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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無名者) - 1부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51 1,153회 0건
*************************무명자(無名者)1부. 시련(試鍊)**************************

1부 1장. 악몽의 시작************************************




웅~

또 전화가 울렸다.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오빠 일 열심히
하고 계시죠? 보
고 싶어요. 오늘
저녁 알죠? 오빠
를 넘넘 사랑하는
지은♡]

지은의 문자였다. 애교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보이는 듯해 현성의 입이 저절로 귀에 걸렸다.

답장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문자를 입력하려는데 누가 현성을 불렀다.

“어이, 내일의 팀장님, 누가 면회 요청합니다.”

팀장이었다.

요즘 팀장이 현성을 부르는 호칭은 내일의 팀장님이었다.

솔직히 그런 호칭이 아주 싫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놓고 좋아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곤란했기에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이런, 그러면 팀장님은 어제의 팀장님이시게요? 장난하지 마세요. 근데 무슨 일이죠? 그리고 누구랍니까?”

“하하하, 장난은 무슨. 이미 120% 확실한 건데 뭘.”

“그래도요.”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런데 누군지는 몰라. 그냥 정문에서 연락이 왔어.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네, 고맙습니다.”

현성은 곧 자신이 앉을 자리에 있는 지금의 팀장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답장으로 보낼 문자를 입력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지은이 맛난 거
많이 사주려면
내가 열심히 일해
야지. ^^ 근데
오늘은 시간 없는
거 알지? 왜냐고?
널 위한 시간밖에
없으니까. ^^ f
rom.지은을 무지
무지 귀여워하는
오빠가]

전송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난 현성은 싱글벙글하며 걸어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층입니다]

기계음의 안내와 함께 문이 열렸다.
경쾌할 수밖에 없는 발걸음으로 정문 쪽을 향해 걸으며 누가 자신을 찾나 싶어서 둘러보았다.
낯익은 제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늘 아침 출근 때만 해도 현성과 기분 좋은 인사를 주고받던 경비과장이었다.
그러나 씽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목례(目禮)를 하는 현성을 경비과장은 고개를 휙 돌리며 외면해버렸다.

어?

현성이 잘못 본 것일까?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듯 잔뜩 인상까지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경비과장은 현성을 외면하고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했다.

“저 사람입니까?”

뭐지?

짧은 머리에 체격이 단단한 사람들이 경비과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경비과장에게 현성이 누군지를 확인하는 듯했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 사람은 굵직하고 또렷한 목소리라서 비교적 잘 들리기도 했고,
얼굴이 현성을 향하고 있었기에 입모양으로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경비과장이 자신의 앞에 선 사람에게 좀 경망스러워 보일 정도로 요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현성을 잠시 돌아보고는 인상을 팍 쓰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SP놈!’

거리가 좀 있어서 희미하게 들릴 뿐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을 보아하니 분명히 그런 말이었다.
현성을 보고 욕을 한 건가? 경비과장이?

현성은 잠시 어이가 없었다.

견습 사원일 때부터 경비과장을 볼 때마다 깍듯이 인사를 하는 현성에게,
경비과장은 현성이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예의가 바르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입사 후에 승승장구하면서도 변함없이 계속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현성에게,
인사를 꼬박꼬박 잘 받아주며 ‘역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친한 적을 하던 경비과장이었다.
게다가 경비과장에게 욕을 먹을 일은 한 적도 할 리도 없는 현성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현성에게 하는 것 같은 욕설이었다.

뭐지?

그렇지만 길게 생각할 여유 따위는 일체 주어지지 않았다.
현성을 향해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의 눈빛이 형형(熒熒)했고 기세가 자못 험악했다.
여러 운동과 무술로 단련되었던 현성의 감각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경고를 발했다.

흠칫

현성은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잡았다.
우르르 몰려온 그들이 한 걸음 크게 내딛으면 바로 부딪힐 거리까지 접근해오니 현성의 등골이 다 찌릿거렸다.

