공격을 펼쳐오는군.
아래 입과 윗입이 서로 다른 전술을 전개하면서 나를 애먹여 보겠다는 심산이로군.
만만치는 않을 거라고 내심 생각은 했지만, 기자라서 그런지 여간내기가 아니네.
“뭐 꼭 도와달라는 부탁은 아닙니다. 다만, 정대리 사정이 너무 딱한 것 같아서 그렇죠. 그리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생각 같아서는 양쪽 구멍에 약물이나 듬뿍 발라서 꼼짝달싹 못하고, 애원을 하게끔 만들고 싶었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약물을 남발한다는 것은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또한 홍선미의 거침없는 성격상 어떤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지도 미지수였고.
그때, 호준의 우측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이현지가 갑자기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아휴. 더워! 술기운이 오르니깐 무지 덥네.”
어린 나이라고 어디 여자의 본능인 직감조차 어릴 소냐. 호준의 시선이 자꾸만 홍선미의 치맛자락 속에 꽂히는 것이 싫었음이 분명하리라.
늘씬한 이현지가 새하얀 브래지어 차림이 되자, 홍선미가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사회경험이 노련한 언니답게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랬다.
“현지야!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남자 앞에서 그런 차림으로 있으면 어떡해!”
“뭐, 어때요. 오빠랑은 이미 볼 것 다 본 사인데, 더우면 언니도 벗지 그래요?”
한바탕 쏘아붙인 이현지가 호준을 바라보면서 생긋 미소를 짓는다.
“오빠! 나한테는 뭐 부탁할 것 없어요? 난 뭐든지 다 들어줄 수 있는데.”
순간, 이현지를 바라보는 홍선미의 안색에서 언뜻 살의까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오호......철부지 아가씨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겠는걸.’
“현지한테도 당연히 부탁할 일이 있지.”
“뭔데요?”
“그건 조금 있다가 단둘이 얘기하자.”
호준의 질투심 유발 작전이 나름 성공을 거둔 듯 홍선미는 약이 바짝 오른 표정이다.
“홍기자님께서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부탁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 제가 식사 대접 한번 하죠.”
말은 정중한 듯 했으나, 내용인 즉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죽 쒀서 개준다고. 머리가 텅 빈 어린 계집애 때문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홍선미의 자존심이 일순간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젠 뭐 이판사판일 수밖에.
이현지를 한껏 째려보던 홍선미가 질 수 없다는 듯 오기를 부린다.
“내 대답 아직 안 끝났어요...... 그런데, 정말 왜 이렇게 더운 거야!”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정장상의를 벗어던진 홍선미가 이현지처럼 브래지어만을 남겨두고는 블라우스도 벗어던졌고, 그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던지, 아예 자리에 앉은 채로 스커트까지 벗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모델인 이현지의 늘씬하고, 탱글탱글한 몸매야 워낙 쭉쭉빵빵이라지만, 이십대 후반의 성숙한 여체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 괜찮긴 하군. 더구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여기자님께서 속옷차림으로 자존심까지 팽개친 모습이라니.
홍선미가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들이밀면서 건배를 제의해왔다.
“자, 건배하죠. 우리! 뺑소니 사건의 해결을 위하여!”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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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맥주에 양주 폭탄주까지 연거푸 들이켰기 때문에 호준도 얼근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내심 스리섬을 기대했건만, 두 여자의 신경전이 은근히 서로를 견제했기 때문에 누구 한사람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결국 분위기는 술판으로만 이어졌던 까닭이다.
“호준씨! 나 좀 일으켜줄래요?”
술이 가장 약했던 이현지가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자신의 침대위로 올라가서 눕자, 홍선미가 어눌한 발음으로 부탁해왔다.
“왜요?”
“화, 화장실 좀......”
“그러죠, 뭐.”
홍선미의 왼팔을 감아서 자신의 어깨 위에 두르고 몸을 일으키는데, 브래지어 속에 담긴 풍만한 젖가슴이 호준의 옆구리에 물컹거리면서 밀착해왔기 때문에 야릇한 설렘이 느껴졌다.
변기까지 부축해가서 앉히려고 몸을 굽히는 순간, 홍선미의 입술이 호준의 입술을 덮어왔다.
쭈웁~
같은 술을 마셨는데도, 어째서 여자의 입술은 이렇게나 향긋한 것인지.
입술이 떼어진 순간, 홍선미가 그의 목을 감싸 안은 채, 귓속에 속삭여왔다.
“물어볼게 있어요.”
“뭔데요?”
“지난번에 나한테 했던 거...... 어떤 방법이었죠?”
“지난번에 했던 거라니요?”
순간,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기자라는 그녀의 직업이 어쩐지 꺼림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면은 아닌 것 같고, 약물반응도 정상으로 나왔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역시 기자였기 때문인지 그녀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조사를 했고, 검사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냥, 마술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마술? 정말 마술이란 말이에요? 핏...... 거짓말! 이 세상에 그런 마술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는걸.”
“얼른 볼일이나 마저 보고 나오시죠.”
호준이 들러붙는 그녀의 팔을 억지로 풀고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가 애원을 하듯 더욱 달라붙으면서 투정을 부렸다.
“싫어! 이대로는......한번만 더 보여줘요. 그 마술.”
“지금? 여기에서?”
“아무려면 어때요. 변태 아저씨! 처음부터 현지네 원룸으로 오라고 할 때부터 각오했는걸.”
오호라. 그녀도 내심 스리섬을 예상했었나 보군. 젠장, 진즉에 까놓고 얘기하지 왜 이제 와서......
이현지가 잠들기 전에 셋이 즐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정말이지 아까운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호준의 실망감을 눈치 챈 듯 홍선미가 한껏 눈을 흘긴다.
“하여간, 남자들은 못 말린다니까. 이봐요, 변태아저씨! 지금 현지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엥? 이건 또 뭔 귀신 씨 나락 까는 소리란 말이냐?
“그럼, 잠든 거 아닌가요?”
“호호. 절대로......”
아니, 이것들이 좀 전에는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더니, 결국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단 말인가? 순간, 홍선미가 마치 혼잣말을 읊조리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절대로, 그냥 잠들 리가 없지......당신이란 사람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여자로서 섹스상대를 공유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했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포기할 만큼 그렇게 좋았던 것일까?
어쩐지 그녀의 혼잣말이 이상하게도 가슴 속을 짓누르는 듯 했고, 갑자기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선미씨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여자예요. 좋습니다. 내가 마술을 부려주죠. 눈을 감아요.”
호준이 주머니 속에서 시약병의 뚜껑을 따는 순간, 홍선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여기서는......현지 옆에 눕혀주세요. 어차피 당신이라는 남자, 내가 혼자 가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말을 마친 그녀가 살그머니 두 눈을 감은 채, 그의 품에 안겨왔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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