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자(無名者) 1부. 시련(試鍊)***************************
1부 3장. 인간과 사회의 속내******************************
어떻게든 자신은 무고하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초조함을 견디고 울분을 눌러 참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적지 않게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상태에서 거의 반년을 끌었다.
그래서일까?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아 큰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날 하루 푹 자고 일어나고 나니,
어쨌든 결과는 나왔다는 것에서 묘한 안도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현성이었다.
하지만 지쳤다고 해서 억울함을 참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으니 항소(抗訴)를 해야만 했다.
현성의 경우, 항소심을 위해 이감(移監)을 가야 할 거라고 교도관이 말해주었다.
김석호는 추가가 뜬 게 있어서 여기서 좀 더 재판을 받게 될 거라며,
이것저것 현성의 이감을 위해 챙겨주었다.
추가가 뜬다는 것은 ‘갑’이라는 범죄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던 중,
‘을’이라는 범죄 혐의가 새롭게 발견되어 추가된다는 얘기였다.
김석호가 달리 빵잽이가 아닌 모양이었다.
김석호의 ‘갑’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는 ‘강도강간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추가가 뜬 ‘을’은 절도라는 것 같았다.
굳이 공소 내용을 물어보고 싶지는 않아서 현성은 별 얘기도 꺼내지 않았지만,
답답한 구석이 많았는지 김석호는 자기 입으로 술술 얘기했다.
김석호의 말에 따르면 검찰의 공소 내용은 이랬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 몰래 침입했다가, 여성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강간을 하려다가, 피해자가 저항하니 칼로 찔러 저항을 무력화시킨 후, 강간을 하려는 도중 피해자가 출혈이 심해서 도중에 죽음에 이르자, 옷을 챙겨 입고 현장에서 달아나려고 한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 무시무시한 죄명이었기에 현성은 잠시 김석호가 달리 보였다.
“그래서 나도 완전 매스컴 전국구로 탔지. 일단 크게 매스컴 한 번 타면 시범 케이스가 어쩌니 여론이 어쩌니 해서 재판 꼬이는 거거든. 씨P!”
뜨끔했다.
현성 역시 신문과 방송을 대대적으로 장식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김석호도 역시 성범죄와 관련되어 억울한 부분이 많았기에 처음부터 현성을 그리 감쌌던 것일까.
어쨌든 공소 내용에 대한 김석호의 말은 이랬다.
“몇 푼 훔치려고 들어간 건 사실이야. 문도 안 잠겨 있었고….
미리 간을 봐보고 여자 혼자 있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 그 정도 미리 살펴보는 건 말밥 필수거든.
그치만 들어가 보니까 칼에 찔린 여자가 헐떡이며 숨이 넘어가고 있더라고.
내가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있겠냐?
아, 근데… 내가 미친놈이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튀면 되는 건데 칼을 빼고 어떻게든 피 멈추게 하려고 내가 개지랄 떨었다는 거 아니냐.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근데 내가 뭐 그 뭐시기, 그 응급 뭐? 하여튼 내가 뭐 아냐?
피 나는 데 손으로 눌러보고 별 지랄 다해봤는데 결국 꼴까닥 숨이 넘어가더라고.
정신이 확 들더라. 어이구, 이거 죽은 거구나.
내가 옴팡 뒤집어쓰겠다 싶어서 얼른 튀려고 하는데, 그때 경찰이 들이닥치더라고.
내 손에는 칼 쥐어져있지, 시체는 내 품 안에 있지… 더럽게 꼬인 거지 뭐.
근데 조사받다가 보니 그 여자가 강간당한 흔적이 있대나?
그치만 내 체모(體毛)도 안 나왔고 정액도 안 나왔다고.
그냥 그 여자 보Z구멍에 상처가 있다는 그게 다였어.
전과가 줄줄이 있으니 내 말도 안 통하고… 더럽게 꼬인 거지 뭐.”
이건 정말 미묘한 문제였다.
김석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걸 입증할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현성이 검사나 경찰 입장이었다 해도 찬란한(?) 전과 기록이 있는 김석호의 말을 믿어주기는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난 칼 원래 안 들고 다녀.
그냥 절도는 현장에서 잡혀도 얼마 안 받는데, 칼 같은 거 갖고 있으면 완전 징역 뻥튀기라고.
문 따겠답시고 드라이버라도 갖고 있어봐. 전과 있으면 그것도 흉기로 분류되는 수가 있거든.
그래서 맨손으로도 딸 수 있거나 문이 열려 있는 그런 데를 몰래 들어가는 게 내 철칙인데….
내가 왜 칼을 갖고 가서는 강간하겠답시고 여자를 찔러 죽이냐? 잡히면 사형이나 무긴데….”
어쨌든 현성보다 몇 주 먼저, 김석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상태였다.
다만 추가 건으로 인해 조사가 길어지면서 사건이 병합되려는 건지,
아직 선고 공판 날짜가 안 잡히고 있다고 했다.
김석호는 1심에서 무기(無期)나 15년 형을 받게 될 것 같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초조해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의외로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런 그의 여유가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2심에서 다시 한 번 싸워보자고 생각하니,
현성의 이성(理性)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일단 사진은 합성이나 조작이 아닌 진짜 같았다.
카메라도 후배인 한수가 선물했던 그 디지털 카메라였다.
하지만 현성이 찍은 건 맨 처음 찍었던 그 사진뿐이다. 나머지는 결코 현성이 찍었을 리가 없다.
술 취한 김에 그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현성은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날 그렇게 심하게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주장한 것들 중의 하나긴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현성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검사건 판사건 그 주장을 묵살했었다.
현성 스스로도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성이 술 먹고 뻗은 동안 그 여학생들이 그러면서 그 사진을 찍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애들은 왜 그랬을까?
좀 터무니없지만 그 애들이 현성에게 반해서이든지,
아니면 호기심이든지 하여튼 그런 장난을 하면서 기념 삼아(?) 사진도 찍었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오히려 현성이 강간(?) 당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실정법은 그런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배설물 일은 그 도중의 돌발사고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치면, 그 사진이 어떻게, 왜 경찰에 넘어간 거지?
경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사건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신고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거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여자애들이?
그 애들에게 현성은 원한을 산 적이 없다.
최소한 현성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러니 그 애들이 현성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그랬다는 것도 설득력이 약했다.
그렇다면 여자애들이 신고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무성의한 국선변호인은 변호사 접견도 오지 않아서, 신고자가 누구인지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신고자의 신변 보호 등 어쩌고 하는 규정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 여자애들이 신고해서 현성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낮지만,
현성이 여학생 두 명을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제 멋대로 오해하고는,
넘치는 정의감(?)으로 신고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해보자.
그럼 왜 다음날 오전이 되어서야 경찰이 왔을까?
영장이 어떻고 신고 접수가 어떻고 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십분 양보해보자.
그리고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여학생들을 데려와서 추궁했고,
궁지에 몰리다보니 변명할 게 없어서 그 여학생들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둘러댔다고 치자.
그럼 마약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제3자가 그 여학생들에게 그런 걸 시키면서 현성이 술에 뻗어서 자는 동안 몰래 마약이라도 먹였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그럼 그 제3자는 누구란 말인가?
현성은 그런 종류의 약품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현성의 항변은 증거(?)를 내세우는 검경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을 듯했다.
첫째, 현성을 노리던 누군가가 몰래 먹였다.
둘째, 그 여학생들이 몰래 먹였다.
마약이라고 하면 대부분 혈관주사를 생각한다.
현성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주 등에 타서 몰래 먹이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뭔가 이상한 게 들어있다는 걸 절대 눈치 못 챈다고 구치소에서 들었다.
그러면 현성도 그렇게 당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누구고 왜 그랬나?
그리고 그 여학생들이 그랬다면 왜?
이 질문에서 막혀서 현성의 추리 아닌 추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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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때문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현성은 이리도 지독하게 보복(?) 당해야 할 정도의 원한을 산 기억이 없었다.
개구리에게 돌을 던져 개구리가 죽었다 해도, 돌 던진 사람은 기억 못하는 법이기는 하다.
그래도 현성은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득?
현성을 이렇게 만듦으로써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얼른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일하던 회사밖에 없었다.
약속된 보상금을 주기가 아까워 이렇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여학생들과 회사가 연결 고리가 있느냐 여부에서는 영 자신이 없었다.
현성에게 돌아와야 할 보상금은 넉넉잡아 계산해도 6억 남짓.
그런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직원에게 포상금으로 줄 돈, 겨우 그까짓(?) 6억이 아까워서,
만약의 경우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이런 짓을 했을까?
그래도 그나마 지금까지의 가설들 중에서는 가장 설득력이 있는 편이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대기업에서 나서서 일을 꾸몄다면 현성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다.
변호사까지 이 모양 이 꼴이니 더더욱 그랬다.
이윽고 변호사 문제로 생각이 가니 현성은 절로 한숨이 나올 거 같았다.
법정에서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는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사건이 뒤집히기도 하는 실정을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서 보긴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변호사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똑같은 내용으로 변호한다고 해도,
그 말을 어떤 변호사가 하느냐에 따라 재판의 흐름이 변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었다.
사실 세상살이에서도 그렇다.
같은 말을 똑같이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과 효과는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평소 멸시하고 혐오하던 사람이 옳은 말을 하는 것과,
평소 존경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옳은 말을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사법계에서는 어떤 변론을 어떻게 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변론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고참 판사 출신으로, 갓 법복(法服)을 벗은 사람이 변론을 해주는 게 좋았다.
그건 또 왜 그런가?
여러 말이 무성한 로스쿨(Law School) 졸업생의 경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판사, 검사, 변호사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의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은 자기 입맛대로 대학을 골라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자신의 점수에서 가능한 곳만 지원할 수 있는 것과도 같았다.
빵잽이들의 주장은 이랬다.
점수가 높은 사법고시 합격생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진로를 정할 수 있지만,
점수가 낮은 합격생은 판사나 검사에 지원해도 별 소용이 없거나, 지원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성적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변호사가 된 경우,
그 변호사가 제법 훌륭한 변론을 해도, 검사나 판사에게는 얕잡아 보이기 일쑤라는 것이 빵잽이들의 얘기였다.
‘나보다 점수도 낮은 돌머리 새끼가 말장난이나 하고…’
판사들은 이런 시각으로 변호사들을 본다는 것이 빵잽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법조체계서는 검사나 판사가 사임을 하는 경우,
범죄나 부정 행위 등으로 인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공직을 그만둔 검사나 판사는 변호사로 개업이 가능했다.
사임하는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을 하게 되거나 하면,
그 선배는 공직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직의 위계질서가 잡히지 않는다는 등의 명분이 있지만,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선민(選民)의식(주1)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빵잽이들의 말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빵잽이들은 그렇게 그럴듯한 어휘로 말하지는 않았다.
“후배놈이 자기를 추월하니까 배알이 꼴려서 쫀심 상하게 하는 더러운 꼴 안 보려고 뛰쳐나가는 거지 뭐.
나가도 변호사 개업하면 2년 내로 수십억은 끌어 모을 수 있거든.”
2년 내로 수십억?
판사복이나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를 개업했다는 것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현성의 의문이 풀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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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學緣)이란 의외로 강력한 고리이다.
이 학연(學緣)이니 지연(地緣)이니 하는 것이 한국 특유의 병폐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다른 선진국들은 안 그런데 한국만 그렇다거나 하며, 이는 인재 발굴과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의 최고 선진국이라고들 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학연(學緣)의 힘은 한국보다 더 강력하면 강력했지 덜 하지는 않다.