그중 한 명이 옆으로 빠지며 촬영용 카메라 같은 것을 어깨에 얹었다.
그와 동시에 세 명이 옆으로 퍼지고 정면으로 다가온 한 명이 손을 자신의 품 안으로 넣었다.

순간 현성은 바짝 긴장했지만 안에서 나온 것은 신분증이었다.

“경찰입니다. 채현성 씨 맞습니까?”

코팅이 된, 큼지막한 패찰 비슷한 모양의 신분증이 현성의 얼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안에는 짧은 머리에 매서운 눈빛을 한 남자의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잠깐 눈을 들어보니 이 신분증을 내밀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동일인으로 보였다.
사진 아래에는 검은 글씨로 커다랗게 ‘경찰’이라고 씌어 있었고,
붉은 색깔의, 제법 굵은 줄이 대각선으로 두 줄 그어져 있었다.

경찰 신분증을 전에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현성이 보기에는 이게 가짜 같지는 않았다.
그럼 아까는 장난이나 그런 게 아닌 진짜 경찰의 전화였던가?

그러자 현성은 긴장이 좀 풀렸다.
경찰을 두려워해야 할 일 따위는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종류의 일을 할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었으니까.

아까 박지상 반장이라며 온 전화의 내용을 떠올려본 현성은
아마 자신에게 뭔가 물어보려고 온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전화하신 분인가 보죠? 강남 경찰서 박지상 반장님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그런데 그 대답에는 비꼬는 어조가 확연해서, 현성은 이 사람 정말 경찰 맞나 하는 생각에 다시 신분증을 보게 되었다.
이 사람 뭔가 싶어서 다시 시선을 얼굴로 돌리니, 반장이라는 자의 얼굴에는 확연히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뭐라고 따져야 되나 싶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증거도 내놓을 수가 없으니, 현성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 신분증을 쑥 집어넣은 박지상 반장이 얼굴을 굳히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후~, 현재 주소지가 강N구 S동 D 오피스텔 406호인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갑자기 현성의 양옆으로 두 사람이 확 달라붙더니, 순식간에 현성의 팔을 하나씩 잡아 뒤로 꺾었다.

“윽! 뭡니까?”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긴장을 풀고 있던 현성은 저항하거나 피할 겨를이 없었다.

철컥 철컥

“이, 이거 뭡니까? 왜들 이러시죠?”

쇳소리와 함께 둔탁하고 차가운 쇠의 느낌이 손목에 와 닿았다.
그리고 팔이 뒤로 고정되면서 손목을 둔탁하게 죄었다.

설마 이건 수갑? 그런데 왜?

“채현성 씨, 당신을 청소년보호에관한법률위반과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의 모든 진술은 법정에서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됐지? 끌고 가!”

“뭐야 이거? 무슨 일로 이러는…”

“카메라 껐습니다. 반장님.”

뭐? 무슨 카메라가 어째?

그 말이 떨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퍼억

“후욱!”

명치에 둔탁한 충격이 전해지면서 현성의 말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숙련된 자(者)의 타격 솜씨! 정확하게 현성의 명치를 깊이 파고들며 호흡을 끊었다.

운동과 무술로 단련된 현성의 몸이었지만,
이런 불의의 기습에 반응하여 방어하고 반격한다는 것은 귀신이라면 모를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성은 횡격막에 모든 기력을 집중시키며 호흡을 조절하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고개가 푹 숙여지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리가 저절로 아래로 풀썩 꺾였다.

“너 같은 놈은 때려죽여야 되지만, 내가 교회에 다니고 또 경찰이라는 게 다행인 줄 알아.
짐승만도 못한 새끼. 아가리 닥치고 얌전히 따라와.”

고통 속에서도 또렷이 들려오는 얘기에 현성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기선을 제압당하고 건장한 남자들 세 명이 자신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게다가 팔을 뒤로 꺾여 수갑까지 뒤로 채워진 터라 도저히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불의의 타격으로 호흡을 뺏긴 탓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무슨 오해이리라.

