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죄송합니다. 그동안 바빠서 간간히 들어오다보니 심각한 문제가 있는걸 이제야 발견했네요;
1화를 빼먹고 2화부터 올리는 실수를 할 줄이야 ㅠㅠ
저도 읽어보다가 "어, 이거 원래 이렇게 시작했나??" 싶었는데 역시...
좀 황당하시겠지만 이제라도 1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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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막막한 심정에 고개만 처 박고 책을 읽어보지만 괜한 짓이다.
오히려 잠만 더 오고... 주변은 이미 반쯤 엎어진 상태군. 저 교수님은 어떻게 저런 나긋나긋한 톤으로 우리를
자꾸만 시험들게 하실까. 하염없이 끝날 시간만 기다리며 졸린 눈꺼풀을 부여잡아 본다.
잡아야한다, 잡아야해...
".... -형!"
"..으응??"
"형 끝났어요 수업!!"
"헉? 뭐야 나 또 졸은거야??"
"킥킥 에이~ 졸았다고 하기에는.. 그정도로 코 골았으면 잔거라고 해도 부족할걸요?"
"뭐, 뭐라고?? 아 나..."
"교수님이 엄청 눈총 주시던데, 별로 안따가웠나봐요? 흐흐흐~"
"으.. 몰라 임마! 이 수업도 완전 찍혔구만 크."
"암튼 형도 밤에 너무 달리지만 말고 쉬엄쉬엄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놈이, 또 약속있냐?"
"아? 헤헤.. 오늘 동아리 모임이라 좀 빨리 달리러 가봐야해서요. 그럼 저 먼저 가볼께요! "
"그랴, 내일보자~"
승호 녀석도 나가버리자 강의실에는 정말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이러다 궁상병이라도 생길까봐 서둘러
가방을 싸매곤 건물을 빠져나왔다. 버릇처럼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고는 불을 땡긴다. 그나마 니코틴이라도
도니 다운됐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만, 어차피 이 한개피가 다 탈때쯤이면 다시 무덤덤해지리라.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필터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후..이미 왔는지도 모르겠다 궁상병..."
살짝 비집고 나오는 한숨을 마지막 담배연기에 얹혀서 내보내곤, 발걸음을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느덧 밖을 보니 캄캄했다. 도서관에 들어올때만해도 해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었는데,
그래도 내가 제법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는 스스로 칭찬해줄만 했다.
시간을 인지하고 나니, 그 동안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던 몸 이곳 저곳에서 아우성이 들린다.
허리에선 뭐라도 부러진 소리가 나고 목은 벌써부터 뻣뻣하다.
오늘은 이정도 하자는 마음에 대충 가방을 챙기고는 도서관을 나왔다.
사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학교 도서관을 들락날락 거리는건 아니다.
남들도 다 하는거고, 혼자만 새어버리면 이상하니까...
도서관 특유의 짓눌릴듯한 분위기는 꽤 답답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나같은 놈한테는 가장 괜찮은
처방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놀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래도 내가 이 무리에서 같이 비비적거렸다는 확인 도장.
시간을 무겁게 보내고 그만큼의 싸구려 만족감을 산다, 지금의 나에겐 딱이다.
담뱃갑을 찾아서 열어보면, 이맘때의 상황은 항상 비슷하다. 잘해야 2~3개피 남아있는 정도.
여기서 하나 피고, 버스 기다리다 하나 피고, 도착해서 하나피면...
"이젠 하루에 한갑도 간당간당 하구만."
부스럭 부스럭 거리며 담배를 꺼내다보면 일견 처량하기까지 하다.
아침까지만해도 2열 종대로 헤쳐 모여! 상태의 빳빳한 녀석들이 가득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다, 가난한 학생 입장에서는 하루 꼬박꼬박 나가는 2700원도 이미 상당한 부담감이다.
여기서 더 늘릴 수도 없고, 정말 뉴스처럼 담배값 인상이 시작된다면 아마도 쳐내야할 1순위가 될 것이다.
정말 나랑 다를 바가 없는 놈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자신감은, 제대한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금새 추친력을 잃어버렸다.
