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 Series 4]시리즈물. 다시 한편 올립니다.. 생각하는 즐거운 시간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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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아침 7시면 눈을 뜬다.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기에 출근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다만 아내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야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4시까지 강의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찾기 위해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고 피곤한 상태라고 해도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소영은 주방에서 아침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합병원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는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쯤에는 어김없이 식사준비를 마친다. 출근 준비까지 마친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녀가 기다릴 필요 없이 습관처럼 정민이 세면은 하지 않더라도 식탁 앞에 와서 앉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혼하고 삼년이 지나도 아기가 없었다. 물론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고, 맞벌이 부부로 같이 있을 시간도 많지 않아서 대화가 별로 없었다. 결혼 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잘 알게 된 탓도 있지만 기계적인 생활에 젖었기 때문이다. 애틋한 감정이 없으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부부사이였다.
정민은 알몸에 트렁크 팬티 하나만을 걸친 상태로 배달된 신문을 들고 마루와 카펫으로 이어진 바닥을 밟고서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말없이 식사를 한다. 침묵 속에 수저를 들었다 내려놓는 소리와 음식 먹는 소리! 그는 이따금 신문을 들춰보기도 하며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난 후에 소영은 정말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묵묵히 설거지를 한다. 그녀는 원래 밝고 활달하고 사교성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별로 남편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어쩌면 기계적인 부부생활과 외부생활에서 차이에서 오는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남편에게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민도 마찬가지로 요즘에 와서 더욱 아내와의 대화를 꺼려한다. 하지만 아내의 일거일동을 곁눈질하며 살핀다. 아내가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신문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출근하는 아내를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아내의 동태를 살피게 된 그의 습관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리는 아내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는다.
“먼저 출근할게요.”
“.........!”
하루를 시작하면서 소영이 처음으로 남편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민은 아내의 인사를 기계적으로 듣기만하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 그는 비로소 긴장을 풀고 일어선다. 아내가 없는 시간은 그의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싱크대 앞으로 다가간 그는 커피 메이커에 여과지를 넣고 커피 분말을 티스푼으로 세 개 넣는다. 하와이얀 코나의 질은 향기와 코를 자극하면 여지없이 그는 니콜 키드먼을 떠올린다.
그는 키드먼의 늘씬한 몸매를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참는다. 아름다운 여자는 사육하는 가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살장에서 가축을 잡듯이 마구 옷을 벗기는 상상을 해서는 곤란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여자는 세공장이가 오랜 정성을 들여서 수정 구슬을 만들듯이 다루어야한다. 그래야만 수정 구슬처럼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그는 먼저 정수기에서 길러낸 물을 커피 메이커에 붓고 전원스위치를 넣었다. 그리고 니콜 키드먼! 그녀 생각을 하며 동물적인 본능을 느낀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 열기는 급속하게 하복부로 내려간다. 팬티 앞부분이 솟아오른다. 그는 발기된 페니스를 꽉 쥐어서 달래주는 대신 머그잔을 꺼내어 뜨겁게 추출된 커피를 따르고 오디오 시스템 앞으로 다가섰다.
이큐페이즈 파워 앰프에 전원을 넣은 그는 바코 CD플레이어에 조니 하트먼의 CD를 올려놓았다. 서서히 멀티 스피커에서 중저음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실적이고도 섹시하게 들여오는 조니 하트먼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는 그제야 통유리가 붙어있는 베란다로 다가갔다. 버티칼 블라인드를 약간 조절하여 적당한 시야를 확보한다. 오전 이 시간쯤이면 밝은 햇빛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거실은 밝은 빛에 감싸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향기를 음미한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5층 빌라 건물 중에 2층이었기에 마주보고 있는 주택이 내려다 보였다. 작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현관을 나오는 니콜 키드먼이 내려다 보였다. 그녀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남자의 아내였다.
정민은 그녀를 짝사랑하던 니콜 키드먼이라고 부르기로 작정을 했다. 그가 짝사랑하던 니콜 키드먼의 몸매와 얼굴을 닮은 그녀의 본명은 소 예진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그의 아내는 가정생활에만 전념하겠다고 간호사 생활을 그만 두었었다. 그런데 일 년 전에 아내는 답답하고 따분하다면서 다시 복직했다. 그리고 아내의 외도를 감지한 그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으나 흥신소에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외도상대가 니콜 키드먼의 남편이었다. 그는 키드먼의 주택 우편함에서 그녀의 이름이 소 예진이라는 것과 그녀의 남편이 언론에서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검사 조 상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민은 처음부터 그녀에게 빠져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 상우가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이고 아내의 캠퍼스 선배라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에 경악하여 관찰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본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황홀한 그녀 모습에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는 아내의 외도조차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가 꿈에도 짝사랑하는 니콜 키드먼과 너무나 똑 같았던 것이다. 날씬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는 웬만한 슈퍼 모델들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끈했다. 그때는 그린 톤의 재킷과 타이트한 검정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검정바지에 감싸인 히프와 허벅지의 탄탄한 볼륨은 정말 감탄할만했다. 그녀의 가는 허리에서 히프로 히프에서 허벅지로 내려오는 라인은 거의 예술에 가까웠다.
정민은 해부학을 전공한 강사도 아니고 누드모델을 많이 다루는 화가나 사진작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늘씬한 여자들과 관계를 가져본 바람둥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체에 관해서는 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있는 초특급 슈퍼모델들과 누드모델들의 많은 사진 파일이 말해주듯이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특히 니콜 키드먼에게 반한 것은 아무래도 매력적인 얼굴보다는 젖가슴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올 누드모델들의 젖가슴을 봤지만 그 전체적인 균형미와 신체의 조화에 있어서는 키드먼이 가장 앞섰던 것이었다.