미국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영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경우, 전통과 명성이 높은 사립 고등학교 출신들이 고위직은 거의 독차지 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대표적인 유명 사립 고등학교는 이튼(Eton)이나 해로우 스쿨(Harrow School)이다.
이런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며, 외출시간이나 요일도 정해진다.
두발의 길이나 모양, 교복에 외출용 복장까지 엄격한 제한이 있는 경우도 흔하다.
학교 자체 소유의 골프장과 승마장이 있는 곳도 있고, 관련 교육 역시 행해진다.
당연히 학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1년 학비가 수천만 원에 달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옛날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들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해로우 스쿨의 경우, 그 학교에 재학중이거나 그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따로 지칭하는 해로비언(Harrovian)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그들은 영국 사회에서 특별한 것이다.
품위를 중시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어휘 등에도 교육과 제한이 가해진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그런 명문교 출신들은 영국 정통 영어라고 할 수 있는 옥스퍼드 영어(Oxford English)를 구사하기 마련이라서, 사용하는 말만 들어보아도 사립 명문교 출신임이 구별될 정도이다.
영국의 그런 사립 명문교들은 신사나 지도층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독일의 학교들이 기술 등 진로교육 위주인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교복과 두발제한을 인권침해 어쩌고 비난하며, 우리나라만의 악습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유럽 선진국의 명문 학교들이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은 물론, 언어 습관에까지 규제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과연 뭐라고 할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旗幟)를 내걸고 혁명을 일으켰던 나라인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명문 고등학교, 명문대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없으니 그런 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후진적이고 야만적이고 일제(日帝)의 잔재라고 비난하곤 하는 신고식이라는 것을 들어보자.
명문교의 경우, 입학 후의 신고식은 그 폭력성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변태성도 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갓 입학한 후배들이 선배들 앞에서
와인에 소변이나 기름, 심지어는 오물을 탄 음료를 억지로 마셔야 하는 것은 보통이다.
완전 알몸으로 만들고 진흙이나 케이크 등을 던져 범벅으로 만든 후,
거기에 닭털이나 오리털 등을 뿌려서 인간 닭이나 인간 오리(?)로 만들어서는
교정(校庭)이나 거리를 활보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여학생들의 경우 속옷만 남기고 벗게 하고는,
남자 선배들의 양 허벅지 사이에 꽂아둔 바나나를
오로지 입만으로 껍질을 벗기고 다 먹는 신고식을 거쳐야 하는 것 등은 너무나 시시한 예이다.
이런 것들은 그냥 일부의 예가 아니다.
프랑스의 교육부 장관이 이런 사태가 포착되면 엄중 처벌하겠다는 경고까지 할 정도라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심지어는 전화고발접수 센터까지 프랑스 정부에서 만들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신고 되는 사례는 없었고 처벌되었다는 사례도 없다.
왜일까?
프랑스 상류 지도층은 명문교 출신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다.
유감이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선후배들끼리 밀고 당겨주는 학연(學緣)은 굉장히 강하다.
이 학연(學緣)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선후배간의 위계질서이다.
비인간적, 아니, 변태적인 것에 가까운 신고식을 통해,
후배는 선배 앞에서 자신의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는 굴복감을 맛보아야만,
위계질서의식이 확고해진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만약 인권이 어쩌고 전근대적(前近代的)인 악습이 어쩌고 하며,
그 신고식을 거부하고 선배들의 호출도 거부한다면 그 신입생은 어떻게 될까?
학교 내의 동아리 활동, 사교 활동 등에서 완전히 왕따가 되고, 학교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
설혹 그 모든 ‘방해 공작’을 꿋꿋이 이겨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끈끈한 학연으로 맺어진 선후배조직들은 그 문제 학생에게 출세의 기회 자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식으로 사법고시에 통과했다고 해도,
철저하게 한직과 외직으로만 돌리고 승진 등에서 철저하게 누락시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고위 관리직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신고식을 통과하고 엄격한 위계질서의식이 박혀있는 선배들이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신입생들도 그걸 안다.
그래서 아무리 선배들에게 지독한 꼴을 당해도 결코 신고한다거나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신의 인생의 미래를 포기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전(前) 대통령들 중에 지스카르 데스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기용한 장관은,
대통령 자신이 신입생이던 시절, 자신에게 모욕적, 폭력적인 신고식을 하게 했던 선배였다.
그 사람이 바로 앙드레 지로, 프랑스 전(前) 국방부 장관이다.
데스탱 전(前)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의 선배인 지로에게 당한 신고식은
진흙과 닭털을 뒤집어씌워 인간 닭으로 만드는 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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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고 있던 그런 점들을 떠올린 현성은
빵빵한(?!) 변호사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빵잽이들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갑이라는 꽤나 높은 직책의 판사가 판사를 사퇴하고 변호사가 되어,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그런데 그 사건의 담당 판사나 담당 검사가 그 갑 변호사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던 후배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 담당 판사와 검사가 갑 변호사에게 빡빡하게 굴 수 있을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 맞대고 일하며 인사를 주고받던 선후배 사이이던 사람에게?
이것이 바로 전관예우(前官禮遇)이다.
즉 이전까지 법관이나 검사로 근무하던 사람이 변호사로 전환하면,
검사나 판사는 그 변호사를 예우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 담당 판사와 검사도 언젠가는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의식만으로도 이미 동업자의식이 생겨난다.
또한 선후배 사이라는 학연이 거기에 촉매 작용을 하고,
이럴 때 매몰차게 굴면 끈끈하게 이어진 선후배간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그래서 담당 판사와 검사에게 선배인 갑 변호사의 말은 무척이나 잘 먹힐 수밖에 없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갑 변호사의 말대로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 변호사가 맡은 살인사건은 과실치사나 상해치사로 공소변경이 될 수도 있다.
공소변경은 판검사의 재량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갑 변호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당연하다.
살인사건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받는다.
어지간한 감경 사유가 없다면 초범이라 해도 집행유예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관예우를 받은 변호사가 나서서 이를 상해치사죄(傷害致死罪)로 바꾼다면?
이는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되는 죄로 가벼워져 버린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가 나서서,
자신이 변호를 맡은 피의자에게는 그 피살자에게 상해(傷害)를 입히려는 고의는 있었다 해도,
그 피해자의 사망결과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것이 검사나 판사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살인죄는 바로 상해치사죄로 공소가 변경될 수 있다.
더더구나 좀 더 힘을 써서 살인죄를 과실치사죄(過失致死罪)로 바꾼다면?
과실치사죄는 2년 이하의 금고(禁錮)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피해자 가족과 합의만 본다면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 혹은 피의자 가족에게서
그 갑이라는 변호사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수임료를 받아낼 수 있다.
물론 변호사 선임비용의 법적 명시액은 사례별로 다르긴 해도 200~300만 원 정도가 보통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비용만으로 변호사를 고용해서,
형사사건, 특히 강력범죄(주2)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봐도 피의자에게 충분한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든가 하여,
작량감경(酌量減輕) 대상이 되고도 남는 경우라면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 정도 액수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나 다름없다.
살인사건이나 강도강간, 강도살인, 강간살인 등의 경우,
피의자의 집안이 꽤 재력가(財力家)라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에게 선임 단계에서부터 수천만 원이 건네진다.
그리고 성공보수로는 수억 원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집행유예나 최저형을 이끌어내는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이 성공보수이다.
대부분 현찰로 몰래 건네지는 돈이라서 세금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전관예우를 누릴 수 있는 기간에 수십억 원을 끌어 모으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 기간은 보통 2년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는 전관예우의 병폐를 막기 위해 제정된 규정에서도 얼핏 드러난다.
판사나 검사 출신으로 변호사가 된 경우,
그 변호사는 예전에 근무하던 곳의 판사나 검사가 맡은 사건을 2년 내에는 수임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제정된 적도 있었다.
이는 전관예우의 약발이 최고인 기간이 2년 정도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몇몇 빵잽이들이 목에 핏대까지 올려가며 주장하는 얘기들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전관예우 변호사들에게 건네지는 중도금(?)은 검사나 판사를 구워삶기 위한 공작금(?) 같은 것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와 재판과 관련하여 만날 수 있는 방이 실제로 법원에 있기는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의자로부터 건네지는 비용으로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를 매수한다는 소리는 터무니없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 쉬운 빵잽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했다.
적어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만큼은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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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도 2심, 즉 항소심이 남아 있다는 것에서 현성은 미약하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빵잽이인 김석호의 말도 위안이 되었다.
공소 사항이 추가되거나 일이 꼬이지만 않는다면,
항소심에서는 대부분 형이 깎이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짜 유무죄의 판결은 2심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현성의 1심 담당 부장판사였던 구정기 판사는 승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엄격하고도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서 많은 업무 실적을 쌓아야 한다나?
하여튼 그런 입장이라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보다는,
법전 그대로 판결하는 것에 치중한다는 정보까지 김석호는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현성이 7년을 선고받은 것도 현성이 끈질기게 무죄주장을 한 영향이라는 게 김석호의 의견이었다.
사실 그대로 믿기는 힘들었지만,
김석호와 안면이 있는 고참 교도관도 같은 말을 하니 꽤나 신빙성이 있는 얘기 같았다.
이 바닥(?)에서 거의 정설처럼 떠도는 말들이 있었다.
1심은 공소내용이 어지간히 엉터리가 아닌 다음에야,
재판부에서는 검찰의 주장을 웬만하면 그대로 수용해주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재판은 보통 2심에서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안이 중대한 재판의 경우,
변호인, 혹은 변호인단들은 1심에서 일이 돌아가는 걸 보고 어떻게 항소를 할 것인지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합의나 반대 증인, 선처를 호소하는 각계의 탄원서 등 유리한 것들을 확보하는 것도
2심에서 본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전관예우를 받는 힘 있는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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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성씨 변접.”
“네?”
“변호사 접견입니다. 나오세요.”
웬 변호사 접견?
변호사 접견실로 가보니, 변호사 접견을 온 변호사는 이전의 그 무성의한 국선 변호인이 아니었다.
“예. 채현성 씨? 박철호라고 합니다.”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인상의 변호사였다.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에게 그 변호사는 현성의 어머님이 자신을 선임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무슨 돈으로?
아버지도 쓰러지셨고 이리저리 정신이 없으실 텐데?
현성의 오피스 텔 전세금을 빼라고 말씀드리긴 했는데, 아마 그 돈으로 수습을 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사건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현성이 주장하는 바를 꼼꼼히 확인한 그는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인사와 함께, 기운 내라는 격려를 남기고 갔다.
긴박한 처지의 현성이라서 그런지,
국선이 아닌 사선(私選) 변호사에다,
나이가 지긋해서 경륜(經綸)도 많아 보이는 그가 왠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현성의 그런 느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빵잽이들도, 교도관들 누구도 그 변호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유명한 변호사들의 이름은 누구보다 빵잽이나 고참 교도관들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저런 얘기들을 종합해보니, 전관예우 변호사들은 아무나 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객(?)을 신중하게 가려서 받고 있었다.
또 그들과 통하는 중개자들, 보통 브로커(brok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통하는 경우도 많았다.
막강한 브로커와 선이 닿느냐 여부에 따라 변호사의 성공 여부가 좌우될 정도라는 소리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실력파(?) 브로커들은 어지간한 변호사들을 턱짓 손짓으로 부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당연히 이들 브로커와 선을 대는 데에는 돈이 필요했다. 아니면 인맥이 있든가.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오신 현성의 부모님들이 그런 사람들과 접촉할 수완이 있을 턱이 없었다.
또한 설혹 접촉이 왔다 해도, 그런 사람들을 고용할 돈이 없다는 것도 현성은 잘 알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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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에서도 그런 걸 어느 정도는 느꼈었지만, 구치소에 들어와서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들 투성이였다.
