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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5 881회 0건
- 과제, 그리고 의외의 만남


좋은 날이었다.

요즘 날씨가 워낙 이분법적으로 밖에 나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봄에 반쯤 발을 걸쳐서인지 적당히 따뜻하고 수분기가 없는게 왠지 기분마저 뽀송뽀송 해질 것만 같았다.

덕분일까? 다행히 첫 모임은 그럭저럭 괜찮게 굴러가고 있었다.

주말에 모이다보니 20~30분씩 밍기적대며 만난게 좀 거슬렸을 뿐이지,

각자가 맡은 범위에 대해서는 일정 분량이상을 소화해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간 불안하게 생각했던 4학년 선배가 의외로 쓸만한 자료를 챙겨왔었고

대체로 뭉쳐보니 덩어리 감이 있는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그 중에서는 은채씨가 가장 광범위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정리를 해온 터라

나를 포함한 조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말은 안했겠지만 꽤 불안불안했던게 틀림없었겠지.

"음~ 생각보다 다들 자료를 잘 찾아오셨네요!"

"이거랑 이거를 묶고.. 요걸 좀 더 보충하는 식으로 해서 방향을 잡으면 괜찮을거 같은데 어떠세요?"

금새 또 싹싹하게 조원을 이끌어가는 은채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가 빠르게 몰두해갈 수 있었고,

처음의 어색함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금방 씻겨내려갔다.

확실히 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않으면 의욕없는 이 사람들을 데리고 누가 한시간 만에 교통정리를 할 수 있을까?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걸로 제가 프레젠테이션 알차게 만들어 볼께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쁜일이 있는 사람 마냥 초조해하던 선배가

취업 뭐시기 준비한다며 가방을 싸서 나가버렸고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던 여학생도 기회다 싶었는지,

"끝난거 같으니 이만 가볼께요~" 라는 말과 동시에 쪼르르 사라져버렸다.

아이고.. 이럴줄 알았다니깐.

"헤헤~ 그래도 다들 바쁘기전에 끝내서 다행이네요!"

그걸 또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은채씨가 어떻게 보면 답답해보였다.

진짜 제일 싫은게 자기 밥그릇 못챙기는 사람인데... 이건 자기 밥그릇에 담긴걸 남한테 퍼주기까지하니 원.

"그래도 선배님이 조사해오신 자료가 맥락도 잘 짚었고 대부분 중요 논점 부분이라 훨씬 편했어요 정말로요!"

뭐, 대충한건 아니고 나름 공을 들이긴 했지만서도 내가 해온 양의 배에 가깝게 조사한 그녀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아무리 얼굴이 두껍다지만 마냥 하하 웃어 넘길 수가 없었다.

"고생은 저보다 은채씨가 훨씬 많이 하셨죠."

"선배님, 제 얼굴에 그렇게 금칠 안하셔도 충분히 반짝반짝 한데요?!"

자칫 씁씁할 수도 있는 걸 괜시리 장난으로 받아넘기는 그녀는 확실히 대단했다.

이럴때 보면 나보다 두살 어리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정신연령이 2~3살 높다고들 하는데 진짜 그럴수도 있겠다.

나였으면 엎어도 진작에 엎었을테니까.

뭐, 당장 그래봤자 내가 할 수 있는게 몇개나 되겠나.

더 열심히 빠릿빠릿하게 잘해오라고 다른 조원들을 윽박지를 자신도 없으니,

이렇게 마지막까지 남아서 못다한 뒷정리나 청소같은 궂은일을 해주고 있는 거겠지.

그녀가 테이블에 퍼트려놓은 프린트를 갈무리하는 동안

나는 테이블 한켠에 밀어둔 음료 캔과 과자봉지를 줍곤 물티슈로 가볍게 테이블을 닦아갔다.

서로가 묵묵히 정리를 하는거라 조용했지만 어색한 건 아니었다.

평소에 여자와 단둘이 이랬다면 여기저기가 근질근질하고 어색함에 눈치가 보였을게 뻔한건 사실인데,

왠지 그 날 PC방 사건 이후로 적어도 은채씨와의 사이에 그런 서먹함은 없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그래도 선배님이랑 같이 하니까 금방이네요! 쪼..~오끔 편한거 같기도 하고 헤헤."

그녀도 편하게 생각하는거 맞지, 이거?




조별활동이라는거, 솔직히 엄청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생각을 고칠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같은 학과 학생들이었고 안면이 익다보니 학교에서 종종 마주치는게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학년상으로는 같다보니 다 비슷비슷한 수업을 듣느라 한결 외로움이 덜어졌으니 말이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는만큼 두세번정도 더 모임을 가지다보니 적어도

조별 인원들과는 학교에서 스치면 간간히 인사도 나누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마주치는 것 자체에 대해 서로가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침 같은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이미 강의실에는 은채씨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게 보였다.