물론 영민은 자신의 아내가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그의 아내는 아담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은 귀염성이 돋보이는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그는 키드먼처럼 아내에게 마음이 설레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아내로부터 야근을 한다고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그는 아내가 핑계를 대고 조 상우를 만나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니 혼자 있을 그녀가 궁금했다. 쌍안경을 들고 담장너머를 바라보다가 불이 켜지는 창문으로 렌즈를 조절했다. 화장실 창문이었다. 슬립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키드먼의 모습에 그는 긴장했었다.
슬립을 걷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정민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우 키드먼......! 내 사랑 키드먼.......! 그는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키드먼의 팬티를 내리고 쭈그려 앉은 자세와 엉덩이, 그리고 엉덩이 사이에 얌전하게 숨어있는 음모와 계곡이 연상되면서 그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빠져 들었었다.
그런데 일어서서 돌아선 그녀가 창문을 통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넋을 잃고 있는 그와 시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가 자신의 시선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녀도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의식했다.
커피를 혓바닥에서 입천장까지 굴리듯이 넘기는 정민은 하와이얀 코나의 독특한 맛을 느꼈다. 키드먼은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서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섹시한 여신처럼 보였다.
단단한 엉덩이 아래까지 긴 슬릿을 준 원피스는 키드먼의 미끈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매력적인 엉덩이를 흔들면서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원피스 자락이 잔디 위를 가볍게 스친다. 그는 키드먼을 볼 수 있게 해준 신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렸다.
키드먼은 승용차로 다가가는 남편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으로 출근 인사를 대신한다. 거드름을 피며 걷던 그녀의 남편 조 상우가 돌아서서 그녀의 매력적인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키드먼은 슬쩍 엉덩이를 빼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정민은 왠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남편의 출근 배웅을 끝낸 키드먼은 표정 변화는 없지만 우아하게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긴다. 정민은 커피 한 모금을 또 마셨다. 이때가 되면 그는 긴장하고 그를 속박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이 시점의 키드먼을 보려고 중요한 일거리도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는 팬티를 입은 채로 소변을 줄줄이 흘리면서까지 그녀를 바라본 일이 있었다.
키드먼은 패션쇼 무대 위에서처럼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거실로 들어간 그녀는 힘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한껏 강조하며 몸을 비틀어 본다. 그 위로 유연하면서도 가는 허리와 알맞게 솟아오른 젖가슴이 있고 긴 목과 그 목 위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있다. 언젠가 정민이 슈퍼마켓에서 의도적으로 맡아본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는 섹시한 오리엔탈 계열과 우아한 플러럴 부케 계열이 혼합된 것이었다.
정민은 머그잔을 놓고 쌍안경을 들었다. 고성능 캐논 쌍안경 렌즈를 통해서 팽팽하게 솟아오른 키드먼의 젖가슴이 손에 잡힐 듯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푸른색 스판 섬유에 감싸인 젖가슴의 젖꼭지 돌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입안에 마른 침이 고였다. 그녀의 젖꼭지를 입안에 넣고 싶은 간절한 욕망 때문이었다.
그는 쌍안경 렌즈를 그녀의 허리를 지나 엉덩이에 고정시켰다. 키드먼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는 엉덩이에는 손바닥만한 팬티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녀의 엉덩이는 계속 흔들렸다.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음......!”
그런데 갑자기 정민이 집중하고 있는 렌즈에 키드먼의 아랫배가 정면으로 잡혔다. 깜짝 놀란 그는 얼른 쌍안경을 내렸다. 블라인드 사이로 키드먼의 얼굴이 보였다. 보일 듯 말듯이 우아한 미소의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립스틱을 칠하지 않았으나 육감적인 입술과 하얗고 가지런한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까지 눈에 들어왔다.
정민은 아찔했으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훔쳐보고 있는 자신을 그녀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정숙한 그녀가 그의 시선을 의식하면 슬립만 걸치고 거실을 배회했다. 그는 그녀도 자신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때마다 그는 순간적으로 키드먼과 뜨거운 키스를 나눈 것처럼 달콤한 빠졌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키드먼은 하얗고 섬세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매끄러운 팔과 어깨,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반사되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서서히 열기를 높이는 햇빛이 갑자기 나른해져서 흐느적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쩔 바를 모르는 정민은 팬티만 걸친 자신을 의식했다. 그는 자리를 피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암컷과 섹스중인 버마제비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키드먼......! 오~! 니콜 키드먼, 나는 당신에게 사로잡혔어.......! 어서 나를 먹어 치워.......!”
키드먼이 몸을 돌려서 다시 우아한 걸음을 옮겼다. 아쉬움으로 정민은 가벼운 한 숨을 내쉬었다.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방안으로 들어가는 키드먼의 뒷모습에서 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로소 정민의 귓가에는 조니 하트먼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팬티 속에 솟아있던 그의 페니스는 얌전하게 죽어 있었다.
바코 플레이어에서 조니 하트먼의 CD를 내려놓은 그는 더 베리 빅칼라 불레이 밴드의 ‘칼라 블레이’ CD를 올려놓았다. 화려하면서도 다이내믹하고 야비하면서도 통속적인 밴드 특유의 음악이 그의 감성을 흔들었다. 그는 음악의 리듬에 젖어 지그시 눈을 감았다.
투명한 듯하면서도 매끄러운 핑크빛 시야가 펼쳐지면서 키드먼의 입술과 혀가 그의 입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향기와도 같은 그녀의 따스한 숨결을 점차 느꼈다.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을 벌렸다. 그녀의 매끄러운 혀가 입술을 비집고 들어 왔을 때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어큐웨이즈 파워 앰프위에 걸려있는 시계의 시침이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키드먼이 보통 오전 10시에 슈퍼마켓에 간다는 것을 떠올렸다. 시간은 충분했다. 나머지 시간에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서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단순히 이웃집에 사는 남자를 놀리려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그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그 정도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키드먼.......! 아~! 키드먼.......!
키드먼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정민을 흥분케 했다. 하이파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재즈는 오늘따라 더욱 환상적이었다.
