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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7 1,130회 0건
"합궁이라고요?" 강혜가 물었다. 하중경은 말 없이 고개만 끄떡였다.

그러나 단우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조상님이라도 그 명은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왜지? 이것도 다 가문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단우는 처연히 대답했다. "오늘은 그날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입니다."

강혜는 천연덕스럽게 제사 운운하는 단우의 얼굴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제사라고? 그런데 왜 날 불렀어?"

"그건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중경 할아버님. 오늘은 아무래도 합궁할 시기가 아닙니다. 나중에 좋은 날을 잡아 하겠습니다." 단우가 말했다.

강혜가 소리쳤다. "누구 맘대로? 너 혼자 하든지, 딴 여자 끌어와서 하든지, 하여간에 난 안해! 잘됐네요. 단우가 싫다는데 더 이상 어쩌겠어요?"

이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중경이 말했다. "어쩔 수 없구나. 나는 너와 단우 앞에만 나타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면 놀라기부터 할 테니까."

중경은 홀연히 사라졌고, 거의 같은 시간 문이 열렸다. 단영이다.

"단우야. 이야기는 잘 되고 있니?"

강혜가 소리쳤다. "단영 언니. 이야기 끝났어요. 저 갈께요."

이게 뭐야. 유령에게서 헛소리나 듣고 가게 됐으니, 얼른 폐에 든 유령을 내쫓을 궁리나 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호빠에 가서 원없이 섹스해야지.

이 때 단우가 차갑게 말했다. "누구 맘대로 이야기 끝이지? 난 아직 이야기 시작도 안했는데."

"네 할아버지 제사에 왜 내가 있어야 하지?"

"그건 네가 손자며느리니까 같이 있어야 하는 거지." 단우가 말했다. "누가 거기 오는지 궁금하지 訪?"

"난 하나도 안 궁금해." 강혜는 할 일이 많았다. 다신 여기 안 온다. 이 때 단우가 말했다.

"해왕그룹 오 회장 부부도 안 궁금할까? "

해왕그룹 오 회장? 그 사람이 왜 단우의 집 제사에 오지?

"우리 집안이 괜히 명문가가 아니야.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다들 무시하지만, 내 고모라는 사람들은 전국을 들썩들썩하게 할 수 있지. 너는 나와 같이 있으면 그들보다 위에 설 수 있는 거야. 이래도 안 궁금해?"

...

저녁. 강혜는 단영과 불러 온 아줌마들과 함께, 팔자에 없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할 수 없이 늦는다고 전화할 수밖에 없고, 의외로 아버지는 흔쾌히 오케이 했다. 이 때 단우가 말했다. "너 비싼 옷 없어?"

"비싼 옷이야 우리 집에 있지." 그랬다. 비싼 옷은 많았다 ... 하지만 문제는 강혜의 취향은 재벌 사모님들의 취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서, 비싸더라도 비싼 값을 하는 옷은 거의 없었다.

"그럼 누굴 불러서라도 비싼 옷 가져와. 오늘 올 싸모님들에게 밀리고 싶지는 않겠지?"

이 때 단영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할머니가 젊은 시절 입으시던 옷이 좋겠다."

"할머니요? 누구지요?" 강혜가 물었다. "어, 하애자 할머니. 우리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시던 분이셨지. " 단영이 대답했다.

단우는 키득키득 웃었다. 할머니가 입던 옷이라면 80년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명문가는 절대 유물을 버리는 일이 없다.

잠시 후, 단영은 고급 한정식집에서도 보기 힘든 요리들을 차려 냈다. 강혜의 집에서는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이라는 인식 외에는 없기에 돈이 생긴 다음에도 좋은 음식을 보긴 힘들었고, 이런 음식을 보면 주눅부터 들었다.

이 때 초인종이 울렸다. 오늘만을 위해 특별히 알바로 고용한 집사가 말했다.

"정 의원님 오셨습니다."

정 의원? 여당의 중진인 정 의원이라, 이 때 단우가 말했다. "들어 오시라고 해요."

정 의원 부부는 고개를 뻣뻣이 하고 들어왔다. 단우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말했다. "안녕하신지요."