복학한 과는 그동안 이리저리 합쳐진 결과 전혀 알 수 없는 형태로 변질되어 있었고, 1년이나마 어줍잖게
배웠던 내용들은 하등 쓸모 없는 부도 수표가 되어있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2년을 썩히다보니 머리는 이미 돌이 되어있었고 억지로 책을 붙잡고 공부를 한들, 도무지 머리에
남는게 없었다. 돌아서면 까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중간고사의 경험을 비추어봤을때 이렇게 가다간
이번 학기는 바닥에 떨어진 C나 주워야할게 뻔했으니 절로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싸들고 도서관행을 택한지도 한달 째.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는 하루하루 멀어져가더니, 그 빈자릴 무섭게도 들이닥친 현실이 차지해버렸다.
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괜히 담배 하나 더 피고 싶어질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발걸음을 옮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띠리리리---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니? 밥은 먹었고?"
"네 엄마,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래 피곤할텐데 씻고 어여 자구."
"하하, 안그래도 오늘은 좀 뻐근하긴 하네요."
그래도 집에는 날 반겨줄 사람이 있다.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요즘은 순간순간마다 느끼는걸 보면 내가 철이 좀 들긴 들었나보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 전원을 누른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오면, 이 고물 컴퓨터도 부팅이 다 되어있기에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쓸만하다.
솨아아아-----
"으~ 시원하다."
가볍게 찬물로만 씻었을 뿐인데도 엄청 개운하구만.
날이 지금처럼 덥다보니 하루에 몇번씩 씻어도 모자랄 판이다. 대충 팬티 한장 걸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생수 한통 끄집어내서 목부터 축인 다음, 그대로 옆구리에 끼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을 보니 군대 가기도 전에 샀던 고물 컴퓨터가 있는 힘을 다해서 부팅에 성공해 있었다.
징한 놈, 쿨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만 아니라면 점하나 붙여서 "장한 놈!" 소리를 들었겠지만
6년된 네녀석은 거기까지가 한계야. 징한 놈을 "모자란 놈"이 잘 사용해 주겠습니다요.
익숙한 듯 네이버에 로그인을 하고 카페 목록으로 향한다. 이윽고 카페를 발견하곤 빠르게 접속한다.
"보자.. 접속 인원이..."
흠, 몇명 되지 않는 접속목록에서 원하는 닉네임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지만,
오늘도 별 수 없이 채팅방에서 기다려야겠다 싶어 마우스로 클릭해 채팅방에 입장했다.
10분, 15분, 30분...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도 항상 그렇듯 채팅방은 조용하다.
생각해보면 이 카페에 가입하게 된 지도 상당히 시간이 지났다.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고 참 풋풋했는데..
그땐 사람도 참 많았고, 이 채팅방도 항상 북적거렸다.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노는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나이였고 또 모임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계속 될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애플에서 출시한 아이폰이 정식으로 국내에 들어오면서 스마트폰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기존의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앞다투어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금새 시장을 장악해갔다.
휴대폰 하나로 사진, 인터넷 접속, 동영상 , 음악 감상 등 모든게 가능한 시대가 우리를 할퀸 것이다.
그 여파로 인해 네비게이션이나 PMP 등 많은 부분에서 겹치는 제품들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지금 내가 가입해 있는 이 MP3 카페도 비슷한 수순을 밟으며 사장길로 들어섰다.
듣자하니 제조사 측에서는 벌써 몇년째 신제품 출시를 못하고 있다고 하니, 사용자 모임을 표방하며 탄생한
카페의 현재 모습도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며 하루하루 찾는 이가 줄어들다보면 여기도 유령카페가 될 것이다.
비록 살아있는게 아니라 하더라도 무언가의 끝을 바라본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다.
"우리한테 끝은 죽음이 될거고, 너한텐 종료가 맞겠네."
밤이라 그런지 괜히 센치해져서 이 난리다. 군대까지 갔다온 남자새끼가 이게 뭐람..
어느덧 한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글렀나.
"띵동!"
그런 생각이 들기도 무섭게 누군가 입장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어라, 이거 혹시??"라는 마음에 서둘러 입장한 사람의 닉네임부터 확인했다.
- 비소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드디어! 라는 마음이 채 들기도 전에 손가락을 바삐 놀렸다.
"비소야! 이게 얼마만이야 도대체!!"
"어라? 헐ㅋㅋ 설마해서 들어와봤더니만ㅋㅋㅋ"
"으와..ㅠㅠㅠ 비소야 왜이렇게 보기가 힘들었니, 얼굴에 금칠이라도 했냐ㅠ"
"와 진짜 대박이다 대박!!"