정민은 환상을 떠올린다. 먼저 키드먼의 옷을 모두 벗기고 잠시 예술품처럼 구석구석 감상하리라. 뜨거워진 자신의 몸을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그 정도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일 것이다. 만약 그녀의 옷을 무자비하게 벗긴 다음 곧 바로 관계를 갖는다면 그녀를 모욕하는 일이며 단순한 동물의 교미와 다를 게 없다. 그는 적어도 키드먼과 그런 관계는 갖고 싶지 않았다.
그의 팬티 속에 페니스가 다시 치솟았다.
세면장으로 들어간 그는 평소보다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면도를 한 다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겨드랑이 쪽에는 아르마니 남성용 향수를 조금 뿌렸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질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부터 원출한 외모를 지닌 그의 몸은 근육질로 다져져 있었다. 거울 속에 들어난 잘생긴 남자가 할리우드의 배우처럼 잔득 폼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쓸면서 씩 웃어보였다.
“흠........! 제법 괜찮은 녀석이야. 너 정도 되니까, 니콜 키드먼도 반하는 거야.”
저재로 들어가서 강사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키드먼을 만나고 출근할 생각에 강의 시간이 적힌 수첩을 펼쳤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강의가 없는 날이었다. 그는 키드먼을 만나게 시간을 배려해준 신께 감사드렸다. 이제 5분정도 후에는 키드먼이 집을 나설 시간이었다.
집어 들었던 가방을 내려놓은 정민은 문득 콘돔을 준비해야 되는 것이 아닐는지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도 아기가 없어 안심이지만 만약 키드먼이 덜컥 임신이라도 한다면! 그렇다면 아기는 어떻게 하고? 아내와 그녀의 남편 조 상우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실소를 했다. 바보같은 자식! 이놈아, 칫솔과 화장지와 유모차도 준비해가지? 키드먼이 갈아입을 팬티와 생리대는 어떻고? 그는 자신의 머리를 치면서 거실 베란다로 다가갔다.
드디어 키드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연푸른색 민소매 티셔츠에 약간 볼륨 있는 녹색버뮤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하얀 피부와 아주 잘 어울렸다.
키드먼은 현관으로부터 대문으로 이어진 정원 사이의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깨에서 가볍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반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는 작은 지갑,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가 정민의 시야에서 움직였다. 그는 그녀가 메시지를 보내 주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며 읊조렸다.
“키드먼, 제발 나를 좋아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줘.......! 제발!”
정민의 간절한 소망인지 키드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잠시 멈추어선 그녀의 도톰한 입술과 하얀 치아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미소를 만들어냈다. 옅은 미소를 흘린 그녀가 뒷모습을 보이며 대문을 빠져 나갔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정민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 시각은 10시 5분, 5부 뒤에 집을 나서면 된다. 괜히 안절부절 하던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수를 한잔 마셨다. 부리나케 현관을 나와서 승용차로 다가가며 그는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이런 제길 헐! 멍청한 자식’
정민은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가서 구두를 신은 그대로 책상 앞까지 태클한 다음 승용차 키를 움켜쥐었다. 오늘은 단순히 아내를 대신하여 슈퍼마켓에 가서 샴푸나 세재 따위를 사는 것이 아니었다. 키드먼을 동네에 있는 싸구려 숙박시설로 데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승용차에 올라앉아 시동을 걸고 그는 천천히 가속 폐달을 밟아 골목을 바라봤다. 골목 어귀를 벗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그녀가 슈퍼마켓으로 간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여유 있게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백미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슈퍼마켓 입구를 향해 갔다.
그는 쇼핑카터를 꺼내 슈퍼마켓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의 시야에 다른 여자들과 달리 키드먼의 모습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는 키드먼이 서있는 식료품 코너 쪽으로 쇼핑 카터를 밀고 갔다. 그는 그녀의 체취라도 느끼려는 듯이 바짝 다가갔다. 그는 순간 흠칫했다. 그를 힐끔 쳐다본 그녀가 진열장에 있는 슬라이스 치즈를 집어 그의 쇼핑 카터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그녀가 말했다.
“이걸 사려는 거 아니세요!? 선생님 부인이 항상 사가던데.”
“아~! 네.”
정민은 키드먼이 아내의 물품 구입하는 습성까지 알고 있기에 당황했다. 엷은 미소를 흘린 그녀도 슬라이스 치즈를 집어 쇼핑카터에 담았다. 사실 그는 물건을 구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도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없는지 진열장을 기웃거리며 걸어갔다. 그녀가 카트에 몇 가지 넣는 물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소품이었다. 그녀와 앞서가니 뒤서거니 마트 입구까지 걸어간 그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더 집어 계산을 치렀다.
그가 마트를 나오니 나무그늘 밑의 의자에 키드먼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메시지의 눈빛을 주는 그녀가 무척 반가웠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역시 오리엔탈 계열과 우아한 플러럴 부케 계열이 혼합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는 들고 있는 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녀에게 권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네요.”
“봄이 짧으니까요.”
예진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에게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그들은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포장지를 벗겨내고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정민은 부담 없이 친숙해지려면 되도록 솔직해지고 싶었다.
“매일같이 예진 씨를 보는 것이 저의 낙입니다.”
“알고 있어요.”
“내가 사실 니콜 키드먼을 짝사랑하는데, 예진 씨는 키드먼과 너무도 똑 같아요.”
“그런 가요!?”
엶은 미소를 띠며 바라보는 그녀의 깊은 눈빛에 정민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예진은 그녀 나름대로 자신을 훔쳐보던 그를 깊은 관심으로 쳐다봤다. 부부는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으며 위로 받기를 원하는 상대에게 감성적이 된다. 그것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자아의식에 빠져 드는 것이다.