강혜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삿대질을 하던 정 의원의 얼굴이 생각나기에 저런 모습이 색다르게 보였다. 정 의원 부부는 강혜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최 고검장, 대형언론사의 일족인 반경식 이사, 서울의 유명 병원 원장의 동생인 박창욱 박사, 그리고 해왕그룹 오 회장이 모두 부인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단우는 그들에게 그냥 안녕하신지요라는 인사만 했을 뿐이요, 이들 중 아무도 강혜에게 인사하는 자는 없었다.

최 고검장 부인이 말했다. "제사 준비는 다 됐지? 빨리 끝내자."

언론사의 반 이사의 부인도 말했다."할머니 돌아가신 지 금년으로 3년이지? 이제 다시는 이런 모임 갖지 말자. 딸들이 집안 제사 챙긴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젠 너도 성년이 됐으니 제사 모실 수 있잖아?"

단우는 웃고 싶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년 이맘 때 그는 손가락도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들을 부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그래도 이 집안의 어른은 할머니셨으니 할머니를 생각해서 제사는 치루어야지요."

강혜는 하애자가 입었다는 80년 된 오떼꾸뚜르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유럽에다 옷을 주문해서 입었던 집안이니 그 위세를 알 만 하다.

이들은 하나같이 강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기들이 아는 서클 내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기왕 모인 김에 발표할 게 있습니다."

오 회장 부인이 말했다. "뭔데? 저택과 골프장을 매각한다고? 매각한다면 너와 네 누나에게 50억은 주지."

"매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아닙니다." 단우가 대답했다. 강혜는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알듯말듯한 일만 계속 이어져서 잠시 생각을 쉬고 있었다.

"여기 계신 엘링턴 호텔의 이강혜 부회장에게 매각할 겁니다." 단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오 회장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엘링턴 호텔? 그 호텔의 이만국 회장에게 천억 원이 넘는 돈이 물려 있다.

강혜는 이제서야 약간 모든 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단우는 자신을 이용해서 가문을 단속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분은 앞으로 이 집안의 안주인이 되실 분이니,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하씨 가문의 가장은 나고, 여러분은 방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신경외과의 국내 최고 권위자라는 의학박사 박창욱이 말했다. "너, 내년 이맘 때면 너는 사내 구실도 못해. 남의 집 여자 데려와서 어쩌자는 거냐?"

단우가 대답했다. "의산병원 부원장님의 눈에는 이강혜 부회장이 남의 집 여자로 보입니까? 원장님이 아시면 참 좋아하겠습니다. 이강혜 부회장에게 그런 언사를 썼다면, 그 말에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으시겠죠?"

강혜는 가만히 있었지만 무릎을 탁 치고 있었다. 의산병원 박진욱 원장은 시설확충을 위해 아버지에게 빚을 지고 있다.

최 고검장이 말했다. "하지만, 이강혜 씨는 우리 집안 종부가 되기에는 적당치 않은 것 같군요. 우리의 서클 안에 없는 사람이니까요."

능구렁이 같은 놈. 단우가 고시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저 놈의 농간에 그나마 남은 재산까지 다 뺏길 뻔했다. 단우가 대답했다.

"그건 가문의 가장인 내가 결정하는 문제고, 내가 가장의 위치를 수행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을 시는 이 부회장이 그 위치를 계승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요."

강혜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하단우에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이너서클이라고 자칭하는 이 사람들보다 나은 위치가 되는 기분은 째졌다.

이것이 이너서클의 힘인가? 아버지는 그것을 알기에 단우와의 결혼을 추진하라고 그렇게 강하게 나왔던 것인가?

===

어색한 제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음식도 먹지 않은 채 경호원들, 운전사들을 대동하고 나갔다. 평생 발에 흙을 뭍힐 일이 없을 행복한 인생들이다.

강혜는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어려서 강혜네 집은 매우 가난했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일수놀이를 하고, 어머니는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바로 이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오빠는 국민학교를 다녔지만 강혜는 유치원 대신 이 집에서 애보개를 했다. 90년에도 애보개가 있었냐구 묻는다면 그녀는 분명히 있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다.

강혜가 하중경의 재를 들이마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오빠가 교통사고로 수술조차 받지 못한 채 죽고, 어머니는 도망갔다. 그 후 아버지는 강헤에게 빈집을 지키게 한 후 사업한다고 일본을 여러 번 드나든 후에, 갑자기 이사를 가자는 것이었다.