유치장의 일이 떠올랐다.
경찰서에서 현성이 구타와 갖은 수모를 겪으며 조사받을 때 유치장에서도 식사는 제공되었다.
그런데 제대로 정미(精米)라도 한 것인지,
제대로 씻어서 밥을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맛도 씹히는 느낌도 그 색깔도 엉망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이 소위 말하는 관식(官食)이었다.
제대로 씻기나 하고 밥을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인 거친 잡곡밥이야 그렇다고 치자.
잡곡은 건강에도 좋으니까.
그런데 반찬이라고 주는 건, 무지 짜고 퍽퍽한 무 졸임 몇 조각이나 단무지 약간이 전부였다.
얼마나 짠지 무 졸임 하나로 밥 반 공기를 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굶기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억지로 정말 억지로 좋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유치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게 배식되었다.
계란 부침이 덮인 쌀밥에 제대로 된 김치와 멸치조림, 게다가 시래깃국까지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에게 먼저 들어와 있던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계란 부침을 잘라주고 반찬을 나눠주며 밥까지 조금 퍼주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퍼주어 십시일반(十匙一飯)이 되었다.
일단 먹고 나서 얘기해자는 그들의 말에 현성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얼른 밥을 먹었다.
그런데 식사 후에 현성은 한 번 더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저마다 칫솔을 꺼내어 양치질을 시작한 것이다.
아니, 대체 어디서 나서?
처음 밥을 나눠주었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반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현성에게 다가왔다.
“자네, 돈 있나?”
“네? 네, 좀 있죠.”
근무하던 그대로 왔으니 지갑이 있었고 당연히 돈도 좀 있었다.
“이봐요, 여기요.”
“무슨 일입니까?”
유치장 창살 밖으로 부르는 소리에, 이제 갓 20을 넘겼을까? 의경으로 보이는 경찰관이 왔다.
“여기 이 젊은 친구 칫솔하고 수건하고 사식(私食) 배식 좀 챙겨주쇼. 아직 수속 안 늦었지?”
“아직 안 했어요? 알았습니다.”
그 의경은 뭔가 뒤적이더니 서류 같은 걸 갖고 와서는 현성에게 내밀었다.
“채현성 씨? 지금 가지고 계신 현금을 확인했습니다. 128,980원 맞나요? 확인하고 주문 내역에 지장 날인해주십시오.”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당한 일이 많다 보니 하라는 대로 어영부영 지장(指章)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이런 데 와서 잘 모르나 보네. 하긴 그렇게 당하는 거 보고 대충 짐작하기는 했네만….
걱정 말고 찍어도 되니까 염려 말고… 아무 손해도 안 가니까.”
반 대머리 아저씨는 현성의 그런 태도를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현성은 믿을 수 없었다.
의경이 나서서 수사나 조사와는 완전 무관한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걸 듣고서야 현성은 지문을 날인해주었다.
그 이후에는 먹고 씻는 것이 모두 바뀌었다.
계란이나 고기볶음 반찬에 제대로 된 국 등이 따라 나오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칫솔과 치약도 쓸 수 있었고, 제대로 된 비누와 깨끗한 수건도 쓸 수 있었다.
대금(代金)은 현성이 경찰 측에 맡겨놓은(?) 돈에서 계산되어 빠져 나갔다.
심지어는 과자나 빵, 우유, 음료수 등도 사먹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돈이라고는 하는 말이 꼭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곳일수록 돈의 위력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노골화되는 돈의 위력과 함께, 사람들의 치사한 면이랄까?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표출되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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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서는 그런 것들이 특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혼자 놔두면 자살이나 자해 등 사고의 위험 등도 있고, 수용 공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높은 사람이나 특별한 처우가 필요한 사람 외에는 독방을 주지 않는다.
당연히 한 방에서 여럿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더구나 오래 있어봤자 며칠 정도에 지나지 않는 유치장과는 달리,
구치소에서는 운이 나쁜 경우 최대 14개월을 있어야 한다.
준비시간과 인원점검 시간을 빼면 20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 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좁은 방 안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조사와 재판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구치소 안에서 먹는 것에 집착해봤자 뭘 어쩌겠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영화 속 감옥이나 구치소 같은 데에서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들어오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배식 수레가 복도를 지나가며, 방의 배식구를 통해 밥과 국, 반찬 등을 넣어주었다.
거칠긴 해도 밥은 많이 나와서 남는 밥을 버려야 할 때가 많았지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좀 괜찮다 싶은 반찬은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돈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금을 소지할 수는 없지만,
각 수용자별로 계좌가 하나씩 있고, 거기에 영치금(領置金)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관리가 된다.
그 돈으로 각종 먹거리를 사먹을 수 있는 것이다.
반찬거리로는 멸치조림에서 김치, 깻잎, 마늘장아찌, 김, 계란 등등 제법 다양했다.
고추장, 참기름, 마아가린, 간장 등은 거의 필수품이라고 할 정도로 식사 시간에 자주 쓰였다.
간식으로 먹을 것도 제법 푸짐했다.
사탕, 빵, 우유, 두유, 요구르트, 닭 훈제, 컵라면, 찐계란, 소시지 등등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콜라와 사이다 등도 구매할 수 있었으니 간식거리가 없다는 말은 돈이 없다는 말과 다름 아니었다.
과일도 주문하기만 하면, 그 철에 맞게 나오는 과일들이 구매물로 방에 들어왔다.
여름에는 수박이나 참외도 먹을 수 있었고, 사과나 귤도 자주 나왔으며, 바나나가 들어올 때도 있었다.
과일 껍질을 벗기거나 자르는 칼은 케이크 등을 자를 때 쓰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된 톱니(?) 칼이 배급되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필수적인 반성문이나, 탄원서, 항소이유서 등을 작성하기 위한 용지도 개인이 구매해야만 했다. 당연히 필기용 볼펜도 그랬고,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사용하던 개인 물품의 휴대는 금지되므로, 시계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어이없다고 해야 할까?
소(所) 측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아날로그 시계가 있었다.
하지만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영치금을 넉넉하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땡전 한 푼 없는 사람들, 이곳 용어로 개털도 있었다.
반면 소위(所謂) 경제사범들은 돈이 풍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가 되면,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수용자 개개인의 생활이 완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구치소 내 생활수준(?)도 양극화(?)되느냐 하면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사실 내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서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구치소 측에서도 개개인의 영치금 사용 권리를 보장해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손목시계를 주문하면, 주문한 사람의 이름이 시계 뒷면에 새겨져 주문자에게 전달되었다.
검방(檢房)이나 검신(檢身)에서 시계 뒷면의 이름이 소유자의 이름과 다른 게 발견되면, 일단 무조건 압수였다.
출소한 사람이 주고 간 거라고 얘기하면 그래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시계 뒷면에 새겨진 이름의 수용자가 아직도 그 구치소에 있다거나, 이감(移監) 간 것에 불과하다면,
자신의 이름과 다른 이름이 새겨진 그 시계를 차고 있는 수용자는 조사실로 넘겨져 조사를 받는 일도 있었다.
운 나쁘면 입건(立件)되기도 했다.
사실 협박이나 폭력 등을 통한 영치금 갈취 사례가 예전에는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협박이나 위력과시 등을 통한 영치금 갈취나,
공동구매 등의 명분으로 개개인의 구매내역에 개입하는 것 등은 처벌대상이라는 게 규정이었다.
그와 관련된 홍보도 수시로 하고 있었다.
즉 방 전체를 위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공동구매는 엄연히 규정에서도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구매물을 주문하는 구매용지에는 반드시 본인이 주문 내역을 적도록 되어 있었고,
지장(指章)도 반드시 주문자 본인의 지장을 찍어서 확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규정은 규정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구매는 공동구매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
적어도 먹는 것에 관해서만은 철저하게 공동구매와 공동배식이 마치 불문율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먹는 것에 관해서만은,
‘내 돈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주문해서 내가 먹겠다’는 식의 태도는 통하지가 않았다.
소(所) 측에서도 그런 현실을 아는 것인지, 일일이 필적과 지장을 확인하려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그 방의 배식반장이 방에서 필요한 간식거리나 생활용품 등의 내역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영치금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액수로 배당되게끔,
1일 구매 한도액에 맞게 조정해서 구매용지를 작성하여 주문한다.
그리고 각자 이름 뒤에 지장을 찍게 한다.
어떤 경우는 그 모든 걸 배식반장이나 봉사원이 다 알아서 적고,
지장도 배식반장이 적당히 각도만 바꿔서 대충 찍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 탈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매물을 주문할 때는 구매용지가 1방부터 전달되기 시작한다.
1방에서 구매용지를 다 작성하면, 다음 2방으로 구매용지가 전달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맨 끝 방까지 구매용지가 전달되는 식으로 구매용지가 작성된다.
그런데 그 구매용지의 전달과 접수는 교도관이 하는 게 아니었다.
미결수가 아닌 기결수(旣決囚)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수용자들 중의 한 명인 소지가 그 일을 맡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관(官)에서는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는 한은 그냥 조용조용히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간부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선에서 뛰어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찮은 일일 테니까.
어쨌든 그렇게 주문하고 나면 며칠 후에 방에 구매물품들이 들어온다.
그 구매물품들은 방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들어온 간식거리도 방 사람들 전체가 공평하게 나눠먹는 것이다.
먹는 것에 대해서만은 최대한 차별이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먹는 것이 가장 간절하므로,
갇혀 지내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것에서까지 돈이 있고 없고를 따지면 안 된다는 식의 공감대가 은연중에 형성되기라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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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면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녀평등이나 여성상위 등을 외치면서도,
막상 소개팅이나 회식자리에서 남자가 ‘더치 페이(Dutch Pay)(주3)’를 제안하면,
겉으로는 당연하다고 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그 남자에게 경멸과 혐오를,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비호감의 낙인을 찍는 것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니었던가.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벌어지는 일도 그런 것과 통하는 것 같았다.
마치 공산주의가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향을 노래하고 있어도,
인간의 본성은 결국 자본주의와 더 잘 합치된다는 것과도 비슷하달까?
사실 명분은 좋다. 아니, 좋다는 것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산다… 는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서로 돕고 서로 챙겨주며 나눈다는 말은 얼마나 듣기 좋고 보기도 좋은가.
하지만 그 명분에 휘둘리면, 뭐 대주고 뺨 맞는 꼴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웬만해서는 크게 사건으로 터지지 않지만,
간간이 생기는 영치금이나 구매 관련 다툼들이 이 아름다운(?) 명분의 문제점을 보여주고는 했다.
예를 들어 좀 어수룩하지만 그런대로 영치금이 있는 중년 남자가 어떤 방에 막내로 들어왔다고 하자.
군대 생활도 해보고 했을 테니,
새파란 어린놈이 고참이라며 방의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신입이라며 방의 허드렛일 등을 몰아서 시키는 것 등은 금지한다는 규정이 방의 벽에 버젓이 붙어 있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교도관들도 일체 간섭하지 않았고 수용자들도 그런 규칙은 안중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사실 환갑 넘은 노인이 와도 대접 받기 힘든 곳이 이런 곳이다.
옛날에는 이런 일도 흔했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노인이 신입으로 왔다고 하자.
방장, 즉 봉사원이 점잖은 어투로 묻는다.
“어이구, 어르신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세요?”
그러면 대부분은 그래도 나이대접은 해주려나 보다 싶어서 마음을 놓고는 편하게 대답을 한다.
그 즉시 봉사원은 그 신참 어르신의 기대를 짓밟는다.
“그러냐? 그러면 그 나이에서 절반 떼어서 영치(領置)시켜 놓고 와. 어따 대고 반말이야?”