예진은 아버지가 학자인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교에 다니는 것 말고는 온실의 화초처럼 집안에서 머물며 보호를 받고 자랐다. 미모가 뛰어난 그녀는 대학재학 중에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녀는 부모의 권유로 능력 있는 검사로 근무하던 남편과 결혼함으로서 완고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또 다른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보다 더욱 독선적이고 폭군이었다. 조 상우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식사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아내이기를 원했다. 그녀를 단지 하녀이거나 성적인 대상으로 상대하는 남편은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남편 혼자서 욕구를 채우는 부부관계를 그녀는 마네킹처럼 받아 드릴 뿐이었다. 친정 부모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그녀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나 남편에게 숨겨놓은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가슴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 상대가 결혼 전부터 관계를 가졌던 여자였고 바로 옆의 빌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경이롭게 생각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담장너머를 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빌라 2층 베란다에서 번쩍이는 쌍안경 렌즈의 반짝임! 차갑게 식었던 그녀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예진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것에 새로운 생활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자신을 훔쳐보는 눈빛이 없으면 초조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대답하게도 그녀는 의도적으로 렌즈 앞에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우연히 동네에서 자신을 훔쳐보던 그와 마주쳤다. 그리고 의외로 훤칠한 외모, 균형 잡힌 남자의 체격에서 흘러나오는 자상한의 분위기에 압도당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설렜다.
그녀는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그가 낯설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소녀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고 그녀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공연히 그를 쳐다보고는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정민은 그녀의 혀가 자신의 입술을 핥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빛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젖가슴은 잘 다듬어진 조각 같았고, 반바지 밑의 탄력이 넘치는 허벅지 살갗은 핏줄이 들어날 만큼 투명하게 보였다. 그는 그녀를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변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마누라가 예진 씨 남편하고........”
“알고 있어요.”
그가 변명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마치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던 것처럼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대학 강의 나가신다고 알고 있는데.......!”
“별로 내세울 만한 직업이 아니라서.......! 저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데, 예진 씨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구차한 얘기는 하지 말자는 그녀의 눈빛이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정민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바꾼다는 것을 눈치 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느 대학에.......?”
“시간 강사라서.........”
“전임강사 아니시면 힘들 텐데.......! 제 아버님이 교수라서 관심이 좀 있어요.”
“아~! 대학 교수이시군요.”
“한세대학 총장이세요.”
“고명하신 분이시군요.”
“어머니도 교수 출신이시고요.”
“친정이 교육자 집안이네요.”
“저는 교육자 집안의 딸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운데요.”
그녀가 부부간의 불만을 피하려고 하는 대화가 그는 왠지 열등감을 느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는 속으로 ‘키드먼 우리 감정을 얘기했으면 좋겠어.’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그는 용기를 냈다.
“저기......! 드라이브 하실래요?”
“........!”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대답대신 엷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고개를 까딱였다. 정민은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그녀의 쇼핑백을 받아 들어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눈빛을 반짝인 그녀가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그는 쇼핑백 두 개를 한손에 모아들고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잠시 주춤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애는 그의 손을 거부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주차장으로 향했다. 승용차로 다가간 그는 자신과 그녀의 쇼핑봉투를 뒷좌석에 넣고 조수석 문을 열고 기다렸다.
조수석으로 올라가는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가 매력적이었다. 공연히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보듬어주는 그는 꼭 전류에 감전당하는 것만 같았다. 운전석에 올라앉은 그가 시동을 거니 부드러운 진동음이 시트를 타고 샤프하게 전해졌다. 그는 정감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난, 잘 몰라요. 어디든 근사한대로.......!”
정민은 브레이크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나도록 핸들을 꺾고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성능 좋은 엔진 소리를 뿜어낸 승용차는 도로를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동네를 완전히 빠져나온 뒤에 그는 키드먼의 약간 상기된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앞쪽만을 똑바로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그는 오디오테크에서 시디체인지를 열고 ‘사일런트 플랑크톤’ CD를 올려놓았다. 볼륨을 높이자 저절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재즈 음악이 부드럽게 승용차 안을 감쌌다.
“음악 뭐 좋아 하시나요?”
정민은 그녀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일런트 플랑크톤, 저도 좋아하는 곡이예요. 가끔 내가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감정으로 사슴이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엉터리 같은 생각이죠!”
천성적으로 곱고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키드먼의 표정이 되살아나서 정민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그녀의 체취가 순순한 오리엔탈 계열이 짙어서 더욱 자극적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한없는 교감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내가 이 CD를 언제 구입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그녀의 짙고 긴 속눈썹이 흔들리는 커다란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자함이 아니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바로 키드먼을 만난 그 다음날입니다.”
“그런데, 키드먼이 누구죠?”
“아~! 예진 씨를 키드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지 않았든가요!? 예진 씨를 키드먼이라고 멋대로 부르고 있는데, 예진씨도 키드먼과 닮았다는 걸 알고 있겠지요?”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친구들은 슈퍼모델이 되어도 성공할 것이라고 했지만, 난 그런 직업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무대, 관중들의 시선을 받는 스타, 이런 것이 별로란 말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데.......”
“내가 그런 대부분의 사람이 되기 싫으니까요. 나는 내가 만든 공간에서 숨을 쉬며 살고 싶어요.”
“그러시군요. 앞으로 제가 예진 씨를 계속 니콜키드먼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음.......!? 저는 영광이지만........”
키드먼이 상기된 표정으로 미소를 떠올렸다. 정민은 자신의 희망이 실현되었다는 기쁨에 그녀를 껴안고 마구 키스를 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내 생애에 최고의 행운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보게 된 다음날 사일런트 플랑크톤 CD를 샀다는 얘기죠?”
“그렇습니다. 저는 키드먼을 처음 본 순간부터 교감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그 들판의 사슴처럼 말예요......! 괜찮다면.......! 가평에 있는 제 친척 별장으로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저는 좋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 알았습니다.”