그러고보면 항상 옆자리엔 가방만 놔두길래 처음에는 일행이 있나 싶었는데,

항상 혼자서 수업듣는게 기억에서 떠오른다.

음, 친구가 없나.

평소처럼 대충 아무자리에나 가방을 풀려는 찰나에 어찌보면 기회다싶어 다시 강의실을 나갔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내려가다보니 층간에 위치한 캔자판기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고,

요즘 대세라는 에너지 음료 한캔을 뽑아서 다시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시끌시끌한 학생들 사이에 맨 앞자리를 고수한 채

혼자 열심히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있는 은채씨가 보였고, 나도 목적지를 향해서 접근해갔다.

은채씨 앞에 떡하니 서서는 눈치챌때까지 기다리다, 이상한걸 느꼈는지 고개를 드는 그녀 앞으로

타이밍 좋게 에너지음료를 내밀었다.


"어라라? 선배님!?"

"마셔요, 뇌물이에요."

어리둥절하는 그녀에게 음료를 떠넘기다시피 하고는 옆자리에 있는 가방을 빼고는 냉큼 앉았다.

"엑! 선배님 여기 앉으시게요!?"

"그럼요, 뇌물이 여기 자리 값인데요. 혹시 누구 올 사람 있나요?"

"아뇨, 그런건 아닌데..."

"잘됐네요. 그럼 음료수 쭈욱 들이키고 자리 좀 양보해줘요. 그동안 혼자 앉았더니 너무 시렵더라구요."

"호호, 저도 계속 혼자앉았는데 다행이네요!"

"근데 선배님..."

"네?"

"분명 수업 시작하면 후회하실껄요? 헤헤"

응? 무슨말이지, 후회라니??


그녀의 의미심장한 말을 이해하기까지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고, 이 수업의 교수님이 유독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만 따발총같이 질문세례를 쏟아붓는다는 걸 이번 기회에 톡톡히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웅성웅성-

수업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와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가 퍼져나왔다.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고.


"하..하하... 이래서 다들 앞자리에 안 앉았나보네요.."

"이그~ 그것보세요 후회한다고 제가 그랬죠!?"



아뇨, 솔직히 말하면 후회하진 않았는데요.


실수로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속마음은 꾹 눌러놓고, 영양가 없는 웃음으로 겉을 잘 포장하는걸로

마무리 지었다. 나는 다음 수업을 위해 가방을 급하게 챙기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음료 잘 마시구, 전 그럼 다음 수업때문에 먼저 실례할께요!"

그렇게 한마디 툭 던지곤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은채씨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여기서 실랑이를 벌여봤자 그녀가 부담만 느낄거 같아 애써 못들은 척 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게 좋을거야 분명.

건물 야외 계단에서 담배 한대를 빨며 과감하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나 자신이 신기하다고 생각해봤다.

나 같은 놈이 무슨 용기로 그리 비비고 들어간거지? 지금 생각해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왠지 오늘 남은 수업들은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머리 한 켠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지지곤 스마트폰을 열어 시간표를 확인했다.

보자, 다음 수업이..그...

오늘은 수요일이었고 전공수업으로만 이루어진 날이다. 앞서 들은 것도 전공 기본이었고,

이어진 수업도 전공 기본 과목이다.

2학년이면 필수로 들어야하는 과목이라서 흠,

...나 바보짓 했구나...

방금 전과 같은 강의실. 심지어 교수님도 같았다. 벌개진 얼굴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방금 전 호기롭게 빠져나온 그 강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다들 그 자리 그대로 지키고 앉아있는데 내가 앉을 곳이 따로 있겠는가.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다시 은채씨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그, 착각했지 뭐에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한텐 전혀 그렇지 않았나보다. 꺄르르 웃으며 넘어가는

그녀 덕분에, 내 귀까지 빨개져서 후끈거리는 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 정말 오늘 바짝 구겨지는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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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카테고리가 왜이리 적게 느껴질까요? 아마도 제가 원하는 카테고리가 없기 때문이겠죠.

올리고 있는 헤테로는 시놉시스를 대화체로 옮긴 정도의 완성도만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탈고 한번 없었기 때문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색한 틈도 많고
내용이 어디로 튈지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나중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처음부터 손볼 생각도 하고 있지만,
현재로썬 가장 큰 덩어리로 두 가닥 정도를 잡았고, 그쪽으로 밀고 갈 생각입니다.
둘 중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겠네요. 한 쪽은 쓰는 입장에서 참 고역스러운 부분이 많아서리...

다만 최대한 설기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는 해볼 생각입니다, 그건 확실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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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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