그럴 때 나이 먹은 티를 내며서 훈계를 하거나 야단을 치려고 하면,
돌아오는 것은 욕설이었고 심한 경우는 몰매였다.
요즘에는 그래도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이 먹었다고 나이대접이 어쩌고 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고령자들만 따로 모아놓는 고령자 방이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신입이 해야 되는 일들 중 대표적인 것,
즉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고무장갑, 세제, 수세미 등등이다.
배급되는 것들이 있긴 해도 다 품질이 열악하고 양도 부족하다.
당연히 따로 사서 써야만 한다.
그런데 그 방이 경제사정이 바닥이어서 아무 것도 없었다면?
방의 방장, 즉 봉사원이나 배식반장이 다른 방에서 빌리는 게 보통이다.
당연히 나중에 갚아야 한다.
그럼 누가 사서 갚는가?
결국 그 신입으로 들어온 중년 남자는 자기 돈으로 용품을 사서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되는 셈이다.
먹시기(주4)를 주문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하자.
앞서도 밝혔지만, 방 사람들이 장기 수감으로 인해 영치금이 떨어졌다거나 얼마 없다고 하면?
결국 그 중년 남자의 이름으로, 즉 그 남자의 돈으로 주문하게 된다.
그럼 그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신참으로 들어왔다고 일은 일대로 시키고, 돈은 돈대로 빼 먹힌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불만이 쌓이게 되면 누군가가 그 불만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어도 결국 대다수는 그런 관습(?)에 순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유가 뭘까?
첫째,
구치소 생활은 결코 길지 않다.
그냥 적당히 참고 넘어가자.
괜히 항의해봤자 싸움만 날 테고 싸우다가 폭행으로 번져서 입건되거나 하면 재판 과정에 불이익만 간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자.
둘째,
막내 생활 계속 하는 것 아니다.
참고 지내다 보면 신입이 올 테니,
적어도 돈은 돈 대로 쓰고 허드렛일은 일대로 하는 꼴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참는다.
셋째,
더럽고 치사해도 쓰레기들만 오는 곳이니 당연하다.
그러니 참자.
접견 왔을 때 영치금 절대 넣지 말라고 해두자.
미쳤다고 남 좋은 일 시킬 뿐인 영치금을 넣으라고 하냐?
이런 생각으로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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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의 그런 추론은 아주 틀린 건 아니었지만, 만점은 아니었다.
어느 날의 간식시간이었다.
몇 동 몇 방에서, 내 영치금은 내가 쓰는 게 당연한데 무슨 공동구매냐 하면서,
영치금 관련 다툼이 있었다는 얘기가 화제에 올랐을 때, 김석호가 코웃음을 쳤다.
“또박 살려고 하면 모를까. 혼자서 어떻게 영치금 쓰고 그러냐?”
김석호의 말이었다.
“또박 산다뇨?”
“아, 그… 우리 식기 중에서 제일 작은 식기 있잖아? 그걸 또박이라고 하거든.
또박 산다… 그러니까 완전 독고다이로 사는 거지.
밥 먹을 때도 간식 먹을 때도 청소할 때도 혼자서 다 알아서 하는 거야. 그런 걸 또박 산다고 그래.
그니까… 영치금도 자기 필요한 거 살 때만 쓰고 공동 구매 그런 건 절대 안 하는 거지.
근데 그게 편할 거 같냐? 또박 산다는 건 완전 그 새끼 갈구는 거나 다름없어.
또박 살린다고 그러지 그런 건.”
“아니, 왜요?”
“생각해봐라. 배식 받을 때도 방 사람들 거 다 받고 나서, 방 사람들은 식탁 차리잖아?
그런데 그 또박 살리는 그 놈만 따로 소지한테 자기 것만 배식해달라고 해야 돼.
소지들이 그거 좋아할 거 같냐? 안 그래도 후딱후딱 해야 되는데?
옆에 부장님 있고 그러니까 대놓고 욕은 못해도, 그 갈구는 기세는 장난 아니거든.”
“아… 그렇겠네요.”
“그것뿐이면 내가 또 말을 안 한다.”
“그럼 또 뭐가?”
“밥 먹을 때도 방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못 먹어. 구석에서 따로 신문지라도 펴놓고 지 혼자 먹어야지.
또 설거지도 방 전체 설거지 끝난 다음에 지 먹은 그릇은 따로 혼자 씻어야 돼.
당근 행주나 세제도 따로 또박 사는 그 녀석 거는 따로 자기가 챙겨놔야지.
글구 방에 빨래 널 데도 모자란 판인데 그 녀석 때문에 또 만들어야 하리?
안 그래도 빨래줄 널어놓으면 검방할 때마다 다 걷어버리는 판에?
그리고 청소할 때도 그 녀석 앉는 자리랑 자는 자리는 방 사람들이 안 건드려.
먼지를 그쪽으로 안 몰아놓기나 하면 다행이지. 빗자루나 걸레도 자기 건 따로 챙겨놔야 되는 건 당연하고.
화장지도 자기 건 따로 사놓아야 되고.
뺑기통 갈 때도 그 또박 사는 놈한테는 지가 볼일 볼 때마다 청소해놓고 나오라고 방 사람들이 갈굴 텐데?
공동으로 사용하는 관물함에 물건도 못 놔두게 할 테니, 따로 가방 사서 넣어놓고 관리해야 할 텐데,
우르르 늘어나는 가방 걸게 다른 사람들이 벽에 있는 옷걸이 양보해주겠냐?
한 사람당 두 개 정도, 운 좋아야 세 개 돌아가는데,
그 또박 사는 놈이 자기 물건이랑 먹시기 걸겠다고 옷걸이 세 개나 네 개 사용하겠다 그러면,
방 사람들이 그걸 그냥 놔둘 거 같냐? 너 같으면 양보해줄래?”
듣고 보니 그랬다.
그렇게 또박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할 것임은 당연했다.
“이런 데서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면 안 되는 거야.
다 같이 생활하는 방에서 설거지나 청소 용품 그런 거 구매하자는 거에 또박 살자고 하는 놈이 어딨냐?
그리고 먹는 것에서까지 또박 살자 그러면 그 새끼 진짜 X같은 놈이라고.”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공동구매라고는 하지만, 방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이나 먹을거리 같은 것이나 공동구매를 할 뿐,
편지지나 속옷, 수용복, 담요, 침낭 등의 개인용품은 개인구매, 즉 또박이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리도 또 영치금 어쩌고 말썽 나는 건 이런 구치소나 초범 교도소에나 있어.
그리고 막내고 신입이라고 일방적으로 부려먹기만 하는 그런 게 교도소에 가면 있을 것 같냐?
초범 교도소라면 모를까 재범 교도소로 가보면 호구 잡힌 놈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거 잘 없어.
돈 없는 사람은 뭐 부탁할 거 있으면 돈 있는 놈 빨래라도 대신 해주고 부탁하고 그러거든.
방에서야 뭐 막내고 그러면 뺑기통 그런 거 다 하고 그러지만, 대신 다른 건 봉사원이 알아서 다 챙겨준다고.
하다못해 옷이라도 한 벌 좋은 걸 챙겨준다거나, 잡지나 책 같은 걸 신입한테 보라고 준다거나 하는 식이지.
부려먹으면 챙겨주는 것도 있어야 되는 거라고.”
빵잽이가 달리 빵잽이가 아닌 모양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영치금 무지 빵빵해서 따로 고액 계좌를 만들어야 되는 진짜 범털이 오면, 그 범털 혼자서 그 방 구매를 전부 책임지고 그래. 그러면 그 범털은 배식반장보다 서열이 위로 올라가. 아무도 안 건드려. 방의 잡일 전체에서 열외 되거든. 뭐 대형 사기범이나 엄청나게 횡령 해먹었거나 하는 놈들이 보통 그런 대접 받아. 그보다 더 거물이면 보통 독거실로 배방 받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돈이었다.
하긴 이런 곳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허울 좋은 명분만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돈이었고, 법정 다툼에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수적이었다.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반 사회에서는 입에 올리기 기피하는 그런 일들이
이런 곳에서는 자주 표면으로 올라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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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현성이 형. 형은 결혼하셨어요?”
“……!”
얼마 전에 신입으로 들어온 조창문이었다.
이제 갓 20살이 넘었고 붙임성도 좋은데,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들어왔다고 했다.
사망 사고가 아닌데다가 집이 부자라서 피해자 측과 합의만 보면 1심에서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건이어서 그런지, 방의 허드렛일에 솔선수범하며 나서곤 했다.
현성을 형이라 부르며 잘 따르던 조창문이 잡담 끝에 현성에게 툭 던진 말에, 현성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니, 안 했어. 근데 왜?”
“아니, 그게요. 보니까 형은 접견을 잘 안 오는 것 같더라고요.
보통 마누라나 애인이 접견 오고 그러잖아요. 형도 초범이라고 하셨고. 그러니까…”
딱
“아얏!”
“이 S새끼가 뭘 잘못 쳐 먹었나. 왜 헛소리를 짖어대고 지랄이야?
얼른 가서 뺑기통이나 한 번 더 닦아. 냄새 나더라.”
김석호가 조창문의 뒤통수를 갈기며 다그쳤다.
조창문은 잠시 투덜거리는 것 같더니, 금방 헤헤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쓱싹 거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김석호는 먹거리를 넣어두는 가방을 뒤져서 빵과 우유를 몇 개 꺼내더니, 창문 쪽으로 가서 소지를 불렀다.
“소지~!”
“몇 방?”
“7방!”
인기척이 나더니 창문의 쇠창살 너머로 소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왜요, 석호 형?”
“자, 이것 좀 먹어봐.”
“어이구야, 번번이 고맙습니다, 석호 형.”
“야, 어디 가서 잡지 좀 빌려다줄래?”
“예, 형.”
소지가 잡지를 찾아 다른 방들을 돌아다니는지, 희미하게 ‘잡지 좀 볼 거 있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성은 그런 김석호의 마음씀씀이에, 쓴웃음이기는 했지만, 희미한 미소가 나왔다.
그런 현성과 잠시 눈이 마주친 김석호는 얼른 딴청을 피우면서 다시 창문 밖만 쳐다보았다.
창문이 녀석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리라.
하지만 창문의 말은 현성의 아픈 데를 찌르고 있었다.
마누라, 애인….
결혼을 앞두고 있던 지은이 생각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현성은 처음에는 지은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달까. 그리고 그걸 지은이 알게 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었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성은 자신의 결백을 믿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직 포기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사실 혼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라면 믿어줄 것 같았다.
결국 현성은 지은에게 편지를 두 통 보냈었다.
지은의 주소는 지은에게 과외를 해주던 시절에 이미 외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은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었다.
접견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접견을 오면 어떻게든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지은의 사진도 넣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 하는 생각에 애써 잊으려고 하던 중이었던 현성이었다.
심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미주(尾註)*******************************************************************
주1) 선민의식(選民意識) : 나는 (신이나 하늘, 운명 등에게) 선택된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
주2) 강력범죄 : 흔히 5대 강력범죄라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강도, 살인, 방화, 강간, 유괴
주3) 더치 페이 : 원래는 네덜란드식 대접(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 이것이 후에 왜곡되어, 더치 페이(Dutch Pay)라고 하면, 같이 식사를 한 뒤 먹은 음식에 대한 비용을 각자 서로 나누어 부담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4) 먹시기 : 구치소나 교도소 등에서 먹을거리를 지칭하는 은어
◆글쓴이의 변(辯)**********************************************************
읽고 추천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많은 격려가 되네요.