정민은 강북의 산자락에 있는 로열 그린 호텔로 승용차를 몰았다. 오늘따라 차도 막히지 않는 것도 행운이라는 증거였다. 로열 그린 호텔은 그가 언젠가 한 여자와 투숙해본 일이 있는데, 여자는 별로였지만 호텔은 좋은 이미지의 추억으로 담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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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아침 7시면 눈을 뜬다.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기에 출근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다만 아내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야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4시까지 강의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찾기 위해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고 피곤한 상태라고 해도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소영은 주방에서 아침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합병원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는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쯤에는 어김없이 식사준비를 마친다. 출근 준비까지 마친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녀가 기다릴 필요 없이 습관처럼 정민이 세면은 하지 않더라도 식탁 앞에 와서 앉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혼하고 삼년이 지나도 아기가 없었다. 물론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고, 맞벌이 부부로 같이 있을 시간도 많지 않아서 대화가 별로 없었다. 결혼 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잘 알게 된 탓도 있지만 기계적인 생활에 젖었기 때문이다. 애틋한 감정이 없으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부부사이였다.
정민은 알몸에 트렁크 팬티 하나만을 걸친 상태로 배달된 신문을 들고 마루와 카펫으로 이어진 바닥을 밟고서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말없이 식사를 한다. 침묵 속에 수저를 들었다 내려놓는 소리와 음식 먹는 소리! 그는 이따금 신문을 들춰보기도 하며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난 후에 소영은 정말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묵묵히 설거지를 한다. 그녀는 원래 밝고 활달하고 사교성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별로 남편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어쩌면 기계적인 부부생활과 외부생활에서 차이에서 오는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남편에게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민도 마찬가지로 요즘에 와서 더욱 아내와의 대화를 꺼려한다. 하지만 아내의 일거일동을 곁눈질하며 살핀다. 아내가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신문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출근하는 아내를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아내의 동태를 살피게 된 그의 습관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리는 아내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는다.
“먼저 출근할게요.”
“.........!”
하루를 시작하면서 소영이 처음으로 남편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민은 아내의 인사를 기계적으로 듣기만하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 그는 비로소 긴장을 풀고 일어선다. 아내가 없는 시간은 그의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싱크대 앞으로 다가간 그는 커피 메이커에 여과지를 넣고 커피 분말을 티스푼으로 세 개 넣는다. 하와이얀 코나의 질은 향기와 코를 자극하면 여지없이 그는 니콜 키드먼을 떠올린다.
그는 키드먼의 늘씬한 몸매를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참는다. 아름다운 여자는 사육하는 가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살장에서 가축을 잡듯이 마구 옷을 벗기는 상상을 해서는 곤란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여자는 세공장이가 오랜 정성을 들여서 수정 구슬을 만들듯이 다루어야한다. 그래야만 수정 구슬처럼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그는 먼저 정수기에서 길러낸 물을 커피 메이커에 붓고 전원스위치를 넣었다. 그리고 니콜 키드먼! 그녀 생각을 하며 동물적인 본능을 느낀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 열기는 급속하게 하복부로 내려간다. 팬티 앞부분이 솟아오른다. 그는 발기된 페니스를 꽉 쥐어서 달래주는 대신 머그잔을 꺼내어 뜨겁게 추출된 커피를 따르고 오디오 시스템 앞으로 다가섰다.
이큐페이즈 파워 앰프에 전원을 넣은 그는 바코 CD플레이어에 조니 하트먼의 CD를 올려놓았다. 서서히 멀티 스피커에서 중저음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실적이고도 섹시하게 들여오는 조니 하트먼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는 그제야 통유리가 붙어있는 베란다로 다가갔다. 버티칼 블라인드를 약간 조절하여 적당한 시야를 확보한다. 오전 이 시간쯤이면 밝은 햇빛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거실은 밝은 빛에 감싸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향기를 음미한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5층 빌라 건물 중에 2층이었기에 마주보고 있는 주택이 내려다 보였다. 작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현관을 나오는 니콜 키드먼이 내려다 보였다. 그녀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남자의 아내였다.
정민은 그녀를 짝사랑하던 니콜 키드먼이라고 부르기로 작정을 했다. 그가 짝사랑하던 니콜 키드먼의 몸매와 얼굴을 닮은 그녀의 본명은 소 예진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그의 아내는 가정생활에만 전념하겠다고 간호사 생활을 그만 두었었다. 그런데 일 년 전에 아내는 답답하고 따분하다면서 다시 복직했다. 그리고 아내의 외도를 감지한 그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으나 흥신소에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외도상대가 니콜 키드먼의 남편이었다. 그는 키드먼의 주택 우편함에서 그녀의 이름이 소 예진이라는 것과 그녀의 남편이 언론에서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검사 조 상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민은 처음부터 그녀에게 빠져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 상우가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이고 아내의 캠퍼스 선배라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에 경악하여 관찰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본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황홀한 그녀 모습에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는 아내의 외도조차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가 꿈에도 짝사랑하는 니콜 키드먼과 너무나 똑 같았던 것이다. 날씬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는 웬만한 슈퍼 모델들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끈했다. 그때는 그린 톤의 재킷과 타이트한 검정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검정바지에 감싸인 히프와 허벅지의 탄탄한 볼륨은 정말 감탄할만했다. 그녀의 가는 허리에서 히프로 히프에서 허벅지로 내려오는 라인은 거의 예술에 가까웠다.
정민은 해부학을 전공한 강사도 아니고 누드모델을 많이 다루는 화가나 사진작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늘씬한 여자들과 관계를 가져본 바람둥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체에 관해서는 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있는 초특급 슈퍼모델들과 누드모델들의 많은 사진 파일이 말해주듯이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특히 니콜 키드먼에게 반한 것은 아무래도 매력적인 얼굴보다는 젖가슴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올 누드모델들의 젖가슴을 봤지만 그 전체적인 균형미와 신체의 조화에 있어서는 키드먼이 가장 앞섰던 것이었다.
물론 영민은 자신의 아내가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그의 아내는 아담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은 귀염성이 돋보이는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그는 키드먼처럼 아내에게 마음이 설레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아내로부터 야근을 한다고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그는 아내가 핑계를 대고 조 상우를 만나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니 혼자 있을 그녀가 궁금했다. 쌍안경을 들고 담장너머를 바라보다가 불이 켜지는 창문으로 렌즈를 조절했다. 화장실 창문이었다. 슬립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키드먼의 모습에 그는 긴장했었다.