“핸폰 압수해. 거기도 뭐 들어있을지 몰라. 그리고 통화 내역도 조사해야 해.”

황당했다. 그리고 약간 겁도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성은 내심 당당했다.
잘못한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현성의 이성(理性)이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들에게서 피어오르는 기운이랄까 혹은 느낌이랄까 그런 게 심상치 않았다.
사무적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극도로 혐오스럽고 미운 사람에게나 내뿜는 그런 종류의 것 같았다.
이성(理性)과는 달리, 현성의 직감은 지금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몸을 휘감는 고통이 심했지만, 현성의 두뇌는 지금도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회사 입구에서 이리 요란한 소동을 벌였으니 시선을 끌지 않을 리가 없다.
격통에 몸이 웅크려졌지만, 현성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누구에게라도 어떻게든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이들이 정말 경찰이 맞다면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회사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부탁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폭력을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증언과 증인도 요청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서로 수군거리기만 할 뿐, 결코 가까이는 오지 않으려는 듯 멀리에서만 맴돌았다.
현성이 뭐라고 아무리 소리쳐보려고 해도, 입이 뻐끔거리기만 할 뿐, 목에서 소리가 올라오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봤지만, 아까의 타격으로 횡격막이 꼬이기라도 했는지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끄으으읍…!”

명치와 복강(腹腔)에 힘을 주면서 호흡이 나가게 하려고 애썼다.
시합이나 대련 때 배를 정통으로 맞게 되거나 할 때 자주 하던 응급조치법이었다.
천천히, 그러나 어느 순간을 넘어가자 급속히 뱃속이 편안해졌다.
됐다!

“흐읍~”

현성이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려고 숨을 들이마시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말 자그마한 소리였다. 소리를 내지르려고 잠시 숨을 들이마시는 조그마한 소리였다.
처음에 자신을 때린 그 반장이란 사람이 자신의 앞에 바짝 붙는 것 같았다.



“끅!”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반장이라는 자는 자신의 팔꿈치를 현성의 명치에 정확하게 꽂아 넣었다.
숨을 들이마시려는 바로 그 순간에 맞은 것이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리면서, 횡격막이 경련하는 건지 뱃속이 뒤집히는 듯한 격통이 온 몸에 번졌다.
현성은 추욱 늘어지고 말았고, 그들이 하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 앞에 그들이 대기시켜둔 듯한 지프형 자동차의 뒷좌석에 현성은 끌려들어갔고,
가운데에 현성을 사이로 끼고는 반장이라고 하던 자의 부하인 듯한 자들이 현성의 좌우로 앉았다.

“숙여!”

누군가가 현성의 뒤통수를 잡고 앞으로 밀었다.
숙일 수밖에 없었다. 복부의 고통이 아직도 심했다.
차가 출발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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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이 끌려온 곳은 분명 경찰서가 맞았다.
‘시민의 안전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러나 그 시민이라는 말에는 현성은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들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질질 끌고가다시피 현성을 안으로 데려가더니, 짐짝처럼 구석진 곳으로 던져버렸다.
던졌다는 말이 맞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제대로 발을 딛고 서려는 현성의 발을 걸면서 앞으로 힘껏 밀어버린 것이다.
현성은 내팽개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쿠당탕 쿵탕

게다가 뒤로 수갑까지 채워져 있으니, 현성은 캐비닛 등에 머리까지 찧어 정신이 없었다.

“이 새끼 운동 Z나 한 놈이야. 우선 조져!”

퍼억 퍽

이게 정말 현대의 한국경찰이란 말인가!

넘어진 현성에게 그들은 무자비한 발길질 구타를 퍼붓기 시작했다.
현성은 최대한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배와 가슴에 호흡을 있는 힘껏 채우고 버텼다.