그리고 오타, 비문(非文), 오류 지적이나, 이야기 전개, 사건 등에 대한 의견 주실 분들께서는
언제라도 덧글 남겨주시거나 제 작가집필실의 자유게시판에 글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잡담성(?) 감상 덧글 등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
1부 3장. 인간과 사회의 속내******************************
어떻게든 자신은 무고하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초조함을 견디고 울분을 눌러 참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적지 않게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상태에서 거의 반년을 끌었다.
그래서일까?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아 큰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날 하루 푹 자고 일어나고 나니,
어쨌든 결과는 나왔다는 것에서 묘한 안도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현성이었다.
하지만 지쳤다고 해서 억울함을 참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으니 항소(抗訴)를 해야만 했다.
현성의 경우, 항소심을 위해 이감(移監)을 가야 할 거라고 교도관이 말해주었다.
김석호는 추가가 뜬 게 있어서 여기서 좀 더 재판을 받게 될 거라며,
이것저것 현성의 이감을 위해 챙겨주었다.
추가가 뜬다는 것은 ‘갑’이라는 범죄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던 중,
‘을’이라는 범죄 혐의가 새롭게 발견되어 추가된다는 얘기였다.
김석호가 달리 빵잽이가 아닌 모양이었다.
김석호의 ‘갑’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는 ‘강도강간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추가가 뜬 ‘을’은 절도라는 것 같았다.
굳이 공소 내용을 물어보고 싶지는 않아서 현성은 별 얘기도 꺼내지 않았지만,
답답한 구석이 많았는지 김석호는 자기 입으로 술술 얘기했다.
김석호의 말에 따르면 검찰의 공소 내용은 이랬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 몰래 침입했다가, 여성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강간을 하려다가, 피해자가 저항하니 칼로 찔러 저항을 무력화시킨 후, 강간을 하려는 도중 피해자가 출혈이 심해서 도중에 죽음에 이르자, 옷을 챙겨 입고 현장에서 달아나려고 한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 무시무시한 죄명이었기에 현성은 잠시 김석호가 달리 보였다.
“그래서 나도 완전 매스컴 전국구로 탔지. 일단 크게 매스컴 한 번 타면 시범 케이스가 어쩌니 여론이 어쩌니 해서 재판 꼬이는 거거든. 씨P!”
뜨끔했다.
현성 역시 신문과 방송을 대대적으로 장식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김석호도 역시 성범죄와 관련되어 억울한 부분이 많았기에 처음부터 현성을 그리 감쌌던 것일까.
어쨌든 공소 내용에 대한 김석호의 말은 이랬다.
“몇 푼 훔치려고 들어간 건 사실이야. 문도 안 잠겨 있었고….
미리 간을 봐보고 여자 혼자 있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 그 정도 미리 살펴보는 건 말밥 필수거든.
그치만 들어가 보니까 칼에 찔린 여자가 헐떡이며 숨이 넘어가고 있더라고.
내가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있겠냐?
아, 근데… 내가 미친놈이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튀면 되는 건데 칼을 빼고 어떻게든 피 멈추게 하려고 내가 개지랄 떨었다는 거 아니냐.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근데 내가 뭐 그 뭐시기, 그 응급 뭐? 하여튼 내가 뭐 아냐?
피 나는 데 손으로 눌러보고 별 지랄 다해봤는데 결국 꼴까닥 숨이 넘어가더라고.
정신이 확 들더라. 어이구, 이거 죽은 거구나.
내가 옴팡 뒤집어쓰겠다 싶어서 얼른 튀려고 하는데, 그때 경찰이 들이닥치더라고.
내 손에는 칼 쥐어져있지, 시체는 내 품 안에 있지… 더럽게 꼬인 거지 뭐.
근데 조사받다가 보니 그 여자가 강간당한 흔적이 있대나?
그치만 내 체모(體毛)도 안 나왔고 정액도 안 나왔다고.
그냥 그 여자 보Z구멍에 상처가 있다는 그게 다였어.
전과가 줄줄이 있으니 내 말도 안 통하고… 더럽게 꼬인 거지 뭐.”
이건 정말 미묘한 문제였다.
김석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걸 입증할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현성이 검사나 경찰 입장이었다 해도 찬란한(?) 전과 기록이 있는 김석호의 말을 믿어주기는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난 칼 원래 안 들고 다녀.
그냥 절도는 현장에서 잡혀도 얼마 안 받는데, 칼 같은 거 갖고 있으면 완전 징역 뻥튀기라고.
문 따겠답시고 드라이버라도 갖고 있어봐. 전과 있으면 그것도 흉기로 분류되는 수가 있거든.
그래서 맨손으로도 딸 수 있거나 문이 열려 있는 그런 데를 몰래 들어가는 게 내 철칙인데….
내가 왜 칼을 갖고 가서는 강간하겠답시고 여자를 찔러 죽이냐? 잡히면 사형이나 무긴데….”
어쨌든 현성보다 몇 주 먼저, 김석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상태였다.
다만 추가 건으로 인해 조사가 길어지면서 사건이 병합되려는 건지,
아직 선고 공판 날짜가 안 잡히고 있다고 했다.
김석호는 1심에서 무기(無期)나 15년 형을 받게 될 것 같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초조해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의외로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런 그의 여유가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2심에서 다시 한 번 싸워보자고 생각하니,
현성의 이성(理性)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일단 사진은 합성이나 조작이 아닌 진짜 같았다.
카메라도 후배인 한수가 선물했던 그 디지털 카메라였다.
하지만 현성이 찍은 건 맨 처음 찍었던 그 사진뿐이다. 나머지는 결코 현성이 찍었을 리가 없다.
술 취한 김에 그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현성은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날 그렇게 심하게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주장한 것들 중의 하나긴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현성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검사건 판사건 그 주장을 묵살했었다.
현성 스스로도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성이 술 먹고 뻗은 동안 그 여학생들이 그러면서 그 사진을 찍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애들은 왜 그랬을까?
좀 터무니없지만 그 애들이 현성에게 반해서이든지,
아니면 호기심이든지 하여튼 그런 장난을 하면서 기념 삼아(?) 사진도 찍었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오히려 현성이 강간(?) 당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실정법은 그런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배설물 일은 그 도중의 돌발사고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치면, 그 사진이 어떻게, 왜 경찰에 넘어간 거지?
경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사건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신고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거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여자애들이?
그 애들에게 현성은 원한을 산 적이 없다.
최소한 현성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러니 그 애들이 현성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그랬다는 것도 설득력이 약했다.
그렇다면 여자애들이 신고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무성의한 국선변호인은 변호사 접견도 오지 않아서, 신고자가 누구인지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신고자의 신변 보호 등 어쩌고 하는 규정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 여자애들이 신고해서 현성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낮지만,
현성이 여학생 두 명을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제 멋대로 오해하고는,
넘치는 정의감(?)으로 신고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해보자.
그럼 왜 다음날 오전이 되어서야 경찰이 왔을까?
영장이 어떻고 신고 접수가 어떻고 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십분 양보해보자.
그리고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여학생들을 데려와서 추궁했고,
궁지에 몰리다보니 변명할 게 없어서 그 여학생들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둘러댔다고 치자.
그럼 마약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제3자가 그 여학생들에게 그런 걸 시키면서 현성이 술에 뻗어서 자는 동안 몰래 마약이라도 먹였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그럼 그 제3자는 누구란 말인가?
현성은 그런 종류의 약품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현성의 항변은 증거(?)를 내세우는 검경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을 듯했다.
첫째, 현성을 노리던 누군가가 몰래 먹였다.
둘째, 그 여학생들이 몰래 먹였다.
마약이라고 하면 대부분 혈관주사를 생각한다.
현성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주 등에 타서 몰래 먹이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뭔가 이상한 게 들어있다는 걸 절대 눈치 못 챈다고 구치소에서 들었다.
그러면 현성도 그렇게 당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누구고 왜 그랬나?
그리고 그 여학생들이 그랬다면 왜?
이 질문에서 막혀서 현성의 추리 아닌 추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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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때문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현성은 이리도 지독하게 보복(?) 당해야 할 정도의 원한을 산 기억이 없었다.
개구리에게 돌을 던져 개구리가 죽었다 해도, 돌 던진 사람은 기억 못하는 법이기는 하다.
그래도 현성은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득?
현성을 이렇게 만듦으로써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얼른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일하던 회사밖에 없었다.
약속된 보상금을 주기가 아까워 이렇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여학생들과 회사가 연결 고리가 있느냐 여부에서는 영 자신이 없었다.
현성에게 돌아와야 할 보상금은 넉넉잡아 계산해도 6억 남짓.
그런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직원에게 포상금으로 줄 돈, 겨우 그까짓(?) 6억이 아까워서,
만약의 경우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이런 짓을 했을까?
그래도 그나마 지금까지의 가설들 중에서는 가장 설득력이 있는 편이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대기업에서 나서서 일을 꾸몄다면 현성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다.
변호사까지 이 모양 이 꼴이니 더더욱 그랬다.
이윽고 변호사 문제로 생각이 가니 현성은 절로 한숨이 나올 거 같았다.
법정에서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는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사건이 뒤집히기도 하는 실정을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서 보긴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변호사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똑같은 내용으로 변호한다고 해도,
그 말을 어떤 변호사가 하느냐에 따라 재판의 흐름이 변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었다.
사실 세상살이에서도 그렇다.
같은 말을 똑같이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과 효과는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평소 멸시하고 혐오하던 사람이 옳은 말을 하는 것과,
평소 존경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옳은 말을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사법계에서는 어떤 변론을 어떻게 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변론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고참 판사 출신으로, 갓 법복(法服)을 벗은 사람이 변론을 해주는 게 좋았다.
그건 또 왜 그런가?
여러 말이 무성한 로스쿨(Law School) 졸업생의 경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판사, 검사, 변호사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의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은 자기 입맛대로 대학을 골라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자신의 점수에서 가능한 곳만 지원할 수 있는 것과도 같았다.
빵잽이들의 주장은 이랬다.
점수가 높은 사법고시 합격생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진로를 정할 수 있지만,
점수가 낮은 합격생은 판사나 검사에 지원해도 별 소용이 없거나, 지원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성적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변호사가 된 경우,
그 변호사가 제법 훌륭한 변론을 해도, 검사나 판사에게는 얕잡아 보이기 일쑤라는 것이 빵잽이들의 얘기였다.
‘나보다 점수도 낮은 돌머리 새끼가 말장난이나 하고…’
판사들은 이런 시각으로 변호사들을 본다는 것이 빵잽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법조체계서는 검사나 판사가 사임을 하는 경우,
범죄나 부정 행위 등으로 인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공직을 그만둔 검사나 판사는 변호사로 개업이 가능했다.
사임하는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을 하게 되거나 하면,
그 선배는 공직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직의 위계질서가 잡히지 않는다는 등의 명분이 있지만,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선민(選民)의식(주1)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빵잽이들의 말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빵잽이들은 그렇게 그럴듯한 어휘로 말하지는 않았다.
“후배놈이 자기를 추월하니까 배알이 꼴려서 쫀심 상하게 하는 더러운 꼴 안 보려고 뛰쳐나가는 거지 뭐.
나가도 변호사 개업하면 2년 내로 수십억은 끌어 모을 수 있거든.”
2년 내로 수십억?
판사복이나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를 개업했다는 것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현성의 의문이 풀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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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學緣)이란 의외로 강력한 고리이다.
이 학연(學緣)이니 지연(地緣)이니 하는 것이 한국 특유의 병폐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다른 선진국들은 안 그런데 한국만 그렇다거나 하며, 이는 인재 발굴과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의 최고 선진국이라고들 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학연(學緣)의 힘은 한국보다 더 강력하면 강력했지 덜 하지는 않다.