먼저 집보다 약간 나은 새 집에는 새엄마와 강준이가 있었고, 아버지는 또다시 사업에 실패했다. 새엄마도 도망을 가고 강혜는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강준이를 돌봤다.

얼마 뒤 다시 일본에 갔던 아버지는 이번에는 대박을 터뜨렸다. 뭘 해서 대박을 터뜨렸는지는 절대 묻지 못하게 해서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아버지의 사업은 단 일격에 성공했다는 것 뿐이다.

강혜가 중학교 편입시험을 치르고 강남에서도 제일 좋다는 중학교에 다닐 시점에는 아버지는 자산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보시다시피이다. 아버지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단시일에 큰 재산을 모았는지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그 비참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 때 단우가 나타났다.

"미리 이야기하지 않아서 미안해. 이야기했다면 오지 않았을 테니까. 어때, 기분이? 이래도 그냥 갈 거야?"

"그런 후덜덜한 사람들을 처음 봐서 그래..." 그건 진심이었다. 돈 빌리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삯군들이지 오너들은 아버지와 직접 상대했으니까.

"이미 당신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 아내로 공인되었어. 이젠 暳?박도 못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알아." 단우가 말했다.

"그런데 1년 후란 건 뭐야? 사내 구실도 못한다면서?" 강혜가 물었다.

단우는 주머니에서 장애인 수첩을 꺼냈다. "장애등급 5급 - 근무력증"

그는 약간 히죽거리며 웃었다. "이게 내 운명이야. "

"너, 도대체 나를 왜 이 일에 끌어 들였니?" 강혜는 분노하여 말했다. 이 때 하중경이 다시 나타났다.

"그건 저 애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여기 있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씨 집안이라면 이제 신물이 나요. 내가 이 나이에 평생 침대에 누워 있을 사람 수발이나 하면서 살아야 해요?" 강혜는 울먹이며 말했다.

하중경이 대답했다.
"저 애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오로지 조상신의 가호 때문이다. "

하단우가 계속 말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단명하는 집안이야. 백 년에 한 번씩 훌륭한 인물이 나왔지만, 그들의 핏줄로도 이어지지 못한 적이 많았고 양자로 대를 이은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아."

"그래서?" 강혜가 물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집안이다.

하중경이 말했다. "우리 집안에는 저주가 있지. 나도 그걸 풀려고 하다가 죽었고, 우리 집안의 힘으로도 그건 풀 수 없었다. 이제 저 애가 죽으면 더 이상 양자로 들일 만한 사람도 없다. 집안이 끝나는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왜 죄없는 내 인생까지 망치는 거지요?" 강혜는 이제 거의 울고 있었다.

"저주를 풀려면 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집안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하다. 네가 가진 힘을 더하면 저주를 풀 수도 있다. 저주가 풀리면 단우의 병도 나을 것이고 더 이상 우리 집안이 단명하는 집안이란 잔인한 운명을 면할 것이다.

저주가 풀리든 안 풀리든 1년 내에 결말이 나는 일이다. 그 다음에는 떠나든지 남든지 네 맘대로 해라."

중경은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했고, 단우도 중경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

강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확실히 하씨 가문과 이어지는 것은 그 잘난 것들에게 꿇리지 않고 위세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니 별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위험부담도 매우 컸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인생을 살면 여러 가지 도전이 있고, 이런 류의 도전은 보통 사람들은 절대 하지 못하는 도전이다. ...

"좋아요. 어차피 1년 후면 결정날 일이니, 저도 1년만 속아 보겠어요. 그 대신 강준이를 고쳐 준다는 약속은 1년 후 어떻게 되든 간에 지켜야 해요!"

"좋다. 네 동생의 일은 오히려 쉽다. 한 사람의 원한만 풀면 되는 거니까. 약속하마. 내가 약속을 어길 시에는 우리 가문 선산을 다 엎어 버려도 좋다."

죽은 사람과의 약속이라니, 참으로 별거 다 해 본다. 어쨌든 앞으로 1년은 심심하지 않겠군. 강혜는 최대한 평온을 찾으려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

3회에는 단우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음모와, 강혜의 숙적 유민주의 등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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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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