슬립을 걷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정민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우 키드먼......! 내 사랑 키드먼.......! 그는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키드먼의 팬티를 내리고 쭈그려 앉은 자세와 엉덩이, 그리고 엉덩이 사이에 얌전하게 숨어있는 음모와 계곡이 연상되면서 그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빠져 들었었다.
그런데 일어서서 돌아선 그녀가 창문을 통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넋을 잃고 있는 그와 시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가 자신의 시선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녀도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의식했다.
커피를 혓바닥에서 입천장까지 굴리듯이 넘기는 정민은 하와이얀 코나의 독특한 맛을 느꼈다. 키드먼은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서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섹시한 여신처럼 보였다.
단단한 엉덩이 아래까지 긴 슬릿을 준 원피스는 키드먼의 미끈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매력적인 엉덩이를 흔들면서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원피스 자락이 잔디 위를 가볍게 스친다. 그는 키드먼을 볼 수 있게 해준 신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렸다.
키드먼은 승용차로 다가가는 남편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으로 출근 인사를 대신한다. 거드름을 피며 걷던 그녀의 남편 조 상우가 돌아서서 그녀의 매력적인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키드먼은 슬쩍 엉덩이를 빼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정민은 왠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남편의 출근 배웅을 끝낸 키드먼은 표정 변화는 없지만 우아하게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긴다. 정민은 커피 한 모금을 또 마셨다. 이때가 되면 그는 긴장하고 그를 속박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이 시점의 키드먼을 보려고 중요한 일거리도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는 팬티를 입은 채로 소변을 줄줄이 흘리면서까지 그녀를 바라본 일이 있었다.
키드먼은 패션쇼 무대 위에서처럼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거실로 들어간 그녀는 힘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한껏 강조하며 몸을 비틀어 본다. 그 위로 유연하면서도 가는 허리와 알맞게 솟아오른 젖가슴이 있고 긴 목과 그 목 위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있다. 언젠가 정민이 슈퍼마켓에서 의도적으로 맡아본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는 섹시한 오리엔탈 계열과 우아한 플러럴 부케 계열이 혼합된 것이었다.
정민은 머그잔을 놓고 쌍안경을 들었다. 고성능 캐논 쌍안경 렌즈를 통해서 팽팽하게 솟아오른 키드먼의 젖가슴이 손에 잡힐 듯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푸른색 스판 섬유에 감싸인 젖가슴의 젖꼭지 돌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입안에 마른 침이 고였다. 그녀의 젖꼭지를 입안에 넣고 싶은 간절한 욕망 때문이었다.
그는 쌍안경 렌즈를 그녀의 허리를 지나 엉덩이에 고정시켰다. 키드먼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는 엉덩이에는 손바닥만한 팬티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녀의 엉덩이는 계속 흔들렸다.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음......!”
그런데 갑자기 정민이 집중하고 있는 렌즈에 키드먼의 아랫배가 정면으로 잡혔다. 깜짝 놀란 그는 얼른 쌍안경을 내렸다. 블라인드 사이로 키드먼의 얼굴이 보였다. 보일 듯 말듯이 우아한 미소의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립스틱을 칠하지 않았으나 육감적인 입술과 하얗고 가지런한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까지 눈에 들어왔다.
정민은 아찔했으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훔쳐보고 있는 자신을 그녀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정숙한 그녀가 그의 시선을 의식하면 슬립만 걸치고 거실을 배회했다. 그는 그녀도 자신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때마다 그는 순간적으로 키드먼과 뜨거운 키스를 나눈 것처럼 달콤한 빠졌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키드먼은 하얗고 섬세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매끄러운 팔과 어깨,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반사되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서서히 열기를 높이는 햇빛이 갑자기 나른해져서 흐느적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쩔 바를 모르는 정민은 팬티만 걸친 자신을 의식했다. 그는 자리를 피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암컷과 섹스중인 버마제비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키드먼......! 오~! 니콜 키드먼, 나는 당신에게 사로잡혔어.......! 어서 나를 먹어 치워.......!”
키드먼이 몸을 돌려서 다시 우아한 걸음을 옮겼다. 아쉬움으로 정민은 가벼운 한 숨을 내쉬었다.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방안으로 들어가는 키드먼의 뒷모습에서 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로소 정민의 귓가에는 조니 하트먼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팬티 속에 솟아있던 그의 페니스는 얌전하게 죽어 있었다.
바코 플레이어에서 조니 하트먼의 CD를 내려놓은 그는 더 베리 빅칼라 불레이 밴드의 ‘칼라 블레이’ CD를 올려놓았다. 화려하면서도 다이내믹하고 야비하면서도 통속적인 밴드 특유의 음악이 그의 감성을 흔들었다. 그는 음악의 리듬에 젖어 지그시 눈을 감았다.
투명한 듯하면서도 매끄러운 핑크빛 시야가 펼쳐지면서 키드먼의 입술과 혀가 그의 입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향기와도 같은 그녀의 따스한 숨결을 점차 느꼈다.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을 벌렸다. 그녀의 매끄러운 혀가 입술을 비집고 들어 왔을 때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어큐웨이즈 파워 앰프위에 걸려있는 시계의 시침이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키드먼이 보통 오전 10시에 슈퍼마켓에 간다는 것을 떠올렸다. 시간은 충분했다. 나머지 시간에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서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단순히 이웃집에 사는 남자를 놀리려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그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그 정도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키드먼.......! 아~! 키드먼.......!
키드먼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정민을 흥분케 했다. 하이파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재즈는 오늘따라 더욱 환상적이었다.