정말 그동안의 지루했던 기다림의 시간들이 한켠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안되라는 법은 없나보다 정말로.
"우와..~ 형 진짜 이게 얼마만이야? 제대는 했고??"
"야, 너는 아직도 그 버릇 못고쳤냐? 여자 입에 자꾸 형 소리 붙어서 어디다 써먹을려고 거 참..."
"몰라ㅋㅋ 영 안고쳐지네 이거 히히"
"아, 그리고 나 전역했어, 올 초에."
"와 추카추카! 세월 진짜 빠르네, 형 군대간다는 얘기가 엊그제 같은데."
"니가 안 가봐서 그래.. 당사자는 죽어난다 정말. 완전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니까."
"햐... 그럼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단 말이지? 진짜 오랜만이긴하다."
오랜만의 만남이라서 그런지, 그동안 못 나눴던 얘기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어떻게 지냈다, 뭘 했다,
때론 시시덕 거리기도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빠르게 메워져갔다.
"비소 너는 정말 하나도 안 바꼈네."
"후후 그게 나의 매력 아니겠는감?"
"팔팔한거 보니까 그런거 같기도하고 아닌거 같기도하고ㅋㅋㅋ.. 이제 고3이던가, 그럼 바쁘겠다?"
기억을 더듬다보니 요 꼬맹이숙녀가 이젠 고3이 될 나이였던거 같아서 마음이 짠해졌다.
채팅방에서 처음 만났을때는 솜털 뽀송뽀송한 중학생이었는데, 벌써부터 최전방에 나가서 연필과 시험지를
휘두를 때가 되었다니, 말마따나 내 일이 아닌건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나보다.
"헐헐... 형! 나 여대생이거든?? 그것도 완전 파릇파릇한!!?"
"엥?"
"올해가 몇년도야?"
"어..그.. 보자... 201..3 ?? 아.. 13년도면 네가 여대생이구나."
"게다가 완전 파릇파릇한 13학번 귀요미지롱 흐흐흐."
"이야~ 니가 벌써 여대생이라니 시간이 가기는 갔나보다,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네."
그렇게 한참을 수다를 떨다보니 문득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아 맞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지내지?"
"아.. 언니랑 형들?"
"응, 나 지금 연락 닿은게 비소 니가 처음이라 다른 사람들은 아직이거든. 너무 궁금하다."
"그냥 뭐 처음에는 다들 연락 좀 되다가 끊긴지 좀 됐어. 몇명은 계속 연락하긴 하는데 거의 카톡이야."
"그럼 카페에는 더이상 안온단 말이야?"
"응, 뭐 그래. 아이 참~ 형도 시대가 어느땐데 누가 채팅방에 들어오겠어? 형 설마 스마트폰 없는거야??"
"아니, 나도 샀지. 근데 연락 올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냥 거의 시계처럼 쓰고 있어."
"우와... 그런 암울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크으..."
"형 왠만하면 이제 카페 들어오지마, 사람도 없고 여긴 이미 죽었거든."
"아, 그렇구나 역시..."
"그래도 넘 실망말구. 내 폰번호 알려줄테니까 이젠 카톡으로 스마트하게 갈아타야지?ㅋ"
"그래 그래야겠네. 에휴 그래도 정 많이 들었었는데 너무 아쉽다..~"
"아이고 우리 형님 밤이라 감수성이 대폭발 하셨네 흑흑"
"까분다?ㅋㅋ"
그렇게 적당히 마무리를 하고는 비소가 적어준 카카오톡 아이디를 추가했다.
하서윤? 털털한 입담이랑은 다르게 이름은 되게 여성스럽네..
본인이 맞나싶어서 메세지 몇개 보내놓고는, 그대로 쓰러질 듯이 침대에 뻗었다.
아차차!
에고, 불을 안껐네.
제일 싫은게 바로 이거다, 잘려고 누웠는데 다시 일어나야하는 거.
그래도 별 수 있나... 군대에서처럼 쫄병들이 알아서 뒤치닥거리 다 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 놈이 해야지.
살짝 퍼진 몸을 일으켜서 방문까지 어기적 걸어갔다.
이러고 서 있으니 꼭 이등병 시절 같았다. 잘해도 쳐맞고 못하면 더 쳐맞는 그 때.
그러고보니 그 때 불은 항상 내가 껐던거 같다. 지금은 다 추억으로 남아서 피식거릴 수 있는 기억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럼, 소등하겠습니다.