이런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라는 건가?
아니면 전문으로 배운 전문가라는 건가?
그들이 자신의 늑골이나 얼굴, 코 등 부러지기 쉽거나 확 티가 나는 부분은
일절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현성은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현성의 등과 허리에 가해지는 통증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에 못지않게 모욕감과 분노도 끓어올랐다.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호흡을 계속 멈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숨을 멈춘다고는 해도 언젠가는 들이마시거나 내쉬어야 한다.
그럴 때, 바로 그 순간에 얻어맞으면 횡격막이나 내장이 크게 상할 수도 있다.
현성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얼른 얼른 호흡을 조절했다.
지독하게 아팠다.

현성은 잠시 그들이 구타를 멈춘 틈을 타서 변호사를 부르게 해달라고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와 조소였다.

“이 새끼 아직 기운이 남았네.”

반장이라는 자의 목소리던가?

“야, 어디 안 부러질 정도로 Z나게 더 밟아. 반만 살려놔.”

그리고 이어진 한참동안의 구타.
기를 꺾어놓기 위한 구타라는 것을 감 잡은 현성은 힘없이 늘어진 척 했다.
그러자 그들은 현성을 몇 번 더 툭툭 건드리며 발로 밟아보더니 더 이상의 구타를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무언가 차가운 것이 얼굴에 와 닿았다.
눈을 떠보니 누가 무언가 축축한 것으로 현성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감촉을 보니 물티슈였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옷의 먼지까지 털어주고 옷매무새까지 고쳐주더니,
현성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의자에 앉혔다.
현성은 눈을 부라리는 인상 더러운 뚱보 형사와 컴퓨터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되었다.

하지만 현성은 꿀릴 게 없었다. 스스로 떳떳했으니까.
그리고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변호사의 변호를 받는 것은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주장했다.

변호사를 부르게 해주고 체포영장을 보여줄 것이며 체포한 이유를 말해달라고.

“오호, 그러셔? 변호사는 얼마든지 불러보셔. 전화 이거 쓰셔.”

이죽이며 전화기를 밀어주는 형사의 태도에 현성은 난감해졌다.
현성이 제법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개인 변호사까지 두고 있을 리 없었다.
잠시 생각한 끝에 회사의 고문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회사에 전화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회사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전부 휴대전화에 입력해놓고 쓰던 탓이었다.
난감해하는 현성을 형사는 노골적인 비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바라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회사의 대표번호를 기억해냈다.
몇 번의 중계와 연결을 통해 간신히 관련 부서로 연결되었지만,
아무리 급한 일이라고 말해도,
상부의 결재(決裁)가 있어야 하니 직접 방문을 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더 이야기하려고 하니 전화가 끊겼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연결을 부탁하여 팀장에게도 연결해봤고, 다른 동료에게도 전화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다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시늉만 하다가, 바쁜 일이 있으니 나중에 직접 와서 말하라는 식으로 일관했다.
몇 번 전화를 하면서 현성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다들 현성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 너무나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현성은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변호사 불러보라니까 왜 안 부르셔?
체포영장은 없어! 왜냐고? 긴급체포는 영장 없이도 가능하거든. 증거가 확실하니까.”

“뭐라고요? 도대체 무슨 증거 말입니까?”

“이거 니 카메라 맞지?”

비닐봉지에 싸인 디지털 카메라.

맞다.

그건 후배인 한수가 어제 자신에게 선물한 거였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아마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이었다.
오해는 풀면 된다.
이 정도 맞은 건 정중히 사과를 해온다면 넘어가줄 수도 있다.

“맞는 것 같군요.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그게 장물이나 그런 거라도 됩니까? 난 그냥 선물만 받은 것뿐이에요. 무슨 오해가 있었나 본데…”

형사의 얼굴이 팍 찌그러지는가 싶었다.

“이 새끼가!”

느닷없이 현성의 뒤쪽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갑자기 뒤통수에서 뭔가 터지는 듯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눈앞에서 불꽃이 튀고 머리가 통째로 뒤흔들렸다.
마치 눈알이 통째로 튀어나올 것 같았고, 한동안 눈앞이 제대로 안 보일 지경이었다.
콧속이 싸한 느낌이 오면서 코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
수갑이 뒤로 채워져 있어서 아픈 부위를 감싸 쥘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아주 조금이지만 지독한 통증이 약간 줄어들어 어찌된 일인지 뒤를 살펴보았다.
아직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현성의 눈에
접이식 의자를 들고 날뛰는 박반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저마다 몰려와 박반장을 만류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말리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와, 진짜 나 구역질나서 이런 인간 상대 못하겠네.
야! 니가 증거 대조 마저 다 하고 확인 심문해. 이런 새끼는 때려죽여야 하는데.”

