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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5 944회 0건
- 만남


"하암..~ 안녕히 주무셨어요?"

"으응~ 그래 우리 아들 일어났어?"

"계속 퍼질러 자기에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구요. 그나저나 왠일로 미역국을 다 끓이셨어요?"

"호호, 얘 아부하는거 봐라? 별일은 아니고 그냥 소고기가 좋길래

생각나서 미역이랑 같이 샀어. 설기 네가 좋아하기도 하구."

"하긴 제가 미역국 잘 먹긴 하니까요, 하하.

오죽했으면 수능 당일날에도 미역국 끓여달라 했겠어요? 뭐, 다행이 미끄러지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자.. 우리 아들 어서 앉아서 아침 먹구. 사람이 밥심이 있어야 하루가 든든해!"

자연스럽게 이끄는 엄마를 따라 식탁에 앉았다.

이미 진작에 상을 차려놓으셨는지, 따끈한 국에 대여섯가지 탁자 위에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이렇게까지 호의를 받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무 조건도 없이?

별일 아닌데 괜시리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진다.

이 밥을 차리기 위해 매일매일 우리 엄마는 몇시에 일어나는걸까,

철없던 시절에 바쁘다는 핑계로 휙 나가버리는 날 보면서 그래도 인상 한번 안쓰셨는데...

군대가 그래도 사람 바꾸긴 바꾸나보다.

오직 가족이기에 느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요즘들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도 언젠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될텐데, 이런 사랑을 꼭 나눠주고 싶다.

에이, 아침부터 또 궁상떤다. 너무 지나쳐도 별로 안좋은데..

들킨 것도 아닌데 괜히 머쓱해서는 크게 밥 한숫갈을 뜨고는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밥맛이 좋은걸 보니, 왠지 오늘 하루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금방 밥 한그릇을 뚝딱하고는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전에 맛있게 잘 먹었다며 엄마를 꼬옥 안아주곤 도망치듯 나왔지만, 기분까지 쑥스럽진 않았다.


하루의 시작이 좋았던 탓일까, 확실히 오늘따라 수업에 대한 집중이 평소와는 다르다.

교수님이 쏟아내는 외계어 가운데서 드문드문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는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는걸로 하고."

"우와아아~~"

"조별 과제 나간다고 얘기했었죠? 출석번호 순으로 4명씩 묶으면 되겠네요."

"으아아아....!!!"

과제다, 그것도 조별과제.

나도 남들처럼 한숨이 먼저 나왔다. 여태껏 조별로 뭘 해서 잘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의욕만 앞서서 주구장창 모이기만 하다, 결국은 한두명씩 발을 빼다보면 몇사람 안 남는게 조별과제의

정석이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전전긍긍한 한명이 혼자서 꾸역꾸역 다 해오게 되는 거지 뭐...

아쉽게도 난 그렇게 도움 되는 쪽은 아니라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14번이니까... 앞에 한명이랑 뒤에 두명이랑 같은 조구나.
교수님은 그렇게 기습적인 폭탄 하나를 던지시곤 금새 강의실을 나가셨다.

평소보다 수업이 5분 일찍 마쳤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서로의 조원과 끼리끼리 뭉쳐서

바쁘게 움직이는게 보였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를바없이 조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14번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조원이 모두 모이고는 가볍게 자기 소개를 했다. 남자 둘, 여자 둘 조합이었는데 여자는 둘 다 2학년이었고

남자는 4학년으로 나보다 선배였다. 솔직히 4학년이라는 말에 속으로 얼마나 인상을 썼는지 모른다.

여태껏 4학년이 섞인 조별 활동에서 좋았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취업이

우선시 되어서 언제 슬그머니 사라질지 몰랐기에,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파트를 재껴버리는게

차라리 나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여자애들이 두명이나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잘 해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여자들이 그래도 책임감 있는 편이니까..

자기가 조장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여자애 덕분에 그런 생각은 더욱 단단해졌다.

얼굴은 익히 알고 있는 애였다. 나은채, 들리는 소문으론 작년에 차석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성격도 싹싹하고 무엇보다 귀염상이라 과에서 은근 인기도 많았다.

은채는 그 자리에서 우리들의 연락처를 받고는 대충 파트를 나눴다.

"음.. 아무래도 동현 선배님은 4학년이셔서 바쁠테니 요 부분만 해주시면 될꺼 같아요."

"이야~ 나야 그러면 좋지. 안그래도 요새 취업준비때문에 바빠서 하하.."

"수민이는 요기 해주면 될거야. 괜찮지 기집애?"

"응 내가 거기 할께."

"설기 선배는 음.. 이 파트인데, 사실 양이 좀 많아서..."

"괜찮아요. 따로 바쁜 편은 아니라서 한번 해볼께요."

"죄송해요오... 내용이 뭉뚱그려져 있어서 자르기가 어렵네요.