딸칵-
1화를 빼먹고 2화부터 올리는 실수를 할 줄이야 ㅠㅠ
저도 읽어보다가 "어, 이거 원래 이렇게 시작했나??" 싶었는데 역시...
좀 황당하시겠지만 이제라도 1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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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막막한 심정에 고개만 처 박고 책을 읽어보지만 괜한 짓이다.
오히려 잠만 더 오고... 주변은 이미 반쯤 엎어진 상태군. 저 교수님은 어떻게 저런 나긋나긋한 톤으로 우리를
자꾸만 시험들게 하실까. 하염없이 끝날 시간만 기다리며 졸린 눈꺼풀을 부여잡아 본다.
잡아야한다, 잡아야해...
".... -형!"
"..으응??"
"형 끝났어요 수업!!"
"헉? 뭐야 나 또 졸은거야??"
"킥킥 에이~ 졸았다고 하기에는.. 그정도로 코 골았으면 잔거라고 해도 부족할걸요?"
"뭐, 뭐라고?? 아 나..."
"교수님이 엄청 눈총 주시던데, 별로 안따가웠나봐요? 흐흐흐~"
"으.. 몰라 임마! 이 수업도 완전 찍혔구만 크."
"암튼 형도 밤에 너무 달리지만 말고 쉬엄쉬엄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놈이, 또 약속있냐?"
"아? 헤헤.. 오늘 동아리 모임이라 좀 빨리 달리러 가봐야해서요. 그럼 저 먼저 가볼께요! "
"그랴, 내일보자~"
승호 녀석도 나가버리자 강의실에는 정말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이러다 궁상병이라도 생길까봐 서둘러
가방을 싸매곤 건물을 빠져나왔다. 버릇처럼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고는 불을 땡긴다. 그나마 니코틴이라도
도니 다운됐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만, 어차피 이 한개피가 다 탈때쯤이면 다시 무덤덤해지리라.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필터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후..이미 왔는지도 모르겠다 궁상병..."
살짝 비집고 나오는 한숨을 마지막 담배연기에 얹혀서 내보내곤, 발걸음을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느덧 밖을 보니 캄캄했다. 도서관에 들어올때만해도 해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었는데,
그래도 내가 제법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는 스스로 칭찬해줄만 했다.
시간을 인지하고 나니, 그 동안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던 몸 이곳 저곳에서 아우성이 들린다.
허리에선 뭐라도 부러진 소리가 나고 목은 벌써부터 뻣뻣하다.
오늘은 이정도 하자는 마음에 대충 가방을 챙기고는 도서관을 나왔다.
사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학교 도서관을 들락날락 거리는건 아니다.
남들도 다 하는거고, 혼자만 새어버리면 이상하니까...
도서관 특유의 짓눌릴듯한 분위기는 꽤 답답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나같은 놈한테는 가장 괜찮은
처방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놀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래도 내가 이 무리에서 같이 비비적거렸다는 확인 도장.
시간을 무겁게 보내고 그만큼의 싸구려 만족감을 산다, 지금의 나에겐 딱이다.
담뱃갑을 찾아서 열어보면, 이맘때의 상황은 항상 비슷하다. 잘해야 2~3개피 남아있는 정도.
여기서 하나 피고, 버스 기다리다 하나 피고, 도착해서 하나피면...
"이젠 하루에 한갑도 간당간당 하구만."
부스럭 부스럭 거리며 담배를 꺼내다보면 일견 처량하기까지 하다.
아침까지만해도 2열 종대로 헤쳐 모여! 상태의 빳빳한 녀석들이 가득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다, 가난한 학생 입장에서는 하루 꼬박꼬박 나가는 2700원도 이미 상당한 부담감이다.
여기서 더 늘릴 수도 없고, 정말 뉴스처럼 담배값 인상이 시작된다면 아마도 쳐내야할 1순위가 될 것이다.
정말 나랑 다를 바가 없는 놈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자신감은, 제대한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금새 추친력을 잃어버렸다.