미국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영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경우, 전통과 명성이 높은 사립 고등학교 출신들이 고위직은 거의 독차지 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대표적인 유명 사립 고등학교는 이튼(Eton)이나 해로우 스쿨(Harrow School)이다.
이런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며, 외출시간이나 요일도 정해진다.
두발의 길이나 모양, 교복에 외출용 복장까지 엄격한 제한이 있는 경우도 흔하다.
학교 자체 소유의 골프장과 승마장이 있는 곳도 있고, 관련 교육 역시 행해진다.
당연히 학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1년 학비가 수천만 원에 달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옛날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들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해로우 스쿨의 경우, 그 학교에 재학중이거나 그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따로 지칭하는 해로비언(Harrovian)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그들은 영국 사회에서 특별한 것이다.
품위를 중시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어휘 등에도 교육과 제한이 가해진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그런 명문교 출신들은 영국 정통 영어라고 할 수 있는 옥스퍼드 영어(Oxford English)를 구사하기 마련이라서, 사용하는 말만 들어보아도 사립 명문교 출신임이 구별될 정도이다.
영국의 그런 사립 명문교들은 신사나 지도층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독일의 학교들이 기술 등 진로교육 위주인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교복과 두발제한을 인권침해 어쩌고 비난하며, 우리나라만의 악습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유럽 선진국의 명문 학교들이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은 물론, 언어 습관에까지 규제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과연 뭐라고 할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旗幟)를 내걸고 혁명을 일으켰던 나라인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명문 고등학교, 명문대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없으니 그런 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후진적이고 야만적이고 일제(日帝)의 잔재라고 비난하곤 하는 신고식이라는 것을 들어보자.
명문교의 경우, 입학 후의 신고식은 그 폭력성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변태성도 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갓 입학한 후배들이 선배들 앞에서
와인에 소변이나 기름, 심지어는 오물을 탄 음료를 억지로 마셔야 하는 것은 보통이다.
완전 알몸으로 만들고 진흙이나 케이크 등을 던져 범벅으로 만든 후,
거기에 닭털이나 오리털 등을 뿌려서 인간 닭이나 인간 오리(?)로 만들어서는
교정(校庭)이나 거리를 활보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여학생들의 경우 속옷만 남기고 벗게 하고는,
남자 선배들의 양 허벅지 사이에 꽂아둔 바나나를
오로지 입만으로 껍질을 벗기고 다 먹는 신고식을 거쳐야 하는 것 등은 너무나 시시한 예이다.
이런 것들은 그냥 일부의 예가 아니다.
프랑스의 교육부 장관이 이런 사태가 포착되면 엄중 처벌하겠다는 경고까지 할 정도라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심지어는 전화고발접수 센터까지 프랑스 정부에서 만들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신고 되는 사례는 없었고 처벌되었다는 사례도 없다.
왜일까?
프랑스 상류 지도층은 명문교 출신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다.
유감이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선후배들끼리 밀고 당겨주는 학연(學緣)은 굉장히 강하다.
이 학연(學緣)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선후배간의 위계질서이다.
비인간적, 아니, 변태적인 것에 가까운 신고식을 통해,
후배는 선배 앞에서 자신의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는 굴복감을 맛보아야만,
위계질서의식이 확고해진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만약 인권이 어쩌고 전근대적(前近代的)인 악습이 어쩌고 하며,
그 신고식을 거부하고 선배들의 호출도 거부한다면 그 신입생은 어떻게 될까?
학교 내의 동아리 활동, 사교 활동 등에서 완전히 왕따가 되고, 학교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
설혹 그 모든 ‘방해 공작’을 꿋꿋이 이겨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끈끈한 학연으로 맺어진 선후배조직들은 그 문제 학생에게 출세의 기회 자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식으로 사법고시에 통과했다고 해도,
철저하게 한직과 외직으로만 돌리고 승진 등에서 철저하게 누락시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고위 관리직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신고식을 통과하고 엄격한 위계질서의식이 박혀있는 선배들이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신입생들도 그걸 안다.
그래서 아무리 선배들에게 지독한 꼴을 당해도 결코 신고한다거나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신의 인생의 미래를 포기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전(前) 대통령들 중에 지스카르 데스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기용한 장관은,
대통령 자신이 신입생이던 시절, 자신에게 모욕적, 폭력적인 신고식을 하게 했던 선배였다.
그 사람이 바로 앙드레 지로, 프랑스 전(前) 국방부 장관이다.
데스탱 전(前)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의 선배인 지로에게 당한 신고식은
진흙과 닭털을 뒤집어씌워 인간 닭으로 만드는 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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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고 있던 그런 점들을 떠올린 현성은
빵빵한(?!) 변호사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빵잽이들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갑이라는 꽤나 높은 직책의 판사가 판사를 사퇴하고 변호사가 되어,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그런데 그 사건의 담당 판사나 담당 검사가 그 갑 변호사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던 후배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 담당 판사와 검사가 갑 변호사에게 빡빡하게 굴 수 있을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 맞대고 일하며 인사를 주고받던 선후배 사이이던 사람에게?
이것이 바로 전관예우(前官禮遇)이다.
즉 이전까지 법관이나 검사로 근무하던 사람이 변호사로 전환하면,
검사나 판사는 그 변호사를 예우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 담당 판사와 검사도 언젠가는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의식만으로도 이미 동업자의식이 생겨난다.
또한 선후배 사이라는 학연이 거기에 촉매 작용을 하고,
이럴 때 매몰차게 굴면 끈끈하게 이어진 선후배간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그래서 담당 판사와 검사에게 선배인 갑 변호사의 말은 무척이나 잘 먹힐 수밖에 없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갑 변호사의 말대로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 변호사가 맡은 살인사건은 과실치사나 상해치사로 공소변경이 될 수도 있다.
공소변경은 판검사의 재량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갑 변호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당연하다.
살인사건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받는다.
어지간한 감경 사유가 없다면 초범이라 해도 집행유예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관예우를 받은 변호사가 나서서 이를 상해치사죄(傷害致死罪)로 바꾼다면?
이는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되는 죄로 가벼워져 버린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가 나서서,
자신이 변호를 맡은 피의자에게는 그 피살자에게 상해(傷害)를 입히려는 고의는 있었다 해도,
그 피해자의 사망결과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것이 검사나 판사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살인죄는 바로 상해치사죄로 공소가 변경될 수 있다.
더더구나 좀 더 힘을 써서 살인죄를 과실치사죄(過失致死罪)로 바꾼다면?
과실치사죄는 2년 이하의 금고(禁錮)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피해자 가족과 합의만 본다면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 혹은 피의자 가족에게서
그 갑이라는 변호사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수임료를 받아낼 수 있다.
물론 변호사 선임비용의 법적 명시액은 사례별로 다르긴 해도 200~300만 원 정도가 보통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비용만으로 변호사를 고용해서,
형사사건, 특히 강력범죄(주2)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봐도 피의자에게 충분한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든가 하여,
작량감경(酌量減輕) 대상이 되고도 남는 경우라면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 정도 액수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나 다름없다.
살인사건이나 강도강간, 강도살인, 강간살인 등의 경우,
피의자의 집안이 꽤 재력가(財力家)라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에게 선임 단계에서부터 수천만 원이 건네진다.
그리고 성공보수로는 수억 원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집행유예나 최저형을 이끌어내는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이 성공보수이다.
대부분 현찰로 몰래 건네지는 돈이라서 세금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전관예우를 누릴 수 있는 기간에 수십억 원을 끌어 모으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 기간은 보통 2년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는 전관예우의 병폐를 막기 위해 제정된 규정에서도 얼핏 드러난다.
판사나 검사 출신으로 변호사가 된 경우,
그 변호사는 예전에 근무하던 곳의 판사나 검사가 맡은 사건을 2년 내에는 수임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제정된 적도 있었다.
이는 전관예우의 약발이 최고인 기간이 2년 정도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몇몇 빵잽이들이 목에 핏대까지 올려가며 주장하는 얘기들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전관예우 변호사들에게 건네지는 중도금(?)은 검사나 판사를 구워삶기 위한 공작금(?) 같은 것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와 재판과 관련하여 만날 수 있는 방이 실제로 법원에 있기는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의자로부터 건네지는 비용으로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를 매수한다는 소리는 터무니없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 쉬운 빵잽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했다.
적어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만큼은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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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도 2심, 즉 항소심이 남아 있다는 것에서 현성은 미약하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빵잽이인 김석호의 말도 위안이 되었다.
공소 사항이 추가되거나 일이 꼬이지만 않는다면,
항소심에서는 대부분 형이 깎이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짜 유무죄의 판결은 2심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현성의 1심 담당 부장판사였던 구정기 판사는 승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엄격하고도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서 많은 업무 실적을 쌓아야 한다나?
하여튼 그런 입장이라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보다는,
법전 그대로 판결하는 것에 치중한다는 정보까지 김석호는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현성이 7년을 선고받은 것도 현성이 끈질기게 무죄주장을 한 영향이라는 게 김석호의 의견이었다.
사실 그대로 믿기는 힘들었지만,
김석호와 안면이 있는 고참 교도관도 같은 말을 하니 꽤나 신빙성이 있는 얘기 같았다.
이 바닥(?)에서 거의 정설처럼 떠도는 말들이 있었다.
1심은 공소내용이 어지간히 엉터리가 아닌 다음에야,
재판부에서는 검찰의 주장을 웬만하면 그대로 수용해주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재판은 보통 2심에서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안이 중대한 재판의 경우,
변호인, 혹은 변호인단들은 1심에서 일이 돌아가는 걸 보고 어떻게 항소를 할 것인지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합의나 반대 증인, 선처를 호소하는 각계의 탄원서 등 유리한 것들을 확보하는 것도
2심에서 본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전관예우를 받는 힘 있는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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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성씨 변접.”
“네?”
“변호사 접견입니다. 나오세요.”
웬 변호사 접견?
변호사 접견실로 가보니, 변호사 접견을 온 변호사는 이전의 그 무성의한 국선 변호인이 아니었다.
“예. 채현성 씨? 박철호라고 합니다.”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인상의 변호사였다.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에게 그 변호사는 현성의 어머님이 자신을 선임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무슨 돈으로?
아버지도 쓰러지셨고 이리저리 정신이 없으실 텐데?
현성의 오피스 텔 전세금을 빼라고 말씀드리긴 했는데, 아마 그 돈으로 수습을 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사건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현성이 주장하는 바를 꼼꼼히 확인한 그는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인사와 함께, 기운 내라는 격려를 남기고 갔다.
긴박한 처지의 현성이라서 그런지,
국선이 아닌 사선(私選) 변호사에다,
나이가 지긋해서 경륜(經綸)도 많아 보이는 그가 왠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현성의 그런 느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빵잽이들도, 교도관들 누구도 그 변호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유명한 변호사들의 이름은 누구보다 빵잽이나 고참 교도관들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저런 얘기들을 종합해보니, 전관예우 변호사들은 아무나 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객(?)을 신중하게 가려서 받고 있었다.
또 그들과 통하는 중개자들, 보통 브로커(brok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통하는 경우도 많았다.
막강한 브로커와 선이 닿느냐 여부에 따라 변호사의 성공 여부가 좌우될 정도라는 소리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실력파(?) 브로커들은 어지간한 변호사들을 턱짓 손짓으로 부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당연히 이들 브로커와 선을 대는 데에는 돈이 필요했다. 아니면 인맥이 있든가.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오신 현성의 부모님들이 그런 사람들과 접촉할 수완이 있을 턱이 없었다.