아! 대신에 저랑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까 서로 물어가면서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네, 안그래도 제가 복학한지 얼마 안되서 이해가 좀 떨어지긴 했는데 잘 됐네요 하하."

"어휴~ 설기 선배 걱정마시구 막히면 아무때나 연락주세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테니까요!"

"예의가 아니니까 왠만하면 그 전에 연락할께요."

"앗, 그런가요 호호호~"


느낌이 나쁘지 않다. 잘만하면 이번엔 꽤 괜찮은 발표 과제가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번주 토요일에 다들 시간 된다고 하니 그때 한번 모이기로 해요~"

모두들 자기 분량에 만족하고는 헤어졌다. 나은채라.. 확실히 듣던대로 씩씩하고 낯가림이 없는게 느낌이 좋다.

이 쪽까지 파이팅이 들어가는게, 괜시리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고양시킨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서 자료조사부터 해봐야겠다.

아, 집에 있는 고물 컴으로는 좀 버거울려나? 인터넷 창 2개만 켜도 엄청 버벅거리는데 어떡하지..

일단은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어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승호한테 물어보니 학과에 정보이용실이라고

공짜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내가 내는 등록금이 다 어디로 가냐고 투덜댔는데,

또 찾아보니 다 챙겨먹을 곳이 있구나 싶어 괜히 캥겼지만, 일단 3층 정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증을 맡기고 좌석을 지정받아 컴퓨터 전원을 켰다. 우리 집보다 월등한 부팅 속도, 나쁘지 않다.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컴퓨터가 마치 내 것과 같이 느껴져서 그 날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정신없이

자료조사에 매달렸고, 덕분에 꽤 참고할만한 자료들을 몇개 정도 추스릴 수 있었다.



며칠 간은 그렇게 정보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빈 시간이나, 어쩌다 공강이라도 생기면

주저없이 달려갔고 덕분인지 몰라도 모임때 디밀 수 있는 자료들을 정리해 갔다.

대부분 사례들이 국내에는 소개되어있지 않아 해외 논문을 이용하다보니, 막상 100% 이해할 수 있는게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어쩌랴. 없는 것 보단 낫겠지 싶어 꾸준히 모으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떠듬떠듬 이해하다보니, 나 같은 돌도 될 때가 있구나 싶어 신기하기만 했다.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정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략 이제 뭐가 필요하고 뭘 해야한다는 것 정도는

감을 잡은 상태라, 머릿속으로 대충 그려가며 빠르게 복도를 걸어가 코너를 돌았다.


어??

정보실 문이 잠겨있다.

[ 정보이용실 사용시간 : 09:00~17:00]

아... 여태껏 몰랐는데 따로 사용 시간이 있었나보다..

오늘 수업이 늦게 마친 터라 하필 운 좋게도 걸린거 같았다.

약간 난감해졌다.

하루치 만큼 빠져버리면 꽤 손실이 큰데, 재껴버릴 수도 없고 어떡하지...

괜히 닿힌 문 앞에서 오갈데 없이 서성거리는 정도 말곤 달리 방도가 없었다.

돌같은 짱구를 굴려가며 생각을 쥐어짜보지만 뭔가 번뜩이는게 없다. 결국 차선책이라고 생각난게 학교 아래

아무 PC방이나 들어가서 과제를 하자는 정도였다. PC방을 이용한다, 나쁘지 않다.

문제가 있다면 나겠지만.

군대 가기 전만 해도 뺀질나게 드나드는 곳이 당구장이랑 PC방이었다.

20살이 되면서 이제 진짜 내 세상이 왔다는 착각과 함께 살았던 곳, 제대할 무렵부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 시간을 아끼고 쪼개서 썼다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곤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와서는 PC방이라는 곳 자체가 알게 모르게 반감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과제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지만 거길 다시 간다는게 영 와닿지 않아 머리만 벅벅 긁는다.

어떡하지...


띵동!


갑자기 알림음이 울렸다. 알림음은 카톡 메세지가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한 거였나보다.

안그래도 새로운 메세지가 왔다며 아이콘에 ① 표시가 떠있었다.

하서윤...? 누구지, 내 친구들 중에 이런 이름이 없었던거 같은데...

머리를 굴려봐도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낑낑대다 순간적으로 뭔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아..! 비소 실제 이름이 하서윤이였던거 같은데..

예전에 카페 채팅방에서 분명 추가했던 아이디의 이름이었다. 채팅방 들어오지말고 이제 무슨일 있으면

카톡으로 메세지 보내라고 쫑알대던 것까지도 기억나기 시작했고,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서둘러 메세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쳐 갔다.

얘가 왠일로 먼저 메세지를 보냈지..? 혹시 무슨 일 생긴거 아냐??

갖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난무하고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조작법에 낑낑대며 겨우겨우 메세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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