복학한 과는 그동안 이리저리 합쳐진 결과 전혀 알 수 없는 형태로 변질되어 있었고, 1년이나마 어줍잖게
배웠던 내용들은 하등 쓸모 없는 부도 수표가 되어있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2년을 썩히다보니 머리는 이미 돌이 되어있었고 억지로 책을 붙잡고 공부를 한들, 도무지 머리에
남는게 없었다. 돌아서면 까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중간고사의 경험을 비추어봤을때 이렇게 가다간
이번 학기는 바닥에 떨어진 C나 주워야할게 뻔했으니 절로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싸들고 도서관행을 택한지도 한달 째.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는 하루하루 멀어져가더니, 그 빈자릴 무섭게도 들이닥친 현실이 차지해버렸다.
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괜히 담배 하나 더 피고 싶어질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발걸음을 옮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띠리리리---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니? 밥은 먹었고?"
"네 엄마,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래 피곤할텐데 씻고 어여 자구."
"하하, 안그래도 오늘은 좀 뻐근하긴 하네요."
그래도 집에는 날 반겨줄 사람이 있다.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요즘은 순간순간마다 느끼는걸 보면 내가 철이 좀 들긴 들었나보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 전원을 누른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오면, 이 고물 컴퓨터도 부팅이 다 되어있기에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쓸만하다.
솨아아아-----
"으~ 시원하다."
가볍게 찬물로만 씻었을 뿐인데도 엄청 개운하구만.
날이 지금처럼 덥다보니 하루에 몇번씩 씻어도 모자랄 판이다. 대충 팬티 한장 걸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생수 한통 끄집어내서 목부터 축인 다음, 그대로 옆구리에 끼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을 보니 군대 가기도 전에 샀던 고물 컴퓨터가 있는 힘을 다해서 부팅에 성공해 있었다.
징한 놈, 쿨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만 아니라면 점하나 붙여서 "장한 놈!" 소리를 들었겠지만
6년된 네녀석은 거기까지가 한계야. 징한 놈을 "모자란 놈"이 잘 사용해 주겠습니다요.
익숙한 듯 네이버에 로그인을 하고 카페 목록으로 향한다. 이윽고 카페를 발견하곤 빠르게 접속한다.
"보자.. 접속 인원이..."
흠, 몇명 되지 않는 접속목록에서 원하는 닉네임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지만,
오늘도 별 수 없이 채팅방에서 기다려야겠다 싶어 마우스로 클릭해 채팅방에 입장했다.
10분, 15분, 30분...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도 항상 그렇듯 채팅방은 조용하다.
생각해보면 이 카페에 가입하게 된 지도 상당히 시간이 지났다.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고 참 풋풋했는데..
그땐 사람도 참 많았고, 이 채팅방도 항상 북적거렸다.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노는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나이였고 또 모임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계속 될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애플에서 출시한 아이폰이 정식으로 국내에 들어오면서 스마트폰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기존의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앞다투어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금새 시장을 장악해갔다.
휴대폰 하나로 사진, 인터넷 접속, 동영상 , 음악 감상 등 모든게 가능한 시대가 우리를 할퀸 것이다.
그 여파로 인해 네비게이션이나 PMP 등 많은 부분에서 겹치는 제품들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지금 내가 가입해 있는 이 MP3 카페도 비슷한 수순을 밟으며 사장길로 들어섰다.
듣자하니 제조사 측에서는 벌써 몇년째 신제품 출시를 못하고 있다고 하니, 사용자 모임을 표방하며 탄생한
카페의 현재 모습도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며 하루하루 찾는 이가 줄어들다보면 여기도 유령카페가 될 것이다.
비록 살아있는게 아니라 하더라도 무언가의 끝을 바라본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다.
"우리한테 끝은 죽음이 될거고, 너한텐 종료가 맞겠네."
밤이라 그런지 괜히 센치해져서 이 난리다. 군대까지 갔다온 남자새끼가 이게 뭐람..
어느덧 한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글렀나.
"띵동!"
그런 생각이 들기도 무섭게 누군가 입장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어라, 이거 혹시??"라는 마음에 서둘러 입장한 사람의 닉네임부터 확인했다.
- 비소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드디어! 라는 마음이 채 들기도 전에 손가락을 바삐 놀렸다.
"비소야! 이게 얼마만이야 도대체!!"
"어라? 헐ㅋㅋ 설마해서 들어와봤더니만ㅋㅋㅋ"
"으와..ㅠㅠㅠ 비소야 왜이렇게 보기가 힘들었니, 얼굴에 금칠이라도 했냐ㅠ"
"와 진짜 대박이다 대박!!"
정말 그동안의 지루했던 기다림의 시간들이 한켠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안되라는 법은 없나보다 정말로.