또한 설혹 접촉이 왔다 해도, 그런 사람들을 고용할 돈이 없다는 것도 현성은 잘 알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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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에서도 그런 걸 어느 정도는 느꼈었지만, 구치소에 들어와서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들 투성이였다.
유치장의 일이 떠올랐다.
경찰서에서 현성이 구타와 갖은 수모를 겪으며 조사받을 때 유치장에서도 식사는 제공되었다.
그런데 제대로 정미(精米)라도 한 것인지,
제대로 씻어서 밥을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맛도 씹히는 느낌도 그 색깔도 엉망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이 소위 말하는 관식(官食)이었다.
제대로 씻기나 하고 밥을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인 거친 잡곡밥이야 그렇다고 치자.
잡곡은 건강에도 좋으니까.
그런데 반찬이라고 주는 건, 무지 짜고 퍽퍽한 무 졸임 몇 조각이나 단무지 약간이 전부였다.
얼마나 짠지 무 졸임 하나로 밥 반 공기를 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굶기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억지로 정말 억지로 좋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유치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게 배식되었다.
계란 부침이 덮인 쌀밥에 제대로 된 김치와 멸치조림, 게다가 시래깃국까지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에게 먼저 들어와 있던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계란 부침을 잘라주고 반찬을 나눠주며 밥까지 조금 퍼주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퍼주어 십시일반(十匙一飯)이 되었다.
일단 먹고 나서 얘기해자는 그들의 말에 현성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얼른 밥을 먹었다.
그런데 식사 후에 현성은 한 번 더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저마다 칫솔을 꺼내어 양치질을 시작한 것이다.
아니, 대체 어디서 나서?
처음 밥을 나눠주었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반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현성에게 다가왔다.
“자네, 돈 있나?”
“네? 네, 좀 있죠.”
근무하던 그대로 왔으니 지갑이 있었고 당연히 돈도 좀 있었다.
“이봐요, 여기요.”
“무슨 일입니까?”
유치장 창살 밖으로 부르는 소리에, 이제 갓 20을 넘겼을까? 의경으로 보이는 경찰관이 왔다.
“여기 이 젊은 친구 칫솔하고 수건하고 사식(私食) 배식 좀 챙겨주쇼. 아직 수속 안 늦었지?”
“아직 안 했어요? 알았습니다.”
그 의경은 뭔가 뒤적이더니 서류 같은 걸 갖고 와서는 현성에게 내밀었다.
“채현성 씨? 지금 가지고 계신 현금을 확인했습니다. 128,980원 맞나요? 확인하고 주문 내역에 지장 날인해주십시오.”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당한 일이 많다 보니 하라는 대로 어영부영 지장(指章)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이런 데 와서 잘 모르나 보네. 하긴 그렇게 당하는 거 보고 대충 짐작하기는 했네만….
걱정 말고 찍어도 되니까 염려 말고… 아무 손해도 안 가니까.”
반 대머리 아저씨는 현성의 그런 태도를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현성은 믿을 수 없었다.
의경이 나서서 수사나 조사와는 완전 무관한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걸 듣고서야 현성은 지문을 날인해주었다.
그 이후에는 먹고 씻는 것이 모두 바뀌었다.
계란이나 고기볶음 반찬에 제대로 된 국 등이 따라 나오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칫솔과 치약도 쓸 수 있었고, 제대로 된 비누와 깨끗한 수건도 쓸 수 있었다.
대금(代金)은 현성이 경찰 측에 맡겨놓은(?) 돈에서 계산되어 빠져 나갔다.
심지어는 과자나 빵, 우유, 음료수 등도 사먹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돈이라고는 하는 말이 꼭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곳일수록 돈의 위력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노골화되는 돈의 위력과 함께, 사람들의 치사한 면이랄까?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표출되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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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서는 그런 것들이 특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혼자 놔두면 자살이나 자해 등 사고의 위험 등도 있고, 수용 공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높은 사람이나 특별한 처우가 필요한 사람 외에는 독방을 주지 않는다.
당연히 한 방에서 여럿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더구나 오래 있어봤자 며칠 정도에 지나지 않는 유치장과는 달리,
구치소에서는 운이 나쁜 경우 최대 14개월을 있어야 한다.
준비시간과 인원점검 시간을 빼면 20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 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좁은 방 안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조사와 재판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구치소 안에서 먹는 것에 집착해봤자 뭘 어쩌겠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영화 속 감옥이나 구치소 같은 데에서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들어오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배식 수레가 복도를 지나가며, 방의 배식구를 통해 밥과 국, 반찬 등을 넣어주었다.
거칠긴 해도 밥은 많이 나와서 남는 밥을 버려야 할 때가 많았지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좀 괜찮다 싶은 반찬은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돈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금을 소지할 수는 없지만,
각 수용자별로 계좌가 하나씩 있고, 거기에 영치금(領置金)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관리가 된다.
그 돈으로 각종 먹거리를 사먹을 수 있는 것이다.
반찬거리로는 멸치조림에서 김치, 깻잎, 마늘장아찌, 김, 계란 등등 제법 다양했다.
고추장, 참기름, 마아가린, 간장 등은 거의 필수품이라고 할 정도로 식사 시간에 자주 쓰였다.
간식으로 먹을 것도 제법 푸짐했다.
사탕, 빵, 우유, 두유, 요구르트, 닭 훈제, 컵라면, 찐계란, 소시지 등등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콜라와 사이다 등도 구매할 수 있었으니 간식거리가 없다는 말은 돈이 없다는 말과 다름 아니었다.
과일도 주문하기만 하면, 그 철에 맞게 나오는 과일들이 구매물로 방에 들어왔다.
여름에는 수박이나 참외도 먹을 수 있었고, 사과나 귤도 자주 나왔으며, 바나나가 들어올 때도 있었다.
과일 껍질을 벗기거나 자르는 칼은 케이크 등을 자를 때 쓰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된 톱니(?) 칼이 배급되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필수적인 반성문이나, 탄원서, 항소이유서 등을 작성하기 위한 용지도 개인이 구매해야만 했다. 당연히 필기용 볼펜도 그랬고,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사용하던 개인 물품의 휴대는 금지되므로, 시계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어이없다고 해야 할까?
소(所) 측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아날로그 시계가 있었다.
하지만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영치금을 넉넉하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땡전 한 푼 없는 사람들, 이곳 용어로 개털도 있었다.
반면 소위(所謂) 경제사범들은 돈이 풍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가 되면,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수용자 개개인의 생활이 완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구치소 내 생활수준(?)도 양극화(?)되느냐 하면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사실 내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서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구치소 측에서도 개개인의 영치금 사용 권리를 보장해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손목시계를 주문하면, 주문한 사람의 이름이 시계 뒷면에 새겨져 주문자에게 전달되었다.
검방(檢房)이나 검신(檢身)에서 시계 뒷면의 이름이 소유자의 이름과 다른 게 발견되면, 일단 무조건 압수였다.
출소한 사람이 주고 간 거라고 얘기하면 그래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시계 뒷면에 새겨진 이름의 수용자가 아직도 그 구치소에 있다거나, 이감(移監) 간 것에 불과하다면,
자신의 이름과 다른 이름이 새겨진 그 시계를 차고 있는 수용자는 조사실로 넘겨져 조사를 받는 일도 있었다.
운 나쁘면 입건(立件)되기도 했다.
사실 협박이나 폭력 등을 통한 영치금 갈취 사례가 예전에는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협박이나 위력과시 등을 통한 영치금 갈취나,
공동구매 등의 명분으로 개개인의 구매내역에 개입하는 것 등은 처벌대상이라는 게 규정이었다.
그와 관련된 홍보도 수시로 하고 있었다.
즉 방 전체를 위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공동구매는 엄연히 규정에서도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구매물을 주문하는 구매용지에는 반드시 본인이 주문 내역을 적도록 되어 있었고,
지장(指章)도 반드시 주문자 본인의 지장을 찍어서 확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규정은 규정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구매는 공동구매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
적어도 먹는 것에 관해서만은 철저하게 공동구매와 공동배식이 마치 불문율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먹는 것에 관해서만은,
‘내 돈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주문해서 내가 먹겠다’는 식의 태도는 통하지가 않았다.
소(所) 측에서도 그런 현실을 아는 것인지, 일일이 필적과 지장을 확인하려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그 방의 배식반장이 방에서 필요한 간식거리나 생활용품 등의 내역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영치금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액수로 배당되게끔,
1일 구매 한도액에 맞게 조정해서 구매용지를 작성하여 주문한다.
그리고 각자 이름 뒤에 지장을 찍게 한다.
어떤 경우는 그 모든 걸 배식반장이나 봉사원이 다 알아서 적고,
지장도 배식반장이 적당히 각도만 바꿔서 대충 찍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 탈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매물을 주문할 때는 구매용지가 1방부터 전달되기 시작한다.
1방에서 구매용지를 다 작성하면, 다음 2방으로 구매용지가 전달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맨 끝 방까지 구매용지가 전달되는 식으로 구매용지가 작성된다.
그런데 그 구매용지의 전달과 접수는 교도관이 하는 게 아니었다.
미결수가 아닌 기결수(旣決囚)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수용자들 중의 한 명인 소지가 그 일을 맡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관(官)에서는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는 한은 그냥 조용조용히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간부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선에서 뛰어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찮은 일일 테니까.
어쨌든 그렇게 주문하고 나면 며칠 후에 방에 구매물품들이 들어온다.
그 구매물품들은 방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들어온 간식거리도 방 사람들 전체가 공평하게 나눠먹는 것이다.
먹는 것에 대해서만은 최대한 차별이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먹는 것이 가장 간절하므로,
갇혀 지내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것에서까지 돈이 있고 없고를 따지면 안 된다는 식의 공감대가 은연중에 형성되기라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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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면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녀평등이나 여성상위 등을 외치면서도,
막상 소개팅이나 회식자리에서 남자가 ‘더치 페이(Dutch Pay)(주3)’를 제안하면,
겉으로는 당연하다고 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그 남자에게 경멸과 혐오를,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비호감의 낙인을 찍는 것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니었던가.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벌어지는 일도 그런 것과 통하는 것 같았다.
마치 공산주의가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향을 노래하고 있어도,
인간의 본성은 결국 자본주의와 더 잘 합치된다는 것과도 비슷하달까?
사실 명분은 좋다. 아니, 좋다는 것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산다… 는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서로 돕고 서로 챙겨주며 나눈다는 말은 얼마나 듣기 좋고 보기도 좋은가.
하지만 그 명분에 휘둘리면, 뭐 대주고 뺨 맞는 꼴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웬만해서는 크게 사건으로 터지지 않지만,
간간이 생기는 영치금이나 구매 관련 다툼들이 이 아름다운(?) 명분의 문제점을 보여주고는 했다.
예를 들어 좀 어수룩하지만 그런대로 영치금이 있는 중년 남자가 어떤 방에 막내로 들어왔다고 하자.
군대 생활도 해보고 했을 테니,
새파란 어린놈이 고참이라며 방의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신입이라며 방의 허드렛일 등을 몰아서 시키는 것 등은 금지한다는 규정이 방의 벽에 버젓이 붙어 있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교도관들도 일체 간섭하지 않았고 수용자들도 그런 규칙은 안중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사실 환갑 넘은 노인이 와도 대접 받기 힘든 곳이 이런 곳이다.
옛날에는 이런 일도 흔했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노인이 신입으로 왔다고 하자.
방장, 즉 봉사원이 점잖은 어투로 묻는다.
“어이구, 어르신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세요?”
그러면 대부분은 그래도 나이대접은 해주려나 보다 싶어서 마음을 놓고는 편하게 대답을 한다.
그 즉시 봉사원은 그 신참 어르신의 기대를 짓밟는다.