정민은 환상을 떠올린다. 먼저 키드먼의 옷을 모두 벗기고 잠시 예술품처럼 구석구석 감상하리라. 뜨거워진 자신의 몸을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그 정도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일 것이다. 만약 그녀의 옷을 무자비하게 벗긴 다음 곧 바로 관계를 갖는다면 그녀를 모욕하는 일이며 단순한 동물의 교미와 다를 게 없다. 그는 적어도 키드먼과 그런 관계는 갖고 싶지 않았다.
그의 팬티 속에 페니스가 다시 치솟았다.
세면장으로 들어간 그는 평소보다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면도를 한 다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겨드랑이 쪽에는 아르마니 남성용 향수를 조금 뿌렸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질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부터 원출한 외모를 지닌 그의 몸은 근육질로 다져져 있었다. 거울 속에 들어난 잘생긴 남자가 할리우드의 배우처럼 잔득 폼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쓸면서 씩 웃어보였다.
“흠........! 제법 괜찮은 녀석이야. 너 정도 되니까, 니콜 키드먼도 반하는 거야.”
저재로 들어가서 강사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키드먼을 만나고 출근할 생각에 강의 시간이 적힌 수첩을 펼쳤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강의가 없는 날이었다. 그는 키드먼을 만나게 시간을 배려해준 신께 감사드렸다. 이제 5분정도 후에는 키드먼이 집을 나설 시간이었다.
집어 들었던 가방을 내려놓은 정민은 문득 콘돔을 준비해야 되는 것이 아닐는지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도 아기가 없어 안심이지만 만약 키드먼이 덜컥 임신이라도 한다면! 그렇다면 아기는 어떻게 하고? 아내와 그녀의 남편 조 상우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실소를 했다. 바보같은 자식! 이놈아, 칫솔과 화장지와 유모차도 준비해가지? 키드먼이 갈아입을 팬티와 생리대는 어떻고? 그는 자신의 머리를 치면서 거실 베란다로 다가갔다.
드디어 키드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연푸른색 민소매 티셔츠에 약간 볼륨 있는 녹색버뮤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하얀 피부와 아주 잘 어울렸다.
키드먼은 현관으로부터 대문으로 이어진 정원 사이의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깨에서 가볍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반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는 작은 지갑,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가 정민의 시야에서 움직였다. 그는 그녀가 메시지를 보내 주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며 읊조렸다.
“키드먼, 제발 나를 좋아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줘.......! 제발!”
정민의 간절한 소망인지 키드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잠시 멈추어선 그녀의 도톰한 입술과 하얀 치아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미소를 만들어냈다. 옅은 미소를 흘린 그녀가 뒷모습을 보이며 대문을 빠져 나갔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정민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 시각은 10시 5분, 5부 뒤에 집을 나서면 된다. 괜히 안절부절 하던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수를 한잔 마셨다. 부리나케 현관을 나와서 승용차로 다가가며 그는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이런 제길 헐! 멍청한 자식’
정민은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가서 구두를 신은 그대로 책상 앞까지 태클한 다음 승용차 키를 움켜쥐었다. 오늘은 단순히 아내를 대신하여 슈퍼마켓에 가서 샴푸나 세재 따위를 사는 것이 아니었다. 키드먼을 동네에 있는 싸구려 숙박시설로 데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승용차에 올라앉아 시동을 걸고 그는 천천히 가속 폐달을 밟아 골목을 바라봤다. 골목 어귀를 벗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그녀가 슈퍼마켓으로 간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여유 있게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백미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슈퍼마켓 입구를 향해 갔다.
그는 쇼핑카터를 꺼내 슈퍼마켓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의 시야에 다른 여자들과 달리 키드먼의 모습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는 키드먼이 서있는 식료품 코너 쪽으로 쇼핑 카터를 밀고 갔다. 그는 그녀의 체취라도 느끼려는 듯이 바짝 다가갔다. 그는 순간 흠칫했다. 그를 힐끔 쳐다본 그녀가 진열장에 있는 슬라이스 치즈를 집어 그의 쇼핑 카터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그녀가 말했다.
“이걸 사려는 거 아니세요!? 선생님 부인이 항상 사가던데.”
“아~! 네.”
정민은 키드먼이 아내의 물품 구입하는 습성까지 알고 있기에 당황했다. 엷은 미소를 흘린 그녀도 슬라이스 치즈를 집어 쇼핑카터에 담았다. 사실 그는 물건을 구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도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없는지 진열장을 기웃거리며 걸어갔다. 그녀가 카트에 몇 가지 넣는 물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소품이었다. 그녀와 앞서가니 뒤서거니 마트 입구까지 걸어간 그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더 집어 계산을 치렀다.
그가 마트를 나오니 나무그늘 밑의 의자에 키드먼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메시지의 눈빛을 주는 그녀가 무척 반가웠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역시 오리엔탈 계열과 우아한 플러럴 부케 계열이 혼합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는 들고 있는 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녀에게 권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네요.”
“봄이 짧으니까요.”
예진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에게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그들은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포장지를 벗겨내고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정민은 부담 없이 친숙해지려면 되도록 솔직해지고 싶었다.
“매일같이 예진 씨를 보는 것이 저의 낙입니다.”
“알고 있어요.”
“내가 사실 니콜 키드먼을 짝사랑하는데, 예진 씨는 키드먼과 너무도 똑 같아요.”
“그런 가요!?”
엶은 미소를 띠며 바라보는 그녀의 깊은 눈빛에 정민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예진은 그녀 나름대로 자신을 훔쳐보던 그를 깊은 관심으로 쳐다봤다. 부부는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으며 위로 받기를 원하는 상대에게 감성적이 된다. 그것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자아의식에 빠져 드는 것이다.