"우와..~ 형 진짜 이게 얼마만이야? 제대는 했고??"
"야, 너는 아직도 그 버릇 못고쳤냐? 여자 입에 자꾸 형 소리 붙어서 어디다 써먹을려고 거 참..."
"몰라ㅋㅋ 영 안고쳐지네 이거 히히"
"아, 그리고 나 전역했어, 올 초에."
"와 추카추카! 세월 진짜 빠르네, 형 군대간다는 얘기가 엊그제 같은데."
"니가 안 가봐서 그래.. 당사자는 죽어난다 정말. 완전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니까."
"햐... 그럼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단 말이지? 진짜 오랜만이긴하다."
오랜만의 만남이라서 그런지, 그동안 못 나눴던 얘기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어떻게 지냈다, 뭘 했다,
때론 시시덕 거리기도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빠르게 메워져갔다.
"비소 너는 정말 하나도 안 바꼈네."
"후후 그게 나의 매력 아니겠는감?"
"팔팔한거 보니까 그런거 같기도하고 아닌거 같기도하고ㅋㅋㅋ.. 이제 고3이던가, 그럼 바쁘겠다?"
기억을 더듬다보니 요 꼬맹이숙녀가 이젠 고3이 될 나이였던거 같아서 마음이 짠해졌다.
채팅방에서 처음 만났을때는 솜털 뽀송뽀송한 중학생이었는데, 벌써부터 최전방에 나가서 연필과 시험지를
휘두를 때가 되었다니, 말마따나 내 일이 아닌건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나보다.
"헐헐... 형! 나 여대생이거든?? 그것도 완전 파릇파릇한!!?"
"엥?"
"올해가 몇년도야?"
"어..그.. 보자... 201..3 ?? 아.. 13년도면 네가 여대생이구나."
"게다가 완전 파릇파릇한 13학번 귀요미지롱 흐흐흐."
"이야~ 니가 벌써 여대생이라니 시간이 가기는 갔나보다,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네."
그렇게 한참을 수다를 떨다보니 문득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아 맞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지내지?"
"아.. 언니랑 형들?"
"응, 나 지금 연락 닿은게 비소 니가 처음이라 다른 사람들은 아직이거든. 너무 궁금하다."
"그냥 뭐 처음에는 다들 연락 좀 되다가 끊긴지 좀 됐어. 몇명은 계속 연락하긴 하는데 거의 카톡이야."
"그럼 카페에는 더이상 안온단 말이야?"
"응, 뭐 그래. 아이 참~ 형도 시대가 어느땐데 누가 채팅방에 들어오겠어? 형 설마 스마트폰 없는거야??"
"아니, 나도 샀지. 근데 연락 올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냥 거의 시계처럼 쓰고 있어."
"우와... 그런 암울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크으..."
"형 왠만하면 이제 카페 들어오지마, 사람도 없고 여긴 이미 죽었거든."
"아, 그렇구나 역시..."
"그래도 넘 실망말구. 내 폰번호 알려줄테니까 이젠 카톡으로 스마트하게 갈아타야지?ㅋ"
"그래 그래야겠네. 에휴 그래도 정 많이 들었었는데 너무 아쉽다..~"
"아이고 우리 형님 밤이라 감수성이 대폭발 하셨네 흑흑"
"까분다?ㅋㅋ"
그렇게 적당히 마무리를 하고는 비소가 적어준 카카오톡 아이디를 추가했다.
하서윤? 털털한 입담이랑은 다르게 이름은 되게 여성스럽네..
본인이 맞나싶어서 메세지 몇개 보내놓고는, 그대로 쓰러질 듯이 침대에 뻗었다.
아차차!
에고, 불을 안껐네.
제일 싫은게 바로 이거다, 잘려고 누웠는데 다시 일어나야하는 거.
그래도 별 수 있나... 군대에서처럼 쫄병들이 알아서 뒤치닥거리 다 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 놈이 해야지.
살짝 퍼진 몸을 일으켜서 방문까지 어기적 걸어갔다.
이러고 서 있으니 꼭 이등병 시절 같았다. 잘해도 쳐맞고 못하면 더 쳐맞는 그 때.
그러고보니 그 때 불은 항상 내가 껐던거 같다. 지금은 다 추억으로 남아서 피식거릴 수 있는 기억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럼, 소등하겠습니다.
딸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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