“네, 반장님.”

현성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뚱보 형사가 엉거주춤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박반장은 빠드득 소리가 현성의 귀에 들릴 정도로 이를 갈더니,
밖으로 나가려는 듯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그러더니 현성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시 외쳤다.

“야! 너 때문에 그 애들 지금 병원에 있거든. S새끼! 그냥 권총으로 콱 쏴죽여야 하는데.”

머리가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박반장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은 영태는 아픈 것보다는 황당함이 더 했다.

잠시 후 여전히 좀 욱신거리긴 했지만,
어지러움이 조금 가라앉자,
박반장이 쏟아내고 간 말에서 현성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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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병원에 있다고? 그 애들? 나와 관련 있는 애들이 누가 있다고 그래?
어! 혹시 어제 오피스텔에서 재워줬던 그 여중생들? 아하!

미성년자 재워주고 먹여줬다고 지레 오해하는 모양이구나!

현성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하긴 형사라는 사람들은 그런 인간들만 보아왔을 테니,
현성이 그 애들 재워준다며 이상한 짓 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니 아마 탈이 나긴 난 모양이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이 그 애들의 일을 알게 되었나 보다.
가출신고라도 들어온 거였을까?
그러다가 찾게 된 건가?
어쨌든 걔들의 진술만 대강 듣고 와서는,
현성이 그 애들로 욕심을 채우려고 이상한 걸 먹였다고 단정 지은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일을 진행하면 어쩌자는 건가!

현성의 머리가 다시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그렇지만 극심한 고통은 더 이상 없었다.
현성은 아픈 머리를 몇 번 흔든 다음 실마리를 붙잡으려고 했다.
해명을 해서 오해를 풀고,
이 일에 대해 사과를 받든지 보상을 받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제가 재워준 그 애들 말하는 거예요? 걔들이 어디 아파요?”

“그래, 이제 순순히 인정하는구만. 얼른 좋게 끝내자.”

“근데 걔들이 어디가 아프다는 거죠? 탈이 날 이유가 없는데….”

“이 개새끼, 니가 먹인 걸 먹고 탈이 안 나면 그게 사람이냐?”

먹고 탈이 났다고?
하지만 현성이 걔들에게 먹인 거라고는 만두와 라면뿐이다.
게다가 자신도 같이 먹었다. 뭐가 문제라는 걸까?
혹시 냉장고에 너무 오래 놔둔 만두가 상했던 걸까?
식중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같이 먹었던 현성 자신은 멀쩡한 걸로 봐서 그럴 가능성도 낮았다.

“걔들이 먹은 게 뭐 잘못됐나요? 저도 같이 먹었는데 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러자 뚱보 형사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우웩! 같이 먹었댄다!”

뚱보 형사는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을 오만 인상을 다 쓰며 노려보았다.

“에이, S발!”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형사에게 소리쳤다.

“와~! 이 새끼 진짜 미친 변태 새끼네.
야! 너 이 새끼 데리고 증거 대조하고 확인심문해라.
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속이 뒤틀려서 못 참겠다.”

하급자인지 옆에 있던 젊은 형사가 일어나며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현성보다 어려보이는 젊은 형사가 앞에 앉았다.
그는 현성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이봐요, 채현성 씨. 서로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내용이잖아요. 그러니 간단하게 끝내죠.
저는 나름대로는 오픈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성 씨가 한 일은 저도 좀 그렇거든요.
그러니 좋게 좋게 얼른 넘어갑시다.”

예의를 갖춘 데다가 말이 좀 통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성으로서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혹시 어제 제가 제 오피스텔에서 재워준 그 여학생들 말하는 게 맞나요?”