“그러냐? 그러면 그 나이에서 절반 떼어서 영치(領置)시켜 놓고 와. 어따 대고 반말이야?”
그럴 때 나이 먹은 티를 내며서 훈계를 하거나 야단을 치려고 하면,
돌아오는 것은 욕설이었고 심한 경우는 몰매였다.
요즘에는 그래도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이 먹었다고 나이대접이 어쩌고 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고령자들만 따로 모아놓는 고령자 방이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신입이 해야 되는 일들 중 대표적인 것,
즉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고무장갑, 세제, 수세미 등등이다.
배급되는 것들이 있긴 해도 다 품질이 열악하고 양도 부족하다.
당연히 따로 사서 써야만 한다.
그런데 그 방이 경제사정이 바닥이어서 아무 것도 없었다면?
방의 방장, 즉 봉사원이나 배식반장이 다른 방에서 빌리는 게 보통이다.
당연히 나중에 갚아야 한다.
그럼 누가 사서 갚는가?
결국 그 신입으로 들어온 중년 남자는 자기 돈으로 용품을 사서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되는 셈이다.
먹시기(주4)를 주문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하자.
앞서도 밝혔지만, 방 사람들이 장기 수감으로 인해 영치금이 떨어졌다거나 얼마 없다고 하면?
결국 그 중년 남자의 이름으로, 즉 그 남자의 돈으로 주문하게 된다.
그럼 그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신참으로 들어왔다고 일은 일대로 시키고, 돈은 돈대로 빼 먹힌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불만이 쌓이게 되면 누군가가 그 불만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어도 결국 대다수는 그런 관습(?)에 순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유가 뭘까?
첫째,
구치소 생활은 결코 길지 않다.
그냥 적당히 참고 넘어가자.
괜히 항의해봤자 싸움만 날 테고 싸우다가 폭행으로 번져서 입건되거나 하면 재판 과정에 불이익만 간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자.
둘째,
막내 생활 계속 하는 것 아니다.
참고 지내다 보면 신입이 올 테니,
적어도 돈은 돈 대로 쓰고 허드렛일은 일대로 하는 꼴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참는다.
셋째,
더럽고 치사해도 쓰레기들만 오는 곳이니 당연하다.
그러니 참자.
접견 왔을 때 영치금 절대 넣지 말라고 해두자.
미쳤다고 남 좋은 일 시킬 뿐인 영치금을 넣으라고 하냐?
이런 생각으로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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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의 그런 추론은 아주 틀린 건 아니었지만, 만점은 아니었다.
어느 날의 간식시간이었다.
몇 동 몇 방에서, 내 영치금은 내가 쓰는 게 당연한데 무슨 공동구매냐 하면서,
영치금 관련 다툼이 있었다는 얘기가 화제에 올랐을 때, 김석호가 코웃음을 쳤다.
“또박 살려고 하면 모를까. 혼자서 어떻게 영치금 쓰고 그러냐?”
김석호의 말이었다.
“또박 산다뇨?”
“아, 그… 우리 식기 중에서 제일 작은 식기 있잖아? 그걸 또박이라고 하거든.
또박 산다… 그러니까 완전 독고다이로 사는 거지.
밥 먹을 때도 간식 먹을 때도 청소할 때도 혼자서 다 알아서 하는 거야. 그런 걸 또박 산다고 그래.
그니까… 영치금도 자기 필요한 거 살 때만 쓰고 공동 구매 그런 건 절대 안 하는 거지.
근데 그게 편할 거 같냐? 또박 산다는 건 완전 그 새끼 갈구는 거나 다름없어.
또박 살린다고 그러지 그런 건.”
“아니, 왜요?”
“생각해봐라. 배식 받을 때도 방 사람들 거 다 받고 나서, 방 사람들은 식탁 차리잖아?
그런데 그 또박 살리는 그 놈만 따로 소지한테 자기 것만 배식해달라고 해야 돼.
소지들이 그거 좋아할 거 같냐? 안 그래도 후딱후딱 해야 되는데?
옆에 부장님 있고 그러니까 대놓고 욕은 못해도, 그 갈구는 기세는 장난 아니거든.”
“아… 그렇겠네요.”
“그것뿐이면 내가 또 말을 안 한다.”
“그럼 또 뭐가?”
“밥 먹을 때도 방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못 먹어. 구석에서 따로 신문지라도 펴놓고 지 혼자 먹어야지.
또 설거지도 방 전체 설거지 끝난 다음에 지 먹은 그릇은 따로 혼자 씻어야 돼.
당근 행주나 세제도 따로 또박 사는 그 녀석 거는 따로 자기가 챙겨놔야지.
글구 방에 빨래 널 데도 모자란 판인데 그 녀석 때문에 또 만들어야 하리?
안 그래도 빨래줄 널어놓으면 검방할 때마다 다 걷어버리는 판에?
그리고 청소할 때도 그 녀석 앉는 자리랑 자는 자리는 방 사람들이 안 건드려.
먼지를 그쪽으로 안 몰아놓기나 하면 다행이지. 빗자루나 걸레도 자기 건 따로 챙겨놔야 되는 건 당연하고.
화장지도 자기 건 따로 사놓아야 되고.
뺑기통 갈 때도 그 또박 사는 놈한테는 지가 볼일 볼 때마다 청소해놓고 나오라고 방 사람들이 갈굴 텐데?
공동으로 사용하는 관물함에 물건도 못 놔두게 할 테니, 따로 가방 사서 넣어놓고 관리해야 할 텐데,
우르르 늘어나는 가방 걸게 다른 사람들이 벽에 있는 옷걸이 양보해주겠냐?
한 사람당 두 개 정도, 운 좋아야 세 개 돌아가는데,
그 또박 사는 놈이 자기 물건이랑 먹시기 걸겠다고 옷걸이 세 개나 네 개 사용하겠다 그러면,
방 사람들이 그걸 그냥 놔둘 거 같냐? 너 같으면 양보해줄래?”
듣고 보니 그랬다.
그렇게 또박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할 것임은 당연했다.
“이런 데서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면 안 되는 거야.
다 같이 생활하는 방에서 설거지나 청소 용품 그런 거 구매하자는 거에 또박 살자고 하는 놈이 어딨냐?
그리고 먹는 것에서까지 또박 살자 그러면 그 새끼 진짜 X같은 놈이라고.”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공동구매라고는 하지만, 방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이나 먹을거리 같은 것이나 공동구매를 할 뿐,
편지지나 속옷, 수용복, 담요, 침낭 등의 개인용품은 개인구매, 즉 또박이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리도 또 영치금 어쩌고 말썽 나는 건 이런 구치소나 초범 교도소에나 있어.
그리고 막내고 신입이라고 일방적으로 부려먹기만 하는 그런 게 교도소에 가면 있을 것 같냐?
초범 교도소라면 모를까 재범 교도소로 가보면 호구 잡힌 놈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거 잘 없어.
돈 없는 사람은 뭐 부탁할 거 있으면 돈 있는 놈 빨래라도 대신 해주고 부탁하고 그러거든.
방에서야 뭐 막내고 그러면 뺑기통 그런 거 다 하고 그러지만, 대신 다른 건 봉사원이 알아서 다 챙겨준다고.
하다못해 옷이라도 한 벌 좋은 걸 챙겨준다거나, 잡지나 책 같은 걸 신입한테 보라고 준다거나 하는 식이지.
부려먹으면 챙겨주는 것도 있어야 되는 거라고.”
빵잽이가 달리 빵잽이가 아닌 모양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영치금 무지 빵빵해서 따로 고액 계좌를 만들어야 되는 진짜 범털이 오면, 그 범털 혼자서 그 방 구매를 전부 책임지고 그래. 그러면 그 범털은 배식반장보다 서열이 위로 올라가. 아무도 안 건드려. 방의 잡일 전체에서 열외 되거든. 뭐 대형 사기범이나 엄청나게 횡령 해먹었거나 하는 놈들이 보통 그런 대접 받아. 그보다 더 거물이면 보통 독거실로 배방 받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돈이었다.
하긴 이런 곳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허울 좋은 명분만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돈이었고, 법정 다툼에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수적이었다.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반 사회에서는 입에 올리기 기피하는 그런 일들이
이런 곳에서는 자주 표면으로 올라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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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현성이 형. 형은 결혼하셨어요?”
“……!”
얼마 전에 신입으로 들어온 조창문이었다.
이제 갓 20살이 넘었고 붙임성도 좋은데,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들어왔다고 했다.
사망 사고가 아닌데다가 집이 부자라서 피해자 측과 합의만 보면 1심에서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건이어서 그런지, 방의 허드렛일에 솔선수범하며 나서곤 했다.
현성을 형이라 부르며 잘 따르던 조창문이 잡담 끝에 현성에게 툭 던진 말에, 현성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니, 안 했어. 근데 왜?”
“아니, 그게요. 보니까 형은 접견을 잘 안 오는 것 같더라고요.
보통 마누라나 애인이 접견 오고 그러잖아요. 형도 초범이라고 하셨고. 그러니까…”
딱
“아얏!”
“이 S새끼가 뭘 잘못 쳐 먹었나. 왜 헛소리를 짖어대고 지랄이야?
얼른 가서 뺑기통이나 한 번 더 닦아. 냄새 나더라.”
김석호가 조창문의 뒤통수를 갈기며 다그쳤다.
조창문은 잠시 투덜거리는 것 같더니, 금방 헤헤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쓱싹 거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김석호는 먹거리를 넣어두는 가방을 뒤져서 빵과 우유를 몇 개 꺼내더니, 창문 쪽으로 가서 소지를 불렀다.
“소지~!”
“몇 방?”
“7방!”
인기척이 나더니 창문의 쇠창살 너머로 소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왜요, 석호 형?”
“자, 이것 좀 먹어봐.”
“어이구야, 번번이 고맙습니다, 석호 형.”
“야, 어디 가서 잡지 좀 빌려다줄래?”
“예, 형.”
소지가 잡지를 찾아 다른 방들을 돌아다니는지, 희미하게 ‘잡지 좀 볼 거 있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성은 그런 김석호의 마음씀씀이에, 쓴웃음이기는 했지만, 희미한 미소가 나왔다.
그런 현성과 잠시 눈이 마주친 김석호는 얼른 딴청을 피우면서 다시 창문 밖만 쳐다보았다.
창문이 녀석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리라.
하지만 창문의 말은 현성의 아픈 데를 찌르고 있었다.
마누라, 애인….
결혼을 앞두고 있던 지은이 생각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현성은 처음에는 지은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달까. 그리고 그걸 지은이 알게 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었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성은 자신의 결백을 믿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직 포기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사실 혼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라면 믿어줄 것 같았다.
결국 현성은 지은에게 편지를 두 통 보냈었다.
지은의 주소는 지은에게 과외를 해주던 시절에 이미 외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은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었다.
접견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접견을 오면 어떻게든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지은의 사진도 넣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 하는 생각에 애써 잊으려고 하던 중이었던 현성이었다.
심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미주(尾註)*******************************************************************
주1) 선민의식(選民意識) : 나는 (신이나 하늘, 운명 등에게) 선택된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
주2) 강력범죄 : 흔히 5대 강력범죄라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강도, 살인, 방화, 강간, 유괴
주3) 더치 페이 : 원래는 네덜란드식 대접(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 이것이 후에 왜곡되어, 더치 페이(Dutch Pay)라고 하면, 같이 식사를 한 뒤 먹은 음식에 대한 비용을 각자 서로 나누어 부담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4) 먹시기 : 구치소나 교도소 등에서 먹을거리를 지칭하는 은어
◆글쓴이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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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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