예진은 아버지가 학자인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교에 다니는 것 말고는 온실의 화초처럼 집안에서 머물며 보호를 받고 자랐다. 미모가 뛰어난 그녀는 대학재학 중에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녀는 부모의 권유로 능력 있는 검사로 근무하던 남편과 결혼함으로서 완고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또 다른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보다 더욱 독선적이고 폭군이었다. 조 상우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식사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아내이기를 원했다. 그녀를 단지 하녀이거나 성적인 대상으로 상대하는 남편은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남편 혼자서 욕구를 채우는 부부관계를 그녀는 마네킹처럼 받아 드릴 뿐이었다. 친정 부모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그녀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나 남편에게 숨겨놓은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가슴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 상대가 결혼 전부터 관계를 가졌던 여자였고 바로 옆의 빌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경이롭게 생각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담장너머를 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빌라 2층 베란다에서 번쩍이는 쌍안경 렌즈의 반짝임! 차갑게 식었던 그녀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예진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것에 새로운 생활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자신을 훔쳐보는 눈빛이 없으면 초조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대답하게도 그녀는 의도적으로 렌즈 앞에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우연히 동네에서 자신을 훔쳐보던 그와 마주쳤다. 그리고 의외로 훤칠한 외모, 균형 잡힌 남자의 체격에서 흘러나오는 자상한의 분위기에 압도당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설렜다.
그녀는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그가 낯설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소녀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고 그녀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공연히 그를 쳐다보고는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정민은 그녀의 혀가 자신의 입술을 핥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빛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젖가슴은 잘 다듬어진 조각 같았고, 반바지 밑의 탄력이 넘치는 허벅지 살갗은 핏줄이 들어날 만큼 투명하게 보였다. 그는 그녀를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변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마누라가 예진 씨 남편하고........”
“알고 있어요.”
그가 변명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마치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던 것처럼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대학 강의 나가신다고 알고 있는데.......!”
“별로 내세울 만한 직업이 아니라서.......! 저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데, 예진 씨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구차한 얘기는 하지 말자는 그녀의 눈빛이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정민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바꾼다는 것을 눈치 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느 대학에.......?”
“시간 강사라서.........”
“전임강사 아니시면 힘들 텐데.......! 제 아버님이 교수라서 관심이 좀 있어요.”
“아~! 대학 교수이시군요.”
“한세대학 총장이세요.”
“고명하신 분이시군요.”
“어머니도 교수 출신이시고요.”
“친정이 교육자 집안이네요.”
“저는 교육자 집안의 딸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운데요.”
그녀가 부부간의 불만을 피하려고 하는 대화가 그는 왠지 열등감을 느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는 속으로 ‘키드먼 우리 감정을 얘기했으면 좋겠어.’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그는 용기를 냈다.
“저기......! 드라이브 하실래요?”
“........!”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대답대신 엷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고개를 까딱였다. 정민은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그녀의 쇼핑백을 받아 들어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눈빛을 반짝인 그녀가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그는 쇼핑백 두 개를 한손에 모아들고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잠시 주춤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애는 그의 손을 거부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주차장으로 향했다. 승용차로 다가간 그는 자신과 그녀의 쇼핑봉투를 뒷좌석에 넣고 조수석 문을 열고 기다렸다.
조수석으로 올라가는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가 매력적이었다. 공연히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보듬어주는 그는 꼭 전류에 감전당하는 것만 같았다. 운전석에 올라앉은 그가 시동을 거니 부드러운 진동음이 시트를 타고 샤프하게 전해졌다. 그는 정감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난, 잘 몰라요. 어디든 근사한대로.......!”
정민은 브레이크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나도록 핸들을 꺾고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성능 좋은 엔진 소리를 뿜어낸 승용차는 도로를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동네를 완전히 빠져나온 뒤에 그는 키드먼의 약간 상기된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앞쪽만을 똑바로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그는 오디오테크에서 시디체인지를 열고 ‘사일런트 플랑크톤’ CD를 올려놓았다. 볼륨을 높이자 저절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재즈 음악이 부드럽게 승용차 안을 감쌌다.
“음악 뭐 좋아 하시나요?”
정민은 그녀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일런트 플랑크톤, 저도 좋아하는 곡이예요. 가끔 내가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감정으로 사슴이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엉터리 같은 생각이죠!”
천성적으로 곱고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키드먼의 표정이 되살아나서 정민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그녀의 체취가 순순한 오리엔탈 계열이 짙어서 더욱 자극적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한없는 교감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내가 이 CD를 언제 구입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그녀의 짙고 긴 속눈썹이 흔들리는 커다란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자함이 아니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바로 키드먼을 만난 그 다음날입니다.”
“그런데, 키드먼이 누구죠?”
“아~! 예진 씨를 키드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지 않았든가요!? 예진 씨를 키드먼이라고 멋대로 부르고 있는데, 예진씨도 키드먼과 닮았다는 걸 알고 있겠지요?”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친구들은 슈퍼모델이 되어도 성공할 것이라고 했지만, 난 그런 직업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무대, 관중들의 시선을 받는 스타, 이런 것이 별로란 말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데.......”
“내가 그런 대부분의 사람이 되기 싫으니까요. 나는 내가 만든 공간에서 숨을 쉬며 살고 싶어요.”
“그러시군요. 앞으로 제가 예진 씨를 계속 니콜키드먼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음.......!? 저는 영광이지만........”
키드먼이 상기된 표정으로 미소를 떠올렸다. 정민은 자신의 희망이 실현되었다는 기쁨에 그녀를 껴안고 마구 키스를 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내 생애에 최고의 행운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보게 된 다음날 사일런트 플랑크톤 CD를 샀다는 얘기죠?”
“그렇습니다. 저는 키드먼을 처음 본 순간부터 교감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그 들판의 사슴처럼 말예요......! 괜찮다면.......! 가평에 있는 제 친척 별장으로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저는 좋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 알았습니다.”
정민은 강북의 산자락에 있는 로열 그린 호텔로 승용차를 몰았다. 오늘따라 차도 막히지 않는 것도 행운이라는 증거였다. 로열 그린 호텔은 그가 언젠가 한 여자와 투숙해본 일이 있는데, 여자는 별로였지만 호텔은 좋은 이미지의 추억으로 담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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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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