형사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네! 맞아요. 이제 인정하겠어요? 그럼 신분확인부터 다시 시작할까요?”

그러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나자 다시 제자리걸음이었다.
도대체 현성으로서는 이 형사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 젊은 형사는 마치 현성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몇 번 같은 말을 반복했으나,
현성으로서는 그 형사가 무얼 말하고 있고, 또 뭘 인정하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그 형사도 지친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
마치 뭐가 마렵기라도 한 것처럼 우물쭈물하면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몇 번 더 그냥 다 털어놓고 빨리 마무리하자며 이번에는 현성에게 역정을 냈다.
하지만 서로 뭔가 맞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후유, 좋습니다.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젊은 형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프린터에서 무언가를 출력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이잉

그 형사는 그러고 나서도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출력한 문서들 몇 장을 바로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고 머뭇거리며 집어 들었다.
희미하게 비쳐 보이는 뒷면을 통해서 보니 무슨 그림 같은 게 인쇄되어 나온 것인 모양이다.
젊은 형사는 그 종이들을 현성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뭐지?

으악!

출력된 문서를 본 현성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여자애들이 남자의 성기를 빠는 장면과, 정액으로 보이는 액체를 입 여기저기에 묻히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현성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출력된 문서에 있는 여자애 한 명의 얼굴은 현성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그 얼굴이었다.
어제 현성이 데려와서 씻게 해주고 먹여주고 옷도 세탁해주고 재워주었던 그 여중생이었다.
송혜교를 어리게, 그리고 좀 더 예쁘게 줄여놓은 듯한 참 기억에 남는 여학생이었다.
현성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이제 알겠어요? 왜 이런 짓을 했어요? 그리고 사진은 또 왜 찍었죠?”

덜컹

현성의 가슴 속에서 뭔가 묵직한 게 아래로 쿵 떨어져 내렸다.
방금 뭐라고 했지?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었던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현성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에게 이리 심하게 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그럼 이 속의 남자가 저라는 겁니까? 이건 뭔가 착오이거나… 무슨 조작이에요.
저는 맹세코 이런 적이 없었…”

그러나 현성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 새벽의 그 느낌!

그때는 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몽정(夢精)이나 그런 게 아니라 실제의 일이었단 건가?

그런 현성을 보며 젊은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뽕 하나요? 그래서 기억 못하는 거예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더니! 난데없는 소리에 현성은 화들짝 놀랐다.

“무, 무, 무무무무, 무슨 소리를…. 세상에….”

“후유, 그럼 이건 도대체 뭐라고 할 건가요?”

“네?”

뭔가 보기 싫은 것이라도 나왔다는 걸까?
고개도 약간 옆으로 돌리고 시선도 딴 데로 돌린 채로 저러는 형사가 조금 의아했다
왜 저러는 걸까? 도대체 저기 인쇄된 것이 뭐라고 저러는 걸까?
형사가 애써 시선을 돌리고 쭈뼛거리면서 현성에게 쑥 내미는 다른 출력물을 보는 순간 현성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여학생 한명이 현성 자신의 엉덩이로 보이는 곳 사이에 얼굴을 갖다 대고 있었다.
그 다음 장에는 무언가 누런 것이 그 여학생의 입속으로 튀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움직이는 와중에 찍은 것인지 조금 흐릿하기는 했지만,
눈을 꼭 감은 채로 울상이 되어 입을 벌리고 있는 여학생의 표정은 알아보고도 남았다.
설마, 설마…. (계속)




◆글쓴이의 변(辯)**********************************************************
서장(序章:prologue)이 끝나고 이제 세 번째 글에서 1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군요.
작년에 잠시 올렸다가 지웠던 제 글을 아직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에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오타, 비문(非文), 오류, 혹은 이야기 전개나 사건 등에 대한 가르침 주실 분들께서는
언제라도 덧글 남겨주시거나 제 작가집필실의 자유게시판에 글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잡담성(?) 감상 덧글도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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